Ⅰ. 서론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는 이른바 ‘국민과 함께 하는 개헌’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2017년 2월 2일부터 2018년 1월까지 총 136회의 회의를 거쳐 최종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였다.1) 동 위원회는 6개 분과(기본권·총강, 경제·재정, 지방분권, 정부형태, 정당·선거, 사법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구성 후 초기 8개월은 분과위원회별로 활동하다가 2017년 10월 말부터 12월초까지 전체회의를 통해 분과별 의견의 조정을 거쳤다. 주목할 점은 위 개헌안 시안은 정부형태 옵션과 상관없이 지방분권의 강화를 병행조건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2) 따라서 ‘주민주권’을 실현하고 ‘지역균형발전’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실질적 지방자치’를 제도화함으로써 ‘지방분권’을 강화하겠다는 예비적 헌법개정권자(?)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분권을 위한 헌법개정은 주민주권의 실현과 수직적 권력분립을 전제로 국가경쟁력의 원천을 지방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점3)에서 세계화와 지역화를 강조했던 지난 사반세기 동안의 시대적 조류와 일치한다.
정치적 민주화가 가시화된 1990년대 이후 지방분권을 위한 많은 입법자의 노력이 있었지만 집권 정치세력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가진 중앙정부나 중앙 정치권력은 지방권력의 성장에 긴장감을 가지고 있었고 진솔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 개혁은 항상 미완에 그쳤다고 평가된다.4) 지방자치에 관한 한 세기 전의 제도보장이론을 가지고 지방분권의 헌법적 가치와 지방의 자유로운 행정 혹은 자치행정을 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위한 헌법 개정의 필요성은 선출직 공무원이나 정치인·학자들의 장광설(長廣舌)이 아니라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되었다.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의 변화는 단일국가 형태를 헌법에 채택한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 예로 2003년에 지방분권을 헌법에 수용한 프랑스의 경우 헌법 제1조에 지방분권국가를 선언하고, 중앙-지방정부간 사무배분원칙으로서 보충성의 원칙과 지방의회의 자치재정권과 자치입법권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5)
앞의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475쪽(가로 편집)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양이지만, 제 분과별 보고서 내용을 소개하고 전체적인 축조된 개정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고 분과별로 조금씩 입장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헌법개정안을 만드는 국회가 제출한 위 보고서는 향후 진행될 개헌 과정의 청사진을 예측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6)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지방분권과의 경우 지방분권, 지역대표형 상원의 신설, 헌법개정 절차 및 지방사법기관에 대한 주민통제의 내용을 옴니버스(omnibus)식으로 다루고 있다. 위 개정안 시안은 현행 헌법 조항에 2개 조문을 추가하여 정부간 행정분권과 자치행정에 관한 종전의 학계의 논의를 대폭 반영하고 있다.
다만 지방분권 개헌의 숙의(熟議)과정에서 비교법적 검토의 대상이 되었던 2003년 3월 15일 프랑스 헌법률(loi constitutionnelle)의 내용에 대한 이해가 소개하는 분마다 차이가 있고7), 자치행정에 대한 의미, 정부간 자치분권이라는 표현에 담긴 ‘정부간’의 의미와 국가형태에 대한 분과별 자문가 그룹의 검토사항이 보고서에는 자세히 담겨져 있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
이하에서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의 지방분권과에서 제시한 정부간 행정분권과 자치행정에 관한 헌법개정안 조항에 대해 검토하기로 한다. 동 개정안은 현행 헌법 제117조의 내용을 송두리째 바꾸고 2개 조문을 추가하는 지방분권 개헌의 핵심을 담고 있다. 행정분권과 자치행정의 헌법적 차원으로의 격상은 헌법 제1조 개정안에서 새로이 추가한 국가조직의 지방분권화와 체계정합성을 가지고 진행된다는 점에서 개헌이 현실화 된다면 최소한 이에 대한 결실은 가능해야 한다고 본다.
