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최근에 상속인이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성년이 된 후에 독자적으로 한정승인을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이 있었다. 한정승인 제도와 관련하여서는, 이른바 특별한정승인 제도를 통하여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상속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법개정이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특별히 미성년자 보호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부각되면서 추가적인 입법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입법론이 제시되기도 하였으나, 결국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후에 종전의 상속효과를 번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므로 이것에는 상속이 개시할 당시에 이미 이루어진 상속의 결과를 재조정해야 하는 문제가 따르게 된다.
그런데 실상 이것 외에도 현재의 한정승인 제도와 관련하여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가령 상속인 주도로 이루어지는 청산절차의 효용성이 그리 크지 않으며, 또 상속재산에 관한 소송절차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부정합적 상황들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고, 무엇보다도 상속재산을 둘러싼 상속채권자와 상속인 사이의 대립관계를 명확하게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들이 자주 지적되어 왔다.
이른바 법정의 당연승계 원칙,1) 즉 권리나 의무의 승계에 요구되는 별도의 법률요건을 갖추지 않더라도 상속개시시에 당연히 피상속인의 재산상의 지위가 상속인에게로 포괄적으로 승계되는 방식에 관한 문제 제기를 통하여, 피상속인의 사망과 상속인의 권리의무의 취득 사이에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자 하는 보다 급진적인 체계변경 방안도 일부에서 고려되어 왔다. 그 모델로서 지속적으로 언급되어온 영미법은 원칙적으로 채무가 승계되지 않는 상속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상속이 개시되면 일단 상속재산관리인이 상속재산을 승계하여 상속채무를 청산하고, 잔존재산이 있으면 상속인에게 인도함으로써 상속으로 인한 권리취득의 효과가 발생하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다수의 대륙법계 국가의 상속법제도와는 구분되는 고유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영미 상속법의 또 하나의 특징으로서 부동산과 동산의 차별적 취급을 들 수 있다. 근대에 이르러 그 구분이 분명하지 않게 된 측면도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입법에서나 특유의 용어 구사에 있어서 기존의 전통적인 관념이 내재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질적 요소와 가치적 요소에 대한 평가의 전환을 이루는 시기에 이와 같은 차별적 사항의 의미를 보다 세심하게 검토하는 일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기본체계가 상이한 제도의 이해를 위해서는 그 출발점에서 그 주요 개념과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갖추는 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하에서는 영미 상속법상 부동산과 동산이 별도로 규율되었던 배경과 입법적 전개과정 및 현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Ⅱ. 상속법적 배경
다른 분야의 법과 마찬가지로 상속법 영역에서도 미국법은 영국법에 기원을 두고 있어, 상호간에 기본적인 체계와 개념이 유사하다. 영국과 미국의 상속법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상속개시시에 상속재산을 승계하여 관리하는 인격대표자(personal representative)2) 제도를 두고 있다는 점과, 遺言檢認 제도(probate)를 기반으로 유언의 유효성을 확인하고 그에 따라 상속재산관리 및 분할을 시행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영미 상속법에서는 부동산과 동산에 관한 것을 용어를 달리 하며 서로 구별되고 있다. 遺言에 의한 상속에 있어서, 부동산, 특히 토지를 유증하는 경우를 ‘devise(이하 ‘부동산 유증’)’라고 하고, 동산, 채권, 지적 재산권 등을 유증하는 경우를 가리켜 ‘legacy(이하 ‘동산유증’)’ 또는 ‘bequest’라고 지칭한다. 부동산대차(lease3))는 성질상 동산에 관한 권리(personalty)에 포함되지만, 부동산에 관한 권리(realty)에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chattels real’4)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토지 유증에 관한 ‘devise’는 부동산유증과 동산유증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특히 미국의 Uniform Probate Code 1969, 즉 통일유언검인법(이하 ‘UPC’) 및 이를 채택한 주5)에서는 이 용어만을 사용한다.6)
또한 유언이 없는 상속, 즉 無遺言相續(Intestacy)에서도 부동산과 동산에 관한 용어를 달리 한다. 부동산의 상속은 ‘descent(이하, ‘부동산상속’)’, 동산의 상속은 ‘distribution7)(이하 ‘동산상속’)’이라고 하며, ‘descent and distribution’이라고 하면 이것은 통상적으로 무유언상속, 즉 법정상속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상속법상 부동산과 동산에 관한 용어가 서로 구별되어 사용되는 것은, 영미 재산법이 real property(이하 ‘부동산’)와 personal property8)(이하 ‘동산’)의 구별을 전제로 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항을 전제로 하여 이하에서는 상속제도에서 부동산과 동산을 구별하는 것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인지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토지소유의 문제가 응당 그 기초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경제구조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법적・정치적 구조의 변화와 관련된 총체적인 사회 재구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속제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전통적으로 상속은 토지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져왔기에, 상속법의 변화는 사회구조의 변화를 비교적 선명하게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세 봉건시대의 토지제도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구조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고, 신분제와 연결되어 있다. 노르만정복으로부터 시작되는 영국의 봉건시대에 있어서 부동산에 관한 무유언상속의 기본원칙9)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① 남자 상속인이 있는 경우에는 여자 상속인이 배제되고, ② 남자 상속인 중에서는 장자만이 모든 토지를 상속한다(primogeniture). 그리고 ③ 여자 상속인만 있는 경우에는 그들 사이에 균분상속한다.
