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사실관계
피고인은 주식회사 D익스프레스의 렌터카팀 소속 직원이고, A, B는 주식회사 S신용정보의 채권회수팀 소속 직원이다.
C는 2007.경부터 주식회사 D익스프레스와 차량운용 및 업무수행 계약을 체결한 후 그 계약에 따라 2012. 1.경부터 주식회사 D익스프레스 소유인 아반떼 승용차를 인도받아 임대 영업을 하였다.
주식회사 D익스프레스는 2012. 10. 15.경 C에게 위 계약의 해지 및 위 아반떼 승용차 등의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C는 협의에 의한 차량의 소유권 이전 및 정산을 요구하면서 차량 반환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주식회사 D익스프레스는 주식회사 S신용정보에게 미수채권 추심 업무를 위임하였다.
A는 2015. 7. 26.경 위 아반떼 승용차가 C로부터 피해자에게 임대되었다는 사실 및 피해자가 위 아반떼 승용차를 X아파트 부근에 주차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후 B를 통해 피고인에게 보고하였고, 피고인은 B를 통해 위 아반떼 승용차를 몰래 견인해 오도록 A에게 지시하였다.
그에 따라 A는 2015. 7. 27. 23:45경 위 X아파트 부근에서, 피해자가 위 아반떼 승용차를 주차하고 집으로 들어가자 견인 차량을 이용하여 그 승용차를 몰래 견인해 갔다.
검사는 피고인의 행위를 권리행사방해로 기소하였으나 1심에서 공소사실을 절도로 변경하였다.
Ⅱ. 1심 판결 (광주지방법원 2016고정346)
1심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인에게 절도죄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였다.
“재물을 취거할 당시에 점유 이전에 관한 점유자의 명시적․묵시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점유를 배제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도죄는 성립하는 것이고 그러한 경우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며(대법원 2006. 3. 24. 선고 2005도8081 판결 참조), 절도죄에서 불법영득의사는 재물의 소유권 또는 이에 준하는 본권을 침해하는 의사가 있으면 되고 … 어떠한 물건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취거하는 행위가 결과적으로 소유자의 이익으로 된다는 사정 또는 소유자의 추정적 승낙이 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사유만으로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4. 2. 21. 선고 2013도14139 판결 참조).
이 사건의 경우 판시 각 증거에 의하면, A가 이 사건 차량의 점유자인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 사건 차량을 취거하여 간 사실이 넉넉히 인정되고, … 피고인과 A에게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이에 피고인은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였다.
Ⅲ. 항소심 판결 (광주지방법원 2016노2525)
항소심은 다음과 같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어떠한 물건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취거하는 행위가 결과적으로 소유자의 이익으로 된다는 사정 또는 소유자의 추정적 승낙이 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유만으로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대법원 2014. 2. 21. 선고 2013도14139 판결 참조), 절도죄가 소유권 또는 이에 준하는 본권을 보호하는 것을 그 법익으로 하고 있는 이상 소유자의 명시적・구체적인 위임이나 지시에 따라 어떠한 물건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취거하는 때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다고 볼 수 없다.
…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피고인은 이 사건 차량의 소유자인 D익스프레스의 직원으로서, D익스프레스의 업무의 일환으로 B에게 이 사건 차량에 관하여 ‘긴급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한 점, ② D익스프레스와 S신용정보 사이에 체결된 이 사건 계약에 의하면, 렌탈물건을 임차인 등으로부터 임의로 회수하는 것이 S신용정보가 D익스프레스로부터 위임받은 업무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피고인의 이와 같은 지시가 위 계약의 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지시로 보기도 어려운 점, ③ S신용정보의 직원인 A가 이 사건 차량의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점유를 배제한 것은 D익스프레스와 2015. 7. 23. 체결된 이 사건 계약에서 정한 위임업무를 수행한 것이거나 이 사건 차량에 관하여 ‘긴급조치’를 취하라는 피고인의 지시에 따른 것에 불과한 점, ④ 이 사건 차량은 2015. 9. 21. D익스프레스에 의하여 매각되어 그 매각대금이 D익스프레스에 고스란히 귀속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에게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Ⅳ. 대법원 판결 (2017도13329)
그러나 대법원은 검사의 상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절도죄를 인정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환송하였다.1)
“형법상 절취란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자기 이외의 자의 소유물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점유를 배제하고 자기 또는 제3자의 점유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0도11771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약정에 기한 인도 등의 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재물을 취거할 당시에 점유 이전에 관한 점유자의 명시적・묵시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점유를 배제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도죄는 성립하는 것이고 그러한 경우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0. 2. 25. 선고 2009도5064 판결 등 참조).
