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임대인과 임차인은 임대차 계약과 법 규정을 통하여 여러 가지 권리와 의무를 서로 부담하게 된다. 특히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 존속 중 그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임차목적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으며, 그 임차목적물을 임차인이 사용·수익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 임차목적물에 하자나 제3자에 의한 방해 등이 있는 경우 임대인은 이에 대한 수선의무나 방해제거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의무와 관련된 대법원판결1)(이하 대상판결이라 함)이 최근에 내려졌다.
대상판결은 임차목적물 그 자체에 물리적인 파손이나 훼손 등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적법한 임대인의 건축물 용도 변경으로 인하여 임차인이 임차목적물을 임차 목적인 편의점으로 사용·수익할 수 없게 된 경우에 관한 것이다. 즉 대상판결에서는 임대인의 목적물 인도의무(민법 제623조 전단)와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민법 제623조 후단)의 인정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대상판결은 임대인은 하자를 제거한 다음 임차인에게 하자 없는 목적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으며, 임대인의 임차목적물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는 임대인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있어 하자가 발생한 경우는 물론,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이 하자가 발생한 때에도 면해지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
우선 <Ⅱ. 대상판결>에서는 대상판결의 사실관계를 시간적 순서로 자세히 정리하여 기술하고, <Ⅲ. 건축물 용도 변경>에서는 건축법상 건축물 용도 변경의 법적 의미와 실무상 편의점 운영과 담배사업법상 담배소매인 지정 절차 등을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Ⅳ. 임대인의 의무>에서는 대상판결의 쟁점을 중심으로 임대인의 목적물 인도의무와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 및 대상판결의 타당성에 대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하여 대상판결에서 다루고 있는 법리를 이해하고 임대인의 목적물 인도의무와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의 올바른 해석을 모색하고자 한다.
Ⅱ. 대상판결
원고의 남동생 D(임차인)와 피고 B 회사(임대인)는 부천시에 있는 나동 건물 중 103호(이하 '이 사건 점포'라고 한다)에 대하여, 보증금 2,000만 원, 월 차임 130만 원, 임대차기간 2012. 6. 1.∼2014. 5. 31., 임대목적은 편의점으로 하는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D는 2012, 5. 25. 사업 종목을 편의점으로 하여 사업자등록을 하여 이 무렵부터 편의점 운영을 시작하였다.
(가) 원고의 남동생 D와 피고 B 회사는 2014. 3.경 월 차임을 140만 원으로 증액하면서 임대차기간은 2014. 6. 1.∼2016. 5. 31.인 것으로 하는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였다.
(나) 원고의 남동생 D와 피고 B 회사는 2016. 5. 2. 월 차임을 150만 원으로 증액하면서 임대차기간은 2016. 6. 1.∼2018. 5. 31.인 것으로 하는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였다.2)
(다) 원고의 남동생 D와 피고 B 회사는 2018. 5. 25. 월 차임을 150만 원, 임대차기간은 2018. 6. 1.∼2020. 5. 31.인 것으로 하는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였다.
2018. 7. 19. 원고와 남동생 D는 D와 E 주식회사 사이의 편의점 가맹계약을 원고가 양수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편의점 가맹본부3)인 E 주식회사에 이 양도양수계약에 대한 승낙을 요청하였다.4)
원고와 남동생 D의 요청으로, 원고와 피고 B 회사는 2018. 7. 20.에 작성일자를 2018. 5. 25.로 소급하여 보증금 2,000만 원, 월 차임 150만 원, 임대차기간 2018. 6. 1.∼2020. 5. 31., 임대목적은 편의점으로 하는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임대차계약서는 임차인이 D에서 원고로 변경된 이외에는 D와 피고 B 회사가 2018. 5. 25. 작성한 임대차계약서와 내용이 같았다.
원심은 아래와 같은 사정을 들어 피고 회사의 임대차 목적물에 관한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 위반이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피고 회사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다.
