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 헌법이 사라져도 행정법은 남아있는가?
공법학을 구성하는 두 축인 헌법학과 행정법학 간의 관계에 관한 논의는 독일 행정법학의 태동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국가학적 방법론으로부터 탈피하여 행정법학 고유의 연구방법론을 정립하는 데 큰 획을 그었던 오토마이어는 일찍이 “헌법은 사라져도 행정법은 남아있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는데,1) 그 이후로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 국에서 헌법학과 행정법학 간 관계에 관한 논의는 각 국의 상황, 특히 ① 행정환경 변화(유럽의 경우 EU체제의 정착과 글로벌 거버넌스의 등장)와 기술발전에 따른 행정실무의 변화 및 ② 행정법원과 헌법재판소 상호 간 영향력 등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으며 각기 발전해 왔고, 오토마이어의 명제에 대한 평가 및 재평가도 이어져 왔다.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행정소송의 문턱이 높고 그 유형 또한 한정적이어서 국민들의 권리구제에 적지 않은 제약이 있어 왔다.2) 그러나 1988년 헌법재판소가 설립되고 지난 33년 간 권리구제의 공백을 메꾸어 오면서 도입 취지에 비교적 부합하는 역할을 해 왔다는 평가가 적지 아니한데, 그 과정에서 헌법재판소 결정례 등을 통하여 형성된 기본권 도그마틱이3) 행정법 도그마틱에 적잖은 영향을 미쳐 온 것으로 보이고,4) 그러한 현상들에 관한 평가와 발전방향에 관한 연구도 행정법학계에서 계속되어 오고 있다.
한편, 각 국에서는 행정환경 변화와 그에 따른 행정개혁 등으로 행정실무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종전 소송중심 행정법학에서 소위 ‘신행정법학’ 등으로 행정법학 연구의 패러다임이 다변화되어 가는 경향 또한 노정되고 있는데,5) 이하에서는 그 논의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고,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에서 행정법학과 헌법학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나갈 것인지 살펴본 뒤, 향후 행정법학의 연구 방향을 논해 보고자 한다.
Ⅱ. 행정법학 연구 경향의 변화와 한국의 행정법학
20세기 말부터 세계적으로 진행되어온 각 국의 행정개혁, 그리고 급격한 기술진보와 EU로 대변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정착에 따라 세계 각국의 행정실무가 전례 없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면서, 이를 규율하는 행정법학에 대하여도 지속적인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세계 각 국의 상황에 따라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나, 행정법의 종말과 행정법의 개혁(또는 재탄생)에 관한 논의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경우 행정환경의 변화와 EU체제의 정착 등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다양한 행정작용들, 특히 종전의 ‘행정행위’와는 확연히 다른 일반·추상적인 정책수단들을 ‘제어’ 또는 ‘조종’이라는 개념으로 포섭한 뒤, 실제 사회문제 해결에 적실성 있는 ‘세련된 제어’의 조건들을 확인하여 행정실무와 조직구조를 재설계하는 방향으로 행정법학연구의 물꼬가 바뀌어 가고 있다.
간략하게나마 그 내용을 살펴보면 ① ‘일반·추상적인 제어 또는 조종행위에 관한 것으로 입법(행정입법 포함) 및 입법학’에 관한 연구,6) ② 연구 대상의 다변화라는 측면에서 ‘행정조직법학’ 및 ‘특별행정법학’ 분야에 관한 연구, ③ 보다 현실적합한 규제의 양태 및 그 조건에 관한 연구, ④ 민간부문의 자율성을 최대한 활용하되 최종적으로 국가가 정책집행결과 등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소위 ‘보장국가론’에 대한 연구, 그리고 ⑤ 연구방법론의 측면에서 행정학, 경제학 등 인접학문의 방법론을 포괄하려는 학제 간 연구(소위 ‘행정과학’)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7)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관한 연구가 상당한데,8) 소위 ‘신행정법학’ 또는 ‘신사조 행정법학’으로 통칭되고 있다.9)
행정법의 본향인 프랑스 행정법학에 관하여는 이러한 흐름에 행정법학계가 대응해 온 경과나 그에 관한 평가가 서로 나뉜다. 우선, 행정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2008년 헌법개정으로 프랑스 헌법재판소의 역량이 한층 더 강화된 점 등에 대하여 프랑스의 행정법학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10) 프랑스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에서 초래된 프랑스 국사원(행정법원 유사)의 위기와 프랑스 행정법 일반원칙의 위기에 관한 글11) 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반면, 2015년 이후 프랑스 행정법학의 발전사항으로 ① 행정환경이 변화됨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정책수단인 소위 ‘연성법’(예컨대 ‘가이드라인’, ‘권고’ 등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행정작용)에 관하여 국사원의 통제가 확대된 점,12) ② 단체소송 및 행정기관의 유권해석에 대한 쟁송이 허용된 점, ③ 유럽법과의 연관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점 등을 제시하며, 위와 같은 평가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다른 평가가 가능함을 논하는 의견도 제시된다.13)
이를 종합하면, 독일에서는 기존 ‘소송법학 중심’ 행정법 도그마틱의 적실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면서 행정법학의 개혁과 재론을 전제로 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는 반면, 프랑스의 경우 2008년 헌법 개정으로 인한 영향을 수용하면서 행정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행정쟁송의 유형과 영역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실무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행정법학’ 또는 ‘신사조행정법학’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새로운 사조를 소개한 선행연구들이 적지 아니하다.
