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이미 통일을 완성한 독일의 재통일 경험은 한국통일과정의 형성과 관련된 대한 비교헌법적 연구수행에 있어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주고 있다. 한 민족 (ein Volk) 내에서의 현실적인 두 독일국가의 존재 그리고 두 개의 헌법의 존재를 극복하고 독일 기본법에 의한 흡수통일을 달성한 독일의 경험은 헌법사적인 측면에서의 분석뿐만 아니라 헌법규범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비교헌법적 통일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통일을 목표로 하는 서로 다른 체제들이 여전히 공존하고 있는 남한과 북한의 현재의 상황에서 남한은 북한과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떠한 공동의 법적인 합의를 형성하고,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법적인 규범으로 전환시키는 진행과정을 거쳐야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착안점의 형성은 북한체제의 불확실성에 기반한 여전히 가변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요소가 존재하는 남한과 북한과의 관계 그리고 이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라는 종속변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작업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과 북한이 스스로 우리 자신의 운명적 결단인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현재의 수준에서 어떤 형태로든 완전히 해결될 수 없는 남한과 북한과의 체제의 차이점으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제점을 점진적으로 극복하면서, 어떻게 서로 합의할 수 통일과정의 모델을 개발하여 적용하려고 하는 노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시대적, 역사적인 헌법적 과제의 실행과정으로 볼 수 있다.
최근의 남한과 북한과의 관계 역시 북한의 군사적 긴장야기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색국면 때문에, 앞으로의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미래에 대한 정학한 예상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헌법전문 그리고 헌법 제4조에 근거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의 명령은 독일 재통일 전에 독일 기본법 속에 규정된 재통일 명령(Wiedervereinigungsgebot)과 마찬가지로 계속적인 북한과의 통일을 위한 교류 및 접촉을 실행하는 것을 요구하고, 정당화시킨다. 우리 헌법 전문과 제4조에 근거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정책의 수립과 실행의 요청에 있어서 헌법기관들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형성의 영역(Gestaltungsspielraum)이 인정된다. 이것은 국가적 통일을 실행하는 남북기본합의서 혹은 최근의 판문점 선언 그리고 남북한 종전선언의 실행을 위한 노력과 같은 남북한 사이의 합의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국제법적인 합의(völkerrechtliche Vereinbarungen)가 경우에 따라서 헌법이 실현하는 상태를 초래하지는 않더라도, 이전의 상태보다 훨씬 더 헌법에 더 적합한 상태를 만든다면, 이러한 합의는 헌법적합적(verfassungsgemäß)으로 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1).
동서독 기본조약(Grundlagenvertrag)에 대한 자신의 결정 속에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한걸음 한걸음씩 다양한 국제법적인 변형을 거쳐서 국가연합(Konföderation)까지 도입할 가능성을 명백히 제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연방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국가연합을 연방국가(Bundesstaat)에서의 국가법적인 국가들의 결합인 ‘연방(Föderation)’과 대조적으로 예를 들면 1815년의 독일연방의 모범에 따른 국제법적인 국가결합(völkerrechtliche Staatenverbindung)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을 참조로 하여 실행되는 남한과 북한과의 계속적인 교류를 위한 새로운 협력관계유지를 유지한 남북한 간의 연합체의 결성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논의는 한국과 독일의 재통일 전의 상황에 대한 단순비교를 통해서 전개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체제의 민주화 정도와 남북한을 둘러싸고 있는 열강국가들의 이해관계의 조정이라고 판단된다. 독일 재통일 직전에 발생한 구소련을 포함한 중부유럽과 동부유럽의 공산국가들의 급속한 붕괴와 변혁의 발생은 독일의 기본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입각한 재통일의 위한 실행을 위한 매우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였다. 물론 이러한 독일의 행운은 서독이 기본법(Grundgesetz) 속에 독일의 재통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전문(Präambel) 속에 독일민족(das Detusche Volk)에 의한 국가적 통일의 달성과 이를 통해서 형성된 동독과 서독의 통일국가가 통합된 유럽의 공동체속에서의 동등한 권리를 가진 구성원으로서 세계평화에 기여할 가능성을 미리 규정하고2), 이에 대해서 사전에 잘 대비하고 있었던 결과로 인하여 실행된 것이었다. 1957년 3월 25일 서독을 포함한 6개국이 체결한 로마조약(treaty of Rome)을 통해서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가 출범하기 전인 1949년 효력을 발생한 기본법이 그 전문 속에 규정된 독일민족에 의한 민족적 그리고 국가적 통일(nationale und staatliche Einheit)의 달성과, 통합된 유럽 속에 동등한 권리를 가진 구성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를 통한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목표는 그대로 독일 역사 속에서 그대로 실현되었다. 이러한 전문의 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독일은 적극적으로 유럽공동체의 형성에 참여하였고, 이러한 자신들의 유럽통합에의 참여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동독과 서독 사이의 조약공동체(Vertragsgemeinschaft)의 형성을 통해서 자신들의 재통일을 완성할 수 있었다3).
동독의 급격한 몰락으로 인하여 독일의 조약공동체 형성에 의한 통일과정은 매우 짧은 시간에 진행되었지만, 독일의 재통일을 위하여 필요한 여러 가지 법적통합적 과제들의 실행을 위한 법적 전제조건들은 이러한 독일의 유럽통합에 대한 참여과정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89년 11월 9일 저녁에 Günter Schabowski에 의하여 행해진 여행완화방안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하여 촉발된 동서독 국경, 이른바 독일-독일 국경(deutsch-deutsche Grenze)의 개방이 행해진 후에 1989년 11월 28일 당시 독일연방공화국 수상이었던 Helmut Kohl이 자신이 사전통지없이 연방의회(Bundestag) 연설에서 제안한 「독일과 유럽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10개항 프로그램(Zehn-Punkte-Programm zur Überwindung der Teilung Deutschlands und Europas)」에서 당시 서독정부가 구상한 동서독 재통일 방식을 명백히 제시하였다. 그는 당장 실행해야할 응급조치(Sofortmaßnahmen)로서 인도주의적 조치, 광범위한 경제적 지원 그리고 공동협력의 확대를 제안하였다. 이에 대한 동독 측의 반대급부로서 동독의 정치체계와 경제체계의 변경을 요구하였다. 그 다음 단계에서는 체제변화된 동독과 서독의 두 개의 독립된 국가들이 통일을 위하여 협상하는 조약공동체(Vertragsgemeinschaft)를 제안하였다. 이 조약공동체의 다음단계는 부분독립적인 국가연합적 구조(konföderative Struktur)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연합적 구조의 최종적 목적은 하나의 전체독일의 연방국가(Bundesstaat)의 성립을 통해서 독일의 국가적 통일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Kohl의 구상이 독일재통일 과정에서 그대로 실현된 것을 고려해 볼 때, 독일의 재통일 과정을 결코 우연에 의한 행운의 결과로 절대 볼 수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통일 이전인 1990년 3월 18일의 동독의 인민회의(Volkskammer)의 자유로운 선거의 실행전에 통화연합(Währungsunion), 경제연합(Wirtwschaftsunion) 그리고 사회연합(Sozialunion)에 대한 조약을 준비하고 있는 전문가집단(Expertengruppe)의 구성을 성사시켰다. 국경개방 이후에 급속하게 진행된 독일의 재통일의 진행과정 속에서 양 독일 국가들 사이에 경제연합(Wirtschaftsunion)과 통화연합(Währungsunion)을 실현시키기 위한 국가간 조약(zwischenstaatliche Verträge)의 체결이라는 법적 형식의 구축을 통해서 통일과 관련된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찾게 되었다4).