또한 어떠한 물건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취거하는 행위가 결과적으로 소유자의 이익으로 된다는 사정 또는 소유자의 추정적 승낙이 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사유만으로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4. 2. 21. 선고 2013도14139 판결 등 참조).
… 피고인이 이 사건 차량의 점유자인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자기 이외의 자의 소유물인 위 차량을 몰래 견인하여 피해자의 점유를 배제하고 자기 또는 D익스프레스의 점유로 옮긴 행위는 절취행위에 해당한다. 또한 피고인이 차량의 소유자인 D익스프레스의 직원으로서 소유자의 이익을 위하여 차량을 회수하고자 이와 같은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인에게 불법영득 의사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대상판결은 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절도죄로 공소장 변경되고 최종적으로 절도 유죄가 확정된 사안이다. 해당 재판에서 피고인은 자신은 D익스프레스의 직원으로서 이 사건 차량에 관하여 어떠한 이익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실제 위 차량을 사용한 적도 없으므로 이 사건 차량에 관한 불법영득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론부터 서술하건대, 대법원이 피고인에게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한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는 근원적으로는 독일과 달리 우리 법제가 권리행사방해죄의 객체를 자기 소유 물건에 한정하고 있어, 타인 소유 물건에 대해서는 동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절도죄는 타인 소유 물건을 대상으로 하며, 절도의 고의 뿐 아니라 불법영득의사까지 요한다. 문제는 소유자의 지시를 받았거나 소유자에게 돌려주려는 의사로 취거하였으므로 행위자에게 불법영득의사가 부정되어 절도죄 성립이 애매해지는 경우이다. 이러한 모호성은 소유자가 법인이고 그 직원이 법인의 지시대로 직접 행위(취거)를 한 때 더욱 부각된다. 해당 사안에 있어 대상판결은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여 절도죄의 영역으로 포섭시켰으나, 처벌을 위한 당위로 구체적 논증은 없다. 이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절도죄의 확장 해석을 통해 권리행사방해죄로 처벌이 어려운 공백을 해결하려는 것으로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
이하에서는 절도죄의 보호법익과 불법영득의사의 의미부터 살펴보고 구체적 사실관계에 비추어 볼 때 과연 피고인에게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있을지를 논한다. 마지막으로 더하여 대상판결은 애초 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되었는데 만약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위 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도 검토해 본다.
대상판결의 사실관계에 나타난 피고인의 행위는 제3자의 지시를 받고 그 지시에 따라 타인이 점유하는 재물을 가지고 간 것이다. 즉 재물을 가지고 가는 행위는 소유권자의 의사에 정확히 합치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위가 절도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절도죄의 보호법익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
절도죄의 보호법익을 점유로 보는 견해(점유설)는 점유 그 자체를 보호해야 재물의 재산적 질서를 유지할 수 있고, 절도죄의 법문이 타인의 재물로만 규정되어 있어 문언상으로는 소유권을 도출하기 어려운 점 등을 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점유설은 우리 형법의 해석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본래 점유설은 일본 형법에서 자기의 재물이라 하더라도 타인이 점유하는 경우에는 타인의 재물로 간주하는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촉발된 논의이다.2) 일본 형법은 자기 소유 재물이라도 타인의 점유에 속하는 경우 타인의 재물로 간주하고(일본형법 제242조), 자기 물건이라도 물권을 부담하거나 임차된 것의 손괴행위를 처벌(동법 제262조)하고 있다. 이러한 입법 하에서는 재산죄에서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가 상대적으로 큰 의미가 없으므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보호법익이 무엇인가 하는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과 같은 소유권의 타인의제 규정이 없고, 자기 소유 물건에 대한 취거행위에 대해 권리행사방해죄(제323조), 점유강취죄(제325조 제1항) 등 별도의 구성요건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입법형식과는 체계가 다르다.
