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우리나라 독점규제법상 ‘남용규제’와 관련하여 경쟁제한의 의도 내지 목적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거래거절 행위를 검토한 포스코 판결에서 제시된 바, 대법원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경쟁제한 의도를 남용행위의 부당성을 판단하는 위법성 요건의 하나로 설시하였다. 동 판결에서 대법원은 남용의 부당성이 ‘경쟁제한 효과’에 따라 판단됨을 명확히 하는 한편, 주관적 요건으로 경쟁제한의 의도나 목적을 요구하였고, 그에 대한 입증을 경쟁제한 효과(내지 우려)와 연계시키는 독특한 위법성 판단 구조를 제시하였다. 그에 따라 남용규제에서 주관적 요건이 차지하는 역할 내지 중요성이 이례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이러한 기조는 최근의 대법원 판례에서도 재차 확인되고 있으며,1) 포스코 사례와 같은 거래거절 행위에만 국한되어 적용되는 것도 아니어서 경쟁제한의 의도 내지 목적은 남용의 부당성을 판단할 때 경쟁제한효과와 더불어 반드시 검토되는 필수적 위법성 요건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스코 판결을 계기로 학계와 실무에서는 꾸준히 남용규제의 목적과 성격, 부당성 판단기준, 그리고 주관적 요건으로서 의도의 기능과 역할, 정당화 사유와의 관계 등에 관한 논의를 이어오고 있으며2) 무엇보다 주관적 요건을 위법성 요건에 포함시켰던 대법원의 다수 견해를 비판적으로 논증하면서 경쟁 제한의 의도 내지 목적을 위법성 요건에서 배제하려는 견해들이 꾸준히 대두되었다.3) 다수의 비판적 논의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남용의 위법성 판단에 관한 한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또 그에 영향 받은 하급심이나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동일선상에서 관련 사건들을 다루고 있어 ‘효과 및 의도’ 요건은 거의 확립된 법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 논문은 그간 독점규제법상 남용의 부당성 판단에서 필수적 위법성 요건으로 자리 잡은 경쟁제한의 의도 내지 목적이 남용 규제의 목적, 그리고 위법성 판단기준에 비추어 합리적인 것인지 검토하고, 무엇보다 위법성 판단 체계에서 주관적 요건의 지위와 역할을 중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반경쟁 분석, 특히 독과점 규제에서 의도가 차지하는 기능이나 관련 문제들은 이미 미국에서 셔먼법의 적용이나 EU 경쟁법의 집행 과정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외국의 법제와 실무에서 주관적 요건의 역할과 기능을 살펴보는 것은 독점규제법의 적용과 해석에 있어 유용한 시사점을 줄 수 있으므로 종래 해외의 관련 사례들과 이론들을 필요한 범위 내에서 참고할 것이다. 또한 법집행 과정에서 실무 내지 해석상의 변화가 있다면 그 변화와 배경도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남용 규제에서 의도 요건의 유용성 여부와 위법성 판단과정에서의 의미와 역할, 구체적인 판단 요소 등에 관한 나름의 해석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일차적으로 행위의 위법성 요건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 남용규제의 목적과 위법성 판단기준을 밝히고, 경쟁제한 의도가 남용 규제 내 어느 단계에서, 어떠한 역할로 위법성 판단에 반영되어야 할 것인지 논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Ⅱ. 독과점 규제에서 주관적 요건의 고려
미국은 효율성과 소비자 후생 증진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따라서 경쟁제한성 역시 동일한 기준 하에 검토하게 된다. 미국 셔먼법상 주관적 요건, 즉 독점자의 의도 내지 목적은 제2조의 독점화 내지 독점화 기도와 관련하여 논의되어 왔다. 셔먼법 제2조에서는 독점화(monopolization) 및 독점화 기도(attempt to monopolize), 공모에 의한 독점(conspiracy to monopolize)4)을 금지하면서도 독점화의 개념이나 위법성 판단기준 등에 관하여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판례를 통하여 해석론이 축적되었다.
