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이라 한다) 일부개정안이 지난 4월 29일, 제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당해 법개정은 2018년에 공정위와 공정거래 학계 및 법조계 전문가들이 함께 고안해냈던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중 절차법 관련 내용이 대폭 반영된 것으로서,1) 특히 공정위의 법위반 조사절차(이하 ‘공정거래 조사’라 한다)와 관련하여 상당히 많은 부분이 변경되었다는 특징이 있다.2)3)
주지하다시피 공정위 처분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의 방어권은 매우 중요하다.4) 다만 실무적으로는 공정위가 법위반혐의가 있는 사업자 내지 사업자단체의 사무소 또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 현장조사(이하 ‘공정거래 현장조사’ 또는 ‘현장조사’라 한다)에 관한 피조사인의 방어권이 특히 문제되고 있다. 예컨대 현장조사에 있어 조사공무원의 재량이 어디까지 인정되는지는 오래전부터 논쟁이 되고 있고, 최근에는 심의절차 중의 현장조사 문제 또는 ‘변호인-의뢰인 특권’과 같은 새로운 쟁점들이 꾸준히 제기되는 실정이다. 상술한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내용 중 특히 공정거래 현장조사에 관한 내용이 많다는 것은 공정위의 조사권과 피조사인의 방어권을 중심으로 한 논쟁 구도를 잘 보여준다.
피조사인의 방어권은 공정위 조사권의 적절한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일차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 즉, 공정위 조사권의 한계가 설정되고 그것이 실질적으로 잘 지켜진다면 그 범위 안에서는 당사자의 방어권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어서 공정위 조사권의 범위와 한계는 공정거래 조사에 있어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현장조사의 범위를 일차적으로 정하는 것은 바로 조사공무원이 피조사인에게 교부하는 조사공문(이하 ‘현장조사공문’이라 한다)이다. 특히 현장조사공문에 기재되는 조사기간, 조사목적과 조사대상 등은 공정위가 피조사인에게 교부하는 문서에 현장조사의 범위와 한계가 직접적으로 명시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장조사공문에 관해서는 그 기능과 의미에 비해 지금까지 법리적으로 논의된 바가 거의 없는데, 그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사공문과 관련된 조사현장의 비판적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이상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고는, 조사공문에 기재되는 조사목적 및 조사대상을 검토하고 공정위 현장조사의 합리적인 범위와 한계를 고찰해본다. 이를 위해서 본문에서는 우선, 공정위 조사권의 기본원칙 등에 대해 개관한 후 현장조사공문을 규율하는 관련 규정과 문제점을 정리한다(Ⅱ). 그 후 당해 문제에 대해 참조할 만한 유럽 경쟁법 판례를 비교법적으로 분석한 후, 우리나라에의 시사점을 도출한다(Ⅲ). 마지막으로는 앞선 논의를 바탕으로 공정위 현장조사공문에 관한 개선사항을 제시하고(Ⅳ), 몇 가지 제언으로 결론을 대신하면서 논문을 마무리한다(Ⅴ).
통상적으로 공정거래절차는 준사법절차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고, 따라서 공정거래절차의 개선방안 또한 ‘준사법’ 또는 ‘사법절차에 준하도록’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본고는 이른바 ‘준사법 명제’ 내지 ‘준사법 프레임’이 과거 공정거래절차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데에 있어 일정한 기여를 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이것이 오히려 공정거래절차의 기능적 개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시각을 전제로 논의를 전개한다.5) 요컨대 본고는 논의의 전제로서 이른바 ‘공정거래절차의 준사법 명제’를 후퇴 내지 보류시키는 것을 제안한다. 이하의 논의에서는 공정거래 조사절차가 준사법적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견해나 검찰의 형사절차와 유사하게 발전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일절 배제하도록 한다.
당해 관점에 따르면 공정거래절차 내지 공정거래조사의 문제를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조사를 규율하는 법규정을 온전히 이해하면서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질서를 보호하는 공정거래법의 목적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이 요청된다. 즉, 공정거래절차의 목적인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의 보호를 위하여 공정위의 조사권이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고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규범적인 관점에서 고찰함으로써 공정거래조사의 실질적이고 합목적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해본다.
