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동일한 손해에 대해 배상책임을 지는 자가 다수인 여러 사례에서 판례는 민법에는 규정이 없는 부진정연대채무의 성립을 인정하고 있다. 부진정연대채무는 책임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수의 학자도 이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 부진정연대채무가 연대채무와 가장 다른 점은 절대적 효력이 미치는 범위가 적어서, 채무자 중 1인에 대해서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경우에도 다른 채무자에게는 원래대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가령 부진정연대채무에서는 1인에 대한 권리포기나 채무면제의 효력이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에게 미치지 않고, 따라서 채권자는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에 대하여 채무전액의 변제를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2) 그리고 자신의 부담부분을 넘어서 변제한 또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는 면제받은 채무자를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3) 부진정연대채무에 대한 개념정의 중에는 ‘내부관계에서 구상권이 없다’는 서술도 있으나,4) 구상권을 인정하는 판례법리에 대해 반대하는 견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채무를 면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상의무에 응한 부진정연대채무자가 채권자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이에 관한 판례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며 학설상의 논의도 많지 않다. 이에 관하여는 연대채무에서의 상대적 면제와의 비교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 민법은 연대채무에서의 면제에 대해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규정하고 있으나,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상대적 면제도 인정된다. 그리고 이는 상대적 효력이 있다는 점에서 부진정연대채무에서의 면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근래 다수의 학자는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에 대한 면제에 대해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5) 이는 면제 의사표시의 해석 및 이에 대한 피면제자의 신뢰보호라는 관점에서 주장되고 있다. 이는 부진정연대채무에서의 면제에 대해 민법 제419조와 마찬가지의 효력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인데, 판례의 일반적 입장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따라서 부진정연대채무에서 1인의 채무자에 대한 면제에 어떤 효과가 부여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라는 문제가 제기되며, 이는 연대채무에서의 면제에 관한 논의를 토대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부진정연대채무에서 면제의 효력에 관해 개별사례에서 의사표시의 해석에 의해 해결하면 된다고 할 수 있으나, 부진정연대채무의 면제시에 의사표시의 내용을 추정하는 법리는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1차적으로 부여할 법률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아래에서는 연대채무에서의 면제에 대해 먼저 검토한 후 부진정연대채무에서 1인에 대한 면제의 효력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관해 검토해보고자 한다.
Ⅱ. 연대채무에서의 면제에 대한 검토
민법 제419조는 연대채무에서 채권자가 1인의 채무자에 대해 채무면제를 하면, 그 연대채무자의 부담부분에 한해서 절대적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령 A, B, C 3명이 3억원의 연대채무를 부담하고 있고, 이들의 부담부분이 동일한 상황에서 채권자가 A의 채무를 면제하면, A는 채무를 완전히 면하고 B와 C는 2억원의 연대채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이유에 관해서 통설적 견해는, 채권자가 해당 채무자를 완전히 면책시키려고 했다면 구상의 순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즉, 위의 사례에서 A가 면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채권자가 B와 C에게 3억 원을 모두 청구할 수 있게 되면, 전액을 변제한 다른 채무자가 A에게 1억 원을 구상받을 수 있게 되고, 1억 원의 구상채무를 이행한 A는 다시 채권자에게 1억 원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구상의 순환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6) 채권자가 어느 한 채무자를 면제시키는 경우에도 다른 연대채무자가 전액의 채무를 여전히 부담하게 된다면(상대적 효력만 인정한다면), 일방적 의사표시인 면제는 연대채무자의 내부관계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어서 전액을 변제한 연대채무자의 구상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으므로,7) 구상의 순환이 발생하게 된다. 전액 변제한 채무자가 면제받은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려면, 이는 남아있는 채무자의 부담이 아니라 채권자의 부담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8) 따라서 채무자를 완전 면책시키려면 그에게 구상의무도 발생하지 않도록, 그의 부담부분에 대해 절대적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법 제419조의 규정내용은 다른 입법례에서도 볼 수 있다. 가령 프랑스 민법은 2017년 개정 전에는 “연대채무자 전원의 채무를 면책시키는 면제, 면제합의의 상대방만 면책시키는 면제, 연대면제”의 유형을 규정하고 있었으나, 2017년 개정으로 부분적 절대효 있는 면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연대면제에 관한 규정을 유지하는 방식을 취하였다.9) 독일민법은 제423조에서 연대채무에서의 면제에 대해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독자적인 규율내용을 가진 규정은 아니어서, 주요 내용은 학설과 판례에 맡겨져 있다. 이 조문은 “채권자와 한 연대채무자 사이에 합의된 면제는 계약당사자들이 전체 채무를 해소하고자 한 것이었다면 다른 연대채무자에게도 효력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전체 채무를 해소하고자 했다면’, ‘전체 채무가 해소된다’고 하는 것이어서, 동어반복일 뿐 실질적인 규범력이 없다고 평가된다. 