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69조(자기낙태죄) 등에 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였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을 통해 “입법자는 ‘결정가능기간’, ‘사회적·경제적 사유’, ‘상담요건과 숙려기간’ 등에 관하여 입법재량이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절차적 요건을 부과할 것인지에 관하여 결정한 후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률을 개정하라”고 판시하였다. 낙태죄 관련 법률들의 개정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가 되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현행법과 외국 입법례·판례 등을 구체적으로 고찰하였다. 향후 개정논의에 있어서는 배아의 본질과 국제적 흐름을 충분히 검토하여, 합리적인 법체계가 수립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배아의 법적지위와 관련된 내용은 민법, 생명윤리법, 형법, 모자보건법 등에 다양하게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개념과 내용은 모두 상이하다. 그 이유는 1953년에 형법, 1958년에 민법, 1973년에 모자보건법이 각각 제정되어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는 반면, 생명윤리법은 2004년에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50여년의 시간동안 생명과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고, 생명의 본질도 많이 밝혀냈다. 하지만 50여년 전에 제정된 형법과 민법 등은 첨단과학적 상황을 전혀 상정하지 못했기에, 현대에 와서는 그 시간만큼의 괴리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수정된 배아의 본질에 관하여, 첨단과학에 근거하여 이론적 검토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합리적인 법체계가 확립될 수 있도록 폭넓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헌법재판소는 배아의 법적지위와 관련하여 4차례의 결정을 하였다. 2008년에는 ‘민법’, 2010년에는 ‘생명윤리법’, 2012년과 2019년에는 ‘형법과 모자보건법’의 관련규정에 관하여 각각 위헌여부를 판단하였다. 하지만, ‘태아는 독립된 생명권의 주체이다’라는 대전제만 계속 유지될 뿐 일관된 체계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배아의 생명권과 낙태죄를 둘러싼 논쟁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세계 주요국들 역시 우리와 유사한 혼란과 갈등을 거치면서 그들만의 적합한 법체계를 정립해가고 있다. 2019년 낙태죄 위헌법률심판을 앞두고 비교법적 측면의 검토가 많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근거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내용들이 수없이 회자되곤 하였다. 향후 주요 국가들의 법률과 국제적인 흐름을 면밀히 검토하여 법률의 개정논의에서 합리적인 해결방법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상황들을 전제로, 본 논문에서는 배아의 법적지위에 관한 이론적 검토와 법체계 구축을 위하여, 관련 법률과 판례들을 비교법적으로 검토하고 고찰하도록 한다. 제2장에서는 국내의 법률과 판례에 관하여 검토한다. 민법상 권리능력과 태아의 지위, 형법상 낙태죄, 모자보건법상 낙태허용사유 등을 차례로 검토하고, 배아의 본질을 고려한 개정의견을 제시하도록 한다. 또한 2008년, 2010년 2012년, 2019년에 있었던 헌법재판소 결정과 각각의 결정에서 드러난 ‘배아의 법적지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입장’을 정리한다. 제3장에서는 우리와 가장 유사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형법과 모체보호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특히, 입법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 법률과의 차이점을 검토한 후 이를 통해 우리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에서의 시사점을 고찰하도록 한다. 제4장에서는 독일의 형법과 임신갈등법, 그리고 판례를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독일은 특히 통일 직후에 낙태죄와 형법에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고 그러던 중에 임신갈등법이 제정되었다. 이러한 구체적 상황과 관련내용을 검토하고 우리나라 법률 개정에서 특히 참고해야할 사항들을 정리하도록 한다. 제5장에서는 우리와는 상이한 법체계를 취하면서도 최근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판례와 최근의 경향에 관하여 검토한다. 미국은 1973년 Roe v. Wade 사건이 낙태허용의 전환점이 되었으나, 이후 그 취지와 상반된 판례들도 계속 이어졌다. 또한 최근에는 오히려 배아의 생명권을 수호하려는 새로운 입법과 활동이 전개되기도 한다. 미국에서의 이러한 흐름을 검토하고 우리나라의 법개정에 주는 시사점을 고찰하도록 한다. 제6장에서는 결론으로서 본 논문에서 검토한 입법례와 판례들을 정리하고, 배아의 법적지위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법체계와 관련한 입법론을 제시한다. 특히,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낙태죄 개정과 관련하여, 규범조화적인 입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들을 검토하여 사견으로 제시하도록 한다.
Ⅱ. 국내의 법률과 판례
우리 민법 제3조는 “사람은 생존하는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명시하여 권리의 주체로서의 사람(人)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98조는 “본법에서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고 규정하여 권리의 객체인 물건을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민법은 권리의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을 취하고 있다. 다만, 태아(胎兒)의 경우에는 사람(人)은 아니지만, 제한적으로나마 권리주체성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배아 등 모든 미출생 생명의 법적지위에 관한 논의는 민법에 규정된 태아와 비교하면서 검토되어야 한다.1)
민법상 규정된 미출생 생명은 태아가 유일하다. 따라서 체외수정란이나 체내 미착상 수정란 등이 태아로서의 법적지위를 가질 수 없다면, 민법 제98조의 ‘물건(物件)’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임산부의 체내에 존재하는 태아가 전부였으나, 현재는 첨단과학의 영향으로 다양한 형태의 미출생 생명이 존재하고 있다. 체내에도 ‘착상된 수정란’과 ‘미착상 수정란’이 있으며, 체외수정란 중에는 ‘원시선이 발생한 수정란’과 ‘원시선이 발생하지 않은 수정란’이 있다. 또한 수정 후 4∼5개월에 체외로 적출된 ‘초미숙아’도 있다. 이렇게 과거와는 달리 다양한 미출생 생명이 존재하므로, 생명권의 주체이며 제한적으로나마 권리능력을 가지는 ‘태아(胎兒)’와, 권리객체인 ‘물건(物件)’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논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2)
‘착상시설’은 ‘태아’로서의 실체를 가지는 것은 수정란이 모체에 착상한 때부터라는 입장이다.3) 따라서 체외수정란이나 체내의 미착상 수정란은 태아로서의 지위를 갖지 못한다. 그 논거로는 체외에서 수정한 배아를 활용한 체외수정의 성공률이 현재도 높지 못하다는 점,4) 현대 과학기술로는 체외수정란이 냉동보관되면 착상되기까지의 시간이 무한정 길어질 수 있다는 점5) 등을 들고 있다.6)
‘수정시설’은 일단 수정된 이후에는 착상 전이라도 인간생명으로 확정되며, 권리의 주체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견해이다.7) 한 생명체의 본질과 동일성의 근원은 ‘수정시’에 형성된 유전자로 확정되므로, 수정 이후의 세포분열과 착상, 출생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중에서 어느 시점을 임의로 구분하여 인간생명의 시작을 논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생명의 본질은 수정시에 이미 확정되었기에, 수정란과 출생자도 그 본질은 동일하며, 태아의 시기(始期)도 당연히 ‘수정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8) ‘수정시설’을 따를 경우, 의학·생명공학계에서 체외배아의 파괴를 전제로 진행하던 임상시험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게 된다.9) ‘수정 후 14일 설’은 냉동배아나 복제배아 등 체외수정란을 연구와 실험에 활용하려는 과학계에서는 특히 강조하고 있다. 인간생명체라고 하기 위해서는 원시선(primitive streak)이 나타나는 수정 후 14일 이후라야 한다고 주장이다. 영국 「인간의 수정과 발생에 관한 법(HFEA)」는 제3조에서 원시선이 나타나는 14일 이후에는 배아의 활용에 관한 허가를 받을 수 없다고 명시하여, 이 시기를 ‘인간생명체’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17조도 잔여배아의 연구와 활용시기를 ‘원시선’이 나타나기 이전으로 명시하고 있다. 과학적 측면에서는 연구의 실효성과 관련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분화력 있는 배아줄기세포’는 원시선이 발생하지 않은 수정란에서만 추출할 수 있다. 따라서 수정 후 14일 이전의 배아는 연구와 실험에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생명성’이 부정되어야 하지만, 원시선이 발생한 수정 후 14일 이후에는 연구와 실험의 효용성이 없기에 ‘생명성’을 인정하고 연구와 실험을 금지하여도 아무런 지장이 없게 된다.
