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원고는 1997. 2. 말경 피고에게 6,000만 원, 1997. 4. 초경 1억 원을 각 대여하였는데 피고가 이를 갚지 않자 수원지방법원에 1억 6,000만 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2004. 11. 11. 위 법원으로부터 전부승소 판결을 선고받고 2004. 12. 7.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원고는 2014. 11. 4. 위 대여금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하여 피고를 상대로 1억 6,000만 원 및 그 지연손해금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이행의 소를 제기하였다.
제1심은 피고가 소장 부본을 송달받고서도 답변서를 제출하지 아니하자, 청구의 표시로 ‘수원지방법원 2003가합15269호 대여금반환 사건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중단 청구’와 같이 기재하여 무변론으로 원고 승소판결을 선고하였다. 피고가 항소하였다.
피고는 항소심에서, 피고가 파산절차에서 면책결정이 확정되었으므로 위 판결금 채권에 대하여도 면책되었다는 취지로 항변하였다. 원고는, 피고가 위 판결금 채권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의로 채권자목록에 기재를 누락하였으므로 비면책채권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재항변하였다.
원심은 제1심과 마찬가지로 청구권의 내용을 특정하지 않은 채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수원지방법원 2003가합15269호로 대여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1억 6,000만 원 및 그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받아 확정되었고, 원고가 위 판결금 채권의 소멸시효 연장을 위하여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근거로 피고는 원고에게 1억 6,000만 원 및 그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피고의 항변에 대하여는, 위 판결금 채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566조 제7호에서 정한 ‘채무자가 악의로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아니한 청구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피고에 대한 면책허가결정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원고에 대한 판결금 채무에 관하여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피고가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직권으로, 당사자 쌍방이 문제 삼지도 않은 “전소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의 소송형태로서 이행소송, 청구권 확인소송 외에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를 중단시키기 위한 재판상의 청구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만 확인을 구하는 형태의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허용되는가?” 하는 점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하고 심리하여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각자의 근거를 제기하였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종래 대법원이 권리 자체의 이행청구나 확인청구에 제한하지 않고, 피고로서 응소하면서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여 받아들여진 경우, 그 권리가 발생한 기본적 법률관계에 관한 확인청구를 하는 경우 등 권리자가 재판상 그 권리를 주장하여 권리 위에 잠자는 것이 아님을 표명한 때에도 시효중단사유로서 재판상의 청구로 보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 역시 판결이 확정된 채권의 채권자가 그 채권을 재판상 주장하여 권리 위에 잠자는 것이 아님을 표명하는 것이므로, 재판상의 청구인 시효중단을 위한 후소의 한 형태로 허용된다.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의 소송물은 청구권의 실체적 존부 및 범위는 배제된 채 판결이 확정된 구체적 청구권에 관하여 시효중단을 위한 재판상의 청구를 통한 시효중단의 법률관계에 한정되므로, 법원은 소멸시효 완성 등을 포함한 청구권의 존부 및 범위와 같은 실체적 법률관계에 관한 심리를 할 필요가 없다. 채권자는 청구원인으로 전소 판결이 확정되었다는 점과 그 청구권의 시효중단을 위해 후소가 제기되었다는 점만 주장하고 증명하면 되며, 채무자는 청구이의사유를 주장할 필요가 없다. 채무자는 후소 판결의 확정 여부와 관계없이 언제라도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기존의 이행소송에서 전소 변론 종결 후의 사정(주로 청구이의사유)에 대한 심리가 채권자나 채무자 모두에게 불필요하지 않다. 이중집행의 위험은 청구이의의 소로 방지할 수 있고 자력이 없는 채무자에게 흔한 것도 아니다.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再訴)의 적법 기준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가 사건마다 큰 차이도 없다. 후소 소송비용은 채무자가 부담하는 것이 민사소송법 원칙에 부합하고, 다만 채무자가 무자력이어서 채권자가 부담할 가능성이 많다.
반면에 다수의견에서 제안하는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시효중단을 위한 재판상의 청구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의 확인을 구하는 것이어서 구체적 권리의무에 관한 분쟁을 대상으로 하는 ‘소송’으로 볼 수 없고, 다툼의 여지가 없어 ‘확인의 이익’도 없다. 어떠한 ‘청구’나 ‘권리행사’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시효중단사유인 ‘재판상 청구’도 아니다.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再訴)로서 이행소송과 함께 해석을 통하여 다른 형태의 소송을 허용한다면, 전소 판결의 소송물이자 전소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 그 자체를 대상으로 확인을 구하는 ‘청구권 확인소송’으로 충분하다.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확인의 이익 등 법리적 문제가 있고, 심리 방법이 달라 혼란도 크며, 채권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현행 민사소송법과 맞지 않다.