즉, 언제 전체해소(Gesamstaufhebung)의 의사가 인정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지, 혹은 개별적인 효력있는 면제는 구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10) 이와 관련하여 독일연방법원은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면제합의의 당사자만 채무를 면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11) 그리고 이 경우에 상대적 효력이 인정되는지 아니면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이 인정되는지는 해석문제인데, 해당 채무자를 완전히 면책시키려고 했다면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12) 그리고 독일의 대부분의 학자는 연대채무에서 면제합의가 있다면 –사전합의이든 사후합의이든-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 있는 면제’로 추정하고, 상대적 효력 있는 면제라고 주장할 경우에는 채권자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13) 따라서 독일의 통설과 판례는 우리민법이 연대채무에서의 면제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것과 같은 해결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독일민법이 규정한 연대채무는 우리의 연대채무 뿐 아니라 –공동불법행위처럼- 부진정연대채무 사례의 다수를 포괄하고,14) 면제의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은 연대채무의 성질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면제의 의사에서 도출되는 것이므로,15) 독일의 연대채무에서의 면제에 대한 논의는 우리 민법 제419조뿐만 아니라 부진정연대채무에서의 면제에 관해서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민법 제419조는 연대채무에서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있는 면제를 규정하고 있지만, 면제 의사표시의 해석에 따라 다른 모습의 면제도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그 중에서 부진정연대채무에서의 면제에 관한 판례입장과 가장 유사한 것은 상대적 면제이다. 연대채무에서 상대적 면제란 채권자가 해당 연대채무자는 면제하지만 다른 채무자에 대해서는 채무전액을 청구할 것을 유보하면서 면제하는 것을 말한다. 1인의 연대채무자에 대한 면제에 대해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한 제419조가 임의규정이므로 이러한 면제도 가능하다. 다만, 면제는 채권자의 일방적 의사표시이므로, 전액변제한 연대채무자가 피면제 연대채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채권자의 일방적 면제 의사표시에 의하든, 채권자와 피면제 연대채무자의 합의에 의하든 다른 연대채무자의 권리를 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령 A, B, C가 3억 원에 대해 연대채무를 부담하는데, 채권자가 A에 대해 상대적 면제를 했다면 채권자는 B에게 3억 원을 전부 청구할 수 있게 되고, B는 A에 대해서 1억 원을 구상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에 A가 다시 채권자에게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연대채무에서의 상대적 면제에 관해서 일부 학설은 피면제 채무자가 구상의무를 이행한 경우에는 채권자에게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16) 그런데 이러한 해석론은 ‘상대적 면제’를 인정한 취지와 맞지 않다. 연대채무자 1인에 대한 면제에 대해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구상의 순환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구상의 순환이 생기도록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므로 애초에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적 면제라는 이름으로 민법 제419조와 다른 방식의 면제를 인정하면서, 결국은 구상의 순환이 발생하도록 한다면 애초에 상대적 면제를 인정한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독일에서도 상대적 효력있는 면제에서 피면제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다시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는 상정하지 않는다. 피면제 채무자가 구상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면제(상대적 효력 있는 면제)라면 해당 채무자가 결과적으로는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다는 설명17)은, 그에게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18)
민법 제419조가 규정하고 있는 ‘면제의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은 그 합리성이 인정된다. 채권자가 어느 한 연대채무자를 면책시키고자 한다면 그를 구상의무로부터도 벗어나게 해야하고, 구상의무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면제로 인한 경제적 불이익을 채권자가 부담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정내용의 합리성은 다른 나라의 예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우리 판례는 부진정연대채무에서의 면제에 대해 상대적 효력만을 인정하는데,19) 이는 연대채무에서의 상대적 면제와 유사하다. 아래에서는 연대채무에서의 1인의 채무자에 대한 면제에 관한 위의 논의를 바탕으로, 부진정연대채무에서의 1인의 채무자에 대한 면제에 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Ⅲ. 부진정연채무에서의 면제에 대한 검토
