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2019년 북한이 UN국제거래법위원회(UNCITRAL)가 제정한 국제거래의 3대 협약 중 하나인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국제연합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Contracts for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 이하 “CISG”)의 90번째 가입국이 되었고, 2020년 4월 1일 발효하였다.1) 당시 남북한 경제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시점에 북한의 동 협약 가입은 국제무역의 틀에 편입하려는 것으로 장차 우리와의 거래도 활발해질 것을 예측할 수 있기에 선제적으로 관련 법제 정비 및 동 협약의 깊이 있는 이해가 요구된다. 특히 남북한의 물품매매계약 관련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CISG에 남북 모두 가입한 상태, 즉 조약의 당사국으로서 분쟁해결의 준거법 결정을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2)
단면적으로 본다면, 북한의 CISG 가입은 국제조약의 효력에 의해 남북한 사이에 일정 부분 통일적인 물품매매법이 생기는 것으로 평가를 할 수 있는데, 이는 많은 부분 북한과의 상거래에서 발생가능한 분쟁리스크인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단일조약에 남북한이 각각 체약국의 지위를 갖는다는 것, 특히 CISG의 경우 각국의 물품매매계약법을 일치시키려는 조약의 목적을 이해한다면 남북한 사이 CISG는 하나의 통일법 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 통일을 위한 법 정책적 관점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3) 또한 CISG가 규율하는 내용을 보면, CISG 체약국 간의 거래가 CISG가 직접적용 될지라도 각 체약국 국제사법4)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즉 매매계약의 ‘보충적 준거법’을 결정하는 경우, 계약 당사자 국 국제사법의 도움5)을 받아야 하므로 북한의 私法체계를 이해하고 파악할 필요로 인해 상당한 법률적 교류를 발생시킬 수 있는 점이 있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북한이 우리 측면에서 보통 국가일 경우 대체로 그러하나, 남북관계는 특수관계로 그 법률관계가 간단하지만은 않다.
먼저 중요하게 고려를 해야 할 부분은, 남북한 주민 간의 법률관계에 있어 준거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이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다. 먼저 북한이 한국의 일부라 보고 한국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 둘째 남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보고 준거법 결정을 어느 한 국가의 국제사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견해, 셋째 한 국가 내에서 지역에 따라 법률을 달리하는 경우 소위 불통일법국가의 준거법 결정과 같이 처리하자는 준국제사법적 처리 방법, 넷째 남북한 특수관계론으로 처리하자는 견해 등이 있다.6)
남북한 법률관계에 있어 준거법 결정문제와 관련하여 CISG 적용을 위한 실질사법7)을 제정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지만, 남북한 특수관계론을 통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적절해 보이며8), 따라서 법원에서 남북한 특수관계론의 적용을 통해 분쟁해결을 위한 판례를 많이 축적한다면, 장차 남북한 간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실질사법을 규정해야 하는 경우에 상호 간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관련하여 현실적으로 남북한 간의 민·상사거래 분쟁을 남한 또는 북한의 법원에서 해결한다는 것은 상호 수용하기 어려운 면이 존재한다. 따라서 남북한 간의 민·상사분쟁은 중재를 활용해 분쟁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논의의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으며 중재판정의 결과물 역시도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9)
이상의 논의를 기초로 북한의 CISG 가입으로 인한 남북한 물품매매계약에 있어 준거법 결정에 대한 논의가 주요 쟁점이 되며, 그 전에 남북한 주민 간의 법률관계를 규율하고, 다음 CISG의 적용가능성, 그리고 그 준거법의 결정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다면적 고찰을 한다.