Ⅱ. 공정위 조사권의 범위와 현장조사공문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을 위시한 소관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활동을 함에 있어 폭넓은 재량을 인정받고 있다.6) 공정거래법 제49조 제1항은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법의 규정에 위반한 혐의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직권으로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이를 통해 공정위의 조사권한은 법 규정을 위반한 혐의를 밝히는 데에 필요한 모든 범위까지 인정되는 것으로 일견 이해될 수 있다. 나아가 공정위의 조사권을 직접 규율하는 법률 규정인 공정거래법 제50조 제1항과 제2항은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법의 시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라는 문언을 명시하고 있어 조사권의 범위가 이 법의 시행을 위한 한도 내에서 형성된다는 단초를 주지만, 공정위 자신이 판단하는 필요성에 따라 얼마든지 조사활동을 행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공정위의 광범위한 조사권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 조사의 기본원리인 ‘직권규제주의’를 살필 필요가 있다.7) 직권규제주의(Amtsermittlungsprinzip)는 경쟁당국이 법위반혐의를 인지하는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조사절차를 개시하여 관련 사안의 사실관계를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원칙이다.8) 직권규제주의에 따르면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의 목적인 경쟁보호를 달성할 의무를 가지며, 당해 의무의 실현을 위해 법 위반 사업자에 대한 폭넓은 조사권을 가지는 것이 기본이다. 앞에서 언급한 공정거래법 제49조와 제50조의 의미 또한 직권규제주의가 지향하는 바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공정거래법의 목적 실현을 위해 공정위 조사권의 재량이 넓게 인정된다 하더라도, 실제 조사행위에 있어서는 조사의 구체적인 범위가 확정되어야 한다. 공정위의 조사권이 무제한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당해 사안의 필요에 맞는 최소한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요구하는 원칙이 바로 비례의 원칙(Verhältnißprinzip)이다.9)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도출되는 헌법상 기본원리인 비례의 원칙은 목적달성을 위한 적절한 수단, 필요최소한의 수단, 그리고 관련된 이익 간의 정당한 형량을 요구한다.10) 동 원칙은 주로 당사자, 즉 행정청의 행위 상대방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 원칙을 지킴으로써 행정청 또한 자신의 결정에 대한 규범적인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따라서 비례의 원칙은 공정위 조사권과 피조사인의 방어권 사이의 균형을 조화롭게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한편, 공정거래법 제50조의2의 조사권의 남용금지 규정은 이를 구체적으로 입법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11)
그러나 비례의 원칙과 같은 기본원리는 그 내용이 상당히 애매모호하고 이익형량 단계 등으로 인한 불분명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공정위 조사권의 구체적인 범위를 입법적·제도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공정거래 현장조사에 있어 현장조사의 범위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공정위 조사공무원의 현장조사공문이다. 후술하듯이 당해 조사공문에는 조사기간, 조사대상, 조사목적, 조사의 방법 등을 명시하게끔 되어 있다. 따라서 공정위 조사권의 구체적인 범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행 공정거래규범상 현장조사공문 관련 규정을 살피고 그 실제적인 운용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공정거래법 제50조 제4항은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조사를 하는 공무원은 그 권한을 표시하는 증표를 관계인에게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현장조사시 조사공무원의 권한증표 교부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당해 규정의 ‘권한을 표시하는 증표’는 이하에서 검토하는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절차에 관한 규칙」12)(이하 ‘조사절차규칙’이라 한다)과 연관하여 해석론적으로 현장조사공문을 포함하는 것으로 파악되어 왔다. 또한, 실무적으로도 현장조사를 시작하면서 조사공무원이 조사목적 및 조사대상을 적시한 조사공문을 교부하는 것 자체는 문제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앞에서 언급한 2020년 5월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기존의 권한증표 이외에 조사내용을 담은 문서에 관한 내용을 추가하였다. 즉, 개정법 제50조 제4항은 “조사를 하는 공무원은 그 권한을 표시하는 증표를 관계인에게 적시하고, 조사목적, 조사기간, 조사방법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이 기재된 문서를 교부하여야 한다”는 규정으로 변경되었다. 공정위는 당해 법개정에 대해 법률에 규율되어 있지 않았던 조사공무원의 조사공문 제공의무를 명시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조사공무원이 조사과정에서 준수해야하는 절차적 의무를 명확히 함으로써 피조사업체의 권익이 보장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13)
조사절차규칙 제6조 제1항은 “조사공무원은 현장조사를 개시하기 이전에 피조사업체의 임직원에게 다음 각호의 사항을 기재한 조사공문을 교부하여야 하며, 이와 함께 조사공문의 내용 및 피조사업체의 권리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동조 동항 각 호에서는 “1. 조사기간, 2. 조사목적, 3. 조사대상, 4. 조사방법, 5. 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기피하는 경우 법률상의 제재내용, 6. 제1호 내지 제4호의 범위를 벗어난 조사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 7. 조사단계에서 피조사업체가 공정거래위원회 또는 그 소속 공무원에게 조사와 관련된 의견을 제시하거나 진술할 수 있다는 내용”을 조사공문 기재내용으로 정하고 있다.14)
조사목적 및 조사대상과 관련하여 중요한 규정은 바로 조사절차규칙 제6조 제2항인데, 여기에는 조사공문에 기재되는 조사목적과 조사대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규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동 규정은 “제1항에 따라 조사공문에 기재되는 조사목적에는 관련 법 조항과 법위반혐의를 함께 기재하여야 하고 조사대상에는 피조사업체의 명칭과 소재지를 특정하여 구체적으로 기재하여야 한다.”고 하여 조사목적과 조사대상이 나타내는 조사의 범위가 무엇인지 직접 밝히고 있다. 요컨대 현행 규정상으로는 조사공문에 기재되는 조사목적은 관련 법 조항과 법위반혐의이고, 조사대상은 피조사업체의 명칭과 소재지이다.15)
현장조사공문과 관련하여 특기할 점은 「공정거래위원회 회의운영 및 사건절차 등에 관한 규칙」16)(이하 ‘사건절차규칙’이라 한다) 제19조에서도 조사절차규칙 제6조와 유사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연혁적으로는 사건절차규칙이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사절차규칙이 뒤늦게 제정되었기 때문에, 조사절차규칙상의 조사목적과 조사대상의 내용이 어떻게 정립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절차규칙 제19조를 살필 필요가 있다.
