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유럽인권협약(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이하 ‘협약’이라 한다)1) 제8조 제1항은 누구나 사생활, 가족생활, 주거와 통신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2항은 그와 같은 권리가 제한될 수 있는 요건에 대해 규정한다.2) 대한민국헌법(이하 ‘헌법’이라 한다)과 비교해 보면, 협약 제8조 제1항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17조3), 혼인과 가족생활에 있어서의 개인의 존엄, 양성의 평등과 이에 대한 국가의 보장의무에 관한 헌법 제36조 제1항4), 주거의 자유에 관한 헌법 제16조 전문(前文)5), 통신 비밀의 불가침에 관한 헌법 제18조를6) 합쳐 놓은 형태이다. 또한 협약 제8조 제2항은 기본권 제한의 일반적 법률유보에 관한 헌법 제37조 제2항에7) 상응하는 규정이다.
다만 협약 제8조 제2항은 같은 조 제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사유로 국가 안보, 공공 안전, 경제적 수준의 향상, 무질서나 범죄의 예방, 건강 및 도덕의 보호, 다른 이의 자유와 권리의 보호를 열거함으로써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라고만 규정하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비해 그 사유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한편 기본권 충돌 상황을 국가가 규율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규정한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협약 제8조 제2항은 같은 조 제1항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정도를 “민주적 사회에서 필요한”이라고 규정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라고만 규정할 뿐인 헌법 제37조 제2항에 비해 “민주적”이라는 요건의 해석을 통한 법리 발전의 여지를 보다 넓게 남겨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협약 제8조 제1항은 환경권에 관하여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지만, 유럽인권재판소는 대기오염, 수질오염, 소음공해 등 다양한 환경적 이익 침해에 관한 사안을 협약 제8조 제1항의 권리의 보호영역에 대한 침범으로8) 인정하였다.9) 환경적 이익의 침해를 다루는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례들은 환경권에 관한 명시적인 협약상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10) 또한 헌법에 명문으로 환경권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권의 제한이나 국가의 환경권 보장의무가 헌법재판소의 결정례에서 본격적인 쟁점으로 다루어진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우리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유럽인권재판소가 사인에 의한 환경적 이익 침해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방지하지 못한 상황까지 협약 제8조 제1항의 적용을 통해 통제하는 점 역시 시사점이 크다.
이하에서는 환경적 이익 침해에 관한 유럽인권재판소의 여러 판례 중 소음공해에 관한 판례, 그 중에서도 집 인근의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관한 Moreno Gómez v. Spain11) 판결(이하 ‘Moreno 판결’이라 한다)을 살펴보고, 확성기를 이용한 선거운동으로 인한 소음에 관한 우리 헌법재판소의 헌재 2019. 12. 27. 2018헌마73012)(이하 ‘선거운동소음 결정’이라 한다)과 비교하여 분석하기로 한다.
Ⅱ. Moreno 판결
청구인은 1970년부터 스페인 발렌시아의 주거지역에서 살았다. 발렌시아시(City Council)는 1974년부터 청구인 집 인근에 술집과 디스코텍 허가를 내주어 소음 때문에 주민들이 잠을 자기 힘들게 되었다. 1980년부터 주민들이 소음과 공공기물파손(vandalism)에 대해 시정부에 민원을 제기한 결과, 발렌시아시는 1983년 12월 22일 이후로는 추가적인 나이트클럽 허가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나, 이 결정은 지켜지지 않았고 새로운 허가가 계속 발급되었다. 1993년에 시정부는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조사 보고서를 받았는데, 그에 따르면 토요일 새벽 3시 35분에 측정한 소음이 101 내지 115.9 데시벨에 이르러 소음의 정도가 허용치나 수인한도를 넘는다.13)
발렌시아시는 1996년 6월 28일 소음진동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는데, 청구인이 거주하는 지역과 같은 주거지역의 경우 야간(저녁 10시부터 아침 8시 사이)의 외부 소음이 45데시벨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또한 위 규정은 외부 소음으로 인하여 거주자들에게 심각한 불편(serious disturbance)을 야기하는 지역을 소음포화지역(acoustically saturated zone)으로 정하고, 소음포화지역에서는 나이트클럽과 같은 추가적인 소음 발생행위를 금지하였다. 청구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해서도 다양한 종류의 소음 측정이 이루어졌는데, 측정 결과 모두 위 규정에서 허용된 수준을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발렌시아시는 1996. 12. 27. 청구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소음포화지역으로 지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렌시아시는 1997. 1. 30. 청구인이 거주하는 건물에 디스코텍 허가를 추가로 내주었는데, 이 허가는 결국 2001. 10. 17. 대법원 판결에 의해 취소되었다.