Ⅱ. 남북한 주민의 거래관계에 대한 고찰
남북한 주민의 거래에 따른 법률관계를 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는 먼저 북한의 법적 지위를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북한의 법적 지위는 종래 법적 지위 자체를 부정하는 견해, 북한을 독립한 국가로 보는 견해와 북한을 국제법·국내법적 측면으로 나누어 이중적 지위를 가진다는 견해가 있는데, 이중지위설은 남북기본합의서의 발효와 남북한이 UN에 동시 가입하는 등 국제적 측면은 남북한이 개별 주권국가로 상호 묵인한다는 의미이나 국내적 측면에서는 민족 내부적으로 별개의 주권국가가 아닌 점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10)
이러한 논의는 국제법학에서는 국제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한편 헌법학에서는 국내법적 측면에 중점을 두고 하는 논의이다. 하지만 남북한 주민의 거래에 따른 법률관계를 고찰하는 과정은 북한의 법적 지위를 부정하더라도 (준)국제사법상 북한법의 적용을 완전하게 배제해야 한다는 결론에 당연하게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국제사법 이론상 국제사법에 의해 지정되는 준거법은 반드시 국가의 입법을 거친 법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법규가 어떤 국가의 영역 내에서 사실상 일반적으로 적용되면 적절한 준거법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11) 또한 국제법적인 측면에서 어떤 국가 또는 정부 승인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를 항상 수반하기 때문에 한 국가의 법률이 그 지배영역에서 사실상 그리고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면, 그러한 승인되지 않은 국가의 사법 적용에 대해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12) 따라서 이러한 측면의 다양한 법적 분석의 결론과 현실적으로 파악 가능한 남북한 주민의 거래에 따른 법률관계의 분석에서, 특히 어느 국가의 법을 적용할 것인가라는 국제사법의 문제에서는 북한의 법적 지위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실익이 없다.
오히려 국제사법의 문제, 즉 준거법 결정의 문제를 위해서는 아래의 남북한 주민 간의 거래의 특수성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논의에 실익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법률관계의 기초가 되는 거래에서의 관행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13), 일반적으로 남북한 간의 물품매매계약 체결 시 계약당사자에 관한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거래 당사자를 특정하는 것은 개인인 경우는 국적. 소재지 등 그리고 법인인 경우 설립지 등이 국제사법상 연결점 역할을 함으로 준거법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해당업체가 실재하는 회사인지, 소재지는 어디인지 등에 대한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국제계약의 경우에는 이러한 정보들을 비교적 쉽게 파악하여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과의 거래에서는 이러한 사전조사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남북한 간의 거래에 있어서 남한 측은 수백여 업체들이 참여하는 반면, 북한 측은 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14)(이하 ‘민경련’)를 통해 철저히 당국의 통제하에서 관리되어 있다. 즉, 북한과의 거래를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먼저 중국 베이징 또는 단동에 운영 중인 ‘민경련’ 대표부를 방문하여 사업계획을 협의하면 민경련 관계자의 주도로 해당 분야 북한기업을 연결시켜 주는 방법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남한의 일반교역 참여업체들은 간접교역의 경우 중개인을 통해 북한기업과 계약을 추진하게 되며, 직접교역은 대부분 ‘민경련’과 협의 후 동 기관 산하의 총회사15) 중 하나가 거래당사자로 선정되어 해당회사 또는 산하기업과 계약체결이 이루어진다. 위탁가공교역 역시 ‘민경련’을 창구로 산하 분야별 총회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구조이다. 이와 같이 남한의 다수 개별기업과 북한의 대남사업 전담창구인 ‘민경련’ 간에 이루어지는 비정상적인 거래구도로 인해 남한기업 간 경쟁이 발생하여 비정상적인 거래관행 형성하여 시장질서의 혼란을 야기하는 결과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사업관련 협의를 실제 생산공장이 아닌 ‘민경련’과 간접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생산현장의 상황 파악, 당사자의 소재지 파악과 업무지시에 큰 애로가 발생하기도 한다. ‘민경련’ 대표부를 통해 전달한 구체적 계약 내용 등의 관련 서류가 북한 현지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않아 계약의 이행 및 향후 발생가능한 법적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결과에 이르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러한 구조하에서 진행되는 남북교역의 계약체결은 일반적인 국제거래와는 상이한 양상을 띠게 되어 북한의 CISG 체약국의 지위를 가지더라도 남북한 거래관계에 있어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준거법 결정문제 및 계약의 이행문제는 계속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16)
따라서 이하에서는 남북한 주민의 거래에 기초한 법률관계에서 준거법을 결정하는 다양한 학설 및 관련 판례들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방법론적 논의를 이어가기로 한다.
