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범칙금 통고처분이란 법원이 자유형 또는 재산형의 형벌을 부과하는 형사소송절차를 대신하여 행정관청이 법규위반자에게 범칙금이라는 금전적 제재를 통고하고 이를 기한 내에 이행할 경우 당해 위반행위에 대한 형사소추를 면하게 하는 절차를 말한다. 이와 같은 범칙금 통고처분은 경범죄처벌법(제7조∼제9조)과 도로교통법(제163조∼제165조), 조세범처벌절차법(제15조), 관세법(제311조∼제317조), 출입국관리법(제102조∼제106조)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형사소추 이전 단계에서 형사소추를 회피할 수 있는 절차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1)
범칙금 통고처분은 1948년 관세법 제정시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후 1951년 조세범처벌절차법과 1956년의 전매범처벌절차법, 1967년 출입국관리법 등에 차례로 채용되었다. 이후 1973년 도로교통법을 개정하면서 종래 즉결심판으로 처리하던 사건 중 경미한 사안들을 대상으로 범칙금 통고처분을 도입하였고, 1980년 경범죄처벌법을 개정하면서 종래 즉결심판의 대상이었던 경범죄 중 비교적 경미한 것들까지 범칙금 통고처분의 대상으로 편입시켰다. 도입과정에서 보듯이 범칙금 통고처분은 처음에는 조세범과 전매범처럼 국가의 재정작용과 관련된 범죄에 대하여 경미사안들을 간단히 처리하고 부당이득을 환수·예방하는 목적으로 도입되었으나 점차 일반적인 질서위반행위에까지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2)
통고처분의 주체는 사건의 성질과 법률에 따라 다르다. 조세범처벌절차법에서는 지방국세청장 또는 세무서장(동법 제15조), 관세법에서는 관세청창이나 세관장(동법 제311조), 출입국관리법에서는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동법 제102조)이 맡고 있고, 도로교통법에서는 경찰서장이나 제주특별자치도지사(동법 제163조), 경범죄처벌법에서는 경찰서장, 해양경찰서장,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철도특별사법경찰대장(동법 제7조)이 통고처분의 주체가 된다. 즉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도로교통법 내지 경범죄처벌법과 관련하여서는 주로 경찰서장에 의하여 통고처분이 부과되고 있다.
구체적인 부분에서 문구의 차이는 있으나 위 법률들은 모두 “범칙금을 납부(통고처분을 이행)한 경우 그 사건에 대하여 다시 처벌받지 아니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갖고 있다. 이를 근거로 판례는 특히 도로교통법과 경범죄처벌법의 범칙금 납부에 확정판결에 준하는 효력이 있음을 거듭하여 확인하고 있고,3) 다수 학자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4)
나아가 최근 대법원은 “통고처분에서 정한 범칙금 납부기간까지는 원칙적으로 경찰서장은 즉결심판을 청구할 수 없고, 검사도 동일한 범칙행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라거나5)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경찰서장은 범칙행위에 대한 형사소추를 위하여 이미 한 통고처분을 임의로 취소할 수 없다.”와 같이6) 범칙자가 통고처분을 이행하지 않거나 통고처분의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절차진행을 저지하거나 되돌릴 수 없다는 취지의 판례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통고처분 이행 내지 범칙금 납부에 확정판결에 준하는 효력을 인정하는 판례의 태도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던 중 위와 같이 절차진행을 저지하거나 되돌릴 수 없다는 판례까지 접하게 되니 판례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지 강한 의문이 생겼고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에 따라 일상생활에서 자주 발생하는 도로교통법과 경범죄처벌법에서의 통고처분에 따른 범칙금 납부를 중심으로 판례의 입장을 검토하고 비판하고자 한다.
Ⅱ. 범칙금 통고처분 개관
도로교통법이나 경범죄처벌법상 범칙금 통고처분은 경찰서장(경찰서장 외에도 도로교통법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경범죄처벌법에서는 해양경찰서장·제주특별자치도지사·철도특별사법경찰대장도 주체가 되나 통상적으로 경찰서장에 의해 부과되므로 이하 ‘경찰서장’이라고 칭한다)이 부과한다.
범칙금의 성질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행정형벌로 보는 견해, 행정질서벌로 보는 견해, 제3의 행정제재수단으로 보는 견해로 나뉜다. 행정관청이 범칙금을 부과하고 위반행위자가 이에 승복하여 범칙금을 납부하면 절차가 종결된다는 점과 비교적 경미한 법익침해행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행정질서벌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다른 한편 형벌에 해당하는 벌금·구류·과료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를 대신하여 특수절차인 범칙금 통고처분을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형벌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도 있으며 행적목적이나 사회목적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행정법규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의무이행확보수단으로 행정형벌이나 행정질서벌과는 다른 제3의 제재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7)8)
형벌이 형사소추와 재판절차를 통해 판결이 확정되고 부과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범칙금의 성격을 무엇으로 파악하든 전형적인 형벌과는 다르다고 하겠다.
