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면서
코로나19의 등장은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을 흔들어 놓는 아주 중대한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고 앞으로 쉽게 그 종식이 이루어지리라 전망되지도 않는다. 과거의 거대 집단 속에서의 개인보다는 각자의 인적 네트워킹을 강조해 가던 시대적 흐름도 이로 인하여 중대한 변혁을 맞아 각 사회영역은 이를 대체하는 대안을 강구하느라 여념이 없다. 한편에서는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직접적인 대안도 시도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백신의 개발이다. 코로나에 대응할 수 있는 백신개발과 관련되어 개발경쟁이 치열하다는 기사1)나 치료제에 대하여 임상시험이 진행중이지만 안전을 확보하여야 한다고 속도경쟁을 우려하는 기사2)도 찾아볼 수 있다. 세계 각국에 이어 우리나라도 백신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 돌입했다는 기사3)를 접할 수 있는데, 임상시험을 거쳐 그 안전성이 확보되고 실제 효과를 볼 수 있기까지는 아직 지난한 시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극복을 위해 백신이나 치료제를 연구하시는 분들이나 임상시험에 동참하시는 분 모두 존경과 감사를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위험을 수반한 임상시험에 참여함에 있어 피험자의 자기결정권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가 문제될 수 있다는 의문이 생긴다. 현대 의학기술의 발달이 나찌와 제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인체실험으로부터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만행이 오늘날 다시 재현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재현되어서도 안되지만, 임상시험에 있어 그 허용의 전제조건인 ‘설명에 의한 자발적인 동의(informed consent)’가 글자 그대로 설명에 의한 동의를 획득하기만 하면 어떠한 결과가 발생되더라도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이 검증된 치료법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 그 위험성을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생명을 담보하는 것이 설명의 내용이 될 수도 있을진대 이러한 설명이 선행되고 강압없이 자유로운 동의가 있으면 임상시험이 자유롭게 행하여져도 상관 없을 것인가는 고민해 볼 문제이다. 고도의 위험이 수반되는 경우에 있어 다시 말하여 자기결정으로 자기의 생명과 신체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 그 허용의 근거가 되는 원리에 대하여 알아보고(II), 일반적으로 자기결정권을 허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미성년자와 같이 자기 스스로 자기결정을 하기에 그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의 자기결정은 어떠한 전제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 내지는 법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보호하여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III) 더 나아가 경제적인 가치가 지금까지의 어느 사회보다 중요시되는 현대에 있어 각종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임상시험을 유인하는 것이 과연 허용될 수 있는지, 사회적 소외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정한 시설에 수용된 자에 대하여 임상시험이 금지되어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일정한 보상이 대가성을 가지는 경우에 있어 피험자의 자기결정권이 제한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IV)
Ⅱ. 임상시험과 피험자의 보호
임상시험이라는 단어와 함께 연상될 수밖에 없는 것이 세계대전 당시 나찌와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감행된 불법인체실험이다. 명백하게 확인되지는 않지만 당시 이에 의하여 획득된 의학지식과 기술을 전승국에 넘겨주고 일부 전범행위에 대하여 면죄부를 받았다고 하는 주장은 다수의 곳에서 확인되기도 한다. 불법인체실험에 대한 형사책임을 다룬 뉘른베르크재판은 반인류적인 인체실험에 대한 재판에서 뉘른베르크강령(Nṻrnberg Code)을 선언하였고 지금까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나 연구에 있어 허용기준으로 자주 언급된 바 있다. 아래에서는 인간대상 연구 또는 실험에서 시금석과 같은 역할을 한 뉘른베그크강령이 선언되기까지와 그 이후에 인간대상연구의 허용기준이 어떠한 변화과정을 거쳐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이전의 프로이센에 있어서도 의료적 처치에 있어서 환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하급심법원의 판결이 있었고 고대 히포크라테스선서에서부터 의사는 환자의 신체와 건강을 위하여 최선의 처치를 해야한다는 손해금지의 원칙이 있었다고 한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처치가 환자에게 이로울지 해로울지 의심스러운 경우에 있어서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 또는 승낙이 아니라 의사의 보호자적, 후견자적 판단이 우선되었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4)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어떠한 연구결과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확하게 공표된 것은 1931년 프로이센 내무부장관이 인간연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1930년대 뤼벡에서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결핵면역주사로 77명의 어린이의 목숨이 희생된 결과 이전에 초안을 준비하고 있던 것을 최종적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뉘른베르크 강령의 기초작업에 영향을 끼친 생리학자 Ivy가 후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동의(informed consent)’의 핵심내용인 시험대상자의 동의와 이 동의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인간에 대한 실험의 원리와 규칙’을 발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5)
1947년에 발표된 뉘른베르크강령에는 ‘정보에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 ‘강요의 부재(absence of coercion), ’적법하게 고안된 과학실험(properly formulated scientific experimentation)’, 실험참가자에 대한 혜택․유용성(beneficience towards experiment participants)이 중요 원칙으로 선언되었다.