절도죄의 보호법익은 소유권에 있다는 견해(소유권설)3)는 절도죄는 재물에 대한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형식적 소유권을 보호법익으로 한다는 입장이다. 소유권설은 형법 제323조의 권리행사방해죄가 점유를 보호하는 있기 때문에, 이와 대비하여 절도죄는 소유권을 보호법익으로 한다는 전제에 있다. 그리고 소유권 외에 본권(용익물권이나 담보물권 등 소유권에 준하는 권리) 및 점유까지도 보호법익이라는 견해가 있다(본권・점유설).4) 절도죄 연혁에 비추어 보호법익은 기본적으로 소유권에 있지만 형법 체계 상 용익물권이나 담보물권도 소유권에 준하여 보호할 필요성이 있고 소유권 및 본권 침해에는 점유 침해가 반드시 수반된다는 점에서 점유 또한 보호법익이 된다는 것이다.5)
절도죄의 보호법익에 대해 대법원은 “단순히 타인의 점유만을 침해하였다고 하여 그로써 곧 절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나, 재물의 소유권 또는 이에 준하는 본권을 침해하는 의사가 있으면 되고”6)라고 판시하거나, “절도죄의 피해자는 소유자뿐만 아니라 점유자도 포함하는 것이므로, 피고인이 점유자인 공소외 1 주식회사의 승낙 없이 할부매매 덤프트럭을 가져간 이상 절도죄에 해당한다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다”7)고 하고 있다. 비록 대법원이 보호법익에 대한 명시적인 판시를 하지는 아니하나,8) 해석상 소유권 내지 이에 준하는 본권 및 점유를 보호법익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9)
절도죄의 행위객체는 타인의 소유인 동시에 타인의 점유에 속하는 재물이므로10) 보호가치가 있는 점유를 침해당한 사람은 절도범죄의 직접적 피해자라고 하여야 한다.11) 사유재산제도 상 소유권 및 본권 수호를 위해서는 이용관계인 점유 자체도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보호할 필요가 있는 평온한 점유도 부차적으로 보호법익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소유권설에 따르면 절도죄와 횡령죄의 구별이 곤란하며12) 소유자가 아닌 점유자 - 용익물권자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 는 점유가 침해되어 손해를 입었음에도 절도죄의 피해자가 되지 못하여 형법상 보호에서 제외되는 문제점이 있다.13) 따라서 본권․점유설이 타당하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 대상판결에서 피고인의 행위는 소유권자의 의사에 정확히 합치하는 것이며, 점유자의 의사에는 반하는 것이다. 소유권설에 의하면 절도죄가 성립할 수 없고, 점유설에 의하면 (소유자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으므로) 절도죄가 성립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본권・점유설인데, 이에 따르면 점유를 수반하는 본권도 보호법익이므로 피고인의 행위에 절도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것이 일응 타당한 듯 보인다. 그런데 위 견해에서는 점유를 수반하는 본권의 범위에 관해 민사상 제한물권(용익물권과 담보물권등)을 상정하고 있다.14) 여기서 대상 판결의 점유자와 같이 차량의 단순 임차인에 불과한 사람이 본권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대법원은 보호법익으로서 ‘소유권에 준하는 본권’을 계속 판시해 왔으나 그 구체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언급한 바를 찾기 어렵다. 점유를 어떠한 물건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경우 자체라 한다면, 이는 그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는 법률상의 권원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뉜다. 민사상으로는 이러한 점유의 법률상 권원을 ‘본권’이라고 한다.15) 점유권은 점유라는 사실적 관계를 존중하여 인정되는 일종의 물권이지만, 있는 상태를 그대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있어야 할 상태를 지향하는 본권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16) 형사적 보호영역 설정에 있어서도 이러한 사실상 지배상태에 대해 보호가치를 위해 점유를 정당화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는 경우에 한정하여야 한다. 만약 절도죄가 점유 내지 점유권 그 자체를 보호한다고 하면 절도범의 점유처럼 형법적으로 보호가치가 없는 경우까지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한편 대법원의 ‘소유권에 준하는’ 이라는 문언을 고려하면 절도죄 보호법익으로서 본권은 물건에 대한 전면적 지배 가능한 배타적 권리성을 갖추었거나 배타성을 상당 부분 갖춘 경우라 할 것이다. 민법상 제한물권의 경우 소유권의 권능 중 일부에 대해서만 지배권을 가지나 그 지배권은 대외적 효력을 갖고 모든 사람에게 주장할 수 있는 절대성을 갖는다.17) 반면 채권의 경우 특정 사람들 사이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으로 일정한 자에게만 주장할 수 있는 상대적 권리이다.18) 이러한 권리의 민사적 특질은 형사적으로도 적어도 어떠한 권리가 소유권에 보다 가까운 성질의 것인지에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판례가 그간 단순히 ‘본권’이라 하지 않고 굳이 ‘소유권에 준하는 본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음에 의미를 둘 때, 사안과 같은 차량 임대차 관계는 소유권에 준하는 점유 권원이라고까지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설령 대상 판결에서 피고인이 소위 “본권 내지 점유”를 침해하였음을 인정하더라도 곧바로 절도죄의 성립을 긍정할 수는 없다. 