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1. 민사상의 분쟁해결 방법으로는 소송에서의 판결을 통한 방법과 조정절차나 재판상화해 등 자율적 해결 방법의 두 가지가 가장 대표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분쟁당사자들이 위와 같은 분쟁해결 방법 중 자율적 해결에 의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소송을 통하여 판결에 의한 해결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에 원고나 피고는 청구권이나 피고의 항변 등 방어권의 정당한 법적 근거를 비롯하여 각 당사자가 제기하는 청구의 법적 배경 또는 법적 지위, 소송에서의 승패의 불확실성의 정도, 당사자들의 개별적 성향 등을 고려하여 소를 제기하거나 응소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검토를 기초로 하여 변론절차가 진행되면 법원은 보편적으로 종국판결 등을 통하여 원고의 청구나 피고의 항변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 때 소송을 제기한 원고나 이에 응소한 피고들 모두 법원이 실정법을 준수하면서 사회정의와 형평성을 고려하여 각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공재로서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원(법관)은 당사자들의 위와 같은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이 충분히 납득하고 승복할 수 있는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실현된다.
2. 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소송당사자나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진정으로 승복하려면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평균적 일반인들의 상식에 기초한 정의감이나 윤리의식에 들어맞아야 할 것이다.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판결은 실정법을 대전제로 하고 엄격한 증거조사절차를 통하여 확정된 사실을 소전제로 하여 3단 논법적인 논리조작을 통하여 내려진 결론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경우에 판결을 위하여 실정법에 대한 정밀하면서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는 해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법해석은 오로지 법률전문가들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서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실정법을 엄격히 준수하다가 보면 일반인들의 상식적인 정의감이나 윤리의식과도 어긋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판결에 대하여 일반인들이 쉽게 납득하고 승복하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3. 영미법계에서 배심원단의 평결은 배심원들이 종래부터 가져오던 신념에 맞추어 그러한 것들에 들어맞는 증거를 일반적으로 선호하면서 이에 반하는 정보나 평판을 가능한 한 무시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1) 이러한 배심원단의 평결은 현존하는 법의 엄격하고 형식적인 적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눈높이와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서 승복가능성이 보다 높은 것으로 보인다. 배심원평결의 경우에는 그 판단하는 주체의 구성이나 심리절차의 특성상 소송당사자들의 자발적 승복 확보가 보다 쉽다고 할 수 있다. 배심원재판에서는 배심원단 선정에서부터 제외신청을 통하여 그에게 불리한 편견을 가진 자로 판단되는 후보자를 제외할 수 있으므로 당사자들로 하여금 절차상의 주체라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그리고 심리과정에서 압축된 쟁점을 중심으로 하여 말(구술)을 통하여 집중심리가 이루어지므로 당사자들로 하여금 그 절차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청중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본 연구에서는 위와 같은 점에 유의하면서 미국의 배심원평결을 중심으로 하여 민사재판에서 법원의 종국적인 판단에 대한 일반인과 당사자들의 승복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서의 절차보장원칙의 실질적 실현과정에 관하여 살펴본다.
Ⅱ. 소송에 있어서 결과에 대한 승복과 절차적 권리보장의 상관성
원칙적으로 분쟁당사자들은 권리 또는 법률관계를 둘러싼 분쟁해결의 기준(각자의 기대치) 및 그 수단과 방법(절차)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분쟁해결의 기준이 되는 각자의 기대가치가 상이하여 원고가 소를 제기함으로써 소송절차가 개시된 경우에 소송물의 결정, 주요쟁점의 선택 및 증거방법의 선택과 제출여부 등 당사자 변론의 대상과 내용은 모두 당사자들의 자기책임 하에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예컨대 원고가 소장의 청구취지에서 소송물을 명확히 하고 그 청구원인으로서 권리발생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이에 대하여 피고가 답변서에서 반대사실이나 항변사실을 주장함으로써 공방이 전개되는 가운데 증거방법의 제출을 통하여 증거자료의 신빙성을 검토하다 보면 분쟁당사자 사이에 인식의 공통점이 나타나고 자연적으로 합의점에 접근하여 소송상의 화해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분쟁의 결말을 보게 될 것이다.2) 이러한 소송에서의 자율성은 민사법의 기본원칙인 계약자유 및 자기책임의 원칙이 반영된 것이므로 소송의 결과물인 재판(판결) 결과에 대하여서도 자기책임의 법리에 따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 이와 같은 재판 결과에 대한 승복의무는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어 당사자에 대하여 무기평등과 기회균등원칙이 충분히 실현되고 판단주체인 법원이나 배심원단의 공정성이 법적・제도적으로 명확히 보장되는 조건하에서만 발생하는 것이다. 요컨대 재판 결과에 대한 당사자와 일반인의 진정한 승복을 이끌어 내려면 소송에서의 절차적 정의의 실현은 필수적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법은 결정적으로 사회적 공동체인 국가 구성원들의 승인에 의하여 효력이 발생하며, 자발적 준수 의지에 의하여 그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법질서의 확립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그 구성원들의 욕구를 조화롭게 통합하는 법이 존재하여야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사회통합을 이루려면 모든 면에서 완벽성을 갖춘 실체법의 존재만으로는 부족하고 분쟁당사자는 물론이고 사회구성원 일반으로부터 자발적인 승복을 받을 수 있는 절차적 정의가 실현되는 사법시스템의 존재가 필요하다.3) 당사자들의 절차적 만족감의 충족은 그 결과로서의 판결・평결・결정내용에 대한 승복과 자발적 이행을 가져온다. 분배적 정의 실현을 위하여 민사재판이라는 절차가 실시되는 것이므로 실체법적 정의에 기초한 분배적 정의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자발적 승복이라는 가치의 실현은 절차적 정당성을 통하여 도출된 것이어야 한다. 절차에 참여한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의 공정한 절차진행을 통하여 도출된 결과가 설령 그들에게 불리하다고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승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절차적 정의를 주창하는 자들은 인간의 이기적 동기를 중요시한다. 민사소송절차의 핵심적 기본질서인 대립당사자주의(Adversary System), 당사자처분권주의나 변론주의 등은 모두 각자의 이익 추구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배경으로 한다.4) 자유시장의 가치가 소송이라는 경쟁의 장에서도 실현되어 소송당사자들은 그들이 투입한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물의 분배라는 정의가 실현되기를 원한다. 