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타인이 소유하는 토지를 점유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물권적 권리로는 지역권이 있다. 지역권 원리가 자연보전에 적용되어 보전지역권(Conservation Easement)이 탄생하였고 미국에서는 사유지의 개발을 막기 위해 보전지역권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보전지역권은 토지의 자연·경관이나 공터의 가치를 보호하고, 농업·산림·휴양·공터로서의 사용을 확보하며, 자연자원 보호 또는 역사적·고고학적·문화적 가치를 보호하는 등 공익적 목적으로 설정되고 있다1). 보전지역권의 협약내용에 따라 토지소유자는 개발을 하거나 분할하거나 건축을 하는 등의 행위가 금지되며 보전의 목적을 위해 일정한 행위를 할 작위의무를 부담하게 될 수도 있다. 미국에서 보전지역권은 농지 등의 보전을 위한 가장 주요한 수단으로 평가받는다.2)
2023년 3월 기준으로 미국에서 대략 201,525개의 보전지역권이 확인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보전된 사유지는 33,527,688 에이커(약 135,682 km2)에 이르고 있다3).
보전지역권을 통한 사유지 보전방식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칠레에도 도입이 되었고, 더 나아가 다른 국가들에 도입가능성에 관해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4). 유럽 사유지보전네트워크(ELCN : European Private Land Conservation Network)에서는 유럽에서 보전지역권을 활용하기 위한 보고서를 발간하였다5).
우리나라는 지역권의 활용도가 매우 저조하며, 토지의 개발 제한은 공법적 규제로서 이뤄지고 있다. 특히 개발제한구역 및 보호지역 내 사유지의 재산권 침해 문제로 갈등이 높은 상황이다. 보호지역에 사유지 보상과 보전의 효율성을 위해 보전지역권을 적용하는 방안에 대해 저자는 2021년에 논문을 발표하였다6). 이 글은 국내에 아직 생소한 보전지역권의 법리적 검토를 중점으로 국내에 보전지역권의 도입과 활용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미국의 소유권 관념인 ‘권리들의 다발(bundle of rights)’의 비유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보전지역권의 개발권 제한은 ‘개발권 양도제’ 와 구분되는 개념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 다음 미국의 보전지역권 표준법(Uniform Conservation Easement Act: 이하 UCEA라 칭함)을 검토하여 보전지역권의 법적 쟁점 사항을 검토하고, 국내 법제에서 친환경 인센티브제도의 실효성확보를 위해 보전지역권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Ⅱ. 미국의 소유권 관념에 따른 보전지역권의 이해
미국에서는 보전지역권이란 토지의 개발권(development right)을 구매(purchase)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7) 개발을 제한하는 것을 ‘개발권 구매’로 표현하는 것은 소유권을 권리들의 다발로 인식하는 데 기인한다.
미국에서는 토지소유권을 ‘권리막대기의 다발’, 즉 총체적인 권리들의 집합으로 인식하는데, 다발을 이루는 각각의 막대기들은 토지에 대한 여러 권리들(점유권, 경작권, 방목권, 벌목권, 집을 짓는 권리, 매도하거나 임대할 권리, 접근을 제한할 권리, 분할권 등)을 표상하고, 이러한 막대기는 묵음에서 분리하여 타인에게 양도할 수도 있고, 다시 다발에 추가할 수도 있다고 비유된다.8)
토지에 관한 권리는 물리적인 형상과 관련된 권리들(흙, 물, 광물, 나무 등)과 사회적 관계에 관한 권리들(통행권, 매도, 임차, 증여할수 있는 권리, 사용권 등)으로 나눠서 보고 있으며, 소유자는 이 두 종류의 권리의 다발들을 전체를 하나로 매매, 임차, 증여하거나 각 개별적 권리를 분리하여 매매 등 거래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임차의 경우는 임차료를 댓가로 하여, 소유권의 집합적 권리들 중에서 일정시점 점유하여 이용할 권리를 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소유권의 여러 권리들 중에서 비점유이익(非占有, nonpossessory interests)은 사적(私的)인 토지이용규율에서 매우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러한 비점유이익은 타인의 토지를 점유하지 않고 그 토지를 이용하거나 제약을 가할 수 있는 권리(통행권, 사냥권, 조망이나 경관을 방해하는 건축을 하지 않을 제약, 상가건물을 짓지 않을 것 등)이다. 비점유이익 중에는 로마법상의 역권(servitude)이 있는데 지역권(easement)은 이러한 역권의 일종이다. 지역권은 권리막대기 다발에서 제약하는 권리막대기를 포기하고(give up) 꺼내서 주는 것(take a stick out of bundle and give it someone else)으로 본다9). 토지소유자는 다른 부동산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지역권 대상 권리를 팔거나 기부함으로써 지역권 의무를 질 수 있다고 본다10). 보전지역권은 토지소유권의 여러 권리막대기들의 다발에서 제한하고자 하는 막대기(특히 개발을 할 권리, 분할할 권리 등)를 지역권자(랜드 트러스트 혹은 정부)에 이전하는 것으로 설명된다11). 즉 보전지역권은 토지개발을 제한하고자 개발권을 구매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소유권을 구성하는 권리막대기 다발에서 보전지역권 성립과 함께 제한되는 권리막대기가 소유권 권리 다발에서 제거되는 것이다.
국내문헌들은 보전지역권을 개발권 구매로 소개하고 ‘개발권 구매’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우리나라는 소유권의 절대성에 비추어 개발권을 분리할 수 없으므로 보전지역권 도입이 어렵다고 하고 있다. 특히 보전지역권을 개발권양도제와 동일선상에서 보고 있다.
보전지역권을 처음 소개한 문헌은 “미국의 사유림 지원 정책 연구”(석현덕, 윤여창. 2003)로 보여지는데, 사유림(私有林)의 산림 보전정책과 관련하여 산림유산프로그램(Forest Legacy Program: 이하 FLP라 칭함), 산림증진프로그램(Forest Land Enhance Program)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문헌에서는 FLP를 통해 ‘산주로부터 개발권을 구매하여 타 용도로 전용되는 것을 방지’한다고 하면서 보전지역권 대신 ‘산림개발권’이라 칭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철저한 벤치마킹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하고 있다.
