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2007년 우리나라에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가 처음 도입되었으며,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형사소송법 제244조의2)의 도입 취지는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막고, 수사 과정의 적법성과 투명성을 담보함으로써 형사소송절차의 이념이자 목적원리인 적정절차의 원칙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법제도 개혁의 일환이었다.1)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에 관한 논란으로 인해 개정된 지 10년 이상이 지났으나 원활히 제도 운용이 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2)
더욱이 최근에는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검사작성 진술조서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에 관하여 영상녹화물을 통한 객관적인 방법에 의해 진정성립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한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2항의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조서재판’에서 더욱 공판중심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가 그간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 인정 문제에 너무 매몰되어 논의됐던 측면에 대한 반성과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본래 의미와 향후 제도 운용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최근에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그간 사실상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였던 영상녹화제도에 관하여, 피의자 진술 영상녹화 사전고지 의무화를 권고하는 등 수사 실무상 영상녹화 시행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였다.3)
이와 관련하여, 일본에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법개혁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무적 영상녹화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개정법안을 2016년에 통과시켰으며(일본 형사소송법 제301조의2), 이후 2019년 6월 1일부터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를 공식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경우 수사 실무상의 인권보장을 확대하기 위한 도입이기 때문에 그 적용 범위를 점차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가령 ①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재판원재판의 대상이 되는 사건과 ② 검찰이 직접 인지하여 수사하는 이른바 검찰 단독수사 사건뿐만 아니라, 추가로 지적장애 및 정신장애자 관련 사건도 의무적 영상녹화 대상으로서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한·일 양국은 모두 사법개혁의 목적으로 도입하였으나, 그 도입 시기와 도입범위, 제도 운용의 방향성에서 차이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이러한 차이에 대한 검토는 현행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를 더욱 개선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Ⅱ. 일본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도입 경위
일본에서도 일반적으로 피의자신문(被疑者取調べ)은 수사기관이 신체구속 중인 피의자에 대해 사건에 관한 진술을 구하는 수사 활동을 의미한다.4) 즉 피의자신문은 ‘범죄혐의가 인정되는 피의자를 대상으로 범죄사실에 관하여 묻고 그에 대한 진술을 듣는 수사절차’이기 때문에, 과거 고문 등 강압적 행위를 통해 손쉽게 진술을 획득하려고 했던 과오의 시기가 있었으며, 이에 대한 반성으로서 신문장소의 제한, 진술거부권의 고지, 고문 등 강압 행위로 인한 진술의 배제와 같이 피의자신문에 관한 다양한 인권보장조치들이 고려되어 현재의 적정절차의 원칙에 따른 인권보장적 피의자신문절차를 형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피의자신문의 경우 신문장소라고 하는 공간과 피의자신문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절차가 인권보장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본에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가 학계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80년대부터이며, 현행 일본 형사절차상의 주요문제라 할 수 있는 장기구금을 전제로 한 형사 절차의 진행을 문제시하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5) 피의자신문 자체를 적정화하는 방안으로서 ① 비디오테이프나 녹음테이프에 의한 피의자신문과정의 영상녹화 의무화, ② 조서작성 시의 수사관이나 입회인의 관직·성명, 피의자신문 연월일, 피의자신문개시·중단·종료 시각 등의 기재 의무화, ③ 이들 의무적 기재사항을 포함한 피의자신문조서 작성과 피의자신문조서 제출 의무화 등의 의무규정 도입이 제안되었다.6)
이러한 논의를 시작으로 일본에서는 형사사법의 핵심적인 개혁과제로서 제기되었고, 이는 현재의 ‘피의자신문 가시화(可視化)론’이 되었다.7) 이러한 논의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에서의 피의자신문은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밀실 형태의 조사실에서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고,8) 그 과정에서 자백을 강요하는 강압 수사로 인해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였으며 그렇게 작성된 조서가 재판에서 유죄증거로 활용되어 ‘무고한 자의 처벌(冤罪)’로 이어지게 되었던 사례에 근거를 두고 있다.9)
