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 문제의 제기
우리 옛말 중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를 노동관계에 대비시켜 보면 “단체교섭은 적극적으로 활성화하되, 노동분쟁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우리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라 함)도 이를 적절히 반영하여 노조법 제30조(교섭 등의 원칙)에서 노사 당사자의 신의·성실한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체결을, 노조법 제49조(국가 등의 책무), 제50조(신속한 처리) 등에서 노사 당사자는 물론 국가(노동위원회 포함) 및 지방자치단체가 노동분쟁을 자주적이고 신속·공정하게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위원회법은 노조법과 근로기준법 등이 상정하고 있는 갖가지 노동분쟁의 신속·공정한 처리를 노동위원회라는 전문행정기관에 맡기고 있다.
남북한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있던 1953년의 엄중한 상황 하에서 체불임금과 가혹한 노동착취에 저항하는 조선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외침에 부응하여 만들어진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및 노동위원회법이 대한민국 노동관계 입법의 시초이지만, 노동위원회는 노동쟁의 조정과 부당노동행위 구제심판(1963년 도입) 등 나름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고 1989년 부당해고등 구제심판을 담당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폭발적인 기능 확장을 거듭해 왔다. 70여 년의 세월 동안 노동위원회가 맡았던 역할과 그 성과를 칭찬·격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1) 그러나 행정기관이라는 태생적 한계 내지 전문성 부족 등의 운영상 문제점에 대한 비판 특히, 부당해고등 사건에 대한 심판기능과 관련하여 ‘유례가 없는 입법례’라든지 ‘권리분쟁은 사법(司法)의 영역’이라는 논거 하에서 노동법원을 도입하여 노동위원회의 심판기능 일체를 이관해야 한다는 이른바 “대체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법원 도입론”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초반에 한국노총의 주장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5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가운데 적지 않은 노동관계법·제도가 도입되기도 하고 또 소멸하기도 하였지만, 노동법원은 현재 시점까지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못하다. 왜 그럴까? 도대체 무슨 연고로 노동법원 도입론만큼은 우리 산업사회에서 쉽사리 결과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주위를 살펴보면 노동법원에 관한, 그리고 그에 파생된, 노동위원회를 포함하여 노동분쟁 해결시스템과 관련된 논의와 학문적 저술 내지 다양한 주장·의견을 담은 글들은 결코 적지 않다. 우리 산업사회에서 이와 관련한 논점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지혜를 모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매우 다양한 시각에서의 문제점이 제기되었고 그에 따른 다각적인 해결방안 내지 관련 법·제도의 개선방안이 제시되었지만, 아직도 가시적 성과를 낳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세기의 세월과 함께 그 정도의 논의가 진행되고 수많은 전문가의 지혜가 모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논란이 종식되지 못한 근원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깊이 있게 성찰하지 못한 좀 다른 쟁점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노동관계법 영역에서 근로기준법 및 노조법 등 실체법은 여러 가지가 존재하지만, 노동분쟁의 해결을 위한 처리 절차·과정을 총체적으로 규율하는 절차법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노동분쟁 처리절차를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인 분쟁해결기구의 구성 및 운영방식을 세부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가능하거나 최소한 용이한 것일까?
둘째, 우리나라 노동관계법의 최초 형성과정에서부터 노동분쟁 처리 방식이 “행정적 접근법”을 중심으로 형성·운영된 것은 노동분쟁의 특수성을 반영한 결과이지 않을까? 그리고 산업화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이를 더욱 발전적으로 확대시킨 적지 않은 시간적 궤적(軌跡)을 무시한 채, 그 담당 제도·기구를 일거에 바꿈으로써 구조를 본질적으로 수정·변용하는 것이 지나치고 무리한 희망사항은 아닐까?
셋째, 종래 노동위원회의 본질적 한계 내지 문제점으로서 독립성, 전문성 및 신속성이 지적되어 왔지만, 노동법원의 도입으로 이러한 문제점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오히려 노동위원회의 장점으로 인정되고 있는 간이·신속성 내지 비용에서의 저렴함을 통한 노사 당사자들의 접근 용이성2)조차 사장(死藏)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넷째, 노동위원회의 특징으로 언급되는 “준(準)사법적 기능”의 본질은 무엇일까? 특히, 부당해고등 사건에 관한 노동위원회의 “심판기능”은 법원이 담당하는 것이 마땅한 “권리분쟁 사항”이라고 명확하게 구분하고, 노동분쟁의 영역에서 사법작용과 행정처분의 교착(交錯)을 부정하는 접근법이 자연스러운 자세인가?