다만, ① 한국과 독일의 행정환경이 다르고(특히 EU로 대변되는 글로벌 거버넌스에 의한 행정실무의 변화 경향이 상당한 독일과 달리, 한국에서는 그와 같은 외부적 압력은 비교적 크지 아니하다14)), ② 지금까지 양국에서 이루어져 온 공행정에 관한 공법적 통제의 연원과 양상에도 차이가 적잖을 뿐만 아니라(발전국가 패러다임이 지배적이었던 우리나라에서는 그 여파로 행정소송의 유형을 한정적으로만 두는 등, 공행정에 대한 통제기제 및 수단이 한정적이었다15)), ③ 독일에서 태동되고 발전되어온 새로운 행정법 연구의 논의 방향 또한 완결된 것이 아니고 그에 관한 평가도 다양하기에,16) 이를 소개하며 한국에서의 시사점을 제시하는 선행연구들도 그 제언이나 방향이 하나로 귀결되지는 않고 있다.17)
한편, 정책수단이 다변화됨에 따라 실무적으로 국사원에 의한 행정작용 통제 유형을 확대해 왔던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서는 행정소송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에 걸쳐 국회에 상정되었으나 무위로 그침에 따라, 여러 선행연구들에서는 이를 가능성으로만 남겨 둔 채 한국 행정법학의 현황과 발전방향에 대하여 다양한 견해를 제시해 왔다.18)
이러한 선행연구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하나의 지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한국에서 행정법학이 헌법학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갈 것인지, 나아가 소위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을 어떻게 평가하고 극복할 것인지(또는 어떻게 행정법학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을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19)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 공행정의 통제기제로 행정소송 외에도 헌법재판소를 통한 헌법재판이 활성화 되어 왔고, 행정소송의 유형이 한정적일 뿐만 아니라 해석론 등으로 원고적격이나 대상적격을 확대하는 것도 여의치 아니하여 국민의 권리구제에 다소간 공백이 있었던 사정을 헌법재판을 통해 보완해 나가는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례 등이 전통적 행정법 도그마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 연유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20)
Ⅲ. 행정법의 헌법화
행정법의 헌법화란 무엇인가? 독일의 논의를 인용한 한국의 여러 연구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종전 행정법학 도그마틱의 개념들과 체계를 기본권 도그마틱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으로 보인다.21) 이를 포함하되 헌법재판소의 결정례 등이 행정법학에 미치는 영향 전반 또는 ‘구체화된 헌법으로서 행정법’의 현실적 양태를 포괄하려는 용례도 확인된다.22)
법 도그마틱을 일의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우나 그 주요내용에 기초하여 행정법 도그마틱과 기본권 도그마틱의 의의를 살펴보면, 행정법 도그마틱은 ① 서론으로 법치행정의 일반원리 등에 관하여, ② 행정작용론으로 행정행위론 및 행정입법, 행정계획, 행정계약 등에 관하여, ③ 행정구제론으로 행정소송, 행정심판, 손해배상, 손실보상 등에 관하여 각각 유형화·체계화하고 있고, 실제로는 개별, 구체적인 사안에서 소의 대상이 된 행정행위 등의 위법/적법성을 판단하는 행정쟁송과 유기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23)
한편, Alexy의 법도그마틱 3영역론에 따르면 기본권 도그마틱은 ① 기본권 개념에 대한 분석, 기본권 효력과 적용에 관한 법학적 구성, 기본권의 법체계적 구조와 논증에 관한 연구, ② 경험적 영역으로 법관에 의한 법의 유효성 분석, ③ 규범적 영역으로 헌법재판소 결정 등에서 노정되는 규범적 정당화과정에 대한 연구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실제로는 ① 기본권의 보호영역, ② 기본권 제한 및 ③ 제한의 정당화라는 세 영역으로 구성되는 기본권 심사과정(공권력의 행사에 대하여, 헌법재판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위헌심사)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24)
위와 같은 정의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행정법 도그마틱이 기본권 도그마틱으로 대체되는 현상, 즉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 행정법의 주요 쟁점들이 기본권 제한의 한계에 관한 헌법 제37조 제2항의 해석문제로 치환되는 경향,25) ② 기본권 제한의 명확성을 근거로 허가와 특허의 구별을 부정하는 경향 또는 재량행위의 한계 문제를 재량권을 부여한 법률에 대한 헌법상 제한으로 이해하는 경향,26) ③ 헌법상 기본권에 의거한 원고적격 인정 경향27)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로 지적되고 있는데, 대체로 이러한 현상들이 한국에서 다소 과도화 되고 있다는 데 대한 상당한 우려를 겸하여 제시하고 있다.28)
우리나라에서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견해들은 대체로 憲(또는 국헌)과 憲法(① 憲에 관한 연구물-헌법학, ② 憲에 관한 실무례-헌법재판)을 구별한 뒤 행정법학이 통합해야 할 대상은 憲(또는 국헌)에 국한되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후자(憲法)에 관하여는 그 핵심인 기본권 도그마틱(특히 헌법 제37조 제2항 해석론 등)이 기존 행정법 도그마틱을 대체하거나 압도하는 소위 ‘헌법만능주의’ 현상에 대하여 경계하고 있다.29)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을 대변하는 “헌법의 구체화법으로 행정법의 특수성”이라는 명제에 대한 독일의 부정적 입장을 소개하면서 위 명제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행정법의 자율성이나 민주적 입법자의 독자성을 무시하게 된다는 견해도 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30)
