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종류의 임상시험이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은 2019년 한국이 국내 제약사가 주도하는 단일국가 임상시험에서 세계 3위를 기록하였다고 발표하면서, “임상연구는 신약에 대한 접근을 확대함으로 국민의 건강과 관련 산업의 높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지식기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평가하였다1). 또한 최근 코로나바이러스(COVID-19)와 관련해서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활발한 임상시험이 이루어지고 있다2). 하지만 이런 활발한 임상시험에 대응하는 우리의 법적인 기반은 어느 정도로 완비되어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발표에 따르면 이미 ‘우리나라의 임상시험실적에 따른 효율적인 지원체계를 확립3)’하기 위한 기반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행정적인 선언에 그치는 것으로 보이고, 법적인 측면에서 실질적인 효과는 없어 보인다.
임상시험(clinical trials)은 민사적으로 보면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자와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자간의 계약이 된다. 특히 임상시험계약은 시험참가자는 임상시험에 대하여 사전에 임상시험자의 관련 정보제공이 없다면 개인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아주 큰 계약이다. 이런 이유로, 임상시험 참가자에 대한 적절하고 정확한 정보제공이 계약체결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또한 임상시험은 임상시험 참가자의 건강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문제이므로, 정보제공의 문제는 자기결정권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연결된다. 이런 자기결정권의 문제는 미성년자를 포함한 제한능력자에게는 더욱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 민법에 따르면 제한능력자는 독립하여 법률행위(계약의 체결 등)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정대리인이 대리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약사법을 포함한 임상시험 법제에서는 이들의 의사를 고려할 어떠한 법적 장치(예, 제한능력자에 대한 임상시험을 위한 정보제공, 제한능력자의 임상시험 참가 의사표시 등)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법정대리인과의 인간적인 관계 등으로 인해 대리인의 의견에 반대할 수 없고,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임상시험에 참가를 하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들도 본인의 제한능력 상황에 따라 또는 미성년인 경우 본인의 성숙도에 따라 본인의 의사에 따른 자기결정권이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임상시험에 대한 정보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뉘렌베르크 강령(Nuremberg Code)에서 임상시험 참가자의 승낙은 임상시험에 대하여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고, 이런 정보를 완전히 이해한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것임을 선언하였다4). 이후 이런 사고를 법적으로 정보에 자발적인 동의 또는 정보에 기초한 동의5)(informed consent)로 명명하고 있다.
임상시험에서 임상시험 실시자의 정보제공 의무에 관해서 우리는 약사법에서 주로 규정하고 있다. 동법상의 규정은 주로 임상시험의 허가를 얻기 위한 내용만으로 구성되어 있고, 실질적인 임상시험 참가자의 동의를 위한 실질적인 내용의 규정에는 소홀할 뿐만 아니라, 특히 제한능력자의 자기결정권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6). 이러한 우리의 법현실에 참고할 수 있는 내용으로 EU에서 최근 제시한 의약품에 관한 임상시험(clinical trials on medicinal products) 규정(Regulation/이하 임상시험 규정이라 칭함7))을 들 수 있다. 동 규정은 우리 임상시험 법제의 개선방향으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연구의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연구목적 아래에서 본 연구는 우리 임상시험 관련 법률의 현실을 살펴보고(Ⅱ), EU의 임상시험 규정내용(Ⅲ)과 EU회원국의 입법내용 중 독일법(Ⅳ)의 임상시험참여 동의와 제한능력자의 자기결정권 관련 내용을 비교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그런 후에 우리 법의 개선방안(Ⅴ)을 제안하여 본 연구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Ⅱ. 임상시험에 관한 우리 규정
임상시험은 임상시험 참가자와 임상시험자간의 의사합치로 성립하는 비전형계약이다8). 이러한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계약 당사자는 의사능력9) 및 법률행위능력의 존재한다. 또한 계약의 당사자는 계약의 목적물인 임상시험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고, 설명을 통한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임상시험 참가자와 임상시험자의 합의과정을 통해 성립된다. 이하에서는 임상시험 계약합의를 위한 임상시험 참가자의 능력을 위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우리 사법상 미성년자는 만19세 이하의 자이다(민법 제13조). 임상시험 참가에 대한 것을 임상시험 수행자와 시험참가자 사이에 계약관계로 파악을 하는 것이 일반적 이라면, 미성년자는 임상시험10) 참여를 위한 법률행위능력이나 동의능력이 없다. 이 경우 법정대리인이 임상시험 계약을 위한 대리권을 행사하여 그 계약의 체결에 관여한다. 우리 민법에 따르면 미성년자의 능력은 원칙적으로 부정되고, 일부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된다. 그 예외 중 하나가 민법 제1061조의 유언행위 능력이다. 동 규정에 따르면 만17세 이상의 미성년자는 독자적인 유언행위를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17세의 미성년자는 자신의 사후의 신분상 그리고 재산상의 관계에 대해 독립적 결정을 할 수 있다.