김승종의 ‘미국의 농지보전지역권 매입제도에 관한 연구’에서는 ‘농지보전지역권 매입제도는 농지소유자가 개발권을 분리하여 매각하는 것이며, 정부기관 또는 ㅡ농지의 소유권이 아니라 개발권만을 취득하는 것이다’ ‘농지소유자는 자발적으로 농지보전지역권을 매각하고, ... 해당농지의 제한적 이용가치와 주거 또는 상업적 이용가치와의 차액을 지불한다.’ 고 설명한다. 농지보전지역권을 개발권의 매각과 매입의 관념으로 이해하고 소유권에서 개발권 분리의 법리적 논쟁을 보전지역권 도입의 전제로 삼고 있다. 즉 개발권 분리가 불가하고 개발권 가치평가가 법리상 불가하므로 농지보전지역권 도입이 어렵다고 하였다.
선진적 국토관리를 위한 용도지역제 개선과 손익조정제도 도입방안 연구Ⅰ,Ⅱ”(채미옥 外 2009,2010)는 용도지역제 개선을 위해 용적율 거래제를 도입하기 위한 연구로서 개발권양도제(TDR)등을 논의하면서 보전지역권을 함께 고찰하였는데, 위의 문헌들과 마찬가지로 개발권 분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금태섭의 ‘농업진흥지역에 대한 보상-한국과 미국에서의 비교를 중심으로’ (2013)에서는 농업진흥지역에서 규제에 대한 보상방안으로서 미국의 개발권매수제와 보전지역권을 검토하였다. ‘개발권양도나 보전지역권 등은 소유권으로부터 개발권을 따로 떼어낼 수 없는 한국의 법제상 바로 도입될 수 없을 것이다.’라 하여 개발권양도와 연계하여 보전지역권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권양도제와 보전지역권은 본질적으로 다른 제도로서 개발권양도제는 개발권이 존속하여 양도되는 반면, 보전지역권은 개발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개발권양도제’란 특정 지역(송출지역:sending area)의 토지에 개발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대신 다른 지역(수용지역:receiving area)에 있는 토지에 개발권을 이전하는 제도이다. 즉 도심의 개발업자가 송출지역의 토지소유자로부터 개발권을 구매해서 법정밀도를 초과한 개발을 허용하도록 하는 것인데 정부의 재정부담이 없이 사회적 손익을 형평에 맞게 조정하는 의의가 있다.12) 미국의 용도구역제(zoning)에 따라 토지에 대한 개발이 가능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용적율이 높은 토지는 막대한 개발이익을 향유하는 불평등의 문제가 있어서 이를 조정하여 공공의 이익을 위한 토지보전의 경우 재산손실분을 보상받도록 하는 취지이다.
그러나 보전지역권의 ‘개발권 구매’는 미국의 소유권을 ‘권리막대기 다발’로 은유(metaphor)하는데 기인한 표현이다. 보전지역권은 보전의 목적으로 토지의 개발을 막기 위해 개발권을 구매한다는 관념이다. 그림1)에서 막대기 다발은 소유권을 구성하는 모든 권리들을 표상하며, 보전지역권 성립과 함께 제한되는 권리를 표상하는 막대기가 소유권을 구성하는 권리 다발에서 제거되어 보전지역권 보유자에게 건네진다는 것이다.
보전지역권 성립으로 개발권 등의 막대기가 토지소유권에서 제거되어 보전지역권자에게 넘어간다고 보는 것은 개발권을 보유자가 행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발을 막기 위한 것임은 자명하다. 즉 보전지역권에서 개발권은 양도대상이 아니라 제한대상으로서 그 본질은 개발권이 제한 또는 몰수되는 것으로 개발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13) 그러므로 소유권에서 개발권 분리를 전제로 보전지역권 도입가부를 판단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미국의 물적 재산권(real property)은 토지와 토지에 부착된 물건(부동산)에 대한 재산권을 말하고 이에는 부동산권(estates)과 역권(servitudes)이 있다. 부동산권은 점유(possession)에 관한 권리인 반면, 역권은 사용(use)에 관한 권리라는 점에서 다르다. 역권이란 토지의 소유 혹은 점유에 권리와 의무를 부과하고 이후 토지의 권리관계가 변경되어도 승계되도록 하는 영미법상 제도이다. 역권에는 지역권, 부동산과 함께 이전하는 특약(real covenants)과 형평법상 역권(equitable servitudes)이 있다. 이러한 미국의 재산법은 우리나라 민법 중 물권법에 대응하는 법이다14).
보전지역권은 토지에 부착된 권리로서 변동된 토지소유자(양수인 및 상속인)에게도 효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단순한 계약에 기한 권리가 아니라 대물권(對物權, property right)으로서 우리 민법상의 물권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보전지역권의 계약당사자뿐 아니라 그로부터 토지를 승계받은 자(상속인, 매수인 등)에게까지 보전지역권의 효력이 미치게 된다.15) 이를 위해 미국의 보전지역권은 증서(deed)로서 취득되고 기록(record)됨이 요구된다.
미국에서 소유권이 '권리막대기 다발'로서 비유되었기에, 소유권에 속하는 여러 권리들이 쉽게 분리되어 개별 처분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이로써 지역권을 ‘제한하고자 하는 권리를 소유권에서 분리하여 구매’하는 것으로 인식하였으며 미국에서 지역권의 활용이 활발할 수 있었던 배경은 이에 기인한다16).
한편, 지역권의 내용은 토지의 임대차 혹은 우리 민법상 용익물권인 지상권, 전세권 등을 통해서도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토지를 점유하여 독점적으로 이용하는 관계로서 토지소유자의 이용은 배제되므로 비용부담도 크고 토지활용도는 낮게 된다. 이에 반해 지역권은 비점유권리로서 지역권 내용상 제한 아래 토지소유자는 토지를 점유한 채 계속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지역권은 타인의 토지를 단순히 이용하는 관계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토지의 이용을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지역권은 법률상 당연히 발생하는 상린관계와는 다르게 당사자의 자발적인 계약에 기반한 제도이다17).
