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의 특별검사팀1)이 2017. 2. 28.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뇌물공여 등2)의 혐의로 구속기소한 후, 1·2·3심을 거쳐 현재 파기환송심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1심은 이 사건의 본질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으로 보고 2017. 8. 25. 이재용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반면에,3) 2심은 비자금을 조성하여 뇌물로 공여하는 등의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모습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여, 2018. 2. 5. 이재용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그를 석방하였다.4)
1심과 2심의 가장 큰 차이는 세 가지 점이다. 먼저, 1심은 정유라(최서원의 딸)의 승마지원을 위해 독일로 송금한 총 72억 9,427만원을 뇌물로 보았지만, 2심은 그 중 말구입비 36억 5,943만원을 제외하였다. 구입한 말 3필의 소유권은 여전히 삼성전자에 남아 있다고 본 것이다. 다음으로 제3자뇌물제공죄에서 말하는 부정한 청탁의 대상과 관련하여, 1심은 특검이 고안한 이른바 ‘포괄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과 그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인정한 반면에, 2심은 아예 그 ‘포괄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였다. 끝으로 1심은 안종범 前경제수석이 작성한 업무수첩들의 증거능력을 넓게 인정한 반면에, 2심은 이를 부정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말 3필에 대한 실질적인 사용·처분권한이 최서원에게 있다는 점에 대한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보고, 1심처럼 뇌물액을 72억 9,427만원으로 보았다. 또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나 내용이 구체적일 필요는 없고, 그에 대한 인식도 미필적인 것으로 충분하다는 전제에서, 대법원은 1심처럼 ‘포괄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안종범의 업무수첩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그 기재내용 중 박전대통령과 이재용의 대화내용과 박전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구분하여, 전자와 달리 후자는 안종범이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면 형소법 제313조 제1항에 따라 증거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5)
전체적으로 볼 때, 대법원은 1심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재용의 뇌물공여액은 대폭 늘어났다. 정유라의 승마지원을 위한 말구입비 36억 5,943만원 외에, 동계스포츠 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 2,800만원도 추가되어, 뇌물공여액은 88억원을 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특가법의 적용법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뇌물공여액은 동시에 삼성전자의 돈을 횡령한 것으로 평가되고, 또 국외도피재산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6) 양형의 기초가 되는 특경법상의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특경법 제3조 제1항 제2호)에서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특경법 제4조 제2항 제1호)으로 높아질 여지가 생기게 된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한 2심의 판단이 파기환송심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하지만 파기환송심의 재판장이 공판준비기일에 삼성그룹 준법감시제도의 운영실태를 평가하겠다고 밝히자, 특검은 집행유예를 선고하려는 예단을 드러낸 것이라며 그에 대한 기피신청을 제출했고, 그 재항고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되어7) 본안심리는 계속 지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기 전이지만, 그동안 드러난 이 사건의 몇 가지 특징적 쟁점들을 미리 정리·분석해 보고자 한다.
Ⅱ. 사건의 절차법적 쟁점들
이 사건은 무엇보다 현재의 구속사유가 갖는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구속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범죄가 어느 정도 소명되어야 하지만, 이는 구속을 위한 필요조건이고 충분조건이 아니다. 주거가 일정한 사람을 구속하기 위해서는 결정적으로 ‘증거인멸 혹은 도주의 우려’가 있어야 한다. 범죄의 중대성이나 재범의 위험성 및 피해자 등에 대한 위해우려 등도 참작할 수는 있지만, 어쨌든 이들은 외부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구속사유가 아니다. 범죄가 중대하더라도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면, 재판이 왜곡·파행될 여지가 없으므로 무죄로 추정되는 피고인에 대해 불구속재판을 하라는 것이 현행법의 취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과 관련하여 특검은 누차에 걸쳐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외쳤고,8) 따라서 구속을 위한 선택지는 사실상 ‘도주의 우려’ 하나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7. 1. 16.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영장담당판사는 아예 범죄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9) 그리고 이는 실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삼성공화국은 무법지대’10)라는 등의 비난여론이 비등하였고, 심지어 일부 변호사와 법학 교수들은 법원 입구에서의 노숙농성을 벌이기도 하였다.11)