피고 회사가 이 사건 건물의 용도를 변경한 때는 2016. 11. 11.로 이 사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기 이전이다. 원고는 2016. 5.경부터 실질적으로 이 사건 점포에서 편의점(이하 '이 사건 편의점'이라고 한다)을 운영하였다. 원고와 소외인은 이 사건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기 전날인 2018. 7. 19. 이 사건 편의점에 관한 가맹계약 양도양수계약을 체결하였고, 이에 따라 임대차계약서의 임차인을 원고로 변경할 필요가 생겼다. 원고와 소외인이 피고 회사에 임차인 명의만 변경하여 임대차계약서를 다시 작성해달라고 요청하였고 피고 회사는 그 요청에 소극적으로 응한 것에 불과하다. 이 사건 임대차계약서는 임차인 이외에는 소외인과 작성한 임대차계약서와 내용이 동일한바, 원고와 피고 회사는 임차인 이외의 다른 계약 내용에 대하여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보인다.
원고뿐만 아니라 피고 회사도 건물용도 변경으로 인하여 소외인이 아닌 다른 임차인이 이 사건 점포에서 편의점 및 담배소매업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원고와 소외인이 작성한 가맹계약 양도양수계약서 및 가맹계약 양도양수 승낙요청서에는 원고와 소외인이 원고 명의로 편의점 운영을 위한 각종 인허가 취득이 가능한지 여부를 미리 확인하여야 하며, 위 인허가 취득을 받지 못할 경우에는 원고와 소외인 사이의 양도양수계약 및 코리아세븐과 원고의 가맹계약은 무효로 되고 소외인이 잔여 가맹계약기간 동안 편의점을 운영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조항이 있으므로, 이 사건 점포에서 기존처럼 편의점 운영 및 담배소매업이 가능한지에 대하여는 원고와 소외인이 미리 확인했어야 한다.
(1) 처분문서는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되는 이상 법원은 그 기재 내용을 부인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으면 처분문서에 기재된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한다. 당사자 사이에 법률행위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툼이 있어 처분문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법률행위로써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원고와 피고 회사 사이에 이 사건 임대차계약서가 작성되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거기에 기재된 문언대로 원고와 피고 회사 사이에 이 사건 임대차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원고의 요청으로 그 임대차계약서가 작성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점이 부인될 수는 없다.
(2) 임대인은 임차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여야 한다(민법 제623조 전단). 임차인이 계약에 의하여 정하여진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하는 데 하자가 있는 목적물인 경우 임대인은 하자를 제거한 다음 임차인에게 하자 없는 목적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그와 같은 하자를 제거하지 아니하고 목적물을 인도하였다면 사후에라도 위 하자를 제거하여 임차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하는 데 아무런 장해가 없도록 해야만 한다.
(3) 임대인의 임차목적물의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는 임대인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있어 하자가 발생한 경우는 물론,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이 하자가 발생한 경우에도 면해지지 아니한다. 또한 임대인이 그와 같은 하자 발생 사실을 몰랐다거나 반대로 임차인이 이를 알거나 알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4) 원고가 이 사건 임대차 계약에 의하여 정하여진 바에 따라 이 사건 점포를 편의점으로 사용·수익하는 데 장해가 발생한 상황이었으므로 임대인인 피고 회사로서는 그와 같은 장해의 발생에 책임이 있는지 여부나 사전에 그 장해의 발생을 인지하였는지 여부를 떠나 이를 제거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피고 회사가 당사자가 아닌 위 가맹계약 및 그 양도양수계약상 원고가 부담하는 의무의 내용에 따라 피고 회사의 의무 내용이 달라지지 않는다.
