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항고소송에서 대상적격에 관한 문제, 곧 처분성(인정여부)에 관한 문제는 행정법학의 여러 이론과 견해가 교차하는 길목에 자리한 대표적 쟁점 중 하나로, 항고소송의 대상으로 주장되는 특정 행정작용이 과연 행정소송법 제2조 제1항의 “처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대법원 판결들과, 그 전·후로 개진되어 온 다양한 연구들이 법리의 발전을 상호 견인해 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권리구제 수단과 범주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왔던 행정소송법 개정(안)이 거듭 공전되면서 국민의 권리보호의 공백을 막기 위해 대법원이 처분성 인정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왔던 궤적이 뚜렷하다. 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명시적으로 처분성 인정 범주를 확장하였든,1) ② 처분성 인정여부에 관한 일반론을 새로 제시한 뒤 그 일반론 적용 범위를 개별 사건마다 점진적으로 확대해 왔든, 확장 일로를 걷는 대법원 판결의 방향성과 궤적이 뚜렷하고, 이에 대해 분석한 선행연구도 이미 적잖다.2)
최근 대법원 판결(행정사건)들을 살펴보면 후자의 방법, 곧 기존의 일반론에 약간씩 내용들을 더해가면서 새로운 일반론을 제시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면서 지속적으로 처분성 인정범주를 확대하는 경향이 더 두드러지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전의 전형적 처분과는 그 양태가 다소 이질적일 수 있는 행정작용들을 새로 살피거나, 과거와 달리 권리구제의 필요가 더 비등해진 사례군을 다시 살피는 재판부의 고민의 결과일 수 있고, 개별 사건에서의 판단을 섣불리 일반화(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종전 판결을 폐기)하는데 관한 부담감의 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고민 과정에서 ① 행정환경변화를 법원이 나름의 방법으로 소화하고 있고 ② 결과적으로 권리구제범주가 확장되며, ③ 장기적으로, 정교하게 축적될 경우 유사한 결을 갖는 사례군에서 법적용의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고, ④ 학계에 새로운 통찰과 더 현실적합한 연구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도 분명하다.
그런데 그것이 행정법 도그마에 관한 논의, 곧 “행정법 도그마틱”의3) 발전에 전적으로 긍정적인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데, 법원의 처분성 인정(확장) 경향이 해당 사건 및 그와 결이 같은 극히 일부 사건에서만 그러겠는지, 아니면 성격이 유사한 관련사건에 관하여도 그러겠는지 그 형성 초기에는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고, 결국 유사한 결을 갖는 사건에 관해 이를 행정소송으로 제기해야 하는지 민사소송으로 제기해야 하는지, 행정소송으로 제기한다면 여러 소송유형 중 어떤 소송으로 제기해야 하는지 혼선을 가져올 수 있다. “전원합의체 판결”로 정리되지 아니한 채 서로 상반된 듯한 판단내용과 일반론들이 공존하여 일관된 행정법 체계형성을 어렵게 할 수 있고, 기존 행정법체계와 이론들에 과연 조응될 수 있겠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판결도 보일 수 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판결례가 집적되며 일반론이 고착되면 외려 개별사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지 못하게 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4)
행정법학과 행정재판(실무)의 “공통의 언어”로 도그마의 순기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이러한 재판실무 경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거나 개별적 권리구제 필요에만 천착하는 것은 행정법체계 전반에 진일보를 가져올 가능성보다는 개별사건의 해결에 천착하는, 선례중심 판례연구에 행정법학이 경도될 우려를 낳는다는 점에서도 큰 틀에서 행정법실무와 행정법학 간 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5)
그런 점에서 그 순기능을 살핌과 동시에 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법원이 제시한 새로운 일반론과 이를 원용/확장해가는 판결례들이 법해석에 대한 안정화 기능을 전체 행정법체계 안에서 도모할 수 있도록, 그리고 유사한 결을 갖는 사례군에서 “적절한 수준”의 논증부담 경감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행정법학이 그 방향과 한계를 제시해 줄 필요가 적잖다.6)
다만 그러한 목적의 판례연구를 수행하는 데서 정확한 분석과 비판을 가하기 위해서는, 새로 일반론이 제시된 판례나 이를 따르는 판례군들을 살필 때 그 일반론의 내용뿐 아니라 그 법리형성시도가 이루어지고 확장되어지게 된 일련의 맥락과 배경을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는데,7) 그러한 법원의 처분성 확장 경향에 대한 학계 일각의 비판적 시각과, 또 다른 일각의 긍정론(불가피성, 권리구제 필요 등)이 교차하는 대표지점으로 아래와 같이 두 가지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행정의 특정 행위에 관한 구체적 고찰, 곧 그 행위의 성질과 같은 객관적인 요소들을 살펴 처분성을 판단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서 그 행위 대상자들과 공행정주체 사이의 상황, 관계 등을 살핀다거나(대표적으로 대법원 2010. 10. 18. 선고 2008누167 전원합의체 판결 등), 더 나아가서는 그 행위 대상자들의 주관적 인식, 곧 대상자들의 그 행위에 대한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 등(대표적으로 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6두33537 판결 등) 그 대상자들의 주관적 인식에 관한 판단까지 종합하여 그들의 권리구제 필요나 사법심사의 필요를 논하고, 이를 그 행위의 처분성판단 기준으로 삼는 대법원 일반론에 관한 것.8)
② 행위의 객관적, 법적 성질에 관한 면밀한 제시를 통해 처분성을 인정하기보다는 당사자의 법적 구제방법이 없다는 점에 더 천착하여 처분성을 인정하는 듯한 판시내용을 보이는 일련의 사례들에 관한 것(대표적으로 대법원 2018. 3. 27. 선고 2015두47492 판결).9)
본고는 위 일반론을 활용하거나 위와 같은 판시내용을 보인 최근 대법원 판결들의 경향과 그에 관한 학계의 찬, 반론을 큰 틀에서 살피면서, 그 현실적 필요와 행정법체계상 이론적 난맥상이 심화될 가능성을 견주어 고찰해 보고자 한다.
Ⅱ. 논의의 전제
이를 논하기 위한 전제로, 먼저 행정소송법상 처분개념을 살펴본다.10) 행정소송법 제2조 제1항 제1호 등에서 제시하는 처분등의 문언상 개념징표를 살펴보면, 법 문언 어디에서도 쟁송의 배경이 된 상황과 당사자의 주관적 인식 등에 관한 내용, 예컨대 ① “행정의 특정 행위에 관한” 대상자들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이라든지, ② (처분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침해된 권리나 법률상 이익을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든지, ③ “(그에 관한) 사법심사가 필요하다”는 대법원의 최근 처분성 판단논거나 일반론의 근거를 삼을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없다.
처분개념에 대한 대법원의 이런 확장적 접근의 정당성을 살피기 위한 전제로, 먼저 처분개념이 실체법상 행정행위 개념과 일치하는지 간략하게나마 살핀다. 학설은 이른바 일원설(처분=행정행위, 실체법적 개념설)과 이원설(쟁송법적 개념설, 실체법상 행정행위보다 처분개념을 더 넓게 보고 권리구제확대 도모)로 각 나뉘고, 그 외에도 형식적 행정행위론 등이 제시되고 있는데,11)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더 두텁게 도모하려는 이원설, 이른바 쟁송법적 처분설의 관점에 선다면 대체로 처분개념을 상대적으로 광범위하게 살피면서 그 분쟁을 항고소송의 틀 안에서 해결하려는 대법원의 방향성이 일응 정당화 될 수 있다.12)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법원을 통한 처분 범주 확대 양상 전부를 무비판적으로 긍정할 수는 없는데, 처분개념을 확장하여 행정소송의 새로운 문을 여는 것이 종전의 하자승계론이라든지 대세효론 및 소의 이익론, 공, 사법 구별과 행정청 개념 등 행정법이론체계 內 다양한 지점에 영향(혹은 혼선)을 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원합의체로 정리되지 않은 채 상반된 듯한 대법원 판결례들이 혼재하게끔 하여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난맥상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분명 그러하다.
한편 일원설을 취하면서 처분의 개념징표로 행정청의 특정 행위의 객관적 요소들을 살펴 처분성을 판단하는 데 친숙한 관점을 견지한다면, 처분개념과 처분성 판단범주를 확대하면서 항고소송의 틀 안에서 더 많은 분쟁을 해결하려는 법원의 이러한 경향을 보다 비판적으로 조망하게 될 가능성이 크며,13) 대안으로 당사자소송의 활성화 등을 제언하게 될 개연성도 그만큼 크다.14)
대체로 2000년 이전까지 대법원은 처분을 강학상 행정행위의 범주 안에서 최협의로 판단해 왔으나,15) 앞서 제시한 것 같이 그 이후로는 확장일로를 걷고 있다(구체적 현황은 아래에서 상론한다). 대법원을 통해 형성된 그러한 일반론은 일단 형성되면 유지되고 일정한 논증을 거쳐 가며 확장되는 속성을 갖는데,16) 그렇다면 처분성 확장경향을 띤 2010년대 후반, 특히 2020년 이후 대법원 판결들의 연원과 궤적은 어떠한가? 이러한 판결들에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논증상 특징은 무엇이며, 어떠한 사례군들로 그 적용확장이 이뤄지고 있고, 각 사례군별로 보여지는 권리구제의 현실적 필요와 법리상 문제점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Ⅲ. 대상자들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
행정의 특정한 어느 행위가 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살피면서 “행정청의 행위가 ‘처분’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불복방법 선택에 중대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그 조치 상대방의 인식가능성 내지 예측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이를 확정함이 타당하다”는 일반론(이하, “위 일반론”이라 한다)은, “행정청의 어떤 행위가 항고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추상적·일반적으로 결정할 수 없고, (..) 관련 법령의 내용과 취지, 그 행위의 주체·내용·형식·절차, 그 행위와 상대방 등 이해관계인이 입는 불이익과의 실질적 견련성, 그리고 법치행정의 원리와 당해 행위에 관련한 행정청 및 이해관계인의 태도 등을 참작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일반론을 제시했던 대법원 2010. 11. 18. 선고 2008누167 전원합의체 판결의 위 판시내용에 더 덧붙여서, 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6두33537 판결(이하, “대상판결 ①”이라 한다)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것이다.17)
위 일반론이 개별사건에서 판단기준으로 처음 제시되었던 위 대상판결 ①에서는 본래 아래 내용으로 제시되었던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준정부기관이 법령에 근거를 둔 행정처분으로서의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를 한 것인지, 아니면 계약에 근거한 권리행사로서의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를 한 것인지 여부가 여전히 불분명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불복방법 선택에 중대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그 조치 상대방의 인식가능성 내지 예측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이를 확정함이 타당하다.”