1990년 3월 18일의 첫 번째 자유, 비밀 그리고 민주적 선거 결과 후에 독일민주공화국, 즉 동독이 서독과의 통일을 위하여 통화-, 경제- 그리고 사회연합 조약(Vertrag über die Schaffung einer Währungs-, Wirtschafts- und Sozialunion zwische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und der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의 체결 그리고 최종적인 그리고 통일조약(Einigungsvertrag: Vertrag zwische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und der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 über die Herstellung der Einheit Deutschlands)을 체결한 전체적 과정을 살펴볼 때, 독일의 재통일은 서독만의 일방적 노력이 아닌, 동독주민들의 민주화 실현과 통일노력의 결실이었다는 점도 부각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독일의 재통일과정이 동독의 사회주의적 체제극복을 자체노력의 결과였다는 점은, 우리의 통일과정에서도 많이 고려해야만 하는 타산지석적 요소라고 생각된다. 이점은 최근의 남한과 북한 사이의 남북연합체 구상을 통한 점진적 통일실현 방안의 구축에 있어서도 고려되어야만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구동독의 사회주의 체제의 급격한 몰락과 민주화로 인하여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진행된 독일과 달리, 당장 북한체제의 개혁과 몰락가능성이 예견되지 않고, 최근의 남한과 북한의 정부수반들의 만남을 통해서 행해진 판문점 선언5)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북한 핵실험의 연장선상에 있는 긴장관계의 증폭은 남한과 북한과의 관계를 더욱 더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현재의 상황에서, 남한정부는 어떻게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면서 다시 평화로운 상태에서 남한과 북한의 접촉이 가능한 통일실행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남북연합체(Korean Commonwealth) 구상을 하면서 유럽연합모델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하고 있다6). 이것은 화해-협력단계, 남북연합단계 그리고 통일국가단계의 3단계 진행과정을 전제로 하고 있는 남한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7)과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의 접점이 형성되는 관점에서 남북연합을 구상하면서 이러한 남북연합체에 대한 유럽연합 모델의 전용가능성 여부를 검토하는 시도라고 생각된다.
Ⅱ. 현재의 유럽연합의 통합수준과 국가적 성격
1950년 5월 9일의 기자회견에서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쉬망(Robert Schuman) 제안한 서유럽의 석탄과 철강공동체 설립제안, 이른바 Schumann Plan을 실현한 1951년 4월 18일 ECSC(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설립조약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베네룩스 3국아 파리에서 서명하여 체결되었고, 그 이듬해인 1952년 7월 25일 효력을 발생하였다. 이러한 Schumann Plan은 당시의 전쟁과 관련된 군수산업의 핵심적 요소인 석탄과 철강의 관리와 통제를 각 개별국가의 범위를 떠나서 나중에 설립되는 유럽집행위원회와 같은 초국가적 고권적 기구에 맡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8). 현재의 유럽통합의 주된 이상적 목표는 유럽연합조약 전문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유럽연합의 국민들 사이에 연대(solidarity)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는 평화증진을 위한 유럽통합 프로젝트인 초기의 Schuman Plan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모든 전쟁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9). 연대는 유럽의 국가결합, 헌법결합 그리고 가치결합(Staaten-, Verfassungs- und Werteverbund der EU)를 지탱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주된 가치이다10). 유럽연합조약 제2조 속에 규정된 바와 같이 다원주의, 차별금지, 연대, 정의, 연대성, 남녀간의 평등은 유럽사회를 규정하는 특징적 요소이다.
이러한 다극적인 다국가의 존재를 전제로 한 평화공동체 구축을 실현하기 위한 Schumann Plan의 기본정신이 남북한의 긴장완화를 위한 평화공동체적인 국가연합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남북통일과정에서 원용될 수 있는 착안점은 평화실현을 위한 국가들 사이의 공동체의 구축과 이를 통한 군비확장의 공동관리와 통제이다. 이러한 평화공동체적인 국가연합은 남한과 북한의 연대의 강화를 통한 남북한 사이의 국가적 통합을 위한 통일의 완성이다. 이러한 목표설정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핵 문제가 우리 대한민국 정부의 통제범위를 벗어난 UN의 국제적 평화와 안전의 문제로 확대되어 있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무언가 획기적인 북한체제 자체내의 변화과정과 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까지 포함된 주변강국들과의 이해조정과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 구성국가들의 개별국가성과 우위를 전제로 한 헌법결합의 수평적 측면(horizontale Dimension des Verfassungsverbundes)으로서 형성된 유럽연합은 탈국가적인 헌법적 개념(postnationalen Verfassungsbegriff)을 전제로 한 법공동체(Rechtsgemeinscchaft) 그리고 헌법적 공동체(Verfassungsgemeinschaft)이다11). 이에 대한 반론으로서 Armin von Bogdany 교수는 유럽연합을 법공동체로 정의하는 것은 너무 진부하고, 너무 독일적인 해석론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12). 이와 관련하여 von Bogdandy 교수는 법공동체 개념이 현재의 유럽연합의 구체적 형성형태를 기술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규범적 측면에서도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전히 법공동체 혹은 법영역 개념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혹은 보다 나은 다른 개념을 찾을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현재의 유럽연합의 법공동체 모델의 핵심적 논의사항으로 볼 수 있다. 법공동체로서 유럽연합 모델은 원래 처음부터 유럽의 공권력 관념을 전제로 설정하고 있다. 유럽헌법과 각 개별 구성국가들의 헌법은 유럽연합의 시민들에 의하여 그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는 서로 짜 맞추어진 헌법적 체계로서 유럽의 헌법적 결합속에서 실질적 통일성의 가지고 있다13). 법원을 통한 광범위한 사법적 통제권한을 전제로 하고 있는 법공동체 개념은 더 이상 유럽연합에 완전히 통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난맥상은 특히 최근의 폴란드와 헝가리에서의 법의 지배의 위기, 난민문제 그리고 브렉시트(Brexit) 등과 같은 상황 등의 발생을 통해서 더욱 더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현재의 유럽의 상황을 고려하여 유럽연합이 명목상의 법공동체로 전락하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유럽연합을 법공동체의 이상의 저편에 있는 정치화된 강제공동체로 보는 것이 현재의 유럽법의 갈등해결을 위한 정치화 경향을 보다 잘 설명하는 것이 된다는 주장도 정당화 된다14). 이에 대하여 Franz C. Mayer 교수는 이러한 유럽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유럽헌법적 토대에 바탕을 둔 법공동체 개념을 유럽통합의 중심적 사상으로 더욱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15).