태아는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母)와는 별개의 생명체이다.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헌법재판소도 결정을 통해서 이러한 입장을 여러 차례 분명히 밝혔다.10) 하지만, 민법상 권리능력의 인정과 관련해서는 보호방법과 정도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 보호주의’는 모든 법률관계에 있어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입법이다. 구체적으로 2가지가 있다. 첫째는 ‘모든 법률관계’에서 태아를 출생한 것으로 보고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스위스 민법 제31조 제2항과 이탈리아 민법 제1조 제2항이 이러한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둘째는 ‘태아에게 이익이 되는 모든 법률관계’에서 태아를 출생자와 동일하게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로마법과 중화민국(대만) 민법 제7조가 취하는 입장이다.11) 특히 스위스 민법 제31조 제2항은 “태아는 살아서 출생할 것을 유보하여 출생 전에 권리능력이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스위스에서 태아는 살아서 출생할 것을 조건으로 자연인으로서의 권리를 갖게 된다.12)
‘개별적 보호주의’는 태아의 보호에 꼭 필요한 법률관계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열거하여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입법방식이다. 개별적 보호주의의 저변에는 ‘출생한 자’만이 권리능력을 갖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는 취지가 있다. 이 방식은 적용범위가 명료하다는 장점은 있으나, 보호범위가 협소하여 태아의 보호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우리 민법을 비롯하여, 독일 민법, 프랑스민법, 일본 민법이 개별적 보호주의를 취하고 있다.13)
생명은 수정 이후에 분할, 착상, 분리, 출산 등의 과정을 거치며 수정 후 14일에는 원시선이 발생한다. 생명의 시기(始期)와 관련해서는 수정시, 착상시, 원시선 발생시 등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착상이나 원시선 등은 수정 이후의 배아가 거쳐가는 ‘일련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현대 생명과학은 체외수정을 보편화시켰으며, 인공자궁 등을 통하여 수정과 그 이후의 모든 과정이 체외에서 이루어지도록 기술적으로 대체해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한다면, ‘유전자’가 확정되고 ‘발육(세포분열)’을 시작하는 수정시를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민법상 유일한 미출생 생명인 ‘태아’의 시기(始期)도 인간생명의 시기(始期)인 ‘수정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14)
입법적으로는 스위스나 이탈리아처럼, 모든 법률관계에서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일반적 보호주의’로의 전환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태아가 출생자와 동일한 권리능력을 가지려면 민법 제3조를 “사람은 수정(受精)된 때로부터, 생존하는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로 개정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다만, 민법상의 이러한 논의는 일반사법의 입장에서 원칙을 정립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현재 허용중인 ‘체외수정’이나 ‘제한적 배아 연구’ 등은 다시 특별법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원칙의 정립은 예외적 허용범위를 명확히 하고, 인간존엄성과 법적안정성을 공고히 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15)
낙태죄에 관해서는 형법 제정 당시부터 많은 논쟁이 있었다. 법사위의 ‘낙태죄 존치안’이 표결에까지 부쳐졌으며, 그 결과 다수표를 얻게 되어 1953년 형법에 규정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부터 정부가 경제개발의 일환으로 강력한 출산억제정책을 실시하면서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게 된다. 인구억제정책의 일환으로 가족계획사업이 추진되었으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하에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대한가족협회, 가족계획어머니회 등의 민간단체가 조직되고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계몽교육, 피임보급의 확대 등의 사업이 추진되었다. 1973년 「모자보건법」의 제정으로 ‘낙태 허용’에 관한 법적근거를 확보하게 되었고, 불임과 피임에 대한 정부지원도 확대되었다.
다만,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에 규정된 낙태죄 규정과 모자보건법 제14조 규정은 후술하는 바와 같이 2019년 헌법불합치결정을 받았으며, 그 취지에 따라 개정되어야 한다. 이하에서는 개정에 관한 논의와는 별개로 현행법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배아를 포함한 미출생 생명의 법적지위와 관련하여, 형법은 제27장 낙태의 죄에서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자기낙태죄(제269조 제1항), 동의낙태죄(제269조 제2항), 업무상동의낙태죄(제270조 제1항), 부동의낙태죄(제270조 제2항), 낙태치사상죄(제2690조 제3항, 제270조 제3항)에 관하여 명시하고 있다.
낙태죄는 분만기에 앞서 인위적으로 태아를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모체 내에서 태아를 살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범죄이다.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을 주된 보호법익으로 하고, 부차적으로 모체의 생명·신체의 안전도 보호법익으로 한다고 보는 것이 현재 학계의 다수설이다. 현행 형법이 임부의 동의유무에 따라 형의 경중에 차이를 두고 있는 점이나, 낙태치사상죄를 무겁게 처벌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16)
민법에서의 논의와 달리 형법상 태아 시기(始期)는 ‘수정란이 자궁점막에 착상한 때’로 확정되어있다. 따라서 아직 착상되지 못한 수정란의 배출은 낙태가 아니다. 또한 ‘사람의 시기(始期)’가 ‘태아의 종기(終期)’가 된다. 현행 형법은 제251조에서 영아살해죄를 규정하고 있고, 분만이 개시되는 ‘진통시(陣痛時)’를 영아살해죄가 성립하는 사람의 시기(始期)로 보고 있다. 따라서 낙태죄가 성립하는 태아는 착상이후부터 진통시(분만을 개시한 때) 이전까지를 말한다.17)
모자보건법은 제14조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또한 시행령 제15조 제1항에서는 이러한 허용사유의 경우에도 ‘임신 24주’이내인 태아에 대해서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당시에는 임신 28주로 되어 있었으나, 2009년 7월에 임신 24주로 개정하였다. 하지만 첨단의료기술을 고려한다면 현행 24주 규정은 더 앞당겨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18) 모자보건법상 허용요건 중 쟁점이 되는 사항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은 ‘배우자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낙태죄폐지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이 조항을 대표적인 가부장제의 유물로 보고,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19) 미국연방대법원은 Planned Parenthood v. Robert P. Casey 사건에서 「펜실베니아 주 낙태규제법」 중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배우자에게 고지했다는 증빙서류가 있어야 한다’는 조항에 대해 위헌을 선언하였다.20) 향후 국내에서의 개정논의에서도 첨예한 의견대립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21)
둘째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 제5호는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건강을 해칠 우려’라는 표현은 신체에 가해질 수 있는 대부분의 위험으로 확대해석 될 여지가 크기 때문에, 명확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에 대법원은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게 되어 모체의 생명과 건강만이라도 구하기 위해 인공임신중절수술이 부득이하게 필요한 경우를 말한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22)23)
셋째 상담제도의 도입 여부이다. 임산부가 직면한 극도의 불안을 해소해주고, 심리적 안정과 장래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로 논의되고 있다. 독일형법은 제219조에서 ‘응급상황이나 갈등상황에 있는 임산부의 상담’에 관하여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고, 「임신갈등법(das Schwangerschaftskonfliktgesetz)」을 통해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의 인격권과 태아의 생명권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사항으로 생각된다.
