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금치산·한정치산제도는 요보호 성년자를 권리의 주체가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만 상정하여 개별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이들의 행위능력을 획일적으로 제한하고 법정후견인에게 포괄적인 대리권을 부여함으로써 본인의 독자적인 법률행위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제도였다. 또한 문언대로 재산에 관한 법률행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제도였으므로 신상에 관한 사항은 보호 범위에서 제외되었고, 본인보호라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채 주로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 가족의 재산을 보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제한능력자 제도로서의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금치산·한정치산제도를 폐지하고, 2013년 7월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성년후견제도는 의사능력에 결함이 있는 성년자의 행위능력을 제한하여 본인을 보호한다는 점에서는 금치산·한정치산제도와 동일한 골격으로 형성되어 있다. 재산영역에서 행위능력의 제한은 피후견인의 재산적 이익을 보호하는 동시에 거래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불가피한 것이고 민법이 제한능력자 제도를 수용하는 본질적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견사무에 관하여 당사자의 의사와 잔존능력을 존중한다는 이념을 기본으로, 피후견인의 복리를 보장함을 목적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제도는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종래의 제도와 특히 차별화된 부분은 피후견인의 신상을 보호범위에 포함하고, “피성년후견인은 자신의 신상에 관하여 그의 상태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단독으로 결정한다.”는 규정을 두어(민법 제947조의2 제1항) 피후견인의 독자적인 법률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상에 관해서는 후견인이나 법원 등 제3자의 개입을 지양하고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데에 새로운 제도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민법이 신상영역에서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에 충분한지 그 규정의 실효성에는 의문이 있다. 가령, 피후견인이 결정해야 하는 신상이 무엇인지조차 법문언상으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상이란 재산관리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재산법상 법률행위를 제외한 나머지 영역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신분행위를 위해서는 오히려 성년후견인의 동의를 요구하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에 피후견인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신상의 범위를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신상에 관해서는 특히 피후견인의 자기결정을 강조하면서도 가족법상 법률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입법이기도 하다. 후견인이 수행하는 신상보호 업무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민법 제947조의2 제2항 이하는 의료행위를 중심으로 가정법원의 허가가 필요한 경우를 언급하거나 성년후견인이 동의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규정할 뿐이다. 피성년후견인의 신분행위에 대해서도 개별 규정을 통해 성년후견인의 동의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동의권 행사가 피성년후견인의 신상을 보호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1) 의료행위에 대한 후견인의 동의권 행사는 피후견인의 생명권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불가피하겠으나, 신분행위 등에 대해 후견인이 동의권을 행사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신상보호 업무라고 할 수 있는지는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신상에 관하여 인정되는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피후견인이 결정해야 하는 신상의 범위를 확정하고 또 어느 정도의 상태에서 피후견인은 단독으로 신상에 관한 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지, 피후견인이 이를 결정할 수 없는 경우에 후견인은 어떠한 방식과 기준으로 신상보호 업무를 수행하여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 밖에 신상영역에서 피후견인의 자기결정을 무제한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어떠한 경우에 그 제한이 정당화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도 필요할 것이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우리 성년후견제도의 도입 당시부터 많은 참조가 되었던 프랑스 성년후견제도의 신상보호 규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행법상 프랑스의 성년후견제도는 종전 제도에서 배제된 피후견인의 신상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프랑스 민법 제459-1조는 우리 민법상 신상보호 원칙에 모티브가 되었던 만큼2) 실제 양국의 법문은 유사한 측면이 많고 따라서 이를 통해 우리 민법의 해석을 보충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프랑스는 2019년 3월 23일 법률(Loi n°2019-222 du 23 mars 2019 de programmation 2018-2022 et de réforme pour la justice)로 신상보호에 관한 민법 규정들을 일부 개정한 바 있다. 여기에는 피후견인 및 피부조인3)의 혼인에 대해 후견법원이나 후견인의 허가를 요건으로 규정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킨 프랑스 민법 제460조를 비롯하여 시민연대계약(PACS), 이혼에 관한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최근 프랑스 법률 개정의 동향은 우리 민법이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하면서 고려하지 못했던 요소들에 대해 새로운 화두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프랑스 성년후견제도의 신상보호 원칙을 통해 신상에 관한 피후견인의 자기결정의 의미와 후견인의 신상보호 업무가 무엇인지 확정하고, 자기결정의 한계로 작용해 왔던 신분행위에 관한 규정들과 최근의 개정 동향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성년후견제도의 후속입법을 촉구하고 개정방향을 제시하도록 한다.
Ⅱ. 신상보호의 원칙과 내용
프랑스는 1968년 1월 3일 법률(Loi n°68-5 du 3 janvier 1968 portant réformé du droit des incapables majeurs)을 통해 이미 현대적인 개념의 성년후견제도를 마련하였다.4) 그러나 이 법률에 따른 성년후견제도에는 신상보호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지 않았고5) 가산을 보존하는데 초점을 두고 설계되어 보호대상자 본인의 이익보다는 그의 상속재산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6) 또한 당시의 제도는 이들을 무능력자로 간주하고 행위능력을 제한했기 때문에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계속되었다. 특히, “능력자는 모든 법률행위에 동의할 수 있고, 무능력자는 어느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는 관념을 바탕으로 법률행위에 동의하는 능력은 이원적으로만 평가되었고7) 피부조인이나 피후견인은 무능력자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당시 제도에서 이들이 단독으로 법률행위를 할 가능성은 인정되기 어려웠다.
