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사형은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하여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는 가장 무거운 형벌이다. 사형제도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사형제도의 존폐 문제도 법적인 측면 이외의 윤리관, 가치관, 종교관 등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사형제도는 폐지의 수순을 밟고 있는 만큼,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사형을 폐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형을 형벌의 하나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재판과정에서도 우리나라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형사사건에서 사형선고는 하되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판단계에서 사형선고의 건수가 줄어들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6년 살인죄의 법정형으로 사형을 규정한 형법 제250조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고, 이어서 2010년에는 형법 제41조 제1호와 관련해 5(합헌)대 4(위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하였다. 현재는 사형제도가 세 번째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라 있는 상황으로, 헌법재판소는 7월 14일 형법 제41조 제1호와 형법 제250조 제2항의 위헌 여부에 관한 공개 변론을 개최하였다.1) 우리 사회의 오랜 논쟁거리인 사형제가 12년 만에 헌법재판소 공개 법정에 다시 올라선 것이다.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국민의 공분을 사는 흉악범죄가 터질 때마다 사형제도의 집행을 주장하고 있다. 흉악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 대하여 형벌의 최고형인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전부터 꾸준히 주장되어 왔는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임기종료 나흘 앞두고 사형집행을 단행하였다.2) 지난해 국내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7.3%가 사형제 존치를 택했다. 공개 변론 당시 이종석 재판관은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난 사형제도에 대한 의사는 압도적으로 존치를 찬성하는 쪽”이라며 “국민이 법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형벌제도, 응보, 범죄예방 정도의 개념은 충분히 이해하고 내린 이성적인 판단일 수 있다는 것을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논문은 기존의 논의를 바탕으로 헌법재판소의 공개 변론의 내용을 보충하여 사형제도의 문제점에 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사형제도의 폐지에 관한 찬반론을 살펴본 후, 사형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특히 사형제도가 폐지될 경우 종래 사형선고의 대상이 되었던 범죄자에 대하여 어떠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 적절한지 논의해보고자 한다.
Ⅱ. 사형제도의 현황
우리 헌법은 사형제도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인정하거나 또는 부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헌법 제110조 제4항3)의 규정이 사형제도를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4) 이 조항의 경우 문언상 ‘사형’을 명문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곧바로 사형제도의 헌법적 근거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조항의 입법 배경과 다른 조항과의 유기적인 해석 가운데 다른 결론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5)
헌법 제110조 제4항에 대한 기존의 해석은 교수들마다 그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데, 우선 명문으로 사형을 직접 언급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헌법이 사형제도를 형벌의 하나로 수용하고 있다는 견해6)와, 헌법상 명문의 규정은 헌법 스스로 사형을 시사하는 것으로 사형제도 자체를 곧 위헌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7) 이와는 달리 헌법 제110조 제4항은 사형제도가 법률 차원에서 하나의 형벌제도로 인정되고 있는 만큼 사형선고가 갖는 심각성에 비추어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이 일정한 범죄에 대하여 단심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 본문의 규정에 대한 예외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8)
형법 제41조에는 형벌의 종류 중 하나로 사형을 규정하고 있으며, 형벌 가운데 가장 무거운 형벌이라는 의미에서 극형이라고도 한다.9) 사형은 현존하는 가장 무거운 형벌로서 형법뿐만 아니라 특별법에도 사형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10) 사형의 집행에 관하여 법무부장관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집행의 명령을 하여야 하고(형사소송법 제465조), 집행명령일로부터 5일 이내에 집행한다(형사소송법 제466조). 사형집행은 교정시설 안에서 교수(絞首)하여 집행한다(형법 제66조). 형사소송법 제465조의 규정이 강행규정이냐 임의규정이냐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11)
