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1996년 131인에 불과했던 귀화자의 수는 2000년대부터 급격히 늘어났으며 2010년대 이후에는 대체로 1년에 1만 명 대를 유지하고 있다.1) 새롭게 국민이 된 이주자들은 상당히 증가하였으나 귀화자가 국민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의 문제는 잔존하다. 예를 들어 귀화자에게 주어진 한국 국적이 쉽게 사라질 가능성이 상존한다면 그를 온전한 국민으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겠는지, 그 스스로도 온전한 국민으로 받아들였다고 느낄 수 있겠는지와 같은 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사회 통합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의 문제이기도 하고, 헌법적으로는 법치주의와 인권의 문제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민주주의 관점에서 국적의 틀을 넘어 공동체 구성원인 이주자에게 정치적 참여권을 포함하는 주민(denizen) 내지는 시민 개념을 고민하는 논의도 발전적 의의를 갖는다.2) 하지만 현존하는 국적 제도의 범위 안으로 들어온 이주자의 지위가 과연 생래적으로 국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지위만큼이나 강고한 것인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현재 국적법상 귀화를 통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국민이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또는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다시 대한민국 국적을 잃을 수 있는 경우로는 귀화로 복수국적자가 된 사람이 국익에 반하는 행위 등을 하였다 하여 제14조의3에 의하여 국적 상실의 결정을 받는 때와 거짓 등 부정한 방법으로 귀화 허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사후에 제21조에 따라 귀화 허가가 취소되는 때가 있다. 본고는 위에서 언급한 문제의식 안에서 이 두 제도를 헌법적으로 검토하여, 이주자가 아닌 국민으로서의 귀화자에 대한 법의 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3)
이하에서는 먼저 논의의 기초로서 국적과 귀화의 법적 의미를 살펴보고(Ⅱ) 차례로 국적법 제14조의3(Ⅲ)과 제21조(Ⅳ)의 내용과 문제점을 살펴본다. 아울러 각 제도에 대해서는 유사한 제도에 관한 외국 입법례를 참고로 간략히 소개하기로 한다. 마지막 결론부(Ⅴ)에서는 논의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제도의 방향을 생각해볼 것이다.
Ⅱ. 귀화의 의미
국적은 국민이 되는 자격으로서 국가와 구성원 간의 법적 유대를 말하며, 국적자인 국민은 국가의 “항구적 소속원”이 된다.4) 국적은 국내적으로는 국가와의 권리·의무 관계를 발생시키고 국제적으로는 국가의 외교적 보호 관계를 발생시킨다.5) 국적은 다층적인 의미를 갖는다. 법적인 측면에서 국적은 어떤 지위로서 형식적인 국가의 구성원 자격에 관한 것이며, 그 지위로부터 개인은 권리라는 형태로 일정한 능력을 부여받는다. 이는 다시 개인이 해당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갖는 행동적 측면인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6)
법적인 의미에서 국적과 그로 인한 국민과 외국인의 구별은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제도라고 하기는 어렵다. 서양에서 그것은 충성(ligeance, allegiance)이라는 유대관계에 의한 법적 지위 인정에서 출발하여 18세기 정도에 어느 정도 정착되었고, 그 결과 이 유대관계에 속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법적 지위에서 차등이 생겨났다.7) 국민국가의 성립과 함께 확립된 국적과 국민이라는 개념은 처음에는 영속적인 유대관계를 뜻하였으나, 19세기 후반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귀화를 통하여 새로운 구성원(국민)을 받아들이면서 선택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되었다.8) 한편 한국의 경우는 국민국가의 성립이 해방과 뒤이은 이념 논쟁 및 분단 등과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9)
국적의 취득과 보유에 관해서는 각국에서 다양한 요건을 두고 있으므로 실질적으로 국적을 자유롭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개인에게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렵다.10)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국적을 이탈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헌법 제14조가 보장하는 거주·이전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11) 국적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이를 주로 거주·이전의 자유의 문제로 보는 듯하다. 국적법 제21조에 의한 귀화 허가의 취소에 대하여 취소가 가능한 기한이 법정되어 있지 않아 기간 제한 없이 귀화 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하여 거주·이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지 판단한 사례도 있다.12)
반면 헌법재판소에서 별개 의견 중에는 거주·이전의 자유는 물리적 장소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에 반해 국적을 갖거나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자신이 소속될 공동체를 규범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로서 관념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거주·이전의 자유와는 성격을 달리한다고 보아, 그 헌법적 근거를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규정하는 제10조로 본 사례도 있다.13) 거주·이전의 자유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따라 여기에 국적에 대한 권리를 포함시킬 수 있을지를 다르게 보기도 한다. 거주·이전의 자유를 넓게 보아 인간 활동 영역 확장과 인격 형성에 기여하는 다양한 경제·사회·정치적 환경에 관한 권리로 본다면 국적에 관한 자유를 거주·이전의 자유의 한 내용으로 볼 여지도 있으나 거주·이전의 자유를 물리적 장소를 중심으로 좁게 이해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해석이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관한 헌법 제10조에서 국적과 관련한 권리를 도출하는 것이 개인의 인격 및 정체성과 밀접한 국적의 현재 의미와 더 부합한다고 본다.14)
국가 간 이동이 물리적으로 쉽지 않았던 과거에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국적 개념과 더 가까이 결합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국경을 넘는 이동 자체가 급격히 증가하고 나아가 유학이나 취업·혼인 등 여러 가지 사유로 국적국이 아닌 국가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사람, 영주·귀화 등 제도를 활용하여 정착하는 사람도 크게 증가한 현재, 국적은 물리적 장소보다는 생활과 활동의 전제로서의 인격 및 정체성 형성과 더 밀접할 것이다. 예컨대 외국에서 장기간 생활하면서도 굳이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들, 또는 반대로 적극적으로 국적을 취득하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정체성과 생활상 및 가치에 근거하여 그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는 물리적 장소에 결부된 생활상의 편리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헌법상 거주·이전의 자유에서 국적에 관한 권리의 근거를 찾기보다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서 가장 직접적인 근거를 찾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국적의 박탈이 거주·이전의 자유와 매우 밀접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나, 거주·이전의 자유는 국적의 근거라기보다는 국적을 소지함으로써 나오는 권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15)
그 밖에도 국적은 기본권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이 논문의 탐구 대상이 되는 국적법 제14조의3이나 제21조에 의하여 귀화자가 국적을 잃게 되고 그 외에 적절한 체류 자격을 얻지 못해 강제퇴거의 대상이 된다면, 고국이나 본인의 상황에 따라서 그는 신체의 자유나 고문을 받지 아니할 권리, 가족생활에 관한 권리 등에 중대한 침해를 당할 가능성도 있다.16) 다른 한편으로 국적은 그 사람이 어떤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따르고 있는 (권리)성질설에 의하면 기본권은 그 성질에 따라 인간의 권리와 국민의 권리로 나뉘고 외국인은 전자의 기본권에서는 그 주체가 될 수 있으나 후자의 기본권의 주체는 될 수 없다.17) 또는 일부 기본권은 국민과 보장되는 범위가 다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헌법재판소는 거주·이주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선거권과 피선거권, 사회적 기본권 등은 외국인은 누릴 수 없거나 제한적으로만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18)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법적인 용어로서 귀화는 “다른 나라의 국적을 얻어 그 나라의 국민이 되는 일”을 의미한다.19) 헌법재판소는 귀화를 “출생에 의한 선천적 국적 취득요건과 관계없이 그 국가의 국내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고 그 국가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국적 취득을 신청한 사람에 대하여 국가가 이를 허락함으로써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제도”라고 설명한다.20)