기존의 이행소송은 당사자의 의도와 달리 청구권의 실체적 존부와 범위를 다시 심리하여 이행판결을 하게 하고, 청구이의의 소 제기 여부와 그 시기에 관한 채무자의 자율권을 침해한다. 또한 민사집행법 규정을 잠탈한 여러 통의 집행문 부여, 채권 관리·보전비용의 채무자 전가, 입법적 근거 없는 기판력의 예외 인정 등과 같은 다양한 법리 및 실무상의 문제점이 있다. 반면에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이와 같은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연 구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하여 소를 제기하여 승소 확정 판결을 받게 되면 위 확정된 승소판결에는 기판력이 있으므로, 채권자가 다시 채무자에 대하여 동일한 청구의 소를 제기하면 그 후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 다만 대법원은 위 확정판결에 의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이 임박하여 그 시효중단을 위하여 제기된 소에 대하여는 예외적으로 그 소의 이익을 인정하고 있다.7)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한 후소로서 그 확정된 채권에 관한 이행의 소와 청구권 확인의 소 이외에 ‘재판상의 청구’가 있다는 점에 대하여만 확인을 구하는 형태의 새로운 방식의 확인의 소도 허용하였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에 따르면, 시효중단을 위한 기존의 이행소송은 채권자가 의도하지 않은 청구권의 존부와 범위에 관한 실체 심리를 진행하게 되고, 채무자는 청구이의사유를 조기에 제출하도록 강요받고 소송비용 부담 및 이중집행의 위험에 노출되며, 법원은 불필요한 심리를 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반면에 소위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 소송물은 전소와 달리 판결이 확정된 구체적 청구권에 관하여 시효중단을 위한 재판상의 청구를 통한 시효중단의 법률관계에 한정되므로, 법원은 전소 판결이 확정된 사실과 그 시효중단을 위하여 후소가 제기된 사실만 심리하면 되고, 전소 판결의 기판력의 표준시가 그대로 유지되므로 전소 변론종결 후의 사정(청구이의사유)은 심리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동일한 청구권에 대해 집행권원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으므로 이중집행의 위험도 없고, 소제기 시기가 제한되지 않으며, 소가를 낮춰 소송비용 부담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한다.8)
그러나 법리적으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 그 소제기가 소송요건을 갖추어 적법하고,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를 중단시키는 ‘재판상 청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정책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다수의견이 설명한 것과 같은 소송상 이점이 존재하는지도 불분명하고, 오히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채권자의 시효중단이라는 소제기 목적과 법원의 심리 편의에 대하여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반면에, 채무자의 소멸시효 이익에 대하여는 충분한 고려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하에서는 실체법적 측면에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통하여 전소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에 관한 재판상 청구가 인정될 수 있는지와 다시 개시되는 시효기간은 어떻게 되는지(Ⅱ), 절차법적 측면에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 그 소가 소송요건을 갖추어 적법하다고 볼 수 있는지(Ⅲ), 그리고 정책적 측면에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과연 기존의 이행소송에 비하여 실효성이 있는지(Ⅳ)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시효중단을 위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허용하는데 법리적, 정책적 근거가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는지를 밝혀 보도록 한다.
우리 민법상 시효중단 사유로 (재판상) 청구,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 승인이 있는데(민법 제168조, 제170조), 시효중단 사유인 ‘청구’는 시효의 목적인 사법상의 권리를 재판상 및 재판 외에서 실행하는 행위이므로, ‘재판상 청구’는 법원의 민사소송 절차를 통하여 위 권리를 주장하거나 행사하는 것이다.9)
그런데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 채권자는 전소 판결이 확정되었고 그 청구권의 시효중단을 위해 후소가 제기되었다는 점만 주장하게 되고,10) 법원도 이미 확정된 전소 판결을 특정한 후 그 시효중단을 위한 후소의 제기가 있었음을 확인하는 형태의 확인판결을 내리게 되므로,11) 채권자가 소송절차를 통하여 직접 권리를 주장하거나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근거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통하여 시효중단 사유인 ‘재판상 청구’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이 단기소멸시효에 걸리는 채권일 경우에는 민법 제165조 제1항에 의하여 소멸시효기간이 10년으로 연장되는데, 위 채권이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으로 시효가 중단되어도 다시 개시되는 소멸시효기간도 역시 10년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의 실효성과 관련하여 문제된다.
