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국가입법과 자치입법1)의 갈등이란 표현이 어색할 수 있으나, 조례(條例)로 대변되는 자치입법은 지방분권의 확대와 지방자치의 실질적 보장 여부를 판단한 현실적 바로미터(barometer)라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논의는 아니라 할 수 있다.2) 현실적으로 자치입법권이 결여된 지방자치단체는 상상하기 어렵다 할 것이고3) 헌법이 보장하는 지방자치의 구체적 모습은 자신의 권한에 속한 사무를 독자적으로(autonomously) 처리하기 위한 규율제정을 통해 현실화된다.
자치입법의 대상은 지방의 권한과 역할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점과 지방분권과 지역의 경쟁력은 시대적 조류라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자치입법의 규율대상과 범위는 국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거나 선점하고 있지 않은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자주적 규범제정과 다양성을 본질적 요소로 하는 지방분권의 확대는 국법질서의 통일성 보장이라는 걸림돌을 만나게 된다.
지방분권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최근 헌법 개정을 위한 논의과정에서 우리나 프랑스와 같은 주권의 불가분성과 단일성이 강조되는 단일국가 형태에서 중앙권력과 지방권력간 수직적 권력분립의 행정적·제도적 혹은 조직적 실현으로 이해하는 생각이 나오고 있다.4) 지방분권은 국가로부터 독자성을 인정받는, 다시 말해, 권한의 배분을 통해 자신의 자율적 권한행사의 규범적 효력을 부여하고자 하는 지방권력 주체로서 지방자치단체를 전제로 한다.5) 따라서 이들 지방자치단체의 공권력 행사는 법적 권한의 행사라는 점에서 오는 법치국가의 한계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고 해야 한다. 이를 자치입법의 한계 혹은 확대와 같은 전통적 표현 보다는 자치입법과 국가입법의 갈등현상으로 이해하여 접근하는 선행연구의 제목도 있다.6)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와 국가의 법령의 충돌에 대해 지방자치의 실질적 확대와 보장의 관점에서 다양한 설명이 있어왔지만 현실에서는 법령체계의 통일성과 체계성의 준수라는 한계를 벗어나기는 어렵다.7) 지방분권을 수직적 권력분립으로 이해하는 시각에서는 이러한 법률우위와 법률유보를 내용으로 하는 기존의 규범통제 플랫폼에서 제시하는 자치입법권의 한계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어떻든 간에 우리 현실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제정권이 대법원의 기관소송 내지는 감독소송을 통해 일방적으로 제약되어 왔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8)
자치입법과 국가입법의 갈등은 무엇보다도 지방자치단체의 기능과 역할 및 개입하는 영역의 확대로부터 비롯한다. 이제는 범(凡)국가적인 시대적 흐름이라 할 수 있는 분권화된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역량의 강화는 예전처럼 중앙정부의 행정상 후견을 받으면서 지역 살림을 알뜰하게 사는 자치행정이 아니라 헌법이 추구하는 자치분권의 구체적 역할을 자치입법의 확대를 통해 구체화하겠다는 시대적 요청으로 받아들여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의 제목처럼 현행 헌법과 법률 하에서 자치입법과 국가입법의 갈등상황은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물론 프랑스 헌법 제72조처럼 지방자치단체의 명령제정권(un pouvoir réglementaire)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무리 조례제정권한에 담겨져 있는 지방민주주의와 국가가 제정하는 행정입법과의 차별성을 주장한들 자치입법과 국가입법의 관계설정에 대한 결론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그러나 자치입법에 대한 본질과 가치에 대한 재평가는 지속가능한 과제이며 특히 규범적 관점에서 지방분권에 대한 시각을 통해 새로이 정립할 필요는 자치입법과 국가입법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재차 분명해질 것이다(Ⅱ. 자치입법과 국가입법의 관계). 미국의 ‘홈 룰(Home Rule)’ 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이니셔티브가 국가에 있었다고 보는 우리의 전통적 견해의 변화를 위해서는 국가입법 선점 영역에 대한 후발적인 자치입법의 정당성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충돌상황의 해결방법을 위해서는 헌법과 자치입법의 역량강화를 위한 법률의 개정뿐만 아니라 정책을 수행하는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의 입법정책을 위한 인식의 차이와 상호 존중이 있어야 할 것이다(Ⅲ. 자치입법과 국가입법의 갈등).
