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주권재민(主權在民) 원리에 입각한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헌법공동체에서 민주시민교육은 민주공화국의 존속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공동체 구성원인 시민이 타자지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왕정(monarchy)이나 귀족정(aristocracy)과는 달리 시민이 자기통치(self-government)의 주체가 되는 민주정(democracy)을 중심으로 한 국가형태인 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에서 시민이 스스로의 지위를 자각하고 공동체의 최고권력자인 주권자의 실체를 구성하기 위하여 시민으로서의 덕성과 역량은 필요불가결하고, 이처럼 시민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천부적·자연적 산물일 수만은 없고 공동체에서의 교육에 의해 형성되어야 할 부분이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시민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시민생활을 문명화된 조건 속에서 성숙하게 높은 수준에서 향유하고 그 결과 민주공화국이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민주적 자치라는 양대 기본가치를 높은 수준에서 구현하기 위해서 시민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기본과제인 것이다.1)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시민인 대한국민은 올해로 제45주년을 맞이하는 부마민주항쟁, 제44주년을 맞이하는 광주민주화운동과 제37주년을 맞이하는 6월항쟁 등 시민의 직접행동에 의해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청산하고 민주공화국의 분수령을 쟁취해온 자랑스런 민주화의 역사를 가졌으므로 시민교육에 필수적인 역사적 자산이 비교적 풍부하다고 자부할 만하다. 특히 근래에도 2017년 촛불혁명이라는 광장정치의 생생한 경험을 공유하였기에 우리의 민주화 역사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매우 높다. 나아가 정당법과 공선법의 개정을 통해 정당연령이 16세로2),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18세3)로 확대되어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가 획기적으로 강화됨으로써 능동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의 범위가 법적으로 더욱 확대되었기 때문에 민주공화국이 보다 공고화된 우리나라에서 민주시민교육은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한편, 자랑스런 민주화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민주공화제는 국내외의 환경변화에 따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는 권위주의 체제의 유산을 극복하는 제2의 민주화를 필요로 하는 다양한 개혁과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중앙집권적 헌정체제와 권력구조를 더욱 분권화하고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강화하여 견제적·균형적 민주주의(contestatory and balanced democracy)를 공고화하기 위한 전방위적 헌정개혁이 요청된다.4) 전지구적으로도 기후위기와 전지구적 감염병위기는 물론 정보화와 유전공학의 발전 등에 힘입어 다양한 생존위기와 사회관계의 변화가 확대되는 한편으로 신냉전체제가 부활하는 등의 체제변동적 요소가 국민국가 단위를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적인 민주공화국의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국내외적 변화로 야기되는 민주공화제에 대한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발현되는 국민의 직접행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일상정치의 안정적 제도화를 이끌 수 있는 헌법제도를 정비하고 그에 걸맞는 정치문화와 사회문화의 성숙을 도모해야 한다.5) 민주시민교육이 이러한 새로운 과제에 대응해야 함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편, 최근 구동구권이나 남미의 사례에서 보듯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포퓰리즘(populism)의 위기로부터 민주적 법치국가를 수호하기 위하여 시민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입장6)이나 포퓰리즘은 물론 반자유주의(illiberalism)나 권위주의(authoritarianism)의 파도에 맞서 자유민주적 입헌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헌법실현의 조건’으로 시민교육의 의의를 강조하는 견해7)도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정작 학교교육은 물론 ‘학교 밖 교육’에서 시민의 덕성과 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시민교육이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다. 이 글은 민주공화국의 최고규범인 헌법에 비추어 본 시민교육의 원론적 필요성을 전제하면서 그 운용상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을 소재로 헌법에 기초한 시민교육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특히 정치적 고려에 의해 함부로 축소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주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시민교육은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분열적이고 갈등적인 상황을 극복하는 정치사회적 기본토대를 구축하는 올바른 대안임을 강조하는데 초점을 둔다.