Ⅱ. 지방자치에 관한 헌법개정안8)의 내용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지방분권분과에서 작성한 헌법개정안 시안은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종래 논의되는 지방분권의 틀을 대폭 확대시켜 놓고 있다. 개정안 시안은 헌법 총강 부분에서 지방분권국가를 선언하고 국회와 지방자치 부분에서 지역입법권의 인정과 중앙과 지방의 권한배분의 보충성원칙의 명문화, 주민자치의 강화와 직접 민주주의 도입, 형사사법을 포함한 행정권의 중앙과 지방의 배분 및 재정자치권의 강화를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국회 부분에서 지역대표형 상원의 신설과 사법부 부분에서의 지역법원의 선거제 등을 제안하고 있다. 발표자의 사견으로는 개정안 내용과 같은 전(全)방위적 지방권력 강화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지방분권을 위한 헌법개정 가능성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진행될 우려가 있다고 본다. 가슴은 열정으로 펄펄 끓어야겠지만 머리는 차갑게 해야만 지방분권 개헌의 전략적 결실을 거두지 않나 생각된다. 개정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사항별 헌법 조항의 구체적 내용은 아래와 같다.
현행 | 자문위원회 개정안 시안 | 비 고 |
---|---|---|
(신설) | 제1조 ③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이다. | [기본권·총강분과 안] 제1조 ③ 대한민국은 분권형 국가를 지향한다. |
제40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 제40조 입법권은 국민 또는 주민이 직접 행사하거나 그 대표기관인 국회와 지방의회가 행사한다. | [정부형태분과 안] 제40조 현행유지 |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헌법개정안 시안은 매우 방대한 내용이 담겨있고 지방분권분과에서 작성한 시안의 내용도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따라서 이에 대한 내용을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검토하기 보다는 개괄적으로 헌법개정권자들이 예정하고 있는 지방분권 헌법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본고는 앞의 개헌안 시안의 지방자치에 관한 장 가운데 ⑴ 내지 ⑷에 관한 부분에 대한 내용을 검토하는데 있다. 이하 Ⅲ.부분 이하에서 시안의 조항별로 검토하겠지만 전반적으로 정부간 행정분권과 자치행정에 대한 헌법개정안 제안자들은 지방분권 헌법이라는 새로운 제도설계를 하고 있다는 점과 분권에 대한 의의를 헌법에 수용함에 있어 아직 숙의(熟議)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우려 또한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개정안 시안은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관계를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으며, 주민주권에 대한 논의를 행정분권에서 다루는 것이 체계적인가 하는 의문도 있다.
이번 헌법 개정은 이제까지 우리 헌법이 애써 부인했던 민주적 정당성을 내세운 권력의 집중화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정부로 대변되는 국가권력의 집권화 현상에서 벗어나 권력의 핵심 요소를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권력집단인 지방권력으로 나눈다는 점에서 분권헌법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점은 헌법개정에 관한 여러 자료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10) 따라서 어떠한 정부형태를 취하든 아니면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의 다른 집행기관과의 분담에 대한 다양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분권화(la décentralisation)라는 용어가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분권화에 대한 논의는 매우 다양하다. 필자도 프랑스 공법학에 대한 자료에 의존하여 지방분권을 공부하다보니 지방분권 헌법에 대한 내용의 이해에 있어 특징과 함께 한계를 함께 가지고 있다. 하지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개정안 시안을 보면 지난 2003년 프랑스 헌법 개정 내용과 매우 유사함을 발견하게 된다.11) 물론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지방분권분과 6인의 자문위원 가운데 한 분이 프랑스 지방분권 분야의 전문가인 점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참여했던 정치·행정·국회·지방의회․시민단체의 현장에서 주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대한민국 헌법 총강의 첫 번째 부분을 지방분권헌법(Une Constitution de décentralisation territoriale)으로 변경하는 제도설계자의 역할을 자임했다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실정법에 어떤 용어를 사용할 것인가 하는 점은 다양한 해석방법의 첫 준거라고 본다. 헌법학자들은 헌법이 가지고 있는 이념적· 기능적· 규범구조적 특징 때문에 일반 법률의 해석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고 설명한다.12) 따라서 이번 개정안 시안에서 헌법 총강과 지방자치에 관한 장13)에서 나타난 ‘지방분권 국가’ 혹은 ‘분권형 국가’(기본권 및 총강분과안)라는 용어와 ‘주민의 자치권’과 ‘지방정부의 입법권’과 ‘자치사무 수행’ 및 ‘지방검찰청장과 지방경찰청장의 주민선거’를 종래 우리가 논의해온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관계에 관한 논의로 설명 가능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필자의 과문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가능하겠지만 지방분권은 구성원의 사회적 계약유무에 관계없이 일정한 지역을 같이하는 집단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힘의 우열이 주권을 행사하는 국가공동체와 이를 구성하는 지역공동체로 구별할 수 있을 때 가능한 두 권력체간의 관계설정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헌법을 정점으로 하는 규범 파라미드에 지방분권이라는 용어를 포섭하는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조직법적 차원에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지역공동체의 의사결정 수준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법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의사결정 수준은 전통적인 입법, 집행, 사법 분야에 대해 구별하여 논의될 것이고, 국가 공동체의 형태와 국가 공동체의 최고의사를 결정하는 주권의 가분성 정도에 따라 단일-지역-연방국가 모습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설명되어 왔다.