그런데 이하의 목차들에서 후술하는 바와 같이, 위 판시내용은 2018. 10. 이후 사법상 국면과 공법상 국면 사이에서 공기업 등의 특정 행위가 처분인지 판단했던 사례군들뿐 아니라 이를 넘어 2020년대 들어서는 그와 무관한 여타 사례군들에서도 처분성 판단의 일반론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데, 그로부터 확인되는 일반론(“위 일반론”)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행정청의 행위가 ‘처분’에 해당하는지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불복방법 선택에 중대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상대방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일차적으로 행정소송법 제2조 등의 법 문언에 따라 해당 행위의 객관적 성질 등을 살핀다 하더라도 종래의 개념징표나 이론으로는 처분인지 여부가 불분명한 사례군들 전반에 걸쳐, 위 일반론이 처분성 판단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는 진정한 “일반론”으로 전화된 것이다.
위 일반론이 개별사건의 판단내용 중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던 위 대상판결 ①의 사건맥락을 먼저 살펴본다.
문제가 되었던 행정의 특정 행위, 곧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는 본래 행정계약에 기해 형성된 공기업/준정부기관과 그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이뤄진 일련의 사법과정 중 상대방이 위, 변조된 시험 성적서들을 제출한 데 대응하여 해당 공기업에서 제재로 발령한 것이다.
위 일반론은, 본래 해당 공기업이 발령한 위 조치가 계약에 의한 권리행사(자격제한)인지, 공법상 자격제한인지 그 법적 성질을 종합하여 위 조치의 처분 여부를 살피는 과정에서 대법원이 처분성 인정판단의 정당성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해 대상판결 ①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판단기준이었다. 이러한 점은 대법원이 위 판단기준을 제시하면서 그 전제로 제시했던 판시내용(아래)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대법원은 “공기업·준정부기관이 법령 또는 계약에 근거하여 선택적으로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경우, 계약상대방에 대한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가 법령에 근거한 행정처분인지 아니면 계약에 근거한 권리행사인지는 원칙적으로 의사표시의 해석 문제이다. 이때에는 공기업·준정부기관이 계약상대방에게 통지한 문서의 내용과 해당 조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객관적·종합적으로 고찰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즉 이 사건에서 처분성을 판단하는 핵심적 방법이 “의사표시의 해석”, 곧 당사자의 주관적 요소를 살피는 것이라는 점을 대법원은 먼저 분명히 하고 있다.
위 판단기준과 그 전제가 된 판단 방법을 이같이 제시한 뒤 실제로 대법원이 대상판결 ①에서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가 처분인지 판단했던 내용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① 해당 공기업이 사전통지 및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를 발령하는 과정에서 그 상대방에게 불복방법으로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음”을 명기했고 더 나아가 제척기간으로 “행정소송 : 처분등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제기(단, 처분등이 있는 날부터 1년을 경과하면 이를 제기하지 못함)”이라는 내용까지 제시했으므로, 상대방이 이를 처분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고, 민사소송으로 다퉈야 할, 계약에 근거한 권리행사라고 인식할 것을 기대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임을 처분성 인정판단의 핵심요소로 제시했다.
물론 ② 공법상 통제 영역으로 포섭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당사자 권리구제에 유리했던 점, ③ 우리나라에서 공기업과 그 상대방이 맺게 되는 관계의 성격을 살펴보면 현저히 불균등한 점 등을 대법원이 종합적으로 고민했던 결과로 보이나, 피고가 된 해당 공기업이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를 상대방에게 알리며 권리구제방법으로 제시했던 위 통보내용과 그로 인한 상대방의 인식형성 및 예측가능한 권리구제 수단의 선택에 대법원이 두텁게 주목하여 처분성 인정 판단의 방점을 두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앞서 대법원 2008누167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시한 일반론보다 그 행위대상자들의 “주관적 인식”을 더 면밀하게 고려하여 그 행위의 처분성을 판단하도록 한 위 판단기준이 처음으로 제시됐던 대상판결 ① 선고 후, 현재는 “전천후 일반론”이 되어버린 위 판단기준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 먼저는 위 판단기준이 대상판결 ①의 사실관계와 완전히 결을 같이하면서 유사한 내용을 갖는 사건들에서 일반론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에는 의문이 없다.
실제로 ① “대상판결 ①”의 피고였던 공기업이 동일하게 피고가 되었고 ② 위, 변조된 시험성적서를 제출하여 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를 받았던 자들이 원고가 되었으며, ③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의 불복방법으로 행정소송이 안내되는 등 그 처분성 판단을 위한 사실관계가 앞선 대상판결 ①과 거의 동일했던 후속사건들에 대한 대법원 2019. 2. 14. 선고 2016두33544 판결, 같은 날 선고된 2016두62382 판결 및 2016두33292, 2016두33223, 2016두33247 판결에서는 대상판결 ①에서 제시된 위 판단기준이 그대로 인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일반론”으로 활용된 바 있다. 대법원은 위 후속사건들에서 위 일반론을 인용한 뒤 각 판단의 핵심 논거 중 하나로 “해당 공기업이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를 발령하면서 불복방법으로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는 점을 명기했고 상대방도 이를 인식했으며 그 내용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동일하게 제시했는데 이러한 판단내용도 대상판결 ①과 동일하다.
위 일반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앞선 사례군과 피고는 동일하지만 ① 그 처분성이 다투어졌던 조치가 앞선 사례군의 그것(입찰참가자격 제한 행위)과 다르고(공급자등록취소 및 10년의 공급자등록제한조치, 이하에서 “거래제한조치”라 한다), ② 사실관계도 다른, 곧 피고인 공기업의 원자력 발전용 케이블 구매입찰에서 원고가 다른 업체들과 물량배분비율을 정하고 투찰가격을 공동으로 정하는 등 담합행위를 하여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와 거래제한조치를 순차적으로 발령받고 이를 함께 다투었던 대법원 2020. 5. 28. 선고 2017두66541 판결(이하, “대상판결 ②”라 한다)에서도 인용되고 있다. 먼저 2014. 4. 15.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가 발령되었고, 이어 2014. 9. 17. 거래제한조치(10년)가 발령되었으며, 위 사건에서는 거래제한조치가 처분인지, 아니면 사법상 계약에 기한 조치인지 여부가 심도 있게 다투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상판결 ②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앞서 살폈던 사례군과는 달리, 거래제한조치 발령 당시 해당 공기업이 그 불복방법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을 그 상대방에게 안내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위 일반론을 인용한 대상판결 ②에서 대법원은 어떻게 위 거래제한조치의 처분성을 판단했는가? 그 판단내용을 살피면, 먼저는 거래제한조치의 주관적 요소보다는 객관적 요소, 곧 처분 본연의 개념요소로서 행정청에 피고 공기업이 해당하는지 여부 및 피고 공기업의 공급자관리지침의 법적성질이 무엇인지(공공기관이라는 우월적 지위에서 일방적으로 제정, 운용하는 내부규정으로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행정규칙”)에 관한 판단에 더 집중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위 지침에 근거한 거래제한조치가 고권적 성격을 가진 것이라는 점을 대법원은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상판결 ②에서 주관적 판단요소를 담은 위 일반론을 인용한 연유는 무엇이며, 위 일반론을 인용한 뒤 실제로 대법원은 어떻게 판단했는가? 대상판결 ②의 하급심 판결들을 먼저 살피면, 앞선 사례군에서 이미 검토되었던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와 위 거래제한조치가 실질적 성격과 효력이 동일한, 사실상 같은 조치라는 것을 전제로 판단이 이뤄져 왔다.18) 그런데 대상판결 ②에서 대법원은 ㉮ 위 일반론을 제시하여 거래제한조치의 처분여부를 상대방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을 함께 살펴 판단할 문제로 보되, ㉯ 그 판단방법으로 하급심 판단내용을 수긍하면서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와 다를 것 없는) 거래제한조치가 “계약내용으로 편입됐는지 여부 및 상대방에게 충분한 설명이 이뤄졌는지 여부”를 살펴야 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 거래제한조치가 계약내용으로 설명되고 편입되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므로 계약에 따른 제재조치가 아니며, ㉱ 그러므로 “처분”이라고 보았다. 결국 2년 기간제한이 있는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에 비할 때 실질적 제재내용은 동일하면서도 10년의 기간을 부과한 거래제한조치의 처분성을 인정하여, 상대방의 권리구제의 필요를 실현하려 했던 결과로 보인다.
