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면서
본고는 부진정 부작위범1)을 그 연구 대상으로 한다. 부진정 부작위범은 형법 제18조와 형법각칙상의 해당 구성요건에 의해 처벌될 수 있다. 이러한 행태의 범죄유형의 가벌성은 일찌기 제정 형법부터 인정되어 왔으나2) 이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여전히 충분치 못하다. 아직 그 내용이 명확하지 못해 규명되어야 할 부진정 부작위범의 연구 영역 중 하나는 수인이 부작위를 통해 하나의 결과범에 참여했을 때 결과의 귀속방식, 범죄참가(가담)형태에 관한 문제이다. 즉 행위자는 작위가 아닌 부작위에 의해서도 공동정범 또는 교사범 내지 방조범의 형태로3) 발생한 결과에 대해 형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이를 긍정할 수 있다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수인의 부작위를 통한 범죄참가형태 중 여기서는 특히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을 그 주된 검토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무엇보다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던 2014년의 소위 ‘세월호’사건에서 이 문제가 비록 충분치는 않지만 어느정도 다루어졌었다.4) 물론 동 사건에서는 이러한 문제뿐만 아니라 부작위범과 관련하여 고의인정요건, 보증인의 보호의무의 발생근거, 부작위의 인과관계 등의 문제들도 함께 언급되어 동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는5) 부작위범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될 듯하다.
아래에서는 본 연구의 논의영역을 수인의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으로 제한하면서 구체적으로 이러한 법형상(Rechtsfigur)이 형법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한지, 또 이를 긍정할 수 있다면 어떠한 조건에서 그러한지를 살펴본다. 우리나라 판례와 학설의 다수적 견해는 이를 긍정하고 있다. 기존 판례에 따르면 – 비록 진정 부작위범의 사안이었지만 - “부작위범 사이의 공동정범은 다수의 부작위범에게 공통된 의무가 부여되어있고 그 의무를 공통으로 이행할 수 있을때에 성립한다”고 한다.6) 학설상의 다수적 견해도 이러한 판례의 입장을 별다른 문제의식없이 지지하고 있는 듯하다.7)‘세월호’ 사건에서 대법원 다수의견은 비록 문제된 자들(피고인 2와 피고인 3)에 대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아 그들 상호간의 공동정범을 부정하였으나, 반대의견은 이들의 고의를 긍정하고 부작위 공동정범의 성립을 위한 기존 판례입장을 재차 확인하면서도 “공범관계에서 전체의 모의과정이 없다 하더라도 수인 사이에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상통하여 공동 가공에 의한 범죄실현 의사의 결합이 이루어지면 공모관계는 성립한다”고 하여 최종적으로 피고인들 간의 공동정범을 인정하였다.8)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수인의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의 법적 가능성과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이를 논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론을 취한다. 우선 학계에서 주장되는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에 관한 일체의 부정론을9) 의식하면서 이러한 법형상이 없다면 하나의 결과발생에 있어 수인의 부작위가 충돌하는 경우 이들은 형법적으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살펴본다(II. 1.). 이러한 범위 내에서의 논의는 부작위의 공동정범론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전제로서 부작위에 의한 결과발생에 있어 결과를 부작위자에게 귀속시키기 위한 일반 조건들에 관한 논의이다. 여기서는 부작위의 인과관계론이 그 논의의 핵심이 되며10) 특히 하나의 범죄에 수인의 부작위자가 개입한 경우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경우에 따라서는 부작위의 공동정범이 없이는 가벌성의 공백이 있는 사안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이면서, 이어서 부작위의 공동정범의 이론적 가능성과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검토한다(II. 2.). 특히 수인의 작위에 의한 공동정범과의 관계에서 부작위범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부작위의 공동정범의 특수요건이 있는 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 지를 살펴본다.
Ⅱ. 수인의 부작위를 통한 범행
아래에서의 논의는 그 편의를 위해 몇 가지를 가정된 사례로부터 출발한다. 이때 사례를 나누는 기준으로는 2인 또는 그 이상의 보증인이 하나의 범죄실현에 관여되었을 때 결과방지를 위한 개입가능성의 형태와 상호 의사연락 여부이다.
사례1-1: 아이가 독약을 실수로 삼켰는데 해독을 위해서는 10g의 해독제가 필요한 상황에서, 각각 10g의 해독제를 가지고 있는 부모 A와 B가 서로 의사연락 없이 해독제를 주지 않아 아이가 사망하였다(소위 부작위의 ‘택일적’ 인과관계).
사례1-2: 위의 사례에서 이제 부모 A와 B가 서로 합의에 의해 해독제를 주지 않아 아이가 사망하였다.
사례2-1: 이제 A가 5g, B가 5g의 해독제를 가지고 있어서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양 부모의 해독제가 모두 필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A와 B는 상대방이 현장에 같이 있음을 알면서도 서로 의사연락 없이 해독제 사용하지 않아 아이가 사망하였다(소위 부작위의 ‘중첩적’ 인과관계).