사형은 단지 위하적이고 상징적인 형벌이 아니라, 실제로 지금도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12)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전혀 집행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1997년 이후부터 사형집행이 중단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에서는 여전히 흉악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있다. 만약 다시 사형집행이 문제 된다면 자의적 판단이나 단순한 정치적 목적 등은 배제하는 것이 타당하다.13)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지금까지 총 920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14)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30일 23명의 사형수에 대하여 사형이 집행된 이래, 현재까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2007년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는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폐지국(Abolitionist in practice)’으로 분류하였다.15)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이제 실제로 사형집행이 어렵다는 판단에서 형벌로서의 사형은 존재하지만 사실상 폐지된 것과 같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형집행은 잠시 보류되고 있는 것이지 형벌제도로서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니다.16) 이런 상황에서 다수의 법학자, 정치단체, 종교단체, 인권단체 등은 완전한 사형폐지를 주장하고 있으며, 지난 15대 국회부터 사형제도는 이미 사문화된 조항이라며 의원발의 형태로 사형폐지법안이 제출되고 있지만 통과되지는 않았다.17) 하지만 흉악범죄가 꾸준히 발생하면서 사형제도의 완전한 폐지에 반대하는 국민 정서를 거슬러서 사형페지법안을 관철시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18)
세계적인 흐름을 보면 사형제도는 여전히 일부 국가에서만 운용되고 있다.19) 사형제를 실질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대부분 중동과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중동에서 전면 폐지국은 터키 뿐이며, 실질적으로 사형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가 많다.
반대로 유럽은 벨라루스를 제외하면 전부 사형제를 전면 폐지하였다. 아메리카는 미국을 제외하면 사형제를 전면 폐지한 나라와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 나라가 비슷한 비율로 분포되어 있으며, 아프리카는 절반에 가까운 나라가 사실상의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러한 추세는 세계적으로 사형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OECD 국가 중에서 사형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밖에 없다.
1972년 Furman v. Georgia 사건20)에서 배심원들에게 사형선고에 관한 광범위한 결정권한을 주고 있는 조지아 주의 사형제도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사형은 미국 수정헌법 제8조 및 제14조에 근거하여 보면, “잔인하고, 이상한 형벌(Cruel and Usual)”이라는 점을 인정하여 위헌이라고 판시하였다.21) 그러나 1976년 Gregg v. Georgia 사건22)에서 연방대법원은 7:2의 다수의견으로 “조지아 주의 개정된 사형관련 법령이 사형 판단의 재량권을 축소하여 객관적 기준을 제공하는 동시에 피고인의 개별적 사정도 참작하도록 허용하고 있다면서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시하면서 4년 만에 합헌으로 입장을 선회하였다.
이후 미국도 사형 집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드는 추세에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 임기종료 나흘 앞두고 사형집행을 단행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형에 부정적이며 연방 정부 차원의 사형을 폐지하고, 주정부 차원의 사형도 가능한 막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사형제에 관하여 극형이 유지됨에 따라 발생하는 위하력으로 인해 파생되는 범죄예방 가능성이, 폐지에 따른 개인의 생명권 존중 등의 이익보다 더 크다는 이론에 따라 공공복리 차원에서 ‘합헌’이라는 입장을 1948년 3월 12일 ‘쇼와22년 제119호 사건’의 판결선고를 통하여 밝힌 이후, 7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위 판례를 변경하여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서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14년 전 도쿄 도심에서 7명을 무차별 살해한 남성에 대하여 사형을 집행하였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 정부에서 사형 집행은 지난해 12월에 이어 두 번째다. 후루카와 요시히사 일본 법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는 물론 유가족들에게도 매우 억울한 사건”이라며 “담당 장관으로서 신중히 검토한 뒤 집행을 명령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사형제 존폐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집행하고 있다. 2018년에는 1995년 도쿄 지하철역 사린가스 테러를 일으킨 신흥종교 단체 옴진리교 아사하라 쇼코 교주를 비롯한 관련자 13명의 사형을 집행한 바 있다.23)
Ⅲ. 사형제도의 폐지에 관한 논쟁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존치론과 폐지론이 팽팽하게 대립해 왔다. 두 견해 모두 일면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결국 사형제도를 채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나라의 정책 결단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24) 먼저 존치론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25)
첫째, 사형이 위하력 효과를 가지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둘째, 형벌의 본질이 응보에 있는 이상, 흉악한 범죄인에게는 사형을 선고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사형의 폐지가 이상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할지라도 사회의 법의식이 이를 요구할 때에는 사형은 적정하고 필요한 형벌이 된다. 흉악범죄에 대하여 사형을 과하는 것은 적절하고 필요한 형벌이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형제도는 폐지가 이론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할지라도 사회의 법의식이 이를 요구할 때에는 사형은 적정하고 반드시 필요한 형벌이다.26) 단적으로 1997년 사형집행이 중단된 이후 살인범이 증가하였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4년간 연평균 607명이 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사형집행이 중단된 이후인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800명이 살인죄로 기소되어 살인범이 32% 증가하였다.27) 넷째, 사형은 법치국가를 지향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남용의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사회공동체의 정의를 실현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므로 사형대상 범죄의 축소와 오판시정을 위한 형사절차의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재판과정에서 그동안 오판의 가능성 때문에 생명을 박탈하면 이후의 진실규명에 대해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수사 위주로 수사환경이 많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오판의 위험이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28)