결론에 있어서는 타당할 수 있으나, 실제로 대상판결 ②의 판단내용을 살피면 위 일반론을 인용했음에도 위 일반론이 제시하는 핵심적 판단기준인 “불복방법에 중대한 이해관계를 갖는 상대방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에 관한 실제 판단내용/사실관계의 포섭이 앞서 살폈던 사례군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구체적이거나 설득적인지 다소 의문이다. 대법원은 ‘청렴계약 및 공정거래 이행각서’의 내용을 살핀 뒤, 그 각서에 거래제한조치에 관한 내용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았고 추상적으로 “공정한 입찰질서 및 거래를 방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는 내용만 제시되었으며 그 위반에 대한 제재수단으로 거래제한조치가 아닌 여타 조치들만 나열하고 있어 거래제한조치가 상대방에게 계약 내용으로 설명되고 편입되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거래제한조치가 계약내용에 편입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를 계약에 따른 제재조치로 볼 수는 없고, 그러므로 거래제한조치는 처분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거래제한조치가 계약내용으로 설명/편입되어 있지 않으므로 상대방이 이를 사법상 제재조치로 “인식”하기도 어렵고 민사상 권리구제수단을 취할 것을 “예측”하기도 어려웠으리라고 대법원이 전제해버리고 그 지점에 관한 구체적 판단을 생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상판결 ②를 살펴보면 거래제한조치가 계약내용에 편입되어 있지 않았다는 판단 뒤, 상대방(원고)이 실제로 이를 어떻게 인식했고 그에 따라 권리구제수단을 어떻게 예측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앞서 살폈던 사례군과 비교해 볼 때 본 건에서는 피고 공기업이 불복수단으로 행정소송 등에 대한 안내를 달리 하지 않았는데, 그 지점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원고가 거래제한조치가 처분이라고 인식하거나 행정소송으로 다툴 것을 예측하기가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상대방이 거래제한조치를 처분으로 인식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논거, 그리고 항고소송을 권리구제수단으로 취할 것으로 예측할 만한 더 적극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계약편입여부에 관한 판단이 위 일반론에 관한 판단의 전부인 셈이다.
목차 Ⅰ.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대법원이 처분개념을 넓게 인정해가려는 데서 파생될 수 있는 문제점이 적잖은데, 특히 행위의 객관적 성질을 살피는 것을 넘어서서 상대방의 주관적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까지 살펴 그 행위의 처분성을 판단하려는 일반론은 결국 그 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주관적 인식”은 어떠했는지, “상대방이 그 권리구제수단을 어떻게 예측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법원의 사후적 판단과정을 한번 더 거치면서 Case By Case, 이른바 카주이스틱적인 판단과 결론을 만성화시킬 수 있고, 결과적으로 후속 사건들에서 상대방이 행정의 특정 행위를 다투려면 민사소송으로 제기해야 하겠는지, 행정소송으로 제기해야 하겠는지 큰 고민을 낳게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위 일반론을 활용한다거나 더 나아가 새로운 국면에 확장 적용하려는 경우, 위 일반론에 맞게 그 판단내용과 판단요소들을 면밀하게 제시하거나 일관성 있는 세부기준을 함께 제시하여 후속사건에서의 혼선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앞서 위 일반론이 판단기준으로 첫 제시되었던 대상판결 ① 및 그와 결을 완전히 같이 한 일련의 후속사건들에서는, 대법원이 위 일반론을 제시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피고 공기업이 적극적으로 처분의 외관을 형성한 점(불복수단으로 행정소송 안내 등) 및 상대방이 이를 인식하고 권리구제수단을 예측(행정소송)한 점에 대해 면밀하게 판단하면서 그러한 요소들이 그 판단의 핵심이었다는 점을 제시함으로써 후속사건에서 위 일반론 적용의 방향성, 통일성 및 예측가능성을 담보하려 했던 바 있다.
대상판결 ①이 2018. 10. 25. 선고된 뒤 그 다음 달에 선고된 대법원 2018. 11. 28. 선고 2015두52395 판결, 같은 날 선고된 2017두34940 판결의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그러한데, 위 2015두52395 판결 및 2017두34940 판결에서는 모두 조달청 거래정치조치의 처분성이 다투어졌고, 대법원은 대상판결 ①의 위 일반론이 아닌 대법원 2008누167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제시된 일반론만 제시하면서 “피고가 이 사건 거래정지조치를 하면서 원고에게 보낸 문서에는 이를 행정처분으로 볼 수 있는 기재가 없기는 하다”고 설시하여 상대방의 인식가능성 및 예측가능성을 폭넓게 고려하는 위 일반론을 처분성 판단기준으로 인용하지 못했던 연유를 암묵적으로 제시하면서19) 행정청의 “적극적 인식형성”과 절차상 확연하게 확인 가능한 요소(그 불복방법 고지 여부 및 그 내용)가 위 일반론을 제시하고 적용(상대방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 판단)해 가는 데에 핵심 요소임을 재차 제시하고 있었다. 위 일반론이 면밀한 고려 없이 확장 적용될 경우 초래될 혼란을 고려하면20) 위 일반론의 적용에 관해 보수적 접근을 취하면서 그 적용과정에서 면밀한 세부판단내용을 제시했던 대법원의 초기 판단기조는 일응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상판결 ②를 통해 대법원은 위 일반론을 행정청의 “소극적 인식형성”, 혹은 계약편입 여부와 같이 의사표시의 해석을 더 폭넓게 요하는 사례군들에까지 확장 적용하려는 듯 하면서도 후속사건들에서 그 적용의 통일성과 예측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위 일반론상 판단요소에 충실한 판단, 예컨대 ㉮ 이행각서 상 제재조치가 어느 정도까지 적시되고 상대방에게 설명되어야 이런 결을 갖는 사건에서 계약편입에 해당하며, ㉯ 그 외에 어떠한 요소가 있어야 거래제한조치의 처분성에 대한 상대방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이 담보되어 거래정지조치를 처분으로 인정할 수 있겠는지에 대한 면밀한 판단을 달리 제시하지 않고 위와 같이 판단하는 선에서 그 논증을 마쳤다. “당사자 간 계약내용 중 해당 제재조치가 설명, 편입됐는지 여부”라는 사후적해석여지가 큰 추상적, 주관적 기준만 제시한 셈이고, 그와 상반되는 다른 요소들이 당사자 간에 추가로 확인될 경우 종국적으로 처분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론 등도 달리 제시하지 않은 셈인데,21) 대상판결 ② 선고 후 하급심에서, 공행정주체의 특정 조치가 사법상 제재인지 처분인지 여부가 다투어지고 있고 해당 조치의 그 계약내용 편입여부가 그 판단기준으로 제시/적용되고 있는 양상을22) 살펴보면, 위 일반론의 확장적용을 위한 첫 대법원 판단인 대상판결 ②의 판시내용이 보다 면밀하고 정교할 필요가 있었겠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상판결 ②에서 보인 이러한 판단내용상 문제점은, 본질적으로는 그 판단의 전제에 내재되어있는 법리상 문제에 기인했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상판결 ②에서 대법원은 그 하급심 판단기조를 유지하면서 일응 입찰참가자격 제한 행위와 거래제한조치가 실질이 동일한 것으로 전제했으나, 대상판결 ② 선고 후 법리적 관점에서, 입찰참가자격 제한 행위와 거래제한조치는 본래는 본질적 성격이 상이한데도 대법원이 무리하게 동일한 성질의 것으로 보고(특히 위임규정의 의미와 내용을 확대해석하는 등) 후자의 처분성을 인정했다는 문제제기,23) 더 나아가 본질적으로 사법작용의 영역으로 유보해 두는 것이 법리적으로 완결된 판단이라는 문제제기가 있었으며24) 일응 적절한 비판으로 생각된다.
지적되는 법리상 문제, 특히 입찰참가자격제한과 거래제한조치 사이의 법적 성격과 법효과에 차이가 있다는 지적은 두 조치를 발령하면서 보여진 사실관계의 차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로 피고 공기업이 두 조치를 발령하면서 각각 경료했던 절차와 형식의 차이를 낳게 되었을 것이고, 그런 맥락에서 해당 공기업이 달리 거래제한조치에는 불복방법으로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는 안내를 하지 않았던 것 아닌지 생각해 볼 수도 있는데, 결국 이러한 법리상 문제와 사실관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앞서 입찰참가자격 제한 행위의 처분성을 인정한 일련의 판결의 연장선에서 거래제한조치의 처분성도 인정하고 그 정당성을 제시하기 위해, 다소 무리하게 위 일반론을 제시하면서 그 판단방법으로 더 주관적이고 추상적일 수 있는 계약내용편입 여부를 제시했던 것은 아닌지, (물론 대상판결 ②에서 당사자의 권리구제 필요를 직시했던 현실적 연유가 컸겠으나)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주관적인 요소들을 처분성 판단에 고려하도록 처음으로 제시했던 대상판결 ①을 필두로 앞선 사례군에서 대법원은 위 일반론을 제시한 뒤 객관적으로 납득가능한 뚜렷한 사실관계상 요소를 들어 그 일반론에 부합하는 분명한 판단을 제시했고, 이러한 판결례들이 축적되면서 “행정청이 불복방법으로 행정소송을 안내하거나 더 나아가 그 제척기간으로 처분에 대한 불복기간을 안내하기까지 한 행위라면 그 처분성이 전향적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는 통일되고 일관된 방향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다음 목차에서 제시하는 사례군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대상판결 ②와 같이 위 일반론을 인용(혹은 확장적용)하면서도 그 일반론에 충실한 판단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물론 그 사건에서 권리구제의 필요를 도모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러한 판단이 불가피했을 것이나) 그와 유사한 후속 사건들에서는 이를 행정소송으로 다퉈야 하겠는지, 민사소송으로 다투어야 하겠는지 외려 당사자들에게 혼선을 가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외견상 사법계약의 형식을 취한 공행정작용이 비등해지면서 특정 행정작용이 계약에 기한 것인지/행정처분인지 다투어지는 등 앞서 살핀 사건들과 유사한 결을 갖는 사건이 적잖은 요즘, 권리구제수단의 선택에 있어 후속사건 당사자들의 혼선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지, 당사자 권리구제가 반드시 공법관계 안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는지 및 그 실익이 분명한지 질문해 보면서, 주관적 판단요소들이 제시된 위 일반론을 확장 적용하는 데는 보다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위 일반론은 그 내용을 처분성 판단기준으로 첫 제시했던 입찰참여제한행위에 관한 사례군을 넘어서서, 최근에는 이와 이질적인 사례군에 관한 대법원 판결들에서도 자주 확인되고 있다.