민법 제419조는 채권자가 자신의 일방적 의사표시에 의한 면제로는 -그리고 채권자와 1인의 연대채무자 사이의 면제합의로도- 연대채무자 사이의 구상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점과, 구상관계의 순환을 막는다는 점에서 부분적 절대효를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다면 부진정연대채무에서도 채권자의 일방적 의사표시-혹은 채권자와 1인의 부진정연대채무자사이의 합의-로는 부진정연대채무자들 사이의 구상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것이고, 피면제 채무자의 완전한 면책을 바란다면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지만 연대채무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상관계의 순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판례의 확고한 입장은 부진정연대채무에서는 연대채무에서와 달리 면제에 상대적 효력만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법 제419조가 규정한 규율내용의 합리성은 부진정연대채무에서의 면제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것인가? 아래에서는 부진정연대채무에서의 면제에 관한 판례를 먼저 확인한 후, 이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부진정연대채무에서 1인의 채무자에 대한 면제는 상대적 효력을 가질 뿐이라는 점은 초기 판례에서부터 천명되어 왔다. 가령 채권자가 공동불법행위자 중 1인의 채무를 면제한 후, 다른 채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례에서 대법원은 부진정연대채무관계에서 “한 채무자에 대한 채무 면제의 효력에 관하여는 민법 제419조가 적용되지 아니하고 다른 채무자에게는 그 효력이 미치지” 않으므로, “소외 000에 대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포기(채무면제)의 효력은 피고에게 미칠 수 없”다고 하였다.20) 이는 채권자와 1인의 부진정연대채무자 사이에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않기로 합의하거나 채권자가 채권을 포기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21)
1인의 채무자가 채권자로부터 면제를 받았다는 사정은, 전액변제한 채무자가 피면제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도 초기부터 인정되었다. 가령 교통사고로 인해 부진정연대채무를 지게 된 피고가 채권자로부터 면제를 받았는데, 전액 변제한 다른 채무자(원고)가 피고에게 구상권을 행사한 사안에서 피고는 면제의 절대효를 주장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를 부정하고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였다.22)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서울고등법원의 다음과 같은 법리, 즉 “부진정연대채무에 있어서는 변제 대물변제 공탁 상계 등 채권을 만족시키는 사유는 절대적 효력이 인정되나 피고들 주장의 면제와 같은 사유는 다른 연대채무자에게 그 효력이 미치지” 않고, 전액 변제한 채무자(원고)는 “연대채무자의 한 사람으로서 채권자들에게 그 변제로 다른 연대채무자와 함께 공동면책되도록 출재한 것이므로 다른 연대채무자인 피고들에게 구상할 수 있다”는 법리를 긍정하였다. 전액 변제한 채무자가 피면제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이후의 대법원 판결에서도 이어졌으며, 그 근거로 “공동 불법행위자의 1인으로부터의 구상권의 행사에 대하여 다른 공동 불법행위자는 자기의 채무가 면제되었음을 이유로 그 구상을 거절할 수는 없다고 봄이 공평의 이념상 타당하다”는 것이 제시된 바 있다.23)
부진정연대채무에서 면제에는 절대적 효력이 없으며, 자신의 부담부분을 넘어서 변제한 채무자는 피면제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은 그 이후에도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24) 그리고 이는 부진정연대채무가 공동불법행위에 의해서 성립한 경우만이 아니라 피용자와 그 사용자 사이에서 발생한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피해자가 피용자에 대해 면제의 의사표시를 하더라도 사용자에 대하여는 상대적 효력만이 인정되는 것이다.25)
대법원은 부진정연대채무에서 면제의 상대적 효력을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의사표시의 해석과 같은 별도의 근거를 제시한 경우는 드물다. 이에 따라 채권자가 1인의 채무자로부터 일정금액을 받고 “민‧형사상의 일체의 이의나 소를 제기하지 아니하기로 하여 그들 사이에 사고발생으로 인한 사건을 완결지은 취지가 엿보”인다고 한 사안에서도 “모든 청구권을 종결짓기로 한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합의 액수가 공동면책되는 부분을 초과하여 채무면제와 같은 효력이 있는 부분에 대하여는 피고(또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에게는 그 면책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26)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사건을 완결지은 취지’와 ‘모든 청구권을 종결짓기로 한 합의’가 있었다고 하면서도 상대적 효력만을 인정했다. 이는 ‘부진정연대채무’로 인정되는 한, 1인에 대한 면제의 의사표시는 그 1인에 대해 완전한 면책을 바랬는지를 심사하지 않고 바로 상대적 효력만이 인정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설명으로 보인다.
판례를 보면 채권자가 1인의 채무자를 면제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판례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방식은 일정금액을 받고 나머지 일체의 채권,27) 혹은 청구권이나 청구를 포기하기로 하는 합의28)이다. 그밖에 그저 면제나 채권포기라고만 하는 경우도 있다. 채권의 포기와 채무의 면제는 같은 말로 이해되고 있으며,29) 채권포기에 대한 합의에는 채권자의 면제 의사표시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므로30) 이들을 모두 동일한 상황으로 다뤄도 될 것이다. 즉, 채권자가 1인의 채무자에 대해 면제를 하는 경우, 당사자들이 어떤 법률행위를 했는지에 따라 달리 다룰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이들이 실질적으로 어떤 법률효과를 지향했는지라는 내용적인 부분을 더 중시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절차적인 의미만 있는 부제소 합의(혹은 소권 포기)와 실체적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합의(혹은 면제의 의사표시)로 나누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대적 효력만 있는 면제와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이 있는 면제로 나누는 것이다. 절차적 의미만 있는 면제는 모두 상대적 효력만을 가질 것이며, 실체적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면제는 상대적 효력을 가지는 경우도 있고, 절대적 효력을 가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 판례는 절차적 의미만 있는 부제소 합의(혹은 소권포기)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실체적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법률행위인지에 대한 구별없이 모든 경우에 상대적 효력이 있는 것을 전제로 설명한다. 아래에서는 이들을 모두 ‘면제’의 범주에 포함시켜서 논하되, 각 경우들을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절차적 의미만 있는 부제소 합의 혹은 소권 포기인 경우에는 채권자가 해당 채무자에 대하여 채권을 그대로 보유하기 때문에 피면제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이때 합의의 내용 혹은 채권자 의사표시의 내용은 ‘당신에게는 청구하지 않겠다’31)에 불과하다.