봉건사회는 통치와 소유, 공법적인 질서와 사법적인 관계가 혼동된 모습이다. 토지는 국왕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원칙10)이고, 영주나 신하는 국왕이 정한 조건 하에 일정기간 동안 토지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각자에게는 특별점유(seisin)만이 허용11)되었다. 원래 영주가 왕으로부터 받은 봉토에 대한 권리는 종신사용수익권(life estate)이어서, 영주가 사망하면 왕에게 반환해야 한다. 그런데 12, 13세기 즈음에 이르러 반환하지 않아도 되는 봉토에 대한 권리가 생겨났고,12) 이를 근간으로 하여 영미법상의 다양한 재산권이 분화되어간다.13) 즉 봉건제의 봉주와 봉신의 관계에 나타나는 양상에 따라 봉토의 상속이 당연한 것이 되기도 하면서, 봉주가 봉신의 상속에 관여하는 힘이 약화 내지는 유명무실화14)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현재 영국법에 있어서 개인의 토지 소유는, 관념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조건과 기한 없이 부동산을 보유할 수 있는 권리로 존재하고 있어, 배타성이 강조되는 단일한 소유 관념15)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의 소유권 개념16)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토지제도를 기반으로 하여, 봉건제 하에서의 부동산 상속에 있어서 국왕이 부동산 점유 내지 수익권의 상속을 통제하였고, 왕실법원(royal courts)이 그 관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런 봉건제 하에서 군역의 제공은 토지의 용익에 대한 중요한 반대급부로서, 바로 남성 우위 제도의 근간을 이룬다. 또한 토지를 자손들에게 분할하는 것보다 가산으로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기에 법정상속인은 피상속인의 장자만 해당되며, 배우자나 다른 아들은 상속인의 지위에 있지 않았다.
소유권법상 동산(personal property)은 부동산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영미법상의 동산은 유체의 동산보다도 넓은 개념으로, 금전청구권, 특허권, 저작권, 負債, 보험증권, 株券과 같은 것까지 포함된다. 봉건제 하에서 가구, 보석, 의복, 서적과 같은 동산(chattels)에 관해서는 절대적인 지배권으로서의 소유권(ownership)이 인정되었고,17) 토지의 경우와 같은 국가 통제를 받지 않는다. 부동산과 달리 동산은 세세하게 통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곤란하다는 점도 있었을 것이고, 또 산업혁명 이전 시기에 동산의 자산적 가치가 크지 않았기에 국가로서는 큰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과 더불어 상속은 교회와의 관계에서 관할 분배의 사안18)이기도 하다.