종래 성년후견제도의 한계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는 2007년 3월 5일 법률(Loi n°2007-308 du 5 mars 2007 portant réforme de la protection juridique des majeurs)을 통해 성년후견에 관한 민법 규정을 전면 개정하게 된다. 이 개정 법률은 성년후견제도의 외관을 크게 변화시켰지만8) 요보호 성년자의 신상보호에 가장 큰 중점을 두고 관련 규정들을 신설했다는 것이 종전의 제도와 특히 차별화된 부분이다. 이로써 모든 성년자의 신상이 법의 테두리 내에서 보호받게 되었고 신상영역에서는 본인에게 완전한 자기결정의 자유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 2007년 개정 민법의 가장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프랑스 민법은 종전 체제에서 요보호 성년자에 대해 사용했던 무능력자(incapables)라는 용어 대신에 ‘법으로 보호되는 성년자(majeurs protégés par la loi)’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제도의 부정적인 인식을 완화할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신상에 관한 행위에 대해 법으로 보호되는 성년자(이하 ‘피보호성년자’)는 완전한 행위능력을 보유하기 때문에 무능력자라는 표현은 더 이상 적절하지도 않은 것이다.
신상보호에 관한 민법규정은 프랑스 성년후견제도의 지도이념을 근거로 하는 동시에9) 이하에서 기술한 신상보호 원칙은 그 지도이념을 가장 명확하게 구현하고 있는 바, 이 내용을 살펴본다. 첫째, 성년후견제도는 피보호성년자의 자유와 기본권,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을 바탕으로 확립되어야 한다(프랑스 민법(이하 ‘프민’) 제415조 제2항). 따라서 피보호성년자의 헌법상 자유가 보장됨은 분명할 것이나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가 피보호성년자에 대해서만 제한되어야 할 이유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법률 규정은 성년후견이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격하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선언한 것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10) 존엄함에 대한 고려는 “피보호성년자를 더 잘 보호하는 방법은 이들을 덜 보호하는 것이다.” 라는 표현에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다.11) 또한 이 규정은 가족, 성년보호사법수임인(전문후견인), 후견법관, 의사 등 성년후견에 관계하는 모든 행위자에 대해 피보호성년자의 자유와 존엄성을 존중할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으로서의 의미도 가진다.12) 둘째, 성년후견의 목적은 피보호성년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으로 가능한 본인의 자기결정을 우선해야 한다(프민 제415조 제3항). 이는 보호영역에 관계없이 적용되는 일반원칙이지만 특히, 신상영역에서 보호조치 수행자(personne chargée de la mesure de protection)13) 또는 법원에 대해 결정의 준거를 제공한다. 보호조치 수행자나 법원은 피보호성년자의 선택이나 바램이 표명된 경우 이를 우선하여야 하고, 피보호성년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경우에도 가능한 한 그의 의사가 무엇인지 확인하여야 하며 최종적으로 그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피보호성년자의 이익이 결정의 기준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14)
프랑스 민법상 신상에 관한 정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으나 일반적으로는 재산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비재산적 법률행위는 모두 신상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후견과 부조에 관한 신상보호의 효과를 규정하고 있는 프랑스 민법 제457-1조 내지 제462조에 신상행위의 특징과 유형이 나타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상행위의 특징으로는 본인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행위 또는 원조(assistance)15)나 대리가 허용되지 않는 행위를 언급하고 있다(프민 제458조 제1항). 신상행위의 유형으로는 친자관계를 형성하는 행위 또는 부모의 친권 행사에 관련된 행위(프민 제458조 제2항), 신체적 완전성을 침해하는 행위(프민 제459조 제2항),16) 사생활에 관한 행위(프민 제459조 제3항), 주거의 선택(프민 제459-2조), 혼인 및 시민연대계약(프민 제460조 내지 제462조)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열거한 행위 또는 이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는 행위가 신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행위들을 살펴보면, 순수한 의미에서의 비재산적 법률행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혼인이나 입양 등 신분관계의 변동을 일으키는 법률행위는 대부분 재산에 관한 권리·의무의 변동을 수반하고 주거의 선택․변경․유지를 위해서도 재산법상 법률행위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17) 따라서 신상행위는 본인의 의사에 행사의 자유가 부여되어 있는 행위나 상속인이나 유증 수혜자에게 양도할 수 없고 채권자가 대위하여 행사할 수 없는 행위들을 의미하지만,18) 이 가운데 재산적 법률행위와 비재산적 법률행위가 혼합된 행위들도 신상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19)
이 밖에 프랑스 민법은 보호조치 수행자의 신상보호 업무로서 피보호성년자의 행위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경우 이 위험을 종료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언급하고 있다(프민 제459조 제4항). 이 조항을 근거로 가령, 피보호성년자가 화재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전기레인지를 가스레인지로 교체하거나 피보호성년자가 자동차를 운전하려는 경우에는 다른 허가 없이 해당 행위를 제지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에20) 성년후견제도가 보호하는 신상은 법률행위뿐만 아니라 사실행위까지 포함하는 매우 광범위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신상보호에 관한 원칙은 부조 및 후견의 효과에 관한 프랑스 민법 제457-1조 내지 제459-2조에서 규정하고 있으나 장래보호위임계약 및 가족수권21)에 있어서도 이를 적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프민 제479조 및 제494-6조 제1항). 사법보우의 경우 그 보호대상은 피사법보우인의 재산이며 신상은 보호범위에 포함되지 않을 뿐 아니라, 피사법보우인의 행위능력이 제한되지 않기 때문에 신상에 관한 사항은 본인이 당연히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법보우 가운데 특별수임인이 지정된 경우에는 부조와 후견의 신상보호 규정에 따라 신상보호 업무를 수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으므로(프민 제438조) 신상보호에 관한 조항들은 프랑스 성년후견제도에 있어 예외 없는 일반원칙으로 기능하고 있다.22)