넷째 낙태시술 의사의 신고의무이다. 일본 모체보호법은 제25조에서 낙태시술을 한 의사는 다음 달 10일까지 지방자치단체 장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낙태가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는 까닭에 통계조차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며, 그런 상황을 이용하여 경제적 폭리를 취하는 의료기관도 다수 보고되었다. 따라서 일본에서 시행하듯이, 낙태시술을 한 의사에게 신고의무를 부과하여,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관리감독과 행정지도를 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 달리 현재는, 첨단과학의 발달로, 수정 이후의 미출생 생명의 형태가 체내, 체외에서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모든 법률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미출생 생명의 명확한 정의와 법적지위에 관한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다. 법률상의 변화는 없었으나, 이미 현실에서는 해석상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수차례 다루어 졌다. 이하에서는 2008년, 2010년, 2012년, 2019년에 헌법재판소에서 있었던 배아·태아 등과 관련한 헌법소원 사건과, 이들 각각의 결정을 통해 밝힌 ‘미출생 생명의 법적지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입장’을 차례로 살펴보도록 한다.
본 결정은 사산한 태아가 민법 제3조의 출생을 전제로 하지 않고, 민법 제762조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본 결정을 통해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헌법 제10조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국가가 생명을 보호하는 입법적 조치를 취함에 있어, 인간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보호정도나 보호수단을 달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전제하면서, “법치국가원리로부터 나오는 법적안정성의 요청은 인간의 권리능력이 언제부터 시작되는가에 관하여 가능한 한 명확하게 그 시점을 확정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형성이 출생이전의 그 어느 시점에서 시작됨을 인정하더라도, 법적으로 사람의 시기를 출생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헌법적으로 금지된다고 할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
권리능력의 존재 여부를 출생시를 기준으로 확정하고 태아에 대해서는 살아서 출생할 것을 조건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이것이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명백히 일탈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민법 제3조와 제762조는 헌법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특히, 본 결정은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인가?’인가라는 쟁점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본 결정에서 “태아는 모체와는 별개로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헌법 제10조에 따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라고 판시한 내용은 생명윤리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관하여 중요한 원칙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에 이어지는 2010년, 2012년, 2019년 판례에서도 본 결정을 취지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본 결정에서는 체외에 보관 중인 ‘냉동배아’가 헌법상 기본권 주체성을 가지는가 하는 점이 가장 본질적인 쟁점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논거를 들며, ‘냉동배아’의 기본권 주체성을 부정하였다. 첫째, ‘착상’되거나 ‘원시선’이 나타나지 않은 이상 현재의 자연과학적 인식수준에서 독립된 인간과 배아 간의 개체적 연속성을 확정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둘째,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모태 속에 수용’될 때 비로소 독립적인 인간으로서의 성장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셋째, 수정 후 착상 전의 배아가 인간으로 인식된다거나 그와 같이 취급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회적 승인’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본 결정은 ‘체외 배아’의 법적지위와 기본권주체성에 관하여 최초로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체외배아의 법적지위와 관련하여 사회적인 통념을 고려했을 뿐, 과학적인 측면에서는 논거가 빈약하고 설득력이 약하다. 수정과 동시에 유전적 동일성인 DNA는 확정이 되며, 그 이후 과정은 세포분열과 착상, 분리, 출산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일련의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원시선’이나 ‘착상’이 개체를 특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또한 현대생명과학은 체외수정에 의해 생성한 배아를 인공자궁을 활용해 성장시키는데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모체 내 수용’이 있을 때만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논거는 현재의 과학적 상황과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24)
본 결정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70조 등의 위헌여부가 쟁점이었다.
헌법재판소는 태아는 모체와는 별개의 생명체이고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성장상태가 보호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독자적 생존능력’이나 ‘임신 주수’ 또는 ‘생물학적 분화단계’를 기준으로 보호의 정도를 달리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를 모자보건법상 허용사유에 포함시킨다면 자칫 자기낙태죄 조항은 사문화되고 인간생명에 대한 경시풍조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밝히면서, 형법상 자기낙태죄 조항은 헌법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25)
본 결정은 “태아의 헌법상 보호는 임신기간 전체를 망라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 결정과 동일한 취지로 볼 수 있다. 반면 ‘독자적 생존능력(viability)’을 근거로 초기임신의 낙태를 허용한 ‘로 앤 웨이드’ 판결에서의 구분기준은 완전히 배척하였다.
본 결정은 2012년 결정과 동일하게 형법 제270조 등 낙태죄의 위헌여부가 쟁점이었다. 하지만, 2012년과는 반대로 현행법을 위헌적이라고 판단하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생명을 보호할 때에도 인간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보호정도를 달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특히 ‘독자적 생존능력(viability)’을 가진 경우에는 훨씬 인간에 근접한 상태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갈등상황을 모자보건법상 허용사유에 전혀 포섭하지 않은 것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어 위헌적이라고 판시하였다. 결국 현행법상 자기낙태죄 조항은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하는 위헌적 규정이라고 밝히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였다.
미출생 생명과 관련된 가장 의미있는 결정은 2008년에 내려진 ‘2004헌바81 결정’이었다. 헌법재판소는 “태아는 모체와는 별개로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이며,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현재도 태아를 ‘모체의 일부’나 ‘세포’로 파악하는 견해가 많은 실정임을 감안한다면,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은 생명윤리의 가장 중요한 쟁점에 관하여 명확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의 판례들에서도 본 결정의 이러한 취지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2005헌마346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냉동보관 중인 체외배아의 생명권을 부정하였다. 헌법재판소는 과학적인 분석보다는, ‘불임클리닉’, ‘잉여배아의 임상시험’ 등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면서 사회적 통념에 따라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모체 내의 태아’와 ‘냉동보관 중인 배아’가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본 결정은 배아와 관련하여 과학적 본질에 부합하는 법체계가 시급히 확립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향후, 체내 태아와 본질이 동일하다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를 두면서도, 보조생식술이나 임상시험 등이 행하여지는 현실적 상황을 수용할 수 있도록 체외배아와 관련한 법체계를 정립해 가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낙태죄의 위헌여부와 관련하여서는 2012년과 2019년 7년 사이에 완전히 상반된 결정이 내려졌다. 2012년 결정에서는 낙태죄에 관한 현행법 규정에 관하여 합헌결정을 내렸다. 태아의 생명권 보호는 임신기간 전체를 망라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로 앤 웨이드(Roe v. Wade)’ 판결이 제시한 ‘성장상태’나 ‘독자적 생존능력’ 등의 구분기준을 완전히 배척하였다. 하지만, 2019년에는 배척하였던 ‘로 앤 웨이드’ 이론을 완전히 수용하면서 정반대로 위헌취지의 헌법불합치를 선고하였다. ‘성장상태’에 따라 태아의 생명보호의 정도를 다르게 할 수 있고, ‘독자적 생존능력’이 잠재적 생명보호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2020년 12월까지 국회가 광범위한 재량을 가지고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도 혼란스러운 국회의 사정을 고려할 때 향후에는 사회적 혼란이 더욱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결정에서 조용호, 이종석 재판관은 합헌의견을 제시하면서 입법자에게 낙태문제에 관하여 진지한 성찰을 통하여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양육책임법의 제정, 미혼모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 임신·출산·양육에 있어서의 모성보호정책, 임신한 부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육아시설 확충 등이 그것이다. 출산과 양육에는 여성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경제적 부담이 수반되며, 사회적 활동에도 많은 제약이 뒤따르게 된다. 따라서 사회적인 인식변화와 제도개선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임신은 여성이 하지만,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은 미혼부인 남성은 물론, 국가와 사회가 모두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임산부에게 맡겨진 과중한 부담을 분담할 수 있는 제도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과 제도의 뒷받침이 된 이후에야 “태아는 모와는 별개로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이며 국가는 이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재판소의 기본적 입장이 비로소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Ⅲ. 일본의 입법례와 판례
일본의 낙태죄 규정은 1880년 제정된 구형법(舊刑法)부터 명시되어 있었으며, 1907년 4월 형법(刑法)에도 명시되었다. 특히, 일본은 1948년 우생보호법을 제정하여 낙태정당화 사유를 명시하였는데, 이 규정에 의해 형법상 낙태죄 규정은 거의 사문화되었다.26)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밀려오는 귀환자의 증대와 함께, 다이쇼(大正)시대 이래 최대의 베이비붐이 일어났다. 1945년 출생률이 최고기록에 이르렀으며, 인구급증에 따른 최악의 ‘식량난’과 ‘주택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구 억제정책이 시급히 필요했으며, 이러한 상황하에 1948년 7월 「우생보호법(優生保護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우생보호법은 1996년 「모체보호법(母體保護法)」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기존의 조문 중에 우생사상에 근거한 조항 및 표현이 삭제되었다. 개정과정과 관련해서는 당시에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되었던 국제인구개발회의 NGO 포럼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에 일본인 여성 한 사람이 일본의 우생보호법은 열등한 자손의 방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장애인의 존엄과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호소한 것이다.27) 이후 개정을 통해 「우생보호법」이라는 명칭이 「모체보호법」으로 개정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우생사상에 근거한 조항과 표현들이 함께 삭제되었다. 구체적으로 제14조 제1항의 제1호와 제2호, 제3호, 그리고 제14조 제3항이었다.28)
일본형법은 제212조 내지 제216조에서 낙태죄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제212조에는 ‘낙태한 부녀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213조 ‘동의낙태 및 동치사상’은 2년이하의 징역 및 5년이하의 징역, 제214조 ‘업무상 낙태 및 동치사상’은 5년이하의 징역 및 7년이하의 징역, 제215조 ‘부동의 낙태’는 7년 이하의 징역을 각각 명시하고 있다.