귀화의 요건 등을 심사하여 귀화 허가를 하는 법무부장관의 권한을 규정한 국적법 제4조 이하의 규정과 국가라는 공동체의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이는 행위로서 해당인에게 포괄적인 법률관계를 설정하는 귀화 허가의 의미 등을 볼 때 귀화의 요건을 설정하는 입법자와 이에 기초하여 귀화 허가를 발하는 법무부장관 모두 일정한 재량을 가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21) 다만 법무부장관의 재량권은 어디까지나 입법자가 설정한 한계 내에서만 인정되며 그 한계 위배 여부는 해당 법 조항의 목적 등을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반면 국적법 등 관계 법령을 해석해 보면 외국인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권리를 인정하기 어렵다.22) 무엇보다도 귀화 제도의 구성은 물론 귀화 허가 과정도 헌법상 적법절차의 원리나 기본권 보장 등에 의한 제한을 받는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바 없는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제도인 국적법상 귀화는 일반귀화, 간이귀화, 특별귀화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국적법 제5조에 규정되어 있는 일반귀화의 요건은 5년 이상 계속하여 대한민국에 주소가 있을 것, 영주자격을 갖고 있을 것, 민법상 성년일 것, 품행이 단정할 것, 자기 또는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에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할 능력,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기본소양, 귀화 허가로 인하여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해하지 않을 것의 일곱 가지이다.23) 이 중 일반귀화에 영주의 자격을 요하는 영주자격 전치주의는 2017년 국적법 개정으로 새로 도입된 것이다.24)
간이귀화는 두 유형이 있다. 국적법 제6조 제1항 유형은 부 또는 모가 한국 국민이었던 자(제1호), 부 또는 모가 한국에서 출생하고 본인도 한국에서 출생한 사람(제2호), 한국 민법상 성년의 나이에 한국 국민의 양자가 된 사람(제3호)에 적용된다. 이들은 3년 이상만 대한민국에 계속하여 주소가 있으면 되고, 영주 자격 요건을 갖출 필요가 없다. 동조 제2항은 한국 국민과 혼인한 외국인에게 적용된다. 즉 국민과 혼인 상태로 한국에 2년 이상 계속하여 주소가 있는 때(제1호), 국민인 배우자와 혼인 후 3년이 경과하였으며 혼인 상태로 한국에 1년 이상 계속하여 주소가 있는 때(제2호), 제1호·제2호의 기간은 채우지 못 했지만 국민인 배우자와 혼인 상태로 한국에 주소를 두고 있던 중 귀책사유 없이 혼인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고 제1호 또는 제2호의 잔여기간을 채운 사람으로서 법무부장관이 상당하다고 인정하는 때(제3호). 제1호·제2호의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였지만 국민인 배우자와의 혼인으로 출생한 미성년 자녀를 양육 중이거나 양육해야 하는 사람이 제1호 또는 제2호의 기간을 채운 경우로 법무부장관이 상당하다고 인정하는 때(제4호)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각 호에 정해진 기간 요건 외에 별도로 일반귀화의 5년 이상의 주소 요건을 충족할 필요가 없으며, 영주 자격 요건도 요구되지 않는다.
특별귀화의 경우 현재 대한민국에 주소가 있으면 되고, 영주 자격·민법상 성년 요건·생계 유지 능력 요건도 갖출 필요가 없다(제7조 제1항). 특별귀화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부 또는 모가 한국 국민인 사람(한국 민법상 성년이 된 후 국민에게 입양된 사람 제외, 제1호),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제2호), 우수인재로서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제3호)이다.
각 일반귀화, 간이귀화, 특별귀화의 요건을 갖춘 사람은 제4조에 따라 법무부장관의 심사를 거쳐 귀화 허가를 받게 되며, 귀화 허가를 받은 후 법무부장관 앞에서 국민선서를 하고 귀화증서를 수여 받음으로써 국적을 취득한다. 다만 국민선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한 바를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은 국민선서가 면제된다.
Ⅲ. 국적법 제14조의3에 의한 귀화자의 국적의 상실 또는 박탈
복수국적자의 국적 상실을 정하는 국적법 제14조의3은 2010년 복수국적 제도의 도입과 함께 입법되었다. 그러므로 이 제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복수국적 제도의 도입에 관하여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 한국 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복수국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복수국적자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법적·제도적 차원에서는 외국의 공직에 취임하거나 외국 선거에서 투표를 하는 등의 경우 자국의 국적을 상실하게 하는 등의 규제가 이루어졌다. 충성(allegiance, loyalty)은 복수국적을 방지하기 위하여 동원된 윤리적·사회적 규범이었다.25) 하지만 실제 복수국적자의 충성되지 못한 행위로 인하여 국가에 직접 위기를 초래하는 사례는 많지 않았고, 반대로 점차 인권 규범의 발달과 국제 정세 안정화의 영향으로 각국이 복수국적을 용인하는 폭이 점차 확대되었다. 송출국 입장에서는 복수국적을 허용함으로써 외국으로 유출된 국민들이 본국과의 유대를 유지하고 부가적으로 경제적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되었으며, 반대로 거주국은 복수국적을 통하여 귀화와 통합이 촉진될 것이라고 이해하게 된 것도 변화의 한 요인이다.26)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유럽평의회에서 1963년 채택한 ‘복수국적의 감소와 복수국적자의 병역의무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Reduction of Cases of Multiple Nationality and on Military Obligations in Cases of Multiple Nationality)’이 복수국적에 대해 규제중심적·부정적인 태도였던 것과 달리 1997년에 채택한 ‘국적에 관한 유럽 협약(European Convention on Nationality)’이 선천적 복수국적자 등이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밖에 외국 국적 취득자의 복수국적 허용 여부를 각국에 맡기는 등 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흐름을 반증한다.27)
이러한 추세 속에 한국에서 2010년 국적법 개정을 통하여 복수국적을 허용한 것은 외국으로 이주하는 국민 대다수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여 인구 유출이 상당하다는 위기감, 우수한 외국 인재 유치 필요성, 국민 인구 증가를 통한 병역 자원 확보 필요성, 동포와 결혼 이주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권익 신장 필요성 등을 배경으로 한다.28) 2010년 복수국적을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함으로써 출생에 의하여 복수국적을 취득하는 선천적 복수국적자 외에 대한민국 국적을 사후에 취득한 사람 중 일부도 복수국적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면 원칙적으로 종전의 국적을 포기하여야 하나 여기에 일정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다(국적법 제10조). 간이귀화 중 혼인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경우, 특별귀화 유형 중 특별공로자와 우수 외국인재에 해당하는 경우, 국적회복허가를 받은 사람 중 역시 특별공로자와 우수 외국인재에 해당하는 경우, 민법상 미성년자 시기에 외국인에 입양되어 외국 국적을 취득한 후 국적을 회복한 사람, 만65세 이후에 영주할 목적으로 입국하여 국적회복허가를 받은 사람, 본인의 뜻에도 불구하고 외국 법제로 인해 종전 국적을 포기할 의무 이행이 불가능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과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한국 국적을 포함하여 복수의 국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적법 제10조와 제13조에 의거 법무부장관에게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여야 한다. 이 서약은 복수국적자 지위를 인정 받기 위한 법적인 의무라고 볼 수 있다.29)