신상영역에서 피보호성년자는 자율성을 가지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자율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개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보호조치도 개시되기 어려운 바, 의사능력의 결함을 이유로 이미 법적으로 보호받는 성년자에 대해 그 자율성을 전제하고 보호조치를 설계한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인 방식이다.23) 이에 프랑스 민법은 보호조치 수행자로 하여금 피보호성년자에 대해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일반원칙 가운데 첫 번째로 선언하여24) 실제로는 일반인에 비해 부족한 피보호성년자의 판단능력을 보완토록 하고 있다.25) 따라서 신상문제에 있어 피보호성년자는 완전히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보호조치 수행자가 정보를 제공하는 형식으로 피보호성년자의 결정에 동행하는 것이다. 다만, 프랑스 민법은 정보부족이나 정보제공으로 인한 결과에 따른 책임에 대해서는 명시하고 있지 않다. 보호조치 수행자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경우 또는 보호조치 수행자가 제공한 정보로 인해 본인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피보호성년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거나, 본인에게 불필요한 행위였음에도 이를 이행하여 손해가 발생한 경우를 대비하지 않은 것이다.26) 따라서 피보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을 이유로 본인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지 또는 직무수행의 위법성을 이유로 보호조치 수행자가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지에 관한 후속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
신상에 관한 문제는 피보호성년자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27) 신상의 이익은 재산상 이익처럼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신상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도 당사자보다 본인의 이해관계를 판단하기 위해 더 나은 기준을 가졌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28) 또한 신상행위 가운데에서도 극히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행위는 그로 인한 결과가 무엇이든 원조를 받아 이행하거나 이행을 강요하는 것보다 이행하지 않는 것이 피보호성년자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데 보다 바람직한 방식인 바,29) 프랑스 민법은 극히 일신적인 행위(actes strictement personnels)를 일반적인 신상행위(actes personnels)와 구분하고 전자에 대해서는 제3자의 개입으로 인한 자기결정권의 침해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 성질상 전적으로 개인적인 동의가 필요한 극히 일신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법률에 다른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보호조치 수행자가 이를 원조하거나 대리할 수 없다(프민 제458조 제1항). 극히 일신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본인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에도 피보호성년자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피보호성년자가 원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설사 그 행위가 본인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제3자가 이를 대신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30) 또한 극히 일신적인 행위를 단독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은 입법자가 이 유형의 행위에 대해서는 피보호성년자의 완전한 행위능력을 인정함을 의미하는 것이다.31) 다만, 본인의 직접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피보호성년자는 당연히 의사표시가 가능한 상태에 있어야 하고 의사표시가 불가능한 경우에 이와 같은 법률행위는 이행될 수 없다.32)
극히 일신적인 행위에 대해 프랑스 민법은 “자녀에 대한 출생신고, 인지, 자녀의 신상에 관한 친권 행사, 자녀의 성(姓)의 결정과 변경, 자신의 입양에 대한 동의, 자녀의 입양에 대한 동의” 등 7가지 사항을 예시하고 있다(프민 제458조 제2항). 그러나 규정된 사항만이 극히 일신적인 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이 행위의 유형은 판례를 통해 확정되고 확장될 수 있다.33) 가령, 민법에 열거된 행위는 아니지만 혼인은 극히 일신적인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34) 피보호성년자의 혼인에 대한 동의는 보호조치 수행자에 의해 표시될 수 없으며 혼인을 위해서 후견법원 등의 허가가 필요하지만 허가를 요청하는 심판 역시 본인 외에는 청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35) 따라서 그 행위가 ‘전적으로 본인의 동의를 요하는 행위’이면서 이에 대해 절차적으로도 ‘어떠한 원조나 대리가 허용되지 않는 행위’는 극히 일신적인 행위의 개념 요소이자 이의 효과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신상행위에 대해 피보호성년자는 단독으로 결정해야 하지만 ‘자신의 상태가 허락하는 한’ 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기 때문에(프민 제459조 제1항), 일반적인 신상행위에 대해서는 보호조치 수행자의 개입이 허용된다. 개별행위마다 판단을 위해 요구되는 분별력(discernement)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피보호성년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는 사례별로 평가하는 것이 원칙이고36)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는 후견법원이 판단한다. 법원은 피보호성년자가 해당 신상행위의 의미를 이해하는지의 여부와 의사표시의 가능성을 평가하게 된다.37)
피보호성년자의 분별력을 판단하기 위해 법원은 민법 제431조 제1항에 따라 검사가 선정한 명부상 의사에 의해 작성된 의료증명서를 참조한다.38) 의료증명서를 작성하기 위해 의사는 일반적으로 피보호성년자의 분별력의 유무와 명확하게 동의를 표시할 수 있는 능력을 판단하는데, 분별력은 법이 금지한 행위와 허가한 행위를 구분하는 능력이며 동의는 유효한 계약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39) 다만, 법적으로 피보호성년자의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나 지표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의 정확한 평가 여부는 결국 의사의 자질에 달려 있다는 한계가 있다.40) 그러나 이는 의학적인 판단일 뿐이므로 법관이 의사가 판정한 의사능력의 결과를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41) 법원은 의료증명서의 내용을 참조하되 피보호성년자를 소환하거나 청문하여 실제 피보호성년자의 자율성을 판단하고 원조가 필요한 행위를 결정하게 된다(프랑스 민사소송법 제1219조).42)
피보호성년자가 분별 있는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법원은 신상에 있어 보호조치 수행자가 원조할 수 있는 행위를 정할 수 있다(프민 제459조 제2항). 즉, 후견의 유형에 관계없이 신상보호는 원조의 방식이 원칙이다. 후견이나 가족수권에 있어서는 보호조치가 개시된 이후, 신상보호가 원조로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후견법원이나 친족회가 피보호성년자의 신체적 완전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포함하여 보호조치 수행자가 원조할 수 있는 행위의 대리를 허가할 수 있다(프민 제459조 제2항).43) 피부조인을 위한 부조인의 대리는 금지되기 때문에(프민 제469조 제1항) 신상에 관해서도 부조인의 대리는 허용되지 않는다.44) 대리가 허용된 경우에는 보호조치 수행자가 본인을 대신하여 동의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45) 원조나 대리가 결정된 행위에 대해 피보호성년자와 보호조치 수행자의 의견이 대립하는 경우에는 법관이 당사자의 요청 또는 직권으로 이들 가운데 한명에게 피보호성년자의 신상을 결정할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프민 제459조 제2항). 긴급한 경우를 제외하고 법원 또는 친족회의 허가 없이는 보호조치 수행자가 피보호성년자의 사생활에 중대한 침해를 일으키는 사항을 결정할 수 없다(프민 제459조 제3항). 피보호성년자의 행위가 위험을 초래할 경우에는 이 위험을 종료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으며, 법원 또는 친족회에 통보하여야 한다(프민 제459조 제4항).