법률은 아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임상시험에 대한 가이드라인11)을 제시하고 있는데, 동 가이드라인에서 미성년자를 연령에 따라 구분하고 있다. 즉, 미성년자는 신생아(출생일~28일 미만), 영아(28일~24개월 미만), 어린이 (24개월~만12세 미만), 청소년 (만12세~만19세 미만)으로 구분하고 있으며12), 이러한 분류는 법률적인 의미 보다는 의학적인 기준에 따른 분류로 보인다. 또한 동 가이드라인에서는 임상시험 참여에 대한 동의능력을 만7세를 기준으로 구별한다. 즉 미성년자의 임상시험 참여에 대한 동의능력은 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결정이 있는 경우나 만7세 이상인 경우 동의능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 또한 7세 이상 미성년자에게는 임상시험에 대한 일정한 설명을 하고 미성년자의 동의도 필요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13). 그리고 성년의제가 적용된 미성년자도 역시 독립적으로 임상시험 참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7세 이상 미성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동의를 구한다는 것은, 다른 외국의 입법례와 비교해 볼 때, 상당히 진일보한 내용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전혀 법적인 효력이 없는 상징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성년자의 경우,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계약을 단독으로 체결할 수 있으며, 특별한 제한이 없다. 자유로운 의사에 기한 계약체결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자발적 의사에 기한 임상시험 참가는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년자가 요보호자라면 상황은 다르다. 이를 위하여 우리 민법은 후견제도를 규정하고 있고, 이에 관한 규정은 지난 2013년의 민법개정으로 새로이 규정되었다. 기존의 행위무능력자 제도가 재산적 사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다면, 2013년의 민법 개정으로 도입된 성년후견제도는 “신상보호”라는 개념을 도입하며 이전과는 다른 보호개념을 도입하였다. 즉, 피성년후견인은 자신의 신상14)에 관하여 그의 상태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단독으로 결정(민법 제947조의2 제1항)한다. 이러한 신상의 범위에 해당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거주·이전·주거·면접교섭·의학적 치료 등으로 보고 있다15). 개인의 의사능력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신상관계가 결정되어야 하며, 의료행위에 대하여 피성년후견인 본인이 전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성년후견인은 후견인의 신상영역에서는 피성년후견인의 보충적16)인 지위에 그친다. 하지만 피성년후견인이 동의를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성년후견인이 본인에 갈음한 결정을 한다(민법 제947조의2 제3항).
과연 임상시험을 자신의 신상에 관한 결정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 신상의 범위에 대하여 일반적 해석에 따르면 임상시험의 참여는 신상의 결정에 해당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임상시험이 의학적인 치료를 위한 경우는 다르게 보아야 한다. 임상시험에서 신체에 대하여 의료적 침습행위(Eingriff)가 필수적인 임상시험의 경우라면 신상의 영역으로 보아야 한다17). 임상시험은 이처럼 침습적인 행위가 있을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한 성년후견이 필요한 자는 치료를 위해 침습행위가 동반되는 의료적인 임상시험에 참여해야 할 가능성은 더 클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피성년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포함한 의사표시가 존중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임상시험 참여에 대한 의사가 민법 제947조의2상의 신상의 범위에 해당되는지는 개별적으로 판단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또한 그 기준으로 침습행위적 의료행위 여부가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우리는 약사법에서 임상시험에 관하여 주로 규정한다.