Ⅱ. 시민교육의 의의와 범주: 헌법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
오늘날 시민교육(civic education)은 민주시민교육의 차원에서 현대화되어왔다. 일반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은 공동체 구성원의 민주적 시민성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education for democratic citizenship)8)으로 정의된다. 공동체 구성원이자 주권자인 시민9)이라는 개념이 소속원의 형식적 자격만을 징표로 삼지 않고 공동체의 민주적 운용에 참여할 실질적 역량과 권리와 의무 및 덕목을 통칭하는 시민성(citizenship)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10)에서는 모든 시민은 민주시민이어야 하므로 시민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은 치환가능한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충분하다. 민주주의를 근대사회의 기초로 구축한 서구에서 봉건시대의 신민(subject)과 구별되는 능동적 주체로서 근대적 시민개념을 창출했다는 역사적 맥락에서 보더라도 시민의 기본적 요소가 그 민주적 덕성에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다.11)
한편, 민주시민교육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반영하여 특정 시민단체나 정치세력의 ‘의식화’ 교육의 동의어로 이해하는 정치사회적 현실12)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은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용어로 불필요한 이념적 갈등의 소재가 되기보다 오히려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시민교육’으로 용어를 통일하는 방안이 조심스럽게 제안되기도 한다.13)
그러나 시민교육의 목적과 필요성, 내용과 방법에 대한 준거를 설정하는 차원에서 시민교육을 곧 민주시민교육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지는 장점을 쉽게 무시할 것도 아니다. 우선 시민의 개념에 민주성과 같은 실질적 조건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접근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적으로 일반화하여 정당화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공동체의 구성원을 시민이라고 할 때 당위적·규범적 차원에서 시민의 민주적 역량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현실 속에서 이를 담보해 낼 수 있는 장치를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아가 시민의 민주적 역량의 부족을 빌미로 시민적 지위를 박탈하는 억압의 도구로 시민성을 ‘과잉도덕화’할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14) 따라서 실질적 시민개념에 집착하다가 특정 구성원에게 시민의 자격에서 자의적으로 박탈할 수 있는 위험을 제어하기 위하여 소속원의 ‘형식적’ 자격만을 시민으로 정의하고, 그 시민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감당해야 할 권리와 의무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는 경우 그에 상응하는 수식어로 ‘민주’를 덧붙이는 방식 – 즉, 민주시민으로 통칭하는 방식 - 이 가지는 현실적 유용성이 적지 않다.15)
무엇보다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공동체에서 그 구성원인 시민이 갖추어야 할 시민성의 덕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민주시민의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민주’에 대한 특정 정치사회세력의 감성적이고 왜곡된 거부감을 이유로 쉽게 폐기하기 어려운 원칙적 개념이기도 하다. 헌법의 유권해석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우리 헌법의 인간상을 민주시민의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16)도 바로 이와 같은 원칙론적 인식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17) 결국 모든 시민은 시민성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 민주시민교육을 받을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부과 받고 향유하게 되는 개념과 체계가 보다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민주공화국은 공동체 최고규범인 헌법에 민주공화제의 기본이념과 원리 및 제도를 성문화하는 입헌국가 혹은 헌법국가(constitutional state)가 일반화되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향유하는 개인과 다양한 결사체를 중심으로 다원주의에 입각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기초로 하는 민주공화국에서 민주시민교육은 공동체의 주권자인 시민들로 하여금 민주공화헌법이 표방하는 가치와 헌법이 규정하는 정치과정의 여러 절차와 규범들을 습득하도록 하고 그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것으로서, 입헌적 민주공화국의 유지·발전을 위한 불가결한 요소이지 어느 한 진영의 이념을 표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더더구나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국가에서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전체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적 통합과 사회경제적 통합의 공통적 토대는 반드시 필요하다.18) 만일 그러한 공통의 토대가 없다면 국가는 통일체로 존재할 수도 없고 오로지 모두의 모두에 대한 투쟁과 같은 약육강식의 반문명적 조건만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결국 입헌적 민주공화국에서 모두가 공존·공생·공영할 수 있는 공동의 가치규범이자 행위규범이 필요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기초는 국가와 사회의 기본규범인 헌법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헌법의 본질적 위상을 헌재는 다음과 같이 확인하고 있다.
