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칠드런 액트(The Children Act)」는 2014년 8월에 출간된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열세 번째 장편소설이다.1) 매큐언은 이 소설의 제목을 영국 「아동법(The Children Act)」2)에서 따왔다.
당시 영국사회는 ‘여호와의 증인’을 믿고 있는 미성년자의 수혈거부 문제로 떠들썩하였다. 매큐언은 아동법상 보장되고 있는 아동의 이익 최선의 원칙에 비추어 종교적 신념에 따른 아동의 수혈 동의와 거부 문제를 주제로 삼고 흥미진진하면서도 예리한 필치로 그 핵심을 파고들고 있다. 실제 사례를 가공하여 쓴 이 소설에서 매큐언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서 수혈을 거부한 미성년자 애덤과 관련한 소송을 맡은 영국 고등법원 피오나 메이 판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국에서는 만 18세를 법적 성년으로 본다. 애덤은 18세 생일을 3개월 남겨두고 있어 아직 미성년자이다. 당장 수혈을 받지 않으면 그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애덤이 성년이 되기 전에는 그의 부모가 수혈 여부를 결정한다. 그의 부모도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종교상의 교리에 따라 아들의 수혈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을 맡은 피오나 판사는 복지란 안녕과 분리할 수 없는 용어이며, 한 인간으로서 아동과 관련한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3) 또한 법정은 아동의 이익을 위한 개입이 부모의 종교 원칙에 어긋날 때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때로는 반드시 개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4) 따라서 그녀는 애덤이 비록 미성년자라고는 해도 자신의 운명에 대해 직접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애덤이 입원하고 있는 병실을 방문한다. 이 방문을 계기로 애덤과 피오나 사이에는 미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위 줄거리에서 보듯이 이 소설은 ‘수혈 거부’라는 종교적 신념과 법적 판단을 둘러싸고, 과연 어떤 선택이 미성년자인 애덤을 위한 최선의 이익인가를 묻고 있다. 아래에서는 「칠드런 액트」를 법률적으로 재구성하여 사실관계와 판결요지로 정리하고, 법적 쟁점에 대해 살펴본다(Ⅱ). 이를 바탕으로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의 개념과 유럽인권협약(ECHR) 제8조의 해석을 중심으로 종교적 신념에 따른 수혈거부와 미성년환자의 동의능력에 대해 분석한다(Ⅲ). 그리고 미성년환자의 의료적 자기결정권의 근거로서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을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인 길릭권한의 내용과 쟁점에 대해 검토한 후(Ⅳ) 결론을 내리기로 한다.
Ⅱ. 「칠드런 액트」의 법률적 재구성
피청구인 미성년자 A는 희귀한 종류의 백혈병을 앓고 있어 긴급하게 수혈을 받아야 한다. A는 쇠약한 상태로 호흡부전의 초기 징후를 보이고 있다. 만일 A가 수혈을 받는다면, 그가 차도를 보일 가능성은 팔십에서 구십 퍼센트이나 현재 상태에서는 그 가능성이 훨씬 낮다는 것이 청구인인 원즈워스 이디스 캐벌 종합병원의 판단이다.
하지만 A는 ‘여호와 증인’ 신도로서 다른 사람의 피(혈액제제)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교리를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5) 종교상의 신념에 따라 그와 그의 부모는 수혈을 거부하고 있다. 이 부분만 제외하면 A와 그 부모는 병원이 제시하는 모든 치료법을 받아들이는 데 동의했다. 수혈을 하면 생존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지만 수혈을 받지 않으면 A는 죽을 수도 있다. A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6)
의료진은 수혈거부가 미성년자 A의 독자적인 결정이 아니라 부모와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단체인 ‘여호와의 증인’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영국 아동법은 자기결정권을 가지는 성년의 나이를 만 18세로 정하고 있다. 18세가 되기까지 아직 3개월이 남은(17세 9개월) 미성년자 A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고, 부모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을 맡은 영국왕립재판소의 담당판사는 ‘아동 이익의 최선의 원칙(the child’s best interest; the best interests of the child: BIC원칙)’7)에 따라 미성년자 A의 수혈거부를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의료진의 판단에 따른 강제수혈을 할 것인지에 대한 판결을 내리고자 한다.
어느 날 당직을 서는 피오나 판사는 법원 서기인 나이절 폴링의 전화를 맡는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원즈워스에 있는 이디스 캐벌 병원에 입원해 있는 17세 소년은 희귀한 종류의 백혈병 환자로 긴급 수혈이 필요한데도 그와 부모가 동의를 거부하고 있다. 청구인(병원)측 변호사는 병원이 본인과 가족의 의사에 반해 적법한 절차로 수혈할 수 있도록 법원명령을 신청했다. 피오나는 법원서기에게 청구인과 피청구인에게 연락하여 화요일 오후 두시에 심리를 할 것이라고 통보할 것을 지시한다. 심리과정에서 청구인과 피청구인(애덤과 부모) 측 변호인들은 길릭권한(Gillick competency; Gillick competence)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공방한다.
청구인 측 변호인 마크 버너는 애덤에게는 길릭권한이 없다며 아래 네 가지 사유를 들고 있다.
첫째, 애덤은 자신이 수혈 받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대략적으로, 또 조금은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애덤은 의료진이 자신에게 사용할 치료법, 즉 ‘제시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의료진이 그 내용을 소년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최고 보직의 의료전문가로서 상황판단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고문의사가 내린 결론 역시 명확하다. 애덤에게는 길릭권한이 없다.
