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지난 2020년 9월 18일(미국 현지 시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미국 연방대법관이 87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대법관이었던 그녀는 1993년 민주당 출신의 빌 클린튼 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된 후 28년째 연방 대법관직을 수행했던 진보적 성향의 법관으로 유명했다. 그녀의 사망 소식은 2020년 11월 3일(미국 현지 시간)에 치러질 예정인 미국 대통령 선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보수층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President Trump)이 보수인사를 연방대법관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농후하여 현재 보수와 진보 사이의 5:4라고 분석되고 있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구도에 균형이 깨어져서 연방대법원 판결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강력하게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서 대통령 일방주의를 추진해왔던 트럼프(Trump) 대통령은 집권초기부터 수많은 행정명령을 발하여 왔고 그러한 행정명령에 의하여 자신의 정책목표를 실현하려고 노력해 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이민을 하려는 외국인이나 미국에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에 대해 강력한 규제 정책을 실시하여왔고 그러한 규제정책 중 하나가 전임 오바마 대통령 때 시행되었던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the 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이하 “DACA”)1)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反이민정책과 관련하여 많은 소송이 제기되었고, 2020년 6월 18일에 미국 연방대법원은 Dep't of Homeland Sec. v. Regents of the Univ. of Cal.판결2)과 병합된 Trump v. NAACP판결, Wolf v. Vidal판결3)을 하였다. 이 판결은 긴즈버그 대법관이 거의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다수의견일 뿐만 아니라 2년 전에 있었던 Trump v. Hawaii 판결4)과는 달리 미국 대통령 일방주의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Dep't of Homeland Sec. v. Regents of the Univ. of Cal.판결5)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미국 대통령 일방주의를 대표하는 미국 대통령의 대통령지시를 포함한 행정명령에 대한 분석과 그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사법심사의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 대토령지시사항의 사법심사 등의 시사점을 알아보고자 한다.
Ⅱ. 연방대법원 판결례 소개
2012년 오바마 대통령 재직 시에 미국 국토안보부(the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이하 ‘DHS’)는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을 실시하여 미성년자로 미국의 불법이민자인 부모를 따라 미국에 입국한 경우에는 2년간 추방일시정지(two year forbearance of removal)를 신청할 수 있는 메모랜덤(memorandum)을 시행하여 약 70만 명 정도가 그 혜택을 보고 있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에 미국 이민정책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의 폐지를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2017년 6월 국토안보부(DHS) 장관인 Elaine C. Duke은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을 폐지하기로 결정하고 새로운 신청을 더 이상 받지 않으며 기존의 수혜자들 중 6개월 이내에 만료되는 사람들은 유예기간의 갱신을 신청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존의 추방유예기간이 종료되면 더 이상 갱신을 신청할 수 없다는 정책을 장관의 메모렌덤으로 발표하였다.
캘리포니아 대학위원회(Regents of the Univ. of Cal.)는 자신의 대학에 재학 중인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의 수혜자들을 대신하여 Duke 장관의 이러한 메모렌덤은 행정절차법((Administrative Procedure Act 이하 “APA”)의 행정입법절차를 위반하였고 연방수정헌법 제5조의 적법절차(Due Process) 등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였다.