Ⅱ. 자치입법과 국가입법의 관계
우리 헌법 제117조와 지방자치법 제22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자신의 사무에 대해 스스로의 책임 하에서 일정한 규율을 제정할 수 있다, 이를 지방자치의 핵심요소인 지방자치단체의 자기결정권의 규범적 표현으로 기술하기도 한다.9) 지방분권의 강화를 위해서는 자치입법권의 확대가 필수불가결하다는 주장에 앞서 국가입법과 갈등적 상황에 처한 자치입법에 대한 정확한 의의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방선거를 통한 지방권력의 등장에 이어 2000년대에 오면서부터 국가조직의 분권화를 위한 헌법 개정이 시대적 조류이자 요청이 되었다. 이제는 전통적인 자치입법에 대한 의미에서 벗어나 헌법적 개혁을 경험한 외국의 상황과 국가형태에 따른 자치입법의 수준과 내용을 정밀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자치입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하는 자치법규로 설명되어 왔고 지방선거가 실시되기 전까지 지방자치단체를 지방행정기관으로 이해하는 것이 지배적 견해였다.
지방자치의 본질에 관한 전통적 견해는 전래권설에 기초하여 자치입법을 행정입법의 범주에 넣어 이해하고자 하였다.10) 따라서 기존의 다수 입장은 견해는 자치입법권은 입법권 보다는 행정권에 비중을 두게 되었고, 법치행정의 범위 안에서 검토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아래 표와 같이 자치입법을 특수한 행정입법의 범주에 포섭하여 논의하였다.11)
이러한 전통적 견해가 변화를 가지게 된 것은 선거를 통한 지방의회의 구성과 선출된 단체장을 통해 지방정치와 지방권력의 성장이 본격화된 1990년대 이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치입법에 있어서 이른바 ‘자주법’으로서의 조례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였다. 따라서 자치입법은 지방자치단체가 헌법상 보장받는 자치권에 근거한 독자적 성격의 입법이라는 점이 행정입법인 명령의 성질 보다 더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자치입법인 조례의 법적 효력에 대해지역주민의 직선에 의한 지방의회의 의결과 단체장의 공포를 통해 효력을 발생하며 지역적 한계를 가지지만 법규(法規)로서의 효력을 가진다고 이해하였다. 그리고 조례는 법률우위의 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법률유보와 관련해서는 국가입법과 달리 자치입법의 경우 반드시 구체적이지 않고 포괄적, 다시 말해, 추상적이어도 가능하다고 행정법 문헌은 설명하고 있다.12)
지방자치단체를 행정기관으로 이해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의결기관에 해당하는 지방의회 역시 행정기관으로 이해하는 경우에는 자치입법권은 일종의 지방행정기관의 행정입법 행위로 이해된다. 하지만 현행 헌법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자치입법은 헌법 제117조 제2항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헌법 제40조에 규정된 입법권의 국회독점의 예외현상을 특별히 지방자치의 장을 통해 규정한 것이며, 대통령령(제75조)이나 총리령·부령(제95조)처럼 국가의 정부에 관한 장이 아니라 별도의 지방자치의 장에서 규정하고 있는 점에서 국가입법의 한 부분인 위임입법과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독자적 성격이 강한 독특한(sui generis) 성질을 가지는 것이라 할 것이다.
자치입법은 현실적으로 “지역의 문제는 해당 지역의 주민이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규범의 정립자와 수범자간 간격을 줄임으로써 사회적 힘을 활성화 할 수 있고 자율적이고 탄력적인 규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국가입법의 부담을 줄여주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지방자치를 구체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13) 따라서 일부 문헌의 표현처럼 국가입법과 자치입법의 역할 배분은 지방분권의 핵심지표라 할 수 있다. 지역경제의 활성화, 지방문화의 정체성과 고유성에 대한 회복, 지역공동체의 활성화 등 다양한 지역(지방)의 이익을 위한 지역고유의 자체적인 제도형성과 집행을 위한 자치입법의 정비와 조정은 필연적 수단이 되고 있다.14) 여기에서 국가입법은 가장 걸림돌이자 후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법 규정과 법원의 법률우위와 법률유보 원칙에 의한 필터링을 통해 대부분 현실화되고 있지 않은 상황은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자치입법의 한계라 할 것이다.