그러나 복수국적 제도에 대한 우려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입국과 체류 관리상의 어려움, 각 국적국에서 의무는 기피하고 권리만 행사하는 등 방법으로 악용할 가능성, 외교적 보호권 충돌 등 국제적 분쟁 발생의 우려 등을 복수국적 제도와 관련하여 발생 가능한 문제점으로 보았다.30) 첫 번째 문제의 경우 기술적인 사항으로서 출입국 및 체류 행정 관련 규정을 다듬는 방식으로 대처할 문제이다.31) 두 번째 문제 제기는 의무와 권리(기본권)는 교환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며 복지혜택은 국적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체류나 납세 등 다양한 기준에 의하여 주어진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정밀하지 못하다.32) 한국의 경우 특수한 의무로 남아 있는 병역을 제외하면, 의무 부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금은 국적보다는 해당 재산의 소재지나 개인의 거주지 등이 결정적 요인이다. 따라서 애초에 국적의 취득과 보유는 더 큰 의무를 지게 한다기보다는 입국의 자유나 참정권 등 권리 향유 측면의 문제이다.33) 마지막 문제인 국제 관계상의 분쟁 발생 가능성 역시 다소 추상적인 우려로서 냉전 등을 거쳐 안정된 현대의 국제 관계에서는 역시 복수국적자의 존재 그 자체가 국가 간 관계를 긴장시킬 가능성이 희박하다.34)
국적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정부는 복수국적 허용과 함께 제14조의3을 신설할 것을 제안하였다.35) 국적법 제14조의3은 국적 “상실”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국적 박탈에 해당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원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적 박탈에 대해서 몇 가지 지적이 있었다. 먼저 요건 면에서는 제2호의 “대한민국의 공공복리나 사회질서 유지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가 너무 모호하다는 점이 문제 되었다. 이에 대한 전문위원 검토의견은 그러한 행위 중에서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만 국적 박탈이 가능하도록 수정하자는 것이었으며, 제2호는 삭제하고 제1호만 국적 박탈의 사유로 입법하는 방안도 언급되었다.36) 이 부분은 결국 전문위원 검토의견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규정할 것을 요건으로 추가하여 현행법과 같이 입법되었다. 원안의 “공공복리” 부분도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삭제되었다.37) 그밖에 절차 면에서는 청문만 거치면 법무부장관이 귀화 허가 등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특히 제2호의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요건과 결합하여) 국적 박탈이라는 중차대한 법적 효과에 비추어 지나치게 간명하다는 지적이 있었다.38) 하지만 이 부분은 수정 없이 최종 입법되었다.
한편 이 조항에 관해서는 형평성 측면에서 주목해 볼 논의도 있었다. 우선은 이 조항이 도입된 배경에 관한 것이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법무부 관계자는 복수국적에 대하여 “정서”상 반감을 갖고 있는 여론이 상당하였고 그 중에는 국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복수국적자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반영하여 입안한 것이 제14조의3이라고 설명하였다. 단일 국적자인 국민이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국적을 박탈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하나, 복수국적을 이용하여 국가에 위해를 주었다면 국적 박탈이라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39) 다시 말해 복수국적이라는 사유를 같은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하여 국적 박탈이라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은 입법이었다.
형평성 측면에서 두 번째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국적 박탈에 대하여 혈통에 의한 예외를 둘지 여부였다. 본래 원안 제1항에는 “다만, 출생에 의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제외한다”는 현행법과 같은 예외 규정이 없었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출생에 의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자와 그렇지 아니한 반대의 경우를 구별하여 전자는 국적 박탈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같은 대한민국 국적자인데 태어날 때부터 국적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달리 취급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반대 견해가 있었다.40) 최종적으로 후천적으로 국적을 취득한 복수국적자에 대해서만 국적 박탈이 가능한 것으로, 즉 생래적 국적자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이는 다분히 혈연을 중시하는 정서에 기반한 판단으로 보인다.41)
이상과 같은 입법과정에서의 논의는 미국의 9·11 사건과 그 이후 유럽에서 있었던 테러 공격 후 서구권에서 복수국적자의 ‘충성심(loyalty)’를 문제 삼는 여론이 복수국적자의 국적 취소 내지는 박탈 논의와 결합하였던 것과는42) 결을 달리한다고 생각된다. 한국에서는 복수국적을 허용하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와 동시에 복수국적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반감을 우려하여 도입되었고 서방과 같은 소위 과격 이슬람 단체의 테러 공격에 의한 안보 우려와는 무관하였다. 나아가 혈연을 중시하는 정서에 기반하여 생래적 국적자에 대해서는 국적 박탈의 예외를 인정하였다.
국적법 제14조의3은 복수국적자가 “국가안보, 외교관계 및 국민경제 등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국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거나(제1항 제1호) “대한민국의 사회질서 유지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를 하여(제1항 제2호)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는 것이 “현저히 부적합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법무부장관이 대한민국 국적의 상실을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청문을 거쳐야 하며 복수국적자 중 출생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국민인 경우는 국적 상실 결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적법에서 국적의 ‘상실’을 정하는 것이 이 조항만은 아니다. 제10조 제1항과 제2항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일정한 기간 내에 외국 국적을 포기하여야 하고 또는 특정한 사유에 해당하는 사람은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해야 하는데, 기간 내에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도록 되어 있다(제10조 제3항). 여기서 국적의 상실은 본인이 국적의 취득에 수반되는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결과이다. 다음 제14조는 복수국적자가 외국 국적을 택하기 위하여 스스로 대한민국 국적으로부터 이탈하겠다는 신고를 함에 따라 발행하는 대한민국 국적의 상실에 관한 규정이다. 제14조의2에서는 복수국적자의 국적 선택 의무의 효과로 국적 선택 기간 내에 선택을 하지 않은 결과 대한민국 국적 상실을 정한다. 마지막 제15조는 외국 국적 취득의 효과로서 대한민국 국적 상실에 관한 것이다.
여타의 국적 상실에 관한 조항들은 국적 사무 그 자체에 관한 사유로 국적을 잃게 한다는 점에서 국적의 취득·상실 등과 무관한 행위에 의하여 국적을 잃게 하는 국적법 제14조의3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14조의3에서 정하는 국적의 ‘상실’은 국적에 관한 본인의 의사나 선택 가능성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른 국적 상실 관련 규정과 차이가 있다. 제10조의 국적 상실은 귀화 즉 본인의 의사에 의한 국적 취득에 수반되는 의무 불이행의 결과이며 제14조의2는 본인이 국적 선택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결과이다. 물론 당사자는 법률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만 선택을 할 수 있을 뿐이지만, 그 안에서는 법이 정한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14조는 국적을 선택하는 복수국적자가 스스로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하겠다는 뜻을 표시함으로써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는 사례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제14조의3에 해당하여 국적을 상실하는 경우 그는 국적의 득실에 관해서는 아무런 의사를 표시한 바가 없다.