그러나 2001년 사법제도개혁심의회에서는 형사 절차 전반에서의 피의자신문의 기능, 역할과 그 관계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는 등의 수사기관 측의 견해를 반영하여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 도입을 유보하는 태도를 밝히었기에, 오랜 기간 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였다.10)
일본 학계 등에서 주장된 피의자신문의 가시화(可視化)에 대해서는 수사기관 등 형사실무의 입장에서 반대의견도 오랫동안 주장되었다. 예를 들어, 도입논의 초창기에는 영상녹화제도 운영은 재정적으로 원활히 운영하기에 곤란하고, 전문 인력도 부족하며, 사후적으로 편집될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증거로서도 증명력이 낮다고 보았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수사 실무상 유죄율이 높다는 건 그만큼 효과적으로 수사가 진행되어온 반증이라는 점에서 피의자신문과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큰 실익이 없다는 등의 반론이 강하였다고 한다.11)
이러한 반론에 근거하여 연이은 누명사건의 발생으로 피의자신문 가시화 주장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 및 수사기관에서는 피의자신문의 특수성을 이유로 영상녹화제도 도입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특히 일본 특유의 수사 관행이 강하게 어필되었는데, 이는 피의자신문에 있어서 우선 조사관과 피의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피의자가 사실을 진술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바, 신문과정을 영상녹화하는 경우에는 조사관과 피의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워 실체적 진실발견을 저해한다는 이른바 ‘신뢰관계론(信賴關係論)’으로서 주장되었다.12)
이와 더불어 범죄의 태양, 결과, 동기 등 세세한 항목에 걸쳐 해명하여 인정하려는 일본 형사실무의 운용을 가리켜 이른바 정밀사법(精密司法)이라고 하면서 일본 특유의 형사실무 관행과 국민의 사법 신뢰를 내세워 기존의 피의자신문 관행을 정당화하는 태도도 나타났다.13)
그러나 지난 2010년에 오사카지검 특수부의 증거조작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한 형사사법개혁이 전국민적인 강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국민적 관심 사항으로서 거론됨에 따라 그간 논의되었던 ‘일정 대상 사건에 대한 의무적 영상녹화제도’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개정법안이 2016년 5월에 성립하게 되었다(일본 형사소송법 제301조의2).14)
Ⅲ. 일본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내용
일본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는 피의자 진술의 임의성 입증을 담보하고, 또한 신문이 적절하게 실시될 수 있는 인권보장적 수사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도입되었다.
일본의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는 4개 항으로 이루어진 조문으로 구성되었으나, 각 항의 배치가 일반적이지는 않다. 예를 들어, 보통 제1항에 총칙적 규정이 배치되지만, 일본 형사소송법 제301조2의 경우 제1항은 공판상의 증거규정으로서 임의성이 다투어졌을 때 검찰관의 증거조사 청구의무를 정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제4항이 수사기관의 행위규범으로서 영상녹화 의무를 정면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총칙 규정으로 볼 수 있다.15) 이는 제1항 및 제2항은 증거법 규정으로서 영상녹화기록매체의 존재 여부가 이후 절차에서 어떻게 취급되는지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형사소송법 제301조의2 제1항에서는 전 과정의 영상녹화를 의무화하는 대상 사건을 정하면서 동시에, 검사가 피고인의 피의자신문조서 등을 일본 형사소송법 제322조에 근거해 증거조사를 청구할 경우, 변호인이 그 임의성에 의문이 있음을 이유로 증거채택에 관하여 이의를 제기하였을 때에, 제4항에 근거하여 기록된 조사(피의자신문 등)의 기록매체를 증거조사해야 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석론으로서 ① 제1항의 해석에 있어서 ‘해당 사건에 대한 제198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조사(체포 또는 구류된 피의자의 신문에 한한다)’의 인정 범위에 기소 후 구속된 피의자에 대한 임의수사도 포함하는지가 실무상 문제 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② 임의성을 입증하기 위해 해당 서면이 작성된 조사의 개시부터 종료시까지의 기록매체의 조사를 청구해야 하므로 해당 조사의 개시부터 종료까지를 어느 시점으로 구분할 것인지가 실무상 문제 될 수 있다고 한다.16)
“일본 형사소송법 제301조의2 ① 다음에 열거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관은 제32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증거로 할 수 있는 서면으로서, 해당 사건에 대한 제198조 제1항의 규정에 따른 조사(체포 또는 구류된 피의자의 신문에 한한다. 제3항도 같다) 또는 제203조 제1항, 제204조 제1항 또는 제205조 제1항(제211조 및 제216조에서 이들 규정을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제3항도 같다)의 변명의 기회에 작성되고,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사실의 승인을 내용으로 하는 피의자신문을 청구한 경우에,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피의자신문의 청구에 관하여 그 승인이 임의로 된 것이 아니라는 의심이 있음을 이유로 이의를 제기한 때에는, 그 승인이 임의로 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해당 서면이 작성된 피의자신문 또는 변명의 기회의 개시부터 종료시까지 피고인의 진술 및 그 상황을 제4항의 규정에 따라 기록한 기록매체의 조사를 청구하여야 한다. 단, 다음 각호 중 하나에 해당함으로써 동항 규정에 따른 기록이 되지 않은 것 및 기타 부득이한 사정에 따라 해당 기록매체가 존재하지 않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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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와 관련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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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1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죄로 고의적인 범죄행위로 피해자가 사망한 것과 관련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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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경찰원이 송치하거나 송부한 사건 이외의 사건(전2호에 규정된 것은 제외한다)”
