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기원전 750∼450년경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기지배 원리로서 발생하였지만, 18세기 이래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사상, 보편적 인권의 보장, 보통선거권의 확대와 결합하여, 전 국민이 선출한 대표를 통해 매개되는 대의제 민주주의로 진화하였다. 그리고 이제 민주주의는 그 내재적 흠결(예컨대, 시민과 대표의 괴리1), 포퓰리즘의 부상, 비자유적 민주주의 혹은 권위주의적 체제로의 회귀에 대한 취약성)과 외부적 상황변화(예컨대, 디지털 시대의 도래, 새로운 아젠다의 부상)에 직면하여 다시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현실의 ‘대의제 민주주의’로 돌아와 보자. 여기에서 국민들은 직접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대신, 대표를 구성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대변하고 대의하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기지배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 대표(representation)는 현재 (여기에) 있지 않은 존재를 (여기에) 있는 것으로 만들어낸다는(making-the-represented-present) 개념이므로,2) 국민은 대표를 통하여 대의기구 안에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고 관념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대표는 일차적으로 대의기구 내에서 국민의 모습을 반영하여야 하고 (기술적 대표성, descriptive representation)3), 실질적으로 국민의 의사와 이익을 대변할 것으로 (실질적 대표성, substantive representation)4) 기대된다. 비록 민주주의와 대의제, 대표 개념은 발생사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충돌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고,5) 심지어 민주주의와 평등이 결합하게 된 것도 근대적 현상이지만,6) 오늘날 이 개념들은 서로 결합하여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하는 핵심축이 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현대 민주주의국가 헌법들은, 국민주권 원리에 입각하여 국민 개개인에게 보통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평등하게 보장하고, 그것이 행사되는 선거절차를 통해 대의기구가 구성되도록 함으로써 구체화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대표가 제대로 구성되지 않는다면, 즉 국민의 일부가 제대로 대표될 수 없거나 배제되도록 대표가 구성된다면 그러한 제도적 흠결은 대표의 왜곡을 넘어, 대의제의 왜곡을 의미하며, 민주주의 체제로 정당화될 수 있을지 우려를 자아내게 된다. 대표가 양적으로 또는 질적으로 왜곡될 때, 제대로 대표되지 않는 집단의 의사는 ‘선거’와 ‘대표’라는 관념적 구성물에 의해 허공으로 증발하고 말 것이며, 그러한 민주주의는 더 이상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나 법적으로 그러한 흠결은 형식적으로는 허용되지 않는다.7)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집단의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수적으로 소수이거나, 소수가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입장을 적절히 대변할 대표를 의회 내에 확보하고 있지 못한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양적으로 또는 질적으로) 적절히 대표되지 못함으로써, 이론적으로는 주권자의 지위에 있으면서 사실상 주권자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여성, 장애인, 소수민족, 연소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대표를 어떻게 구성한다 하여도 전체 사회를 완전하게 재현하거나 완벽히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대표성의 흠결문제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직면한 최대난제 중 하나이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난제를, 역사적으로 가장 제대로 대표되고(represent) 있지 못한 집단인 ‘여성’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여성은 역사상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인구의 반을 구성하여 수적으로 소수가 아님에도, 정치적·사회적·경제적으로 소수가 된 독특한 집단이다. 그리고 의회는 민주주의 정치제도 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대의기구이고 정치적 경쟁의 장(political arena)인 동시에, 무엇보다도, 정부형태가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도 비교법적 검토가 가능한 보편적 입법기구이다. 따라서 한 국가의 의회 안에 여성이 얼마나 어떻게 대표되고 있는지는, 여성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과소대표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해당 의회의 대표구성이 얼마나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
2021년 6월 기준, 193개국의 국회의원 중 여성의원의 비율은 단 25.5%이다.8) 역사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전체 인구의 약 절반씩을 차지해왔던 점에 비추어보면9) 의회내에서 여성의 숫자는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것도 여성의 참정권이 법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이래 지난 100여 년간 꾸준히 증가해온 결과이며, 특히 1990년대 중반 여성정치할당제 도입에10) 힘입어 극적으로 상승한 결과이다. 1995년 여성의원 수가 전 세계 평균 11.5%였던 데 비해 현재 두 배가 넘게 증가하였고, 여성의원 수가 30%를 넘는 의회를 가진 국가가 1997년의 경우 3%였다가 2019년에 28%까지 증가하였다.11) 그러나 여전히 각국의 의회내에 남성의원의 수가 지배적인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발전 속도라면, 2063년이 되어서야 남성과 여성 국회의원 수가 반반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12)
한국의 경우, 광복 후 1948년 5월 10일에 치러진 제헌의회 선거에 여성후보자가 총 19명 출마하였으나 1명도 당선되지 못하여, 여성이 1명도 없는 제헌의회로 출발했다. 그러다가 1948년 헌법제정 후, 국회의원 중 3명이 관계로 진출함으로써 치러진 1949년 재보궐선거에서 대한여자국민당13) 소속의 임영신이 당선되어,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제1대 국회의 여성의원 비율은 0.5%가 되었다.14) 그 후 70년 동안, 여성 국회의원수는 서서히 증가하였다.15) 2021년 현재, 여성 국회의원은 300명 중 총 57명(지역구의원 29명, 비례대표의원 28명)으로 전체의원의 19%에 해당하는데, 이 숫자는 역대 대한민국 국회 사상 가장 많은 숫자이다. 그러나 전 세계 평균인 25.5%에도 못 미치고, 국제의회연맹(IPU) 통계에 따르면, 2021년 6월 기준 193개국 중 119위,16) OECD 회원국 37개국 중 35위에 해당한다. 현재 한국이 전 세계 민주주의 척도에서 full democracy로 분류되는 국가라는 점에 비추어 보나,17) 한국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수준으로 보아도, 의회내 여성비율은 매우 낮은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다.18)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의회내에는 19%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여성의 정치적 과소대표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19) 동시에 대한민국 국회가 남성 89%, 여성 19%로 구성된 성비가 매우 불균형하게 구성된 국회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Ⅱ. 정치적 과소대표문제의 적극적 해결책으로서 할당제
여성의 정치영역에서의 과소대표 문제는 오랫동안 ‘젠더 불평등(gender inequality)’의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20) 정치적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대의기구에 여성의 수가 적다는 것은 정치영역으로부터 여성(집단)이 배제 내지 소외(excluded and marginalized)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성에 대한 정치적 불평등 내지 차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 평등한 참정권의 실현이 방해되고 있다는 측면을 넘는 문제로서, 대의기구에 대표가 참여하지 않으면 해당 집단의 정치적 대표성이 확보되지 않고, 그렇게 되면 현존하는 차별을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에, 최소한의 집단대표를 보장하기 위해 일종의 교정수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다. 즉, 여성의 정치적 과소대표문제가 기성의 정치제도와 관행에 의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발생한 문제라면, 문제요소를 제거하고 제대로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합리적 전략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90년대 이후 여성공천할당제는 역사적·제도적·사회구조적으로 정치참여가 제한되어온 (또는 차별받아온)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정상화’하기 위하여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수단(fast track)21)으로 자리잡았다.
실천적 전기가 된 것은, 1995년 유엔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채택한 북경행동강령이었다. 북경행동강령(Beijing Platform for Action)은 “차별적인 태도와 관행”,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대한 인식 위에서 정치적 의사결정영역에서의 여성의 저대표성(under-representation of women)을 파악하고,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정치적 역할을 나누어 가질 수 없도록 만든 제도적 및 문화적 메커니즘에 주목하였다. 그 결과, 여성의 정치적 저대표성 문제의 해결 책임은, 여성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를 확인하고 교정할 수 있는 국가기관에게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여성의 최소한도의 참여를 가능케 해야 한다는 관점으로부터 동등한 참여(gender balance)로 의제의 방향을 전환하였다.22) 여성의 동등한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부와 정당에 대해 선거에서의 여성할당제와 같은 적극적 평등실현조치(affirmative action)를 채택할 것을 제안하였다. 강령이 의사결정과정에의 여성의 30% 참여를 목표로 설정하고, 여성 정치참여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의 필요성을 천명한 이후, 많은 국가들이 정치적 영역에서의 성평등을 국가적 과제로 인식하고 법제도적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후 10년간 의회내 여성비율 30%를 달성한 국가가 4배 증가하여, 1995년에는 단 5개국에 불과했지만 2005년에는 30% 수준을 달성한 국가가 20개국으로 늘어났다.23) 2021년 현재, 전 세계 110개국 이상에서 다양한 종류의 할당제(quotas)가 운영되고 있다.
