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사건본인은 고령으로 인한 인지 능력 장애로 2010년경부터 치매 관련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해 왔다. 사건본인의 여동생은 성년후견개시심판을 청구하였고, 1심 법원은 2016.8.29. 사건본인에 대하여 한정후견을 개시하는 심판을 하였다. 사건본인은 제1심 심판을 취소하고 청구인의 청구를 기각하는 것을 항고취지로 하여 항고를 제기하면서, 항고심 계속 중인 2016.11.24. 자신의 자녀를 임의후견인으로 하는 후견계약을 체결하고 2016.12.26. 후견계약 등기를 마쳤으며, 이어 2016.12.28. 가정법원에 임의후견감독인선임 심판청구를 하였다. 항고심은 임의후견감독인 선임 청구 사실은 법정후견 개시 사건의 심리 및 심판에 장애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고, 또한 이 사건에서는 사건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법정후견 심판이 필요하다고 보아 항고기각 결정을 하게 되자 사건본인은 대법원에 재항고하였다.
(1) 제1심 결정1)에서는 사건본인에 대한 심문결과와 진료 기록, 가사조사관의 조사보고서 등 심문 전체의 취지를 종합해 볼 때 사건본인은 지남력이 저하되어 있고 전반적인 수준에서 단기기억력과 인지능력도 저하된 상태이므로 질병, 노령 등의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하여 한정후견개시심판을 하였다.
이에 사건본인은 제1심 심판을 취소하고 청구인의 청구를 기각하는 것을 항고취지로 하여 항고를 제기하면서, 후견계약을 체결하고 등기한 후 가정법원에 임의후견감독인 선임 심판청구를 하였고, 항고심 재판부에는 법정후견에 대한 임의후견의 우선적 지위를 인정한 민법 제959조의20 규정 취지에 따라 임의후견감독인 선임 청구에 대한 심판이 있을 때까지 항고심 심리가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항고심 재판부에서는 먼저 항고인의 주장 사실이 쟁점이 되었다.
(2) 그런데 항고심 결정2)에서는 항고인의 주장 사실에 대하여, 후견계약이 등기되어 있는 경우에도 가정법원은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할 때에는 법정후견의 심판을 할 수 있고, 이 경우 후견계약은 법정후견 개시의 심판을 받은 때 종료되며(민법 제959조의20 제1항), 법정후견 개시 후 임의후견감독인 선임청구가 있는 경우에도 법정후견 조치의 계속이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가정법원은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하지 아니하는바(민법 제959조의20 제2항), 임의후견감독인 선임청구 사실이 법정후견 개시 사건의 심리 및 심판에 장애사유가 되지 않음은 위 규정들의 문언상 명백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어 항고심에서는 한정후견개시심판 후 확정 전에 후견계약이 체결되고 등기되었으므로 법정후견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후견계약이 우선되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되었다. 이에 항고심은 제1심 한정후견 개시의 심판까지 있은 후 당심 제1회 심문기일 직전에 후견계약이 체결되고 등기된 후 임의후견감독인선임을 청구한 것은 사건본인이나 위 후견계약상 임의후견인은 후견계약 제도를 남용하여 이 사건의 심리를 방해하고 절차를 지연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임의후견의 우선적 지위와 법정후견의 보충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할 때’ 제한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사건은 사건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법정후견 개시의 심판이 특별히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민법 제959조의20 제1항은 “후견계약이 등기되어 있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은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할 때에만 임의후견인 또는 임의후견감독인의 청구에 의하여 성년후견, 한정후견 또는 특정후견의 심판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후견계약은 본인이 성년후견 또는 한정후견 개시의 심판을 받은 때 종료된다.”라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2항은 “본인이 피성년후견인, 피한정후견인 또는 피특정후견인인 경우에 가정법원은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함에 있어서 종전의 성년후견, 한정후견 또는 특정후견의 종료 심판을 하여야 한다. 다만 성년후견 또는 한정후견 조치의 계속이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가정법원은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민법 규정은 후견계약이 등기된 경우에는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후견계약을 우선하도록 하고, 예외적으로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할 때에 한하여 법정후견에 의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서, 민법 제959조의20 제1항에서 후견계약의 등기 시점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고 있고, 같은 조 제2항 본문이 본인에 대해 이미 한정후견이 개시된 경우에는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하면서 종전 한정후견의 종료 심판을 하도록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제1항은 본인에 대해 한정후견개시심판 청구가 제기된 후 심판이 확정되기 전에 후견계약이 등기된 경우에도 적용이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그와 같은 경우 가정법원은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만 한정후견개시심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위 규정에서 정하는 후견계약의 등기에 불구하고 한정후견 등의 심판을 할 수 있는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할 때’란 후견계약의 내용, 후견계약에서 정한 임의후견인이 임무에 적합하지 아니한 사유가 있는지, 본인의 정신적 제약의 정도, 기타 후견계약과 본인을 둘러싼 제반 사정 등을 종합하여, 후견계약에 따른 후견이 본인의 보호에 충분하지 아니하여 법정후견에 의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말한다.