동시에 공정한 룰(rule)에 기초한 경쟁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분쟁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분쟁당사자들의 이기심에 기초한 경쟁을 유도하는 대립당사자주의시스템에 기초한 절차가 법원의 후견적 기능을 강조하는 직권주의 또는 규문주의(糾問主義) 시스템에 비하여 더욱 큰 절차적 만족감을 가져다주어 공정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5) 당사자들의 절차적 만족감의 추구는 위와 같은 민사소송절차에서의 주체성 추구 욕구에서 더 나아가 분쟁해결 방법 또는 그 결과물의 도출에 있어서도 당사자들의 주체적 결정을 보다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당사자들은 조정과 화해 등 ADR절차에 기초한 분쟁해결 결과를 법원의 재판에 의한 판결에 비하여 더욱 큰 만족감을 가지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6) 이러한 절차적 만족감이 발생하는 사례들에서는 절차의 공정성은 물론이고, 사건의 실체에 대한 보다 많은 진술 기회와 시간적 안배라는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그들의 사건 실체에 대한 배경적 사실 및 느낌이나 상대방에 대한 감정까지도 제한 없이 진술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7) 절차적 정의, 공정성의 가치는 현재 민사 사법절차가 비교적 선진적으로 완비되어 있는 해외의 각 국가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는 ADR절차의 확대정책과 서로 연결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소송사건수의 증가와 함께 법원은 조정절차와 같은 정식 심리절차(trial) 이외의 비전형적인 사법절차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 각 당사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사실에 대하여 충분하게 주장하고 이에 관하여 증거를 제한 없이 제출할 수 있는 기회의 보장, 판단하는 주체의 당사자들 주장에 대한 경청, 당사자가 가지는 절차법상 지위의 인정 등을 절차적 정의의 주요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특히 재판결과에 대한 승복의 핵심은 판단 주체인 법관이나 배심원들에 대하여 발생할 수 있는 신뢰감의 형성여부에 달려 있다. 이러한 신뢰감은 당사자들의 사건에 대하여 얼마나 깊은 관심과 열의를 가지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중립적이고 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는 법관에 의하여 내려진 판단은 승복가능성을 높이는 주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2) 절차의 공정성 및 절차적 정의의 실현은 재판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의 경영이나 행정처분에 대한 승복가능성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기여한다.8) 이러한 절차적 정의는 사회통합에도 기여한다. 사회적 중요이슈에 대한 각 계층별 또는 집단 사이의 이해관계 대립현상을 해소하는 방안의 도출에 있어서도 각 이해관계 주체들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절차보장은 최종 방안에 대한 승복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이와 같은 절차적 정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제도 및 집행기관에 대한 동질감과 일정한 충성심이 존재할 것을 필요로 한다.
(3) 특정한 이데올로기(이념)나 강한 도덕적 염결성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위와 같은 절차적 정의가 실현되더라도 그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 있다. 특히 지배자가 정치적・종교적 권위에 기초한 도덕적 우월성에 젖어있을 때에는 사실상 절차적 정의란 그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게 될 것이다.9) 예컨대 전통적 중국사회에서는 문화적 특성 등으로 인하여 위와 같은 절차적 정의의 가치가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절차적 정의의 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 가치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4) 앞에서 정리한 재판에 대한 신뢰의 4가지 요소들을 요약하면, 참여(participation), 중립성(neutrality), 자존감의 충족(treatment with dignity and respect), 법원의 권위에 대한 신뢰(trust in authorities)로 정리할 수 있다.10) 재판에 대한 신뢰는 판결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가에 못지않게 법관 등 사법기관 종사자들이 당사자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에 따라서도 결정적으로 좌우될 수 있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권위를 갖춘 공적 기관에 의하여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하여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송당사자들은 그들의 사건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되거나 현재 담당하고 있는 법원의 평판에 관하여 상호 정보를 교환하면서 각자의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동질감을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Ⅲ. 배심원재판의 기본적 전제와 평결에 대한 승복의 요소
1) 흔히 말하는 ‘법(law)’은 ‘법전 속에 인쇄되어 있는 법(black letter law)’과 일반인들의 ‘상식적인 수준의 정의감에 입각한 법(commonsense law)’의 두 가지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이른바 ‘인쇄된 법’은 보다 분석적이어서 배심원들로 하여금 사건의 구체적인 실체관계를 중시하므로 확정된 사실에 엄격하고 정밀하게 해석한 ‘법’을 적용하여 결론을 내릴 것을 요구한다. 이에 반하여 ‘상식적인 수준의 법’은 각 사례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타당성 있는 결론에 이를 것을 요구한다. 예컨대 개인상해사건의 경우를 보면, 배심원들은 사건의 원인은 일단 제쳐놓고 먼저 피해자(원고)의 중한 결과에 집중하면서 인과관계를 따지기 보다는 가해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인다.11) ‘법전 속에 존재하는 법’은 입법자들이 입법절차를 통하여 성문화 한 것과 각 케이스별로 법원의 판례 축적을 통하여 보통법화 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법은 로스쿨 학생들이 학교에서의 수업을 통하여 익히고, 법관들이 해석을 통하여 각 사례들에 직접 적용하고 있으며, 법학자들은 그 법리를 분석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한다. ‘상식적인 수준의 법’은 일반인들이 무엇이 정의롭고 공평한 것인지 그리고 법이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법이야말로 배심원들의 직관적인 생각 속에 반영되어 평의 과정에서 피고인과 법에 대하여 관념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12) 배심원들의 평의과정이나 평결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 후자의 법은 전자의 법과 서로 불일치하는 경우가 다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법은 각 개인의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여 특정 집단에서는 정의인 것이 다른 집단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13) 이와 같이 일반인들의 상식에 입각한 정의관념(법)이 배심원들에게 중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므로 배심원들의 평의과정이나 평결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형사사건에 대한 경우를 보면 일반인들은 범죄의 전형적인 모습에 대한 고착화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전형적 범죄에 대한 인식은 배심원들이 심리에 임하면서 가지고 있는 사전 정보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14) 이 경우에도 뒤에서 보는 스토리모델의 일반적 사례에서와 같이 범죄의 동기와 범죄의 유형에 따라서 평결의 결과는 서로 달라지고 있다.