이에 특검은 2017. 2. 13. 이재용을 다시 불러 조사한 후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였고, 이재용은 2017. 2. 17. 결국 구속되었다. 구속사유는 ‘도주의 우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12) 특검은 1차 영장청구가 기각된 후 이재용의 범죄를 소명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특검은 ① 2017. 1. 안종범의 보좌관 김건훈이 제출한 안종범의 수첩 39권이 결정적 증거가 되었고, ②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만이 아니라 삼성그룹의 여러 개별현안들이 지향하는 “포괄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이 있다”는 논리를 개발했으며, 이재용은 이 승계작업을 위해 뇌물을 공여했다는 취지로 피의사실을 변경한 것이 주효했다고 한다.13)
하지만 이미 언급한 것처럼, 범죄혐의의 소명은 구속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고, 또 이재용이 도주할 우려가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변경된 사정이 있다면, 그것은 1차 영장기각에 대한 사회의 비난여론이 비등했다는 점과 영장담당판사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판사의 성향이나 사회의 여론에 따라 영장의 발부여부가 좌우된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확실한 판단기준 내지 잣대가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일찍이 ‘구속요소의 계량화를 통한 구속기준 정립안’이나14) ‘영장항고제도 등 불복제도의 도입방안’15) 등이 제안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구속요소의 계량화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최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개별요소들을 모두 나열하기가 어렵다. 이들의 대부분을 나열한다고 하더라도 그 개별요소들을 평가한 값을 합산하여 최종결정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종결정을 먼저 내리고 이에 맞추어 개별요소들에 대한 평가를 조절해 갈 여지도 없지 않다. 사람들은 사안해결과 관련하여 미리 일정한 결론을 내려놓고 이를 확인해 나가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과 같은 인지적 편향성(cognitive bias)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6) 따라서 구속사유의 계량화는 아마도 투입한 노력에 비해 얻는 이익이 그리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영장항고제도와 같은 불복제도도 큰 실익이 없을 것이다. 우선 구속영장의 발부에 대한 피의자의 불복은 현행 체포·구속적부심의 장점을 능가하지 못한다.17) 여기에서는 피해자와의 합의와 같은 영장발부 이후의 사정까지 고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장기각에 대한 검사의 항고는 무엇보다 피의자의 지위가 장기간 유동적인 상태에 놓여 불안정하게 된다.18) 물론, ‘추가적인 보강수사를 통해 영장을 재청구하는 경우’보다 이 불복의 허용이 피의자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지만, 이 사건처럼 혐의가 여럿인 경우에는 영장기각과 이에 대한 불복, 그리고 그 절차가 종료된 후에 새로운 혐의를 추가한 영장의 재청구를 막을 방안이 없다.
따라서 이 사건이 시사하는 가장 현실적인 개선책으로, ‘재범의 위험성’과 ‘피해자 등에 대한 위해 우려’는 현행처럼 구속의 참작사유로 두되, ‘범죄의 중대성’을 이제는 하나의 독립된 구속사유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이 범죄의 중대성은 무죄추정의 원칙과 충돌할 여지가 많은 만큼, 중대한 범죄는 사형, 무기 또는 단기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형을 기준으로 삼는 등의 방법으로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19) ‘도주의 우려’를 판단할 때 범죄의 중대성을 너무 과도하게 고려하는 현행 실무20)에 제동을 거는 동시에, 이 사건과 같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에서 막연히 ‘도주의 우려’를 설시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이다.
그리고 2016. 11. 22. 시행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제10조 제1항은 이전에 시행된 다른 특검법들21)과 마찬가지로 재판기간을 “제1심에서는 공소제기일부터 3개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선고일부터 각각 2개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21조의 판결선고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한 것이다. 그리고 동법 제10조 제2항은 상소와 상소이유서 및 답변서의 제출과 같은 상소절차 진행기간들을 모두 7일로 단축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기간단축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았다.22) 즉, 단축된 “기간 내에 가능한 신속하게 재판을 종결함으로써 국민적 의혹을 조기에 해소하고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자는 것일 뿐, 피고인의 방어권이나 적정절차를 보장하지 않은 채 재판이 위 기간 내에 종결되어야 한다거나 위 기간이 도과하면 재판의 효력이 상실된다는 취지는 아니다”고 한다. 또 ‘재판부가 집중심리방식으로 사건을 진행하는 경우 그 기간 내에 재판을 마무리하는 것이 무리한 일로 보이지 않는 점’ 및 공직선거법도 재판기간을 단축하고 있는 점을 놓고 볼 때, 재판기간을 한정한 것을 정당화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학계에서도 소송촉진특례법 제21조나 민사소송법 제199조가 언급하고 있는 판결의 선고기간은 훈시규정일 뿐이라는 점에 이의가 없고,23) 따라서 이 사건의 심리도 특검법상의 재판기간이 아니라, 형소법상의 피고인 구속기간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가령, 1심은 구속기간 만료일인 2017. 8. 27.보다 이틀 앞선 2017. 8. 25. 선고되었다. 이에 반해 특검법상의 단축된 상소절차 진행기간은 여기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불변기간으로 다루어졌고, 특검과 변호인단은 판결선고 다음날 즉각 항소한 후 법원으로부터 2017. 9. 6. 소송기록접수통지서가 송달되자 7일이 경과하기 직전일인 2017. 