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저작권 분야의 오랜 난제의 하나는 산업적 목적으로 이용된 미술 작품을 저작물로 인정하여 저작권으로 보호할지의 문제이다.1) 전통적으로 저작권은 문화와 예술적 영역의 창작적 표현에 주어지는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얼핏 보면 산업적 이용을 목적으로 한 창작품에 대한 저작권의 보호는 이질감이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여러 가지 활동 중에서는,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경제적인 측면이 완전히 배제되는 성격의 활동이란 크게 많지 않다. 따라서 순수한 문화의 영역과 산업의 영역 간 경계란 그리 뚜렷한 것이 아니다. 결국 지적재산권 법률은 산업적 이용 목적을 지닌 인간의 창작의 소산도 일정한 요건 아래에서 권리로써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부여된 권리가 창작자에게 적절한 유인(誘因)으로 작용함으로써 작품 활동이 촉진되고 창작품의 유통에 있어서도 적정한 질서를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응용미술을 어떤 요건 하에서 저작권의 보호를 부여할지 결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본고에서 평석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르 슈크레 사건’ 판결(대법원 2015. 12. 10. 선고 2015도11550판결. 이하, 경우에 따라 ‘대상 판결’이라고 약칭함)은, 종래의 법원 판결과 비교하여 볼 때 그 판시 내용이 특이하여 응용미술의 저작권 보호 요건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관련 선행 판결과 함께 대상 판결은 2000년 개정 저작권법에 의하여 신설된 응용미술저작물의 정의 및 성립 요건을, 2000년 개정 이전의 법률과 그에 따른 재판례와 비교하여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응용미술저작물의 정의 중,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할 수 있는 미술저작물…’ 부분이 본고가 전개하고자 하는 논의의 핵심 대상이 된다.
본고의 얼개는 다음과 같다. 제Ⅱ장에서 대상 판결의 개요와 법원의 판단을 소개한다. 제Ⅲ장에서 ‘응용미술 저작물의 대량생산성 요건 검토’라는 표제 아래 응용미술저작물의 의의, 연혁, 성립 요건을 우선 살피고, 응용미술저작물과 일반 미술 저작물을 비교한 후, 대상 판결에 대한 기존 학설을 검토하면서 대상 판결이 제시하는 해결 과제를 가늠해 본다. 이어 관련 외국 법제를 개괄하며, 대량생산성이라는 본고의 연구 주제에 관한 필자의 의견을 정리한다. 이를 바탕으로, 제Ⅳ장에서 대상 판결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시도하고, 제Ⅴ장에서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Ⅱ. 대상 판결의 개요와 법원의 판단
대상 판결은 1년 먼저 선고된 ‘여우머리 상표도안 사건’ (대법원 2014. 12. 11. 선고 2012다76829판결2))의 판시를 따르고 있어, 이 선행 판결부터 소개한다.
원고는 1976년경 ‘’, ‘’, ‘’ 도안을, 1990. 6.경 ‘’, ‘’, ‘’, ‘’, ‘’ 도안을 각 작성하여 미국에서 그 명의로 공표하였다. 이 가운데 먼저 ‘’, ‘’ 도안은 ‘전체적으로 갸름하지만 양 볼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역삼각형의 두상을 기본으로 하면서 하단의 역삼각형 모양의 주둥이가 얼굴의 하단으로 갈수록 날카롭게 좁아지고, 양 볼의 아래쪽에는 털 갈퀴가 불규칙한 톱니 모양으로 표현되며, 눈과 코는 각각의 눈에서 콧날로 이어지는 격자형 선분으로 간략하게 표시되어 여우 특유의 매섭고 날카로운 인상을 더해주는 여우의 머리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 , ‘’, ‘’ 도안은 위와 같은 특징에 더하여 이를 비스듬한 형태로 변형함으로써 더욱 입체감이 있고 날렵한 특징이 강조되어 있다. 나아가 ‘’, ‘’’ , ‘’ 도안은 영문 ‘FOX’의 형상 중 알파벳 문자 ‘O’에 해당하는 부분을 위와 같은 여우 머리 형상으로 대체하여 간략하면서도 강렬한 여우의 머리 형상의 이미지를 부가하고 있다.
원고는 위 각 도안(이하 이를 ‘이 사건 원고 도안’이라 한다) 자체를 작성한 이래로, 이를 원고가 제조·판매하는 모토크로스(moto-cross)·산악자전거(mountain bike)·일반 자전거용 의류, 스포츠 장비, 신발, 잡화 등 물품에 표시해온 것 외에도, 다른 곳에 부착할 수 있는 전사지나 스티커 형태로 제작하여 잠재적 수요자에게 배포해오는 한편, 원고가 발행한 카탈로그 등 홍보물과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서 물품에 부착되지 않은 이 사건 원고 도안 자체만의 형태를 게재해왔다. 따라서 이 사건 원고 도안이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의 요건으로서 창작성을 구비하였는지 여부는 도안 그 자체로 일반적인 미술저작물로서 창작성을 구비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면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원고 도안은 모두 자연계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여우의 머리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여우 머리로 도안화되었거나 이와 같이 도안화된 여우 머리 형상을 포함하고 있어, 여기에는 창작자 나름의 정신적 노력의 소산으로서의 특성이 부여되어 있고 이는 다른 저작자의 기존 작품과 구별될 수 있는 정도라고 보인다. 그러므로 이 사건 원고 도안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의 요건으로서 창작성을 구비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 원고 도안이 상품의 출처표시를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는 사정은, 이를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하는 데 장애가 되는 사유가 아니다(밑줄 강조는 필자에 의함).