2) 배심원들은 평결을 통하여 ‘완전한 정의(total justice)’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분석하는 견해도 있다.15) 즉 배심원들은 평결의 결과가 사건과 관련성이 있는 현존하는 법을 엄격하게 준수하기 보다는 보다 정의로운 결론에 이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배심원들은 최대한 실존하는 법을 준수하고자 하지만 만약 단호하게 지켜내어야 할 ‘완전한 정의’의 원칙과 법이 충돌한다면 그들은 단연코 ‘완전한 정의’의 원칙을 따르는 경향을 보인다. 구체적인 예로서, ① 당사자를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든 ‘선한 사람’이 승리하도록 한다. ② 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증거라고 하더라도 평결에 도움이 된다면 이러한 증거자료에 기초한 사실까지도 포함하여 관련성이 있는 모든 정보를 종합하여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평결을 하고자 한다. ③ 사건 전개의 전 과정을 뭉뚱그려서 판단한다. 즉 가해자(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의 인정여부와 피해자(원고)에 대한 손해배상액의 확정이 명확하지 않을 때 법률전문가의 법적・논리적 판단과는 달리 전자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입은 상해의 심각성을 고려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가해자에 대한 비난가능성을 고려하여 판단(결정)한다. ④ 배심원들은 그들의 동료들에 대하여서도 절차적 정의를 준수하고자 한다. 배심원들은 자기와 다른 관점에서 전개하는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타인이 본인을 설득하고자 할 때에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는 등 일반적으로 정의에 기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16)
3) 배심원들이 민사상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가해자가 저지른 행위의 위법성이나 인과관계를 따지기 보다는 피해자에 대하여 지급하여야 할 손해배상액의 결정에 더욱 집중하는 현상에 대하여 배심원들의 행동양식을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17) 배심원들이 손해배상액의 결정에 집중하는 이유는 배상액의 결정 자체가 일정한 기준이 없으므로 판단자의 재량이 개입할 여지가 많고,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이나 재산적 손실을 정확하게 산정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손해의 규모에 관한 판단에는 가해자의 위법행위 자체보다도 가변적인 요소가 많아서 배심원들의 일반적 정서나 選好의 정도, 편견 등에 의하여 좌우될 여지가 많은 것이다.18) 민사배심원재판에서 결정되는 과도한 징벌적 손해액 인정 등으로 인하여 피고 기업들이 기업경영에 큰 애로를 겪게 되면서 배심원들의 손해배상액 인정에 대하여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인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민사소송이 남용되고 있어서 일반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원고들에 대하여 불신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19) 그러나 이러한 비판의 원인이 되는 거액 배상사건은 언론 보도 등을 통하여 널리 알려진 극히 일부 사건의 경우에 한하는 것이고, 통계상으로는 배심원단에 의한 손해액 평결 전체 사건 중에서 100만 달러를 초과하는 예는 8%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20) 민사배심원들이 손해배상청구 사건의 원고에게 관대하다는 비판에 대하여도 편파적인 측면이 있다. 즉 배심원들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원고가 가해자라고 내세우는 피고의 행위와 관련 없이 상해를 입은 것이거나 원고에게 기왕증이 있었던 경우, 가해자의 행위 외에 다른 행위가 결과발생에 기여한 경우, 설령 피고의 행위로 인한 피해가 있었다 하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상해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은 피해자들에 대하여 적대감을 드러내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일부 배심원들은 피고의 변호인과 같이 행동하기도 한다.