2018년 1월 9일에 캘리포니아북부 연방제1심법원(the U.S. District Court for the Northern District of California)의 윌리엄 앨섬 판사(Judge William Alsup)는 소송이 종결되기 전까지는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을 계속 유지할 것을 명령하는 잠정적 구제(Temporary relief)를 허용하는 판결을 하였다.6) 이러한 연방제1심법원의 판결은 항소절차를 거쳐 2018년 11월 8일 연방제2심법원(the Ninth Circuit)에서 연방제1심법원의 잠정적 구제를 인용하는 판결을 하였다.7)
연방정부는 연방제2심법원(the Ninth Circuit)의 판결 후에 연방대법원에 사건이송명령(certiorari)을 요청하였고 이 사건은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과 관련 다른 두 사건과 병합하여 연방대법원에서 다루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 폐지정책에 반대하여 흑인인권옹호단체(NAACP)가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컬럼비아 특별구 연방제1심법원(the United States District Court for the District of Columbia) 베이트 판사(Judge John D. Bates)는 트럼프 대통령의 폐지정책을 무효화하는 판결을 하였고8) 이후 재심사가 거부되었다.9)
이 사건의 원고 비달(Batalla Vidal)은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의 수혜자로 트럼프 행정부가 시행한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의 폐지정책은 행정절차법(APA)과 연방헌법상 적법절차의 위반에 해당하므로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였고, 2018년 2월 13일 뉴욕주 동부지구 연방제1심법원(The United States District Court for the Eastern District of New York) 가아우피시 판사(Judge Nicholas G. Garaufis)가 예비적 가처분(preliminary injunction)을 받아들이고 피고의 기각청구를 거부했다.10)
이상에서 다룬 세 사건이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 폐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연방대법원에서는 이 사건들을 병합하여 Dep't of Homeland Sec. v. Regents of the Univ. of Cal. 판결을 하게 된 것이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비교적 간단하다. 1) 트럼프 정부의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 폐지는 행정절차법(APA)을 위반한다. 2) 원고들은 헌법상 평등조항위반을 주장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 판결의 다수견해는 연방대법원장 로버트(Roberts)가 썼고 이에 긴스버거(Ginsburg), 브라이어(Breyer), 케이건(Kagan), 소토마이어(Sotomayor) 대법관 등이 찬성하였다.
Ⅲ. 미국 대통령의 대통령지시제도
미국 대통령은 여러 가지 형태의 공식적 명령들을 통하여 연방정부의 공무원들에게 자신의 정책을 지시하고 집행하고 있다. 이렇게 대통령이 다양한 형태의 지시를 통해서 미국을 이끌어가는 것을 일컬어서 대통령 일방주의(presidential unilateralism)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12) 여러 행태의 대통령 지시에는 대통령 교서(Presidential memoranda), 대통령 결정(Presidential determinations), 대통령 선언(Presidential proclamations), 행정명령(Administrative orders), 대통령 통지(Presidential notices), 대통령 재정명령(Presidential sequestration orders), 국가안보 관련 대통령 지시(National security presidential memoranda) 등이 그 주요사례에 해당한다. 대통령 지시 등에서 대통령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은 가장 공식적이고 정형화되어 있는 형식이라고 평가되지만 대통령이 발하는 모든 형식의 대통령 지시 등을 대통령 행정명령(E.O.)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13)
이러한 견해는 광의의 행정명령(E.O.)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미국 대통령의 헌법상 집행권에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지시 등 행정명령(E.O.)은 사실상 집행권 그 자체라고 평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고 그 적용범위도 매우 광범위한 것으로 파악될 것이다. 한편 대통령이 연방의회의 수권범위 안에서 발령하여야하는 법률의 구속적 집행도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협의의 행정명령(E.O.)으로 접근하는 견해도 있다.14)
광의의 행정명령(E.O.) 혹은 협의 행정명령(E.O.)으로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E.O.)을 나누는 것은 사실 작위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고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다양한 형태의 대통령 행정명령이 발전되어 왔고 뉴즈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 때 매우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물론 대통령실 내부에서 사전 검토과정을 거치겠지만 행정명령(E.O.)을 제정하기 위해서 행정절차법(APA)에서 규정하고 있는 청문이나 의결제출과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고 오직 대통령의 서명 이후 연방공보(The Federal Register)에 게재되는 형식만 갖추면 행정명령(E.O.)으로 효력을 발생한다.15) 대통령은 재량으로 행정명령(E.O.)을 제정할 수 있고 새로운 행정명령(E.O.)을 발하여 이전 대통령이 발효한 행정명령(E.O.)의 효력을 제한하거나 무효화시킬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행정명령(E.O.)은 제정과정에서 대통령실 내부의 검토과정은 당연히 거치겠지만 행정절차법(APA) 등의 절차적 통제 혹은 외부적 통제를 받지 않는다.16)
대통령지시 등의 여러 가지 명칭에 대해서 앞에서 살펴보았는데 그 구체적 효력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우선적으로 연방행정기관과 연방공무원에 대해서는 이른바 대내적 구속력은 당연히 가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연방행정기관이나 연방공무원 이외에 일반 국민 등을 대상으로 하는 대외적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가에 있다고 하겠다.