Ⅲ. 신상영역에서 자기결정의 한계
신상에 관한 프랑스 민법의 일반규정에는 피보호성년자의 자기결정을 제약하는 법조문이 병존하고 있고 여기에는 성년후견제도가 특별히 보호하는 극히 일신적인 행위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신상영역에서 피보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은 완전하지 않다. 가령, 자녀의 입양에 대한 동의 또는 신상에 관한 친권행사는 극히 일신적인 행위로, 피보호성년자 본인의 동의가 필요하고 절차를 위한 원조나 대리도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피보호성년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면 이와 같은 법률행위는 이행될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입양에 관한 민법 규정은 입양될 자녀의 부모가 의사를 표시하기 불가능한 상태에 있는 경우에는 사실상 자녀를 보호하고 있는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고 친족회가 입양에 동의하는 것을 허용한다(프민 제348-2조 제1항). 또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부 또는 모의 친권행사권은 상실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프민 제373조) 피보호성년자의 친권행사권 자체가 박탈될 가능성이 있고 이는 민법 제458조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46) 성년후견제도에서 피보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을 직접 제한하는 규정도 있다. 프랑스 민법은 부모의 사망시나 부모가 더 이상 자녀를 보호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하여, 부모가 그 자녀를 위해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피부조인, 피후견인과 가족수권이 이루어진 피보호성년자의 경우에는 자녀를 위한 장래보호위임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프민 제477조 제3항). 특히, 미성년자녀를 위한 장래보호위임계약의 체결은 자녀의 신상에 관해 부모가 친권을 행사할 권리를 그 권원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보호성년자의 계약능력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민법 제458조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영역에서 피보호성년자의 법률행위를 제한하거나 제3자에 대해 동의권을 부여하는 것은 ‘아동의 최선의 이익(intérêt supérieur de l'enfant)’을 실현하는데 장애가 되기 때문인데47) 이는 결국 제3자의 자유와 이익에 관련된 문제라서 별도의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논지에서, 자신의 입양에 대한 동의를 제외하고 프랑스 민법이 열거하는 극히 일신적인 행위는 모두 자녀의 신상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므로 극히 일신적인 행위를 배타적인 권리로 규정하는 것은 아동보호의 관점에서는 적합하지 않다.48) 신상보호 원칙에 따르면 자신의 건강문제에 관해서는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피보호성년자라 하여도 자녀의 건강문제는 친권행사에 관계된 사항이어서 단독으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피보호성년자가 동의하지 않는 한 자녀의 복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위들마저 이행될 수 없다는 문제도 발생한다.
따라서 부모의 친권 행사에 관련된 행위를 극히 일신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보호조치 수행자의 개입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민법상의 다른 규정들과도 충돌을 일으키는 바, 이 행위들은 일반적인 신상행위로 분류하고 피보호성년자의 판단능력에 따라 원조를 허용하는 것이 피보호성년자의 신상보호에 더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보호조치 수행자의 원조를 통해 부족한 판단능력을 보충하여 권리를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성년후견제도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피보호성년자가 자기결정권을 향유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민법은 혼인, 시민연대계약49)의 체결과 파기, 이혼 등에 있어서도 피보호성년자의 행위능력을 일정부분 제한하고 있다. 이 신분행위들은 신상행위에 해당하지만 재산에 관한 효과가 동반되므로 본인의 재산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피보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은 때로 본인에게 불이익한 선택을 하기도 하고 특히 신분행위는 합리적인 이해판단보다는 비합리적이고 정서적인 요소를 특징으로 한다. 뿐만 아니라, 재산상 이익을 이유로 신분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성년후견제도의 근본이념을 훼손하는 입법이며,50) 신분행위가 신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상 피보호성년자의 자기결정의 원칙은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신분행위를 제한하는 규정들은 2007년 민법 개정 당시부터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고 2019년 3월 23일 법률(법률 제2019-222호)로 관련내용이 상당부분 개정된 바 있으므로 이하에서 개정 전후 법률규정의 변화 및 관련된 논의들을 소개하고 그 적정성을 검토하도록 한다.