미국에서는 토지소유자간에 사전에 미리 침해되는 권리를 지역권을 구매하는 형식으로 하여, 경관·조망·채광 등의 지역권이 발달하였다. 조망을 확보하기 위해 앞 토지에 건축을 제한하는 조망지역권, 주변경관을 보전하기 위한 경관지역권이 그러하다.
부작위 지역권은 지역권 보유자가 토지소유자에게 일정한 행위를 금지할 수 있는 지역권으로, 경관이나 일조권을 위해 건축행위 등을 금지하는 것(경관지역권 등)이 대표적이다. 작위지역권은 지역권보유자가 일정한 행위를 하도록 허용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지역권으로 대표적으로 통행지역권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영미의 보통법(common law)에서는 부작위지역권은 일조권을 위해 건축을 제한하는 내용 정도로 한정적으로 인정되어왔다. 적극적인 작위청구에 비해 부작위청구는 공시되는 부분이 약하다는 것이 그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오늘날 증서 등으로 공시적 효력이 확보되어 더 이상 그러한 우려는 없으며, 보전지역권에서 주된 내용은 개발 등 행위를 금지하는 부작위 의무 중심이 되고 있다.
로마법에서 용익물권은 오로지 역권뿐이었다. 역권에는 인역권과 지역권이 있는데 인역권은 특정인의 편익을 위해 타인의 토지를 이용하는 권리이다.18) 미국에서는 특정인의 편익을 위한 대인지역권(easement in gross)도 유효성을 인정하여 많이 활용되었다. 특히 공공서비스 회사(utility company)가 공공서비스(utility)를 위한 전기선 지역권(Electrical power line easement), 전화선 지역권(Telephone line easement), 가스 파이프 지역권(Fuel gas pipe easement) 및 상하수도 매립을 위한 지역권(Sanitary sewer easement) 등을 취득해 활용하였다19).
요역지가 있어 이에 부속한 지역권(이하 부속지역권)과 달리, 인역권은 물권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았으며 양도 등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공공서비스 인역권의 경우 물권적 효력이 인정되어 토지승계인에게도 효력을 미쳤다.
아래 그림은 미국의 부속지역권과 인역권 활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통행지역권과 인역권으로서 전선부설 지역권을 나타낸다.
보전지역권의 경우 부속지역권 외에 요역지가 없이 인역권 형태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에 관한 법적 효력에 관해 UCEA는 제4조 1항에서 ‘보전지역권은 부동산권리에 부속한 것이 아니어도 효력이 있다’ 라고 규정하여 지역권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UCEA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서술한다.
지역권은 로마법 이래로 영구지역권으로 인정되어왔으나 영국의 보통법에서는 영구적인 권리 혹은 규제에 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재산권은 사회적 필요에 따라 대응해야 하고 이에 따라 변화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토지에 대한 한번의 결정이 영구적으로 미래의 소유자들을 속박하는 것은 저주라고 보고20) ‘죽은 자의 손길(dead man′s hand)’라 칭하여 법원에서 그 효력을 부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미국의 보전지역권은 특별히 기간을 명시하지 않는 한 영구적인 효력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UCEA상으로도 명시되어 있다21). 특히 소득세법(IRC §170(h))에 따라 연방의 세금 공제 혜택을 받기 위한 요건은 영구적인 보전지역권을 기부해야 한다.
우리 민법상으로도 통설은 지역권은 소유권을 제한하는 정도가 낮고 소유자의 이용을 조절하는 것이므로 영구무한의 지역권을 긍정하고 있다22).
Ⅲ. 미국의 보전지역권 발전과 UCEA
미국의 보전지역권은 연방과 주정부 차원에서 공원과 고속도로의 경관을 보전하기 위한 내용의 보전지역권이 시초였다. 이후 정부의 친환경 촉진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보전지역권을 활용하였고,23) 랜드 트러스트(land trust)라는 비영리 민간단체가 사유지의 개발을 막고 보전하기 위해 보전지역권을 활용하였다. 점차 요역지(要役地) 없이 대상토지에 인역권 형태의 보전지역권을 간편하게 취득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인역권으로서 보전지역권은 여러 법적 장애(impediment)에 직면하였다.
보전지역권의 법리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UCEA를 시발점으로 하여 이를 모범으로 한 주법들이 제정되면서 법적 문제를 해결하였다. 한편, 랜드 트러스트가 보전지역권을 취득하는데 재정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보전지역권 기부를 장려하고자, 연방 및 주법상 여러 세제(稅制) 혜택을 주면서 급속한 발달을 가져왔다.
미국에서 자연환경가치를 지키기 위한 토지보전의 노력이 재산권을 기반으로 발달한 데에는 정부의 용도구역제(zoning)등과 같은 보상없는 규제조치를 ‘재산권 침해’라고 인식하는 미국 사회의 거부감에 기인한다. 토지의 개발규제조치에 대해 재산권 침해 여부를 법정에서 효력 유무를 가리는 등 법적 분쟁이 이어지면서, 미국의 법원은 토지규제를 합법으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상 없는 토지규제는 규제적 수용(regulatory taking)으로 보고 위헌으로 판결하는 경우도 있어 정부가 토지이용의 규제를 하는 데 법정소송 비용까지 고려해야 하는 등 법적·재정적 부담이 컸다.
사법 영역에서 지역권을 활용하여 토지이용을 조절해 온 미국의 사회문화적 배경도 보전지역권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나아가 토지의 보전을 위해 정부가 규제를 하는 것보다 랜드 트러스트와 같은 민간 환경단체의 보전활동을 더 신뢰하는 문화 또한 보전지역권 발전의 추진력이 되었다.
미국연방 내국세법(IRC) § 170에서는 자선 및 기부의 경우 세금공제에 관해 규정하면서 부동산의 일부분의 권리인 보전지역권을 기부하는 경우에도 세금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1980년대에 보전지역권 기부의 세액공제가 신설되고 국세청(IRS)에서 후속규정으로 동 조항의 세액공제를 위한 기부 요건들에 관한 규칙을 두어 무분별한 공제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였다. 점차 공제금이 늘어나고 주법상 세금혜택까지 더해지면서 랜드 트러스트가 급속도로 증가하였고 이들에게 기부하는 보전지역권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아래 그래프는 세액공제 혜택 이후의 랜드트러스트 증가와 함께 보전지역권의 급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세법상 보전지역권 기부의 세액공제와 그를 위한 요건이 보전지역권의 성장과 규제의 핵심이 되었다.
