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현행법상 인정되는 신탁은 신탁법상의 신탁과 민법 해석상의 신탁 및 명의신탁 이상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1) 우리나라의 판례는 민법 해석상의 신탁을 단순히 소유명의만을 타인의 명의로 등기해 두는 명의신탁까지 확대하여 적용하여 그 유효성을 인정해 왔다. 명의신탁제도는 1912년 일제의 토지조사령에 따른 종중 소유의 부동산소유권을 등기하기 위한 과정에서 종중이 아닌 개인의 명의로 등기할 것을 요구한데서 비롯되었는데,2) 일제가 종중 소유 부동산을 개인의 명의로 등기하는 것을 허용한 이유는 종중 재산이 쉽게 유출되도록 하여 종중과 종중원 간 다툼을 유발하고 종국적으로는 일제의 압제에 저항할 수 있었던 인적공동체인 종중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함이었다.3)
이처럼 명의신탁제도는 일제가 도입한 편법적인 등기제도이자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유별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판례는 해방 이후에도 명의신탁 법리를 더욱 확장·발전시켜, 명의신탁의 대상을 부동산에 한정하는 대신 대외적으로 공부상의 소유관계가 공시되는 동산, 채권 기타의 법적 지위로 확대하였고, 명의신탁의 목적도 따지지 않고 유효성을 인정하였다.4) 명의신탁제도가 민법상 부동산 물권취득에 등기를 요하는 형식주의에 반할 뿐만 아니라 일물일권주의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5)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판례의 태도는 매우 이례적이고,6) 이와 같은 판례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명의신탁을 통해 책임재산을 은닉하여 조세포탈, 부동산 투기 등 탈법행위가 이루어지는데 일조하였다.7)
이 과정에서 명의신탁제도의 해악을 막기 위한 입법적인 노력이 없지는 않았으나 실효성을 갖지 못하였고,8)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이라 한다)에 이르러서야 원칙적으로 모든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부동산 물권변동을 무효화 하였다.
하지만 부동산실명법이 시행된 때로부터 사반세기가 경과하였음에도 명의신탁이 근절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동법의 입법취지가 효과적으로 달성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명의신탁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될 수 있겠으나, 필자는 무엇보다도 현행 법령과 판례가 명의신탁자에게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이 귀속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명의신탁자 입장에서는 형사처벌을 받거나 과징금 등을 납부하고서라도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것이므로,9) 부동산실명법에 위반에 따른 제재를 무릅쓰고서라도 금지된 명의신탁을 시도할만한 충분한 동기가 부여되는 것이다.10)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탈세와 투기 및 탈법행위 등 반사회적 행위인 명의신탁을 근절이라는 부동산실명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명의신탁자에게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이 귀속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논의의 전제로, 후술하는 명의신탁의 유형들 중 등기명의신탁(2자간 등기명의신탁, 3자간 등기명의신탁)에 한정하여 신탁자에게 소유권이 귀속되는 것을 막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하고, 계약명의신탁이나 부동산실명법 적용의 예외 등에 관하여는 필요한 부분에 한하여 논의하기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명의신탁의 유형과 등기명의신탁의 법률관계를 살핀 다음(Ⅱ), 해석론(불법원인급여)과 입법론의 관점에서 나누어 검토한다(Ⅲ). 특히 최근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11)을 통해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여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경료된 명의신탁등기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되는지에 관하여 판단하였으므로, 위 판결의 타당성도 함께 살피기로 한다.