그러므로 국적법 제14조의3이 국적의 “상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하나 이를 동법의 다른 조문에서 말하는 국적의 상실과 동일하게 지칭하기에는 난점이 있다. 이 제도의 입법 과정에서도 이 제도가 법문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국적의 “박탈”에 해당한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된 바 있다.43) 이를테면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국적을 잃기는 하나, 당사자가 국적에 관하여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국적 상실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 있었던 때에 해당하는 ‘반의지적 국적 상실’과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거나 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국적을 잃는 경우 중 본인이 이 결과를 피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 ‘국적 박탈’을 구별하는 독일 논의를 참조하더라도44) 이 제도는 국적법상 다른 국적 ‘상실’과는 성질상 구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하에서는 국적법 제14조의3에 의한 국적의 상실을 국적 박탈이라 지칭하기로 한다.
결국 국적법 제14조의3은 국적의 취득·상실과 무관한 행위에 대한 규범적 가치 판단의 결과로서 국적을 박탈하는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항의 적용 대상은 출생에 의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 외의 복수국적자이다. 귀화자 중에서는 혼인에 의하여 귀화를 한 사람 중 “그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2년 이상 계속하여 주소가 있는 사람”, “그 배우자와 혼인한 후 3년이 지나고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1년 이상 계속하여 주소가 있는 사람”(제6조 제2항 제1호와 제2호), 특별귀화자 중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 및 “과학·경제·문화·체육 등 특정 분야에서 매우 우수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제7조 제1항 제2호와 제3호)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2011년부터 2018년까지의 복수국적자 누계에 의할 때 출생에 의한 복수국적자 다음으로 복수국적자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집단이 국적법 제6조 제2항 제1호 및 제2호에 의한 혼인 귀화자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45)
국적법 제14조의3 제1항 제1호는 국익에 반하는 행위를, 제2호는 “대한민국의 사회질서 유지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를 국적 상실의 요건으로 한다. 제2호는 실제 사회질서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대통령령에 위임한다. 국적법 시행령 제18조의3 제2항에 따르면 이는 다시 “살인죄, 강간죄 등 법무부령46)으로 정하는 죄명으로 7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선고받아 그 형이 확정된 경우”를 의미한다. 법무부령으로 다시 위임된 내용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강력 범죄라고 여겨지는 살인이나 강간, 강도 등 죄 외에도 마약사범, 5명 이상이 공동으로 상습하여 절도·강도 등 죄를 범한 경우, 범죄단체 등의 구성과 활동, 부정식품 제조 등이 국적 상실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사회질서 유지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기본권 제한은 법률에 의할 것을 요구하는 법률유보의 원칙은 국적을 박탈하는 조치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이 원칙에는 명확성 원칙, 포괄위임금지의 원칙도 포함된다.47) 기본권 제한 입법은 명확하여야 한다는 명확성 원칙은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고, 당국의 자의적인 법해석과 법집행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법에 요구되는 명확성의 정도는 해당 법률·법조항의 성격이나 관련된 상황 등에 따라 다른데, 법관의 해석에 의해 의미가 구체화된다면 명확성 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본다.48) 일반적으로 형사법 영역 등 부담적 성격을 가지는 법규범에 명확성의 요구가 더욱 강화되며 시혜적이거나 수익적 성격의 법규범에 대해서는 명확성 원칙이 덜 엄격하게 적용된다.49)
여기서 문제가 되는 국적 박탈은 기본권에 대해 미치는 정도가 매우 큰 조치이다. 그 자체로 국적에 관한 기본권을 중대하게 제약할 뿐 아니라, 예를 들어 참정권의 경우에는 국적 박탈에 의하여 아예 향유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명확성 원칙의 요구 또한 그만큼 강화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국적법 제14조의3 제1항 각호에서 사용되는 ‘국익’, ‘사회질서’, ‘상당한 지장’ 개념은 해석자에 따라 매우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므로 이들 규정은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고 보아야 한다. 제2호의 위임을 받은 대통령령이 살인, 강간 등 법무부령이 정하는 죄로 7년 이상의 징역·금고를 받은 경우로 이를 역시 매우 넓게 정의하는 것 또한 법률 규정의 불명확성을 반증하는 예라고 지적된다.50)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은 법률 그 자체로부터 대통령령 등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하위법령에 위임할 것을 요청한다. 이 때 위임입법의 구체성·명확성 정도는 각 법률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며, 대체로 기본권을 직접 제한하거나 침해할 소지가 있는 법규에서는 구체성과 명확성의 요청이 강화된다.51)
국적 박탈은 기본권에 매우 중대한 제약을 가하는 조치이므로 이와 관련된 사항은 가급적 법률에서 직접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를 하위 법령에 위임하더라도 가능한 좁게 그 범위를 정하여 위임하여야 한다. 따라서 국적 박탈 사유는 국적법에서 가능한 직접 규정하는 것이 마땅하며, 위임을 하더라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로 명백하게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대안이 제시되기도 한다.52)
현행 국적법 제14조의3 제1항 제2호는 “대한민국의 사회질서 유지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대통령령에 위임한다. ‘상당한 지장’이 어느 정도 수준을 말하는지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무척 다를 것이며, 특히 ‘사회질서’는 넓게 해석·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53) 그러므로 ‘사회질서’를 사실상 유일한 실질적 판단 요소로 하여 그 밖의 내용을 대통령령에 위임하는 것은 포괄적인 위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54)
대통령령은 사회질서 유지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완전히 규정하지 않고 다시 “살인죄, 강간죄 등 법무부령으로 정하는 죄명으로 7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선고받아 그 형이 확정된 경우”라고 하여 법무부령에 위임한다. 대통령령의 내용으로부터 예측 가능한 것은 법무부령에 위임될 내용이 7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선고할 수 있는 비교적 중대한 범죄일 것이라는 점이 전부이다. 이 또한 위임입법의 한계를 넘은 것이라 볼 수 있다.55) 실제 법무부령이 정하는 범죄의 유형도 강도, 강간 등에서 마약사범이나 부정식품 제조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결국 법률이 포괄적으로 위임한 내용을 대통령령이 재차 포괄적으로 법무부령에 위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국적법 제14조의3을 보고 수범자가 예측하는 내용과 시행규칙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내용 사이의 거리는 매우 멀어질 수 밖에 없어 예측가능성 측면에서 문제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이나 명확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국적법 제14조의3 제1항에서 국적 박탈의 사유로 정하고 있는 행위는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제1호에서는 국가안보나 외교관계 뿐 아니라 “국민경제 등”에서도 대한민국의 국익에 반하는 행위가 국적 상실의 사유가 된다. 제2호와 그 하위법령에 의하면 상습 절도나 강도, 마약사범 등 다종다양한 범죄행위로 인하여 국적이 박탈될 가능성이 있다. 종합하면 국적 박탈 사유가 지나치게 넓지 않은가라는 문제점이 있다. 이는 다시 기본권 제한의 목적과 그 제한으로 인한 결과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비례성 원칙 위반의 문제, 헌법 제37조 제2항 위반의 문제가 된다.