동산 상속의 관할이 교회와 교회법원에 속하고 국왕의 관할이 미치지 않았다는 점은, 로마법이나 대륙법과는 구별되는 영국 전통 상속법의 특징이다. 유언이 없이 사망한 경우에 교회는 상속재산인 동산을 관리할 권한을 가지며, 유언집행자처럼 상속채무를 부담하고,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재산을 이전한다.19) 국가는 직접적인 통제가 용이하지 않은 영역에 무리하게 개입하지 않는 통치의 유연성을 갖추는 동시에, 교회로 하여금 동산 소유권의 귀속을 정해주는 법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허용함으로써 그 권위를 세워주고자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결론적으로 동산의 상속에 관해서는 국왕의 관할이 미치지 않았기에, 교회법의 기초가 된 로마법의 원리가 적용됨으로써 동순위에 있는 상속인들 사이에서는 동등한 상속이 이루어지고, 남성 우위나 연장자 우선과 같은 것은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20)
영국은 봉건제에 바탕을 둔 부동산법을 근대화하기 위하여 1925년에 재산법(Law of Property Act 1925)을 비롯한 일련의 제정법을 마련하여 혁신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때에 동산에 관하여 적용되는 원칙에 맞추어 부동산에 관한 법리가 간소화되어 새롭게 정비되었다.21) 그리고 같은 시기에 상속재산관리법(Administration of Estates Act 1925)이 제정되었는데, 이것은 상속에 관한 기본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를 통해 수세기에 걸친 장자상속제와 남성 상속인 우위의 원칙이 폐지되었다. 또한 부동산과 동산의 엄격한 준별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어, 두 상이한 형태의 상속제도는 비로소 단일체계를 이루기에 이르렀다. 유언이 없는 경우 상속재산을 관리하며 상속채무를 변제하고 동산인 상속재산을 상속인에게 분배하던 교회의 역할은 이제 법원에 의하여 선임된 상속재산관리인이 수행하게 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영국의 봉건제를 기초로 한 위와 같은 토지제도의 체계와 내용을 승계한 것이 사실이지만, 제도 형성의 기본적인 배경에 있어서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영국처럼 신분제에 기초한 토지제도로 시작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엄청난 부를 보유하며 이른바 대중사회를 형성해왔기에, 근본적으로 영국 토지법 내지 상속법의 성격이나 체계가 원형대로 유지될 수는 없다. 미국에서 토지는 더 이상 신분과 전통에 의한 것이 아닌 당사자 사이의 계약에 의하여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하나22)일 뿐이며, 이 점과 관련하여서는 미국의 소유권은 이른바 대륙법적 관점의 소유권 개념23)에 가깝다24)고도 할 수 있다.
UPC을 포함한 미국의 대다수의 무유언 상속법(intestacy statute)은 상속인의 연령과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의 상속과 동산의 상속도 구별하지 않는다.25) 그러나 일부 주의 법에서는 부동산과 동산의 구별에 관한 코먼로 원칙을 유지하고 있고, 각각에 관하여 상이한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26)고 한다.
영국의 토지법 체계는 기본적으로 국왕과 영주를 중심으로 하는 신분적 권리체계를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이념적으로는 개인이 토지를 소유하면서 자유롭게 거래하고 상속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따라서 부동산권과 관련하여서도 estate in fee simple(단순부동산권)과 같은 전통적인 용어가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다만 그것은 사실상 소유권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한편 영미의 부동산권의 특징 중 하나가, 미래의 권리(future interest)라는 것을 상정하여 현재의 권리와 대비시킨다는 것이다. 권리의 양도인은 현재의 권리 보유자를 지정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장래 일정한 조건 하에 현재의 권리 보유자로부터 미래의 권리 보유자에게로 재산권이 이전될 수 있도록 지정할 수 있다는 것27)이다. 그런데 이처럼 권리를 시간적으로 분할한다는 관념은 사망 이후에도 재산에 대한 지배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신분과 재산을 세습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즉 실질적으로는 봉토에 대한 권리의 상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봉건적 의무의 하나인 상속세를 회피하면서 지속적으로 그 재산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려는 시도이고, 그에 따라 ‘상속’의 형식이 아닌 ‘미래의 권리의 양도’라는 형식을 창안하게 된 것이다.
코먼로상의 토지양도 제한의 법리로 언급되고 있는 셸리사건의 법칙(Rule in Shelly’s Case), 가치 있는 권원 이론(Doctrine of worthier title)은 장래의 불확실한 권리에 대한 양도를 금지하는 것으로, 토지의 상속과 관련된 이론28)이다. 또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에 한하여서만 상속할 수 있는 부동산권인 限嗣 부동산권(Fee tail, Entail)29)이나 영미법상의 중요한 이론인 신탁(Trust)과 같은 것도, 기본적으로 가산이 가족 내에 머물도록 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으므로 상속과 관련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법적인 소유권(legal ownership)과 형평법상 소유권(equitable ownership)의 개념적 분리30)를 주된 관념으로 하는, 영미재산법의 특징적 제도라고 할 수 있는 신탁31)은, 애초에 봉건제의 봉신들이 상속지불금을 지급함으로써 토지의 상속과 양도를 사실상 인정받게 되는 체제 안에서 그 상속지불금의 지급을 회피하기 위하여 고안된 제도32)이다. 가령 피상속인이 교회에 재산을 신탁하면, 교회는 사망하는 일이 없기에 단 1회의 상속지불금의 지급으로써 이후의 상속세 부담에서 합법적으로 면제될 수 있었다. 또한 喪夫한 부인이 상속인을 두지 않은 채 독신을 선택한 경우에 자신의 재산권을 교회에 신탁하는 일이 많았다33)고 한다.