그간의 자치입법에 대한 국가입법의 통제는 현행 지방자치법이나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을 틀에서 본다면 이론상 행정상 후견에 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재의요구지시와 단체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직접 대법원에 제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좀 과장한다면 일종의 규범만능주의적인 간편한 자치입법 통제방식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지방정치의 활성화와 지방의회와 단체장을 별도로 선출하는 지방선거가 누적되면서 지방권력체도 점차 중앙정치로부터 자주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고 자치입법의 성질도 변화하고 있다. 일부 문헌은 이를 일종의 포퓰리즘이 근저에 깔린 입법갈등 현상으로 분석하기도 하는데, 그 예로서 서울특별시의 ‘친환경 무상급식조례’15), ‘학생인권조례’16)와 그에 대응하는 ‘교권조례’17)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입법주체간의 상호 갈등적 현상은 자치입법을 주도하는 교육감, 단체장, 지방의회의 정치적 성향과 이익단체와 사회단체의 목적이 다원화 되고 특정한 정책에 대하여 이들 세력 간의 이해관계는 물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재정적 부담을 포함한 다양한 갈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18)
주권의 불가분성에 따라 국가법령 체계의 통일성과 단일성을 전제로 하는 단일국가 형태에서 자치입법과 국가입법의 갈등상황은 후자의 일방적 강요와 행정상 후견과 사법적 통제로 귀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프랑스 헌법 개정(2003)이나 일본의 지방분권 개혁(1999)에서 보듯이 세기가 바뀌면서 이에 대한 변화의 움직임이 하나의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행연구가 어느 정도 축적된 연방국가 형태에서의 자치입법의 의의와 특징을 미국과 독일의 예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연방국가의 형태를 취하는 국가의 경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구분 보다는 대외적 주권과 이른바 레갈리앙(Régalien)적 권한19)을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연방정부와 연방에 참여하는 구성 정부(member state)의 구분이 헌법의 관심이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치입법권에 대한 논의는 연방을 구성하는 지방정부 내부에서의 자치공동체(지방정부(local government)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의 규율제정권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단일국가 형태를 취한 프랑스, 일본, 한국에서의 논의와 완전히 이질적은 아니라고 본다.
법이론상 연방국가는 이중적 헌법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연방헌법과 연방을 구성(참여)하는 개별 단위(미국의 경우 주(州)로 번역하는 State, 독일의 경우 란트(Land)에 해당하며, 이하 ‘주 정부’라 한다)차원의 헌법에서 그들 주 정부에 속한 지방자치단체(municipal corporation)의 자치입법권에 대한 규율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연방국가 모델에서 자치입법권의 논의는 해당 주 정부에서의 지방정부와의 입법권의 배분에 관한 문제가 될 것이고, 이들 주 정부 내에서 자치입법권을 범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일반적 기준이 있는지 아니면 각 주 정부 마다 차이가 있는지는 정확한 비교법적 연구가 누적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다만 연방국가인 미국의 경우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은 지방자치권에 대한 논의로 소개되고 있는데, 이른바 ‘딜런 룰(Dillon Rule)’20)과 ‘홈 룰(Home Rule)’21)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딜런 룰’과 ‘홈 룰(앞의 각주에서 그 촉매가 된 ’쿨리 독트린‘만 소개함)’에 대한 논의는 다소 소개하는 분마다 내용이 동일하지도 않고22), 행정학자들의 논의 또한 자치입법권에 대한 국내의 논의와는 이질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어서 국내 법학자들에겐 전통적으로 독일 게마인데의 자치입법권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지난 2018년에 헌법 개정 움직임에 적극적이었던 입장에서는 연방국가에 갈수록 지방분권이나 자치입법의 수준이 높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앞부분은 논리적 연관성이 있으나 자치입법의 확대와 국가형태는 반드시 논리적 연관성이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연방국가인 독일의 지방자치의 핵심인 자치고권은 게마인데의 자치입법권이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게마인데의 자치입법은 우리의 조례제정권 뿐만 아니라 명령제정권을 포함하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독일에서 자치입법은 지역공동체뿐만 아니라 공법상 법인격을 가진 제 여러 단체들도 법률에서 인정하고 있는 영역에 대한 자치법규 제정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를 행정상 분권의 내용인 기능적 분권(Décnetralisation fonctionnelle)으로 설명하는 입장에서는 자치법규 제정권으로 설명하고 이러한 자치법규의 카테고리를 독일어로 Satzung이라 한다.