사건절차규칙 제19조는 “조사공무원이 공정거래법 제50조 제4항의 규정에 의하여 관계인에게 제시하는 증표는 공무원증과 다음 각 호의 사항이 기재된 공문서이어야 한다”고 규율하면서, “1. 조사기간, 2. 조사대상업체, 3. 조사근거, 4. 법률상의 제재내용”을 각 호로 정하고 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기존 공정위 실무에서 확립되어 있는 조사공문의 내용은 사건절차규칙 제19조에 의해 정해져 있었다는 점이다.17) 즉, 공정위의 현장조사공문에는 사건절차규칙의 내용대로 ‘조사대상업체’와 ‘조사근거’가 기재되어 왔고, 비록 2016년에 제정한 조사절차규칙에서 ‘조사대상업체→조사대상’, ‘조사근거→조사목적’으로 기재내용을 변경하여 새로 규율하였지만,18) 후술하듯이 결과적으로는 그 명칭만 바뀌고 실질적인 내용은 동일하게 운영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먼저 법개정 내용에 관해 검토한다. 사견으로는 조사공문 교부를 추가로 규정한 개정법률 제50조 제4항은 그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효과는 없다고 본다.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이미 실무적으로는 현장조사공문이 교부되고 있었고, 형식적으로는 조사공문 관련 근거 또한 일견 대외적 구속력을 가지는 사건절차규칙과 조사절차규칙에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19) 또한, 조사공문의 기재내용 또한 어떠한 변동없이 조사절차규칙상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내용적으로도 큰 변동이 없는 법개정이라 할 것이다. 다만, 조사공문 교부의무와 그 기재사항이 공정위 고시가 아닌 법률에 명시되었다는 것은 당해 내용의 민주적 정당성이 보다 높아지고, 공정위는 조사공문과 관련된 입법자의 요청 내지 의사를 충실히 실현할 의무를 가진다는 측면에서는 법개정의 장기적인 의의를 찾을 수 있다.20) 이에 따르면 당해 법개정은 공정위에게 현장조사공문의 기능 등을 고려하여 이에 맞는 시행령 규정을 마련할 의무를 발생시키는 등,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조사공문 제도가 보다 구체적으로 개선되어 공정위 조사권의 합리적인 경계가 확립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조사절차규칙 제6조의 문제점은 조사대상과 조사목적의 내용과 관련되어 지적될 수 있다. 특히 제6조 제2항에서 조사대상과 조사목적을 보다 구체화시키지 못하고 과거 사건절차규칙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조사절차규칙을 제정했던 정책적 지향점과 전혀 맞지 않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특히 조사대상업체와 조사대상, 조사근거와 조사목적은 분명히 그 의미가 다른 개념이라는 점, 조사공문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시하려는 목적으로 조사절차규칙상의 규정을 제정했다는 점21) 등을 고려하면 ‘조사대상업체’가 ‘조사대상’, 그리고 ‘조사근거’가 ‘조사목적’으로 변경된 의미는 더욱 강조되었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조사대상 및 조사목적에 담겨져야 하는 내용에 관해서는 심도 있게 재검토되어야 하는데, 구체적인 방안 등에 관해서는 절을 바꾸어 비교법적으로 고찰해보도록 한다.