피고인이 상표권자 갑이 인형 등을 지정상품으로 하여 등록한 상표 “”와 동일 또는 유사한 상표 “”가 부착된 인형을 수입·판매함으로써 갑의 상표권을 침해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두 상표는 상품의 출처에 관하여 오인·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 유사상표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이다.
이 사건 캐릭터는 2004년경 일본에서 만화, 영화 등 대중매체에 표현되기 전에 상품에 사용되면서 공표되는 이른바 오리지널 캐릭터의 일종으로 개발된 도안으로서 물품에 표시되는 이외에도 2008년경 일본에서 공표된 동화책들에서 물품에 부착되지 않은 형태로 게재되는 등 이 사건 캐릭터 자체만의 형태로도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캐릭터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의 요건으로서 창작성을 구비하였는지 여부는 도안 그 자체로 일반적인 미술저작물로서 창작성을 구비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면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14. 12. 11. 선고2012다76829 판결).
그런데 이 사건 캐릭터는 흔히 볼 수 있는 실제 토끼의 모습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형상으로서 창작자 나름의 정신적 노력의 소산으로서의 특성이 부여되어 있고 다른 저작자의 기존 작품과 구별할 수 있는 정도라고 보이므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의 요건으로서의 창작성을 구비하였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이 원심 판시와 같이 이 사건 캐릭터의 단순한 입체적 형상으로서 그 복제물 또는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하는 토끼인형을 무단으로 수입하여 국내에서 판매하는 행위는 이 사건 캐릭터에 대한 저작재산권의 침해에 해당한다.
선행 판결인 여우머리 상표도안 대법원 판결의 원심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문제된 저작물을 응용미술저작물로 보았으나4), 대법원은 응용미술저작물이 아닌 일반 미술저작물로 보고 창작성 유무에 관한 심사만을 하여 저작권을 인정하였다.
대상 판결에서도 선행 판결의 법리를 인용하면서, 이 사건 토끼 캐릭터가 인형 상품으로 최초 공표된 시기 이후인 2008년경 동화책에 게재된 점, 즉 물품에 부착되지 않은 형태로 이용되는 등 캐릭터 자체만의 형태만으로도 사용되었다는 점을 들어, 도안 자체로 ‘일반적인’ 미술저작물로서 창작성을 구비하였는지 여부만 판단하면 충분하다고 하면서 응용미술저작물 해당성 여부에 대한 판단으로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Ⅲ. 응용미술 저작물의 대량생산성 요건 검토
응용미술(applied art)이란, “수공예품 또는 산업적 범위의 복제품인지를 불문하고, 실용품에 응용된 미술저작물”이다.5) 혹은, 순수미술에 대응하는 말로서 산업상의 이용 기타 실용적 목적을 가진 미술작품6), 미적인 요소와 실용적인 목적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것으로 실용품에 응용되어 양산(量産)되는 미술작품7) 등으로 관념된다. 건축저작물도 용어의 의의에 비추어 보면 응용미술저작물에 속하나, 일찍부터 별도의 유형으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8)
응용미술은 우리법상 공예와 구별된다.9) 공예는 일품제작(一品制作)의 수공적(手工的)인 미술작품으로 이해된다.10) 반면, 응용미술은 일품제작인 공예와는 달리, ‘대량생산성’의 성립요건을 갖는다.11)
응용미술은 ‘순수미술(fine art)’와의 대비에서 나온 용어이다. 순수미술은 무엇인가의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를 표현하기 위하여 창작된 것인 반면, 응용미술은 실용목적이라는 제약, 혹은 산업상 이용 목적이라는 제약을 받으면서 창작된다고 한다.12)
일반적으로 다음 4가지가 응용미술로서 거론된다. ① 미술공예품, 장신구 등 실용품 자체인 것, ② 가구에 응용된 조각 등과 같이 실용품과 결합된 것, ③ 문진(文鎭)의 모델형과 같이 양산되는 실용품의 모델형으로 이용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④ 의류디자인 등 실용품의 모양으로 이용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등이다.13)
1957년 저작권법14)에서는 저작물의 예시로서 공예를 규정하였으나 응용미술작품은 별도로 규정하지 아니하였다.15) 1957년 구 저작권법을 적용16)한 한 판례에서는 “1957년 저작권법 하에서는 일품제작(一品制作)의 미술공예품에 한하여 보호하였으므로, 1986년 저작권법 시행일인 1987. 7. 1. 이전에 고안된 일품제작된 것이 아닌 응용미술작품에는 저작권법상의 보호가 주어질 수 없다”고 하였다.17)
1986년 저작권법18)에서는, 미술저작물을 저작물의 일종으로 들면서 “회화, 서예, 도안, 조각, 공예, 응용미술작품 그 밖의 미술저작물”을 미술저작물로 규정하였다19). 저작권법에서 처음으로 응용미술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지만 응용미술작품의 정의(定意)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1986년 저작권법이 적용된 대한방직 사건20)에서 대법원은 “응용미술작품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의장법에 의한 보호로써 충분하고 예외적으로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가 중첩적으로 주어진다고 보는 것이 의장법 및 저작권법의 입법취지라 할 것이므로, 산업상의 대량생산에의 이용을 목적으로 하여 창작되는 모든 응용미술작품이 곧바로 저작권법상의 저작물로 보호된다고 할 수는 없고, 그 중에서도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적 특성이나 가치를 가지고 있어 위에서 말하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에 해당하여야만 저작물로서 보호된다”고 판시하고, 결과적으로 직물 디자인의 저작권 보호를 부정하는 판단을 내렸다. 이러한 태도는 응용미술의 보호에 관한 디자인법과 저작권법의 관계에 관하여 ‘부분적 중복 보호(partial cumulative protection)’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21) 이러한 법제에서는 저작권의 보호를 위하여 현저한 예술적인 특성을 요구한다.22)
한편 대한방직 사건 대법원 판결이 보호받는 응용미술작품의 인정 범위에 매우 한정적인 태도를 취하자, 이에 대한 입법적 대응으로 아래 2000년 법 개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23)
2000년 개정 저작권법24) 제2조 제15호에서는 응용미술저작물을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25)될 수 있는 미술저작물로서 그 이용된 물품과 구분되어 독자성26)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을 말하며, 디자인 등을 포함한다”라고 정의한다.
