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序
2009년 개원한 25개 법학전문대학원들은 이미 개원 10주년을 넘겼다. 누적합격률을 포함한 8년간의 합격자 수까지 공개되자 변호사시험의 개선과 합격률 고지 방법의 문제, 실무교육의 축소여부와 교육 방향전환, 교육 연한의 연장과 사법연수원의 실무수습 제도화, 법전원 평가제도의 실효성과 개선방안 등 다양한 관심사가 표현되고 있지만,1)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경북대 법학연구원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비교법적 검토를 포함하여 몇 차례 다양한 지위와 연령에 속하는 개별 연구자들의 학문후속세대 양성과 법학교육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소개해 왔다.2) 지난 2018년 4월에는 서울대학교 법전원 법학연구소와 아시아태평양법연구소가 공동으로 ‘로스쿨 10년의 성과와 개선방향’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발간하면서 관련 세미나를 개최, 서울대 로스쿨의 다수 교수(총 17인)들이 공동 참여한 결과물을 발표했다.3) 그 곳에 제시된 방안들은 연구자들 사이에 합의・양해된 내용인 듯하다. 그 내용의 당부를 논하기 전에 그런 관심과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다.
미국의 로스쿨, 일본의 법과대학원, 독일의 법과대학, 한국의 법학전문대학원은 모두 저마다 독특한 그 나라만의 역사와 현실이 만들어낸 제도일 것이나, 과연 우리의 법전원을 우리의 어떤 역사와 필요가 녹아 있는 고유하고 독특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지, 3년의 법학전문석사, 변호사시험, 그리고 2년의 박사과정 혹은 5년의 법조경력만으로 충분히 학자연(學者然)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는 것인지, 이제 학문으로서 법학이 더 이상 필요 없는 법학연구 선진국의 수준에 이른 것인지, 미국이라는 판례법전통 국가가 가진 로스쿨의 구조로 그 틀을 바꾼 것은 이제는 최고법원의 법리가 법학의 자리를 대체한다는 의미였는지, 향후 모든 법전원의 교수들마저 상위 몇 개의 이른바 엘리트 대학출신의 변호사들로 채워지는 것이4) 바람직한 것인지 등등, 꼬리를 무는 무수한 질문들을 여기서 모두 살펴보고 답할 수는 없겠지만, 우선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들만이라도 발췌해서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Ⅱ.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관한 서울대학교 연구보고서의 주요 내용
2018년 4월 보고서 중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관한 부분에서는 주로 다음과 같은 진단과 대책들이 정리되어 있다.
무엇보다 학부에서의 법학교육에 대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5) 일본의 경우 법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이 병존함으로써 학문후속세대의 양성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퇴로를 끊어버린 배수진을 택한 대한민국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아래에서 법학을 공부하려는 학생에게도,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수요부족으로 폐강을 염려해야 하는 교수에게도 문제해결의 단초는 학부과정의 법학교육임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적절한 지적으로 보인다.
나아가 현재의 법률가 양성제도를 전제할 때, 일반대학원 석・박사과정과 법학전문대학원 전문 석・박사과정의 교과과정 운영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일반대학원 석사과정 학생도 법학전문대학원 강의를 수강할 수 있고 그 반대의 수강도 가능하게 하여 잠재적 교수후보군을 확장하자는 제안도 있다.6)
사실 법학전문대학원의 전문석사를 취득한 학생들은 대부분 법조실무로 진출하게 되니, 일반대학원의 심화이론 강의를 수강할 수 있게 하고, 일반대학원의 재학생은 실무적 감각이 부족하니 전문대학원의 실무 관련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하여 이른바 이론과 실무가 적절히 균형 잡힌 교수를 키워보자는 생각인 듯하다.7)
원론적으로 하나의 개선책으로 이해될 수 있을 듯하지만, 그렇다면 결국은 일반대학원 석・박사 4년, 법학전문대학원 석・박사 5년의 과정에서 이론과 실무교육을 받은 재원이 향후 법학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말이다. 즉,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졸업생이 대학원 법학과 일반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진학하여 4∼5년의 법학교육을 이수하면 이론법학자로서의 자격을 갖는 것이 된다.
대학생들의 연간 수강학점이 제한된 것이 교수와 학습의 실질적 효과를 생각한 것이라면 결국 이른바 이론법학의8) 학점을 줄여 법전원의 과목을 수강하거나 그 반대로 법전원 수강과목을 줄여 일반대학원의 이론과목을 수강하게 하는 것은 이론과 실무를 고르게 경험하게 한다는 것 외에 정작 필요한 ‘깊이 있는 이론법학의 학습’이라는 목적 달성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과연 국내・외를 막론하고 4∼5년의 대학교육을 통해 학자가 될 수 있는 전공분야가 있는지, 과연 어디에 있는지, 지금까지 법학이라 불리던 학문 영역은 그 정도의 교육을 이수한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히 꾸려나갈 수 있는 분야였던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수한 잠재적 학문후속세대를 조기에 발굴하고, 그들에 대한 재정 지원을 제도화(강의조교, 논문출간, 학자금, 생활비 지원 등)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9) 학문후속세대로 성장할 우수한 인재들이 일정 기간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문후속세대의 잠재적 풀의 개발(cultivation: 개간 면적의 확장)부터 구체적인 대상자에 대한 지원 및 양육(training: 수리답의 운용)까지 모두 포괄하여, 법학전문대학원 차원의 적극적인 인재발굴과 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10)
현실을 감안할 때, 교수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서서 교수요원으로 성장할 자질이 있는 우수인력을 장학금, 생활비지급, 공동연구, 강의기회제공, 교수임용보장 등의 보장책을 제시하며 관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현 상태에서는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방법의 하나일 수 있어 보인다.