한편, 사건절차규칙 제19조와 조사절차규칙 제6조는 그 규율대상이 일견 중복되지만 기재내용에 있어서는 상이한 내용을 담고 있어 실무상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사견으로는 현장조사공문에 관해 양 규칙이 중복하여 규율할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우므로 정비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특히 현장조사에 관하여 규율하고자 하는 조사절차규칙의 제정목적22)에 비추어 보면 현장조사와 관련된 규정은 조사절차규칙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므로 사건절차규칙 제19조는 삭제되어야 한다.23)
조사공문상의 조사대상과 조사목적에 관해서는 실무적으로도 지속적인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즉, 실제 현장조사공문에서도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조사목적은 ‘귀사의 행위가 법 제3조의2 제1항 제3호에 해당하는지 여부’ 또는 ‘법 제23조 제1항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으로 적시되고 조사대상은 피조사업체의 명칭과 주소만 적시되어, 피조사인 입장에서는 조사공무원의 조사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파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비록 조사공문에는 조사목적과 조사대상을 벗어난 조사를 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다고 적시되어 있지만, 피조사인은 어떤 자료가 그 범위를 벗어난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조사공무원의 광범위한 현장조사를 무조건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경우 조사공무원이 열람·복사·일시보관하는 자료에 관련 사안이 아닌 다른 사안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어 공정위가 피조사인의 또 다른 법위반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획득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 또한 최근의 것이 아니다.24)
정리하면, 공정위는 ‘사건처리 3.0’ 및 조사절차규칙의 제정을 통해 조사공문의 내용을 구체화하겠다는 정책적 결정을 내리고 이에 따른 제도를 개선하려 했지만, 이것이 실무적인 단계까지 실현되지는 못한 실정이다. 현재는 조사공문이 당위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합리적인 조사범위의 설정 기능은 작동하지 않고 있고, 그에 따라 조사공문의 내용에 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하여 제기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공정위 현장조사의 범위는 공정위 조사가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도록 합리적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현장조사공문에서 현장조사 범위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내용은 바로 조사대상과 조사목적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법리적인 차원과 실무적인 차원에서 모두 문제가 발견되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장조사공문의 기재사항 중 조사대상 및 조사목적에 대해서는 보다 심화된 논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음 절에서는 관련하여 참조할 수 있는 유럽(EU) 경쟁법상의 판례를 비교법적으로 고찰하여 우리나라 공정거래절차에의 시사점을 도출해본다.
Ⅲ. 비교법적 고찰: 유럽 넥상스 사건의 시사점
유럽 경쟁법을 집행하는 유럽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이하 ‘집행위원회’라 한다)는 경쟁법 위반 혐의가 있는 사업자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폭넓은 권한을 갖는다.25) 그중 유럽 이사회 규칙 1/2003(이하 ‘유럽절차규칙’이라 한다) 제20조 제4항에 따른 집행위원회 정식조사의 경우, 조사대상, 조사목적, 조사에 성실히 협조를 하지 않는 경우 부과받을 수 있는 제재내용 등을 기재한 조사결정문을 피조사업체에 제공하여야 한다.
집행위원회의 조사결정문에 기재되는 조사대상과 조사목적의 내용이 어느 정도 구체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툼이 있었던 유럽법원의 판례가 존재하는데, 2012년 유럽일반법원의 1심 판결, 2014년 유럽사법재판소의 상고심 판결이 내려진 넥상스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26) 당해 판시사항을 살피는 것은 공정위 현장조사공문상의 조사대상 및 조사목적의 내용을 합리적으로 정하는 데에 좋은 참조가 될 수 있으므로 이하에서 분석하도록 한다.
집행위원회는 2009년 1월 9일, 프랑스 사업자인 넥상스 SA(이하 ‘넥상스’라 한다) 및 넥상스의 100% 자회사인 넥상스 프랑스 SAS(이하 ‘넥상스 프랑스’라 한다)에 대하여 유럽절차규칙 제20조 제4항에 따른 정식 조사결정을 내렸다.27) 피조사인 넥상스 등은 조사결정문에 적시된 조사대상 즉, 조사가 이루어질 상품의 범위와 지역적 범위가 지나치게 넓게 설정되었으며, 그 표현 자체도 불명확했다는 점을 문제삼아 법원에 불복소송을 제기하였다.28)
보다 구체적으로 살피면, 당해 조사결정문상 조사대상 상품은 “해저 고압전선과 지하 고압전선을 포함한 기타 전선 및 부속품”으로 명시되어 실질적으로는 집행위원회가 ‘전선상품 전체’에 대해 조사를 할 수 있게끔 하였고, 조사의 지역적 범위는 조사결정문에 정확히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전선이 공급되는 모든 영역 즉, 전세계적 범위”로 이해될 수 있었다. 당해 조사결정문에 대해 피조사업체 넥상스와 넥상스 프랑스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였다.29) 첫째, 조사결정문에서 조사대상 상품을 설명한 표현이 애매모호하여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당해 조사가 이루어지는 본 사건에서 문제되는 상품은 ‘고압 해저전선’에 국한되므로 조사대상 상품을 ‘전선 전체’로 설정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 둘째, 지역적 범위는 조사결정문에 보다 명확히 제시되어야 하며, 비록 ‘전세계적 범위’로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EU 이외의 지역에 관한 정보를 아무런 근거제시 없이 집행위원회 조사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당해 소송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유럽일반법원은 조사대상 상품에 관해서는 원고 승소 판결, 지역적 범위에 관해서는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원고는 1심에서 패소한 조사의 지역적 범위에 관해 상고하였지만, 유럽사법재판소는 이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유럽일반법원은 유럽절차규칙 제20조 제4항에 근거한 집행위원회의 정식조사결정은 원칙적으로 취소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원고가 주장한 두 가지 측면, 즉 조사대상으로서의 상품영역과 지역 범위에 관해 차례대로 판단을 내렸다.