유력한 견해는 2000년 개정 저작권법에서 응용미술의 정의를 두고 대량생산성 및 독자성의 성립 요건을 부과하여 종전의 법률과 규정내용만 비교한다면 신법이 개정 전 법에 비하여 응용미술의 보호범위를 제한하기 위한 입법인 것처럼 비춰질 소지가 있으나, 실제로는 대한방직 사건의 제한적인 저작권 보호범위를 개선하기 위한 취지가 분명하다고 본다.27)
2000년 개정 저작권법이 적용된 ‘히딩크 넥타이’ 사건 판결28)에서 대법원은, “판시 ‘히딩크 넥타이’ 도안은 고소인이 저작권법이 시행된 2000년 7월 1일 이후에 2002 월드컵 축구대회의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창작한 것인 사실,… 위 도안이 우리 민족 전래의 태극문양 및 팔괘문양을 상하 좌우 연속 반복한 넥타이 도안으로서 응용미술작품의 일종이라면 위 도안은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될 수 있는 미술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며, 또한 그 이용된 물품(이 사건의 경우에는 넥타이)과 구분되어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저작권법 제2조 제11의2호에서 정하는 응용미술저작물에 해당한다”라고 하면서 저작권 보호를 부인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29)30)
이어 서적표지 사건 판결31)에서 대법원은 서적의 "표지·제호 디자인은 모두 이 사건 초판4종 서적의 내용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여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서적표지라는 실용적인 기능과 분리인식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 문자, 그림의 형태나 배열 등의 형식적 요소 자체만으로는 하나의 미술저작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독자적인 실체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위 표지·제호 디자인이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는 응용미술저작물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는바,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응용미술저작물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하여 분리가능성이라는 요건을 명확히 하였다.
응용미술저작물의 정의 규정에서 두 가지 성립 요건을 도출할 수 있다.
응용미술저작물의 정의 규정 중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요건이다. 대량생산되는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될 수 있는 것에 한하므로, 일품제작되는 것은 응용미술에서 제외되며, 일품제작되는 공예품은 일반 미술작품으로 보호된다는 취지로 새긴다.32)33)
대량생산성을 미술적 표현이 물품에 복제될 수 있는 ‘가능성’ 정도의 의미로 보고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해석도 많은 것으로 보이지만34), 대량생산성을 디자인권의 보호 요건인 ‘물품성’과 유사한 차원의 요건으로 명확히 이해하는 견해도 제시되어 있다.35) 후술하겠지만, 대량생산성을 물품성 혹은 유체성(有體性)으로 관념하는 견해의 효용성도 적지 않다. 또한 생각건대, ‘거의 모든’ 평면적 미술 표현이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미술적 표현이란 좀처럼 생각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시각적 표현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모나리자’와 같이 매우 정교하고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미술작품 또는 높은 수준의 예술가에 의하여 일필휘지, 즉흥적으로 그려진 미술작품들도 모사(模寫)하기는 매우 어렵겠지만 기술이 어느 정도 뒷받침된다면 충분한 표면적이 있는 물품에 사진 복제(reprography)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될 수 있는”이라는 문언을 놓고 미술적 표현이 복제되어 대량생산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다소 느슨한 법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대상 판결 또한 여기에서의 ‘물품’을 유형물로서 이해하고 있다.36) 이러한 견지에 서게 되면, 유형물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되지 않은 미술적 표현은 적어도 응용미술저작물에는 해당하지 않게 된다.