이는 객관적 구성요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절도죄는 고의범만을 처벌하므로 주관적 구성요건으로 고의가 필요하다. 통상 고의는 현상에 대한 인식과 결과발생(혹은 위험초래)에 대한 의사 두 가지를 요소로 한다. 사안의 경우 행위자에게 이러한 고의가 있다는 점에는 별다른 의문이 없다. 여기서 추가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은 행위자에게 고의 이외에 불법영득의사가 존재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불법영득의사란 독일 형법의 ‘die Absicht, sich rechtswidrig zuzueignen'에서 유래한 개념이다.19) 독일 형법 제242조 제1항은 절도죄의 성립과 관련하여 불법영득의사가 “위법하게 영득할 의사”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과 달리 우리 형법에 규정은 없기 때문에 절도죄를 포함한 영득죄에서 주관적 구성요건요소로서 고의 외에 추가로 불법영득의사가 필요한지 여부에 대해 견해 대립이 있다.
통설20)과 판례는 절도죄 등에서 주관적 구성요건으로 불법영득의사를 요구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불법영득의사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는 일본에서도 학설과 판례의 주류는 불법영득의사 필요설을 취하고 있다.21) 영미법에서도 대체로 Common law상 일시사용의 경우에는 절도죄의 성립이 부정됨으로써 불법영득의사의 개념을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22) 요컨대 불법영득의사는 불문(不文)의 구성요건이다.23) 이는 범죄의 성립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므로 피고인에게 불리하여 금지되는 유추 내지 확장해석이라 볼 수도 없으며, 오히려 지나치게 확대될 위험이 있는 절도죄의 성립범위를 적절히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24)
불법영득의사의 의미에 대하여, 이는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재물을 자신에게 소유권이 있는 것과 같이 이용 내지 처분할 의사를 뜻한다는 점에 거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25) 이에 의하면 권리자를 배제하는 의사에 의하여 절도죄와 사용절도죄가 구별되고, 이용・처분의사에 의하여 절도죄와 손괴죄가 구별될 수 있다.26) 이 중 권리자를 배제할 의사는 영구적 내지 지속적이어야 한다.27) 그러나 이용・처분의사는 영구적임을 요하지 아니하며 일시적인 것으로 족하다.28)29)
절도죄에 있어서 보호법익이 점유라고 보는 입장은 점유침해의사로 족하고 불법영득의사까지 요하지 않는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30) 반면 절도죄의 주된 보호법익이 소유권에 있고, 절도와 사용절도, 손괴죄를 변별하기 위해서 절도죄 성립에 불법영득의사는 필요하다고 봄이 타당하다.31) 불법영득의사는 영득하려는 의사를 지니지 아니한 절도, 즉 사용절도와 일반적인 절도를 구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32) 입법자가 불법영득의사를 요하지 아니하는 자동차등 불법사용(형법 제331조의2)죄를 별도의 규정으로 둔 것에 미루어 보면 자동차등 이외의 물건에 대하여는 사용절도를 처벌하지 않겠다33)는 것이 입법자의 의사인 것으로 추론된다.34) 그렇다면 사용절도행위에 불법영득의사가 더해진 것이 일반적인 절도범행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것이다. 요컨대 일부 사용절도에 대한 보충적 처벌규정의 존재가 불법영득의사의 형법상 근거를 보다 확고하게 한다.35) 아울러 절도죄와 같이 재산죄로 규정되어 있는 강도죄와 사기죄, 공갈죄, 배임죄 등의 경우에는 구성요건에 재물의 강취 등으로 인한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 규정되어 있는 바, 이러한 행위태양의 의미에 (불법)영득의 의미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36) 그리고 고의의 인식대상이 객관적 구성요건임에 반해 불법영득의사는 불법영득을 의욕한다는 점에서 고의 외 초과주관적 구성요건요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37)
판례 역시 “단순한 점유의 침해만으로서는 절도죄가 구성될 수 없고 소유권 또는 이에 준하는 본권을 침해하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하여 절도죄 성립에 있어 불법영득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38)