도로교통법이나 경범죄처벌법상 통고처분의 주체는 경찰서장(경찰서장 외에도 도로교통법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경범죄처벌법에서는 해양경찰서장·제주특별자치도지사·철도특별사법경찰대장도 주체가 되나 통상적으로 경찰서장에 의해 부과되므로 이하 ‘경찰서장’이라고 칭한다)이다.
도로교통법은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할 범죄군[[신호위반·통행금지위반·속도위반 등 운전자 등, 동법 제156조), (신호위반·통행금지위반 등 보행자 등, 동법 제157조)]에 대하여 범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적발된 범칙자에 대하여 경찰서장이 범칙금을 납부할 것을 통고하면, 통고서를 받은 자가 납부기한(10일, 천재지변 발생시 사유소멸시로부터 5일 이내) 내 범칙금을 납부하거나 납부기한이 지나더라도 납부기간이 끝난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20퍼센트의 가산금과 함께 범칙금을 납부하게 되면 “범칙행위에 대해 다시 벌 받지 아니한다(도로교통법 제164조).” 이 기간을 경과한 경우 경찰서장은 범칙자에 대하여 즉결심판을 청구하는데, 이때에도 즉결심판이 청구되기 전까지 혹은 즉결심판이 청구되었더라도 선고 전까지 50퍼센트의 가산금과 함께 범칙금을 납부한다면 즉결심판을 청구할 수 없거나 즉결심판 청구를 취소해야 하며, 범칙자는 그 범칙행위에 대해 다시 벌 받지 아니한다(도로교통법 제165조).
경범죄처벌법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할 범죄군(빈집침입·노상방뇨·불안감조성·음주소란·인근소란 등, 동법 제3조 제1항)과 2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할 범죄군(출판물 부당게재·거짓광고·업무방해·암표매매, 동법 제3조 제2항)을 범칙행위로 규정한 다음, 해당 범칙자에 대하여 경찰서장 등이 범칙금을 납부할 것을 통고할 수 있도록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 범칙금 납부기한 내 납부하거나 납부기한이 지나더라도 가산금을 합산한 납부, 즉결심판 청구 전 또는 청구 후 선고 전까지 가산금과 합산한 납부로써 그 범칙행위에 대해 다시 처벌받지 아니한다는 점과 가산율은 도로교통법과 동일하다(경범죄처벌법 제8조∼제9조).
따라서 범칙자는 경찰서장에 의한 범칙금 통고처분이 내려지면 ① 납부기한 내에 신속히 범칙금을 납부하거나, ② 기한 내 납부하지 못할 경우 납부기한일로부터 20일까지는 20퍼센트의 가산금을 합산하여 납부할 수도 있고, ③ 그 기한을 넘기더라도 즉결심판이 청구되기 전까지는 50퍼센트의 가산금을 합산하여 납부하거나, ④ 이마저도 도과하여 실제로 즉결심판이 청구되더라도 즉결심판이 선고되기 전까지 동일한 가산금(50퍼센트)을 합산하여 납부함으로써 그 절차를 종료시킬 수 있다.
즉, 일단 범칙금이 부과되기만 하면 그 절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제공함으로써 범칙자로 하여금 향후에 있을지도 모를 형사소추와 형사처벌의 위험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두텁게 보장하고 있다.
범칙금의 액수는 개별 사안마다 다르다. 도로교통법의 대표적인 범칙행위에 해당하는 운전자의 속도위반을 살펴보자. 일반도로에서 제한속도를 시속 60km 초과한 경우 운전차량이 승합자동차등9)이라면 13만원, 승용자동차등10)이라면 12만원, 이륜자동차등11)이라면 8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제한속도 시속 20km 이하 초과한 때에는 승합자동차등·승용자동차등은 3만원, 이륜자동차등은 2만원이 부과된다. 속도위반한 장소가 일반도로가 아니라 어린이보호구역 또는 노인장애인보호구역이라면 조금 더 높은 금액(16만원에서 4만원)이 부과된다.