독자성은 응용미술저작물의 정의 중 “그 이용된 물품과 구분되어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을 의미한다. 위 히딩크 넥타이 사건에서는 종전 대한방직 사건 판례의 기준이 2000년 개정법 이후에도 그대로 사용될 수 없음을 전제로 하면서, ‘도안이 그 이용된 물품과 구분되어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고 하여 구체적인 설명 없이 법문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요건은 대체로 미국 저작권법상 분리가능성(separability)37)과 유사한 의미라고 보는 것이 국내의 다수 견해이다.38)
1986년 개정 저작권법이 적용된 대한방직 사건에 대하여는, 저작권법 어디에도 디자인법과의 조화를 위하여 저작물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는 현행법하에서 응용미술저작물에 대해서는 디자인법에 의한 보호로써 충분하기 때문에 직물도안은 저작물로서 보호될 수 없다고 판시한 것은 응용미술저작물을 저작물로 명시하고 있는 저작권법 규정을 사문화시키는 입법적 해석에 해당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39)
이와 같은 판례의 문제점에 대응하기 위하여 2000년 저작권법은 응용미술저작물의 정의를 두어 독자성 요건을 부과하였다. 2000년 개정 저작권법을 적용한 히딩크 넥타이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는 법문을 그대로 반복하는데 그쳤으나, ‘서적표지 디자인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독자성을 ‘분리가능성’으로 인정한 판시가 발견되며40), 최근의 판결들에서는 진일보한 독자성에 관한 해석론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이 사건 도안은 표현방식이 원단이나 의류 등 물품이 가지는 기능적 요소와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쉽게 분리가 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도안은 창작성을 가진 응용미술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인 저작물에 해당한다”41)라고 하거나, “분리가능성이란 물리적인 분리가능성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분리가능성도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반드시 실용품의 효용을 해하지 않으면서 물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사건 샹들리에의 형상은 그 표현방식이 대부분 전등이라는 기능적인 측면과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지 아니하다…”라고 하면서 샹들리에 제품을 응용미술저작물로 인정한 사례42) 등이 그것이다(이상 밑줄 강조는 필자에 의함).
그 동안 응용미술저작물과 관련된 많은 논의가 독자성 내지 분리가능성에 맞추어져 왔고 Star v. Varsity 미국 대법원 판결43) 이후 국내외의 논의가 보다 심화된 듯하다.44) 그러나 대량생산성에 논의의 초점을 두고자 하는 본고에서는 독자성 요건에 대해서는 차후의 연구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일반 저작물의 기본적인 성립 요건은 창작성이 있을 것, 즉 남의 것을 베끼지 않고 자신이 독자적으로 작성한 것이어야 한다. 응용미술저작물에는 위 항에서 본 바와 같이 정의 규정에서 도출되는 대량생산가능성 및 독자성이라는 성립 요건이 존재한다. 응용미술저작물 또한 저작물이므로 창작성이라는 기본적인 성립 요건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다.45) 따라서 응용미술저작물에 요구되는 두 가지 성립 요건은 일반 저작물과의 대비에서 응용미술저작물에 고유한 강화된 성립 요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일반 저작물로 인정되려면 창작성이 요구될 뿐이고, 응용미술저작물로 인정되려면 추가적 성립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위에서 논의한 관련 선행판결과 대상판결에서 발견되는 주목할 면에 대하여, 학설은 아래와 같이 여럿으로 나뉜다.
제1 설은, 동물의 형상 등의 도안이 상업적으로 활용되기 전에 미리 미술저작물 자체로서 창작됨으로써, 응용미술저작물로서의 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우선적으로 저작물 자체로서의 예술적인 가치 등을 갖추게 된 면을 판결에서 아울러 고려하였다고 본다.47) 즉, 1995년 개정 저작권법상 동물의 형상을 순수 미술저작물로서의 저작물성 인정에 관한 일반적인 창작성을 충족할 정도로 독특하게 캐릭터로 도안화한 경우라면, 일단 일반적인 저작물성 인정에 관한 창작성의 판단 법리에 따라 그 ‘예술적 특성이나 가치’가 있다고 보아주는 것이 기존의 판례에 부합하는 해석이라는 것이다.48) 또한, 이 사건 창작물은 독립적인 예술적 특성이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여서, 저작권법상 창작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49) 결론적으로, 1986년 개정 저작권법과 2000년 개정 저작권법 간 문언의 차이에 의하여 법리 적용상 충돌이 있을 수 있던 것을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일반적인 저작물의 창작성 판단의 법리를 적용하여 합리적으로 사건의 해결을 도출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50)
대상판결은 종전 대법원 판결52)처럼 응용미술작품에 관한 2000년 개정 전후에 관한 해석론을 따르지 않고, 저작물에 관한 일반적 성립요건에 입각하여 이 사건 침해 도안의 저작물성을 판단하였는데, 이는 저작물에 관한 일반론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할 뿐 아니라 최초 도안이 순수미술저작물이라고 하더라도 사업적 목적으로 대량 복제되어 사용되는 경우 응용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에 관한 독자적 개념을 설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53)
이 설은 여우머리 상표도안 사건의 도안이 응용미술저작물의 법적 성격을 갖는다면 그 창작시기에 따라서 1957년 저작권법, 1986년 저작권법 내지 2000년 개정 저작권법에 따라서 그 보호요건의 충족여부가 검토되어야 하지만, 만약 순수미술이라면 각 법상 보호요건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우선 지적한다.55)
이 설은, 여우머리 상표도안 사건 대법원 판결을, 순수한 미술저작물로서 분류될 수 있는 저작물이 바로 상품화에 활용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현대의 상황에서 응용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가 모호하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으로 이해한다.56)
그러나 제3설은, 이 사건 도안은 ‘양산되는 실용품의 모형으로 사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적 창작물’ 내지 ‘염색도안 등 실용품의 모양으로 이용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적 창작물’에 해당하고, 순수미술이라기보다는 산업디자인의 영역에 속하는 응용미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57) 제3설은, 대법원 판결은 아무런 합리적 이유설시 없이 종래의 판례에서의 응용미술의 개념과 분류체계에 반하고, 응용미술이라면 응용미술의 보호범위와 보호 요건이 우리 저작권법의 변천사에 따라서 달라진 점 등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했다고 비판한다.58)