한국에서 비교적 두드러진 이러한 경향은 헌법재판소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憲法(기본권 도그마틱 등)이 행정재판에까지 원용되는 데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프랑스에서도 유사한데, 프랑스 헌법재판소를 통해 형성되어 온 헌법규범체 또는 헌법 원리들이 국사원의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노정되자, 종전 ‘프랑스 법의 일반원칙’에 대한 무용론 또는 폐지론부터 그에 대한 반대론(실질적 법치주의 보장론 및 헌법재판소 견제론)까지 찬, 반 양론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31)
한편, 한국에서 헌법재판소의 영향력이 확대되어 온 근저에는 행정소송을 통한 국민의 권리구제가 미흡했던 사정이 있었다는 점을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같은 맥락에서 憲法(특히 헌법재판소의 결정례)이 행정법과 건강한 긴장관계를 형성함으로써 한국에서 행정법의 발전을 견인해왔다는 측면에서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 또한 공존한다.32)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이 갖는 긍정적 측면에 주목한 연구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특허와 허가의 구별 등에 관하여 종전 행정법 도그마틱에 의문을 제기한 뒤 직업의 자유라는 기본권 도그마틱의 논의를 빌어 이를 재 고찰할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양자 간 건강한 긴장관계의 의의를 피력한 연구,33)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으로 인한 권리구제 폭의 확대 사례 등을 망라하여 제시하면서 행정법적 관점에서 기본권 도그마틱 등의 의의를 제시한 연구,34) 헌법적 가치의 실현기관으로 행정법원의 의의 등에 주목한 연구35) 등이 확인되는데, ① 행정법 도그마틱적 관점 –협의의 ‘행정법의 헌법화’ 관점- 에서(하명호), ② 국민들의 실제적 권리구제의 측면 –광의의 ‘행정법의 헌법과’ 관점– 에서(김성수), ③ 행정재판권의 본질이라는 측면에서(최진수) 각기 행정법의 헌법화가 갖는 의의를 파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행정법의 헌법화 경향이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구들을 재차 살펴보면, 그로부터 벗어나 행정법의 고유한 정체성을 추구하기 위한 제언으로 ① “관계이익들과 가치들을 조화할 수 있는 상세하고 명확한 규칙들을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계속 만들고, 이를 개별 사안에서 정확하게 적용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박정훈), ② 憲과 憲法을 구별하고 행정법의 통합대상은 憲임을 명확히 인지하는 것(박정훈, 김민호), ③ 효력의 우위는 헌법이 누리지만, 적용의 우위는 행정법이 누리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박정훈, 김중권) 등이 제시된다. 다만, 위 연구들 중 상당수는 그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행정법과 憲法, 憲法과 행정법 간 교호관계가 있고 상호영향을 주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더불어 제시하고 있다.36)
행정법의 헌법화 경향에 관한 연구들을 연구의 대상 또는 범위라는 측면에서 다시 살펴보면 앞서 소개한 총론적 연구들 외에도 ① 개별 기본권의 관점에서 진행되거나,37) ② 비교법적 관점에서 이루어지거나,38) ③ 헌법재판소 결정례와 행정법원 판례 등을 각 비교하며 상호 영향을 미친 세부 쟁점들을 분석한 연구들이 주를 이룬다.39) 이에 더하여 최근 들어 제정 및 시행된 행정기본법 주요 조항들 중 종전 행정법 일반원칙 등이 법제화 된 부분에 주목하면서 향후 헌법원칙과의 관계에 관하여 고찰한 연구도 확인된다.40)
앞서 살펴본 여러 선행연구들은, 대체로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에 대한 평가(긍, 부 모두)의 준거틀을 종전 행정법 도그마틱, 특히 ‘소송법학으로 행정법 도그마틱’에 둔 것으로 보인다. 즉, 종전 행정법학 연구의 주류였던 ‘행정소송법학’적 관점에서 행정법의 헌법화 경향을 살펴보고, 그에 따라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분석한 양상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종전의 ‘행정행위론’, ‘원고적격론’ 및 ‘위법/적법 이분론’의 관점에서 각 행정법의 헌법화가 어떤 영향을 끼쳐 왔는지 – 특정 사건에서 원고적격이 인정되는지 살펴보며 그 법률상 이익의 존부 등을 판단하는데 행정법 도그마틱 외에 기본권 도그마틱이 차용되었는지, 특허와 허가를 구분하는 데 있어 설권행위의 본질에 관한 기존 행정법 도그마틱에 비추어 기본권 도그마틱(직업의 자유 등)은 어떤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 등41)-를 중점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보여진다.42)
그런데 행정법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관점 –특히 독일의 신행정법학 논의에 동조하며 행정법의 새로운 지향점을 모색하려는 관점–에서는 그간 행정법학계의 주된 연구방향이기도 했던 ‘소송법학으로서 행정법학’에 대하여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지속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견지해 왔다.