역사적으로 국적 박탈은 특정 집단을 배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바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독일 기본법(Grundgesetz für die Bundesrepublik Deutschland, GG) 제16조 제1항에서 국적 박탈을 금하는 것은 나치 집권 시기에 이 제도가 인종주의적으로 남용되었던 역사와 밀접하다.56) 또 프랑스 비시정권에서 이루어진 국적 박탈 대상은 대부분 유대인이기도 하였다.57)
국적 박탈의 악용 가능성은 비례성 원칙에 의한 보다 면밀하고 엄격한 검토를 요청한다. 이 조항의 입법목적은 국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복수국적자의 국적을 박탈할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제도 도입에 의한 부작용을 방지하는 것,58) 복수국적에 대한 국민 정서상의 반감 반영하는 것이다59). 여기서 국민 정서상의 반감으로는 복수국적자는 그 자체로 국익에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정서일 수 있다.60) 추상적 국민 정서를 기본권 제한의 정당한 목적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행여 발생할지 모르는 복수국적자의 국익에 반하는 행위에 대한 대비책이라는 설명은 다소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국가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일정 부분 정당성을 인정할 가능성이 있다.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가정한다면 최악의 경우 그의 국민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은 가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경제에 반하는 행위라거나 마약 범죄·부정식품 제조·절도나 강도 등의 범죄는 해당 행위 자체의 심각성이나 죄질과는 별개로 국가 공동체의 직접적인 안위나 타국과의 관계 악화와 같은 사항과는 별 관계가 없다. 직접 내란죄나 외환죄, 여적죄 등과 같이 (특히 대외적 관계에서의) 국가 공동체의 안위와 관련된 사항만을 좁게 규정할 수 있음에도 지나치게 광범위한 사유로 인하여 국적이 상실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렇다면 국적법 제14조의3은 침해 최소성의 원칙을 만족시킨다고 볼 수 없다.
법익 균형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현재의 국제 질서에서는 복수국적이 곧 국가의 안위나 국제 관계에 미치는 위험이라는 것이 상당히 추상적이라는 지적을 생각해 보면, 추상적인 공익을 위하여 현행 국적법 조항처럼 광범위한 국적 상실 사유를 규정하는 것은 균형이 맞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61)
헌법 제11조의 평등의 원칙은 일반적으로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자의적으로 다르게,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자의적으로 같게 취급하는 것”의 금지라 설명된다.62) 국가의 입법은 물론 법 집행과 법 해석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불평등 대우를 금지한다.63) 평등원칙은 모든 국가기관을 구속하는 원칙인 만큼, 국적법의 해석·적용 뿐 아니라 국적법의 규율 내용에서도 평등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평등원칙을 위헌성 심사의 기준으로 삼을 때에는 기본적으로 상대적으로 완화된 심사척도인 자의금지의 원칙에 따라서 심사하여, 차별을 정당화하는 합리적인 이유 유무를 판단한다.64) 반면 평등원칙 위반 여부가 문제가 되는 때에도 헌법이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거나 차별 취급으로 관련 기본권에 중대한 제한이 초래된다면, 입법자의 입법형성권이 그만큼 좁아지므로 엄격한 심사척도인 비례성 원칙이 적용된다. 그 결과 입법 목적의 정당성과 차별 취급의 적합성, 차별 취급의 필요성(차별 효과의 최소침해성), 차별 취급의 비례성을 검토하게 된다.65)
국적법 제14조의3은 두 가지 차별 취급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하나는 이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 단일국적자와 적용을 받게 되는 복수국적자 사이의 차별 취급이다. 다른 하나는 후천적 국적 취득자와 출생에 의한 국적 취득자 사이의 차별 취급으로, 후자는 동조 제1항 단서에 의해 이 조항의 예외가 된다. 두 경우 모두 차별 취급에 의하여 국적 박탈이 적용되는 그룹과 그렇지 아니하는 그룹이 나뉘는 법적 효과가 생긴다. 국적이 박탈되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국적에 관한 기본권을 크게 제약 받으며, 외국인이 되는 결과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참정권, 각종 사회적 기본권 등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이러한 기본권을 (국민에 비하여) 제한된 범위에서만 누릴 수 있게 된다.66) 따라서 차별 취급으로 인한 결과 매우 포괄적인 범위의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고, 국적법 제14조의3이 담고 있는 두 가지 차별 모두 엄격한 심사기준에 의하여 판단해야 한다.
첫 번째 유형의 차별 취급은 국익에 반하는 등 행위를 하는 사람이 단일 국적자인지 복수 국적자인지를 기준으로 하여 후자에 대해서만 국적 박탈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생겨난다. 이 두 집단은 추가적으로 다른 국적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부차적인 성질에 의해서 구별될 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집단이다. 단일국적자는 국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면 그 행위의 불법성에 따라 형벌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 복수국적자는 국적의 수를 이유로 단일 국적자가 받는 제재에 더하여 국적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국적을 상실하게 되면 예컨대 해당 행위에 대한 형사 제재가 모두 종결된 후 그는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체류하기 위하여 별도의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하여 애쓰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한국을 떠나야 할 수 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누릴 수 없거나 제한된 범위에서만 보장된다고 이해되는 기본권을 누릴 수 없음은 물론, 한국에서 국적자로서 맺어온 여러 생활 관계가 와해될 수 있어 가족생활에 관한 권리 등이 심대하게 제약될 수 있다. 그의 행위가 위법하다면 그에 대한 법적 제재는 통상적인 형사상 제재 등으로 규율할 수 있음에도 복수 국적자라는 이유로 국적까지 박탈하는 것은 필요한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제재로, 복수 국적자가 국적을 이용하여 국익에 반하는 행위를 할지 모른다는 추상적 위험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제약하는 조치이므로 차별 취급의 필요성과 비례성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평가함이 타당하다.
두 번째 유형의 차별은 국적법 제14조의3 제1항 단서가 복수국적자 중에서도 출생에 의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국적 박탈을 할 수 없도록 예외를 둠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지적한 것처럼 이 단서 조항은 혈연을 중시하는 국민 정서를 의식하여 만들어진 것이므로67) 인종 내지는 혈통에 의한 차별에 해당한다. 혈통에 의한 국민의 복수국적자 지위를 더 두텁게 보호하자는 국민 정서는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헌법 체제에서 정당한 목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나아가 이러한 유형의 차별은 출생에 의한 국적자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달리 취급함으로써 이주자 집단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는 형식으로 입법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귀화자를 비롯한 이주자가 증가하고 그들의 2세 등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사회로 변화해 나아가고 있는 현재 입법에서 드러나는 차별적 인식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혈연을 중시하는 국민 정서를 보호한다는 이익과 국민으로서의 지위 및 그에 수반되는 기본권 제약을 비교해 보면 양자 사이에는 균형 관계가 성립하기도 어렵다. 나아가 엄격한 심사 기준을 적용할 필요도 없이, 완화된 척도인 자의금지의 원칙을 적용하여 보더라도 마찬가지로 이는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한국 국적 취득 사유가 출생이건 그 외의 사유이건 복수국적자이며 따라서 당장 한국 국적이 없어진다 하여 무국적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가 없고, 혈통에 따라 국민으로서의 지위에 우열을 두는 것에 지나지 않아 합리적 이유 있는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68)
미국은 이민 및 국적법(the 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69) 제1481조에서 국적의 상실(loss)를 규정한다. 구체적으로는 (ⅰ) (18세 이상의 국민이) 다른 국가에의 귀화, (ⅱ) (18세 이상의 국민이) 외국 또는 그 정치적 일부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충성(allegiance)을 확인·선언, (ⅲ) (a) 미국에 적대하는 국가의 군대에 입대·복무 또는 (b) 외국의 군대에 장교 또는 부사관으로 입대·복무 (ⅳ) (18세 이후에) 외국 또는 그 정치적 일부의 정부의 어떠한 직위나 고용 관계상의 의무를 수락·수행하는 경우로서 그가 해당 국가의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취득하는 때, 혹은 그러한 직위나 고용 관계상의 의무에 충성의 서약·확인·선언이 필요한 때, (ⅴ) 재외공관에서 공식적으로 국적을 포기(renunciation), (ⅵ) 전시에 미국 내에서 국가 방위와 충돌하지 않는 한에서의 공식적인 국적 포기 (ⅶ) 미국에 대한 반역 또는 무력으로 미국을 전복시키거나 미국에 항전하는 행위를 하여, 미국 형법(Code Title18 Crimes and Criminal Procedure) 제2383조(반란, Rebellion or insurrection)의 죄 또는 그 음모, 혹은 제2384조(내란 음모, Seditious conspiracy)나 제2385조(정부 전복 옹호, Advocating overthrow of Government) 위반의 행위로 군사법원이나 관할권 있는 법원에 의하여 유죄의 판결을 받은 경우가 제1481조에서 정하는 국적 상실의 사유에 해당하며, 미국 국적을 포기하려는 의도를 갖고 이상의 행위를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에 미국 국적을 상실한다. 행위의 자발성은 추정되나 반대의 사실이 입증하여 이를 번복할 수 있다.