현재 신탁제도34)를 제외한 다른 법리나 제도들은 미국의 일부 주에만 남아있고 거의 폐지되었다고 한다. 봉건적 의무를 회피하려는 시도를 금지하기 위하여 도출된 법리인 셸리사건의 법칙이나 가치 있는 권원 이론이 더 이상 유지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미래의 권리까지 포함하여 부동산권의 자유로운 처분이 더 이상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限嗣 부동산권이 폐지되고 신탁제도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것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영미법상의 토지제도는, 부동산권에 관하여 미래의 권리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권리를 인정하면서, 재산권의 양도가능성을 강화해가는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부동산권에 대한 처분의 자유를 기초로 하여, 유언을 포함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부동산권이 자유롭게 상속될 수 있음을 확인해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아가 부동산 처분의 제한 가능성이 제거되고 동산의 경제적 가치가 상승해간다는 것은, 동산과 그 완전한 소유권을 전제로 하여 기존에 형성되어온 법리가 이제 부동산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동산에 관한 자유로운 처분과 상속의 법리에 맞추어 부동산 상속법이 재편성될 수 있는 전제가 마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하에서는 현재 영국와 미국의 상속법에서 부동산과 동산이 어떤 방식으로 규율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Ⅲ. 영미 상속법상의 부동산과 동산
영미법에서는 유언이 있든 없든, 동산이든 부동산이든 관계없이 피상속인의 재산은 우선 유산을 관리하는 자에게로 이전한다. 유언이 있으면 유언으로 선임된 유언집행자(executor),35) 유언이 없으면 법원에 의해 선임된 상속재산관리인(administrator)에게 재산이 이전하고, 양자를 총칭하여 “인격대표자(personal representative36))”라고 한다.
상속재산이 직접 상속인이나 유증을 받은 자에게 귀속되지 않는 것은, 중세에는 유언으로 부동산은 처분할 수 없고, 동산의 처분만이 가능37)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망자의 동산 상속에 관하여 재판 관할이 있던 교회는 망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유언을 검인하였으며,38) 교회법원은 遺言執行者의 의무이행을 감독하였다. 또한 유언을 남기지 않고 사망한 경우에도 교회가 동산인 상속재산을 관리하였는데, 1285년부터는 사망자의 채무를 변제하고 유산을 배분하는 것과 같은 유언집행자가 하는 임무를 교회법원의 재판관인 사제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였고, 1357년에는 교회법원이 사망자와 가장 가깝고 합법적인 지인들(the next and most lawful friends)을 相續財産管理人으로 선임하고 상속재산관리장(letter of administration)을 수여하여 동산인 상속재산을 관리하도록 하였다.39) 1857년에 이르러 유언검인법원(Court of Probate)이 창설되면서 교회법원의 상속에 관한 관할이 폐지되었고, 이에 유언검인법원은 동산유증뿐만 아니라 부동산유증에 관한 분쟁에 대해서도 관할권을 가지게 되었다.40)
1897년 토지양도법(Land Transfer Act)이 제정되면서 동산과 마찬가지로 부동산에 관한 관리권한도 인격대표자, 즉 유언집행자와 상속재산관리인에게 주어졌다.41) 즉 이 인격대표자는 유언검인법원의 감독을 받으며 부동산과 동산 모두에 관한 관리처분권을 가진다. 이들은 상속채무를 변제하고 잔여재산을 유증을 받은 자나 상속인에게 인도하는 일을 수행한다. 다만 유증을 받은 자나 상속인이 미성년이면 성년이 될 때까지 그 재산을 수탁자로서 관리42)해야 한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유언집행자와 상속재산관리인을 통칭하여 주로 ‘representative’ 라고 하는데, 영국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상속재산을 관리하는 법원직원으로 본다는 것43)이라고 한다. 또 영국의 경우 상속재산으로 상속채무를 변제하는 데에 부동산과 동산 사이에 아무런 순위의 차이를 두지 않지만,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동산으로 채무변제에 이용하고, 부족한 경우에 비로소 부동산을 매각하는 기능을 인정한다44)고 한다.
이하에서는 영국 상속법상 유언이 없는 경우와 유언이 있는 경우를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유언 없이 사망한 경우에 관해서는 영국에서는 상속재산관리법(Administration of Estates Act 1925)이 규율하고 있는데, 상속법의 기본규범이다. 이 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不動産은 1833년 상속법(Inheritance Act 1833) 및 1859년 부동산법 수정법(Law of Property Amendment Act 1856)에 의하여 상속인(heir)의 지위에 있는 자에게 귀속된 반면에, 動産은 1670년 및 1685년에 제정된 유산분할법(Statute of Distribution)에 의하여 일정범위의 근친 또는 가족에게 배분되었다.45) 1925년에 상속재산관리법의 제정을 통하여 전통적인 장자상속제와 남성 상속인 우위의 제도가 폐지됨과 함께 부동산과 동산의 준별방식도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고, 그 대신에 모든 형태의 자산에 단일한 규칙이 적용되도록 하였다.46) 이 상속재산관리법 PartⅠ은 “부동산의 인격대표자에게로의 승계(Devolution of real estate on personal representative)”를 규정하면서,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유언의 유무에 관계없이 부동산이 인격대표자에게로 승계되는 것으로 규정한다.