종래 프랑스 민법은 피보호성년자의 혼인에 상당한 제약을 두고 있었다. 피부조인이 혼인하기 위해서는 부조인 또는 후견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피후견인이 혼인하기 위해서는 후견법원 또는 친족회의 허가와 장래 배우자에 대한 청문, 필요한 경우 부모 또는 주변인에 대한 청문 절차를 거친 후에만 가능하도록 규정한 것이다(프민(법률 제2007-308호) 제460조). 이에 따라 피보호성년자의 혼인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혼인에 대한 본인의 동의와51) 허가권자의 허가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허가권자가 혼인을 허가하기 위해서는 피보호성년자 본인이 혼인에 동의하는지의 여부와 피보호성년자의 혼인이 그의 재산상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데, 피보호성년자가 혼인에 동의하는 경우라면 허가권자가 혼인을 허가하지 않는 이유는 재산상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와 같은 경우에 혼인이 불가능한 것은 혼인에 동의하는 의사표시가 자유롭고 분명하지 않은 탓이 아니라 피보호성년자의 혼인이 그의 재산상의 이익을 보존하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인 것이다.52) 일반적인 성년자의 경우 재산상 손해의 가능성은 혼인 장애사유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피보호성년자에 대해서만 이와 같은 이유로 혼인을 제한하는 것은 분명히 혼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입법인 바, 프랑스는 2019년 3월 23일 법률로 피보호성년자의 혼인에 사전승인 및 이해당사자의 청문을 요구하는 민법 조항을 개정하게 된다.53)
2019년 3월 23일 법률은 프랑스 민법 제460조를 “보호조치 수행자는 그가 원조하거나 대리하는 피보호성년자의 혼인에 대해 사전에 통지받아야 한다(프민 제460조).”는 내용으로 변경하였다. 이에 따라 피보호성년자는 보호조치 수행자의 반대가 없는 한 자유롭게 혼인할 수 있고 동 조항을 근거로 보호조치 수행자는 혼인 허가가 아닌 이의신청권을 행사하게 된다(프민 제175조).54) 이의신청에 따라 혼인식은 일정기간 동안 금지되고 이러한 경우에 법원은 보호조치 수행자의 혼인 반대 사유가 정당한지 여부를 판단한다. 다만, 보호조치 수행자의 반대가 있는 경우에 혼인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법원이라는 점에서 피보호성년자의 혼인에 제약이 있음은 동일하다는 비판도 있다.55)
그런데 최근 파기원의 결정을 살펴보면, 피보호성년자의 혼인에 대한 프랑스 민법의 태도는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파기원은 피후견인의 혼인의사가 분명하고, 피후견인과 (사실혼 관계에 있던) 혼인 상대방 사이 공동생활의 안정성과 지속성으로부터 혼인의사에 대한 진의가 추정되는 이상 다른 어떠한 요소도 혼인 장애 사유는 될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56) 이 결정은 개정 전 민법 제460조에 따라 피후견인의 혼인을 허가한 후견법원의 결정에 대해 피후견인의 가족이 혼인허가의 취소를 구한 심판이고 민법 개정으로 더 이상 법원의 허가는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 결정을 통해 혼인의사만 분명하다면 다른 요소들은 피보호성년자의 혼인에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이 확인된 것이므로 앞으로 피보호성년자의 혼인가부를 판단함에 있어 중요한 지표로 작용할 것이다.57)
이제 법원의 역할은 혼인에 동의하는 본인의 의사가 분명한지와 혼인의사에 대한 진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며 본인의 재산상 이익은 더 이상 피보호성년자의 혼인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없다. 다만, 2019년 3월 23일 법률은 민법 제1339조 제3항을 신설하여 혼인으로 인해 피보호성년자의 재산상 이익이 위태로운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법원이 보호조치 수행자로 하여금 피보호성년자를 대신하여 단독으로 부부재산계약을 체결할 권한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프민 제1399조 제3항).58) 재산상 이익을 이유로 혼인을 불허할 수는 없지만 혼인으로 인한 재산관계의 변동은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혼인으로 피보호성년자의 재산상 이익이 위태로운 것으로 판단되면 신상에 관한 피보호성년자의 선택은 존중하되 보호조치 수행자가 부부별산제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재산상 이익은 보존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59)
2007년 개정 민법은 시민연대계약에 관해 피후견인에 대해서만 후견법원 또는 친족회의 허가, 장래 동거인에 대한 청문, 필요한 경우 부모 또는 주변인에 대한 청문 절차를 거칠 것을 조건으로 하여(프민(법률 제2007-308호) 제462조 제1항) 혼인과 같은 제약을 두고 있었다.60) 2019년 3월 23일 법률로 피후견인의 시민연대계약을 제한하는 민법 조항이 개정되었고61) 현행법에 따르면 피후견인은 피부조인과 마찬가지로 제약 없이 시민연대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다만, 피부조인과 피후견인은 계약체결을 위해 부조인이나 후견인의 원조를 받아야 한다(프민 제461조 제1항 및 제462조 제1항).62) 그런데 이는 시민연대계약의 내용을 형성함에 관하여 원조를 받는 것이고 체결 여부를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피보호성년자의 의사에 달려 있는 것이다. 피보호성년자의 의사가 명확하게 확인되는 이상 가족의 반대나 재산상 이익 등 다른 요소들은 시민연대계약 체결의 장애사유가 되지 않는다.63) 보호조치 수행자가 시민연대계약에 관한 사항을 원조하기 위해서는 신상보호의 일반원칙에 따라 법원 또는 친족회에 의해 시민연대계약을 원조할 수 있는 권한이 부조인 또는 후견인에게 부여되어 있어야 한다. 보호조치 수행자가 시민연대계약의 상대방인 경우인 경우에는 피보호성년자와 이익이 상반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프민 제461조 제5항 및 제462조 제7항) 부조감독인 또는 후견감독인이 시민연대계약에 관한 사항을 원조하고(프민 제454조 제5항), 감독인이 없는 경우에는 법원 또는 친족회가 특별부조인 또는 특별후견인64)을 지명하여 원조하게 된다(프민 제455조 제1항).
시민연대계약의 파기에 관해서는 2007년 개정 민법이 그대로 유지된 바, 간략하게 기술하면 피보호성년자는 후견의 유형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시민연대계약의 파기여부를 결정할 수 있으며 그 절차를 위해서만 보호조치 수행자의 원조 또는 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65)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는 편이다.
종래 프랑스 민법은 2004년 5월 26일 법률(법률 제2004-439호)로 당사자 사이 상호 합의(협의이혼), 혼인파탄에 대한 수락(수락이혼), 공동관계의 돌이킬 수 없는 악화(파탄이혼), 과책(유책이혼)이라는 네 가지 이혼원인을 규정하고 있었는데, 현재의 성년후견제도를 정립한 2007년 3월 5일 법률(법률 제2007-308호)은 민법 제249-4조를 개정하여 이 가운데 피보호성년자의 협의이혼과 수락이혼을 금지하였다.66) 협의이혼과 수락이혼은 혼인파탄의 원인행위에 관계없이 배우자 양방의 합치된 이혼의사를 요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파탄이혼 및 유책이혼과 구분되므로 피보호성년자에 대해서는 그의 의사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이혼을 제한한 것이다. 그러나 2019년 3월 23일 법률이 피보호성년자에 대한 수락이혼을 허용한 바, 피보호성년자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사를 바탕으로 이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인정되기 시작하였다.