따라서 조례를 Satzung으로 바로 직역하는 것은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다. 실제로 지방자치단체(게마인데)의 Satzung은 다른 공법인과는 달리 전권한성을 가진 공법인의 자치법규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조례와 유사하다. 따라서 프랑스 헌법상 지방자치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꼬뮌(Commun)이 제정하는 자치법규에 대한 별도의 명칭이 없는 점과 비교가 된다.
자치입법의 하나인 자치법규로서의 Satzung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뿐만 아니라 도서관이나 대강당 등 지방자치단체의 시설의 이용과 관련된 규율을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23) 물론 상기한 자치법규는 대학이나 교육기관 등 학술적 자치행정 영역에서 제정되기도 하는데,24) 우리나라의 경우 국공립대학교 학칙 보다는 국립대학법인인 서울대학교 학칙은 이와 비교할 만하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은 이들 내용 보다는 우리나라의 조례와 같은 지역공동체의 사무에 대하여 규율할 권리(독일 기본법 제28조 제2항)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독일의 지방자치단체가 갖는 자치법규 가운데 명령제정권은 입법자의 부담을 경감하는 행정분산의 차원이라면 조례(satzung)는 탈 중앙집권적 법제정인 분권화 현상에 관한 것이라는 오센뷜(Ossenbühl)의 주장을 인용하는 견해도 있다.25) 독일 기본법 제28조 제2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에 대해 “법률의 범위 내(im Rahmen des Gesetzes)에서 자신의 책임 하에 모든 지역공동체의 사무를 규율할 권리”가 지방자치단체에게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법률유보 원칙도 국가입법의 경우와 동일하게 적용되는가에 대해 논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독일연방헌법재판소나 학설은 게마인데의 자치법규에 대해 국가입법의 경우와 동일한 적용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지방자치단체는 자신의 사무 처리에 있어 전권한성을 가지고 포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한 자치입법의 권한 역시 국가법령의 경우와 달리 특별한 법률상 수권이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기본권 침해를 수반하는 조례제정에 대해서는 국가입법의 내용인 위임입법의 본질성이론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26)
단일국가 모델에서 지방자치와 자치분권을 설명하는데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프랑스 모델이다. 프랑스는 지방정부라는 표현 보다는 지방자치단체(표현에 따라서는 일본처럼 지방공공단체로 표현할 수 있다)의 자유로운 행정권의 전제로서 지방의회의 의결은 자유로이 자신의 지방이익을 위해 전권한성(일반권한조항, la clause générale de compétences)을 가지고 행사되는 점에서27), 통상 우리가 말하는 자치입법권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로운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을 위한 자치입법권의 행사는 사법적 통제, 이른바 행정법원의 적법성 통제를 개시하는 역할을 지방에 소재한 지방 국가관청인 프레페(Préfet, 이전에는 지사(知事) 혹은 군수(郡守)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원어 그대로 소개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에 맡기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들 프레페의 역할은 단일국가에서 개념 징표 중 하나인 주권의 불가분성과 일반의사의 표현인 법률과 법령체계의 단일성과 통일성을 담보하는 국가이익의 대표자라는 점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지역의 이익을 위한 특별한 위임근거 없이도 법률에서 정한 자신의 권한에 속한 사항은 자유롭게 명령을 제정할 수 있다는 것과 프랑스 헌법상 의회가 개입할 수 있는 법률 제정 사항이 아닌 사항에 대해 지방의회(프랑스는 기본적으로 위원회 혹은 의회형의 유연한 권력분립을 취한 집행부 구성이 특징이다)의 명령제정이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주적인가 하는 점에 대해 소극적이다.