문제는, 그렇게 하더라도 여전히 4∼5년의 법전원 교육이 전부인 것은 다름이 없고, 그것마저도 법전원 교육은 기존의 법과대학, 대학원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의 연구자 과정의 교육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교육의 효율성과 실효성이라는 관점에서도 합리적인 방법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모든 선택이 정확하다는 보장이 없듯, 후속세대로 선정한 후 종국적으로 적절한 교수자질을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학교는 물론 그 개인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 등을 단지 지엽적인 문제들로 논외로 하더라도, 우수한 실무가에게 이론적 지식을 보완하게 하여 전문대학원의 교육을 담당하게 하는 형태를 넘어선 이른바 ‘이론가’・‘학자’의 양성이라면 굳이 이런 방법을 선택해야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이런 접근으로 종래의 학부 4년(1년은 교양중심이면 3년), 대학원 석・박사 4∼5년, 유학이나 연구(post doc 혹은 박사학위 논문작성) 2∼4년 등 최소 10년 이상의 법학 교육 이수와 전문적 연구를 통해 배출되는 교수의 역량에 비근할 만한 이론가가 양성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공학 4년 학부를 마치고 3년의 전문석사과정과 2년의 박사과정을 수료하여, 총 9년의 대학과정을 마친 변호사자격을 가진 법학(전문)박사와 앞서 언급했던 종래 법학부 제도 하에서 10년의 수학과정을 거친 법학박사를 단순히 비교대상으로 놓고, 향후 법전원 교수이자 법학연구자는 전자의 학습・연구경력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이 아니라면 언급된 방법은 적절한 접근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혹자의 말처럼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면 현재 20% 이상 채용해야 하는 실무교원이 법전원 강단의 80%를 채울 것이므로, 오히려 순수이론(?)교수 20% 채용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그 출발점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나마 위 보고서에서 언급된 조기 발굴・지원으로 교수인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사실 국내 몇몇 법전원에서나 가능한 선택지일 것이다.
석・박사 학생 중 전업 연구생은 점점 사라지고 실무 법조인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개선할 필요가 있고, 향후 학문후속세대는 실무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 될 것이므로 실무계에서 학계로 ‘환류’(내지 순환)하여 들어올 수 있는 계기와 유인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11) 이러한 진단과 전망은 앞서 언급했듯이 미래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은 모두 변호사시험을 합격하고 실무경력 5년(?)을 거친 법조인(판사, 검사, 변호사)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후학양성과 관련한 국내 현실을 보면 가장 현실적인 예견이기도 하다.
법조 실무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대학원의 전임교원으로 채용할 것인지, 겸임 혹은 강사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 법전원의 이론교육과 실무교육이 어느 정도 비율로 구성되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 하는 선결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우선 지난 10년 실무교원의 채용에서 경험한 사실들을 잠시 돌아보는 것도 미래의 전망에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다.
학교의 인지도나 개별 교원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실무자들이 대학 전임교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법은 사실과 규범, 현실과 이론의 복합체이므로 실무적 경험을 쌓고 교수가 되어 제대로 가르쳐 보겠다는 계획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사람, 평소 법조실무보다 학문적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을 쓰며 연구하려고 생각했던 사람, 법조 수입이 점점 줄어들어 연봉 1억 전후의 65세까지 정년보장도 법조인으로 사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던 사람, 노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재정적 여유가 있어 돈보다 명예를 선호하는 상태가 된 사람, 변호사의 자격을 받았지만 고객을 상대하고 직장 상사의 지시를 받는 등의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사람, 고객을 관리하고 서비스를 펼치며 감정노동자로 볼 수밖에 없는 생활을 하기 보다는 적게 벌어도 마음 편한 대학이 좋다고 생각한 사람, 조직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독립성과 창의성이 강한 사람 등등, 그 이유와 사정은 제각각일 것이다. 이들 중 어떤 사람이 대학교원이 되는 것이 법전원 교육은 물론 자신에게도 바람직한 것인지는 법전원의 교육의 목표와 내용이 함께 고려되지 않고는 적절히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법조실무교원으로 채용된 사람들이 5년, 10년이 지나면 과연 법조실무교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향후 10∼15년 후에는 모든 교원이 법조실무교원이 될 것인데, 그렇다면 이른바 ‘이론교수’는 존재하지 않는 법전원, 이론법학이 없는 대한민국이 된다는 것에 모두 합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 일본의 경우 실무강의를 하는 대부분의 교원들은 현직 판사, 검사, 변호사들인지, 어떤 방식이 진정한 의미의 실무교육인지를 제대로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실무 경력을 가지고 교수가 되는 사람들은 그 실무적 경력으로 학문을 하고, 이론적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가 되고, 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아니라 단지 법 실무의 내용을 교수하는 것만이 임무라면 현직 판, 검사와 변호사를 시간강사・겸임교수, 혹은 특강의 형식으로 활용하는 일본의 방식으로 충분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이 진정한 의미의 실무(practice) 교육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향후 모든 학문후속세대는 3년의 전문교육과정만 거치기 때문에 재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재교육에 있어 로스쿨의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이를 학문후속세대의 양성 기회로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12) 재교육과정에서 우수한 인력을 학교로 유인하는 정책을 말하는 것인지, 학문후속세대를 이러한 재교육에 교원으로 투입하여 교육경험과 경력을 쌓게 한다는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후자라면 다소 이상적인 생각인 듯하다.
또한 어느 정도 연령대의 법조인을 대학교원으로 채용하려 하는 것인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학부와 군복무를 마치고, 3년의 법전원 과정과 변호사자격 취득 후 5년의 변호사경력을 포함한다면 대체로 남성의 경우 34∼35세, 여성의 경우 32∼33세에 달한다. 변호사활동과 박사과정을 겸업하면서 학문후속세대양성 프로그램에도 참가하여 동시에 경력을 채운다면 남성은 34∼35세, 여성은 32∼33세에 대학교원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 종래의 이론교수라고 칭하던 사람들이 유학을 마치고, 1∼2년의 시간강사를 거친 후 대학전임교원이 될 때의 연령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들이 변호사의 재교육, 보수교육에 투입된다는 것은 자신 스스로 초보 변호사이면서 다른 변호사들의 재교육, 보수교육을 담당하여 경력을 쌓는다는 것인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지, 실무적 경험의 교육은 가능할지 모를 일이나, 이런 방식으로 이론적 기초를 가진 후속세대 양성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취업이 확정된 로스쿨 졸업생들 중에서 전공교수(들)의 추천에 따라 일정 수의 굉장히 우수한 학생들에게 1년간 Fellow 명칭을 부여하고 1학년 필수과목의 Tutor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13) 3년의 법학교육을 법전원에서 받고 바로 법전원의 필수과목(헌, 민, 형)의 강사로 투입된다는 것이다. 탁월한 인적 자원이라면 가능하고도 장려할 일이겠으나, 학문적 기초를 가진 후학을 양성하자는 제안은 아닌 듯하다.
종합하자면, 일반대학원 법학과 석・박사과정과 법학전문대학원 전문석사・박사과정이 공존하는 체계에서는 이들 대학원생들을 모두 학문후속세대로 키울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정비하고, 3년간 전문대학원에서 배운 법적 지식, 1년 혹은 2∼3년의 재정적 지원이 따르는 펠로우십, 일정 기간 변호사 경력에서 얻게 되는 실무경력을 가진 우수한 인력을 발굴・양성하여 학문후속세대로 키운다는 복안인 것이다. 현재의 교육체계에서 선택가능한 방법이자, 더 이상의 실효적인 방법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물음은 이러한 경력의 인재들을 ‘학문’후속세대라고 할 수 있는가이다.