둘째, 애덤에게 길릭권한이 적용되어 치료법에 동의할 권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생명을 구하는 치료법을 거부할 권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에 대한 법률 규정은 명확하다. 애덤은 18세가 될 때까지 이 문제에 있어 자율권이 없다.
셋째, 수혈에 따르는 감염 위험은 미미하다. 반면 수혈하지 않을 경우의 결과는 확실하고 아마도 치명적일 것이다.
넷째, 애덤이 부모와 똑같은 특정 종교를 가진 건 우연이 아니다. 그는 부모를 사랑하는 헌신적인 아들이며, 부모가 진심을 다해 깊이 믿는 종교 안에서 자랐다. 애덤이 혈액제제에 보이는 매우 특이한 견해는 의사가 단언했듯이 본인의 견해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열일곱 살 시절엔 신봉했으나 지금은 말하기도 난처한 믿음이 몇 가지씩은 있다.
결론적으로, 애덤은 18세가 되지 않았고, 수혈을 받지 않을 경우 닥칠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며, 성장기의 배경이 된 특정 종파에 지나친 영향을 받고 있고, 그것을 저버릴 경우 감당해야 할 부정적 결과를 인지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견해는 현대의 합리적인 부모의 견해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8)
이에 대해 피청구인(부모)측 변호인 레슬리 그리브는 아래와 같은 사유를 들어 청구인측 주장을 반박했다.
첫째, 본 법정이 명백하게 지능과 통찰력을 지닌 개인이 내린 치료 결정에 개입할 때는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애덤이 18세 생일까지 남은 두세 달을 핑계 삼을 일이 아니다. 개인의 기본적 인권에 그만큼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를 다루며 숫자의 마법에 기대는 것은 부적절한 태도이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관습법이 보호하는 기본적 인권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사를 여러 번에 걸쳐 지속적으로 표명해온 애덤의 나이는 17세보다는 18세에 훨씬 가깝다.
둘째, 1969년 제정된 개정가족법 제8조에 따르면, 16세 이상 미성년자에게 동의 없이 외과, 내과, 치과 치료를 시행하는 것은 신체침해에 준하는 행위이며, 치료 동의는 성인의 경우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애덤은 17세 청소년 대다수보다 훨씬 사려 깊다. 몇 달만 일찍 태어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지금 어떤 입장을 취할지 본 법정은 참작할 필요가 있다. 애덤은 사랑이 충만한 부모의 전적인 지지를 받으며 치료에 대한 거부의사를 확실히 표명했고, 거부의 근거가 되는 종교원칙도 상세히 설명했다.
셋째, 담당의사가 치료 철회 의사를 경멸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런 태도는 그처럼 저명한 의사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직업적 헌신을 증명한다. 하지만 그 직업정신이 애덤의 길릭권한에 대한 판단을 흐리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의학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법과 도덕에 관한 문제다. 애덤은 자신의 결정이 초래할 결과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때 이른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여러번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죽음의 정확한 방식을 모른다는 주장은 핵심 논점에서 벗어나 있다. 길릭권한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도 그에 대해 완전히 알지는 못한다. 사실 그 누구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죽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담당의사도 인정했듯이 애덤을 치료하는 의료진은 그에게 죽음의 방식을 알려주길 원하지 않는다. 그 젊은이의 길릭권한의 근거는 다른 곳에서, 즉 치료를 거부하면 죽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본인의 명백한 이해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길릭권한과 관련하여 그의 나이는 논점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
결론적으로, 애덤은 거의 18세가 다 되었기 때문에 나이 자체는 별 차이가 없고, 길릭권한이 있다. 한마디로, 아동이 성년에 가까워지면서 의학적 치료 행위에 관한 독자적 결정 능력은 점차로 강화된다. 충분한 연령과 이해력에 이른 아동이 정보에 근거한 결정을 내리면 법정은 이를 존중하는 것이 보통 그 아동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 법정은 신앙의 표현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아니면 특정 종교에 어떠한 견해를 가져서는 안 된다. 또한 법정은 치료 거부에 관한 개인의 기본권을 훼손하게 되는 곤란한 상황에 휘말려서도 안 된다.9)
마지막으로, 피청구인 애덤과 그 후견인인 머리나 그린을 대변하는 변호인 토비는 신중하게 중립을 유지하는 태도를 취하며 간단하게 변론했다. 양측 동료들이 논쟁을 잘 펼쳐주었고, 관련 법조항은 모두 다뤄졌다. 애덤의 지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성경을 소속 종파가 받아들이고 전파하는 내용 그대로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18세에 근접했음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아직 미성년자라는 사실은 남는다. 따라서 본인의 의사에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어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판사의 재량이다.10)
청구인과 피청구인측 변호인들의 변론을 모두 듣고 나서 담당판사 피오나는 심리를 연기하며 본 소송의 특이한 상황을 감안하여 애덤 헨리의 말을 직접 들은 후 공개법정에서 판결을 내리기로 했다. 병원에서 애덤을 직접 만나고 돌아온 피오나는 공개법정을 열어 심리를 속개하고 아래의 취지를 담은 판결을 내렸다.