따라서 의회가 제정한 형식적 의미의 법률은 물론이고 우리 교재에 의하면 일종의 독립명령에 가까운 총리나 장관의 명령 내용과 배치되는 지방자치단체의 명령제정(우리나라처럼 이를 조례라고 부르는 별도의 용어는 없다)은 월권소송이나 프레페 제소절차를 통해 행정법원(프랑스는 이원재판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의 사법심사를 통해 무력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랑스의 지방자치제도에서 자치입법의 현실은 우리의 자치입법권과 유사해보이지만 좀 더 확장되어 있다고 본다. 프랑스 지방자치단체는 일반적이고 불특정한 추상적 내용의 규정을 제정할 수 있으며, 의회(상원과 하원)가 전담하는 입법사항(en matière législative)에 대해서도 예외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 그리고 2003년 3월 28일 헌법 개정으로 자치입법에 관한 명문 조항인 영미식의 Local law와 비교되는 명령제정권 ‘un pouvoir réglementaire local’이 새로이 명문화되었다.28)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입법은 부차적이고 잔류적(secondaire et rédiduel) 성격이라는 점에서 흔히 말하는 국가 또는 중앙정부와 대등하고 독립적이고 독자적(autonome)인 자치입법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결과만 놓고 보면 ‘국가의 법령 밑에 있는 조례’라는 우리의 현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29)
상기한 프랑스에서 논의되는 단일국가의 주권의 불가분성과 법체계의 통일성과 단일성에 의한 법논리적 제약과 달리 우리의 경우 자치입법을 행정입법의 특수한 경우로 이해하여 법률우위와 법률유보 원칙에 의한 제약을 가진다고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방의회의 심의와 의결을 통해 입법되는 자치법규를 행정입법의 일종으로 보는 전통적 견해는 조례안을 의결하는 지방의회와 조례를 제정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성격을 행정기관으로 이해했던 종전의 시각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지방자치법 제22조 단서의 해석을 둘러싼 논의과정에서 조례에 대한 법률유보의 적용을 당연시하는 일부 견해의 배경에는 기본권 제한적 법률유보에 관한 헌법 제37조제2항의 적용과는 별개로 지방자치단체의 기관인 지방의회는 행정기관의 일부이니까 이들의 자치입법은 결국 행정입법이라는 설명으로 결론 내리기 때문이다.30)
한편 자치입법인 조례와 국가입법인 법규명령의 구분에 관해 전통적 입장은 양자 모두 행정주체의 입법이나 형성대상에 대한 귀속의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31) 따라서 이른바 타율적(他律的)입법이자 국가입법인 법규명령과는 다르게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는 국가입법의 대행자가 아니라 자신의 의사에 따라 스스로 제정하는 자율적(自律的) 입법의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국가입법과는 달리 자치입법은 법을 정립하는 권능의 성질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한다. 우리 대법원 판례를 보면 의회입법이 아닌 행정권의 입법작용의 본질적 요소인 법률의 위임과 관련해 “포괄적이고 일반적이긴 하나”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32), 구체적으로 법률에서 범위를 정하지 않더라도 조례의 법률유보원칙의 잣대를 통한 국가입법으로부터의 자치입법의 통제의 숨통을 다소나마 풀어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선행 연구 가운데 자치입법권의 확대를 위해서는 상위 단계인 국가입법의 방식과 구성체계의 획일성을 극복하고 유연한 대처가 있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33) 이에 의하면 현재까지 시도되었던 각종 특별법이나 특례의 내용은 조례제정의 범위를 넓히는 자치입법에 대한 입법상 특례와 행정주체의 규제환화 내지는 권한의 확대를 위한 자치행정에 대한 행정특례가 대부분인데, 오히려 이러한 노력은 지방자치를 둘러싼 법체계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주장도 경청의 실익이 있다. 하지만 상기의 논의는 자치입법 보다는 국가입법에 관한 것으로 본다. 지적된 그간의 정부의 다양한 예외 혹은 특례 법률의 제정은 결국 입법수요의 다원화 요구에 대해 모두 국가입법으로 해결하겠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할 것이다. 전통적인 국가입법에 종속된 구체적 사무처리 입법으로서 자치입법을 시각을 청산하지 않고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어렵다고 생각된다.