4) 전문적인 기업 간의 거래나 복잡한 의료시술의 체계 및 전문적인 용어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현재의 민사사건은 과거에 비하여 훨씬 복잡한 쟁점들과 법리적인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소송에서 전문가증인이 전문적 사항에 관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를 섞어가면서 증언을 하였을 때 배심원들은 그 증언의 내용을 이해하기 보다는 전문가증인의 신뢰성을 보다 높이 평가하여 그가 하는 증언에 대한 신뢰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21) 그 외에 전문가증인의 증언에 대한 이해가 어려운 경우에 그 증인이 증언을 하고 받게 되는 보수의 정도, 다른 동종 사건에서 얼마나 많이 증언을 한 경력이 있는지 즉 전문가증언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자인지 여부 등을 증언에 대한 신뢰여부와 결부하고 있다.22)
5) 상식적인 정의 관념에 입각한 법(commonsense law)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법 본래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매일, 매 순간마다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개념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23) 모의배심원재판(mock jury)을 통하여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배심원들은 판사의 지시에 나타난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평의절차에 참여하는 것이 다수 있으며, 이러한 판사의 지시에 나타나는 법률개념에 대한 이해부족 현상도 배심원들의 법 보다는 상식에 기초한 판단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법전 속에 존재하는 실정법이나 판례(先例)의 법리가 아니라 배심원들이 평생을 통하여 축적하여 온 경험,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얻어들은 지식이나 언론매체로부터 취득한 정보 등을 종합하고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정의감에 기초하여 평결에 필요한 각자의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24) 이와 같은 특성으로 인하여 배심원들의 평결이 때로는 객관적 타당성을 결여한 듯이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상식적인 관념 속에 존재하는 법에 대한 접근을 통하여 법 정책, 법절차, 법적인 결정(재판, 판결) 등에 대한 각 국가별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25) 상식적인 정의감을 실정법에 못지않게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는 배심원제도는 법원의 재판결과에 대한 자발적 승복의 유도라는 점에서 도입을 검토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26)
1) 배심원들이 대상 사건에 대하여 직접으로나 간접적으로 개인적 이해관계를 맺고 있다거나, 특정 범죄의 피해자였던 경험이 있었던 경우27) 또는 특정 이슈에 대하여 개인적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그 이슈와 관련된 사건을 심리할 경우 편견을 가지고 있을 위험성이 있다면 배심원 선정절차를 통하여 진행되는 배심원질문서(Juror Questionnaire) 또는 배심원선정 구두심문(Oral Voir Dire)절차에서 배제하여야 한다.28) 특정 사건에 대하여 어떤 사회공동체집단이 분노감을 표출하고 있다거나, 동 집단이 기대하고 있는 바람직한 재판결과가 배심원들의 평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른바 순응형 편견(conformity prejudice)이 평결 결과에 반영될 수 있다면 이를 경계하여야 한다.29) 이와 같은 편견을 가진 배심원이 재판에서 배제되지 않을 경우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으므로 위와 같은 편견에 의한 재판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운 법원으로 관할을 변경하여야 한다.
2) 특수한 형태의 편견과 구별하여야 할 것으로는 일반적 편견(generic prejudice)이 있다. 즉 미성년자인 어린이에 대한 성범죄의 경우와 같이 심리의 대상이 된 범죄의 성격이나 민사소송 당사자의 타입(type)에 따라서는 배심원들로 하여금 그 사건의 성격을 미리 단정하게 함으로써 이미 언론보도 등을 통하여 익히 알고 있는 사건들과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유형의 사건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평결에 임하게 함으로써 동 사건에 제출되는 증거에 대한 조사의 결과조차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스테레오타입의 평결을 내리게 할 수 있다.30) 일부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형적인 중대범죄행위인 살인에 비하여 성범죄에 대하여 위와 간은 일반적 편견이 더욱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고, 실제로 법정에서의 평결에서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특정 국가의 문제라기보다는 글로벌화 된 일반적 현상으로 보인다.31) 일반적 편견은 특수한 형태의 편견과는 달리 이를 밝혀내기가 어려운 점이 있어서 그대로 방치할 경우 배심원재판의 공정성이나 형사피고인 및 민사소송 당사자들의 절차권 보장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많다. 이와 같은 편견들은 특정 지역에 한한다거나 심리절차의 특수성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므로 이를 배제하기 위한 조치로서 사건 관할법원의 변경은 실효성이 없다. 일반적 편견을 가진 자가 배심원후보 또는 배심원으로 선정된 경우에 판사는 그가 불공정한 평결을 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배심원에서 제외할 수 있다.32) 판사나 검사 및 피고인 측 변호인 등은 구두심문(Oral Voir Dire)을 통하여 위와 같은 일반적 편견을 가진 자를 선별하는 절차를 거친다. 판사들은 단문의 설문지를 배심원후보자들에게 보여주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들어보는 데 대체로 답변을 확실히 하는 사람들보다는 답변을 얼버무리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33)
3) 배심원 선정은 평결 결과와 직결될 수 있으므로 분쟁당사자들은 가능하다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평결을 할 가능성이 높은 후보자를 보다 많이 배심원단에 들여보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배심원단 구성절차에서 당사자들에게 주도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판단 주체의 선정에서 수동적 지위에 머무르는 대륙법계 국가의 재판시스템과 구별되는 특성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공정한 배심원단 구성이야말로 배심원재판제도의 존재의의를 높이고 평결 결과에 대한 당사자들의 진정한 승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으므로 공정한 배심원단의 구성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검사나 변호인으로서의 기본적 책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34) 판사는 직권으로 배심원후보자들을 배심원에서 이유를 붙여서 제외하는 결정을 단독으로 할 수도 있고, 변호인의 제외신청을 받아들여 제외하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35) 캘리포니아 소재 법원의 사례를 보면 형사피고인의 변호인이나 민사사건의 소송대리인인 변호사의 신청에 의하지 아니하고 판사가 주도적으로 이유부 제외결정을 하고 있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36) 즉 총 100회 중에서 법관이 직권으로 89회의 이유부 제외결정을 하고, 피고인의 변호인이 10회의 이유부 제외신청을 하여 그 중 6회가 인용되고, 검사가 1회 신청하였으나 기각되었다. 