절차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2007년 개정 민법상 피보호성년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재판상 이혼을 단독으로 진행할 수 없었다.67) 성년후견으로 피사법보우인의 행위능력은 제한되지 않고 모든 법률행위를 단독으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68) 피사법보우인이 이혼하기 위해서는 부조나 후견을 개시하여 보호조치 수행자의 원조 또는 대리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존치했기 때문이다(프민(법률 제2004-439호) 제249-3조). 또한 피부조인은 부조인의 원조로 이혼에 관한 소권을 행사하여야 하며(프민(법률 제2007-308호) 제249조 제2항), 피후견인이 이혼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후견법원 또는 친족회의 허가로 후견인이 대리하고(프민(법률 제2007-308호) 제249조 제1항) 반대의 경우에는 피후견인의 배우자가 후견인에 대해 이혼을 청구하도록 하고 있었다(프민(법률 제75-617호) 제249-1조). 그러나 2019년 3월 23일 법률은 해당 법조문을 개정·폐지하여 절차에 관한 피보호성년자의 제약을 완화하였다. 현행법에 따르면 피사법보우인의 이혼에는 보호조치 수행자의 원조나 대리가 필요하지 않고 부조의 경우에는 부조인의 원조로 피부조인이 직접 소권을 행사하며 후견의 경우에는 후견인이 대리하도록 변경되었다(프민 제249조).69) 그리고 수락이혼을 위한 동의의 의사표시는 후견의 유형에 관계없이 피보호성년자가 단독으로 한다(프민 제249조).
한편, 2007년 3월 5일 법률이 피보호성년자의 협의이혼과 수락이혼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피보호성년자가 이혼에 관해 유효하게 동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70) 그런데 수락이혼의 허용은 피보호성년자가 이혼에 유효하게 동의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한 입법이므로 협의이혼에 대해서만 이를 부정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으므로 협의이혼에 관한 문제를 살펴본다.71) 2016년 11월 18일 법률(법률 제2016-1647호)은 이혼의 원인에 관한 프랑스 민법 제229조를 개정하여 재판 외 협의이혼을 도입하였다.72) 재판 외 협의이혼을 위해서 부부는 변호사가 연서하고 공증인에 의해 등록하는 사서증서 형식으로 이혼에 합의하여야 하는데(프민 제229조 제1항) 부부 중 일방이 피보호성년자인 경우 이와 같은 방식의 이혼합의는 허용되지 않는다(프민 제229-2조).73) 이 밖에 부모의 이혼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자 하는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도 사서증서 형식의 이혼 합의는 제한되지만(프민 제229-2조) 협의이혼 자체가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부부는 재판상 협의이혼을 할 수 있다.74) 따라서 피보호성년자에 대해서만 모든 유형의 협의이혼을 제한한 것이다(프민 제249-4조). 그런데 개인의 잔존능력에 대한 고려 없이 성년후견이 개시되었다는 사정만으로 획일적으로 피보호성년자의 의사능력을 판단하고 협의이혼을 제한하는 것은 개인의 존엄을 훼손하고 이혼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행위이다. 또한 신상에 대해 피보호성년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신상보호의 원칙과 충돌하고 시민연대계약에 대해서는 후견의 유형을 막론하고 그 파기여부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관성을 상실한 입법이기도 하다.
재판 외의 협의이혼을 인정하게 되면 피보호성년자 상황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반영할 수 있고 피보호성년자 역시 절차의 간소화에 따르는 편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이의 허용여부에 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사법의 보호가 없는 재판 외 협의이혼 차치하더라도 피보호성년자가 재판상 협의이혼에 대해서까지 배제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프랑스의 재판상 협의이혼은 이혼의 의사가 실재하는지, 당사자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상태75)에서 이혼의사를 표명한 것인지 법관으로 하여금 판단하도록 하고 있고(프민 제232조 제1항), 우리 민법과는 달리 자녀양육, 재산 분할 등 이혼의 효과에 대한 협의가 자녀 또는 부부 일방의 이익 보호에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법원은 협의이혼을 불허할 수도 있기 때문에(프민 제232조 제2항)76) 협의이혼의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해야 할 이유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Ⅳ. 프랑스법의 시사
우리나라의 경우 신상의 개념에 대한 통설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주·이전, 주거, 면접교섭, 의학적 치료 등”에 관한 사항은 신상행위로 보는 것에 대체로 견해가 일치되어 있다.77) 그런데 가족법상의 법률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신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78) 신상행위에서 신분행위를 분리하여 별도의 후견사무로 보고 피후견인의 치료 및 요양, 거소의 결정, 신체의 완전성이나 사생활 침해를 수반하는 결정 등에 대해서만 민법 제947조 등이 적용되는 신상행위로 보는 견해도 있다.79) 후자의 견해에서 신분행위를 신상의 보호범위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후견인의 후견사무에서 배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므로 후견사무의 범위라는 측면에서는 어떠한 견해를 취하든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신상에 관한 피후견인의 자기결정의 원칙이 어느 범위에까지 적용되는가를 확정하기 위해서 이의 구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프랑스법상 신상은 재산관리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 비재산적 법률행위들이 대부분 해당된다. 이 밖에도 신분행위와 같이 그 행위로 재산에 관한 권리․의무의 변동을 수반하는 행위들, 즉 비재산적 행위와 재산관리가 혼합된 행위나 사실행위를 모두 신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성년후견으로 보호되는 신상의 범위는 매우 넓은 편이다. 또한 신상영역에서 자기결정을 우선하는 대표적인 행위들로 오히려 신분행위들을 예시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년후견제도에서 통상 인정되는 신상보호는 피성년후견인의 신상결정 등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947조의2 제2항 이하가 설명하는 내용들인데, 민법에 규정된 사항만을 신상행위로 본다면 보호의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뿐만 아니라, 신상의 개념을 확정하지 않은 입법자의 의도는 후견인이 비재산적 행위나 비법률행위의 영역으로 후견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80) 신상의 범위는 가능한 넓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상을 재산에 관한 영역과 구분하여 피성년후견인의 단독결정의 원칙을 선언한 것은 신상의 변화가 본인에게 더 크고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이고 법률행위의 성격에 관계없이 가능한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성년후견으로 인해 개인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임을 상기하여야 한다. 따라서 프랑스와 같이 재산적 행위와 비재산적 행위가 혼합된 행위들은 신상의 측면에 비중을 두고 신상보호의 원칙을 우선 적용하는 것이 성년후견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해석일 것이다.