연방국가인 미국에서는 정부와 민간의 법률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표준법위원회(the Uniform Law Commission)에서 주법의 통일적 제정을 꾀하고자 모범안으로서 표준법(uniform act)을 만들고 있다. 보전지역권 표준법(UCEA, 이하 UCEA라 칭함)은 1981년 보전지역권의 법리적 문제점을 해결하고 주법(州法)의 통일을 위해 기안된 것이다24) UCEA는 직접 효력을 발생하는 강행법규가 아니고, 각 주(州)에서 보전지역권 관련입법을 함에 있어 지침이 되도록 만든 것으로, 이 입법지침을 통해 보통법상 인역권의 효력과 내용제한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2023년 현재, 24개주와 워싱턴 DC가 이 법을 따른 보전지역권 관련입법을 마친 상황이며25) UCEA를 따르지 않은 주들도 자체적으로 보전지역권 수권입법을 하고 있다.
보통법(common law)국가인 미국에서도 인역권은 원래 제한적으로 인정되었는데 계약에 기한 권리로서의 효력만이 있어 대상 토지소유자의 승계인에게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고, 양도·상속이 인정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 또 지역권의 대상토지(승역지)의 소유자나 지역권보유자에게 적극적인 작위의무를 지우는 것도 보통법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인역권의 효력 문제와 지역권 내용의 한계 등 여러 법리적 문제을 입법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UCEA는 서문, 6개 조항과 주석으로 구성되어있다. 각 장은 제1장 정의, 제2장 창설, 이전, 수락과 존속, 제3장 사법적 조치, 제4장 유효성, 제5장 적용, 그리고 제6장 적용과 해석의 통일성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서두와 각 장의 주석에서 상세한 설명을 통해 보전지역권 의의와 실행에 있어 해석상 의문점을 해소해주고 있다.
UCEA 서문에서는 ‘이 법은 자연자산과 역사적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부동산에 가해지는 제한의 존속을 보장하고 적극적 의무를 부과할 수 있게 함이다. 이 법에 따른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보통법에서의 법적 장애를 해소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 법은 토지를 보전하기 위해 자유롭게 토지의 이용을 제한하고 적극적 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법의 요건이 충족된다면, 부동산에 가한 제약 혹은 적극적 의무는 원래 당사자의 승계인과 양수인을 구속한다’ 고 하여 보전지역권의 의의, 법적 장애를 해소하여 물권적 효력을 인정되도록 함을 밝히고 있다. ‘이 법이 직접 제한이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양 당사자가 상호 협의를 통해 보통법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이 법적 제한과 의무를 부과하는 거래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라고 하여 보전지역권 설정계약의 폭넓은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보전지역권의 목적은 제1장에서 보듯 사익(私益)이 아니라 자연·농지·산림 등의 보호라는 공익(公益)에 있기 때문에 제4장에서와 같이 일반적인 지역권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부동산권리에 부속하지 않은 인역권이거나 토지의 편익이 아니어도) 지역권과 같은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또 제1장에서 보전지역권 보유자는 정부기관과 비영리기관에 한정하고, 제2장에서 보전지역권은 영구적 기한을 원칙으로 하고, 제3장에서는 보전지역권 효력 보장을 위해사법적 행위를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은 보전지역권자 외에 검찰총장에게도 인정하고 있다. 아래 표1)에서 UCEA 내용을 요약하였다.
미국의 보전지역권은 재산권법 체계에 기반한 제도이고, 랜드 트러스트라는 민간단체의 면세(免稅)지위 부여와 기부활성화 세제정책으로 재정적 지원체계를 통해 발전하였다.
미국 내국세법(IRC) §170(A)에서는 보전지역권 기부로 인한 세액공제는 ‘토지의 보전만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자선단체’에의 기부로 한정하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단체가 랜드 트러스트이다. 랜드 트러스트는 특정 형태의 조직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공동체를 기반으로 직접 토지를 보전하기 위한 목적의 비영리 자선단체로서, 국내의 비영리 민간단체 혹은 공익단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개별 랜드 트러스트마다 산림, 농지 혹은 문화유적지 등 최우선 보전 대상이 다르고 활동범위도 카운티단위, 주 단위 혹은 연방단위로 하는 경우 등이 있다.
현재 1,281개의 랜드트러스트가 활동중이고 랜드 트러스트가 보전하고 있는 토지는 61,072,596 에이커(acre, 약 2,471,520㎢)이다27). 랜드 트러스트에 대한 규율은 랜드 트러스트 연맹(Land Trust Alliance)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건전한 랜드 트러스트는 인증(accreditation)하고 있다28).
국내에서 자선단체 설립 요건상 주무관청의 허가 등을 요하는데, 미국의 랜드 트러스트 설립에는 이러한 관공서의 개입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로 인해 보전지역권 남용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후술하는 바와 같이 캐나다는 랜드 트러스트에 인증 등을 요하여 남용문제를 방지하고 있다.
Ⅳ. 국내 민법상 지역권 검토
민법 제291조에서 ‘지역권자는 일정한 목적을 위해 타인의 토지를 자기토지의 편익에 이용하는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편익을 얻는 토지는 요역지(要役地)라 하고 편익을 주는 토지를 승역지(承役地)라 한다. 지역권 설정에 의해 요역지의 이용가치는 증대되고 승역지의 이용이 제한되지만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지역권의 특징이 있다.29)
지역권에 있어 편익이란 요역지의 사용가치를 더하는 것을 의미하며, 편익의 종류에는 제한이 없다.30) 이것은 단순히 토지를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보다 광범위한 개념이다. 지역권자의 행위를 용인하는 것(통행지역권, 인수지역권, 전선로(電線路)부설(敷設)지역권) 및 승역지 이용을 제한하는 것(조망(眺望)방해(妨害)건축(建築)금지(禁止)지역권 등)을 포함한다.