생각건대, 범죄 가해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현실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초토화되는 모습을 보고 나면 사형제 존치를 넘어 사형 집행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29) 첫째, 사형은 야만적이고 잔혹한 형벌이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전제가 되는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헌법에 반하는 형벌로 허용될 수 없다. 둘째, 사형은 무고한 국민에 대하여 집행된 경우에는 생명을 회복할 수 없는 형벌이다. 셋째, 사형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위하력의 효과를 입증할 수 없다. 넷째, 형벌의 목적이 교화와 재사회화에 있다고 할 때 사형은 이러한 목적을 전혀 달성할 수 없는 원시적이고 무의미한 형벌에 지나지 않는다. 형벌의 과정은 범죄자를 격리해 사회를 보호하고, 교정과 교화를 통해 범죄자를 사회에 복귀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사형은 오용되고 남용될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언제나 오판의 가능성이 있는 형벌이기 때문에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섯째, 국민의 생명을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할 국가가 사형이라는 제도적 살인행위를 정당하다고 여기는 것은 극명한 논리모순에 해당된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기본권인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여섯째, 세계적인 추세도 사형은 폐지되고 있으며,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흉악범들에 대해서는 절대적 종신형30)을 통하여 사회와의 격리가 가능하다. 또한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의 인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형제도는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사형제도의 찬반론은 흉악범죄에 대한 위하력이 과연 존재하는지 학자들마다 견해 차이가 있다. 위하력 유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만큼 사형제도는 사람들마다 가치관의 차이를 좁히기는 어렵다.
이처럼 양쪽의 주장을 정리하면, 사형제 폐지론의 경우 1997년 이후에 집행되지 않았던 사형집행이 다시 재개되면 인권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스스로 파괴하여 국제적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흉악범들에 대하여 절대적 종신형을 통해 충분히 국가형벌권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31) 흉악범들에 대한 절대적 종신형은 전 생애를 사회와 격리되어 지내야 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사형보다도 더 가혹한 형벌이 될 수 있다. 그에 반해, 사형제 존치론의 경우 사형제도는 흉악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임을 강조하며,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과 국민정서는 여전히 사형제를 지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절대적 종신형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사형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는 경제적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과 헌법적 가치질서를 파괴한 자를 위해 재원을 부담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정서에 반한다는 점을 들어 사형존치론을 주장하고 있다.32)
범죄피해자의 생명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채 사형자체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형벌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33) 사형제도의 폐지에 대하여 사전에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사회적 합의 없이 무리하게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부 내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와 법무부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먼저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형제도에 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폐지하고 종신형이나 감형 혹은 가석방이 없는 무기형을 도입하자는 취지의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34) 이러한 의견은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사형을 집행하여도 흉악범죄에 대한 억제효과가 없으므로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흉악범죄 예방과 국민의 안전 보장을 위해 과학적 수사와 철저한 치안체계의 확립 등 대안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사형을 집행하는 법무부의 입장은 정권에 따라 각각 다른 입장을 보였다. 2005년 당시 김승규 법무부장관은 국무회의에서 “범인의 생명도 소중하지만 피해자의 생명도 소중하다. 생명을 빼앗았으면 생명으로 대가를 치르는 것, 이런 정의감이 국민 마음 속에 있다”며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였다.35) 이후 법무부도 절대적 종신형 도입의 타당성을 분석하는 등 사형제도를 개선하여 친인권적 형사사법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의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하였다.36) 최근 법무부는 사형제도의 폐지에 관해서 사형의 형사정책적 기능, 국민 여론과 법 감정, 국내·외 상황 등을 종합하여 신중히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37)