Ⅱ. 등기명의신탁 일반론
부동산실명법 제2조 제1호는 명의신탁약정을 부동산의 실권리자와 타인 간에 대내적으로는 실권리자가 부동산 물권을 보유하거나 보유하기로 하되, 등기(가등기를 포함)는 그 타인의 명의로 하기로 하는 약정으로 정의하며, 위 약정에는 위임·위탁매매의 형식에 의하거나 추인에 의한 경우를 포함한다. 하지만 양도담보와 가등기담보, 상호명의신탁, 신탁법 또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른 신탁재산인 사실을 등기한 경우에는 명의신탁 개념에서 제외하였다.12) 또한 부동산실명법상 명의신탁의 개념에 해당하더라도 법 시행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종중 소유의 부동산, 배우자 명의로 부동산 물권등기, 종교단체 명의로 그 산하조직이 보유한 부동산에 관한 명의신탁은 조세포탈이나 강제집행의 면탈 또는 법령상 제한의 회피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허용된다(부동산실명법 제8조).13)
위와 같이 부동산실명법이 적용되지 않거나, 적용이 제한되는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명의신탁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부동산실명법이 금지하는 명의신탁의 유형은 통상 등기명의신탁과 계약명의신탁의 두 가지가 있고, 등기명의신탁은 다시 명의신탁자가 원소유자인 매도인으로부터 부동산을 매수하면서 명의수탁자의 명의를 빌어 등기하기로 약정하는 경우(3자간 등기명의신탁)와14) 명의신탁자가 소유하던 부동산을 명의수탁자의 명의로 가장 매매·증여하여 등기를 이전하는 경우(2자간 등기명의신탁)로15) 구분한다.16) 계약명의신탁은 부동산물권 취득 시 신탁자와 수탁자 간에 명의신탁약정을 맺고 신탁자의 위임에 따라 수탁자가 매매계약의 당사자가 되어 매도인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등기를 명의수탁자 앞으로 이전하는 경우를 말한다.17) 어느 유형에 해당하든지 신탁자와 수탁자 간에 명의신탁약정이 존재해야 한다.18)
3자간 등기명의신탁과 계약명의신탁을 구별하는 실익은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2항 단서 적용 여부에 있다.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2항 단서는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취득하기 위한 계약(주로 매매계약)에서 명의수탁자가 어느 한쪽 당사자가 되고 상대방 당사자(원소유자인 매도인)가 명의신탁약정 사실을 몰랐을 경우 예외적으로 부동산 물권변동을 유효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계약명의신탁을 의미한다.
한편, 3자간 등기명의신탁과 계약명의신탁의 구별은 부동산 물권변동의 원인이 되는 매매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확정하는 계약당사자 확정 문제로 귀결된다. 매매계약의 당사자를 확정하는 문제는 법률행위인 계약의 해석문제이고 판례 역시 마찬가지이다.19) 판례는 행위자와 상대방의 의사가 일치하는 경우에는 그 일치한 의사대로 행위자의 행위 또는 명의인의 행위로서 확정하여야 할 것이지만, 그러한 일치하는 의사를 확정할 수 없을 경우에는 계약의 성질, 내용, 목적, 체결경위 및 계약체결을 전후한 구체적인 제반사정을 토대로 상대방이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행위자와 명의자 중 누구를 계약당사자로 이해할 것인가에 의하여 당사자를 결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20)
이와 같은 관점에서 판례는 계약명의자가 수탁자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계약명의자인 명의수탁자가 아니라 명의신탁자에게 계약에 따른 법률효과를 직접 귀속시킬 의도로 계약을 체결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명의신탁자가 계약당사자라 할 것이므로, 이 경우의 명의신탁관계는 3자간 등기명의신탁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였다.21)
2자간 등기명의신탁에서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사이에 체결한 명의신탁약정은 무효이고(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1항), 명의신탁약정에 부수하는 별도의 약정(예컨대 위임계약)을 맺었다면 그 약정 역시 민법 제137조 일부무효의 법리에 의해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22) 또한,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 물권변동 역시 무효이다(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2항 본문). 2자간 등기명의신탁의 경우에는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간의 명의신탁약정이 부동산 물권변동의 원인행위이므로 물권변동의 유인성론을 따르는 판례와 다수의 견해에 의하면 이는 논리적인 귀결이다.23) 그리고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2항 단서는 계약명의신탁에 대해서만 적용되므로 등기명의신탁에서는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물권변동은 언제나 무효이다.
따라서 2자간 등기명의신탁에서는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 앞으로 등기가 경료되더라도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고 원권리자인 신탁자가 부동산 소유권을 그대로 보유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신탁자는 소유권에 기하여 수탁자를 상대로 수탁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할수 있고 자신의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을 행사하여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청구하거나 진정등기명의회복청구권으로서 자기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할 것을 청구할 수도 있다.24) 위 등기청구권은 민법 제214조가 규정한 소유권에 기한 물권적 청구권의 성질을 가지므로 소멸시효에도 걸리지 않는다.25)
그러나 명의신탁 근절이라는 부동산실명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탁자에게 부동산소유권이 귀속되는 결론은 바람직하지 않다. 신탁자에게 소유권이 귀속되는 문제에 관하여는 후술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2자간 등기명의신탁의 나머지 법률관계에 대해서만 간략히 살핀다.