제2항에서는 제1항의 증거조사 청구의무가 이행될 수 없는 경우(즉, 영상녹화를 하지 못해 기록매체가 없는 경우)에는, 증거조사 청구를 각하하여 서면 증거능력이 부정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3항에서는 일본 형사소송법 제322조(피고인 진술서면의 증거능력) 및 제324조(전문진술의 증거능력)에 근거하여 피고인의 진술을 들은 수사관의 증인신문에도 제1항, 제2항 및 제4항이 적용되는 점을 규정하고 있다.
“③ 전2항의 규정은 제1항 각호에서 규정하는 사건에 대하여, 제324조 제1항에서 준용하는 제322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증거로 할 수 있는 피고인 이외의 자의 진술로서, 해당 사건에 대한 제198조 제1항의 규정에 따른 조사 또는 제203조 제1항, 제204조 제1항이나 제205조 제1항의 변명의 기회에 이루어진 피고인의 진술(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사실의 승인을 내용으로 하는 것에 한한다)을 증거로 하는 것과 관련하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그 승인이 임의로 된 것이 아니라는 의심이 있음을 이유로 이의를 제기한 경우에 이를 준용한다.”
제4항에서는 제1항에 규정된 대상 사건의 영상녹화의무의 예외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즉, 기계 고장 등에 의한 물리적 장해가 있을 때(제1호), 폭력단 구성원에 의한 범죄와 관련된 것일 때(제3호), 피의자에게 진술하기 곤란한 상황이 인정될 때(제2호 및 제4호)를 예외사유로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제4항에서 예외사유를 포함한 영상녹화의 의무규정을 두고, 제1항에서는 제4항에 의해 영상녹화된 기록매체의 증거조사 청구의무 및 대상 사건을 한정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제2항에서는 그 귀결로서 영상녹화 불실시에 대한 제한을 규정하고 있다.17)
따라서 본 규정은 제4항→제1항→제2항의 순서로 진행된다. 반면에, 제3항은 일본 형사소송법 제324조에 근거한 수사관 전문진술에 대한 동법 제301조의2의 준용을 규정한 것으로, 그 적용대상이 제한적이다.18)
“④ 검찰관 또는 검찰사무관은 제1항 각호에서 규정하는 사건(동항 제3호에 열거하는 사건 중 관련된 사건이 송치 또는 송부된 것으로서, 사법경찰원이 현재 수사하고 있는 사실 및 기타 사정에 비추어 사법경찰원이 송치 또는 송부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을 제외한다)에 대하여 체포 또는 구류되어 있는 피의자를 제198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조사하는 때 또는 피의자에 대하여 제204조 제1항 또는 제205조 제1항(제211조 및 제216조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의 규정에 따라 변명의 기회를 부여할 때는, 다음 각호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피의자의 진술 및 기타 상황을 녹음 및 녹화를 동시에 하는 방법에 의해 기록매체에 기록하여야 한다. 사법경찰직원이 제1항 제1호 또는 제2호에 규정된 사건에 대하여 체포 또는 구류되어 있는 피의자를 제198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조사하는 때 또는 피의자에 대하여 제203조 제1항(제211조 및 제216조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의 규정에 따라 변명의 기회를 부여하는 때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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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필요한 기기의 고장이나 기타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하여 기록을 할 수 없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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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가 기록을 거부하거나 기타 피의자의 언행으로 인하여 기록을 한다면 피의자가 충분하게 진술을 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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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건이 ‘폭력단원에 의한 부당한 행위의 방지 등에 관한 법률’(1991년 법률 제77호) 제3조의 규정에 따라 도도부현 공안위원회의 지정을 받은 폭력단의 구성원에 의한 범죄와 관련된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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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2호에서 규정하는 사항 외에 범죄의 성질, 관계자의 언행, 피의자가 그 구성원인 단체의 성격이나 기타 사정에 비추어 피의자의 진술 및 그 상황이 공개된 경우에는 피의자나 그 친족의 신체나 재산에 해를 가하거나 이들을 공포에 빠뜨리거나 곤혹스럽게 할 행위가 이루어질 우려가 있어 기록을 하였다면 피의자가 충분한 진술을 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상녹화 ‘대상 사건’에는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재판원재판의 대상이 되는 사건19)과 검찰이 직접 인지하여 수사하는 이른바 검찰 단독수사사건 등이 포함된다.