전범 재판 후 약 20여 년간 뉘른베르크 강령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고, 심지어 무시되었다고 평가되기도 하지만 뉘른베르크 강령의 핵심사항인 피험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통하여 받은 승낙·동의가 의학적 연구나 임상시험의 전제라는 관념은 일반화되어 사회 내에서 자기결정권의 존중이나 자율성과 같은 인식을 높이는 작용도 하게 되었다. 의료 영역에서 환자의 자율적 결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그 자율성은 환자나 개인의 권리로까지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6)
특히 2차 세계대전 후 진단의학과 치료방법의 개선을 위하여 급증하는 임상시험과 약품개발의 노력은 그 만큼 기대여명과 삶의 질을 높여 주었지만, 동시에 연구활동과 임상시험에서 윤리적 문제는 광범위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일부 유색인종에 대한 비인간적인 생체실험(Tuskegee syphilis experiment)이 알려지면서 임상시험에서 의료윤리의 문제가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다. 1964년 핀란드에서 임상시험을 하는 내과의사들에 대한 뉘른베르크 강령의 정보에 기초한 환자의 동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헬싱키선언으로 이어진다.7)
현재 임상시험과 관련하여 그 관리기준을 EU회원국 자체 법률 및 행정규칙과 유사하게 맞추기 위한 것으로 유럽연합의회 지침이 있다. 이 지침은 2001년에 채택되어 2006년, 2009년 두 차례 개정을 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동 지침의 핵심적인 내용은 임상시험의 대상자의 보호(clinical trial subject’s protection)는 어떤 임상시험에 앞선 독물학적 시험 결과에 기초한 위험산정, 윤리위원회와 회원 국가들의 주무관청에 의한 검사, 그리고 인적 데이터의 보호에 관한 법규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8)
동 규정의 제5장에서는 ‘대상자의 보호와 정보에 근거한 동의’라는 표제하에 다양한 피험자에 대한 임상시험에 있어 특별하게 요구되는 조건들을 규정하고 있고, 그 주된 요지는 임상시험에서 피험자의 권리, 안전, 존엄은 보호되고 그 획득된 자료는 신뢰할 수 있고 확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피험자의 이익이 모든 다른 이익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임상시험도 광의에서는 의료행위에 포함이 되고 의료행위에 있어 신체침습의 행위 및 결과가 수반되더라도 의료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원리로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informed consent)’의 법리를 들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흔히 의료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하고, 정당한 자기결정권의 행사의 전제조건으로 의사 등의 의료인에게 설명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행위에 있어서의 대법원의 견해도 “일반적으로 의사는 환자에게 수술 등 침습을 가하는 과정 및 그 후에 나쁜 결과 발생의 개연성이 있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또는 사망 등의 중대한 결과 발생이 예측되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에 있어서 응급환자의 경우나 그 밖에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진료계약상의 의무 내지 침습 등에 대한 승낙을 얻기 위한 전제로서 당해 환자나 그 법정대리인에게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당해 환자가 그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그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가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고, 의사의 설명의무는 그 의료행위에 따르는 후유증이나 부작용 등의 위험 발생 가능성이 희소하다는 사정만으로 면제될 수 없으며, 그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당해 치료행위에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거나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것인 경우에는 그 발생가능성의 희소성에도 불구하고 설명의 대상이 된다.”9)고 하여 유효한 설명에 의한 동의가 있을 것을 의료행위의 정당화의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임상시험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는 피험자의 동의가 전제되고 이 동의에 있어 그 임상시험행위가 가져올 수 있는 여러 가지의 결과들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자유로운 의사에서 그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표면적으로 피험자의 자발적인 동의.