이에 비해 우리가 이해하는 지방자치는 자치행정의 차원에서 출발하지 않나 하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생각이다. 따라서 자치행정권의 강화는 지방권력의 의사결정방식과 민주주의 의사결정방식에서의 직접성과 대표성 그리고 국가차원의 공익과 구별되는 지역이익의 존재와 이를 처리하는 지방의 사무 범위의 결정과 이에 필요한 재원조달에 관한 부분이 뒤섞여 있다.
지방분권과 자치행정의 내용이 서로 구분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현행 헌법과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에 관한 법률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관계는 전자는 행정상 분권에 가깝게 이해되고, 후자는 수직적 권력분립 기능을 강조하지만 정작 성문 헌법 조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행정만 규정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지방자치법 이후 만들어진 권한이양과 지방분권특별법의 체계정합성을 헌법에서 어느 정도 만들어줄 필요가 있는데, 개정안 시안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개정안 시안은 현행 헌법상의 지방자치단체를 생략하고 지방정부라는 용어를 처음부터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설명이 많지 않은 점에 대해 의문이 있다. 개정안 시안에서 나타난 지방정부는 여러 조항을 고려할 때 지역국가(Regional State) 모델에서 말하는 자치정부 혹은 자치정부 공동체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개정안 시안은 근본적으로 국가의 주권이 가분적이지 않다는 점에 단일국가를 유지하면서도 국가와 광역화된 지방정부의 법률제정권을 인정하고, 지방정부든 지방의회든 주민 대표자로 구성된 권력체에 법률 제정권을 인정하는 점에서 법률제정권의 국가 독점이라는 전통적인 단일국가 구성원리를 깨고 있다.
다만 개정안 시안에 대해 궁금한 점은 정부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관한 점이다. 2017년 이후 많은 법학자들의 글에서도 지방분권을 이야기하면서 지방정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14)에 필자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 대신 지방정부를 채택한 의의에 대해 정면으로 논증하고 있는 자료를 접하지 못하였다.
필자는 아직까지는 지방분권의 의미를 행정상 분권, 더 솔직히 말하면, 분권화된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로 대체되는 국가와의 권한배분의 문제로 이해한다. 분권이 말하는 배분의 대상이 사법사무면 사법분권, 입법권에 관한 사항이면 입법분권으로 이해하는 것이 너무 형식논리적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연방국가 형태에서라면 지방정부 라는 표현이 덜 어색하겠지만 단일국가형태에서 지방정부는 적어도 법적 틀에 포함된다면 앞으로 여러 가지의 난처한 현실을 자주 접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Ⅲ. 자문위원회 개정안 시안 제117조-주민자치와 보충성원칙의 선언
현행 헌법은 제9장에서 지방자치에 관한 두 조문을 규정하고 있다. 하나는 지방자치단체가 행사하는 자치행정을 위한 자치규정의 제정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제도적 보장이론의 핵심영역인 지방자치단체의 존속 보장에 관한 내용이다. 이에 비해 개정안 시안은 완전히 새로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단체의 자치에 관한 내용은 사라지고, 주민자치에 기초한 지방자치권과 지방정부라는 표현을 헌법전에 도입하고 있다. 그리고 제3항에 보충성원칙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간의 사무배분과 수행의 기본원칙으로 선언하고 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 표와 같다.