이 중 한국 국적법 제14조의3과 비교할만한 것은 일곱 번째 사유이다. 여기서 미국 법이 한국과 다른 점은 행위의 태양(“반역 또는 무력으로 미국을 전복시키거나 미국에 항전하는 행위”)과 그로 인한 명확한 법적 결과(형법 제2383조 또는 제2385조에 의한 유죄의 판결)를 국적 상실의 요건으로 직접 법률에 명시하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과 달리 미국의 이민 및 국적법에서 정하는 국적 상실의 대상은 출생에 의하여 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과 귀화에 의하여 취득한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캐나다에서는 시민권법(the Citizenship Act)에서 국적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70) 현행법에는 한국 국적법 제14조의3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다. 시민권 취소(revocation)에 관한 제10조 중 제2항에 관련 규정이 있었으나 2017년 법 개정으로 이 내용이 사라졌다. 이 조항은 형법(the Criminal Code), 국가방위법(the National Defence Act) 등에서 내란과 외환·간첩 등의 죄로 종신형을 받거나 테러 공격으로 5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의 시민권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만 당시 제10.4조에서 이 조항에 의한 시민권 취소로 해당인이 무국적 상태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함을 정하였기 때문에 이 제도는 복수국적자에게만 적용되었다.
지금은 폐지된 캐나다 시민권법 제10조 제2항은 복수국적자에게 적대적인 여론을 반영하였던 9·11 이후 서구의 대테러 정책과 같은 맥락에서 도입된 것이다. 즉 실제 테러 범죄자가 자국 내에서 태어나 자랐는지 여부 등과 무관히 복수국적자의 ‘충성심(loyalty)’을 문제 삼는 여론이 생겨났고 복수국적자의 국적을 취소하거나 박탈하는 조치가 논의·도입되는 사례가 있었다.71) 이렇게 입법된 캐나다 시민권법 제10조 제2항은 시행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트뤼도 행정부 출범 후인 2017년에 법 개정으로 삭제되었다.72) 이 조항이 폐지됨에 따라 반역, 테러 등으로 시민권이 취소되는 일은 없어졌으며, 국내 사법부에 의한 재판을 받게 된다.73)
2017년 개정 전 캐나다법의 내용은 한국에서 별개의 조항으로 다루고 있는 (국익에 반하는 행위 등에 의한) 국적 박탈과 (국적 취득 과정상에서의 불법으로 인한) 귀화 등의 취소를 하나의 범주 즉 시민권의 취소(revocation)라는 범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국적법과 달리 실제 해당 범죄로 인하여 종신형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유죄의 판결을 받을 것을 요건으로 직접 법률에서 규정하였다.
국적의 박탈과 관련하여 유럽에서의 경향은 인권 보장을 위하여 자의적인 국적 박탈을 금지하고 무국적자 발생을 방지하고자 한다.74) 독일은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Grundgesetz für die Bundesrepublik Deutschland, GG) 제16조 제1항에서 이미 독일인의 국적은 박탈될(entzogen) 수 없으며,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국적의 상실(Verlust)은 법률에 근거가 있을 때에만 그가 무국적이 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가능하다고 정한다. 독일 국적법(Staatsangehörigkeitsgesetz, StAG)75) 역시 기본법의 틀 내에서 국적에 관한 사항을 정한다. 제17조 제1항은 국적을 잃게 되는 사유를 7가지로 나눈다. 이탈(Entlassung), 외국 국적 취득, 포기(Verzicht), 외국인에게 입양, 외국의 군대 혹은 그와 비견할만한 무장단체에의 가입 및 외국에 있는 테러 단체의 교전 행위에 실제 참여하는 경우, (국적 선택 의무에 의한) 선서, 위법한 행정행위의 취소(Rücknahme eines rechtswidrigen Verwaltungsaktes)가 그것이다.
이 중 외국의 군대 혹은 무장단체에의 가입 및 외국의 테러 단체 교전 행위에 참여하는 경우를 한국 국적법의 제14조의3과 비교할 수 있다. 독일 국적법 제28조에서는 이 경우를 상술하여, (ⅰ) 연방 국방부 또는 그 지정을 받은 기관의 동의 없이 자발적 복무를 근거로 그가 국적을 갖는 외국의 군대 혹은 그와 비견할만한 무장단체에 가입하거나76) (ⅱ) 외국에 있는 테러 단체의 교전 행위에 실제 참여하는 때에 독일 국적을 상실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특히 후자가 한국 국적법상의 국적 박탈에 유사할 것이다. 독일 국적법 제28조에서는 해당인이 무국적자가 되는 때는 국적 상실에서 제외하므로 이 조항은 복수국적자에게 적용될 것이다. 또한 제28조는 해당인이 미성년자인 때에도 국적 상실의 예외가 됨을 규정한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법제와 달리 실제 어떠한 행위에 의한 유죄 판결을 법적 요건으로 정하지는 않지만, 테러 단체의 교전 행위에 실제 참여한다는 매우 좁은 행위 유형으로 국적의 상실 사유를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법과 다르다.