본 청구에 대한 반대의견은 세 가지 주요 쟁점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로 A가 3개월만 지나면 18세 생일을 맞을 것이고, 매우 총명하여 자신의 결정이 초래할 결과를 이해하고 있어 길릭권한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 다시 말해 성인과 마찬가지로 자기결정권을 인정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둘째, 치료를 거부할 권리는 기본적 인권에 해당하며 따라서 법정은 이에 대한 개입에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셋째로, A의 종교적 신념이 진실하며 법정은 그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
이 사건을 판단함에 있어 워드 판사가 재직 당시 내린 미성년 여호와의 증인 관련 판결을 지침으로 삼았다. 해당 판결문에서 워드 판사는 ‘그러므로 아동의 복지는 이번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며, 나는 무엇이 E의 복지를 좌우할지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견해는 1989년 아동법의 금지 명령에 명확하게 구체화되어 있다. 1989년 아동법은 그 도입부에서 아동의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복지’는 ‘안녕’과 ‘이익’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A는 수혈을 거부한다는 본인의 의사를 뚜렷이 전달했고, A의 아버지 역시 본 법정에서 본인의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치료 거부는 성인의 기본적 권리이다. 성인을 본인의 의지에 반하여 치료하는 것은 형사상 범죄로써 폭행에 해당하는 행위이다. A는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나이에 근접해 있고, 종교적 신념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다는 사실은 그 믿음이 얼마나 깊은지를 증명하고 있다. 또한 그의 부모가 끔찍이 사랑하는 자식을 신앙을 위해 희생시킬 각오를 한다는 사실은 여호와의 증인이 고수하는 교리의 힘을 보여준다.
A의 견해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는 판단되지 않는다. A는 아동기 내내 강력한 하나의 세계관에 단색으로, 또 중단 없이 노출된 채 살아왔고, 그런 배경이 삶의 조건을 좌우하지 않았을 수는 없다. 고통스럽고 불필요한 죽음을 감수하는 것, 그리하여 신앙을 위해 순교자가 되는 것이 A의 복지를 도모하는 길은 아닐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사후세계의 개념이 명확하여 종말의 날에 대한 예측, 즉 종말신학 역시 확고하고 매우 상세하다. 본 법정은 내세에 대한 어떤 견해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한편 건강을 회복한다는 가정 하에 A의 복지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그의 시(詩)에 대한 사랑, 새롭게 발견한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 활발한 사고력 발휘와 장난기 많고 다정한 본성의 표현이며, 그리고 A 앞에 펼쳐질 모든 삶과 사랑이다. 요컨대 A와 그의 부모, 회중의 장로들이 본 법정이 가장 중시하는 A의 복지에 해로운 결정을 내렸다고 판단한다. A는 그런 결정으로부터, 그의 종교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11)
환자의 명시적인 수혈거부 의사가 있으나 수혈하지 않으면 병세가 악화되어 생명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에서는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수혈 방법을 고려함이 원칙이다. 하지만 환자의 생명 보호에 못지않게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야 할 의무도 대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어느 경우에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생명과 대등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될 것인지는 다음과 같은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즉, ① 환자의 나이, 지적 능력, 가족관계, 수혈 거부라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게 된 배경과 경위 및 목적, ② 수혈 거부 의사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확고한 종교적 또는 양심적 신념에 기초한 것인지, ③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자살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 및 ④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 다른 제3자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는 없는 것인지 등이다. ⑤ 다만 환자의 생명과 자기결정권을 비교형량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의사가 자신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환자의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 중 어느 하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위를 했다면, 이러한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
환자가 미성년자라고 하여도 수혈거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결정이 본인의 독자적 판단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에 따라 부모의 결정에 영향을 받고 있다면, 달리 판단할 여지가 있다. 즉, 미성년 환자는 자신의 생명에 대한 위험이 현실화되지 아니할 것이라는 전제 내지 기대 아래에서 수혈 거부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므로 그것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초한 결정이라고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이 경우, 미성년 환자를 위한 최선의 이익 원칙에 따라 수혈 거부를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수혈을 강제할 것인지를 고려하여야 한다.12)
이 사안은 해결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법정은 판결을 내리는데 있어서 A의 나이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신앙과 치료를 거부할 권리에 내포된 개인의 존엄성에 응분의 비중을 두어야 한다. 본 판결에서 A의 존엄성보다 소중한 것은 A의 생명이다.