지상권이나 전세권은 법률로서 토지사용목적을 명확히 한정하고 있지만 지역권은 강행법규에 반하지 않는 한 어떠한 내용으로도 가능하다. 이것은 물권법정주의의 종류강제를 지역권에 관해 포기한 것을 의미한다.31)
지역권에 의한 토지사용은 비배타적이어서 승역지 소유권의 용익권능이 전면적으로 배제되지 않는다. 예컨대 통행지역권 혹은 전선로부설지역권이 있는 경우에 지역권자는 독점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어서 승역지는 지역권의 부담을 지닌채 이용이 가능하다. 만일 위의 목적으로 지상권이 설정된 경우라면 지상권 성립하는 범위에서 그 토지 이용은 배제된다. 이와 같은 지역권의 비배타성은 실질적으로 두 개의 토지의 이용을 조절한다는 기능을 한다.32)
민법상 상린관계는 인접하는 토지의 이용을 조절하는 목적의 규정인데 지역권의 기능 또한 그와 같다. 다만 상린관계는 법률상 당연히 발생하는 최소한의 이용의 조절로서 소유권 자체의 기능이 미치는 범위인데 반해, 지역권은 당사자의 설정예약에 의해 성립하고 소유권 이외의 독립한 물권이라는 성질을 지닌다.
작위지역권은 지역권자가 일정한 행위를 할수 있고 승역지이용자가 이를 허용해야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통행지역권, 용수지역권 등이 있다.
부작위지역권(소극적 지역권)은 승역지 이용자가 일정한 이용을 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조망지역권(요역지 조망을 방해하는 건물을 짓지 않을 것) 등이 있다.33)
지역권은 인접지간의 토지이용을 조절하기 위한 목적이어서 요역지가 있어야 하며 요역지의 소유권 등에 부속하는 속성을 갖는다(要役地 附從性). 이것은 대륙법계와 영미법 모두 동일하며, 우리 민법상으로도 지역권의 성립요건이다. 즉 요역지와 무관한, 사람의 편익은 지역권과 같은 물권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인역권일 뿐이다. 국내 통행지역권을 보면, 토지의 소유자 혹은 점유하는 전세권자(지상권자, 임차권자 포함)의 지위에서 인정되는 권리이지 토지와 무관하게 개인의 자격으로 누리는 권리, 즉 인역권은 아닌 것이다.
한편 토지의 편익과 사람의 편익을 구별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이영준(2004)은 ‘요역지의 하천을 매몰하기 위해 승역지의 토사를 채취하는 것은 지역권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요역지에 거주하는 도자기 공이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승역지의 토사를 채취하는 것은 지역권의 대상이 될수 없다’고 한다. 즉 모두 요역지는 있으나 편익이 성질이 토지와 사람 중 누구의 것인지에 따라 구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천매몰을 위한 토사채취는 일시적인 목적의 수익권의 형태로 보여지므로 지역권의 권리관계로 의율할 필요성이 크지 않으며, 위 경우 편익의 귀속 주체가 누구냐를 따지는 것은 판단이 용이하지 않다.
이에 요역지와 승역지의 법률관계인지에 따라 지역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명료해 보인다. 요역지에 부속한 권리라면 지역권이고, 요역지와 무관한 법률관계라면 인역권으로 보는 것이 더 명료하며 구분의 실익이 있다.
우리 민법이 전수한 대륙법계인 독일과 프랑스 민법에서는 인역권을 인정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인역권을 도입하지 않았는데 인역권의 목적은 용익물권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학계의 다수는 토지의 제한적 사용권으로서 인역권을 인정하는 것이 토지의 고도의 이용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34) 다른 용익물권은 부동산을 점유하여 이뤄지는데 반해, 지역권의 비점유성은 토지소유자의 이용을 배제하지 않으므로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인역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지 않아서 실제적인 개정움직임은 미약한 상황이다35).
인역권은 특정인의 편익을 위해 인정되는 것으로 양도성·상속성이 없다. 미국의 보통법에서도 원래 인역권은 제한적으로 이용되었는데 이러한 인역권은 사실상 부동산권이 아니라 계약에 기반한 권리에 다를 바 없었다36). 즉, 양도할 수 없고, 대상토지의 소유자가 바뀌면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기반시설인 철도와 전기·수도관 설치에 인역권을 활용하게 되면서 점차 물권과 같은 효과를 부여하기 시작하였지만, 일반적으로 인역권이 지역권과 같은 효력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진도왕(2022)에 따르면 대인지역권(easement in gross)과 인역권은 구분되는 개념이다. 대인지역권은 지역권의 편익을 특정 토지소유자만으로 한정하여 토지소유권에 수반하지 않도록 한 것으로 '지역권의 대인적 설정'으로 설명된다. 즉 지역권의 요역지 부종성과 수반성이 제거되어 편익의 향유 주체만을 한정할 뿐이다. 승역지에 대한 부담이 물권적 효력(승역지 소유권에 부종)이 있는 점에서 지역권과 같다37). 그는 인역권은 사람의 편익을 위한 것으로, 타인의 토지에 대해 광물, 석유, 목재 등을 채취할 수 있는 수익권(profit)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Hegi(1986)에 따르면 수익권(Profit a Prendre)과 대인지역권(easement in gross)의 역사적인 구별은 승역지에 대한 사용의 유형(the type of use)에 따른 것으로 수익권은 승역지에 있는 자원 등을 가져갈 수 있는 권리로 설명한다.
국내에서는 대인지역권과 인역권을 동일 개념으로 보고 있다38). 박홍래(2003)39)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지역권은 미국 재산법상 부속지역권을 의미하고 대인지역권은 우리나라에서 인역권으로 부른다고 한다. 본 글에서도 인역권과 대인지역권을 구별하지 않았다.