최근 위 일반론이 원용된 사례군을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는데, 먼저는 ① 근로복지공단의 사업주에 대한 개별사업자 사업종류변경결정의 처분성을 인정했던 사례군(대법원 2020. 4. 9. 선고 2019두61137 판결 및 같은 날 선고된 2019두62130 판결,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9두61120 판결, 각 파기환송), 두 번째로는 ② 육아휴직급여 차액신청 거부행위의 처분성을 인정했던 사례군(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5두50993 판결 및 같은 날 선고된 2016두59751 판결과 2017두44824 판결)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세 번째로는 ③ 재신청/새로운 신청에 대한 응답 등 원처분과 매우 가까운 시간적 간격을 두고 그와 일련의 관계를 이루는(예컨대, 이의신청과 그 기각결정 등) 행정의 “후속 행위”의 처분성을 인정했던 사례군을 생각해 볼 수 있다(세 번째 사례군의 판결들은 아래 표 참조).
위 세 사례군에 속한 거의 모든 판결에서 대법원이 위 일반론을 제시한 뒤, 대상행위의 처분성을 부인했던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면서 처분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대법원이 최근에는 여타 사례군에서까지 위 일반론을 처분성 판단에 적극 활용하면서 처분성 인정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각 사례군에 관한 분석은 목차를 바꾸어 살펴본다.
첫 번째 사례군의 첫 판결(대법원 2020. 4. 9. 2019두61137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앞서 살핀 입찰참가자격제한조치의 처분성을 다툰 사례군과 그 사실관계는 완전히 다르다.
본 사례군에서는 사업주와 근로복지공단 간의 관계에서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주에게 발령한 선행행위인 사업종류변경결정과 후행행위인 산재보험료부과처분 중 후행행위만 처분성을 인정하여 이를 다투도록 했던 종전 판단례에서 더 나아가, 선행행위인 사업종류변경결정의 처분성을 인정하여 이를 다툴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던 바 있다.
그런데 선행행위인 사업종류변경결정이 처분인지 판단하면서 대법원은 위 일반론을 인용한 뒤, 앞서 살폈던 사례군에서와 동일하게 “불복방법에 대한 고지로, 처분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는 점이 상대방에 제시되었던 사정”을 핵심 논거로 삼아 위 2019두61137 판결에서 처분성을 인정하였다. 물론 사업종류변경결정의 성질이 “확인적 행정행위”인 점을 서두에서 대법원이 먼저 밝혔고, 더 나아가 사업종류변경결정이 순전히 조기 권리구제를 가능케 하기 위해 인정되는 쟁송법적 처분이 아니라 실체법적 처분에 해당한다는 점을 보충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종국적 처분성 인정 판단의 핵심요소 중 하나로 대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이 위 변경결정을 발령하면서 행정절차법상 절차를 준수하여 처분발령의 외형(사전통지, 의견통지절차, 상대방에 대한 통지 등)을 모두 갖추었다는 점에 주목했는데, 특히 “처분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고 통지함으로써 상대방이 이를 처분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제시하면서, 더 나아가 그렇게 상대방에게 안내했음에도 소송계속 중 위 변경결정이 처분이 아님을 주장한 근로복지공단의 주장은 신의성실원칙에 어긋난다는 점까지 제시하고 있다. 뒤따른 2019두62130 판결 및 2019두61120 판결에서는 위 2019두61137 판결을 인용한다는 점만 제시되고 있어 이런 사실관계가 전후사건에 동일했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나, 각 하급심 판결을 살펴보건대25) 피고가 동일하고 발령한 각 행위나 경료한 절차도 동일한 점을 고려하면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 일반론을 인용했던 앞선 목차(Ⅱ.)와 본 목차의 모든 사례군(대상판결 ②는 제외)에서 대법원이 그 조치/행위 상대방의 인식가능성 내지 예측가능성을 중요하게 고려하면서 특히 행정청에 의해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는 점이 고지된 사정을 깊이 살폈던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행정청의 그러한 통지로 대상자들이 해당 행위/조치에 갖게 되는 권리구제방법(행정소송)에 대한 인식과 신뢰가 상당할 수밖에 없고,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이 처분성 인정 여부를 판단하는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 한 위 일반론에 충실한 판단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법원이 이에 주목하여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법리적으로 본 사례군을 재 조망해본다면, 일종의 선행결정에 해당하는 사업종류변경결정에 처분성이 인정될 경우, 선행결정을 다투지 않고 예전처럼 종국적 성격을 띤 산업재해보상보험료부과처분이 내려지면 이를 다투려고 했던 자에게 앞선 선행결정에 처분성이 인정된 데 따른 불측의 피해, 예컨대 이제 처분으로 인정된 선행결정을 다투지 않아 선행결정의 위법성을 후행결정에서 다툴 수 없게 되는 데 따른 피해가 가해질 우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는지, 위 2019두61137 판결에서 대법원은 방론으로 선행처분을 미처 처분으로 인식할 수 없어 불복하지 않은(못한) 자를 위한 별도의 판단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종래 대법원의 하자승계론과는 논리가 상이한데, 이와 같이 위 일반론을 인용하면서 인접 선행행위에 처분성을 인정하는 판단기조가 다른 사례군으로 계속 확장된다면 하자승계, 제소기간 등에 관해 당사자들에게 불측의 피해를 가한다거나 선제적 권리구제조치를 취할 것을 강요하게 될 것은 아닌지 고찰해 볼 필요도 적잖다.26)
현실적으로 본 사례군에서는 처분성을 인정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선후행행위 중 선행행위에 처분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위 일반론을 확장적용하는 것이 행정법체계와 법리상 바람직한지에 관한 고민도 계속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소송경제상 선행행위의 처분성을 부인하고 후행처분(산재보험료 부과처분)을 다투면서 선후행행위의 일련의 위법성을 일괄적으로 다투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용이할 수 있다는 하급심 판단의27) 함의도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위 일반론이 제시되고 적용된 두 번째 사례군(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5두50993 판결 및 같은 날 선고된 2016두59751, 2017두44824 판결)도 앞선 사례군들과 사실관계는 다르다.
육아휴직 종료 후 1년 내에 육아휴직급여를 이미 지급받았던 원고가 잘못된 통상임금산정을 주장하면서(통상임금범위에 관한 대법원의 새로운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 재산정 금액에 대하여 고용노동청에 추가지급신청을 한 데 대한 지급거부 통보의 처분성이 다투어진 사건으로, 그에 관하여 맞바로 당사자소송으로 지급을 구할 것이 아니라 항고소송으로 추가금액에 대해서도 구체적 권리를 먼저 인정받은 후 지급을 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위 처분성 인정 판단에 전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각 육아휴직급여차액신청 지급거부행위의 처분성을 인정하면서 상고를 기각했던 위 대법원판결들과 각 하급심 판결들을 살펴보면28) 역시 각 지급거부통보 과정에서 앞서 살핀 사례군과 동일하게 그 불복방법의 고지로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는 점이 제시되고 안내된 사실관계가 확인되며, 대법원이 차액지급거부행위의 처분성을 인정하는데도 그런 사정을 두텁게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본 목차의 위 대법원판결들에서 위 일반론 활용의 함의는, 그 선고 직전 먼저 선고되었던 대법원 2021. 3. 18. 선고 2018두47264 전원합의체 판결 중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의 내용 중 일부를 통해 구체적으로 추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구 고용보험법 제70조 제2항에서 정한 육아휴직급여 청구권 권리행사기간의 법적성격(제척기간 및 강행규정 여부)이 다퉈졌던 위 2018두47264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다수의견의 논리, 곧 사회보장수급권이 ① 실체법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객관적 사정 발생에 따른 추상적 권리와 ② 관할 행정청의 지급결정에 따른 구체적 권리로 나뉘며 후자는 당사자소송으로 다퉈야 한다는 데 대한 반대의견의 반박, 곧 “구체적 수급권을 다투는 소송이 일률적으로 공법상 당사자소송이라는 다수의견에 따른다면 후자(위 사례군에 관한 것)의 경우는 당사자소송으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위 사례군의 지급거부 통보가 처분이며 먼저 항고소송으로 다투어져야 한다는 점을 더 분명히 하기 위했던 것으로도 보인다.