“헌법은 국민적 합의에 의해 제정된 국민생활의 최고 도덕규범이며 정치생활의 가치규범으로서 정치와 사회질서의 지침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사회에서는 헌법의 규범을 준수하고 그 권위를 보존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 국민은 이러한 헌법적 약속을 알고 있으며 이 상식으로 정치와 사회를 보고 비판하는 높은 의식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사회적 혼란과 가치관의 혼동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기초적인 원리와 현실을 망각하고, 헌법규범을 정치적으로만 이용하고 현실에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헌법의 권위가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민주주의의 토착과 기본권 보호에 차질을 가져왔고 그것이 정치적 사회적 불안의 요인이 되어왔다.”19)
헌법을 국가와 사회의 기본규범으로 수용할 때 헌법의 지침이 지배하는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인 시민이 갖추어야 할 민주시민성을 함양하기 위한 민주시민교육의 내용과 방법 또한 이 기본규범의 지침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헌법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면서 국민들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민주주의, 법치주의, 복지주의와 같은 기본원리와 그 실현에 기여하는 다양한 헌법제도들의 일관체제이다. 입헌적 민주공화국의 실현 주체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민주시민교육은 이러한 헌법적 이념들의 테두리 안에서 헌법원리 및 헌법제도와 조화를 이루면서 수행되어야 하며, 바람직한 민주시민교육은 헌법의 이념·원리·제도들의 내용과 그 실현 절차에 대한 ‘보편적’ 지식을 습득케 하고 그러한 공유된 지식에 기초하여 비판적이고 성찰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하여 사회·경제·문화생활을 영위하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democratic capacity) 함양을 목표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을 구성하는 공동체의 기본규범인 헌법은, 각자가 지향하는 정치적 이념과 무관하게, 다양한 정치적 이념을 정치과정을 통해 실천함에 있어서 존중하고 준수해야할 기본적인 가치와 절차를 담고 있다. 따라서 헌법은 민주시민교육에 일정한 지침과 한계를 제시하는 동시에 기본적인 헌법적 가치와 규범은 그 자체로 ‘보편적’ 민주시민교육의 내용이 되기도 한다. 즉, 헌법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은 그 내용과 기능을 중심으로 볼 때 크게 헌법 자체에 대한 교육과 그에 기초하여 비판적이고 성찰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하여 사회·경제·문화생활을 영위하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으로 구별될 수 있다.
헌법 자체에 대한 교육, 즉 헌법교육은 민주시민교육의 기초를 형성한다. 공동체 기본규범인 헌법에 대한 이해는 공동체의 민주공화적 실현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20) 헌법교육은 민주시민교육의 차원과 법전문가교육의 차원으로 구별될 수 있는데 민주시민교육의 차원에서는 일반교육과정의 법교육이나 정치·사회교육을 구성하게 된다.21)
한편 민주적 역량을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헌법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은 시민으로 하여금 민주시민이 되게 하는 핵심덕성을 공동체 기본규범인 헌법을 통해 도출한 헌법적 시민성(constitutional citizenship)에 대한 교육을 의미한다.22)
헌법적 시민성은 인생관·세계관을 스스로 선택하여 사회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생활을 자신의 책임에 따라 스스로 결정하고 형성할 것, 즉 자기결정권(the right to self-determination)에 입각하여 자율적 삶을 영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러한 개인적 자율성은 헌법은 물론 국제인권법이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정점으로 하는 시민적 자유권을 통해 구현된다.23)
아울러 이러한 개인의 자율권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영역은 물론 민주공화국의 주권체인 이념적 통일체로서의 국민을 구성하는 정치적 생활영역에서도 발현되어야 하며, 특히 정치적 생활영역에서 발휘되는 개인의 자율권은 민주공화국을 결성한 공공의 목적(공동선) 실현에 복무하는 정치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방식으로 자기통치(self-government)를 실현하는 공공적 자율권으로 구현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공공적 자율권은 시민의 정치적 자유는 물론 정치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권리, 즉 참정권에 의해 구현되도록 헌법적 보장을 받는다.24)