학부 4년간 법학을 공부하고, 석사 2년, 박사 2∼3년, 외국유학 4∼5년, 시간강사 등을 거쳐 30대 중반에 교수가 되었던 종래의 학문후속세대의 학습량과 연한에 비추어 볼 때, 가까운 미래의 대학 교원이자 연구자가 될 법전원의 교수들은 실무적 경험이 추가된 점을 제외하면, 사실상 3년의 법전원에서의 시험대비 법학 공부, 즉 판례와 실무, 대법원의 태도를 배우고 익히는 것에 대부분의 노력을 들인 사람들이 될 것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서울대학교의 학부가 아닌 다른 대학의 법학부를 졸업한 학생이 일반대학원 석・박사과정이나 법전원에 진학하는 경우에는 종래의 법학이론교육을 받은 학문후속세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런 경로의 후속세대를 언제까지,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25개 이른바 상위권대학의 법학부를 모두 폐지시킨 상태에서 남아있는 어느 법학부에서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공염불이다.
최소기준으로 석사학위가 요구되지 않는 경우도 없지 않았고, 전공분야를 불문하고 석사학위만 있다면 변호사 경력 5년 조건 충족으로 교수가 되었던 과도기 시절과는 다르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다. 기록연습에 사용될 사건기록 1건이 논문 1편 혹은 50%의 실적으로 인정되는 기이한 현상도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10년, 평균 15년, 많은 경우 20년간 법학을 공부하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과 연간 200∼400%이상의 논문을 등재(후보)지 이상의 학술지에 게재하는 능력을 보여야만 교수가 될 수 있던 시절과 비교할 때 향후 법전원의 강단을 채우고 실무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역할과 합리적인 비판 세력으로 학문을 꾸려 나가야할 사람들은 누구일 수밖에 없을 것인지, 지금의 사정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답은 명확하다.
학부의 법학교육에 대한 방안 마련의 필요성이 지적되기는 했지만, 서울대학교 연구보고서의 출발점이자 결론도출의 전제는 법학부가 폐지된 25개 법전원 제도라는 현실이고, 일본식의 예비시험도 없는 현재 변호사시험제도라는 구조 속에서 그럼에도 우수한 교수요원을 발굴하고 일정 수준의 글쓰기와 교육능력을 갖추게 하고 교수직에 대한 유인을 강화하는 방법을 찾는다는 가정인 것이다. 법전원의 교수가 단지 변호사를 양성하는 임무만을 가지는 것인지, 학문의 발전과 사회정책적인 의무의 수행도 그 과제로 삼아야 하는지를 묻는다면 필자의 답은 당연히 후자이다. “자연대가 없는 공대를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우둔한 질문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이유로 결국은 선배 변호사가 후배 변호사를 양성하는 것 정도로 법전원의 존재나 법전원의 교수의 자질을 평가한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위험한 발상인 것이다. “십 여 년만 지나면 법전원에 ‘이론 교수’라는 존재는 사라질 것입니다.”라는 치기어린 진단이 현실이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학문적 연구거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학문후속세대 양성을 위한 대책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어설프나마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이미 법조일원화가 정착된 국가이면서, 판사와 겸직하는 교수, 변호사 역을 같이 하는 교수, 연방대법원의 판사인 강사 등이 변호사와 교수를 양성해내는 독일 대학에서는 어떤 과정과 어떤 요건을 교수채용의 전제조건으로 하는지를 짧게 살펴보기로 한다.
Ⅲ. 독일의 교수자격
독일의 법과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경우에만 허용되는데, 구체적인 내용의 한 예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 뮌스터대학의 하빌리타치온규정(Habilitationsordnung der Rechtswissenschaftlichen Fakutät der Westfälischen Wilhelms-Universität vom 22. April 1996, 2012년 최종 개정)에 따르면, 하빌리타치온의 대상은 ‘지원자가 법학분야에서 스스로 독자적으로 연구와 교육을 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빌리타치온 위원회가 인정하는 절차’라고 정의되고 있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교수・교육자격(Lehrbefugnis=venia legendi)을 부여받으면 사강사・시간강사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하게 된다(동 규정 제1조).
하빌리탄덴/하빌리탄딘넨(Habilitanden/Habilitandinnen)은 교수자격 부여절차를 허가 받기 위해서 다양한 요구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러한 원칙적인 요구조건들을 정하고 있는 동 규정 제2조 제1항 각 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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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법학과에서 법학공부를 성공적으로 이수할 것, 통상 국가시험 혹은 외국의 대학에서 동일한 가치의 법학의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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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작업에 대한 특별한 능력, 그 능력은 법학 박사를 통해 증명할 수 있고, 통상 최소 magna cum laude(우수)의 성적이어야만 한다. 박사 대신에 외국의 대학에서 그와 동일한 가치의 법학에 대한 자격증명이 있어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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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이후에 계속된 학문적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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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의 하빌리타치온 성과물(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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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의 동일한 혹은 유사한 전공분야에 관련된 하빌리타치온 절차에 있지 않거나, 이미 두 번 동일한 전공분야 혹은 유사한 전공분야와 관련한 교수자격인증절차에 불합격하지 않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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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는 고의로 범한 범죄로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의 판결을 받아 기판력이 발생한 경우가 아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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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는 공무원의 될 자격을 갖춘 자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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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는 자신의 행위로 자신이 교수자격을 부여받으려 하는 전공의 명망을 중대하게 침해하지 않았을 것, 특히 자신의 학문적 자격을 오남용하여 저지른 그 범죄로 기판력있는 유죄판결을 선고받지 않았을 것.
대체로 독일의 법과대학 6∼7학기에 국가시험을 통과하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 재응시를 하는 등 4년 가까이 시험공부를 하고,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교수의 조교 역할과 시험채점 등의 보조역할을 하면서 시보와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다시 하빌리타치온이라는 교수자격논문을 취득하여야 강사로서 강단에 설 수 있다.