청구인은 소음으로 인해 휴식 및 수면을 취하지 못한 결과 불면증과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음을 주장하며 1997. 8. 21. 발렌시아시를 상대로 사전구제청구(preliminary claim)를 하였으나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하였고, 이어 발렌시아 고등법원(Valencia High Court)에 스페인헌법 제15조14) 및 제18조 제2항15)의 권리 침해를 주장하며 사법심사청구(application for judicial review)를 하였다. 발렌시아 고등법원은 소음측정이 청구인의 집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건물 로비에서 이루어진 점, 청구인에 대한 진단서에는 수년간 불면증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만이 기재되었을 뿐 정확한 기간이나 발병의 원인에 대한 기재는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하여 1998. 7. 21. 청구를 기각하였다. 청구인은 1998. 10. 9. 스페인 헌법재판소에 평등권과 공정한 청문권의 침해를 주장하면서 발렌시아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amparo 청구를16) 하였고, 이 청구에서 스페인헌법 제15조와 제18조 제2항의 침해를 주장하였다.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2001. 5. 29. 청구인의 amparo는 발렌시아 고등법원의 판결과 발렌시아시의 조치 모두를 상대로 한 적법한 청구로는 인정하였으나, 본안 판단에 이르러서는 두 청구 모두 이유 없다고 보아 기각하였다. 특히 발렌시아시의 조치에 대한 amparo 청구의 경우, ‘환경상의 손해가 중대하고 반복되었다면 설령 그것이 건강상의 위험을 야기하지 않은 경우에도 협약 제8조 제1항의 사생활 및 가정생활을 존중받을 권리의 제한에 이를 수 있다’는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례를 인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소음에 노출된 것으로 인해 “심각하고 즉각적인 건강상의 손해가 발생한(causes serious and immediate damage to his or her health)” 경우에만 스페인헌법 제15조의 권리 침해가 인정된다는 법리를 설시하였다.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위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청구인의 경우 소음에의 노출과 건강상 위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하였으므로 청구인에 대하여 스페인헌법 제15조의 권리 침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스페인헌법 제18조의 권리 침해 주장 역시 소음측정 결과들 사이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협약상 권리는 협약 제8조에 의해 보장된 주거를 존중받을 권리(right to respect for her home, 이하 ‘협약상 주거권’이라 한다)이다. 발렌시아시가 소음을 방지하지 않은 부작위는 청구인의 협약상 주거권을 침해하였다. 비록 발렌시아시가 직접 소음을 발생시킨 것은 아니지만 발렌시아시가 끊임없이 나이트클럽 허가를 내어줌으로써 소음포화상태를 야기하였다. 청구인의 주거지 근처에 있는 127개 이상의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는 야간 소음은 WHO의 기준을 넘는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Hatton and Others v. the UK 사건과17) 달리 청구인의 주거지는 핵심적인 교통 혹은 통신시설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심의 주거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주거라는 물리적 공간은 사생활과 가정생활이 시작되고, 성장하는(develops) 공간이다. 협약상 주거권의 보호영역은 비단 주거라는 물리적, 현실적 공간에 대한 권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물리적, 현실적 공간을 조용한 상태에서 누릴(quiet enjoyment) 권리에까지 미친다. 협약상 주거권에 대한 침해는 주거침입과 같은 물리적인 행위에 의한 것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음, 냄새에 의한 것까지도 포함한다. 소음이나 냄새가 심하여 주거의 쾌적함(amenities of his home)을 누리지 못한다면 협약상 주거권의 침해에 이를 수 있다(Hatton and Others v. the UK, §96). 선례는 Powell and Rayner v. the UK 사건18)에서는 Heathrow 공항의 비행기 소음을 협약 제8조의 문제로 다루었고, 소음과 쓰레기처리장이 쟁점이었던 López Ostra v. Spain 사건에서는 “건강상의 심각한 위해를 야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심각한 환경 공해는 개인의 건강한 삶(well-being)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사생활과 가정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써 주거에서 얻는 즐거움을 방해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Guerra and Others v. Italy에서는 유해물질의 방출에 대하여 협약 제8조를 적용하였고, Surugiu v. Romania 사건에서는 제3자가 집 앞에 거름을 쌓아놓고 간 행위에 대해 협약 제8조를 적용하였다.