Ⅲ. 건축물 용도 변경
건축물의 용도란 건축물의 종류를 유사한 구조, 이용 목적 및 형태별로 묶어 분류한 것을 말한다(건축법 제2조).7) 토지 상호 간의 이용 조절과 쾌적한 생활환경 등을 위하여 건축물의 용도를 규제하며,8) 건축물은 그 용도에 따라 단독주택, 공동주택, 근린생활시설, 공장 등으로 분류된다.9)
대상판결에서 임대인 B 회사는 원고와 새로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기 전, 즉 원고의 남동생 D와 임대차 계약 존속기간 중인 2016. 11. 11.에 건축물의 용도를 근린생활시설에서 공장으로 변경하였다.10) 근린생활시설에는 제1종 근린생활시설과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나누어진다. 제1종 근린생활시설은 식품·잡화·의류·완구·서적·건축자재·의약품·의료기기 등 일용품을 판매하는 소매점 등의 용도로 사용되는 것 등을 말한다. 제2종 근린생활시설은 공연장(극장, 영화관, 연예장, 음악당, 서커스장, 비디오물감상실, 비디오물소극장 등), 종교집회장 등의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건축법 시행령 별표 1(용도별 건축물의 종류) 제3호·제4호}. 그리고 공장이란 물품의 제조·가공[염색·도장(塗裝)·표백·재봉·건조·인쇄 등을 포함한다] 또는 수리에 계속적으로 이용되는 건축물로서 제1종 근린생활시설, 제2종 근린생활시설, 위험물저장 및 처리시설, 자동차 관련 시설, 자원순환 관련 시설 등으로 따로 분류되지 아니한 것을 말한다(위 시행령 제17호).
대상판결에서의 이 사건 편의점 점포는 제1종 근린생활시설에 해당하였다. 동일한 시설군에 안에서 용도를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관할 관청에 건축물대장 기재 내용의 변경을 신청하여야 한다. 그러나 제1종 근린생활시설과 제2종 근린생활시설은 동일한 시설권에 속하지만, 예외적으로 그 상호 간의 용도 변경 시에는 건축물대장 기재 내용의 변경을 신청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근린생활시설에 해당하는 건축물이 제1종 근린생활시설인지 제2종 근린생활시설인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추측건대, 이와 같은 이유로 대상판결은 이 사건 편의점 점포가 제1종 근린생활시설인지 제2종 근린생활시설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근린생활시설이라고만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한편 원칙적으로 건축물 용도 변경은 관할 관청의 허가를 받거나,11) 이에 신고하여야 한다.12) 대상판결의 사안과 같이 근린생활시설군13)에 속하는 근린생활시설에서 산업 등의 시설군14)에 속하는 공장으로 변경하는 것은 관할 관청의 허가를 요하는 경우에 속한다.15) 그리고 건축물이 임대차 목적물이더라도 그 용도 변경에 법률상 특별한 제한은 없으며, 대상판결 사안과 같이 건축물 용도 변경에 대하여 건축물대장에 기재가 되어 위법한 여지도 없다고 볼 것이다.16) 따라서 피고 B 회사의 건축물 용도 변경 행위는 적법한 것으로 판단된다.17) 원심과 대상판결도 모두 피고 B 회사의 C 대표이사가 건축물 용도를 근린생활시설에서 공장으로 변경한 것은 불법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18)
실무상 편의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관할 관청에 그 영업신고를 하여야 하는데, 이때 그 편의점 운영을 위한 건축물의 용도는 제1종 근린생활시설에 해당하여야 한다. 그리고 편의점 매출에는 담배 소매가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19) 그래서 편의점 운영을 위해서 담배소매는 거의 필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담배를 소매하기 위해서는 우선 담배사업법에 따른 담배소매인으로 지정받아야 한다.20) 담배소매인으로 지정받기 위해서도 담배소매업의 장소는 근린생활시설에 해당하는 점포이어야 한다. 그래서 대상판결의 사안과 같이 건축물 용도를 근린생활시설에서 공장으로 변경한 경우에는 편의점 영업신고 및 담배소매인 지정이 불가능하게 된다.