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에 동의가 있다면 유효하다고 할 것인지에 대하여도 답을 하여야 할 것인데 모든 경우에 있어 그러한 조건이 충족될 수 있다고 할 것인지에 대하여 긍정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자기위태화의 경우를 법익 주체 스스로 법익에 대한 위험을 가져오는 행위를 하는 경우로 제한하여 해석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법익주체가 자기 책임으로 자신의 법익을 위험하게 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 사회상당성이라는 관점에서 위법성이 없다고 보는 견해이다.10) 자기 스스로 법익침해에 대한 위험을 가진 행위를 하는가 아니면 자기의 책임 하에(동의 하에) 타인이 법익주체의 법익침해에 대한 위험을 수반하는 행위를 하는가에 따라 자기위태화와 동의된 타인위태화로 나누고 그 정당화에 있어서는 동일하게 사회상당성이라는 기준에 의하여 위법성을 조각시키는 견해라고 할 수 있다.11)
임상시험이 의료행위의 하나로 분류되어 의료행위의 정당화에 대한 일반원칙인 피해자의 동의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12), 본 논문에서는 의료행위와 임상시험에 있어 피험자의 자기결정권이 의료행위 일반의 정당화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설명된 동의’의 다른 양태라고 보여지고, 자기위태화 또는 동의된 타인위태화에 있어 사회상당성의 판단기준에도 환자의 동의가 결정적인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피험자의 자기결정권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자 한다.
일반적인 의료행위와 달리 임상시험에 있어서는 임상시험에서 초래될 수 있는 결과가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정도로 충분히 축적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특히 생명의 위험이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는 경우 마지막 희망을 꿈꾸기라도 하듯 시험적 또는 실험적 치료에 동의하는 경우를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13)
생명이나 신체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논의가 불필요하지만 행여 생명이나 신체에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는 치료법이라면 생명 내지 신체에 대한 중대한 위험이 발생하는 결과에 대하여 피험자가 동의했다는 것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는 단언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이 경우 사회상당성의 원리에 따라 정당화되는 정당행위 내지는 피해자의 승낙으로 본다면 개인의 생명 및 신체에 대하여 중대한 위험이 발생하는 것을 마냥 허용하는 결과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동의된 타인위태화의 원리에 따르면 임상시험을 시행하는 자는 피험자가 현재 본인에게 시행되고자 하는 임상시험의 구체적인 의미와 그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위험에 대하여 정확하게 인식한 후에 임상시험시행자에게 임상시험을 허용하였다면 그 임상시험으로 인하여 발생된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14)
대법원은 임상시험에 있어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관하여 “환자의 수술과 같이 신체를 침해하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긴급한 경우 기타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료행위에 앞서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해당 환자가 그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그 진료행위를 받을 것인지의 여부를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그 진료행위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특히 그러한 의료행위가 임상시험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해당 의료행위의 안전성 및 유효성(치료효과)에 관하여 그 시행 당시 임상에서 실천되는 일반적·표준적 의료행위와 비교하여 설명할 의무가 있다.”15)고 하여 임상시험이 유효하기 위하여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 즉 유효한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있을 것을 적시하고 있다.