동법에 따른 임상시험18)은 의약품 등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해당 약물의 약동·약력·약리·임상적 효과를 확인하고, 이상 반응을 조사하는 시험19)으로 정의된다(약사법 제2조 제15호). 그리고 약사법에서 임상시험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규정은 4개(약사법 제34조, 제34조의2∼34조의4) 조항이고, 그 내용은 임상시험의 계획을 승인하고 그를 실시하기 위한 내용이 주이다20). 그런 의미에서 본 연구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임상시험의 동의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기에는 불충분하나, 동 연구와 관련 있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기관은 임상시험을 위한 공고에 그 명칭, 목적, 방법, 대상자 자격과 선정기준, 의뢰자등의 신상 및 예측 가능한 부작용에 관한 내용을 제공하여야 한다(약사법 제34조 제3항 제3호). 이는 임상시험을 위하여 일반적으로 제공하여야 하는 내용이다. 또한 그 “내용, 임상시험으로 인해 참가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건강상의 피해 정도와 보상 내용 및 보상 신청 절차 등”을 임상시험의 참여자에게 사전설명 및 서면동의를 받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약사법 제34조의2 제3항 제2호). 이는 임상시험 참여자의 동의를 위한 요건으로, 국제적인 기준과 동일하게, 서면상의 동의를 요구한다. 임상시험의 참여자에게 건강상의 피해정도와 보상절차에 대한 설명이 서면상의 동의를 위한 중요한 내용으로 규정되어 있다. 임상시험 기간과 임상시험 종료 또는 임상시험 참가의사의 철회의 경우 건강상 회복을 위한 요양조치 그리고 그 경우 보상절차에 대한 설명의무가 규정될 필요가 있다21).
피시험자의 이해능력 및 의사표현능력이 결여되어 동의를 받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대리인에 의한 동의가 필요하고, 이 경우에도 서면에 의하여야 한다(약사법 제34조의2 제3항 제3호). 임상시험 참가자의 동의능력이 부족한 경우를 의사능력 및 의사표현능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본조에서 규정하는 대리인은 법정대리인이며, 법정대리인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직계존속, 직계비속의 순서로 그 자격이 결정된다. 미성년자인 경우는 민법 제5조에 따라 법정대리인이 임상시험에 대한 동의권을 행사할 것이고, 약사법 제34조의2 제3항 제3호에 규정된 이해능력 및 의사표현능력은 미성년이 아닌 성년자의 경우에 적용되는 내용일 것이다. 성년자인 경우 이해능력이나 의사표현능력이 없는 경우라면 대리인이 서면동의를 통하여 성년자가 임상시험 참가자가 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과연 이해능력과 의사표현능력이 없는 자가 스스로 임상시험의 참가자가 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희박한 가능성의 대부분아 생의 종기에 다다른 환자를 위한 신약 임상시험의 경우가 아닐까 한다. 이 경우 이전에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한 경우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 의사가 분명치 않은 경우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를 위하여 약사법이 과연 해결할 단초를 제공하고 있지 않은 것이 또한 문제점으로 보인다.
이상에서는 우리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임상시험에 관한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민법에 의하면 미성년자는 임상시험 참여 결정을 독립적으로 할 수 없다(민법 제5조 제1항)22). 따라서 이는 부모를 포함한 법정대리인이 이를 대리(민법 제114조 이하) 또는 동의를 하여야 하는 법률행위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입법태도라 볼 수 없다. 즉, 미성년자 중에도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규정한 내용이 있다. 즉, 제한적이지만, 17세 이상의 미성년자는 유언을 할 능력이 있다(민법 제1061조)는 것이다. 17세의 미성년자가 임상시험 참여의 결정능력을 가지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23).
또한 임상시험참여에 대한 동의능력을 일률적인 연령을 기준으로 파악을 할 것이 아닌, 사안에 따라 상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견해24)도 있다. 하지만 임상시험에 관련하여서는 상대적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분명한 연령상의 구분기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미성년자의 동의능력 판단을 연령에 따른 판단 후 미성년자의 동의를 임상시험에 관한 윤리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검증하는 절차를 거친다면 안정적인 법률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이다. 또한 미성년자의 경우와 유사하게 제한능력자에게도 판단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도 검토해야 한다.
성년자의 임상시험참여 동의에 관한 우리 법의 태도는 명확하지 않다. 성년후견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피성년후견인의 동의에 관하여서도 법률적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후견인의 의사와 건강이 최선으로 보장될 수 있는 법률적 정비가 필요하다. 민법에 따르면 피성년후견인은 자신의 신상에 관하여 그의 상태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제947조의2). 신상의 범위에 관하여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사안에 따라 상대적으로 파악을 하여야 할 것이고 이에 대한 주요한 기준으로 피성년후견인의 신체에 침습의료행위인 임상시험이 실시되는지 여부가 해당될 수 있다.