면제가 실체적 권리에 관한 것인 경우는 상대적 효력이 있는 경우와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이 있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32) 학설상으로는 채무자 1인에 대한 면제에 대해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다수 있다.33) 1인에 대한 면제에는 상대적 효력만 있다고 하면서도, 법률행위의 해석상 채권자가 피면제 채무자의 부담부분에 대하여는 다른 채무자에게는 청구할 수 없다는 견해34)도 실질적으로는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편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에 대한 면제가 상대적 효력이 있는 경우에는 구상의 순환이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즉, 채권자가 어느 한 부진정연대채무자를 면제한 이후에, 다른 채무자에게 나머지의 이행청구를 하여 변제를 받고, 변제한 다른 채무자가 피면제채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여 피면제 채무자가 자신의 부담부분에 해당하는 구상의무를 이행했다면, 다시 피면제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아직 판례 중에서는 이에 관한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학설상으로는 면제의 상대적 효력을 전제로 이러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긍정하는 견해가 있다.35) 연대채무에서의 상대적 면제에서도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인정하는 견해가 통설이라고 하며, 그 근거로는 “구상순환을 피한다는 것은 하나의 기술적 배려에 불과”하다는 것이 제시되고 있다.36) 이는 구상순환이 있더라도 상대적 면제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부진정연대채무에서 면제에 상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취지에 비추어 타당성이 부족하다. 부진정연대채무에서 상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피면제자가 채권자에게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러한 취지와는 배치되기 때문이다. 면제에 상대적 효력을 부여한다면, 구상관계의 순환은 부정해야 할 것이다. 구상관계의 순환이 인정된다면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이 아니라 상대적 효력을 인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상대적 효력을 인정하면서도 구상관계의 순환을 인정하면, 무익한 절차 낭비가 발생한다. 채권자가 결국 돌려줘야 할 것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적 효력의 경우에는 채무이행을 면해줄 뿐, 채무자체를 소멸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37) 즉, 상대적 효력이 인정될 경우라면, 면제는 –채권소멸사유가 되는- 채무 자체의 면제가 아니라 해당 채무자의 채권자에 대한 이행의무만을 면제시키는 것이며, 포기는 채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행청구를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상대적 효력있는 면제는 결과에 있어서 부제소합의와 차이가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에 대한 면제의 효력에 관한 선택지는 –예외적으로만 인정될 수 있는 전체 채무의 면제를 제외하면-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 혹은 –피면제자는 구상청구를 당할 수 있지만 채권자에게 부당이득반환은 청구할 수 없는- 상대적 효력의 두 가지로 한정시켜야 할 것이다.
면제가 상대적 효력만 있거나 부제소합의나 소권포기인 경우에는, 피면제 채무자가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로부터 구상권 행사를 당한다면 그는 면제에 의해 얻은 것이 전혀 없게 된다. 다만 다른 채무자가 무자력이 된다거나, 피면제 채무자가 구상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경우라면 실질적인 이익을 누리게 된다. 즉 채권자가 1인의 채무자를 면제한 이후 다른 채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다른 채무자가 무자력이어서 만족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채권자는 피면제 채무자에게 이행을 청구할 수 없으므로 피면제 채무자는 면제의 이익을 누리게 된다. 또한 사용자책임에서 신의칙에 의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안이라면,38) 피용자가 면제받은 경우에, 피용자는 사용자로부터 구상권행사도 당하지 않고 채권자에 대한 이행의무도 지지 않게 되므로, 피용자는 면제로 인해 실질적인 이익을 누리게 된다. 고의에 의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와 과실의 방조자, 절도범과 과실로 경비용역의무를 불이행한 경비용역회사 사이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39) 이처럼 상대적 효력있는 면제나 절차적 의미만 있는 부제소 합의나 소권 포기의 경우에는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가 무자력에 처한 상황, 혹은 피면제 채무자가 다른 채무자에 대해 구상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피면제 채무자가 실질적 이익을 누리게 되며, 다른 상황에서는 피면제 채무자가 실질적으로 이익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부진정연대채무에서 1인에 대한 면제에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견해들은 그 근거로 “피면제자의 합의에 따른 기대 내지 신뢰”40), “피면제자의 신뢰보호”41), “1인에 대하여 임의로 면제하면서도 다른 가해자들로부터 손해의 잔액전부를 받는 것은 지나친 자의를 허용하는 것”이고 “은혜를 베푸는 자는 그 베품의 반대측면인 손실을 부담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점, “면제와 구상관계가 일체적으로 취급되도록 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점,42) “부진정연대채무는 연대채무와 대외관계의 면은 원칙적으로 동일하지만, 대내관계는 연대채무와는 다른 ‘수인의 채무자 있는 채권관계’라고 본다면 연대채무의 대외관계에 인정되는 절대효는, 특별한 다른 사정이 없으면, 부진정연대채무에도 