부동산실명법에 위반한 신탁자는 과징금을 납부해야 하고(부동산실명법 제5조 제1항), 과징금을 부과받고도 지체 없이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자신의 명의로 등기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받는다(부동산실명법 제6조 제1항). 또한 이와 별개로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신탁자와 수탁자는 형사처벌의 대상이다(부동산실명법 제7조).
한편,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은 명의신탁약정의 무효와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부동산 물권변동의 무효는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였다. 여기서 ‘제3자’는 명의신탁약정의 신탁자와 수탁자를 제외한 자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수탁자가 소유자임을 기초로 그와 새로운 이해관계를 맺은 자를 의미하고, 제3자의 선의 악의 여부를 묻지 않는다26) 그리고 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3항에 관한 내용은 3자간 등기명의신탁에서도 동일하다.
3자간 등기명의신탁 관계에서도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간의 명의신탁약정은 무효이다.27) 따라서 수탁자는 신탁자에게 계약상 의무를 부담하지 않으며, 신탁자는 수탁자를 상대로 명의신탁약정을 원인으로 한 어떠한 청구(예를 들어 소유권이전등기청구)도 할 수 없다. 또한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물권변동 역시 무효이다. 따라서 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에게 잔존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매도인은 자신의 소유권에 기하여 수탁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할 수 있고,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로써 수탁자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말소28)를 청구하거나 진정명의회복을 위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할 수도 있다.29)
그런데 3자간 등기명의신탁은 2자간 등기명의신탁의 경우와는 달리 신탁자와 수탁자 간의 명의신탁약정만이 등기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탁자와 매도인 사이의 부동산 매매계약도 등기원인에 포함된다.30) 그럼에도 부동산실명법은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물권변동만을 무효로 규정할 뿐, 물권변동의 직접적인 원인행위인 매매계약의 효력에 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하여 신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명의신탁약정이 무효인 사정은 신탁자와 매도인 간의 매매계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매매계약은 당연히 유효하다고 해석하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고,31) 판례도 마찬가지 태도이다.32)
하지만 명의신탁약정의 무효가 매매계약의 효력과 무관하다고 하여 반드시 매매계약이 유효라고 볼 필연적인 이유는 없고, 매매계약의 효력에 관하여는 별도의 해석이 필요하다.33) 여기서 매매계약의 효력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매매계약을 유효로 볼 경우에는 신탁자에게 매매계약을 원인으로 한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 인정되어 신탁자에게 소유권 귀속이 될 여지가 있는 반면, 매매계약을 무효로 볼 경우에는 신탁자가 매도인을 상대로 계약이행청구를 할 수 없으므로 다른 쟁점들을 고려할 필요없이 신탁자에게로의 소유권 귀속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탁자와 매도인 간 매매계약을 유효로 보는 판례와 다수설에 의하면, 매도인은 신탁자와 체결한 매매계약에 기하여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할 채무를 부담하고 그 반대급부로 매매대금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 신탁자 역시 매도인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할 수 있고 이미 지급한 매매대금은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또한 신탁자는 매도인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해서 매도인을 대위하여 수탁자를 상대로 무효인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할 수 있고 매도인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할 수도 있다.34)
반면에, 신탁자와 매도인 간 체결된 매매계약의 효력을 부정하는 학설은 크게 매도인의 신탁자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의무가 부동산실명법에 의해 금지되어 불능이어서 무효라는 견해와 계약의 목적이 불법적이거나 반사회적인 법률행위여서 무효라는 견해로 나뉜다. 전자의 견해는 3자간 등기명의신탁에서 신탁자와 매도인 간 매매계약에는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인 수탁자 앞으로 등기를 이전하도록 하는 특약이 존재하고 위 특약은 매매계약의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는 것이어서 부동산실명법에 의해 수탁자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불가능하다면 이는 원시적으로 불능인 계약이라고 본다.35) 후자의 견해는 신탁자와 수탁자 간의 명의신탁약정 자체가 불법적이거나 반사회적 목적에 의하여 무효라는 전제하에, 매매계약 역시 명의신탁의 설정을 위한 목적의 불법성 또는 반사회성이 전도되어 무효라고 본다.36)
생각건대, 명의신탁자와 매도인 사이에 체결된 매매계약은 무효로 보아야 한다. 수탁자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기로 하는 특약은 명의신탁자와 매도인 간에 체결된 매매계약의 본질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37) 명의신탁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부동산등기부상에 드러나지 않은 채로 부동산의 실권리자 행세를 하는 것인데, 만일 매도인과 사이에 위와 같은 특약이 없었더라면 신탁자는 자신의 명의가 그대로 드러나는 일반 매매계약을 체결했으리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다수설과 판례처럼 신탁자와 매도인 간에 수탁자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하는 내용의 특약을 단지 매매계약에 부수하는 약정38)이나 제3자방 이행약정39)으로 볼 것이 아니라 매매계약의 가장 본질적인 구성요소로 이해하는 것이 상식과 경험칙에 부합한다.