또한 우리 약사법을 검토해 보면, 임상시험참여에 대한 실체적인 권리관계를 규율하기 위해서는 내용상 부족한 점을 볼 수 있다. 우선 임상시험 내용에 주요한 부분을 규정하는 약사법이 임상시험 참여자 또는 참여예정자의 자발적 결정을 위한 의사형성 과정을 보장하기에는 부족하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가장 주된 약사법 내용상의 문제는 임상시험의 심사를 위한 형식적 요건사항에 대한 것만 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임상시험이라는 계약에 대한 실질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개인의 동의(임상시험참가의 승낙) 또는 그를 위한 동의과정들에 대한 규정이 부족하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 임상시험참가에 대한 의사능력을 가질 수 있는 미성년자 또는 그러한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미성년자의 자율적 의사를 고려 할 수 있는 내용의 보완이 필요하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제한능력자에게도 임상시험에 대한 내용이 설명이 되어 제한능력자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제한능력자도 본인의 신체 또는 건강에 대한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 또는 필요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임상시험에 관한 중요한 내용이 식약처가 관여하는 가이드라인 수준에 규정되어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Ⅲ. EU의 임상시험 규정(Regulation)
다음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우리 임상시험 관련 법률내용들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EU에서 제안되는 입법을 검토하여 우리 법의 개선사항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임상시험에 대한 입법으로 우리의 약사법과 학술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이 EU가 2014년 제안한 임상시험 규정25)이다. EU에서는 2000년 초반부터 임상시험에 관한 내용을 입법화 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노력들이 꾸준히 입법에 반영 및 수정되고 있다.
임상시험에 관한 규정에서는 임상시험이 시험 참가자의 안전, 존엄 그리고 복리에 관한 권리들은 언제나 존중, 보호되어야 하고 참가자의 이익은 언제나 다른 이익들 보다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함을26) 선언하는 규정을 둠으로써 임상시험 참가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다. 또한 임상시험 참가자의 동의권을 현실화하기 위해, 우리의 약사법 규정에 비해 단계적인 규정들을 마련함으로써, 참여자의 자기결정권이 더 효과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세부적으로 일반원칙, 동의능력 없는 참가자 그리고 미성년자 등으로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으며, 특히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그 정보에 기초한 동의 관한 내용을 상세히 규정하였다는 점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2014년의 임상시험 규정에서는 임상시험의 정의를 기존규정27)에 비하여 상세하게 적고 있다. 이를 위하여 궁극적으로 임상시험의 범위에 속하게 되는 의학적 연구(clinical study)개념을 추가하여 임상시험의 범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확정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임상시험과 비개입연구(non-interventional study)로 나누어 규정함으로써 기존의 EU 의약품법제와도 조화롭게 적용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임상시험의 정의를 제2조 제2항 제2호에, 의학적 연구에 관한 정의를 동조 제2항 제1호에서 각각 규정한다.
임상시험 규정 제28조 이하에서는 임상시험의 참가자를 보호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실시하고자 하는 자가 일반적으로 준수하여야 하는 사항을 적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제28조에서는 일반원칙이라는 제목과 함께, 임상시험이 실시될 수 있는 조건을 한정하여 규정하고 있다. 즉 a) 임상시험 참가자 또는 공공의 건강을 위하여 예상되는 위험이나 단점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조건은 항상 유지 및 확인될 수 있어야 한다. b) 시험 참가자 또는, 시험 참가자가 정보에 근거한 동의를 할 수 없는 자인 경우, 그 법정 대리인에게 동 규정 제29조 제2항에서 제6항에 규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며, c) 시험참가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은 제29조 제1항, 제7항 그리고 제8항에 따라 정보에 근거한 동의권을 행사할 수 있다. d) 시험 참가자의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건강함, 프라이버시 뿐만 아니라 정보에 관련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모든 임상시험 참가자와 그 법정대리인은 참가동의를 언제든 철회할 수 있으며(제28조 제3항), 이 경우 어떠한 손해도 발생되어서도 아니 되며,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임상시험 참가동의에 대한 철회는 철회 이전에 실시된 임상시험과 이를 기초로 생성된 연구결과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
제29조에서는 정보에 기초한 동의(Informed consent) 라는 제목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자가 제공하여야 하는 정보와 참가자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절차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정보에 기초한 동의는 임상시험에 관한 모든 정보를 얻고 해당 임상시험절차에 참가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임상시험 참가자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의사표시를 의미한다(제2조 제21호).