피험자의 동의의 유무에 따라 임상시험의 적법성이 결정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할 수 있는데, 앞에서 소개한 대법원의 태도에서 ‘긴급한 경우 기타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고 하여 통상적이지 않은 예외적인 경우에는 이러한 동의여부와 관계없이 정당화가 결정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도 있다. 개인의 기본권보다 더 우월한(단순히 우월하다고 판단되는 정도를 넘어서는) 법익을 위한 긴급하고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에는 피험자의 동의획득과 상관없이 정당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암시하는 것으로 보이나, 이에 대하여는 본 논문의 연구범위와 조금 거리가 있으므로 언급을 자제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임상시험이 유효하기 위하여는 일반적인 의료행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서의 ‘동의’가 유효하기 위한 조건은 없는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의약학연구와 의료기술, 그리고 이에 대한 법률적인 역사가 우리보다 앞서 있는 유럽의 경우, 임상시험에서 피험자의 권리와 안전, 존엄과 웰빙을 보호하고 피험자의 이익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유럽연합의회의 임상시험지침을 두고 있다. 이 지침 중 제29조가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면, 동 지침 제29조에서는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는 서면으로 작성되어야 하며 날짜를 기재할 것과 설명을 실시한 사람의 서명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임상시험 대상자 또는 대리인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서면주의가 원칙인 것을 알 수 있다. 피험자가 글을 쓸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하여 중립적이고 공정한 증인이 참석하고 있다면 다른 방법에 의한 동의획득을 인정하고 있다.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피험자 또는 대리인에게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와 그 사본을 제공하고 동의 이전에 충분한 숙려시간을 줄 것을 규정하고 있다.16)
결국 임상시험에 있어서 임상시험 자체에 대한 제도적 규제 이외에 임상시험의 허가조건으로 피험자의 동의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동의의 획득형태나 조건에 있어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동의를 요건으로 하는 것은 공통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동의가 유효하기 위한 요건-앞에서 언급한 설명된 동의-이 문제가 될 것이고 피험자의 정당한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되기 위한 조건들 내지는 제약조건이 문제가 될 것이다.
피험자의 동의가 유효하기 위해서 임상시험에서의 피험자는 임상시험의 의미와 영향, 자신의 승낙 및 동의에 대한 법적 평가를 위해서 판단능력이 필요하다.17) 이러한 판단능력을 동의능력, 승낙능력 등 어떻게 칭하든 그 실질적인 내용은 의사능력이 중심을 이루게 될 것이고, 이 능력의 유무를 어떠한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성적인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개별적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다르게 판단되어야 할 것이고 일률적인 기준으로 정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본 논문의 다음 장들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자기결정권 행사의 제한문제도 이러한 판단능력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미성년자와 같이 일반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경우에 있어서의 제한요소를 찾아보고, 특별한 행위상황 내지는 환경에 있는 경우에 자기결정권을 제한하여야 하는 경우를 살펴보고자 한다.
Ⅲ. 피험자로서의 미성년자와 동의
자기결정은 개인이 일상생활 혹은 개인에 관계된 사항에 대하여 오롯이 자기 자신의 결정에 의하여 행할 수 있으며 이에는 다른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결정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자기결정은 일상생활에 관계된 것에서 개인의 안위에 관계되거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국가나 체제에 관한 선택 등 아주 다양한 것을 담을 수 있다. 자기결정권은 누구나 향유할 수 있으므로 설사 미성년자라고 하더라도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의 행사에는 일정한 제한이 있을 수 있다. 미성년자의 자율의 주체임과 동시에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이다.18)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제한하고 후견적인 입장에서 이를 보조하는 것의 대표적인 것이 부모의 친권이라고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성년자의 권리보장에 가장 효과적인 것인 것이 부모에 의한 보호라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친권행사라는 명목으로 미성년자의 권리를 제약하고 더 나아가 미성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현상도 흔히 목격되고 있어 이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보호의 대상임과 동시에 자율의 주체라는 측면에서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의 보장은 무조건적인 친권의 제한에서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여기에는 미성년자의 발달과정에 따라 구체적인 사항을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임상시험에서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한 전제로서의 설명은 미성년자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보호자인 친권자에 대하여도 병렬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19)