따라서 본 법정은 A와 그 부모가 제기한 반대의견을 기각하고, 다음과 같이 지시하고 선고한다. 피청구인인 A 본인과 그 부모의 수혈 동의는 받지 않아도 좋다. 청구인인 병원이 A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방법으로 혈액과 그 제제의 투여가 수반된다는 이해 아래 수혈을 통해 치료하는 행위는 적법하다.13)
피오나 판사가 내린 판결에 따라 의료진에게 수혈 받은 애덤은 병에서 회복된다. 위 판결요지에 의거하여 「칠드런 액트」에 나타난 법적 쟁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명시하고 있는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이다. 누구를 미성년으로 볼 것인가는 국가마다, 또 국가의 관련 법령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 하지만 미성년과 성년은 통상 연령(나이)을 기준으로 구분하고 있고, 전자를 국제인권법에서는 ‘어린이’ 혹은 ‘아동’으로 부르고 있다.14)
1959년 11월 20일 유엔 총회에 의해 채택된 아동권리선언에 의하면, 아동은 신체적·정신적 미성숙으로 인하여 출생 전후를 묻지 않고, 적절한 법적 보호를 포함한 특별한 보호와 배려가 필요하다. 이 취지를 반영하여, 아동권리협약15) 제1조는 “이 협약의 목적상, ‘아동’이라 함은 … 18세 미만의 모든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또 제2조 1항에서는 “당사국은 자국의 관할권 안에서 아동 또는 그의 부모나 후견인의 … 차별을 함이 없이 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존중하고, 각 아동에게 보장하여야 한다”고 하여 당사국이 그 관할 하에 있는 어떤 아동이라 할지라도 차별 없이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출생 혹은 임신한 때로부터’ 아동으로 볼 것인가라는 시점과 관련한 논의를 떠나 아동권리협약은 ‘18세 미만’의 모든 사람을 아동으로 본다.16)
아동권리위원회는 당사국이 아동권리협약의 국내이행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할 때 고려해야 할 네 가지 기본원칙을 마련했다. 이를 ‘일반원칙’(general principles)이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즉 ① 차별금지원칙,17) ② 최선의 이익원칙, ③ 생존과 발달원칙18) 및 ④ 의견존중(혹은 참여권보장)원칙19)을 말한다. 이 원칙들은 아동권리협약의 토대를 이루는 기본적 가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본 논문의 주제와 특히 관련이 있는 것은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이다. 이에 대해 아동권리협약은 “공공 또는 민간 사회복지기관, 법원, 행정당국, 또는 입법기관 등에 의하여 실시되는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아동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3조 1항).20) 최선의 이익은 일반적으로 ‘권리보호’와 ‘복지증진’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선의 이익’이란 표현은 매우 주관적이며 불확정 개념이므로 의사결정권자의 가치체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21)이 제기되고 있다.22)
둘째, 아동, 즉 미성년환자의 의료적 자기결정권 행사의 문제로서 길릭권한과 관련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술을 비롯한 의료적 처치 혹은 치료를 할 때 의사는 반드시 환자에게 그 처치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의사가 일방적으로 행한 의료적 처치는 불법행위에 해당된다. 의사에 의한 불법행위는 의무위반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필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행위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했는가 여부이다. 따라서 환자의 동의는 중요한 문제이며, 의료적 처치 혹은 치료에 있어 요구되는 필수사항이다. 위 내용은 의식 있는 성인 환자(conscious adult patient)에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아직 사고가 미성숙한 상태 있는 아동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칠드런 액트」에 묘사된 사건에서 피청구인 A ‘애덤’은 법적 성년으로 간주되는 18세 생일을 3개월 남겨둔 미성년자(즉, 아동)이다. 의료진의 판단으로는 당장 수혈을 하지 않으면 애덤의 생명이 위험하지만 미성년자녀의 수혈 여부는 전적으로 그의 부모의 결정에 달려있다. 문제는 그의 부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종교적 신념에 따라 애덤의 수혈에 동의하고 있지 않다. 이 경우, 미성년자녀인 애덤은 부모가 아니라 본인의 판단 아래 종교적 신념을 거부하고 수혈에 동의함으로써 의료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가.
아래 본문에서 검토하는 바와 같이, 이는 소위 미성년 아동의 길릭권한의 행사로써 「칠드런 액트」가 주된 소재로 삼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길릭권한에 따라 아동 본인이 자신의 질병에 대해 의료적 자기결정권이 인정되었다고 할지라도 이 권리가 모든 아동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수 사례에서 영국 법원은 길릭권한에 따라 아동에게 의료적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하여 아동이 의료진의 치료를 무조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23)
셋째, 이 주제는 영국이 가입하고 있는 유럽인권협약(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ECHR)24) 제8조와 관련하여 보다 심도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동조는 모든 사람의 ‘사생활 및 가족생활을 존중받을 권리’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고, 국가안보 등 일정한 경우에는 공공당국이 개입할 수 있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한편 ECHR 가입회원국인 영국은 1998년 인권법(Human Right Act: HRA)을 제정하여 2002년 10월 2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HRA는 ECHR을 영국 국내법으로 수용하는 법이다. 이 법에 의거하여 ECHR에 규정된 권리 침해 사건에 대해 영국 국내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공공기관들도 ECHR과 부합하지 않는 행위나 조치를 채택할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영국 의회도 ECHR에 합치하지 않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는 등 영국 내 기본적 인권의 보장 체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25) 따라서 본고의 주제와 관련하여, 의료적 치료에 대한 아동의 동의 및 거부에 관한 법률이 ECHR 제8조를 준수해야 하는 지, 또한 의료진과 법원이 아동의 이러한 권리를 존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아동이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 제8조를 적용할 수 있는가 여부가 중요하다. 제8조 1항의 ‘모든 사람’에는 성인은 물론 아동도 포함되므로 아동의 의료적 치료 동의와 거부에 대해 본조는 당연히 적용된다.
마지막으로, 본고의 주제에 관한 마지막 법적 근거는 상기 영국 아동법이다. 특히 제1조에 따르면, 아동과 관련한 재판을 할 때 법원(즉, 재판부)은, (a) 아동의 양육 또는 (b) 아동의 재산 관리 또는 소득의 적용에 관한 결정을 할 때 아동 이익의 최선의 원칙, 즉 아동의 이익(혹은 복지)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아 한다26)(1항). 또한 아동의 양육과 관련한 소송에서 법원은 결정을 지연함으로써 아동의 복지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일반원칙(the general principle)’도 고려해야 한다(2항). 이에서 알 수 있듯이 아동법 제1조는, 법원의 임무가 ‘아동 이익의 최선의 원칙’에 따라 ‘아동복지’를 보장하는 데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위 네 가지 법적 쟁점은 미성년환자의 수혈거부는 의료적 자기결정권에 해당하는가, 또한 이 권리는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에 부합하는가로 정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파생되는 세부 주제에 대해 검토한다.