그 주된 논거로는 ① ‘현실 사회에서 실제로 작동되는 다양한 정책수단 중 행정행위(처분)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다’는 점, ② ‘행정행위론 중심 소송법학으로서 행정법학은 현실 사회문제 해결에 적실성이 낮은 연구를 반복하는 것’이라는 점을 들고 있는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연구대상과 연구방법론에 있어 전통적 행정법학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이러한 사조(思潮) 속에서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은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위 논의의 본향인 독일에서조차 ‘신행정법학’에 관한 연구가 완결된 것이 아니기에(혹은 독일의 신행정법학은 종전과 같은 완고한 도그마틱 그 자체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기에43)) 이를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독일에서 ‘신행정법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이러한 헌법화 현상이 신행정법학 연구에 일응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보인다.44) 독일에서 신행정법학을 연구하는 대표적 학자인 W. Hoffmann-Riem, E. Schmidt-Aßmann, A. Voßkuhle가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보더라도 그러하다.45)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책학, 행정학, 경제학, 사회학 등 다른 학문분야의 지식을 행정법학으로 받아들여 사회문제 해결에 적실성 있는 ‘세련된 제어’의 조건을 찾는 것은 독일 신행정법학의 핵심 과제이며 그 방법론으로 학제 간 연구는 상당한 의의를 갖게 되는데, 야먀모토 류지·최환용의 연구에서는, “법규범을 다루는 행정법학에서 다른 학문분야가 제시하는 법칙이나 규범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한 단서가 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법칙·규범과 행정법규범과의 관계를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고, 행정법학이 그와 같은 학제화를 목표로 할 경우 행정법의 기초인 헌법원리로 되돌아가서 행정법이론과 제도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일본 행정법학계의 사조(思潮)를 확인해 볼 수 있다.46)
‘신행정법학’연구의 본향인 독일과 비교해 볼 때 한국에서는 그러한 논의가 태동된 맥락이나 배경이 다소 다를 수 있으나,47) ‘신행정법학’이 추구하는 연구방법론(학제 간 연구 등) 또는 연구대상론(일반·추상적 제어 또는 조종으로서 입법 및 입법학, 행정조직법 및 특별행정법 등)을 수용하여 행정법학 연구 방향을 다변화 하는 것이 한국에서도 필요하다는 전제로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을 재차 살펴본다면 어떠할까?48)
한국의 헌법학, 특히 헌법재판소의 결정례들과 그로부터 확인되는 기본권 도그마틱은 ‘신행정법학’으로부터 태동된 새로운 행정법 연구 경향에는 어떠한 명암을 드리울 것인가?
Ⅳ. 신행정법학의 연구대상과 기본권 도그마틱
신행정법학의 주된 연구대상은 개별·구체적인 ‘행정행위’가 아니다.
신행정법학은 그 주된 연구대상으로, 실제 정책수단으로 십분 활용되고 있는 ‘일반, 추상적 제어, 또는 조종행위’에 집중하고, 그 구체적인 사례로 법률, 행정입법, 연성법(Soft-law), 거버넌스(Governance) 등을 살피며, 그 연결고리로 ‘입법’ 또는 ‘입법학’에 주목한다.49)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반·추상적인 국가의 제어(또는 조종)행위’인 법률 및 행정입법은 상대적으로 행정법학계에서 연구대상으로 주목받지 못하여 왔다. 그 자체로는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법률 및 행정입법에 대하여는50) 헌법재판이 그동안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51)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법률 및 행정입법통제와 그 결과물에 관하여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로 헌법학의 연구 대상영역으로 여겨졌고, 법원에서의 행정입법통제는 상대적으로 활성화 되거나 체계화되지 않았기에,52) 그에 관하여 행정법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연구 비중을 덜 두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53)
그런데 신행정법학(혹은 그와 유사한 방향)으로 연구 패러다임을 전환하며 특히 그 핵심인 입법, 입법학 등에 주목하는 것이 한국 행정법학계에 상당부분 긴요하다면,54) 법률 및 행정입법(신행정법학에서 말하는 ‘일반, 추상적 제어’의 주요 유형)에 대한 헌법재판의 결과물인 헌법재판소의 결정례들과 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던 소위 ‘기본권 도그마틱’은 상당부분 ‘일반, 추상적인 제어 또는 조정에 관한 연구’라는 점에서 행정법학이 주목해야 할 요소라 아니할 수 없다.55)
물론 신행정법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에 대한 연구의 지향점은 전통적 헌법학의 관점과 다를 수 있고, 또 달라야 한다. 헌법학(특히 헌법재판)의 지향점은 대체로 심판대상이 된 법률 및 행정입법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인지’ 판단하도록 돕는 데 있는 것이라면, 행정법학의 새로운 지향점은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정도로 법률 및 행정입법이 잘못-여기서의 잘못은 합목적적 관점도 포함되어야 한다- 입안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여 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도록 하는 것, 즉 “현실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법률, 행정입법 체계 및 행정실무를 재설계하는 것”에까지 다다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까지 형성되어온 기본권 도그마틱은 행정법학의 새로운 연구방향(특히 입법학)에 있어서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며, 신행정법학의 최종연구를 위한 ‘소재’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즉, “심판대상이 된 국가의 일반, 추상적 제어행위(법률 및 행정입법 등)가 특정 청구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위헌인지”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는 과정에서, 해당 ‘국가작용의 성격’과 ‘제한되는 기본권의 성격’ 등을 유형화하고 각 유형별 심사기준 및 심사강도를 세분화, 체계화함으로써 그 판단을 돕는 데 기본권 도그마틱의 목적이 있다면,56) 신행정법학은 그러한 도그마틱의 취지, 내용, 의의 등을 분석한 뒤 헌법재판소의 최종적인 판단내용을 넘어 그 판단내용을 최적화시킬 수 있는 개선입법(일반, 추상적 제어)을 설계하는 데 연구의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이해의 편의를 위하여, 기본권 도그마틱 연구 결과 ‘보다 세분화 된 새로운 심사기준’이 적용된 뒤 헌법불합치결정이 내려진 상황을 상정해 본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입법자에 일응 상당입법재량을 부여하면서 재판소의 주된 판단내용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그 판단의취지에 부합하도록 개선입법의무를 부과하는데 그침으로써 신행정법학에 연구의 소재를 제공하면, 신행정법학은 그러한 입법재량 하에서 ‘최선의 개선입법’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연구하여 현실 사회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결과물(개선입법)을 도출하도록 하는 데 지향점을 두게 되는 것이다.