Ⅱ. 임의후견과 법정후견과의 관계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7월 1일부터 새로운 성년후견제도가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다. 새로 도입된 성년후견제도는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별후견으로 구성되는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인 후견계약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 후견계약은 질병, 장애, 노령 기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 있거나 부족하게 될 상황에 대비하여 자신의 재산관리 및 신상보호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다른 자에게 위탁하고 그 위탁사무에 관하여 대리권을 수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이다(민법 제959조의14).
후견계약은 후견의 개시 여부와 내용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정해진다는 점에서 성년후견제도의 기본 이념인 본인 의사 존중의 원칙과 사적 자치의 원칙에 가장 부합하는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후견계약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법정후견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원칙적으로 법정후견은 개시되지 않는다. 다만 후견계약만으로는 본인에게 필요한 보호를 제공할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할 여지가 있으므로 개정 민법은 그러한 경우에 대비하여 법정후견이 개시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3)
이에 민법 제959조의20 제1항은 후견계약이 등기되어 있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은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한 때’에만 임의후견인 또는 임의후견감독인의 청구에 의하여 성년후견, 한정후견 또는 특정후견 심판을 할 수 있고, 이 경우 후견계약은 본인이 성년후견 또는 한정후견 개시의 심판을 받은 때에 종료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의후견 우선의 원칙은 사적 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임의후견이 법정후견보다 적절한 보호수단이라는 전제에서만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 보호를 위하여 법정후견이 임의후견보다 적절한 보호수단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 원칙을 관철시킬 수 없다.4) 민법은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한 때’에 예외적으로 법정후견이 개시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경우로는, 후견계약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정신적 제약의 정도가 악화되어 후견계약의 내용만으로는 보호가 불충분하거나 본인 보호를 위하여 법정후견의 동의권이나 취소권 제도를 이용할 필요가 있는 경우 또는 후견계약에서는 재산관리만을 대상으로 약정하였는데 본인의 상태 악화로 신상보호가 대두하는 경우와 같이 임의후견만으로는 본인 보호에 공백이 있거나 미흡하여 후견을 보다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를 들 수 있다.5)
대상결정에서는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할 때란 후견계약의 내용, 후견계약에서 정한 임의후견인이 임무에 적합하지 아니한 사유가 있는지, 본인의 정신적 제약의 정도, 기타 후견계약과 본인을 둘러싼 제반 사정 등을 종합하여, 후견계약에 따른 후견이 본인의 보호에 충분하지 아니하여 법정후견에 의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말한다’고 판시하여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임의후견인에게 민법 제937조가 정한 후견인 결격사유가 있거나 본인을 학대하거나 재산을 횡령하는 등 현저한 비행을 하는지 여부, 후견계약이 본인의 진정한 의사에 의하여 체결되었는지 여부, 후견계약의 내용이 본인의 보호에 충분하지 여부, 본인을 둘러싼 주변인 사이에 분쟁이 격심하여 후견계약으로는 본인의 보호나 이익에 심각한 위험이 생길 우려가 있는지 여부, 임의후견인에게 정하여진 보수가 지나치게 고액인지 여부 등의 사정을 고려할 수 있다.6)