제29조 제1항은 정보에 근거한 동의는 제2항에 정한 요건에 따라 정보가 제공되고, 시험 참가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에 의한 대화내용이 서면으로 작성될 것을 요구한다. 시험참가자가 정보에 근거한 동의가 불가능한 경우, 적어도 증인 1인의 참여한 상황에서 녹음으로 진행될 수 있다. 정보에 따른 동의는 국제적 가이드 기준과 동일하게 서면으로 작성되는 것이 원칙이며, 이러한 서면동의가 불가능한 경우를 위하여 추가적인 상황을 대비한 조치를 예외적으로 규정하였다28).
시험참가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에게는 임상시험의 참여의 결정을 위해 정보제공의 요건을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항이 제공되어야 함을(제29조 제2항) 요구한다. a) 시험 참가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이해를 위하여 (i) 임상시험의 본질, 목적, 이익, 효과, 위험 그리고 단점이 존재, (ii) 시험 참가자에게 어떠한 권리와 보장이 제공되는지, 특히 임상시험에 참가를 거부하거나 동 참가를 언제든지 종결할 수 있는 그의 권리, (iii) 임상시험이 실시(참가자의 참여 예상기간도 포함)되는 조건 그리고 (iv) 임상시험의 참여가 중단되는 경우, 시험참가자의 요양조치를 포함한 대체의료가 존재하는지 등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게 설명되어야 한다(동조 제2항 a호). 이러한 정보에 따른 동의를 위한 과정에서 언제든지 질의를 할 수 있으며, 숙고를 위한 적절한 시간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도 분명히 하였다29). 임상시험 참여를 결정하기 위한 요소들이 상세히 규정되어 있고, 임상시험 참여기간과 참여 중단의 경우 요양을 위한 조치(위의 (iii), (iv) 조건)까지도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약사법과 비교되는 내용이다. 또한 관련 분야에 문외한이라도 간명, 분명하며, 목적달성을 위해 분명히 이해될 수 있게 내용이 구성되어야 함도 선언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규정들에도 불구하고 시험방법에 따라 임상시험 참가자들의 집단에 대한 임상시험의 경우에는 간편한 동의도 가능하다30).
또한 제29조 제3항에서는 제2항에 따른 정보들은 서면으로 작성되어야 하고 시험참가자 또는 그의 법정대리인에게도 그 서면이 제공되어야 한다. 정보에 기한 자유로운 동의인지 여부를 확정하기 위해 임상시험자는 시험참가자의 참여 결정에 미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고려하여야 한다31). 특히 이 경우 경제적, 사회적으로 장애를 가지는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적인 요소들도 고려하여야 한다. 즉, 구조적, 사회적 지위로 인해 부당하게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불합리한 경우를 위하여 특별히 마련된 내용이다.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능력이 있는 미성년자는 본인의 법정대리인의 동의와 함께 미성년자인 임상시험 참가에 관하여 스스로 동의하는 서명을 하여야 한다(제29조 제8항). 판단능력이 있는(capable of forming an opinion) 미성년자에게는 임상시험의 관련자가 임상시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할 뿐 아니라 그의 서면에 의한 동의까지 필요함을 밝히고 있고, 이는 회원국의 규정과 관계없이 적용된다.
임상시험 규정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제한능력자의 법정대리인의 결정은 회원국의 입법에 따르며, 이들을 위한 특별한 보호수단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32). 이를 위해 동의능력이 없는 자의 임상시험의 경우 특별한 규정을 마련하고 있으며(임상시험 규정 제31조), 동의 능력이 없는 자란, 연령 이외의 사유로 회원국의 법률에 따른 (동의)능력이 없는 자를 말한다(제2조 제19호).