이같이 기본권 도그마틱이 신행정법학의 연구 소재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은 비단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경우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합헌결정이 내려진 경우라 하더라도 심판 과정에서 도출된 판단내용들 및 적용된 도그마틱, 혹은 반대의견(위헌의견 등)의 취지와 내용 등도 같은 맥락에서 신행정법학에 연구의 소재를 제공할 수 있다. 헌법재판으로 비화될 정도로 현실 사회문제가 노정된 케이스라면 비단 위헌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사건을 통해 노정된 사회문제와 이를 규율하는 해당 규범체계에 대하여 ‘그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화된 체계’를 도모하려는 관점에서 입법학의 연구는 필요하고, 헌법재판의 상당 사례들은 신행정법학이 연구 대상으로 삼는 ‘일반, 추상적 제어’가 ‘한국에서의 현실 사회문제와 마주한 상황’을 심판대상으로 삼아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한국에서의 신행정법학 논의 혹은 그에 관한 연구가 구체성을 갖고 진일보할 수 있으려면 ‘일반, 추상적인 국가의 제어 및 조정’인 법률 및 행정입법에 대하여 헌법재판 과정에서 형성된 개별 심사기준들(각 규범의 성격에 기인한 – 특히 기본권 제한의 양태- 에 따른)과 그에 따른 판단 내용들(특히 과잉금지원칙 심사를 하며 살피게 되는 입법대안들에 대한 평가 등)의 ‘합작품’인 기본권 도그마틱이 신행정법학 연구로 나아가기 위한 좋은 소재이자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보다 진일보된 인식이 먼저 필요하다.
신행정법학은 그 주된 연구방법론으로 ‘학제 간 연구’를 제시하고 있다. 즉, 현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하여 행정법학이 행정학, 정책학, 나아가 경제학 등과 손잡고 함께 연구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 실제적 방법에 대하여는 논의가 계속 진행 중이나, 하나의 구체적 방법론으로 제시되는 것은 행정작용에 대한 사법심사 기준인 ‘합법성’ 기준을 ‘합목적성’ 기준(예컨대, 경제적 효율성, 적시성, 효과성, 위험에의 적합성, 수용성, 유연성 등을 포괄하는)까지 확장하는 것이다.57) 구체적으로 독일에서는 법률조항의 문언에 ‘행정효율’ 등의 개념을 명시하여 이를 실제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논의도 상당하며, 대체로는 합법성을 종합적, 포괄적 척도로 구성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58)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고도로 추상화·단순화 된 헌법조항의 해석으로부터 출발하는 기본권 도그마틱은 그 추상성을 연결고리로 삼아 학제 간 연구를 촉진하는 하나의 교두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고, 그 연구결과물들이 신행정법학의 틀 안으로 수용된다면 행정법학에서도 학제 간 연구가 가능한 지점들을 확대해 나갈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본권 도그마틱은 기본권의 적용과 관련된 기본권 심사과정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며,59) 기본권 심사는 일반적으로 보호영역, 제한, 그리고 제한의 정당화라는 세 가지 화음으로 구성된다.60)
헌법상의 기본권 규범의 문구들은 매우 필요간결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권을 법실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본권의 보호영역, 제한 및 제한의 정당화와 관련된 영역에서 다양한 도그마틱이 적용이 필요한데, 기본권이 단순한 논거가 아니라 직접적 효력을 가지는 권리로서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주관적 권리 그리고 법원칙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한 그 도그마틱은 상당한 합리성을 요구하고,61) 기본권 조항의 문구 그 자체에 대한 의미내용을 명백히 하는 방법론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62)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권 문구의 간결성(추상성)에서 비롯된 개방성으로 말미암아63) 그 해석 및 그로부터 형성되는 도그마틱은 개방적 질서를 지향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시대의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뿐만 아니라 단순한 법학 연구방법론을 넘어 동 시대에 연구되는 다양한 인접 학문들(예컨대 경제학, 행정학, 정책학 등)의 방법론에 열려있게 될 가능성을 제공한다.64) 그리고 이를 반영하여 형성되는 새로운 도그마틱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행정실무를 보다 세련된 방향, 즉 사회문제를 실제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재설계해 나가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본권 도그마틱 중 심사척도에 관한 대표적 기준인 ‘과잉금지원칙심사’에 관하여 보더라도 그러하다. 과잉금지원칙심사는 심사의 4단계(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 균형성)를 모두 수행하는지 여부 등 그 위헌심사강도와 그 적용강도에 따라 완화된 혹은 엄격한 과잉금지원칙심사 등으로 나뉘고, 그러한 도그마틱의 중심에는 ‘입법재량을 폭넓게 부여할 수 있는 규범영역과 입법재량이 축소되는 규범영역 간 구분론’이 자리하고 있다.65)
그런데 그 구분론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제한되는 기본권의 성격에 관한 전형적인 헌법학적 분석뿐만 아니라 특정 규범군이 규율하는 ‘영역’ 또는 ‘대상’에 대한 분석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살피게 되는 인접학문들의 방법론 또는 연구결과물들은 좋은 연구의 소재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학제 간 연구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소위 ‘대형마트’에 대하여 영업시간을 제한하거나 의무휴업을 명할 수 있도록 정한 유통산업발전법, 연도별 최저임금에 대하여 정한 소위 ‘최저임금고시’, 택시총량규제를 둔 택시운송산업발전법 및 ’타다금지법‘ 등과 같이 산업규제 혹은 경제규제에 관하여 규율하고 있는 일련의 규범군들의 성격을 파악한 뒤(기본권의 측면에서 본다면 직업의 자유 등을 제한) 위헌심사에 활용될 수 있는 세분화된 기본권 도그마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그 연구과정에서 해당 산업군과 이를 규제하는 규범 간의 경제적·사회적 효과 등을 살피는 것이 불가피한데, 그 과정에서 경제학, 정책학 등의 연구방법론과 결과물 등을 살피게 되고, 그 결과는 새로운 기본권 도그마틱의 내용에 직, 간접적으로 반영되게 된다.