재판상 청구에 시효중단의 효과를 인정하는 이론적 근거에 대하여는 권리확정설과 권리행사설의 대립이 있다. 권리확정설에 따르면, 권리관계의 존부가 공권적으로 확정되어 사실상태의 계속이 법적으로 부정되어야 시효중단의 효력이 발생하므로, 그 청구된 권리가 기판력이 발생하는 소송물이어야 한다고 한다. 반면에 권리행사설에 의하면, 시효중단의 본질은 권리자가 소송상 권리 주장으로 권리 위에 잠자는 자가 아님을 표명하고 소멸시효 완성의 사실적 기초가 상실되는 것에 있으므로, 그 권리가 기판력이 발생하는 소송물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고 한다.12)
시효제도의 존재이유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① 계속된 사실상태에 대한 법적 안정성의 요구, ② 증거보전 곤란의 구제, ③ 권리 위에 잠자고 있는 자에 대한 제재 등을 들고 있으므로,13) 시효중단 사유는 위와 같은 시효제도의 존재 이유가 상실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상태가 계속된다고 볼 수 없는 다른 사정이 발생하거나 권리자가 권리 위에 잠자는 자가 아님을 표명한 경우 등에는 시효중단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고, 굳이 시효중단의 범위를 기판력이 발생하는 소송물에 국한하여 채무자의 소멸시효 이익을 채권자의 권리보다 더 넓게 보호할 필요성은 없다. 따라서 권리행사설이 타당하고, 판례도 같은 입장이다.14) 이러한 문제를 의식했기 때문인지 2014년 법무부 민법개정시안도 ‘재판상의 청구’ 대신 ‘재판상의 권리행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권리행사설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15)
그렇다면 시효중단 사유인 재판상 청구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소제기라는 통상적 개념에 국한하지 않고, 구체적 사안에 따라서 시효제도의 존재이유와 소송을 통한 시효중단의 인정근거 및 권리자에 대한 보호 필요성 등을 함께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16)
권리행사설의 입장을 견지할 경우, 시효중단의 효과를 가지는 재판상 청구는 기판력이 미치는 소송물에 한정하지 않고, 권리행사로 볼 수 있는 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고, 대법원 판례도 여러 형태의 ‘재판상 청구’를 인정하고 있다.
먼저 원고로서 소를 제기하는 것은 권리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행사하는 것이므로 이것이 재판상 청구임은 분명하고,17) 피고로서 응소하여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경우, 그 응소도 재판상 청구가 될 수 있다.18) 그러나 응소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시효중단의 대상이 되는 권리를 주장하거나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우에는 재판상 청구로 인정되지 않는다.19)
권리 그 자체에 대한 이행청구나 확인청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권리를 기초로 하거나 그것을 포함하여 형성된 후속 법률관계에 관한 청구가 그 권리를 주장 또는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때에는 시효중단 사유인 재판상의 청구에 포함될 수 있다.20)
권리가 발생한 기본적 법률관계에 관한 청구도 그 성질 및 사회통념상 그 권리 행사의 선행적 단계로서 권리 실행의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재판상 청구가 인정되는데,21) 보수금채권의 행사에 선행하여 파면처분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22)
이와 같이 대법원은 기판력이 발생하는 소송물에 한정하지 않고, 어떠한 실체적 권리에 관하여 권리 위에 잠자는 자가 아님을 표명하고 소멸시효 완성의 사실적 기초가 상실된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그 관련된 실체적 권리의 시효중단사유로서 ‘재판상 청구’를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재판상 청구’를 인정한 사례들의 공통적인 점을 들자면, 어느 경우든 어떠한 실체적 권리의 존부와 관련된 다툼을 해결하기 위하여 법원에 법적 판단을 요청하는 행위가 존재하고,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으로 그 실체적 권리의 존부 또는 실현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소송상 권리의 주장 또는 행사가 ‘재판상 청구’로 평가받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구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도 채권자가 소의 제기를 통하여 권리를 ‘주장’하는 것으로서 권리 위에 잠자는 것이 아님을 표명하는 때에 해당하여 충분히 시효중단 사유인 ‘재판상 청구’가 인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이유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는 그 소제기가 채권자의 채권에 관한 ‘재판상 청구’로 보기는 어렵다.