선거에서의 성별 할당제(electoral gender quotas)는 국가별로 여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 유형을 크게 둘로 나누면, 선거에서 정당의 후보자명부에 여성을 최소한 몇 퍼센트 포함시킬지 설정해두는 후보할당제(candidate quotas)와 전체의석 중 여성(과 같이 과소대표된 그룹)에게 할당할 의석수를 결정하여 두는 의석유보제(reserved seats)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24)
의석유보제(Reserved seats)는, 헌법 또는 법률에 의해 일정수나 일정비율의 의석을 여성에게만 배정하는 제도인데, 여성만을 대상으로 별도의 선거명부를 작성하거나 지역구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르완다, 이집트,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네팔 등 26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25) 이집트의 경우, 헌법에서 하원에 여성의 적절한 대표성을 확보할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헌법 제11조), 전체 598명으로 구성된 하원 의석 중 4분의 1을 여성에게 배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전체의석 5% 이내에서 의원을 초과임명할 수 있어서, 현재 총 591명의 하원의원중 여성의원은 162명(27%)이다.26) 모로코의 경우, 국회 395개 의석 중 305석은 92개의 선거구에서 비례대표선거를 통해 선출되고, 60석을 여성에게, 30석은 40세 이하 청년층에게 배정한다. 여성에게 유보된 60석은, 전국구 정당명부 비례대표선거를 통해 채워진다. 현재 여성의원수는 81명(21%)이다.27)
후보할당제는 법적 할당제와 정당자율 할당제로 나뉜다. 법적 할당제(Legal candidate quotas)는 헌법이나 법률에서 일정한 (최소한의) 숫자나 비율의 여성후보자를 공천하도록 정당에게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한국을 포함하여 57개국에서 운영 중인데, 이 국가들에서 여성의원수는 평균 27%이다.28)
반면, 정당자율 할당제(Voluntary party quotas)는 법으로 강제하지 않고, 정당이 당헌이나 당규로 여성 공천비율을 정하거나, 정당들간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 자발적 형태의 할당제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남녀불문 각 성별이 최소 30% 내지 40%가 되도록 후보를 선정하는 형태이다.29)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등에서 운영중이며, 유럽국가들에서 많이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30) 스웨덴의 경우, 녹색당, 좌파사회주의당, 사회민주당이 후보자명부에 남성과 여성을 각각 50%씩 지퍼시스템으로 등재하기로 합의하여 운영하고 있는 한편, 다른 정당들은 이보다 온건한 안을 자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사회민주당(SPD), 기독민주당(CDU), 좌파당, 녹색당연합이 각각 서로 다른 방식과 비율의 여성할당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데, 국가마다 위 방식들을 단일하게 또는 혼합해서(예컨대, 르완다의 경우, 지정의석제도와 법적 할당제를 함께 시행)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여성후보자 추천비율과 추천순위 즉 후보명부 위치에 대한 강제규정이 있는지(예컨대, 비례대표 명부에서 당선가능성 없는 하단에 집중시키는 것 방지)와 할당제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제재조항이 있는지도31) 할당제의 유효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선거제도별 할당제의 효과를 검토해보면, 할당제는 비례대표 선거에 적용하기 더 쉬울 뿐 아니라 효과적이기도 하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32) 할당제를 채택한 국가들 중 여성의원 비율이 제일 높은 국가들의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였고, 가장 적은 여성의원의 숫자는 다수대표제에서 나타났고, 두 제도를 혼합한 경우는 그 중간을 차지했다.33)
제1대 국회에서 여성의원이 1명이었던 것이 2020년 총선으로 57명이 되기까지 70년이 걸렸다. 바꾸어 말하면, 남성이 99.5%이던 국회가 70년 후 남성 81%와 여성 19%가 된 것이다. 이것도 2000년 치러진 제16대 국회의원선거까지 5.9%에 머무르다가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 직전 정당법 개정으로 국회의원선거에서 비례대표 여성할당 비율을 종래 30%에서 50%로 높인 후 제17대 국회에서 여성의원 비율이 13%로34)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다.35) 결국, 여성이 국회에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진출하는 데에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여성할당제라는 적극적 조치가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여성공천할당제는 2000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 30% 여성공천 의무의 형태로 처음 도입되었다. 이후 할당제 적용범위가 조금씩 확대되어,36) 현재는 공직선거법 제47조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선거에서 50% 여성공천과 남녀교호순번제(즉 지퍼시스템)를 의무화하고(동조 제3항),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선거에서 지역구총수의 30% 여성공천을 권고하고 있으며(동조 제4항),37) 비례대표의 경우 위 의무 위반시 후보등록을 무효화하고(제52조 제1항 제2호),38) 지역구의 경우 위반에 대한 제재라기보다는 정치자금법에 의해 여성후보 공천비율에 따라 여성추천보조금을 차등지급하여 독려하고 있다.39)
그러나, 의무화된 비례대표 공천에 비해 지역구 여성할당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제21대 총선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1,118명)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19%(213명)에 불과했고, 지역구 당선자 253명 가운데 여성의원 비율은 11.5%였다. 제17대∼제21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지역구 여성 당선자 숫자는 남성 당선자의 10%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지역구 국회의원선거에서의 여성후보 30% 공천은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심지어 비례대표 50% 추천과 홀수번 여성공천의무를 위반하는 사례도 그동안 속출하여, 적절한 제재규정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제기되었다. 결국 2018년 4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으로 이를 위반한 후보자 등록을 무효로 하는 규정이 도입되어 2020년 제21대 총선부터 적용되었다. 할당제 도입 후 전체 여성의원의 증가세를 살펴보아도, 할당제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친 2004년 총선부터(13%) 2020년 총선(19%)까지 16년간 6% 증가하는데 그쳐, 국회내에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만한 숫자에 – 일반적인 할당제에서 임계치(critical mass)로 잡는 30%에도 – 여전히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 여성공천할당제의 한계는 제도설계에 내재한 한계와 제도외적 요인에 의한 한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우선 제도적 요인으로 첫째, 공천할당제가 의무화된 비례대표의석이 지역구의석에 비해 너무 적어서 할당제의 효과가 미치기에 미미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40) 선거제도별로 할당제가 미치는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은 여러 연구가 입증하고 있는데, 다수대표제보다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국가들에서 할당제 효과로 여성의원 수가 더 큰 폭으로 증가하였음을 통계를 통하여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국회는 전체의석 300석 중 비례대표 의석이 47석, 15.7%밖에 안되므로,41) 의무화된 50% 할당제를 통하여 견인할 수 있는 여성의원 숫자가 극히 제한적이다. 따라서, 비례대표의석을 높이든지, 지역구 할당비율을 높이든지 하는 대책이 요구된다. 둘째, 지역구선거의 경우 할당제를 권고하는데 그치고 있어(“추천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할당제 시행에 대한 강제력이 없는 까닭에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42) 이러한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지역구 국회의원선거 및 지역구 지방의회의원선거에서 지역구 총수의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정당에 강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수차례 발의되었다.43)
제도외적 요인은 –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보이는데 – 할당제가 여성에 대한 특혜이자 공정한 선거경쟁을 저해하는 장치라는 비판적 시각이다. 비례대표 강제할당제 자체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주장이 학계에서,44) 정당에서 공공연하게 주장되어 왔다. 남성정치인들이 강력한 반대성명을 낸 적도 있고,45) 심지어 최근 일부 정치인들은46), 사회적으로 남녀갈등이 첨예해지자 일부 지지층을 의식하여 여성할당제를 폐지하자고까지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47) 그러나 여러 경험적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여성의원의 수적 증가가 실질적 대표성 증진 차원에서나, 남성이 지배적인 의회내에서 외면되었던 의제들이 가시화되고 법제화되는 데에 있어 긍정적으로 작용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48) 또한 일부 경쟁력없는 기성 정치인들이 퇴출됨으로써 어떤 면에서는 능력주의를 오히려 강화시킨 결과를 가져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49)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할당제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고 능력없는 엘리트 여성의 상징적 등용으로 폄하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아도,50) (의회에 어느 한 성이 60%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성균형의회’에 대해 제20대 국회의원 중 55%가 반대, 45%가 찬성하는 의견을 보였고, 특히 지역구 의원들과 선수(選數)가 많은 의원들 사이에서 반대의견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할당제에 대한 이와 같은 부정적 인식은, 동 제도가 정당들에서 자발적으로 이행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정치적 소수집단으로 고착되어온 여성의 정치참여율을 현재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데 할당제가 상당히 기여하였음을 다양한 연구와 통계가 보여준다.51) 그러나 할당제를 소위 ‘한정된 정치적 자원을 여성에게 특별히 배려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이해할 때, 법적·사실적 차원의 저항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래에서는, 할당제에 대하여 – 뿐만 아니라 다음에 살펴볼(Ⅳ.) 동수제에 대해서도 – 흔히 제기되는 비판논거들에 대해 검토해보겠다. 앞의 세 가지는 (헌)법적 차원의 비판, 다음 세 가지는 할당제의 정치적 효용에 대한 비판이라 볼 수 있다.