헌법적 시민성은 개인적 자율성과 정치적 권리를 통해서만 온전히 구현될 수 없다. 생존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문명적 조건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사회경제적 조건과 환경이 구비되어야만 한다. 안전과 문명적 삶에 대한 공동체적 기반을 공유할 이익을 대한민국 헌법은 ‘공공복리’라고 명명하는 한편25), 교육과 노동에 있어 국가의 특별한 보장의무를 국민의 기본적 인권으로 명문화하고 있는 특색이 있다.26) 시민생활에서의 자율성이 사유재산권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지만 재산권 행사의 남용은 공공복리를 훼손한 위험이 클 수 있다. 독과점을 통해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을 남용하게 될 때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개인책임으로 전가할 수만은 없는 생존박탈의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 근대화와 더불어 자연재난은 물론 인공적 위험의 빈도와 영향력이 커지는 환경 속에서 쾌적한 환경의 중요성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공공복리에 입각하여 안전과 위험으로부터의 자유를 향유할 권리(사회권)27)와 이러한 공공복리를 위해 사유재산을 비롯하여 개인의 권리 행사를 절제할 의무(공공복리 적합의무 혹은 사회적 기속성28))는 민주공화국에서 민주시민이 누려고 부담해야 할 공통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다.
헌법교육에 더하여 헌법에 기초하여 헌법적 시민성을 함양하는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시민은 다양한 시민역량을 기를 것이 기대된다. 우선 시민적 자기결정권을 통해 권리주체성 및 자기책임성이라는 시민역량을 배양할 수 있게 된다. 정치적 자유와 참정권을 통해서는 공사구별능력과 정치적 능동성을, 사회권을 통해서는 사회적 배려와 연대성을 함양할 수 있을 것을 기대된다.29)
이와 같은 민주시민성의 요소와 그로부터 확인되는 시민역량은 무엇보다 국가와 사회의 최고규범인 헌법에서 헌법계약의 방식으로 이미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며, 헌법이 상정하는 민주시민의 인간상30)에 입각하여 민주시민의 역량과 덕성을 함양하는 민주시민교육은 무엇보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충실히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해야한다.31) 즉, 헌법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은 다양한 가치와 이념에 따른 우리 사회의 다원성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차이를 넘어 헌법적 시민성을 기반으로 각자의 시민역량을 발휘하여 공존·공생·공영하는 토대를 구축하는 국가와 사회의 일차적 과제인 것이다.
헌법은 법전 속에서만 그 존재의의가 있는 정태적인 규범이 아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국가권력의 담당자의 지위와 그 권력행사의 영향을 받는 수범자의 지위로 구분된 가운데 끊임없이 소통하는 정치적 대화과정이 ‘역사적 실재로서의 헌법’32)의 현실적 양상이다. 이러한 헌법의 정치성은 민주시민교육의 방법론적 지침을 제공해 준다. 헌법은 끊임없는 정치적 대화과정에 의해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대응하여 동태적으로 변천하는 것이므로 민주시민교육은 그러한 헌법적 진화를 반영할 수 있도록 정치사회현실에서 제기되는 구체적 현안들을 소재로 삼아 대화적 방법으로 운용되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의 정치성으로부터 민주시민교육에의 시사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33) 첫째, 민주시민교육은 국가에 의해 독점되어서는 안된다. 둘째, 민주시민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비현실적인 정치초월적 차원에서 규정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철저히 국민 개개인의 자율적 선택권이 존중되는 전제 위에서 다양한 정치과정의 주체들이 담당하는 방식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셋째, 민주시민교육은 학교교육 등 국가영역의 기초를 형성하여야 하지만 국가에 의해서만 독점되어서는 안되며, 시민사회에서의 민주시민교육에 대해서는 국가가 조성적 지원을 제공하는 외에 그 내용과 방법에 대한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
헌법이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누가, 어떻게, 무엇을 위하여 형성할 것인지에 대한 구성원 전체의 공통된 합의, 즉 기본가치가 국가마다 다를 수 있고 실제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의 기본가치의 차이에 따라 헌법의 본질 혹은 정체성(identity)을 달리하게 된다.