또한, 창작시기를 전제사실로 확정하는 것이 응용미술을 둘러싼 저작물성 판단에 중요하며, 우리 기존 판례(히딩크 넥타이 사건, 팻독 사건, 묵주반지 사건 등)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창작시기의 확정을 우선하고 있다고 한다.59) 이 사안에서 1976년의 초기 도안은 순수미술에도, 일품제작의 공예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결국 미술저작물로서 보호되기 어렵고, 후기 도안 역시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적인 특성이나 가치”를 가지는지 의문이 있다고 본다.60) 원고 도안을 데드카피하는 피고에 대한 법적인 제재를 가하여야 한다는 필요성만으로 순수미술저작물로 저작권 보호하는데 찬성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61)
이 설은, 위 사건들에서 보호대상으로 주장된 캐릭터가 물품에 부착되지 않고 도안 자체의 형태만으로 인터넷 홈페이지나 동화책 등에 게재된 바 있다는 점을 언급한 후 바로 “해당 도안이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의 요건으로서 창작성을 구비하였는지 여부는 도안 그 자체로 일반적인 미술저작물로서 창작성을 구비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면 충분하다”고 판시하고 있을 뿐, ‘대량생산성’의 요건과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상표로서 물품에 부착되어 사용되기도 하는 도안에 대해서 ‘응용미술저작물’로서의 독자성에 대하여 따질 필요도 없이 ‘일반적인 미술저작물’로서 창작성 구비 여부만을 따져도 좋다고 하는 것은 대량생산성 요건을 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 판례들은 그러한 경우 대량생산성을 결한 것으로 보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63)
이 설에서 위 판결들은, 저작권법 제2조 제11호의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될 수 있는 미술저작물’에서의 ‘물품’이란 유체물로 한정하는 취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64) 즉, 대량생산성의 요소란, 산업적인 목적에 의하여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되는’ 형태로만 사용되는 양태를 파악하기 위한 개념이라는 것이다.65) 이 학설은 입법취지에 맞게 법문의 모호함을 합리적으로 시정하여 미술저작물의 보호범위를 명료하게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판례의 해석에 찬성하고 있다.66)
그러나 이 학설에서는 원래 실용성에 대한 고려 없이 미술작품으로 작성된 것이 나중에 산업상 대량생산되는 실용품의 디자인에 사용되는 경우 또한 응용미술저작물로서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견해 또한 피력하고 있어, 대상 판결에 대한 평가와는 다소 궤를 달리 하고 있다.67)
응용미술의 대량생산가능성 혹은 ‘물품성’ 요건에 관한 우리나라의 제도와 외국 제도를 비교하여 보면, 미국을 제외하고는 응용미술과 관련하여 미술이 구현된 물품의 구체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가 없다.68) 따라서 아래에서는 미국법만을 간략히 살펴보고 다른 외국의 법제에 관한 검토는 생략한다.
1954년 미국의 Mazer v. Stein 판결69)에서 미 연방대법원은 창작적인 작품이 실용품에 화체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저작권의 보호가 부인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70) 1976년 미국 저작권법은 위 Mazer 판결의 원칙을 수용하여 실용품의 디자인은 회화, 그래픽 및 조각저작물로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71) 여기에서 ‘실용적’이란, 아름다움이나 장식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효용성이 있거나 이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72)
그러나 미국 저작권법은 디자인의 특징이 기능적일 때에는 실용품에 대한 저작권 보호를 인정하지 않는다.73) 기능성 개념의 정책적 근거에 대해서 미국 의회는 경쟁원리의 구현, 품질 높은 제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모방과 변용을 통한 기술의 발전 등을 들고 있다.74)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에서 기능성 개념의 정책적 근거를 찾는 견해도 있다. 전통적인 이론에 의하면, 아이디어가 표현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일 경우, 아이디어와 표현은 합체되며 여기에는 저작권의 보호가 부인된다. 이와 유사하게, 기능성 원리는 실용품의 디자인에 대한 독점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품의 미적인 측면에서 실용적인 요소가 분리되지 않는다면, 기능적인 측면과 미적인 측면이 합체된다 할 수 있고 따라서 저작권의 보호는 부인된다는 것이다.75) 따라서 기능성은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항변으로 사용할 수 있다.76) 그러나 기능성 여부를 결정하는 분리가능성에 대해서는 법은 침묵하고 있으며, 해석론으로서 다양한 견해들이 표명되어 왔다.77)
이와 관련한 미국 하원 리포트를 살펴보면, 물품의 기능적인 측면 이외 저작권의 보호는 “물리적으로 혹은 개념적으로(physically or conceptually), 물품의 기능적인 측면과 분리되어 인식될 수 있는 미적인 측면에 대해서” 미친다고 한다.78)
그러나 2017년에 내려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Star Athletica, L.L.C. v. Varsity Brands, Inc.79))에서는 입법자료에서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있는 ‘물리적’ 분리가능성과 ‘개념적’ 분리가능성의 구별80)을 폐기하였다.81) 저작권법의 법문의 해석에 따르면, 분리가능성은 결국 개념적인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82) 따라서 연방대법원은 실용품의 디자인에 포함된 회화, 그래픽, 조각이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으려면 1) 물품의 실용적인 면과 구별되어 2차원이나 3차원의 작품으로 인식될 수 있고, 2) 실용품으로부터 ‘상상적으로 분리하여’ 자체로 혹은 다른 매체 위에 보호되는 회화, 그래픽, 조각 저작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83)
요컨대, 미국 저작권법에서의 응용미술은 물품을 전제로 한 것으로, 구별 인식 가능성이 있고 물품과 개념적으로 분리 가능한 표현에 저작권 보호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 저작권법의 규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인다.84) 2000년 저작권법의 개정 시, 미국 저작권법의 입법 태도를 크게 좇은 결과인 것으로 사료된다.