첫째, 할당제는 남성에 대한 부당한 차별로서, 헌법의 평등원칙에 반한다는 논거이다. 즉,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고 여성에 대한 특혜라는 주장이다. 할당제는 일종의 ‘적극적 평등실현조치(affirmative action)’로서 과거에 차별받았던 집단에 대하여 보상적 차원에서 잠정적으로 시행하는 우대조치이고, ‘과거의 차별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던 현재의 남성’이 ‘과거에 차별받은 당사자가 아닌 현재의 여성’을 위하여 불이익을 받게 되어 부당하며, 따라서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참정권을 가진 시민이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남성과 여성을 차별취급하고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ⅰ) 만약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인데 현저히 불공평한 처지에 있고, 그것이 개인의 능력이나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면, 그러한 불평등을 제거하고 공정한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사회구조적으로 왜곡된 상황을 보정하고 개선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볼 수 있다. ⅱ) 무엇보다도, 이러한 적극적 조치가 시행되는 영역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는, 고용, 교육,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적용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적극적 조치가 과거에 차별을 받아온 소수집단에 대한 잠정적 우대/배려조치라면, 이에 비하여 (온 국민의 대표로 구성되어야 할) 의회에 인구집단을 공평하게 대표시키기 위한 조치는 잠정적·일시적으로 시행되는 조치라기보다는, 대표기능과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유지되어야 할 제도본질적 요청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인구의 절반이 반영되지 않는 대의기구를 운영하는 것이 오히려 과소대표된 집단의 권리(right to be represented)를 침해하는 것이자, 대의제 원리에 반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둘째, 할당제는 정치적 대표를 능력이 아닌 성별에 의해 선출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공직취임에 있어 능력주의에 반한다는 논거이다. 이와 관련하여, 선출직 및 공직에서의 여성대표성 보장제도는 헌법 제25조에서 보장된 공무담임권과의 갈등요소를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52) 공무담임권이 공직취임에 있어 능력주의를 본질로 한다는 점이 할당제나 동수제 실시에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에 있어서 정치적 대표의 의미에 본질적으로 특정한 능력과 자질이 결부되어 있지는 않다. 즉, 대의제에서 대표의 자격은 대표자 개인의 능력과 특별한 자질을 기준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참정권을 가진 시민인지, – 조금 더 요구한다면 – 공적 현안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합리적 사고수준을 갖추었는지 이다. 이미 전체 사회내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균적 교육수준이 거의 같다는 점, 남성 의원들의 경우에도 개인이 특별히 갖추어야 할 일신전속적 능력이라는 검증대에 세우지 않고 일단 선출되면 국민대표로 수용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능력을 내세워 여성의 과소대표 상황을 근거지우려고 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또한, 헌법 제25조의 공무담임권에는 선출직 공무원의 피선거권 뿐만 아니라 국가의 기간을 형성하는 비선출직 공무원으로의 취임 및 해당 공직수행의 자유를 포함한다. 따라서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공직윤리 등이 엄격히 요구되는 공직제도 하의 공무원인 후자에 대하여 요구되는 임용·승진의 기준인 능력주의를 전자에 대하여 바로 전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성이 선출되어 경쟁력있는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게 됨으로써 반능력주의로 흐른다는 시각에 대하여는, 오히려 한 집단이 과다하게 대표되면 좁은 능력 풀에서 대표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고 볼 수 있으므로, 할당제를 통해 남성의 과다대표성에 상한을 두는 것은 오히려 능력주의에도 반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53)
셋째, 할당제는 정당의 공천권과 유권자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민주주의원리에 반한다는 논거이다. 오늘날 정당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인 축의 역할을 하며, 국민대표기관의 대표기능을 실질화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54) 시민들은 비례대표 선거 뿐만 아니라 지역구 선거에서도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들 가운데서 자신의 대표자를 선출할 수밖에 없다. 지역구 선거에서도 정당이 후보자를 어느 지역에 공천할지가 당선가능성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구 유권자의 선택을 이미 제한한다. 물론 유권자가 어떤 정당을 선택하는지가 의석을 결정하지만, 할당제가 있든 없든 심지어 정당이 초과할당을 하든, 유권자의 선택은 정당에만 직접적으로 미친다. 특히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정당에서 결정한 후보자명부 안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이 이루어지므로, 정당의 결정력은 절대적이다.55) 따라서, 후보자 선택권에 미치는 유권자의 영향력은 이미 선거제도가 운영되는 방식 자체에 있어 제한적이며, ‘유권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후보명부를 가진 정당’ 그 자체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현행 비례대표 선거방식이므로, 그러한 한 “비록 후보자 각자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선거권자가 종국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선거결과가 선거행위로 표출된 선거권자의 의사표시에만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56) 그러므로 정당의 후보공천에 영향을 미치는 할당제 자체가 유권자의 선택권을 침해하거나 직접선거원칙을 위배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국민의 선택권은 대표성이 충분히 구현된 의회구성에 의의가 있으므로, 여성의원수나 여성후보자 수가 적었던 과거에 오히려 남성후보자에 대한 선택이 강요되어 온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하면서, 할당제를 통해 여성후보자에 대한 선택권을 넓히는 것이 유권자에게 다양한 후보를 제시함으로써 선택권을 확대시키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57) 정당 역시, 공천과정이 정당의 완벽한 재량하에 놓여 있다기보다는, 민주적 절차로 형성되어야 한다는(헌법 제8조 제2항, 공직선거법 제47조 제2항) 규범적 요청에 구속된다. 또한 헌법의 평등원칙도 객관적 법규범으로서 입법자를 구속하므로58) 선거관련법제의 입법적 형성에 있어 고려되어야 할 기준이라 볼 수 있다.59) 따라서 여성이나 청년 등 정치영역에서 배제되거나 불이익을 받아온 집단에 대한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할당제가 민주적 대표형성이나 실질적 평등의 실현 등 헌법적 정당성을 갖는다면, 이는 정당의 공천권 행사에 대한 정당한 제한근거가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할당제가 ‘실질적 대표’ 관점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지,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다. 즉, 여성공천할당제를 통해 의회에 진출한 여성의원들이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나 입법을 하는데 기여하였는지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기술적 대표성의 증가가 비례적으로 실질적 대표성 증진으로 이어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전자는 후자의 필요조건으로 해석되기도 할 만큼,60) 양자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대표자가 적어도 어느 정도 참여/참석을 할 때에만, 피대표자의 의사나 이익을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근본적으로 남성의원들에게 남성에 도움이 되는 정책결정을 하였는지 묻지 않듯이, 여성의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성의원들은 하나의 동질적 집단이 아니다.61) 여성과 관련된 안건이라고 하여도 다른 안건들과 다를바 없이, 성별을 불문하고 보다 관심있고 전문성있는 의원이 더 잘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는 실질적 대표 내지 대표기능 자체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여성이 ‘여성을 대표한다’고 할 때, 실제로 구체적인 여성관련 의제를 더 주목하고 잘 다룰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문제를 깊이있게 들여다보면, 여성의원들이 여성으로서 살아온 생활경험과 고유한 인식관점을 가지고 대의기구에 참여하게 되면, – 남성으로만 구성되어, 남성으로서의 생물학적, 문화적, 정치적 생활경험을 공유한 집단이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 그렇게 다양성을 확보한 의회는 더 나은 심의와 결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가능하다.
다섯째, 할당제는 일종의 최소비율 의석을 여성에게 배정하는 개념인데, 이 제도가 요구하는 30% 내지 40%라는 달성치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의석의 최대한이라는 관념을 심어줄 가능성이 있지 않은지 우려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일종의 유리천장이 되어 여성과 남성이 궁극적으로 달성해야 할 50:50이라는 완벽한 평등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할당제처럼 최소치로 설정된 30%마저 도달하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그러한 할당제를 통해 비로소 현재와 같은 수준의 여성의원 숫자가 확보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할당제가 없는 미국 하원에서는, 남녀 의원이 동수가 되려면 앞으로 100년도 더 걸릴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30%라도 할당제를 두어, 여성이 대의기구 안에 일정 숫자 이상으로 참여하게 되면 그들이 그 이후의 입법적 개선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또 소위 “수용가능한 최소한도(acceptable minimum)”를 변화시켜 그 이하로 내려가지 않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62)
여섯째, 할당제가 실제로 여성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기여하였는지, 오히려 역량이 없는 여성을 의회에 진입시킴으로써 역효과를 낳은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제기이다. 재선가능성이 없는 초선의원만 양산한다거나, 정당지도부에 종속되는 경향이 있다거나, 상징적 의미만 있는 인물(소위 ‘token woman’)이 의회에 진출하는 통로가 되고 있지 않은지, 할당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의회내 소수에 불과한 여성의원 숫자를 가지고 여성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성과를 논하기에는 성급한 측면이 있다. 정당들이 잠재력 있는 후보들을 진지하고 신중하게 발굴해내고 그들이 의회에 진출하여 더 공평한 정치적 경쟁의 조건을(예컨대, 정치관계법 개정 등) 형성한 후에 비로소 할당제의 실질적 기여효과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선거의 조건이나 의회내 관행(예컨대, 의회지도부나 상임위원회 구성에 있어 여성의원들에게 배당되는 역할들63))이 반드시 평등하게 조성되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64)
Ⅲ. Gender Parity 법제화를 위한 외국사례
1960∼70년대부터 활발하게 전개된 일련의 여성주의 운동들, 그리고 UN과 유럽평의회에서 여성의 정치적 과소대표문제 해결을 위해 발전시킨 새로운 패러다임의 영향으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유럽 여러 국가의 헌법상 평등권 조항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주된 경향은, 일반적 형태로 규정된 형식적 평등보장 조항은 그대로 두더라도, 실질적 평등(substantive equality)이나 남녀 동수(parity) 원칙이 평등조항에 새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65) 기존의 헌법에서 형식적 평등을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에 만연한 불평등 문제를 해소시키기에는 역부족이므로, 국가는 사회내 구조적 불평등을 시정하여야 할 적극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이미 이전부터 각국에서 정치영역에의 여성참여를 증진시키고자 도입한 적극적 조치들(positive action measures)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들이 각 국가의 헌법원리에 반한다거나 기존의 성평등 조항을 위반한다며 위헌문제가 제기되자, 실질적 평등이나 남녀동수원리에 근거하여 헌법의 평등조항 자체를 개혁함으로써 정치영역에서 양성이 균형있게 대표될 수 있도록 하자는 운동으로 새로운 흐름이 전개된 것이다. 아래에서는 여성할당제와 같은 적극적 평등실현 조치들이 기존 헌법의 해석의 틀 내에서 어떠한 한계에 부딪쳤고, 어떤 맥락을 통해 헌법에 적극적 조치 근거규정이나 남녀동수 보장규정이 도입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독일의 주 단위에서 제정된 동수법에 대한 주헌법재판소의 최근 결정들도 검토해볼 것이다. 특히 그러한 헌법적 시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각 행위주체들, 즉 시민사회, 전문가 집단, 국회와 정부, 법원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였는지 살펴보고, 남녀동수 의회를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접근방식이 유효하고 적절할지 검토할 것이다.