동의능력 없는 시험참가자는, 앞에 언급된 제28조(임상시험 규정의 일반원칙)의 요건뿐 만 아니라, 동조에 규정한 요건들을 충족하여야 한다(제31조 제1항). 이 경우에도 이들은 자신의 동의능력 상실 이전에 임상시험 참여의 동의를 표현하지 아니하였거나, 거부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임상시험의 참여를 위하여, 동의능력 없는 자의 법정대리인 동의가 필요하고, 동의능력 없는 시험참가자에게도, 능력에 적절한 방법으로, 법정의 요소가 설명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은 정보에 의한 동의에 관한 요건이다. 또한 일반적 임상시험에서도 임상시험 참가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은 참여로 인해 직접 발생하는 지출과 소득누락에 대한 보상이외에 어떠한 형태의 이익을 받을 수 없다는 이익제공금지가 규정되어 있다. 또한 해당 임상시험은 동의능력 없는 자의 실험참여가 필수적이어야 하고 비교 가능한 데이터가 동의능력 있는 자의 임상시험의 범위 또는 다른 연구를 통해 획득될 수 없다는 실험실시의 정당성을 요구한다. 즉 부당하거나 부적절한 실험참여를 방지하기 위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임상시험은 의료조건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어야 하고, 그 결과는 학술적인 근거가 필요함을 아울러 요구하는데, 이는 일반원칙(임상시험규정 제28조)에서 규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상대적 약자인 동의능력 없는 자의 참여를 위한 정당성이 더 높은 수준으로 요구됨을 규정한 것이다. 이와 함께 동의 능력 없는 자의 임상시험의 참여가 위험이 큰 경우에는, 그 위험에도 불구하고 해당 참가자에게 더 직접적인 효과(a direct benefit to the subject outweighing the risks and burdens involved)가 있어야 함을 요구한다(제31조 제2항). 이는 동의능력 없는 자의 궁박한 상황에서 극단의 선택을 내리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내용이라 할 것이다. 동의능력 없는 자의 임상시험 참가결정을 위한 정당성 요건을 2단계(일반적인 경우, 위험이 큰 경우)로 나누어 규정하고 있음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임상시험 규정에서 정의하는 미성년자는 회원국의 법률에 따라 연령을 이유로 정보에 기초한 동의를 할 수 없는 자를 말한다(제2조 제18호). 이는 회원국의 개별법령에 따라 미성년자의 연령을 서로 다르게 규정하고 있으며, EU는 이러한 회원국의 개별입법을 존중하기 위함이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에 있어서 특히 고려하여야 할 정보제공에 관하여 임상시험 규정 제32조에서 규정하는데, 우선 미성년자의 임상시험은 동 규정 제28조(일반원칙33))에 언급된 요소를 모두 충족하여야 한다. 그리고 미성년자는 자신의 임상시험 참여를 위해 법정 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그 법정대리인도 임상시험 관계자로 부터 제29조 제2항에 따른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그리고 임상시험에 참여함을 거부하거나, 어떠한 시기에도 표명할 수 있는, 임상시험 참여의 철회에 대한 본인의 의사는 존중되어야 한다. 독일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미성년자의 비토권34)의 내용보다 더 강화된 내용으로 보인다. 즉, 미성년자는 법정대리인과의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에만 임상시험에 참여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임상시험참여 전후를 구별하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임상시험 일반규정의 내용과 동일하게 미성년자와 그의 법정대리인은 동 규정에서 정한 것 이외에는 이익을 제공받을 수 없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해 실시되는 임상시험은 미성년자에서만 발생하는 의학적 상태에 대한 치료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본인 또는 다른 임상시험의 데이터를 검증을 위하여 미성년자에게 필수적인 시험과정이어야 함을 선언하였다. 그래서 미성년자에 대해서만 수행 될 수 있는 임상시험이어야 함을 요구한다. 이런 내용도 동의능력이 없는 자를 위한 임상시험의 경우와 동일하게 미성년자의 상황적인 이유로 원하지 않는 임상시험의 참여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다음과 같은 참여를 위한 높은 수준의 정당성을 요구한다. 즉, (i) 임상시험의 참여로 인한 위험 보다 더 큰 직접적인 이익을 미성년자가 누리거나(a direct benefit for the minor concerned outweighing the risks and burdens involved; or), (ii) 해당 미성년자가 대표하는 집단에 대한 일정한 이익이 있어야 할 것(some benefit for the population represented by the minor concerned and such a clinical trial will pose only minimal risk to, and will impose minimal burden on, the minor concerned in comparison with the standard treatment of the minor's condition)35)이며, 그 임상시험은 미성년자의 상태에 대한 표준적인 치료와 비교하여 미성년자에게 최소한의 위험이 발생하여야 할 것임을 요구한다(제32조 제1항). 미성년자의 임상시험 수행이 본인을 위해 직접적인 필요가 있어야 하거나, 직접적인 부분이 적은 경우라도 최소한의 위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제한능력자의 경우에 높은 정당성을 요구하는 규정보다 세분화된 조건설정으로 미성년자가 속한 집단을 위해 이익이 되는 경우에도 그 정당성을 인정한다. 이상의 제32조 제1항의 내용들은 임상시험을 위한 설명과 시험실시를 위한 직접적인 요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32조 제2항은 미성년자의 개개인의 연령과 그의 정신적 성숙도에 따라 제공되는 정보가 조정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 해당 미성년자도 참여하여야 함을 규정한다. 이는 법정대리인에 의한 정보에 기초한 동의 뿐 아니라, 제공된 정보를 이해하고 자신의 의사를 형성할 수 있는 미성년자는 임상시험에 참여하기 위한 자기결정권의 존중을 위해 법정의 정보들이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정보도 미성년자에 대하여 절대적인 기준이 세워진 것이 아닌 상대적으로 최적화 되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은 회원국의 국내법과 관계없이 적용 된다고 규정하고 있어36), 회원국 입법에 관계 없이 높은 수준의 보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임상시험 중에 그 미성년자가 관련 회원국의 법률에 따른 사전 동의능력이 있는 연령에 도달 한 경우, 미성년자가 임상시험에 계속 참여하기 전 그의 명시적인 동의를 득해야 한다(동조 제3항).