상속재산관리법에 의하면, 유언 없이 사망한 경우에는 우선 인격대표자에 의한 재산관리(Administration of assets)(PartⅢ)를 통하여 상속재산으로부터 변제되어야 할 채무 및 상속비용 등이 변제되어야 하고, 그런 후 남는 적극재산이 있으면 상속분에 따라 상속인들에게 이전한다. 인격대표자는 피상속인이 가진 부동산과 동산을 신탁적으로 보관하면서 상속재산을 매도할 권한을 가지며(Section33(1)), 상속재산 중에서 장례비용, 유언비용, 상속재산관리비용,47) 상속채무 등을 변제한다(S.33(2)).
잔여재산이 있으면 다음과 같이 분할된다. 우선 ① 생존한 배우자가 없이 자녀만 있는 경우에는 자녀들이 모든 재산을 승계한다. 이때 대습상속에 규율이 적용되고, 또한 미성년자 자녀가 성년이 되기까지 상속재산의 취득이 유보된다는 규칙이 적용되는데, 이것을 법정 신탁(statutory trust)이라고 한다.
② 배우자48)와 자녀가 모두 생존한 경우에는, 배우자가 우선 모든 동산(personal chattels)을 취득한다. 여기에서의 동산은 금전이나 유가증권, 그리고 사업목적 재산을 제외한 이동가능한 유체물을 의미한다.49) 또한 법정 유산금(statutory legacy)으로 상속세 없이 25만 파운드50)를 우선적으로 취득한다(S.46(2)). 마지막으로 동산 및 법정 유산금을 제하고난 최종 잔여재산의 2분의 1로부터의 정기수급권(income)인 종신수익권(life interest)을 취득할 수 있다. 다만 배우자는 그의 선택에 따라 인격대표자로 하여금 종신수익권을 매수하게 하고 가액을 일시급으로 지급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잔여재산의 나머지 절반에 관해서는 자녀들을 위한 법정 신탁이 이루어진다. 추가적으로, 배우자는 부부거주주택을 가질 권리51)가 있다. 이 주택을 취득하는 것은 앞서 열거한 절대적 권리, 즉 법정 유산금과 정기수급권에 충당된다.
이때의 자녀는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취득하고 난 나머지에 대한 법정 신탁의 적용을 받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동산과 법정 유산금을 가져가면 상속재산은 거의 소진되는데, 특히 배우자가 부부거주주택이나 다른 재산에 관하여 합유소유권자(joint tenant)일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52) 이것은 생존배우자권(survivorship53))에 해당하는 것으로, 부부의 생존시에는 주택의 합유지분권자로 공동소유하다가, 일방이 사망하면 생존배우자의 단독소유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③ 자녀가 없이 배우자, 부모, 全血 형제(부모가 동일한 형제, whole-blood), 전혈 형제의 직계비속이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일단 배우자는 동산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가진다. 그밖에 45만 파운드의 법정 유산금54)을 가지며, 마지막으로 최종적 잔여재산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재산으로부터 정기수급권을 취득할 수도 있고, 그 금액 자체를 취득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피상속인의 부모는 배우자가 취득한 후의 잔여 재산에 대하여 균등한 비율로 상속하며, 부모가 없는 경우에 형제들은 법정 신탁에 따라 수익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 영국의 법령상 유언 없이 사망한 경우에 일단 상속재산이 인격대표자에게로 승계된다는 점에 관해서는 부동산과 동산 사이에 차이가 없다. 또한 과거 봉건사회에서는 여성은 현실적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지만 남편이 사망하는 경우에 남편이 보유하고 있던 토지의 3분의 1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결혼을 할 당시에 이미55) 다우어(dower, 寡婦權)로 인정되었던 것으로, 부인의 장래의 생계를 위한 재산 유보의 의미를 가졌다. 따라서 남편은 생전에 장차 부인의 재산이 될 수도 있을 부분에 대해서는 자의로 처분할 수 없었다56)고 한다. 현재 영국에서는 이처럼 배우자의 부동산을 일정 비율로 승계하는 제도도 폐지된 상태이므로, 이 점에서도 부동산과 동산의 차별적 취급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배우자의 상속분과 관련하여, 금전, 유가증권 등을 포함하는 동산인 상속재산의 취득과 더불어 상당한 액수의 법정 유산금을 우선적으로 취득하게 하고 있고, 그 밖의 재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상속분에 상응하는 종신수익권에 관한 가액 보상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상속재산의 성격의 변화57)의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인데, 