1974년 민주화의 산물인 1975년의 그리스 헌법은 일반적 평등권 조항 외에 처음으로 제4조 제2항에서 양성평등 조항을 채택하였다. (“그리스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Greek men and women have equal rights and equal obligations.]”) 그러나 헌법 제116조 제2항(2001년 개정 전)67)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가 있고 법률이 규정하는 경우에는 위 평등원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법원에서는 종종 이 조항을 근거로 허용될 수 있는 차별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하여 여성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명목하에 남성과 여성의 차별취급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제116조 제2항이 원용되었다.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입법부와 사법부에서, 종래의 불평등을 지속시키는데 위 조항이 원용되었는데, 예컨대 남성이 지배적인 직역에 여성고용을 제한하는 할당제(restrictive quotas)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되었다. 즉, 헌법 제116조 제2항이 헌법상 양성평등원칙을 우회하는 예외를 광범하게 정당화하는 근거로 동원됨으로써, 헌법 제4조 제2항에 규정된 형식적 평등조항의 효력을 약화시키는 수단이 되어 양성평등(gender equality)에 불리하게 작용하여왔다.
그러던 중, 2001년 헌법개정을 통해 제116조 제2항이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의 적용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구성하지 아니한다. 국가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특히 여성을 불리하게 하는,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개정되었다.68) 이 개정을 통하여, 종래의 형식적 평등조항의 한계를 넘어 실질적 평등이 헌법상 원칙으로 끌어올려 졌다. 이로써 성차별적 제도를 시정할 국가의 적극적 조치가 정당화됨으로써 정치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의 다양한 영역과 활동, 다른 사회적 집단들의 실질적 평등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마련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69) 2001년 헌법개정은, 전체 헌법조문 79개를 개정한 광범한 헌법개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70) 위와 같은 개정이 당연히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개정 직전인 1998년, 최고법원인 Council of State (CoS)에서 여성할당제를 규정한 법률에 대해 기존의 선례에서 벗어나 합헌임을 선언한 것이 전환점이 되었다. 법원의 오랜 해석례가 극복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동 법원은 그리스 헌법상 양성평등 원칙, EU법, UN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을 근거로 하여, 여성을 유리하게 취급하는 적극적 조치가, 여성이 공공행정영역의 고위직에 과소대표되어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적절하고 필요한 조치라고 판단하였다. 법원에서 원용한 국제규범 특히 EU법의 발전은, 2001년 헌법개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제116조 제2항에 적극적 조치 조항을 도입하는데에도 영향을 미쳤다.71) 보다 직접적으로는 EU차원의 젠더평등원칙의 발전에 깊게 영향을 받은 여성인권전문 법률가들과 여성단체들이 연대하여 동 헌법개정을 통해 적극적 조치와 할당제 규정 도입을 강력히 압박했다고 한다.72) 이 과정에서 그리스의 가장 오래된 페미니스트단체인 Hellenic League of Women’s Rights (HLWR)과 공조하는 가운데, 성향과 방향이 서로 다른 여성단체들이 – 다른 논쟁적인 이슈들은 제쳐두고 – 적극적 조치 및 할당제 근거조항의 도입이라는 목표하에 여러 정당 소속의 국회의원들과 광범한 지지세력을 형성함으로써, 헌법개정을 이루어낸 것이었다.
프랑스는 근대 입헌주의를 연 시민혁명과 인권선언, 초기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정치문화로 인해 유럽에서 여성의 의회진출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였다. 1997년 전까지 선출직에서의 여성의 비율은 6% 정도로 유럽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었다. 1789년 혁명기에 이미 여성의 정치적 권리가 주장되었지만, 여성의 정치참여는 수 세기 동안 제도적으로, 그 이후에는 사회현실적으로 봉쇄되어, 1944년에야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고유하고 독창적인 페미니즘 이론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법제도적 개혁의 철학적·이론적 기초가 되었다.73) 여성의 낮은 정치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정치권의 노력도 꾸준히 전개되었으나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다가74) 1982년, 선거후보자명부에 여성을 25% 배정하는 여성할당제가 포함된 선거법개정안이 통과되었다.75) 그러나 이에 대해 야당의원들이 헌법평의회(Conseil constitutionnel)에 위헌심판을 청구하였고, 헌법평의회는 헌법 제3조에 비추어76) 정치적 대표성을 실현하는 원칙은 남녀간의 어떠한 구분도 금한다는 근거로 위헌결정하였다.77) 헌법개정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동시에, 여성의 정치적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이 1990년대 초반부터 남녀동수운동의 형태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마침내 1999년 7월 8일, 기존 프랑스헌법 제3조에 제5항으로 “법률은 여성과 남성이 임명직, 선출직 공직에 동등하게 진출하도록 장려한다.”가 추가되었고, 제4조에 제2항을 추가하여 “정당과 정치단체들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3조 제5항에 규정된 원칙의 이행에 기여한다.”는 규정을 추가하는 헌법개정이 이루어졌다.78) 이 헌법개정은, 프랑스에서 선거에서의 남녀평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개정헌법의 남녀동수 헌법원칙을 구현하기 위하여 2000년 6월, “의원선거와 선출직에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접근을 위한 법(이른바 동수법[빠리떼법])”79)이 제정되었다. 동법은 각 정당이 선출직 후보를 공천할 때 반드시 50%를 여성후보에게 배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인구 3,500명 이상의 시의회 선거, 비례대표 상원 선거, 레지옹의회 선거, 코르시카의회 선거, 유럽의회 선거, 생-피에르-미크론의회 선거의 경우 후보자명부에서 성비 차이가 1명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의 경우 남녀후보 성비가 2%이상 차이날 경우 성차비율에 따라 정당에게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이 삭감되도록 규정하였다. 동수법 제정의 효과로, 2001년 지방선거에서 여성의원 비율이 25%에서 47%로 상승하였고, 특히 인구 3,500명 이상 도시의 시의회 의석 중 여성이 47.5%를 차지했는데, 선출된 여성 상당수가 당파를 가지지 않은 교사나 직업이 없는 주부도 많았다고 한다.80) 반면, 2002년 하원선거에서는 다수대표제에 적용된 한계를 나타냈는데, 정작 동수법 제정에 앞장섰던 사회당조차 하원의원 후보자에 여성을 36%만 출마시켰다. 그리하여 동수법 강화방안을 논의하는 동시에 선거모니터링도 강화하였다. 2007년에 동수법 개정이 이루어졌는데,81) 남녀동수 공천을 명부순위 작성을 통해 우회하는 꼼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후보자 명부를 남성와 여성이 번갈아 배치되게(지퍼식) 작성하도록 하였다.
2007년 총선에서는 여성하원의원 비율이 드디어 39.7%에 이르러 임계치를 달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점진적으로 높아진 여성의원 비율은 정치 뿐만 아니라 직업적, 사회적 영역에서까지 남녀동수제를 실현시킬 수 있는 2008년 헌법개정과 2014년 입법을 이루어낸 동력이 되었다.