학계는 민법상 제235조의 공용수의 용수권과 제302조의 특수지역권은 인역권의 성질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지하수는 토지의 구성부분을 이루는 것으로 그 이용은 토지소유권의 권능인데, 제235조에 의한 상린자의 지하수용수권은 특정인의 편익을 위해 타인의 토지를 사용하는 인역권으로 보고 있다40)
민법 제302조에서는 ‘어느 지역의 주민의 집합체의 관계로 각자가 타인의 토지에서 초목, 야생물 및 토사의 채취, 방목 기타의 수익을 하는 권리’를 ‘특수지역권’ 이라 명명하고 지역권의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통설은 특수지역권은 지역권이 아닌 인역권의 성질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41). 지역권에서는 편익을 제공받는 것은 토지 자체인데 반해 특수지역권에서는 ‘어느 지역의 주민’이라는 점에서 양도성과 상속성이 없는 인역권의 성질을 갖는다. 특수지역권이 인역권인데도 지역권의 규정을 준용하는 이유는 권리자가 목적토지를 점유하지 않고 특정 편익을 위해 이용할 뿐이고 목적 토지의 소유자는 단지 편익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할 뿐이라는 점에서 지역권과 공통한 것이기 때문이다.42)
현행 민법상 인역권은 민법상 위 두 조항에 한해 인정되고 대상토지의 승계인에게도 효력을 주장할 수 있는 물권적 효력을 갖게 된다. 즉 민법상 인역권은, 물권적 효력이 부정되는 보통의 인역권과 구별된다고 볼 수 있다.
Ⅴ. 보전지역권의 활용
미국의 보전지역권은 자발적인 계약에 기반한 부동산 물권으로서 영구적 기한이 보장된다는 점이 강점이다. 지역권의 비점유성과 공용적 성격은 보전의 목적 범위내에서 소유자가 토지를 이용할 수 있게 하므로, 보전지역권은 토지주의 친환경적 경작 및 식재 등을 유도하는 기능을 갖게 된다. 이점이 미국에서 보전지역권이 생태계서비스 지불제를 위해 활용되는 이유이다.
미국의 보전지역권 보유자는 정부와 비영리기관(랜드 트러스트 등)에 한정된다. 정부보유의 경우 일종의 생태계서비스 지불제로서 산림, 농지 및 습지를 보전하고 친환경경작을 촉진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가 댓가를 주고 취득하는 유형이 많다43). 랜드 트러스트는 댓가를 주고 취득하는 경우보다는 기부받는 경우가 많다. 소득세세법 IRC §170에서는 ‘자선 및 기부 등’에 따른 세금공제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다른 면제 혜택을 받기 위한 보전지역권 기부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보전지역권 특징 | |
---|---|
제공자 | 토지소유자 |
보유자 | 정부기관 또는 랜드 트러스트 |
법적 성질 | 재산권 (부동산물권) |
발생 방법 | 구매, 기부, 규제44) |
성격 | 협의와 협력 |
토지소유자 동기 | 토지보전의지, 세금혜택, 완화조치45) |
지역권과 차이점 | 인역권 형식으로 가능 |
존속기간 | 영구적 기한 원칙 (30년 약정 있음) |
보전지역권 도입을 위해서는 개별 국가의 재산법 체계에 부합하는지, 랜드트러스트 등 민간단체의 환경보전 역량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이미 미국의 랜드 트러스트와 같은 민간단체들의 자연보전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재산법 체계도 흡사하여 무리 없이 미국의 보전지역권이 도입되어 활용되고 있다.
이에 반해 칠레는 우리와 같은 대륙법계 계통의 민법으로서 법리적 한계와 또 민간단체의 역량부족 등으로 도입이 순탄하지는 않았으나 민법의 개정을 통해서 ‘부동산 보전권(the Derecho Real de Conservación : a real right of conservation)’ 이라는 새로운 권리까지 창설하여 사유지(私有地)의 보전노력을 하게 되었다. 칠레의 이러한 입법과정은 Civil Law의 법체계를 유지하면서 보전지역권과 같은 보전이익의 부동산권(不動産權)을 신설한 것으로 극찬을 받고 있다46).
캐나다의 랜드 트러스트 NCC (The Nature Conservancy of Canada)는 1962년 설립되어 2014년 기준 2백만6천 에이커의 토지를 보전하고 있다. 캐나다에도 미국의 LTA와 같이 랜드트러스트를 지원하는 연합체가 있는데, 이 캐나다 랜드 트러스트 연합(The Canadian Land Trust Alliance)은 2003년 창설되어 각 랜드 트러스트의 표준과 실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고 있다.
1995년 시작된 the Ecological Gifts Program은 인증된 보전단체 등에 사유지를 기부하거나 적합한 권리를 기부하는 경우에 미국에서와 같이 세금혜택을 주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다음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47).
-
1) 특정 지역별 기준에 따라 생태학적으로 보호할 가치 있는 토지라는 인증을 요하고,
-
2) 기부를 받는 수취인이 환경부장관에 의해 승인된 자격있는 기관이어야 하며,
-
3) 세제혜택이 주어지기 전에 기부한 사유지의 보전가치가 먼저 인증되어야 함.
이와 같이 캐나다에서는 미국과 다르게, 보호대상지와 랜드 트러스트 각각에 정부의 인증(certification)의 요건을 두어, 미국 보전지역권에서의 남용문제를 방지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보전지역권 대상지가 진정 보호가치 있는지 검증받도록 하고, 보전지역권 기부를 받는 단체가 인증된 랜드 트러스트임을 요하면서, 이러한 요건을 세제혜택을 받기 위한 선행요건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48).
표3)은 미국과 캐나다의 보전지역권 제도를 비교한 것이다. 특이한 점은 캐나다의 Quebec주(州)는 다른 주와 다르게 우리와 같이 대륙법계(civil law)계통으로서 보전지역권도 요역지 부종성(不從性)을 따르고 있어서 랜드 트러스트는 반드시 요역지를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역지는 작은 면적도 상관없으나 승역지와 생태학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NCC에 따르면 퀘벡주에는 이러한 요역지를 통한 보전지역권이 대략 50개 등록되어 있다.
칠레는 1990년 이후로 군사독재에서 벗어나 안정된 민주주의를 정립하였고, 짧은 기간에 많은 사유지를 보전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의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랜드 트러스트인 The Nature Conservancy의 영향을 받아 2009년 최초의 랜드 트러스트가 설립되고 추후 여러 단체들이 설립되었다.