위 일반론이 제시되고 적용된 세 번째 사례군은 다시 두 유형의 사례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는 ① 앞서 살폈던 일련의 사례군들에서 대법원의 처분성 판단기조와 유사하게 그 판단이 이뤄진 사례군, 곧 행정청의 “불복방법 고지내용(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고 고지하는 등)”을 살핀 뒤 대법원이 상대방의 인식가능성 및 예측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그 행위의 처분성을 인정한 사례군(이하, “1그룹”이라 한다), 둘째로는 ② 그러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음에도 특히 2022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대상자들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에 관한 위 일반론의 포섭 범주를 더 확대해 가면서 처분성을 인정해 간 듯한 사례군(이하, “2그룹”이라 한다)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2그룹 사건들, 그리고 1그룹 사건들 중 2022년에 선고된 사건들에서 대법원이 위 일반론을 적용하여 처분성을 판단한 내용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① ㉮ 이주대책대상자 제외라는 1차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에의 응답인 2차 결정의 처분성을 살피면서 “그(2차 결정) 불복방법으로서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안내된 점을 2차 결정에 대한 처분성 인정의 핵심 판단논거로 삼았던 위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20두50324 판결은, 이전 사례군들의 판단 경향을 그대로 보이고 있다.
㉯ 정부출연금전액환수등 처분(1차 처분통지)에 관한 이의신청에 대한 응답(2차 통지)의 처분성을 살핀 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1두60748 판결, ㉰ 유치원에 대한 교육청 감사결과 통보에 뒤따랐던 시정명령의 처분성을 인정한 대법원 2022. 9. 7. 선고 2022두42365 판결에서도 이러한 판단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1그룹 내에서도 2022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처분성 인정 범주가 확장되어가고 있는 양상이 보인다. 물론 “그(2차 결정) 불복방법으로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안내되었던 사실관계는 세 판결에서 동일하고, 동일하게 처분성 인정의 핵심 판단요소로 제시되었지만, 그 중 2022년 선고된 두 판결에서는 후행행위(2차 통지, 시정명령)가 선행행위와 그 실질과 효과에서 분명히 구별되는 행위라는 점, 곧 후행행위가 선행행위를 변경하는 행위라거나(2021두60748) 선행행위와 별도의 법효과를 갖는 행위라는 점(2022두42365)이 각 판결문에서 추가로 제시되고 있다.
② 2그룹에 속한 사건들에서 대법원 판단내용을 살펴보면, 2022년 들어서 조금씩 당사자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 폭이 더 확대되어가는 경향이 더 뚜렷해지고 있는 점이 분명하게 확인된다. 이제는 당해 행정청에 의해 불복방법(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는 안내)이 안내되거나 명기되지 않았음에도 그 선, 후행행위의 발령 형식과 각 발령과정에서 각 경료된 절차들, 양자 간 차이점과 공통점 등등을 면밀하게 살펴 그 중 후행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인식가능성”과 권리구제의 “예측가능성”을 살핀 뒤, 이를 근거로 후행행위의 처분성을 인정한 판결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21두53894 판결에서 대법원은, 원고 소유 토지의 경계확정으로 지적공부상 면적이 감소된 점을 들어 00시장이 지적재조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원고에게 조정금수령을 통지하자(1차) 을이 구체적으로 이의신청 사유와 소명자료를 첨부하여 이의를 신청했고, 그에 대해 00시장이 지적재조사위원회의 재산정 심의, 의결을 거쳐 종전과 동일한 액수의 조정금의 수령을 통지(2차)한 사안에서, 그 2차 통지의 처분성을 살피기 위해 위 일반론을 제시/적용하면서 아래와 같이 앞선 사례군들보다 판단의 폭을 확장하였다.
ⓐ 비록 지적재조사사업조정금 이의신청기각에 대하여는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는 등의 불복방법이 안내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 이의신청기각내용을 담은 2차 통지는 최초 조정금통보(1차 통지)와 달리 “(1차와) 별도로 심의, 의결하였다는 내용”이 분명히 담겨있고, ⓒ 이의신청기각을 대상으로 제기한 행정심판에서는 그 심판기각재결서에서 행정소송법에 따른 불복방법이 고지된 점에 더 주목한 것이다. 2차 통지에는 직접적으로 그 불복방법 등에 대한 안내가 없었음에도, 2차 통지가 이루어지기까지 있었던 그 전의 1차 통지와 그 이후 행정심판기각재결에 이르는 일련의 절차들의 내용을 모두 살펴, 원고가 2차 통지를 처분으로 인식하고 예측했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앞선 사례군들의 일반론 적용기조를 더 확장하면서 처분성 인정 폭을 더 넓혔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처분성 인정의 현실적 필요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인데, 조정금통보(1차) 후 상대방이 이의신청 과정을 경료하며 이의신청결과가 나올 때까지 달리 조정금통보(1차)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가 제소기간이 도과되어 버린 경우, 이의신청기각통지(2차)의 처분성을 인정하여 다툴 수 있도록 함으로써 권리구제를 도모해 줄 필요를 대법원이 직시했던 결과로도 보인다.
㉯ 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1두31559 판결(및 대전고등법원 2020. 10. 24. 선고 2020누10195 판결)에서도 대법원은 기술혁신촉진지원사업참여제한 및 출연금환수처분(1차)에 관한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2차 통지)의 처분성을 살피기 위해 위 일반론을 제시/적용하며, 역시 앞선 사례군들에 비하여 그 적용의 폭을 넓히고 처분성 인정의 범주를 확장하였다.
대법원은 위 2차 통지 당시 전달된 통보서를 살펴보면 직접적으로 불복방법 등에 대한 안내가 없었음에도 ⓐ 원처분(1차)과 그 형식은 동일하여 일응 처분의 형식을 갖췄으면서 그 내용은 모두 원처분과 구별되어 독자적으로 기재되었고 ⓑ 환수금 납부기한 등 중요부분이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1차) 통보서에서는 실질적으로 변경된 점을 판단의 핵심 논거로 삼아, 2차 통지를 원고가 처분으로 인식하고 예측했음을 들어 그 처분성을 인정하였다.
이렇게 판단기조가 둘로 나뉘면서도 2022년을 기점으로 위 일반론이 제시/적용된 사례군전반에 걸쳐 처분 범주 확장 경향이 보이게 된 데는,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는 불복방법이 안내되지 않았던 사례군에서도 이제는 당사자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을 보다 폭넓게 살펴 해당 행위의 처분성을 인정할 필요를 대법원이 인정했던 연유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법리적 관점에서 본다면, 위 1그룹과 2그룹 사례들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위 ①그룹의 ㉮ 판결(이주대책대상자제외, 2020두50324 판결)과 ②그룹의 ㉮ 판결(지적재조사사업조정금 이의신청기각, 2021두53894 판결)을 비교해 보면, ①의 ㉮ 판결에서는 이주대책이라는 수익적 처분을 전제로, 수익 처분의 발급을 구하는 새로운 신청을 한 데 대한 거부로 법규상 또는 조리상 신청권이 인정되는 상황을 전제로 한 반면, ②의 ㉮ 판결에서는 원고에게 조정금의 지급을 신청할 법률상 신청권이 인정되지 않는데도(지적재조사법에 따르면 직권으로 조정금을 산정하여 지급 또는 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따름이다) 대법원이 원고의 이의신청을 새로운 신청으로 “선해하여(새로운 신청을 하는 취지로 봄으로써)” 그 처분성을 인정하였다는 점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29)
②의 ㉮ 판결에서 처분성을 인정한 논리가 법리적으로 타당한지에 관해서는 일부 비판도 있으나,30) 결과적으로 종전의 행정법이론에 비추어 볼 때 처분성 인정이 더 어려웠던 국면에까지 대법원의 적극적 판단에 의해 처분성이 인정되어가면서 지속적으로 처분의 범주가 확대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위 ①의 ㉮ 판결과 ②의 ㉮ 판결 모두에 대해, 이의신청 기각결정의 처분성을 일찍부터 부인해 왔었던 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0두8676 판결에 대하여 명시적 판례변경이 없었음에도 그와 상반되는 판결이 공존하게 되는 것으로 보고 이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견해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31)
개별적, 구체적으로 권리구제 범주를 확대해 오려는 시도가 어떠한 국면에서는 심각한 이론적 난맥상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본다면 이러한 지적의 취지를 숙고할 필요도 적잖다.