사례2-2: 위의 사례에서 이제 부모 A와 B가 서로 합의에 의해 해독제를 주지 않아 아이가 사망하였다.
사례3-1:11) 주식회사 X는 주변 경제여건의 악화와 경영실패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고 유일한 타개책은 주식회사 Y와의 합병뿐이었다. 그런데 X회사의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회사의 재산보전의무를 가지는 A, B, C는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떠한 이유에선인지 단체결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이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는 결국 해당 회사의 재산적 손해로 이어지게 되었다. A, B, C는 이로써 배임죄로 처벌될 수 있는가? 이 때 해당 정관에 따르면 유효한 의사결정을 위해서 이사회 구성원인 A, B, C 모두 회의에 참석해야하고 이 모두는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한다(소위 부작위의 ‘다중적-중첩적’ 인과관계).12)
사례3-2: 위의 상황에서 이제 유효한 의사결정을 위해 만장일치제가 아니라 다수결원칙이 적용되었다(소위 부작위의 ‘다중적’ 인과관계).
앞의 사례들, 특히 사례3-1과 3-2에서 피해자의 법익을 보호해야 하는 보증인적 의무를 어디서 도출할 수 있는 가에 대한 문제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본 연구의 주된 관심이 형법적으로 중요한 결과발생의 귀속방법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문제된 사안에서 부작위자의 보증인적 지위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형법 제18조와 제30조에 따른 부작위의 공동정범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과발생에 대한 부작위범으로서의 형사적 책임을 근거지우기 위해서 유일한 형법 규정은 (각칙상의 구체적인 해당 범죄규정을 제외하고) 제18조이다. 형법 제18조에 따르면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발생된 결과에 의하여 처벌한다.”고 한다. 발생된 결과를 부작위범에게 귀속시키기 위해서 판례와 학설은 부작위와 결과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발생된 결과에 대해 부작위자가 형사책임을 지기위해서는 부작위자에게 보증인적 지위가 인정되는 것 외에도“요구된 행위를 이행했더라면 확실성에 가까운 개연성으로 결과가 불발생했을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13) 이는 그 형식에 있어서 작위범의 인과관계 확정을 위한 공식인 조건공식(conditio sine qua non-Formel)14)을 반전(Umkehrung)시켜 놓은 형태이다. 반전이라는 의미는 요구되는 행위를 행위자가 수행했더라면 결과가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방지’된다는 점에 놓여있다. 부작위범의 다른 요건의 충족을 전제로 이러한 부작위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수인의 부작위가 하나의 결과발생에 개입된 경우라도 타인의 부작위와 상관없이 발생된 결과발생에 대해 해당 부작위자는 형법적으로 책임을 진다.
그런데 부작위범에 의해 구성요건적 결과를 야기하는 경우에도 앞의 사례들과 같이 수인의 부작위가 문제될 수 있다. 이 경우 우선 작위에 의한 ‘택일적’ 인과관계와 ‘중첩적’ 인과관계와 마찬가지로15) 부작위에 의한 ‘택일적’ 인과관계와 ‘중첩적’ 인과관계로 나누어질 수 있다.16)
앞의 사례1-1은 ‘택일적’ 인과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는 결과방지를 위해서 A 또는 B에게 요구되는 행위가 ‘택일적’으로 필요하지만, 결과야기를 위해서는 A 또는 B의 부작위가 ‘중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결과발생을 위해서는 둘 다 반드시 부작위해야 한다. 이를 반전된 조건공식에 대입시켜보면, 우선 A와 관련하여 A가 요구되는 행위를 했더라면 B가 구조행위를 하지 않아도 아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부작위의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 이는 B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A와 B는 동시범으로서 각자 아이의 죽음에 대해 형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17) 이 경우 A와 B는 자신의 무죄를 위해 각각 타인의 구조가능성과 구조의무를 원용하지 못한다. 즉, 각자 자신이 요구되는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타인이 구조행위를 할 수 있고 또 해야하기 때문에 자신의 부작위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타인의 구조가능성과 구조의무는 자신들의 구조가능성과 구조의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월호 사건을 살펴보면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의 부작위는 결과발생에 있어서 ‘택일적’으로 볼 수 있다. 즉, 이들은 각자 자신에게 요구된 행위, 다시말해 주어진 상황에서 퇴선명령을 이행했더라면 각각 타인의 협력이 없더라도 승객의 사망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각자의 구조행위에는 타인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대법원 반대의견과 같이) 피고인 2와 피고인 3의 고의가 인정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해서 피고인 각각은 (대법원 반대의견과 달리) 굳이 공동정범에 의율할 필요없이 동시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18)19)