9. 12. 각각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소송촉진특례법 제21조의 재판기간을 훈시규정으로 볼 수밖에 없는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특검법상의 재판기간을 단축한 입법자의 의사가 단지 ‘가능한 한 빨리하라’는 의미에 그치는 것인지는 재고해 보아야 한다. 가령, 소송촉진특례법 제21조의 재판기간은 심급별 피고인의 구속기간에 맞추어 각각 6개월, 4개월, 4개월로 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7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면서 2심과 3심의 구속기간을 각각 2개월씩 더 연장할 가능성을 열어두었음에도(형소법 제92조 제2항), 소송촉진특례법 제21조는 이에 맞추어 개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행법은 재판기간을 넘어서는 피고인의 구속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재판기간을 넘는 ‘피고인 구속’은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입법자가 재판기간을 이번 특검법처럼 단축하면, 피고인의 구속기간도 그것에 따라 함께 단축되고, 또 이렇게 한번 단축된 불변기간(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재판기간을 훈시규정으로 보는 것과는 별개로 형사소송법상의 피고인 구속기간으로 다시 환원되지 않는다고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강한 해석이 ‘가능한 한 재판을 빨리하라’는 입법자의 의사를 더욱 존중하는 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강한 해석이 공평의 이념에 더욱 부합하는 측면도 있다.
가령, 이 사건의 1심은 공소제기 후 178일 동안 공판준비기일 3회를 포함하여 총 56회의 기일을 진행하였다. 평균 약 3일에 1회의 공판, 실제로는 1주일에 거의 3회 꼴로 심리기일이 지정되었고, 심지어 공판이 자정을 넘겨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24) 통상 이러한 집중심리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이처럼 너무 지나친 집중심리는 오히려 피고인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22명 규모의 이른바 ‘매머드급’ 변호인단이 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정을 넘기기도 하는 주 3회의 재판에서 59명에 이르는 증인들의 오락가락하는 진술을 파악하여 그것에 제대로 대응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정을 막 넘긴 시각, 부장판사를 비롯한 좌우 배석판사, 좌측의 검사들, 우측의 변호인들, 법원 직원들까지 고개를 푹 숙이거나 하품을 참지 못하며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는 언론보도25)가 시사하듯, - 헌법재판소의 표현을 빌려보면 - 이 사건의 경우에는 ‘단축된 기간 내에 재판을 마무리하는 것은 극히 무리한 일’이었다. 피고인의 구속기간을 늘려주지는 못할망정, 아예 재판기간을 단축한 특검법 제10조의 위헌성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가능한 한 빨리하라’는 특검법의 요구 및 피고인의 구속기간에 쫓겨 심리를 지나치게 집중시켰고, 공정한 재판이었는지를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아 보인다.
물론, 이 과도한 집중심리는 특검의 기소전략에 기인한다.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하면서도 실은 확실한 증거 몇 개에 집중하지 않고, 그저 그럴듯한 정황증거들로 차고 넘치게 만들었다.26) 특검의 이러한 기소전략과 ‘가능한 빨리 하라’는 입법자의 의사가 합쳐지면, 재판은 졸속으로 진행될 여지가 없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졸속재판의 가능성에 강한 방어막을 친다는 차원에서, 입법자가 재판기간을 단축하면 그에 상응하여 피고인의 구속기간도 단축되고, 이렇게 한번 단축된 불변기간은 - 그 재판기간을 훈시규정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 다시 원래의 불변기간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특검이 표현한 ‘차고 넘치는 증거’, 이재용이 보면 ‘기절할 것이라는 증거’는 무엇보다 총 57권에 이르는 안종범의 업무수첩이었다. 박전대통령의 지시사항 등을 사초(史草) 수준으로 꼼꼼히 적어 이 사건의 스모킹으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이에 반해 변호인단은 특검이 2016. 11. 7. 입수한 11권은 기망에 의해 압수한 것으로 위법수집증거이고,27) 게다가 그 11권은 국정농단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한 2016. 10. 25. 이후 가필된 것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등 신빙성 없는 전문증거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전문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증거가치조차도 없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그 수첩이 전문증거인지 여부는 요증사실과의 관계에서 정하여진다. 가령, ① 박전대통령과 최서원의 공모사실 혹은 박전대통령과 이재용의 뇌물에 대한 합의사실(주요사실), ② 박전대통령과 이재용의 대화내용, ③ 박전대통령의 안종범에 대한 지시내용, ④ 이 지시 내지 대화내용의 전달사실, ⑤ 수첩에 기재된 내용의 진실성과 관계없는 간접사실, 그리고 ⑥ 수첩에 어떤 기재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 등이 요증사실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①, ②, ③이 문제될 때에는 그 수첩이 전문증거이지만, ⑥이 요증사실인 경우, 즉 원진술의 내용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문제될 때에는 전문증거가 아니라는 점에 다툼이 없다.28) 이 경우에는 그 수첩이 진술증거가 아니라, 증거물인 서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29)