법원의 소송절차를 통하여 권리를 주장하거나 행사하는 경우에 시효중단사유로서 ‘재판상 청구’가 인정되는 것으로서, ‘재판상 청구’는 원래 법원에 대하여 자신의 권리의 존부에 대한 판단을 요구하는 것을 본질적 요소로 하는 행위이다. 앞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Ⅱ. 3. 참조) ‘재판상 청구’는 최소한 법원에 대하여 실체적 권리의 존재와 관련된 다툼을 해결하기 위한 법적 판단을 요청하는 것이어야 하고, 이러한 요소가 결여된 경우에는 그 실체적 권리에 대한 ‘재판상 청구’로 볼 수 없다. 현행 민법도 재판상 청구는 소송이 기각되는 경우에는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고 하여(민법 제170조 제1항), ‘재판상 청구’가 법원의 실질적인 판단을 구하는 것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의 경우에는 ‘재판상 청구’로 볼 수 있는 위와 같은 의미를 가진 행위가 없다.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는 그 청구취지 자체가 ‘후소 제기 사실에 대한 확인’을 구하는 것으로서,23) 소를 제기하는 것 자체로 후소 제기 사실이 명백하여 법원에 대하여 채권의 존부와 관련된 판단을 구하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리행사설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의 형태로 소를 제기하는 것을 ‘재판상 청구’로 보는 것은 그 해석의 한계를 초과하는 것이다.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 법원이 확인하는 것은 단순히 전소 판결의 확정과 후소 제기 사실에 불과하고, 이는 명백한 사실이어서 법원의 어떠한 실질적 판단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시효중단을 위한 소제기 사실에 대한 확인을 구하는 것도 권리 위에 잠자지 않는 자임을 표명한 것이어서 재판상의 청구가 인정된다는 것이므로,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판결로 확정되지 않은 채권도 시효중단만을 위한 확인소송을 통하여 시효중단이 가능하다고 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만약 이를 인정한다면, 우리 민법상 일반 채권의 소멸시효기간과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이 10년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채무자의 변제의사가 분명한 경우 소송 수행에 부담이 있는 기존의 이행소송보다는 시효중단만을 위한 확인소송을 이용하더라도 불리할 것이 없고, 보통의 이행소송은 채무자가 변제를 거부하는 등의 사유가 없으면 굳이 필요치 않다. 더욱이 잠정적인 시효중단의 효과만 있는 ‘최고’보다는 위와 같은 확인소송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채무자가 다툴 수도 없는 사실에 대한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는 것은, 아무리 채무자에 대하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법원의 실질적 판단을 거치지 않으므로 사실상 법원을 통한 ‘최고’에 불과하고,24) 이것이 판결로 확정된 채권에 관한 것이라고 하여 시효중단사유인 ‘재판상 청구’가 될 수는 없다.
현행 민법은 법원의 판단을 전제로 하지 않고 단순히 채무자에게 채무이행을 구하는 의사의 통지에 불과한 ‘최고’와 법원의 판단을 필요로 하는 ‘재판상 청구’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25) 비록 판결로 확정된 채권이라고 하더라도 ‘최고’에 불과한 행위를 ‘재판상 청구’로 인정하는 것은 위와 같은 현행 민법의 입법 취지를 잠탈하는 것이 된다.
시효중단은 재판상 청구의 효과 중 하나일 뿐, 시효중단만을 위한 재판상 청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에서 시효중단의 효과만을 가지는 소를 미리 상정하고 그에 따른 소송을 거치면 당연히 재판상의 청구가 인정된다고 한 것은 논의의 순서가 바뀐 것이다.26)
채권자가 소송절차에서 권리를 주장하거나 행사하는 일정한 경우에 재판상 청구가 인정되는 것이지, 그 소송이 시효중단을 위한 것이라고 하여 당연히 시효중단 사유인 재판상 청구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견이 제시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는 재판상 청구로 볼 수 있는 채권자의 행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시효중단을 위하여 만들어진 소송형태라고 하더라도 시효중단 사유인 재판상 청구가 인정될 수는 없다.
우리 민법상 소멸시효 제도는 일정 기간의 경과로 무조건 채권이 소멸된다고 보지 않고, 시효중단도 인정하여 채권자와 채무자의 이익이 서로 균형을 이루도록 하고 있다.27) 그러므로 시효중단의 사유 중 하나인 재판상 청구를 인정하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이익형량의 정신이 고려되어야 한다.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인정되면 채권자는 간단한 소송 절차를 통하여 무한정 소멸시효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반면에, 채무자는 쉽게 소멸시효 이익을 박탈당하게 된다. 다수의견은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허용되면 채무자는 자기가 원하는 시기에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러한 사정은 채무자가 상실하는 소멸시효 이익에 비할 바가 못되고, 오히려 청구이의사유가 발생한지 한참 지난 후 청구이의의 소가 제기될 경우에는 채무자가 입증곤란에 빠질 수도 있어 채무자에게 유리한 것만으로 볼 수도 없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채무자의 소멸시효 이익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채권자와 법원의 편의에만 몰두하여, ‘최고’에 더 가까운 새로운 방식의 확인의 소제기에 ‘재판상 청구’의 시효중단의 효과를 인정한 것으로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이익형량이 적절하게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들다.