또한 영상녹화의 대상이 되는 ‘절차’방식은 ① 체포, 구속 중인 피의자의 대상 사건에 대한 일본 형사소송법 제198조 제1항에 의한 피의자신문과 ② 이러한 피의자신문 진행에 대한 진술녹취 절차를 통하여 이루어진다(일본 형사소송법 제301조의2 제1항 및 제4항).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의무가 면제되는 예외사유로는, 우선 ① 기기의 고장, 그 밖의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기록을 할 수 없는 때, ② 피의자가 기록을 거부하거나 기타 피의자의 언행으로 인하여 영상녹화를 할 경우 피의자가 충분하게 진술을 할 수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 ③ 해당 사건이 폭력단 구성원에 의한 범죄와 관련된 것(피의자가 폭력단원인 경우나 공범이 폭력단원인 경우 등)으로 인정되는 때, ④ 피의자의 진술과 그 상황이 공개될 경우에는 피의자 또는 그 친족의 신체, 재산에 위해를 가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거나 곤혹스럽게 할 행위가 행해질 우려가 있어, 영상녹화를 하면 피의자가 충분한 진술을 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때의 4가지이다.
이러한 예외사유에 해당하는지는 피의자신문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검사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
Ⅳ. 일본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현황과 관련 논의 동향
일본 경찰의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실시현황을 살펴보면, 우선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는 2008년 9월에 재판원재판 대상 사건에 대해 5개 도부현(都府県) 경찰이 시범 시행을 개시하였고, 이후 2009년 4월에 전 도부현(都府県) 경찰로 확대하여 실시되었다. 또한 2012년 5월에는 지적장애가 있는 피의자에 대한 영상녹화의 시범 시행을 개시하였고, 2016년 10월에는 일본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에 따른 피의자신문 전과정의 영상녹화제도가 명문화되었다(2019년 6월 시행).20)
초기(2009년)에는 재판원재판 대상 사건 4,025건 중 실시건수가 358건으로 8.9%에 그치는 수준이었으나, 이후 영상녹화제도의 전면도입에 관한 논의가 점차 구체화되고, 더욱이 2012년부터는 지적장애 피의자신문에서도 영상녹화를 시범 시행하게 됨에 따라, 2015년을 기점으로 영상녹화의 실시율이 대상 사건의 90%를 넘는 등21) 경찰단계에서의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는 실무상 정착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본 경찰은 2013년부터 피의자신문 전과정 영상녹화를 시범 시행하면서, 전과정 영상녹화의 법제화에 대한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22) 3년의 유예기간이 있었음에도 영상녹화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이 있었던 2016년부터 바로 전과정 영상녹화를 크게 확대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2019년 재판원재판 대상 사건 4,062건 중, 피의자신문 영상녹화 시행 건수는 2019년 3,962건이었다(실시율 97.5%). 더욱이 전과정 영상녹화도 3,828건으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 대상 범죄의 대부분을 전과정 영상녹화로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3)
다만, 2019년도 실시현황에 따르면, 영상녹화의 예외사유에 해당하여 미시행된 사건으로 100건이 있었고, 일부만 영상녹화한 사건은 134건이었다. 그 원인 사유에 대해서는 피의자의 거부 의사에 의한 경우나, 기기 고장, 조직폭력단 범죄 등 법령에 규정된 제외 사유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수사관의 기기 조작 실수로 인한 경우도 20건이나 있었고, 재판원재판 대상 사건에 해당할 수도 있는 사건임에도 수사관의 오인으로 인하여 영상녹화하지 않은 사건도 4건이나 있었다고 한다.24) 이에 따라 일본 경찰청에서도 계속적으로 영상녹화제도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가이드라인 교육(연수) 및 수사 관행으로서 정착될 수 있게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다음으로, 일본 경찰이 시행한 정신장애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현황을 살펴보면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2012년부터 지적장애 피의자신문에서도 영상녹화를 시범 시행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872건이 실시되었다. 이후 2015년까지는 1천2백여 건 내외의 영상녹화가 시행되었으나, 2016년을 기점으로 크게 확대되어, 2016년 3,399건, 2017년 3,958건, 2018년 4,978건으로 증가하였고, 2019년에는 7,747건으로 대폭 증가하였다.25) 이는 2016년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법제화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는 지적장애인 범죄에 대한 대응으로서 지적장애인 피의자에게 자주 나타나는 언어소통의 어려움이나 수사관에게 의존하는 경향, 쉽게 유도되는 경향 등을 고려하여 피의자신문의 가시화(可視化)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라고 한다.