조상의 땅이 해체되어 팔려버리고, 그 자리를 ‘거주주택’과 ‘은행예금’, ‘투자자산’이 대신하게 된 것으로, 무유언상속에 있어서 상속재산의 비중은 이미 부동산에서 이들 動産으로 옮겨져 있음을 추론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영국의 무유언상속법에 있어서 부동산과 동산의 구별은 여전히 그 고유한 의미를 지니고 기능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증은 유언에 의하여 자신의 재산을 무상으로 제3자에게 주는 단독행위이고, 상속은 법률 규정에 의하여 자연인의 재산법상의 지위가 그 사망 후에 특정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기에, ‘법률행위에 의한 상속’이라는 개념은 체계상 문제가 있다. 그러나 영미법상의 상속은 유언을 통한 재산승계의 모습을 기본형으로 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무유언상속의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유언상속”이라는 것을 상정하고, “유증”과 동등 내지 대등한 관념의 것으로 전제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legacy는 동산유증을, devise는 부동산유증을 가리킨다. 그런데 유증의 분류와 관련하여 이 부동산과 동산의 구별이 어느 정도 의미를 갖는다. 동산유증으로는 특정유증(specific legacies), 일반유증(general legacies), 그리고 드물게 있는 것이지만58) 지시유증(demonstrative legacies59))이 있다. 부동산유증에는 특정유증과 일반유증이 있다.
부동산과 동산 모두 특정유증과 일반유증이 가능하다. 특정유증은 특정물에 대한 유증이다. 동산의 특정유증의 경우에는, 유증자는 특정의 시점이 사망시인지, 유언집행시인지를 구별하여 특정하여야 한다.60) 특정유증에서는 유언자의 사망 당시에 더 이상 그 재산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유증은 철회된 것으로(adeemed) 본다.61) 유증자가 사망 전에 그 특정물을 양도하거나 파괴62)할 수도 있기에 그런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겠으나, 원칙적으로 이 유증철회(ademption)는 유언자의 의사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63)
일반유증(general devises)에서도 부동산 유증과 동산 유증의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일반 동산유증(general legacies 또는 general bequest)은 유증자의 사망 당시에 가진 재산의 일정 부분을 유증하는 형태이다. 가장 전통적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은, “나는 X에게 10,000파운드를 준다”는 것처럼 일정한 금액을 수여하는 형태이다. 그래서 금전의 유증(pecuniary legacy)은 많은 경우 일반유증(general legacy)과 동의어로 사용된다.64) 이 일반 동산 유증에는 위에서 말한 유증철회가 적용되지 않는다. 일반 부동산 유증은, 가령 “유증자 소유 토지 중 잔여토지를 수여한다”는 것과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진다.65) 유언자의 재산이 총채무와 유증을 지급하기에 부족한 경우에는 특정유증보다 먼저 이 일반유증이 감액(abatement66))된다.67)
이용되는 빈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지시유증이란 것도 있다. 이것은 동산에만 있는 것으로, 특정유증과 일반유증이 복합된 형태이다. 유언자의 특정한 자금이나 재산으로부터 주로 지급되도록 하지만, 반드시 그것으로부터만 지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 부족함이 있을 경우에는 일반유증으로서 다른 유산 중에서 지급될 수 있다.68)
영국법에서 이처럼 동산유증을 특정유증, 일반유증, 지시유증으로 분류하고, 부동산유증을 특정유증, 일반유증으로 나누는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데,69)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증철회(ademption), 감액(abatement), 그리고 정기수급권 및 비용지출의 문제에서 달리 규율되기 때문이다. 다만 동산유증과 부동산유증의 구별에 관한 한, 지시유증이 동산유증에서만 인정된다고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고, 또 그 지시유증이 실제로 크게 활용되고 있지 않다는 측면을 생각해본다면, 영국의 유언상속에서의 동산과 부동산의 구별은 무유언상속의 경우에 비하여 그다지 큰 의미를 찾기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의 UPC에서는 모든 유증을 ‘devise’로 통칭하며, 양자를 구별하고 있지 않다.