초기 판례에서 위법성 판단은 두 가지 요소, 즉 셔먼법 제2조에 위반되는 행위(conduct focused test, 예컨대 억압적이거나 약탈적인 행위), 그리고 의도(intent-based component)로 이루어져 있었고, 피고인의 행위에 상당한 효율과 같은 정당화 사유가 부재하다면 독점화에 대한 특별한 의도가 추정된다고 보았다.5)
시간이 지나면서 합법적인 독점 취득6)과 불법적인 취득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판단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경쟁을 파괴하려는 특정한 의도(specific intent)의 존재를 입증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했다. 방법론적 측면에서도 스탠더드 오일 사건과 같이 초기의 셔먼법 제2조 위반 사건들은 행위나 정당화 사유의 부재로부터 의도를 단지 추정했을 뿐이지만, 이후의 사건들에서는 의도의 ‘객관적인’ 증거(objective evidence)를 직접 보여줄 것을 강조했다.7) 이처럼 초기 특정 의도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방식은 주관적인 접근 방식으로 대체되었고, 그에 따라 법원은 특정 의도를 찾기 위해 임원의 진술, 기업 내부의 기록 등을 분석하곤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시장지배력을 얻고 경쟁자를 압도하려는 의도는 기업 활동에서 너무나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그와 관련된 자료나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독점을 형성·유지하려는 목적이 없는 한(the absence of any purpose to create or maintain a monopoly) 거래의 자유를 누린다는 Colgate 판결8)과 Grinnell 판결9)을 통해 연방대법원은 ‘관련 시장에서 독점력’을 보유하고, 반경쟁적·배제적인 수단을 통해 ‘독점력을 의도적으로 획득 또는 유지(willful)’하였을 때 위법하다고 판시함으로써 셔먼법상 금지되는 독점화는 오랫동안 행위자의 목적 내지 의도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해석되었다. 한편으로 반독점법의 원인금지적 규제 방식에 더하여 미수범을 처벌하는 미국 형사법에 따라 독점화를 기도하는 것(attempted to monopolize)은 미수로 파악되었고, 따라서 법원이 특정 의도를 요구한 것은 미국 형사법의 체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위법성 요건을 설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반독점법에서 의도는 다양한 역할을 하였고, 위법성 판단 시에 행위자의 의도가 고려되는 비중은 관련 사례에 따라 적절히 조정되었는데, 이를 테면 문제된 행위가 형사법적 침해인지 아니면 민사 침해인지에 따라, 아울러 셔먼법 제1조 위반인지 제2조 위반인지에 따라 요구되는 의도의 내용과 입증 수준이 달랐다.10) 일단 독점화 행위에는 일반 의도가, 독점화 기도 행위에는 특정 의도가 요구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반경쟁적 책임을 발생시키는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법원은 전통적인 형사법상 의도의 두 가지 개념, 즉 의도란 반경쟁적 결과를 초래하겠다는 목적 혹은 가능한 행위 결과에 대한 인식이며, 이 개념이 여전히 유용하다고 보면서11) 후자(행위 결과에 대한 가해자의 인식)만으로도 형사적 의도를 발견하는 데 충분하다고 보았다.12) 다시 말해서 발생가능한 효과에 대한 인식에 더하여 성과를 얻으려는, 혹은 법을 위반하려는 의식적인 욕구까지 입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과도하고 불필요하다고 보았다.
독점화나 독점화 기도에서 요구되는 의도는 일반 의도와 특정 의도로 구분되고, 독점화 기도의 경우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독점을 창출 또는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존재할 때 인정되며(willful acquisition or maintenance of the power), 이는 때로 경쟁을 파괴하거나 독점을 창출하려는 목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컨대 거래거절과 같은 배제적 행위가 단순히 거래의 단절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자신의 이익과 소비자의 편익을 희생시킨 채 경쟁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이 있을 때 의도가 존재한다고 본다.13)
사실상 독점화 기도에서 특정 의도는 반독점법에서 여전히 모호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독점화 기도행위로 규제되었던 Lorain Journal 사건14)에서 연방대법원은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상대방과 거래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면서도 이 권리는 독점을 형성 또는 유지할 목적이 없는 경우에만 완벽하다고 판시하였던 이른바 colgate 원칙을 재차 확인하였고, 이후 많은 사례들에서 친경쟁적 정당화 사유가 없다면 독점화의 특정 의도가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15)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독점화 기도 행위에 특정 의도가 위법성 요건이기는 하나, 이를 독점규제법의 해석에 그대로 참고·반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셔먼법상 독점화 기도란 새로운 독점의 획득을 의도한 행위이고, ‘독점이 완성되지 않은 경우’에 제기되는 문제로서16) 이미 형성된 독점 내지 기왕에 보유한 시장지배력의 ‘남용’ 문제와는 기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입증 역시 직접적 증거 또는 반경쟁적 행위로부터 추론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17)
그러나 이후 시카고 학파의 등장으로 소비자 후생과 효율성을 반독점법의 목적으로 파악하게 되면서 효과에 입각한 위법성 판단기준이 채택되었고, 의도에 관한 논의가 현저히 축소·생략되었다. 시카고학파는 사업자의 의도보다 그 행위가 시장에 미치는 전반적인 영향과 효과에 집중하여 위법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거래거절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 다른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혹은 당해 행위에 어떤 효율성이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18) 이는 행위의 경제적 효과를 중시하는 법리의 채택을 의미하면서 모호한 의도의 존재가 행위의 결과를 예측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시카고학파의 견해는 이후에 등장한 후기 시카고학파의 비판을 받았는데, 시장의 완전성과 독점사업자의 배제적 행위를 매우 예외적인 것으로 평가했던 시카고학파와는 달리 이들은 시장이 완전하지 않으므로 독점사업자의 배제적 행태에 더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경쟁자의 비용을 증가시키는19) 독점자의 행위는 경쟁자의 경쟁능력을 제한하고 신규사업자의 시장진입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20) 다만 후기 시카고학파 역시 셔먼법의 목적이 소비자 후생 증대에 있다고 보았고, 배타적 행위의 위법성을 경쟁제한효과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위법성 판단 시 의도가 갖는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점에서는 시카고학파와 동일하다.
비교적 최근의 마이크로 소프트 사건21)의 독점화 분석에 따르면, 문제된 행위와 관련한 모든 사안들을 감안할 때 독점자의 행위가 경쟁을 해치고, 그리하여 셔먼법 제2조의 목적에 비추어 배제적이라면 위법성 판단의 초점은 행위의 효과에 있지 그 뒤에 숨은 의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독점자의 행위 뒤에 숨은 의도는 위법성 요건이 아니라 그 ‘행위의 효과를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만 관련성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주관적 요건의 역할과 기능, 중요성은 셔먼법의 적용과 해석에 있어 고정된 것이 아니었고, 사례에 따라 위법성 판단 시 고려되는 비중과 의미가 역시 조금씩 변화되어 왔다. 물론 경쟁제한적 의도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법원의 행위 효과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겠지만, 좋은 동기가 반경쟁적 관행을 허용해 줄 수 없듯이 경쟁제한적 의도가 친경쟁적인 행위 혹은 정당한 행위를 불법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 의도의 존부가 합리의 원칙에 따른 경쟁제한 분석에서 결정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디까지나 의도는 행위의 효과를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 고려되기 때문이다.