구체적으로 임상시험에 있어 미성년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임상시험에 있어 어느 정도의 의사능력을 갖추어야 유효한 동의가 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실정법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유아나 정신병자, 명정자와 같은 이성적인 판단능력을 결하고 있는 자에게는 승낙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사능력이란 자신의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정상적인 인식력과 예기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정신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특히 어떤 법률행위가 고유의 의미나 효과가 부여되어 있는 경우에는 의사능력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의 일상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법률적인 의미나 효과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을 요한다고 할 것이다.20) 그렇다면 임상시험을 시행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미성년자가 어떠한 정신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승낙능력 내지는 동의능력의 유무가 결정된다고 할 것이다.21)
임상시험에 있어 일반적인 전제조건이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informed consent)’라고 할 때에 그 대상이 미성년자인 경우(현행 민법상 법률행위능력이 제한되는)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의료행위의 법적 성격을 어떻게 파악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의료행위를 민법의 전형계약 중 위임계약과 같이 파악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미성년자가 독자적으로 계약이라는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가도 더불어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계약법리적인 문제보다 보다 원칙적인 문제인 미성년자가 스스로 본인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하여 동의권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현행법상 임상시험에 있어 미성년자가 독자적인 동의 내지는 승인권을 가진다는 규정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임상시험에 있어 피험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행위를 포함하고 있고, 이러한 자기 위해적인 행위에 있어 동의권이 있는지는 비슷한 입법례를 찾아 파악해 볼 수밖에 없다. 이와 유사한 사례를 장기이식에 관한 법률과 소위 연명의료결정법이라고 하는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에 관한 법률에 있어 그 대상이 미성년자인 경우를 비교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장기이식에 관한 법률」에 있어 장기적출요건과 동의에 관한 것으로 제11조22), 제12조23), 제22조24)를 들 수 있다. 뇌사자기증에 있어서는 이미 의사능력을 상실한 경우이므로 생체기증의 경우에 관한 규정이 참고할 만하다고 할 것이다. 이들 조항을 살펴보더라도 부모의 동의권을 병렬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동법 제22조) 외에 미성년자 본인의 동의능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결국 미성년자 본인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장기적출이나 말초혈, 골수 절출에 있어 미성년자 본인과 부모가 동의하면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미성년자의 경우에 부모의 보호감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생존과 관련된 위험으로 느낄 수 있고 부모의 의사로부터 독립적이라고 보기는 아주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규정은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의 보장에 적절한 보호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없으며 본 논문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동의권 제한을 통한 미성년자 본인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참고하기 어려운 규정이라고 하겠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제17조는 제17조(환자의 의사 확인)이라는 제목 하에 제1항에서
“연명의료중단등결정을 원하는 환자의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방법으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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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에서 작성된 연명의료계획서가 있는 경우 이를 환자의 의사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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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의사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내용을 환자에게 확인하는 경우 이를 환자의 의사로 본다. 담당의사 및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이 다음 각 목을 모두 확인한 경우에도 같다.
가.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내용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의사능력이 없다는 의학적 판단
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제2조제4호의 범위에서 제12조에 따라 작성되었다는 사실”
이라고 하여 실질적으로 환자가 미성년자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연명치료중단의 의사표시를 한 것이 확인되면 그 의사표시는 유효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제18조25)에서는 미성년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 법정대리인과 담당의사 전문의 1명 이상의 확인으로 연명치료중단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을 아주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민법상의 법률행위능력을 제한하여 특별한 보호를 하고 있는 점과 비추어보면 미성년자의 생명권을 특별히 보장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미성년자에 대하여도 그 의사능력 내지는 판단능력에 비추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미성년자의 생명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한다면 동 법률상의 규정도 임상시험에 있어서의 미성년자의 동의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을 도출하기에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미성년자의 동의권과 관련하여 독일약사법에서는 미성년자의 양육을 담당하고 있는 자가 임상시험으로 인한 위험과 부담, 선택사항에 대하여 설명을 들을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피험자인 미성년자 본인도 ‘연령과 정신적 성숙도’를 고려하여 가능한한 설명을 청취하도록 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성년자가 임상시험에 동의하지 않는 의사를 분명히 하는 경우 달리 말하여 거부하는 경우도 존중되어야 함도 규정하고 있으며, 거부권은 동의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26)