개정안 시안은 지방자치에 관한 첫 번째 조항인 제117조 제1항에서 지방자치가 주민자치에 기초함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15) 그리고 주민의 자치권은 직접적 혹은 지방정부의 기관을 통해 행사된다고 하여 지방민주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에서 자문적 성격이 아니라 의사결정 또는 구속적 성격을 가진 주민투표에 대한 근거를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전통적인 논의에 따르면 주민자치와 단체자치의 비교는 지방자치의 의의를 설명하면서 이른바 독일에서 논의된 자치행정의 정치적 의미와 법적 의미에 대한 설명에 관한 것이다.16)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직업 관료가 아닌 지방주민으로 구성된 명예직(다시 말해 보수를 받지 않는) 공무원의 공동체의 공공업무의 운영이 주민자치 개념이고, 공법인으로서 자기 스스로 법적인 권리의무의 주체가 되는 지방자치단체가 법률의 범위 내에서 공적 사무를 자신의 독자적 책임 하에 처리하는 것이 단체자치 개념이다.17) 그리고 현행 헌법의 지방자치에 대한 법적 해석에 있어서 헌법재판소는 두 개념이 결합되어 있다고 하였다.18)
지방자치제도가 민주주의 및 지방분권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음은 여러 문헌이나 위의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알 수 있다. 견해를 밝힌 모든 저자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현행 헌법과 지방자치법을 전제로 한다고 할 때, 국내의 다수 견해는 후자에 좀 더 뉘앙스가 주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이번 국회 개헌특위의 개정안 시안은 지방자치의 본질적 요소로서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의 주민에 의한 지방자치단체의 대표기관의 선출은 지방자치단체의 권한행사의 직접적인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19) 개정안 시안은 더 나아가서 주민의 직접민주주의 의사결정 방식을 헌법에 직접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앞의 헌법소원 기각결정에서 “주민소환제는 원칙으로서의 대의제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여서도 아니된다는 점이 그 입법형성권의 한계로 작용한다 할 것이다”고 밝힌바 있는바, 국회 헌법개정특위의 개정안 시안은 헌법재판소의 입장에 비해 더 많이 진전되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입장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개정안 시안은 현행 헌법과 마찬가지로 지방정부의 종류를 법률로 정할 것을 헌법개정권자에게 요청하고 있다. 본고에서 다루기에는 무거운 주제인 지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용어사용의 차이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 사견만 밝히면 개정안 시안은 지방정부라는 표현은 실제 축조(逐條)단계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원상회복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20)
지방자치단체(개정안 시안에 의하면 지방정부)의 존재를 헌법에 직접 둘 것인가 법률로 정하는 현재의 입장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독일(연방국가), 스페인·이탈리아(지역국가), 프랑스(단일국가) 등 대륙법계 국가는 지방정부의 종류를 직접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 시안에서 주민투표를 거친 법률에 의한 지방자치단체의 존속보장을 헌법에 직접 규정하는 대신 종전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주민투표 카드를 끼워 놓은 것은 2006년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결정(기각)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21) 헌법재판소는 지난 개띠 해에 “지방자치제도보장의 핵심영역 내지 본질적 부분이 특정 지방자치단체의 존속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며 지방자치단체에 의한 자치행정을 일반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므로, 현행법에 따른 지방자치단체의 중층구조 또는 지방자치단체로서 특별시·광역시 및 도와 함께 시·군 및 구를 계속하여 존속하도록 할지 여부는 결국 입법자의 입법형성권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제주특별자치도를 설치하면서 기존의 지방자치단체(제주도와 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을 모두 폐지하는 혁신적 대안을 담은 주민투표의 결과(그 내용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반영되었다)가 입법자를 구속하는가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비해 개정안 시안에서는 “지방정부의 종류는 종전에 의하되, 이를 변경하고자 할 때에는 주민투표를 거쳐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문위원회 지방분권분과 위원들은 입법자의 결정에 앞서 주민의 동의를 헌법에 직접 요구하는 것은 중앙정부가 지방자치의 근간을 이루는 정부의 종류를 자의적으로 변경하거나 지방자치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해하지 않도록 방어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22)
지방분권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따라 붙는 보충성원칙은 이제 식상할 정도로 일반 사람들에게도 회자되고 있다. 개정안 시안에 나타난 지방분권을 위한 보충성원칙은 사무배분과 수행의 원칙을 말한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보고서는 “보충성의 원칙은 개인과 공동체, 공동체상호간의 역할배분의 원리로서 사무 처리의 타당성과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개인과 하위공동체의 자율과 책임을 보장함”이라고 대담하게 밝히고 있다.24) 보충성원칙이 과연 하위 공동체의 자율과 책임을 보장해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나, 까논(Canon)법에 뿌리를 둔 우(優)와 열(劣)이 드러나는 공동체간의 관계설정 기준이 지금의 유럽연합의 틀을 만드는 기본원칙으로 입법화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규모와 힘의 논리로 작은 공동체 단위의 의사결정이 무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은 다수의 동의를 얻었다고 생각된다.