행정의 행위형식과 양상이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그 정책실행수단도 고전적 행정청의 그것에 국한되지 않고 공기업, 준정부기관 등을 활용해가며 계속 폭넓어지고 있고, 행정실무상 일련의 행위프로세스를 구성하는 다양한 단계별 작용 중 어느 단계, 어느 시점까지 그 행위의 처분성을 인정하여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사자의 권리구제와 분쟁의 효율적 해결을 도모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의 행정현실에서, 행위의 객관적 성질만으로는, 그리고 종래의 처분개념만으로는 이것이 과연 처분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한 점에서, “행정청의 행위가 ‘처분’에 해당하는지가 불분명한 경우”라는 전제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 불복방법의 선택에 중대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당사자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이라는 새로운 일반론을 제시하면서 이를 처분성 긍정판단의 주된 논거로 삼았던 대법원의 최근 주요 판결내용을 각 하급심 판결내용들과 함께 살펴보면, 초기에는 행정청이 그 행위가 마치 처분인 것 같은 외형을 형성한 점, 특히 ① 행정청이 불복방법을 고지하면서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거나 “행정처분”이라고 안내한 데 대한 상대방의 인식과 신뢰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점을 대법원이 두텁게 고려했고, 그러한 요소들을 처분성 인정판단의 핵심 논거로 삼았다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 그 일반론에 충실한 판단이었고 ㉯ 결과적으로 국민의 권리구제의 길을 넓혔으며, ㉰ 행정청 스스로도 “처분”이라는 인식을 어느 정도 가진 채 그 불복방법을 안내했던 행위들을 대상으로 대법원이 일응 보수적으로 위 일반론을 적용함으로써, 주관적 요소를 담은 새로운 처분성 일반론(판단기준)을 제시한 데 따른 폐단을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② 이러한 판결례들이 축적되어가는 과정에서 위 일반론이 과도하게 확장적용되는 것은 분명 경계할 필요가 있고,32) 위 일반론에서 제시한 요소들, 당사자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이라는 요소들이 실제 논증과정에서 사실관계상 충분히 현출되고 면밀하게 검토될 수 있으며 결론적으로 납득 가능한 사안에서라야 그 적용과 확장 가능성을 새롭게 타진해 봄이 타당하다(아래 표로 정리해 보았다).
법리적으로 학계의 적잖은 비판이 있었던 위 2017두66541 판결을 보더라도 그렇고, 그와 대조적으로 행위 발령 당시 불복방법 고지(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는 등) 등이 없었음에도 위 일반론을 제시한 뒤 그에 관해 면밀하고 비교적 납득 가능한 판단을 이뤄가면서 위 일반론 확장범주를 넓혀갔던, 2022년을 시점으로 한 앞선 판결들을 살펴보더라도 그러하다.
한편, 가사 행정청이 불복방법을 고지하면서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고 안내했거나 더 나아가서 행정처분이라고 안내했던 사례군에서도, 그러한 행정의 특정 행위에 처분성을 인정하는 것이 과연 그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그와 결이 유사한 후속사건의 예비 당사자들에게도 유리하겠는지, 전체 행정법체계와 이론상 바람직한지 계속 살펴볼 필요도 있다.
개별 판결에서 그 방론으로 하자승계 및 제소기간 등에 관하여 불측의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대법원이 설시하였다고 하더라도 기존 법리들과 조응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와 결이 유사하거나 약간 상이한 후속사건에서 과연 그 당사자가 그러한 불측의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겠는지, 과연 어느 단계부터 행정소송을 제기했어야 하는 것인지 계속 고민하게 될 수 있으므로, 다각도로 고찰하면서 그 처분성 확대에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는데, “갑”의 위치에 있을 개연성이 큰 행정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파기환송한 판결이 많았다는 점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법원의 기존의 처분성 인정 경향과 기조에 비하면 한 걸음 더 나아간 판결들임을 유추해 볼 수 있고, 그만큼 대법원이 처분성 확장 경향에 적극적이라는 점도 엿볼 수 있겠는데, 본고에서는 다 살피지 못했으나, 그러한 행정의 특정 행위들을 처분으로 인정하여 이제 사법통제 영역으로 끌어왔다면 그 본안판단의 내용, 심사기준과 심사강도는 행정(청)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방향성이나 함의를 갖는지도 함께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Ⅳ. 권리구제 필요, 사법심사 필요
행정의 특정한 행위에 대하여, 분쟁을 조기에 해결하기 위한 사법심사의 필요가 있다거나 권리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사법심사의 필요가 있다는 판시, 혹은 당사자 권리구제 필요가 있다거나 더 나아가 처분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달리 권리구제를 받을 방법이 없어 행정의 특정 행위에 처분성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판시는, 대체로 처분성 인정여부에 관한 대법원의 일반론 중 그간 제시되어 온 “법치행정의 원리”에 대한 고려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이론적으로는 쟁송법적 처분개념에 밑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33)
종전에 극히 간헐적으로만 보여오던 이러한 판시는34) 대법원 2010. 11. 18. 선고 2008두167 전원합의체 판결 및 대법원 2011. 6. 10. 선고 2010두7321 전원합의체 판결선고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일반론으로 활용되게 되었는데, 그 이전 선고된 대법원 2008. 5. 8. 선고 2007두10488 판결 및 대법원 2009. 10. 15. 선고 2009두6513 판결과 더불어 위 전원합의체 판결들에서 본격적으로 “법치행정의 원리”를 일반론으로 제시하며 이에 덧붙여 “분쟁을 조기에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할 필요를 검토하고 처분성 인정판단의 주된 논거로 설시하게 되면서, 행정소송법 제2조에 따라 행정의 특정 행위의 객관적 성격과 내용에 천착하여 처분여부를 검토하던 데서 벗어나 대법원이 처분성 인정의 현실적 필요를 보다 본격적으로 살펴가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분쟁의 조기해결 외의 다른 사유로 사법심사의 필요가 있다거나 권리구제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제시하며 처분성을 인정한 판시, 더 나아가서는 처분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권리구제를 받을 방법이 없어 처분성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판시도 최근에는 대법원의 개별 행정사건에서 적잖이 보여지고 있다. 다만, 이러한 판시는 개별사건이나 특정한 사례군의 특수성에 천착한 측면이 더 크고, 일관된 경향과 일반론 형성에 기여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잖다. 실제로 이러한 취지를 제시한 대법원 판결들 내용을 살펴보면, 법치행정에 관한 일반론 외에는 별도로 분쟁의 조기 해결의 필요나 사법심사의 필요, 권리구제의 필요 그 자체를 일반론으로 형성하거나 제시, 인용하지는 않고 개개 판결마다 그러한 필요를 개별적으로 제시하는 데에 그쳤던 것으로 보이나, 그러한 판단내용을 제시한 사례들이 이제 제법 축적된 것도 분명하다.
정연한 행정법 도그마틱에 의하기보다는 개별, 구체적 상황을 전제로 Case by Case식의 대처를 하는(이른바 ‘카주이스틱적 접근’) 행정판례로 인한 일관성과 체계성의 문제를 비판적 관점에서 조망할 필요도 적잖고,35) 그러한 판단을 하게 된 현실적 필요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면서 그 가운데에서 행정환경의 변화상이나 새로운 행정통제의 시대적 필요, 그리고 새로운 행정법 도그마틱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 등을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행위의 객관적 성격과 더불어 분쟁을 조기에 근본적으로 해결할 필요를 두텁게 살펴 처분성을 인정하려는 대법원의 판단경향은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법치행정에 관한 일반론을 제시하며 이러한 필요를 그 판단내용에 더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같은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판시내용은 앞선 목차(Ⅱ.)의 사례군들에서 제시된 일반론과는 달리 처분성 인정에 관한 전형적인 “일반론”으로까지 정착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사건에서 대법원이 지속적으로 그 판단의 논거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찰참가제한요청결정의 처분성을 살핀 일련의 사례군에서 대법원의 판단내용을 보더라도 그러하다(대법원 2023. 2. 2. 선고 2020두48260 판결 및 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0두47892 판결). 그 첫 사건인 위 2020두48260 사건에서 대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련법령에 따라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입찰참가제한요청을 하게 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요청받은 관계 행정기관의 장은 그 사업자에게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하여야 하고, 원칙적으로 그 사업자는 관계 행정기관의 장의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항고소송으로 다툴 수 있지만, “분쟁을 조기에 근본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법치행정의 원리에 입각해 볼 때 그에 앞서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찰참가자격제한 요청결정을 다툴 수 있게 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를 처분으로 본다”는 판단을 하면서 법치행정에 관한 일반론과 더불어 그 분쟁의 조기해결의 필요를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후속 사건인 2020두47892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를 하나의 일반론으로까지 새로 제시하고 있다.36)
앞서 목차 Ⅱ. 4.에서 살폈던, 근로복지공단의 사업주에 대한 개별사업자 사업종류변경결정의 처분성을 인정했던 사례군(대법원 2020. 4. 9. 선고 2019두61137 판결 및 같은 날 선고된 62130 판결,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9두61120 판결, 각 파기환송)을 재차 살펴보더라도, 그 첫 판결(대법원 2019두61137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법치행정의 원리에 관한 일반론을 인용하면서 이에 덧붙여 사후적으로 개개의 산재보험료 부과처분을 다투도록 하는 것보다는 분쟁의 핵심 쟁점인 사업종류변경결정 당부에 관해 그 판단작용을 한 행정청인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바로 다투도록 하는 것이 소송관계를 간명하게 할 뿐 아니라 분쟁을 조기에 극복하는 방법이므로 사업종류변경결정을 처분으로 인정할 필요가 상당하다는 점을 명시했던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위 사업종류변경결정에 관하여는 처분의 외형을 갖는 일련의 절차를 경료한 경우 그 (선행)행위의 성질은 실체법적 처분이며 단순하게 그 조기 권리구제만 목적한 쟁송법적 처분이 아님을 분명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또한 조기 분쟁해결 그 자체보다는 당사자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에 관한 일반론을 제시하면서 사실관계에 비추어 그 요소들의 존부에 관한 판단에 더 집중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별도로 확인적 행정행위임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그와 구별되는, “내부적 행정행위”의 성격을 띤 본 사례군의 입찰참가자격 제한행위에 관해 분쟁의 조기 해결의 필요를 두텁게 제시했던 본 목차의 사례들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에 보다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개별사업자에 대한 사업종류변경결정은 그 보험료부과 등에 관하여 근로복지공단과 사업주 간의 관계(2극적 국면)에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결정은 그에 따른 요청결정이 수많은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전달되고(다극적 국면), 여러 기관을 대상으로 입찰을 의도했던 당사자는 개별 기관장들을 대상으로 각각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별도로 다퉜어야 했었다는 점에서, 분쟁을 조기에 종식시킬 필요가 더 분명한 사안이었다.37) 따라서 법치행정의 원리에 관한 기본적 일반론 외에 추가로 일반론을 제시하지 않고 이 사건에서 분쟁의 조기 종식의 필요성을 개별·구체적으로, 더 두텁게 강조한 본 사례군에서의 대법원의 판단은 결론에 있어서는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각 사건 하급심 판결문들까지 살펴보면,38)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결정에 이르기까지 ㉮ 소명사항이 있으면 제출하라는 통지 등이 이루어졌고, ㉯ 현장조사 등을 거쳤으며, ㉰ 별도로 대상자들이 피심인으로 출석하여 의견도 제출했고 ㉱ 최종적으로 그 상대방에게 입찰참가자격제한요청결정서를 송부하기까지 하는 등 일련의 절차가 진행되었다. 나아가 ㉲ 그것이 외부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것”이었던 사실이 인정되는데, 명시적으로 위 요청결정이 처분이라거나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는 안내까지 이루어졌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이같이 불이익처분 발령 시 요구되는 절차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절차들이 개진되었다면, 이를 근거로 당사자들이 위 요청결정을 “처분”으로 인식할 수 있었고 예측할 수 있었다는 판단, 곧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에 관한 일반론을 추가로 제시하면서 위 목차 Ⅲ. 5.의 ② 사례군들과 같이 종전에 그 일반론을 적용했던 사례군들보다 그 적용 폭을 한 걸음 더 확장하는 판단도 가능할 여지는 없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그런데 비교적 일관된, 그리고 일반화된 경향을 보이는 “분쟁을 조기에 근본적으로 해결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사례군에 비하면, 당사자의 권리구제의 필요나 행정의 특정 행위에 관한 사법심사의 필요를 두텁게 제시하면서 처분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례, 더 나아가서는 처분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달리 권리구제를 받을 방법이 없다는 점을 제시하면서 처분성을 인정한 판결례들에서는 그러한 사례군에 특화된, 개별·구체적 특성에 더 천착한듯한 판단양상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카주이스틱적 접근’).