아래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먼저, 노동법원 도입논의를 시계열적·연혁적으로 구분·분석함으로써 시간적 흐름에 따라 제기되었던 갖가지 주장들이 어떠한 특징 내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규명·평가하고자 한다. 또한 노동위원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노동법원을 도입하기 위한 구체적·세부적인 여러 가지 방안·주장에 대하여, 위에서 제기한 4가지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재검토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이고 현실정합적인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Ⅱ. 노동법원 도입론의 연혁적 고찰
노동법원 도입에 관한 논의는 일반적으로 한국노총이 1971년부터 그 도입을 주장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이때를 기점으로 하여 1990년대까지를 노동법원 도입론의 “탄생기”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본다. 한편 2000년대 들어 사법개혁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노동법원 도입에 관한 보다 정교한 분석 및 구체적 방향이 제시되기 시작하였고, 이와 동시에 노동위원회의 역할 재조정을 위한 대안 제시가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 시기를 노동법원 도입논의의 “성장기”로 불러야 할 것이다. 한편 2019년에 들어 법원 내부 특히, 현직 판사들을 중심으로 전문법원으로서의 노동법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공유가 확산되면서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노동법원 도입논의가 전개되었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시기에는 종래 노동법원 도입논의에서 당연하게 생각되던 사항들에 대해서도 보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특징이 발견되고 있으므로, 이때부터를 이전 시기와 구분하여 “성숙기”로 분류하는 접근법이 보다 타당하리라 본다.
우리 산업사회에서 노동법원 도입 주장이 최초로 제기된 것은 1971년으로 확인된다. 즉,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노동문제를 전담처리할 재판기관으로 노동법원 설치를 정부에 건의하였는데, 이에 따라 노동위원회는 순수한 행정자문기구로 존치시키도록 제안한 바 있다. 설치 필요성의 근거로는 ① 당시 노동위원회의 판정에 집행력이 없으며, ② 공익대표의 수가 5명으로 각각 3명인 노사대표의 수와 맞먹어 관료화되기 쉽다는 점 등이 제기되었다.3)
이에 대응하여 당시 정부는 1974년 초에 체불임금 등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노동법원 설치를 구상하였다가, 고등법원 및 지방법원에 노동전담부를 설치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논의는 1984년 노동위원회가 의결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행정관청에 통보하는 기능을 신설하는 노동위원회법 개정을 거쳐, 1989년에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부당해고 등에 대하여 노동위원회가 심판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전개되었다.4) 같은 시기인 1989년 경제기획원에서는 권리분쟁의 효율적 처리를 위해 노동위원회의 기능 강화 ‘또는’ 노동법원 설립을 건의하기도 하였고, 1990년에 대통령자문기구인 「21세기위원회」에서 노사분쟁의 효율적 대응을 위해 노동법원 ‘및’ 노사관계위원회 설치를 건의한 것도 주목된다. 특히 그 와중에 노동계 내부에서도 논란이 없지 않았는데, 1989년 노동관계법 개정과 관련하여 한국노총이 2심까지(지방노동법원과 고등노동법원) 행정법원과 같이 법관으로 구성된 특별법원 형태의 노동법원 도입을 입법 청원한 데 비해, 민주노총 진영에서는 노동법원 법관들의 보수성으로 인해 오히려 근로자들에게 불리한 판례가 정립될 것을 우려하여 이에 반대하면서 “노동사건처리절차특례법”의 제정을 주장하였다고 한다.5) 즉, 사법부 내 양심적인 판사에게 재판받을 기회가 박탈되고 일부 “정치판사”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사용자에게 유리한 판례를 양산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효과적·체계적인 노동통제의 방편으로 악용될 것을 우려하였다.6)
한편 대법원은 1990년 3월에 “사법제도개혁을 위한 연구계획”을 잠정 확정하여 지방법원 항소심에 노동법원을 포함한 전문법원을 설치하고 노동을 포함한 각종 전담재판부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하였으며, 1993년 9월에 윤관 대법원장 체제하의 「사법제도발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노동을 포함한 특별법원 설치 문제를 주요의제로 확정하였다. 이러한 법원 차원의 논의는 법원 자체의 “전문화 수요”에 기반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최근 법원에서의 논의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7)
10여 년간 거의 잠자고 있었던 노동법원 도입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 시작된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 방안(2003년 11월)」이라고 할 수 있다.8) 아울러 비슷한 시기에 “노사관계제도 선진화 연구위원회”의 활동에 자극을 받은 일부 변호사들의 공부모임9)에서는 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분쟁해결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외국 노동법원 및 노동분쟁 해결시스템의 소개와 노동법원 도입의 기본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 결정적 계기는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 및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10) 특히 2006년 11월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노동분쟁해결제도의 개선방안에 관한 보고서”를 정책자료로 채택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절차 임의화, 재판상 조정절차 활성화 및 소송구조(訴訟救助) 확대를 제안하고 이에 필요한 노조법 및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이 제시되었다. 또한 노동법원 도입과 관련하여 비직업법관이 평결에는 참여하지 않는 “준참심형”을 기본으로 하되, 노사단체의 실무자들이 1심에 한하여 법원의 허가를 얻어 소송대리를 허용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노동부와 중앙노동위원회는 ‘노동위원회를 대체하거나 기능의 일부 이관을 전제로 한 노동법원 도입논의는 부적절하며, 현행 제도의 보완을 추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로부터 사법개혁위원회 내지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의 노동법원 논의는 ‘도입 필요성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멈추고 말았고, 2006년 대통령선거 이후 정권 교체로 더 이상의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 교착상태가 초래되었다.11)