독일 민법상의 미성년자의 기준은 만18세인데, 이에 미치지 못하는 미성년자의 경우 임상시험과 관련하여 독일 의사법상 승낙능력에 관한 규정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개개인 환자에 따른 구체적인 의사결정의 문제일 뿐 일반적인 기준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다만 실무상 14세 이전에는 승낙능력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나 16세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승낙능력을 인정하는 추세라고 한다.27)
스위스의 경우에 있어서도 의료행위에 있어 환자의 의사는 절대적이며 환자의 의사에 반한 의료행위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다. 더욱이 임상시험의 경우 피험자의 동의가 절대적인 요건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승낙능력에 있어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미성년자의 경우 그 연령에 따른 승낙능력 인정에 있어 견해가 나뉘고 있다고 한다. 다수의 견해는 일반적으로 미성년자는 통상 12∼14세부터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하기 때문에 이 연령에 해당하는 자는 의사의 치료에 대해 스스로 법정대리인의 의사와는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보지만 이는 결코 고정된 연령의 한계가 아니며, 치료의 효과와 위험이 연령의 한계를 구분함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한다. 즉 승낙능력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치료 방법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28)
임상시험의 허가조건에 관한 근거규정으로 들 수 있는 것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동법 제16조29)는 임상시험에 앞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여 이를 기반으로 한 동의가 있을 것과 이러한 동의능력이 없거나 불완전한 사람의 경우 이를 대리할 수 있는 자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소아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평가 가이드라인’ 6.4.에 의하면, “보통 소아 피험자는 동의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소아 임상 피험자의 부모 및 법적 보호자에게 임상 참여에 대한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 전체 동의서는 해당 법 및 규정에 따라 법적인 보호자로부터 받아야 한다. 법적인 보호자를 포함한 모든 임상 참여자는 임상시험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용어로 씌여진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연구의 목적, 위험성 및 유익성이 소아 피험자의 지적 연령에 적절한 수준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가능한 상황이라면 소아 피험자에게도 연구 참여 동의를 받는 것이 좋다 (동의 가능 연령은 임상시험심사위원회에 의해 결정되거나 지역법에 의거. 통상 만 7세 이상)”고 하여 의사능력이 만 7세 이상인 피험자의 자기결정이 임상시험 시행여부에 반영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적절한 지적 성숙도를 가진 참여자는 동의서 양식에 자필로 서명하고 날짜를 기재하여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든 피험자는 임상시험 참여를 거부하거나 임상시험 도중 언제라도 중도에 참여를 포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규정하여 미성년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와 미성년자인 피험자의 자기결정권의 행사여부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자와 부모 또는 법적 보호자의 의견으로는 소아 환자의 복지가 시험 참여 포기에 의해 위태로워지는 심각하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위한 치료학적 연구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부모 혹은 법적 보호자의 지속적인 동의가 참여를 유지하는데 충분하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미성년자 본인의 의사와 보호자의 의사가 충돌하는 경우에 보호자의 의사에 의하여 임상시험이 시행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임상시험과 관련된 약사법 등의 제 법률을 살펴보더라도 미성년자의 경우에 어떠한 기준으로 동의능력을 인정할 것인지, 미성년자 본인의의 의사는 어떠한 법적 효과를 가지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해석에 따라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16조의 해석에 의하여 미성년자 본인의 의사를 파악해서 반영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불명확한 상황은 여전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위의 지침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과 같이 미성년자와 그 보호자 간의 의사가 불일치할 경우 결국은 보호자의 의사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불명확한 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일정한 연령을 기준으로 의사능력 여부를 확인하고 그 의사를 반영하도록 하고 있는 비교법적인 예는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미성년자 본인과 보호자간의 의사가 불일치하는 경우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특별대리인이나 후견법원의 선정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진다면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후견적인 관점에서 잘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비교법적으로 EU 임상시험 규정에 성숙 또는 판단능력에 따라 임상시험 참가에 대한 본인의사를 철회 또는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독일 판례에서도 판단능력이 있는 15세에 이른 미성년자에게 부모의 견해와 다름이 있는 경우에, 비토권(또는 거부권)을 인정한 바 있으므로 EU와 같은 임상시험 거부권이나 독일과 같은 비토권을 고려해 보는 것30)도 의미 있을 것이다.