해당 행위의 객관적인 특성과 그 법적 성격에 관한 면밀한 판단이 상당부분 간과된, 일반화하기 쉽지 않은 이러한 처분성 인정판단을 대법원이 했어야 할 현실적 필요성도 물론 적잖았겠으나, 행정법 도그마틱의 관점에서는 그런 행위의 주소를 파악하기 어렵고, 예측가능성과 법적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우며, 예외적으로 권리구제의 필요를 강조하는 이면에는 그 대상이 된 행정의 특정 행위에 관해 기존 행정법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쟁점이 있음에도 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 결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문제도 적잖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개별적으로 권리구제를 받을 필요성을 대법원이 분명하게 인정한 여러 사례들을 모아 살펴보면서 그로부터 새로운 법리의 발전을 도모해볼만한 경향성과 공통점을 모색해 볼 수도 있을 것인데, 몇몇 사례군에서 이러한 판단 경향이 최근까지 보여져 왔다(이하에서 목차를 바꾸어 살펴본다).
① 먼저 교장, 교감 승진임용배제행위 및 대학 총장임용제청배제행위의 처분성을 인정했던 대법원 2018. 3. 27. 선고 2015두47492 판결 및 같은 날 선고된 2016두44308 판결, 대법원 2018. 3. 29. 선고 2017두34162 판결, 대법원 2018. 6. 15. 선고 2016두57564 판결 등에서 대법원의 판단내용을 보면 그러하다. 대법원은 임용권자로부터 정당한 심사를 받게 될 것에 대한 절차적 기대에 주목한 뒤 그 승진임용배제행위 및 총장임용제청배제행위를 일종의 불이익처분으로 보면서 “그 배제행위를 처분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달리 이에 대해서는 불복하여 침해된 권리를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는 점을 그 처분성 인정의 핵심 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종래 행정법체계와 이론들에 비추어 본다면 그 대상이 된 교장, 교감 승진임용배제행위와 총장임용배제행위의 법적 성격은 무엇인가? 물론 위 사례군에서 총장 임용관계는 희망자의 지원절차를 바탕으로 전개되었고, 직업공무원제도 하에서 교장, 교감 승진임용관계는 그것과는 약간 결이 다를 수는 있다. 그렇다면 전자, 총장(1인)임용을 놓고 여러 사람들이 경쟁하는 구도(이른바 3극관계)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경쟁자소송, 인인소송의 성격에 비추어 적어도 총장임용배제 사례에서는 일종의 수익적 행위(임용)에의 신청에 대한 거부의 국면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렇게 본다면 대법원의 종래 판단궤적에 비추어 신청권(물론 이에 대해서는 학계의 비판이 상당하지만) 존부의 문제를 살펴 대상적격을 판단하는 것이 더 일관된 접근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여지도 있다.39)
다른 한편에서 본다면, 위 대학총장임용제청제외행위 사례에서 그 제외행위는 일련의 임용프로세스 중 하나의 행위이다. 구체적으로 살피면, 총장임용제청행위(및 그 배제행위)는 그 이후 이뤄지는 대통령의 종국적 총장임용행위(누군가에 대한 제외처분)의 전 단계에서 이뤄지는 선행행위로서의 성격을 갖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종국처분을 다투기 전 선행행위의 처분성을 별도로 인정하여 먼저 다툴 수 있게 할 실익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40)
먼저는 선행행위를 다투면서 함께 집행정지신청을 함으로써 일련의 프로세스를 초기에 중단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인데,41) 학계의 견해대립이 있으나 적어도 현재까지 거부처분에 관하여 법원에서는 집행정지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점(부적법 판단)을 고려해보면 앞선 문제 제기와 같이 위 총장임용제청제외행위를 (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으로 보는 것이42) 행정법 도그마틱의 틀 안에서는 정합적일 수 있겠으나43) 결과적으로는 처분성 인정 실익(집행정지신청 가능성)을 형해화시킬 가능성도 있어, 그런 점에서는 대법원의 이 같은 판단이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일응 불가피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편 대법원에 따르면 대통령의 종국적 총장임용행위(처분)가 발령되면 그 선행행위(총장임용제청배제행위)는 별도로 다툴 소익이 부정되게 되는데, 이러한 점에서 대법원이 선행행위의 처분성을 인정하고 설령 당사자가 선행행위를 다투지 못했더라도 종국적 총장임용행위에의 하자승계 여부에 관한 문제는 달리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44)
총장임용과는 약간 결을 달리하는 직업공무원제 하에서의 교장, 교감 승진임용의 성격을 살펴보면 일응 이를 불이익처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수는 있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불이익처분에서 대법원이 그간의 신청권 존부 판단에서 주로 보였던 “승진임용권자로부터 정당한 심사를 받게 될 것에 관한 절차적 기대”라는 논거를 유사하게 제시한 것, 그러면서도 승진임용제외처분을 항소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으로 보지 않는다면 달리 구제수단이 없다는 논거를 제시한 것이 논리적으로 정합적인지에 관한 고민도 해 볼 필요가 있다.45)
행정청의 일련의 사실행위에 관해 대법원이 권리구제의 필요 등을 두텁게 살펴가면서 그 처분성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현실적 필요와 대비되는 법리적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이른바 “진주의료원 사건”으로 불리는 대법원 2016. 8. 30 선고 2015두60617 판결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러한데, 결과적으로 진주의료원의 폐업에 관하여 이루어진 일련의 행위들이 “입원환자들과 직원들의 권리,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사법심사가 필요한 점” 등을 종합하여, 대법원은 경남도지사의 진주의료원 폐업결정에 대해 항고소송의 대상으로서 처분성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위 대법원 판결문 및 하급심 판결문을 함께 살펴보더라도, 대법원이 처분성 인정의 판단대상으로 삼은 도지사의 2012. 2. 26. 기자회견을 통한 폐업결정(혹은 폐업방침 발표)에 관하여, 후속된 일련의 행위들(실제적 전원조치 및 직원들에 대한 인사조치 등, 대상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일련의 행위들)을 살필 때 무엇을 처분성 판단을 위한 행위로 보는 것이 적절했을지에 관한 고민은 남게 된다.