최고규범인 헌법의 주요특성이 가치지향성이라는 점은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하여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무엇보다 헌법의 가치지향성은 민주시민교육의 내용과 한계를 설정한다. 우선 소극적으로 헌법의 기본가치는 민주시민교육의 한계를 설정한다. 헌법에 입각한 민주시민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민주공화국이 지향하는 가치상대주의 및 다원주의를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조화불가능한 가치체계를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헌법의 기본가치가 지향하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민주공화적 정치제도의 실현이라고 전제할 때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바탕한 자기목적적 존재로서의 개인의 자율성을 부인하거나 주권재민, 법치주의, 권력분립과 같은 민주공화제의 기본원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전체주의와 같은 가치지향만은 민주시민교육의 내용으로 포용될 수 없다는 점이다.
한편, 헌법의 가치지향성은 적극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의 필수적 내용을 설정한다. 민주공화적 가치지향의 외적 한계를 설정하는 반헌법적 가치와의 구별은 역설적으로 민주공화적 기본가치의 필수요소에 대한 최대한의 실현을 반대급부로 요청한다.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헌법의 가치지향성의 적극적 의의가 효과적으로 발현되어야만 민주공화체제가 구성원의 자발적 의지와 행동에 따라 수호될 수 있게 된다는데 있다. 나아가 민주공화국이 전체국가와 구별되는 핵심가치, 즉 개인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이나 반독재적(혹은 권력분립적) 법치주의의 실현은 전체주의를 제외한 다양한 정치이념과 가치의 공존을 엄격히 보장하는 데서 확보될 수 있기 때문에 민주시민교육의 필수요소는 이처럼 다양한 정치이념과 가치가 민주시민교육의 내용으로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와 같이 극단적 전체주의와 구별되는 조건 속에서는 최대한 개방적이고 다원화된 가치지향이 상호경쟁하고 이러한 경쟁 속에서 정치사회질서가 자유롭고 민주공화적으로 형성되는 민주공화국을 구현하기 위한 필수적 수단이 민주시민교육이 되는 것이다.
종합하면, 헌법의 가치지향성은 민주시민교육의 내용과 그 한계에 대하여 양면적 지침을 제공한다. 우선 헌법의 가치지향성은 민주시민교육의 외적 한계를 구획하며, 이는 헌법의 정치성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에 대한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반입헌주의, 반민주공화국, 전체주의에 대한 배제와 비판).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헌법의 가치지향성은 그 외적 한계 설정의 반대급부로 그 범위 내에서의 내용과 방법론의 자율성에 대한 최대한의 보장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 차원에서 헌법의 가치지향성과 정치성은 상호조화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의 내용과 방법상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하게 된다. 헌법은 바로 이러한 취지를 고려하여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적 가치로 표방35)하고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교육제도 형성의 과제를 국가에 부과하고 있다.