미국에서 대통령지시 등이 새로운 법률관계를 형성하느냐 혹은 기존의 법률에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구체적 적용해석을 규정화한 것이냐에 따라서 입법규정(legislative rules)과 해석규정(interpretive rules)으로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입법규정(legislative rules)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creation)하고 행정기관은 물론 일반국민도 구속하는 것을 입법규정(legislative rules)이라고 하는 반면, 해석규정(interpretive rules)은 기존 법률관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법적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고 하겠다.17) 이러한 구별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방법원들에서는 그 구별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18)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적 대통령 지시 등에 해당하는 행정명령(E.O.)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지 여부, 행정명령(E.O.)이 행정청 등의 규제행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 혹은 행정명령(E.O.)이 일반 국민들에게 법적 권리나 의무를 부과하는지 여부에 따라 입법규정(legislative rules)과 해석규정(interpretive rules)으로 구별 가능할 것이다.19)
대통령의 행정명령(E.O.)이 입법규정(legislative rules)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사례로는 트럼프(Trump) 대통령이 발한 행정명령 제13,769호를 비롯한 일련의 여행금지행정명령(Travel Ban Executive Orders)라고 할 것이다. 행정명령 제13,769호의 기원은 트럼프(Trump)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1월 25일에 발한 행정명령 제13767호(E.O. 13767)이다. 행정명령 제13767호(E.O. 13767)의 제목은 “국경의 안전확보와 이민정책의 시행향상을 위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Executive Order Border Security Immigration Enforcement Improvements)이었다. 이에 의하여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에는 트럼프의 장벽(Trump’s Wall)이라는 구조물을 건설할 것을 요구하게 되고 2018년 12월 22일 미국 연방정부는 업무폐쇄(shutdown)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56억 달러($5.6 billion)의 연방기금을 장벽건설 비용으로 의회에 요구하였기 때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E.O.)에 의하여 연방정부기관은 미국에 입국하려다 구금된 7개 무슬림 국가의 외국민을 그 본국으로 송환하려고 하였으나 뉴욕 JFK 국제공항에 구금된 이라크 남성 2명을 대신하여 미국 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이 백악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20) 곧 이어서 2017년 1월 27일 행정명령 제13769호21)가 발효되었는데 이것은 무슬림 국가출신들의 여행객들이 미국에 입국하는 것을 잠정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행정명령(E.O.) 제13769호가 발효되자 이에 맞서서 많은 소송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워싱튼 주와 미네소타 주 정부가 자신들의 주에 거주하는 무슬림 거주자들에 대신하여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에 전국적 잠정적 금지명령(temporary restraining order 이하 “TRO”)이 2017년 2월 3일에 내려졌다.22) 이에 연방정부는 연방항소법원에 항소하였지만 2017년 2월 9일에 연방항소법원(the United States Court of Appeals for the Ninth Circuit)은 연방정부의 청구를 기각하였다.23)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E.O.) 제13769호를 대체하여 2017년 3월 16일 행정명령(E.O.) 제13780호를 발효하게 되었다.24) 연방대법원은 2018년 6월 26일에 행정명령(E.O.) 제13780호는 연방헌법과 연방법률에서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방과 외교에 관한 강력한 권한 내에서 발효된 것으로 합헌이라는 판결을 하게 된다.25)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E.O.) 제13769호는 특정종교를 믿는 외국인이 미국에 입국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대통령의 광범위한 재령권이 인정된다는 것을 판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법원에서 이렇게 행정명령(E.O.) 제13769호에 대해서 사법심사를 한 것은 여행금지행정명령(Travel Ban Executive Orders)이 미국 입국을 불허하는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였고 연방기관의 규제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으로 입법규정(legislative rules)에 해당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26)