EU 경쟁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규제는 우리나라 독점규제법과 유사하게 폐해규제주의를 취하고 있다. 유럽기능조약(TFEU, Treaty on the Functioning of the European Union) 제102조 본문에서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는 하나의 사업자 혹은 다수 사업자의 남용행위를 금지하고, 각호에서 남용행위의 유형을 예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 조항에서 남용에 관한 정의를 명시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남용에 대한 정의는 Hoffmann-la Roche 사건22)에서 유럽법원이 제시한 개념이 널리 인용되는데, 그에 따르면 남용이란 문제된 사업자의 존재 결과 경쟁의 정도가 약화된 시장의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통상의 경쟁조건이 적용되는 시장과는 다른 방식의 경쟁이 이루어지면서 기존의 경쟁정도를 유지, 촉진하는 것을 저해하는 효과를 갖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남용이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존재로 인해 이미 경쟁이 제한되고 있는 특수한 시장상황과는 분리되어 파악될 수 없으며,23) 일반적으로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이미 경쟁이 제한되어 있는 시장에서 잔존경쟁을 유지해야 할 특별한 의무(Sonderverantwortung)를 부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EU 경쟁법상 남용 규제의 취지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존재로 인해 이미 경쟁이 제한된 시장에서 잔존경쟁의 유지·보호에 있으며, 유럽법원 역시 EU 경쟁법의 주요 목적이 경쟁이 가능한 시장구조의 보호, 그리고 과정으로서의 경쟁을 보호하는데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24) 다만 최근 들어 경쟁법을 적용할 때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남용에 대한 판단을 유형적 접근방식(form-based 방식)에서 효과중심 방식(effect-based 방식)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고, 또한 보다 경제적인 접근 방법(more economic approach)을 수용하여 소비자 후생 증진과 효율성을 다소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 법원은 여전히 소비자 후생이나 효율보다는 경쟁의 자유, 경쟁 과정의 보호에 방점을 두고 있으므로 전적으로 그러한 방향으로 전향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25) 한편 남용 규제의 기조가 다소 변화하는 과정에서 경쟁제한 의도 내지 목적, 이른바 주관적 요건에 대한 태도 변화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인데, 지금까지 남용 판단에서 행위자의 의도나 목적(주관적 요건)을 필수화 시키는 논의는 전개되고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EU 경쟁법상 남용에 대한 위법성 심사는 경제분석을 통한 구체적 효과분석에 치중하기보다 당해 행위가 발생한 시장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경쟁상황에 대한 검토에서 출발한다. 즉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행위는 잔존경쟁과 그에 미치는 객관적인 영향을 검토하여 판단될 뿐, 관련시장의 잔존경쟁에 실제로 미친 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하거나 행위자의 의도까지 파악하여 입증할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남용의 법적 성격을 객관적인 개념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다만 행위유형에 따라 행위자의 의도나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는 경우도 있으므로 그러한 경우에는 위법성 판단에 반영되지만, 그것이 필수적인 위법성 요건으로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EU 경쟁법 제102조는 효과적인 경쟁과정을 보호하기 위한 규범 목적을 가지며, 따라서 동 조항은 시장의 모든 경쟁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쟁적인 과정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경쟁자’만을 보호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지배적 사업자와 동등하게 효율적인 경쟁자만 보호되는 것은 아니며, 특정한 상황에서는 덜 효율적인 경쟁자라도 그가 경쟁압력으로 작용한다면 이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시장지배적 사업자와 동등할 정도로 효율적이지는 않더라도 경쟁 과정 자체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경쟁자라면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독점규제법과 유사한 남용 규제 체계와 내용을 가진 독일 경쟁제한방지법(GWB) 상 남용 규제의 목적 내지 취지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경쟁사업자나 거래상대방의 경제적 자유 침해를 방지하고, 자유로운 경쟁과정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26)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왜곡되지 않은 경쟁에 대한 특별한 책임(Sonderverantwortung)을 부담한다는 확립된 인식 하에 있으며, 이는 자유롭고 공정한 정치적·사회적 질서 유지라는 공익 안에서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호하고자 했던 질서 자유주의(ordoliberalism)의 영향을 받은데 기인한다. 그리하여 과도한 경제력을 제한하고 경쟁과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두면서27) 효율보다는 자유로운 거래, 그리고 과정으로서의 경쟁을 중시한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위법성 판단에 경제 분석을 수용하면서 소비자 후생이나 효율과 같은 가치들을 조금씩 반영하고 있지만, 소비자 후생이 경쟁의 자유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가치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낮은 가격과 더 좋은 품질, 새롭고 진보된 상품과 서비스, 소비자 선택의 확대와 같은 소비자 편익은 경쟁을 통해 얻는 과실이며, 따라서 시장이 적절히 기능할 수 있도록 그리고 사업자들 간의 효과적인 경쟁에 우선적 가치를 두고, 그 결과 효율과 생산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소비자 편익을 보호하게 된다. 