미국의 상속법은 주법으로 되어 있어서 각 주마다 다른 내용의 상속법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피상속인이 사망할 당시에 거주하던 주의 법이 동산의 처분 및 승계에 관하여 적용되고, 피상속인의 부동산이 소재하고 있는 주의 법이 부동산에 적용되므로,70) 부동산과 동산의 구별은 관할과 준거법을 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71)
미국 유언법의 모델이 된 것은 영국의 사기방지법(Statute of Frauds 1677)72)과 유언법(Wills Act 1837)이다. 미국의 각주는 이 모델 중 어느 하나 혹은 양자를 적절히 혼합시켜 따르는 경향73)이었다고 한다. 대체로 문서로 작성하고, 유언자가 서명하며, 적어도 2인 이상의 증인이 인증할 것을 요구하는데, 각각의 주는 고유의 인증방식을 요구한다.74) 사기방지법의 경우에는 유언의 목적물이 부동산일 경우에는 유언장에 증인의 서명이 부기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고, 유언법의 경우는 동산과 부동산 모두에 인증을 요구한다.75)
미국에서 유언법에 관한 한 영국의 입법이 참고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유언검인법에 있어서는 그 독자적인 성격이 확인된다. 遺言檢認(probate)이라는 것은, 좁은 의미로는 유언장의 검인으로서 유언의 유효성을 결정하는 사법절차를 의미하기도 하지만,76) 상속재산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절차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절차77)를 뜻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1969년에 UPC, 즉 통일유언검인법이라는 통일규범을 제정함으로써 상속법의 현대화와 통일화를 지향하였는데, 이것은 영국의 유언검인제도와는 다소 구별이 되는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부동산과 동산을 차별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미국의 식민지 시대에는, 당시의 영국에서처럼 검인을 받지 않은 유언장을 법원에 제출하며 토지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었다. 유언집행자는 ‘간이한 유언검인(common form probate)’78)과 ‘엄격한 유언검인(solemn form probate)’ 중 어느 절차를 따를지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79) 또한 유언검인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토지 소유권 분쟁을 심리하는 법원을 구속하지도 않았다.80) 사안마다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하고, 심지어 유언검인법을 회피하려는 시도도 관행적으로 용인되었다. 그러나 1787년 협정(Ordinance)에서 “유언장이 정당하게 작성될 것을 조건으로 하여” 토지에 관한 유언의 효력을 인정함으로써 유언검인의 사실상 강제를 이루었고,81) 이전 시대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때의 유언장과 유언검인은 토지증서와 토지등기의 관계와 같아서, 유언장이 검인을 거치게 되면 상속재산의 이전이 보다 순조롭게 진행되기에 소유권의 불명확성이 감소된다.82)
UPC는 정식유언검인(formal probate83)) 외에도 약식유언검인(informal probate84)을 규정하고 있어, 간이한 절차와 엄격한 절차를 모두 두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주는 간이한 유언검인을 허용하지 않는다85)고 한다.
미국법에서도 개념적으로는 부동산유증과 동산유증이 구별되고 있지만, UPC는 부동산유증과 동산유증을 구별하지 않고 “devise”로써 단일한 체계로 규정하고 있다. 유증의 종류는 영국에서의 분류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부동산과 동산에 각각에 일반유증과 특정유증이 모두 인정된다. 그리고 양자의 성격을 함께 지닌 지시유증(demonstrative devise)도 인정된다.
무유언상속에서 상속인 자격이나 상속분은 주법에서 정하지만, 대체로 상속재산의 3분의 1은 생존배우자에게 인정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부부의 자녀들에게 부여하는 패턴을 따른다고 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국에서는 배우자의 토지를 일정 비율로 승계하는 제도가 폐지되었지만, 미국에서는 여자인 생존배우자의 다우어(dower, 寡婦權), 남자인 생존배우자의 커티시(curtesy, 鰥夫權), 또는 기타 유사한 방식으로 사망한 배우자의 부동산 또는 동산 취득을 인정함으로써 이 제도의 취지가 유지되고 있다.86) 다만 많은 경우에 ‘거주주택’, ‘은행계좌’, ‘주식 등의 투자재산’에 관해서는 생존배우자의 권리가 부착된 합유권(joint ownership with rights of survivorship)을 가질 것이어서, 주법상의 법정상속분이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평가87)되고 있다.