북한에서 CISG가 발효하게 되면 일단 다른 고려사항, 즉 북한의 법적 지위 등의 문제를 배제하고 북한을 순수하게 외국으로 본다면 우리와의 물품매매계약은 CISG가 직접 적용되는 사항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CISG 적용의 특성상 준거법의 분열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즉 구체적으로 CISG 적용에 있어 흠결이 발생하면 국제사법의 도움을 받아 준거법을 결정해야 한다. 더불어 남북한 법률관계에서 준거법을 결정하는 문제는 관련한 거래에서의 재판관할 문제 또는 준국제사법적 논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이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남북한 법률관계에서 제기되는 준거법 결정문제를 처리하는 방법론으로 아래의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남북한 법률관계에서 단순히 한국법을 적용하는 접근방법이다. 이는 법률관계를 가장 단순하게 정리하는 방법으로 우리 헌법 제3조(영토조항)의 논리에 충실하여 북한이 한국의 일부라고 보고 따라서 한국법을 적용하여 처리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물론 우리의 헌법에 충실한 해석일 수는 있지만, 이는 엄연히 존재하는 북한법을 외면하는 결과이며, 또한 거래를 구성하는 법률관계는 외국에 존재하는 상대방을 (준)국제적 관계로 보아야 준거법의 결정문제가 발생한다는 필요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즉 이러한 접근방법은 준거법 결정문제가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다.17)
둘째, 국제사법적 접근방법으로 국제적으로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로 취급된다는 점에 중점을 두는 방법론이며, 이 경우 당연히 국제사법에 의해 법률관계의 준거법을 결정할 것이다. 헌법 제4조에 의해 북한을 사실상 개별국가의 실체로 인정하게 되고 이는 마치 북한을 외국처럼 취급하게 되므로 남북한 주민 간의 법률관계에 대하여는 국제사법이 전면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헌법 제3조의 취지에 반하는 면이 있다. 또한 위에서 본 것처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한민족 공동체 내부의 특수관계’라 보기에 국제사법의 적용은 부적절하다. 따라서 헌법 제4조로부터 국제사법 전면적용설을 주장하는 것은 많은 부분 타당성을 도출하는 것이 쉽지 않다.18)
셋째, 준국제사법적 접근방법으로 준국제사법적 또는 그에 준하는 접근방법을 취하는 것인데, 이는 일단 국제사법을 유추 적용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견해의 근거는 우리 국제사법 제16조 제3항19)으로부터 도출할 여지도 있다. 북한인이 한국 국적을 가진다고 보는 때에는 결국 제16조 제3항이 적용된다.20)
넷째, 남북한 특수관계론의 접근방법으로 남북한 간의 관계를 특수한 관계로 보아 남북한 특수관계론을 전개하는 방법론이다. 이는 북한의 법적 실체를 일부 인정하고 사안에 따라 북한법의 적용 가능성을 긍정하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견해를 따를 경우 그 내용은 더욱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 보고, 남한과 북한 간의 거래는 국가 간의 거래가 아닌 민족내부의 거래로 본다고 규정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제3조)은 이런 태도를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21)
앞서 남북한 주민 및 기업과의 법률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서 국제사법적 관점이 유용함은 분명하다. 이는 넓은 의미의 국제사법적 방법론을 의미하는 것으로 반드시 위의 둘째 방안, 즉 국제사법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주민의 법률관계를 고려함에 있어 국제사법적 방법론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보다 합리적이고 적절한 방법론이 된다는 의미이다. 비록 준국제사법적 접근방법을 취할 경우22)에도 넓은 의미의 국제사법적 방법론은 그 출발점이 된다는 점임, 또한 다른 접근방법을 취하더라도 국제사법적 시각은 균형잡힌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문제를 올바로 파악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북한은 외국이 아님은 물론이지만, 적어도 사법적 법률관계에 관하여는 남한과는 별개의 법질서가 통용되는 법역이므로 이를 남한의 일부로 볼 수는 없다. 박지원씨 불법송금사건 판결23)에서 “… 북한 지역은 당연히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는 이상 북한을 외국환관리법 소정의 ‘외국’으로, 북한의 법인격체를 ‘비거주자’로 바로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개별 법률의 적용 내지 준용에 있어서는 남북한의 특수관계성을 고려하여 북한 지역을 외국에 준하는 지역으로, 북한주민 등을 외국인에 준하는 지위에 있는 자로 규정할 수 있고, 그러한 규정 내용이 우리 헌법의 영토 조항이나 평화통일 조항 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는데, 이러한 판결도 준국제사법적 접근방법을 따른 것이다.24)
남북한 특수관계론 접근방법도 설명방식은 다르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결론에 이르게 한다. 이런 준국제사법적 접근방법은 다양한 사법적 법률관계에 대하여 체계적인 설명을 가능하게 하며, 특히 남북한 주민간 거래에 기초한 법률관계에서 준거법을 결정하고, 준거법의 범위, 예외조항, 반정과 공서 등 이미 확립된 국제사법 총론상의 법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CISG 체약국이 된 북한과의 법률관계에서 준국제사법적 접근법을 사용한다는 것의 의미는 (준)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를 다루는 것으로 파악이 가능하며, 따라서 체약국 간의 법률관계이므로 당사자가 합의로 배제하지 않은 한 기본적으로 협약이 직접 적용되며 준거법의 결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우리 국제사법 제16조 제3항에 의해 준거법을 결정하면 될 것이다.