그러므로 진짜로 중요한 것은 경쟁의 과정을 보호하는 것이며, 이는 단순히 경쟁자를 보호하는 것과는 구분된다. 아울러 독일 경쟁제한방지법 제19조에 의한 남용 판단 역시 주관적인 범주는 일반적 판단기준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있으므로28) 의도에 관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EU 경쟁법상 남용 규제에서 행위자의 의도나 목적이 갖는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다. 행위에 내포된 강한 배제적 속성으로 인해 행위 자체로 남용적인 경우에는 불법성에 대한 인식은 물론 주관적 의도 역시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판례법에서 경쟁제한의 의도가 남용의 대리변수(intent as a proxy for abuse)로 반영되기도 하였는데 행위의 목적이 경쟁제한에 있다면, 다시 말해 의도의 증거가 있을 때 남용이 추정될 수 있었다. 약탈적 가격설정행위를 예로 들면 평균가변비용 이하의 가격설정 행위는 그 자체로 남용으로 추정된다.29) 이는 제품의 생산과 판매가 필연적으로 사업자의 손실을 수반하기 때문에 경쟁자 제거 외의 다른 경제적 목적을 찾을 수 없다는데 근거한다. 그러나 평균가변비용 이상이지만 평균총비용에는 미달하는 경우와 같이 행위의 배제적 속성이 자동적으로 추정되지 않는 경우라면 결정적인 요소로서 ‘의도’가 요구될 수 있다.30) 이때 약탈적 전략을 보여주는 내부의 서류나 거래상대방에 따라 선별적으로 행해진 정황 등은 의도의 증거가 된다. 약탈적 가격설정 행위 외에 리베이트 사례에서도 이러한 추정은 유용하게 활용된다. 리베이트의 의도가 반경쟁적이라면 실제 효과는 고려할 필요가 없으며 나아가 소비자나 경쟁자에게 미칠 예견가능한 효과 역시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의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리베이트가 잠재적 경쟁자나 소비자에게 어떤 효과를 미칠 가능성이 있다면 남용에 대한 의도가 추정된다.31) 말하자면 시장지배적 지위와 결합된 경쟁제한 의도는 제102조 금지 위반에 방아쇠로 작용한다. 이는 곧 의도가 발견되는 곳에서는 경제적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32) 마찬가지로 행위 내에 친경쟁적 효과와 반경쟁적 효과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에는 행위의 속성상 경쟁제한이 확실치 않으며, 이때에는 보다 면밀히 행위의 정황과 구체적인 내용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 적어도 경쟁자가 제거될 가능성 내지 경향은 의도가 없는 경우보다 의도가 존재할 때 증대되므로 어떠한 행위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강화할 목적에서 행해졌다면 그 행위는 남용으로 판단될 수 있다.33) 더욱이 그러한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화 사유 없이 행해졌다면 이는 분명 남용에 해당한다. 시장지배적 사업자 역시 자신의 정당한 이익을 방어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정당한 이익 방어가 정상적인 거래관행을 벗어나거나 혹은 이익 방어의 실제 목적이 지배적 지위의 강화에 있다면 남용이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남용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의도를 위법성 추정의 필수 요건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의도의 증거가 발견되는 곳에서는 경쟁제한의 목적이 존재하므로 이를 고려하겠지만, 경쟁제한 의도와 매출 증대 혹은 시장점유율 확대의 동기 등의 구분이 어렵고, 기본적으로 이러한 태도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행위가 남용인지 여부가 경쟁자 배제나 경쟁을 악화시키려는 주관적 의도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EU경쟁법 특유의 객관적 남용 개념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Ⅲ. 독점규제법상 남용규제와 주관적 요건
남용행위의 위법성 판단에 있어 그 기준과 구체적인 요건들은 남용의 본질과 남용 규제의 목적에 비추어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행위들이 남용 금지 대상이 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남용 규제의 목적을 먼저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용이 무엇이며, 남용 규제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관하여는 법률상 아무런 규정이 없으므로 학계에서 이에 대한 해석론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기존의 학설은 구조적으로 제한된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에서 잔존 경쟁이 갖는 중요성에 착안하여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잘못된 행태와 경쟁 제한의 우려로부터 경쟁 질서를 보호하고 시장의 개방성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보고 있다.34) 한편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거래거절행위가 문제되었던 포스코 사건35)에서 대법원의 다수설은 남용 규제의 목적이 ‘독과점적 시장에서의 경쟁 촉진’에 있으며, 따라서 독과점의 유지·강화를 방지하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법원의 해석론은 기존의 학설들이 남용규제의 목적을 ‘잔존경쟁의 보호’에서 찾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양자는 모두 독과점 시장에서의 경쟁보호라는 큰 틀에서는 뜻을 같이 하지만, 판례(대법원 다수설)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독과점 규제의 입법 취지를 설명하고 있는 반면, 대법원의 반대 의견과 학설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하는 구조적 특이성과 제한적인 경쟁 시스템의 작동이라는 시장의 특수성에 보다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대적인 인식의 차이는 결국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행위가 경쟁에 미치는 효과 내지 영향에 대한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며, 주관적 요건의 고려 여부에 관하여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대법원의 다수 의견이 경쟁제한 의도와 효과를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과 달리 소수 의견은 시장의 구조와 경쟁 상태를 고려해 행위 사실에 주목하였고, 주관적 요건이 아닌 정당화 사유의 부재를 통해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위법성을 인정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남용 규제의 목적은 단순히 독과점적 지위를 유지·강화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경쟁의 기능이 침해·축소되는 것을 방지하고, 시장에 참여하고 있고 또 참여하려는 사업자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 주는데 있다. 