Ⅲ.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과 미성년 환자의 의료적 자기결정권
법적 관점에서 볼 때 「칠드런 액트」는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과 미성년 환자의 의료적 자기결정권, 특히 종교적 신념에 따른 수혈거부에 관한 미성년 환자의 권리에 관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후자와 관련된 쟁점을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전자의 개념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아동권리협약은 ① 차별금지원칙, ② 생존과 발달원칙, ③ 의견존중(혹은 참여권보장)원칙과 함께 ④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27)을 협약의 4대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기술한 바와 같다. 이 가운데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에 대해 협약 제3조 1항은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공공 또는 민간 사회복지기관, 법원, 행정당국, 또는 입법기관 등에 의하여 실시되는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협약이 제3조 1항을 둔 본질적 이유는, 공공·민간영역에서 아동과 관련된 모든 활동 또는 결정에서 아동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평가하고, 또 채택될 수 있는 권리를 아동에게 부여하기 위함이다.28) 따라서 공공당국과 민간단체는 “모든 조치, 행위, 제안, 서비스, 절차 및 여타 조치”를 포함하는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서 해당 권리를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29) 하지만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는 일반논평 14호의 해석과는 달리 협약 제3조 1항은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shall primary consideration)”고 함으로써 다소 유연한 문언으로 규정하고 있다. 협약이 이런 입장을 취한 이유는 아동 최선의 이익의 보장을 획일적·통일적으로 규제하기 보다는 비준국의 국내 사정을 고려하여 국가별로 유연하면서도 적극적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낫다고 봤기 때문이다.30)
이처럼 협약은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이 원칙의 개념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31) 이에 대해 일반논평 14호는 ‘아동 최선의 이익’이라 함은 “특정상황에서 아동(들)의 이익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대한 평가에 기준이 되는 권리이자 원칙이며 절차규칙”이라고 밝히고 있다.32) 따라서 관계기관은 구체적인 조치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 아동 최선의 이익에 대한 평가와 결정33)이라는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34)
이러한 단계를 거쳐 최선의 이익을 평가하고 결정하는 목적은 회원국의 국내법에 근거하여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고, 아동의 복지, 안전 및 성장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의사결정자들은 최선의 이익 관련 제반 요소를 평가하고,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이때 협약 제12조에 따라 평가과정에는 아동의 참여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평가에 기초하여 아동 최선의 이익을 결정할 때는 엄격한 절차적 보호조치를 갖춘 공식과정을 거쳐야 한다.35)
하지만 아동권리협약이 규정하고 있는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은 그 해석과 적용에서 야기되는 ‘불확정성’으로 여러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법원이다. 피오나판사는 샴쌍둥이판결에서 아래와 같이 철저하게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한다.
“본 법정은 도덕이 아니라 법을 다루는 장소이며, 우리 앞에 놓인 유일무이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법리를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요,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36)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판단하면서 한 생명이 다른 생명보다 더 가치 있다고 추정하는 일은 사실한 불가능한 것이었다. 마크와 매슈로 불리는 샴쌍둥이를 분리하면 뇌와 심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매슈가 죽었다. 쌍둥이를 분리하지 않으면 부작위로 인해 둘 다 죽었다. 이 경우 판사는 법적, 도덕적 판단을 떠나 차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피오나는 마크와 달리 매슈는 어떤 결정으로도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차악이 마크와 매슈를 위한 최선의 이익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해도 명백히 불법이다. 피오나는 ‘필요의 원칙’37)을 원용했다. 이 원칙은 영국 관습법에서 확립한 개념으로서 어떤 제한된 상황에서 더 큰 악을 막는 목적일 때는 형법의 위반이 허용된다는 원칙이다.38)
머리가 붓고 심장이 수축하지 않는 매슈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 이때 판사는 쌍둥이 마크와 매슈의 최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어차피 죽을 매슈를 분리함으로써 마크를 살려야 할까? 아니면 둘 다 분리하지 않고 죽게 나둬야 할까? 어쩌면 판사에게 아동 최선의 이익을 위한 판단은 언제나 ‘비이성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샴쌍둥이판결로 인한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피오나는 긴급수혈을 거부하는 17세 암환자에 관한 사건을 맡게 된다.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에 대한 검토를 바탕으로 본 주제와 관련하여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이 원칙과 미성년 환자의 의료적 자기결정권이 충돌하는 경우, 이를 어떻게 조화롭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특히 종교적 신념에 따라 미성년자 본인은 물론 그 부모가 수혈을 거부한다면 아동 최선의 이익에 비추어 미성년 환자의 의료적 자기결정권에 중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미성년 환자의 생명권 보호를 위해 공권력의 개입을 허용할 것인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국제인권규범, 특히 유럽인권협약 제8조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사생활 및 가족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 ECHR 제8조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그의 사생활, 가정생활, 주거 및 통신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1항). 이 권리의 행사에 대하여 어떠한 공공당국의 개입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일정한 예외가 있다. 즉, 그 개입이 법률에 합치되고, 국가안보, 공공의 안전 또는 국가의 경제적 복리, 질서유지와 범죄의 방지, 보건 및 도덕의 보호, 또는 다른 사람의 권리 및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2항).