이와 같은 이유부 제외결정의 원인은 배심원후보자에 대한 질문을 통하여 그들의 대상 사건에 대한 편견 보유여부를 가려내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판사가 직권으로 이유부 제외결정을 주도적으로 내리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면 변호인이나 검사에 비하여 더욱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질문을 통하여 배심원후보자의 드러나지 않은 편견을 발견할 기회가 판사에게 보다 많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37) 배심원후보자에 대한 질문시간이 길면 길수록 더욱 철저하게 그리고 베일에 가려진 개인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조사가 가능하게 되어 최대한 공정한 배심원단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배심원재판과는 달리 직업법관이 재판(변론과 심리)절차를 주도하는 직권진행주의에서의 구술변론이란 소송(심리절차)에서 당사자 쌍방이 법관 앞에서 출석하여 서로 마주보면서(對席하여) 구술로 당해소송에 대하여 신청하고 공격방어방법에 대하여 진술하며, 법원이 구술로 직접 심문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즉 구술변론의 의미 속에는 법원이 운영하는 절차의 형태 자체를 의미하는 측면과 그러한 절차에서 당사자의 행위 형태를 의미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38) ‘구술변론’은 당사자에 의한 공격방어방법의 제출 및 이에 대한 상대방의 의견진술 등의 행위가 구술로 행하여지는 것을 의미한다 할 것이고, 이러한 구술변론과 함께 법원에 의한 소송지휘 행위 등이 구술로 행하여지는 것을 ‘구술심리’로 부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민사소송법(제134조 1항)은 당사자는 소송에 대하여 법원에서 변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그 변론은 당사자가 말로 중요한 사실상 또는 법률상 사항에 대하여 진술하거나, 법원이 당사자에게 말로 해당사항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한다(민사소송규칙 제28조 1항)고 규정하여. 구술심리주의 원칙을 분명히 하였다.39) 따라서 법원은 변론에서 당사자에게 중요한 사실상 또는 법률상 쟁점에 관하여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민사소송규칙 제28조 2항). 구술심리주의원칙을 취함으로써 법원은 변론기일에 당사자가 구술로 전개하는 주장 등 공격방어행위에 대하여 ‘듣는 것’을 통하여 선명한 인상을 가지게 되며 동시에 음성분석의 여지가 있게 되고 즉각적인 반문에 의하여 진상파악・모순발견이 쉽고, 의문 나는 점에 대한 석명을 통해 쉽게 해명할 수 있어 쟁점파악이 용이하다. 그 결과 파악한 쟁점에 증거조사를 집중함으로써 신속・적정한 재판을 실현할 수 있다.40) 구술심리주의는 변론의 공개주의 및 직접주의원칙과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한층 높여줄 수 있고, 당사자에 대하여 충분한 절차적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판결에 대한 승복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1) 모든 재판절차는 변론・심리・판단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진행되며, 이러한 절차진행에 필요한 자료는 모두 말로서 제출되어야 한다는 것이 구술심리주의의 본질임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이러한 재판자료가 엄격한 법적 사고의 산물로서 나타나는 논리적이고 난해한 언어들로 구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산적인 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전개과정에 관하여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서 서술된다면 재판의 과정이나 그 결론에 대하여 일반인들이나 그들과 같은 수준의 소송당사자들을 설득하는데 보다 유리할 것이다. Pennington과 Hastie가 정리한 스토리모델은 위와 같은 인식을 반영하여 배심원재판에서 배심원들이 심리과정에서 취합한 정보를 원인과 결과로 정리하여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41) 즉 배심원들은 증거조사 나타난 증거자료들을 종합하여 하나 이상의 설명 형식의 묘사와 이야기들로 구성된 스토리를 구성한다. 이러한 스토리는 ‘확실성(고도의 개연성)의 원칙(certainty principles)'에 따라 구성되는데, 여기에는 법정에 제출된 증거에 의한 포섭성(포섭 정도; coverage), 일관성(coherence), 타당성(사실관계와의 정합성; plausibility), 특수성(uniqueness) 등의 요소를 구비하여야 한다.42) 증거자료와 스토리의 포섭 정도는 법정에 제출된 증거자료 다수가 그 스토리를 뒷받침하고 있으면 설득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반대증거가 제출된다면 근거를 잃게 될 것이다. 스토리는 중간에 단절됨이 없이 전후 일관성을 유지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증거 상호간에도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스토리모델은 심리의 평결에서 단순히 증거만이 판단근거로 되기보다는 배심원들의 사실심리(trial), 범죄, 피고인에 대한 추론들도 판단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배심원들의 스토리 구성 능력은 정보를 찾아내고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어서 평의 과정에서 하나의 결론을 내리는 데에 유용한 역할을 하고 있다.43) Narrative 서술형식을 통하여 각 개별 증인들의 증언은 스토리 전체의 정보를 함축하여 보여주고, 각 쟁점별 서술형식은 스토리 전체의 맥락이 아니라 이것을 이루고 있는 단편적인 각 개별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평의 과정의 첫 번째 단계에서 배심원들은 스토리의 발표와 신뢰성에 관하여 검토한다. 용이하게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스토리 속에 녹아있을 때에는 그 스토리가 평결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 피고인의 유죄 또는 무죄의 평결을 위하여 스토리를 단순화 하면서 평결 결과가 보편성을 가지는지에 관하여 분류한다.44)