민법 제947조의2 제1항은 “피성년후견인은 자신의 신상에 관하여 그의 상태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단독으로 결정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신상영역에서 성년후견인의 권한은 보충적인 성격을 지니며, 이는 신상보호의 일반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프랑스 민법 제459조 제1항과 그 취지를 같이 한다.81) 따라서 이 법률 규정은 재산적 행위와는 별도의 기준으로 피후견인의 행위능력을 판단함으로써 특히, 신상영역에서 제3자의 개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능력은 유효한 법률행위를 위한 전제조건이므로 기본적으로 의사능력이 있는 상태를 신상에 관해 자기결정이 가능한 상태로 해석할 수 있는데 우리 대법원은 “의사능력은 개별적 법률행위에서 자신의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정상적인 인식력과 예기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 내지는 지능”으로 “의사능력의 유무는 구체적인 법률행위와 관련하여 개별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82) 따라서 법률행위의 성격에 따라 요구되는 의사능력의 정도는 다른 것이고83) 신상행위에 필요한 의사능력이 무엇인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최소한 재산법상 법률행위에서 요구하는 그것과는 다르게 해석되어야 함은 분명해 보인다.
살펴본 대로, 프랑스의 경우 신상행위에 필요한 능력은 일반적인 거래행위에서 요구되는 능력과는 다른 기준으로 판단한다. 가령, 재산적 법률행위에 있어서 피보호성년자는 계약무능력자에 해당하지만 신상영역에서는 충분한 자율성을 가지는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극히 일신적인 행위를 배타적인 행위로 규정한 것은 피보호성년자의 완전한 행위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며 신상영역에서는 의사결정의 합리성보다 개인의 선호 내지 욕구가 중요한 기준이 됨을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거래행위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지, 법률행위로 인한 효과를 분명하게 인지하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면, 신상영역에서는 해당 신상행위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선호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판단하는 것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특히 신분행위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성년자의 경우에도 이로 인한 결과의 유․불리함을 따지거나 법률행위의 효과를 발생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그 행위 자체를 의욕하고자 하는 경우, 예컨대 가족관계 자체를 성립하고자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비합리적이고 정서적인 요소는 혼인 등의 신분행위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신상영역에서 피성년후견인의 자기결정은 중요하지만 성년후견의 보호범위에 신상을 포함한 것은 피후견인이 본인의 신상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을 경우를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우리 민법은 가정법원으로 하여금 성년후견인이 피성년후견인의 신상에 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를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민법 제938조 제3항) 후견인이 결정을 대행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 규정은 한정후견인에 대해서도 준용되기 때문에(민법 제959조의4 제2항) 가정법원이 허가한 범위 내에서는 성년후견인과 한정후견인 모두 피후견인의 신상에 관한 사항을 대리할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의 경우 신상영역에서 보호조치 수행자의 대리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피보호성년자가 분별 있는 결정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원조의 형태로 신상보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기본이며, 성년후견이 개시되고 난 뒤에 원조를 통한 보호가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후견법원이 대리를 허용하여 피보호성년자 자율성 보존의 원칙을 실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에도 후견에 비해 경미한 보호조치인 부조에 있어서는 대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법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즉, 우리 민법의 기본적인 취지는 프랑스 민법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신상에 관한 피후견인의 자기결정의 원칙을 관철하고 실현하기에는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신상에 관한 단독결정의 원칙에 실제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피후견인이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도적으로 구축하여야 한다. 먼저, 보호조치 수행자에 대해 관련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프랑스 법을 참조하여 판단능력이 부족한 피후견인의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자기결정이 가능한 조건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피후견인에 대한 정보제공은 성년자 보호와 자기결정 존중이라는 양립이 어려운 가치 사이의 균형을 도모하고 피보호성년자가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보호조치나 의료처치를 더 잘 수용하게 하며 자기결정권의 실현을 가능하게 한다.84) 다음으로 프랑스의 경우와 같이 신상에 관한 후견방식은 재산관리 행위와는 달리 정하고 후견인의 대리는 경계하여야 한다. 신상영역에서도 대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후견제도가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의사결정을 대리하는 제도로 전락할 위험을 가중시키고 피후견인의 단독결정의 원칙을 무색하게 입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상에 관한 후견인의 업무는 피후견인의 이익을 판단하고 결정을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피후견인의 의사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어야 한다. 신상의 이익은 재산상 이익과는 다르기 때문에 본인 이외의 제3자가 그 이해관계를 판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까닭이다. 따라서 후견인의 첫째 임무는 피후견인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절차를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 피후견인의 이익을 기준으로 후견인이 신상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85)
신상보호는 피후견인에 대해 완전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방식일 수도 있지만 피후견인의 상태에 따라 후견인의 원조 또는 대리를 허용하거나, 법률행위의 성격 및 영향에 따라 이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다원화 될 수밖에 없다. 의사를 표시하기 어려운 피후견인에 대해서는 후견인이 신상 결정을 대행하도록 함으로써 법률행위의 가능성을 열어주어야 하고 피후견인의 결정이 자녀 등 제3자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이의 제한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86) 그런데 우리 민법상 신상영역에서 피성년후견인의 자기결정 제한은 약혼(민법 제802조), 혼인(민법 제808조), 협의상 이혼(민법 제835조), 친생부인(민법 제848조), 인지(민법 제855조), 입양(민법 제873조), 협의상 파양(민법 제902조), 재판상 파양(민법 제906조 제3항) 등 가족법상 법률행위에 대해 성년후견인이 동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와 같은 민법 규정들이 피성년후견인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한인지는 의문이다. 여기에서 피성년후견인의 자기결정을 제한하는 이유는 이 행위들에 부양이나 상속 등 재산법적 법률효과가 수반되기 때문인데87) 본인의 재산상 이익이 신상의 이익보다 우위에 있는 가치라고 단언하기 어렵고 재산행위와 신상행위가 결합된 경우 신상의 측면을 우선해야 함은 지적한 바와 같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인지나 입양 등에 관한 친자관계를 형성하는 행위는 극히 일신적인 행위로서 오히려 보호조치 수행자의 개입을 불허하고 있으며 친생부인, 파양88)에 관해서도 피보호성년자에 대한 별도의 제약은 두고 있지 않다. 