2008년 헌법개정은, 입법자로 하여금 남성과 여성의 균등한 대표성을 촉진하는 조항을 채택하도록 하기 위하여82) 1999년 개정으로 제3조 제5항에 추가하였던 “법률은 여성과 남성이 임명직, 선출직 공직에 동등하게 진출하도록 장려한다.”는 조항을 헌법의 원칙을 정하고 있는 제1조 제2항으로 옮기고, 문구를 다음과 같이 수정하였다: “법률은 여성과 남성이 임명직, 선출직 공직 및 직업적, 사회적 책임에 대한 동등한 접근을 촉진한다.”83) 그리고 제4조 제2항을 다음과 같이 수정하였다: “정당 및 정치단체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1조 제2항에서 정한 원칙의 실현에 기여한다.” 이 헌법개정에 따라 모든 공직의 40%를 여성이 차지해야한다는 법이 2012년 제정되었고, 2013년 1월 남녀평등최고회의(Haut Conseil a l’egalite entre les femmes et les hommes)를 출범시켜 대통령령과 총리령으로 세부규칙을 정해 정치영역 외에 사회, 문화 등 전 영역에서 여성대표성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를 구체화하였다. 마침내 2014년, 성주류화 원칙을 전면에 표명하고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되는 평등실현조치의 이행을 촉진하는, 포괄적 의미의 “여성과 남성의 진정한 평등을 위한 법”을 통과시켰다.84)
벨기에 헌법은, 일반적 평등권 조항으로 ‘벨기에 국민들의 법 앞의 평등’을 규정하는 한편, 제10조에서 남성과 여성의 평등은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치영역에서 여성이 지나치게 과소대표되고 있는 것이 계속 문제로 부각되자, 여성할당제를 도입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1980년대 이래 수차례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86) 1980년 1월 지방선거명부에서 한 성이 75%를 넘지 않게 하여야 한다는 법안을87) 발의하였지만 최고행정법원인 Belgian Council of State에서 헌법상 평등 및 차별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판결하였다. 1991년 3월에도, 유사한 법안이 발의되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지방선거와 유럽의회선거를 제외한 모든 선거에서 후보자들 중 한 성이 80%를 넘지 않게 하고 과소대표된 성별의 후보자에게 적어도 한 명은 당선가능성이 좋은 위치에 등재하는 내용이었다.88) 이러한 시도들은 의회 내에서 논쟁을 촉발시켰고, 1992년 정부에서는 후보자명부에 하나의 성을 66% 이상 포함하지 않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는 정당에 대하여 국가보조금 일부를 박탈하는 제재규정을 포함한 법안을 발의하였다. 이 법안에 대하여는 이제 Belgian Council of State가 여성할당제에 대한 입장을 약간 조정하였지만, 제재가 비례성을 위반한다고 판단하였다.89) 이후, 동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다양한 논의와 조정이 이루어졌고 1994년 드디어 통과되었지만,90) 논쟁은 끝나질 않았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할당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이들은, 적극적 조치(positive action)에 대한 무언가 다른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페미니스트들과 여성단체들은 동수(parity) 관념을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여성의 정치적 과소대표 문제를 형식적 평등과 차별금지 문제를 넘어, 남성과 여성이 완전히 평등한(fully equal) 사회를 향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1997년과 2002년 사이에 남성과 여성을 50%씩 추천하는 할당제를 도입하자는 10개의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었다. 비록 단 하나도 표결에 부쳐지지는 못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성평등 특히 동수민주주의(parity democracy) 개념을 둘러싼 이론적 논의와 공론이 활발해졌다. 결국 2002년 헌법개정에서는 평등조항을 ‘실질적 평등’ 보장의 방향이 아니라, 아예 ‘동수민주주의(principle of parity democracy)’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평등조항 개정이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새로 추가된 헌법 제11bis조는 “법률, 명령, 또는 [헌법] 제134조에 명시된 규칙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할 것을 보장하고, 보다 특별히는 선출직과 공직에의 동등한 접근을 촉진한다.”고 하고, 모든 수준의 행정부처에서 양성이 모두 대표될 것을 규정하였다.91)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헌법개정으로까지 이어진 동수(parity) 논의가, 원래 의회내 적극적 조치(할당제)를 확보하기 위하여 이루어지긴 하였으나, 여성의 정치적 과소대표문제를 평등권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로 파악하였고, 그러한 성비 불균형(gender imbalance)은 국가기관의 기능의 왜곡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1949년 제정된 독일기본법은 제3조 제2항으로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하여 일반적 평등조항 외에 별도의 남녀동권조항을 두고 있었다.92) 이 조항은 남녀의 생물학적 특성에 기한 차별만을 정당화하는 형식적 평등보장 조항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해 실질적 평등실현을 위한 보상적 조치의 근거조항으로까지 이해가 확대되었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활발한 헌법적 논의가 진행되었다. 동·서독의 페미니스트들의 강력한 지지와 여성국회의원들의 정파간 연합, 시민사회 운동가들의 노력에 힘입어, 1994년 헌법개정에서 국가의 남녀평등을 적극적으로 관철시킬 의무가 기본법 제3조 제2항 제2문으로 삽입되었다(“국가는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의 사실상의 관철을 촉진하며, 기존의 불이익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다.”93)). 그러나 이 헌법개정 과정에서도 그리고 이후에도, 새로 삽입된 조항이 성별에 따른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을 정당화하는지, 즉 헌법이 할당제와 같은 여성에 대한 우대조치를 허용하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았다.94) 이 문제 역시 헌법재판소의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었는데, 연방헌재는 과거의 불이익을 보상하는 차원의 우대조치는 헌법상 평등조항을 제한적으로 해석할 때 허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연방헌재는 기본법 제3조 제3항에 반영된 간접적, 결과적 차별을 인정하는 것도, 그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지는 적극적 우대조치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고 설시하였다. 이처럼 할당제와 같은 적극적 조치에 대한 법적 수용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별도로 헌법에 동수원칙(parity)까지 도입하는 흐름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대신, 독일은 공천할당제를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고 정당들이 자발적으로 할당제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국가로서, 여성의 정치참여를 촉진시키자는 세계적 흐름에 동참하여 왔다.
그러던 중, 독일 개별 주 차원에서 비례대표 공천시 남녀 동수를 공천하도록 의무화하는, 이른바 동수법 제정 움직임이 일어났다. 2019년 1월 브란덴부르크주 의회에서 동수법이 통과되었고, 2019년 7월에는 튀링엔주 의회에서도 동수법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여성후보자 동수추천 의무를 이행하기 어려웠던 소수정당을95) 중심으로 주 헌법재판소들에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이에, 2020년 7월 15일 튀링엔주 헌법재판소에서 먼저 동수법을 위헌판결하였고,96) 2020년 10월 23일에는 브란덴부르크주 헌법재판소에서도 동수법을 위헌판결하였다.97) 위헌판결의 주된 근거는 청구인 정당의 후보자 결정권 침해와 주민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선거권의 침해였다.
여기에서는 튀링엔주 동수법에 대해 내려진 위헌판결의 이유를 간략히 살펴보겠다. 심판대상은 2019년 7월 30일 통과된, 동수제를 도입하기 위한, 튀링엔주 선거법의 제7차개정법률,98) 이른바 동수법(Paritätsgesetz)이고, AfD(독일을 위한 대안당)가 동 법률에 대해 추상적 규범통제에 의한 위헌여부 심판청구를 한 사건이다. 청구인인 AfD는, 동법이 ⅰ) 주민들은 헌법상 국민주권 원리에 입각해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국가권력을 행사하여야 하고, 이때 국민들은 하나의 통일된 국민으로서 국가권력(형성)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주체이지 나누어질 수 없다는 점, 민주주의 원리는 형식에 관한 것이지 내용을 묻는 것이 아니므로 남녀가 국가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에 동등하게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해서 남녀동수 의회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민주주의 원리를 침해하고, ⅱ) 개인들의 피선거권과 선거권을 침해하므로 자유와 평등의 선거원칙을 침해하고, ⅲ) 정당이 후보자명부를 결정할 자유, AfD와 같이 여성후보자를 50% 충원하기 어려운 정당이나 여성유권자에게 호소력이 낮은 정당이 남성과 여성에게 어떻게 어필할지 결정하고 활동할 정당의 자유를 침해하고, 여성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는 다른 (특히 거대) 정당에 유리하게 작용하므로, 그로 인해 결국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의 자유와 기회균등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튀링엔주 헌법재판소는, 동수법은 1) 민주주의원리의 핵심이 국민주권인데, 동수법은 모든 국가기관 구성의 정당화주체로서 통일적인 국민(einheitliches Staatsvolk)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진 집단을 상정한다는 점, 그리고 민주주의원리에서는 자기결정이 중요한데 동수법은 민주적 선거의 결과를 미리 확정한다는 점에서 튀링엔주 헌법 제44조 제1항 제2문에서 보장하는 민주주의원리에 반한다는 점,99) 2) 모든 시민들은 선거에 있어 후보자로서의 동등한 권리와 후보자로 선택될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데 동수법은 이러한 권리를 제한하고, 정당 구성원들에게 후보자명부를 결정할 권리를 제약하는 등, 튀링엔주 헌법 제46조 제1항에서 보장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선거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100) 3) 동수법은 정당으로 하여금 여성 또는 남성 유권자를 어떻게 끌어들일지에 대한 정당 활동의 자유와 여성참여비율이 낮은 정당으로서 활동할 자유를 침해하고, 여성당원이 부족하여 후보자명부에 남녀 동수배정을 하기 어려운 정당에 대해 불리한 취급이 된다는 점에서 기본법 제21조 제1항의 정당의 자유와 기회균등권을 침해한다는 점,101) 4) 의회의 구성이 시민(주민)들의 구성을 반영해야 한다는(spiegeln müsse) 생각은 헌법적으로 근거를 가지지 아니하며, 의회민주주의 정부시스템 안에서 대표란 전체 시민(주민)의 대표(Gesamtrepräsentation)이지 특정한 집단의 대표가 아니라는 점,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을 의미하는 것이지 [부분적] 집단의 주권을 의미하는게 아니라는 점, 그리고 민주적인 의회 선거란 유권자와 정당이 누가 의원이 될지와 어떻게 의회가 구성될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102) 5) 발생사적으로 튀링엔주 헌법상 평등조항(제2조 제2항 제2문)이 – 그것보다 나중에 만들어진 – 기본법상의 적극적 조치의무조항(제3조 제2항 제2문)과 같은 의미도 아니고 그 해석에 구속되지 않아 동수법을 정당화한다고 볼 수 없으며,103) 6) 결국 동수법의 입법목적은 정당성이 없고, 그 제한도 좁은 의미의 비례성에 비추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하며,104) 동법을 위헌무효 선언하였다.