유럽일반법원은 “해저 고압전선과 지하 고압전선을 포함한 기타 전선 및 부속품”30)이라는 표현이 애매하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 정도 표현으로는 이를 ‘전선상품 전체’로 이해하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유럽일반법원은 집행위원회가 조사대상 상품을 지나치게 넓게 설정했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는 집행위원회가 정식조사 이전에 가지고 있는 증거자료가 조사대상 상품을 ‘전선상품 전체’로 확장하는 정당성을 가져다주지 못하여 과도한 조사범위가 설정되었다고 결론짓고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보다 구체적으로 유럽일반법원은 정식조사 이전에 집행위원회가 조사범위로 설정할 상품영역에 관한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피조사인이 조사대상 상품의 범위가 잘못 설정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증거를 제시하면 법원이 이를 사후적으로 심사해야 한다고 전제하였다. 넥상스는 ① 집행위원회가 현장조사 중 조사한 인원 및 장소가 ‘해저전선’ 영업과 관련된 부분에 한정되었고, ② 집행위원회가 일전에 발표한 관련 보도자료에도 이 사건의 문제되는 상품이 ‘해저전선’으로 명시되었다는 점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전선상품 전체’로 설정된 조사대상 상품의 범위는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집행위원회는 원고의 주장에 대응하여 자신이 ‘전선상품 전체’로 조사대상을 설정한 근거로 자진신고자의 진술을 제시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법원은 당해 자진신고 자료만으로는 집행위원회가 자신의 판단을 입증할 합리적 근거(reasonable grounds)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유럽일반법원은 조사의 지역적 범위에 관해서는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는데, 그 판단의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사결정문에는 당해 조사결정의 이유가 되는 담합행위가 ‘아마도 전세계적 범위를 가지는 것, probably had a global reach’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유럽일반법원은 이것으로 조사의 지역적 범위가 ‘전세계’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적시되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울러 유럽일반법원은 집행위원회가 설정한 조사지역이 애매하다는 원고의 주장은, 집행위원회가 아무런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유럽 역외지역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치환될 수 있다고 하면서, 다만 유럽절차규칙에 따른 집행위원회의 조사권은 유럽기능조약 제101조와 제102조를 위반하는 행위가 유럽 내의 경쟁상황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므로 유럽 역외지역의 자료를 통해 유럽시장의 경쟁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살피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원고는 유럽일반법원에서 패소한 조사의 지역적 범위에 관하여 상고하였지만, 유럽사법재판소는 집행위원회와 유럽일반법원의 논거를 그대로 받아들여 원고 패소판결을 확정하였다.
유럽절차규칙 제20조에 따르면 집행위원회는 경쟁법 위반 사안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31) 집행위원회의 조사는 ‘정식조사’와 ‘단순조사’로 구분되는데,32) 정식조사는 집행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수행하는 조사활동이다. 소위 ‘기습현장조사, dawn raid’가 정식조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진다.33) 정식조사와 관련하여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바로 정식조사의 대상이 되는 피조사업체는 조사에 대한 수인의무(Duldungspflicht)와 협조의무를 갖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집행위원회의 정식조사는 유럽 기본권 헌장 제7조와 유럽 인권 협약 제8조에서 보호하는 사업자의 사적 영역, 사적 공간, 사적 대화에 관한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 유럽 판례의 입장이다. 집행위원회가 정식조사를 행하기 위해서는 법위반혐의에 대해 어느 정도 합리적인 근거를 갖고 있어야 한다.34) 한편, 유럽절차규칙 제20조 제3항에 규율된 집행위원회의 단순조사는 피조사업체가 단순조사에 동의하는 경우에 시행하며, 법집행 초기에는 많이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거의 활용되고 있지 않다.35)
상술하였듯이 집행위원회가 정식조사를 행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공식적인 결정이 필요하다.36) 정식조사 결정은 당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집행위원회 위원이 참석한 회의를 통해 내려지고, 피조사업체와 그 대리인에게 결정문 사본이 통지되어야 한다.37) 정식조사 절차는 조사결정문이 통지됨으로써 개시되고, 당해 절차의 총 책임자는 경쟁총국의 총국장(Generaldirektor, Director General)이 된다.38) 유럽 판례에 따르면, 정식조사에 관해 불복하고자 하는 피조사업체는 정식조사 결정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39)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집행위원회의 정식결정문에는 조사의 대상, 목적, 기간, 그리고 받을 수 있는 제재, 불복방법에 대해 기재된다. 관련하여 넥상스 사건에 의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조사의 대상과 목적에 관해서는 정식조사의 대상이 되는 상품의 영역과 지역적 범위가 구체적으로 명시된다는 점이다. 즉, 집행위원회는 조사결정문을 통지함에 있어 “해저 고압전선과 지하 고압전선을 포함한 기타 전선 및 부속품”과 같은 조사대상 상품의 범위, 그리고 “전세계적 범위”과 같은 지역적 범위를 피조사업체에게 알려야 한다. 유럽법원에 따르면, 비록 집행위원회의 정식조사가 경쟁법 위반 혐의를 밝히는 데에 매우 중요하고 조사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이전에 조사범위를 특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사대상 및 목적을 제한하고 그로써 조사범위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다면 집행위원회의 무제한적인 조사를 허용하게 되어 조사결정문의 기재내용을 명시한 유럽절차규칙 제20조 제4항의 취지를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40)