민법 제165조는 단기의 소멸시효에 걸리는 채권이라도 판결, 재판상 화해, 조정 등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는 것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은 소멸시효기간을 10년으로 하고 있다. 채권의 존재가 판결 등에 의하여 확정되면 그 성립이나 소멸에 관한 증거자료의 일실 등으로 인한 다툼의 여지가 없어지고,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할 필요성도 소멸하며, 채권자가 시효중단을 위해 여러 차례 중단절차를 밟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8)
그렇지만 판결은 채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일 뿐 채권의 성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29) 단기소멸시효에 걸리던 채권이 확정 판결에 의하여 소멸시효기간이 10년인 일반 채권이 되지는 않는다. 만약 확정 판결로 채권의 성질이 변한다면 현행 민법상 일반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이 10년이기 때문에 굳이 민법 제165조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 확정판결이 있다고 하여 10년보다 장기의 소멸시효기간이 10년으로 단축 되지 않으며, 공유물분할청구권과 같이 원래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는 권리가 판결 등에 의해 확정되었다는 이유로 10년의 소멸시효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30)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이 전소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하여 이행소송 형태로 소가 제기될 경우에는 그 청구원인이 전소(前訴)의 청구원인과 같다고 하면서, 원심이 단지 전소 판결의 확정사실과 소멸시효 연장을 위하여 소를 제기한 사실만을 요건사실로 기재한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고 한 것도 확정판결에 의하여 채권의 성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2003년에 발표된 「유럽계약법원칙(The Principles of European Contract Law: 이하 ‘PECL’)」 제3부에서도 일반 소멸시효기간은 3년으로, 판결 등에 의해 확정된 채권을 위한 시효기간은 10년으로 정하면서, 판결 등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이라도 채무의 승인으로 시효기간이 다시 개시될 경우의 시효기간은 일반 시효기간인 3년이고, 원래 10년의 시효만료일보다 단축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채권의 성질 자체가 판결 등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31)
따라서 단기소멸시효에 걸리는 채권이 확정판결로 소멸시효기간이 10년으로 연장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시효중단의 사유가 발생하여 소멸시효기간이 다시 개시되는 경우에는 채권의 존재를 확정하는 판결을 새로 받지 않는 한 원래의 단기소멸시효에 걸리게 된다.
다만 우리 민법상 일반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이 10년이기 때문에 단기소멸시효에 걸리는 채권이 아닌 일반채권의 경우에는 위와 같은 논의가 실익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일반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에 대하여 최근 독일민법은 3년, 프랑스민법과 일본민법은 5년으로 개정하였고, 2014년 법무부 민법개정시안에서도 현재 10년의 일반소멸시효기간을 5년으로 단축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32) 향후 민법 개정 경과에 따라서는 일반 채권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 시효중단의 대상은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이므로, 만일 그 채권이 단기소멸시효에 걸리는 채권이라면 그 소멸시효기간은 일단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10년으로 연장된 상태가 된다. 그러면 새로운 방식의 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이 재판상 청구에 해당하여 시효가 중단된다고 보는 경우에도 그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다시 10년의 소멸시효기간에 걸리게 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판결에 의하여 채권이 확정되는 경우는, 그 이전에 재판상의 청구에 의하여 소멸시효가 중단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나, ‘채권의 확정’과 ‘소멸시효의 중단’은 서로 논리적 연관성이 없는 별개의 개념이기 때문에 재판상의 청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당연히 소멸시효 기간이 연장되는 것은 아니다.33)
민법 제165조 제1항에서 말하는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채권”이란 “기판력에 의하여 그 존재가 확정된 채권”이라고 해석되므로, 채권의 존재가 기판력에 의하여 확정되기 위하여는 채권의 존재 자체가 소송물이 되어야 한다.34) 예를 들어 어음금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이 확정되면, 그것이 원인채권의 소멸시효를 중단시키더라도, 소송물이 아닌 원인채권까지 판결에 의하여 확정된 것은 아니므로 원인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은 연장되지 않는다.35)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에 의하면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의 소송물은 청구권의 실체적 존부 및 범위를 배제하고 단지 ‘판결이 확정된 구체적 청구권에 관하여 시효중단을 위한 재판상의 청구를 통한 시효중단의 법률관계’에 한정된다.36) 그러므로 그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채권의 존재를 확정시키는 효과가 없어, 채권자가 새로운 방식의 확인의 소를 제기하여 채권의 소멸시효를 중단시키더라도 다시 개시되는 소멸시효기간은 민법 제165조 제1항이 적용되지 않고 원래의 단기로 돌아가게 된다.