반면 노동법학자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법원 도입논의, 다시 말해서 종래 노동위원회가 지닌 한계 및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노동분쟁해결제도를 모색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 대표적인 연구결과물로서, 김선수·박수근·이 정, 「노동법원 도입의 법적 쟁점과 과제」, 한국노동연구원, 2005.; 김홍영, “노동위원회의 기능의 강화와 노동위원회법의 개정”, 「2007 노동법의 쟁점(Ⅱ)」, 한국노동연구원, 2007, 117∼145면,; 김 훈·김태기·김동배·김홍영·김주일·김학린, 「노동위원회와 노동분쟁해결시스템 개선방안 연구」, 한국노동연구원, 2009. 등이 있다. 특히 김홍영 교수는 2003년 11월의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 방안」에서 제안된 사항과 2006년 4월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합의된 “노동위원회 개편방안”에 기초해서 2006년 말 및 2007년 초에 개정된 노동위원회법과 관련하여, “노동분쟁 해결기능 강화”의 방향 다시 말해서, 노동위원회가 “노동분쟁 해결과정에서 중추적인 기구”가 되는 것이 노동위원회의 미래상과 역할에 관한 비전임을 강조하였다. 즉, 1953년 노동관계법 제정 이후 노동법질서를 정착하기 위한 근로감독행정이 한동안 중심이 되어 왔지만, 노사의 자주성·자율성이 강조됨에 따라 노동분쟁 처리에 있어서도 노사의 자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노동위원회가 노사 당사자에게 “권위 있고 전문적인 기관으로서 조력하여 유효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12)13)
한편, 국회를 중심으로 하는 논의도 이 시기에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국회의원들의 법률안 제출이 몇 차례 이어졌는데, 2010년 제18대 국회에서 조배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노동법원법안 등 노동법원 도입 관련 법률안”, 2013년 제19대 국회에서 최원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노동소송법안 등 노동법원 도입 관련 법률안” 및 2017년 제20대 국회에서 김병욱 의원이 대표 발의한 “노동소송법안 등 노동법원 도입 관련 법률안” 등이 각 국회에 제출되었다.14) 그러나 모두 의결 등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15)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법원이었다. 2019년 12월에 법원내 2개의 노동법 공부모임16)과 서울대학교노동법연구회는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는데, 독일, 프랑스, 영국 및 오스트리아 등 제외국의 노동(사회)법원의 현황 분석과 함께 노동법원의 신설 및 노동위원회의 기능 강화 방안에 관한 발제가 있었다. 특히 “노동위원회의 조정기구화와 노동법원의 신설(이종훈)”에서는 종래 다소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던 법원 구성원 내부17)에서의 인식변화에 관한 실증조사 결과가 구체적으로 소개되면서 노동법원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 의지가 다각적으로 형성되고 있음을 밝혔다는 점에서 작지 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또한 “노동위원회의 기능 강화와 노동법원의 신설(도재형)”에서는 기존 노동위원회 제도의 순기능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노동법원을 신설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18)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이는 “전국 각급 법원 판사들의 노동법원에 관한 실증조사” 결과19)를 간략히 정리하면, ① 노동위원회와 법원으로 이원화된 쟁송절차 개선의 필요성(찬성 79.9%), ② 전문법원으로 노동법원 신설 필요성(찬성 73.6%), ③ 노동법원 신설 찬성 이유(복수응답: 신속성·효율성 제고(82.5%), 노동사건의 특수성 반영(79.5%)), ④ 노동법원 신설 반대 이유(복수응답: 기존 노동사건 전담재판부로 충분(74.7%), 노동사건의 특수성 미흡(47.0%)), ⑤ 기존 노동위원회의 역할(심판기능 전체 노동법원 이관, 사전화해 및 노동쟁의 조정가능 담당(60.0%), ⑥ 노동법원의 재판부 구성형태(준참심제: 52.8%, 직업법관만으로: 34.9%), ⑦ 완전참심제의 위헌성(동의: 87.1%), ⑧ 노동전문법관제 도입(찬성: 78.6%), ⑨ 노동전문법관 지원 의향 유무(긍정: 36.2%, 부정: 62.6%) 등으로 나타났다.20)
이와 함께 법원·법관의 전문화 필요성에 부응하여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하에서 진행된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의 논의 경과(2019. 10. ∼ 2020. 9.)를 살펴보면, 산하 사법정책분과위에서 단기 설치 필요성이 있는 법원으로 노동법원과 해사법원이 의결·보고되었고, 2020년 9월의 제8차 회의에서 전원이 이에 동의하고 법원행정처가 그 추진을 위한 구체적 노력을 하도록 의결하였다. 그러나 2021년에 들어서는 위원 임기만료 등과 맞물려 구체적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는 답보상태가 진행되다가, 전문법원 시범실시의 분야·방식, 전문법관 선발방식 등 세부사항을 결정하는 단계에서 일단 보류되고 말았다.21)
이에 대응하여 제21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2020년 2월 초에 한국공인노무사회가 한국비교노동법학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정책세미나가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는 “노동위원회 제도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의 쟁점과 과제(이상희)”, “노동위원회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의 쟁점과 과제(이건우)” 등의 발표를 통해, 노동법원의 도입 보다는 노동위원회의 활성화와 관련 제도의 개선을 통해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촉구되었다.