사례2-1는 ‘중첩적’ 인과관계를 드러내고 있다.20) 이 경우에는 결과방지를 위해서는 양자에게 요구되는 행위가 ‘중첩적’으로 필요함에 반해, 결과야기의 관점에서 양 부작위는 ‘택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부작위하기로 결정하였다면 타인이 요구된 행위를 했더라도 결과는 발생하게 된다.21) 반전된 조건공식을 이 사안에 적용시켜보면 A가 요구되는 행위를 했더라도, 즉, 5g의 해독제를 아이에게 복용시키더라도 이로써는 해독에 필요한 양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따라서 부작위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아니한다.22) 이는 마찬가지로 B에게도 인정된다.23) 그러므로 각자에게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될 수 없고 미수범이 문제될 수 있다. 사례3-1도 2인을 초과하여 다수가 등장하고 있지만 위의 ‘중첩적’ 인과관계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사안에서 회사의 재산적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A, B, C가 이사회 회의를 소집하고 합병을 찬성하는 투표행위를 통해 단체의사를 형성해야 하는데, 각자에게 요구되는 행위의 이행만으로는 여기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24) 그렇다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부작위의 인과관계가 부정되므로 부작위에 기해서는 발생된 결과에 대해 A, B, C에게 독자적으로 형법적 책임을 지울 수 없게 되고, 경우에 따라 기껏해야 각 행위자는 (불능)미수범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25) 그런데 판례와 학설상의 많은 견해는 이러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26) 결론적으로 각 행위자는 발생된 결과에 대해 기수범의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상이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아래에서는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먼저 부작위범에서의 ‘중첩적’ 인과관계의 경우에도 인과관계(합법칙적 조건관계)가 인정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도 인과관계를 긍정하는 이유에 관해서 다시 의견이 나뉜다. 우선 작위범과 마찬가지로 부작위의 인과관계 판단에서도 ‘요구되는 행위가 결과방지로 이어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부작위가 결과발생으로 연결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견해가 있다. 부작위의 중첩적 인과관계사안들에서 결과방지를 위해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부분적으로 요구되는 행위를 행해야 하는데, 타인과의 의사연락이 없더라도 이를 부작위하면 필연적으로 형법적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다.27) 우선 이 견해에 대해서는 판례와 학설이 받아들이고 있는 부작위범에서의 인과관계 확정공식, 즉 반전된 조건공식을 무용화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 공식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결과발생에 대한 부작위의 책임을 근거지울 때는 요구되는 행위가 그 결과를 방지하느냐의 관점이 중요한 것이지, 결과가 부작위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이 견해가 강조하는 측면인 결과의 야기의 관점에서 보면 부작위로는 자연적·존재론적 의미의 결과를 야기할 수 없다.
두 번째로 독일연방대법원이 취하는 견해로서 기 사례와 같은 경우에 있어서 반전된 조건공식을 통해 인과관계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실제 발생된 사실, 즉 모두가 부작위했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적 사실, 다시말해 검토되는 행위자 이외의 행위자들은 모두 의무합치적으로 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28) 이러한 규범적 사실을 전제로 이제 반전된 조건공식을 적용하면 각 행위자가 요구된 행위를 했더라면, 규범적 관점에서 다른 행위자도 요구된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된 결과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될 수 있다. 이렇게 부작위범의 인과관계가 인정됨으로써 각자는 보증인으로서 타인과 공동이 아닌 동시범적으로 (nebentäterschaftlich!) 발생된 결과에 대해 책임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가능하다. 먼저 부작위범을 위해 필요한 인과관계는 비록 자연적 의미가 아닌 규범적 의미로서 이해된다고 하여도 - 이는 달리 말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결과의 부작위범에로의 귀속판단을 위해서는 요구된 행위가 결과방지로 이어지느냐, 즉 행위자에 의한 ‘의무침해’가 발생된 결과에 ‘실현’되었는가 중요한 것이다 – 인과관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인정으로부터 출발해야하지29) ‘타인들이 모두 의무합치적으로 행위했었더라면’ 이라는 규범적 가정이 전제되면 안 된다. 이는 인과관계 판단을 위한 공식과 공식을 적용하기 위한 조건들을 행위자에게 불리하게 변형시키는 꼴이다. 문제된 사안에서 반전된 조건공식을 제대로 적용하면 인과관계가 부정되는 결론이 일관성을 가진다. 사후적(ex post) 판단으로서 개별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에는 행위자가 요구되는 부분 행위를 이행했다고 하더라도, 타인들이 그들에게 요구되는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발생을 방지할 수는 없다. 이는 달리말해 각 행위자에 행한 의무침해가 발생된 결과 속에서 실현된 것이 아니어서 범죄의 결과반가치가 부정된다. 의무위반관계가 부정된다.
오히려 독일 연방대법원이 상정하고 있는 규범적 가정은 발생된 결과귀속을 위한 인과관계 판단에서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 문제된 행태, 즉 여기서는 부작위가 의무합치적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사전적(ex ante) 판단으로서 행위반가치의 확정문제이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항을 나누어 좀더 자세히 살펴본다.