하빌리타치온 절차의 허가를 신청하는 경우 자신이 지원하는 전공분야를 정확하게 기재하고 다음과 같은 서류들을 첨부하도록 하고 있다. 동 규정 제3조 제1항에 규정된 각 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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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학문적 과정과 교수활동에 관한 정보를 기재한 상세한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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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험증서, 국가시험증서 혹은 비교 가능한 시험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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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증서 혹은 박사학위에 동등한 외국의 자격의 취득에 관한 증명서 혹은 다른 시험들에 관한 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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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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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문적인 출판물의 목록 및 출판을 위해 접수된 논문들의 견본 각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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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자격취득신청 논문 최소 7부 혹은 최소 7편 이상의 누적적인 교수역량 증명을 위해 제출된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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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자격취득신청 논문 2부 혹은 누적적인 교수역량 증명을 위해 제출된 논문들 2부들은 학장실에 비치한다는 것에 대한 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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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가 이미 하나 혹은 다수의 하빌리타치온 취득 시도를 했는지에 대한 지원자의 해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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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자가 형사처벌을 받았는지, 자신에 대해 형사절차가 개시되었는지 혹은 검사의 수사절차가 진행중인지 여부에 대한 해명서
이외에도 신청서에는 동 규정 제4조 제4항에 규정한 바와 같은 공개강의(Lehrveranstaltung)의 유형에 대한 기재도 가능하다(동 규정 제3조 제2항). 또한 신청서에는 3개의 주제로 구성된 교수자격 취득을 위한 발표(Habilitationsvortrag) 목록을 기재할 수도 있다. 단 그 주제는 박사학위논문주제나 교수자격취득 논문의 주제와 동일해서는 안 된다. 교수자격인증절차가 시작되기 2주 전에는 주제가 확정되어야만 한다.
하빌리타치온은 지원자에 의해 작성된 학문적인 논문(Wissenschaftliche Arbeit=Habilitationsschrift), 강의(Lehrveranstaltung), 그리고 그와 연결된 콜로키움에서의 학문적인 발표(Vortrag)를 근거로 하여 이루어진다. 교수자격논문(Habilitationsschrift)은 독자적이고 학문적인 역량・능력과 학문적 인식의 중요한 발전(wesentliche Fortschritt)을 보여주어야만 한다(muß darstellen). 교수자격논문은 박사학위논문의 대상과는 다른 것이어야만 한다. 이와 같은 다양한 요구조건들이 독일 법과대학 교수의 자부심과 권위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강의에서 지원자는 대학의 교육(akademische Lehre)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고(제4조 제4항), 발표에서는 자신의 고유한 학문적인 논문의 결과를 전문 청자들 앞에서 적정한 구술적 형태로 소개하는 것이다. 이 발표회(Kolloquium)에서 지원자는 자신이 원하는 교수자격 영역의 대상들과 문제들을 적절하게 설명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여야만 하고, 토론회의 대상은 지원자가 선택한 모든 전공분야에 미친다.
교수자격 심사위원회(Habilitationsausschluß)는 투표권을 가진 전공분야의 일단의 교수들, 조언권을 가지고 있는 전공위원회에 속하는 조교위원회의 구성원과 학생들로 구성된다. 즉 교수와 조교, 학생이 모두 참가하고, 의결권은 전공분야(Fachbereich) 교수들만이 가진다. 다른 전공분야의 교수들을 조언역으로 혹은 의결권을 부여하여 본 절차에 참여하게 할 수도 있다. 정년이나 퇴직한 교수는 만약 그가 추천서를 제출한 경우에는 심사위원회의 토의에서 발언할 수 있다. 제적인원의 과반수로 개의하고, 단순다수결로 의결한다. 자격 심사위원회의 표결은 공개한다. 기권은 허용되지 않는다(동 규정 제5조).
심사위원회는 교수자격인증절차가 개시되면 지체 없이 최소 2명 이상의 심사위원(Gutachterinnen/Gutachter)을 선정한다. 심사위원이 될 수 있는 자는 교수 그룹의 구성원 혹은 정년 혹은 퇴직한 교수이다(동 규정 제7조). 교수자격심사위원회는 심사위원들과 협의하여 서면의 심사결과서 제출기간을 확정하는데, 최대 12주를 초과할 수는 없다. 심사결과지에는 앞서 언급한 교수자격논문에 대한 요구조건이 충족되었는지와 교수자격부여에 적합한 논문임을 인정하는지 여부에 대한 입장이 표현되어야 한다. 찬반은 상세하게 근거 지워져야 한다. 기한을 초과하는 경우에 학장은 새로운 심사위원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동 규정 제8조).
학장은 자격신청 논문과 이에 대해 작성된 심사서를 최소 2주, 최대 8주간의 시간동안 기간을 정하여 심사위원회의 위원들이 열람하고, 일정 기간 내에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수자격을 받을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서면심의, 즉 논문에 대한 자격조건 충족여부에 대한 결정에서는 논문을 열람한 심사위원들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만약 투표권을 가진 위원들 다수가 추가적인 심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경우 결정을 중단하고 추가적인 심사보고서를 받아야 한다.
논문이 부적격판단을 받으면 그것으로 절차는 종료된다. 2년 내에는 다시 절차 신청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교수자격심사위원회가 논문작성능력(schriftliche Leistung)을 인정하면 그 차수의 회의에서 해당 학과의 교과목 중에서 교수자격 신청분야를 포함하는 수업 중의 하나를 수업심사 대상으로 지정한다.
이 수업에는 교수자격심사위원회의 투표권을 가지는 위원 2인 이상, 동 심사위원회의 학생구성원들을 참여하게 하고, 그에 대해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학장은 공개수업 일정을 결정하고, 지원자에게 최소 1주 동안 그 수업에 대한 준비기간을 준다. 교수자격심사위원회의 구성원들은 누구든지 수업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논문 평가에서 합격결정을 하게 되면 수업평가 다음에 이루어지는 공개발표와 토론회에 대한 일정도 결정한다. 최소 3주간의 준비기간이 허락되고 지원자와 합의되면 그 기간을 줄일 수도 있다.
발표시간은 45분을 초과할 수 없다. 발표 후 토론회(Kolloquium)는 학장이 주제하고 교수, 강사, 시간강사, 교수자격심사위원회의 구성원 등이 참여할 수 있다. 학문적인 발표에 대한 토론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학문적 발표와 토론회 후에 심사위원회는 심의와 표결을 한다. 수업과 발표 그리고 토론회의 내용이 제4조 제4호에서 6호까지의 요구조건을 충족했는지를 결정한다. 만약 수업 혹은 발표에서의 전문역량 중 하나가 미흡한 경우에는 지원자에게 1학기 후 혹은 18개월의 기간이 지난 후 1회 반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원자가 모든 역량이 충분한 것으로 결정되면 심사위원회는 비공개의 회의에서 지원자에 대한 교수권한 부여에 관해 결정한다.
절차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경우에는 증서(Urkunde)가 교부된다. 그 증서는 특히 교수자격논문의 제목, 교수활동이 가능한 전공분야표시, 결정일자가 기재된다. 증서에는 학장의 서명과 학과의 도장이 압날되고, 해당 증서는 시간강사의 취임강의(Antrittsvorlesung) 시작 전에 학장이 교부한다. 교육권한이 인정되면 이제 ‘사강사’(Privatdozentin/Privatdozent)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복무관계(Dienstverhältnis)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사강사는 연구와 교육에 있어서 전공분야를 적절히 대리(대표, Vertretung)하는 것과 적어도 주간 2시간의 강의를 규칙적으로 하는 것을 권리이자 의무로 한다. 물론 학과위원회에서는 신청에 따라 이유가 있는 경우 강의의무를 면제해줄 수 있다(동 규정 제17조).