(2) 위와 같은 스토리모델은 배심원들의 평결과정에 관한 설명뿐만 아니라 법정변호사들의 변론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변론의 기술 및 전략)에 관하여 원용될 수 있다. 법정변호사들이 배심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전략은 증거들을 엮어서 narrative의 형식으로 스토리화 하는 것이다.45) 법정변호사들은 모두진술이나 최종변론의 기회에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을 전문적 법률용어로 구성되어 있는 문어체로 변론하는 방식 대신에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용하는 구어체 스타일의 스토리 형식으로 사건을 설명하면 배심원들의 경청을 유도하여 그들 주장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46) 배심원들의 인생경험이 평결의 결론을 결정함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하여 법정변호사는 재판의 쟁점과 관련하여 자신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사항을 배심원들의 인생경험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로 구성하여 주장을 전개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설득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스토리모델을 통하여 정립된 이론들은 후속 연구에 의하여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 배심원들의 스토리형성에 있어서 ‘감정이입-복잡화이론(empathy-complexity theory)’은 스토리모델이론의 영향을 받은 연구결과라 할 수 있다.47) 예컨대 강간사건에서의 피고인과 피해자의 속성을 잘 나타내는 스토리의 구성을 통하여 배심원들의 인식구조상의 복잡성을 파고들면서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유리한 평결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스토리모델의 기본이 되는 스토리텔링기법에 따라 변론과 평의가 진행되는 배심원재판은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에서의 구술심리주의에서도의 표본으로 할만하다. 구술을 통하여 모든 정보와 증거자료가 현출되는 민사심리절차는 구술문화의 특성이라 할 대화자(구술로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어떤 쟁점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하는 자)와 청중, 주체와 객체의 일체감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48) 이러한 특성은 종이에 인쇄된 문자로 모든 설명과 주장이 이루어지는 종이소송 방식의 심리절차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민사재판을 중심으로 하여 정착되고 있는 전자법정의 장점을 살려 과거의 구태의연한 종이소송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사건의 쟁점에 대한 서술이나 문서(서증)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증거의 내용 및 그 입증취지나 증거가치(증거력)에 대한 구술방식에 의한 주장들을 현장감 있는 스토리로 구성하여 전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로서는 미국 법정에서의 증거조사방식에서 하나의 시사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법정 외의 디스커버리 절차에서 작성된 진술녹취서49)를 본안소송절차에서 증거로써 현출시키는 방법을 들 수 있다. 즉 일단 현출시킬 대상인 진술녹취서가 정해지면 판사는 배심원에게 진술녹취서의 의미, 법적 효과, 그 증거능력, 유의점 등을 설명해 준다. 소송대리인은 법원 서기나 직원, 흔히는 인상이 좋은 자기 사무실의 직원 등을 진술자 대신 증인석에 앉힌 후 녹취서에 기재된 대로 질문사항을 읽고, 위 증인석에 앉은 자가 녹취서에 기재된 답변 내용을 연극무대에서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처럼 읽어 간다. 배심원은 그 장면을 보면서 진술의 내용을 이해하고 사건의 줄거리를 가늠하는 것이다.50) 요컨대 구술주의를 비롯한 재판의 모든 기본원칙들은 법원(배심원단)의 최종 판단 결과가 소송당사자는 물론이고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하고자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Ⅳ. 배심원재판에 있어서 법의 기능과 배심원들에 대한 판사의 설시
1) 배심원단에게 하는 판사의 설시가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법률가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법률전문용어의 남발과 더불어 그 내용이 지나치게 장황하여 배심원들이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심리와 평결에 임하고 있는 것이 현재 미국에서의 배심원 제도의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민사배심원 심리와 평결에서 다루어지는 법률적 쟁점들은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또는 며칠에 걸쳐서 판사가 설시를 통하여 배심원들에게 설명하여야만 이해가 가능한 내용들이다.51) 그럼에도 판사들은 지시문의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줄 것을 요구하는 배심원들의 요청에 대하여 충분한 답변을 거부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어서 배심원들과 판사 사이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52) 그 결과 배심원들은 때로는 판사들이 설시를 통하여 배심원들에게 설명하는 관련법에 관한 정보들을 무시하고, 배심원들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나름대로의 법적 정의에 대한 신념들에 기초하여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의 평결을 하는 이른바 배심원무효판결(Nullification)53)을 선언하고 있다. 즉 사건과 관련된 현존하고 실효성을 가진 법의 준수 필요성을 강조하는 판사의 설시가 오히려 그 법을 무시하는 평결을 내리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배심원무효판결은 특히 사회적 변혁기에 배심원들이 무엇이 적법한 것이고, 무엇이 도덕적인 것인지를 결정하여야 할 상황에서 흔히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환자의 안락사를 허용할 것인지의 여부나 양심적 병역거부,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범죄 등의 사례들이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2) 판사들의 배심원들에 대한 설시가 난해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판사들이 법률전문가가 아닌 배심원들의 법에 대한 이해력의 수준을 고려하기 보다는 법적인 정확성만을 지나치게 추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54) 그러나 일반인들의 법적인 이해력을 높일 수 있는 문장으로 표현한다는 것과 법적인 정확성을 추구한다는 것이 반드시 서로 배척하는 관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법률 전문가들이 쓰는 법률적인 표현의 관용구를 언어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일반인들에게 친근하면서 이해하기 쉬운 단어들로 교체하는 것이 타당하다. 배심원들의 일반적 학력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평균적인 대학 재학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용어를 선택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원고’나 ‘피고’와 같은 추상적인 표현 대신에 당사자들의 이름을 쓰고, 하나의 단어 속에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예, ‘respect’) 대신에 간명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를 쓴다든지, 부정적인 의미의 표현 보다는 긍정적인 표현을, 수동형의 문장 대신에 능동형의 문장을, 동사로부터 명사화 된 단어(예, ‘the thinking of’) 대신에 동사를 그대로 사용하며(예, ‘think about'), 전치사를 마구 남발하는 것도 피하여야 할 것이다.55) 무엇보다도 복잡하고 긴 장문을 간명한 표현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1) 제조물책임 소송에서 배심원평결에 앞서 판사는 배심원들에 대한 설시를 통하여 첫째 문제의 제품이 그 본래의 성능을 갖추지 못하여 결함이 있는 것인지 여부에 관한 입증이 있었는지에 관하여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56) 이에 관한 판단에 있어서는 동종 제품의 표준과 시방서 등을 참조하여야 하는데 이에 관한 문서들은 배심원들에게 낯선 내용들이어서 당황하게 하는 것들이다. 