최근 헌법재판소 공개 변론에서 법무부는 “사형은 국민 일반에 대한 심리적 위하(위협)를 통해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고, 특수한 사회악의 근원을 영구히 제거해 사회를 방어한다는 공익적 목적이 있다”며 “생명을 잔혹한 방법으로 해하는 등 인륜에 반하고 공공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 범죄자에게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정의의 발로”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사형제에 따른 생명의 박탈을, 극악무도한 범죄로 무고하게 살해당했거나 살해당할 위험이 있는 일반 국민의 생명권 박탈과 같게 볼 수 없다”며 “두 생명권이 충돌하면 무고한 일반 국민의 생명권 박탈 방지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나타내었다. 또한 ‘오판의 가능성’은 사법제도 자체의 숙명적 한계이지 사형제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도 함께 제시하였다.38)
대법원은 사형을 선고하면서 사형선고가 허용되기 위한 요건 및 사형선택 여부의 결정 방법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판시한 바 있다.39) 다만 생명을 빼앗는 지극히 예외적인 형벌의 선고를 위해서는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추어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사형이 허용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40) 이처럼 대법원은 사형제도의 위헌 여부와 관련하여 헌법 제12조 제1항에 의하여 형사처벌에 관한 규정이 법률에 위임되어 있을 뿐 그 처벌의 종류를 제한하지 않고 있으며,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사형제도의 합헌성을 인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에 대하여 2번의 위헌 심사를 하여 모두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41) 헌법재판소는 사형을 합헌이라고 결정을 내렸지만, 비례의 원칙에 따라 아주 예외적으로 선고되어야만 합헌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헌법재판소는 “생명권 역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일반적 법률유보의 대상이 되고, 생명권에 대한 제한은 완전한 박탈을 의미하므로 사형이 비례의 원칙에 따라 최소한 동등한 가치가 있는 다른 생명 또는 그에 못지아니한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성이 충족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한,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에 위반되거나, 비례의 원칙에 반하지 아니한다”고 결정하였다.42) 헌법재판소는 이른바 시기상조론 내지 단계적 폐지론을 천명하면서 사형이 흉악범죄 예방의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43)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사형제도에 관한 위헌심판제청이 청구되었다. 2009년 6월 9일, 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공개 변론이 시작되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형제도 폐지의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10년 2월 25일 헌법재판관 5대4(합헌 5인, 위헌 4인)의 의견으로 사형제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44) 이 결정에서 “형법 제41조 제1호 규정의 사형제도는 현행 헌법이 스스로 예상하고 있는 형벌의 한 종류이고, 생명권 제한에 있어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한계를 일탈하였다고 할 수 없으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제10조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사형은 인간의 생명 자체를 영원히 박탈하는 궁극적인 형벌이지만, 이성적인 사법제도로서 비례의 원칙에 따라 최소한 동등한 가치가 있는 다른 생명 또는 그에 못지아니한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성이 충족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고, 정당화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존재하는 경우에만 허용되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의 측면에서 사형을 존치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45)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사형제도는 일단 그 효력을 계속 유지하게 되었지만 사형제도와 관련된 생명권의 위헌성 여부는 헌법논리상 사형이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계속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었다.46) 2019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에 관한 위헌소원 사건을 심판에 회부하여 사형제도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 헌법재판이 진행되고 있다.47)
Ⅳ. 사형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사형제도는 형벌 자체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다양한 요소들과 결합된 문제점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체로 응보주의 관점 및 일반예방 차원의 형벌 목적과 사회문화적 특수성을 내세우면서 그 제도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사회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사형제를 존치하면서 유용하고 있는 것이다.48) 따라서 사형이 인간 실존의 토대인 생명 자체를 제거하는 극형이라는 점에서 과연 합리적인 형벌이 될 수 있는지 의문시된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형을 형벌의 하나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이유가 된다.