따라서 단기소멸시효에 걸리는 채권의 경우는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소멸시효기간 10년의 경과가 임박하지 않는 시점에 소를 제기하는 것은 별로 실익이 없다. 이는 소송의 필요성에 관한 것이므로 아래 Ⅳ. 4.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시효중단 사유인 재판상 청구가 있더라도 소가 각하되면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민법 제170조 제1항). 따라서 새로운 방식의 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이 실체법상 재판상 청구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소송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여 부적법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새로운 방식의 확인의 소에서는 소송요건 중 소의 이익이 특히 문제된다. 확인의 소는 기본적으로 대상이 무한정이기 때문에 남소의 우려가 높아서 소의 이익 유무로 이를 제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확인의 소의 이익은 대체로 확인의 대상과 확인의 이익의 문제로 나누어 다루어지고 있으므로 이를 기준으로 소의 이익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법원조직법 제2조 제1항에서는 법원은 법률상의 쟁송만을 심판한다고 하고 있고, 그 취지는 재판상 청구는 구체적인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관한 청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사실의 존재 여부는 원칙적으로 소송에서 다투어 질 수 없다.37)
그런데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는 확인의 대상이 단지 시효중단을 위하여 ‘후소가 제기되었다’는 사실 자체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채무자가 다툴 여지가 없고 다툴 필요도 없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도 채무자 입장에서 굳이 시효중단을 위한 소제기가 있다는 점은 다툴 필요나 실익이 없어, 후소판결은 제1심에서 자백간주 등에 의한 무변론판결 등으로 종결되고 그대로 확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즉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채권자가 법원으로부터 소제기증명을 받아서 이를 채무자에게 통지해 주면 될 일에 대하여 ‘소제기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한 경우로서, 분쟁을 전제로 하는 ‘소송’이라고 볼 수 없다.38)
확인의 소에서 확인의 대상은 원칙적으로 현재의 권리·법률관계이어야 하고, 단순한 사실관계나 과거의 권리 또는 법률관계의 존부는 확인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39) 어떠한 의미에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다툼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한 후소가 제기되었다’는 사실은 확인의 소의 대상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다수의견이 시효중단의 ‘법률관계’가 확인의 대상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시효중단을 위하여 소가 제기되었다고 하여 사실의 확인 청구가 권리나 법률관계에 대한 확인 청구가 될 수는 없다.40) 따라서 새로운 방식의 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권리보호자격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증서의 진정여부를 확인하는 소’(민사소송법 제250조) 등과 같이,41) 그 확인이 현재의 법률관계를 둘러싼 분쟁의 발본적 해결에 역할을 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소의 이익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예외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권리보호의 이익(확인의 이익)의 문제와 연결되므로,42)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확인의 이익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도록 한다.
확인의 소에서는 확인의 이익이라는 특별한 권리보호필요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 이유는 필요 없는 소송에 법원과 당사자가 불필요한 시간이나 노력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43)
여기서 확인의 이익이란 권리 또는 법률상의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고, 그 불안·위험을 제거하는데 확인판결을 받는 것이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인 경우 인정되는 것으로서,44) 구체적인 법적 분쟁마다 실질적이고 개별적인 판단을 통하여 그 유무가 가려진다.45) 새로운 방식의 확인의 소가 이러한 확인의 이익이라는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검토하면 다음과 같다.
확인의 소는 판결에 의하여 원고의 법률상의 지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우이어야 하고, 반사적으로 받게 될 사실상 경제상 이익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46)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의 소송물이 ‘판결이 확정된 구체적 청구권에 관하여 시효중단을 위한 재판상의 청구를 통한 시효중단의 법률관계’라고 하면서, 이에 대한 판결은 전소 판결로 확정된 청구권의 시효중단 이외에 다른 실체법상 효과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 원고의 법률상 이익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시효중단의 이익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체법적 측면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는 시효중단사유인 ‘재판상 청구’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원고의 법률상 지위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다수의견에 따르면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 확인의 대상은 단지 ‘시효중단을 위한 재판상의 청구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인데, 그러한 사실만으로는 시효중단이라는 효과가 발생하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채무자는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 전소 판결 변론종결 후에 발생한 청구이의사유를 주장할 필요가 없고 후소 판결 확정 여부에 관계없이 언제라도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하므로,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존부 자체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후소 판결이 나기 때문이다. 즉 후소 판결 자체만으로는 시효중단의 효력 발생 여부가 결정되지 못하고, 최소한 채권이 존재하고 그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소가 제기되었다는 점까지 인정되어야 한다.47) 따라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는 그 판결이 나더라도 원고의 법률상 지위에 대한 영향 여부가 불확실하다.