유렵연합의기능에 관한 조약(Treaty on the Functioning of the European Union/Vertrag über Arbeitsweise der Europäischen Union (AEUV)) 제1조 제2항은 유럽연합이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과 유럽연합조약(EUV)에 근거하여 설립되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의 통합프로젝트는 유럽연합의 구성국가들에 의하여 체결된 조약들의 합의된 법원칙들을 바탕으로 하여 실행된다16). 리스본 유럽연합-개정조약(EU-Reformvertrag von Lissabon)에 근거한 현재의 유럽연합체제는 유럽공동체(die Europäische Gemeinschaft) 대신에 유럽공동체의 법적 후계자(Rechtsnachfolgerin)인 유럽연합(유럽연합조약(EUV-Lissabon) 제1조 제3항 제3문))에 대해서 공식적인 법인격(Rechtspersönlichkeit)을 취득을 인정하였다 (유럽연합조약(EUV-Lissabon) 제47조)17). 이와 관련된 유럽법의 구조적-형식적 개정은 유럽공동체설립조약(Vertrag zur Gründung der Europäischen Gemeinschaft)인 유럽공동체조약(EG-Vertrag)의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AEUV)으로의 명칭의 변경을 통한 대체적 변형(Umwandlung)이다.18) 이러한 유럽공동체조약의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의 대체적 변형을 통해서 유럽공동체는 소멸되고 결과적으로 독자적 법인격을 가지고 있는 유럽연합만이 존재한다.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 제1조 제2항은 현재의 유럽통합법은 유럽차원의 국가적 통일성의 확보가 아니라, 유럽연합의 구성국가들의 다양성의 동시적 보장을 전제로 한 공동협력과 공동행위의 계속적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다19). 유럽연방국가 건설이라는 유럽통합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현재의 유럽연합의 통합수준이 국가와 유사한 것(Staatsähnlichkeit) 혹은 국가에 가까운 것(Staatsnähe) 수준으로 실현되었다고 주장할수 있다고 하더라도, 유럽연합은 여전히 국가성의 문턱을 넘어서지는 않았다20). 이러한 현재의 유럽통합의 실현정도를 고려해 볼 때, 남북통일과정에서 유럽연합체제를 전용한다는 것은 국가적 통일성과 헌법적 통일성 확보의 전단계로서 남북한 사이의 협력증진과 공동행위의 증진을 통한 남북한 사이의 공동체적 연대성의 증진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에서의 현재의 유럽연합의 각 구성국가들 사이의 새로운 협력관계의 형성과 최근의 Brexit 문제와 같은 구성국가의 탈퇴를 통한 유럽연합의 해체와 같은 서로 대립되는 문제해결에 있어서 완전한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연합의 유럽통합의 궁극적 목적인 하나의 연방의 형성이나 아니면 유럽연합의 분리 즉 연방의 해체라는 이 두 가지 문제만이 존재할 수 있다. 현재의 어수선한 상황을 그대로 외면하는 어설픈 시도는 실현불가능한 희망만을 잉태시키거나 아니면 유럽연합이전의 원래의 상태로의 복귀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유럽연합의 양자선택의 문제는 1966년 Stanley Hoffmann이 유럽의 선택과 관련하여 언급한 문구를 되새기게 만든다: 연방화할 것인가 혹은 소멸한 것인가(federate or perish)21). Hofmann은 당시의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는 계속적인 혼란 속에서 존재하는 과도기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보았다.
2000년 5월 당시의 독일 외무장관이었던 Joschka Fischer는 자신의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의 연설에서 유럽통합과 관련하여 널리 인용되는 연설을 하였다. 그는 유럽연합의 확장의 반박할 수 없는 결과는 침식 혹은 통합이 될 것이다. 이 두 개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유럽연합의 족속을 희망한다면 유럽은 연방화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22).
Jürgen Habermas는 ‘세계주의적 헌법(cosmopolitan constitution)’을 지지하는 세계주의의 조건에 대한 자신의 이상주의적 구상과 관련하여, 세계공화국(world republic)에 대한 자신의 고전적 보편주의적 프로젝트(classical universalist project)와 이에 대한 보다 약한 대안으로서 자유국가들의 연방주의(federalism of free state)를 헌법주의적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다. Habermas는 이러한 자신의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국제사회는 기존의 정치적 구조로부터 출발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국가적 성격이 결여된 다단계 체계(multilevel system)로서 하나의 분산된 세계사회의 정치적 헌법(a political constitution of a decentred world society)을 제정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23). Habermas는 이러한 다단계 체계를 다음의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① 초국가적 상위차원(a supranational upper level), ② 국가간 중간단계 (a transnational intermediate level), ③ 국민국가의 하위단계(a lower national (state) level). 그는 이러한 단계적 구분을 통해서 하나의 세계정부없이 세계적 국내정책(global domestic politic)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24). Habermas는 국가와 유사한 특성의 인정없이 평화의 보장과 인권보장의 실행이라는 단지 두가지 제한된 기능만을 행하는 충분히 개혁된 안전보장이사회를 가지고 있는 국제연합(United Nations)을 이러한 초국가적 세계기관으로 보고 있다25). 보다 덜 통합된 중간단계의 국가간 단계(transnational level)에서는 에너지, 환경, 무역 그리고 화폐와 재화의 이동과 같은 공동의 이익의 보장을 위한 규칙의 형성의 보장을 위한 기관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러한 기관으로서 지속적인 협의와 협상의 공간이 보장되는 구조적 틀의 범위 속에서 세계경제적 문제 그리고 생태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권력들(major powers)을 고려하고 있다. Habermas에 의하면 이러한 주요권력들은 유럽연합 모델과 같은 국민국가들에 의하여 구성되는 연방의 형태로 조직된 대륙적 체제(federally‐.structured continental regimes established by the nation‐states)로 구성된다26). 이러한 중간단계의 국가들 사이의 협력은 기존의 전통적인 국제법상의 국가들의 사이의 협력의 범위를 넘어서서 전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공통적 관심사에 대한 협력을 형성한다. Habermas는 이러한 다단계의 체제를 미국에 의하여 강제된 (도덕적인(moralist)) 패권적 자유주의(hegemonic liberalism)의 단독적 세계질서와 또 다른 한편으로는 Carl Schmitt의 (현실주의적인(realist)) 작은 수의 제국적 권력의 다극적 대립주의(pluripolar antagonism)와 비교하고 있다27).
이러한 국가간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유럽연합이 초국가적 상위차원의 공동체가 될 것인지 혹은 연방국가로 나아갈지 여부는 유럽연합의 구성국가들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형성될 남북연합체제 역시 이러한 국가간 중간단계인 유럽연합 모델을 거쳐서, 통일국가로 나아갈 수 여부는 전적으로 남한과 북한과의 상호협력과 공동체 형성의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유럽연합모델을 수용하려면 우선적으로 남한이 연방국가적 개헌을 통한 연방제와 양원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독일의 흡수통일 사례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헌법제체로 기능하였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Ⅲ. 유럽연합의 국가적 성격과 남북연합과의 연결성
유럽연합체제를 한국의 통일과정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유럽연합의 법적 성격으로서 국가결합(Staatenverbund)에 대한 검토가 요청된다. 유럽연합을 통한 유럽통합계획은 유럽연합의 구성국가들이 조약에 합의한 법원칙들을 기초로 실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유럽연합은 기본적으로 조약에 바탕을 둔 법의 공동체(Rechtsgemeinschaft)이다. 유럽연합은 국제조직의 창설을 위한 헌법적 합의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국제법의 헌법화 과정 중 규범형성적 헌법화(enabling constitutionalization)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일부 국제적 헌법규범들은 일반적 국제법(ordinary international law)의 제정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른바 규범형성적 헌법화). 국제기관에 대하여 제2차적 국제법(secondary international law)을 제정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조약조항이 이에 해당한다. 예컨대 유럽연합을 창설하는 조약들은 제2차적 유럽연합입법의 제정을 위한 복잡한 절차를 마련해 준다.