또한, 부동산실명법의 입법취지에 비추어 보더라도 신탁자가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는 길은 차단하여야 한다.40) 부동산실명법 제1조는 부동산실명법의 목적을 부동산 물권을 실권리자 명의로 등기(실체관계에 부합하는 등기)하도록 함으로써 부동산등기제도를 악용하는 투기·탈세·탈법행위 등 반사회적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문언의 해석상 등기를 실체관계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은 반사회적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수단이다.41) 즉, 부동산 물권의 실체관계의 부합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할 수는 없고 명의신탁을 통한 투기나 탈세 및 탈법행위 같은 반사회적행위를 막는 것이 부동산실명법의 입법목적인데, 신탁자와 매도인 간 매매계약을 유효로 해석하여 신탁자에게 부동산 소유권 취득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종국적으로 부동산실명법의 입법목적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실명법의 입법취지가 잠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신탁자와 수탁자 간 매매계약을 유효로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동산실명법에 위반한 명의신탁약정이 민법 제103조의 반사회질서행위에 해당하여 무효라는 전제하에 위 반사회성이 전도된 신탁자와 매도인 간의 매매계약도 무효라는 견해 역시 일리가 있다. 물론 위 주장에 대하여 신탁자와 수탁자 간의 법률관계가 신탁자와 매도인 간의 법률관계에 논리필연적으로 직접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다른 만큼 신탁자와 수탁자간 명의신탁약정과 신탁자와 매도인간 매매계약은 각각 별개로 불법성을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도인과 신탁자 사이에 체결된 매매계약 그 자체만을 놓고 보더라도 위 계약이 민법 제103조에 해당되어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판례에 의하면 민법 제103조에 의하여 무효로 되는 반사회질서 행위는 법률행위의 목적인 권리의무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 내용 자체는 반사회질서적인 아니라고 하여도 법률적으로 이를 강제하거나 법률행위에 반사회질서적인 조건 또는 금전적인 대가가 결부됨으로써 반사회질서적 성질을 띠게 되는 경우 및 표시되거나 상대방에게 알려진 법률행위의 동기가 반사회질서적인 경우를 포함한다고 본다.42) 그런데 매도인과 신탁자는 매매계약 체결시 제3자인 수탁자에게 소유권 등기를 이전하기로 하는 일종의 특약을 하였고, 이는 매매계약 체결의 동기의 불법성이 표시되거나 매도인에게 알려진 것43)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매도인과 신탁자 사이의 매매계약은 계약 자체의 해석을 통해 원시적 불능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이어서 무효일 뿐만 아니라 반사회적 목적 내지는 불법성을 갖고있어 민법 제103조에 의해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신탁자는 매도인을 상대로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없고, 이 경우 매도인과 신탁자 간에는 민법 제535조에 따른 계약체결상의 과실책임 문제만 남게 된다. 그리고 신탁자가 수탁자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뒤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여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Ⅲ. 등기명의신탁에서 소유권귀속 검토
전항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탁자가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도록 하는 것은 부동산실명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한다. 3자간 등기명의신탁의 경우 등기원인인 신탁자와 매도인 간의 매매계약이 원시적 불능이어서 무효이므로 신탁자가 소유권을 취득할 여지가 없다는 점은 확인하였으나, 2자간 등기명의신탁의 경우에는 유일한 등기원인인 신탁자와 수탁자 간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물권변동이 모두 무효가 됨에 따라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이 신탁자에게 그대로 남아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명의신탁자는 비록 부동산실명법상 제재를 받을지언정, 부동산 소유권을 잃게 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명의신탁을 