새로운 담배소매인을 지정하는 경우에, 시장·군수·구청장은 지정기준에 적합한 자에 한정하여 신청서를 접수한 순서대로 소매인을 지정하되, 접수순서가 분명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공개추첨의 방법으로 결정하게 된다(담배사업법 시행규칙 제7조 제9항). 그러나 기존 담배사업자가 폐업신고한 이후 새로운 담배소매인을 지정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공개추첨의 방법에 의하게 된다.21)
대상판결 사안과 같이 원고의 남동생 D가 담배소매인으로 지정받고 있는 사이에, 그가 원고와 편의점 양도양수계약 후 폐업하고 원고가 사업자등록을 한 경우에 담배판매권을 원고가 그대로 승계하는 것이 아니다. 즉 담배판매권을 가진 양도인과 양수인 사이의 영업양도 시에 담배판매권은 양도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담배사업자가 폐업신고서를 제출하여 접수된 때는 영업양도계약의 존부와 상관없이 공고한 후 담배소매인 지정신청을 접수한다. 그리고 신청자 중 국가유공자 및 그 가족, 장애인 및 그 가족을 우선적으로 소매인으로 결정하고, 이러한 우선자가 없이 일반 신청자만 있는 경우에는 공개추첨하게 된다.22) 즉 기존 담배사업자의 폐업신고 시에는 국가유공자 등의 우선자를 제외하고 공개추첨으로 새로운 담배소매인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편의점 점포의 건축물 용도를 근린생활시설에서 공장으로 변경한 것은 원고가 편의점 영업신고를 할 수 없게 하는 필연적인 장애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새로운 담배소매인 지정과 관련하여, 건축물 용도를 변경하지 않았더라도 공개추첨으로 새로운 담배소매인을 지정하기 때문에 원고가 반드시 담배소매인 지정을 받았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등의 양도양수계약 시에 특약으로 담배소매인 지정을 받지 못하게 되면 그 양도양수계약은 무효로 한다는 등의 약정을 하기도 한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도 가맹본부 E 주식회사는 원고 명의로 편의점 운영을 위한 각종 인허가 취득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미리 확인하도록 하며, 위 인허가 취득을 받지 못하면 원고와 남동생 D 사이의 양도양수계약 및 가맹본부 E 주식회사와 원고의 가맹계약은 무효로 된다는 특약을 두고 있었다.
건축물 용도 변경이 없었더라도, 원고는 새로운 담배소매인 지정을 위한 공개추첨에서 낙첨되어 담배소매인 지정을 받지 못하고, 결국 관련 계약들이 무효가 될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편의점 점포의 건축물을 근린생활시설에서 공장으로 변경함으로 인하여, 원고가 공개추첨의 당첨이나 낙첨의 결과와 상관없이 담배판매업을 할 수 없도록 한 부분도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23)
Ⅳ. 임대인의 의무
임대인은 임차인의 사용·수익에 대한 적극적 의무를 지는데, 이는 임대차가 유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무상인 사용대차에서의 대주는 소극적 의무를 부담할 뿐이다. 임대인은 임대차 계약과 법 규정을 통하여 여러 가지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24) 특히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 존속 중 그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25) 즉 임대인은 사용·수익에 적합한 상태의 목적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고, 목적물 인도 시부터 그 종료 시까지는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사용·수익권을 부여하고 목적물을 인도한 것으로 임대인의 의무이행이 완료되는 것은 아니며, 임차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하게 할 의무는 계약 기간 내내 지속한다고 할 것이다.26) 따라서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의 목적물 인도의무와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 2가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27) 그리고 후자의 임차목적물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로부터 방해제거의무, 수선의무, 비용상환의무 등이 파생된다고 볼 수 있다.28)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의무들은 임대인이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여 임차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할 계약상 채무에 연유하고 있다고 볼 것이다(민법 제618조). 그래서 임대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하게 할 의무는 임차인의 차임지급의무와 서로 대응하는 관계에 있으므로, 임대인이 이러한 의무를 불이행하여 목적물의 사용·수익에 지장이 있으면 임차인은 그 지장이 있는 한도에서 차임의 지급을 거절할 수도 있다.29)