유럽연합의 헌법적 질서에로의 법적인 통합의 강화되면 될수록, 결과적으로 유럽연합의 구성국가의 국내적 헌법구조(domestic constitutional structure)의 구성요소의 규범력은 점점 더 약화될 수 밖에 없다. 그 반대로 최근의 브렉시트나 폴란드와 헝가리와 같은 나라에서의 유럽연합의 법의 지배의 위기를 초래하는 상황이 강화되면 될수록 유럽연합의 법공동체 모델은 점점 더 약화되어서 정치화된 강제공동체로 격화될 수도 있다. 유럽연합의 법질서의 규범력 강화로 인하여 초래된 국내법 질서의 탈헌법화 과정(process of de-constitutionalization)은 역설적으로 유럽연합의 각 구성국가들의 국내헌법질서의 무력화를 정당화시킬수 있다. 더 이상 국내헌법질서 속에서의 입법의 문제는 점점 더 유럽차원의 문제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국내헌법질서 속에서의 개인의 기본권 보장의 문제는 더 이상 유럽인권법원(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과 유럽연합법원의 판례에 고려 없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왜냐하면 유럽인권협약과 유럽연합의 기본권 헌장이 유럽연합의 개별국가에 대하여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한에서는, 기본권 보장의 문제는 이들 국제법원의 관할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럽차원에서의 헌법질서의 규범력 확대는 헌법주의가 국내적 단계를 넘어서서, 국가간 단계, 즉 국제적 차원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들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적 헌법주의의 지역적 국가연합체제에로의 확장으로 이해할 수 있는 유럽연합체제의 형성을 남북통일과정에서 전용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우리는 독일과 프랑스와 같은 유럽의 각 국가들이 과거의 끊임없는 서로간의 대립과 전쟁의 역사에 대한 반성에서. 헌법적 결합에 바탕을 둔 정치적 공동체인 동시에 인권공동체인 유럽연합체제를 발전시킨 기본적 이상과 법적 구조를 우리의 통일모델에 전용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남북연합에 이러한 국제적 헌법주의의 확장으로서의 유럽연합 모델을 전용하는 것은 김일성 일가의 가부장적 지배체제의 계승을 헌법 속에서 정당화하는 북한에서의 혁명적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그 기본적 전제조건은 충족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어쩌면 남북분단의 역사가 이미 반세기를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이상의 시발점인 법적 구조를 디자인하려는 시도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약에 바탕을 둔 공동의 목적설정을 위하여 그 국가의 주권적 권리의 이양을 전제로 하고 있는 조약공동체가 형성되면 조약공동체 가입국가는 공동체의 목적에 의한 주권적 권리를 제한받게 된다. 이것은 마치 유럽연합에서의 국제법의 헌법화 과정 중에서 이러한 규범제한적 헌법화의 요구의 증가와 가속화는 유럽공동체(EC)와 유럽연합의 다양한 조약들은 유럽연합의 무게중심을 회원국이 중심이 된 위원회(Council)로부터 유럽차원의 입법권을 이동시켰고,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의 영역을 증가시켰다. 이러한 발전들은 규범형성적 헌법화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체제가 완전한 연방국가로 나아가지 않는 한에서는 이러한 규범형성적 헌법화의 영역은 무제한적으로 확장될 수 없다. 이러한 규범형성적 헌법화에 대한 제한으로서 작용하는 규범제한적 요구를 가장 명백하게 부각시킨 예로서 마스트리히트 조약(Maastricht Treaty)의 “제안된 행위의 목표가 구성국가들에 의하여 충분히 달성될 수 없고, 그러므로 제안된 행위의 규모나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공동체에 의하여 그 목적이 더 잘 달성될 수 있는 경우에만 유럽공동체는 행위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보충성 조항(subsidiarity clause)을 들 수 있다28). 이 보충성 원칙은 입법권의 유럽연합에로의 점진적인 이동에 요구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유럽연합법의 업법권의 범위의 확장에 대한 한계설정적 기능을 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보충성 조항은 유럽연합의 구성국가의 국가와 주의 법적 자율권의 보호와 유지를 통해서 유럽연합의 헌법적 통합의 수준을 적절히 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29).
결국 이 문제는 유럽연합의 법적 성격이 연방국가가 아닌, 헌법결합과 국가결합(Verfassungs- und Staatenverbund)으로 이해하는 입장에 대한 좀 더 상세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Christian Callies 교수는 Georg Jellinek의 국가 3요소설을 유럽연합에 적용하여서, 유럽연합의 국가영역과 유럽연합의 국민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유럽연합조약 제52조는 유럽연합의 국가영역을 유럽연합의 구성국가의 구성영역과 동일시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국민은 마스트리이트 조약에 의하여 도입된 유럽연합의 시민권제도에 의한 유럽연합의 구성국가의 국적을 전제로 한 유럽연합의 시민이다30). 그리고 그는 국가결합의 개념을 실질적 내용을 가진 헌법을 통해서 보충되어야만 하는 미완성 개념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유럽헌법조약이 부결된 현재의 유럽통합의 수준에서, 헌법적 결합으로서 유럽연합을 성립시키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요소는 유렵연합조약을 비롯한 유럽연합의 우선적 법(primary law)과 각 개별구성국가의 헌법이다. 이러한 유럽연합의 우선적 법과 각 개별 구성국가의 헌법을 통해서 발전적으로 형성되는 유럽연합의 헌법적 내용들을 고려하여 Callies 교수는 유럽연합을 개방적 헌법국가들로서 유럽연합의 개별 구성국가들을 존재를 바탕으로 한 국가결합 모델이 가능하게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31). 이러한 유럽연합의 국가결합 모델은 남북통일모델에 전용해 본다면, 남북연합 역시 조약공동체 모델을 채택하여 각각 남한과 북한의 국가영역을 포함하는 국가영역의 확정 그리고 남북한의 주민을 포함하는 공통의 시민권 혹은 국적내념의 확정 그리고 남북한의 통일을 위한 기본적 조약내용 합의와 남한과 북한의 헌법을 통한 국가결합과 헌법적 결합이 가능해 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적 체제에 기반을 둔 북한의 정치체제의 개혁과 민주화의 요구의 실현이 전제된 개방된 헌법국가들로서 남한과 북한의 헌법적 결합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 본다면 독일의 재통일 과정에서 나타난 동독시민들의 자유혁명 실현을 통한 동독체제의 개혁은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어야만 한다.