그 외 운전자의 신호위반, 보행자의 무단횡단 등 다양한 범칙행위가 규정되어 있어 도로교통법상 범칙금은 범칙행위의 태양과 위반정도, 범칙대상자에 따라 1만원에서 16만원까지 책정되어 있다.12)
다음으로 경범죄처벌법을 보자. 대표적인 범칙행위인 음주소란(동법 제3조 제1항 제20호)은 범칙금 5만원, 인근소란(동법 제3조 제1항 제21호)은 3만원, 업무방해(동법 제3조 제2항 제3호)는 16만원으로 범칙행위의 태양과 경중에 따라 범칙금 액수는 2만원에서 16만원까지 분포되어 있다.
이에 따라 범칙자가 범칙행위를 인정하는 경우에는 비교적 부담 없는 액수의 범칙금을 납부함으로써 형사소추와 처벌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통고처분을 받은 자가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을 때는 즉결심판절차를 통하여 다툴 수 있다.
범칙자는 범칙금 납부통고서 받기를 거부하거나 납부기한 내 범칙금을 납부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통고처분에 불복할 수 있고, 이 경우 경찰서장에 의해 즉결심판 절차에 회부된다(도로교통법 제163조 제1항 제3호, 제165조 제1항, 경범죄처벌법 제7조 제1항 제1호, 제9조 제1항). 즉결심판은 지방법원, 지원 또는 시·군법원의 판사에 의해 진행되는 재판절차로서 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 질 수 있는데, 범칙자는 피고인으로서 통고처분의 위법을 다툴 수 있다(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 제2조, 제9조). 즉결심판을 담당하는 판사는 사건이 즉결심판을 할 수 없거나 즉결심판절차에 의해 심판함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청구를 기각하고(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 제5조 제1항) 죄가 인정될 때는 유죄를 선고한다(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 제11조 제1항). 피고인은 즉결심판을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고(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 제14조 제1항), 청구 기각으로 경찰서장이 사건을 관할 검찰청으로 송치함에 따라(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 제5조 제2항) 검사에 의해 공소제기될 수도 있으므로13) 결국은 공판절차에서 통고처분을 다툴 수 있다.
동일한 위반행위에 대하여 통고처분이 아닌 도로교통법위반죄로 처벌받게 되면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형이, 경범죄처벌법위반죄로 처벌받게 되면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형 내지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형이 처해질 것이다. 액수로만 비교하자면 통고처분의 범칙금 범위가 1만원∼16만원인데 비하여 벌금형 범위는 5만원∼20만원이므로 확실히 범칙금이 더 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액수만으로 단순 비교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경범죄처벌법위반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행위들은 형법상 폭행, 협박, 상해, 공갈,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죄 등이 성립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어 훨씬 중한 형이 적용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 거기에 수사기관에 출석하여 조사받거나 법정에 출석해야 하는 번거로움, 약식명령이나 공소장이 주거지나 직장으로 송달되는 두려움과 불편함, 무엇보다 전과자가 되는 위험까지 감안한다면 범칙금 제도는 일반 형사절차 대비 신속하고 편리하며 경미한 절차임이 분명하다.
통고처분에 불복하여 즉결심판이 진행되더라도 즉결심판에 불복하는 정식재판에 대해서는 약식명령에 불복하는 정식재판에 관한 규정이 다수 준용되므로(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 제14조 제4항, 19조), 피고인만이 정식재판을 청구하였다면 형종상향 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어 즉결심판의 형보다 중한 종류의 형을 선고하지 못한다는 제한도 적용된다.14)
그러나 즉결심판 절차에서 정해진 기일에 출석하고 적극적으로 다투어야 하는 점, 피고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매우 낮은 점,15)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아니하면 결국 형벌을 선고받은 전과자가 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상당수의 국민들은 범칙금을 납부를 선택하고 있다.16)
앞서 보았듯이 범칙금의 최대금액이 16만원에 불과한데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군은 5만원 정도에 그치기에 부담 없는 금액으로 형벌을 피할 수 있으므로 다소 억울함이 있더라도 굳이 불복절차로 진입할 요인은 매우 낮다고 하겠다.