동일하게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43)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논거는 주로, ‘규범적으로 해석된 법률행위의 내용’에 비추어44) ‘피면제 채무자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과 구상관계와 면제를 함께 처리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즉, 채권자가 면제의 의사표시를 하면서 달리 유보하지 않았다면, 피면제 채무자는 자신이 더 이상의 부담을 지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신뢰는 보호가치가 있으므로 다른 채무자로부터 구상을 당하지 않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면제의 의사표시나 면제합의시에 채권자의 의사표시를 법률행위 해석의 일반론에 따라서 해석한다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면제 채무자는 구상의무도 지지 않는 완전한 면책을 얻어야 할 것이다. 단독행위에 의한 면제든, 면제합의이든 채무자를 면제하겠다는 채권자의 의사표시를 수령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해석한다면(규범적 해석) 채무자가 더 이상 어떠한 부담도 지지 않는다고 이해될 것이기 때문이다.45) 자유주의적 거래질서를 전제로 한다면, 표의자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고려하는 숙고과정을 거친 후,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의사표시는 깊이 생각하여 분명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의사표시에 사용된 문언의 의미가 분명하다면 이에 따라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그 의미에 폭이 있다면 표의자에게 불리한 해석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깊이 생각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표의자는 여러 가능한 표현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채권자가 채무자를 면제하면서 다른 유보사항을 표시하지 않는 한, 이는 해당 채무자의 완전한 면책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즉 채권자가 “그 시점에서의 제반사정을 감안하여 자신의 유무형의 이익이 최대한 실현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46) 면제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여러 학자가 부진정연대채무에서 1인의 채무자에 대한 면제에 대해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하고자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부진정연대채무가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라면,47) 이 범주에 들어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대적 효력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법원은 “부진정연대채무 제도의 취지는 부진정연대채무자들의 자력, 변제 순서, 이들 사이의 구상관계와 무관하게 채권자에 대한 채무 전액의 지급을 확실히 보장하려는 데에 있다”고 하여48) 부진정연대채무를 채권자보호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우리 법원은 부진정연대채무는 채무자들 사이에 주관적 공동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연대채무와 구별된다고 한다. 가령 중첩적 채무인수에서 인수인이 채무자의 부탁으로 채무를 인수했다면 채무자와 인수인 사이에 주관적 공동관계가 있는 연대채무이고, 인수인이 채무자의 부탁없이 채무를 인수하여 주관적 공동관계가 없다면 부진정연대관계라고 한 판결은 이러한 입장을 잘 보여준다.49) 부진정연대관계가 채무자들 사이에 주관적 공동관계가 없어서 인정되는 것이라는 것은 요건에 관한 이론적 근거에 해당하며, 채권자 보호를 위해서 인정되는 제도라고 하는 것은 효과에 관한 실용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두 근거는 일본법학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인다. 연대채무와 부진정연대채무의 구별표준에 관하여 일본에서는 독일학설의 영향으로, 채무의 실질적인 발생원인이나 부담부분의 유무에 의해 구별하려는 견해가 있다가 주관적 목적공동관계가 있는지에 따라 구별하는 것이 지배적 견해가 되었다.50) 그리고 이를 통해서 부진정연대채무의 효과인 구상권 부재, 채권자만족 이외 사유의 상대적 효력을 설명하였다.51) 그 이후 일본에서 통설이 된 와카즈마의 견해는 부진정연대채무에서 절대적 효력이 배제된다는 점을 가장 중시했다. 그리고 이는 채권의 담보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이 이후에 보충되어, 부진정연대채무의 의의가 절대효의 배제에 의한 채권자의 지위 강화에 있다고 하는 도그마로 이어졌다.52)
이상의 설명을 보면, 부진정연대채무는 채무자들 사이에 주관적 공동관계가 없어서 절대적 효력의 범위가 좁고 따라서 채권자의 보호에도 유리하다는 설명이 하나 있고, 반면에 부진정연대채무는 채권자의 보호를 위한 제도이므로 이를 위해서 절대적 효력범위가 좁아야 한다는 설명이 또 하나 있다. 우리 판례의 논증방식은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즉, 부진정연대채무로 인정되면 채권자보호를 위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면제의 상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다(면제의 상대효 우선). 그러나 채권자 보호가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는 아니며,53) 피면제자의 정당한 신뢰도 보호가치가 있으므로, 채권자 보호만으로 면제의 상대효 우선을 뒷받침할 수는 없다. 오히려 면제의 의사표시에서 다른 유보사항이 없다면 피면제자의 완전한 면책을 의욕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해석의 일반원리에 더 부합한다 할 것이다.54) 그렇다면 판례는 왜 모든 사례에서 상대적 효력만을 인정했는가? 심지어는 채권자와 해당 채무자 사이에 면제의 합의를 하면서 채권채무를 완결지으려고 했다는 사안에서조차 상대적 효력만을 인정했는데,55) 이는 의사표시의 해석에 관한 일반이론에 비추어 보면 타당성이 의심스럽다. 피면제 채무자와의 ‘채권채무를 완결지었다면’ 채무자가 더 이상 구상의무를 지지 않아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학술문헌이 추상적 일반인을 전제로 하여 작성된다면, 판결은 구체적 개인에 대해 내려지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짐작을 해본다. 