2003년 프랑스 헌법개정에서 보충성원칙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고 필자도 그에 관한 소개를 일찍 했던 터라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보고서에 몇 자 더 첨언하기로 한다.25) 보충성원칙은 적극적 측면에서 보면 상위 공동체와 하위 공동체의 사회적 통합을 위한 노력과 의무를 양자 모두에게 부과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국가 혹은 중앙정부의 일방적 의사결정으로 국가와 지방의 기능을 배분하지 말라는 국가조직 운영의 핵심적 사항을 담은 헌법적 사항이라 할 수 있다.26)
앞서도 밝혔지만 필자는 개정안 시안이나 정부의 헌법개정안에 나타난 지방정부라는 용어 선택에 대해 선뜻 동의하지 않는 쪽에 있다. 아직은 논리적으로 왜 ‘단체’가 아니라 ‘정부’라는 표현을 채택해야만 지방자치가 정당화되고 현실화되는지 논리적으로 설득당하지 못하고 있어서 기존의 필자의 견해를 소개하기로 한다. 필자는 국가주권의 불가분성과 입법권의 국가 독점이 단일국가 형태의 핵심적 요소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형태 속에는 다양한 지방권력이 존재하고 이들은 입법자의 결단에 따라 공법인으로서 법적 행위를 할 수 있고, 다른 공법인과는 달리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지방민주주의라는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활동한다. 따라서 지방분권이 말하는 권한의 배분은 국가권력과 지방권력의 관계설정에 관한 것으로 국가의 형태와 조직에 관한 내용으로 취급할 수 있다. 개정안 시안이 프랑스 헌법의 예를 빌려와 제1조 제3항을 추가하고자 하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따라서 서로 같은 지역적 공간을 두고 국가라는 권력단체와 지방정부라는 권력단체가 자신의 권한에 따라 결정하고 처리하는 사무를 어떤 방식으로 나눌 것인가 하는 중앙-지방간 사무배분의 과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개정안 시안에서 사무배분과 수행에 있어서의 보충성원칙이 왜 지방분권의 헌법적 가치를 전제로 해야만 가능한 것인지도 동일한 이유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의 정황은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개정안 시안이나 정부의 헌법개정안 내용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 또한 어떤 형태로든 지방분권을 헌법에 수용한 이상 보충성원칙을 헌법조문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위공동체가 우선 사무를 처리하고 상위공동체는 하위공동체가 그 사무를 처리할 수 없는 경우에만 개입하도록 하자는 취지는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처리할 수 없는 사무만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처리하고, 광역자치단체도 처리할 수 없는 사무만 중앙정부(국가)가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27)
다만 보충성원칙은 이번 개정안 시안에서 새롭게 검토된 사항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을 위한 종전의 입법자들의 고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본다.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9조 제2항28)의 사무배분에 관한 조항이나 「지방자치법」 제10조 제3항29)의 지방자치단체 종류별 사무배분 기준에 관한 규정에서도 개정안 시안과 같은 내용을 명문화하고 있다.