국제조약에 대한 헌법적 효력을 유럽헌법조약이라는 형태로 시도해 본 유럽연합은 현재 거의 유럽연합의 구성국가에 대하여 적용되는 유럽연합법들은 국내법 질서에 헌법적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심지어 국내적인 형식적 헌법없이도 유럽연합의 인권법으로서 유럽연합의 기본권 헌장 혹은 유럽인권협약의 규정들은 구성국가의 국내법질서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국제법의 헌법화는 이러한 국제법 체계에 있어서 규범적 위계질서와 질서의 도입의 한 방법으로서 적어도 일련의 조정적 메커니즘으로서 기관과 규범의 증가로 인하여 발생한 혼란스러운 체계를 조직화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규범적 위계질서의 확립을 통하여 상위규범과 조정적 메커니즘은 법적 갈등을 조정하거나 해결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보다 큰 예측가능성과 규칙과 관련된 행위주체에 대한 확실성을 제공한다32). 조약에 기초로 체제로부터 출발해서 헌법적 체제로 변모하여 어떤 국제법의 지역적 분파(regional branch)를 넘어서는 새로운 법질서로 변모하여, 국제법 체계의 통일성을 확보한 예로서 유럽연합의 법질서의 통합을 들고 있다33). 국제법학자의 주된 관심대상이 된 헌법화의 두 번째 진행과정은 순수한 조약에 바탕을 둔 실체(a purely treaty based entity)에서 헌법적 실체로의 특정한 국제법 체제의 변용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연합은 모범적 선례 그리고 다른 국제적 체제(regime)에 대한 요구가 성립될 수 있는지 여부에 질문으로 구성된 국제적 헌법주의 논쟁의 중요한 부분을 제공한다. 1957년 조약을 통해서 발동이 걸린 법을 통한 유럽통합의 반복적이고 고도의 토의적 진행과정은 결과적으로 헌법적 진행과정(constitutional moment)으로 연결되었다고 설득력있게 평가되고, 이러한 이에 대한 특정한 후속적인 개정(amendments)과 추가과정(additions)으로 인식된다. 게다가 몇몇 인권조약을 포함한 다른 조약과 비교해 볼 때, 조약이 개정안이 효력을 발생하기 전에 행해지는 정부간의 회의소집과 모든 회원국의 만장일치에 의한 비준을 요구하는 성가신 개정과정의 진행은 로마조약(Treaty of Rome)에 대한 보호망이 되었다34). 유럽연합은 조약의 효력발생요건으로서 만장일치(unanimity)의 요구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국제법의 헌법화 진행과정이 조약에 기초한 국제적 실체와 헌법에 기초한 국제적 실체로 구분된다면 이 양자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물론 여기에서 양자 사이의 명백한 차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범위(spectrum)가 문제된다 할지라도, 양자의 차이점을 근거지우는 다음의 두가지 주장들이 존재한다. 그 첫 번째 주장은 일반적인 요구조건에 의하면 조약에 기초한 체제(treaty-based regime)는 주로 국제적 수준에서 작용하는데 반하여, 헌법에 기초한 체제는 상당히 충분한 정도까지 국내법질서에 효력을 미치고, 국내적 그리고 국제적 수준들 사이의 관계를 조직화한다. 이것은 연방화(federalization)로서 헌법화, 혹은 이원주의(dualism)로부터 연방주의(federalism)로의 이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두 번째 차이점은 조약에 기초한 체제는 조약의 성립과 이에 대한 합의 양자를 행한 국가에 대해서만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데 반하여, 헌법적 체제는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은 국가에 대해서도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그러한 새로운 의무는 어떤 다수결의 형식을 통한 자치적인 입법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버넌스 구조(governacne structure)에 의하여 부과되고, 강제적 관할권(compulsory jurisdiction)을 가지고 있는 재판기관에 의하여 집행된다35). 헌법화의 이러한 진행과정 속에서 합의(consent)에서 강제(compulsion)로의 이동이 나타난다. 유럽연합은 국제법의 헌법화된 체제의 패러다임(paradigm of a constitutionalized regime of international law)이다. 이렇게 유럽연합체제가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장점은 처음에는 조약에 기초한 체제로 시작했다는 궁극적으로 헌법적 통합의 문제가 제기되는 수직적 규범체계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체계의 변화의 진행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간적 진행과정이 요구되는 중요한 이유는 유럽연합의 구성국가의 다양성의 존중과 유럽차원에서의 합의형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본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형성된 다양성과 새로운 합의형성이라는 목표를 시행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유럽연합 모델을 채택할 것인가, 독일과 같이 한 민족하에서의 두 국가체제의 유지의 극복이라는 형태를 택할 것인가 이에 대한 선택을 해야만 할 것이다.
유럽연합은 구성국가들 사이의 조약체결에 의하여 형성된 국가결합(Staatenverbund)이다.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 제1조 제2항은 유럽통합법이 국가적 통일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구성국가들의 헌법적 문화들의 다양성의 동시적 보장을 통해서, 유럽차원에서의 공동의 제도적 행위를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고려해 볼 때 유럽에서의 제도적 통합의 완결점이라고 볼 수 있는 연방국가로의 통합은 각 구성국가들의 개별적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더욱 더 강화된 법적 통합을 정당화하려는 구성국가들의 의지에 실행여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수준에서 유럽연합은 유럽헌법조약이 전제한 하나의 국제적 헌법을 전제로 한 연방국가로 나아가는 문턱은 넘어서지 않았다36).
국가와 유럽연합 사이에 차이점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독일의 경우 독일 기본법 제23조 제1항과 유럽연합조약 제6조 사이의 필요한 구조적 동일성이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은 유럽연합의 중요한 헌법적 요소들은 국가영역과 동동한 것, 평행한 것 혹은 반복으로 이해한다. 이를 Rainer Wahl은 반복명제(Wiederholungsthese)로 명명하고 있다.37) 더 나아가서 유럽연합을 아직까지는 국가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은 국가개념과 관련하여 유럽연합을 아직 국가로서는 불충분한 것(Minus)으로 보는 입장과 국가와는 이질적인 것(Aluid)으로 보는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을 국가와는 다른 또 다른 하나의 독자적인 개념 즉 하나의 광범위한 국가결합으로 보는 입장들38) 역시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국가적 틀의 범위내에서 유럽연합을 정의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유럽연합과 국가와 간격을 강조하는 입장, 즉 유럽연합의 국가성을 부정하는 입장은 Wahl의 분류에 의하면 특별형식(Sui generis-Formel)로 명명된다.39) 국가개념의 추상도와 일반화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복잡한 국가적 상황을 포함할 수 있도록 국가의 구성요소를 담고 있는 개념적 틀의 범위가 보다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유럽연합은 그 내용과 개념이 약화된 의미 속의 국가로 이해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진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1992년 2월 7일의 마아스트리히트 조약(Maastricht-Vertrag)의 헌법위반성 여부에 대한 자신의 결정 속에서 유럽연합을 국가연합(Staatenbund)이 아닌, 국가결합(Staatenverbund)으로 이해하면서40), 이 국가결합 상태에서 국가적으로 조직된 유럽연합의 시민에 의한 보다 더 밀접한 연합으로 나아가는 것을 부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을 창설하고 유럽공동체조약에 경제연합(Wirtschaftsunion)과 화폐연합(Währungsunion)을 도입하였던 마아스트리히트 조약의 비준 후에 독일은 시발점이 되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와 같은 광산연합(Montanunion)과 유럽경제공동체(EEC/EWG)의 창설을 위한 로마조약들(Römisichen Verträge)이 기본법 제24조의 일반 규정(allgemeine Bestimmung)에 근거하여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 2월 23일의 법률을 통하여 독일통일 이후의 이전의 기본법 제23조를 대체한 새로운 기본법 제23조에 ‘이른바 통합조항(Einigungsartikel)’으로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였다. 유럽통합을 위한 권한위임규정(Ermächtigungsnorm)인 동시에 제한규정(Schrankenbestimmung)인 기본법 제23조의 새로운 특별한 권한(Spezialkompentenz)에 의하면, 독일연방의회와 연방참의원은 기본법 제23조 제2항에서 제4항 그리고 이 헌법조문의 구체화를 위하여 제정공포된 공동참여법률(Mitwirkungsgesetz)에 의하여 유럽연합의 사무(Angelegenheiten der EU)에 대하여 공동참여권을 가진다41).