Ⅲ. 자치입법과 국가입법의 갈등
현행 헌법상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와 자신의 재산관리를 위한 자유로운 규율제정 권한을 보장받는다. 다만 단일국가의 태생적인 한계라 할 수 있는 주권의 불가분성에 따른 국가법령의 체계적 정합성에 따른 ‘법률과 명령’의 범위 안에서의 자유라는 제약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지방자치단체에 법률 제정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국가의 입법의 독점권이 인정되고 그 결과물인 형식적 의미의 법률뿐만 중앙정부가 제정하는 명령에 위반하는 자치규범의 제정은 불가능하다.34)
자치입법의 의의를 국가의 위임입법이 아니라 언급한 바와 같이 독특한 자주적 성격을 가진 행정입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하더라고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자유로운 행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은 당연하다. 자치입법은 지방분권의 구성요소라 할 수 있는데, 헌법과 법률에서 ‘지방자치단체’로 명명된 지방권력 당국이 국가로부터 독립된 법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정되는 것이다. 공법인이야 말로 중세 교회법(까논법)의 최대의 발명품이라는 할 수 있는데, 자연인이 아닌 단체가 소송을 포함한 법적 행위를 할 수 있고 그 의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사결정이 자치입법권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 헌법 제117조제1항과 지방자치법 제22조는 지방의 권력기관의 자치권의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은 입법자의 지방자치를 보장하면서 자치입법권 행사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라고 그 한계를 분명히 하였고, 지방자치법 제22조 본문은 지방자치단체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입법과 구별되는 자치입법권 행사는 통상 법치행정의 내용으로 이해되는 법률우위원칙의 틀에서 먼저 검토되며, 그동안 학계는 물론 법원조차 ‘법령의 범위 안에서’라는 문구를 어떤 식으로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다투어 왔다. 이를 적극적으로 보는 입장35)은 자치입법인 조례는 일종의 준법률적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자치입법권을 통해 조례의 준법률성을 확대하여야 하는데 구체적 기법으로 포괄적 위임의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후기하는 바와 같이 지방자치법 제22조 단서에 관한 위헌론이나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제2항이 명시하고 있는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한 바에 따라” 규제적 조례제정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자치입법에 대해서는 추상적이고 포괄적 위임을 인정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입장과도 갈등관계에 있다고 한다.36)
지방자치법 제22조 단서는 주민의 권리의무의 제한이나 벌칙을 정하는 조례의 경우 그 조례가 이른바 자치조례이거나 위임조례이거나를 묻지 않고 법률(형식적 의미의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해당 조항은 헌법 제117조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입법권을 보장하고 있으므로 헌법에서 정하지 않은 추가적 제한을 법률에서 규정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견해37)와 국가입법과 자치입법의 밑바탕인 민주적 정당성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전국에 걸쳐 동일한 규율이 필요한 사항이나 죄형법정주의에 해당하는 벌칙조항은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하고, 기본권 제한적 법률유보에서 말하는 법률은 형식적 의미의 국회 제정 법률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합헌설38) 논쟁의 배경이 되었다.
그런데 지방자치의 현장에서 본다면 자치입법 활동 가운데 대부분이 법령의 위임에 의해 일종의 시행규칙적 성격을 가진 위임조례이다. 그리고 1991년 이래로 자치입법 활동이 주로 이러한 위임조례 제정에 머물고 나름 지역의 고유한 자주입법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대법원의 조례안재의결 무효확인 판결을 통해 제동이 걸리다보니 중앙부처의 배려와 지원에 의존하는 무사안일의 태도가 현실의 모습이 더 일반적이다.39)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의 순환은 자치입법의 역량부족을 지적하는 중앙정부나 집권옹호론자에게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다. 자치입법과 법치행정의 관계에서 보았지만 상위법령의 위임범위를 일탈하거나 적합하지 않은 경우나 법령에서 정한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권한을 침해한 조례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자치입법을 행정입법으로 파악하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치입법의 범위는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직접 관계되며 구체적으로 국가와 지방간의 권한과 사무의 배분과 뗄 내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다. 