즉, 추상적 일반인을 전제로 생각해 본다면, 어떤 자의 의사표시는 이를 객관적으로 해석해서 그대로의 법률효과를 부여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자유주의적 거래질서에 참여하는 자는 자신의 의사표시가 어떻게 이해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판결사안에서 실제로 면제의 의사표시를 했던 피해자들은, 자신의 면제 의사표시가 가지는 의미를 심사숙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며, 초기 대법원에서 면제의 상대적 효력이 천명된 이후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판결을 내리는 법원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면제 의사표시에 대해 ‘해석의 일반법칙’이란 이름으로 가혹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을 수 있다. 필자의 이런 짐작이 타당한 지는 판결 사안에서 면제가 어떤 상황에서 이뤄졌는지, 그리고 면제의 상대적 효력이 개별 사건에서 어떤 작용을 했는지를 검토해 보아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분석을 위해서 대법원에서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의 채무자에 대한 면제가 문제된 판결사안들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69다962판결56)은 갱내 낙반사고의 피해자가 한 가해자(채굴사업을 맡은 수급인)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권포기 (채무면제)”를 한 이후에 다른 채무자(광업권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었다.57) ② 70다2508 판결은58) 교통사고의 가해자 1 및 그 사용자가 피해자인 채권자로부터 “채무면제를 받”았으나, 피해자가 이후에 가해자 2의 사용자로부터 변제를 받았고, 이렇게 변제한 채무자가 피면제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한 사안이었다. ③ 71다2535판결은59) 피해자가 가해자인 공무원으로부터 일정금액을 받고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아니하기로 합의”를 한 이후에 국가에 대해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었다.60) ④ 75다1513판결은61) 전기공사중 과실과 운전과실이 결합하여 피해를 입은 채권자가 운전과실을 한 가해자의 사용자로부터 일정금액을 받고 “청구권의 포기”를 한 이후에, 전기공사상의 과실을 일으킨 다른 가해자의 사용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었다. ⑤ 76다2920판결은62) 가해자의 운전과실로 원고소속 차량에 타고 있던 피해자가 사망하였고, 가해자의 사용자인 피고가 유족들에게 120만원을 지급하고 “유족들은 그 이상은 청구하지 아니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진 이후에, 원고가 유족들에게 근로기준법상의 유족보상금과 민법상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후 피고에게 구상권을 행사한 사안이었다. ⑥ 79다1107판결은63) 가해자 1의 전기공작물 설치보존상의 하자와 가해자 2의 작업감독상의 과실로 인해 가해자 2의 피용자가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총 피해금액 약 712만원 중 가해자 2가 피해자에게 50만원을 지급하면서 “나머지 손해배상 채무를 면제받았”고, 가해자 1이 피해자에게 나머지 금액을 모두 변제한 이후에 가해자 2에게 구상권을 행사한 사안이었다. ⑦ 80다1796판결은64) 채권자가 어느 한 채무자에 대해 “채권액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를 한 이후에 피면제 채무자가 아닌 다른 채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었다. ⑧ 80다2555판결에서는65) 가해자 1(고압전선가설공사 사업자)의 업무지시상 과실과 가해자 2(피고인 한국전력의 피용자)의 감독상 과실로 인해 가해자 1의 피용자인 피해자가 사망하였고, 피해자의 유족인 원고가 가해자 1로부터 540만원을 받고(이중 손해배상금은 120만원으로 인정되었다) “민‧형사상의 일체의 이의나 소를 제기하지 아니하기”로 했는데 원고가 가해자 2의 사용자인 피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다.66) ⑨ 88다카16959판결은67) 피용자의 불법행위 이후 피해자가 피용자에 대해 “채무의 면제나 합의”를 하였고, 이후 그 사용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었다. ⑩ 93다6560판결은68) 가해자 2의 중앙선 침범으로 가해자 1의 버스에 타고 있던 학생 8명이 사망했고, 유족인 원고들이 가해자 2의 보험회사로부터 1인당 3600만원을 받으면서 “향후 이에 관한 일체의 권리를 포기하고 민·형사상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했는데, 이후 원고들이 가해자 1의 보험회사를 상대로 나머지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사안이었다.69) ⑪ 97다28391판결에서는70) 가해자 1과 가해자 2(모두 미성년자, 과실비율 70:30)의 불법행위로 피해자가 사망했고, 그 유족들이 가해자 1의 부모(원고들)에게 소를 제기하여 약 7천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았다. 이 후 원고들은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약 3500만원을 지불하면서 “위 판결에 따른 나머지 원리금채권 및 그 밖에 이 사건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을 모두 포기하기로 하는 내용의 합의”를 받았다. 이후 가해자 2의 부모(피고들)는 위와 같은 변제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유족들에게 750만원을 지불했고, 원고가 피고에게 구상권을 행사한 사안이었다.71) ⑫ 2005다19378판결에서는72) 절도범들(피고)이 피해회사의 의류를 훔쳤고, 피해회사와 경비용역계약을 체결한 원고회사의 채무불이행도 이러한 절도범행의 원인이 되었다. 절도범들은 피해회사에게 합의금 2400만원을 지급하고, 피해액이 정상가격으로 약 1억9천만원, 매장공급가격으로 약 1억3천9백만원임을 확인해 주었고, 피해회사는 절도범과 “형사상 처벌을 원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민사상 청구도 포기하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원고회사와 피해회사의 소송 끝에 원고회사는 약 9천6백만원을 피해회사에 지불한 후, 절도범들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였다.73)