통일적인 조약상의 조문들을 통하여 유럽통합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유럽연합구성국가의 비준을 얻지 못했던, 2004년 10월 29일 유럽연합의 정상들에 의하여 서명된 유럽헌법조약(Vertrag über eine Verfassung für Europa)을 대체하는 조약인 리스본 조약은 유럽헌법조약의 많은 부분들을 그대로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42). 유럽헌법조약과 다르게 리스본 조약은 헌법적 개념(Verfassungskonzept)을 포기하여 헌법이란 표현을 더 이상 사용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유럽연합의 정치적 형성권의 범위는 유럽연합에 국가적 원리를 유추적용한다면 부분적으로는 연방국가(Bundesstaat)를 형성할 정도로 항상 그리고 두드러지게 확대․심화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 유럽연합의 국가성 인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최근의 영국의 Brexit 탈퇴가능성이 고조되는 것과 관련하여 유럽연합의 결합력이 약화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43). 유럽연합이 지금까지 여러 가지 내부적 그리고 외부적 위협을 극복하고, 현재의 유럽연합의 각 구성국가들 사이의 새로운 협력관계의 형성과 최근의 Brexit 문제와 같은 구성국가의 탈퇴를 통한 유럽연합의 해체와 같은 서로 대립되는 문제해결에 있어서 완전한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연합의 유럽통합의 궁극적 목적인 하나의 연방의 형성이나 아니면 유럽연합의 분리 즉 연방의 해체라는 이 두 가지 문제만이 존재할 수 있다. 현재의 어수선한 상황을 그대로 외면하는 어설픈 시도는 실현불가능한 희망만을 잉태시키거나 아니면 유럽연합이전의 원래의 상태로의 복귀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리스본 조약 대한 자신의 결정 속에서 기본법 제23조 제1항에 의한 유럽연합(EU)에로의 통치권(고권)(Hoheitsrechte)의 양도에 대한 위임은 무엇보다도 제한된 개별적 위임의 원리(Prinzip der begrenzten Einzelermächtigung)에 의하여 주권적 헌법국가성이 책임질 수 있는 통합프로그램의 토대위에서 그리고 구성국가로서의 헌법적 정체성(verfassungsrechtliche Identität)의 유지하에서 보장되어지고, 독일연방공화국(Bundesrepublik)이 자기책임을 지는 생활관계의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형성에 대한 자신의 능력을 상실하지 않는 조건 하에서 행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유럽의 연방화의 길로 나아가는 여정이 완성되지 않은 점을 고려해 볼 때, 현재의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위한 중간단계로 남북연합의 롤모델로서 유럽연합체제에 대한 비교법적 분석을 하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제기해 본다. 독일의 재통일 과정에서 통일과정에서 나타난 기본법 제23조에 의한 독일연방공화국에로의 동독의 주에 편입은 이미 서독이 연방국가로서의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1945년 5월 8일 독일의 무조건항복 이후 독일제국의 법적인 운명에 대한 두 개의 상반된 주장이 대립된다: 소멸명제(Untergangsthese)와 존속명제(Fortbestandsthese). 소멸명제는 독일의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무조건 항복을 통해서 독일제국은 연합국에 의하여 해체되고, 독일제국의 법질서는 폐지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서 독일연방헌법소의 일관된 판례의 입장이기도 한 존속명제는 독일제국(das Deutsche Reich)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법적으로 멸망한 것이 아니라, 연합국의 점령에도 불구하고 - 설사 행위능력이 없다 할지라도 - 계속적으로 존속하였고, 독일연방공화국의 생성과 더불어 국가영토의 한 부분을 단지 새롭게 조직하였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존속명제는 재통일까지 유효하게 적용된 기본법의 전문 그리고 제16조, 제23조 제116조 그리고 제143조에 그 헌법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두 개의 독일의 분단된 부분국가들(Teilstaaten)은 1949년 10월 각각의 건국과정을 출발점으로 하면서 그들의 재통일(Wiedervereinigung)을 지향하고 있었다. 1990년 10월 3일 통일조약을 통해서 독일민주공화국의 주들의 서독연방에로의 가입하기 전까지 1949년부터 1989년까지 동독 공산당인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SED (Sozialistische Einheitspartei Deutschland))은 서독과의 국가적 관계성 인정과 관련하여 다음의 세 가지 다양한 입장을 취하였다: ① 1949년-1955년 하나의 국가 – 하나의 민족(ein Staat - eine Nation), ② 그 이후 1960년대 말까지 두 개의 국가- 하나의 민족(zwei Staaten - eine Nation). ③ 그러나 1971년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는 독일의 재통일을 포기한 듯한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사이의 새로운 공식을 결의하였다: 두 개의 국가 - 두 개의 민족(zwei Staaten - zwei Nationen). 1955년 독일 공산당(SED)은 소련의 두 독일국가 테제(die sowjetische These von der Zweistaatlichkeit Deutschlands)를 그대로 수용하였다. 1960년 대말까지 동독의 외교정책의 주된 목표는 소련의 영향력 하에 있는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Ostblock)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인정받는 것이었다. 독일공산당은 전체독일국가를 지향하는 입장으로부터 벗어나서, 독일연방공화국을 압박하는 정책을 실행하였다.
1957년 2월 Walter Ernst Paul Ulbricht는 두 개의 독일 국가의 국가연합(eine Konföderation beider deutschen Staaten)을 제안하였다. 그는 이러한 두 개의 독일국가의 국가연합에로의 통합을 서독의 동독에로 일방적인 동화적 통합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서독의 나토(NATO)로 부터의 탈퇴, 국방의무의 폐지, 제국주의 군대의 철수, 독점적 경제지배의 폐지를 요구하였다. 1957년 울브리히트(Ulbricht)에 의하여 제안되고, 1966년 까지 수차례 반복되어진 여러 가지 제안들 중의 첫 번째 출발점은 양 독일국가들의 대표들의 동등한 구성이 보장되는 전체독일 위원회(gesamtdeutscher Rat)의 설치제안이었다. 이러한 전체독일 위원회는 당파적으로 구성되었고, 국가연합의 정부로서의 기능을 행사할 예정이었다.
이 전체위원회는 통화의 통일과 전체독일의 행정적 체제정비를 위한 조치를 실행하고, 국민회의(Nationalversammlung)의 구성을 위한 선거를 준비할 예정이었다. 국민회의는 헌법을 제정하고, 제국주의적 정책을 더 이상 실행하지 않고 평화, 민주주의 그리고 발전에 기여하는 정부를 구성한다. 이러한 정부는 당연히 당시의 서방의 민주적 체제의 입장에서 볼 때, 공산주의 정부체제(ein Kommunistisches Regierungsregime)를 의미하므로, 당연히 이러한 제안들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독일민주공화국 측의 이러한 국가연합(Konföderation)44)에 대한 제안은 더 이상 아무런 호응을 받지 못해서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결국 독일 통일은 한 민족(ein Volk) 내에서의 현실적인 두 독일국가의 존재 그리고 두 개의 헌법의 존재를 서독연방에 동독의 주들이 가입하는 형태로 종결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동서독 기본조약체제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헌법 제3조를 근거로 하여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양쪽 모두 북한의 국가성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3조는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제1항에서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국가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보면서, 제2항에서 남한과 북한간의 거래는 「국가간의 거래가 아닌 민족내부의 거래」로 보고 있다.