2020년 4월 1일 CISG가 북한에 발효함에 따라 남북한 간에 물품매매계약을 다루는 통일사법이 존재한다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고, 동시에 CISG의 규율에 따라 계약 당사자 국의 법이 보충적 준거법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분단으로 인해 상호 법 정보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여건에서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며, 특히 개성공단이 재가동되어 관련 계약 및 그에 따른 분쟁은 그 발생빈도가 증가할 것이다. 북한의 CISG가입을 계기로 관련 법제의 논의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남북 서로 관련 법률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상호 법률지원에 대한 정책적 논의도 역시 요구된다.
북한이 CISG에 가입함으로 남북한이 함께 체약국이 되었다. 조약의 국제적 효력에 의하면 당연히 체약국간에 그 효력이 미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물품매매에 대하여 통일사법을 공유하게 되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25) 하지만 북한을 한국의 일부라 본다면, 남북한 주민간의 거래는 국내거래로 보아 CISG를 적용하게 되는 일이 없다. 따라서 양자 간의 법률관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북한을 외국 또는 ‘준외국’으로 본다면, 양자 간에는 CISG가 직접적용 된다. 그러나 앞서도 보았지만 CISG가 적용되는 경우에도 CISG의 흠결이 발생하는 등의 경우에 당사자의 국내법이 준거법으로 사용되는데(보충적 준거법), 이 역시도 준거법의 결정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된다.
남북한 물품매매계약의 준거법을 결정하는 것은 남북한의 특수관계와 맞물려 그리고 북한에서의 CISG 발효와 연결되어 앞서 남북한의 법률관계발생에 따른 다양한 접근법을 살펴보았고, 이론적으로 준국제사법적 접근법이 보다 현실적이며 또한 적절한 방법론임을 결론 내렸다. 이하에서는 보다 실질적으로 남북한이 동시 가입한 다른 조약에서의 준거법 결정방법에 대한 비교연구, 현재 남북한과 유사한 상황의 국가들의 CISG 사례를 통한 비교연구, 그리고 과거 유사한 경험을 한 국가와의 사례에서의 비교연구를 통해서 앞서 언급한 이론적 접근방법의 타당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Ⅲ. 남북한 주민의 물품매매계약의 준거법 - CISG의 적용가능성을 중심으로-
남북한 주민 간 물품매매계약의 준거법을 결정하는 것은 남북한의 특수관계와 그리고 북한에서의 CISG 발효와 연결되어 먼저 남북한의 법률관계 발생에 따른 다양한 접근법을 살펴보았으며, 더 나아가 CISG 적용 관련 유사한 사례를 분석함으로 장차 발생할 수 있는 준거법 결정문제에 대해 선제적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아래에서는 구체적으로 먼저 남북한이 가입한 저작권에 관한 국제조약인 “문화적 및 미술적 저작물의 보호에 관한 베른협약(The Berne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Literary and Artistic Works, 이하 ‘베른협약’)”의 준거법 결정에 대한 부분을 고찰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현재 CISG 적용에 있어 중국-대만 또는 중국-홍콩의 준거법 결정사례는 일국 다체제 국가의 비교연구로 그 실익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우리와 유사한 분단 역사를 지닌 통일 전 동·서독 주민들 간의 법률관계를 고찰하기로 한다.