대상판결은 임차인이 임대차 계약으로 정하여진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하는 데 있어서, 하자가 있는 목적물일 때 임대인은 하자를 제거한 다음 임차인에게 하자 없는 목적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리고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그와 같은 하자를 제거하지 아니하고 목적물을 인도하였다면 사후에라도 위 하자를 제거하여 임차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하는 데 아무런 장해가 없도록 해야만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즉 대상판결은 민법 제623조 전단의 목적물 인도의무와 그 후단의 임차목적물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에 대하여 그 각각의 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된다.30)
임대인은 임차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여야 한다(민법 제623조 전단). 임대인은 목적물을 인도할 때에 임차인의 임차 목적에 부합하고 그 사용·수익에 적합한 상태로 목적물을 인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목적물에 하자가 있다면 이를 제거하고 인도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임대인이 목적물의 진입로를 확장하거나 주위 환경을 정비하기로 하는 등의 목적물 상태에 관한 특약을 한 경우에는 그러한 상태를 조성할 의무를 지게 된다. 이러한 의무도 목적물 인도의무에 포함된다고 본다.31)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인도하기 전에 목적물을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임대하였다면, 임대인의 사용·수익하게 할 의무는 이행불능이 되어 임대인은 채무불이행 책임을 지게 된다.32) 다만, 대상판결과 같이 건축물 용도 변경으로 인하여 임차인이 임차 목적대로 편의점 운영을 할 수 없게 된 경우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임대인의 목적물 인도 의무가 이행불능된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편의점 운영이 가능한 원래의 건축물 용도인 근린생활시설로 다시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고 B 회사는 건축물 용도를 변경한 후 목적물을 인도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대상판결의 피고 B 회사의 C 대표이사는 원고가 이 사건 점포에서 기존처럼 편의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하고, 건축물의 용도를 근린생활시설로 변경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법정 조경 면적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변경하지 못하였다. 대상판결의 원심은 피고 B 회사의 C 대표이사가 원고에게 이 사건 건축물의 용도를 근린생활시설로 변경해주기로 약속하고, 위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는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기로 약정하였거나 건축물 용도 변경에 따른 원고의 손해에 대하여 책임지기로 약속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대해서, 대상판결도 C 대표이사의 불법행위 책임이나 채무불이행 책임이 인정되지 아니하고, 원고에게 건축물 용도 변경을 약속하였다거나 용도 변경에 따른 책임을 지기로 약정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판례는 임대인의 목적물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를 ‘임대인의 수선의무’라고 칭하기도 한다.33) 그러나 임대인이 목적물의 사용·수익 상태를 유지할 의무에는 임대인의 수선의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방해제거의무 또는 비용상환의무나 안전배려의무 등도 있다.34) 따라서 임대인의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와 임대인의 수선의무는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 임대인의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가 임대인의 수선의무에 대하여 상위의 개념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다.35) 아래에서는 임대인의 목적물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 중에서 대상판결과 직접 관련되는 의무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대상판결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하자를 제거하지 아니하고 목적물을 인도하였다면 사후에라도 위 하자를 제거하여 임차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하는 데 아무런 장해가 없도록 해야만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와 같은 임대인의 의무는 임대인의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 중 방해제거의무가 아니라 수선의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임대인의 방해제거의무란 제3자가 임차인의 점유를 침탈하는 등으로 임차물의 사용·수익을 방해하는 때에 임대인은 임차인을 위하여 그 방해를 제거하여야 하는 것을 말한다.36) 건물임대차의 경우, 임차인이 임차목적물인 건물에서 행하는 영업활동을 제3자가 방해하는 영업 기타 행위를 하면 임대인은 이를 제거할 의무가 있다.37) 즉 방해제거의무는 주로 제3자의 방해행위에 대하여 임대인이 목적물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의 한 방법으로 임차인을 위하여 