일본 형법 제212조는 “임신한 여자가 약물을 사용하거나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제213조는 “여자의 촉탁을 받거나 그 승낙을 얻고 낙태시킨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29)
우리 형법 제269조 제1항에서 낙태죄를 1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점에 있어서는 일본과 동일하다. 하지만, 촉탁 또는 승낙에 의해 낙태한 자에 대해서는 우리형법이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것과 달리 일본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여 형벌을 더 무겁게 규정하고 있다.
일본 형법 제214조는 “의사, 조산사, 약사 또는 의약품 판매업자가 여자의 촉탁을 받거나 그 승낙을 얻고 낙태하게 한 때에는 3월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30) 부동의 낙태와 관련해서는 제215조에서 6개월이상 7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며, 미수를 처벌하고 있다.31)
우리 형법 제270조 제1항은 의사 등의 업무상 낙태에 관하여 2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부동의 낙태죄는 제270조 제2항에서 3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형법이 업무상 낙태를 5년이하로 규정하고, 부동의 낙태죄를 7년이하로 규정하면서 특히 미수까지 처벌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더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에서는 1948년 인구억제정책의 일환으로 ‘우생보호법(優生保護法)’이 제정되었다. 이 우생보호법은 우리나라 「모자보건법」상 낙태허용규정의 모델이 되었다. 1996년 우생보호법에서 기존의 우생사상에 근거한 조항들이 삭제되고 명칭도 「모체보호법(母體保護法)」으로 개정되었다. 우리나라 모자보건법 제14조에 여전히 우생사상에 근거한 조항들이 개정되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본 모체보호법 개정은 우리나라의 법개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모체보호법 제14조 제1항은 낙태(인공임신중절)를 할 수 있는 사유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유를 명시하고 있다.
첫째, 임신의 지속 또는 분만이 신체적 또는 경제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크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32)
둘째,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하여 또는 저항 또는 거절할 수 없는 사이에 간음되어 임신한 경우.33)
본 조항은 낙태시술을 받으려는 경우 원칙적으로 배우자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다만, 배우자가 모르는 때, 의사를 표시할 수 없는 때, 임신 후 배우자가 없게 된 경우 등에는 본인의 동의만으로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34) 배우자의 동의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모자보건법 제14조 규정과 유사하다.
일본의 후생행정통계에 나타난 현황을 보면, 2003년 기준 낙태건수는 약 31만 건이고, 그 중 약 99%가 제1호 ‘신체적 또는 경제적 이유로 건강을 해칠 경우’에 의해 합법화되었다.35) 앞서 우리나라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 제5호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가 확대 해석될 우려가 매우 크기에, 범위를 명확히 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살펴본 바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이러한 사정은 우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는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에서 명시하고 있는 허용사유인 ‘우생학적·유전학적 장애나 질환(제1호)’, ‘전염성 질환(제2호)’,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제4호)’ 등의 규정이 일본에는 없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96년 개정과정에서 유전병이나 정신질환 등에 관한 사유를 모두 삭제하였고, 현재는 ‘신체적 또는 경제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해칠 우려’, ‘폭행에 의한 임신’ 2가지 허용사유만을 규정하고 있어서 우리나라보다 허용범위가 좁다고 볼 수 있다. 현행 모자보건법의 규정도 향후 개정을 통하여 ‘우생학적·유전학적 질환’ 등의 사유를 삭제하는 것이 국제적인 흐름과 인권보호의 측면에서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모체보호법 제25조는 다음과 같이 낙태시술의사의 신고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의사 또는 지정의사는 제3조 제1항 또는 제14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불임 수술 또는 인공 임신 중절을 행한 경우에는, 그 달 동안의 수술 결과를 정리하여 다음 달 10일까지 이유를 기재하여, 도도부현 지사에게 신고하여야 한다.”36)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낙태가 암암리에 행하여지고 있기에, 이에 따라 정확한 통계조차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다. 2018년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우리나라 낙태건수는 하루 3000건, 연간 100만 건 이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37) 하지만, 다른 조사결과에서는 2005년 34만 건, 2010년 16만 건으로 발표되었으며, 2019년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결과로는 연간 5만 건이었다38) 조사결과가 무려 2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발표결과의 신뢰도를 차치하고라도, 정확한 통계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불법시술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일부 의료기관들은 낙태수술을 통해 경제적 폭리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모체보호법은 낙태 수술을 한 의사에게 수술 후 ‘다음 달 10일’까지 낙태이유를 기재하여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률의 취지는 낙태를 공식적으로 통제하면서 관리·감독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낙태에 관한 정부의 관리·감독에 있어서, 한국보다는 일본이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낙태의사의 신고조항’은 우리나라 의료상황에도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논의할 때 편입여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일본 낙태죄 규정의 특징을 우리나라와 대비해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3자가 낙태시킨 경우인, ‘동의낙태’, ‘업무상 낙태’, ‘부동의 낙태’의 경우, 일본형법이 우리나라보다 형(刑)이 훨씬 가중되어있다. 일본형법 제213조 ‘동의낙태죄’는 2년 이하의 징역을 규정하여, 우리나라의 1년 이하보다 가중되어 있다. 일본형법 제214조 ‘업무상낙태죄’는 의사, 조산사, 약사 등에게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여, 우리나라의 2년 이하보다 훨씬 가중되어 있다. 일본형법 제215조 ‘부동의 낙태죄’는 7년 이하의 징역으로 규정하여, 우리나라의 3년 이하보다 가중되어있다.
둘째, 앞서 살펴본대로, 일본의 경우 우생사상에 근거한 낙태허용사유들은 개정을 통하여 모두 삭제하였다. 하지만, 우생보호법을 모델로 제정된 우리나라 모자보건법에는 개정 전 일본 우생보호법의 규정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따라서 개정을 통하여 모자보건법 상의 우생관련 규정들을 반드시 삭제할 필요가 있다.