사형제도는 형벌의 목적 중의 하나인 범죄인의 교화, 개선을 포기하는 형벌로서 형벌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미 사형이 집행된 경우에는 후일 오판임이 판명되어도 시정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보기 어렵다.49) 2017년 4월 20일 미국 아칸소주에서 사형이 집행된 흑인 남성 레딜 리가 무죄를 나타내는 새로운 증거가 형 집행 후 4년 만에 발견되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결백을 주장했으나, 사형이 집행된 지금 이를 되돌릴 방법이 없다.50) 이처럼 생명은 다른 법익과 달리 한번 잃으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오판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올바른 방안이 아니다.51)
사형수가 사형집행의 두려움이나 무죄를 주장하면서 자살하는 경우가 있는데,52) 이러한 측면에서 종국적으로 사형폐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소 유보적인 입장에서 국민들의 여론과 국민주권주의를 존중하여 사형존폐의 결정은 결국 국민의 몫이므로 법원은 사형선고를 최소화하고, 집행을 최대한 회피 내지 축소하는 조건부 사형존치론이 주장되기도 한다.53)
앞에서 언급했듯이, 형사소송법 제465조 제1항에서는 “사형집행의 명령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466조에서는 “법무부장관이 사형의 집행을 명한 때에는 5일 이내에 집행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서 법규정상 위반이 될 수 있다. 이 규정이 강행규정이냐 임의규정이냐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이처럼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규정 위반의 문제점이 발생될 수 있다. 따라서 사형이 형벌의 한 종류로서 규정되어 있는 형법의 규정과 현실 간의 괴리가 상당기간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는 사형폐지와 관련된 법률을 지속적으로 발의하여 왔다.54) 현행법상 사형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이상,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이 누구냐에 따라 사형집행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 법원은 강력·흉악 범죄자에 대하여 사형선고를 하지만 정부는 사형을 집행하지 아니하여 사형수만 존재하는 지금의 상황은 법적 측면에서도 상당히 문제가 많다.
형법 제77조 이하는 ‘형의 시효 제도’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에 따르면 형의 선고를 받은 자는 시효의 완성으로 집행이 면제되고, 사형의 경우 형을 선고하는 재판이 확정된 후 그 집행을 받음이 없이 30년이 지나면 시효가 완성된다. 이러한 해석은 사형선고의 재판이 확정된 후, 사형 집행을 30년이 경과해도 집행을 하지 않으면 국가의 사형 집행권이 소멸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 형법은 형의 시효 제도를 두고 있지만, 사형제도의 폐지에 관해서는 절대적 종신형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어 형의 시효 제도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55) 또한 2015년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하였다.56) 시효제도의 일반적 원칙으로 형의 시효가 공소시효보다 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형법은 여전히 사형에 대한 형의 시효를 30년을 고수하고 있어 법체계상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57)
2010년 헌법재판소의 다수견해에 따르면, “우리 헌법은 절대적 기본권을 명문으로 인정하고 있지 아니하며, … 어느 개인의 생명권에 대한 보호가 곧바로 다른 개인의 생명권에 대한 제한이 될 수밖에 없거나 특정한 인간에 대한 생명권의 제한이 일반국민의 생명 보호나 이에 준하는 매우 중대한 공익을 지키기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는 생명에 대한 법적 평가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으므로, 생명권 역시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한 일반적 법률유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생명권 제한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에는 생명권의 박탈이 초래된다 하더라도 곧바로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58)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견해에 대하여, “헌법의 가치질서는 인간존엄성의 실천방안으로 추구되는 공익과 사회정의의 원리로서 때로는 공익을 위하여 사익이 침해를 감수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권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형벌의 수단으로서 사형제도는 공익의 보호를 위해서 개인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은 헌법상 허용될 수 없다”는 반대의 견해도 있다.59)
생각건대, 생명의 박탈은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있지만,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바와 같이 다른 생명 또는 그에 못지아니한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사형제도는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였다고 하여도 위헌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60) 다만, 사형은 다른 형벌과 달리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요소가 되는 생명권을 박탈하는 형벌로서 법원의 사형선고에는 특별히 신중해야 할 필요성과 타당성이 존재한다.