2003년 4월 북한이 베른협약의 가입으로 인해 북한저작물을 남한뿐만 아니라 베른협약 체약국 내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은 조약 자체 효력의 문제로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조약의 효력에 기초하여 남북한 주민 간에 발생하는 저작권 보호의 문제에 있어 곧바로 남한 내에서 베른협약을 직접적용 하거나 국제사법을 통한 준거법의 결정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26) 즉 남북한의 관계에서 베른협약이 직접적용 된다는 것은 북한을 외국으로 보는 경우에는 가능한 것이지만, 우리의 판례 및 통설적 입장에서는 북한을 외국으로 인정하지 않은, 소위 남북한 ‘특수관계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어 이에 따른 접근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지만, 특수관계론의 입장은 사법관계에 대하여 국제사법을 유추 적용하자는 준국제사법적 방법론을 취하므로 북한을 개별적 국가로 볼 수 없다.27)
베른협약이 가지는 조약의 효력에 의한 체약국에의 직접적용성의 문제 그리고 남북한 주민 간의 법률관계에 있어 특수관계론의 입장은 상호 제한적 효력을 행사할 수 있게끔 하는 기능 및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제한적 해석 및 적용에 대해 이론구성을 하자면, 가령 북한저작물의 저작권 침해가 문제된 민사관계 분쟁의 경우 남북한이 가입한 베른협약의 정신에 따라 북한의 저작물을 보호하되, 준거법 결정에서는 남북한 특수관계론에 따라 북한의 준외국적 지위를 인정하여 베른협약의 보호국법주의를 명문화한 국제사법 제40조28)를 유추적용하여 남한 저작권법을 적용한다는 식이다.29)
현시점에 남북한이 가입한 CISG의 적용에서도 베른협약의 직접적용성이 부인되는 해석처럼 CISG의 적용에 있어서도 동일한 해석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CISG 제1조의 직접적용은 남북한의 법률관계를 특수관계론으로 보기에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물품매매계약에 따른 민·상사관계 분쟁의 경우 남북한이 가입한 CISG의 직접적용은 부인되며, 분쟁해결을 위한 준거법 결정문제는 남북한 특수관계론에 따라 북한의 준외국적 지위를 인정하여 국제사법 제16조 제3항을 유추적용해 남한 또는 북한의 민·상법을 적용해야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30) 이는 실제 사례에서도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중국국제경제무역중재위원회(China International Economic and Trade Arbitration Commission, “CIETAC”)은 ‘톨루엔(toluene)매매사례’에서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며 본 사례에 당사자의 영업소가 있는 홍콩 및 중국은 상이한 체약국이 아니므로 CISG을 적용할 수 없으며, 따라서 본 사례는 국제사법원칙에 의해 중국 국내법을 적용한다.”는 판정을 내렸다.31) 이는 CIETAC은 홍콩이 중국의 일부분으로 보아서 섭외사건으로 CISG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법원에서도 비슷한 사안에 대하여 동일한 취지로 판결하고 있다.32)
중국과 대만의 경우, 중국정부는 양안관계에서 발생하는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의 내재적 한계를 극복하고 분쟁 해결의 결과가 엄격한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양안(兩岸) 간의 민·상사문제 처리에 있어서 준거법 결정문제와 관련하여 최고인민법원의 해석이나 행정법규 등을 통해 해결하고 있고, 대만 또한 「양안관계 특수성에 기인하여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투자자의 신변자유 및 안전보장’과 ‘투자분쟁해결 절차’를 위한 자체 입법을 정하고 있으며, 민·상사분쟁을 중재로 해결할 수 있도록 최초로 ‘해협중재센터’를 접근성이 좋은 복건성 경제시범지구에 설립하고 당해 중재센터의 효용성을 위해 「해협중재규칙」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는 등 다양한 양안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자체입법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한의 경우는 교류의 단절에서 오는 이질성으로 인해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교류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야기하고 있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남북한 간에 합의점에 도달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특히 지금까지 남북한 간의 경제교류에 있어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을 법적인 수단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정치적·행정적 수단에 의해 해결하면서 분쟁해결 시스템 확립을 위한 후속조치 마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에 투자하고 있는 우리 기업의 경영활동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남북한 양측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독자적인 분쟁해결 시스템 확립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의 관계와 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중국과 대만 양안의 경험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하겠다.