이어 한국노동법학회가 주최한 2021년도 10월의 추계학술대회에서는 보다 심층적인 노동법원 도입론의 분석이 시도되었다. 특별히 주목되는 발표로는 “노동위원회와 노동사회법원의 경쟁·보완관계의 설정방안(차성안)”과 “바람직한 노동재판청구권 실현의 모습(유동균)” 등이 있는데, 종래 논의되었던 노동법원론의 객관성과 현실성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과감하게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22) 한편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23년 6월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공익위원(심판·차별시정 위원회) 워크숍이 개최되었는데, 그 가운데 “노동분쟁 해결시스템 발전 방향(이 정)” 및 “사실조사 및 심문회의 운영시 유의사항(박진환)” 등의 발제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사법적 판단과 다른 행정적 특징들을 노동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잘 활용함으로써 노동분쟁 해결시스템으로서의 적극적 기능을 실질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였다.
전체적인 논의의 흐름에서 주목되는 사항을 몇 가지 열거하자면, 먼저 주체적 측면에서 처음에는 노동분쟁 해결 서비스의 주된 수요자인 노동계(한국노총)에서의 요구를 통해 노동법원 도입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점차 법원, 정부(노동위원회) 또는 변호사, 공인노무사 및 학계 등 노동분쟁 서비스의 제공자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 둘째, 당초 노동법원 도입에 반대하거나 또는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던 사용자측23) 및 법원측에서 점차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하는 입장으로 전환되었다는 것도 나름의 의미있는 변화라 할 수 있다. 다만, 법원측의 관점은 처음부터 전문법원 도입을 통한 법원·법관의 전문화가 주된 관점이었다는 점에서 다소 상이한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겠다. 셋째, 전반적으로 이른바 “대체론” 즉, 노동법원의 주된 역할이 노동위원회의 심판기능 전체를 이전받아 수행하는 방향으로 논의의 중심이 전개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재판전 화해·조정의 기능은 노동위원회가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방향으로 일부 수정되거나 또는 ‘노동위원회의 심판기능 내지 순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노동법원과 병존·경쟁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자’는 주장도 종종 발견되고 있다. 넷째, 노동법원 도입 방안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 못지않게 노동위원회의 한계 내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 제시 역시 조금씩 더 구체적이고 수준 높은 내용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는 노동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진영에서 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찬성하는 쪽에서도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있음도 부정하기 힘들다.