불법영득의사의 내용에 관하여 대법원은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처분할 의사를 말하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39) 다수의 견해 역시 불법영득의사는 권리자를 배제한다는 의사와 소유자처럼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를 이용한다는 의사를 요소로 한다고 본다. 다만 불법영득의사는 이를 요하는 재산죄의 범죄유형에 따라 구체적 내용을 조금씩 달리한다. 절도죄에서는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재물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처분할 의사를 뜻하는 것으로, 이 경우 권리자는 절도죄의 보호법익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소유자 및 소유권에 준하는 권리를 가진 사람(본권자)를 의미한다.40)
대상 판결 이전에도 대법원은 타인이 소유자를 위해 차량을 취거한 경우에 있어서 절도죄 성립을 인정한 바 있다.41) 이 판례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2011년 9월경 이 사건 승용차의 소유자인 Y캐피탈로부터 공소외인 명의로 위 승용차를 리스하여 운행하던 중 사채업자로부터 1,300만 원을 빌리면서 위 승용차를 인도하였는데, 위 사채업자는 피고인이 차용금을 변제하지 못하자 위 승용차를 피해자에게 매도하여 피해자가 이를 점유하고 있었다. 이후 피고인은 위 승용차를 회수하기 위해서 피해자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2012. 10. 22.경 약속장소에 가서 미리 가지고 있던 보조열쇠를 이용하여 그 곳에 주차된 승용차를 임의로 가져간 후 약 한 달 뒤인 2012. 11. 23.경 Y캐피탈에 반납하였다.
위 판결의 1심은 절도죄 유죄를 선고하였다. 반면 항소심은 피고인이 소유자에게 반납하기 위한 의도에서 승용차를 가져가서 실제로 소유자에게 반납되었으므로 이것이 소유자의 의사에 반한다 볼 수 없으므로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대법원은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취거하는 행위가 결과적으로 소유자의 이익으로 된다는 사정이 있다거나 소유자의 추정적 승낙이 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법영득의 의사가 인정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위 대법원의 판단에 대하여는 피고인의 행위가 자동차 소유자인 캐피탈회사에 소유자로서 지위를 회복시켜 주려는 의사였지, 소유자를 배제하려는 아니었으므로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한 것은 문제라는 비판42)이 있다. 사견으로도 피고인이 차량을 회수하여 소유 회사에 반납한 경위 등을 고려하면 이는 소유자의 소유권을 배제하여 자신이 임의로 차량을 사용․처분하려는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섣불리 불법영득의사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된다.
불법영득의사는 - 절도죄의 성립에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견해를 제외하면 - 어떻게 보더라도 주관적 구성요건에 해당하며, 객관적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이는 행위자의 내심에 존재하는 표지이다. 불법영득의사는 행위자 내부에 존재한다. 법관은 사람의 내심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외부적 정황으로부터 내심을 추론하는 것이지, 그 외부적 정황 자체가 행위자의 내심의 의사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즉 어떤 정황이 존재한다 하여 곧바로 주관적 구성요건의 존재가 의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제 행위자가 어떤 자연적인 의사를 가지고 행동하였는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하는 것이 주관적 구성요건의 존부를 판단함에 있어 합리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불법영득의사는 고의가 아니고 일종의 목적과 유사한 초과주관적 구성요건이며, 따라서 영득의사는 미필적인 것으로 족하지 아니하고 확정적일 것을 요한다.43)44) 이러한 견지에서 대상 판결의 구체적 사실관계를 살펴 볼 때 비교 판례(2013도14139)보다 더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
비교 판례에서 피고인은 리스 계약 당사자로서 차량 소유권자인 리스 회사와 별개의 경제적, 법적 주체이다. 또한 위 비교 판례 피고인이 차량을 가져간 행위는 리스 회사로부터 구체적 위임이나 지시를 받고 한 행위가 아니고, 독자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유 침해 행위는 소유권 회복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재물에 대한 영득의 의사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대상 판결에서 S신용정보와 차량의 소재 파악 및 임의 회수까지 포함하여 채권 추심을 위임하는 업무계약을 체결한 주체는 차량 소유권자인 D익스프레스이고, 피고인은 위 D익스프레스의 직원이다. 피고인은 회사 업무의 일환으로 S신용정보 직원에게 차량 수거를 지시한 것이지 이를 개인적으로 임의 사용․처분하려는 의사는 아니었다. 차량 회수를 위해 채권추심업체에 추심 업무를 위임한 것은 최종적으로 D익스프레스의 결정이었다. 그렇다면 위 회사 소속 직원으로서 채권 추심 수임인인 S신용정보로 하여금 차량 회수토록 하는 것은 피고인의 임무일 뿐이다. 따라서 견인은 처음부터 소유권자의 의사에 따른 것이었다. 회사의 직원인 피고인은 상급자의 하명을 자신의 소박한 법적 판단에 의거하여 거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대상 판결의 피고인은 회사의 직원으로서, 상급자의 하명을 받아 행위하였던 것이다. 즉 행위자는 자신의 업무를 하는 것일 뿐이지 점유자의 점유를 침탈한다거나 목적물로부터 이득을 추구한다는 의사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훨씬 들어맞는다. 적법한 채권적 청구권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재물을 취거하는 행위가 불법적인 것이라거나, 그러한 불법을 인식하였다고 쉽사리 단정할 수 있는지 매우 의문이 아닐수 없다.45)46)