칠레는 우리와 같이 civil law 대륙법 계통으로서 물권법정주의에 따라 보전지역권 도입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보전할 토지 부근에 요역지를 취득하여 보전대상지는 승역지로 하여 보전목적의 지역권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활용하였다. 즉 인역권이 아닌 요역지에 부속한 지역권의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일종의 부동산보전권리 (the Derecho Real de Conservación : a real right of conservation) 신설의 입법안이 제출되면서 보전을 위한 부동산권을 신설하기 위해 민법을 개정하는 작업이 진행되어 드디어 2016년 법안이 통과되었으며 이로써 사유지 보전을 위한 법적 기반이 확고해졌다. 칠레의 이러한 ‘부동산 보전권’은 기존 물권이 토지의 이용만을 목적으로 한 것에서 나아가,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물권을 신설한 것으로서, 환경가치의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재산권 체계의 구축이었다. 칠레의 부동산 보전권은 대륙법계의 물권법체계에 부합하는 새로운 물권을 신설한 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시도로서 평가받고 있다.
미국에서 소유권을 ‘권리막대기 다발’로서 인식하는 것은 우리민법상 소유권의 관념과 대비가 된다. 우리 민법상 소유권은 전면적 지배권으로 설명되어 지고, 타인의 부동산이용은 소유권을 제한하는 제한물권으로 관념하고 있다. 즉, 우리민법은 소유권을 ‘권리막대기의 다발’로서 관념하지 않고 절대적인 소유권과 제한물권으로 양분하는 물권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리 물권법상 제한물권은 부동산의 점유와 이용, 혹은 교환가치의 확보 등의 목적으로 설정되고 이러한 제한물권에 따라 소유권은 제한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제한물권의 개념에 따라 미국의 보전지역권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물권법상 지역권은 요역지의 편익을 위해 승역지의 등에 제한을 가하는 권리이므로, 보전지역권은 요역지의 보전의 목적을 위해 대상토지인 승역지에 개발 등을 제한하는 권리로 인식할 수 있다.
보전지역권은 승역지에 보전의 목적 범위내에서 제한적인 이용만 가능하도록 작위 혹은 부작위 의무를 가하는 내용으로서 토지소유권을 제한하는 제한물권인 것이고 이것은 우리 민법상 작위지역권과 부작위지역권 모두 인정되므로 수용 가능한 개념이다. 다만 국내 물권법정주의 원칙상 인역권으로서의 보전지역권은 별도의 입법이 있지 않는한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행법체계와 이용현황에 비추어 미국의 보전지역권을 우리 법 관념으로 해석하면, 보전지역권은 소유권을 제한하는 지역권으로서 그 내용은 (요역지의)보전의 목적을 위해 대상토지(승역지)에 개발 등을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내 민법상 지역권은 요역지와 승역지와의 이용조절 관계로서만 설정할 수 있다. 즉 요역지 소유자로서 누리는 권리이지 요역지와 무관하게 개인이 누리는 권리는 될 수 없다. 인역권으로서의 보전지역권 활용은 미국의 UCEA와 같은 별도 입법이 없는 한 불가하다.
그런데 민법 제302조는 인역권의 일종으로서 특수지역권을 규정하여 어느 지역의 주민이 집합체의 관계로 타인의 토지에서 수익을 하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이에는 지역권의 규정이 준용되고 있으며 물권적 효력이 있는 점은 인역권으로서 보전지역권의 활용에 참고할 부분이다.
국내 현행 법규상 법의 제·개정 없이도 요역지의 부종성을 갖춘 보전지역권 설정은 가능하다. 미국에서도 UCEA 등의 입법조치 전(前)에는 요역지에 부속하는 지역권의 법적 요건을 구비하기 위해, 대상지 부근에 땅을 일부 구매하여 그 땅을 요역지로 삼아 그에 부속된 권리로서 보전지역권을 취득하는 형식을 취한 경우가 있었다49). 캐나다의 퀘벡 주(州)는, 보통법을 따르는 다른 주들과는 다르게, 대륙법 계통으로서 현재에도 보전지역권을 취득하려는 대상토지의 인접지를 구매하여 요역지로 활용하고 있으며, 칠레에서도 부동산역권(servidumbre)을 취득하기 위해 요역지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보전지역권을 활용하였다50). 지역권의 요역지 부종성을 요하는 우리 민법에서도, 위의 사례에서와 같이 요역지에 부속하는 권리로서 보호대상지에 보전지역권을 설정할 수 있다.
우리 물권법상 지역권은 인접지간의 토지이용을 조절하는 관계로서 통행지역권 외에는 거의 활용되지 않아왔다. 지역권 설정계약으로 토지이용을 사전에 혹은 분쟁의 사후에 조절하는 경우는 사례를 찾기 힘들며, 주로 이용되고 있는 통행지역권과 용수지역권의 경우에도 판례의 사례를 보면 계약에 기한 성립보다는 시효취득의 경우가 많다.
국내 지역권의 활용이 저조한 것은 지역권 설정의 법률관계가 애매하고 특히 ‘토지의 편익’의 막연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51) 우리나라에서는 타인의 토지 위에 전선의 설치 혹은 지하에 지하철을 설치하는 경우 미국에서 지역권을 활용하는 것과 다르게 구분지상권을 설정하여 왔다. 또 금융기관에서 담보 토지 위에 건축 등을 금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역권이 아닌 지상권을 설정하는 등 국내에는 지상권의 활용이 높다. 우리 민법이 인역권을 도입하지 않은 이유도 토지에 관한 인역권은 지상권에 의해 거의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52)
지역권에 있어 토지의 편익은 전술한 바와 같이 한정적인 내용이 아니어서 그 활용성은 당사자의 약정으로 아주 다양할 수 있다. 국내에서 지역권 활용사례가 적은 것은 지역권 행사범위와 관련한 법규정 미비로 보기도 한다. 독일민법(BGB 제1018조)에서는 지역권의 내용으로 ‘승역지의 개별적인 이용’, ‘일정행위의 금지’ 및 ‘승역지 소유자의 권리행사의 배제를 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규정하여 지역권에 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설정 기준을 두고 있다53). 승역지 개별적 이용으로는 통행지역권을 들 수 있고 일정해위 금지의 예로는 조망·일조지역권이 있다. 승역지 소유자의 권리행사 배제를 구할 수 있는 내용의 지역권은 상린관계상 인정되는 주위토지통행권 혹은 생활방해 금지 등의 권리를 포기하게 하는 내용인데, 공장사업자 등은 이러한 권리행사부작위권을 인근주민으로부터 사들여 분쟁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지역권을 활용한 토지이용의 조절은 국내에서 토지이용 관련 분쟁을 사전에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시사점이 크다.