UPC에는 무유언상속의 상속분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이 있다. UPC §2-102는 배우자에게 일정한 고정 금액을 기본적으로 지급하고, 잔여재산의 일정 비율을 지급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령 ⅰ피상속인에게 자녀와 부모가 없거나 생존배우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만 두고 있는 경우에는 생존배우자가 모든 재산을 받게 되지만, ⅱ 피상속인에게 자녀가 없고 부모만 있는 경우에는, 배우자는 상속재산으로부터 우선 30만불을 받은 후 추가로 잔여재산의 4분의 3을 받게 된다. 또 ⅲ 생존배우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도 있지만, 생존배우자가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낳은 자녀도 있는 경우에는, 먼저 22.5만불을 받고 추가적으로 잔여재산의 2분의 1을 받고, 나머지 2분의 1은 피상속인의 자녀에게 돌아간다. ⅳ 피상속인이 생존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먼저 15만불을 받고 잔여재산의 2분의 1을 받고, 나머지 2분의 1은 피상속인의 자녀가 받게 된다.
영국제도와 비교해보면, 유언상속에서 동산유증과 부동산유증의 구별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또 무유언상속에서도 ‘거주주택’, ‘은행계좌’, ‘주식 등의 투자재산’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형성하는 특정재산에 관한 생존배우자의 권리가 더 큰 의의를 가질 수 있고, 배우자의 상속분 산정에 있어서 상속재산 중 일정금액의 금전 지급이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있어, 배우자상속권 강화의 경향과 맞물려 부동산 상속의 의미는 과거에 비하여 크게 퇴색해가고 있는 점도 공통의 특징으로 확인된다.
Ⅳ. 결어
이상으로 영국과 미국의 상속법상 동산과 부동산의 구별 방식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부동산상속과 동산상속은 전통적으로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이념에 따라 상이한 체계로 전개되어왔으나, 현재 양국의 상속법에서는 각각의 용어상 구분 여부에 관계없이 부동산과 동산이 단일한 체계 안에서 규율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동산과 부동산을 유형화하여 차별적으로 규율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앞서 살펴본 유산배분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사물의 본질상 그 의미가 완전히 퇴색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고, 오히려 장래에 보다 특별한 의미 부여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영미법이 유언상속을 상속의 기본형태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 영미에서도 적극적으로 유언을 남기는 경우는 다수에 이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경우 법령이 정하고 있는 무유언상속의 규정에 따라 상속인과 상속분 및 상속재산의 내용이 정해지는데, 개인의 자유로운 재산처분의 의사를 공정하게 실현시키고자 하는 유언상속의 경우와 달리, 무유언상속에 관한 규정은 각 사회의 가장 보편적이며 이상적인 상속모델로서 제공된 것이라고 해야 한다. 또한 무유언상속법은 각 사회가 지향하는 경제질서의 구축을 위한 상속법적 실현방법으로서의 방향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영국의 경우에는 유형・무형을 불문하고 모든 동산 형태의 유산에 대해서는 피상속인의 배우자에 대한 귀속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법정 유산금의 형태로 일정한 현금을 우선적으로 취득하게 한다. 또한 영국과 미국에 공통적으로 상속재산 중에서도 ‘거주주택, 은행예금, 주식 등의 투자자산’88)이 하나의 의미 있는 카테고리를 형성하면서, 전통적인 동산과 부동산의 구별방식을 대체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지속적인 일상생활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거주주택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부동산의 재산적 가치에 특별한 비중이 두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산구성에 있어서 물질적 요소에 비하여 가치적 요소가 점차 우위를 점해가는 현대적 경향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상속법의 발전과정에서 상속재산의 새로운 유형화 시도도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여겨진다. 현행법처럼 상속재산의 구별 없이 상속분을 일률적으로 대입하여 분할하는 방식은 그 규정방식이 단순하여 일반적인 이해를 얻기는 쉽겠지만, 구체적인 실현의 과정에서 각 재산 고유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채 분할됨으로써, 널리 세심하고도 정치한 공정성의 확신을 얻기 어렵다. 나아가 배우자상속권 강화의 경향 속에서, 영미 양국처럼 생존배우자에게 요구되는 일정 비율 또는 종류의 재산의 우선적 귀속을 인정하고, 또 공동상속인의 유무와 구성에 따라 유동적인 상속재산분할을 인정함으로써 개별 사안에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 상속재산의 새로운 분류작업은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덧붙여, 영미 상속법에서의 또 다른 특징적인 사항은 상속재산분할의 절차까지 포괄하는 유언검인제도와 상속재산관리인 주도에 의한 상속채무 청산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 역사적 기원이 우리 법체계에 완전히 낯선 것이기는 하지만, 법정당연승계의 원칙에 의하면 피상속인과 상속인의 각 고유재산 사이의 경계가 무너질 위험성을 상시 내포하고 있기에, 채무불승계 원칙 또는 한정승인 본칙주의에 입각하여 이와 같은 영미법상의 체계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재산 사이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확인하고 유지할 수 있는 정밀하고도 집약적인 상속재산의 청산절차를 갖추는 작업도 지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