Ⅲ. 공소사실의 동일성 개념과 범칙금 통고처분과의 관계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1호는 면소판결의 사유로서 ‘확정판결이 있은 때’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의 확정판결에 실체재판인 유죄나 무죄판결, 면소판결이 확정된 경우는 물론, 확정된 약식명령이 포함된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17)
판례는 “도로교통법...에 의하여 범칙금 납부통고서를 받은 사람이 그 범칙금을 납부한 경우 그 범칙행위에 대하여 다시 벌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는 범칙금의 납부에 확정재판의 효력에 준하는 효력을 인정하는 취지로 해석할 것이다.”18) 라거나 “경범죄처벌법위반죄에 대한 범칙금납부로 인한 확정재판에 준하는 효력이 이 사건 상해의 공소사실에도 미친다고 봄이 상당하다 할 것이므로, 같은 취지에서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상해의 공소사실에 관하여 이미 확정판결이 있었다는 이유로 면소의 판결을 선고한 원심판결은 정당하고, 거기에 면소판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19)라고 하여 통고처분에 따른 범칙금 납부도 확정판결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판례는 나아가 “범칙금의 납부에 확정판결에 준하는 효력이 인정됨에 따라 다시 벌 받지 아니하게 되는 행위사실은 범칙금 통고의 이유에 기재된 당해 범칙행위 자체 및 그 범칙행위와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칙행위에 한정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20)라며 범칙금 납부에 공소사실의 동일성 개념도 적용하고 있다.
확정판결이 있음에도 동일사건에 대하여 공소가 제기되면 법원은 본안 심리에 들어가지 않고 면소판결로써 절차를 종식시키기에 면소판결의 전제가 되는 확정판결은 ‘유무죄의 실체재판과 면소판결’로 한정된다. 판결의 확정에 따른 기판력은 동일사건에 대해 다시 심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일사부재리 효력으로 나타나고 기판력이 인정되는 동일사건의 범위는 공소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죄사실 전체에 미친다.
통설에 따르면 공소사실의 동일성은 공소제기의 효력과 기판력이 미치는 범위의 기준이 되고 공소장변경의 한계가 되므로 기판력의 객관적 범위는 공소장변경이 허용되는 범위와 동일하다.21) 심판의 대상에 대한 통설인 이원설은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을 현실적 심판대상으로, 공소사실과 동일성이 인정되는 사실을 잠재적 심판대상으로 보면서 공소제기의 효력범위와 공소장변경의 한계, 기판력의 범위를 동일하게 설정하고 있다. 또한 공소사실의 동일성에 대해 통설은 현재의 공소사실과 기초가 되는 사회적 사실관계에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기본적인 점에서 동일하면 족하다는 기본적 사실동일설을 취하고 있고, 기본적 사실동일설을 취하면서도 규범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판례 또한 기본적 사실동일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법원은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실을 심판하지만 공소장변경을 통하여 그와 동일성이 인정되는 사실까지 심판대상을 확장할 수 있으므로 공소제기의 효력이나 기판력의 범위도 동일한 기준에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면소판결의 대상이 되는 ‘확정판결’은 검사의 공소제기와 법관의 재판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어야 하고, 그 재판은 공소장변경이 가능한 공판절차를 의미한다고 봐야 타당하고 적절하다.22)
그러나 범칙금 통고처분은 형사소추와 재판이 진행되는 형사절차와는 법적 성질과 취지가 다르고 구현되는 방식도 상이하다. 대법원 역시 “통고처분제도의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경범죄처벌법상 범칙금제도는 범칙행위에 대하여 형사절차에 앞서 경찰서장의 통고처분에 따라 범칙금을 납부할 경우 이를 납부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기소를 하지 않는 처벌의 특례를 마련해 둔 것으로 법원의 재판절차와는 제도적 취지와 법적 성질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23)
이러한 점에서 공소사실의 동일성 개념을 범칙금 납부와 형사절차 사이에 적용하는 판례의 입장은 문제가 있고, 그 시발점이 된 범칙금 납부에 확정판결에 준하는 효력을 인정하는 것에서 근원적인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Ⅳ. 범칙금 납부를 확정판결에 준하는 것으로 볼 때의 문제점
경찰서장이 통고처분의 주체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형사소추와는 다른 특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고처분을 이행한데 대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과를 받음에도 그 판단에 법관이 개입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면소판결의 사유가 되는 확정판결의 예시로 등장하는 ‘정식재판에서의 유무죄 판결·면소판결·약식명령·즉결심판이 확정된 경우’와 통고처분에 따른 범칙금 납부를 비교할 때 전자는 모두 법관이 판단주체가 되나 후자는 법관은 물론 준사법기관인 검사조차 개입되지 않는 영역이다. 사법기관이 개입되지 못하는데 사법기관의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형사소송의 동적·발전적 성격은 공소장변경제도를 통하여 실현된다. 예컨대 상해죄로 공소제기되었다 하더라도 재판 계속 중 피해자가 해당 상해행위로 사망하게 된다면 검사의 신청에 따른 공소장변경으로 상해치사죄에 대한 유무죄 판단이 가능하고, 이는 최초 공소제기된 사안과 현실적·최종적으로 발생한 사안 사이의 간극을 좁혀줌으로써 법감정에 충실하고 실체에 부합하는 판단이 가능하게 한다.