현행법상 사형대상 범죄는 형법과 군형법을 비롯하여 국가보안법 등의 특별형법에서 103개(형법 19개, 특별형법 84개)의 조항에 산재되어 있다. 사형대상 범죄 중 생명의 침해를 요건으로 하는 범죄는 약 26개 정도이고, 그 중에서 고의살인범의 형태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는 12개 정도에 불과하다.61) 따라서 약 65개 정도의 사형대상 범죄는 생명침해와는 직·간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할 것이다.62) 이렇게 폭넓게 규정하고 있는 것은 사형제도가 남용되거나 악용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63) 따라서 사형대상 범죄를 한정하여 줄이는 작업이야말로 남용과 악용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개별 형벌조항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그 범위를 대폭 축소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사형을 부과할 수 있는 범죄군을 별도로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64)
사형제도는 권력자의 권력유지를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 중 상당수는 법원의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는 등 뒤늦게나마 결백을 입증받기도 하였다. 2010년 9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65)에 연루되었던 긴급조치 위반자들이 제기한 재심에서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다. 또한 긴급조치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유신헌법이 1980년 폐지된 사실에 근거하여 면소를 선고하였다.66) 1958년 국가보안법상 간첩 혐의로 기소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후 1959년 7월 사형이 집행된 조봉암에 대해서도 대법원의 재심절차가 개시되어, 2011년 1월 21일 사형집행 52년만에 무죄가 선고되었다.67) 이처럼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범죄에 해당하는 사상범이나 정치범에 대한 사형규정은 곧바로 폐지되어야 한다.68)
사형폐지에 따른 입법적 문제와 관련하여 첫째 법률로 사형제도를 폐지할 수 있는지 여부, 둘째 사형의 대체형벌로 거론되는 절대적 종신형은 기본권(특히 신체의 자유) 제한의 한계 내에 있는지, 따라서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전제되어야 한다.69) 셋째 헌법재판소가 사형제도에 관하여 위헌 결정을 내린다면 사형수에 대한 구금이 가능한지 여부를 고려하여야 한다. 지난 공개 변론에서도 헌재가 사형제도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한다면, 현재로서는 재심이 가능한 사형수에 대하여 구금할 법적 근거가 없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선애 재판관은 “사형 확정자가 재심을 청구하면 석방돼 사회에 나와야 하는가. 대체 형벌이 제정되기까지 그들을 계속 구금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재심이 시작돼도 법원의 판단에 따라 구금이 가능하고 해당 사형수에게는 곧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질 것이므로 이런 법무부의 입장이 ‘기우’라는 반론도 있었다.70)
사형을 선고하기 위한 절차적 요건의 하나로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대법관 2/3 이상의 찬성71) 또는 대법관 전원의 찬성72) 등을 요구하는 것도 사형판결의 오남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사형제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사형을 대체할 수 있는 형벌로서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주장되고 있는 것이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이다.73) 절대적 종신형은 가석방 및 사면이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형폐지론자들이 사형제도의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사형폐지법률의 제정하여 사형을 종신형으로 대체하고, ‘사형확정자’를 ‘종신 수형자’로 개념을 변경하는 보다 적극적인 제안도 있다.74) 성숙한 법치국가의 일반적 경향이라고 본다면, 입법 정책적으로도 사형폐지가 바람직할 것이다.