넥상스 사건에서 유럽일반법원은 조사결정문의 기재내용에 관한 일반원칙을 설시하였는데, 요점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41) 첫째, 조사결정문에 조사대상과 조사목적을 특정하는 것은 집행위원회가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요구사항이고, 이는 집행위원회 조사권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피조사업체의 방어권을 보장한다. 둘째, 조사대상과 조사목적을 명시하는 것은 피조사업체 방어권 보장의 근본을 이루고, 따라서 집행위원회는 조사를 행하고자 하는 혐의사실을 최대한 명확히 제시하여야 한다. 셋째, 집행위원회는 조사가 이루어지는 시장 내지 관련시장을 적시할 필요는 없지만, 피조사업체가 정식조사 결정에 따른 협조의무와 수인의무의 범위를 알 수 있는 정도로 상품 및 지역의 범위는 제시하여야 한다. 요컨대 넥상스 판결은 집행위원회가 행하는 경쟁법 위반조사의 상품 및 지역의 범위가 일정한 한계를 가짐을 보이면서, 소위 ‘그물망 조사, fishing expedition’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인 판결로 이해할 수 있다.42)
마지막으로 검토할 것은 바로 유럽집행위원회 정식조사 결정에 대한 불복제도이다. 앞서 정리하였듯이 유럽 판례는 정식조사 결정에 대한 취소소송이 가능하다는 법리를 확립하고 있으며,43) 유럽절차규칙 제20조 제4항에도 당해 내용이 조사결정문에 적시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44) 유럽 경쟁법 절차에서 적용되는 각종 기본원칙들이 결국은 유럽 판례에서 설시한 법리에 의해 확립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45) 조사결정문의 기재내용과 같은 피조사인의 방어권 보장의 기본적 요구사항이 실무적으로도 관철되는 이유 또한 궁극적으로는 집행위원회의 조사결정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행위원회의 정식조사 결정에 대한 불복가능성은 경쟁당국의 조사절차를 합리화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46)
조사결정에 대한 불복은 집행위원회의 기습현장조사가 종료된 후에 제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47) 그러나 그러한 사실만으로 불복소송의 소의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당해 조사결정은 궁극적으로 법 위반사실에 관한 위원회의 최종 의결에 효과를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조사결정의 절차적 하자를 다투는 것은 주관적 권리보호 차원에서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48) 나아가 당해 불복가능성을 통해 경쟁법 조사절차의 기본원칙이 형성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는 객관적인 법치주의 차원의 공익 또한 보호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건대, 유럽 넥상스 판례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를 정리하기에 앞서 유럽집행위원회의 정식조사와 우리나라 공정위의 현장조사의 차이점에 따른 문제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임의조사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는 공정위의 법위반조사와 유럽집행위원회의 결정을 통한 정식조사행위가 법적 성격에 있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양자를 직접적으로 비교하여 시사점을 도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에 관한 비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견으로는 비록 양자 사이에 일정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비교법의 핵심이 바로 법적 개념 내지 성격을 사상하고 그 기능에 주목하는 ‘기능론적 방법론’에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49) 조사행위의 법적 성격이라는 복잡한 논의를 생략하더라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즉, 법위반 조사에 있어 비례의 원칙 내지 적법절차의 원칙을 실현해야 한다는 기능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현장조사시 교부하는 조사결정문 내지 조사공문의 내용에 관해 유럽 판례로부터 일정한 의미를 찾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공정거래 조사에 있어 경쟁당국이 갖는 어려움이나 법위반행위의 특성 등은 구체적인 개선방안 단계에서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넥상스 판결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공정위의 현장조사공문 내지 유럽집행위원회의 조사결정문은 법위반혐의를 밝혀내기 위한 현장조사의 범위를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확정해주는 기능을 갖는다. 나아가 당해 기능은 유럽판례가 밝힌 바와 같이 다시 양면적 성격을 갖는데, 한편으로는 경쟁당국의 조사권한의 범위와 여기에 요구되는 사업자의 협조의무의 범위를 확정 및 명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해 범위를 넘어서는 조사에 대해 피조사인의 방어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첫 단추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즉, 기능적인 측면에서 현장조사공문은 경쟁당국의 실효적인 조사를 가능하게 한다는 측면과 피조사인의 방어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을 모두 갖는다. 이러한 양면적 기능에 주목하여 유럽(EU)판례는 유럽집행위원회의 정식조사에 수반되는 현장조사에서 현장조사의 대상과 목적을 담은 조사결정문의 교부를 절차상의 기본적인 요구사항으로 이해하고 있음은 위에서 살핀 바와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실무에서는 현장조사공문이 오직 공정위의 강력한 조사권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다. 즉, 법위반 혐의를 밝히기 위해 공정위 조사공무원이 조사공문에 적시된 범위 안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조사를 할 수 있으며 사업자는 이를 수인하고 협조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상술한 비교법적 관점뿐만 아니라 조사절차규칙 제6조 제1항 제6호에서 규율하는 피조사인의 조사거부규정을 강조하는 관점에 따르면 현장조사공문이 가지는 피조사인의 방어권적 의미 또한 강조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장조사공문에 적시되는 조사목적 및 조사대상은 지금과 같이 관련 법 조항과 법위반혐의, 그리고 피조사업체의 명칭과 소재지를 제시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아니된다. 피조사업체가 조사에 협조해야 하는 범위를 설정하고 이를 알게하는 것이 현장조사공문의 규범적 기능이라는 점, 그리고 당해 내용을 적시하는 것이 피조사인의 기본권인 방어권 보장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조사공문에서는 현장조사를 하는 이유 즉, 법위반혐의에 대한 내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여기서 위에서 살핀 유럽의 경우를 참조하여 최소한 조사대상이 되는 상품의 범위와 지역적 범위를 표시하는 것이 고려될 수 있다.