2010년 독일 연방통계청(Das Statistische Bundesamt)의 자료에 따르면 제1차 국가시험 합격자 중 약 1,500명이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했다. 박사학위 완성에는 5년정도 걸릴 수 있고, 학과에서 오랜 기간 동안 Mitarbeiter로 일하곤 한다. 최근에는 교수의 지시를 받는 Mitarbeiter와 달리 박사학위 취득 후에 바로 Juniorprofessor의 자격을 취득하여 독자적인 교육과 연구활동을 하고, 3∼6년의 기간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면 Habilitation을 요구하지 않고 교수직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독일의 경우도 사강사 자격을 받고 4년에서 5년 사이에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면 사실상 기회는 없다고 보기도 한다. 50살이 넘은 사람은 공무원의 신분인 교수가 될 수 없다. 1명을 채용하는 공채에 약 12명 이상이 지원한다고 한다.14)
“변호사시험 관련성이 없는 이론을 언급하지 말라!”, “‘다툼이 있는 경우 판례에 의함’이라는 단서가 없는 문항이 어디 있는가?”, “대법원의 관련 판결 외에 이론이라는 것들이 실무가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대법원의 판결에 나타나는 법리가 중요한 것이지 이론이니 학설이 어디에 소용이 있는가?”, “판례만 알아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대법관까지 할 수 있다!” …. 일견 모두 옳은 말이고, 정확한 진단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법전원을 선택한 이유이고, 대한민국의 법과대학 25개를 없애는 배수진을 치면서 국민을 위한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한 이유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을 위한, 대법원에 의한, 대법원의 나라가 되자는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법전원, 로스쿨은 법조실무가를 양성하기 위한 이른바 ‘스쿨’(school)이니 그렇다고 하면, 아카데미에서 법학의 씨를 말려 버린 이유가 무엇인지는 이와 엄격히 구별해서 답해야 한다. 법치와 민주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야할 대학, 아카데미에서 교양법학, 선택과목으로서 법학마저 사라졌다는 것은 비판적 지식인의 공급이 중단된다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형법 교원 1명을 채용하는데, 현직 교수와 외국 대학의 학위를 받은 박사, 국내박사, 다년간의 강사경력을 가진 우수한 잠재적 교수들이 36∼38명이 몰리는 모습을 보며, 어떤 용감한 인재가 그 힘든 ‘학자’의 길을 가겠다고 나서겠는가! 그 마저도 지쳐 연구자의 길을 포기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말이다. 올해 어느 지방대학, 법전원도 아닌 법학과의 형법공채에는 약 24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그 사이 사라진 12∼14명이 연구와 교육에 집중할 수 있는 자리를 구했다면 다행일 것이나, 강사의 삶을 포기한 때문이라면 그저 개인사의 문제로 치부하고 말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어찌되었건, 우리나라에는 이제 더 이상 ‘학문으로서의 법학’, ‘이론’교수, ‘이론’법학, ‘실무에 대척점으로서 법학’은 필요 없는 것인가? 만약 필요하다면 현재의 법전원의 교과과정과 전문 석・박사의 교육과정의 제도와 내용만으로 그런 후학들을 양성하기에 충분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이미 늦었지만,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국가와 대학이 답해야할 것이다.
Ⅳ. 학문후속세대 양성과 법학교육의 미래
필자의 단상을 정리하기 전에 법학의 미래, 학문후속세대의 양성이라는 관점에서 고려해야할 법전원의 교육환경과 운영 실태를 잠시 살펴본다.
2018년 현재 국내 법학전문대학원 25개교에 재직하는 교원의 수는 다음과 같다.
총 25개 법학전문대학원에 재직 중인 교원은 약 860여명이었고, 학생 약 7명당 교원 1인 비율이다. 인하・강원・제주・건국대학교는 5:1에 미치지 않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9조에 따른 12:1을 기준으로 법전원의 교수정원 축소가 이루어진다면 25개 법전원 전체 500명, 10:1을 기준으로 하면 600명의 교원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다. 지금보다 362명 혹은 262명이 축소되어도 된다는 말이다. 대학원 설치대학의 재정 적자의 심화, 선택법 교수의 책임시수 미달, 상당수 과목들의 수강생이 2∼4명에 불과하다는 등 여러 문제로 인해 전국 법전원의 교수 신규임용은 퇴직자의 수보다 적어지고 있는 것도 하나의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이미 몇몇 법학대학원에서는 정년 교원의 후임 교원을 신규 채용하지 않음으로서 자연감소의 방법을 선택하거나, 기본법과 기초법, 기본법과 선택법, 기초법과 선택법을 함께 강의할 수 있는 교원을 채용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특히 법전원 평가기준과 교육부의 이행점검 사항이 현재의 기준보다 점차 완화되는 형태로 바뀌게 되고,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모든 평가를 집어삼키는 결과가 되면 현재 교원 수보다 더 적은 수의 교원이 대학교육을 담당하게 될 것이고, 이 경우 줄어드는 교원의 전공분야가 무엇이 될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다행히 국가에서 지정한 보호학문적 성격을 지닌 분과학이라면 국립대에서는 존립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립대의 재정 사정을 생각하면 지금과 같은 수의 교원이 유지되기는 어려워질 것이고, 기초법이며 선택법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된 과목은 대학에서, 강단에서 사라져 버릴 위기가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한편 국가를 상대로 합격자수와 출신대학 등을 공개하라는 소송에서 패소한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변호사시험 합격률과 누적합격률까지 공개하고 있다.
상위 순위를 차지한 대학들은 이러한 기조를 몇 년 더 유지한 후 합격률이 낮은 대학들의 정원을 재배정 받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누적합격률 70%를 넘지 못하는 대학들 중에서는 정원을 반납하고 법과대학으로 돌아가자는 주장도 전혀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라는 말도 들린다.
위 도표에서 보듯이 경희, 고려, 서강, 서울, 서울시립대, 성균관, 아주대, 연세, 영남, 이화여대, 인하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등 14개 대학원이 누적합격률 83.10%를 상회하는 대학인데, 1개 대학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경기권의 대학원들이다. 이른바 ‘미니’로스쿨이라고 불리는 입학정원, 40∼50명의 대학들은 입학 정원을 늘리기 위한 전략으로 향후 몇 년간 합격률 증대에 전력투구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의 문제는 이러한 수요와 공급 법칙을 벗어날 수 없을 듯하다. 수험법학이니 사법시험낭인이니, 학문의 황폐화 등 사법시험제도하의 법과대학을 정의하던 다양한 색인어가 바로 오늘 법전원과 무관한 것은 아닌 듯하다.