셋째, 모체보호법 제25조가 규정한 시술의사의 신고의무는 암암리에 벌어지는 낙태시술과 이에 따르는 부작용을 근절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규정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현행 낙태죄 규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어 과잉금지에 반한다고 판시하면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정할 것을 촉구한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개정 이전에 불법적으로 암암리에 진행되는 낙태시술을 합법적인 영역으로 유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이후에야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한 허용범위의 확대도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본다면 일본 모체보호법 제25조가 명시하고 있는 시술의사의 신고의무는 향후 우리나라의 법개정에서 반드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넷째, 일본 모체보호법 제14조 제1항 제1호 ‘신체적 또는 경제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크게 해칠 우려’는 우리나라 모자보건법의 제14조 제1항 제5호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와 유사하게 볼 수 있다. 견해에 따라서는 일본의 이 조항을 ‘사회적·경제적 이유’로 파악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의 사견(私見)으로는 본 조항의 핵심은 ‘경제적 이유’라는 표현이 아니라 ‘건강을 크게 해칠 우려’에 있다. 특히 ‘크게(著しく)’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신체의 건강이 본 조항의 핵심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모자보건법의 ‘건강을 해칠 우려’와 동일하게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앞서 밝혔듯이 일본 낙태의 99%가 바로 이 조항으로 합법화된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관련 사례와 그동안의 판례들을 종합하여, 본 조항의 해석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고, 범위도 한정할 필요가 있다.
Ⅳ. 독일의 입법례와 판례
독일은 1974년 6월 18일 5차 개정형법을 통하여, 임신 12주 이내의 낙태허용 규정을 명시하였다. 즉, “임산부가 임신 12주 이내에 자발적으로 의사(醫師)를 통해 낙태를 행할 때에는, 의사의 상담을 받아야 하고, 이러한 상담을 받은 후 시술되는 낙태는 처벌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독일 연방의회 의원 193명이 1974년 개정한 형법 제218조a에 대해서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하였다. 1975년 2월 25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태아도 헌법적 보호대상이고, 태아의 헌법적 보호는 전체 임신기간을 망라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동 조항에 대하여 위헌을 선언하였다.39)
제1차 낙태판결 이후 1976년 연방의회는 형법을 다시 개정하였고, 원칙적으로 낙태를 처벌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리고 의학적 사유, 우생학적 사유, 범죄적 사유, 사회·경제적 사유 등에서의 예외적 낙태허용규정을 명시하였다. 또한 낙태허용기간을 분류하여 우생학적 사유는 22주, 그 밖의 사유는 12주 이내로 제한하였다. 또한 낙태 3일 전에 의사와 상담하는 것을 의무화하였다.40)
1990년 통일 이후 독일은 또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통일 전 동독(東獨)은 인신 후 12주 이내에는 의사(醫師)를 통한 낙태가 자유로웠기 때문에, 통일 후에는 이러한 법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낙태에 관한 새로운 규정이 필요했다. 1992년 독일은 ‘임부 및 가족 원조법(Schwangeren und Familienhilfegesesetz, SFHG)’을 제정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임신 12주 이내에 의사의 상담을 거친 경우, 의사를 통해 낙태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동독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태아의 생명권 보호에 반한다는 이유로 ‘연방의회 의원’ 등이 위헌청구를 하였고, 1993년 5월 연방헌법재판소는 ‘임부 및 가족 원조법’에 근거하여 개정된 형법상 낙태죄 규정(제218조a, 제219조)에 대하여 위헌을 결정하였다.41) 위헌의 취지는 1975년 위헌결정과 같았으며,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헌법적 보호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연방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권 보장을 위하여, 국가는 임신과 출산에 뒤따르는 결과에 대한 교육과 오용에 있어서의 불이익을 구제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태아의 보호의무를 다할 것을 강조하였다.42)
제2차 낙태판결이 있은 후, 1995년 ‘임부 및 가족원조법’에 대한 개정이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형법의 개정도 같은 해에 이루어져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43)
독일형법은 제218조에서 ‘낙태한 자는 3년 이하의 자유형(Freiheitsstrafe)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여 낙태를 원칙적으로 범죄로 처벌하고 있다. 제218a에서는 ‘낙태의 불처벌 요건’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219조에서는 ‘응급상황이나 갈등상황에 있는 임산부의 상담’에 관하여 규정하였으며, 12주 이내의 낙태가 불처벌 되기 위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구체적인 상담절차에 관하여 명시하고 있다.
제218조 제1항은 “낙태한 자는 3년이하의 자유형(Freiheitsstrafe)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여 낙태를 범죄로 처벌하고 있다. 제2항에서는 부동의 낙태죄에 대하여 5년이하의 자유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44) 또한 제4항은 낙태의 미수에 관하여 처벌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45)
우리나라 형법 제269조 제1항은 낙태죄를 1년 이하의 징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형법 제270조에서 부동의 낙태는 3년 이하의 징역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독일에서는 한국보다 낙태죄를 더 무겁게 처벌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미수범 처벌규정’을 두고 있는 점도 엄격한 처벌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독일형법 제218조b는 ‘의료증명과 의사의 확인요건’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제1항은 확인서 없이 낙태시술한 의사 등은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였고, 제2항은 낙태시술과 관련하여 불법행위를 하고 유죄판결이 확정된 의사는 확인서를 작성할 수 없다고 명시하였다.
독일형법 제218조c는 ‘낙태와 관련한 상담과 설명’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임산부에게 낙태의 이유를 설명할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고 낙태한 경우’, ‘수술의 심각성, 위험, 예후 등에 관하여 의학적 상담을 하지 않고 낙태한 경우’ 등은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 형법은 낙태의 불법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를 허용하는 ‘적응해결방식’을 채택하면서, 동시에 임신 12주 이내에 상담절차를 거친 낙태는 처벌하지 않는 ‘기간해결방식’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이는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면서도 임신갈등상황에 있어서의 최종적 판단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에 따르도록 한 것이다. 결국 태아의 생명권과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의 충돌을 규범조화적 방식에 따라 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46)
독일형법 제218조a 제1항은 낙태죄의 구성요건을 조각시키는 세 가지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첫째,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촉탁하고, 적어도 수술 3일 전에 제219조 제2항 제2문에 따라 상담을 받았음을 입증할 것. 둘째, 의사에 의해 낙태 시술이 행해질 것. 셋째, 임신 이후 12주가 경과하지 않을 것.47)
독일형법 제218조a 제2항과 제3항은 위법성을 조각시키는 사유에 관하여 명시하고 있다. 먼저 제2항은 임산부의 생명이나 신체적·정신적 위험을 면하기 위한 불가피한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즉, “사망이나 육체적·정신적 중상해의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낙태가 필요했으며, 임산부의 관점에서 다른 방법으로는 이러한 위험을 피할 수 없었을 경우”에는 위법성을 조각시킨다.48) 제3항은 성폭행 등으로 임신이 이루어진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즉, “의학적 판단으로 볼 때, 임산부에 대해 제176조 내지 제179조(강간 등 성폭행)의 범죄가 행하여 졌으며, 이러한 범죄에 의해 임신된 것으로 볼 개연성이 크고, 임신 12주가 지나지 않았을 경우”로 명시하고 있다.49)
독일형법 제218조a 제4항은 ‘임산부에 대한 처벌 면제’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임신 22주 이내이고, 제219조에 의한 상담이후 의사를 통해 낙태시술을 한 경우’ 임산부는 제218조에 의해 처벌되지 않는다.50) 또한 법원은 ‘시술 당시 임산부가 특별한 곤경에 처해 있었던 경우’ 처벌을 면제할 수 있다.51)