응용미술저작물의 정의 규정이 2000년 개정 저작권법에 이르러 비로소 신설되었고, 1986년 개정법 하에서는 법원의 해석으로 그 범위가 정해졌음은 전술한 바와 같다. 대한방직 사건 판결에서 대법원은 디자인보호법(당시 ‘의장법’)과의 관계를 의식하면서 지나치게 응용미술의 보호범위를 축소 해석한 바 있다.85) 위 판결과 관련하여 1986년 개정 저작권법 아래에서는 ‘대량생산성’이 응용미술저작물의 보호 요건이 아님을 지적하는 견해86)도 있다.
2000년 저작권법의 개정 의도는, 대한방직 사건 판결의 소극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면서 “개정 저작권법에서는 응용미술저작물의 정의 규정을 신설하여 대량생산되는 실용품에 복제되어 이용되는 디자인의 경우에도 저작물성을 갖춘 경우 보호되도록 그 보호범위를 확장하였다…다만 선박이나 자동차 디자인 등 물품의 실용적인 면과 분리될 수 없는 디자인은 정의 규정에 따라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할 것이다”(밑줄 강조는 필자에 의함)는 당시 입법 관여자의 설명87)을 참고하면, 대한방직 사건 판결의 흠결을 입법적으로 개선하고자 법 개정시 (종전에 없던) 유체물인 물품을 전제로 하는 대량생산성 요건을 새로 도입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88)
이러한 법 개정의 결과로 응용미술의 보호 범위는 좁아진 것일까, 넓어진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미국법상 분리가능성 이론 자체가 응용미술에 대한 보호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이지만 우리 법에서는 그것을 입법적으로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고된 대법원 판례(대한방직 사건 판결)와 비교할 때 분리가능성을 명료화한 상태가 보호범위가 오히려 넓어질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입법 과정에서 반영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89) 대한방직 사건 판결 중 ‘독립적인 예술적 특성이나 가치’의 요구와 같은 목적론적 해석의 여지를 차단하였다는 측면에서는 물론 그렇게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종전의 응용미술에 관한 법 해석론으로는 고려하지 않았던 ‘물품’ 개념을 도입하여 응용미술의 정의 자체를 한정하였다는 측면에서는 (법 개정 당시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저작권법상 응용미술의 인정 범위를 오히려 좁힌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이 결과 대한방직사건 대법원 판결에서 볼 수 있듯이, 2000년 개정법 이전의 법 아래에서의 응용미술작품 개념의 모호성 및 디자인법과의 저촉 관계의 고려 등에 의한 저작권 보호의 형해화(形骸化)는 일정하게 방지할 수 있는 실마리가 제공되었다.
‘여우머리 상표도안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는 문제된 상표 도안들이 ‘물품에 표시된 것 외에도’, 전사지나 스티커, 카탈로그 등 홍보물 및 인터넷 홈페이지와 같이 물품에 표시되지 않은 게재가 있었음에 착안하여, 하급심의 판단과는 달리 응용미술저작물이 아닌 일반 미술저작물로 파악하여 저작권 보호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다고 본다.90)
여우머리 상표도안 사건 대법원 판결의 원심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문제된 상표도안들을 응용미술저작물로 분류하면서도 창작 시점에 따른 시제법을 적용하지 않았다.91) 만약 넓은 범위의 작품을 응용미술저작물로 보면서 동시에 창작 시점에 따른 적용 법규를 엄격히 하면 상당수 시각적 저작물들이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사태가 생기는 것은 응당 바람직하지 않다. 다수의 (응용)미술저작물을 저작권 보호에서 탈락시킬 수밖에 없으므로 외국 저작권자의 관계에서도 통상 마찰의 우려마저 있다. 또한, 소송 실무에서 권리 주장을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문제의 저작물이 응용미술작품으로서 추가적 요건 심사나 보다 엄격한 기준을 가진 적용 법규가 선택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문제된 저작물이 응용미술저작물이 아니라 예컨대 도형저작물 등 다른 저작물 유형에 속한다는 주장을 하는 전략92)을 취하기가 십상일 터인데, 소송대리인이 자칫 쟁점을 간과하거나 반대로 이론적 다툼이 끊임없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소송경제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응용미술저작물의 정의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다른 창작적인 미술적 표현은 모두 순수미술저작물이나 공예 등 응용미술저작물과는 다른 별도의 저작물로 간주한다면, 응용미술저작물의 범위를 법문의 객관적인 의미 이상으로 넓게 본 후 여기에 우선 포섭되는 창작물에 대하여 일일이 분리가능성 등 추가적 성립 요건의 성부를 따질 필요가 없게 된다.