결국 아직까지는 각자가 처한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 이른바 “밥그릇 싸움”의 성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논의 초기의 극단적 불신·배제의 논리보다는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고 상호 존중하려는 의지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음은 매우 의미있는 변화라 할 것이다.24) 아울러 다소 원칙적이고 이론적인 주장이나 상당히 유사한 내용이 계속적·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시간의 경과에 따라 조금씩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주장과 대안들이 많아지고 있음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Ⅲ. 주요 쟁점별 검토
앞에서 노동법원 도입의 필요성을 최초로 주장한 한국노총의 요구에 반대하면서 “노동사건처리절차특례법”의 제정을 주장한 민주노총 진영의 입장25)을 소개하였지만, 노동법원 도입론과 관련하여 노동분쟁처리에 관한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절차법규범을 수립하자는 구체적인 주장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노동법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노동사건이 가진 전문성과 특수성을 반영하는 특유의 실체법과 절차법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는 주장26)이 있지만, 노동법원의 설립이 노동절차법을 대신하거나 동의어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 의견에서 동의하는 부분을 차용하자면, “절차법이 실체법을 뒷받침해 주지 못할 경우 실체법을 통해 구현된 노동법의 정신이 소송절차에 의해 형해화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노동 실체법에 부응하는 형식과 절차를 제대로 구현하는 별도의” 법규범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즉, 모든 법이 그러하듯이 노동법 역시 적절한 절차와 결합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기능할 것이며, 노동법이 독립된 법체계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노동분쟁 해결을 위한 절차와 체계가 필요하다. 실체법은 그 이념과 인간상에 부합하는 소송 절차를 갖춰야 법체계로서 온전하게 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27)
앞으로 상정할 수 있는 노동분쟁 처리 절차법의 구체적인 내용으로서는 민사, 형사 및 행정의 3대 소송법의 내용을 기본사항으로 고려해야 하겠지만, 기존의 노동위원회법 역시 포괄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을 생각할 수 있겠다. 방대한 노동관계 실체법들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민사적, 형사적 규범들을 절차법적 측면에서 수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용노동부의 노동행정 및 노동위원회를 통한 행정적 구제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정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각각의 소송법 등에 존재하는 내용을 모두 그대로 옮겨올 필요까지는 없을 것으로 보이고, “∼∼∼은 ○○○○○법의 ∼∼∼에 관한 규정에 따른다. 다만, ∼∼∼은 ∼∼∼∼하는 것으로 한다”와 같이 필요한 관련 법규범들을 준용하는 방식으로 규정한다면 상당히 효율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노동분쟁 처리 절차법을 준비하는 자리에 관련되는 모든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론의 자리가 마련되어 허심탄회하고 집중적인 논의과정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의 노동법원 도입 논의를 좀 더 발전적으로 공개·확대함으로써 산업현장에서의 목소리는 물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면 더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28)
노동법학계의 일반적 분석에 따르면 노동분쟁은 이론적으로 개별분쟁과 집단분쟁 그리고 권리분쟁과 이익분쟁의 4가지로 나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4가지의 분쟁이 상호 교착하여 복잡한 다면성(계속성, 포괄성, 집단성, 복잡성 및 이데올로기성 등)을 띄게 됨으로써 일도양단의 사법적 판단이 노동분쟁 해결시스템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30)이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이 기존의 사법제도와 다른 각 국가마다의 특성에 맞는 독자적인 노동분쟁 해결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고 한다.31)
그렇다면 우리나라 역시 우리 고유의 노동분쟁 해결시스템으로서 어떠한 접근법이 옳은 것인가에 관한 “큰그림”를 먼저 상정할 필요가 있으며,32) 이러한 근본적인 방향 설정 없이 그저 ‘논리적·원칙적으로 ∼∼∼이 옳다’ 또는 ‘특정 외국의 ∼∼∼사례가 좋다’라든지 ‘∼∼∼은 국제적으로 일반적인 접근법이 아니다’라는 식의 논리는 그 설득력을 얻기 힘들 것이다. 오히려 종래 우리나라 사법제도에서는 “노동하는 시민”이 홀대받아 왔으며 지적재산권과 재산권 등 기업의 이익은 신속하고도 과도하게 보호된 반면 근로자의 권리보호는 우선순위에서 미뤄졌음을 지적하면서, 노동법원의 도입을 통해 우리 사법제도에서 균형을 도모하고 노·사 어느 일방의 이로움이 아닌 정의롭고 올바른 노동분쟁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33)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한편 노동법원 도입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지적하는 현행 노동분쟁 처리 절차의 문제점으로 노동위원회와 법원으로 이원화되어 있어서 절차의 복잡, 권리구제 지연, 구제절차의 실효성 부족 등의 한계가 초래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반대로 해석하자면, 우리의 종래 개별적 노동분쟁 처리절차는 행정구제 방식을 중심으로 하는 접근법이 1차적으로 제공되지만, 노사 당사자가 이에 불만족하거나 이와 다른 사법적 구제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도록 중층적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방식을 택하느냐를 당사자의 선택에 맡기는 제도이지만, 그에 따른 시간적·경제적 부담 역시 노사 당사자에게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를 법원을 통한 접근방식으로 일원화하자는 것이 “대체형 노동법원 도입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시간적·경제적으로 사법제도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는 영역34)의 노사분쟁 당사자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노동법원 도입론에서도 이 부분을 반영한 여러 가지 방안(답변서 제출기간 단축, 직권증거조사 및 출석명령, 증거개시, 인지액 조정, 공휴일·야간 개정, 보전처분의 담보제공 감면, 소송구조 확대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 실효성 내지 효과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발휘될는지 그리고 이를 노사 당사자들이 얼마만큼 체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종래 노동법원 도입론을 주장하는 입장에서의 구체적인 실증분석 결과 등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자료가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 측면이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35)