Ⅲ. 민주시민교육에서 사회적 합의의 의의와 한계
헌법의 특성으로부터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과 그 기본적 내용과 한계가 확인되고 설정됨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원론적 차원에도 불구하고 민주시민교육이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보편적’ 시민교육으로서 위상을 더욱 확고하게 다지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공유된’ 헌법적 가치에 대한 이해가 국민들 사이에 폭넓은 공감대, 즉 사회적 합의를 확보해야만 한다. 민주시민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필수적인 사회적 합의는 두 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민주시민교육이 국가의 기본규범인 헌법에 입각하여 모두가 공존·공생·공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공동체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자명한 이치를 모든 국민들이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에 기반하여 민주시민으로의 자질과 덕성을 함양하고 민주시민이 갖추어야 할 권리와 의무를 비롯한 법적 지위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민주공화국의 구체적인 현안들을 해소할 수 ‘성찰적’(reflexive) 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의 원론적 사회적 합의만으로 헌법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두 번째 단계로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하는 주체들과 민주시민교육의 수혜자들 주도하에 공유된 헌법적 가치와 원리들을 구체적 정치사회현안에 발현되도록 하는 데에는 다양한 대안들이 경쟁을 할 수 밖에 없고 이 대안들을 어떻게 교육내용에 반영할 것인지의 방법에 대한 2차적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2차적인 사회적 합의 또한 민주공화국 헌법이 구현하는 이념과 원리 및 제도에 따라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교육내용과 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 또한 그 준거를 헌법으로 삼게 된다면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대립에 의한 민주시민교육의 교육내용과 방법에 대한 제2차적 합의도 중요한 토대를 구축하게 되는 셈이다. 만일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다원적 공존체제를 추구하는 정치성과 가치지향성을 내포한 헌법 그 자체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은 정치적, 사회적 불편부당성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이행하기 위한 준거로서도 기능하게 된다. 시민의 약속인 헌법이 내포한 가치와 그 구현을 위한 기본원리 및 원칙들은 탁상공론을 위한 장식이 아니며 시민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제기되는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현안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기본지침이다. 이런 전제에 있게 될 때 민주시민교육의 내용과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다음과 같은 최소한의 인식을 공유하여야 한다.
모두가 공유하는 헌법에 기초한 ‘보편적’ 민주시민교육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neutrality) 혹은 불편부당성(impartiality)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정치적 불편부당성이 정치적 소재의 회피나 정치적 평가의 절대적 배제를 의미하는 정치적 진공상태, 즉 ‘탈정치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민주시민교육이 편향성 시비에 휘둘리게 된 것도 정치적 불편부당성을 탈정치화로 오해하는 것36)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불편부당성은 정치적 다양성을 부정하고 정치적 무정견을 표준으로 삼거나 특정 이념이나 원리를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방식으로만 달성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원적 정치현실에서 실체적 내용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완전무결한 중립이나 공정은 논리모순이며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가치지향적인 민주공화국 헌법에서 절대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전체주의를 신봉하여 실현함으로써 민주공화국의 가치상대주의와 다원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활동일 뿐이다. 따라서 민주시민교육의 내용이 되는 헌법교육이 정치의 주체로서 능동적 시민을 길러내는 과정임을 고려한다면, 헌법교육의 소재로는 정치적 쟁점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활발한 관점의 교류와 토론을 위해서 정치적 쟁점의 활용은 요구되는 바이기도 하다.37)
단순히 법문서속의 활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헌법, 즉, ‘살아있는 헌법’(living constitution)38)의 실체를 고려할 때 현실적실성이 결여된 교육내용과 방법은 민주시민교육의 무력화시킨다. 다시 강조하자면, 기본적인 헌법교육의 내용을 넘어 다양한 현실적 소재를 활용하거나 특정한 헌법 해석 혹은 관점의 당부에 관하여 합의하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인 다원성을 부인하는 것이며, 민주시민교육이 표방하는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시민의 양성이라는 이상에서도 벗어나는 것이다.39)
민주시민교육의 주체는 교육의 수혜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헌법적 지식을 주입하거나 교육자 스스로의 정치적 이념을 강요해서는 아니되고, 다원적 공존·공생·공영의 민주공화국이라는 제1차적 사회적 합의에 의해 ‘공유된’ 헌법적 가치에 바탕하여 모든 현실적 현안에 대해 비판적이고 성찰적으로 행동하는 능동적 시민을 지향하기 위해 교육수용자의 자율적인 참여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40) 인간존엄에 기초한 주체의 자율성이라는 핵심적 헌법가치를 전제로 하여 사회내 존재하는 다양한 견해를 존중하는 토대위에서 민주시민교육 수혜자에게 특정한 관점을 주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의 방법론적 기초가 되며 이는 곧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은 물론 공공적 자율성에 입각한 헌법적 시민성을 추구하는 민주공화헌법이 지향하는 핵심요소라는 점에서 그 함의가 크다.