위와 같이 최초에 있었던 행위(폐업발표)를 결정으로 특정하여 판단한 데 대하여 이를 불가피하고 필요적절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으며46) 반대로 일종의 정책(방침)발표에 불과한 그 자체를 처분성 여부 판단을 위한 대상행위로 본다면 그에 따른 일련의 조치로 이어지는 법효과가 발생한다고 보더라도 방침발표만으로는 후속된 법효과에의 직접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데서 문제가 상당하다는 지적도 타당한데,47) 이러한 관점차이는 일련의 행위들과 구별되면서 뒤이어 이뤄진 “(진주의료원 폐업) 조례제정행위”에 하자승계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겠는지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사실행위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처분성 확대를 통해 항고소송으로 이뤄갈 것인지, 당사자소송을 통해 이뤄 갈 것인지에 관한 관점차로도 연결되게 되며,48) 더 직접적으로는 진주의료원 폐업은 조례제정에 의한 것인데 그에 선행된 도지사의 폐업 결정, 혹은 폐업방침발표와 같은 일종의 선제적 정책발표를 사법 통제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끌어들임으로서 얻게 될 실익은 무엇인지(특히 조례제정 및 공포로 인한 방침발표행위의 소의 이익 결여 문제는 어떻게 볼/극복할 것인지), 향후 이와 같은 결을 갖는 정책당국의 선제적 정책발표행위들에 일관되게 사법통제의 문을 열 것인지(소의 이익에 관한 헌법적 해명 등이 요구될 수 있다) 및 그렇다면 이어질 유사소송에서 국민의 권리구제에 실제로 유리하거나 반대로 문제될 것은 무엇인지49) 등, 행정소송에 관한 일련의 쟁점들에 관해 분명한 관점 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함의가 적지 않고, 처분성을 인정하며 국민의 권리구제 필요를 강조한 대법원의 판단에 행정법체계와 이론상 문제점이 공존한다는 점도 뚜렷하게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비교되는 판결이 병무청장의 병역기피자들에 대한 (홈페이지를 통한) 인적사항공개행위의 처분성을 살폈던 대법원 2019. 6. 27. 선고 2018두49130 판결이다. 일종이 사실행위에 관하여 “공개대상자의 실효적 권리구제를 위해 병무청장의 공개결정을 행정처분으로 인정할 필요성이 있고, 이 공개결정을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으로 보지 않는다면 국가배상청구 외에는 침해된 권리 또는 법률상 이익을 구제받을 적절한 방법이 없다”는 점을 그 처분성 인정의 핵심 논거로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앞선 진주의료원 판결과 유사할 수 있겠으나, 병무청장의 공개행위라는 사실행위와 그 전의 공개결정을 구별해 낸 뒤 그 공개결정의 처분성을 인정하고 있고, 병무청장의 공개결정과 관할 지방병무청장의 공개대상자 결정을 다시 구별하여 후자(지방병무청장의 공개대상자 결정)는 내부적 결정으로 보면서 병무청장의 공개결정에 대해 처분성을 인정하였고, 그와 같이 판단한 연유를 비교적 면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물론 사실관계의 내용과 성격 자체가 진주의료원 사건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같이 일련의 프로세스를 구성하는 개별 행위들의 성격을 나누어 분석하고 그 중 처분으로 특정할 행위를 포착, 획정한 뒤 충분한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 가능한 측면도 있었으나, 위 2018두49130 판결에서 대법원은 처분성을 인정한 병무청장의 공개결정과 구별된 지방병무청장의 공개대상자 결정의 성격이 무엇인지 분명히 제시하였고50) 병무청장의 공개결정이 있게 되면 지방병무청장의 공개대상자 결정이 소의 이익을 잃게 된다는 점을 함께 제시하여 하자승계 문제 발생 가능성을 미연에 불식시켰으며,51) 후행 (사실)행위인 병무청장의 실제 공개행위와 그 이전의 공개결정을 분리하여 그 처분성 인정대상을 분명히 하였는데,52) 이러한 점은 위 진주의료원 사건과 분명히 구분되면서, 행정법체계 안에서 이를 분석하려 했다는데서 보다 긍정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개별 사안에서 권리구제의 필요를 두텁게 살피면서, 더 나아가 “처분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달리 권리구제의 방법이 없다”고 설시하면서 행정의 특정 행위의 처분성을 인정했던 최근의 위 대법원 판결들을 살펴보면, 행정의 그런 행위로 인하여 제한되는, 곧 보호할 필요가 있는 상대방의 권리(혹은 기대)의 내용은 무엇인지 함께 깊이 살피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것이 승진임용권자로부터 정당한 심사를 받게 될 것에 관한 절차적 기대일 수도 있고, 다른 병원으로 (일방적으로) 전원 혹은 퇴원되거나 해고되지 않을 예비적 권리일 수도 있고, 명예훼손과 수치심을 회복할 기회에 관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해당 사건에서 대법원이 이러한 점을 면밀히 살폈다는 공통점은 뚜렷하다.
다만 처분성이 인정된 행정의 그러한 행위(임용제청배제, 폐업방침발표, 인적사항공개결정)와 그 “보호가 필요한” 권리(혹은 기대) 사이의 거리는 전형적 처분에서 보여지는 “직접적” 거리과 비교하면 분명히 더 멀다고 할 수 있고, 같은 맥락에서 그 행위와 그로 인해 대상자들에게 귀결되는 불이익한 효과가 반드시 법적인 것, 권리·의무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사실적 성격도 겸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그 “권리”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여지도 적잖다. 처분성을 “공권력 행사성”으로 바꾸고 권리를 “기본권”으로 바꾸어 볼 경우, 본 목차에서 살폈던 각 사건과 유사한 결을 갖는 헌법재판소 결정례들도 최근 확인해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① 관계기관 합동 가상화폐 긴급대책의 공권력행사성이 다투어졌던 헌재 2021. 11. 25. 2017헌마1384 등 결정(각하), ② 15억 초과 아파트에 대한 대출규제를 내용으로 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의 공권력행사성 등이 다퉈진 헌재 2023. 3. 23. 2019헌마1399 결정(기각, 공권력행사성 인정) 등, 종전에는 사법 통제의 문조차 열리지 않았던 행정당국의 특정 행위 및 법률유보원칙 위반여부 대해 “새로운 문”을 열 것인지, 그 문을 열었을 때 기존 행정소송의 법리 및 헌법재판의 법리와 조응되기 어려운 지점들은 어떻게 해결해 갈 것이며, 유사한 후속사건들이 쇄도할 위험성은 없겠는지에 대한 고민은, 행정의 사실행위에 있어서는 고민이 겹칠 수밖에 없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앞으로 동일하게 보여질 것으로 보인다.
행정소송의 국면으로 다시 돌아와서 살펴본다면, 일련의 프로세스 중 어느 하나를 처분성 판단의 대상으로 포착하는 문제, 전·후 행위들과의 하자승계 여부 및 그 독자적 소의 이익이 인정될 것인지의 문제 등을 살펴가면서, 개별 사건에서 원고의 권리구제 필요뿐만 아니라 기존의 행정법체계와 조응될 수 있는 지점들을 계속 고민할 필요가 적잖고, 가능하다면 방론 등으로 대법원이 이에 관해 면밀히 제시해 줄 필요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 선고 후, 그 판결을 인용하면서 새로운 판결들을 이뤄갈 하급심 재판의 당사자들과 재판부의 고충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럴 수 있다.
Ⅴ. 결론
항고소송 외의 다른 행정소송이53)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행정의 어떠한 행위가 “처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은 행정소송의 문을 여닫는 첫 문고리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달리 상론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 폭넓은 권리구제를 도모하기 위해 소송유형을 다변화하는 등으로 행정소송법 개정이 여러 차례 추진되었으나 사실상 무위에 그치게 되던 중, 대법원이 행정소송법 제2조에서 정한 처분개념을 판결로 계속 확장해 왔던 것은 국민의 권리구제를 위한 긴요한 결단의 흔적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행정소송법 제2조의 문언에서 출발하여 행정의 특정 행위의 객관적 성질을 살피는 것을 넘어서서, 본격적으로 행정과 상대방 간의 관계와 맥락, 그리고 그 불복방법의 선택에 중대한 이해관계를 갖는 상대방의 인식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을 살펴 처분성을 판단하는 것, 상대방의 사법심사의 필요를 살펴가며 처분성을 판단하는 것, 더 나아가서 상대방에 달리 마땅한 권리구제수단이 없기에 처분으로 판단하는 것은, ① 그 실제 판단논거와 판단내용이 어떠하고 어떤 국면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가에 따라, ② 그 적용과정에서 행정법체계와 이론에 미칠 영향과 파급력을 충분히 숙고했는지에 따라, 그리고 ③ 그 숙고결과 적절한 수준과 범주 내에서 적용이 이뤄졌는지/상반된 듯한 선례들과의 관계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뤄졌는지에 따라, 일응 국민의 실질적 권리구제 수준과 행정법 도그마틱을 진일보시킬 수 있는 지렛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나, 외려 행정법체계와 질서를 혼탁하게 하는 덫이 될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주관적 판단기준과 판단요소들을 담고 있는 이러한 일반론이 제시되고 적용된 판결례, 이러한 판단기준과 판시내용들이 현출된 판결례들의 궤적을 추적해가면서 그에 관해 행정법체계와 행정법이론적 관점에서, 혹은 현실적 관점에서 분석과 평가를 이어가는 것은 긴요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개별 사건에서 국민의 권리구제의 필요를 면밀하게 살피는 것 못잖게, ① 전체적인 법 적용의 통일성과 일관성, ② 예측가능성/안정성을 담보하고 논증부담의 경감을 이룰 수 있는 체계성, 그리고 ③ 기존에 형성된 하자승계론, 소의 이익론 등과 이론적 조응성도 중요하다는 점을 돌아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른바 “위 일반론”이 처음으로 제시되고 적용되게 된 특정 사례군의 첫 대법원 판결 선고(2018. 10.) 이후, 대법원에서 위 일반론을 다른 사례군들에 적용하기 시작한 2020년을 지나, 다른 사례군에서 그 확장적용이 도모되기 시작했던 2022년으로부터도 벌써 2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그러한 확장적용의 필요와 문제점은 무엇이며, 확장적용이 더욱 긴요한 사례들에서 바람직한 적용방법과 판시내용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아울러 처분성 인정 논거로 사법심사의 필요라든지 다른 권리구제수단이 없다는 판단은 어떤 “보론”과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인가. 대법원의 확장적 기조가 이어지는 한, 계속 숙고해가야 할 질문으로 여겨진다.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