협약 제8조는 공적 주체에 의한 자의적인 개입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을 핵심적인 목표로 하나, 사인들 간의 사이에서라도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조치들을 도입할 공적 주체의 의무 역시 협약 제8조의 목표에 포함된다(Stubbings and Others v. the UK, §62; Surugiu v. Romania, §59). 청구인의 협약 제8조 제1항상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국가의 적극적인 의무(a positive duty on the State to take reasonable and appropriate measures to secure the applicants’ rights under paragraph 1 of Article 8)의 관점에서 사건을 심리하는 경우이든, 아니면 공적 주체에 의한 직접적인 협약상 주거권의 제한이 협약 제8조 제2항에 의해 정당화되는지의 관점에서 사건을 심리하는 경우이든 적용되는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다(broadly similar). 양자 모두 개인의 이익과 그와 대립하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 사이에 달성되어야만 하는 공정한 균형(fair balance)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나아가 협약 제8조 제1항에서 도출되는 국가의 적극적 의무에 있어서도 공정한 균형을 달성했는지를 판단함에 있어 같은 조 제2항에 규정된 목적들이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수 있다(Hatton and Others v. the UK, §98).19)
끝으로 본 재판소는 협약은 “실질적이고 효과적인(practical and effective)” 권리의 보장을 위한 것이고 권리의 “이론적이거나 허구적인(theoretical or illusory)” 보장을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 사안은 공적 주체에 의한 권리 제한이 아니라 공적 주체가 제3자에 의한 권리 침범을 막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황에 관한 것이다. 청구인은 논란의 여지 없이 야간 소음에 의해 일상생활 특히 주말 동안의 일상생활의 안정이 깨지는 지역에 살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소음에 의해 야기된 생활상의 불편(nuisance)이 협약 제8조의 위반이라고 평가할 만한 최소한의 수준의 심각성을 상회하는 것인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스페인 정부는 소음 측정이 청구인의 실내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주장하나, 이는 부당하게 형식논리에 치우친 주장이다. 왜냐하면 발렌시아시 스스로 이미 청구인이 사는 지역을 소음포화지역으로 지정했고 이는 그 지역 주민들이 심각한 생활상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소음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청구인에게 그에 관한 증거를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청구인은 야간에 허용되는 소음 기준 이상의 소음에 노출되었고, 그러한 상태가 수년간 지속되었으므로 청구인의 협약 제8조의 권리가 침해되었다.
발렌시아시는 소음진동규정 제정 등 제대로 작동했다면 원칙적으로 협약 제8조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었던 조치를 하였으나 스스로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와 같이 협약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규정들이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러한 규정들은 협약상 권리 보장에 거의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는데, 이러한 경우에 유럽인권재판소는 협약이 허구적인 권리가 아니라 효과적인 권리 보호를 위한 것임을 강조해야만 한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에 따르면 청구인은 행정당국이 야간 소음 규제를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부작위(failure to take action to deal with the night-time disturbances)에 의해 자신의 협약상 주거권을 심각하게 침해받았다.
따라서 협약 당사국은 청구인의 협약상 주거권과 사생활권을 보장할 적극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협약 제8조를 위반하였다.
Ⅲ. 선거운동소음 결정
청구인은 2018. 6. 13. 실시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이 청구인 거주지 주변에서 확성장치 등을 사용하여 소음을 유발하여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받았다는 이유를 들어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따른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청구인은 공직선거법 조항들이20)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선거운동 시 확성장치의 최고출력, 사용시간 등 소음에 대한 규제기준 조항을 두지 아니하는 등 그 내용・범위 등이 불충분하여 청구인의 환경권, 건강권 및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였다.
선거운동소음 결정은 동일한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한 선례(헌재 2008. 7. 31. 2006헌마711, 이하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이라 한다)를 헌법불합치로 변경한 결정이다.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의 청구인 역시 선거운동소음 결정의 청구인의 주장과 거의 동일하게 “2006. 5. 31. 실시된 전국 동시지방선거를 비롯해 공직선거마다 발생하는 과도한 소음으로 인해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받고 있는바, 이는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휴대용 확성장치 및 자동차에 부착된 확성장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도 확성장치 사용에 따른 소음 등의 제한기준을 두고 있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 확성장치 사용 등에 대한 소음제한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입법부작위는 청구인의 헌법상 기본권인 행복추구권,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은 제한되는 기본권을 환경권으로 보는 데에는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즉, 헌법재판소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보장하는 환경권의 보호대상이 되는 환경에는 자연 환경뿐만 아니라 인공적 환경과 같은 생활환경도 포함되므로 일상생활에서 소음을 제거・방지하여 정온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는 환경권의 한 내용을 구성한다고 보고, 이 권리의 제한이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였다.21) 다만, 환경권이 침해되었는지에 관해서는 6인의 합헌의견과 3인의 위헌의견으로 견해가 갈리었는데, 합헌의견은 다시 이유를 달리하는 5인 의견과 1인 의견으로 나뉘었다.
6인의 합헌 의견은 공직선거법이 확성장치에 의하여 발생하는 선거운동 소음을 규제하는 입법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므로 부진정입법부작위를 다투는 것으로 보고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심사기준으로 삼아 판단하였다. 합헌의견 중 5인 의견은 공직선거법상 확성장치로 인한 소음을 예방하는 규정이 불충분하다고 단정할 수 없고, 선거운동의 자유와의 비교형량하에서 판단할 때 확성장치 소음규제기준을 정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청구인의 정온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자의 의무를 과소하게 이행하였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5인의 합헌의견은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 여부의 판단 기준을 다음과 같이 설시한다(강조는 필자).