부작위의 중첩적 인과관계의 경우 개별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없다는 것과는 별개로 앞의 사례들과 같이 수인들의 부분적 행위의 공동수행을 통해서만 어떠한 결과발생이 방지될 수 있다면, 이제 각자의 부분행위가 법적관점에서 과연 처음부터‘요구’되는가가 문제될 수 있다. 먼저 이를 부정하는 견해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입장을 찾을 수 있다. 만약 어떠한 결과발생이 수인의 작위에 의해서만 방지될 수 있다면, 각각의 부분 행위들은 “법감정적”이 아닌 “현행법”상 요구될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30) 이에 따르면 “형법 제18조의 규정을 이러한 사안까지 확대하여 ‘너에게 가능한 행위만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나아가 ‘너에게 가능한 것’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결과발생의 방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31)고 한다. 즉 형법 제18조는 행위자 개인에게 처음부터 결과발생의 방지로 이어질 수 있는, 결과방지에 적합한 행위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32) 이 견해에 따르면 앞의 사례들 중에서 사례1-1과 같이 부작위의 택일적 인과관계의 사안에서만 그 부작위가 형법적으로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각자가 10g의 해독제를 투여했을 경우 타인의 도움없이도 피해자를 구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작위만이 형법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작위의 중첩적 인과관계의 사안의 경우에는 각자가 5g의 해독제를 투여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결과방지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작위는 형법적으로 요구되지 않고 따라서 그 부작위도 의무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특히 우리나라 형법 제18조는 독일 형법 제13조와는 달리 결과(!)발생을 방지할 의무(wenn er rechtlich dafür einzustehen hat, daß der Erfolg nicht eintritt)라고 하지 않고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라고 하고 있다. 이는 행위자가 부작위시점에서, 다실말해 사전에(ex ante) 반드시 결과발생의 방지로 확실하게 이어지지 않은 작위라도 그것이 위험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면 취해야함을 의미할 수 있다.33) 더불어 만약 생명과 같이 법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법익의 보호가 구체적인 경우 수인의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경우라면, 법질서는 그 수인에 대한 ‘협력’의무를 발생시킨다. 이 들은 공동의 구조결정을 해야하고 이에 따른 부분적인 구조행위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이미 개별적인 부분적 구조행위의 불이행은 법적의무침해가 된다.34)
나아가 결과발생을 “개연성 혹은 확실성에 가까운 개연성”으로 방지하는 행위만을 법이 요구한다는 시각은 상호 구별되는 행위반가치와 결과반가치의 판단, 사전판단과 사후판단의 부당한 혼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이에 따르면 어떠한 행위가 행위시에 법적으로 요구되느냐 아니냐의 판단은 결국 사후적 판단인 인과성 판단에 종속되게 된다. 달리말해 반전된 조건공식의 투입을 통해, 행위자가 어떠한 행위를 이행하였더라면 그 발생된 결과가 방지되었다는 점이 인정된다면, 이는 한편으로 문제된 부작위와 결과발생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과 동시에 다른 한편 그 부작위는 법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나서는 재차 이 요구되는 행위를 했었더라면 결과발생이 방지되는 가를 규범적 관점에서 다시 묻게되는 데, 이는 일종의 순환논증이다.
생각건대, 어떠한 행위가 재판시가 아닌 행위시에 법적으로 요구되는가는 사후적으로(ex post) 판단할 수 없고 사전적으로(ex ante) 판단해야 한다. 이는 형법의 자유보장적 기능으로부터 도출된다. 그런데 만약 형법적으로 중요한 결과발생이 수인의 공동작위를 통해서만 방지할 수 있고 각각의 행위자가 이러한 사정을 알지만 그 들 사이에 아무런 의사연락이 없어서 각자는 타인이 어떠한 행위로 나아갈지를 모르는 경우라면, 문제된 부분행위가 법적으로 요구되는 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이제 앞서 독일 연방대법원이 언급한 규범적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즉 타인들이 규범에 부합하게 행동하리라는 규범적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해당 행위가 행위시에 요구되는지를 판단한다. 이는 바로 “신뢰의 원칙(Vertrauensprinzip)”을 수인의 행위자 간에 적용시킨 결과이다.35) 행위자가 행위시에 타인이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는 경우에는 신뢰의 원칙에 따라 타인도 적법하게 혹은 법질서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를 법적 차원에서 보호해야 한다.36) 물론 이러한 기대는 신뢰를 깨뜨리는 구체적인 정황이 나타나면 더 이상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형법적으로 중요한 결과발생의 방지가 수인의 공동의 작위행위에 의해서만 방지되고 행위시 상호 의사연락이 없는 경우라면 결과발생의 방지를 위해 타인들이 필요한 부분 행위를 담당한다는 법적으로 보호된 신뢰가 존재한다.37) (이러한 신뢰는 수인 간에 의사연락 내지 합치, 특히 여기서는 공모가 있다면 깨어진다!) 이러한 배경에서 각 행위자의 부분행위들을 판단하면, 이들은 법적으로 요구되고 이를 부작위한 것은 의무위반이 되고, 이는 달리 말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법익에 대한 위험이 부작위를 통해 야기 된 것이다. 이는 부작위에 의한 ‘법으로부터 허용되지 않는 위험의 창출’이다. 따라서 사례2-1의 부작위의 중첩적 인과관계의 사안에서는 행위자는 각자 법적으로 요구되는 부작위를 통해 법으로부터 허용되지 않는 위험을 창출시켰지만, 그 요구되는 행위를 했더라도 결과는 방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위험이 결과에 실현되지 않는 것이다.38) 이러한 사고는, 수인이 공동으로만 결과를 방지할 수 있는 경우 개개인에는 법적의미에서 부분행위기여를 해야할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생각과 달리, 행위반가치를 인정하므로 미수범처벌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 그리고 만약 이들 중 어느 한명이 자신에게 요구되는 행위를 의무합치적으로 이행하였지만 타인의 의무불이행으로 인해 결과가 발생하였다면, 의무합치적으로 행위한 자는 행위반가치의 탈락으로 불가벌이고(즉 미수로도 처벌할 수 없다), 나머지 의무불이행자는 이제 단독정범으로 발생된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후자가 단독정범인 이유는 이 경우 공동으로만 이행할 수 있는 결과방지의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결과발생의 방지를 위해 수인의 공동의 작위가 필요한 경우라면 각 개인은 개별적으로 혹은 단독으로는 발생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음을 살펴보았다. 