시도할 충분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은 부동산실명법의 입법취지인 명의신탁의 근절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2자간 등기명의신탁의 경우에도 신탁자에게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이 귀속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검토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신탁자가 명의수탁자를 상대로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경료된 수탁자 명의 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것이 민법 제746조의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여 금지되는 것인지 살펴보고, 불법원인급여 검토와 별개로 부동산실명법을 개정하여 신탁자에게 소유권이 귀속되는 것을 차단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여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수탁자 명의로 등기를 한 경우, 명의신탁자가 명의수탁자를 상대로 그 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것이 민법 제746조의 불법원인급여를 이유로 금지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에서,44) 다수의견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수의견의 구체적인 논거는, ①부동산실명법은 부동산 소유권을 실권리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을 전제로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물권변동을 규율하고 있는 점, ②부동산실명법을 제정한 입법자의 의사 역시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실권리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점, ③부동산실명법에 위반한 명의신탁등기가 불법원인급여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부동산실명법의 규정과 규범목적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하는데,45) 부동산실명법은 민법 제103조와 제746조의 관계를 부동산실명법 자체에서 명확하게 해결하고 있는 점, ④신탁부동산에 관한 권리를 수탁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신탁자의 재산권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할 소지가 큰 점 등을 들고 있다.
반면에, 반대의견은 수탁자의 상속인 명의의 등기가 민법 제746조의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므로 원고의 피고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부정하였다. 반대의견은, ①명의신탁을 효과적으로 근절하기 위해 사법적 결단이 필요한 점, ②법제정 당시와 달리 명의신탁이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라는 공통의 인식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점, ③법제정 당시 입법자도 신탁자가 신탁부동산 소유권을 상실할 가능성을 예상했던 점, ④부동산실명법 제4조 제2항은 물권행위의 유인성론을 취하고 있는 우리 법제하에서 당연한 내용을 규정한 확인규정에 지나지 않으므로, 위 규정을 들어 민법 제746조의 불법원인급여 제도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부당한 점, ⑤부동산실명법상 과징금과 이행강제금 제도는 신탁자 스스로 불법적인 명의신탁상태를 해소할 것을 간접적으로 강제하기 위한 것일 뿐인 점 등을 주요 논거로 들고 있다.
불법원인급여 긍정설은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명의신탁약정은 반사회질서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의하여 이전된 부동산 소유권 등기는 불법원인급여로서 신탁자가 수탁자를 상대로 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46) 즉, 부동산실명법이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부동산 물권변동을 금지한 이유는 명의신탁약정이 반사회적 행위이기 때문이고, 위 규정은 민법 제103조가 구체화된 일종의 특별조항이라고 이해한다. 따라서 민법 제746조 본문이 적용되어 신탁자는 수탁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할 수 없고 그에 따른 반사적 효과로서 부동산소유권은 명의수탁자에게 귀속된다고 한다.