독과점적 시장에서의 경쟁 보호는 소극적으로 기존의 경쟁 상태를 유지하거나 더 악화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장지배력의 고착 내지 증대로 경쟁과정이 침해되거나 소비자 후생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포스코 판결에서 대법원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거래거절 행위의 부당성을 부인한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로 포스코가 거래거절을 통해 기존의 (독과점적) 시장구조를 유지하려 했을 뿐이라는 근거를 든 것은 대법원이 남용 규제의 목적과 경쟁제한성을 매우 협소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남용규제는 원칙적으로 사후적 규제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경쟁적인 시장구조로의 변화와 경쟁 악화 방지라는 예방적인 차원의 의미를 일정 부분 가질 수밖에 없다. 독과점 사업자의 행위를 평가할 때는 일차적으로 시장지배적 지위 자체가 경쟁질서 내에서 갖는 의미, 그리고 독과점 시장이라는 구조적 특수성을 민감하게 고려해야 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잔존경쟁과 잠재적 경쟁의 차단 여부까지 포착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신규진입을 막고 기존의 시장지위를 유지함으로써 경쟁을 차단하려는 ‘목적’ 자체를 위법성 요건으로 인정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과정으로서의 경쟁이 보호되어야만 시장의 성과 역시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독점규제법 제3조의2는 남용의 정의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남용의 개념과 성격, 그 구체적인 판단에 관하여는 법리와 해석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남용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부당하게’라고 표현되어 매우 단순하지만, 그 내용이나 관련 평가 요소에 관하여는 다양한 해석론이 가능하다.
우선 남용의 개념은 남용규제의 취지나 목적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는데, 판례는 ‘독과점적 시장에서의 경쟁 촉진’이라는 규범 목적 하에 남용으로서 방해·배제행위의 부당성은 시장에서의 독점을 유지, 강화할 의도나 목적, 즉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시장질서에 영향을 가하려는 의도나 목적을 갖고, 객관적으로도 그러한 경쟁제한 효과가 생길 만한 우려가 있는 행위로 평가될 수 있을 때 성립한다고 하였다.36) 즉 남용을 판단하는 기준은 ‘경쟁제한성’이며, 구체적으로 독점의 유지·강화에 대한 의도나 목적이라는 주관적 요건과 경쟁제한 효과라는 객관적 요건이 요구된다. 논리전개상 양자는 대등하고 독립적인 요건으로 기능하면서 경쟁제한 의도는 효과로부터 추정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37) 대법원이 경쟁제한 ‘효과와 그 의도’라는 비교적 간명해 보이는 위법성 요건을 정립하였지만, 효과를 입증하는 것만큼이나 의도를 입증하는 것 역시 용이하지 않다. 더욱이 지위남용행위에 해당하려면 상품의 가격인상, 산출량 감소, 혁신 저해, 유력한 경쟁사업자 수의 감소, 다양성 감소 등과 같은 경쟁제한의 효과가 있거나 그러한 효과가 생길만한 우려가 있는 행위여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측정이 난해하고 사후적인 경쟁제한 효과에 위법성 판단을 기대고 있다. 이처럼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배제적 행위는 경쟁제한 효과와 소비자 후생 침해를 고려하여 위법성이 판단되지만, 그것은 위법성을 인정하기에 충분조건이 아니며 나아가 경쟁을 제한하려는 나쁜 의도, 반경쟁적 목적까지 입증해야만 성립하는 매우 까다로운 방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포스코 판결 이후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특정 행위의 남용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주관적 요건의 존재는 회사의 전략을 보여주는 내부 서류나 자료, 관련자의 진술 등을 통해서 확인하기도 하지만 그에 국한된 것은 아니며, 특정 행위 유형에 내재된 속성, 행위의 정도나 지속성, 계약의 조건이나 내용 등 객관적인 요소들이 함께 고려된다. 예컨대 퀄컴 1차 사건에서 공정위는 퀄컴의 차별적인 로열티 부과행위를 시장지배적 지위남용행위(사업활동 방해행위)로 규제하면서 경쟁제한 의도 내지 목적의 존부를 행위 당시의 상황과 계약의 조건과 내용, 퀄컴의 내부 자료 등에 근거하여 추론한 바 있다.38) 아울러 퀄컴이 조건부 리베이트를 제공한 행위의 경우에는 리베이트의 제공 시기, 퀄컴사의 내부 자료, 리베이트 지급 구조와 제공 형태 등을 근거로 경쟁제한 의도·목적을 추정하였다.
리베이트 제공행위의 경우에는 제공 의도나 배경, 제공 시기, 지급 구조 등을 통해서 경쟁자 배제의 목적이 확인될 수 있으며, 리베이트 제공행위가 배타조건부 거래행위에 해당하는 경우 통상 그러한 행위 자체에 경쟁을 제한하려는 의도나 목적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선결 판례39)가 있는 만큼 행위의 속성에서 의도나 목적이 추정되기도 한다.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를 거절·제한한 행위가 문제되었던 퀄컴 2차 사건40)에서도 경쟁제한 의도·목적이 추정되었는데, 수직으로 통합된 사업자이면서 상류시장과 하류시장 모두에서 지배적 지위에 있는 사업자였던 퀄컴은 라이선스 거절을 통해 경쟁을 제한할 유인이 있고,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이처럼 내부 자료나 관련자의 진술과 같은 주관적 근거뿐만 아니라 행위에 내재된 속성, 행위 당시의 객관적인 정황과 사정으로, 즉 객관적인 요소들을 통하여 주관적 요건의 존부를 추정한다는 점에서 경쟁제한의 의도 내지 목적이 오로지 사업자의 내심의 의사, 내부적 결정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님은 명확하다. 포스코 판결에서 대법원은 의도나 목적의 존재를 경쟁제한의 효과에서 추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여 그 논리 구성에 있어 학계나 실무의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후 실무상으로 효과에서 의도를 추정하는 방식보다는 이상과 같은 주관적·객관적 고려요소를 통해 추정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고 이는 바람직한 것이다.