일본 검찰이 실시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지난 10년간의 시행현황을 살펴보면 아래의 (표-1)과 같다. 검찰도 경찰과 마찬가지로 재판원재판이 시행됨에 따라 재판원재판 대상 사건에 대한 검찰관에 의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를 2009년 4월부터 시범 시행을 해왔다. 특히 최고검찰청에서는 2011년 4월 ‘검찰 재생을 위한 대처’의 일환으로 전과정 영상녹화 시범 시행과 더불어, 특별수사부·특별형사부사건(검찰 단독수사사건)과 지적장애 및 정신장애자 관련 사건을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대상 범죄에 포함하면서 대폭 강화되었다.26)
더욱이 2011년 8월 법무대신이 공표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에 관한 대응방침’을 통해 재차 영상녹화의 범위를 확대하였는데,27) 이에 따라 재판원재판 대상 사건의 경우 원칙적으로 전 사건이 영상녹화의 대상 범죄가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검찰도 경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2015년 실시 건수가 59,411건에서 2016년에 실시 건수 80,436건으로 대폭 증가하게 되는데, 이는 2016년 개정 형사소송법을 통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 법제화의 영향으로 평가된다.
이외에도 검찰에서는 계속적으로 시범 시행 대상 사건을 확대하고 있으며, 또한 매년 피의자신문 등 관련 영상녹화 실시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범 시행 대상사건 중 피해자·참고인조사 영상녹화 실시 건수도 공개하고 있는데, 2015년도 2,217건, 2016년도 3,048건, 2017년도 3,445건, 2018년도 2,845건, 2019년도 2,452건, 2020년도 2,902건(피해자 1,117건, 참고인 1,785건)이었다.28)
일본 학계 및 변호사연합회(이하, 변협)측에서는 영상녹화제도의 도입 성과로서 ① 직·간접을 불문하고 폭언, 폭행이 내재되었던 수사기관의 피의자신문 관행이 종지부를 고했다는 점, ② 피의자신문 현장에서의 ‘진술의 자유보장 또는 진술거부권행사의 실효화’가 진정한 의미에서 실현되었다는 점, ③ 영상녹화기록의 이용에 따라 문서인 ‘조서’중심의 수사관행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점 등을 거론하고 있다.29) 이러한 도입 성과와 더불어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의 본래적 목적은 피의자신문의 가시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호인 접견교통권의 보장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개선논의가 활발하다.30)
한편으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 도입에 따른 우려 사항 중 하나로서, 확실하게 모든 과정이 영상녹화되었는지, 또는 영상녹화되지 않은 부분에서의 진술강요 또는 자백강요가 없었는지 등의 우려를 줄이기 위한 지속적인 수사기관의 노력과 관리·감독도 중요시되고 있다. 이는 과거 일부 영상녹화를 시범 적용하던 시기에서 발생했던 문제로서, 영상녹화되지 않은 부분에서 한 진술 강요 또는 자백 강요가 문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31) 또한 영상녹화제도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과거 DNA감정의 증거 인정 여부에 관한 아시카가(足利)사건에서도 피의자신문이 위법부당하고는 볼 수 없더라도 피의자가 수사관에 대하여 의존적이거나 영합(迎合)하기 쉬운 성격을 가지고 있는 등의 경우에는 허위자백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잘 드러난 사건도 있었기 때문이다.32)
특히 일본의 경우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신문 중이거나, 또는 가까운 시기에 신문할 예정이 확실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기 때문에,33) 영상녹화기록 자체의 신뢰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변호인이 배석한 상태에서 피의자신문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영상녹화제도의 운용상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피의자가 변호인과 접견할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며 이는 일본 헌법 제34조의 변호권에 기초하는 변호인의 접견교통권 보장(일본 형사소송법 제39조)이 보다 강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34)