또한 발생한 사실에는 변동이 없으나 애초 법적용을 잘못한 경우에도 공소사실의 동일성 범주 내라면 적용법조를 변경하여 죄명이나 처벌 대상을 변경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결과를 도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통고처분은 공소장변경과 같은 제도가 없기 때문에 부과한 처분과 실제로 발생한 범칙행위에 모순이 있거나 최종적으로 발생한 범칙행위에 변화가 있더라도 이를 반영할 방법이 없다.
심각하고 중대한 죄를 범하였음에도 범칙금을 납부하였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과 법감정과는 굉장한 괴리가 있다.
비록 근래 대법원이 “범칙금 통고를 받고 납부한 경우 다시 벌받지 아니하게 되는 행위는 범칙금 통고의 이유에 기재된 당해 범칙행위 자체 및 그 범칙행위와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칙행위에 한정된다.”며 동일성 범주를 좁게 해석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으나,24) 이러한 시도만으로 행위와 처벌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불균형이 방지된다고 볼 수 없다.
피고인이 음주운전단속결과통보서 운전자확인란에 동생 이름을 기재하고 동생의 서명을 함으로써 사전자기록등위작·동행사죄로 공소제기되었는데, 실체를 들여다보니 같은 일시장소에서 인적사항을 묻는 경찰에게 동생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말하고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동생 이름을 기재하고 서명을 하였다는 이유로 이미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30호의 거짓 인적사항 사용행위로 8만원의 범칙금통고처분을 받아 납부한 사례가 있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사회적 사실관계와 규범적 요소를 아울러 고려하더라도 이 사건 범칙행위와 이 사건 쟁점 공소사실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25) 해당 피고인은 거짓 인적사항 사용행위를 한 다음 연이어 사전자기록등위작·동행사죄를 범하였지만 거짓 인적사항 사용행위에 대해 범칙금을 납부하였고, 그 범칙행위와 사전자기록등위작·동행사의 공소사실은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여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므로 이미 확정판결이 있었다고 할 수 있어 면소판결의 대상이 된다고 본 것이다. 해당 판례는 공소사실의 동일성 판단 요소에 규범적 요소를 고려함으로써 그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하려는 시각을 견지하였음에도 위와 같은 결론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 타인의 서명을 위조하고 행사하면 형법 위반이 되어 형사소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대법원이 ‘음주운전으로 단속된 피고인이 동생의 이름을 대며 조사를 받다가 경찰관으로부터 음주운전 단속내역이 입력된 휴대용정보단말기에 전자 서명할 것을 요구받자, 동생의 이름 옆에 서명을 하고 경찰전산망에 전송하게 하여 사서명위조 및 위조사서명행사로 기소된 사례’에서 유죄를 취지로 상고를 기각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26)
범칙행위에 이어 형법위반까지 범하였음에도 범칙금 통고처분을 이행하였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의 영역에 진입하지 못하게 한다면 형법위반만 하고 형사처벌받는 것과 비교할 때 행위와 처벌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한 것이고 국민의 법감정에도 반한다.
특히 경범죄처벌법에 규정된 행위들 중에는 형법에 규정된 범죄와 그 보호법익 및 행위태양의 기술 등이 유사한 구성요건들이 있다. 어떤 조사자(사법경찰관)를 만났느냐에 따라 통고처분에 그치느냐, 형사소추되느냐가 나뉘는 것이라면 그 우연성에 형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차이가 합리적인 근거를 갖지 못한다면 형사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을 막을 수 없다.27)
대법원은 최근 통고처분에 따른 범칙금 납부 및 즉결심판 절차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여러 건의 판례를 내놓고 있다.
대법원 2016. 1. 28. 선고 2015도5492 판결
<사실관계 및 하급심의 판단>
피고인이 신호를 위반하여 차량을 운전함으로써 도로교통법 제156조 제1호, 제5조를 위반하자 경찰서장은 동법 제162조에 따라 범칙금 통고처분을 하였는데 피고인이 1차 납부기한 전에 이의신청을 하자 경찰서장은 2차 납부기한 전에 즉결심판을 청구하였다. 법원이 즉결심판청구를 기각하자 경찰서장은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였고 검사의 약식명령 청구로 법원에서 벌금 10만원의 약식명령이 발부되었으나 피고인은 이에 불복하여 정식재판을 청구하였다. 제1심은 벌금 10만원을 선고하며 유죄판결을 선고하였고, 항소심은 피고인이 이의신청한 것은 범칙금 납부통고서 받기를 거부한 경우와 동일하므로 2차 납부기한이 경과되지 않은 상태에서 즉결심판을 청구하였다고 하더라도 위법하다고 할 수 없고, 즉결심판청구 기각으로 검사가 수사 후 제기한 것으로서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규정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항소심의 판단에 위법이 없다며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7도13409 판결
<사실관계 및 하급심의 판단>
피고인이 습득한 타인의 신용카드를 사용한 행위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가 경찰서장으로부터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39호 무전취식 행위를 이유로 범칙금 납부통고서(1차 납부기한까지는 5만원, 2차 납부기한까지는 가산금 포함 6만원 납부)를 받았는데, 경찰서장이 1차 납부기한 만료 전에 사기 혐의에 대해 통고처분을 이유로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고, 검사는 2차 납부기한 만료 전에 사기의 점으로 공소를 제기하였다. 한편 피고인은 범칙금을 납부하지 않았고, 경찰서장은 즉결심판을 청구하지 않았다.