문제는 ④와 ⑤가 요증사실인 경우이다. 대법원은 “어떤 진술이 범죄사실에 대한 직접증거로 사용함에 있어서는 전문증거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진술을 하였다는 것 자체 또는 그 진술의 진실성과 관계없는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 사용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전문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하고,30) 나아가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31)
1심은 위 대법원 판결을 인용한 후, 안종범의 수첩이 그 기재 내용의 진실성과 관계없는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는 전문증거가 아닌 본래증거로서의 증거능력과 증거가치를 가진다고 보았다.32) 그러나 2심은 1심이 말하는 간접사실이 무엇인지가 특정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요증사실을 인정할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보았다. “요증사실인 그 기재내용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한 직접증거로는 사용될 수 없는 전문증거가 그 기재의 존재를 인정하는 증거로 사용될 수 있게 됨으로써 우회적으로 그 기재내용의 진실성을 인정하는 증거로 사용되는 결과”가 되고, 이는 결국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려는 전문법칙의 취지를 잠탈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취지이다.33)
사실 1심이 말하는 간접사실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혹자는 박전대통령의 업무지시 내지 대화내용의 전달 자체를 그 간접사실로 보고, 여기에는 요증사실(뇌물공여의 합의)의 진위 내지 존부에 관한 주장(assertion)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간접사실을 인정할 본래증거이지 전문증거가 아니라고 보기도 한다.34) 그러나 ‘A라는 지시사실’ 또는 A라는 대화내용의 전달사실’ 자체의 존부 문제는 그 A라는 지시 내지 A라는 대화‘내용의 진위문제’와 직결된다.35) 이러한 점에서 2심이 지적하는 것처럼 전문법칙의 취지가 잠탈될 우려도 있는 만큼, 전문증거가 아니라 본래증거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전문법칙의 취지가 잠탈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위 ⑥과 ④의 경우, 즉 원진술의 존재 자체를 요증사실로 하는 증거신청과 채택을 막을 이유도 없다. 가령, 2015. 7. 25.자 안종범의 수첩에는 위 ④ 또는 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삼성 엘리엇 대책’, ‘M&A 활성화 전개’ 및 ‘고창수→제주지검장’ 등의 기재가 있는데, 이는 ②와 ③을 거쳐 궁극적으로 ①의 사실을 추론할 수도 있는 간접사실들이다. 물론, 이러한 추론으로 전문법칙이 잠탈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대법원은 전문증거를 ‘그 진술의 진실성과 관계없는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 그 사용을 극히 제한하려고 한다.
하지만 진술의 진실성과 관계있는지 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 진실성은 증거능력이 아니라 증거가치의 문제이다. 종종 이 두 가지가 서로 뒤엉켜 논의되는데, 가령 대법원은 전문진술을 기재한 조서와 달리, 재전문진술이나 재전문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본다.36)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미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증거가치에 대한 애매한 설명보다는 증거능력에 관한 강한 논증으로 자기 결론의 정당성을 뒷밧침하려는 이 실무경향 탓에, 1심과 2심은 실형과 집행유예라는 각자의 결론을 선취하고, 이에 맞추어 그 증거능력을 평가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법원은 ‘박전대통령의 지시사항’과 ‘박전대통령과 이재용의 대화내용’을 구분하고, 전자의 경우에는 안종범의 수첩이 형소법 제313조 제1항에 따라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형소법 제316조 제2항의 필요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내용을 추단할 수 있는 간접사실의 증거로도 사용될 수 없다고 보았다.37) 대화내용 중 이재용의 말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필요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지만, 박전대통령의 말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필요성 요건이 충족된다고 볼 여지도 있다.38)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구분하지 아니하고, 그 신빙성이 낮다는 이유로 간접사실에 대한 증거사용도 부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증거능력과 증거가치를 구분한다면, 안종범의 업무수첩이 요증사실에 따라 재전문증거나 재재전문증거 혹은 그 이상이라고 하더라도 현행법의 필요성 요건을 충족하면 그 증거능력 자체를 부정할 일은 아니다.39) 문제는 안종범의 수첩이 증거가치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스모킹건으로 작용한 11권의 수첩은 국정농단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한 2016. 10. 25. 이후 가필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또한 박전대통령과 독대한 기업 회장들의 면담일자가 서로 뒤바꾸어 있거나 혹은 삼성관련 메모에 ‘홈쇼핑’, ‘면세점’ 등과 같이 전혀 관련성이 없는 내용이 뒤섞여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40)
게다가 안종범은 박전대통령이 ‘무엇을 한번 알아보라’고 하면, 이 알아보는 수준을 넘어 이미 일정한 조치로 나아간 경우가 허다하였고,41) 결혼하는 딸의 예단문제를 넌지시 언급하며 뇌물을 요구하기도 하였다.42) 이러한 사실은 안종범이 자신의 죄책을 가볍게 하고자 ‘대통령이 시켜서 한 일’이라는 취지로 수첩내용을 사후에 가필하였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 뿐만 아니라, 박전대통령은 검찰의 피의자신문에서 안종범의 수첩과 관련된 지시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도 하였다.43) 따라서 파기환송심에서는 수첩의 증거능력을 넘어 그 증거가치를 재음미해 볼 수 있는 기회확보(가령, 박전대통령의 직접적인 반대신문)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 것이다.