종래 법률 문언에 나타난 사무배분과 수행과정에 존중되어야 할 보충성원칙은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에 비해 헌법 차원으로 격상되었으니까 굳이 세세하게 규정할 게 아니라 ‘보충성원칙’이라고 선언해 버리면 해석을 통해 적응성 있게 법률적 문제는 물론 헌법적 다툼도 해결할 수 있다고 자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정안 시안이 제시한 표현은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학자들이 주장이나 외국의 판례나 입법이 참조는 되겠지만 법률 차원에 머물렀던 지방분권과 보충성원칙을 기왕에 헌법으로 승격시킨다면 오히려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밝혀주는 것이 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정안 시안과는 달리 지방자치단체의 자유로운 행정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프랑스 헌법은 제72조 제2항에서 “지방자치단체는 각 지방차원에서 최대한 실행할 수 있는 권한전반에 관해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서 개정안 시안처럼 덩그러니 “보충성원칙”에 따른다고 하지 않고 있다.
매우 중요한 사안에 대해 수많은 외국법제의 비교법적 검토와 학자들의 논의와 토론을 거쳐 내놓은 법안이 엉성한 골격이나 헌법재판관이나 법관의 해석과 판단에 한번 기대 보자는 식의 입법은 오히려 그간의 지방분권 헌법 개정의 긴 노력에 비해 허탈감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사견으로는 개정안 시안 제3항의 표현방식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 답안은 넘쳐날 것으로 예상되어 본고에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기왕지사 헌법개정 과정의 두 주인공의 답안이 나와 있으니 이를 비교해 보자면 적어도 보충성원칙과 관련해서는 정부의 헌법개정안 표현방식이 좀 더 세련된 입법방식을 취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Ⅳ. 자문위원회 개정안 시안 제118조- 입법분권과 행정분권
자문위원회 개정안 시안 제118조는 현행 헌법 제117조 제1항과 관련이 있지만 현행 헌법과는 달리 개정안 시안 제117조에서 지방자치의 본질을 주민자치로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자치의 내용에 관한 새로운 조항이 등장하였다고 본다. 지방분권의 의미를 행정적 분권(la décentralisation territoriale administrative)으로 이해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자문위원회 시안에서 설명하는 입법분권과 행정분권의 구분이 정확한가 하는 의문이 있다.
개정안 시안과 같이 지방정부가 입법권을 가진다면 그 지방입법권의 범위는 지방정부의 사무를 확정하고 지방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개입할 수 있는 활동영역의 규범적 근거로서 지방분권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개정안 시안은 제118조 제1항에서 전통적 의미의 레갈리앙 영역(compétence régalienne)에 대한 중앙정부(국가)의 독점적 개입을 인정한다. 그리고 동조 제2항은 중앙과 지방정부의 개별적 입법권과 제3항은 지방입법권의 유효범위에 대해 당연한 내용을 선언한다. 제118조 제4항은 지역국가 모델에 유사한 지역법률의 보충성에 대해 규정한다.
다만 위 제4항이 원안대로 성문화 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학문적 논의에서도 비교법적 차원에서도 이러한 법 짜깁기를 헌법에서 과감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현실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제5항은 법문언의 체계성 차원에서 본다면 좀 엉뚱한 조문이라 할 수 있다. 지방정부라는 용어를 택하였고, 검찰청과 경찰청 앞에 지방이라는 수식어가 있으니 지방정부를 구성하는 기관이고 권력기관이라는 점에서 주민직선의 내용 관철이라고 우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정안 시안은 현행 헌법에 비해 간접대표제의 기능을 줄이고 직접 대표제를 지향하고 있다. 지방자치에 분야에서도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지방정부의 자주적 입법권을 강조하면서 지방의회에 국가와 대등한 입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부여하고 있다.
관점에 따라 이해와 설명이 많은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법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개정안 시안이 헌법의 전제인 국가공동체의 의사결정 방식을 지역국가 모델 내지는 연방국가 모델을 전제로 하고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된다. 입법권의 귀속주체를 국민 또는 주민으로 한다는 주장은 법률제정권이 국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에게 있다는 점인데,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한 경우와 달리 오랜 기간 통일적인 집권화된 행정문화에 익숙했던 우리의 경우와 동일하게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개정안 시안 제118조의 내용은 종래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한 자치입법권의 자유를 강조했던 내용에서 제3항과 같이 법률적 효력을 가진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어쩌면 지역국가 모델에 충실하다면 수긍이 갈 수 있는 점도 있겠으나, 여러 차례 언급하지만 과연 우리 헌법이 지역국가를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개정안 시안 제118조 제1항은 중앙정부에 전속적인 입법권(배타적 입법권)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전속적 입법권은 국가존립, 전국적 규모이거나 전국적 통합성과 통일성이 필요한 사무로 지방정부의 입법이 허용되지 않고 중앙정부만 입법을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한다. 그리고 제2항은 중앙정부의 입법사항 외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제4항은 정부의 입법소관사항 외에는 중앙-지방정부간 경합적 입법권과 병렬적 입법권을 부여하고 있다.