민주시민교육의 편향성을 우려하는 관점에서는 주로 민주시민교육의 구체적 내용과 방법에 있어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현행 민주시민교육에서 사회적 합의가 성숙되지 않은 사례로 예시되는 것이 “촛불시위, 세월호 등에 대한 편향적 취급”, “헌법적 가치인 양성평등이 아닌 성평등”, “토지공개념”,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기술, 자본주의 단점 부각 등 사회주의적 표현” 등이다.41) 그런데 사회적 합의를 명분으로 내건 이러한 접근법은 민주시민교육의 본질에 따른 사회적 합의의 의의와 한계에 대해 좀 더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
우선 이에 앞서 이런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방식, 예컨대, 편향된 의도를 가진 교육주체의 주입식 혹은 강압적 방식이 문제라면 이러한 주장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일방적 주입식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시민교육에 해당하는 독일식 시민정치교육의 대원칙인 보이텔스바흐 합(Beutelsbacher Konsens)의 3원칙 중 첫 번째인 ‘강압금지 원칙’42), 즉, 바람직한 견해라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음으로써 독자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것은 용인되지 않는다는 원칙에서 금기시하고 있듯이 개인적 자율성에 입각한 헌법적 시민성의 덕목을 훼손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 사안을 두고 민주시민교육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기준에 따라 그 편향성이나 방법적 오류에 대해 개별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야할 사안이 있다면 충실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이런 소재와 주제들을 민주시민교육의 내용으로 삼는 것 자체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소재와 주제들이 헌법을 준거로 하여 보았을 때 헌법적 시민성을 함양하는데 부적절한 것인지, 헌법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에서 요구되는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검토해 볼 수 있다.
촛불시위와 세월호사건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실관계와 가치판단의 부분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국가권력의 오남용이나 해태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헌법 전문에서 다짐하면서 형성된 입헌적 민주공화국의 정치적·사회적 현실을 충격적으로 보여준 전국민적 관심사였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 소재를 민주시민교육의 교육내용으로 삼는 것 자체가 그 사안과 관련하여 특정 정치사회세력에게 어떤 유불리를 초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회적 합의의 불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런 논리라면 사회적 합의란 모든 혹은 대다수의 이해당사자가 동의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고 누군가가 반대한다면 사실상 민주시민교육의 다양성을 심각하게 후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시민교육이 정치적, 사회적 합의에 기초를 두고 형성된 공동체의 근본규범이자 헌법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 공적 제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되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에 입각하여 평가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민주시민교육이 학교교육인지 학교 밖 교육인지, 학교교육이라고 하더라도 교육단계별 수준에 따라 국가와 교육주체 및 이해관계자의 이해관계가 효과적으로 조율될 수 있는 절차나 제도를 모색할 필요가 인정될 수도 있다.