Ⅲ. 사건의 실체법적 쟁점들
이 사건에서 이재용이 뇌물로 공여했다는 돈은 전액 최서원 측에 전달되었고, 적어도 박전대통령이 직접 수령한 것은 없었다. 이에 특검은 ‘박전대통령과 최서원이 공모하여 뇌물을 수수했다’는 점과 더불어, 두 사람이 사실상의 ‘경제공동체’관계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공무원과 非공무원 사이에 일정한 경제적 공동관계가 인정될 때에는 그 非공무원이 받은 뇌물도 공무원이 직접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대법원의 입장44)을 의식한 것이었다. 국정농단사건이 불거지고 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당시에 박전대통령과 최서원은 마치 ‘한 몸’과 같은 경제공동체였음을 시사하는 언론보도도 넘쳐났었다.45)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특검이 주장하는 그 경제공동체는 입증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를 시사하는 수많은 증거들이 현출되었다.46) 그러자 1심과 2심은 특검이 주장하는 경제공동체의 대용물로 박전대통령과 최서원의 공모관계를 끌어들이고, “뇌물죄의 공동정범이 성립하는 경우에는 뇌물의 귀속주체가 누구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47) 대법원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48) 그러나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더럽게 만듭니까”라거나 “최서원에게 속았다”는 박전대통령의 진술49)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과연 이 사건 1심 재판부가 그 공모관계를 적극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았는지는 의문이다.50)
무엇보다 이 사건의 1심 재판부는 박전대통령을 대면한 바 없고, 또 박전대통령과 최서원 사건의 심리는 상당히 지체되고 있었다.51) 이러한 상황에서 1심은 그 공모관계에 대한 판단없이 이재용에게 증뢰의사가 있었는지에 집중할 수도 있었다. 공무원의 뇌물수수죄가 부정되더라도 그 대향범인 이재용에게 증뢰의사가 있었다면 적어도 그에게는 뇌물공여죄가 성립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52) 물론, 그렇다고 마냥 다른 재판의 심리종결을 기다릴 수 없겠지만, 박전대통령을 대면한 바 없는 이 사건의 1심이 피고인의 구속기간에 쫓겨 그 공모관계를 가장 먼저 인정하고 나선 것은 다소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 사실이다.53)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1심이 그 공모관계의 설명에 집중했던 이유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그 공모관계를 특검이 주장하는 경제공동체의 대용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즉, 뇌물죄의 공동정범이 성립하면, 그 뇌물을 최서원이 독점했다고 하더라도 박전대통령은 형법 제129조 제1항의 단순수뢰죄의 공동정범이 되고, 이재용도 바로 그 대향범인 뇌물공여죄의 죄책을 진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에서는 최서원이 뇌물을 독점한 이상 박전대통령에게는 형법 제130조의 제3자뇌물제공죄가 성립하고,54) 여기에는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1, 2, 3심은 공히 이러한 주장을 배척하고 단순수뢰죄의 공동정범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박상옥 대법관이 지적하는 것처럼, 형법은 단순수뢰죄와 제3자뇌물제공죄를 구분하고 있고, 그 기준은 바로 뇌물이 누구에게 귀속되느냐는 것이고, 공무원과 非공무원 사이에 공모관계가 있었느냐의 여부가 아니다.55) 따라서 ‘공무원이 전적으로 혹은 非공무원과 함께 뇌물을 수수하기로 하는 범죄행위’에 非공무원이 공동가공한 경우에는 그 역시 단순수뢰죄의 공동정범이 되지만, 非공무원이 뇌물을 독점하기로 하는 범죄행위를 공무원과 공모한 경우에는 그 공무원을 제3자뇌물제공죄의 공동정범으로 보아야 한다. 다수의견에 따르면, 이 제3자뇌물제공죄의 공범은 가능하지만, 그 공동정범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1심은 “제3자뇌물제공죄에서 말하는 제3자란 행위자와 공동정범 이외의 사람을 말하고, 교사자나 방조자도 포함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56)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뇌물죄가 아니라 제3자뇌물제공죄의 공동정범에 관한 것이다. 즉, ‘제3자란 행위자와 공동정범 이외의 사람’이라고 할 때의 행위자는 제3자뇌물제공죄를 범하는 공무원이고, 공동정범은 그 범죄행위에 공동가공한 자, 즉 제3자뇌물제공죄의 공동정범을 말한다. 그리고 대법원은 뇌물을 독점한 제3자가 공무원의 제3자뇌물제공죄를 교사·방조한 경우도 처벌한다는 취지에서 “(그 제3자에는) 교사자나 방조자도 포함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뇌물의 이익이 전혀 귀속된 바 없는 박전대통령도 최서원과의 공모관계를 이유로 단순수뢰죄의 공동정범으로 보는 대법원의 다수의견에 따르면,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가령, 뇌물을 독점한 제3자가 공무원을 교사·방조한 사례와 그것을 넘어 공동가공의 실행행위까지 나아간 사례를 비교해 보면, 후자의 공무원이 사실상 실행행위를 더 적게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전자의 공무원을 제3자뇌물제공죄로 처벌하고, 후자의 공무원을 단순수뢰죄의 공동정범으로 다룬다면, 이는 형평에 반하는 일이다. 따라서 박전대통령의 경우에도 최서원이 뇌물을 독점한 이상, 제3자뇌물제공죄의 공동정범이 될 수 있을 뿐이라고 보아야 한다.