위 사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여성의 정치적 불평등이나 과소대표성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로서 할당제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기존 헌법의 형식적 남녀평등 조항의 해석과 적용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헌법개정을 통해 국가의 실질적 평등실현을 위한 ‘적극적 조치’의무(그리스의 경우) 또는 ‘정치영역에서의 남녀 동수보장’조항을(프랑스의 경우) 도입하게 된다. 단, 적극적 조치 조항은 헌법상 평등권을 실질적 평등으로 해석·적용할 수 있는 근거로서 할당제 자체의 위헌성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겠지만, 만약 할당제의 구체화 수준(예컨대, 여성 30% 할당은 합헌이지만, 40%는 과다하다, 지퍼식 공천은 위헌성이 있다는 등의 주장이 제기될 경우) 또는 제재조항의 위헌성을 문제삼을 경우, 헌법적으로 완벽하게 방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여기에는 다시 헌법상 ‘적극적 조치’의 의미 내지 ‘실질적 평등’의 개념에 대한 해석문제가 결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을 고려할 때, 정치적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이 수적으로 동등하게 대표되는 제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시 선출직 등 정치영역에서 남녀동수 보장 조항을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벨기에의 경우) 잠정적 결론이 내려진다. 물론, 여전히 사회적 공감대와 정치영역에서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남녀동수대표성 확보의 문제가 – 국가질서에 대한 근본적 결단이 필요할 때 비로소 성사될 수 있는 – 헌법개정이라는 높은 산을 넘을 수 있을지 회의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 사례에서 보듯이, 실질적 평등실현을 위한 국가의 ‘적극적 조치의무’가 헌법적으로 수용된 국가에서도, 동수법을 제정하여 남녀동수공천을 의무화하자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판단하였다는 사실을 신중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해당 재판부에서 채택한 위헌 논거들은 정치적 대표 개념에 대한 이해를 달리할 경우 반박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고, 반드시 다른 국가의 사법부까지 기속할 만한 타당성을 가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비교헌법의 방법론 차원에서 보면, 사법부에서 외국 판례의 논리를 원용할 때에는 해당 판결의 심판기준과 심판대상이 모두 해당 국가의 헌법과 실정법규범이고, 심판대상 규범은 그 국가의 정치제도와 사회적 맥락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실행된 것이므로, 위헌성이 논증되는 맥락(예컨대, 선거제도 관련 입법은 그 나라의 정부형태, 정당정치의 룰과 관행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함)이 다르고, 궁극적으로 해당 사법부가 따르는 고유한 법리나 지배적 이론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극히 신중해야 한다.105)
그러나 만약 해당 주헌법에 명시적으로 동수원칙 내지 선출직 동수보장 조항이 있었더라면, 문제되었던 동수법이 위헌무효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에서 남녀동수공천 내지 동수의회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을 통해 평등권 조항이나 피선거권 조항에, 또는 국민주권조항이나 국가목표조항에 ‘정치영역에서의 남녀 동수보장’조항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된다.106) 그것을 바탕으로 공직선거법과 국회법을 개정하여 구체적인 선거제도와 의석배분방식을 연계하여 개혁해 나가는 것이 헌법적 분쟁과 당분간의 정치적, 사회적 저항을 극복하면서 제도를 안착시키는 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Ⅳ. 민주적 대표의 관점에서 남녀동수 의회의 헌법적 정당성 및 헌법적 도입가능성
대의제의 핵심은, 국민주권을 전제로, 모든 남녀가 동등한 시민권을 갖고 대표를 선출/정당화하여 국가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다. 주권자 국민은 남성과 여성 절반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를 re-present하여야 할 대표는 남성이 대다수인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대표가 잘못 구성되어 대의기구의 결정과 심의 모두가 해당 공동체의 정체성에서 멀어지고, 주권자 집단의 진정한 의사와도 멀어지고 있다. 대표되지 못한 집단은 대의기구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소외됨으로써 대표되는 자의 구성과 대표하는 자의 구성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이는 결국 대표(representation)가 왜곡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표의 왜곡이 발생한 이유는, 국민주권과 정치적 대표라는 고도로 추상화된 개념이 형성되던 공간에서, 국민의 대표를 어떻게 인식하고 규정하였는지에서 비롯되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 국민주권론이 발전하던 시기(프랑스혁명기)에, 국민의 대표는 성별 차이 등 개인의 속성이 제거된 무성의 존재로서 추상적 개인으로 관념되었다. 봉건제적 신분제나 차별을 극복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획득하기 위하여, 국민이나 (국민주권을 구현해야 할) 국민대표 모두에게서 개인간 구체적 차이나 성별에 의한 차이는 부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종교, 성별, 인종, 민족 등 차이가 고려되지 않는 추상적 존재로서 국민 전체를 대표하여야 할 국민의 정치적 대표를, 성별(sex)을 근거로 하여 부분적으로 다른 취급을 하거나 우대하는 것은 국민주권원리에 위반한다는 논리를 구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존재하는 여러 속성 중, 특히 성별을 무시하고 일원적, 통일적으로 구성한 국민주권 관념은, 엄연히 존재하는 성별 구분, 성역할 및 성차별을 외면하고, ‘모든 인간의 권리’라는 이름 하에 당시의 정치적 영역을 지배하였던 남성의 권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허구성을 띈다. 사회의 절반을 구성하는 여성들이 정치적 대표 구성에 있어서는 절반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성별이 불균형하게 구성된 대표는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흠결있는 대의민주주의의 차원에서 설명되고 있다. 그리하여 정치영역에서 여성의 과소대표는 여성차별이나 여성에 대한 부정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결함과 대표성의 위기를 상징한다고 할 것이다.107)
종래에는 이와 같은 여성의 정치적 과소대표문제가 주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젠더 불평등(gender inequality) 문제로 다루어졌다. 실제로 여성의 정치적 과소대표는 정치적 자원에 있어 과소지배를, 남성의 과다대표이자 과잉지배의 레토릭으로 그려졌고, 젠더평등 관점에서 부당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1989년 유럽평의회 평등위원회 설립 1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동수민주주의(La démocratie partitaire)” 개념이 등장하였고,108)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대표성을 강조하고 이것이 민주주의의 필수요건이라고 선언하였다.109) 민주주의의 본질에 비추어 여성이 배제된 현실은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기초에 대한 도전으로서, 여성 개개인과 관련된 부정의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결함이나 정치적 대표성의 위기를 상징한다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된 것이다.110) 이후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문제는 – 정치영역에 국한한 것은 아니지만 – Parity 개념과 쌍을 이루어 실천적 목표로 주장되기 시작하였다. 사실 parity는 ‘동등함’, ‘균형을 이룸’, ‘공평’, ‘평등’ ‘비례에 맞음’ 중 그 어느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단어인데, 프랑스에서 이전부터 발전한 남녀동수이론의 맥락과 결합해서 보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개념인 gender parity를 정확히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111) 이에 gender parity는 연구자별로 “남녀동수”, “동수”, “동수제”, “젠더동수”, “젠더균형”, “성평등” “성균형” 등으로 표기되는데, 개념의 내포를 정확하게 옮긴 번역어를 선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젠더 패리티”라고 그대로 쓰는 경우부터 “동수”로 쓰는 경우112), “남녀동수”로 쓰는 경우113), 반면에 처음 동수 민주주의(La démocratie paritaire)가 표제로 나온 취지와 프랑스에서의 동수이론 전개에 전제된 성별관념을 고려할 때 “남녀동수”로 쓰는 것을 반대하는 견해114)까지 있다. 여러 측면을 고려한 결과, 이 논문에서는 ‘의회구성에 있어 남녀의 성비를 그 인구비례에 맞게, 즉 반반씩 구성하여야 한다’는 취지를 일의적으로 분명히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남녀동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의회내 여성의 정치적 저대표성’ 문제의 해결책을 ‘정치적 불평등과 할당제’의 관점에서 ‘민주적 대표와 남녀동수’의 관점으로 전환할 경우 어떤 실익이 있을까.115) 우선, 할당제의 관점에서는 여성을 여성으로서 공통의 이해와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라고 간주하고, 차별당해온 존재로서 정치적 기회의 일부를 할당해줄 대상이라고 전제한다. 반면, 민주적 대표 구성의 관점에서 동수의회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개인으로서의 여성을 상정하고, 주권을 가진 시민 절반 그대로가 대표하는 자의 절반이 되도록 맞춰주어(보정해주어), 현재와 같이 왜곡된 대표 구성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대표 개념의 정상화) 따라서, 동등한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시민 절반이 그들 스스로 왜 대표기구에 ‘포함되어야’ 하고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입증할 필요가 없다.116)
둘째, 할당제는 과거의 차별에 대한 보상적 견지에서 이루어지는 적극적 우대조치로서, 실질적 평등의 사실상의 관철을 통해 결과적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에 적극적 조치의무조항을 두고 있지 않은 경우, 일반적 평등보장 조항만 가지고는 실질적 평등으로 확장해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의 근거를 도출해내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한다.117) 반면에 대표제 원리를 통한 동수의회의 이론적 구성은, 그러한 논란을 비껴갈 수 있다. 헌법상 국민주권과 대의제원리, 국회의 민주적이고 평등한 구성에 대한 규범적 요청으로부터 민주적 대표 구성을 위한 동수의회의 근거를 구성해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할당제에서와 같이 여성에게 일정한 비율의 의석을 할당할 경우 마치 여성을 특별히 우대하는 조치로 느껴질 수 있지만 – 그로 인하여 특혜와 역차별 주장을 야기하곤 한다 – Parity는 일정하게 설정되는 비율이 아니라 반반, 즉 50% : 50%로 확정함으로써 중립적으로 보인다.