이는 사례2-1와 사례3-1에서 뿐만 아니라 사례3-2에서도 그렇다. 사례3-2의 경우에는 다수결원칙으로 인해 모든 행위자가 결과발생의 방지를 위해 요구되는 행위, 즉 의무에 합치되는 내용의 투표를 해야할 필요는 없고, 누가되던 그 중 다수만 이러한 내용의 투표를 하면 된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앞서 설명한 신뢰의 원칙과 다수결 원칙의 관점에서 이제 행위자의 부분 행위기여는 결과발생의 방지관점에서 요구되는 행위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신뢰의 원칙이 적용되는 상황, 즉 행위자간에 특별한 의사연락이 없어서, 상대방의 의무합치적인 행위를 기대해도 좋은 상황이라면 이미 타인들의 행위기여만으로도 결과발생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항변은 옳지 못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참여자 모두에게 이러한 항변을 허용한다면 결국 모든 결과방지를 위해 필수적이었던 부분행위는 법적으로 요구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이는 피해자의 법익보호의 관점이 지나치게 무시되게 된다. 이는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적 유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해악 또한 개인이 아니라 다수에 의해 발생된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러하다.39)
그런데 결과방지를 위한 부분행위가 법적으로 요구된다고 하여도,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것의 작위가 결과의 발생의 방지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발생된 결과를 부작위자에게 귀속시킬수는 없다. 이는 사례3-1과 사례3-2의 경우에 공통적이다. 기껏해야 미수범 처벌규정이 있는 경우에 행위자는 미수범으로 처벌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부작위범의 경우에도 공동정범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제 아래에서는 수인의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 성립의 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해서 살펴본다.
앞서 이미 사례2-1, 사례3-1, 사례3-2는 단독정범 또는 동시범적 검토방식으로는 개별적 인과관계의 부정을 이유로 각각의 행위자에게 결과발생에 대한 (기수의) 형법적 책임을 지울 수 없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수인의 부작위 사이에는 형법 제30조의 공동정범이 성립하여, 발생된 결과를 개인에게 공동정범적으로(mittäterschaftlich) 귀속시킬 수 있는 가가 문제된다.
그런데 본 논문에서 다루는 사례들과 상관없이 이론적 관점에서 수인의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의 가능성과 필요성에 관한 논의들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우리나라 판례는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인정하고 있고,40) 독일 판례도 이를 긍정하고 있다.41) 그런데 몇몇 학설상 견해는 이를 부정한다.42) 아래에서는 이러한 부정적 견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먼저 아르민 카우프만(Armin Kaufmann)교수는 이미 이론적 관점에서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은 불가능하다고 보는데,43) 왜냐하면 작위범과 비교하여 부작위에는 행위의 인과성(Kausalität)이 부정되고 또한 따라서 이를 전제로 하는 목적성(Finalität), 그러니까 고의(Vorsatz)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44) 작위범의 고의를 구성하면서, 행위자가 실제 사건에로의 작용가능성(eine Einwirkungsmöglichkeit auf das reale Geschehen)을 가질 때 인정되는45) “실현의지(Verwirklichungswille)” 대신46) 부작위범의 경우에는 (고의성립을 위해) 행위가능성(Handlungsmöglichkeit)의 인식 또는 인식가능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한다.47)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요구되는 행위를 행한다는 결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부진정) 부작위범의 불법에서도 요구되어지는 고의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48) 나아가 중한 불법유형 및 책임유형으로서 고의가 정당화되는 이유를 행위자가 그 범죄로서 “법익에 반하는 결정(gegen das Rechtsgut entscheidet)”을 내렸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면,49) 고의는 존재론적 범주에(in eine ontologisch vorgegebene Kategorie) 위치시키지 않을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50) 나아가 록신(Roxin)교수가 지적하였다시피 아르민 카우프만(Armin Kaufmann)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비단 공동정범 뿐만 아니라 개별 행위자에 의한 고의의 부작위범도 인정될 수 없게 되는데,51) 이는 옳지 않다.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을 부정하는 또 다른 견해에 따르면, “모든 부작위범은 자신의 의무위반적 부작위에 의해 이미 정범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의 법형상은 필요없다고 한다.52) 부작위범에 있어서는 사실적 범죄지배(faktische Tatherrschaft)는 없고 부작위를 통한 의무침해가 정범을 근거지우기 위한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고 한다. 이는 부작위범은 의무범(Pflichtendelikten)의 범주에 속하고53) (의무범에서는) 범죄지배의 사고는 전적으로 배제되어 진다고 한다.54) 그러나 이 견해에 대해서도, 행위자가 오로지 공동으로만 충족시킬 수 있는 보증인의무를 침해했다면, 비록 부작위범에서는 인과진행에 대한 사실적 공동지배는 문제되지 않더라도, 이는 이미 공동정범적 귀속의 문제가 된다는 점을 반대논거로 들 수 있겠다. 즉 단독정범 또는 동시범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결과발생과 부작위 사이에 각자 따로 인정되는 의무위반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이는 앞서 보았듯이 공동으로만 결과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 경우에 있어서는 부정된다.