1986년 개정된 구법은 응용미술작품의 정의가 없고, 2000년 법에 의하여 비로소 응용미술저작물의 정의를 두었으므로 구법의 해석과 신법의 해석 간 일관성까지는 염려할 바가 아니다.
혹자는 미국 저작권법과는 달리 고정(固定, Fixation) 요건을 저작물의 성립 요건으로 하고 있지 아니한 우리 법체계에서 응용미술저작물의 대량생산성 요건 중 물품을 유형물로 이해하는 태도는 문제를 발생시킬 소지가 있다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응용미술저작물은 그 개념 정의에서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고 있으므로, 문언 해석상 응용미술저작물에 대해서는 물품에의 복제를 요구하는 특칙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사료된다.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수록과 재생을 요구하는 영상저작물에 관해서는 고정을 요건으로 한다는 견해가 우리나라의 다수설93)인 것과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또한, 디자인보호법상 디자인은 “물품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물품과 일체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의장이 동일ㆍ유사하다고 하려면 의장이 표현된 물품이 동일ㆍ유사하여야 하고, 이 때 물품의 동일ㆍ유사성 여부는 물품의 용도, 기능 등에 비추어 거래 통념상 동일ㆍ유사한 물품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고 하여94), 디자인보호법 제2조 제1호의 물품은 시각을 통해 구체적으로 인식되며 일정한 형상을 지니는 특정한 물품으로 이해된다(물품의 특정성 요건). 그러나 저작권법상 응용미술저작물의 정의에 나타나는 물품을 ‘특정 물품’으로 이해하면, 예를 들면 넥타이에 새겨진 미술적 표현이 제3자에 의하여 넥타이가 아닌 벽지에 새겨지면 저작권의 보호가 미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는 것처럼, 미술적 표현이 해당 특정 물품을 벗어나면 저작권의 보호가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므로 기본적인 저작권 법리를 위배하는 부당한 결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응용미술저작물의 정의 중 유형물인 물품에 복제되었는지의 문제는 응용미술저작물의 성립 여부 혹은 일반미술저작물이나 응용미술저작물에의 해당 여부에만 영향을 미치고 침해판단에 있어서는 디자인보호법과 같은 물품의 특정성 요건은 고려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95)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여 필자의 관견(管見)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법 개정 이전의 해석론과는 무관하게 2000년의 저작권법 개정으로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할 수 있”음이 응용미술저작물의 요건이 된 이상, 2000년 개정법의 적용을 받는 2000. 7. 1.이후 창작된 미술적 표현이 응용미술저작물로 성립·분류되기 위해서는 유형물인 물품에 복제될 것이 요구된다. 여기에서 제외되는 창작성 있는 미술적 표현은 저작권 보호에서 탈락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미술저작물로 본다. 이 점을 분명히 한 대상 판결의 관련 판결인 ‘여우머리 상표도안 사건’ 판결은 저작권 보호를 충실히 한 의미가 있다.
응용미술저작물의 성립 요건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면, 대량생산성의 요건으로 응용미술이 물품과 합체되었다가, 분리가능성의 요건으로 미술적 표현이 물품에서 분리되어 나와야 함을 규정한 것이므로 대량생산성과 분리가능성의 요건은 응용미술저작물의 성립과 관련하여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물품 개념이 부수적인 지표가 아닌 응용미술저작물 개념의 중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개정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에 대해서도 법문의 객관적인 의미에 천착하지 않은 해석론이 여전히 우세한 실정이다.
Ⅳ. 대상 판결에 대한 비판적 독해
원심판결인 서울고등법원 2012.7.25. 선고2011나70802 판결에서는 응용미술저작물 해당성을 긍정하였으나 저작물의 창작 시기를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적용법규에 관한 판단을 그르친 것으로 보인다. 원심판결은 적용법규의 선택에 있어서 잘못이 있다고 본다. 대량생산성 요건에 관한 다수설96)의 견지에서 볼 때, 원심판결이 문제된 저작물을 응용미술저작물로 이해한바 자체를 결정적 잘못이라고는 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상 저작물을 응용미술저작물로 파악한 이상 작품의 창작 시점을 기준으로 적용 법규를 선택하고 각 법규의 법리에 의하여 응용미술저작물 성립성을 별개로 판단하여야 했을 것이다. 만약 법원이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창작 시점을 엄격히 구분하여 일부 캐릭터에 1957년 제정법을 적용하고 나머지 캐릭터에 1986년 개정법을 적용하였더라면, 응용미술 보호 여부 자체가 의문시되는 1957년법은 물론, 판례에 의하여 ‘독립적인 예술적 특성이나 가치’를 요구하는 1986년 개정 저작권법에 의하여도 본건 상표 도안의 응용미술저작물성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우머리 상표도안’ 사건에서, 외국인 원고의 저작물 중 일부는 1957년 제정된 구 저작권법이 적용되던 시기인 1976년 창작된 것이고, 일부는 1986년 개정법이 적용되던 1990년에 창작된 것이다. 따라서 문제된 저작물을 응용미술저작물로 간주하였다면 시제법(時際法)에 의하여 각 창작시기의 법을 적용하여 응용미술로서의 성립성을 판단하였을 것인데 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를 일반적인 미술저작물로 보았기 때문에 응용미술저작물의 성부에 영향을 줄 시제법은 고려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에서 문제된 작품을 응용미술저작물로 분류할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점, 특히 국제조약에 의하여 보호 의무를 지는 외국인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보호를 부정하여야 하는 문제점 및 이러한 결론이 국내에서 창작된 저작물에도 동일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 등을 충분히 인식하고 고민한 끝에 안출(案出)된 법리일 것으로 보인다.