제3자를 상대로 그 방해를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대상판결에서 건축물 용도 변경으로 인해 인차인이 임차 목적대로의 사용·수익을 할 수 없는 것은 제3자가 아니라 임대인의 행위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대상판결의 사안은 임대인의 수선의무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임대인은 임차인에 대하여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하므로(민법 제623조), 임대인은 사용·수익에 필요한 수선의무를 진다.38) 목적물에 파손 또는 장해가 생긴 경우 그것이 임차인이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아니하고도 손쉽게 고칠 수 있을 정도의 사소한 것이어서 임차인의 사용·수익을 방해할 정도의 것이 아니라면 임대인은 수선의무를 부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수선하지 않으면 임차인이 계약으로 정해진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할 수 없는 상태로 될 정도의 것이라면 임대인은 수선의무를 부담한다.39) 그리고 임대인과 임차인이 임차 목적 또는 임차물의 특별한 용도에 대하여 약정한 경우를 제외하고, 임대인은 그 목적물이 통상의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여 주면 족하고 임차인의 특별한 용도를 위한 사용·수익에 적합한 구조나 성상 기타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까지 있다고 할 수는 없다.40) 또한 임대인은 임차인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임대차 계약에서 정한 목적을 위하여 임차목적물을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목적물의 하자에 대하여 수선할 의무를 지고, 통상적으로 사용·수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미한 하자나 파손에 대하여는 임차인의 생활상 위험으로 임대인의 수선의무가 면책된다.41) 임대인의 수선의무와 관련하여 대상판결이 기존의 판례 사안과 다른 특이한 점은 목적물에 대한 물리적인 파손이나 훼손에 대한 수선이 아니라, 건축물 용도 변경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42)
대법원 판례는 임대인의 귀책사유로 임대차 목적물을 훼손한 경우뿐만 아니라 임대인에게 귀책사유 없는 경우에도 임대인은 수선의무를 부담한다는 견해를 취하여 왔다.43) 대상판결도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 동일한 견해를 취하고 있다. 임대인은 임차목적물을 임대차 계약이 존속하는 한 임차인을 위하여 그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로서 수선의무를 부담한다.44) 따라서 임대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는 물론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에도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45)
그리고 통설은 임대물이 천재지변 기타 불가항력으로 인하여 파손된 경우에도 임대인의 수선의무를 인정한다.46) 그러나 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다107405 판결은 1차 집중호우가 있은 지 불과 9일 만에 발생한 이례적인 2차 집중호우로 인근 임야의 일부가 갑작스럽게 붕괴하면서 발생한 토사류가 공장으로 밀려 내려와서 임차인이 입은 손해에 대해, 임대인이 이를 예측하고 대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등의 사정을 종합해 임대인이 부담하는 수선의무의 범위에 다시 집중호우가 발생할 경우에 임야가 추가로 붕괴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공장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호조치를 취할 의무까지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다.47) 이 판결은 대법원이 취하고 있는 임대인 자신의 귀책사유가 없는 파손이나 훼손의 경우에도 임대인은 수선의무를 부담한다는 견해와 모순된다.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에 의한 파손이나 훼손도 역시 임대인의 귀책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판결은 임대인의 수선의무에 임대인의 귀책사유를 요구하지 않는 대법원 입장에 어긋나는 것이며, 임차인의 실질적인 보호에 미흡한 것으로 생각된다.48)
임차인의 귀책사유로 인하여 임차목적물에 파손이나 훼손이 발생한 때도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부담하는지에 대하여 학설의 대립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 긍정설은 임대인은 천재지변 기타 불가항력으로 임차목적물이 파손이나 훼손된 경우뿐만 아니라, 임차인의 귀책사유로 파손이나 훼손된 경우에도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부담한다고 한다. 다만 임차인은 보관의무 위반이나 불법행위를 근거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한다.49) 그리고 임차인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로 목적물을 보관하다 임대차 종료 후 반환하여야 할 채무가 있다고 하여,50) 임대차 본래의 목적에 기한 임대인의 수선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51)