한편, 신행정법학의 주요 연구대상이 일반, 추상적 제어(예컨대, 법률 및 행정입법 등)라는 점 및 그에 관하여 헌법재판이 활성화 되어 왔다는 점에 관하여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데, 과잉금지원칙 심사 과정에서 침해의 최소성 등을 살피며 일반, 추상적인 여타 입법대안들을 상정한 뒤 각 입법대안들의 목적달성 정도와 기본권 침해 내역/침해가능성 등을 입체적으로 살펴 비교·평가하는 과정에서도 여타 학문에서 취하는 방법론들이 매개되어 고찰될 여지가 확대되므로(예컨대, 경제학적으로 각 대안 간 효과는 동일한지, 행정학적 관점에서 대안 간 의사결정구조의 차이가 기본권 제한 양상을 달리하는지, 정책학적 관점에서 보다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조직구조나 정책수단이 존재하는지 등),66) 그 심사결과물인 헌법재판소 결정례 등은 입법학 등과 연계된 학제 간 연구에 관하여 상당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67)
법익의 균형성을 살피는 데 있어서는, 헌법학에서 연구된 일부 지점들은 오히려 헌법학보다 신행정법학에 보다 적실성 있는 도그마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전통적인 헌법학의 관점에서는 ‘윤곽규범으로 헌법’의 성격을 부인할 수 없기에 법익 균형성 심사 과정에서 입법자의 형성권한의 우위성과 입법자의 자율성에 일응 무게중심을 두고 판단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다. Alexy 교수의 원칙이론에 따르면 ① 입법자의 형성권한의 우위성과 함께 ② 검토하는 대안의 목적달성의 최적화(소위 ‘최적화 명령’) 또한 추구하게 되나, 최적화명령에 관하여 입법자의 형성권한과 유사한(혹은 그보다 더 강한) 비중을 두게 된다면 이는 입법자의 입법형성권을 축소시키면서 형량에 관하여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강화시키게 되므로 헌법학에서는 경우에 따라 상당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68) 그러나 “사회문제 해결에 적실성 있는 최적 제어의 조건을 발견하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는 신행정법학의 관점에서 이를 살펴보면, 최적화명령과 같은 도그마틱을 신행정법학(특히 입법학)에 활용할 경우 그 형량과정에서 “최적화를 도모하며 사회적 적실성을 달성할 수 있는 조건들이 무엇인지” 더 구체적으로 발견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의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위 이론을 비롯한 기본권 도그마틱의 이론들이 구체적인 케이스(헌법재판 사례들)로부터 시작되거나 발전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신행정법학이 갖는 추상성을 상당부분 극복할 수 있게 됨은 물론, 신행정법학에서 수행될 이러한 연구들은 그 발전 여하에 따라서는 절차적 정당성을 넘어 “사회적 적실성을 갖는 법률 및 행정입법 등 제정의무”를 보다 두텁게 입법부에 새길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보다 더 상세히 살펴본다.
신행정법학은 법률에 대한 개입한계로서도, 행정작용의 목적결정으로도 관심을 두지 아니하고 법률을 국가가 책임지고 임무를 이행하는 것의 충분한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여기는데, 시스템고려에서 핵심적 사항은 법구속이 아니라 형성여지이고, 행정법원에 의한 적법성통제가 아니라 “법적, 인적, 재정적 자원의 최적화된 동원에 의한 타당성”을 견지하는 것을 연구 목표로 삼고 있다.69) 즉, 해석과학이 아닌 ‘문제해결지향적 결정과학’으로 그 정체성을 상신하며,70) 그러한 관점에서 행정결정에 요구되는 현실적 요소(예컨대, 종전에 시행된 정책에 대한 환류평가결과 등) 또한 철저하게 요구한다.71)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본권 도그마틱을 위시한 헌법학의 연구 성과물들에 기인한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은, ① 행정법원 등에 의한 사법심사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져 왔던 종전 소송중심 행정법학 도그마틱의 완고한 - ‘적법성’ 중심의, 단선적인, 그러나 현실 사회문제의 해결과는 상당히 괴리된 - 자물쇠를 풀고, ② 사회문제 해결에 가장 적실성 있는 –소위 최적화 명령에 따른 - ‘성과’ 및 ‘결과’중심의 판단규준을 행정법학에 개입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문을 여는 일종의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신행정법학에 1차적 의의를 가져다준다. 기본권 도그마틱을 구성하는 기본권, 기본자유, 법치국가원리적 원칙, 그리고 탄력적인 민주적 개입의 여지들이 이를 일응 가능케 하는 것이다.72)
그러나 기본권 도그마틱 또한 기본권 심사, 즉 헌법재판을 염두에 두고 발전해 왔다는 점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고, 헌법재판 및 이를 포함하는 광의의 사법심사는 권력분립원칙에 따른 일정한 한계를 태생적으로 갖게 되므로(그리하여 헌법의 해석 단계에서부터 입법자에게 시원적으로 ‘입법재량’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심사할 수밖에 없게 되고,73) 과잉금지원칙을 비롯한 각 심사 또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그 방법 및 기준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74)) 심판대상이 된 특정 국가작용이 최적화된 것인지에 대한 심사 및 그에 관한 도그마틱은 입법자에게 유보된 입법재량을 염두에 두고 2차적으로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신행정법학은 법적, 인적, 재정적 자원의 최적화된 동원에 의한 타당성을 제1의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탄력적· 민주적 개입양상 혹은 입법자의 재량에 대하여도 도리어 ‘위 제1목표 -사회문제의 해결 및 최적화-에 기여하는 선에서만 정당화되는 재량’이라는 조건절(즉, 2차적 영역이라는 의미임)을 붙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관하여 신행정법학은 사법작용이 아닌 입법학을 연구의 핵심 방향으로 설정함으로써 기본권 도그마틱이 갖는 위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게 된다. 