Ⅳ. 유럽연합의 시민권 제도와 북한주민의 국적문제
이러한 우리나라의 헌법과 법률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처럼 경제공동체의 내부적 기본자유로서 유럽연합의 내부에서 구성국가들 사이의 사람, 재화, 서비스 그리고 화폐까지 자유로운 이전을 인정하는 내부시장을 형성하고, 유럽연합 시민권의 도입을 통한 정치적 통합을 실현하는 법적 공동체로 발전하는 모델의 장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유럽연합의 각 국가들의 다양성을 존중을 바탕으로 한 국가연합체의 구성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에는 시급한 인도적 차원의 교류부터 시작하여, 조약공동체를 성립시켜서 궁극적으로 통일을 달성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Kohl이 독일통일과정에서 제안한 10개항 프로그램의 점진적 실행도 남북연합체 구성에 대한 좋은 비교검토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개인적으로 유럽연합체제의 가장 중요한 점은 유럽연합 시민권의 인정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유럽연합의 시민권은 유럽연합법의 어떤 개인의 유럽연합에 대한 기본적인 소속을 인정해 주는 법적인 지위(angehörigkeitsrechtliche Status)이다. 1992년의 Maastricht 유럽연합조약(Unionsvertrag von Maastricht)의 독자적인 장(Kapitel)으로 도입된 유럽연합의 시민권(Unionsbürgerschaft)은 유럽공동체조약(EGV) 제17조(현재의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TFEU/AEUV 제20조))에 규정되었다. 유럽연합의 시민권은 1993년 11월 1일 이 조약의 발효와 더불어 그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다. Maastricht 조약에 의한 유럽연합 시민권(Unionbürgerschaft)의 도입을 통하여 유럽연합은 기존의 경제공동체에서 정치적 연합으로 계속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법적 기초를 마련하였다.
유럽공동체법원(EuGH)의 판례는 유럽연합시민의 지위는 유럽연합의 구성국가의 국적을 전제로 인정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45). 유럽연합의 시민권이 귀속되는 법적 단위는 유럽연합이다. 유럽공동체와 유럽연합의 공존으로 인하여 발생하였던 유럽연합의 시민권의 귀속되는 법적 단위의 불명확성은 리스본 조약(treaty of Lisbon)을 통해서 해결되었다46). 왜냐하면 리스본 조약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구조적-형식적 개정인 유럽공동체설립조약(Vertrag zur Gründung der Europäischen Gemeinschaft)인 유럽공동체조약(EG-Vertrag)의 유럽연합의 기능에 대한 조약(Vertrag über Arbeitsweise der Europäische Union, AEUV)으로의 명칭의 변경을 통한 변형(Umwandlung)47)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현재에는 독자적 법인격을 가지고 있는 유럽연합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에는 이전의 유럽공동체의 법적 계승자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유럽연합이 통일적인, 법인격을 가지고 있는 유럽연합시민권의 법적 귀속단위로 존재한다(유럽연합조약 제1조 제3항 제3문, 제47조)48). 유럽연합의 시민권의 법적 지위에 관한 중요조항들인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 제20조 제1항 제2문과 제3문 그리고 또한 유럽연합조약 제9조 제2문과 제3문은 동일한 단어들을 반복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민주적 정당화에 기여하는 유럽연합의 시민권은 유럽연합의 구성국가의 국민들뿐만 아니라, 이러한 각 유럽연합의 구성국가의 국민들이 결합된 유럽연합시민의 전체로부터 도출되는 이중적 민주적 정당성을 유럽연합에 부여한다49). 이러한 이중적 정당성 부여의 근거는 유럽연합의 시민권에 근거한 유럽연합시민의 법적인 지위가 유럽연합 구성국가의 국적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 제20조 제1항 제2문).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 제20조 제1항 제2문은 “구성국가의 국적을 가지는 자는 유럽연합의 시민(Unionsbürger)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 제20조 제1항 제3문은 “유럽연합의 시민권은 구성국가의 국적을 보완한다. 그러나 이를 대체하지는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시민은 유럽연합조약과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 전체 그리고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 제2편(Teil) 속의 유럽연합의 시민권 속에 특별히 규정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TFEU/AEUV)은 이미 제20조-제25조에서 시민권 개념의 인정과 동시에 유럽연합시민이 누리게 되는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기본자유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유럽연합의 시민권 제도를 고려해 볼 때, 남북연합에서의 유럽연합 모델의 도입은 기존의 북한주민의 대한민국 취득성을 자동적으로 인정하는 서독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우리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은 남한과 북한의 국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한민족 공동체 시민권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에 대한 논의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Ⅴ. 유연성 개념의 적용과 관련된 유럽연합체제의 원용
이러한 연방화로 나아가기 위한 유럽연합의 여정은 직선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연방화된 유럽연합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유연성 혹은 보다 강화된 협력을 통해서 형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유연성의 확보를 위하여 Fsicher는 유럽연합은 모든 구성국가들이 동시에 통합하고, 동일한 목적들을 따르는 Monnet의 방법론을 탈피하고, 보다 더 통합할 수 있고, 이를 원하는 구성국가들이 더욱 더 활동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선택해야한다고 보았다50).
이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중요한 문제는 유연성의 논리적 결과는 연방(federation)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가 지적하는 중요한 내용은 유연한 통합의 사용의 빈도가 증가하게 되면, 그 기본적 성격이 전통적인 국가 혹은 연방정부와 전혀 다른, 이질적인 유럽연합이 만들어 지게된다는 점이다51).
유연성이 가미된 유럽연합의 통합과 한국의 통일을 동일한 맥락에서 검토하고 받아들여야하는 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해 본다. 유럽연합의 통합과 유연성과의 관계 속에서 기본적으로 제기되는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52): ①유럽통합과정의 역사적 맥락(historical context)에서 본다면, 유연성은 무엇인가? ② 헌법적인 결합력이 보다 약화된 유럽연합이 출현하가 되는 원인과 이유는 무엇인가? ③ 국가개념과 조화로운 법질서 관념이 현재의 유럽연합을 이해하는 있어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④ 여전히 보다 다양화된 유럽연합을 통합시키는 수단으로서 유연성을 언급하는 것이 헌법적 측면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위에서 언급한 Joschka Fischer의 주장처럼 유럽에서의 연방국가의 관철이 아닌, 유연성 개념의 실현을 통한 유럽의 다중심주의적 차원에서의 유럽의 광범위한 헌법적 그리고 역사적 맥락 속에서의 유연성에 대한 논의들이 우리의 통일논의와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우선적으로 예외와 선택적 이탈 체계로서의 유럽연합에서 찾아본다. 결국 남북연합체체의 유럽연합체제의 전용가능성의 핵심적 요소는 유럽연합이 유럽통합실현에 있어서 유연성 개념을 어떻게 잘 설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구현하였는지에 대한 검토라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는 보다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유럽연합조약의 형성 및 이를 바탕으로 기관조직의 문제가 다루어 질 것이다.