한편 대법원은 회사의 대표이사가 직무집행행위로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회사 소유 물건을 취거한 경우에 있어서는 자기의 소유물에 대해 행위한 것으로 간주하여 권리행사방해죄 성립을 긍정한다47). 다시 말해 대표이사의 행위에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회사 소유 차량의 회사 점유를 회복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대표이사나 직원의 행위에 본질적 차이가 없음에도 직원의 행위에는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여 절도죄로 처벌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절도죄는 6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어 권리행사방해죄(5년 이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보다 법정형이 무겁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위와 같은 판시는 더욱 의문이다.
추측하건대 대법원은 대표이사의 행위는 기관 자체의 행위로 동일시할 수 있는 반면, 소속 직원의 행위는 기관 자체의 행위와 동일시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위와 같은 판시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다. 만일 그렇다고 본다면 이는 지나치게 민사적인 시각을 형사법에 도입한 것이다. “법인은 그 기관인 자연인을 통해 행위한다”는 것은 민사법적으로는 매우 타당하지만, 여기서의 “행위”는 형법적인 행위와 늘 동치시킬 수 없다. 게다가 설령 민사적인 시각을 끌어온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대표이사의 행위는 법률행위가 아닌 사실행위이다. 민사법에 의하더라도 대표이사의 모든 법률행위가 곧 기관의 행위로 의제되는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사실행위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여기서 직원인 피고인의 경우 대표이사와 달리 일단 피고인이 해당 차량을 영득한 후 회사에게 이전한다는 식의 논리 구성은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어색하다.
아쉽게도 대상 판결에서는 종전 대법원의 절도죄 법리를 재확인하는 외에 본건과 같이 피고인이 소유권자를 위하여 취거를 하여 스스로 소유자로서 지위를 행사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는 경우에 있어서도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설득력 있는 논증은 찾기 힘들다. 대법원은“피고인이 차량의 소유자인 D익스프레스의 직원으로서 소유자의 이익을 위하여 차량을 회수하고자 이와 같은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인에게 불법영득 의사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고 동어반복적 서술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그러한 사정만으로 불법영득 의사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는 부분이다. 형사재판에서 모든 입증책임이 검사에게 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형사재판에서는 구성요건이 위법성을 추정하기는 하나 객관적 구성요건이 주관적 구성요건을 추정하지는 아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일단 점유의 침탈이 있었음을 인정한 뒤, 곧바로 별다른 논증 없이 “(피고인이 주장하는) 사정만으로 불법영득 의사가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하여 마치 점유의 침탈이라는 객관적 구성요건이 존재한다면 주관적 구성요건인 불법영득의사가 추정되고, 그 추정을 복멸시킬 사정을 피고인이 입증해야 하는 것처럼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이 실제 그럴 의도로 위와 같은 설시를 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위와 같은 표현 자체는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요컨대 대법원은 절도죄 성립에 있어 점유의 침해만으로는 부족하고 소유권 내지 준하는 본권을 침해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판시하면서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는 취거행위가 있으면 구체적인 소유권 침해 의사 여부 판단 없이 점유침탈행위 자체로 불법영득 의사를 추단하는 듯한 인상마저 있다.