따라서 CISG 적용과 관련해서 남북한의 경우에도 남북한 특수관계론의 기초로 준거법의 결정문제에 대하여 준국제사법적 접근법을 이용하므로 위에서 본 중국-홍콩의 톨루엔매매 사례와 동일한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동서독 기본법 제4조에 의하면 동서독 어느 정부도 타방을 대표하지 못함으로 제3국이나 국제기구와의 관계에서는 동서독 모두가 국제법적 주체가 되지만 양자의 관계에서는 서로 외국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서독은 동독을 기본적으로 외국으로 보지 않고 따라서 동서독의 국제사법적 문제를 준국제사법적 문제로 이해하고33), 반면에 동독은 동일한 문제를 국제사법적 문제로 파악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동독과 서독이 두 개의 국가인가 하나의 국가인가의 논쟁에 대하여 1973년 연방헌법재판소는 당시 서독과 동독이 맺은 조약34)에 대한 성격 규정을 내린 판결에서 동 조약은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파악하고, 더 나아가 부연하면서 그 본성에서 보아 국제법적 조약이며 그 특수한 내용에서 보면 무엇보다도 국가 자체 내의 관계를 규율하는 조약이라 판시하고 있다. 우리의 특수관계론과 유사한 점이 있다.35)
남북한의 경우 특수관계론을 기초로 한 준거법 결정문제는 준국제사법적 접근법을 이용하면 남북한이 비록 CISG의 체약국 일지라도 CISG 적용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므로 국제사법을 유추 적용하여 나오는 결과가 한국법 또는 북한법이라 한다면 각각의 국내법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위 세 가지의 사례 비교연구를 통해서 내려질 수 있는 결론은 추정적으로 남북한 간의 거래는 내부거래라는 이유로 CISG 적용이 거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즉 2020년 4월 1일 이후 남북한 주민 간의 물품매매계약에 대해서 CISG 적용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CISG가 양 당사자에게 적용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사법을 유추 적용하여 법정지(남한 또는 북한)의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 결정의 결과 국내법인 민·상법이 적용된다면 국제조약의 목적과 효력을 부인하게 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입장에서는 남북한이 가질 수 있는 부분적이나마 통일사법의 길을 스스로 져버리는 결과에 이를 수 있어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국제조약의 성격을 가지는 CISG의 목적과 그 효력의 측면에 중점을 두어 북한의 CISG 체약국에 따른 그 적용가능성에 대해 논의를 하기로 한다.36)
CISG 적용은 나라마다 경제발전 정도나 법체계 보유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국가에 적용될 수 있다. 그 이유는 CISG 자체적으로 비교적 대륙법계와 영미법계의 거래법을 잘 조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동 협약은 기본적으로 제1조에 의해 직접적용 또는 간접적용 되는 경우에 영업소가 서로 다른 국가에 소재한 당사자 간의 물품계약에 적용된다. 남북한은 현실적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질적인 법규정을 가진 개별국가의 성격을 가지고 국제법적으로도 서로 다른 국가이다.37) 비록 ‘남북 4대 경협합의서’38) 등에서 남북한 간 거래를 ‘민족내부의 거래’로 선언하고 있으나, 민족내부거래는 기본적으로 국내거래와 국제거래의 중간형태로서 순수한 국내거래와는 차이가 있으며, 동시에 일정한 부분에서는 국제거래성을 갖는 분단국가에서 나타나는 특유한 형태의 거래라 특징 지울 수 있다.39)
이러한 북한의 이중적인 지위는 정치적․이념적인 측면에서 한정하고, 경제적 측면에서는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면서 경제협력의 동반자로 이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북한이 모두 CISG의 체약국이며 동시에 국제적 거래성을 가지게 되므로 CISG 적용에 있어 장소적 적용요건을 충족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CISG는 국제물품매매계약에 적용되는 통일법으로서 준거법에 우선하여 적용된다. 국제거래에서 CISG 체약국에 소속된 주민 혹은 영업소 사이에 이루어지는 물품매매계약인 경우 법원은 국내의 거래법에 대비하여 특별법으로 CISG를 적용하게 된다. 또한 CISG는 자기집행조약40)(self-executing treaty)으로 별도의 입법 없이도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므로 남북한에서 공히 이러한 조약의 효력이 미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약의 목적에 충실한 해석 및 적용은 조약을 성안한 주체뿐만 아니라 조약의 체약국에게 있어서도 많은 이익을 제공한다. CISG 조약의 해석원칙은 통일적 해석 및 적용원칙을 중요한 가치로 간주한다. 지금까지는 회원국의 수를 늘리는 등 외형적인 성장에 치중을 하였다면 CISG를 통해서 실질적인 국제통일법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적용에 있어 실질적이며 또한 높은 수준의 조화(harmonization)를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CISG 제7조 제1항의 해석을 근거로 하여 통일적인 이해·해석·적용을 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해석원칙에서 CISG의 목적을 엿볼 수 있다. 