이 조항에 의한 법정후견의 청구는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등을 청구권자로 규정한 다른 법정후견 조항과 달리,7) 임의후견인 또는 임의후견감독인의 청구에 의하여 법정후견 심판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의 내용이 법정후견 청구권자를 한정하는 것인지 추가하는 것인지 문제될 수 있으나, 이는 임의후견에서 법정후견으로의 원활한 이행을 위하여 임의후견인 또는 임의후견감독인도 법정후견 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 전적으로 그들에게만 청구권을 부여한 것으로 볼 것은 아니므로 통상적인 법정후견 청구권자도 독립적으로 법정후견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8)
민법 제959조의20 제1항은 후견계약이 등기되어 있는 경우에 법정후견으로의 변경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후견계약은 후견계약의 체결, 후견계약의 등기, 임의후견감독인의 선임의 순서로 진행되므로 이러한 절차를 고려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후견계약은 체결되었으나 아직 등기는 되지 않은 경우, 명시적인 법 규정이 없으므로 가정법원은 제한 없이 법정후견의 개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후견계약을 체결한 본인의 의사는 존중되어야 하므로 비록 법령상의 근거는 없다고 할지라도 후견계약조차 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정후견을 청구하는 경우에 비하여 신중하게 법정후견 심판을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9)
다음으로, 민법 제959조의20 제1항은 후견계약이 등기된 경우라고만 규정하고 있지만, 후견계약의 단계상으로는 등기되었으나 아직 임의후견감독인이 선임되지 않은 경우와 등기 후 임의후견감독인까지 선임된 경우로 나누어지므로 동 조항이 적용되기 위하여 임의후견감독인의 선임까지 필요한지가 문제된다. 그러나 법문상으로 그와 같이 해석할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임의후견감독인의 선임은 요건이 아니라고 하여야 한다.10)
마지막으로 후견계약의 등기가 반드시 법정후견 청구 전에 마쳐져야 하는지가 문제된다. 대상결정에서는 동 조항에는 후견계약의 등기 시점과 관련된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고 있으므로 법정후견 청구 후에 후견계약이 체결되어 등기된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법정후견 개시 심판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후견계약이 체결되고 등기가 된 후 임의후견감독인 선임 청구가 제기된 경우, 법정후견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임의후견인 선임 청구 사건의 결과를 보기 위하여 법정후견 개시 심판절차가 중단되어야 하는지가 문제된다.
대상결정의 사실관계에서 사건 본인의 대리인은 이 사건 후견계약을 체결하여 등기한 후 가정법원에 임의감독인 선임을 청구하였으므로 법정후견에 대한 임의후견의 우선적 지위를 인정한 민법 제959조의20의 규정 취지에 따라 그 청구에 관한 심판이 있을 때까지 당심의 심리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였으나, 대상결정에서는 후견계약이 등기되어 있는 경우에도 가정법원은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할 때에는 법정후견의 심판을 할 수 있고, 이 경우 후견계약은 법정후견 개시의 심판을 받은 때 종료되며(민법 제959조의20 제1항), 법정후견 개시 후 임의후견감독인 선임청구가 있는 경우에도 법정후견 조치의 계속이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가정법원은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하지 아니하는바(민법 제959조의20 제2항), 임의후견감독인 선임청구 사실이 법정후견 개시 사건의 심리 및 심판에 장애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11)
가정법원은 후견계약이 등기되어 있는 경우에도 심리 결과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한 때에는 성년후견 또는 한정후견 심판을 할 수 있고, 이 경우 후견계약은 성년후견 또는 한정후견 개시의 심판을 받은 때 종료되며(민법 제959조의20 제1항), 이 때 종료되는 후견계약의 등기는 가정법원의 촉탁에 따라 말소된다(가사소송법 제9조, 가사소송규칙 제5조의2 제2항). 대상결정의 사건에서는 한정후견 개시가 확정됨에 따라 임의후견 종료등기가 행해졌고, 임의후견감독인 선임 청구는 당해 후견계약이 한정후견 개시 심판의 확정으로 종료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기각되었다.12) 이와 같이 현행법상으로는 임의후견과 성년후견, 한정후견 간에는 병존을 인정할 수 없다. 다만 양자의 병존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바 이에 대해서는 이하 대상판결과 프랑스 파기원 판례를 살펴본 후 검하고자 한다.