위 사례 중에서 ①,③,④,⑦,⑧,⑨,⑩은 피해자가 피면제자 아닌 다른 채무자에게 나머지 손해배상액을 청구하는 사안이었고, ②,⑤,⑥,⑪,⑫는 구상권을 행사한 사안이었다.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에서 면제의 상대적 효력을 인정한 것은 피해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설명된다. 구상권을 행사한 사례에서 상대적 효력이 인정된 경우들도, 결국은 피해자가 다른 채무자에게 추가 변제를 받는 것이 정당했기 때문에 그 귀결로써 변제자의 구상권이 인정된 것이었다. 따라서 피해자 보호라는 관점이 일관되게 적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면제시에 피해자가 지급받은 금액이 확인된 사안들에서는 그 금액이 상당히 작았던 경우들도 있다.74) 가령 ⑥ 판결에서는 712만원의 피해액 중 50만원을 받으며 면제를 했고, ⑫ 판결에서는 최소 약 1억 3천만원의 피해액 중 2400만원을 받으면서 면제를 했다. 물론 채권자의 면제가 “채무자로부터 일정 금액을 손쉽게 추심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관점에서, 이후 다른 채무자에게 나머지 전액을 청구하여 피면제자가 구상당하도록 하는 것이 “기망적 행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75) 그러나 피해자로서는 한 명의 채무자로부터라도 우선 일정액을 빨리 확보하고, 나머지 금액은 다른 채무자에게 받으려고 생각해서 면제의 합의를 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즉, 해당 채무자의 책임을 면해주겠다는 생각보다는 일정금액이라도 빨리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면제의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해버리면 채권자로서는 불의의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에 대한 면제에 상대적 효력을 부여한 것은 모두 피해자의 보호라는 실용적 관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관적 공동관계’의 부재라는 이론적 근거와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가령 부진정연대채무를 지게 된 자들 사이에 미리 손해분담에 대한 합의가 있는 경우에도 상대적 효력을 인정한 사례에서(①,⑧) 이를 알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은 상대적 효력을 인정하면서도, 의사표시의 해석에 따라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이 인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가령,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하여도 그가 피고와 위 유족들간의 위 합의에 의하여 당연히 그 영향을 받으려면 그 합의내용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는 위 유족들의 진의가 동 합의에 의해서 원고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도 동 합의 내용대로 해결을 짓겠다는 데까지 있었다고 하여야 할 합리적인 사유가 있어야 할 것”76)이라고 하여, 합리적 사유가 있다면 채권자와 피면제자 사이의 합의가 다른 채무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피해자가 피용자와 면제합의를 한 사안에서 “그 피해자가 나아가 다른 손해배상의무자(사용자)에 대하여는 더 이상의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아니할 명시적 또는 묵시적 의사표시를 하는 등의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대적 효력이 인정된다고 하여,77) 1인의 채무자에게 면제의 의사표시를 하면서 다른 채무자도 면제하겠다는 의사표시를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으로 했다면 그 다른 채무자도 면제되는 듯한 표현을 하고 있다.78) 또한 93다6560판결에서는79) “다른 손해배상 의무자인 피고에 대하여도 더 이상의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아니할 명시적 또는 묵시적 의사표시를 하였다고는 보이지 아니한다”는 것을 면제의 상대적 효력을 인정한 하나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 판결들에서는 피면제자의 완전한 면책을 바랬는지는 검토하지 않고, 피면제자에 대한 면제 의사표시에서 다른 채무자와의 법률관계도 청산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이는 전체 채무에 대한 절대적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인정할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1인에 대한 면제나 면제합의에서 다른 채무자에 대한 면제의 의사까지 포함하는 경우는 오히려 이례적일 것이다. 채권자와 1인의 채무자 사이의 법률행위에서는 이들 사이의 법률관계에 대해서만 고려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경우에는 한 채무자에 대한 면제의 의사표시에서 다른 채무자에 대한 면제의사가 있었는지를 심사하기 보다는, 이들이 위 합의로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자 했는지, 즉 피면제자가 더 이상의 부담을 지지 않도록 하고자 했는지(면제의 종국성)를 심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으로 해석되면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대적 효력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만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에 대한 면제와 관련된 대부분의 사안에서는 채권자에게 종국적인 면제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일체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약정에는 절차적인 의미만을 부여한 것으로 생각된다.80) 따라서 아직까지의 거래관행에 비추어 보면, 부진정연채무에서의 면제에는 원칙적으로 상대적 효력만을 인정하되, 종국적인 면제를 할 의도, 즉, 양 당사자 사이에 ‘채권채무를 완결지을 의도’가 증명된다면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81)