마지막으로, 부작위의 공동정범을 부정하는 논거, 즉 행위자는 의무위반적 부작위를 오직 스스로(in seiner Person)만 행할 수 있다,55) 다시말해 작위의무는 일신전속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56) 또한 그리 설득적이지 못하다. 물론 보증인적 지위는 (형법 제33조와 비교될 수 있는) 독일 형법 제28조 제1항의 의미에서의 특별한 인적표지(ein besonderes persönliches Merkmal)이다.57) 그러나 앞의 사례처럼 모든 참여자가 보증인이고 구체적인 보증인의 의무가 공동으로 방지할 수 있는 위험과 관계한다면, 개별적인 의무위반적 부작위는 각각 타인에게 귀속이 될 수 있다. 과실범에 있어서 각 개인에게 부과되는 일반적 주의의무와는 달리58) 부진정 부작위범에 있어서는 법적인 의미에서 특별한 보증인의 의무가 존재하고 이 의무가 바로 본 사례에서 문제되는 수인에 의해 공동으로만 충족시킬 수 있는 의무이다.
이 상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수인의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도 이론적 관점에서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불필요한 것도 아니다. 부작위범에 있어서는 작위범 영역을 지배하는 인과성 도그마틱이 개입될 수 없고59) 이를 기반으로 한 공범이론도 작위범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는 주장은 일면적 타당성을 가진다. 즉 이를 통해 강조되는 것은 단지 부작위범에서의 불법의 본질은 – 아르민 카우프만(Armin Kaufmann)교수의 지적처럼 - 작위범에서의 인과성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목적성이 아니고, 록신(Roxin)교수가 제대로 지적한 것과 같이 의무침해(Pflichtverletzung)라는 점이다.60) 그러나 여기까지만 보면, 이를 바탕으로 부작위의 공동정범(나아가 부작위에 의한 방조)을(를) 부정하는 견해에서는 ‘의무의 질적차이’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같은 보증인의 의무라고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 단독정범뿐만 아니라 공동정범을 (나아가 방조범을) 근거지우는 의무가 있을 수 있다.61) 물론 이를 구별하는 기준은 작위범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고 전적으로 규범적인 것으로 채워질 수 있다. 다만 여기서는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다루지 않고, 부작위범의 본질을 의무침해에서 찾는다고 하여도 어떠한 의무를 침해했는냐에 따라 보증인의 범죄에 대한 참여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만 언급하기로 한다.