더욱이 최근 변호인 접견교통권의 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피의자신문 영상녹화기록을 실질증거로서 피의자신문조서를 대신하거나 또는 함께 이용해도 되는지에 대하여 현행법상 제한규정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검찰이 피의자신문 영상녹화기록을 유죄 입증의 ‘무기’로 활용하려는 자세를 보임에 따라 학계 및 변협측에서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피의자신문 영상녹화기록을 실질증거로 사용할 경우 재판에 주는 충격이 크고, 인상적·직관적 판단을 초래할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직접주의 및 공판중심주의를 위반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학계와 변협측에서는 기존 수사관행의 오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영상녹화제도의 도입 및 개선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현재는 변호인 접견교통권이 보장된 상태에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운용상의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35)
일본 경찰을 비롯해 검찰에서는 오랜 기간 시범 시행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일선 수사기관에서는 피의자신문 등의 영상녹화는 이미 일상화되어 있고, 특히 체포·구속사건의 피의자신문에 대해서는 영상녹화를 하는 것이 원칙이 되어있다.36) 예를 들어, 일본 경찰청에서는 2019년 4월 26일부로 경찰에 있어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 운용상의 유의사항을 구체적으로 하달하여 실무상 운용하고 있다.37) 마찬가지로 일본 최고검찰청에서도 2019년 4월 19일부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 시행지침을 하달하면서, 법 개정에 의해 영상녹화물이 증거조사 청구 의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면서도, 주요 4유형 사건에 해당되지 않는 사건이라도 공소제기가 예상되는 구속사건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영상녹화제도를 활용하도록 통지하였다.38)
이로 인해 최근 일본 검찰에서는 수사단계의 진술 보전방법으로서 ‘서면조서’작성의 필요가 적고, 또한 피의자신문 상황을 영상녹화한 기록으로 대체 가능하므로, 공판단계에서 수사단계의 진술이 필요하더라도 영상녹화된 기록을 보다 활용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39) 특히 피의자신문과정이 있는 그대로 영상녹화되어 기록되고, 신문과정에서 수사관 및 피의자의 구체적인 진술과 신문조서의 작성상황 등 객관적 상황으로서 파악이 가능해짐으로써 피의자 진술의 임의성에 대한 정확한 입증이 담보되므로 피고인의 진술과 수사관의 진술이 상반되는 경우가 없어지게 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공판 과정에서도 자백의 임의성에 대해 다투는 것 자체가 해소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일본 검찰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형사절차상 개별 사건에서의 증거채택 여부는 각각의 독자성을 지니기 때문에, 피의자신문 영상녹화기록의 공판정에서의 증거활용까지도 검토대상으로 포섭하고자 한다.40) 다만 검찰 내에서도 증거능력 인정, 혹은 자백의 신용성에 관한 보조증거로 사용하는 것을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고 한다.41)
이와 같이 증거사용 여부가 문제 되는 이유는, 우리와 달리 일본에서는 영상녹화기록을 실질증거로서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① 아무리 객관적 증거수집을 충실히 하려고 해도 요증사실 중에는 수사단계에서 피고인의 진술로 증명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고 타당한 경우가 존재한다는 점과 또한 ② 피고인이 수사단계에서는 자백하였으나 공판에서는 부인하거나 부분인정으로 바꾸거나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 등이 현실에 존재하기 때문에, 피고인이 수사단계에서 한 진술을 입증에 사용해야 하는 필요성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42) 이는 일본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자백 또는 불이익사실의 승인에 임의성이 인정될 때에는 그밖에 특신정황을 요건으로 하지 않고 증거능력을 인정한다는 점(일본 형사소송법 제319조)에 근거한 것이다.