Ⅳ. 국적법 제21조에 의한 귀화자의 국적 취소
국적법 제21조는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귀화 허가, 국적 회복 허가, 또는 국적 보유 판정을 받은 경우 이를 취소할 수 있는 법무부장관의 권한을 정하고 있다.77) 그 절차, 그리고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 외에 귀화 허가 등을 취소하는 기준 등은 하위법령에 위임한다. 국적법 시행령에서는 당사자의 소재를 알 수 없는 때, 정당한 이유 없이 소명자료 제출 요구에 2회 이상 불응한 때를 제외하고는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제27조). 이 규정이 도입된 것은 2008년 국적법 개정 때이다. 그 전에는 허위의 서류를 제출하거나 위장결혼을 하는 등의 부정한 방법을 써서 국적을 취득하더라도, 그 허가 내지는 판정을 취소할 수 있게 하는 국적법상의 권한 규정이 없었다. 그 결과 법무부 예규에 근거하여 귀화 허가를 취소하였다.78) 당사자의 법적 지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처분의 근거를 법무부 예규에 두는 관행에 제동을 걸어 그 근거를 직접 법률에 마련하는 것이 해당 입법의 이유였다.79) 앞에서 살펴본 국적법 제14조의3이 복수국적자가 국익에 반하는 행위 등을 하는 경우에 국적을 박탈하는 것과 달리 제21조의 귀화 허가 등의 취소 제도는 복수국적자에 그 대상이 한정되지 아니한다.
국적 취소는 국적에 관한 기본권과 그 밖에 국적을 전제로 하는 기본권의 향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상 하위 법령에 위임하더라도 가능한 좁게 그 범위를 정하여 위임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제21조 제1항의 문언만으로는 일체의 부정한 방법이 그 경중을 불문하고 국적 취소 사유가 될 수 있으며 취소의 구체적인 기준은 제2항에서 모두 대통령령으로 위임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령으로 정하기에 따라서는 경미한 사안에 대한 거짓만 있어도 법무부장관의 재량 행사에 따라서는 귀화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거짓·부정한 방법이 같은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귀화 신청인이 허위의 정보를 담은 서류를 제출하였으나 고의성이 없었던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그가 제출한 다른 서류로부터 진실한 정보를 충분히 알 수 있어 국적 행정의 적정성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80) 물론 시행령은 제27조 제1항에서 신분 관계 서류의 위·변조 등으로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을 것 등으로 귀화 허가 등의 취소 기준을 상당히 자세하게 구체화한다.81) 하지만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의 의의에 비추어 볼 때, 일체의 부정한 방법이 아닌 ‘귀화 허가 등 결정에 영향을 주었던’ 경우라거나 관련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경우 등으로 그 행위의 범위를 법률에서 어느 정도 구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적법 제21조는 예를 들어 증명서류를 위·변조하는 등 부정한 방법을 통하여 얻은 귀화 허가 등을 취소할 수 있게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귀화 신청인의 진실성을 담보하는 한편으로 국적 취득의 위법성을 해소함으로써 귀화 제도 등 국적 및 출입국 관련 행정의 적법성과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82) 국민으로서의 지위를 설정하는 귀화 허가 등 행위는 국가 공동체 전체와 국민으로서의 지위를 설정 받는 개인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위법성을 해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공익상 목적이며, 국적 취득 과정상에 위법한 행위가 있을 경우 그 허가가 취소될 수 있음을 규정하는 것은 관련 행정의 적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다. 당사자가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그로 인한 결과(귀화 허가 등)의 위법성을 해소하는 이 제도는 그 근거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으며, 신뢰 보호의 이익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83) 그렇지만 비례성 원칙상 귀화 허가를 취소할 수 있는 기간 제한, 취소 사유 구체화 가능성, 인도적 관점의 반영 가능성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국적법 제21조에 귀화 허가 등을 취소할 수 있는 기간의 제한이 없어, 부정한 방법으로 귀화 허가 등을 받은 경우 이는 언제까지나 취소할 수 있는 행위가 되어 당사자의 법적 지위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국적 관련 행정의 위법성 시정이라는 요청이 큰 데다 귀화허가의 취소에 관하여 법무부장관에게 일정한 재량이 있으므로 귀화 허가로부터 오랜 시간이 경과하여 이를 취소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경우 이를 참작할 수 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귀화자 본인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귀화 허가의 취소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고, 귀화 허가 취소 후에도 다시금 귀화의 요건을 갖추어 귀화 허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침해 최소성의 원칙이 충족된다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경우 국적 행정의 적법성을 확보한다는 공익이 국적 상실로 인한 불이익보다 크다고 하여 법익 균형성의 원칙도 충족되는 것으로 설시하였다.84)
아래에서 보겠지만 독일은 법에서 10년이라는 취소 기간을 설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8년도에 이 부분을 개정하자는 안이 발의되어 5년이 경과한 경우 귀화 등을 취소할 수 없도록 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미 귀화 후 생활 관계를 상당한 정도로 형성한 후 이를 취소하는 것은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취지였다.85) 원칙적으로는 스스로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해당인이 갖는 신뢰의 이익이나 생활관계의 안정성에 관한 이익이 다소간 줄어든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하여 무한정 귀화 허가를 취소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이 옳겠는가는 재고해 보아야 한다. 범죄에 대해서 공소시효 제도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여 귀화 허가를 얻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국민으로서 생활하면서 법적·사실적 관계를 형성하고 그와 가족들이 공동체에 통합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86) 형사소송에서 공소시효를 두고 있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증거가 변질·소실할 우려가 있고, 범죄로 인한 악영향이 회복되어 처벌의 필요성이나 요구가 감소할 수 있으며, 범죄인이 장기간 고통을 받았을 가능성과 국가가 범죄를 수사하여 소추할 의무를 태만히 한 책임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87) 귀화에서의 부정한 방법과 형사법상의 범죄, 귀화 취소와 형벌이 같은 것은 아니나 부정(不正)과 이에 대한 제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므로 귀화 취소에도 비슷한 기간의 제한을 두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 예컨대 비인도적 범죄를 숨긴 경우와 같이 일정한 예외를 둔다면 시간의 경과로 치유하거나 보완될 수 없는 위법과 그렇지 않은 위법에 대한 취급을 달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귀화 허가 취소로 인한 국적 상실의 범위를 축소하고 공사익 사이에서 더욱 세심한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국적법 제21조의 귀화 허가 등의 취소 조항에는 그 취소 사유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만 간략하게 유형화되어 있다. 이 역시 더욱 구체화함으로써 국적을 취소할만한 위법성과 그에 이르지 아니하는 정도의 위법성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대통령령에서 규율하고 있는 것처럼 국적취득 관계 서류에 의한 유죄 판결 확정 등 사유를 직접 법에서 규정하거나,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귀화 허가 등을 받을 수 없었을 경우’ 등으로 좁히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하여 귀화 허가의 취소 사유가 되는 위법성 정도를 높게 설정함으로써 기본권 제한을 최소화하고 공익과 기본권 사이의 형량을 더욱 정치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점에 대한 개정안이 발의되어 귀화 허가 등의 취소 사유를 증명서류 위조 등에 의한 유죄 판결 확정, 귀화 허가 등의 원인 되는 법률관계에 대한 무효나 취소의 재판 확정, 기타 중대한 흠이 있는 신청으로 제한하고자 한 일이 있다.88) 이 개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인도적 견지에서 국적법 제21조가 무국적자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귀화 허가의 취소와 함께 국적법 제21조에 규정되어 있는 국적회복 허가의 취소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청구인은 국적회복 허가의 취소로 무국적이 될 위험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본인이 스스로 불법적인 방법을 통하여 국적취득을 시도했기 때문에 국적 유지에 대한 신뢰 보호의 필요성이 크지 않으며 별도의 체류 허가를 받아서 대한민국에 계속 체류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주장을 배척하였다.89) 귀화 허가의 경우도 부정한 방법을 통한 국적 취득 과정에 의하여 당사자의 신뢰 보호의 이익은 어느 정도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국적자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만으로 당연히 귀화 허가 취소 사유에서 배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는 또한 사실상 복수국적자만 귀화 허가 등의 취소 대상이 되게 하여 또 다른 차별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귀화 허가를 취소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90)
현재 국적업무처리지침에서는 국적 취득 후 5년 이상이 경과한 사람으로서 품행단정·(자신 또는 가족에 의한) 생계유지능력·국민의 기본소양을 갖춘 때에는 대한민국 국민과의 혼인관계에서 출생한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경우 등 일정한 경우 국적을 취소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정한다.91) 다만 이는 법무부의 지침에 불과하며 한정된 사유만을 열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귀화 허가 등을 취소할 법무부장관의 재량을 행사할 때 인도적 사유에 의한 예외를 둘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국적 행정의 적법성 확보라는 공익의 관철에 의하여 귀화 당사자나 그 가족 등의 기본권이 더 크게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장치를 법률 차원에서 마련하는 것이 법익 간 비례성 측면에서 더욱 바람직하다.