노동법과 노동분쟁이 지닌 특수성으로 인하여 노동분쟁 처리 절차가 지향해야 할 원리로 ① 신속성의 원리, ② 실질적 공정성의 원리, ③ 경제성의 원리, ④ 자율성의 원리 등이 제시되고 있다.36) 따라서 이러한 원칙들이 사법제도 안에서 현실적으로 얼마나 지켜질 수 있을 것인지, 그 현실정합성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검토해야 할 주제는 노동분쟁 처리의 “신속성”과 “비용 경감”을 통한 “접근 가능성의 확보” 여부이다. 노동법원 도입론의 입장에서도 노동위원회가 그동안 엄청난 양의 심판사건을 신속,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영세기업 및 저임금 노동자들의 권리구제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온 성과를 부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당연한 결과로서 노동법원 도입의 구체적 방법을 모색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요청을 반드시 반영할 필요성이 강하게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로 보인다. 다만, 사법제도를 통한 노동분쟁 처리 방식의 고유한 장점(예를 들어, 신중하고 엄격한 사실관계 확정을 통한 노동기본권의 구체적 실현 등)이 많은 시간·비용을 필요로 하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포기할 수 없다면 종래 제도를 상당부분 유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노동법원을 통한 분쟁처리 방식이 갖는 간이·신속성과 비용부담 경감에 일정한 한계가 노정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효율성의 측면에서 그다지 큰 개선효과를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37)
다음으로 검토할 문제는 노동분쟁 처리기관의 “전문성 제고”를 통한 “신뢰성 확보” 가능성이다. 이는 노동분쟁 처리를 담당하는 인력 및 그 지원인력의 전문성 강화를 통해 노동분쟁 처리 절차가 일반 민사소송절차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형식적 공정성을 극복하고 노사 간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넘어서서 “실질적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종래 노동위원회의 근본적 한계로서 지적된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가 “공익위원들의 전문성 부족”이다.38)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법전문가 중심의 상임위원제도 활성화 및 공익위원 위촉기준(순차배제 방식의 개선 포함)의 강화 등이 자주 거론되었다.39) 그러나 전문성 강화라는 화두는 최근 노동법원 도입에 적극적인 입장인 법원측에서도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고, 실제로 노동법 내지 노사관계 영역에서의 전문성을 갖춘 법관을 어떻게 양성하고 선발하며 그들의 진로를 적절히 관리함으로써 전문법원을 성공적으로 설립·운영할 것인가는 매우 어려운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40)
이와 함께 고민해 볼 문제는 노동분쟁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전문성의 기준·척도”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이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실정법과 판례 등 노동법적 “지식”을 얼마나 충실하게 갖추었는가가 판단기준이 되겠지만,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노사관계의 역학구도와 노동조합 활동 등 노동운동에 대한 살아있는 “경험·경륜”을 갖추지 않고서는 다양한 노동분쟁 사건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다양한 고용형태와 노동분쟁이 빈발하는 현실 노동시장·노사관계에서 새로운 노동법적 이슈가 계속해서 제기될 때 이에 대응하는 노동법적 “시각·안목”을 갖추는 정도의 전문성이 요구될 수도 있다.41) 따라서 단순하게 ‘노동법학자(노동법학 박사학위 소지자)’ 내지 ‘노동분쟁 사건에 참여한 경험이 ○년 이상 있는 판사·검사·변호사·공인노무사’ 정도로 기준을 설정해서는 현재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다양한 후보군 중에서 그 역량·자질 및 인격·품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선발·위촉할 수 있는 일종의 인력선발기구(예를 들어, 노동위원회의 경우라면 “공익위원(상임위원) 인선위원회”, 노동법원이라면 “전문법관 인선위원회” 등)를 구성·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편 노동사건의 특수성을 적절히 반영하기 위해 노동법원이라는 전문법원을 신설하고 여기에 장기간 노동사건을 처리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획득한 노동전문 법관으로 하여금 노동사건을 처리토록 하자는 견해42)가 있는데, 이에 따르면 종래 일반법원의 노동사건 전담재판부는 법원의 전문화를 통해 법관의 전문화뿐 아니라 “법관을 보조하는 인력 및 시스템의 전반적인 전문화”를 통해 노동사건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각에서 현재의 노동위원회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전담재판부 내지 노동위원회 조직을 운영하는 인력·재원 보다 훨씬 더 많은 지원·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며,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제반 환경을 고려한다면 결국 그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아질 수도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검토할 주제는 “자율성”의 측면 즉, 노동분쟁 처리과정에서 최대한 노사 당사자들의 자율적이고 타협적인 해결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노동위원회를 통한 구제명령의 성격 내지 노동위원회의 지위와 연계되는 측면이 있는 만큼, 절을 바꾸어 검토하기로 한다.