독일형법 제219조는 ‘응급상황이나 갈등상황에 있는 임산부의 상담’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임신 12주 이내 낙태허용사유(제218조a 제1항)’, ‘임산부의 처벌면제(제218조a 제4항)’에 해당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조에 명시된 절차에 따른 상담을 거쳐야 한다. 제219조에 따른 상담은 ‘태아는 독립된 생명권의 주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키고,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을 최우선에 두면서도 마지막 선택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에 맡기는 규범조화적 해결의 취지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2010헌바402 결정’에서 이동흡 재판관은 구체적으로 이 조문을 인용하면서, 입법적으로 우리 형법에 편입할 것을 깊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2017헌바127 결정’의 결정문에서도 상담요건을 입법자의 재량에 따라 검토하여야 함을 밝힌바 있다. 사견(私見)으로 향후 낙태죄에 관한 형법과 모자보건법의 개정에 반드시 참조하고 검토하여, 어떤 형태로든 편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제219조 제1항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담은 태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52) 상담은 여성이 임신을 계속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 자신의 마음을 열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53) 상담은 여성이 책임감 있고 양심적인 결정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54)
여성은 태아가 모든 임신상황에 있어서, 산모와 관련해서도 태아 자신만의 고유한 생명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까닭에 낙태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적절차 안에서만 고려해야 한다.55) 그 예외적인 상황은 임신을 지속하는 것이 산모에게 합리적인 희생의 범위를 넘어서는 너무나 심각하고 막대한 부담을 가져오는 경우이다.56) 충고와 원조를 통하여, 상담은 임신과 관련한 갈등상황을 극복하고, 위기 상황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57) 자세한 사항은 「갈등상황에서의 임신에 관한 법률(das Schwangerschaftskonfliktgesetz)」에 의한다.”58)
임신갈등법의 정식명칭은 「임신갈등에 있어서의 예방 및 대처에 관한 법률(Gesetz zur Vermeidung und Bewältigung von Schwangerschaftskonflikten)」이다. 사견(私見)으로, 현재 법률개정을 준비 중인 입법부나 낙태죄 개정안을 연구 중인 기관 등에서는 본 법률을 반드시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우선시 되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태아의 생명권’이 완전히 외면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임신갈등법(SchKG)은 이러한 상황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최대한 지킬 수 있는 규범조화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본 법률은 1992년 7월 27일에 제정되었으며,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제1장 교육, 피임, 가족계획 및 상담,59) 제2장 임신갈등 상담,60) 제3장 낙태시술,61) 제4장 낙태에 관한 연방 통계,62) 제5장 특별한 경우 낙태 여성을 위한 도움,63) 제6장 비밀출산.64)
연혁적으로 살펴보면, 독일의 낙태죄 규정은 연방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서 정리되었으며, 그 입장이 현재까지도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결정적인 판단은 1975년에 있었던 연방헌법재판소 결정이었다. 이 결정에서 연방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태아의 생명권은 헌법적 보호대상이다. 헌법적 보호는 전체임신기간 동안 이루어져야 한다”, “태아의 생명보호는 임부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위에 있다”. 1993년 연방헌법재판소는 다시 한번 동일한 취지의 결정을 내림으로써 이 논지는 독일 법체계에서의 확고한 입장이 되었다. 실제 독일형법의 규정을 보면, 낙태죄는 3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하도록 되어있고, 부동의 낙태죄는 5년 이하의 자유형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낙태미수’도 처벌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본다면 독일이 우리나라보다 낙태죄를 무겁게 처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독일 형법은 낙태의 불법성을 유지하면서도 예외적 허용사유와 불처벌 규정을 통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과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있다. 즉,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를 허용하는 ‘적응해결방식’을 채택하면서, 동시에 임신 12주 이내에 상담절차를 거친 낙태는 처벌하지 않는 ‘기간해결방식’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이는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면서도 임신갈등상황에 있어서의 최종적 판단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에 따르도록 한 것이다. 결국 태아의 생명권과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의 충돌을 규범조화적 방식에 따라 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일형법 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제219조의 ‘임산부 상담’ 규정이다. 이를 구체화한 특별법으로 ‘임신갈등법(SchKG)’이 제정되어있다. 2019년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결정가능기간’, ‘제한 없는 낙태허용기간’, ‘상담요건’, ‘숙려기간’ 등에 관하여 국회가 입법재량을 가지고 개선입법을 하라고 판시하였다. 독일에서 ‘임신 12주 이내의 낙태’를 하기 위해서는 제219조의 상담을 반드시 받아야 하므로, 향후 우리나라의 낙태요건 개정에 있어서도 독일형법 제219조와 ‘임신갈등법(SchKG)’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미 ‘2010헌바402 결정’에서 이동흡 재판관이 보충의견으로 독일 상담규정을 참조할 것을 권유한 바 있다. 이 규정은 태아의 생명권을 최우선에 두면서도, 마지막 선택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에 맡기는 규범조화적 해결방식을 취하고 있어, 헌법상 기본권 보장과 관련해서도 적합하다.
Ⅴ. 미국의 주요판례와 최근경향
미국은 초기부터 영국 보통법상 원칙을 따르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낙태를 살인에 준하여 엄격하게 처벌하였었다. 그러던 중에 1973년 Roe v. Wade 판결에 따라 낙태 허용의 폭을 대폭적으로 확대하는 변화를 겪게 되었다. 독자적 생존능력(viability)을 갖추는 임신 6개월이 지난 이후부터(the third trimester) 태아를 인간생명으로 보고, 주(州)는 낙태를 규제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전환되었다. Roe v. Wade의 이러한 입장은 심지어 2019년 우리나라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2017헌바127)’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낙태허용의 중요한 척도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1980년대부터 Roe v. Wade와는 다른 취지의 판결이 계속 이어졌으며, 심지어 ‘임신초기부터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한 낙태규제를 할 수 있다’는 판결도 등장하였다. 또한 ‘태아심장박동법’을 비롯하여 낙태를 엄격히 규제하는 법률들이 여러 주(州)에서 새롭게 제정되고 있다. 현재 미국은 낙태죄에 관하여 어느 한가지 체계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입장들이 혼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전제로 이하에서는 낙태죄에 관련된 미국의 주요판례와 입법례, 그리고 최근의 다양한 흐름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미국의 낙태죄 규정은 ‘영국 보통법상 원칙’이 식민지였던 미국에 그대로 적용되는 형태였다. 영국의 보통법상 원칙은 ‘태동(胎動)’을 기준으로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태동 이후의 낙태는 ‘살인죄(殺人罪)’로 처벌하였다. 미국에서도 1820년∼1840년까지의 법률들에는 태동 이후의 낙태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규정들이 많았다. 1821년 ‘코네티컷州’를 시작으로 ‘일리노이州’, ‘뉴욕州’ 등 25개 州에서 태동 이후의 낙태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었다.65)
하지만, ‘태동’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과 ‘수정’의 시점부터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할 수 있다 점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서, 이후에는 태동과 무관하게 처벌하는 규정을 두게 된다. 1840년에 ‘마인 州’에서 태동과 무관하게 처벌하는 규정을 두었고, 1887년에 이르면 미국의 ‘모든 州’에서 태아의 월령이나 크기와 무관하게 낙태를 인간생명을 침해하는 범죄로 취급하게 되었다.66)
하지만, 불법낙태는 여전히 성행하였다. 1960년에 들어서면서 일부 州를 시작으로 ‘임산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목적’, ‘성범죄에 의한 임신’ 등에는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였다. 처벌규정의 차이로 인해 ‘전면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州’에서 ‘일부 허용하는 州’로 여행을 가서 낙태를 행하는 기현상이 빈번히 발생했다.67)
1969년 ‘택사스州’에 살던 25세의 여성 Norma McCorvey는 퇴근 중 괴한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하게 되었다. 당시 텍사스州는 ‘임산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경우’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McCorvey는 'Jane Roe'라는 가명을 사용하면서 ‘텍사스州 형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하게 되었다.69)
연방대법원은 위헌 7, 합헌 2의 비율로 텍사스 州 형법이 연방헌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하였다. 연방대법원을 대표하여 Blackmun 대법관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70)
첫째, 임신의 시기를 삼등분할 때, 그 3분의 1(the first trimester) 이내에 행하는 낙태는 ‘산모의 건강’에 아무런 문제를 야기하지 않으며, 이 시기의 ‘태아’는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둘째, 낙태를 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基準)은 태아의 ‘독립적 생명력(viability)’이다. 태아의 생명력은 산모가 판단하며, 예외적으로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는 ‘주 정부(州 政府)’도 이를 결정할 수 있다.
셋째, 아무런 시간적 제약사항 없이 ‘산모의 건강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는 경우’ 만을 규정한 텍사스 州 형법은 위헌이다.