그렇다면 언제 ‘면제의 종국성’이 인정될 수 있는가? 부진정연대채무에 관한 사건은 아니지만, 면제에서 ‘채권채무의 완결의도(면제의 종국성)’를 보여주는 사건으로는 2012다15336판결의 원심 및 환송 후 원심판결을 들 수 있다. 이 사안에서는 분양자가 수분양자의 연체료를 면제해 줬는데, 이후에 수분양자가 분양자에게 허위광고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분양자는 면제 의사표시의 철회 및 면제액과 손해배상액의 상계, 혹은 면제액을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할 것을 주장했다.82) 분양자가 한 후자의 주장(상계 혹은 공제)은 면제 전에 상계가 가능했었다는 것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부산고등법원은 면제는 의사표시의 도달에 의해 효력이 발생하면 철회할 수 없다는 점과, 분양자의 면제가 분양사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합리적 계산’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면제액의 상계나 공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 상고되었으나 해당 논점은 대법원에서 검토되지 않았으며,83) 다른 이유에 의한 환송 후 원심에서도 마찬가지의 법리가 설시되었다.84) 이들 판결에서 부산고등법원은 “피고들의 연체료 등 채무감면 행위는 수분양자들의 입주를 유도하여 그들로부터 중도금, 잔금 등의 분양대금을 지급받아 피고들의 자금난을 해결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서 면제가 합리적 계산에 의한 것, 즉 대가를 바라고 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면제를 통해 해당 목적을 달성한 이상, 다시 면제의 효력을 부정하는 상계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본 것으로 생각된다. 이 판결사안은 종국적 성격을 가진 면제의 경우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즉, 온정적‧시혜적 면제만으로는 면제의 종국성을 인정할 수 없고, 그것이 일정한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면제, 즉 ‘합리적인 거래상 이익을 얻기 위한 면제’인 경우에는 면제의 종국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Ⅳ. 결론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에 대해 채권자가 면제를 한 경우에 이는 상대적 효력만 있어서 채권자는 다른 채무자에게 미변제액을 모두 청구할 수 있으며, 이렇게 변제한 채무자는 피 면제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연대채무에서 1인의 채무자에 대한 면제가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가진다는 민법 제419조는 부진정연대채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부진정연대채무가 채권자보호를 위한 제도이므로 절대적 효력은 채권자에게 만족을 주는 사유에만 인정하고 나머지에는 상대적 효력만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에 근거한다. 그런데 면제의 상대적 효력을 인정하면서도, 피면제자가 구상의무를 이행한 경우에 채권자에게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상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한 이러한 구상순환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상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이유는 채권자의 보호를 위한 것인데, 상대적 효력을 인정하면서 다시 구상순환을 인정하면 채권자가 결국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되므로 그 취지에 반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에 대한 면제는, 부담부분형 절대적 면제(면제로 인한 경제적 불이익의 최종부담자가 채권자인 경우)와 상대적 효력있는 면제(면제로 인한 경제적 불이익의 최종부담자가 피면제자인 경우)로 나누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다수의 학자는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에 대한 면제의 상대적 효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연대채무에서 1인의 채무자에 대한 면제가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가지는 이유는 의사표시의 해석때문이므로, 부진정연대채무에서도 이와 다른 효과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해석의 일반법칙이라는 관점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한 채무자를 면제시키려면, 구상의무로부터도 면제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종국적인 경제적 부담을 채권자가 지는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이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부진정연대채무에서의 면제가 문제된 판결사례들을 대략적으로나마 살펴보면, 피해자(채권자)가 면제를 하면서 이로 인해서 다른 채무자에게 행사할 채권액이 줄어든다는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즉, 해당 채무자에게는 더 이상 권리행사를 하지 않겠다거나, 그 채무자가 자신에 대해 이행하는 것은 면제하겠다는 생각만 한 것이지, 피면제자를 완전히 면책시키고 이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자신이 지려는 의사에 기초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부진정연대채무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면제의 상대적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면제의 상대적 효력 우선). 다만 채권자가 면제를 통해 해당 채무자를 완전히 면책시키고자 했다면, 즉 종국적인 면제를 원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부담부분형 절대적 효력’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종국적인 면제를 인정하기 위한 일응의 기준으로는 그 면제가 합리적인 거래상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었는지를 심사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