통상적으로 우리나라 노동위원회를 “준사법적 행정위원회”로 그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위원회의 결정(구제명령)이 법원에 의한 판결에 비해 합목적성, 신속성 및 전문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심판업무는 어디까지나 행정명령의 일종43)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법원 판결과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즉, 노동위원회의 심판업무는 신청인의 구제신청 등에 대하여 조사관의 조사 및 심판위원의 심문, 판정 등을 통하여 구제명령, 기각, 각하 등을 하는 “행정작용”이며, 단순히 어떤 분쟁에 대하여 법을 적용하여 그 적법성과 위법성, 권리관계를 확정하여 선언하는 “사법작용”과 구분된다. 다만,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를 기초로 한 사실관계의 확정과 확정된 사실관계에 대하여 법률을 적용하는 절차와 판단과정이 있다는 측면에서 판결과 심판은 “유사성이 많다”는 것이다.44)
이를 뒤집어 보면, 노동위원회의 심판기능이 갖는 특성상 민사재판과 상당한 차이가 있고 여기에는 “권리중재적 측면”이 있어서 종합적 고려가 필요하다는 견해(김홍영)와 연계시킬 수 있다. 즉, 노동분쟁에서의 심판은 판단의 기준이 되는 법상 요건이 정당성·부당성 등 다소 추상적 문언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그 판단에 있어서는 실질적·구체적·종합적 고려가 더욱 강조된다. 따라서 노동위원회 심판의 성격은 권리·의무관계를 판단하는 일반 민사재판과 많은 차이가 있고, 특히 부당해고 또는 부당노동행위 판정은 권리중재로서의 측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45) 이에 더하여 부당해고등 구제사건은 오늘날 계속 증가하고 있는 각종 행정위원회의 “행정심판기능의 효용성”에서 살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즉, 부당해고등 구제사건은 본질적으로 민사분쟁 사건에 해당하지만, 국가기관인 고용노동부가 공법적 개입을 통해 분쟁을 예방·해결하고 있으며 근로감독행정에 의한 해결방식과 달리 이와 분리된 노동위원회에 의한 판정을 통해 법집행(작용)을 수행하는 것이므로, 노동위원회의 심판기능은 고용노동부 업무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노동사건의 행정처분성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46)
이상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부당해고등 구제절차 역시 노사간에 발생한 개별분쟁을 행정적 수단을 통해 해결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당사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문제해결의 최종적인 선택지를 노동분쟁의 당사자인 노사 양측에게 맡김으로써 노동분쟁의 “자주적 해결”이라는 우리 노동관계법의 기본원칙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노동법원론에서 주장하는 “(준)참심원제도의 도입” 역시 노동사건의 특수성을 반영한다는 일차적 기능에 더하여, 노사측 이해관계인의 적극적인 조력·지원을 통해 노사 당사자들의 자주적 분쟁해결을 촉진하고 결과에 대한 자발적인 승복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측면47)에서 보면, 노동분쟁의 영역에서 전통적인 사법작용과 행정처분의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양자 사이의 교착(交錯)을 부정하는 접근법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하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노동법원론에 기초해서 검토되고 있는 몇몇 쟁점 중에는 “양면성”을 지니는 측면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노동위원회에서의 부당해고 구제명령 등이 법원을 통해서만 확정되며, 확정된 경우에도 강제집행력이 없어서 해고기간 중 임금액수 등은 별도의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권리구제의 지연이 종래 비판론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노동법원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노동위원회가 “조정결정” 내지 “화해권고”를 통해 노동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행정적 처분의 한계상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노동위원회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한다면 이는 그 위상을 강화하는 결과가 초래됨으로써 오히려 사법작용을 침해하는 것으로 이해48)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도 모순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반면에 현행 이행강제금제도 역시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등 구제명령으로 강제할 수 없는 민사상 강제집행 수단과는 다른 행정처분에 불과한 것이므로, 사용자의 이행의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정적 강제수단으로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법치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49)도 있다.