그렇다면 ECHR 제8조 1항을 종교적 신념에 따른 미성년 환자의 수혈이라는 의료적 조치를 거부할 권리(Minors’ right to refuse medical treatment)를 해석하는 근거조항으로 원용할 수 있을까? 아래에서는 해석상 문제가 되는 논점에 대해 검토한다.
첫째, 본조의 권리 향유의 주체는 ‘모든 사람(Everyone)’이다. 자국민과 외국인은 물론 성년과 미성년을 구별하지 않으므로 아동도 당연히 포함된다. 다만 재소자, 미결구금자 등 공권력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정한 예외가 인정된다.
둘째, 사생활의 보호는 특정 권리와 충돌할 수 있다. 이를테면, 미성년 환자 본인은 물론 환자의 부모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의료적 조치를 거부하는 경우, 제8조의 법리상 그 조치를 거부할 권리와 충돌하게 된다. 이때 미성년환자와 부모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당사자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인가라는 문제가 생기므로 상호 적절한 조정이 필요하다.
셋째, 사생활 보호와 공권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만일 사생활의 보호법리에 충실하게 제8조를 해석하게 되면, 미성년환자와 부모의 종교적 신념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함으로써 의료적 조치 거부권이라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공공당국이 공권력을 사용하여 의료적 조치를 시행하게 되면 미성년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보호라는 법리에 따라 미성년환자에게 수혈과 같은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시행하지 않는 것이 과연 제8조에 부합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이 경우 공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사생활의 권리에 대해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위와 같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ECHR 제8조 2항은 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일정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즉, 만일 그 제한이 ① 법률에 의하여 규정되어 있고, ②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건강 또는 도덕 또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는 데 필요하며, ③ 이 협약에서 인정되는 기타의 권리와 양립되는 경우에는 공공당국의 개입이 인정된다. 이때 본항에서 말하는 ‘법률’이란 권한 있는 입법기관이 정규의 절차에 의해 제정한 협의의 법률이다. 또한 ‘법률에 의한 제한’은 제한의 한계를 확정할 수 있는 명확하고도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법률이 정하는 제한이 위의 ②와 ③의 조건과 동일한 정도로 추상적인 문언, 이를테면, “정부는 국가안보를 해할 우려가 있는 자에 대하여 출국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를 사용하게 되면 ‘법률에서 정해진’이라고 규정한 취지가 퇴색되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사안의 경우에도 제8조 1항의 사생활의 보호 측면에서 미성년환자의 의료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서도 2항의 적용예외에 따라 공공당국의 일정한 개입이 인정될 수 있다. 다만, 이 권리는 아동 최선의 이익 보호라는 법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으므로 양자의 충돌을 어떻게 조정하고 조화시킬 것인가의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
Ⅳ. 미성년환자의 수혈거부와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의 충돌과 조화
유럽인권재판소(ECtHR)에 따르면, “[…] ‘사생활’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그 인격의 개발 및 실현을 추구하고, 또 제3자 및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고 발전시킬 수 있는 자기결정권의 영역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용어(a broad term)이다.”39) 이처럼 ECtHR은 ‘사생활’의 개념과 그 적용 영역을 자기결정권을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ECtHR은, 자기결정권이란 “그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삶을 이끌 수 있는 능력”(the ability to conduct life in a manner of one’s own choosing)으로 정의하고,40) 개인의 이 능력은 “관련 개인을 위하여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해롭거나 위험한 성질을 포함한 활동을 추구할 기회를 포함할 수도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41)
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ECtHR은, 우선, 자기결정권을 “그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삶을 이끌 수 있는 능력”으로 명확하게 개념 정의하고, 다음 단계에서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해롭거나 위험한 활동은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의거하여 언제나 보호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이 가지는 이 결정권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인정되는 것이다. ECtHR의 이와 같은 입장은, “모든 사람은 그의 사생활을 (…)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 ECHR 제8조 1항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으로서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이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성인과 달리 미성년 아동에게는 일정한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수혈 거부라는 의료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대해서는 여러 복잡한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성년과 미성년(아동)을 구분하는 기준인 ‘만18세’라는 나이(연령)가 걸림돌이다.
아동권리협약 제1조는 “18세 미만의 모든 사람”을 ‘아동’, 즉 ‘미성년’으로 본다.42) 미성년도 성년과 마찬가지로 의사 및 권리능력을 가진다는 점은 분명하나 행위능력에는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다. 제한능력자인 미성년이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한 법률행위는 취소될 수 있다.43) 따라서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44) 법정대리인이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법률에 따라 대리권이 주어진 대리인”을 말하는데, 통상 친권을 행사하는 부 또는 모가 미성년 자녀의 법정대리인이 된다.45)
민법상의 이 규정은 ‘만18세’라는 나이를 기준으로 성년과 미성년을 구분하고, 후자의 권리능력을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미성년환자는 법정대리인인 부모의 동의 없이는 자신의 생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의료적 조치인 수혈을 받겠다는 결정을 할 수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위 해석을 「칠드런 액트」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피청구인 애덤은 18세 생일을 3개월 남겨두고 있으므로 만18세를 성년으로 보는 영국법상 미성년자다. 미성년자는 제한능력자이므로 법정대리인인 부모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수혈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물론 애덤이 부모의 동의 없이 수혈을 받기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추후 그 사실을 알고 법정대리인인 자신들의 동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미성년자녀인 애덤의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다. 만일 국내법을 이렇게 엄격히 해석·적용하면 미성년환자의 권리는 제한되어 기본적 인권이 크게 침해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고 만다.