반면에, 불법원인급여 부정설은 강행규정 위반이나 민법 제103조의 사회질서 위반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 민법 제746조의 불법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기본적인 전제에서, 명의신탁자에게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이 귀속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47) 이 견해는 부동산실명법이 금지하는 명의신탁이라 하여 언제나 불순한 동기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를 불법원인급여라고 단정할 수 없고, 오히려 신탁자의 재산귀속에 관한 선택 자체를 부정하여 수탁자에게 소유권을 귀속하는 것이 건전한 도덕감정에 반한다고 본다.48) 또한 민법 제746조의 불법한 원인은 제한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부동산실명법에 위반된 명의신탁행위가 민법 제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여서 무효에 해당되기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민법 제746조의 불법한 원인으로 확장하여 해석될 수는 없다고 해석하기도 한다.49)
한편, 절충적인 견해로서 투기 등 반사회적인 행위에 대해서까지 사적자치의 원칙으로 보호할 수는 없으므로 명의신탁 중 투기나 탈세 등 불법적인 약정에 따라 급부된 등기는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보거나,50) 불법원인급여 긍정설의 관점에서 부동산실명법 제정 이후의 명의신탁(장래의 명의신탁)은 반사회질서적 법률행위이므로 무효이고 이에 따라 이뤄진 등기는 불법원인급여인 반면, 부동산실명법에 의한 실명전환의무를 위반한 기존의 명의신탁약정은 사회정책적 고려에 의해 무효로 규정되었으므로 이 때 이전된 등기는 불법원인급여가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51)
생각건대, 판례 및 다수설과 같이 민법 제746조와 제103조는 표리의 관계에 있다고 보아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로 인해 급부가 이루어진 경우 반회질서의 법률행위 자체는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가 되고 위 급부에 대해서는 법적 보호(이익의 반환청구)를 거절함으로써 제103조의 취지를 실현하고 소극적으로 법적 정의를 유지하려는 취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52) 만일, 제103조에 의해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는 무효가 되었으나 급여자로 하여금 부당이득 반환제도를 통해 이익을 반환받도록 허용한다면 이는 제103조가 금지하는 상황을 그대로 용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판례는 제746조를 문언 그대로 적용할 경우 발생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피하기 위해53) 강행법규 위반과 사회질서 위반을 구분하거나 급부자와 수익자의 불법성을 비교하거나 규범 목적을 고려하기도 하나 어느 방식을 취하든지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명의신탁약정에 기한 부동산물권변동(소유권이전등기)을 불법원인급여로 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고 판단된다.
우선 부동산실명법 제1조는 명의신탁을 부동산등기제도를 악용한 투기·탈세·탈법행위 등 반사회적 행위임을 규정하고 있는 바, 부동산실명법에 위반한 명의신탁약정은 강행규정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반사회질서위반행위로 보아야 한다. 판례는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하여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기해 이루어진 등기라 하더라도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54) 강제집행면탈을 목적으로 한 명의신탁등기도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지만,55) 투기와 탈세 등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명의신탁약정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판례의 위와 같은 태도는 부동산실명법의 입법취지와 목적을 피상적으로 이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56)
한편, 명의신탁 관계에서 급부자와 수익자의 불법성을 비교하더라도 급부자의 불법성이 수익자의 그것보다 더 크다고 보는데 무리가 없다. 명의신탁약정을 맺는 목적 자체가 급부자인 신탁자가 자신의 재산을 은닉하여 탈세나 강제집행면탈 등 자원의 분배를 왜곡시키는데 있다. 신탁자는 수탁자 뒤에 숨어 자신의 이익을 한껏 누리는 반면에, 수탁자는 비록 불법에 동조한 자라고 하더라도 명의신탁약정의 대가로 특별히 얻는 것이 없다.
물론 신탁자와 수탁자 간 명의신탁약정과 동시에 위임약정 등을 체결하면서 그에 따른 대가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으나,57) 부동산실명법 위반으로 인한 형사처벌의 위험 부담하는 것에 비하면 미약하다고 볼 수 있다. 불법원인급여를 부정하는 견해는 부당이득반환제도의 취지가 공평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급부자인 신탁자와 함께 불법성이 있는 수탁자가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지만, 위와 같이 불법성의 크기가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현실 및 아래에서 살펴볼 입법취지 등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결과가 불공정하다고 판단되지는 않는다.
불법원인급여 부정설과 같은 취지에서 판례는 대가없이 수탁자에게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이 귀속되는 것이 일반국민의 법감정에 반한다고 하나, 오히려 수익자인 수탁자보다 불법성이 현저하게 큰 신탁자의 부당이득의 반환을 용인하지 않는 것이 공공재화로서의 토지의 성격이 강조되고 있는 현실과 탈세나 투기 등의 반사회질서적 행위에 대한 엄격한 제재를 요구하는 일반 국민의 법감정에 더욱 충실한 해석이라 할 것이다.