이에 따라 법원에서도 영상녹화기록의 증거결정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사정을 주제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가령, 영사녹화기록의 증거채택 여부에 관하여, 증거의 적극적인 가치에 주목하여 증거조사를 하는 적극적 관점(‘협의’의 필요성)와 증거조사에 수반하는 폐해에 주목하여 증거조사를 반대하는 소극적 관점(상당성)을 종합하여 증거조사의 필요성(광의)을 검토한다는 견해가 최근 강하게 주장되고 있다.43)
물론 수사단계에서의 피의자 진술 상황은 현재 일본의 경우, 공판과 달리 밀실에서 증거개시도 되지 않고, 변호인 접견도 제한되며, 대부분 구속된 상태에서의 피의자 신분에서 범죄혐의에 대한 일방적 추궁이나 회유 등을 당하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억울한 자가 자진해서 허위자백을 할 리가 없다는 선입견이 강하게 실무상 내재하여 있는 것도 현실이며, 또한 피의자 진술 영상녹화기록의 증거 활용은 기존의 조서 중심의 재판 관행에서 단지 영상녹화기록으로 전환되는데 그칠 우려가 있고, 공판절차가 단지 영상녹화기록의 적법 여부를 심사하는 절차로 변질할 우려가 있으므로, 영상녹화기록을 실질증거로 채택하는 데 있어서 구체적인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요구된다고 한다.44) 다만 그 충분한 검토의 내용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양한 관점에서의 검토가 요구되며, 그 범위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하여 일본 학계와 변협측에서는 영상녹화기록의 실질증거사용은 규문적 피의자신문에 의존한 조서재판을 형태만 바꾸어 촉진시킬 수 있다는 점, 변호인 접견교통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영상녹화제도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피의자신문의 영상녹화기록의 실질증거 사용에 따른 우려를 크게 나타내고 있다.45) 다만, 일본 본 학계와 변협측 내에서도 변호인 접견교통권 보장 및 피고인의 증거동의를 전제로 하는 등46) 여러 방법을 통해 사실인정상 발생할 수 있는 폐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실질증거의 사용을 긍정하는 입장도 존재한다는 점에서,47) 향후의 논의도 계속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본 법원에서는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를 통해 피의자 진술의 임의성에 대한 정확한 입증 담보가 이루어지고 있고, 또한 공판 전 정리절차 단계에서 공판담당 검사와 증거공개를 받은 변호인이 영상녹화기록의 내용을 확인함으로써, 자백의 임의성에 대한 다툼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48)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 영상녹화제도가 갖는 가장 큰 효용은 수사의 적정화에 있다고 본다. 즉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 도입으로 인해 적정한 피의자신문 상황이 담보되고 이에 따라 영상녹화기록을 피의자의 진술 상황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기록하여 자백 임의성 및 신용성의 판단자료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49)
관련하여,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가 향후 형사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재판원재판 대상 사건을 중심으로 검토할 경우에 논의대상이 되는 것은 피의자신문 영상녹화기록이 자백의 임의성 입증을 위해 증거 신청된 경우, 자백의 신용성 판단을 위해 증거 신청된 경우, 실질증거로서 증거 신청된 경우가 논의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 자백의 임의성 입증을 위해 증거 신청된 경우에는 가령, 수사관의 언행이 피의자 진술에 미친 영향이 문제시되는 경우 등에 한정될 것이다.50) 그 이외의 경우는 영상녹화기록을 통해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51)
② 자백의 신용성 판단을 위해 증거 신청된 경우에는, 주로 변호인이 자백조서의 신용성이 쟁점화되어 검사로부터(또는 변호인으로부터) 신용성 입증의 보조증거로 영상녹화기록이 증거청구 된 경우에 법원은 어떻게 증거채택 여부를 결정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52) 피고인의 표정이나 발언 등과 같은 진술 태도가 신용성 판단의 중요사항이지만, 쟁점 확인의 관계에서 자백조서의 증거조사가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에 신용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자백의 시기나 경위, 객관적인 사실이나 다른 증거와의 부합 여부, 진술 내용의 합리성 및 자연성, 비밀폭로의 유무 등과 같은 객관적인 관점에 근거하여 다각도로 검토해야 하므로 법원에서는 임의성 입증의 경우보다는 더욱 신중하게 증거조사의 필요성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③ 최근 검찰에서는 영상녹화기록을 자백의 보조증거에 한정하지 않고 범죄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실질증거로서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나, 실질증거로 채택할지는 향후의 형사재판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법원에서는 주로 증거조사의 필요성 관점에서 제한하려는 대응을 취하고 있다.53) 변호인측에서도 변호인의 증거의견 개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법관의 피고인 질문권(일본 형사소송법 제311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영상녹화기록이 공판정에서 장시간 증거조사가 진행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54) 다만, 일본 형사소송법 제322조 제1항55)에 의하면, 영상녹화기록이 피의자의 자백이나 불이익진술을 포함하는 경우에 실질증거로서의 증거능력을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측면이 있다.56)