개정안 시안에서 가장 주목할 조항은 지방정부의 법률제정권이다. 현행 헌법과 법률 하에서는 법주체인 분권화된 지방자치단체의 의결기관인 지방의회가 제정한 조례를 행정입법으로 해석하고 있다. 개정안 시안 보고서는 “연방국가인 스위스 등 외국의 경우 지방의회가 제정하는 자치입법을 형식적 의미의 법률로 보아 주민의 권리제한이나 의무부과, 벌칙 등도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행정입법으로 해석하여 법률의 위임이 없으면 권리제한이나 의무부과를 할 수 없도록 해석함으로 인해 지방의 행위능력은 제한되고 무능력자가 되어 자치적인 정책수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30) 현행 헌법 조항과 지방자치법 조항은 주민의 권리제한, 의무부과, 벌칙제정에 있어 지방정부의 개입가능성을 제약하고 있고, 법치행정에 따른 조례의 위헌성 법리 다툼으로 인해 지방자치의 폭이 매우 협소한 것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과제이다.
다만 국가와 지방정부의 법률 경합이 과연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모습일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 지역법률주의 주장은 외국에서는 지방정부에게 광범위한 법률제정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논거로 들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의 어떤 내용인지, 실제로 국가의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지역의 법률인지 등에 대해서 실증적 검토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만일 외국 교재나 정부의 홈페이지의 원문 번역 보고서를 가지고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헌법전에 그대로 여과 없이 담을 수 있을 지에 대한 검증이 요구된다.
개정안 시안 제118조 제4항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법률이 충돌하는 경우에 효력관계에 있어 중앙정부 법률의 우위를 원칙적으로 보장하되,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할 것이 요구되고 위험의 분산을 위하여 다양한 규율이 요구되는 때에는 예외적으로 지방의 법률로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한다. 개정안 시안 보고서의 “정부간 입법경쟁을 통하여 입법의 품질을 제고할 수 있고 아래로부터 혁신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는 기술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정안 시안 제118조 제5항과 제6항은 행정분권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각은 지방분권의 기본원칙인 보충성원칙에 관한 내용으로 평가된다. 보충성원칙에 의한 자치행정의 수행은 지방정부에 의한 행정의 수행이 보다 지역 실정에 부합하고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행 | 자문위원회 개정안 시안 |
---|---|
(신설) | 제118조 ⑤ 중앙정부는 법률에서 직접 수행하도록 정한 사무를 제외하고는 지방정부에 위임하여 집행한다. ⑥ 지방정부는 당해 입법기관이 제정한 법률을 자치사무로 수행하고, 중앙정부 또는 다른 지방정부에서 위임한 사무를 수행한다. |
⑦ 지방검찰청장과 지방경찰청장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관할구역의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 |
현재의 지방행정의 수행은 중앙정부의 특별지방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중복성과 경합성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루어지는 부분이 적지 않으며, 지방자치단체는 고유한 이익을 갖는 자치사무와 위임사무를 함께 수행하고 있다.31) 따라서 당해 지방정부의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통해 지방정부가 자치행정권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중앙정부와 상급 지방정부 사무도 지방정부가 위임받아 수행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은 일찍부터 제기되었다.