또한 부동산실명법의 규범목적이나 입법취지를 고려하더라도 신탁자를 보호하는 결과는 차단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부동산실명법의 입법 목적은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등기의 실현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통해 투기·탈세·탈법행위 등 반사회적행위를 막는 것을 진정한 목적으로 보아야 한다.58) 그리고 이러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탁자에게 불법을 원인으로 한 수익이 귀속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과거 투기를 목적으로 한 명의신탁을 금지했던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의 형사처벌조항에 더하여 과징금과 이행강제금까지 부과한 부동산실명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명의신탁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종국적으로 신탁자가 명의신탁관계에서 급부한 부동산 또는 부동산매매대금 상당액 등의 이익을 보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즉, 명의신탁 법률관계 자체가 수탁자가 이를 드러내지 않는 한 적발되기 어렵고, 설령 적발되어 형사처벌이나 과징금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신탁부동산의 소유권 등 불법 원인에 기해 제공된 수익의 가치가 제재의 정도에 비해 더 큰 경우가 많으므로 현행법상 제재에도 불구하고 명의신탁이 끈임없이 시도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바로 이와 같은 점에서 부동산실명법의 벌칙, 과징금 등 제재조항을 엄격히 시행하여 법적용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주장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불법적인 명의신탁을 근절하고 부동산실명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불법 원인으로 급여한 수익이 신탁자에게 반환되는 것을 부정하여야 한다.
신탁자의 부당이득 반환청구를 부정하여 수탁자에게 신탁부동산소유권을 귀속시키는 것은 신탁자의 재산권 본질을 침해하여 위헌 소지가 크다는 반론이 있으나, 이는 현재의 변화된 환경을 고려하지 못한 채 법제정 당시의 상황에 얽매여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부동산실명법 제정 당시는 80년간 유효로 인정되어 오던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기한 부동산물권변동의 사법적 효력을 일거에 무효화 하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종중이나 부부간 명의신탁의 예외를 인정하고 수탁자에게 소유권이 귀속되는 조항을 검토 과정에서 삭제하는 등 여러 완충 조치를 취한 것을 납득할 수 있다.59)
그러나 부동산실명법이 시행된지 25년이 경과된 현재에 이르러서도 명의신탁은 근절되지 않는 반면, 개인의 재산권 행사에 대한 헌법상의 제한의 필요성은 나날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부동산실명법 제정 당시의 사정이나 입법자의 의사에 얽매여 신탁자에게 신탁부동산의 소유권 등 이익이 귀속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섣불리 위헌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60)
결국 명의신탁자의 명의수탁자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는 부정되어야 하고, 2자간 등기명의신탁에서 수탁자는 신탁자를 상대로 무효인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제공된 급부(부동산 소유권 이전등기)를 반환할 필요가 없다.
명의신탁을 근절하여 부동산실명법이 완전히 정착될 수 있게 하려면 불법원인급여제도의 적용과 별개로 부동산실명법을 개정하여 신탁자에게 소유권이 귀속되는 것을 막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당초 명의신탁약정 및 그에 따른 부동산물권변동의 사법적 효력을 무효로 규정한 부동산실명법 제정이 명의신탁 근절을 위한 입법자의 정책적인 결단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법의 실효성을 위해 법개정을 고려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다.
부동산실명법 제6조의 이행강제금 조항에 의해 특히, 2자간 등기명의신탁에서 과장금을 부과받은 신탁자가 일정 기간 내 해당 부동산 등기를 자신의 명의로 등기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받게 된다.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수탁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판례와 다수설은 본 규정을 유력한 논거로 삼는다. 왜냐하면 신탁자에게 신탁부동산의 등기의무를 부여한 것 자체가 신탁자가 신탁부동산의 소유자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법 취지에 따르면 신탁자에게로의 부동산소유권 귀속을 허용한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행강제금 조항만을 두고 보았을 때에는 다수설 및 판례와 같이 해석될 여지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행강제금 조항은 단지 간접강제조항에 불과할 뿐 신탁자에게 소유권 귀속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거나61) 동조항은 부동산실명법 제정 전에 이루어진 명의신탁에 대한 사후적인 경과조치일 뿐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62)