대통령의 행정명령(E.O.) 등이 해석규정(interpretive rules)에 해당하는 경우는 부시 대통령(President Bush)때 발생한 9/11 테러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토안보국(the Office of Homeland Security)을 설립하기 위한 행정명령(E.O.) 제13,228호를 발하였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해석규정(interpretive rules)에 속한다.27) 행정명령(E.O.) 제13,228호에 의하여 국토안보국(the Office of Homeland Security)이 만들어지고 기존의 여러 부처로 흩어져있던 이민정책을 수행기능과 귀화정책의 수행기능을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하나의 연방기관에 통합하게 되어, 이것을 국토안보명령(Homeland Security Order)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행정명령(E.O.) 제13,228호의 직접적 영향에 의하여 국토안보법률(the Homeland Security Act)이 2002년에 입법화되었고 기존의 연방 이민•귀화국(the U.S. 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Service)이 대체되어 국토안보부(the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가 설립되었다.28)
행정명령(E.O.) 제13,228호는 이민과 귀화에 과한 행정청의 규제행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귀화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법적 권리와 의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측면에서 보면 입법규정(legislative rules)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연방법률인 국토안보법률(Homeland Security Act of 2002)로 대체되었으므로 해석규정(interpretive rules)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아닌 연방의회(Congress)가 연방법률을 통과시켜서 국토안보부(the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를 설립하였기 때문에 행정명령(E.O.) 제13,228호는 해석규정(interpretive rules)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입법규정(legislative rules)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지와 의견제출에 따른 행정법령 제정절차(the notice-and-comment rulemaking process)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29)
Ⅳ. 대통령지시와 행정절차법(APA)
미국에서 대통령지시가 단순히 대내적 효력만 가져서 해석규정(interpretive rules)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행정절차법(APA)을 따를 필요도 없고 따라서 연방행정절차법(APA)에서 정한 절차적 통제없이 행정부 자체적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지시가 단순한 해석규정(interpretive rules)이 아니라 입법규정(legislative rules)에 해당하여 연방정부기관이나 공무원을 넘어 일반국민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있고 새로운 권리나 의무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행정절차법(APA)에 따른 절차적 통제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1946년 미국 연방의회는 행정절차법(APA)을 제정하여 행정부가 집행행위를 하는 과정에 적용되는 법원칙들을 규정하고 있다.30) 행정절차법(APA)은 미국에서 오랜 연구와 투쟁의 거쳐서 만들어진 산물로 이 연방법률의 제정으로 오랜 기간 계속되었던 주장들이 해결됨과 동시에 서로 반목하는 정치세력들이 의존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형성한 것이라는 연방대법원의 평가는 주목받을 만하다.31)
행정절차법(APA)은 행정부의 집행행위 양식을 재결(adjudication)과 행정입법(rule-making)으로 구별하여 그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행정입법절차는 정식절차(formal rule-making)와 약식절차(informal rule-making)로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다. 실제에 있어서는 약식절차(informal rule-making)에 의하여 행정입법이 대다수 이루어지고 있다.32)
약식절차(informal rule-making)는 행정기관에서 행정입법안을 통지(notice)하고, 일반 국민 등이 통지된 행정입법안에 대하여 논평이나 의견제출(comments)을 받고 이러한 의견 등을 반영하여 행정기관에서 최종행정입법(final rule)을 연방공보(the Federal Register)에 공포하는 3단계를 거쳐서 행정입법을 하게 된다. 행정절차법(APA)의 약식절차에 따라 행정입법을 한 경우, 해당 행정입법은 자의적이거나 재량남용 또는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에 취소하는 것으로 한다고 행정절차법(APA)에서 규정하고 있다.33)