특정후견 심판을 한 경우에는 후견계약이 당연히 종료되지는 않으므로, 후견계약과 특정후견은 병존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특정후견은 피특정후견인이 당면한 특정한 사무 또는 일시적 사무의 처리를 목적으로 하고 그 사무처리가 종결되면 당연히 종료하는 것이므로 임의후견이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본인의 보호를 위하여 특별히 필요한 경우에는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양자의 병존을 찬성하는 견해가 있다.13) 한편 양자의 병존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특정후견심판이 있었다는 것은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한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므로 임의후견인의 권한은 그와 저촉되는 범위에서 제한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14)
Ⅲ. 대상결정에 대한 분석과 평가
(1) 대상 판결의 쟁점은 첫째, 민법 제959조의20 제1항은 후견계약이 등기되어 있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은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한 때에만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별후견 심판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때의 후견계약의 등기 시점과 관련하여 한정후견개시심판 청구가 제기된 후 심판이 확정되기 전에 후견계약이 등기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민법 제959조의20 제1항에서 후견계약의 등기 시점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고 있고, 같은 조 제2항 본문이 본인에 대해 이미 한정후견이 개시된 경우에는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하면서 종전 한정후견의 종료 심판을 하도록 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제1항은 본인에 대해 한정후견개시심판 청구가 제기된 후 심판이 확정되기 전에 후견계약이 등기된 경우에도 적용이 있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서는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다만 이 사안의 경우 법정후견 청구 절차가 개시된 후 후견계약이 체결되고 등기되었으므로, 후견계약이 체결되었거나, 후견계약이 체결되고 등기까지 된 후 법정후견이 청구되는 경우에 비하여 후견계약 체결 시점을 기준으로 볼 때 본인에게 정신적 능력의 결함이 존재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사안에 해당하는 전자의 경우에는 임의후견 우선의 원칙이 제한될 가능성이 후견계약이 체결되었거나 체결되고 등기까지 된 후 법정후견이 청구되는 후자의 경우에 비하여 더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두 번째 쟁점은, 민법 제959조의20 제1항에는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만 법정후견 심판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임의후견 우선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법정후견을 개시하여야 할 만큼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한 때’의 의미와 이 사안이 그 경우에 해당하는가 하는 점이다.
대상결정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1심 판결에서 본인에게 한정후견 심판을 할 때 이미 본인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 있었고, 후견계약이 체결된 시점은 사건본인에 대한 성년후견개시 심판 청구일로부터 1년 정도 지난 후로서 제1심 한정후견 개시의 심판까지 있은 후 2심 제1회 심문기일 직전인 2016.11.24.이고, 2심 법원이 2016.12.19. 제1회 심문기일을 진행하면서 사건 본인이 법정에 직접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지 않을 경우 2017.1.3. 심리를 종결하겠다고 고지한 후인 2016.12.26. 후견계약이 등기되고 같은 달 28. 임의후견감독인 선임청구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후견계약이 체결될 당시 본인은 이미 정신적 능력의 결함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있고, 판례에 설시된 바와 같이 후견계약 체결 당사자인 본인이나 임의후견인은 후견계약 제도를 남용하여 법원의 적절한 법정후견 선임을 방해하고 심리절차를 지연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인의사의 존중이라는 후견계약의 이념이나 법정후견의 보충성 원칙보다는 제959조의20 제1항에 규정된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한 때에 해당하여 예외적으로 법정후견을 개시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본인의사 존중은 성년후견제도의 가장 중요한 이념 중의 하나이고 이에 따라 임의후견 우선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므로, 이 사안에서 후견계약이 체결되고 등기까지 된 이상 후견계약의 내용을 검토하여 본인의 의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대상결정은 법정후견 보충성의 원칙에 대한 최초의 판시로서, 이 원칙은 법정후견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후견계약이 체결된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명시하였다는 점과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할 때’란 ‘후견계약의 내용, 후견계약에서 정한 임의후견인이 임무에 적합하지 아니한 사유가 있는지, 본인의 정신적 제약의 정도, 기타 후견계약과 본인을 둘러싼 제반 사정 등을 말한다’고 하여 그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는 결정이라고 평가받고 있지만,15) 결론적으로 이 사건에서는 후견계약을 체결한 자체가 후견계약 제도를 남용하여 법원 심리 절차를 방해하고 절차를 지연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즉 후견계약이 체결된 외부적 상황에 중점을 두고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법정후견이 예외적으로 필요한 경우라고 판시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본인의사 존중이라는 성년후견제도의 이념에 입각하면 후견계약의 내용을 검토하여 구체적 사정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3) 이하 살펴볼 프랑스 판례 사례는 양 국가의 성년후견제도의 세부적인 내용으로 인하여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법정후견(사법적 보우) 중에 후견계약이 체결되고 이후 법정후견(보좌)이 선고된 사례라는 점에서, 법정후견(한정후견) 개시 후 심판 확정 전에 후견계약이 체결되고 이후 법정후견(한정후견)이 선고된 우리나라 상황과 유사한 경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상결정에 대한 판례 평석에서 법정후견 보충성의 원칙에 대한 최초의 판시로서, 법정후견이 예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한 때의 기준을 제시한 의의 있는 판결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임의후견 우선의 원칙에 입각하여 구체적으로 사례를 분석하면서 파기원의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
양 국가 모두 본인의사 존중을 성년후견제도의 가장 중요한 이념으로 삼고 있다는 점과 법정후견 보충성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므로 유사한 사안에 대하여 양 국가의 최고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고 있고 또 그에 대하여 학자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비교 검토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Ⅳ. 프랑스 파기원 판례와의 비교 검토
프랑스의 성년후견제도는 1804년 나폴레옹 민법전에서부터 규정되어 있었으나 1968년 1월 3일 법률에 의한 전반적인 개혁으로 현재 프랑스의 성년후견제도와 유사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성년보호에 관한 2007년 3월 5일 법률에 의하여 다시 전반적으로 개정되어 2009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어 오고 있다.