생각건대, 부동산실명법상 이행강제금 조항이 그 동안 명의신탁 근절이라는 부동산실명법의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위 조항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명의신탁은 근절되지 않고, 현재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실효성 있는 제재수단으로 기능하지 못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반면에, 이행강제금 조항 자체는 그 적용범위나 적용대상 등 내용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 조항의 전제나 입법취지 등에 관하여 불법원인급여 긍정설과 부정설이 각자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이행강제금 조항을 단순히 간접강제조항으로 해석하여 신탁자에게 소유권 귀속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탁자가 자신의 명의로 신탁부동산의 소유권 등기를 경료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당초부터 위 등기를 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제재규정을 두는 것이 모순이라는 다수설과 판례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이 경우 이행강제금조항은 결국 신탁자에게로의 소유권 귀속 차단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명의신탁 근절이라는 부동산실명법의 입법목적 달성을 위해 효과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인 신탁자에게 소유권을 차단하는 것을 실행하는데 장애가 될 뿐인 이행강제금 조항을 굳이 존치시킬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행강제금 조항을 삭제하여 불필요한 논란의 여지를 제거하는 것이 간명하다고 판단된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부동산실명법 제정 당시 입법자는 재산권의 본질적 침해에 따른 위헌 시비를 피하기 위해 명의신탁 부동산의 소유권을 일률적으로 수탁자 소유로 귀속시키는 방안을 채택하지 않았다.63) 하지만 반사회질서적 행위인 명의신탁을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해서는 신탁자에게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이 귀속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또한 부동산실명법 제정 당시와 비교해 보았을 때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 역시 명의신탁을 수단으로 투기와 탈세 등 반사회질서 행위를 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수준으로 인식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재산권 역시 무제한의 권리행사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행사해야 하는 제한이 있는 점에서 부동산 자산을 은닉하여 자원의 재분배를 왜곡하는 반사회질서적 행위를 하는 신탁자에게 신탁부동산 소유권의 귀속을 차단하는 것도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고 본다.
다만, 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규정을 신설할 경우 부동산실명법상 명의신탁약정의 효력이나 그에 따른 물권변동의 효력에 관한 규정 등도 수정이 가해져야 할 여지가 있으므로, 위 규정 대신 신탁자의 수탁자에 대한 반환청구권(신탁부동산의 소유권 뿐만 아니라 수탁자에게 지급한 부동산 매매대금상당액의 반환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을 부정하는 규정을 두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Ⅳ. 맺으며
우리나라 판례가 일제 강점기 당시 만들어진 편법적인 등기제도인 명의신탁제도를 확대·발전시킨 점과 해방 및 산업화를 거치면서 명의신탁제도가 부동산 투기·탈세·강제집행의 면탈 등 각종 탈법행위의 수단으로 기능한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부동산실명법이 제정되어 시행된 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경과하였음에도 불법적인 명의신탁은 근절되지 않고 있고, 부동산을 매개로 한 소득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는 점도 엄연한 현실이다.
법위반 효과로 형사처벌 규정은 물론 과징금과 이행강제금 등의 제재 조항까지 두었음에도 명의신탁이 사라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신탁자에게 신탁부동산 또는 명의신탁에 제공된 수익이 귀속되는 길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명의신탁을 통해 신탁자가 의도하는 투기 탈세의 경제적 가치는 막대한 반면, 법위반에 따른 제재를 받더라도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다면 제재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불법적인 명의신탁을 시도할 여지가 크다. 따라서 명의신탁 일소라는 부동산실명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탁자에게 신탁부동산 내지 수익이 귀속되는 것을 차단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우선, 3자간 등기명의신탁에서 신탁자와 매도인 간 매매계약의 효력에 관하여 부동산실명법은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나, 법률행위의 해석상 원시적 불능이어서 무효라고 보거나 민법 제103조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이 경우 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에게 유보되어 있고 신탁자는 매도인에게 매매계약에 기한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할 수 없다.
2자간 등기명의신탁의 경우에는 부동산실명법 규정상 신탁자에게 소유권이 유보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명의신탁약정에 제공된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는 민법 제746조의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여 신탁자는 소유권을 잃게 되고 반사적 효과로서 수탁자가 부동산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3자간 등기명의신탁에서 신탁자가 수탁자에게 제공한 부동산 매매대금 상당액 역시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여 반환청구가 허용되지 않는다.
입법적으로는 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확정적으로 취득하는 규정 혹은 신탁자의 반환청구권을 부정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부동산실명법 제6조 이행강제금 규정을 삭제하여 신탁자에게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이 귀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상 이견의 여지를 제거하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부동산등기제도를 악용한 반사회적 행위인 명의신탁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종국적으로 신탁자에게 이익이 귀속되지 못하도록 법률관계를 해석하고 입법적으로도 보완하여 논란의 소지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