특히 위임사무와 관련해 그 권한이 국가에 있는 기관위임사무에 대해 대법원은 자치입법의 개입을 부인하고 있다. 다만 건축법 제45조 제2항과 같이 시행령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제정하는 이른바 위임조례의 경우는 자치입법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41)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법률선점론은 과거 일본에서 주장되었는데,42) 법률의 명시적 위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법률로 먼저 법률로 규율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 조례로 동일한 대상에 대해 규율하는 것은“법령에 위반”하는 경우에 해당하여 조례는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한다.43) 국가가 법률로 먼저 국가법령이 이미 정한 사항에 대해 조례가 개입하는 위법하다고 하는 것은 자치입법에 대한 국가입법의 우월성으로부터 도출되는 논리라 할 수 있다.44)
하지만 현재 종래의 엄격한 의미의 법률선점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으며, 일본의 경우 공해규제와 관련해 법률선점론을 완화한 추가조례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자치입법과 국가입법의 충돌문제는 법률우위원칙에 따라 조례가 상위법령(국가입법인 행정입법 일반)에 위반된다고 판단될 경우 그 조례는 위법하다고 하는 법률선점론의 전통적 견해에 대해 자치입법의 고유성과 자주성을 이유로 완화해야 한다(준(準)법률적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유사한 입장이라 생각한다)는 논리에 터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추가조례는 국가입법의 규율대상은 동일하지만 규제대상이 국가입법에서 정하고 있는 규제대상보다 더 추가하여 규제하는 조례를 말한다. 예를 들어 환경 관련 법령에서 규제대상을 이산화질소에 대해서만 규제하고 있는데, 자치입법권 행사를 통해 이산화질소(NO2)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CO2)에 대한 규제기준을 설정하는 것을 말한다.46)
이에 비해 초과조례는 국가입법과 자치입법의 규율대상과 목적이 동일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지역의 특수성과 자주법을 통해 국가입법이 제시한 기준을 초과한 규제나 완화기준을 입법할 경우에 법률우위 원칙을 내세워 해당 조례의 위법성을 법원에 요청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47)
추가조례나 초과조례와 같은 자치입법의 효력과 관련해 일본에서는 일방적으로 효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고 초과조례의 경우 초과되는(상승)부분에 대해서는 지역적 특수성에 해당하는 사실이 없는 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그 지역의 상황에 따른 초과조례 제정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적 상황의 특수성에 해당하는 지역적 공익(local public interest)과 국가적 차원의 일반이익의 비교를 통해 전자가 더 우월적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초과조례에 해당하는 경우 그 조례는 법령에 위반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 한다.48)
이에 비해 횡출(橫出)조례인 추가조례의 경우 그 추가된 부분에 대한 자치입법권의 개입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와 판례가 있는데, 환경관련 공해방지조례의 등장을 배경으로 한다.
한편, 최근에는 기존의 초과조례나 추가조례의 일반적 인정이 아니라 환경분야나 국가가 전국적으로 적용할 최소기준(National Minimum)으로서 규제권을 행사할 경우에 자치조례나 심지어 위임조례의 경우에 대해서도 일본에서 말하는 상승(上乘)조례를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 이를 긍정하는 수정된 법령선점론이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49)
우리 대법원 판결50)에서도 광주광역시 서구의회의 자활보호대상자에 대한 생계비 지원 조례안재의결에 대해 “조례가 규율하는 특정사항에 관하여 그것을 규율하는 국가의 법령이 이미 존재하는 경우에도 조례가 법령과 별도의 목적에 기하여 규율함을 의도하는 것으로서 그 적용에 의하여 법령의 규정이 의도하는 목적과 효과를 전혀 저해하는 바가 없는 때, 또는 양자가 동일한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국가의 법령이 반드시 그 규정에 의하여 전국에 걸쳐 일률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규율하려는 취지가 아니고 각 지방자치단체가 그 지방의 실정에 맞게 별도로 규율하는 것을 용인하는 취지라고 해석되는 때에는 그 조례가 국가의 법령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자동차대여사업을 하려는 사람의 영업활동을 제한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여객자동차 운수사업에 관한 조례안 조항에 대한 지방의회의 재의결에 대해 “그 수권 법률인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한 사항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무효”라고 판시하고 있는 점51)은 일본국에서의 논의 내용과 상당부분 유사함을 찾을 수 있다.