통합도구로서 유연성은 1997년의 암스테르담 조약(Amsterdam Treaty)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유럽공동체의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유연성 메커니즘은 조약문서의 일반적 원칙으로 기술되었다. 이렇게 유연성을 조약 속에 규정하는 것을 어떤 이는 매우 혁명적인 조치로 본반면, 또 다른 이는 전체연합의 해체로 가는 첫 번째 단계로 보았다53).
"고무조항(rubber clause)"이란 별명이 붙여진 유연성 조항(flexibility)은 유럽연합이 특별히 조약에 의하여 규정되지 않은 영역 속애서 결정하는 것을 허용한다. 리스본 조약은 유럽연합의 모든 목적들과 관련된 권한들에 대한 유연한 조정을 할 수 있도록 유연성 조항의 적용범위를 확대하였다. 리스본 조약에서 유연성 조항은 제352조에서 찾을 수 있다54).
오래된 유연성 조항은 단지 유럽공동체의 내부적 공동시장 영역과 관련되어 적용되었다. 새로운 유연성 조항은 유럽연합의 모든 권한의 영역에 대해서 적용된다. 이른바 부여된 권한의 원칙(principle of conferred power)에 의하여 유럽연합은 자신의 권한행사에 대한 법적 근거가 조약 속에 규정되어 있으면, 이론상 당연히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유럽공동체조약은 대체로 830번 정도 유럽연합의 규제영역을 확장하기 위하여 사용된 유연성 조항을 규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오래된 유연성 조항은 니스조약(Nice Treaty) 제303조, 로마조약(Rome Treaty) 제235조에 규정되어 있었다.
이 유연성 조항은 1987년 단일 유럽의정서(the Single European Act)가 채택되기 전까지 주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유럽연합의 권한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이 단일의정서는 유럽연합이 환경, 연구, 발전 그리고 지역정책과 같은 영역 속에서의 유럽연합의 입법권한을 강화시키는 규정을 도입하였다55).
유럽통합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닌, 이미 1972년, 1981년, 1986년 그리고 1995년의 유럽공동체의 확정과정에서 존재하였던 유연성 개념을 Marlene Wind는 다음의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56).
첫 번째는 고전적인 다양한 속도조절 규정(multi-speed provision)으로서 유연성의 유형으로서 이 유형은 원칙적으로 공동체의 목적이 유지되고, 공동체의 규칙들이 모든 가입국가들에 대하여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전제로 하면서, 각 개별 공동체 국성국가들이 직면하는 국내적 특수사정과 문제점들을 고려하여, 공동체의 기본권 요구조건들의 수용과 준수의 의무에 대한 일시적 예외를 허용한다. 이 다양한 속도조절 규정은 보다 덜 발달된 가입국가가 점진적으로 공동체의 완전한 규칙과 규제들을 받아들이게 만든다57).
두 번째 유형은 Balladur에 의하여 제안된 두 번째 선택가능성으로서 다양한 기하학적 모델(variable geometry model)이다. 이 모델은 보다 유럽연합과 같은 국가가 아닌 형태의 영구화된 매우 다양화된 유럽공동체의 변혁가능성을 열어두는 모델이다58).
세 번째 유형은 지금까지 형성된 유럽연합의 공통의 제도와 규칙들은 단지 국가적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립서비스(lip-service)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여전히 덜 통합된 유럽공동체의 형성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전의 유럽헌법조약이 부결된 유럽의 현실과 현재의 Brexit 결정이 내려진 영국의 상황은 유럽통합과정에서 어떠한 유연성 유형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유연성 개념에 대한 비판과 관련하여 유럽연합체제를 전용한 남북연합 모델이 현재의 남한과 북한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
Ⅵ. 결론
유럽연합조약 제2조에 규정된 헌법적 원리들의 어느 정도까지 그리고 어떠한 조건 하에서 국가연합(Staatenverbund)으로서 관련성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서 기존의 국민국가적 헌법질서를 초국가적 헌법질서로 발전시킬 수 있는 법질서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해 본다. 이것은 이러한 유럽연합의 국가적 결합형태가 기존의 각 국가의 재통일 선례에 구속되지 않는 참신한 통일실현모델로서 한국의 통일과정에 전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의식에 제기에 깔려있는 의구심은 유럽연합의 법체제 속에서 확립된 국가결합적 그리고 헌법결합적 규범적 내용들이 어느 정도까지 우리가 지향하는 남북국가연합적 통일국가 연합체 구상과 정합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유럽통합을 위한 국가공동체 구상과 실현의 기반을 이루는 이념적 요소와 근본적 가치를 형성하고 있는 유럽적 법적 사고가 어떻게 남과 북의 통일을 지향하고 형성하려는 우리의 법적 사고의 가장 본질적 부분과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기본적 문제제기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유럽연합의 초국가적 법질서와 남과북의 국가법질서 사이에는 어느 정도 충분한 근본적인 형태의 유사성이 존재하는가 하는 기본적 문제점에서 이 문제의 해결의 출발점을 찾고자 한다. 유럽연합의 구성국가의 중부유럽과 동유럽의 국가들로 확대뿐만 아니라 영국의 브렉시트로 인하여 초래된 유럽연합의 법질서의 규범력 약화에 대한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럽연합의 법질서는 공통의 헌법적 질서로 볼 수 있는 유럽연합조약에 바탕을 둔 조약공동체 즉 법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의 남북의 법질서 사이에는 이러한 조약공동체는 형성되지 않고 있고, 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풀어야만 하는 많은 난문제들이 남과 북의 시아에는 존재하고 있다.
남과 북의 체제차이와 이질성은 여전히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운 난문제로 남아있다. 독일은 어떻게 이러한 체제와 이질성의 문제를 극복하고, 통일을 실현할 수 있었는가? 아마도 이 해답을 독일의 유럽공동체 형성에 대한 참여에 대한 경험에서 찾았다면, 유럽연함 모델은 여전히 우리에게 여전히 의미있는 통일공동체 형성모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독일이 성취한 국가공동체 형성과정에 나타난 노력들과 성과를 감안해 볼 때, 한국가의 국가적 차원에서 도출되는 국가와 헌법개념들을 초국가적 공동체로의 전용가능성에 바탕을 둔 통일공동체 형성논의는 우리의 많은 노력과 능력을 요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된다.
통일적 헌법체제의 형성에 있어서 어떤 한 구성국가에서 통용되는 헌법적 개념의 전용은 다른 유럽연합의 구성국가들의 헌법의 평등성에 의하여 인정될 수 없다면, 우리는 북한에 대하여 어떤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인가? 북한의 체제개혁과 개방을 통한 북한체제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서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다. 단순히 한국에만 통용되는 국가적 가치와 이를 실현하는 법개념들을 국가연합적 공동체에 확대하여 일반적인 국가연합적 공동체의 공통개념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현재의 유럽연합이 완전한 법적 이념과 가치가 실현된 연방국가에 준하는 국가결합체가 아니고, 오히려 정치적 그리고 법적 질서의 새로운 형태로 인정된다는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유럽연합의 법적 통합 역시 완결된 것은 절대 아니다. 따라서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라는 가장 기본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가 북한을 변화시킬려고 시도하고, 이릍 통해서 북한과 함께 협력하는 길로 나아갈 때만 남한과 북한의 통일공동체 형성은 잘 진행될 수 있다. 따라서 유연성 개념에 바탕을 둔 유럽연합차원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공동체 형성논의들을 우리 통일논의 적합하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분석과 연구 그리고 우리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전제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