즉, 그 연구의 주된 수신자를 사법부(혹은 헌법재판소)가 아닌 입법자로 상정함으로써 종전 기본권 도그마틱 연구에서 노정된 연구의 분명한 일방향성 -‘입법재량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라는 그 태생적 한계- 를 비로소 뛰어넘을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사회문제 해결에 보다 적실성 있는’ 법적, 인적, 재정적 자원의 최적화된 지점에 보다 연구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부터 신행정법학은 기본권 도그마틱과 마주잡았던 손을 놓고 그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보해 나갈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성장’이라는 현실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도구로 활용되었던 개발독재 패러다임의 명과 암이 1987년 헌법개정 이후 30년 이상 경과되었음에도 아직까지 남아있기에, 위와 같은 신행정법학의 지향점이 통용될 수 있는 부분과 기본권적 가치가 그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지점이 공존하고, 사회가 급격히 다원화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최적화명제의 전제인 ‘목적’ 혹은 ‘목표’에 관하여도 국민들의 공감을 확득할 수 있는 일의적인 목표(예컨대, 20세기 중, 후반에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경제발전’ 등) 설정이 용이하지 아니할 수 있으므로, 신행정법학이 지향하게 되는 독자적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한국에서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행정법학의 연구방향이나 정체성에 관하여는 그 본향인 독일에서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고, 한국에서의 적실성이나 한국에 고유한 연구방향에 대하여도 여러 후속 연구들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위와 같은 신행정법학의 성격에 비추어 헌법학과 행정법학 간 관계를 조망해 본다면, 신행정법학의 연구결과물들이 종전 헌법학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소위 ‘헌법의 행정법화’ 현상이 발현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예상해 볼 수 있다.
전통적 행정법학의 틀 안에서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을 살핀 여러 선행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였듯이, 행정법과 헌법 간에는 교호관계가 있고 그 상호연관성에 따라 어느 한 영역의 도그마틱의 발전이 다른 영역의 도그마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신행정법학이 여러 난제를 극복하고 입법학, 행정조직법학, 특별행정법학 등에서 앞서 살펴본 방향에 부합하게 발전되고 정착된다면 현재의 기본권 도그마틱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데, 특히 여러 심사기준과 심사강도에 관하여, 지금까지 ‘입법재량의 영역’으로 유보해 두거나 완화된 심사만 이루어져 왔던 영역들이 축소되거나 더욱 정교화, 세분화 될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신행정법학에 의해 초래된 입법학의 발전이라는 것은, 다원화되어가는 사회구조와 기술발전속도에 걸맞게 ① 현재의 단선적 형태의 일반, 추상적 규범체계들(법률, 행정입법 등)과 ② 계선적인 정부조직 형태 및 ③ 일방향적 공행정작용의 수단과 방법 등을 보다 다층적이고 세련되게 재설계하는 것으로 귀결된다(신행정법학이 주목하는 연성법, 규제된 자율규제, 거버넌스 및 민관협동, 가상조직, 알고리즘에 의한 행정작용 등의 영역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그런데 다원화된 각 사회영역의 특성에 걸맞는 다양한 입법형태 및 입법기술들에 관하여 연구가 진척된다는 것은 일응 입법자에게는 다양한 규범형태와 형식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재량이 더 두텁게 형성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선택지가 넓어지는 만큼 그 중에서 ‘사회문제해결에 보다 적실성 있는 수단’으로 입법의 형식 또는 내용을 선택해야 하는 입법자의 의무나 부담도 비례하여 커질 수 있다.
나아가 그러한 입법들이 헌법재판의 대상이 된다면, 그 위헌심사 과정에서는 ‘이전보다 더 고양된 국가의 입법의무’에 걸맞게 국가가 그 입법 절차, 형식, 내용 등을 온전히 수행하고 적확하게 선택하였는지 여부가 현재보다 더 부각되면서, 위헌심사기준이 현재보다 더 세분화, 정교화 및 엄격화 될 여지가 있다.75)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위와 같은 국가의 ‘고양된 입법의무’가 ‘전문성이 담보된 기술관료’로 구성된 행정부의 결정영역으로 이관될 수 있는지, 아니면 민주적 정당성이 담보된 입법부에 유보되어야 하는지 여부를 결정짓는 경계에 관한 도그마틱(특히 법률유보원칙 중 본질성설에 관한 도그마틱 등) 또한 연구의 필요성이 상당한데, 그 발전양상과 그 과정에서 신행정법학의 역할에 관하여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Ⅴ. 전통적 행정법학에서 기본권 도그마틱의 의의
한편, 신행정법학은 종전 행정법 도그마틱 혹은 그에 관한 연구들, 즉, ‘행정소송법학’적인 연구의 의의를 부정하지 아니하고, 상호보완적 관점에서 접근한다.76)
특히 개발독재 패러다임에 따른 고권적 행정국가를 경험했고 대통령제 국가로 입법부나 사법부에 비해 행정부에 권한이 집중되어왔던 한국에서는 여전히 공행정의 통제라는 관점에서 전통적 ‘행정소송법학’이 신행정법학과 더불어 발전해 나가야 할 필요성이 적지 아니한데,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을 행정소송법학의 틀 안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연구들에 덧붙여, 전통적 행정소송법학의 범주에서 기본권 도그마틱이 의의를 가질 수 있는 지점들을 가볍게나마 고찰해 보고자 한다.