결론적으로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은 피해자가 누리는 법익을 충분히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이러한 법제도가 필요한 사안이란 해당 보증인이 처벌되어야 하지만 단독정범의 방식으로는 그렇게 될 수없는 사안으로서, 바로 ‘수인이 공동으로만 결과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 사안’이다. 결과발생의 방지를 위해 수인의 공동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 각각의 행위자는 자신에게 요구되는 부분구조행위를 부작위함으로써 이미 공동으로만 이행할 수 있는 의무를 침해한다. 여기서 개별적으로 침해된 의무의 내용은 협력을 통한 공동의 구조행위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무의 해태는 각자를 공동정범으로 만들어 준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작위의 공동정범에 관한 모든 요건이 설명된 것은 아니다. 작위범의 공동정범의 성립을 위해서 객관적 요건으로서 공동의 실행행위와 더불어 주관적 요건으로 공동의 범행결의, 즉 상호 범행에 대한 의사의 합치가 필요한 것처럼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의 경우에도 이러한 공모가 필요한 가가 문제시 될 수 있다. 이는 작위범의 공동정범적 책임의 기초와 한계가 되는 공동의 범행결의 또한 행위자들의 작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과도 관련되어 있다. 나아가 이와 함께 대답되어져야할 질문은 타인의 협력없이 자신의 힘만으로도 구조가 가능한 경우(즉, 부작위 택일적 인과관계)라도 타인과 의사합치를 통해 부작위로 나아갔다면 이를 두고 동시범이라 할 수 있는 가이다. 이에 대해서는 항을 바꾸어 검토해본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사안으로 각자의 행위자가 작위로(!) 공동의 범행계획에 참여하였고 공동의 범죄실행을 부작위를 통해 행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는 수인의 보증인이 작위를 통해 공모를 성립시켰지만 그 공모의 내용이 부작위가 되는 사안이다. 예컨대 수인의 보증인이 사전에 모여서 “우리 모두 결과방지에 필요한 공동의 행위를 부작위하기로 합시다.”라는 내용으로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합의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앞의 사례들에서 사례1-2와 사례2-2). 이러한 사안이 공동정범을 성립시킨다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만 이를 두고 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이라 할 수 있는 지 아니면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이라 할 수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적어도 이 경우에는 공동정범의 성립을 위해 공동으로 협력하여야 결과가 방지될 수 있는 지 또는 각자 단독으로도 구조행위를 할 수 있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수인이 각자 자신의 힘만으로도 결과방지가 가능한 경우 상호 부작위하기로 공모하였다면 이는 형법이론상 단독정범이 아니라 공동정범이 된다.62) 이 경우 동시범의 문제이지 공동정범을 인정할 실익이 없다는 견해에 대해서는63) 다음과 같은 비판이 가능하겠다.
이러한 사안은 우연히 수인의 부작위가 동시적으로 나열된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공모가 이루어지면 우연한 수인의 부작위가 이제 필연적인 것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일단 수인 간에 불법한 부작위로 나아가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타인의 적법한 행태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64) 달리말해 이는 동시범적 검토상황을 만들어 주는 신뢰의 원칙이 깨어진 경우이다.65)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제 타인과 무관하게 범죄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이 경우 각자가 공동으로만 결과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 가 아니면 각자가 자신에게 요구되는 행위를 통해 결과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가는 규범적 관점에서 중요하지 않다. 즉 각자가 타인과 무관하게 결과를 방지할 수 있었다는 사정은 공동정범의 성립의 관점에서는 부차적이고 우연적인 것이다.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부작위에 있어서 ‘택일적 인과관계’의 경우에는 사례1-2와 같이 공동정범을 인정하기 위해서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공동의 모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결과발생을 야기하기 위해서는 행위자 자신의 부작위뿐만 아니라 타인의 부작위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담보’하는 공동의 부작위로 나아가기 위한 공모가 필요하다.66) 따라서 수인이 각자 자신의 힘만으로 결과방지가 가능한 경우라면 공동정범이라 말하기 위해서는 수인간의 공동의 부작위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하고, 이러한 요소가 없다면 단독정범 또는 동시범으로 봐야 한다. 세월호 사건에 있어 피고인 1, 피고인 2, 피고인 3의 관계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 달리 수인의 보증인 간에 명시적 또는 적어도 묵시적인 의사합치가 없는 경우 어떻게 되는가? 생각건대 이는 경우를 나누어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사례1-1처럼 이러한 공모가 없지만 각자가 자신의 힘만으로 구조행위가 가능했던 경우라면 이는 동시범의 문제이다. 그런데 사례2-1, 사례3-1의 경우에는 공동의 모의가 없다고 하여 동시범이라 할 수 없다. 이 경우 각 행위자는 구조행위가 공동의 협력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요구된 부분행위를 부작위하면 타인에게 요구된 부분행위를 이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공동으로만 이행할 수 있는 의무를 개인이 해태한 경우에는 타인의 의무해태를 기다릴 것 없이 개인 자신의 개별적 의무불이행으로 공동의 의무불이행을 가능케한다. 즉, 개인은 자신의 의무불이행으로 이미 벌써 타인의 의무이행의 기회를 박탈시켜버린다.67)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개인에 의해 침해되는 의무는 단독정범을 성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동정범을 근거지운다. 따라서 부작위의 중첩적 인과관계의 경우에서는 공동정범의 성립을 위해 수인의 보증인 간에 공모가 필요없다고 하겠다. 물론 이 경우 주관적 요건으로 부작위자는 모두가 힘을 합쳐야 결과를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과 각기 다른 부작위자가 현장에 있다는 사실은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68)
이상에서는 주로 수인의 보증인에 의해 동시적으로 이루어진 부작위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그런데 수인의 부작위는 이렇게 동시 뿐만 아니라 세월호 사건처럼 연속해서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여기서도 경우를 나누어 검토해 볼 수 있다.
먼저 각자 단독으로 구조를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순차적으로 부작위를 한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의 사례1-1에서 아이가 독약을 실수로 삼킨 사실을 A와 B가 각각 다른 시점에서 안 경우이다. 이 경우 상호 의사연락이 없으면 각자 단독정범의 동시범으로 처벌되고 공모가 있었다면 공동정범으로 처벌될 것이지만 이런 경우를 상정하기란 쉽지않다.