변호사시험공부가 모든 요구과 관심을 집어삼키고 있는 지금, 지방대학의 황폐화 또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가속도를 붙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진솔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머지않아 집중과 불균형의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는 2018년 11월 28일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의 의견으로 기본적 법률과목에 대한 깊이 있는 학습을 유도하고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육 정상화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현행 변호사시험에서 선택형 시험과목을 헌법, 민법, 형법 3과목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16) 나아가, 전문 법조인 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대학마다 고유한 특성화 분야까지 도입하였으나, 변호사시험에 몰입도가 강해지면서 사실 수험준비에 필요한 과목으로 쏠림현상이 심화되어 그 해결책으로 특성화 분야에 학점이수제를 도입, 일정 학점 이상 전문과목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이를 통해 선택과목 시험을 변호사시험에서 제외한다는 복안이다.17)
미국, 일본, 한국의 변호사시험제도를 외형적으로만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시험제도는 분명히 대학원교육을 황폐화시킨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18) 특히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도입되고 총 8회의 변호사시험을 실시한 지금,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시험제도가 변화될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일본과 같이 객관식의 시험범위를 줄이고, 단순한 암기형의 문항을 줄이고, 사고력과 분석력, 응용과 유추능력이 필요한 문항들의 비중을 늘려가는 것이 합리적인 방향일 것이다.
“시험문제의 작성방식, 유형 등 거의 대부분을 일본의 제도를 따라가면서, 왜 기록형 시험을 변호사시험에서 폐지하고, 형법과 형사소송법, 민법과 민사소송법의 사례형 문제도 종래의 사법시험과 같은 형태로 별도로 분리하여 실시하는 일본의 제도는 도입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법무부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기록형 시험의 존폐에 대해서는 현장의 교수들의 목소리가 어느 한쪽으로 수렴되지 않았다.”
왜 그러했는지에 대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 것들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나, 특히 실무교원으로 전임교원이 된 후 기록형 수업을 담당하는 교원에게 자신의 전공분야를 없애자는 말과 다름없는 기록형 시험 폐지여부를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기록형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시기가 문제인 것이다.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이 관건이 아니라 조금 더 제도적 원칙으로 돌아가, 법전원의 실질 있는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개선이 필요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3년간 90∼96학점의 졸업학점 이수, 실무연수, 리걸클리닉, 각종 시험 등, 학생들이 과연 무엇을 얼마나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인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또한, 전문법과목의 논술형 시험을 시험과목에서 없애는 것과 3∼9학점의 관련 학점을 이수하면 전문법시험을 치르지 않는 식으로 변경하는 것, 양자 모두 실질적으로 전문법 소양을 가진 초심 변호사를 양성하는데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동일하다. 직설하자면, 거창하게 특성화니, 전문법조인이니,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국제적 감각의 법조인 양성이라고 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으로 제도를 정당화하려는 언어유희는 그쳐야 한다. 어떤 수사(修辭)를 부려도 기본법 과목이 변호사시험의 본류를 구성하고 있는 한 고쳐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법학전문대학원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분야의 식견을 가진 변호사를 양성하는 기관이며, 특성화된 교육을 통한 전문법조인양성이라는 모토를 버린 것이 아니라면, 3년간 전문분야와는 무관한 기본법의 실체・절차에 관한 대법원의 판례를 암기하고 정해진 관례에 따라 일정 문서를 작성하는 것에 정력을 쏟아야 하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지, 전문법 시험을 없애고 일정 학점이수로 대체한다는 것은 일의 선후나 대상의 선택이 뒤집어진 것이 아닌지 재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전문법조인 양성이 여전히 유효한 제도적 목표라면, 오히려 헌법,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 기본과목군에 대한 변호사시험을 폐지하고, 대학원 교육과정 속에서 엄격한 학점이수제 도입으로 실질적인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자,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구호에 보다 걸 맞는 조치인 것이다.
얼마나 우수한 인력들이 입학하는 법학전문대학원인지에 따라, 어떤 전공과목을 대상으로 하는지에 따라, 어느 정도 정원규모의 대학원인가에 따라, 교육과 강의의 방법과 내용이 어떠한지에 따라 현재 대한민국 각 법전원의 교육 현실은 아주 다양하게 진단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통상적인 교육현장의 모습만을 간추려 본다면 아마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시험과목으로 분류되는 공법, 형사법, 민사법의 이론과 실무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업무 부담에 힘들어 한다. 65세 정년까지 그 부담은 변함없다고 푸념한다. 선택법, 전문법 혹은 특성화 관련 과목의 담당교수들은 학교에 따라서는 책임시수를 채우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해야하고, 교육자로서의 활력을 잃어 버렸다고 자평한다.
증가한 노동(!) 시간과 업무부담의 가중에 부합하도록 연구실적 요구를 지금보다 하향조정해달라는 요구가 강하고, 소수의 반대목소리를 제외하면 대체로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듯하다. 공개된 제3주기 법학전문대학원 평가기준에서도 교수들에게 요구하는 연구실적이 5년간 400%에서 200%로 하향 조정되었다.19) 이제 기존의 소위 ‘이론 교수’들도 논문보다는 학생들의 변호사시험합격에 매진하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입에 쓴 약이 병에는 좋다’며, 학교가 아니면 생각해 볼 기회마저 갖기 어렵다고 설득하며 판결들의 논지에 대한 비판적 평석이나 외국의 이론이라도 몇 마디 했다가는 “변호사시험 적성이 없는 문제나 이론을 왜 수업시간에 언급하는가?, 법전원은 비싼 돈을 내고 들어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려는 학생들이 다니는 곳이고, 교수들은 그런 요구에 부응해야한다”라는 불만과 지적이 적힌 강의평가서를 받아야만 하는 경우가 흔해지고 있다.
“일본의 법과대학원에서는 변호사시험에 적성이 없는 수업이라는 학생들의 불만이 없는가요?”, “그런 경우 어떻게 하시나요?”라고 묻자, 일본 형사법학계의 독일통인 간사이 대학의 노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있습니다. 불쾌한 교수들은 다음 학기에 법대로 다시 갑니다. 법과대학원 수업을 안하면 되지요!”