행정소송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행정법 도그마틱의 의의를 인정하는 관점에서도, 그 핵심 요소들을 이루었던 기속행위와 재량행위의 구분, 특허와 허가의 구분, 무효화 취소의 구분 등이 현대 행정이 복잡화·다변화됨에 따라 그 절대적 구분 기준을 상실하고 상대화 되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77)
이는 재량처분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기준(도그마틱)인 재량의 일탈·남용에 있어 양자 간 구분에 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일찍부터 ‘일탈’과 ‘남용’의 개념이 상대화된 채 각 판결서에“‘(처분 등이) 재량의 일탈, 남용으로 위법”하다는 문장이 부동문자처럼 설시되어왔는데, ‘사실오인’, ‘합리성 결여’, ‘비례원칙 위반’ 등 다수 논거가 사실문제와 법률문제의 구분 없이 나열된 채 이질적인 것들이 망라되어 판단된 사례들도 찾아볼 수 있다.78)
그런데 재량처분의 일탈·남용 여부 판단사유 중 특히 ‘비례원칙 위반’에 관하여, 일찍부터 헌법재판에서 형성되어 온 비례원칙심사기준(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 균형성)과 관련 도그마틱을 차용하여 위와 같은 행정소송에서의 난맥상을 재조명하고 새롭게 유형화 해 보려는 시도가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데,79) 재량의 일탈, 남용 판단에 관한 일관성 및 그 예측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실무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지는 이와 같은 연구들을 일응 긍정적으로 평가해 볼 수 있다.
앞으로의 과제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제시되는 소위 ‘리스크사회’에 관하여 전통적 행정법학 도그마틱이 제시하여 왔던 ‘행정개입청구권 인정여부’ 혹은 ‘위험방지에 관한 행정재량의 축소문제’에 관하여도, 기본권 도그마틱 중 ‘과소보호금지원칙’ 도그마틱과 연계하여 보다 심도있는 연구들을 행정소송법학이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80) 특히 사회보장영역이 확대되고 국가의 보장의무에 대한 논의가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지평을 넓혀 갈 뿐만 아니라(독일의 경우, 사회보장 영역에 국한하지 아니하고 전통적 자유권의 영역에서도 국가의 보호의무에 대한 논의가 계속 확대되는 추세인데, 최근 선고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연방기후보호법 헌법불합치 결정’등도 참고해 볼 만 하다) covid-19의 확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리스크에 대한 국가의 안전보호의무와 공행정의 허용범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이루어지는 현 시점에서, 이에 관한 연구들이 행정소송을 염두에 둔 전통적 행정법학계에 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다.81)
다만, 행정소송을 염두에 둔 전통적 행정법학은 그 소의 대상(‘처분’)이 갖는 태생적 성격(개별, 직접, 구체성)에 따라 개별, 구체적인 국가작용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도그마가 형성되게 되는데, 헌법재판은 대체적으로 일반·추상적인 규범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82) 기본권 도그마틱을 구성하는 다양한 법리들도 이러한 일반·추상적 대상을 상정하고 형성되어 온 것이 많다. 예컨대, 과잉금지원칙 위반여부 심사의 경우, 침해의 최소성에서 일반, 추상적인 여타 입법대안들을 상정한 뒤 비교하며 살피게 되는데, 일반·추상적인 규범의 층위에서는 이러한 분석이 용이하나 개별·구체적인 처분의 층위에서는 이러한 대안들을 평면적으로 상정하여 비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따라서 행정소송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행정법 도그마틱에 기본권 도그마틱의 논의들을 차용하려 하는 경우, 그러한 논의들이 개별, 구체적 행정작용에 관한 심사에서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선별하고, 어떠한 형태로 체현되고 구체화되어야 할 것인가에 관한 연구가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
Ⅵ. 결론
기술발전과 현실사회의 변화 양상에 따라 행정환경과 행정실무 또한 빠르게 변화되는 오늘날, 사회문제 해결에 보다 적실성 있는 방향으로 행정법학의 새로운 연구방향을 찾으려는 논의는 꽤 오랜 시간동안 계속 되어 왔다.
세계적인 행정환경의 변화에 더하여, 국가작용의 통제 기제로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상당하다는 특성과 행정소송의 유형이 여전히 한정적이라는 특성을 동시에 띄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행정법학의 미래를 논하며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을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이 글에서는 기존 선행연구들에 더하여 신행정법학의 관점에서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이 새롭게 평가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살펴보고, 추상적으로나마 행정법학의 지향점을 모색해 보았다.
행정법 도그마틱은 기본권 도그마틱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으나, 신행정법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새로운 지향점을 추구해 나가는 데 있어 기본권 도그마틱은 보다 구체적인 연구의 소재와 모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신행정법학에 관한 선행연구들의 상당부분은 아직까지 추상적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데, 기본권 도그마틱이 신행정법학에 수용 가능한 지점들을 고찰하다보면, 앞으로는 신행정법학이 보다 구체적인 층위에서 연구되며 실질적인 성과들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행정법학 연구의 종국적인 지향점이 기본권 도그마틱의 지향점과는 구별된다는 사정, 즉 특정 국가작용의 위헌/합헌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공할 수 있도록 유형화, 체계화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 ‘실제 사회문제 해결에 적실성 있는 조건들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이를 반영하여 행정규범체계를 재설계하는 것’ 이라는 점을 주지한다면, 행정법의 헌법화 현상으로 행정법학의 정체성 자체가 몰각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신행정법학에서 충분히 극복될 수 있고, 종합적 행정과학으로 진화하며 헌법학과 구별되는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