주·객관적 접근 방법을 모두 활용하는 것은 주관적 요건의 존재를 매우 정치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지만, 한편으로 실무에서 의도나 목적을 확인하기 위해 활용하는 고려요소들은 행위의 효과로 요구되는 경쟁제한의 우려를 판단할 때 고려하는 요소들과 일부 중복되는 문제가 있다. 포스코 판결에서도 행위의 경위 및 동기, 태양, 관련시장의 특성, 특정 행위로 인하여 그 거래상대방이 입은 불이익의 정도, 관련시장에서의 가격 및 산출량의 변화 여부, 혁신 저해 및 다양성 감소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경쟁제한의 효과가 생길 만한 우려가 있는 행위로서 그에 대한 의도나 목적이 있었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여41) 두 요건을 확인할 때 고려되는 요소를 구분하지 않고 있고, 마치 공통의 요소처럼 다루고 있다.42) 동일한 요소들이 경쟁제한의 의도나 목적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효과에 대한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은 독자적인 위법성 요건으로서 의도의 역할에 의문을 일으키며, 양자의 관계가 ‘경쟁제한적 의도가 있다면 그러한 결과를 낳을 개연성이 크다’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전제를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의도나 반경쟁적 효과 중 하나만 입증하면 된다고 본 일부 미국 판례43) 및 EU 경쟁법상 목적과 효과는 구분되지 않으며 종국적으로 하나라는 일부 판례44)와도 닿아있다.
물론 경쟁제한성은 의도와 다소간의 연관성을 가진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퀄컴 사건에서 경쟁제한성은 행위의 의도, 가격차별의 정도 및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는 입장으로 행위의 효과는 의도에 일정 부분 영향 받는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의도는 효과를 설명하거나 보완해 주는 역할일 뿐 그것으로서 경쟁제한성을 좌우하거나 일반적 요건으로 정립되기에는 불충분하다. 아주 긴밀하지도, 완전히 느슨하지도 않은 의도와 효과 간의 관계를 감안하면 의도를 많이 고려할 때와 전혀 고려하지 않을 때 간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지적45)은 경청할 만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관련 시장에서 행한 특정한 행위가 통상적인 경쟁에 대응하는 자유로운 거래 행위인지 아니면 은폐된 부정한 목적 하에 행해진 남용행위인지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하여 행위가 초래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행위의 양태, 행위의 내·외부적 원인이나 정황, 행위의 의도나 목적까지도 검토하고자 하는 시도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도 자체는 유용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과거 미국 역시 독과점 사업자의 거래거절 행위에 셔먼법 제2조를 적용함에 있어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를 위법성 판단의 일반적 요건으로 해석·적용한 바 있으며, 또한 드물긴 하지만 EU 경쟁법 위반 사례에서 유럽법원 역시 지배적 사업자와 관련된 남용 판단에서 행위의 속성 못지않게 행위자의 의도, 행위 목적을 주요 요소로 고려한 바 있다.46) 그러나 EU에서 주관적 요건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남용의 부당성 판단에 불가결의 요소로 다루어지지는 않으며, 미국의 경우에는 경제 분석이 위법성 판단과정에서 중요하게 반영하게 된 이래, 즉 보다 경제적인 접근방법을 취하면서부터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에 주목하고 시장과 소비자에 미치는 효과에 집중하게 되면서 의도의 역할이 급격히 축소되었고, 의도가 효과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스코 판결을 통하여 대법원이 정립한 ‘경쟁제한 효과와 의도’의 법리는 일면 위법성을 가려내기 위한 면밀하고 정치한 판단 방식처럼 보인다. 더욱이 이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라 하더라도 거래상·경제활동 상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당연하고, 그의 행위를 금지·제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에 한한다는 헌법상의 취지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의도적으로 행한 행위여야 하고, 그 결과(효과)가 나쁠 경우에만 책임지면 된다는 발상은 남용 규제 자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스스로에게 가장 유리한 거래조건과 내용을 선택하더라도 그 행위가 종국적으로는 시장과 경쟁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면 적절히 통제되어야 한다. 그것이 헌법상 보장된 경제상 자유와 그 제한이라는 취지에 상응하는 것이며 이미 형성된 시장지배적 지위를 인정하는 대신 자신의 힘을 남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제 취지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거래를 거절하거나 거래상대방에 따라 차별적인 거래조건을 부과하는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행위가 방해·배제의 양상을 띨 경우 그 행위는 거래상대방이나 경쟁사업자뿐만 아니라 시장과 경쟁의 관점에서 의미가 판별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판단과정에서 행위자의 의도가 실제로 남용과 그렇지 않은 행위를 구분해내는 합리적인 평가 방법인지, 달리 말해서 규범 목적을 실현하고 보호법익을 지키는데 필수적인 요건인지는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포스코 사례와 같이 전후방 시장의 새로운 경쟁압력으로부터 기존의 시장지배력을 유지·보호하기 위해 행한 거래거절, 효율과는 무관한 시장 진입에 대한 방해행위는 그 ‘의도’ 때문이 아니라, 시장지배력과 결합된 거래거절 행위로서 잔존 경쟁에 미치는 영향과 경쟁 과정에 대한 인위적 개입·침해라는 사실로부터 충분히 부당하다고 판단될 만한 것이었다. 