프랑스가 피보호성년자 자녀의 입양이나 친권행사에 대해 제3자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은 자녀의 복리 보호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는데 이와 같은 관점에서 피성년후견인이 미성년자에 대한 입양을 원하는 경우 이를 제한 없이 허용하는 것은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인권법상의 원칙에 반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와 달리, 우리 민법은 미성년자의 입양에 대해서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요건으로 하고 가정법원이 자녀의 복리를 이유로 입양을 불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민법 제867조) 이를 통해 아동의 이익은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민법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서도 성년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부부관계 또는 공동생활관계를 형성하거나 해소하는 행위에 있어 피보호성년자의 자기결정의 여지를 확대하고 있는 프랑스 민법의 동향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민법에는 약혼제도가 존재하지 않고 시민연대계약은 우리 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제도이며 혼인이나 이혼의 경우에도 양국의 민법은 그 요건과 절차를 달리하는 만큼 이들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제도의 방향성이라는 관점에서 프랑스 민법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으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분행위 역시 신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신분행위에 대해서도 당연히 자기결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피성년후견인이 신분행위를 결정하고 표현할 능력이 있다면 이익여하에 관계없이 그 의사를 존중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혼인이나 이혼에 관한 성년후견인 또는 법원의 역할은 이의 가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 당사자의 진의를 확인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 의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절차를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프랑스에서 법원이나 보호조치 수행자는 더 이상 혼인 등의 신분행위를 위한 허가권자가 아니다. 이들 행위로 인해 피보호성년자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을 예방하거나 그 행위로 인해 예상되는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것에 법원 등에 역할을 부여하고 있음을 상기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신분행위에 대해 성년후견인의 동의를 요하는 우리 민법 규정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신상에 관한 단독결정의 원칙은 신분행위에 대해서도 당연히 적용해야 하는 것이고 가족관계를 창설하고 해소하는 개인의 중대한 사생활에 제3자가 개입하는 입법방식은 성년후견제도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정후견 등 다른 유형의 후견에 비해 성년후견이 개시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89) 피성년후견인의 신분행위의 제한은 보다 신중하여야 한다. 피성년후견인의 재산상 이익을 보존하는 것 외에 신분행위를 제한할 다른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 성년후견인의 동의를 요하는 민법 규정은 삭제하거나90) 피성년후견인의 신분행위 자체를 제한하지 않으면서 그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행법을 유지한다면 최소한 성년후견인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법조문을 마련하여91) 피성년후견인의 신분행위가 성년후견인의 의사에 사실상 종속되는 구조는 개선해야 할 것이다.
Ⅴ. 결론
현행 민법규정은 신상영역에서 피성년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에 아직 완전하지 않다. 자기결정의 원칙이 관철되어야 하는 신상의 범위가 모호하고 신상에 관해서도 성년후견인의 대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후견방식은 피성년후견인의 의사결정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한다는 성년후견제도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피성년후견인의 결정에 동의권을 행사하는 방식의 신상보호 업무는 피성년후견인을 성년후견인의 의사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프랑스 성년후견제도의 신상보호 규정을 통해 피성년후견인이 신상에 관한 한 자기결정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도록 우리 민법의 개정 방향을 모색하였으며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년후견제도에서 신상의 범위는 가능한 넓게 해석하여야 한다. 비재산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재산적 행위와 비재산적 행위가 혼합된 행위는 신상의 측면을 우선하여 피성년후견인의 자기결정을 존중하여야 한다. 둘째, 신상에 관해 자기결정이 가능한 피성년후견인의 의사능력은 일반적인 거래행위와 구분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해당 법률행위의 의미를 이해하고 개인의 선호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셋째, 신상에 관한 성년후견인의 업무는 피성년후견인의 자기결정이 가능하도록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피성년후견인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하여 그 의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절차를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신상에 관한 후견방식은 재산관리 행위와는 달리 정하고 특히, 성년후견인의 대리는 경계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3자의 이익과 피성년후견인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자기결정의 제한은 불가피할 것이나 본인의 재산상 이익과 신상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재산상 이익을 이유로 한 자기결정의 제한은 가능한 지양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신분행위에 대해 성년후견인의 동의를 요하는 우리 민법 규정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자기결정권은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고 구현하는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권리이다. 인간이라면 이를 당연히 향유하는 것이므로 판단능력이 미약한 노인이나 지적 장애인 등의 경우에도 타인의 간섭 없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짐에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다만, 판단능력이 온전한 경우에도 가령, 인간의 존엄에 반하는 행위나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기결정권에는 일정한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판단능력이 부족한 피성년후견인의 경우에는 타인의 영향력 아래 놓이기 쉽고 본인의 결정을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오히려 본인의 이익에는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에 본인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목적에서 자기결정권의 제한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금치산·한정치산제도 역시 개인의 행위능력을 제한함으로써 본인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점에서는 성년후견제도와 동일한 원리를 바탕으로 설계된 제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제도가 폐지된 것은 금치산·한정치산자의 개별 상태에 대한 고려 없이 후견인이 의사결정을 대행하게 하는 획일적인 보호방식 때문이다. 본인보호라는 입법목적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기본권의 침해를 최소화 하는 입법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새로운 성년후견제도 역시 헌법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피성년후견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지킬 수 있도록 특히 자기결정권 침해를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성년후견제도의 재정비를 시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성년후견이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우리 민법의 재정비를 촉구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