행정절차법(APA)에서 규정하고 있는 약식절차에 따른 행정입법에 대한 자의적(arbitrary and capricious) 심사기준이 어떤 기준인가에 관한 해석이 명확하지 않아서 어떠한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연방법원의 해석에 맡겨져 있다.34) 자의적(arbitrary and capricious) 심사기준에 대하여 연방법원이 집행부의 재량을 인정하지 않고 집행부가 행정입법권의 정당성에 의구심을 품고 행정입법에 대한 사법심사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연방법원 판사들이 현대 적극행정규제국가의 역기능을 교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엄격심사주의에 의한 사법심사(the hard-look judicial review)라고 할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1971년 Citizen to Pres. Overton Park v. Volpe 판결에서 연방법원이 행정부의 결정을 심사할 때에는 행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관련 요소들을 합리적으로 고려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엄격심사주의를 채택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35)
한편, 행정입법에 대한 자의적(arbitrary and capricious) 심사기준에 대하여 연방법원이 집행부의 재량을 인정하고, 첫 번째 단계에서 연방의회가 법률을 제정할 때 해당문제에 대해 행정부의 입법권한을 명확히 인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연방법원의 행정부의 행정입법권을 인정해야 하고, 두 번째 단계에서 해당 행정입법이 근거법률에 비추어 상당(reasonable)하여 합리적인 것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경우에는 비록 그것이 연방법원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연방법원이 이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Chevron 존중주의(Chevron deference)를 1984년 Chevron U.S.A. v. Natural Resource Defence Council, Inc. 판결36)에서 연방대법원은 천명하였다.
이러한 행정입법에 대한 사법심사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행정절차법(APA)에서 행정입법에 대한 절차적 통제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미국 연방헌법에서 행정입법권에 대한 명확한 근거규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미국 현실에서 행정입법과정에 ‘국민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연방법률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행정입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은 행정입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행정절차법(APA)이 요구하는 행정입법에 대한 절차적 제약은 행정부의 행정입법권한에 대한 중요한 제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37)
행정절차법(A.P.A.)에 의한 행정입법에 대한 절차적 제약은 행정입법의 정확성, 효율성 그리고 책임성을 향상시킨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38)
Ⅴ. 맺으며
미국 연방대법원은 Dep't of Homeland Sec. v. Regents of the Univ. of Cal.39)과 병합된 Trump v. NAACP 사건, Wolf v. Vidal 사건에서 문제가 된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의 실체적 위법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오직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의 폐지정책과 관련된 대통령 지시사항이든 관련정부부처의 메모랜덤이든 모두가 입법규정(legislative rules)에 해당하고 따라서 행정절차법(APA)에 의한 약식입법절차(notice and comments rule-making procedures)를 거쳐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의 反이민정책에 대한 중대한 제동이 걸린 것이고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의 수혜자들과 그 가족들은 물론 인권옹호단체나 관련기관들에게도 승리를 안겨준 연방대법원 판결이라고 할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은 불법체류청소년추방유예정책(DACA)의 실체에 대한 논의는 없으므로 만약 트럼프 대통령 등이 절차적 요건을 갖추어서 해당정책의 폐지를 다시 추진할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또한 연방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해당 대통령지시와 관련된 사항 등에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하고 있고 미국에 체류 중인 불법이민자들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어서 무슬림을 믿는 외국인에 대한 미국에의 여행금지를 명령한 대통령 행정명령을 적법하다고 판단한 Trump v. Hawaii 판결40)과는 달리 대통령의 일방적 권한 행사에 중대한 타격을 준 판결이라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대통령 지시사항 등으로 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41) 하지만 대통령 지시사항이 문서화되거나 조문화되어 대외적으로 공포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42) 대통령 지시사항이 관보 등을 통해 공개된다면 그것이 비록 행정규칙의 성격을 지닌 것이라고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을 통한 통제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할 것이다.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