국내 보호지역에서는 여러 공법적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런데 사유지 소유자의 적극적인 친환경활동 등이 필요한 경우에는 공법 규율의 한계가 드러난다.
국내에 보전지역권이 바로 활용될 수 있는 분야는 토지주에 대한 친환경적 인센티브제도이다.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선택형 공익직불제(농업·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 친환경농업직접지불제, 경관보전직접지불제),54) 생태계서비스 지불제(생물다양성보전및이용에관한법률 제16조)등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들은 산림, 농지 및 습지 등의 공익적 가치를 증진하기 위한 인센티브제도들이다. 그런데 대부분 1년 이하 단기 계약관계로 이뤄지고 있고 참여자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할 수 있어 실효성이 약하다. 토지의 이용과 관련된 활동은 물권적 효력을 가질 때 그 실효성을 보장할 수 있으므로 위 제도와 함께 보전지역권 활용될 필요가 있다.
보호지역 등에는 국유지 혹은 공유지 등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요역지로 삼아 사유지 위에 보전지역권 설정이 법리상 가능하다. 이는 정부와 지자체가 보유한 토지(없다면 일정 토지를 매수)에 부속하여, 대상토지에 보전지역권을 설정하는 방식이 되는데 이때 보전지역권자는 정부와 지자체가 될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생태계서비스지불제 등과 연계한 보전지역권은 추가적인 재정부담은 없게 된다.이러한 적용은 민법상 부속지역권 형태로서, 공법적 규제가 있는 토지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경우와 다르다.
보전지역권은 공법적 규제 없이 사법상 물권을 통해 토지를 보전하는 법제가 된다. 보전을 위해 국가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것보다 보전지역권 설정이 경제적 비용이 적은 것도 매력적이다. 게다가 보전지역권은 토지주의 협력적인 활동을 유도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더 효율적으로 평가받는다.
현행 민법상 보전지역권은 인역권 형태가 아닌 지역권으로서 성립하는데 법적 장애는 없다. 인역권으로서의 보전지역권 활용은 별도 입법이 필요하지만, 타국 사례에서 보듯 인역권 형식의 보전지역권 인정여부는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다. 요역지에 부속한 보전지역권은 법개정 없이도 현행 민법상 가능하다
문제는 지역권에 대한 저조한 인식이다. 국내에서는 통행지역권 외 지역권 활용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의 법체계에서도 보전지역권 실행은 가능하지만 활용이 되지 않았는데, 주된 장애는 보전지역권 실행사례의 부족과 보전지역권 확산을 위한 인센티브 부족 등으로 지목되고 있다55).
국내에서 생태계서비스지불제 등과 연계해서 보전지역권을 설정한다면 재정적 추가 부담은 없다. 하지만 대상토지를 생태계서비스지불제의 경우와 같이 이미 공법적 규제가 있는 지역에 한정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처럼 공법적 규제가 없는 지역에까지 보전지역권 설정 범위를 확장할 것인지에 관한 검토와 함께, 보상이 필요 없는 개발규제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보상 없는 공법적 규제와 보상이 주어지는 보전지역권 범위와의 경계 설정이 있어야한다.
한편 보전지역권자를 랜드 트러스트와 같은 민간단체에 확장할 것인지 여부, 보전지역권자 및 의무자의 보전관리 위반의 경우 대응체계, 보전지역권 남용에 대한 예방 조치와 함께 보전지역권의 변경 및 소멸 등에 대한 법리적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56)
Ⅴ. 마치며
미국의 보전지역권은 사유지를 보전하는데 자발적인 협약에 기한 재산법제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과 랜드 트러스트라는 민간단체의 전문성과 거버넌스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특수성이 있다. 환경보전에 그치지 않고 농지와 공터 및 문화적 가치 등의 보전 등을 위한 보전지역권 활용 사례는 국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연환경, 농지 및 산림의 보전 등 여러 공익을 위해 물권형식의 재산권(보전지역권)을 설정하는 것은 일종의 환경재산권(Envionmental poperty rights)으로 칭해지기도 한다57).
보전지역권은 환경정책에서 사법(私法)적·경제적 수단으로서 효율성을 도모하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토지규제와 토지소유자의 이용이 병행할 수 있고 보전에 토지소유자의 협력이 필요한 경우 보전지역권 활용의 필요가 크다고 하겠다.
재산권과 환경보호는 갈등관계로 인식되어왔지만 보전지역권은 재산권을 활용한 사법(私法)상 환경보호 법제로서 기존의 인식을 전환하고 있다. 개별 주체에게 귀속되는 이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보전이 재산권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보전지역권의 영구적 기한은 공법상 규제보다 더 강력한 효력이 있다.
토지를 보전하기 위한 국내 보호지역에 관한 법규 등은 일률적이고 강행적인 행정법규로서 행해지므로 보호지역 내 사유지 소유자의 반발이 있어왔고 보전활동에 소유자의 협력을 얻기 힘들었다. 보전지역권은 자발적인 계약으로 성립되므로 토지소유자의 협력을 이끌어 내면서, 각 토지의 특성에 맞춘 토지이용 제약 등을 보전지역권의 내용으로 하여 토지이용 규율의 개별화를 가능하게 한다. 토지소유자야말로 보전활동의 가장 훌륭한 관리자라는 인식은 국내 행정 중심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고 있는 공익직불제와 생태계서비스지불제 등의 친환경 인센티브제도에 보전지역권의 시범적 활용을 제안하는 바이다.
특히 미국에서 보전지역권은 랜드 트러스트라는 민간단체의 환경보호활동을 강화하는 수단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토지를 매수하지 않고도 보전지역권을 취득하거나 기부를 받아 토지 보전활동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환경보호단체들이 한정된 활동에 비춰볼 때 공익법인으로서 환경보호단체가 사유지를 직접 보전·관리하는 법적 수단으로서 보전지역권의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