넷째, 할당제에서는 ‘여성이 25.5%나 된다’, ‘조금만 더 끌어올리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가능한데, 이 경우 여성의 과소대표성을 강조하고 여성이 (남성과 비교하여) 조금만 더 그 능력과 적합성을 입증하면, 더 많이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을 주게 된다. 그러나 동수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는 남성과 여성이 – 여하한 조건이나 능력을 불문하고 – 50% 대 50%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므로, 능력주의에 기한 비판이 제기될 여지가 없고, 여성과 남성을 비교하는 기준이 불필요하다.
여성할당제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남녀동수 의회구성에 대하여도 다양한 의심 내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심지어, 여성할당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남녀가 동수로 구성되는 의회는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견해를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남녀동수 의회는 할당제와 이론적·규범적 근거와 제도적 목표에 있어서 구별된다. 아래에서는 남녀동수 의회 구성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비판논거들을 검토해보겠다.
첫째, 남녀동수로 의회를 구성하는 것은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대표를 구성하는 대의제 원리에 반하며, 인위적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대의제 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를 선거 민주주의(electoral democracy)와 동일시하는 이해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118) 대의제 민주주의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오히려 국민들 중 어느 한 집단이나 계층이 과소대표되거나 과다대표되지 않고 국민의 다양성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의회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주권주의의 요청이라 할 수 있고,119) 한 성에 의한 의회의 독점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보아도120) 대의제 민주주의 원리에 보다 충실하다고 볼 수 있다. 남녀동수 의회를 구성하기 위하여는 선거후보자 명부에 남녀동수 공천을 의무화한다든가, 국회의석을 50:50으로 지정하고 남녀 후보자를 동반하여 출마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구체화할 수 있다.
둘째, 민주적 과정에 결과의 평등을 관철시킴으로써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한 주장은, 현재의 민주주의 상태에 만족하면서 그것을 더 발전시킬 필요도, 그 안에 존재하는 흠결을 보완할 필요도 없다고 볼 때에는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대표의 왜곡이 발생한 대의제 민주주의는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이며 대표제의 위기를 함축한다. 민주주의를 형식적으로만 이해한다면, 법적으로 보장된 선거권의 행사를 통해 선거에서 경쟁한 정당이나 정치인들 사이에서 선출된 사람들이 대의기구를 구성하고 정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민주주의 정부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메커니즘으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실질적인 차원에서 보면, 법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국민주권이 실현될 수 있어야 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선거권의 행사와 대표의 선출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 대표를 통해 개인들이 제대로 대표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선거집단과 피선거집단을 구성하여 정치적 평등을 이루도록 하는 것은121) 민주주의에 반하거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정당이나 정치적 세력이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면서 경쟁하도록 방임하는 것이 최선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대신,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국민주권원리, 공평한 대표구성, 선거의 자유와 공정, 인권과 소수자권리의 존중 등 다양한 요소가 모두 충족되어야지 최선의 민주주의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할당제에 대하여 제기되는 비판과 마찬가지 맥락에서, 남성들이 선거에서 경쟁할 기회를 불리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할당제가 과거의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잠정적 우대조치라면, 남녀동수 의회는 ‘의회’구성에 있어 온 국민의 대표성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조치로서, 잠정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의제가 운영되는 한 시행되어야 할 원칙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운영하면서 어떤 집단의 대표될 권리(right to be represented)가 외면되도록 대의기구를 구성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할당제를 20년간 운영해본 결과, 의무화된 비례대표 선거에서만 예상한 성과를 거두고 있을 뿐, 권고사항인 지역구 공천에서의 여성할당은 자발적 준수에 대한 희망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이고, 기성정치인들로부터의 저항도 크다. 뿐만 아니라, 할당제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지역구 공천도 의무화하거나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개선입법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오히려 비례대표의석을 줄이는 시도를 한 것이 국회이다. 이러한 상황만 보아도, 국회내에서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협조적으로 공존하고 있다기보다는 여전히 정치적 지배력이 편중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점을 보정하고자 하는 것이 동수국회의 구상인 것이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선출되도록 우대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넷째, ‘남녀’ 동수라는 개념이 남성과 여성이 아닌 제3의 성을 소외시킨다고 비판할 수 있다.122) 그러나 우선 전제할 점은, 여기에서 주장하는 남녀동수는 민주주의의 구성에 관한 것이므로, 남성과 여성 외로 구분되는 성별(intersexuality)을 가진 시민을 사회적·정치적으로 배제하거나,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구분에 입각한 보편적 이론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반드시 어느 영역에서나 ‘남녀동수’가 관철되어야 한다든가, 심지어 남성과 여성의 성비가 6:4가 될 경우에도 엄수해야 할 헌법적 원칙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남녀동수 의회’라는 개념은 위에서(Ⅳ. 1.) 살펴본바와 같이 현재 인구의 절반을 구성하는 여성이 의회에 그 마땅한 숫자만큼 대표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선택된 용어이다. 그 개념 속에 남성과 여성 외에 제3의 성을 배제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제3의 성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보호하여야 한다는 규범적 요청이 여성이 남성의 숫자와 동일하게 대표되어야 한다는 헌법적, 민주주의 제도본질적 요청을 배척할 논거는 되지 않는다. 전체 시민들이 남성, 여성 또는 제3의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현재와 같이 남성이 인구수대비 과다대표된 국회구성원리 내지 구성방식을 수정하자는 관점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제3의 성으로 분류되는 시민들의 집단적 대표성이 고려될 수 있도록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섯째, 유권자의 선거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30%도 아니고 심지어 50%는 할당제보다 더 심각한 침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이것은 남녀동수 의회를 위한 새로운 선거제도 내지 의석배분기준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만약 비례대표를 전면화하여 50% 여성공천을 의무화하거나 지역구까지 50% 여성공천을 확장하는 방식을 취한다 하더라도,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에 대하여 유권자가 선택할 자유는 여전히 남아있다. 오히려 50:50 국회를 구현하기 위한 선거제도나 명부제를 어떻게 구체화하고 조합하느냐에 따라 유권자의 선택지가 더 다양해질 수도 있다.
여섯째, 여성참여비율이 높은 정당에 대한 특혜로서 선거에 평등하게 참여할 권리에 대한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는 (위 Ⅲ. 4.에서 살펴본) 독일의 주 동수법에 대하여 위헌심판을 청구한 정당이 주장한 위헌논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당에게는 예고된 공천기준에 따라 당원을 모집하고 후보자를 발굴·선별하고 명부를 작성할 자유가 주어져 있다. 또한 남녀동수라는 기준은 예측가능하고 항구적이다. 따라서, 여성참여비율이 높지 않거나 여성에게 그다지 친화적이지 않은 강령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라 할지라도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하여는, 즉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는, 최선을 다해 여성참여율을 높이는 캠페인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123) 아무리 해당 정당이 여성 일반에게 호감을 얻지 못할만한, 또는 심지어 여성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홍보하고 있다 해도, 일단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면 국민 전체의 대표로서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입장을 고수할지 말지, 사전에 준비하여 선거에 참여할지 아니면 포기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사실 동수공천이라는 기준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여성비율을 갖고 경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선거과정에의 평등한 참여권이나 기회균등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할당제로도 언젠가 50:50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므로, 동수국회를 위한 입법은 필요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할당제도 궁극적으로는 성별이 균형잡힌(gender balanced) 의회를 이상으로 삼았으면서도 현실을 고려하여 단계적 접근책으로서 30%와 같은 최소기준 내지 임계치를 설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할당제와 같은 적극적 조치의 이론적, 전략적 방향과 동수국회의 그것은 다르다. 즉 동수국회는 직접적으로 국민주권과 대의제민주주의 원리에 의하여 정당화되며, 어느 정도면 되었다는 식의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달성치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최종적 목표인 50%를 바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할당제의 효과가 드라마틱하게 유지되지 못하는 이유는, 기회만 되면 할당제를 지키지 않고 우회하거나 심지어 ‘이제는 남녀평등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으니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124) 국회의 남녀구성비는 최소수준에서 만족하거나 절충할 사안이 아니라, 당위적으로 인구비를 반영하여 남녀동수로 구성되어야 할 문제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를 입법을 통해 제도화하는 방향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 요청된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여성단체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할당제를 확대하는 차원을 넘어 남녀동수를 제도화하기 위한 활동과 연구가 상당히 이루어졌다.125) 선거에서 남녀동수 후보자를 요구하는 운동의 뚜렷한 형태는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둔 2009년경부터 찾아볼 수 있는데126) 이 시기 여성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2010년 지방선거 남녀동수 범여성연대’를 결성한 후, 지방의원 비례대표 의석비율을 50%로 확대하고 선출직의 30%를 여성에게 배정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을 요구하였었다.127)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여성계와 여성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의 확대방안으로 의석할당제, 여성전용선거구제, 남녀동반선출제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특히 여성비율을 50%까지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스웨덴의 정당들이 시행하고 있는 50% 여성할당제와 프랑스의 동수법을 주요 해외사례로 소개하며, 선거관련 법제의 개선을 촉구하였다.128) 2014년부터는 한국여성정치연구소에서 남녀동수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적 논의와 학술토론회를 개최함으로써 논의를 확장해나가는 노력을 이어갔고,129) 해외의 사례들에 대한 검토를 중심으로 동수제 관련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그 누적된 결과로, 지난 2016∼18년에 진행된 헌법개정 논의에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의 근거규정과 ‘공직진출에 있어 남녀동등 참여규정’을 포함한 개헌안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헌법개정여성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에 의해 제안되기에 이르렀다.130) 각 단체가 제시한 개정안은 아래와 같다:
헌법개정여성연대안131)에서는 성평등과 정치, 경제, 가족, 재정 등 영역별 성주류화 관점을 고려한 개정시안을 제시하였다. 안 제11조 제1항 일반적 평등조항 다음에 제2항으로 남녀동등권을 별도조항으로 명시하고, 동항 제2문에 남녀의 동등한 권리의 실질적 실현과 불이익 개선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마련함으로써, 실질적 성평등 실현을 위한 국가의 책무조항을 도입하였다. 특히 제2항에서 ‘남성과 여성’의 기술 순서에 있어 “여성과 남성”으로, 그 다음에 “남성과 여성”으로 기술한 것은 공직선거법상 비례대표 여성할당제 순번 부여에 근거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이어서 제4항에서는 선출직을 포함한 공직에서의 여성대표성 확대를 위하여 공직 진출에 있어 남녀동수 보장규정을 신설하였으며, 전 영역의 성주류화와 실질적 성평등실현 의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정부의 성인지 예산 의무 규정을 신설할 것을 제안하였다(안 제54조).