우리 약사법에서는 미성년자에게는 일정한 범위의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거나 미성년자의 임상시험 참여의사를 듣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EU의 임상시험 규정은 이러한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제29조 제2항에서는 미성년인 자에 대하여도 일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고, 그에게도 임상시험 참여에 대한 의사를 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함을 요구한다. 이러한 내용은 동의능력 없는 자에 대한 경우에도 동일하다. 또한 미성년자의 성숙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도 달리하고 있어 개별적인 상황도 고려하는 내용도 규정되어 있다.
EU의 임상시험 규정은 임상시험 참여를 위한 동의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상세한 규정체계를 세우고 있다. 즉 일반적인 임상시험을 위한 동의요건을 규정하면서, 동의능력 없는 자 및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강화된 임상시험참가 동의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거기에 동의능력에 제한되는 자(동의능력 없는 자 와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임상시험의 참여를 위한 정당성이 더 강하게 요구된다(제31조 제2항 및 제32조 제1항). 그들이 처한 지위로 인해 원치 않는 참여를 위한 요건이나 치료를 위한 경우에는 본인을 위한 목적이 분명히 존재하여야 하는 것과 같은 내용은 우리 법이 반드시 참고하여야 하는 내용이라고 보인다.
Ⅳ. 독일의 연령에 관한 규정
EU의 임상시험 규정은 미성년자임을 결정하는 기준에 대하여 회원국의 입법기준에 따른다(임상시험 규정 제2조 제17호). 임상시험 규정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부분에 공백이 있고,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에 관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본다는 목적에서 이하에서는 독일법의 내용을 검토해본다.
독일 민법(BGB)에서 미성년자의 법률행위 능력에 대한 구분은 만7세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즉 동법 7세에 이르지 않은 자에 대하여는 법률행위 능력을 가질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면서(독일민법 제104조 제1호), 7세 이상의 미성년인 자는 독일민법 제107조에서 제113조의 법률행위능력을 가진다(동법 제106조). 독일민법의 연령에 관한 규정은 임상시험 참여의 동의에 관한 경우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독일민법 제104조에 따르면 7세가 이르지 않은 미성년자는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임상시험 참여에 대한 동의 또는 결정을 할 수 없다. 그러면 7세에 이르지 않은 자를 위해 부모 등의 법정대리인이(Betreuer37))으로서 임상시험에 대한 의사결정을 한다38). 즉, 미성년자에게 충분한 통찰력 및 판단능력이 없는 경우라면, 동의능력은 친권을 행사하는 부모에게 있고, 이는 부모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본다39). 따라서 7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자신의 신체 또는 건강에 대하여 정보에 기초한 동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의사결정권이 없다40).
7세 이상의 미성년자에게는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법률행위만이 허락된다(독일민법 제107조). 그 외의 경우에는, 7세 이상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는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임상시험의 참여가 미성년자에게 오로지 이익만 되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으므로,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미성년자는 임상시험 참여에 대한 유효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부모가 미성년인 子에게 행해지는 의료행위에 대하여 설명을 요구할 수 있음을 규정하는(SGBⅠ41) 제36조 제1항)42) 규정에 따라, 15세의 미성년자에 대한 의료행위를 위해 의사는 미성년자의 동의를 구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동의를 위해 설명의무를 이행하여야 한다43). 또한 독일 연방법원(BGH)은 15세 이상이며 판단능력이 있는(urteilsfähig) 미성년자는 자신의 의료행위에 대한 부모의 결정을 비토(즉, 거부/Vetorecht44))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즉, 부모와 미성년인 子의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부모의 의견에 대해 거부권을 보장한 것이다. 이 경우에도 15세 이상의 미성년자는 단독 결정권은 없는 것으로 보았다45).