한편, 차진아 교수는 “만약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헌법재판소가 섣부르게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국민의 정의 관념에 맞지 않고, 피해자 유족이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를 나타낼 수 있다”고 보았다.75)
사형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무거운 형벌로서 그 존폐론이 오랫동안 해묵은 논쟁이 되어 왔다. 사형제도의 존폐 여부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이 주제에 대한 법적이고 법철학적인 문제점을 완전히 고려하지 않고, 또한 특정한 결론을 위해 필요한 사고의 확실성을 보장하는 것과는 다소 떨어져 있기 때문에 충분하지 못하다.76) 사형제도에 대한 논의의 특징은 단순히 법적 분쟁이 아니라 정치적, 역사적 관점의 논의로서 확대되며 또 법적 논의와 정치적 논의는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사형이 생명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형벌이기 때문에 단순히 법적 논리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여 그 논의는 언제나 정치적 이슈와 함께 등장하기 때문이다.77)
사형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형벌제도로서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성에 반한다는 의견78)과 형벌의 목적은 응보·범죄의 일반예방·범죄인의 개선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은 이와 같은 목적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 생명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비례의 원칙에 반한다는 의견79)이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사형제도가 명백히 합헌의 영역이 아니라 합헌과 위헌의 경계선상에 놓여있는 형벌제도임을 알 수 있다.80) 그러나 피해자 가족의 법익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가족의 범죄 피해에 대한 트라우마가 크고 그에 따른 심리적·정신적 고통은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사형제도를 존치하는 것은 범죄피해자의 가족들과 사회구성원들의 법익이 최대한 보호될 수 있다면 형벌로서 사형존치의 의미는 그 상징적 가치가 극대화될 수 있다.
Ⅴ. 결론
1764년 베카리아(Cesare Beccaria)는 그의 저서 <범죄와 형벌>에서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한 이래, 인류는 사형제도의 폐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해왔다. 사형제도는 현행법상 여전히 존치하고 있으며, 법정에서 사형선고도 계속되고 있다.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서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사형선고는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추어 누구라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81) 왜냐하면, 사형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극형이고 일단 집행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집행에 있어서 특히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형제도의 존치론과 폐지론은 각기 수긍할 만한 근거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사형제도를 대체할 대안으로서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하여 사형선고를 줄이는 방안82)과 사형선고는 하되 일정기간 집행을 유예한 후에 사형 확정 후의 사정을 고려하여 집행여부를 다시 결정하게 함으로써 집행에 신중을 기하는 사형집행유예 제도83)를 도입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84) 하지만 사법부의 사형선고 중단이나 행정부의 사형집행유예는 법이 정한 바를 형식적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올바른 해결방식은 아니다. 이렇듯 실질적 사형폐지국의 지위를 행정부나 사법부에 맡기는 것보다는 입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성숙한 법치국가의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한 방향이다.85) 이러한 사형폐지의 대안으로서 각각의 견해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형에 버금가는 정도의 형벌로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충분하게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는 여전히 미지수이다.86)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23명의 사형수에 대한 집행을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25년간 사형집행을 정지하여 국제사회로부터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국민감정과 여론은 정치권을 향해 사형집행의 재개를 촉구하고 이에 따라 일련의 조치가 검토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형제도에 대하여 정치적 악용은 사형의 본질적 위헌성의 여부는 논외로 하고, 국민의 여론에 편승하여 자신의 권력적 투쟁의 장에서 승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87) 사형제도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사형집행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사형제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사형판결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과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과거 정치적으로 악용되었던 사법살인의 형태로 저질러진 사례를 밝혀내고 그에 따른 청산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88) 사형제도는 사람을 죽인다는 단순한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 과정에 이르렀느냐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현행 법률이 사형제도를 존속시켜야 할 핵심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사형제도의 필요성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데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