한편 토지공개념이나 대기업 관련 소재,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관련한 부분 역시 개별적 사안별로 구체적 검토의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 수준에서 민주시민교육의 소재로 부적절하다는 원론적 평가를 사회적 합의를 들어 개진하는 것은 공감하기 힘들다. 사회적 합의의 제1차적 준거인 우리나라의 헌법은 토지공개념이나 자본주의 및 사회주의에 대한 가치적 판단을 직간접적으로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122조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에 관한 국가의 질서유지과제를 명문화하고 있고 제119조 제2항 등 여러 조항에서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국가의 경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의 여지를 인정하고 있기에 이를 구체적 현실에서 어떻게 어느 정도 구현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것이지 아예 교육의 내용에서 배제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의 기초인 헌법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관련한 이념적 가치판단과 관련하여서도 헌법은 침묵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인 가치지향성을 표방하고 있다. 헌법은 특히 헌법 제119조에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과 창의”를 경제질서의 기본으로 하면서도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 또한 헌법적 목표임을 천명함으로써 사회경제영역에서 재산권과 공공복리는 사유재산제의 철폐에 기초한 계획통제경제뿐만 아니라 각자도생과 약육강식의 반문명적 약탈경제로 전락할 수 있는 자유방임적 시장경제를 용납하지 않는 선에서 “국민 모두가 호혜공영(互惠共榮)하는 실질적인 사회정의가 보장되는 국가, 환언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든가 시장메카니즘의 자동조절기능이라는 골격은 유지하면서 근로대중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소득의 재분배, 투자의 유도·조정, 실업자 구제 내지 완전고용, 광범한 사회보장을 책임있게 시행하는 국가 즉 민주복지국가”의 이상을 추구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43)
오히려 기본적 사회적 합의인 헌법이 설정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기본적 가치질서를 아전인수격으로 선별적으로 접근하여 민주시민교육의 다양성을 부정하려는 접근44)이 헌법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의 기능과 역할을 위축시킬 수 있다.
Ⅳ. 결론 – 축소·폐지보다 확대·강화되어야 할 민주시민교육
교육내용을 이루는 소재나 주제의 선정 자체가 아니라 이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시비는 충분히 예상될 수 있고 효과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완벽한 제도는 있을 수 없고 운용에 있어 모든 사항을 관리할 수도 없고 관리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원론적으로 타당하지 않음은 앞서 살핀 바와 같다.
그런데 이처럼 편향적 교육방법과 운용상의 문제를 사회적 합의를 내세워 민주시민교육의 축소나 폐지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법이 못된다. 민주시민교육의 축소나 폐지는 민주공화국 시민의 헌법적 시민성의 질을 하향화하여 정치적 공감력과 판단능력 및 능동적 행위능력이 충분하지 못한 시민들의 공화국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향적 민주시민교육의 위험성은 그 축소나 폐지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민주시민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방법을 통해 극복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기회의 보장은 혹여나 있을 수 있는 강압적, 주입적, 획일적 민주시민교육의 오류를 극복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의 기본규범인 헌법에 기초하여 연구내용과 연구방법의 결정에 있어 헌법적 가치기준에 따르는 것, 즉 헌법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이야말로 민주시민교육에 있어 사회적 합의를 달성하는 최소한의 공약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영역에서 민주시민교육의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고, 민주시민교육으로서 헌법교육의 대부분은 학교교육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민간영역 또한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하고 있지만, 공공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흡한 수준으로 파악되고, 정당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의 민주시민교육 또한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영역, 특히 학교교육에서 논쟁적인 소재나 주제를 다루는 민주시민교육이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공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개연성이 없지는 않다.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볼 때, 우리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을 둘러싼 대립구도는 독일과 같이 정당을 중심으로 정파간의 대립에 기초하고 있다기보다는 사회세력간 이념적 대립에 기초하고 있으며, 주로 학교교육 안에서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하여 논의되고 있다. 정당 내 연구소 또는 정당이 설립한 재단이 민주시민교육 내지 헌법교육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정당이 학교교육 밖에서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일정한 이념적 지향점 표방하는 민간영역 내 단체들이 민주시민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결국 공공영역 중심의 민주시민교육의 현실을 정당 등 다양한 주체들에게 의해 경쟁적 교육이 가능한 환경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공공과 민간, 학교와 학교 밖이 다양하고 풍부한 민주시민교육을 경쟁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의사소통에 기반한 다원적 민주공화국에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을 관철하는 정도(正道)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