박전대통령에게 제3자뇌물제공죄가 성립할 수 있을 뿐이라면, 이재용이 박전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 특검은 무엇보다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 및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공여된 돈의 경우에는 제3자뇌물제공죄가 문제될 수 있다고 보고, 그 ‘부정한 청탁’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삼성생명과 제일모직의 합병’ 등 삼성그룹의 8개 개별현안57)을 적시하고, 이들을 위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특검이 표현한 것처럼 ‘대통령과의 단독면담이라는 비밀의 커튼’ 뒤에서 행하여졌을 것으로 보는 그 개별청탁들을 입증한다는 것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58)
이에 특검은, 그 개별현안은 모두 「최소한의 개인자금을 사용하여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들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하여 사실상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지향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포괄현안으로 이른바 승계작업’이 있었다고 강조하였다. 이 승계작업은 1996년 이재용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시부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주도 하에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으며, 박전대통령과 이재용은 3차례의 단독면담을 하면서 적어도 이 포괄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에 대한 명시 혹은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다.59)
하지만 변호인단은 이재용은 물론 미래전략실 임직원 누구도 대통령 또는 정부의 관련자에게 그 개별현안을 위해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이 없고, 또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등과 관련된 그 개별현안들은 각 계열사의 사업상 필요에 의해 추진된 것으로, 이재용의 핵심 계열사들에 대한 지배권확보를 목표로 하는 그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즉, 그 승계작업이라는 것은 각 계열사의 개별현안들을 오직 이재용의 개인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기 위해 특검이 고안한 가공의 틀에 불과하고, 그러한 가공의 틀을 대상으로 청탁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60)
이와 관련하여 1심은 개별현안들에 대한 부정청탁이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지만, 포괄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 자체는 있었고, 이재용은 물론 박전대통령도 개괄적으로나마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았다. 이른바 ‘포괄적 직무관련성 내지 포괄적 대가관계’61)가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1심은 제3자뇌물제공죄의 부정한 청탁은 ‘유의미한 정도의 구체성 있는 청탁’이어야지,62) ‘막연히 선처하여 줄 것이라는 기대’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보고,63)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에 출연한 돈의 대가성을 부정하였고, 다만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돈의 경우에는 그 포괄적 대가성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2심은 아예 승계작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였다. 제3자뇌물제공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 사이에 뇌물의 대가성에 대한 공통의 인식과 양해가 있어야 하는데, “승계작업이 명확하지 않거나 개괄적이게 되면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의 존부판단에 영향을 주어 처벌의 범위가 불명확해지게 되므로 제3자뇌물제공죄에 있어서 ‘부정한 청탁’을 요건으로 하는 취지에 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삼성그룹의 개별현안들이 추진될 무렵에 많은 전문가들이 이재용의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와 관련이 있다’고 평가·분석하고 있었다는 사정들을 더하여 보더라도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 1심과 2심의 입장이 알려지자, 뇌물죄의 해석을 달리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즉, “단순뇌물죄는 포괄적 대가관계로 충분할 수 있지만, 제3자뇌물제공죄는 보다 구체적인 대가관계를 요한다”고 본 것이 기존의 실무경향이었지만,64) 현행법의 단순뇌물죄는 직무관련성 외에 따로 대가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만큼,65) 포괄적 대가관계의 법리를 오히려 제3자뇌물제공죄에 적용하자는 것이다.66) 특히, 이 사건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규모의 뇌물수수는 의도적으로 제3자인 법인 등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경유착을 근절하기 위하여 뇌물죄의 처벌범위를 확대하자는 취지이다.