제 1심은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은 검사의 공소는 경범죄처벌법 제9조 제1항 제2호를 위반한 것으로서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되어 무효인 때에 해당한다며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에 따라 공소를 기각하여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하였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경범죄 처벌법상 범칙금제도는 범칙행위에 대하여 형사절차에 앞서 경찰서장의 통고처분에 따라 범칙금을 납부할 경우 이를 납부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기소를 하지 않는 처벌의 특례를 마련해 둔 것으로 법원의 재판절차와는 제도적 취지와 법적 성질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범칙자가 통고처분을 불이행하였더라도 기소독점주의의 예외를 인정하여 경찰서장의 즉결심판 청구를 통하여 공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건을 간이하고 신속·적정하게 처리함으로써 소송경제를 도모하되, 즉결심판 선고 전까지 범칙금을 납부하면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범칙자에 대하여 형사소추와 형사처벌을 면제받을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경찰서장이 범칙행위에 대하여 통고처분을 한 이상, 범칙자의 위와 같은 절차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하여 통고처분에서 정한 범칙금 납부기간까지는 원칙적으로 경찰서장은 즉결심판을 청구할 수 없고, 검사도 동일한 범칙행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대법원 2020. 7. 29. 선고 2020도4738 판결
<사실관계 및 하급심의 판단>
피고인이 의류판매 매장에서 술에 취하여 소란을 피운 행위에 대하여 경찰서장으로부터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20호 음주소란 등으로 범칙금납부통고처분을 받고도 범칙금을 납부하지 않았고 경찰서장의 즉결심판 청구도 없는 상태에서 검사가 피고인을 업무방해의 점으로 공소제기하였다. 제1심은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은 업무방해의 점에 대한 공소는 경범죄 처벌법 제9조 제1항 제2호를 위반한 것으로서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되어 무효인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에 따라 공소를 기각하여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하였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경찰서장이 범칙행위에 대하여 통고처분을 한 이상, 범칙자의 위와 같은 절차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하여 통고처분에서 정한 범칙금 납부기간까지는 원칙적으로 경찰서장은 즉결심판을 청구할 수 없고, 검사도 동일한 범칙행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범칙자가 범칙금 납부기간이 지나도록 범칙금을 납부하지 아니하였다면 경찰서장이 즉결심판을 청구하여야 하고, 검사는 동일한 범칙행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상고를 기각하였다.