그 다음에는 그 제품의 결함과 원고가 입은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의 존부에 관하여 판단하여야 하는 데 이에 관한 증거는 위 첫째 문제를 결정하면서 사용한 증거와 서로 다른 것이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원고가 입은 손해와 그 금액을 확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전보적 손해배상액(compensatory damages)의 확정은 결함 있는 제품을 원고가 사용하는 과정에서 입은 경제적, 비경제적 손실을 모두 참작하여 결정한다. 만약 손해발생에 있어서 원고의 기여과실이 있었다면 원고의 과실비율에 따라서 피고가 배상할 손해액을 감액하도록 판사가 설시를 한다. 한편 배심원들은 피고가 고의 또는 악의적으로 결함이 있는 제품을 생산, 판매하였다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을 부과할 수 있다는 설시도 받는다.57)
2) 증거조사절차가 종료되면 배심원재판을 주재하는 판사는 원고와 피고의 각 소송대리인에게 배심원들에 대한 설시에서 언급하여야 할 내용을 제출하도록 하여 이를 기초로 하여 그 내용을 제외하거나 추가하여 설시내용을 결정한다. 원고나 피고는 각자의 입장에서 더 유리한 내용으로 설시가 이루어 질 것을 바랄 것이므로 판사의 선택은 중립적 입장에서 이루어 져야 한다. 만약 편파적인 내용의 설시가 이루어지고 이를 기초로 한 평결이 있을 것으로 밝혀지면 항소심법원에서 파기될 수도 있다.58) 민사배심원재판에 대한 비판의 주된 대상이 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에 관한 평결에 앞서서 판사들은 배심원들에게 설시를 함에 있어서 그 내용의 적절성을 기하기 위하여 많은 고심을 할 필요가 있다. William Brennan 전 미연방대법관은,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의 평결에 앞서 피고의 특성과 재력의 정도 및 피고가 범한 불법행위의 내용 등을 고려하여 징벌적 손해액을 정하라는 내용의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설시를 할 바에야 차라리 그 어떤 지침도 내리지 않는 것이 더 낳다.”고 단언하기도 하였다.59) 일부 법원에서는 전보적 배상액과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고려하고, 피고를 파산에 까지 이르게 하여서는 아니 되며, 배심원들이 편견이나 열정에 빠져서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결정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지침을 정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60)
1) 판사의 설시는 일반적으로 증거조사 등 심리절차가 종결된 뒤 배심원들이 평의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배심원들은 그 사건에 적용되는 실체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증인의 신빙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전문가증언 중의 어떠한 부분이 중요한지 등에 관하여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심리를 진행하게 되고 있다. 만약 증인신문 개시 전 이른 시기에 판사의 설시를 통하여 그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법적 쟁점이나 적용하여야 할 법에 관하여 설명이 있다면 심리를 위한 계획이나 기억하여야 할 사항들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복잡한 사실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61) 설시가 조기에 이루어지면 변호인들도 배심원들에게 사건에 적용될 법적 쟁점에 관하여 보다 효율적인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설시가 조기에 이루어진다면 배심원들이 법정에 제출되는 증거들에 대한 조사절차에 임하는 나름대로의 계획과 체계를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심리절차 개시 직전에 먼저 설시를 하고 증거조사가 끝난 후에 평의를 개시하기 직전에 다시 설시를 한다면 배심원들의 이해력을 더욱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62) 이러한 취지에서 우리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형사사건의 국민참여재판에서 판사의 배심원들에 대한 설시가 다양한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스러운 조치라 할 것이다.63)
2) 판사의 배심원들에 대한 설시의 내용 중에 나오는 ‘고의(intent)’, ‘합리적인 의심’, ‘일반적 주의의무’ 등의 법률적 용어의 의미나 그 개념에 관하여 배심원들은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특히 민사소송에서 증명의 정도나 원고와 피고가 각각 제출한 증거의 증명도가 서로 대등하여 어느 쪽이 우세한지를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어느 당사자에게 유리하게 평결하여야 하는 지에 관하여 제대로 이해하는 배심원은 전체의 25-30% 정도에 지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64) 형사사건에서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입증하여야 한다는 기준은 어떤 뜻입니까?’라는 설문에 대하여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이 진실이라는 확고한 판단을 주는 정도의 증명을 의미한다.”라고 답한 비율이 1차 조사에서 13.6%, 2차 조사에서 20.1%에 지나지 않는다는 우리나라에서의 일반인 상대 설문조사 결과도 위의 미국의 예와 비슷한 결과로 보인다.65)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판사들과 배심원 사이의 상호 소통이 필요하지만 판사들은 배심원들의 질문이나 의문제기에 대하여 상세한 답변 보다는 설시문을 다시 읽어보고 자신의 기억을 잘 되살려보라는 등의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66) 이와 같이 판사의 설시에 나타나는 어려운 법률용어 등에 대한 배심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나 심리와 평결 과정의 진행에 관한 계통도(flow charts)를 사용하는 것도 새로운 시도로서 제시되고 있다.67) 예컨대 판사가 정당방위 사례에서 합리적인 비례성의 원칙에 관하여 설명하는 경우에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사례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어떤 남자가 여자를 먼저 한 대 때리고 이에 대항하여 여자가 균형이 맞지 않을 정도로 남자를 가격하는 사례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고, 둘째 그 남자가 그 여자가 넘어질 때까지 반복해서 때리고 발로 차는 행위를 하고 이에 대하여 여자가 비례적으로 그 남자를 때리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 준다면 법학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의 법률 개념에 대한 이해력을 한층 높여주게 될 것이다.68) 이와 같은 애니메이션이나 삽화 등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하고 언어심리학적 요소가 추가된 설시가 이루어지면 배심원들의 법률 개념에 대한 이해력은 한층 향상될 것이다.