2007년 개정법은 1968년 1월 3일 법률의 법정 후견제도인 사법보우와 후견 그리고 보좌의 기본적인 체제는 유지하면서 임의후견제도인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신설하였다.
장래보호위임계약(mandat de protection future)이란 후견의 대상이 아닌 모든 성년자는 정신적 능력의 결함으로 인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없게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신상이나 재산에 관하여 그를 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위임계약이다.16)
프랑스에서는 신설된 장래보호위임계약이 피보호성년의 의사 자치를 실현하였다는 점에서 2007년 개정법 내용 중에서 가장 개혁적인 제도로 평가하고 있다.17) 또한 종래는 법정후견만이 인정되었으나 이 제도의 도입으로 인하여 피보호성년을 계약에 의한 방법으로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인(人)과 가족 문제에 있어서의 계약화 경향 및 민영화 경향이라는 프랑스의 최근 입법 경향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다.18)
프랑스에서는 2011년19)과 2013년에 장래보호위임계약과 관련한 파기원 판례가 나왔는데 두 판례 모두 임의후견제도인 장래보호위임계약과 법정후견제도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즉 우리나라 대법원의 대상결정과 프랑스 파기원의 두 판례 모두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쟁점을 가지고 있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양 국가의 성년후견제도가 구체적 내용에 있어서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지만, 동일한 성년후견제도의 이념 하에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우리 법에의 시사점을 검토하기 위하여 파기원의 판례를 소개하고 프랑스에서의 논의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Toulouse 소법원(tribunal d’instance de Toulouse)의 후견법관은 2008년 9월 12일, 피보호성년 Mm. X에 대하여 사법보우(sauvegarde de justice)20)를 선고하면서 사회단체(UDAF31)를 Mm. X에 대한 사법보우의 특별수임인(mandataire spécial)으로 지정21)하였고, 이에 Mm. X는 후견법관이 사회단체(UDAF31)를 특별수임인으로 지정한 데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면서 자신의 아들 M. Y를 특별수임인으로 지정해 줄 것을 청구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Mm. X는 2009년 2월 19일 자신의 아들 M. Y를 수임인으로 하는 공정증서에 의한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Toulouse 지방법원(tribunal de grande instance de Toulouse)은 Mm. X와 M. Y가 체결한 장래보호위임계약은 인정하지 않은 채 2009년 6월 29일 사회단체(UDAF31)를 수임인으로 하여 Mm. X에 대하여 보좌(curatelle)22)를 선고하였다.
2) 법원이 법정후견제도인 보좌를 선고할 데 대하여, Mm. X는 프랑스민법 제483조 제1항 4호에 의할 때, 후견법관이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종료시키기 위해서는 이 계약의 이행이 위임인의 이익에 반하는지를 판단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후견법관이 2009년 6월 29일 판결에서 Mm. X와 M. Y가 체결한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인정하지 않고 Mm. X에 대하여 보좌를 선고한 데 대하여 상고를 제기하였다.