독일법은 미성년자를 연령에 따라 구분하여 자기결정권이 경시되는 상황을 방지하고 있다. 요컨대 7세 이상의 경우, 우리 민법의 태도와 같이, 미성년자에게 이익이 되는 법률행위만을 할 수 있도록 제한적 능력이 부여되었다. 또한 7세 이상의 미성년자는 자신의 상황을 통찰하고 판단능력이 있는 자도 있을 수 있어, 이러한 미성년자의 보호를 위해 비토권을 인정한다. 판단능력이 부족한 미성년자에게 일률적으로 그들의 동의능력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연령에 따른 판단력을 존중하는 경과조치로 해석되며46), 그들의 의사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고를 읽을 수 있다47).
Ⅴ. 결론에 갈음한 우리 법에 시사점
이상에서는 약사법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임상시험 규정의 입법현실을 검토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임상시험을 계약법적 측면에서 평가하면 당사자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정보에 기초한 동의(Informed Consent)를 실현할 수 없는 구조이다. 더욱이 제한능력자에 대한 보호규정은 전무한 상황으로, 자기결정권은 전혀 보장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우리의 입법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EU의 임상시험규정과 독일법을 검토하였고, 아래에서는 우리법 측면에서 고려할 수 있는 개선사항을 제안하려고 한다.
우리 약사법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임상시험을 위한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는 내용은 부족하고, 임상시험 승인을 위한 절차 또는 그를 위한 요건들을 규정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의 존중을 위한 어떠한 법적 내용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이다. 미성년인 경우라면, 본인이 참여하게 될 임상시험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획득하기도 어렵고, 모든 상황이 법정대리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또한 그 결정과정에 본인이 참여에 대한 의사를 밝힐 수 도 없다. 이러한 문제는 동의 능력 없는 자의 경우도 역시 동일하다. 이러한 내용이 오히려 미성년자를 위하여 식약처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에는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한 부분이다. 이러한 법률적인 흠결을 보완하기 위하여 현재 임상시험에 대한 주된 법률인 약사법에 임상시험의 참여를 위한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내용의 보완이 필요하다. 또는 독립된 법률로 임상시험의 과정을 규율하고 정보에 기초한 동의권을 실현하는 내용을 반영한 법령의 제정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약사법에 반드시 추가되어야 할 내용으로 제한능력자의 시험참여를 위한 정당성 확보 과정을 제시할 수 있다. 즉, EU 임상시험 규정 제31조 제2항, 제32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미성년자 또는 제한능력자가 당해 임상시험에 참여하기 위해 그 참여자의 그 참여이익이 분명히 존재하여야 한다거나 적어도 그와 비슷한 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공적인 이익이 존재하여야 함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상황적 조건에 따라 임상시험에 참여가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 본인의 진정한 의사가 존중될 수 있는 규정적 보완도 필요하다48).
우리 민법에 따르면, 앞에서 살펴본 EU 규정과 독일법도, 미성년자는 법률행위를 영위할 법적 능력이 없다.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이들에게 독자적인 법률행위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합리적 결정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내용을 독일에서는 세단계로 나누어 보호단계를 설정하면서, 친권자에 대한 설명(또는 정보제공), 미성년자에도 본인의 성숙도를 감안한 설명 및 동의를 구한 후, 최종적으로 임상시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그 시험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것이다(AMG 제40조 제4항)49). EU의 규정에 비해 독일법은 임상시험 계획과 비교를 통하여 객관적 평가를 한다는 점에서 강화된 내용으로 규정된 것이고, EU역내 전체 국가의 보편적 적용을 위한 법규정 제시라는 본질적인 특성을 고려해 본다면 EU의 규정 또한 적절한 수준을 지키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또한 EU 임상시험 규정에는 성숙 또는 판단능력에 따라 임상시험 참가에 대한 본인의사를 철회 또는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한 독일 판례는 판단능력이 있는 15세에 이른 미성년자에게 부모의 견해와 다름이 있는 경우에, 비토권(또는 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 법률에서 EU와 같은 임상시험 거부권 인정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독일과 같은 비토권을 고려해 볼 수 있다50). 비토권은 미성년의 성숙도에 따라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한 성장과정에 있는 미성년자를 위한 단계적 보장이 될 수 있다. 또한 성장에 따른 미성년자 권리능력 확장과 부모의 친권이 축소하는 반비례 관계에서, 이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51). 이런 이유로 우리의 법령에서는 임상시험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가 참여하는 의료행위에 있어서는 독일에서 인정하고 있는 비토권이 하나의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