또한 행위의 배경이 된 의도는 행위 사실과 사건의 객관적 정황으로부터 추론될 수 있는 것이며, 의도로부터 효과가 추론될 수는 있을지언정 단순히 가격과 산출량, 혁신 저해, 다양성 감소 등 행위의 효과나 그 우려로부터 추정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경쟁제한적 의도가 필수 요건으로 정립되면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방해·배제남용의 매 사례마다 행위의 위법성을 따질 때 별도로 경쟁제한 의도를 검토해야 하므로 규제비용이 증가하고, 객관적 요건인 경쟁제한성과 더불어 주관적 요건이 누적적으로 충족될 때에만 남용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게 되어 과소규제의 우려가 있다.47) 이러한 우려는 경쟁질서를 보호하고 시장을 보다 개방적으로 유지하려는 남용 규제에 흠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 더욱이 독과점 시장의 경쟁 과정에서 경쟁자의 존재, 그의 효율성은 경쟁 시장에서와는 그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행위의 애초의 의도나 목적이 무엇이든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행위가 경쟁과정에 미치는 영향과 효과는 시장과 경쟁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파악되어야 하고, 행위의 효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경쟁에 영향을 미치려는 부정한 목적, 소위 경쟁제한의 의도나 목적이 발견된다면 이를 위법성 판단에 반영하되, 이를 별개의 독립된 요건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종합적 고려요소의 하나로 파악하는 것이 적절하다. 덧붙여 독점규제법상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행위가 때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주관적 요건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위법성이 약한 남용행위까지 형사사건화 하는 것은 오히려 과도한 규제로서 부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의도를 남용 판단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사례에 따라서는 객관적 정황이나 수집된 증거에 의해 의도가 추론·발견될 수 있으며, 이는 효과를 판단하고 위법성을 평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위법성 판단 과정에서 이를 적절히 반영할 논리적·현실적 필요가 있을 것인데, 그러한 경우 의도의 존재는 어느 단계에서 고려할 수 있을지의 문제가 남는다. 이에 관하여 주로 두 가지 견해가 제기된다.
우선 경쟁제한의 의도 내지 목적을 일반적 위법성 요건에서는 배제하되 문제된 행위의 다양한 고려요소들 중 하나로서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이 있으며,48) 또 다른 방법으로서 사업자 측에서 정당화 사유를 입증함으로써 의도의 부재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방식도 가능하다.49) 전자는 남용의 위법성 판단기준인 경쟁제한성을 검토할 때 의도를 함께 고려하여 포괄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고, 후자는 경쟁제한성 판단의 다음 단계에서 부당성을 조각하는 정당화 사유로 제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양자 모두 의도가 별도의 입증이 필요한 독립적 위법성 요건이 아니라고 보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전자는 고려요소(factor)로 반영해야 한다는 견해이고, 후자는 항변사유(defence)로 고려할 수 있다는 견해로서 결국에는 의도의 규제체계 상의 위치 및 입증 책임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서 확연하게 구분된다. 만약 고려 요소의 하나로 포함할 경우에는 경쟁제한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경쟁제한의 의도 내지 목적 하에 행해진 행위라는 것을 공정거래위원회가 보여주어야 할 것이며, 정당화 사유(항변 사유)로 간주한다면 행위 유형이나 속성으로부터 일응의 경쟁제한성이 인정된 후 이를 복멸하는 사유로서 그에 대한 입증 책임은 행위 주체, 즉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부담한다. 이때 사업자는 경쟁제한의 의도나 목적의 부재 내지 문제된 행위의 주·객관적 정당화 사유를 제시하게 될 것이다. 다만 고려요소로 검토할 경우에는 위법성 판단 단계에서 의도의 중요성이 그리 크지 않으므로 그 존부를 반드시 입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독점규제법상 남용 금지 규정은 부당공동행위와 같은 명시적인 예외적용을 허용하고 있지 않아 결국 해석론을 통해서 정당화 사유의 허용여부와 그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하는 문제가 남으며,50) 또한 의도 내지 목적의 부재가 정당화 사유와 완전히 동일하거나 동등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업자 측의 정당화 사유 제시·입증은 당해 행위에 반경쟁적 의도가 없었음을 간접적·우회적으로 입증하는 의미를 갖는다. 언급한 바와 같이 정당화 사유를 인정하는 것은 법상 명문의 규정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법체계상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51) 그러나 유사한 법체계를 가진 EU에서도 명시적 규정 없이 실무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와 정상적 거래행위를 구분하는 객관적 정당화 사유를 인정하고 있고,52) 이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으므로 이를 인정할 실익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판례처럼 사후적인 경쟁제한 효과를 중심으로 행위의 위법성을 좁게 판단한다면 정당화 사유는 효율성 등의 객관적 정당화 사유에 한하여 인정하되 반드시 경쟁제한 효과와의 형량을 거치도록 해야 할 것이며,53) 경쟁제한성의 의미를 보다 넓혀 경쟁과정에 대한 침해, 불공정성, 나아가 거래의 자유까지 널리 포괄하게 되면 주관적 정당화 사유 역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Ⅳ. 결론