분명한 것은 법전원은 단어의 고유한 의미에서 ‘아카데미’나 ‘대학’이 아닌 스쿨(school)이라는 것이다. 전문석사라는 학위명이 보여주듯이, 기술전수를 주목적으로 하는 학교라면 여기 이 공간에서 학문과 학문후속세대를 말하는 자체가 이미 주소를 잘 못 찾은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제도적 해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로스쿨, 법전원은 정녕 법학의 무덤이라면 그곳에서 살아 있는 법학을 찾을 수는 없는 일이고, 진정으로 법학을 버릴 것인가, 소생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결국 법전원이 아닌 법대, 학부의 법학교육을 환원하는 일이 가장 원론적인 해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 개인적으로는 법학부와 일반대학원 석박사과정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이와 별개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선택은 우리의 법제와 교육제도라는 기존의 틀을 배경으로 할 때에도 지금 보다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과 독일의 법학교육과 법조양성 제도를 비교한다면 판례법 전통의 미국제도 보다는 판덱텐 체계의 독일식의 연구・교육제도를 선택하는 것이 아직은 학문후진국・후발국이자 보다 많은 우리의 것을 찾고 정착시켜야 하는 우리의 현실에 부합한다는 생각이다.
달리 말해 학문이론적 연구가 법대에서 이루어지건,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이루어지건 간에 이론적인 연구의 탄탄한 기초가 유지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분히 추상적이지만 필자의 원론적인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전원을 졸업한 경력 변호사들이 법전원의 교수가 되는 것이 당연한 학문후속세대 양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뛰어난 실무가(?)라면 변호사를 양성하는 법학전문대학원에서도 당연히 뛰어난 교육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무리한 주장이겠지만, 이를 넘어 뛰어난 이론가 혹은 연구자일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한 억지 주장일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본 독일의 교수자격취득과정에서 요구되는 역량(Leistung)이 무엇을 말하며 어디를 지향한 능력인지는 장황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여기서 특히 우리는, 독일 사회는 더 이상 법치주의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법관주의20)로 변모해버렸다는 독일 법학자 뤼터스(Rüthers)의 지적과 경고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당해 소송의 심급에서 최고법원의 견해는 해당 사건을 넘어 장래의 모든 유사사례들에 대해 기속력을 가진다. 독일이건, 미국이건, 일본이건, 한국이건 다를 바 없다. 대법원의 입장이 하급심의 법관, 검사, 변호사를 구속하는 것을 넘어 입법권과 행정권의 고유한 권한 영역에 까지 월권하거나 간섭할 때, 지금 우리가 직면한 사법농단이니 재판거래와 같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법을 농단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사법의 절대적 권력화를 막는 일은 바로 대학의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고, 현재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수들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일본의 법과대학의 교수들이, 독일의 법과대학의 교수들이 해야 할 일을 미국의 로스쿨이나 한국의 로스쿨 교수들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면, 다른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제어 없는 법관주의로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한 브레이크의 역할과 조종간의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 가장 쉽게 줄 수 있는 답은 사법실무에서 가장 먼거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고, 독일 법과대학의 교수들의 예를 떠올려 보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법학부 3∼4년의 공부와 국가시험을 통과하고, 박사학위과정을 거치고, 수습을 하고, 교수자격논문과정을 거치고, 교수가 되어 학생을 가르치며, 법관의 역할을 겸직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법과대학 교수들의 건재는 우리와 같은 법학의 위기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본질적인 힘인 것이다.
2019년 1월에 실시된 변호사시험 형사법 문제에서는 단 1문항(1책형 22번)이 법률 조항만으로 풀 수 있는 내용으로 유일하게 ‘다툼이 있는 경우 판례에 의함’이라는 조건이 없는 경우였다. 민사법의 경우에도 70문항 중 법률의 내용 혹은 개념정의에 관한 3문항을 제외하고 모든 문항이 판례에 따르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판례만 암기해도 합격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물론 형사법의 경우 40문항 각 선택지 5개라고 하면, 즉 200개의 선택지 각각은 1개 판례의 판결이유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면 200개의 판례 암기가 시험공부인 것이고, 그런 내용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법전원이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200개의 선택지 중에는 이론이나 교과서에만 등장하는 지식들이 들어 있는 선택지도 적지 않지만, 그 내용은 누구도 다투지 않는 것에 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례형 문제나 기록형 문제도 즉각적으로 답을 찾아내는 시험이라는 것은 선택형과 다를 바 없다.
형사법 사례형 중간・기말고사 문제를 각 50점으로 하고, 60분씩의 시간을 주었다. 학기가 끝나고 받은 주관식 강의평가에 이런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변호사 시험 적응도가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 “60점 배점이면 변호사시험에서는 36분이면 되는데 왜 60분을 주어서 변호사시험 적응력을 떨어뜨리느냐”라는 것이었다. “최악이다”라고 한다. “왜, 판례가 아닌 이론을 얘기하고, 독일 법정의 모습을 얘기하는가?”라고도 적혀 있었다. “연습수업이면 수업시간에 답안을 작성하게 하고, 학생들의 답안지에 빨간 펜으로 첨삭해서 돌려주고 강평하면 되는 것인데, 왜 100명 가까운 수강생을 받고, 개별적으로 첨삭을 해주지 않느냐?”고 따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대학원에서 누가 학문과 이론을 논구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판결 실무와 사법의 실제를 보다 법치주의적으로, 보다 인간에게 이롭게 개선할 수 있는 학문후속세대들을 키워낼 수 있을 것인지 심히 의문이다.
법학전문대학원법과 법원조직법 등 법관을 포함한 법조인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관련 규정들을 발췌해서, 독일이나 일본의 법관법, 법원조직법, 법조인양성법 등의 규정과 비교해 보면 우리의 교육의 이념과 목적이 무엇이며, 얼마나 추상적이고, 피상적이며, 천박한 수준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학교 법전원이 기초법 1과목을 필수로 수강하도록 하는 것이 법전원 평가에서 ‘우수사례’가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법전원에서 법학(?)을 배운 신진 인력들이 법학을 궁구할 미래의 연구자가 될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상과 현실은 일정한 간극을 가지는 것이 인간사이고, 또 그렇게 괴리가 보이는 것이 발전을 위한 동인이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도 도입 이전부터 이른바 평균적 법조인을 양성할 것인지, 전문 법조인을 키워낼 것인지에 대해 적지 않은 논의가 있었고, 결국은 개별 대학원의 특성화 분야를 전문법조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도구처럼 보이게 하고, 평균적인 일반 법조인 양성은 변호사 시험 중심의 7법의 교육과 평가로 달성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된 듯하다. 그런데 사실 현재 법전원의 교육은 특성화 과목 혹은 전문법 과목의 폐강 혹은 형식적 운영, 그리고 변호사 시험과목의 판례암기 위주의 시험대비 교육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고 진단해도 잘못되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볼 때도, 일정한 나이가 되어야만 비로소 법조인의 길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제한했다면, 그나마 시작부터 전문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달리 말해 전문법을 시험과목에서 없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본법은 대학원의 교육과정에서 제대로 수학하게 하여 능력을 갖추게 하고, 변호사시험은 전문법조인의 역량을 평가하는 것으로 제도를 수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자니 바로 등장하는 문제가 누가 그런 전문법을 가르칠 것인가이다. 형법이 아니라 의료형법을 가르치고 경제형법, IT와 형법, 조세형법을 가르치자고 하니 도대체 누가 그런 분야의 교수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현재 우리 법전원 체계에서 전문법조인 운운하는 것은 말장난과 다름 없다.