대법원 2021. 4. 1. 선고 2020도15194 판결
<사실관계 및 하급심의 판단>
피고인이 2020. 2. 23. 05:30경 음식점에서 술과 음식을 제공받고도 대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자 경찰서장은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1항 제39호 무전취식으로 범칙금납부통고처분을 하였다. 그런데 피고인은 같은 날 11:00경 다른 음식점에서 무전취식 범행을 저질렀고 경찰은 피고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여 조사하였다. 담당 경찰관은 피고인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위 통고처분 내역을 비롯한 피고인의 동종전력 등을 알게 되었고, 2020. 2. 24. 경찰서장을 수신자로 하여 “통고처분을 취소하고 상습사기죄로 형사입건코자 한다.”라는 내용의 수사보고서를 작성하고, 통고처분한 범행에 대해서도 상습사기죄로 의율하여 수사한 뒤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였다. 검사는 이 사건 범죄사실 전부에 대해 상습사기죄로 공소를 제기(통고처분한 부분은 제1심 판시 범죄사실 제1항으로 공소제기)하였다. 제1심과 항소심은 상습사기죄를 모두 유죄로 판단하였다.28)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경찰서장이 범칙행위에 대하여 통고처분을 한 이상, 범칙자의 위와 같은 절차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하여 통고처분에서 정한 범칙금 납부기간까지는 원칙적으로 경찰서장은 즉결심판을 청구할 수 없고, 검사도 동일한 범칙행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또한 범칙자가 범칙금 납부기간이 지나도록 범칙금을 납부하지 아니하였다면 경찰서장이 즉결심판을 청구하여야 하고, 검사는 동일한 범칙행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나아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경찰서장은 범칙행위에 대한 형사소추를 위하여 이미 한 통고처분을 임의로 취소할 수 없다.”며 “제1심 판시 범죄사실 제1항 기재 부분은 이미 통고처분이 이루어진 범칙행위에 대한 것으로서 이에 대한 공소제기는 부적법하다. 담당 경찰관이 위 제1항 기재 범행을 형사입건 하기 위해 통고처분을 취소한다는 취지의 수사보고서를 작성하였으나, 이와 같은 사정만으로 통고처분에 대한 유효한 취소처분이 이루어졌다고 보기에 부족하고, 설령 취소처분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과 같이 납부기간 내에) 통고처분을 임의로 취소하고 동일한 범칙행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항소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하였다.29)
대법원 2022. 4. 14. 선고 2021도15467 판결
<사실관계 및 하급심의 판단>
피고인이 부득이한 사유 없이 갓길로 차량을 통행함으로써 도로교통법 제156조 제3호, 제60조 제1항을 위반하자 경찰서장은 동법 제162조에 따라 범칙금 통고처분을 하였는데 피고인이 1차 납부기한에이의를 제기하자 경찰서장은 2차 납부기한 전에 즉결심판을 청구하였다. 피고인은 경찰서장이 즉결심판청구를 함으로써 형사적 제재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전과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절차적 기회가 박탈되었다며 경찰서장의 즉결심판청구는 중대한 적법절차 위반이므로 즉결심판 청구 이후의 이 사건 공소제기 역시 법률의 규정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주장하였다.30) 제1심은 벌금 20만원의 유죄판결을 선고하였고, 항소심은 “도로교통법 제165조 제1항 제1호, 제163조 제1항 제3호에 따르면, 경찰서장은 범칙금 납부통고서 받기를 거부한 사람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즉결심판을 청구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점, 통고처분에 대하여 이의제기를 한 사람은 납부통지서에 명시된 위반행위 및 위반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범칙금을 납부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하게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도로교통법상 통고처분에 대하여 이의제기를 한 경우에는 범칙금 납부통고서 받기를 거부한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범칙금 납부기한이 끝나기 전이라도 경찰서장은 이의제기 후 지체없이 즉결심판을 청구하여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경찰서장의 즉결심판 청구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경찰서장은 범칙금 납부기간 전까지 임의로 통고처분을 취소하거나 즉결심판을 청구할 수 없고, 검사도 위 납부기간 전후를 불문하고 경찰서장의 즉결심판청구에 따른 절차의 진행 없이는 동일한 범칙행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일 뿐 통고처분에 대한 범칙자의 이의신청이 있음에도 경찰서장이 위 납부기간 전까지 즉결심판을 청구할 수 없다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상고를 기각하였다.
이와 같은 판례의 태도를 종합하면 “① 범칙금 납부기간까지는 경찰서장은 즉결심판을 청구할 수 없고, 검사도 동일한 범칙행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② 범칙자가 범칙금 납부기간이 지나도록 범칙금을 납부하지 아니하였다면 경찰서장은 즉결심판을 청구해야 하는 것이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도 없다. ③ 경찰서장은 통고처분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경우에도 이미 한 통고처분을 임의로 취소할 수도 없다.”로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일단 통고처분이 있은 이상 이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절차에 따라 즉결심판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현행 도로교통법이나 경범죄처벌법, 즉결심판에관한절차법 하에서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범칙금 납부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을 모두 종합할 때는 결론적으로 찬성하기 어렵다.
범칙금 납부에 대하여 형사사건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주기 위해서는 적어도 확정 전에 수사기관의 태만, 부지,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하지 않았었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한다. 즉, 범칙금을 부과하고, 동일하거나 포괄일죄 관계에 있는 범죄사실이 적발되어 단순 범칙금 부과로 끝내서는 안 될 것 같은 사안이라면 범칙금 부과를 취소하고 형사수사절차에 병합시켜 일거에 재판받을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야 한다.