기본적으로 위법성 요건은 규제 목적 내지 입법 취지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당해 규범이 어떤 가치를 보호하고 관철시키기 위해 존재하는지를 나타내는 것이 규범 목적이라면 위법성 기준과 요건이란 그에 부합하는 구체적 평가기준이고, 부당성 판단을 위한 실체적인 요건에 해당한다. 행위 사실의 존재에 더하여 그 행위의 의미와 성격을 법적으로 규명하고 평가하는 것이 위법성 판단과정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규범의 가치기준과 보호법익 역시 변화를 겪게 되고,54) 그에 따라 위법성 판단기준과 그 평가방법 역시 적절히 수정되어 왔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보호법익 내지 규범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다. 그러한 견지에서 경쟁제한 의도나 목적을 일반요건화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고 적절한 것인지는 규범 목적과 위법성 판단기준에 비추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법익을 보호하고 실현하는데 혹은 남용의 본질을 확인하는 표지로써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라면 의도나 목적은 대상 행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반요건화는 불필요한 일일 것이다. 남용 규제의 목적을 경쟁 과정의 보호, 기능적 경쟁의 보호에 있다고 믿는 EU 경쟁법은 엄격하게 장점에 의한 경쟁 외에 다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따라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그에 부합하지 않는 배제적 형태의 거래 행위를 채택하는 것은 때로 남용으로 규제된다. 이때 남용의 결정적 표지는 행위의 실제 효과가 아니라 관련 시장 내 경쟁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는지 여부이고, 그러한 경우에도 필요에 따라 행위자의 목적과 의도를 적절히 고려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때로 행위자의 의도나 목적이 지배력 강화에 있거나 경쟁제한에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면 남용으로 규제되지만, 개별 사안마다 유무를 확인하여 전면적으로 그를 반영하거나, 혹은 전적으로 배제하는 태도는 아니다. 또한 미국 셔먼법상 독과점 규제는 소비자 후생을 주요 목적으로 하여 경쟁제한행위를 금지하면서 독점화 행위에 일반 의도를, 독점화 기도행위에는 특정 의도를 요구하였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핵심적이고 적극적인 요건으로서가 아니라 행위의 효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범위 내에서만 이를 참고하고 있다.
이와 달리 독점규제법상 남용규제의 목적을 ‘독과점적 시장에서의 경쟁 촉진’에 두면서 경쟁제한 행위를 금지하면서도 ‘경쟁제한성’ 자체를 엄격하고 협소하게 해석하는 것에 더하여 경쟁제한의 의도 내지 목적을 위법성 판단의 일반 요건으로 정립하는 판례의 태도는 남용 규제의 애초 목적을 달성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경쟁제한성을 추후의 가격인상이나 생산량 감소, 소비자 후생 감소를 통해 파악하게 됨으로써 과정으로서의 경쟁 그리고 거래의 자유가 다소 간과될 위험이 있는 데다 경쟁제한의 의도 내지 목적이 내재된 행위만을 남용으로 규제한다면 배제적 형태로 이루어지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많은 행위가 시장구조에 미치는 악영향에도 불구하고 적절히 규제되지 않을 위험도 크다.55) 사업자의 경제적 동기, 행위의 배경이 무엇이든 시장구조를 고착화하고 자유로운 경쟁과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규범 목적이라면 의도 여부에 대한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이때 남용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해 행위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유지·강화시키고 시장 경쟁을 구속·침해하는지를 살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의도와 효과’로 이루어진 누적적·필수적 충족 요건에서 의도 요건을 배제하고, 보다 정밀한 판단이 필요한 경우나 위법성 판단 과정에서 반경쟁적 의도나 목적이 드러났을 경우에 한하여 의도를 고려·반영하는 것이 적절하다. 의도의 증거를 완전히 격하하는 것은 행위의 효과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관련 증거를 무시하는 것일 수 있으며, 실제로 의도의 증거는 그것이 특정한 행위의 유용성과 효율을 설명하고 반영하는 것일 때 가장 유용할 수 있다.56) 또한 의도가 부재한다고 해서 경쟁제한적 효과를 초래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남용 규제의 법익 보호와 실효성 측면에서 부정적이다. 따라서 현재 실무상 태도처럼 주·객관적 요소를 ‘모두’ 요구하는 것은 규제 당국에 과도한 입증부담을 지워 법집행을 위축시키고 규제 비용의 증가만 초래할 뿐이므로, 필수적 위법성 요건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경쟁제한성 판단에 보완적이고 추가적인 고려요소로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
남용규제와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고 인용되는 저 유명한 문구, ‘독점금지법은 경쟁 그 자체를 보호하는 것이지 경쟁사업자나 거래상대방의 사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는 주장이 되풀이 된다. 그런데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하는 독과점 구조의 시장에서 경쟁사업자 혹은 거래 상대방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이 단순히 사적 불이익에 불과한지에 대해서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독과점 시장에서 경쟁사업자가 갖는 의미는 경쟁시스템과 전체적인 경쟁질서와의 관련성 안에서 파악되어야 하고, 가시적인 정량적 지표를 통해 평가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남용행위가 ‘객관적 개념’으로 평가되는 것처럼 그들이 입은 불이익, 경쟁사업자가 경쟁질서 내에서 갖는 중요성 역시 경쟁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객관적·규범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