파기원은 프랑스민법 제483조 제1항 제2호에 의할 때, 실행 중인 장래보호위임계약은 법관이 반대의 결정을 하지 않는 한 보좌의 선고에 의하여 종료된다고 하면서, 이 사안의 경우 반대의 결정 즉 Mm. X가 체결한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유지한다는 결정 없이 Mm. X에 대하여 보좌를 선고하였으므로 Mm. X의 주장을 이유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례에 대해서는 법에 규정된 법정후견 보충성의 원칙23)에도 불구하고 장래보호위임계약의 내용이 본인의 이익에 반하는지를 판단하지 않은 채 법정후견을 선고하였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이 사안에서 Mm. X는 자신에 대하여 사법보우가 선고되고 제3자인 사회단체가 특별수임인으로 지정되자 자신의 아들에 의한 보호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법원에 특별수임인 변경을 신청하였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자 자신의 아들 M. Y를 수임인으로 하는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장래보호위임계약의 내용이 본인의 이익에 반하는지를 판단하지 않고 법정후견인 보좌를 선고한 데 대하여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파기원의 태도는 성년보호제도에 있어 피보호성년의 선택에 의한 방향 전환의 시도를 몰살시키는 것이며,24) 이러한 파기원의 결정은 피보호성년의 이익을 위해서는 법관에 의하여 결정된 보호 조치가 우월하다는 인식에 기인한 것 같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비판하고 있다.25) 또 다른 학자는 법원이 법정후견인 보좌를 선고할 때 왜 본인이 체결한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인정할 수 없는지를 명시적으로 판단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26) 파기원의 결론은 2006년 개정법의 가장 중요한 목적 즉 요보호성년의 의사를 존중하고자 하는 입법자의 의도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27)
한편 이 판례에 대해서는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의 병존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의 양립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프랑스의 경우에는 이를 인정하고 있다.28) 이 사안에서는 파기원이 프랑스민법 제483조 제1항 제2호를 적용하여 보좌의 선고에 의하여 장래보호위임계약이 종료된다고 판시하고 있지만, 동 조항에는 ‘법관이 반대의 결정을 한 경우를 제외하고’라는 단서 규정이 있으므로 법관은 장래보호위임계약과의 병존을 인정함으로써 본인의 의사를 존중함과 동시에 양자의 결함을 보충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29)
특히 이 판례는 보좌가 선고된 사안인데, 보좌의 경우에는 후견이 선고된 경우와 달리 피보좌인은 보좌인의 도움을 받아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프랑스민법 제477조 제2항). 따라서 파기원이 장래보호위임계약과의 병존을 인정하지 않은 채 보좌를 선고하였다고 하더라도 본인은 향후 보좌인의 조력을 받아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체결할 수 있고, 그 결과 법정후견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법정후견인 보좌의 효력이 상실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30) 이 견해는 파기원이 법정후견과 임의후견 사이의 유기적 결합관계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이 쟁점은 다시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31)
1) 후견법관은 2010년 5월 18일, 피보호성년 Lionel. X에 대하여 사법보우를 선고하면서 사회단체(ATI)를 Lionel. X에 대한 사법보우의 특별수임인으로 지정하였다. 이후 2010년 11월 22일 Lionel X와 그의 아버지 Henri X 사이에 수임인을 아버지 Henri X로 하는 장래보호위임계약이 체결되었다. 그런데 이후 후견법관은 Lionel X가 체결한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인정하지 않은 채, 2011년 2월 16일에 Lionel X에 대하여 보좌 기간을 60개월로 하고 수임인을 그의 아버지 Henri X로 하는 보좌를 선고하였다.