다만 확인의 소로써 위험·불안을 제거하려는 법률상 지위는 반드시 구체적 권리로 뒷받침될 필요는 없고, 불확정적이더라도 보호할 가치 있는 법적 이익이 있으면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므로,48) ‘재판상 청구’의 인정여부를 논외로 한다면 이러한 이유를 들어 원고의 법률상 지위에 영향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49)
현존하는 불안이 있는 전형적인 경우는 상대방이 원고의 권리를 부인하거나 양립하지 않는 주장을 하는 경우이지만, 당사자 간에 다툼이 없어도 소멸시효의 완성단계에 이른 경우에 시효중단이 필요한 때, 또는 등기부 등 공부상 기재의 정정을 위하여 판결에 의한 확정이 필요한 때에도 일반적으로 인정된다.50)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의 경우에도 시효중단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이므로 현존하는 불안이 있다고 볼 수는 있다.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분쟁해결방법으로서 확인판결을 받는 것 이외에 유효 적절한 수단이 없어야 한다. 이 때문에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도 소멸시효완성의 임박성이나 소제기보다 간단한 민사집행 방법이 부존재하다는 등의 보충성의 원칙이 요구된다는 견해,51)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가능하다면 기존의 이행소송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견해52) 등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확인의 이익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문제로서 단순히 이행소송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확인의 이익이 부정되지 않는다.53)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기존의 이행소송과 문제되는 법률관계가 일치하지 않고, 기판력에 의하여 확정되는 내용도 다르므로, 기존의 이행소송과 함께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추가적으로 인정된다고 하여도 엄밀히 말해서 보충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실체법적 측면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는 시효중단 사유인 ‘재판상 청구’가 인정될 수 없어 목적 달성이 불가능한 소송이 되기 때문에 유효·적절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이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라는 새로운 소송 형태를 허용하고자 하는 주된 의도는, 기존의 이행소송이 갖고 있다는 실무상의 문제점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다수의견이 제시하고 있는 문제점들이 과연 실제로 심각한 문제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으로 해결이 가능한지 등에 대하여 검토하기로 한다.
일반적으로 소송에서 다툼의 대상이 되는 권리나 법률관계의 존부가 동일한 당사자 사이의 전소에서 이미 다투어져 이에 관한 확정판결이 있는 경우에 당사자는 이에 저촉되는 주장을 할 수 없고, 법원도 이에 저촉되는 판단을 할 수 없다.54)
이러한 전소 판결의 기판력 때문에 승소의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전소의 상대방을 상대로 다시 동일한 내용의 후소를 제기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55) 그러나 후소를 제기할 필요성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인정될 수 있고 그 대표적인 예가 시효중단을 위하여 후소가 제기된 경우이다. 다만 후소 판결이 전소 확정판결의 내용과 달라져서는 아니 되므로, 후소 법원은 전소 변론종결 후의 사정 이외에 그 확정된 권리의 요건이 구비되었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다시 심리할 수 없다.56) 따라서 불필요한 심리가 반복될 소지는 없다.
다만 채무자에게는 후소에서 청구이의사유의 존재를 주장 및 증명해야 되는 부담이 있지만, 채무자에게 청구이의사유가 있다면 후소에서 이를 주장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볼 수도 있으므로 채무자에게 무조건 불리하다고 할 수 없다. 채무자는 채권자가 강제집행을 개시하고 나서야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는 것이 보통인데, 만일 변제 등의 사유가 있은 지 상당히 오랜 기간이 지난 후라면 채무자가 이를 증명할 증거를 보존하고 있지 못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채권자가 시효중단을 위하여 10년마다 제기하게 될 후소에서 채무자에게 청구이의사유를 항변으로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채무자를 보호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채무자가 추후에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게 되면 후소 판결이 강력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으므로 채무자가 청구이의 사유를 주장하도록 하는 것이 소송경제에 반하는 것도 아니다.
채권자가 시효중단의 목적으로 후소를 제기하였다고 하더라도, 후소의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청구권의 실체적 존부와 범위를 다시 정하는 것이 후소 제기의 목적을 벗어나거나 전혀 불필요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기판력의 표준시를 후소 변론종결시로 늦추어 전소 변론종결 후의 사정을 근거로 채무자가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57)
오히려 이행소송의 경우 지급명령이나 이행권고결정 등을 통하여 판결절차 없이도 시효중단이 가능하지만,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반드시 판결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으므로, 이행소송의 경우보다 당사자의 불편이나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58) 다수의견은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는 채무자가 굳이 시효중단을 위한 소제기가 있다는 점을 다툴 필요나 실익이 없으므로 후소 판결은 제1심에서 자백간주 등에 의한 무변론판결 등으로 종결되고 그대로 확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기존의 이행소송에서도 청구이의사유가 있지 않는 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 장점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기존의 이행소송이 이중집행의 위험이 있다고 하지만,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再訴)가 있다는 것은 전소 판결 확정일로부터 10년이 다 되도록 채권자가 변제를 받지 못할 만큼 채무자가 자력이 없다는 것이므로, 이중집행의 가능성은 희박하다.59) 시효중단사유로서의 재판상 청구에는 그 권리 자체의 확인청구도 포함되고,60) 만일 이중집행의 위험성을 중시한다면, 위와 같은 청구권 확인소송을 허용함으로써 그러한 위험을 방지할 수도 있다.61)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라는 새로운 소송형태를 굳이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다수의견은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은 판결이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할 필요 없이 적당한 시점에 언제든지 소제기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라는 기준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의 불명료성은 법원의 판단으로 충분히 해결이 가능하고, 실무상 사건마다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이용하더라도 채권자 입장에서는 10년의 경과가 최대한 임박한 시점에 소를 제기하는 것이 경제적이므로,62) 소제기 시점이 자유롭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더욱이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는 소제기 후 판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앞에서 본 바와 같이(Ⅱ.