연방대법원은 이 판결을 통해 ‘3단계 3개월 기간구분법’을 제시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71)72)
첫 3개월 동안은 오로지 의학적 판단만으로 낙태할 수 있으며, 州의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두 번째 3개월(즉, 4개월부터 6개월까지)동안은 오로지 ‘산모의 건강’을 보호할 목적으로만, 州는 낙태를 규제할 수 있다.
세 번째 3개월(즉, 7개월부터 출산까지) 동안은 태아가 모체 밖에서 생존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잠재적인 생명(즉, 태아)의 보호를 위해 州는 법률로써 낙태를 규제할 수 있다.
1989년 미주리州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첫째, 임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시술이 아닌 경우에는, 낙태를 목적으로 ‘공공시설’을 이용하거나 ‘공무원’이 낙태시술을 행할 수 없다. 둘째, 임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시술이 아닌 경우에는, 낙태를 목적으로 ‘공공기금’을 사용할 수 없다. 셋째, 임신 20주 또는 그 이상 된 태아의 낙태수술 시에는, 수술 전에 태아의 체중, 임신기간, 폐의 성장상태 등을 의사가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
1989년 주정부의 ‘의료 전문가’와 ‘의료기관’들이 이 법률에 대하여 연방지방법원에 위헌심판을 청구하였다. 연방지방법원이 위헌을 선고하자, 미주리 주 검찰총장 Webster가 이에 불복하여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였다.
연방대법원을 대표하여 Rehnquist 대법원장은 “낙태수술에 공공시설이나 공무원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것 등에 대하여 낙태할 수 있는 여성의 자유권을 박탈하였다고 볼 수 없고, 이것은 합리적인 제한이다”는 취지로 합헌을 선고하였다.
본 판결에서 Rehnquist, White, Kennedy, O'Conner 4인은 Roe v. Wade 판결을 수정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즉, Roe 판결에서는 태아의 ‘독립적인 생명력’에 대한 판단권을 기본적으로 임산부에게 부여하였지만, 이 판결은 “20주 이상 된 태아의 낙태수술에서, 의사는 임신기간, 몸무게, 폐의 성장상태 등을 반드시 조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내용을 합헌으로 선언함으로써 ‘독립된 생명력’에 대한 판단권을 ‘임신한 여성’에게서 ‘주 정부(州 政府)’로 옮겨놓게 되었다.74)
펜실베니아 주는 1982년 제정된 ‘낙태규제법’을, 1989년에 다음과 같이 개정하였다.76)
첫째,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적어도 수술하기 24시간 전에는 동의를 해야 한다.
둘째, 미성년자가 낙태하려는 경우는 부모나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셋째, 결혼한 여성이 낙태하려는 경우에는, 사전에 배우자에게 낙태한다는 사실을 고지하
였음을 증명하는 서류가 있어야 한다.
넷째, 임산부의 생명이 위태로운 응급상황일 때, 의사는 사전 동의 없이 수술할 수 있다.
다섯째, 낙태수술을 한 병원은 관련기록을 작성 및 보관할 의무를 진다.
‘펜실베니아 남동부 가족계획협회’는 펜실베니아 주지사 Casey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여, 본 규정에 대한 위헌심판을 청구하였다. 이후 연방항소법원이 ‘배우자 고지의무’만 위헌이고, 나머지는 합헌이라고 판시하자, 이에 불복하여 연방대법원에 상고하게 되었다.
이후 연방대법원 역시도 ‘배우자 고지의무’만 위헌이며, 나머지는 모두 합헌이라는 취지의 판시를 하였다. 특히, 이 판결을 통해 연방대법원은 Roe v. Wade 판결의 입장을 부분 수정하며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첫째, 태아가 모체 밖에서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기 전까지, 임산부는 州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낙태할 권리를 갖는다. 둘째, 태아가 모체 밖에서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게 된 이후에, 州는 낙태를 제한하고 규제할 수 있다(다만, 임산부의 생명이나 건강이 위험한 경우에는 합법적으로 낙태할 권리를 가진다). 셋째, 각 州는 ‘임신 초기(初期)’부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임산부에게 어떤 부당한 부담(Undue Burden)을 주지 않는 한 낙태를 제한하고 규제할 수 있다.77)
본 판결은 Roe v. Wade 판결에서 제시한 ‘엄격한 3단계 3개월 기간구분법’과, 주의 필수불가결한 이익에 있어 최소한의 정도만 규제한다는 ‘엄격심사기준’을 폐기하였다. 그 대신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 이전(以前)에도 낙태하려는 임산부에게 ‘실질적 장애(Substantial Obstacle)’을 야기하지 않는 한, 州는 ‘임신 전 기간(全 期間)’에 걸쳐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한 낙태규제를 할 수 있다”는 ‘부당한 부담(Undue Buren) 기준’을 제시하였다.78) 이에 따라 본 판결은 과거의 판결을 번복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미성년자가 낙태시 부모의 동의를 요구하는 것, 낙태하려는 여성에게 낙태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서면동의를 요구하는 것, 낙태 관련 기록의 작성 및 보관의무 등은 ‘실질적 장애’를 초래하지 않으므로 합헌이다. 다만, 낙태 시 배우자에게 고지하도록 하는 것은 ‘실질적 장애’가 되므로 위헌이다.”79)
미국은 영국 보통법상 원칙을 따르고 있었다. 대부분의 州에서 태아의 월령이나 크기와 무관하게 낙태를 인간생명을 침해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73년 Roe v. Wade 판결에 따라 입장이 급선회하였다. Roe v. Wade에서는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viability)’이 낙태허용의 기준이 된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독자적 생존능력이 갖추어진 이후에서야 태아는 인간 생명으로 인정되고, 태아의 보호를 위해 州는 법률로 낙태를 규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세 번째 3개월(the third trimester)’에 도달한 이후에야 태아는 인간생명으로 보호되고, 이를 위해 州는 낙태를 규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Roe v. Wade 판결의 입장은 이어지는 판례들에서 계속 수정되었다. 1989년 Webster v. Reproductive Health Services 판결에서는 ‘독자적 생존력’에 대한 판단을 임산부가 아닌 ‘州 정부’가 할 수 있도록 하였다.80) 1992년 Planned Parenthood of Southeastern Pennsylvania v. Casey 판결에서는 임산부의 낙태에 ‘실질적 장애’가 없는 한 ‘임신 초기(初期)’부터 ‘임신의 전 기간(全 期間)’에 걸쳐서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한 낙태규제를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독자적 생존력’을 기준으로 태아의 생명성을 인정하고, 이를 낙태규제의 기준으로 제시했던 Roe v. Wade 판결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수정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종합해보면, 미국 판례의 입장에도 많은 변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Roe v. Wade를 여전히 낙태죄와 관련한 중요한 판례로 다루고는 있지만, Roe v. Wade에서 제시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원칙(原則)’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맞게 변경하고 수정해가고 있다. 특히, 1992년 Planned Parenthood of Southeastern Pennsylvania v. Casey 판결에서 ‘임신 초기’부터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한 낙태규제를 허용한 것은, 수정(受精)된 모든 태아는 인간생명이라는 입장을 전제로 한다. Roe v. Wade 판결문에는 ‘첫 3개월(the first trimester)의 태아는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Roe v. Wade의 근본입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미국의 낙태죄는 현재까지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으며, 어느 하나의 입장만으로 확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81)
최근 미국의 많은 州에서 낙태를 엄격히 규제하는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고 있어서, 종래의 Roe v. Wade 입장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재검토될 여지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 내 낙태문제에 관한 논란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6년 7월 미국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州’는 미국 최초로 전면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낙태금지법을 제정하였다.82) 최근에는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소위 ‘심장박동법안’이 여러 주에서 검토되고 있다. 조지아(Georgia)州, 켄터키(Kentucky)州, 미시시피(Mississippi)州, 오하이오(Ohio)州, 루이지애나(Louisiana)州 등에서는 이미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미주리(Missouri)州는 임신 8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했고, 앨라배마(Alabama)州는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을 포함해 사실상 모든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83)84)
Ⅵ. 결론
미출생 생명인 배아의 생명권를 비교법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배아와 관련한 현행법, 외국의 입법례·판례 등을 고찰하였다.