미국 이민 및 국적법 제1451조는 귀화의 취소(revocation)에 관한 조항이다. 귀화 승인과 귀화 증서를 위법하게 획득하거나, 중요한 사실(material fact)을 은폐함으로써 획득하거나 고의로 허위의 진술을 하여 획득한 경우가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한국 국적법 제21조와 유사하지만 한국과 달리 검사에 의하여 법원에서 절차가 진행되며, 취소 사유가 ‘위법’, ‘중요한 사실’ 등 요소에 의해 조금 더 구체화되어 있다.
캐나다의 경우 시민권법 제10조가 시민권의 취소(revocation)를 규정하여 한국 국적법 제21조에 해당하는 내용을 다룬다. 이에 따라 시민권 취득 과정이 허위 진술(false representation), 사기(fraud), 중요한 사실을 고의로 은폐(knowingly concealing material circumstances)함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면 그의 시민권이 취소될 수 있다(제10조 제1항). 이에 의하여 시민권이 취소되었다면 그는 10년간은 다시 시민권을 취득할 수 없다(제22조 제1항 (f)호). 한국의 경우 귀화 등의 취소 후 다시 국적을 취득하는 데 특별한 제한을 규정하지 아니하는 점과 차이가 있으며 역시 취소 사유가 조금 더 구체화되어 있다.
독일 국적법 제17조 제1항에서 정하는 국적 상실의 사유 중 제7호 위법한 행정행위의 취소(Rücknahme eines rechtswidrigen Verwaltungsaktes)가 한국 국적법 제21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독일 국적법 제17조 제1항 제7호, 즉 위법한 행정행위의 취소에 의한 국적 상실은 한국 국적법 제21조에 의한 귀화허가 등의 취소와 견주어 볼 수 있다. 독일 국적법은 제35조에서 이 사유에 관하여 상술한다. 제35조 제1항은 악의적인(arglistig) 기망(Täuschung), 위협(Drohung), 뇌물 공여, 또는 고의로 부정확·불완전한 내용의 본질적으로 중요한 자료 제출을 통하여서 위법한 귀화(Einbürgerung) 또는 위법한 독일 국적 소지 허가가 이루어진 때 이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제2항은 취소로 인하여 무국적자가 되더라도 제1항의 취소 조항이 적용된다는 원칙을 밝힌다. 다만 제3항에서 귀화 또는 국적 소지 허가 공표 후 10년까지만 이 위법한 행정행위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취소의 사유도 ‘악의’, ‘위협’이나 뇌물, ‘고의’, ‘본질적으로 중요한 자료’ 등으로 상당히 제한적으로 구체화되어 있다는 점을 참고할 수 있다.
Ⅴ. 결론과 제언
귀화자가 취득한 대한민국 국적을 다시 박탈 또는 취소할 수 있는 제도를 살펴보았다. 이들 제도는 각각 헌법적 측면에서 문제를 갖고 있다. 국적법 제14조의3에서 정하는 국적 박탈 제도는 법률유보의 원칙, 비례성 원칙, 평등원칙에 반하는 내용을 갖고 있으며 제21조에서 정하는 귀화 허가의 취소는 법률 유보의 원칙과 비례성 원칙에 비추어 역시 개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적법 제14조의3은 궁극적으로는 캐나다의 입법례처럼 폐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같은 행위에 대하여 복수국적자라는 이유만으로 국적 박탈이 가능하다는 평등 원칙상 문제점은 입법 과정에서도 지적되었으며, 단일국적자와 마찬가지로 행위에 상응하는 형법상 제재를 활용하면 될 일이다. 이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생래적 국민은 국적 박탈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차별이기 때문에 역시 삭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외국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제14조의3 제1항 제1호의 국익에 반하는 행위는 특정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을 것 등으로 법률에서 직접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이 법률유보의 원칙과 비례성의 원칙 측면에서 타당하며, 국적 박탈이라는 제재의 중대성에 비추어 제2호의 사회질서 유지에 지장을 주는 행위는 국적 박탈 사유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적법 제21조도 독일의 예를 참조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귀화 허가 등의 취소 기한을 한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예컨대 비인도적 범죄의 전력에 대한 거짓 등 일정한 예외를 두어 시간의 경과로 치유하거나 보완될 수 없는 위법과 그렇지 않은 위법에 대한 취급을 달리하여 전자에 대해서는 국적의 계속적 보유를 보장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또한 법에서 취소 사유를 더욱 구체화, 명확화하여 일체의 부정한 방법이 아닌 귀화 등의 취소가 정당화될만한 위법이 인정되는 경우로 한정함이 비례성 원칙에 비추어 타당하다. 예컨대 독일처럼 악의적인 거짓의 사용이나, 위협, 뇌물, 본질적으로 중요한 내용이 부정확할 것 등의 개념 요소를 사용하여 행위 태양을 더욱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귀화 허가 등을 받을 수 없었을 경우’나 ‘해당 행위로 유죄의 판결을 받았을 경우’처럼 직접 그 위법성 정도를 법률에서 높이 설정할 수 있다.
국적의 박탈과 부정한 방법에 의한 귀화 허가 등의 취소는 법적인 의미는 다르다고 할 수 있으나 귀화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다시 한국 국적을 잃게 될 수 있다는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현행 국적법처럼 국적이 박탈되고 귀화 허가가 취소될 수 있는 경우가 폭넓게 규정되어 있다면, 귀화자로 하여금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다시 배제될 수 있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 특히 국적 박탈 제도에서 태어날 때부터 국민인 사람과의 차별은 귀화자를 마치 본래의 국민보다 열등한 지위에 있는 또 다른 지위의 국민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제도의 문제는 다시 귀화자로 하여금 형식적으로는 국적을 취득한 국민이나 어느 면에서는 언제든 다시 이방인이 될 수 있는 불완전한 국민으로서 느끼게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사회 공동체에의 귀속감과 정체성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 궁극적으로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 그러므로 귀화라는 제도를 통하여 일정한 범위의 외국인을 국민으로 받아들이기를 선택한 이상 국적 박탈과 귀화 취소는 가능한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허용해야 하며 자의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시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