Ⅳ.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임상시험, 금전적 보상과 동의의 유효성 문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약품 임상시험 관리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6. 임상시험심사위원회 규정에서 “9) 대상자가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경우 심사위원회는 그 보상액, 보상방법 및 금전적 보상이 대상자가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데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토하여야 한다. 이 경우 금전적 보상이 대상자의 임상시험 참여 정도와 참여 기간에 비추어 적절한지 및 대상자에 대한 보상이 임상시험에 끝까지 참여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지를 검토하여야 한다.”고 하여 임상시험 대상자에게 일정한 보상을 하는 것을 예정하고 있고, “10) 대상자가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경우 심사위원회는 그 지급방법·금액·지급시기 등 금전적 보상에 관한 정보가 시험대상자설명서 또는 그 밖의 대상자에게 제공하는 문서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는지를 확인하여야 한다. 이 경우 심사위원회는 임상시험을 종료하지 못한 대상자에 대한 보상 방안 유무를 확인하여야 한다.”고 하여 임상시험 대상자가 보상으로 인하여 임상시험에 대하여 자유롭게 중단하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일정한 요건 하에 임상시험 광고를 허용31)하고 있으며 임상시험에 따른 보상도 예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경우 임상시험에 보상을 목적으로 중복적으로 임상시험에 참여하거나 임상시험에 있어 대상자가 지켜야 하는 준수사항을 위반하고도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겻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32)
만성질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금전적 보상이 임상시험 참가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연구33)에서 금전적 보상 여부에 상관없이 임상시험 참여 의사를 보인 집단에서는 의사의 제안, 건강 향상에 대한 기대가 중요한 고려사항이었지만 금전적 보상이 있을 때 참여를 결정한다는 집단에서는 채혈량 및 관련 검사의 종류, 횟수와 위험도, 임상시험의 총 연구 기간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월평균 가계소득이 300만원 이상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금전적 보상이 없어도 임상시험에 참여할 가능성이 3.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 건강증진을 목적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찾기 위하여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금전적 보상 여부에 따라 임상시험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집단에서는 임상시험에 따른 위험도와 시험횟수 등의 번거로움이 결정여부의 기준인 점을 밝힌 바 있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피험자에게 참여대가로서 금전보상은 자발적인 피험자에게 보상을 정당하게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연구자에게는 충분한 피험자를 확보할 수 있는 점에서 임상시험에 대한 정당한 유인이 된다는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피험자에게 참여에 대한 대가의 지불이 부정적 유인이 될 수 있다는 점과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은 단점이 될 수 있다. 피험자에게 참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피험자 보호를 위한 연구자의 의무수준을 낮게 하고, 경제적 취약자에게는 금전보상의 유혹이 임상시험에의 부당한 유인이 될 수 있다.34)
피험자의 생명이나 신체의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는 임상시험이 정당화되는 것은 피험자의 자발적인 동의라고 하는 것은 앞서 논의한 바와 같다. 임상시험에 있어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지더라도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라고 하는 점에서 임상시험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대하여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하였다면 그 임상시험이 수반하는 위험이 어떠한 것일지라도 정당화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임상시험에 있어 금전보상과 이의 형사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금전적인 보상이 임상시험에 있어 수반되는 위험발생을 중하게 고려하지 않도록 하는, 다시 말해서 금전적 보상으로 인하여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를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자기위태화의 법리에 의하여 정당화되기는 힘들다고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가 발생하는 것을 알고도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것은 자신의 질병치료의 목적이나 타인의 질병치료를 위한 이타적인 목적에서 허용된다고 하여야 할 것이고, 이에 금전적인 보상이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는 수당과 같은 대가성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임상시험 등으로 인하여 확률적으로 예상되는 손해에 대한 보상이라는 의미에서의 보상을 전제로 하는 임상시험을 금지하여야 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처분의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하는 것은 금전으로 생명이나 신체를 매매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평가될 수 있어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금전적 보상이 있다는 것만으로 또 금전적 보상이 임상시험 등에의 유인책이 되었다고 하여 형사법적인 책임을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금전적 보상이 있건 그러하지 않건 간에 임상시험에 있어 시험자의 형사법적인 가벌성의 발생여부는 그 임상시험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험발생의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피험자의 의무위반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임상시험에 따르는 손해를 보전해 주기 위하여 보상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임상시험 조건을 위반한 경우에 업무방해죄의 성립여부가 문제될 수 있는데, 업무방해죄의 위험범적 성격을 고려하더라도 피험자 1인의 임상시험 조건 위반이 업무방해죄의 성립을 긍정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민사법적인 문제로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것이다.