현실에서 조례가 법률 혹은 그 하위 규범인 시행령이나 시행규칙과 충돌하는 경우에 획일적으로 자치법규는 위법하다고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는 견해가 있다.52) 다시 말해, 자치입법과 국가입법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해결방식은 규범의 해석이나 헌법이나 법률 조항의 개정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결정될 일이지만, 어떻거나 간에 다양한 지역적 이익에 관한 사항을 일률적으로 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권의 불가분성과 이를 전제로 한 입법권의 의회독점을 명시적으로 천명한 헌법 제40조의 취지에 반하는 무리한 해석을 현실의 논리로 밀어붙이기도 논리적 정당성이 약하다는 점에서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학생인권보호 조례를 둘러싸고 국가입법과 자치입법간의 충돌이 발생한 경우를 살펴보면 학생의 인권보호라는 가치와 교권의 보호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가치의 대립이나 충돌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정책의 중점이나 방향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한다고 한다.53)
자치입법 영역에 대한 국가입법의 사후적 개입의 문제는 단순히 국가입법 선점론에 대한 자치입법의 개입금지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법령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거나 지방자치법 제22조 단서 규정에 위반하지 않은 조례가 국가의 정책방향과 차이가 있는 경우에 두 입법간의 갈등 내지 충돌상황에 관한 논의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발생한 자치입법과 국가입법의 갈등을 조정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입법정책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현실적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자치입법권자인 지방자치단체로서는 규범 간 충돌과 사법적 통제를 각오하면서까지 조례를 제정할 필요성과 정당성에 대한 노력이 요구된다. 물론 이를 위한 전제로서 자치입법 역량강화를 위한 국가의 지원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법률 제정주체인 국가에 대해서도 지방자치를 보장하는 현행 헌법 하에서 단순히 ‘법령의 범위 안에서’ 라는 문구 말고 단일국가의 법령 체계의 통일성과 정합성의 차원에서 갈등상황의 조례 제정을 무력화시킬 합리적 근거의 제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기한 바와 같이 전통적인 법률선점 영역에 대한 논리만으로는 자치입법의 적극적 움직임을 제동을 걸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국가입법 제정과정에 지방자치단체의 참여는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주권의 불가분성과 규범체계의 정합성이 요청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지방분권의 기본원칙인 보충성원칙에 기초한 국가와 지방간의 권한배분의 중요성이 강조된다고 생각한다.54)
Ⅳ. 결론
지방분권과 지방자치가 성장할수록 하나의 체계적이고 획일적인 규범의 정합성 보다는 그 지역에 특수한 고유한 이익을 위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주민들의 요청을 수용할 수 있는 자치입법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자치입법은 지역적·상황적 적응성과 종합성을 가지는 규범창조의 최첨단 실험실55)이라는 표현처럼 통일성과 효율성 보다는 다양성과 민주성을 특징으로 하여 때로는 국가입법을 선도하기도 한다.56)
국가입법과 자치입법을 둘러싼 갈등상황은 지방자치의 활성화와 지방분권에 대한 인식의 확대에 따른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이 강화되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종래 지방자치의 본질과 관련해 전래권설의 설명처럼 국가로부터 전래된 지방행정의 수행기관이 가지는 자율성 정도로 인식하고, 행정입법의 한 유형으로 인식하였던 시각에서는 법령의 구체적 위임과 법령우위 원칙에 의한 제약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는 자치입법과 법률우위원칙과 법률유보원칙, 국가입법 사항의 선점영역에 대한 침해 및 정책집행에 수반된 재정문제 등을 이유로 점점 그 역할과 능력이 커져만 가는 지방정치권력의 자치입법의 개입을 국가입법과의 갈등상황으로 평가하였다.57)
그러나 조례로 대표되는 자치입법권의 본질이 반드시 행정입법의 일종으로만 볼 것은 아니고, 이미 30여년 가까이 민주주의에 기초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고 지역의 고유한 이익을 위한 자유로운 행정을 위한 의사결정의 자치를 현행 헌법 조항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더 이상 자치입법은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라는 위임입법설은 이제 극복되어야 한다.
현행 헌법과 지방자치법을 전제로 한 해석론에 의한다 하더라도 조례를 국가입법에서 말하는 행정입법으로 보기는 어렵고 어느 정도 독자성을 가지는 고유한 자치법이라 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을 따른다면 현재 상황에서 자치입법이 국가입법과 충돌하거나 비선점 영역에 대해 선제적으로 규율한 내용이 후발 국가입법의 내용과 충돌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반론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헌법적 관점에서 논의해야 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주권이론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국가형태의 속성상 주권의 불가분성과 단일성에서 오는 일정한 규범체계의 통일성의 한계를 부인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법령을 부정하거나 변경하는 자치입법은 어느 국가형태든 간에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는 헌법상 국가조직의 분권화와 지방권력과의 권한 배분에 관한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에 관한 장(章)에서 분명히 결정되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