그렇다면 위에서 검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원론적으로는 의료적 자기결정권의 근거로써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을 적용하여 미성년환자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미성년환자 본인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수혈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경우 수혈거부(치료를 거부할 권리 young person refusing blood transfusion)는 미성년환자의 기본적 인권으로 봐야하는가? 수혈을 거부하는 미성년환자의 의사에 반하여 공공당국은 아동 최선의 이익 보호를 내세워 수혈을 강제할 수 있을까? 이 결정은 미성년환자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거나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에 위배되지는 않을까? 결국 미성년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서도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에 부합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에 대해서는 ‘길릭권한’을 중심으로 제기된 문제점에 대해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의료적 치료 및 연구를 할 때 그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에 관한 일반논평에서도 의료적 치료행위를 할 때 미성년환자 본인의 의사표명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미성년자(아동)가 그 대상인 경우에는 본인의 의사 및 동의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친권자에게 통보를 하는 것만으로 치료와 연구가 이뤄지는 수가 적지 않다. 이러한 관행은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친권자의 동의 없이 미성년환자가 의료적 의사결정권(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Gillick 사건에서 주된 쟁점으로 다뤄졌다.46)
영국 보건사회보장국(Department of Health and Social Security: DHSS)은 지역보건당국에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도 “의사와 환자의 상담은 기밀로 유지된다”는 내용의 통달(Memorandum)을 발령했다. 이에 따르면, 의사가 부모의 동의 없이 미성년자녀에게 피임에 대해 조언할 수 있다.
4명의 딸을 둔 어머니인 길릭부인(Mrs. Gillick)은 지역보건당국에 그녀의 자녀가 16세 미만인 동안에는 모든 의료직원이 그녀의 동의 없이 피임 또는 낙태에 대해 조언을 하지 못하도록 요청했다. 지역보건당국은 길릭부인에게 의료적 치료에 관한 모든 사항은 의사에게 달려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냈다. 이에 대해 그녀는 DHSS의 통달은 미성년자들로 하여금 불법적으로 성행위를 하도록 권유하고, 부모의 동의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법원은 그녀의 청구를 기각했고, 길릭부인은 항소했다. 항소심법원은 부모의 동의 없이 의료기관이 16세 미만의 여성미성년자에게 피임 조언이나 치료를 해서는 아니 된다는 그녀의 주장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DHSS는 즉각 상고했으며, 영국 상원(the House of Lords)47)은 미성년자가 “제시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에 충분한 이해와 지능“(sufficient understanding and intelligence to understand fully what is proposed)”48)을 가지고 있다면 16세 미만이라고 해도 의료적 치료행위에 동의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길릭판결은 미성년자의 피임에 대해 친권자인 부모의 동의 없이 미성년자녀가 본인의 의료적 치료에 대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여부가 주된 쟁점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에 그치지 않고 치료행위의 의사결정에 대해서도 폭넓게 적용되었다. 이 판결에 따라 16세 미만의 미성년자라고 해도 치료행위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와 지능이 있다면’ 자신에게 사용될 치료법에 동의하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길릭권한’ 내지는 ‘길릭규칙(Gillick rule)’이 확립되었다.
하지만 ‘충분한 이해와 지식이 있다면’이라는 문언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병원에서 미성년환자에게 의료적 조언이나 치료를 위해서는 길릭규칙이 적용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길릭판결에서 대법관 프레이저(Lord Fraser)는 부모의 동의 없이 미성년자에게 의사의 조언이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프레이저 가이드라인(Fraser guidelines)’이라고 한다. 이 가이드라인에 의거하여 이후 아래 다섯 가지 기준을 충족하면, 의료진은 미성년환자의 길릭권한을 인정하고, 치료행위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되었다.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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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미성년자가 조언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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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의사는 미성년자로 하여금 자신의 치료행위(피임행위)에 관한 조언을 구하고 있음을 부모에게 알리도록 설득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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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미성년자는 피임에 관계없이 성관계를 시작하거나 계속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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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피임에 관한 조언이나 치료가 부족하면, 미성년자의 신체적 또는 정신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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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미성년자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서는 부모의 동의 없이 의사가 조언이나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
길릭판결에서 확립된 이 규칙을 통하여 미성년자는 치료행위 과정에서 완전히 자율적 주체로 간주되게 되었으며, 의료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치료행위 과정에서 미성년환자의 동의능력과 의사결정권을 어느 수준까지, 또 어느 범위까지 인정하는 것이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에 부합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칠드런 액트」에서도 길릭권한은 재판과정에서 핵심 쟁점으로 다뤄진다.