임상시험에 있어 금전적 보상이 수반될 때에 그 금전보상의 성격이 문제될 수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약품 임상시험 관리 가이드라인’에서는 임상시험위원회에 그 보상액의 정도와 방법, 임상시험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검토할 권한만을 명시하고 있어 실제에 있어 금전적 보상의 가이드라인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생각건대 임상시험에 수반하는 금전적 보상은 임상시험에 참여함에 따르는 실비보전으로서의 성격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여 임상시험으로 인하여 향후에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가 발생하였다면 임상시험 당시의 금전적 보상과는 별도의 보상청구권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불어 임상시험에 있어 금전적 보상이 임상시험으로 유인하는 도구가 될 수 없도록 하여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임상시험에 참가함에 발생할 수 있는 교통비, 기회비용 등을 보전함에 그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단계에서 향후에 발생할 손해까지 담보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사법적인 문제에 대하여는 임상시험 시행시에 계약을 체결하여 그 내용을 명확하게 하면 다툼을 줄일 수 있겠으나 임상시험에서 계약서작성이 일반화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치료행위와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게약서작성이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우므로 민사에 관한 일반원칙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임상시험에 있어 구체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상정하는 것은 곤란함으로 이를 ‘의약품 임상시험 관리 가이드라인’ 등에 손해의 발생과 관련한 보상의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명목이나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손해와의 관계 등에 대하여 가이드라인에서 명확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임상시험에 대하여 현재의 치료수준 및 자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 만족하는 사람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참가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은 더 나은 건강상태를 목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려고 할 것이고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다소의 치료비용을 덜고자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것이다. 어느 그룹이건 각자의 자기결정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면 법적인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할 것이지만 특히 경제적인 목적으로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사람에 있어 임상시험의 결과 자체를 왜곡할 수도 있는 문제가 있다. 더 나아가 경제적인 부분으로 자기결정이 아닌 타자결정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의약품 임상시험 관리 가이드라인에서 보상과 관련하여 임상시험심사위원회에 일정한 감독의무 내지는 확인의무를 부여하고 있지만 이로서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유혹은 피험자 뿐만 아니라 시행자에 있어서도 동일한 문제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경제적 이익이 결부된 임상연구에 대해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규율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입법기술적 검토가 필요할지라도 이해관계의 충돌(conflict of interests)은 필수적으로 규정되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임상연구보다 세부적으로 규율되고 규율 강도도 높아야 하는데, 이는 연구자가 자신의 경제적인 이익 또는 명성 등의 다른 관심사를 가지는 경우, 연구참여자의 보호라는 임상시험에 대한 규율 목적과 충돌하게 되고 이는 연구의 객관성을 손상시키거나 연구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잃게 만들기 때문35)이라고 한다.
V. 맺으면서
새로운 질병에 대처하기 위하여 또는 새로운 치료법을 모색하기 위하여 임상시험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안전성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상시험은 피험자의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험을 동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주 제한적이고 잘 설계된 상태에서 임상시험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에 대한 각종 규제들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임상시험의 허용요건으로 위 임상시험의 목적, 방법, 횟수, 위험 등 제반사정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을 하고 피험자가 이에 대하여 충분하게 이해를 하고 동의한 경우 소위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가 있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임상시험 자체가 고도의 위험성을 내포할 수도 있고, 피험자에게 동의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며, 피험자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동의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기 때문에 피험자의 생명, 신체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여야 한다.
임상시험에 있어 피험자의 동의를 소위 자기결정권의 행사라는 전제에서, 본고에서는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의 원칙이 확립된 역사적인 배경과 위험이 수반하더라도 피험자의 동의가 있으면 임상시험이 정당화될 수 있는 원리를 살펴보고, 예외적으로 피험자의 자기결정권이 제한되어야 하는 상황을 살펴보았다.
완벽한 의사결정능력을 가졌다고 보기 어려운 미성년자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보호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만 어느 정도 의사능력을 가진 경우에는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국가후견적인 차원에서 미성년자의 생명, 신체를 두텁게 보호하는 방향으로의 문제이다. 또 경제적인 이유로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제한하여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일정한 수용시설에 있는 자에 있어 임상시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규정도 찾아볼 수 있으므로, 이러한 점을 합목적적으로 고려하면 의료광고 등에 있어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고 임상시험으로 유인하는 요인이 될 수 있는 보상을 합리적인 범위에서 제한하는 것도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