2) 이에 아버지 Henri X는, 사법보우 하에 있는 자는 원칙적으로 행위능력을 보유하되 사법보우 하에 있는 자의 특별수임인으로 지정된 자에게 부여된 권한에 해당하는 행위는 피보호성년이 할 수 없지만, 이 사안의 경우 2010년 5월 18일 Lionel. X에 대하여 사법보우를 선고할 때 특별수임인에게 장래보보위임계약을 체결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으므로 Lionel. X는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프랑스민법 제428조에 의할 때 피보호자에 의하여 체결된 장래보호위임계약에 의한 보호가 피보호자의 이익에 충분하지 않은 때에 한하여 법정후견을 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사안의 경우 보좌가 선고되기 전에 Lionel. X와의 사이에 이미 사서증서에 의한 장래보호위임계약이 체결되어 있었으므로 보좌의 선고는 프랑스민법 제435조, 제437조, 제477조, 제478조에 위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파기원은 앞서 제시한 2011년 판례와 마찬가지로, 프랑스민법 제483조 제1항 제2호에 의할 때, 실행 중인 장래보호위임계약은 법관이 반대의 결정을 하지 않는 한 보좌의 선고에 의하여 종료된다고 하면서, 이 사안의 경우 반대의 결정 즉 Lionel. X가 체결한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유지한다는 결정 없이 Lionel. X에 대하여 보좌를 선고하였으므로 상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례에 대해서는, 아버지 Henri X가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법보우 하에 있는 자는 사법보우의 특별수임인에게 명시적으로 부여되지 않는 행위를 할 수 있으므로 사건본인인 Lionel. X는 유효하게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유효한 장래보호위임계약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파기원이 이에 대한 검토 없이 법정후견인 보좌를 선고한 것은 보충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 견해는 장래보호위임계약제도에 대하여, 장래 정신적 능력의 저하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그대로 초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걱정은 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장래 상황에 대하여 충분히 숙고한 뒤 결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였다.32) 또한 이 견해는 입법자들이 보좌 하에 있는 자도 보좌인의 도움을 받아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규정33)한 것은 본인의사 존중이라는 성년후견제도의 이념을 실현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보았으며, 또 다른 면에서는 임의후견제도를 활성화시킴으로써 법정후견제도의 시행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과중한 성년후견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을 이 제도의 장점으로 들고 있다.34) 이러한 점을 근거로, 이 사건은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우선 적용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파기원이 이에 대한 검토 없이 법정후견을 선고함으로써 임의후견우선의 원칙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하였다.35) 다만 이 견해는 2011년 판례에서는 본인이 자신의 아들을 특별수임인으로 하고자 하는 의사마저도 반영되지 않았지만, 2013년 판례에서는 그의 아버지를 수임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본인의 의사가 반영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36)
이 판례에 대하여 또 다른 학자는, 파기원은 사건본인이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체결한 것이 법정후견의 개시를 막기 위한 방어적인 전략이었다고 보고 있지만, 법정후견의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장래보호위임계약이 우선적으로 또는 병행하여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인지를 먼저 검토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37)
결론적으로 2011년 파기원 판례에 이어서 동일한 결론을 내린 2013년 파기원 판례에 대해서, 이러한 파기원의 입장이 계속된다면 종국적으로 2007년 개정법의 혁신적 내용인 장래보호위임계약의 희생 하에 법정후견이 시스템화 될 것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38)
V. 맺는 말
(1) 우리나라에 2013년 7월 1일 개정민법에 의하여 도입된 새로운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5년이 지나가고 있다. 성년후견제도는 본인의사 존중을 가장 중요한 이념으로 하여, 본인의 잔존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야 한다는 잔존능력 활용의 원칙, 본인에게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필요한 범위에서 후견이 행해져야 한다는 필요성의 원칙, 본인의 의사에 의한 임의후견이 법정후견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보충성의 원칙, 본인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대등하고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정상화의 원칙을 그 이념적 기초로 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들을 이념적 기초로 하여 우리나라의 성년후견제도는 성년후견과 한정후견 그리고 특정후견을 내용으로 하는 법정후견과 후견계약인 임의후견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양자 모두 ‘질병, 장애, 노령 기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에 장애가 발생한 경우를 성립 요건으로 하고 있으므로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이 경합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법은 양 제도의 병존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후견계약에 나타난 본인의사와 본인의 이익을 위한 법원의 판단 가운데 어느 것을 우선 적용하여야 하는지를 결정하여야 한다.
본인의사 존중과 법정후견 보충성의 원칙에 의하면 임의후견을 우선하여야 하겠지만, 이 원칙들은 요보호성년인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임의후견이 법정후견보다 적절한 보호수단인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므로 그렇지 아니한 경우에는 법정후견이 개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입법화한 것이 민법 제959조의20 제1항이다.
(2) 대상결정은 바로 제959조의20 제1항이 적용되는 사례로서, 법정후견 보충성의 원칙을 최초로 판시한 결정이며, 이 원칙은 법정후견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후견계약이 체결되고 등기된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판시하였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앞서 설시한 바와 같이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39)
문제는 이 사안이 본인에 의하여 후견계약이 체결되어 등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정후견을 개시하여야 할 만큼 ‘본인의 이익을 위하여 특별히 필요한 경우’에 해당하는가 하는 점이다. 대상결정에서 사실관계가 진행된 일련의 상황을 살펴보면, 판시 내용과 같이, 후견계약 제도를 남용하여 이 사건의 심리를 방해하고 절차를 지연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즉 후견계약 체결 시점에 이미 정신적 능력의 결함이 발생하였으므로 후견계약이 체결되거나 체결되어 등기된 후 법정후견 절차가 개시된 경우에 비하여 법정후견 보충성의 원칙을 적용하기가 곤란할 수 있다.