종전 대법원은 “불법영득의사를 실현하는 행위로서의 횡령행위가 있다는 점은 검사가 입증하여야 하는 것으로서, 그 입증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생기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 입증하여야 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48)고 하여 불법영득의사를 섣불리 인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대상판결에서 별다른 논증 없이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한 대법원의 태도는 납득하기 쉽지 않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피고인의 취거 행위는 그 자체로 소유자인 회사의 행위로 귀결되므로 취거 이후 차량에 대한 사실상 지배 역시 소유자에게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피고인에게 피해자의 점유(그것이 민법적으로 임대차 등 채권이든, 용익물권 내지 담보물권 등 물권이든)를 배제할 의사까지는 인정될 수 있으나 나아가 한 순간이라도 자신이 차량의 소유자로서 지위를 행사하고 향유하려는 적극적 의사는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법원 및 종래 학계의 불법영득
의사 요건에 충족되지 않으므로 불법영득의사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만 영득의사를 자기 영득의사와 제3자 영득의사로 나누어, 이러한 경우 제3자 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있는지 논의가 있다. 독일 형법에서는 종래 절도죄 등에서 자기 영득 의사만을 요구하였으나, 1998년 제6차 형법개정으로 제3자 영득 의사도 인정하였다.49)50) 그 결과 절도범이 재물을 제3자에게 교부하기 위해 훔치는 경우에 있어 자신을 재물의 교부자로 표시하여 소유자로서 지위를 행사하는 사례(‘소위 월권적 처분행위’)와 같은 행위를 익명으로 하는 사례(‘소위 단순 기부행위’)51)의 중간에 속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52) 이를 국내에서도 받아들여 명문으로 불법영득의사를 규정하고 있지 않은 형법 해석상 제3자 영득의사를 배제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가 있다.53)
그러나 불법영득의사 개념 자체가 독일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여 독일의 법제 개정이 곧바로 국내 형법 해석에 있어서 반영될 당위는 없다. 특히 우리 형법상 강도죄(제333조), 사기죄(제347조 제2항), 공갈죄(제350조 제2항), 배임죄(제355조 제2항)에서는 모두 행위자가 아닌 제3자를 위하여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경우에도 동일한 처벌이 이루어진다고 명시하는 반면 유독 절도죄에 있어서는 “제3자”라는 문구가 없어서 입법자의 의사가 무엇인지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만약 절도죄의 절취행위로 인한 이득의 귀속자에 제3자를 포함시킨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제3자의 범위에 재물의 소유자가 포함되는지도 문제이다. 왜냐하면 형법 제329조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경우에 성립한다고 되어 있는데, 제3자를 위한 절취행위도 절도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나아가 그 제3자에 소유자가 포함된다고 한다면 위 “타인”이라는 문구와 합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은 절도죄의 보호법익이 소유권이라고 보는 전제하에 절도죄와 별도로 제289조에서 담보물환취죄(Pfandkehr)를 규정하고 있다.
“제289조 : 자기소유 또는 타인소유의 동산에 대해 용익권, 질권 기타 사용권 이나 유치권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에 소유자를 위하여 그 동산을 용익권자, 질권자, 사용권자 또는 유치권자로부터 위법한 의도로 취거한 자는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이는 ⓛ 소유자가 자신의 동산에 설정된 타인의 용익물권이나 담보물권이 있는 경우에 그 권리자의 의사에 반하여 소유자를 위해 취거하는 경우 또는 ② 제3자가 타인 소유 동산에 설정된 타인의 용익물권이자 담보물권이 있는 경우 그 권리자의 의사에 반하여 소유자를 위해 취거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구성요건이다.54) 따라서 독일의 경우 제3자가 소유자에게 교부할 의사로 점유자로부터 재물을 취거 한 경우 담보물환취죄가 성립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 같은 구성요건이 없다. (이하 동일)
권리행사방해죄의 비난 중점은 타인의 권리를 방해한다는데 있다.55) 제3자가 소유자를 위해 취거를 하였다면 보호법익의 측면에서 소유자가 자신의 소유물을 대상으로 한 경우와 본질적 차이를 찾기 힘들다. 따라서 앞서 살펴본 처벌의 공백 우려는 절도죄의 불법영득의사를 확대하여 인정하기 보다, 권리행사방해죄를 개정하여 명문으로 타인 소유 재물에 대해서도 성립토록 하여 해결함이 타당하다.