공동으로만 이행할 수 있는 구조의무도 앞의 사례들처럼 동시에 이행되어야 되는 경우도 있지만 순차적으로 이행되어야 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피해자가 안과 밖의 이중의 문에 의해 감금이 된 상황에서 A와 B가 각각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면 이 둘은 공동의 협력을 통해서만 피해자를 구할 수 있고 각자는 연속해서 문의 잠금장치를 열어야 한다. 이 경우 A와 B가 공모를 했다면 당연히 공동정범이 인정되고, 공모가 없어도 공동정범이 인정될 수 있다. 다만 B는 자신의 면책을 주장하기 위해서 A의 부작위로 인해 자신의 의무이행 가능성이 박탈되었다는 사실의 주장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A로 하여금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했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앞의 사례들은 다음과 같이 해결될 것이다. 우선 사례1-1에서 보증인은 발생된 구성요건적 결과에 대해서 각자 단독으로 기수의 책임을 진다. 이를 근거지우기 위해서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의 원용이 필요없다. 사례1-2는 공동정범의 사안이다. 수인의 의사합치, 즉 공모를 통해 공동의 부작위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 때 각자 독자적으로 검토하여 각자가 요구되는 행위를 했으면 결과발생이 방지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사례2-1과 사례3-1도 공동정범의 사안이다. 개별 행위자는 개별적으로 검토해서는 발생된 결과에 대해 기수의 책임을 질 수 없다. 개별 인과관계가 부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안에서는 비록 보증인들 간에 상호 의사연락이 없다고 하여도 공동정범이 인정될 수 있다. 각자가 상호연락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불이행함으로써 타인의 의무이행의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에 이미 여기서 침해된 의무는 단독정범이 아니라 공동정범을 성립시키는 의무이다. 사례2-2의 경우에도 공동정범의 문제이다. 보증인들 간에 사실상의 공모가 있었고, 개별 보증인은 자신의 부작위를 통해 공동정범을 성립시키는 의무를 침해하였기 때문이다.
사례3-2의 경우에는 주의를 요한다. 이 사례는 사례3-1과 비교할 때 만장일치제가 아니라 다수결원칙이 적용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각 개인이 자신에게 요구되는 의무를 불이행해도 타인의 의무이행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행위자 상호간에 공동으로 부작위하기로 하는 공모가 주어져 있지 않다면 공동정범이라 말할 수 없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범적 관점에서 그 행위자는 여전히 자신의 부작위를 통해 공동으로만 실현시킬 수 있는 의무를 침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수결원칙의 본질은 의사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루어진 경우 투표자 각자의 투표행위가 최종 투표결과에 있어 필수적 요소가 아님을 밝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수의 의견합치 즉 공동의 협업이 필요하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례3-2의 경우에도 공동정범을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의사결정이 만장일치제에서 이루어지건 다수결원칙 하에서 이루어지건 상관없다.
Ⅲ. 맺으면서
이상으로 수인의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에 관한 논의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살펴보았다. 이러한 법형상의 법적 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은 나름의 방식을 거쳐 수인의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논증하였다. 요약하면 수인의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은 수인이 공동으로만 구조행위를 할 수 있는 경우에 필요하고, 또 수인 간에 공동의 부작위를 내용으로 하는 의사합치가 있는 경우에는 각자가 혼자 힘으로 피해자의 법익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경우에도 공동정범이 성립한다.
예상건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이 취하고 있는 논증방식에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보인다. 부작위의 공동정범의 불법이 무엇인가를 밝히기 위해서 굳이 동시범에 대한 검토를 사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가? 결과귀속을 위해서 그 전제로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면 이는 공동정범에 있어서도 타당한 것이 아닌가? 사전 공모가 없는 경우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침해되는 보증인의 의무내용에 따라 공동정범이 인정된다면 사실상의 공모에 의한 공동정범의 경우와 비교하여 서로 이질적인 요소를(즉, 어떤 경우에는 사실적 요소를 또 어떤 경우에는 규범적 요소를) 기준으로 공동정범을 구성하고 있지는 않은가? 의무의 질적차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등등이 그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아직도 분명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해답을 찾아가기 위해 고민 중이다. 다만 필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작위에 의하건 부작위에 의하건 공동정범은 단독정범이 인정할 수 없지만 정범으로 처벌되어야 하는 사안에서만 개입하는 보충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배경에서 결과범에 있어서 발생된 결과의 객관적 귀속이냐 공동정범적 귀속이냐(나아가 공범적 귀속이냐)의 문제는 서로 분리되어 검토되어질 수 없고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 까 한다. 또한 과실범과 마찬가지로 부작위범의 경우에도 그 불법의 내용을 정함에 있어서 침해된 의무의 존재와 그 내용이 중요하고, 형사상의 불법은 사실적 요소와 규범적 요소 둘 다를 그 내용으로 하지만 사안에 따라서 둘 중 어느 한 요소가 보다 더 강조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기본적 사고가 본 논문의 주제와 관련된 내용 속에 적절히 표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본 논문에서 미진했던 부분은 향후 연구에서 다시 다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