한편, 개정안 시안 제118조 제7항은 지방검찰청장과 지방경찰청장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관할구역의 주민이 직접 선출도록 하고 있다. 헌법 개정의 직접적 동기이기도 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검찰과 경찰 등 권력기관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동 조항이 왜 지방분권 혹은 지방자치의 장에 들어와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사견으로 축조 작업에서 삭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정부의 헌법개정안도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Ⅴ. 자문위원회 개정안 시안 제119조- 재정자치권의 보장32)
아래와 같이 개정안 시안 제119조는 재정자치에 관한 내용을 신설하고 있다. 제1항과 제2항은 이미 현행 법률이나 교과서 수준의 논의에서도 수긍되는 내용이지만 제3항은 지방세목과 세율에 대한 지역법률 제정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지방세조례주의를 헌법에서 관철하고 있다. 또한 지방재정에서의 건전성원칙과 채무관리의 법률주의를 추가로 제4항과 제7항에서 언급하고 있고, 수직적 재정조정을 제5항에서 규정하고 있다.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개정안 시안 보고서에 의하면 자기책임성이란 말이 등장한다. 이에 따르면 “자기책임성은 외부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합목적적이라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 그 업무를 처리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의미함”을 뜻하고 이를 위해서는 “합목적성 판단에 대한 중앙정부나 다른 지방정부의 개입금지와 사무수행에 따른 재정부담책임을 수반함”이라고 명쾌하고 밝히고 있다.33)
지방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간에 지방자치의 현실적 바로미터는 살림살이를 꾸리는 돈 주머니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지방정부의 자치사무를 수행하는데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자치사무는 지방정부가 스스로 그 비용을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자기책임을 명백히 한다는 설명은 당연한 이치를 두고 새삼스럽게 이건 특별한 게 아니라고 다시 외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위임사무에 관한 것인데, 지방분권을 권한의 배분으로 이해하고 따라서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게 이양하면서 그 집행을 위해 사용에 드는 재원의 배분을 수반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제2항과 제3항은 지방자치의 본질을 분권화된 지방자치단체의 자유로운 행정으로 이해하는 프랑스 헌법 제72조의 2 제4항이나 주민자치로 보는 개정안 시안이나 문언 자체의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Ⅵ. 결론
새로운 분권형 헌법을 기획하는 현재의 국회는 자신들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한 주권자들로부터 불신과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국민주권주의 실질적 구현의 방법을 지방분권과 주민자치라는 두 축으로 현행 지방자치에 관한 헌법 제9장의 내용을 새롭게 바꾸고자 한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가 내놓은 개정안 시안은 현행 헌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헌법을 예정하고 있다. 지방분권은 개정안 시안의 주요 축이 되고 있으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새로운 제도설계의 바탕이라 생각된다. 개정안 시안이 선택한 주민주권형 지방자치 모델은 지방분권을 국가권력과 지방권력의 수직적 권력분립 기능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반증한다. 다만 개정안 시안은 지역국가(Etat régional) 모델을 지향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논의가 더 필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개정안 시안에서 지방분권과 입법분권의 기본원칙으로 채택하고 있는 보충성원칙은 헌법과 후속될 지방자치 관련 법률에서 예상되는 법치주의와 갈등적 요소를 함께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현행 헌법과 법률 하에서 이루어지고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발전 속도와 박자를 맞추지 못하고 있고, 서울·경기지역과 그 밖의 지방간의 정치·경제·문화적 불균형과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34) 따라서 개정안 시안은 그동안 권한의 재배분과 조정을 통한 지방분권, 실질적인 자치행정, 수직적 재정분권을 포함한 자치재정권을 법률제정권의 국가와의 분담을 통해 달성하도록 예상하고 있다. 아울러 직접민주주의를 헌법에 직접 규정함으로써 어떻게 뒷감당할지는 모르지만 국민주권을 넘어선 주민주권을 위한 헌법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본고의 검토대상이 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개정안 시안에 이어 정부의 헌법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따라서 국회 개헌특위의 개정안 시안의 내용에 대한 평가가 머쓱해버린 상황이라 이미 완성되었던 원고의 마무리 글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고민이나, 개헌특위의 개정안 시안이 그대로 성문화 될지는 의문이었다는 점이 필자의 견해였다. 우와 열이 분명한 이른바 지방정부 간의 갈등에 대한 대안도 걱정이다. 논리적으로는 형평에 맞을 것 같은 중앙정부 법률과 지방정부 법률의 집행차원의 입법평가는 검토가 되었는지도 의문이다.
이 글이 처음 작성되던 시점과 불과 두 달이 채 안되어 지방분권 헌법의 방향을 위한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이 지방민주주의와 근접민주주의를 헌법으로 승격시키는 지방분권헌법 혹은 지방자치헌법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길이라 생각하면서 비록 퇴색된 감은 있으나 기왕 작성된 본고의 의미를 찾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