또한 미래사회의 변화를 모든 곳에서 목소리 높여 말하고 있듯이, 법조인의 미래도 사회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면, 그런 변화와 관련된 사실적・법적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내용의 교과목이 개설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점에서는 학제간, 이론과 실무간 공동연구, 팀티칭, 수시로 이루어지는 교과목 개발과 변경 등의 탄력적 운영이 필요한 것이다. 과연 그런 수요와 필요에 대응할 기반과 자세가 되어있는가?
찬반의 의견차가 상당하지만, 법전원의 교육은 이론과 원리 교육의 방향으로 전환하고, 사법연수원을 법원, 검찰, 변호사회 등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변호사 실무연수기관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제안한 사람들의 고민도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법조실무교수라는 이름으로 현직 법조인을 전임으로 채용하는 것보다 일본식의 방법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조실무는 현직의 판사, 검사, 변호사가 시간강사 혹은 겸임교수라는 명칭으로 6개월 혹은 1년간 몇 개의 대학들에 강의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학생들을 위해서도 평준화되고 고급의 교육을 보장해주는 방법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실무과목이 꼭 법전원에서 이루어져야하고, 국가시험에 ‘기록형’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일본의 경험을 참고해야한다.
Ⅴ. 맺으며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이 개원하면서 전국의 2백에 가까운 법과대학과 법학과의 학생들은 제도적 사생아가 되어버렸다. 2008년 신입생이 모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법과대학 법학과의 편제를 유지할 것이고 교과과정을 제공한다는 약속이 전부였고, 2009년 법전원이 신설된 대학의 법과대학 소속 모든 교수들은 1명의 전담교수만을 남기고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소속을 바꾸면서, 기존 법과대학에는 마치 겸임교수와 같은 지위를 걸쳐 두었다. 국가가 어떻게 교육제도를 이렇게 무책임하게 운영하는가라고 따지고 들면, 새로운 제도에 먹칠을 하는 이단아가 되고, 구태에 빠져 고시낭인을 양산하며 게을리 살아온 무책임한 법과대학의 나태한 교수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모욕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법전원으로 옮겨가지 못하는 교수는 무능하다는 낙인을 두려워해야 했고, 만약 법대・법학과 교수들을 모두(대부분) 법전원의 교수로 채용한다고 하면 법전원 학생의 총 정원은 몇 명이 되어야 하는지도 검토되는 우스운 과정도 있었다.
법과대학의 재학생들과는 또 다른 피해자는 독일에, 미국에, 일본에, 중국에, 그리고 대한민국 수백이 넘는 대학원 연구실에 앉아서 법서를 넘기며 석사・박사학위취득과 시간강사, 그리고 마침내 전임강사가 되고 교수로 진입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던 석・박사과정생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가물에 콩 나듯 이루어지는 교수공채를 기다리다 지쳐 학원가로 가거나 공부를 접었다. 이런 선배를 보는 후배들이 학문이라는 큰 뜻을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09년이 시작되기 전부터 법전원 인가를 준비한 대학은 온갖 가능한 특혜를 제공하며, 때에 따라서는 석사학위조차 없는 교육과 연구의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변호사 자격만 있다면 실무가라는 이름의 교원으로 채용했다. 교원의 자리가 그렇게 채워지는 만큼, 학문, 이론, 원리, 정의, 지향, 비교법, 실무에 대한 비판적 인식, 학문적 연구, 논문작성 등에 인생을 걸었던 석박사과정생들의 자리는 점점 줄다 사라져 버렸다. 법전원이 아닌 대학의 법과대학의 교원자리도 법과대학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점점 줄어들었고, 그마저도 경찰행정, 경찰법 영역으로 옮아갔다.
법전원이 아닌 대학의 형사법 교원자리에 전・현직 법과대학의 교수와 국내・외 대학의 박사학위 취득자 36명이 몰렸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닌 것이 되었다.
국가나 교육부가 이들에 대해 어떤 책임을 졌는지 알 수 없다. 개인의 인생을 왜 국가가 책임져야하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국가가 반강제로 변경한 교육과 직업경로에 대해 국가는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파렴치한 날강도나 하는 짓이다. 연구재단의 시간강사 지원 몇 백만 원이 모든 인생들에게 예상치 못했던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도록 도움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지만, 이른바 ‘이론 교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연구와 교육을 위해 걸어온 길들이 이제는 더 이상 우리나라에는 필요 없는 길이 되었는가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답을 분명하게 제시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또 다시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방치가 계속된다면 법전원은 현재의 모습으로 오래 가지 못한다. 새로운 모습의 법과대학이 생겨날 수 있고, 사법시험의 부활이건, 예비시험의 도입이건 현재와 같은 법조인 양성제도를 그대로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사람들이 아주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대학(University)은 아카데미(Akadḗmeia)이다. 아카데미는 원리와 원칙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이론을 논구하고 저술과 교육을 통해 실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인도하며 학문적 진리를 궁구하는 곳이다. 기술 전수가 주가 된다면 대학에 있을 필요도 정당성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법학전문대학원이고 Law School이라면 대학교(University)에 법학(Rechtswissenschaft)을 다시 세워야 한다. 법과대학을 재건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면 적어도 일정 규모의 법학교육이 가능한 제도적 기초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법전원을 지탱하는 논리적 기둥 하나를 제대로 세우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도 불가결한 전제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서 지역의 사멸과 지방대학의 몰락을 가속화하는 현재의 법전원 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21)
제대로 된 연구, 새로운 인식의 도출과 지적 결실을 담은 논문의 작성, 비교법적 연구, 실무에 대한 엄정한 비판, 국제적 수준의 법학 발전 등 이런 유형의 일을 해낼 수 있는 학문후속세대를 키우는 것이 변호사 중 역량 있는 사람을 골라 쓰면 된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면 아직도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전혀 다른 방향을 견주고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 이 글의 독자들이 이것만이라도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 글은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