한편 노동분쟁 처리기관을 구성·운영함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현실적인 측면도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법원 즉, 사법기구의 성격 내지 이해관계에 관련된 조직 내부의 역학구도에 대한 고민과 함께 구성원(주로 판사를 대상으로 하겠으나 지원인력 역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상호간의 이해관계(주로 노동법원의 전문성(경력관리)이 주요 관심사항이겠으나, 수도권·대도시 거주 및 사무분담 장기화 등도 포함된다)가 작용되는 메커니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다.50) 또한 사법기관에 의한 “재판”과 행정기관에 의한 “행정구제”는 본질적으로 상이하지만, 노동분쟁에 있어서 어떤 접근방법이 그 현실적인 해결에 있어서 실효성이 높을 것인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특히 현재 노동위원회를 통한 심판사건들의 거의 95% 정도가 사실상 종국적으로 해결되고 있는 상황을 수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더욱이 최근 법원에서의 노동법원 도입논의는 종래의 “대체론”에서 노동위원회의 심판기능을 유지·강화하면서 노동법원과 “경쟁·보완관계”를 설정하는 듯한 변화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그 근저에는 법원의 현재 인력상 한계상황을 고려할 때 노동위원회의 심판기능으로 소화되던 수많은 노동사건들이 일시에 법원으로 밀려올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51)도 기억할만하다.
끝으로 노동위원회의 독립성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학자들이 ‘형식적으로는 고용노동부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인사와 재정 등에서 고용노동부의 실질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어 마치 그 하부조직으로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오해되고 그 독립성과 중립성이 의심받고 있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듯하다.52) 그러나 노동위원회법 제2조 제2항에 명시된 바에 따라 중앙노동위원회와 모든 지방노동위원회는 명백히 고용노동부의 “산하 조직”으로 위치 지워지고 있다.53) 따라서 현실적으로 노동위원회의 인사·재정 등 중요한 문제가 고용노동부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되 어떻게 하면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노동관계 영역에 특화된 가장 전문적인 행정기관이며, 노동위원회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도 그 “조력”을 구태여 배제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54) 현실을 부정하는 “허구적 방안 제시” 보다는 “실현 가능한 대안”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아울러 노동위원회를 고용노동부로부터 독립시키는 방안으로 노동위원회법 개정 등을 통해 “국무총리 산하 기구”로 전환하자는 견해55) 등도 제시되고 있는데, 기왕에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향이라면 아예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전환시키는 방안이 한층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Ⅳ. 맺으며
이상 다소 총론적 관점에서 종래 노동법원 도입론의 시계열적 분석·평가와 함께 보다 현실정합적 관점에서 노동법원 설립·운영 방안의 효용성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노동법원 도입론의 난점을 지적하면서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등 사건에 대한 심판기능의 유지·발전적 입장을 소개하는 것이 지난 70년간 이어져 온 근로감독기능 등 노동행정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법질서 체계를 두둔하거나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노동분쟁에 대한 사법적 처리 방식이 갖는 의미·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다만, 일부 미흡한 부분이 적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긴 세월동안 나름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 오면서 상당히 긍정적 평가를 받아 오던 노동위원회제도를 부정하고, 일거에 노동법원제도를 새로 도입·운영하는 방향이 옳다고 확신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일 뿐이다. 더구나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이해득실 내지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면서까지 오랜 시간동안 논의를 이어오는 노동법원론이, 노동분쟁 당사자들을 포함한 국민 일반의 눈에 어떻게 보여질 것인지 두려움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른바 “대체론”에 기반한 노동법원 도입론은 노동위원회제도 개선 논의에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역발상적 접근법으로서, 노동분쟁 처리 절차상 권리구제 절차의 중복은 “낭비”라기 보다는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따라서 양자의 경쟁관계를 더욱 가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56)이 있다.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는 견해라고 하겠다. 그러나 종래 우리나라에서 “노동”이 중심이 되거나 크게 대접받은 역사가 별로 없었고 현재 시점에도 그러한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없어 보이는 가운데, 과연 국가의 예산과 인력을 노동법원 도입론이든 노동위원회 개선방안이든 집중적이고 과감하게 투자해 주리라고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종래 노동위원회의 역할 가운데 부당해고등 구제신청에 대한 심판기능만 지나치게 비중이 높고 노동쟁의 조정을 포함하여 부당노동행위구제, 단체교섭, 차별시정 및 필수유지업무 관련 분쟁의 해결과 관련된 비중은 대단히 낮은 부조화가 자주 지적되었지만, 이는 낮은 노조조직률과 함께 우리 산업사회에서 점점 짙어지고 있는 이른바 “노동관계의 사법화(司法化, Legalization)”57)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울러 이른바 “준사법적 전문행정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노동위원회가 “일도양단”적인 법원의 판결에 비하여 행정처분으로서의 구제명령을 통하여 노동분쟁 해결의 “유연성·탄력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고, 노동분쟁 처리의 수요자들 역시 이를 “이해·예상”하고 있었을 가능성과 연계된 것으로 재해석될 수도 있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점점 더 다양화되고 날로 증가하는 새로운 쟁점의 노동분쟁을 보다 신속·저렴하고 공정하게 해결해야 할 책무를 성실하고 믿음직하게 수행해야 함은 법원이나 노동위원회 및 고용노동부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