만약 변경 전 공소사실인 권리행사방해죄가 유지되었을 경우 동죄가 성립하는지를 추가적으로 검토해 본다. 이 죄는 소유권이 아닌 물권과 채권을 보호법익으로 하여 보호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56) 자기 소유 물건에 대한 편취나 갈취행위가 형사처벌되지 않는 것과 달리, 이에 대한 취거행위는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될 수 있다.57) 이러한 권리행사방해죄의 성립요건에 대하여는 일부 반대설도 있으나58), 권리행사방해죄는 영득죄가 아니므로 불법영득의사를 요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통상적이다. 또한 이 죄는 횡령죄나 배임죄의 주체와 유사한 구조로 구성적 신분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일종의 진정신분범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59)
형법 제323조는 주체에 있어 타인이 소유권자를 위하여 행위를 한 경우는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진정)신분범설에 따를 때 비신분자는 신분자와 공동하여서는 진정신분범의 공동정범이 될 수 있으나, 단독으로 진정신분범의 정범이 될 수 없다. 대상판결에서 피고인은 차량의 소유자가 아니고, 단독으로 기소되었으므로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만일 판단대상을 차량 소유자까지 확장시켜 본다면 어떠한가? 차량 소유자는 권리행사방해죄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그가 (차량의 소유자 아닌) 타인으로 하여금 자기 소유의 차량을 가지고 오도록 지시한다면 직접 실행자 아닌 차량 소유자에게도 공모공동정범으로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든다. 즉 차량 소유자를 공모공동정범, 직접 실행자를 이 (공모공동)정범에 가담한 비신분자로 보아 제33조를 적용함으로써 권리행사방해죄의 죄책을 물을 소지가 전혀 없지는 않다고 할 것이다.
과연 이 결론은 타당한가? 본 사안에서 차량의 소유자가 기소되지 않은 이유는 분명치 아니하나, 추측건대 차량 소유자가 자연인이 아닌 법인(주식회사)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법인의 범죄능력을 부정하는 판례의 입장에서 볼 때 법인을 공모공동정범으로 규율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매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고 본다면 차량의 소유자가 법인인 경우에는 직접 실행행위자에게 (공모공동정범으로의) 권리행사방해죄를 물을 수 없고, 자연인인 경우에는 물을 수 있다는 이상한 결론이 된다. 게다가 공모공동정범 이론 자체가 학계 다수의 강력한 비판을 받는 이론인 바, 신분 없는 자를 신분 있는 자와 극단적으로 연결시켜 처벌하는 데에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본 사안에서 피고인에게 권리행사방해죄의 성립도 인정되기는 어렵다고 해야 한다.
Ⅳ. 맺음말
대상 판결은 회사의 직원이 소속 회사 소유 물건에 대해 업무의 일환으로 점유를 회복한 경우임에도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여 절도죄 성립을 긍정하였다. 그러나 직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회사 지시 대로 행동한 것인데도 ‘도둑’이란 오명을 쓰게 되었다는 억울함을 해소키 어려울 수 있다.
절도죄는 영득죄로 죄의 성립에 있어 점유의 침해 행위 뿐 아니라 주관적 구성요건요소로 고의와 더 나아가 불법영득의사까지 요한다. 제3자가 소유자의 지시를 받아 소유자를 위하여 행위를 한 경우에 있어서는 현재 대법원과 통설의 불법영득의사의 요소 전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이 경우 독일의 제3자 영득의사 개념을 국내로 수용하자는 견해도 있다. 대법원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정밀한 논증 없이 결론적으로 불법영득의사가 있다는 취지여서 아쉬움이 남는다.
현행 법제로는 피고인과 같은 경우 절도죄와 권리행사방해죄 모두 처벌이 어렵다고 본다. 다만 이 경우 처벌의 공백 발생 우려에 대해서는, 궁극적으로 독일의 담보물환취죄와 같이 권리행사방해죄를 타인의 소유물도 객체로 추가하는 것으로 입법적 개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제3자가 소유자를 위해 취거 등 행위를 한 경우에도 소유자가 동일한 행위를 하는 경우와 본질적 차이가 없고, 소유자에게는 절도죄보다 가벼운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는 것과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