한편 부정설은 임차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신의칙상 임대인의 수선의무를 부정하여야 한다고 한다.52) 임차인이 사용·수익의 장해가 되는 상태를 스스로 만든 경우에도 그 장해의 배제를 임대인에게 명하는 것은 비록 임대인의 임차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타당하지 않다고 한다. 또한, 임차인의 귀책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에게 수선의무를 인정한다면, 임대인이 그 수선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시에 임차인은 차임지급을 거절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임차인이 차임지급을 지연하기 위하여 고의로 임차목적물을 파손하거나 훼손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53)
생각건대, 임차인의 귀책사유로 인해 임차목적물에 파손이나 훼손이 발생하면, 임차인의 선관주의의무와 임대차 계약 목적에 따라 임차물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임대인의 의무 모두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54) 다만 긍정설에 따르면 임차인은 보관의무 위반이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를 여전히 부담하게 되므로 실질적으로 임대인이 비용을 상환받는 복잡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임대인의 임차목적물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가 임차인의 귀책사유로 인한 경우에도 인정된다는 것은 임대인 의무 관련 규정의 입법 취지에도 반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임차인의 귀책사유로 임차목적물이 파손되거나 훼손된 경우에 임대인의 수선의무는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러한 경우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찾기는 어려우나, 서울고등법원 2009. 11. 3. 선고 2009나33213 판결도 임차인에게 귀책사유 있는 임차목적물 훼손의 경우에 임대인은 그 수선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55)
Ⅴ. 결론
임대인의 수선의무를 발생시키는 사용·수익의 방해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목적물의 종류 및 용도, 파손 또는 장해의 규모와 부위, 이로 인하여 목적물의 사용·수익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 그 수선이 용이한지 여부와 이에 소요되는 비용, 임대차 계약 당시 목적물의 상태와 차임의 액수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사회통념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56) 대상판결의 경우, 피고 B 회사가 원고에게 하자 즉 건축물의 용도를 공장으로 변경하여 둔 것을 다시 근린생활시설로 변경하지 아니하고 목적물을 인도하였다. 이 사건 임대차 계약 시에 피고 B 회사와 원고는 임차 목적이 편의점 운영임을 약정하였으므로, 임대인 피고 B 회사는 임차인 원고가 편의점 운영을 위한 영업신고나 담배소매인 지정신청 등이 가능하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볼 것이다. 피고 B 회사가 건축물의 용도를 편의점 운영과 담배소매인 지정신청 등이 가능한 근린생활시설로 변경하지 않고 목적물을 인도한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목적물 인도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피고 B 회사는 여전히 건축물의 용도를 공장에서 근린생활시설로 변경할 수선의무를 부담하고 있다고 볼 것이다.
대상판결의 사실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원고의 요청으로 피고 B 회사는 임대차계약서를 다시 작성한 것이다. 원고는 양도양수계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원고의 남동생 D와 피고 B 회사 사이의 임대차계약서상의 임차인을 원고 자신으로 변경할 필요가 발생하였다. 그래서 원고는 피고 B 회사에 임차인 명의만을 자신으로 변경하고 그 나머지는 원고의 남동생 D와 피고 B 회사 사이에 체결된 종전의 임대차 계약의 내용과 동일하게 임대차계약서를 다시 작성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즉 이 임대차 계약은 기존 원고의 남동생 D와 체결하였던 임대차 계약에서 임차인 명의만이 남동생 D에서 원고로 변경될 뿐, 그 이외의 보증금 2,000만 원, 월 차임 150만 원, 임대차기간 2018. 6. 1.∼2020. 5. 31. 등은 변경된 것이 없었다.
이 임대차 계약은 임대인 B 회사에는 아무런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서 오로지 임차인 원고를 위해 임대차계약서를 다시 작성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도 B 회사의 수선의무가 인정되고, B 회사는 이를 이행하지 못하여 채무불이행 책임을 진다는 결과가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대상판결은 임대차 계약의 성립과 임대인의 임차목적물 사용·수익 상태 유지의무의 정형화된 틀에서만 판시하였는데, 임대차 계약에 이르게 된 경위나 동기 등을 세심히 살폈더라면 신의칙이나 형평의 원칙 등을 통하여 임대인의 수선의무를 부정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