하지만 단순뇌물죄는 대가관계를 요하지 않는다는 것과 제3자뇌물제공죄의 ‘부정한 청탁’을 ‘포괄적 대가관계’로 완화하는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이다. 현행법이 명시하지 않은 대가관계를 원용하여 실무가 단순뇌물죄의 성립을 제한하여 온 바도 있었지만, 최근에 언급되는 포괄적 대가관계는 사실상 포괄적 직무관련성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67) 그럼에도 제3자뇌물제공죄의 ‘부정한 청탁’을 이 포괄적 대가관계의 의미정도로 완화한다면, 뇌물의 귀속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단순수뢰죄와 제3자뇌물제공죄를 구분하여 후자의 성립범위를 보다 엄격하게 제한하려는 현행법의 입법취지가 사실상 몰각되어 버린다.
물론, 애초의 입법취지와는 달리, 제3자뇌물제공죄의 ‘부정한 청탁’은 ‘위법 또는 부당한 직무집행에 대한 청탁’에 국한되지 않고, 청탁의 대상이 된 직무집행 그 자체는 위법·부당하지 않더라도 ‘당해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의 교부를 내용으로 하는 청탁’도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68) 이 완화해석으로 인해 이미 스포츠단체를 후원하거나 각종 모금활동에 응하는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은 실은 교도소담장 위를 걷는 일이 될 수 있다. 여러 현안문제들에 골몰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특히 비인기 스포츠종목을 후원하는 경우, 그 현안문제와 관련있는 공무원의 호의적인 일처리나 선처를 기대한다고 볼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재용이 어떤 생각으로 돈을 교부하였는지는 추론할 수밖에 없지만, ‘포괄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문제된다면, 대략 ‘대통령에게 잘 보이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다거나 혹은 적어도 손해를 입을 염려는 없을 것’이라는 정도의 기대감이 남을 것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정도의 막연한 기대감으로는 (알선)수뢰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69) 하지만 이 사건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부정한 청탁의 대상 또는 내용은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부정한 청탁에 대한 인식은 미필적인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았다.70) 박전대통령과 이재용 사이에 승계작업을 매개로 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지원한다는 묵시적인 양해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의 이 판단이 앞으로 기업인들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주목된다. 기업들은 수많은 현안들을 안고 있고, 또 이들이 수많은 스포츠단체를 후원하거나 혹은 각종 모금활동에도 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기업의 총수가 고위공무원이나 포괄적 직무관련성을 가진 대통령과 독대한다면, 이제 제3자뇌물제공죄가 마치 ‘조좌룡 헌 칼’처럼 위세를 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결코 바람직한 장면이 아니다. 따라서 개별현안에 대한 명시 혹은 묵시적 청탁, 그리고 포괄현안에 대한 명시적 청탁이 입증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적어도 그 ‘포괄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은 인정될 여지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71)
한편, 이 사건의 법정형에 크게 영향을 미칠 사유 하나는 ‘살시도, 비타나, 라우싱’이라는 말 3필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느냐하는 점이다. 살시도를 구입할 당시 작성된 삼성전자의 내부기안문에는 ‘삼성전자가 마필의 소유주로 패스포트에 기재될 것’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실제로 패스포트에 삼성전자가 기재되었으며, 또 삼성전자의 유형자산으로 자산관리대장에도 등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 비타나와 라우싱을 구입할 때에는 200만 유로를 선급금으로 회계처리하였을 뿐, 내부기안문에 패스포트와 소유주에 대한 기록이 생략되어 있고, 또 삼성전자의 자산관리대장에 유형자산으로 등재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차이점에 관한 여러 상이한 증언들이 있었지만, 1심은 말 3필 모두의 소유권이 최서원에게 이전되었다고 보고, 그 구입비용과 보험료를 합친 36억 5,943만원도 뇌물로 평가하였다. 특히, 1심은 “동산 및 부동산에 관한 물권 또는 등기하여야 하는 권리는 그 목적물의 소재지법에 따른다”는 국제사법 제19제 제1항에 따라 독일민법이 준거법이 된다고 보고, 독일민법 제929조 후문의 간이인도72)로 살시도의 소유권이 최서원에게 이전되었다고 보았다. 최서원과 삼성전자 사이에 살시도의 소유권이전에 관한 합의가 있었고, 이는 비타나와 라우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의 다수의견도 이를 받아들였다.73)