이와 관련하여 2016년 도쿄고등법원의 판결이 큰 의미가 있다. 본 판례는 수사상황의 영상녹화기록를 실질증거로서 일반적으로 이용할 때 피의자신문 중의 진술 태도만으로 신용성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곤란하고 위험한 것인지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일본의 피의자신문제도나 그 운용의 실태를 전제로 하는 한, 현재로서는 공판절차에서 수사기관에 의한 장시간에 걸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기록을 시청할 경우 단지 영상녹화기록 내용의 적부만을 심사하는 절차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또한 신용성을 판단하기 위해 증거조사절차에서 영상녹화기록을 시청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면, 심리의 진행이 양적 및 질적으로 불균형해질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으므로, 이는 직접주의의 원칙에 벗어난 심리구조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법 개정의 주된 이유인 피의자신문의 적정화와 ‘조서’에 과도하게 의존한 수사 및 공판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요청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57)
Ⅴ. 결론
일본에서는 재판원재판 대상 사건 등에 관하여 피의자신문 전 과정의 영상녹화(가시화)를 의무화하는 2016년 형사소송법 개정에 대하여, 재판원재판제도의 시행과 별개로 형사 사법제도 개혁의 하나의 분기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강압 수사나 조서재판 등 자백 위주 수사 관행이라고 비판받아 온 일본의 피의자신문과정이 큰 폭으로 변화하였지만, 영상녹화제도의 대상 사건이 전체 사건의 3%에 그치는 한계점도 명확하고, 일부 영상녹화 등 예외규정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지적들을 고려하여 향후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운용에 관하여 여러 방면에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58) 제도 운용과 관련해서는, 피의자신문 영상녹화 의무화에 근거하여 계속해서 시범 시행의 대상 사건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지적장애자 등 별도의 배려가 요구되는 피의자에 관해서도 검찰의 경우 ‘요지원피의자(要支援被疑者)’에 대하여 입회인을 배석하게 하여 신문을 진행하고 있으며,59) 경찰에서도 영상녹화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입회인 배석 등의 시범 시행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은 참고가 된다.
영상녹화기록의 증거사용에 관해서도 우선 검찰측에서는 긍정적인 태도에서 대응하고 있으나, 학계 및 변협측에서는 변호인 접견교통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증거사용에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법원도 증거인정을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 형사소송법상 조서 등 영상녹화기록의 증거능력 인정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으나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더라도 애당초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도입 취지가 증거능력의 인정 여부를 전제로 진행된 것은 아니기에, 현재로서는 피의자신문절차의 적정을 담보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60)
따라서 법원에서도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도입에 따라 공판 전 정리절차가 더욱 충실화되고, 공판절차에서도 엄선되고 정리된 논점들을 다투는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주의가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영상녹화기록으로 인해 피의자신문절차가 적정하게 이루어졌다는 신뢰가 담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본에서는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 도입에 관한 많은 논의가 있었고 현재도 제도개선을 위한 논의가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가 수사 과정의 적정성을 담보함으로써 실체진실을 규명하고 피의자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에서도 영상녹화기록의 증거사용에 관해서는 현재 신중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나, 긍정론도 유력하기 때문에 향후 논의의 향방을 주목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일본도 본격적으로 시행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에 대해 우리가 필요한 시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논하기 어렵다. 다만 우리도 그간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에 매몰되어 영상녹화제도 본래의 장점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는 점과 최근 경찰 단계에서 피의자가 요청할 때 의무적 영상녹화를 규정한 ‘영상녹화요청권’의 신설과 참고인, 피해자 등 모든 사건관계자에 대해서 동의를 전제로 조서작성 모든 과정을 녹음하는 ‘진술녹음제도’를 도입하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수사 과정상의 인권보장과 실체적 진실규명의 방안으로서의 가치를 전제로, 피의자신문 영상녹화제도의 개선에 관하여 계속하여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