민사소송은 전문 기술적인 분야의 복잡한 증거들을 조사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판사들이 하는 설시도 난해한 전문 법률용어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인 대부분의 배심원들로서는 단기간에 민사배심원이라는 역할에 익숙하여 질 수 없다. 이에 따라 때로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평결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이 반복되다 보면 배심원들의 자질이나 판단능력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민사배심원단에 의한 평결 시스템에 대한 비판론이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게 된다.69) 그러나 배심원 평결에 실수와 오류가 있었다고 평가되는 사례들을 포함하여 일련의 복잡한 민사사건의 배심원재판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그러한 실수가 사건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배심원들이 사건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여 발생하였다고 볼 것이 아니라, 판사나 변호사들이 일반적으로 범하는 실수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70) 배심원들이 비록 전문기술 분야와 관련된 쟁점에 관하여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심사숙고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함으로써 누구든지 납득할만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판사가 흔히 저지르고 있는 이해하기 어려운 설시의 남발 및 변호사 등 사건과 관련된 각 분야 전문가들의 투쟁의 장으로 전락한 민사소송절차의 시스템적 결함에 기인하여 평결에 실수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심원들에 대한 판사의 설시는 현재 구술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설시를 언어심리학적 요소를 반영하여 이해하기 쉬운 용어들을 사용한 문서로 만들어서 교부하면 배심원들의 이해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71) 문서화한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전통적인 형식을 답습하는 것이라면 배심원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고 그 내용 구성에 있어서도 언어심리학적 요소에 기초하여 배심원들의 수준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언어심리학적 접근방법을 원용하여 판사에 의한 배심원들에 대한 설시를 개선하고, 모든 증거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중요한 증거조사가 완료되는 각 단계마다 서로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경우에 배심원들은 보다 용이하게 증거의 의미를 이해하여 사실을 확정하는 용도에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배심원들로 하여금 쌍방 당사자에 의한 구술변론을 통한 공방 과정이나 증인신문절차에서의 증언 청취 도중에 필기하는 것을 허용하거나,72) 판사의 설시를 문서로 작성하여 배심원들에게 제공하고 아울러 증언요지를 정리한 서면을 제공하는 등의 개선조치가 취하여 진다면, 배심원들이 당사자들의 주장이나 증인의 증언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증언을 비롯한 증거조사 결과 얻은 정보를 종합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73) 그 결과 충분하고도 정확한 사실의 확정 후에 관련 법 규정과 그 의미를 이해하여 평결할 수 있을 것이다.
3) 증인신문이 진행되는 중간에 배심원이 직접 증인신문을 할 수 있는가? 이에 관하여 배심원들이 직접 증인신문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증인신문 시간이 늘어나서 절차지연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증인의 증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다는 등의 이유로 배심원들이 직접 증인신문을 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는 법원이 다수에 이르고 있다.74) 그러나 증인신문 도중에 증인이 전후 모순되는 증언을 하든가 증인조서에 기재되어 있는 진술과 법정에서의 증언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에 배심원들이 직접 증인에게 확인하는 신문을 허용함으로써 증언의 신빙성을 판단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전문가증인에 대하여서도 배심원들이 잘 모르고 있는 전문 분야의 업무처리 시스템에 대하여 신문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배심원들이 직접 증인신문에 참여함으로써 증거자료에 대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고 실체관계에 근접한 사실 확정의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75) 사회심리학자들은 배심원들에게 직접 증인신문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데서 더 나아가 모든 증거조사가 끝나고 평의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각 개별 주요 증거조사가 끝나면 바로 배심원들이 그 증거를 평가하는 토론을 진행할 수 있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와 같이 심리 중간에 이루어지는 배심원들 상호간의 토론이 배심원들에게 사건에 대한 성급한 결론에 이르게 하는 부작용 보다는 증인들의 증언에 대한 이해력을 향상시켜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타나고 있다.76)
Ⅴ. 맺는 말
1. 배심원평결의 경우에는 그 판단하는 주체의 구성이나 심리절차의 특성상 소송당사자들의 자발적 승복 확보가 보다 쉽다고 할 수 있다. 직업법관이 판단의 주체인 경우에는 당사자들이 판단주체의 결정에서 단순히 수동적인 지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하여 배심원재판에서는 배심원단 선정에서부터 제외신청을 통하여 그에게 불리한 편견을 가진 자로 판단되는 후보자를 제외할 수 있으므로 절차상의 주체라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심리과정이나 평의과정에서 압축된 쟁점을 중심으로 하여 집중심리와 평의가 말(구술)을 통하여 이루어지면서 당사자들은 그 절차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청중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집중심리와 이에 곧바로 이어지는 평의과정은 참여자들로 하여금 결과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여주고, 동시에 결론에 대하여 납득하고 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 준다.
2. 배심원재판은 특히 구술심리주의의 표본이라 할만하다. 구술(말)을 통하여 모든 정보와 증거자료가 현출되는 배심원심리절차는 구술문화의 특성이라 할 대화자와 청중, 주체와 객체의 일체감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특성은 종이에 인쇄된 문자로 모든 설명과 주장이 이루어지는 종이소송 방식의 심리절차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배심원재판에서의 설명과 주장은 청중의 입장에서 이해하기가 편리한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배심원들이 평의 과정에서 다른 배심원들에 대한 설득 방식이 스토리텔링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아 변호인들의 모두 진술이나 최종변론 역시 스토리텔링 형식을 취하는 것이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배심원들이 재판에 적용되는 법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발생하는 법 일탈적인 평결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법에 대한 지식은 판사의 배심원들에 대한 설시로부터 얻는 것이다. 종래부터 판사의 설시가 법률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법률용어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배심원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평결에 임하고 있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배심원들의 수준에 맞추어 전문용어를 이해하기 쉬운 일상용어들로 바꾸고 동시에 언어심리학적 차원의 배려가 이루어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