제11조 ①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
②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국가는 남성과 여성 동권의 실질적 실현을 촉진하고 현존하는 불이익을 개선하도록 적극적으로 조치한다.
④ 국가는 공직 진출에 있어 남녀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한다.
제54조 ④ 정부는 예산의 편성과 집행에 있어 여성과 남성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안132)에서는, 여성대표성 확대를 위한 정당의 의무를 명기하고(안 제8조 제3항), 일반적 평등권 조항에 차별금지사유를 추가한 후, 이와 별도로 실질적 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 책무조항을 신설하였다(안 제13조 제3항). 특히 통일, 평화, 안보 분야의 여성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유엔 안보리의 “여성과 평화 안보에 관한 결의안 1325호(UNSCR 1325)”133)의 취지에 따라 “안보 및 평화 통일” 영역을 강조하였다(안 제14조 제1항). 나아가 여성의 대표성 확대를 위하여 선출직, 공직 진출을 비롯한 모든 분야의 동등권을 명기(안 제14조 제2항)하였다.134)
제8조 ③ 정당은 제14조 제2항에서 규정한 원칙의 실현에 기여하여야 한다.
제13조 ③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고 현존하는 차별을 시정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조치한다.
제14조 ① 국가(및 지방자치단체)는 현존하는 성차별과 폭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고용, 노동, 임금, 혼인과 가족생활, 복지, 재정, 안보 및 평화 통일 등 모든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조치하고 실질적 성평등을 실현·보장하여야 한다.
② 국가(및 지방자치단체)는 선출직과 공직 진출에서 남녀의 동등한 참여를 촉진하고, 모든 직업적·사회적 지위의 동등한 접근 기회를 보장한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안135)에 대한 ‘기본권·총강 분과’의 검토의견에 따르면, 성평등 조항(안 제14조)의 개정과 관련하여 1995년 북경행동강령의 취지하에 우리나라에 여성특별위원회가 신설되고 여성가족부로 발전된 연혁, 정치·경제·사회적 구조에 의해 발생한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여 국가정책의 형평성과 실효성을 제고하는 관점을 고려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선출직을 포함한 공직에서의 여성 대표성 확대규정의 신설(안 제15조)과 관련하여서는, 모든 정부정책, 법제정, 법적용 및 해석에 있어 여성과 남성의 동등참여와 책임의 동등성을 포함하는 취지임을 분명히 하였다. 특히, 해당 자문위원회안 보고서에는 공직 진출의 남녀 동등한 참여를 명시하는 일은 “주권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는 일”로서, “모든 수준의 대표성에 있어 민주주의를 좀먹는 명백한 불평등을 더 이상 숨겨서는 안될 것임. 현행 헌법은 여성들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지위를 제공하지 않고.... 이는 민주주의 자체가 불완전하며 미완성임을 입증하는 일. 그동안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적극적 조치들은 매번 저지당해왔고 이런 이유로 남녀 동등한 참여로의 개헌은 불가피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136)
제14조 ③ 국가는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고, 현존하는 차별을 시정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조치한다.
제15조 ② 국가는 선출직, 임명직 공직 진출에 있어 남녀의 동등한 참여를 촉진하고, 직업적, 사회적 지위에 동등하게 접근할 기회를 보장한다.
한편, ‘정당·선거 분과’에서도 ‘남녀동수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였는데, 프랑스 헌법과 그에 근거한 남녀동수법을 참고하여, 법률로써 남녀동수제를 도입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도록 자문하면서 아래와 같은 조항의 신설을 제안하였다.137)
국회에서의 개헌논의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공약대로 2018년 6월 지방선거시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하여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동 개헌안 작성을 위한 자문기구로 2018년 2월, 대통령직속 정책위원회(2017. 12. 15. 출범) 산하에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총강·기본권 분과, 정부형태 분과, 지방분권·국민주권 분과의 3개 분과로 구성된 동 특위는 단 한 달 간의 활동만으로 개헌자문안을 2018년 3월 13일 대통령에게 제출하였다. 동 국민헌법자문특위안 원안에는 실질적 성평등 실현‘의무’나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보장’ 조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여성계 인사들이 의견을 모아 다음과 같은 2안을 제시하여 최종 자문안에 포함되게 되었다.
제11조 ①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장애·연령·인종·지역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1안] ② 국가는 성별 또는 장애로 인한 현존하는 차별상태를 시정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2안] ② 국가는 고용·복지·재정 등 모든 영역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과 폭력을 제거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조치해야 하며, 선출직·임명직의 공직 진출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위 자문안을 기초로 성안된 개헌안은, 2018년 3월 20일부터 22일까지 주요 내용을 발췌하여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회와 각 정당, 법제처에 개헌안 전문을 송부한 후, 26일 대통령 개헌안으로 발의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범여성계에서 공동으로 제안하고, 심지어 국민헌법자문특위안에도 포함되어 있었던 – 비록 2안이지만 – ‘공직 진출에서의 남녀동등보장 규정’은 반영되지 않았고, 차별시정에 있어 ‘적극적 조치의무’가 아니라 ‘실질적 평등실현 노력’으로 그 내용이 최소화된 안이었다.
제11조 ①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도 성별·종교·장애·연령·인종·지역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② 국가는 성별 또는 장애 등으로 인한 차별 상태를 시정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동 개헌안은 여러 절차적·정치적 난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성사되지 못하였다. 2018년 3월 결성된 여성단체들의 연대체인 ‘성차별 해소를 위한 개헌여성행동’은 향후 헌법개정 논의에 대비하여 2019년 4월, 5개 당사를 방문하여 각 당의 여성위원장에게 10차 헌법개정 촉구와 남녀동수 개헌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전달했고, 모든 정당 관계자들로부터 여성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138) 위 개헌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여성단체들도 대통령 개헌안의 한계를 지적하며, 성평등 헌법개정을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139)
Ⅴ. 결론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공동체의 의사결정, 특히 의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는 선거권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이 전체 인구의 각 절반을 구성함에도, 의회내 여성비율은 2021년 현재, 전세계적으로는 25.5%, 한국의 경우에는 19%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마저도 1990년대 중반부터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여성공천할당제를 통해 눈에 띄게 개선된 결과이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정치적 불평등 내지 여성에 대한 차별(gender inequality)의 관점에서 접근한 할당제에 대하여는, 정치적·현실적 저항이 만만치 않고, 심지어 법적 문제제기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토록 성비가 불균형하게 구성된 대의기구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넘어, 대표(기관)의 왜곡을 의미하며 국민들 개개인의 제대로 대표될 권리(right to be represented)와 대표가 될 권리(right to represent)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처럼 왜곡된 대표를 가지고 제대로 기능하는, 지속가능한 대의제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여성의 정치적 과소대표 문제를 여성에 대한 차별 문제로 보는 관점에서 전환하여, 대표(representation)를 민주주의 원리에 합치되게 구성하고 대의제의 흠결을 치유하기 위한 관점으로 옮겨갈 것을 제안하였다. 국민의 절반씩을 차지하는 남성과 여성을 의회 안에 그대로 절반씩 반영할 것을 주장하였다. 혹자는, 이 방법이 민주주의 원리에 반하고 정당과 유권자들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남녀동수 의회’를 구성하는 것은, ‘국민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여 국민주권을 재현케 하고, 국민의 생활경험과 인식관심을 반영한 대의를 가능케 하고, 사회의 다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대표(good representation) 구성이 될 것이다. 남녀동수 의회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표를 민주화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요청이라 할 수 있다.
남녀동수 의회를 달성하기 위한 규범적 기초와 관련하여서는, 전세계적으로 시행해온 각종 할당제의 경험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정당의 자발적 참여(선거에서 남녀동수 추천)는 바람직하긴 하지만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과거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법률 차원의 동수제 채택은 헌법적 차원의 문제제기에 봉착하여 좌초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대의기구 구성에 있어 남녀 동수보장의 근거조항을 헌법에 도입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8년 헌법개정 논의시 그동안 동수제 연구와 운동을 이끌어온 여성계의 의견을 모아 개헌시안으로 제출된 바 있으나,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채택되지도, 헌법개정이 성공하지도 못하여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의회와 같은 정치적 대의기구에 남녀동수를 확보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중대한 흠결을 바로잡는 정당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한계에 부딪친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소생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차후에 다시 헌법개정이 추진된다면, 정치적 대표기구의 구성에 있어서 남녀동수를 보장하는 헌법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