물론 조사목적 및 조사대상을 표시하는 표현의 수준은 제한적일 수 있다. 유럽 법원 또한 인정하였듯이 경쟁당국이 현장조사를 실시하기 이전에 법위반 혐의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합목적적인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조사대상이 되는 상품의 범위는 문제가 되는 사안에서 획정되는 관련상품시장과 동일할 필요가 없다는 유럽 판례의 판시사항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실무적으로 사실에 대한 조사 내지 사전심사가 정식조사와 엄밀하게 구분되고 있지는 않지만, 사건절차규칙은 공정위의 조사절차 이전에 사실에 대한 조사 내지 사전심사에 관한 내용을 동 규칙 제10조에서 마련하고 있고,50) 심사관은 이를 통해 어느 정도의 조사대상과 조사목적을 확정하게 된다. 요컨대 공정위는 사전심사를 통해 얻은 정보 내지 증거자료를 통해 조사대상이 되는 상품이나 지역의 범위를 어느 정도 특정할 수 있을 것이다.51)
마지막으로는 공정위 현장조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의 문제에 관하여 다양한 각도로 심사숙고 해보아야 한다. 공정위 조사에 대한 사후적 통제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비록 공정위가 조사대상 상품의 범위와 지역적 범위를 보다 조사공문에 구체적으로 명시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당해 사안에 있어 합리적인 범위인지에 대해 피조사인이 의문을 가지는 때에 이를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는 조사방해의 이유로 공정위가 피조사인에 대해 형벌 내지 과태료를 부과하는 경우,52) 이에 대한 불복과정에서 피조사인이 공정위 조사의 적정성 문제 등을 다툴 수 있을 뿐인데, 조사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직접적인 불복수단을 고안하는 것이 합리적인 공정거래 조사절차를 확립하는 데에 보다 실효적일 수 있다.
본고에서 살핀 유럽 넥상스 판례는 유의미한 참고사례가 될 수 있다. 즉, 위원회의 정식조사 결정이 불복의 대상이 되는 점, 현장조사가 종료된 이후라도 조사결정에 대해 다투는 것이 소의 이익 요건을 충족한다는 점, 위원회 조사에 관한 불복을 통해 궁극적으로 조사절차상 적법절차원리가 보다 구체화되고 기본원칙 등이 확립된다는 점은 추후 공정거래조사의 사법적 통제를 모색함에 있어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라 할 것이다.
Ⅳ. 개선방안
위 논의를 종합하면 현재 교부되고 있는 공정위 현장조사공문의 조사목적 및 조사대상은 보다 구체적으로 적시되어야 한다. 우선, 조사목적과 관련해서는 법위반혐의를 보다 명확히 한계 짓기 위하여 당해 조사와 관련된 사건명 또는 사건번호를 적시하는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현행 사건절차규칙 제11조 제1항에 의하면 현장조사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심사관이 위원장에게 사건심사 착수보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동조 동항 제1호에 따르면 사건심사 착수보고에는 ‘1. 사건명, 2. 사건의 단서, 3. 사건의 개요, 4. 관계법조’가 포함되어야 하고, 나아가 동조 제3항은 사건심사 착수보고가 있는 때에는 사건번호를 부여하게끔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사건심사 착수보고 이후의 현장조사에서 교부되는 조사공문에는 당해 사건의 사건명이나 사건번호가 충분히 적시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건번호는 공정위 심사관이 구체적인 조사내용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당해 조사의 목적을 합리적으로 확정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조사대상과 관련해서는 유럽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조사의 대상이 되는 상품의 범위와 지역의 범위 등을 함께 명시할 필요가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사건심사 착수보고서에는 사건의 단서와 사건의 개요가 포함되므로 공정위 입장에서는 조사상품과 조사지역의 범위를 어느 정도 확정할 수 있다. 물론 본격적인 정식조사가 진행되지 않은 단계에서 관련상품시장 또는 관련지역시장에 준하는 범위를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해저고압전선’ 내지 ‘고압전선 전체’ 등의 표현으로 피조사인이 어느 정도 조사의 범위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면 족할 것이다.