그러나 성년후견제도의 가장 중요한 이념인 본인의사 존중의 원칙에서 말하는 본인의사가 후견계약에서는 바로 계약 내용이므로 이를 검토하고자 하는 시도와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파기원 판례에 대한 프랑스 학자들의 비판처럼, 법원이 법정후견 보충성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임의후견을 고려하지 않고 법정후견을 선고한 것은 혹시라도 요보호성년을 위해서는 법정후견이 우수하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우리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와 같은 관행이 계속된다면 임의후견 우선의 원칙이 무력화 될 것이고 종국적으로는 성년후견제도를 운용함에 있어 법정후견이 시스템화 될 것이라는 프랑스 학자들의 지적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3) 마지막으로 임의후견과 법정후견이 경합하는 상황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양자의 병존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우리 민법과 달리 양자의 병존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래보호위임계약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그 내용이 본인의 신상 또는 재산에 대한 이익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법관은 보충적인 법정후견을 개시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장래보호위임계약의 수임인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프랑스민법 제485조 제2항). 따라서 후견계약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도 법관은 필요한 경우 이와 병존하는 법정후견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하여 양자의 병존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반대로 법정후견인 보좌가 개시된 경우에도 피보좌인은 보좌인의 원조 하에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여(프랑스민법 제477조 제2항)40) 양자의 병존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프랑스에서는 양자의 병존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프랑스 파기원 사례에 대한 평석에서 학자들은 법정후견 보충성의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사안이 본인 보호를 위해 법정후견이 필요한 경우였다면 이와 함께 장래보호위임계약을 병존적으로 인정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민법은 양자의 병존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파기원의 대상판결에 대한 학자들의 비판은 양 제도의 조화를 위하여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장래보호위임계약이 체결되어 시행되고 있는 경우에도 법관이 법정보호조치를 보충적으로 개시하여 양자의 병존을 인정한 것에 대하여,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취소한 후 후견이나 보좌를 개시하는 것보다 보충적으로 법정보호조치를 개시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선택하여야 하며 이는 성년후견제도의 가장 중요한 이념인 피보호성년의 의사존중과 이익추구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41) 반대의 경우 즉 보좌(법정후견) 하에 있는 자도 보좌인의 조력을 받아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입법자들이 본인의사 존중의 이념을 구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42)
다만 우리 민법의 해석상으로는 임의후견과 법정후견의 병존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므로43) 입법론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많은 학자들이 양자의 병존가능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의후견이 개시되어 있는 경우에도 후견계약의 내용과 중복되지 않는 범위에서 법정후견이 개시될 수 있고, 법정후견이 개시된 경우에도 그 범위와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후견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44)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 임의후견에 의하여 보호받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임의후견의 효력을 인정하고 보호에 공백이 생기는 부분에 한해서는 법정후견을 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45) 다만 병존가능성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현행 민법의 해석상으로는 양자의 병존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입법 전까지는 해석상 후견계약과 병존이 가능한 법정후견인 특정후견제도를 활용하여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46)
본인의사 존중과 요보호성년의 이익 보호라는 성년후견제도의 이념을 전체적으로 고려한다면, 필요한 경우에는 구체적 상황을 반영하여 양자의 병존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본인을 위하여 법정후견에 의한 보호가 필요한 경우라도 후견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므로 본인의사 존중이라는 성년후견제도의 이념에도 부합하게 되는 것이다.
대상판결의 경우에도 우리 민법이 임의후견우선의 원칙을 인정하지만 임의후견과 법정후견의 병존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대상판결의 구체적 사안이 본인의 이익 보호를 위하여 법정후견이 필요한 경우라고 판단하여 법정후견인 한정후견을 선고한 것이다. 만일 이러한 상황에서 양자의 병존가능성을 인정한다면 본인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정후견을 선고하되 본인의사를 최대한 존중하여 법정후견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범위에서 후견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다만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의 병존가능성의 문제는 법규정에 대한 해석에 의해서가 아니라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성년후견제도의 이념 추구와 활성화를 위하여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대법원 결정을 계기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숙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