현행법을 검토해보면, 배아의 지위에 관한 민법과 형법, 생명윤리법의 입장이 모두 상이하다. 가장 주된 이유는 형법은 1953년, 민법은 1958년에 제정되어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는 반면, 생명윤리법은 2004년에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50여년의 시간 동안 생명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기에, 그 기간만큼 첨단과학과 민법, 형법의 간극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현행 민법(民法)에는 ‘체외수정 등 보조생식’에 관한 개념이 전혀 상정되어 있지 않다. 미출생 생명은 임산부의 체내에 존재하는 태아만을 고려하고 있다. 따라서 태아의 개념에 포함될 수 없다면, 체외배아 뿐만 아니라 체내배아도 물건(物件)이 될 수밖에 없다. 미출생 생명에 관한 문제는 법률의 부재이기에 현행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으며, 결국 입법적으로 보완하여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이 인간개체가 확정되는 시기는 ‘수정시’이다. 따라서 수정시부터 권리능력자로 규정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논의는 일반사법의 입장에서 원칙을 정립하려는 것이며, 현재 허용중인 ‘체외수정’이나 ‘배아연구’ 등은 특별법으로 절차와 허용범위 등을 명확히 규정하여 시행할 수 있다. ‘태아’에게 극히 제한적으로만 권리능력을 인정하듯이, 체외배아의 경우는 권리능력을 특별히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원칙을 분명히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형법(刑法)은 1953년 낙태죄를 규정했으나, 1973년 모자보건법이 제정되면서 형해화(形骸化)되었다. 2019년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라 두 법률은 모두 개정되어야 할 상황에 처해있다. 현행법상의 쟁점을 검토해보면 다음과 같다.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의 ‘배우자 동의’와 관련하여 사견(私見)으로는 ‘배우자의 자연권’이라고 생각한다. 자녀의 양육권이 부부 모두에게 있고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낙태 전 배우자의 동의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득이한 상황에서는 제14조 제2항에 의해 동의가 면제될 수 있다. 또한 제14조 제1항 제5호의 ‘모체의 건강을 해칠 우려’는 판례 등을 통하여 보다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비교법적으로 검토해보면, 일본과 독일 등은 우리나라보다 낙태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고, 형량도 무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 Roe v. Wade 판결이후 낙태가 급격히 증가했었지만, 현재는 오히려 엄격하게 규제하는 州가 다수 생겨나고 있다. 특히, 일본은 낙태시술의사의 신고의무를 규정하여 행정기관이 철저히 관리·감독하고 있다. 독일은 ‘임신갈등법(SchKG)’을 제정하여 태아의 생명권을 우선시하면서도,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규범조화적인 해결방식을 취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州조차도, ‘숙려기간’, ‘상담절차’ 등을 통하여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려는 규정을 제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향후, 낙태죄와 관련하여 비교법적 검토를 할 때에는,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폭넓게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결정을 통해 “입법자는 ‘결정가능기간’, ‘사회적·경제적 사유’, ‘상담요건과 숙려기간’ 등에 관하여 입법재량이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절차적 요건을 부과할 것인지에 관하여 결정한 후,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률을 개정하라”고 판시하였다. 낙태죄 관련 법률의 개정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가 되었다. 필자 역시도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현행법과 외국의 입법례·판례를 본 논문에서 검토하였다.
법률의 개정과 관련하여, 우선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에서 논거로 제시한 Roe v. Wade 이론은, 그대로 수용해서는 곤란할 것으로 생각된다. Roe v. Wade 판결이 내려지던 50년 전과 현재는 과학적 상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임산부를 보며 생명을 추정하는 정도였지만, 현재는 임신초기부터 태아를 직접 확인하고 치료하는 단계에 있다. 22주된 초미숙아를 인큐베이터를 통해 생존시키고 있고, 심지어 인공자궁의 개발이 상당한 진척을 이루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임신 3개월까지는 태아를 생명으로 보지 않아도 무방하고, 6개월이 지난 이후에야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낙태규제가 가능하다”고 밝힌 Roe v. Wade 이론은, 현대 첨단과학적 상황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미국 현지에서도 Roe v. Wade 이론을 그대로 유지하기 보다는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조화를 이루려는 입법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법률 개정에 있어서도 이러한 과학적 상황과 국제적 흐름을 입법자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비교법적인 측면에서 반드시 검토하고 편입해야 할 내용으로, 일본의 ‘낙태시술 의사 신고의무’와 독일의 ‘임신갈등법’을 들 수 있다.
앞서 본문에서 살펴보았듯이, 2018년과 2019년 불과 6개월 사이에, 낙태에 관한 2개의 상반된 통계가 발표되었다. 2018년 9월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국내 낙태건수를 하루 3000건, 연간 100만건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하였다. 2019년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연간 5만건의 낙태가 이루어진다고 발표하였다. 조사결과가 무려 2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보면,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발표를 보다 더 신뢰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표결과의 신뢰도를 차치하고라도, 현재 우리나라는 낙태와 관련한 통계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대부분의 낙태가 암암리에 행하여지고, 불법시술이라는 명목으로 일부 의료기관이 폭리를 취하는가 하면, 임산부가 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담당 의사에게 시술건수와 낙태이유를 신고하게 하여, 관할 행정기관이 공식적으로 통제하고 엄격하게 관리·감독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암암리에 불법적으로 행하여지던 낙태가 합법적인 절차로 들어오게 된다. 적어도 합법적인 절차로 시술이 이루어진다는 전제가 확립되었을 때, 낙태죄 개정도 의미가 있다. 일본 모체보호법은 낙태시술을 하는 지정의사는 매월 10일까지 관할 행정기관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에 있어서도 이러한 신고의무를 면밀히 검토하여 편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독일에서는 ‘임신 12주 이내’, 임산부의 의사(意思)에 의한 자유로운 낙태가 허용된다. 다만, Roe v. Wade 이론과 가장 큰 차이는 ‘상담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1975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보호는 임부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12주 이내 낙태허용 규정’에 대하여 위헌결정을 하였다. 1993년에도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현재 독일형법 제218조a 제1항에 ‘12주 이내 낙태 규정’을 명시할 수 있는 것은 제219조의 상담규정과 임신갈등법(SchKG)이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219조 상담규정은 “상담은 태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여성이 임신을 지속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낙태는 너무나 심각하고 막대한 부담이 있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하다”고도 하고 있다. 임신갈등법(SchKG)에는 낙태에 관한 구체적인 절차를 두고 있으며, 특히 ‘비밀출산’ 등 양육이 곤란한 상황에서도 출산을 통한 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규정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이 종래의 법체계와 판례를 완전히 뒤집는 결과를 초래했음에도, “태아는 모체와는 별개로 생명권의 주체이다”라는 대전제는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시하는 입장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태아의 생명권보호’를 도외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독일형법 제218조a와 제219조를 보면, 태아의 생명권을 최우선에 두면서도 ‘12주 이내 낙태’ 여부에 관한 마지막 선택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양립하기 힘든 두 기본권을 규범조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취지로 볼 수 있다. 향후 낙태죄 관련 법률의 개정을 논의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해결방법은 반드시 참조하여 우리법에 반영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임신갈등법(SchKG)’은 구체적으로 소개된 예가 거의 없는 만큼, ‘법률규정’은 물론 ‘독일에서의 임신갈등법 운용상황’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검토결과를 우리나라에서의 ‘법 개정’과 ‘낙태관련 행정체계 구축’에 충실히 반영한다면,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모두 보호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