의 5. 참조) 단기소멸시효에 걸리는 채권의 경우에는 새로운 방식의 확인의 소가 제기되어 시효가 중단되더라도 다시 개시되는 소멸시효기간은 원래대로 단기로 되므로, 그 단기의 기간보다 10년의 경과까지 남은 기간이 더 긴 경우에는 시효중단의 의미가 없다. 또한 그 단기의 기간보다 10년의 경과까지 남은 기간이 더 짧아서 어느 정도 시효 중단의 효과를 본다고 하더라도, 채권자는 단기간에 다시 새로운 소를 제기해야 하므로 오히려 번거롭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의 경우 소제기 시점이 자유롭다는 점은 채권자에게 그다지 큰 실익은 없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 소송비용은 채권자가 부담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再訴)의 소송비용은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무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는 패소 당사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한 민사소송법 제98조의 규정에도 부합한다.63) 무엇보다 승소자인 채권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문제는 위 민사소송법 규정의 개정 없이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64) 다만 시효중단을 위하여 다시 소가 제기되는 경우는 채무자가 무자력인 경우가 보통이므로, 소송비용은 사실상 채권자가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65)
지금도 피고가 원고의 주장을 다투지만 않는다면 지급명령66)이나 조정67) 등을 이용하여 소송비용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므로, 입법론에 불과한 소송비용 문제를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의 장점으로 들 수는 없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시효중단을 위한 기존의 이행소송은 실무상 많은 문제점이 있고 이를 위하여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다수의견이 들고 있는 문제점들은 실제로는 그다지 심각하다고 볼 수 없거나,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으로도 해결하기 힘든 것들이다.
기존 이행소송의 문제점인 이중집행의 위험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없고, 청구이의 사유를 항변으로 주장해야 한다는 것도 채무자에게 부담이 아닌 오히려 향후 입증곤란의 문제를 피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는 소제기 시점이 자유롭다고 하지만 10년의 경과가 최대한 임박한 시점에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다지 실익이 없고, 채권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도 현행 민사소송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결국 정책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허용할 필요성을 찾기 힘들다.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에 관하여 시효중단을 목적으로 전소와 동일한 후소가 제기될 경우, 어차피 동일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고 오히려 채권자와 법원에 부담만 준다는 사고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 소멸시효 제도가 권리자의 권리 보호와 의무자의 계속되는 사실 상태에 따른 법적 안정성이라는 서로 대립되는 이익이 적절하게 균형을 갖춘 토대 위에서 설계되어 있는 것임을 간과한 것이다.
판결로 확정된 채권이라고 하여 다른 채권들의 경우와 달리 채권자의 시효중단을 통한 권리 보호의 이익이 채무자의 소멸시효 이익보다 훨씬 더 중시된다고 보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허용되면 채권자는 간이한 방법으로 시효를 중단시킬 수 있고, 사실상 소멸시효기간이 무한정으로 늘어나는 혜택을 입게 된다.
이에 대하여 다수의견은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으로 채무자는 이중집행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진다고 하나, 이중집행의 위험은 사실상 현실화되기 어렵고, 채무자 입장에서는 청구이의 사유를 채권자가 제기한 이행소송에서 항변으로 주장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며, 향후 입증곤란의 문제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인정됨으로써 채무자가 얻는 이익은 채권자의 것에 비해 모호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결과는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을 일반 채권의 소멸시효기간과 동일하게 10년으로 정한 입법자의 의도와도 맞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판결로 확정된 채권을 더 보호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소멸시효기간을 훨씬 더 장기로 규정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68)
2014년 법무부 민법개정시안에서는 재판상 권리행사를 시효중단 사유가 아닌 시효 정지사유로 규정하고 있으므로,69) 그와 같은 개정이 이루어질 경우, 채권 확정의 효과가 없는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인정할 실익은 더더욱 없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혼란만 가중시키는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을 허용하였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 형태로 소를 제기하는 것은 사실상 ‘최고’에 불과하고, 시효중단 사유인 ‘재판상 청구’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할 아무런 법리적, 정책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이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에서 시효중단의 효력을 가지는 ‘재판상 청구’가 인정된다고 한 것은 채무자의 소멸시효 이익과 채권자의 시효중단의 이익, 그리고 법원의 심리 편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상실시킨 것으로서 마땅히 재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