형사소추와 형사처벌 대신 간이하고 신속하게 처리함으로써 소송경제를 도모하려는 범칙금 통고처분의 기본 취지를 고려한다면 신중하고 깊이 있는 판단과는 거리가 멀다. 단순 범칙행위가 아니라 형사소추와 형사처벌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판단을 위해서는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신속함이 필수적인 범칙금통고처분을 이행하였다는 이유로 확정판결과 동일한 일사부재리효를 인정하면서 장래에 있을지도 모를 형사소추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며 앞뒤가 맞지 않다. 즉 신속하게 처리할 것을 요구하여 신속히 처리하였더니 공소사실의 동일성 범주에 있는 부분까지 형사소추를 못하게 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다 수사기관 스스로 오류를 발견하여 정식 형사소추절차로 진행하고자 하여도 그 길을 원천 차단해 놓고 왜 처음부터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냐고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위 판결의 근원적인 문제는 범칙금 납부에 확정판결에 준하는 효력을 인정하고, 공소사실의 동일성 개념을 적용시킨 데서 찾을 수 있다.
Ⅴ. 맺는 말
대법원이 “경범죄 처벌법상 범칙금제도는 범칙행위에 대하여 형사절차에 앞서 경찰서장의 통고처분에 따라 범칙금을 납부할 경우 이를 납부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기소를 하지 않는 처벌의 특례를 마련해 둔 것으로 법원의 재판절차와는 제도적 취지와 법적 성질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음은 앞서 보았다.31) 제도적 취지와 법적 성질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면서도 통고처분이행에 법원의 재판이 확정된 것과 같은 효과를 인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닌가?
“범칙금을 낸 사람은 범칙행위에 대하여 다시 벌 받지 아니한다(도로교통법 제164조 제3항).”, “범칙금을 납부한 사람은 그 범칙행위에 대하여 다시 처벌받지 아니한다(경범죄처벌법 제8조 제3항).”는 규정은 “범칙금을 납부하면 그 행위에 대해 다시 범칙금 통고처분을 할 수 없다.”로 이해하면 충분하다.
즉 범칙금을 납부하여 통고처분을 이행하더라도 형사소송절차와는 무관하므로 형사소추와 형사처벌을 함에 장애가 되지 않아야 한다. 위 규정을 해석하면서 굳이 확정판결의 기판력 개념을 가져오고, 거기에 공판절차에서나 어울릴 공소사실의 동일성 개념까지 욱여넣다보니 중한 범죄에 부합되지 않는 너무나 경미한 금액으로 처벌을 갈음하고, 이후로도 형사처벌로 가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며, 공판절차로 가더라도 형종을 넘어서는 처벌이 불가하고, 범칙금 통고처분의 오류를 발견하더라도 경찰서장이 스스로 시정할 수 있는 절차는 전무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일반적인 공판절차에서 현실적 심판대상과 잠재적 심판대상을 아우르는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여기서도 인정하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타당하지도 않다.
이런 이유로 범칙금 납부로 인하여 다시 처벌받지 않는 효력은 범칙금통고의 이유에 기재된 당해 범칙행위 자체 및 그 범칙행위와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칙행위에 한정된다고 하거나,32) 범칙금 납부시 당해 행위에만 그 일사부재리의 효력이 미치고 그와 밀접한 관계에 있더라도 효력이 미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제도의 특수성과 일반인의 법감정을 고려한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하거나,33) 범칙행위와 같은 일시, 장소에서 이루어진 행위라 하더라도 범칙행위의 동일성을 벗어난 형사범죄행위에 대하여는 범칙금의 납부에 따라 확정판결의 효력에 준하는 효력이 미치지 아니하고 범칙금을 납부하였다 하더라도 범죄행위의 관점에서 다시 형사 소추할 수 있으므로 이중처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34)가 지속적으로 제시되는 것에 대법원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대법원이 “같은 일시, 장소에서 이루어진 안전운전의무 위반의 범칙행위와 중앙선을 침범한 과실로 사고를 일으켜 피해자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죄의 범죄행위사실은 시간, 장소에 있어서는 근접하여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범죄의 내용이나 행위의 태양, 피해법익 및 죄질에 있어 현격한 차이가 있어 동일성이 인정되지 아니하고 별개의 행위라고 할 것이어서 피고인이 안전운전의 의무를 불이행하였음을 이유로 통고처분에 따른 범칙금을 납부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을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위반죄로 처벌한다고 하여 도로교통법 제119조 제3항에서 말하는 이중처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단한 것35)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인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범칙금 통고처분을 형사절차와 결합시켜 사건에 따라 공소사실의 동일성 범위를 넓히거나 좁히는 수고를 하는 대신 처음부터 범칙금 통고처분을 형사절차와 연계시키지 말고, 도로교통법과 경범죄처벌법의 규정은 “범칙금을 납부하면 그 행위에 대해 다시 범칙금 통고처분을 할 수 없다.”로 이해하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