의료진은 미성년환자가 부모의 동의 없이 “제시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에 충분한 이해와 지능”을 가지고 자신에게 사용될 치료행위에 대해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판단한다. 이를 ‘길릭권한테스트(Gillick Competency Test)’50)라고 한다. 이 테스트를 할 때의 관건은 두 가지인데, 대법관 스카먼(Lord Scarman)은 길릭사건판결에서 아래와 같이 견해를 밝히고 있다.51)
먼저, 미성년자의 ‘판단능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 스카먼은, “미성년자는 (의사가 주는) 조언의 본질을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하면서, 미성년자는 “의사가 주는 복잡한 조언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성숙도(a sufficient maturity to understand what is involved)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다음은, 충돌하는 부모와 자녀의 권리의 조화 혹은 조정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 스카먼은, “부모의 권리는 자녀가 결정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이해와 지능에 도달했을 때’ 그 자신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녀의) 권리에 따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스카먼의 견해를 요약하면, 미성년자가 길릭권한에 의거하여 치료행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가 “제시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에 충분한 이해와 지능”을 가져야 한다. 또한 만일 미성년자가 이 정도로 충분하게 성숙한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부모는 자녀가 가지는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따라서 의료진은 프레이저 가이드라인에 따라 길릭권한테스트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미성년환자의 길릭권한을 인정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법관 프레이저와 스카먼이 제시한 어느 견해를 따르든 길릭권한의 행사에는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길릭권한의 평가 주체, 즉 누가 길릭권한테스트를 하는가? 길릭판결에서 영국 상원은 의사가 길릭권한을 평가할 수 있는 적격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이때 제기되는 우려는 의사가 전문직업인으로서 편견을 가질 수 있으며, 또한 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피임, 예방 접종 및 수혈과 같은 사회적, 종교적 또는 도덕적 문제를 제기하는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의사들에게는 길릭권한에 관한 결정이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의사들은 거의 매일 까다롭고 어려운 도덕적 결정을 내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의사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재량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52)
둘째, 길릭권한테스트를 할 때 의사가 상당한 재량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의료행위의 최종 결정에는 환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만일 환자의 동의를 얻지 못하거나 혹은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의사가 재량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 의사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동의는 반드시 서면으로 할 필요는 없고 구두로도 할 수 있다. 다만, 환자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검사, 시술 및 수술에 대해서는 의사는 환자에게 절차를 설명하고, 명시적(즉 서면) 동의를 얻어야 한다.53)
셋째, 미성년환자가 길릭권한에 의거하여 명시적 동의를 했다고 하여 의사는 자신의 전문적 지식과 재량권을 행사하여 모든 유형의 치료행위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칠드런 액트」에 묘사된 판결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영국법원은 일반적 의료치료와는 달리 생명을 위협하는 치료행위(life-threatening treatment)에 대해서는 미성년환자에게 길릭권한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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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미성년자가 삶과 죽음을 결정하기를 원할 때 “제시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에 충분한 이해와 지능”에 의거하여 진행되는 길릭권한테스트의 기준이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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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법원은 미성년자들이 이 테스트를 통과하기에는 충분한 능력, 즉 충분한 이해와 지능이 있다고 보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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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ECHR의 관련 규정에 의거하면, 길릭권한의 인정 유무는 제2조 생명권과 제8조 사생활에 대한 권리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 이 규정에 대한 해석을 통하여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과연 미성년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서도 아동 최선의 이익원칙에 부합하는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결국 논의는 어떤 선택이 미성년환자가 아동으로서 가지는 복리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56)
V. 결론
본고에서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 「칠드런 액트」를 통하여 종교적 신념에 따른 아동의 수혈거부를 주제로 “무엇이 아동을 위한 최선의 이익인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최선의 이익은 일반적으로 아동의 ‘권리보호’와 ‘복지증진’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선의 이익’이란 매주 주관적이고 불명확한 개념이다. 무엇이 아동을 위한 ‘최선’이고, ‘이익’인가? 아동도 권리의 주체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있음에도 아동이 누리는 ‘최선의 이익’이란 결국 의사결정권자의 가치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칠드런 액트」의 주인공 애덤은 성인의 나이 만 18세 생일을 3개월 남겨두고 있는 아동이라는 이유로 수혈거부라는 선택이 자기결정권에 의거한 것인가를 입증해야 한다. 만일 그가 18세 생일을 하루라도 지난 성인이었다면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덤은 의료진이 ‘제시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에 충분한 이해와 지능’을 가졌다는 길릭권한테스트를 거쳤고, 담당판사 피오나도 이를 인정한다. 그럼에도 성년과 미성년을 구분하는 법정 연령 18세가 아니라는 이유로 길릭권한에 의거한 그의 자기결정권은 충분하게 보호받지 못했다. 아동 최선의 이익에 대한 결정은 애덤이 아니라 종국적으로는 의사결정권자인 병원과 법원의 권한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이 다루고자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수혈을 거부하는 미성년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생명권이 충돌하는 경우, 과연 어느 것이 아동 최선의 이익에 부합하는가이다. 피오나 판사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중점을 두고 애덤 본인과 부모의 동의가 없어도 병원이 수혈해도 좋다는 판결을 내린다. 이 결정에 따라 애덤은 수혈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다. 결과만 놓고 보면 법원의 판단은 옳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만일 애덤 혹은 그의 부모가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수혈을 거부하거나 또는 의료진이 애덤의 자기결정권과 생명권을 비교 형량한 결과 전자를 선택하여 수혈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릴까? 이 소설과 동일한 판결을 내린다 해도 의료진이 애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강제수혈이라는 의료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법원을 이 판결을 어떻게 집행해야 할까? 영국 「아동법」에서 제목을 따온 이 소설은 어떤 선택이 아동을 위한 최선의 이익일까에 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