그러나 2심과 대법원 소수의견의 판단은 달랐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의 박상진 상무는 삼성전자의 자금으로 차량 3대를 매수하여 최서원의 코어스포츠에서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그 얼마 후 그 중 2대를 코어스포츠에 대도하고 차량대금을 송금받은 사실에 주목하였다. 고가의 말들을 뇌물로 제공하였다면, 소액의 차량매각대금을 송금받은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6. 9. 23. 삼성의 승마지원이 언론에 보도되자, 최서원과 박상진은 두 차례에 걸쳐 그 지원사실을 숨기는 방안을 협의하면서 그 소유권이전을 2018년 이후에 추진하기로 협의한 사실을 놓고 보더라도 그 때까지는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형사사건이 늘 그러하듯이 그려할 요소는 많고 판단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 늘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형사처벌의 최후수단성 내지 보충성 원칙’이고, 또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다. 그럼에도 실무는 ‘실질적’ 혹은 ‘사실상’이라는 용어를 동원하여 종종 형사처벌의 엄격성을 와해시키는 경우가 없지 않다.74) 구체적 타당성이라는 관점에서 그러한 확장해석이 전혀 불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은 그야말로 필요최소한에 머물러야 한다.
2심이나 대법원의 소수의견처럼 본다고 하더라도, 말 3필에 관한 액수 미상의 무상 사용이익이 뇌물로 공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은 일차적으로 특경법 제4조 제2항 제1호(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를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그 제2호(5년 이상의 유기징역)를 적용할 것인가의 차이로 나타난다. 물론, 2심의 집행유예가 유지될 것이냐의 판단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그러나 집행유예를 할 것인가는 전체를 종합하여 판단할 사안이다. 만일 그 이전에 이미 ‘집행유예를 어렵게 하겠다’는 의도에서 ‘사실상’이나 ‘실질적’과 같은 맥락을 끌어들여 형사법의 형식적 확실성 내지 그 엄정성을 슬쩍 허물려고 한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Ⅳ. 결 어
이 사건에서 유죄로 인정된 삼성의 승마지원과 관련하여 확실히 인정되는 것은 삼성이 최서원의 코아스포츠에 상당한 자금을 송금하였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삼성 측은 ‘기업의 사회공헌이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정상적인 스포츠 지원활동’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이는 무죄가 선언된 케이스포츠재단 또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지원에 국한되고, 정유라의 승마지원은 그리 정상적이지 않았다. 특히, 2015. 7. 25. 이재용이 박전대통령과 2차 독대를 한 이후 삼성 측은 매우 부산하게 움직였다. ‘정상적인 스포츠 지원계획이 최서원의 욕심 또는 겁박으로 변질되었다’고 하였지만, 삼성 측은 분명 정상적이지 않음을 알고도 그 길로 나아갔다.
이것이 박전대통령 또는 그 주변인물의 위세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빚어진 일인지, 아니면 특검이 말하는 승계작업을 위해 그야말로 ‘통 큰 베팅’을 한 것인지는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한 번 엄밀하게 점검해 볼 일이다. 일각에서는 이재용의 부친이 갑자기 쓰러지자 그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삼성 측이 먼저 최서원에게 접근하였고, 삼성이 이리저리 세탁한 돈을 마음 놓고 쓸 수 있게 만들어 주면서 최서원의 ‘간이 붓게 되었다’는 평가도 있지만,75) 최서원의 존재를 파악할 정도의 대단한 정보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삼성이 어떻게 최서원에게 그렇게 허망하게 끌려 다니고 말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실체관계에 관한 여러 의문 외에도, 이 사건은 형사사법에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기업총수나 전직 대통령에게는 현행 구속사유가 다소 괴이하게 비치고, 또 이 사안처럼 복잡한 사건의 경우에는 피고인의 구속기간이 너무 지나친 집중심리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그리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수십만 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그대로 접수하여야 하는지도 한번 반문해 보아야 한다.76) 검찰의 이 기소전략에 따라, 뇌물공여자와 수수자를 함께 재판하기 심히 곤란한 사정이 연출되고, 결국 같은 쟁점에 대해 재판부마다 판단을 달리한 점77)은 사법신뢰를 저해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사법 및 검찰개혁이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 이 사건이 보여준 형사재판의 특이문제들도 함께 논의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