한편, 조사대상은 법위반유형에 따라 다양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세부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조사대상은 때에 따라서 조사대상상품이 아니라 조사대상이 되는 거래내용 또는 일련의 계약과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법 제19조 부당한 공동행위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담합의 대상이 된 상품을 적시하면 될 것이지만, 입찰담합의 경우 해당 입찰을 적시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유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법 제23조 제1항 제7호 내지 제23조의2의 부당지원행위 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일 것인데, 이 경우에도 당해 사안의 핵심을 알 수 있는 지원객체나 지원방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다. 구체적인 사안에 따른 조사대상의 내용에 관해서는 공정위가 별도의 고시를 제정하여 운영하는 것 또한 고려될 수 있다.
정리하면, 현재 조사공문에서 애매모호하고 광범위하게 명시되는 조사목적 및 조사대상은 개선되어야 한다. 특히, 위에서 제안한 개선방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조사목적과 조사대상을 과거 사건절차규칙과 동일하게 규율하고 있는 현행 조사절차규칙 제6조 제2항이 개정되어야 한다. 다만 2020년 5월 법개정에 의해 개정법률 규정을 뒷받침하는 시행령안이 공정위 내부에서 마련되고 있을 것인데, 조사목적과 조사대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법 제50조 제4항과 관련된 시행령 규정으로 상향하여 합리적인 내용으로 규율하는 것이 입법론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상술한 바와 같이 공정위 현장조사에 대해 사후적인 불복가능성이 없다면, 관련 규정만으로 공정위 조사공문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공정위 조사활동에 관한 사법적 통제방법은 차후 별도의 연구에서 다루고, 여기서는 행정소송의 요건과 관련하여 고민되어야 하는 사항만 간략히 정리해보도록 한다. 일반적으로 공정위의 적법하지 않은 조사에 대해서는 피조사인이 취소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이는데, 행정소송법상 취소소송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상적격, 원고적격, 소의 이익이라는 소송요건을 만족하여야 한다.
우선, 공정위의 조사는 피조사인에게 수인의무 및 협조의무를 지게 하고, 조사과정에서 진술할 권리를 부여해주므로 공권력 행사에 의한 국민의 구체적인 권리의무관계의 변동을 요구하는 원고적격의 문제는 크지 않을 것이다. 또한, 비록 현장조사 등이 모두 마무리된 후 진행되는 조사에 관한 사법적 통제가 현장조사를 중지시키는 등의 직접적인 효과를 가지지는 못하지만, 절차적 하자의 효과 차원에서 공정위 결정의 정당성을 다툴 수도 있는 바,53) 소의 이익 또한 인정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반면 공정위 조사가 행정소송법상 ‘처분’ 개념에 해당되는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우선 행정조사의 대상적격에 관해서는 행정법학계에서도 다툼이 존재하고,54) 특히 공정위 조사절차에 있어 취하는 행위 중 어떠한 것이 취소소송의 대상이 되는지에 관해서는 깊게 고찰해보아야 할 것이다.55)
Ⅴ. 결론
1. 기본적으로 넓은 재량이 인정되는 공정위 조사권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규범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현장조사의 범위와 한계에 대해서는 경쟁당국과 피조사인의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56) 당해 문제에 관한 컨센서스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경쟁당국이 갖는 조사권의 범위와 한계를 합리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피조사인의 방어권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공정위의 법집행절차 전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경쟁당국과 절차참여자들이 인식해야 한다. 나아가 경쟁당국은 공정거래절차에 있어 절차적 공정성이 법집행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것임을 이해하여57) 공정거래절차상 적법절차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다.
2. 공정거래절차의 문제는 구체적인 제도가 재설계되고 운영됨으로써 개선된다. 현장조사권의 범위를 확정하는 제도적인 장치로는 조사공무원이 교부하는 현장조사공문이 마련되어 있고, 현장조사절차의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공문에 기재되는 조사목적·조사대상이 현행 규정이나 실무에서 사건번호 및 조사대상 상품 및 지역의 범위로 구체화 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입찰담합, 부당지원행위나 사익편취행위 등 법위반행위 유형에 따른 조사대상의 내용이 세분화될 필요가 있는 등, 조사목적과 조사대상의 내용에 관해서는 필요에 따라서 우리나라 공정거래 조사의 현실적인 특징을 면밀히 반영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3. 본문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공정위 조사에 대한 사법심사의 길을 여는 것은, 피조사인의 주관적 권리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공정위의 재량을 적절히 통제하여 적법한 결정을 내리게끔 하는 객관적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의미를 함께 가진다. 따라서 향후 공정위 조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방법이 이론적으로 검토되고 제도적인 방안이 고안되어야 한다.
공정위 조사의 사법적 통제가능성을 모색하고 구체적인 제도를 설계하는 데에는 일견 행정조사의 불복과 관련된 일반적인 논의를 우선적으로 참고해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탐구과정에서는 행정조사기본법과 공정거래법과의 관계 등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공정거래조사의 특수성을 밝히고 이를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