국제물품매매법의 국제적 수렴의 과정이라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완전한 통일법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남북한 주민 간의 거래의 법률관계에 CISG의 적용은 점차 이질화되어가는 각국의 물품매매법이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점차 수렴, 조화의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단일법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41)
또한 앞서 중국과 대만의 경우처럼, 양안관계에서 발생하는 국제조약의 적용사례에서 조약의 내재적 한계를 극복하고 조약의 구속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양안(兩岸) 간의 민·상사문제 처리에 있어서 준거법 결정문제와 관련하여 최고인민법원의 해석이나 행정법규 등을 통해 해결하고 있고, 대만 또한 양안관계 특수성에 기인하여 국제조약의 효력이 거부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체 입법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처럼, 남북한 주민 간에 CISG 적용가능한 자체입법, 각국 법원의 해석 관행의 정립 및 행정법규를 통해서 이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CISG의 목적론적 해석 및 적용원칙에 있어서도 적절한 방법이다.
Ⅳ. 결론
북한이 CISG의 체약국이 됨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주민간의 민·상사거래에서 CISG의 적용이 배제되고 각각의 국제사법 규칙에 의해 국내법인 한국법 또는 북한법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42) 남북한이 가입한 조약으로 통일사법의 효과를 누려서 법 통합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음에도 남북한의 특수관계로 인해 그 적용이 배제되는 결과에 대하여 심도 있는 고찰을 기초로 국제사법을 변용하는 방법 또는 남북한 간 특례입법을 통해서 CISG가 남북한 물품매매계약에의 적용가능성을 제안한다. 더 나아가 국제사법의 목적이 준거법 결정과 재판관할권을 정함에 있듯이 남북한 주민 간의 법률관계에서 재판관할권 문제 역시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끝으로 남북한 주민 간의 민·상사거래에서 CISG의 적용이 남북한이 국제조약의 동시 체약국으로서의 조약 적용 자체 그 이상의 순기능을 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마무리 하려고 한다.43) 먼저 우리는 CISG를 적용한 국내 판결을 축적하고 있으며, UNCITRAL은 CISG의 통일적 해석 및 적용을 위하여 CLOUT(Case Law on UNCITRAL Texts)를 운영하고 있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남북한의 경우는 우리가 직접 판례를 제공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CISG에 대한 공동실무반 같은 조직을 운영하는 등 전반적으로 북한에서의 CISG 발효 계기로 법제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다.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법 및 북한법원 시스템에 대한 논의를 촉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실제 북한의 경우 필요에 의해 장식적(decorative)으로 입법하는 경우가 빈번하여 적용가능한 법제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44)
남북한 경제교류는 반드시 법제 교류를 수반한다. 북한의 CISG 가입의 계기로 북한의 민사법의 선진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인적교류를 포함한 다양한 법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45) 남북한 법제 교류 및 지원은 남북한 거래관계의 비효율성 및 예측불가능 문제를 해소할 수 있어 법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나아가 북한 실질사법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현실적으로 민·상사분쟁을 북한법원 또는 남한법원에서 처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신 남북한 중재기구를 통해서 중재로 해결되어야 하는데, 중재는 법원의 재판을 통한 분쟁해결과는 달리 준거법 결정에 있어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가정하에 CISG가 준거법 규범으로 적용될 수 있다. 중재기구의 준거법 논의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남북한 상호 친화적인 중재기구를 만들 수 있는 등 북한의 CISG 가입을 계기로 남북한 간에 다양한 교류의 장을 확대하여 남북 간에 동질성을, 비록 법률의 수렴 및 조화만일지라도, 확보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