관련 선행 판결이 설시한 바를 좇아, 응용미술저작물의 요건 중 ‘대량생산성’을 ‘유형물을 전제하는 물품성’으로 파악하여 법 적용과 해석에 있어서 일관성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본고의 입장은 앞에서 밝혔다.
결론부터 말하면, 선행 판결이 이룩한 일정한 성과를 대상 판결이 크게 잠식하였다고 본다.
르 슈크레 사건 1심 판결의 사실관계를 대법원 판결의 판시사항과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토끼 캐릭터가 일본에서 2004년 창작되어 2005년경부터 인형으로 상품화되었고, 2008년경 일본에서 공표된 동화책들에서 물품에 부착되지 않은 형태로 게재되는 등 이 사건 캐릭터 자체만의 형태로도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대상 판결에서는 선행 판결의 법리를 인용하면서, 이 사건 토끼 캐릭터가 인형 상품으로 최초 공표된 시기 이후인 2008년경 동화책에 게재된 점, 즉 물품에 부착되지 않은 형태로 이용되는 등 캐릭터 자체만의 형태만으로도 사용되었다는 점을 들어, 도안 자체로 ‘일반적인’ 미술저작물로서 창작성을 구비하였는지 여부만 판단하면 충분하다고 하면서 응용미술저작물 해당성 여부에 대한 판단으로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그러면 본 건 작품은 당초에 “상표에 사용되면서 공표되는 이른바 오리지널 캐릭터의 일종으로 개발된 도안으로서 물품에 표시”된 것인데 상표에 사용되면서 공표된 후 한참 만에 캐릭터 자체의 형태만으로도 별개로 사용되었다고 해서 문제된 작품을 일반적인 미술저작물로 본 대법원의 판단에는 적잖은 의문이 생긴다.97)
응용미술저작물의 성립 요건을 충족하였으면 계속 응용미술저작물인 것이지, 성립 시점 이후의 저작자에 의한 저작물 이용 양태에 따라 그 법적 성격이 변화될 수 있는가? 법적 안정성의 측면에서 이러한 논리를 지지할 수 없다. 만약 이러한 논리가 옳다면, 예컨대 소송 계속 중에도 응용미술 작품으로서 응용미술저작물의 요건 해당성이 문제된다면 사실심의 변론 종결 전에 물품에 부착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용한 후 응용미술저작물이 아니라 일반적인 미술 저작물임을 주장함으로써 응용미술저작물에 대한 추가적 요건 심사를 매우 쉽게 회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상 판결에서 문제된 “르 슈크레” 저작물은 창작 시점이 2004년경으로, 억지로 저작권 보호를 부여하기 위하여 응용미술저작물인 아닌 일반 미술저작물인 것으로 편의적인 분류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기도 어렵다. 2000년 개정법이 적용된다면, “르 슈크레” 저작물은 응용미술저작물의 해당성 테스트를 어렵지 않게 통과할 것으로 보이는 창작적인 상표도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외국인 저작물에 대한 내국민대우 위반의 문제가 생길 것을 막연히 염려한 것인지 그 이유를 좀처럼 알 수 없으나, 대상 판결은 당초 응용미술로 성립된 것까지 일반적인 미술저작물로 보는 잘못을 범하였다. 대상 판결에 의하여 응용미술저작물에 관하여 체계적인 이해에 바탕한 판례의 형성은 더욱 어렵게 되고 말았다.
Ⅴ. 결론
본고에서는 ‘여우머리 상표도안 사건’ 판결과 ‘르 슈크레 사건’ 판결을 평가하고자 2000년 개정 저작권법의 내용 중 ‘대량생산성’의 의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될 수 있다는 문언의 의미 해석과 관련하여, 위 ‘물품’은 유형물인 물품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응용미술저작물로 분류되지 않은 창작적 미술 표현은 일반 미술저작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 관련 선행 판결과 본고의 평석 대상 판결의 시사점임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관련 판결은 2000년 개정 저작권법의 문언 해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이전 법률 아래에서 전개된 여러 해석론과는 원칙적으로 무관하다. 그 결과, 1986년 개정법 하에서 내려진 대한방직 사건 판결과 같이 응용미술의 저작권 보호 범위를 심하게 위축시키는 효과를 적어도 개정법 아래에서는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대상 판결은 상품에 사용되면서 공표된 소위 ‘오리지널 캐릭터’로서 애초에 응용미술저작물로 성립된 작품도 차후에 물품에 부착되지 않은 형태로 사용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일반 미술저작물로 보면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2000년 개정법 아래에서 응용미술저작물에 관한 체계적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추후 판례 변경 등 적정한 방법을 통하여 시정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의 산업적 활용도가 높아졌을 뿐 아니라, 디지털·온라인 경제의 발전으로 유형물을 전제하지 않은 저작물의 산업적 이용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