입법자가 소음에 대한 규율을 명확히 설정하지 않아 그로 인해 불편과 피해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기본권 보호의무 위반에 해당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침해로 인정되려면, 입법자가 국민의 기본권적 법익 보호를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는가를 살펴서 그 보호조치 위반이 명백하여야 할 것이다.22)
한편, 조대현 재판관은 별개의 합헌의견을 통해 심판대상조항이 소음공해를 초래하는 확성장치의 사용을 허용하여 소음공해를 초래함으로써 헌법 제35조 제1항에 의하여 보장되는 환경권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심사함이 마땅하고, 그 중에서 소음 한도를 제한하지 아니한 부분만 떼어내어 과소보호금지의 원칙을 적용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 후 과잉금지원칙을 적용하여 합헌의 결론에 이르렀다.23)
3인의 위헌의견은 5인의 합헌의견과 마찬가지로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심사기준으로 삼았으나, “어떠한 경우에 과소보호 금지의 원칙에 미달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일반적・일률적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 이는 개별 사례에 있어서 관련 법익의 종류 및 그 법익이 헌법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상, 그 법익에 대한 침해와 위험의 태양과 정도, 상충하는 법익의 의미 등을 비교 형량하여 구체적으로 확정하여야 한다. 환경권의 경우 국가가 환경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여 기본권 침해가 초래되는지를 판단하는 경우에 과소보호 금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함은 마찬가지이나, 특히 오늘날 환경권은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관한 법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입법자가 그에 대한 보호의무를 충분하게 이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심사할 때에는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이라는 법익의 중대성과 헌법질서에서의 위상, 법익에 대한 위험의 직접성・심각성・불가역성 등을 종합 검토하여 입법자의 보호의무 위반이 명백한지의 여부에 대한 판단에서 나아가, 입법내용에 대한 보다 엄격한 통제가 가해질 필요가 있다.”(강조는 필자)고 설시한 후,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으로 위헌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이하 이러한 견해를 ‘과소보호금지원칙 엄격적용설’이라 한다).
위와 같은 3인의 위헌의견의 설시는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그 위반이 명백하여야 함을 요구하는 5인의 합헌의견의 설시와 분명히 대조된다(이하 이러한 5인의 합헌의견의 견해를 ‘과소보호금지원칙 완화적용설’이라 한다).
선거운동소음 결정은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과 마찬가지로 ‘정온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환경권의 내용으로 보고 심판대상조항에 의해 환경권의 제한이 있다는 점 및 심사기준으로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에 관해서는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다만 결론에 있어서는 7인의 위헌의견(법정의견)과 2인의 합헌의견(반대의견)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7인의 법정의견은 위헌의 결론에 이르면서도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입장은 아니었다는 특징이 있다. 즉, 7인의 위헌의견은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할지 여부에 관해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에서 5인의 합헌의견이 설시한 법리를 인용한 다음, 그 구체적인 판단은 법익형량에 의해야 한다는 새로운 법리를 설시한다.24) 선거운동소음 결정의 7인 위헌의견은 이어 확성장치 사용 개수 및 최고 출력, 사용 시간대, 사용 장소를 자세히 살펴본 다음, “정온한 생활환경이 보장되어야 할 주거지역에서 출근 또는 등교 이전 및 퇴근 또는 하교 이후 시간까지 지속 시간 및 최고출력 또는 소음 규제 없이 확성장치를 사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수인한도를 초과하는 소음이 발생하도록 방치하는 것”25)으로 결론 내린다. 이러한 결론을 토대로 7인의 위헌의견은 입법자가 사용시간과 사용지역에 따른 수인한도 내에서 확성장치의 최고출력 내지 소음 규제기준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한 것은 “관련 법익을 형량하여 보더라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지 아니함으로써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를 과소하게 이행하였다고 평가되고, 이는 청구인의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의 침해를 가져온다.”고 판단하였다.26) 반면, 재판관 이선애, 재판관 이미선 2인의 합헌의견은 7인의 위헌의견과 같은 심사기준인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적용하면서 종래 선례의 요지를 인용하고 이를 변경할 사정이 없다고 판단하였다.27)
Ⅳ. Moreno 판결과 선거운동소음 결정의 비교 분석
Moreno 판결과 선거운동소음 결정은 모두 소음에 의해 난청, 이명과 같은 질병이 발생하여야 비로소 권리의 침범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환경의 쾌적함을 저해하는 정도만으로도 권리의 침범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즉, Moreno 판결은 협약상 소음에 의해 주거의 쾌적함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을 협약상 주거권의 보호영역에 대한 침범으로 인정하였고, 선거운동소음 결정은 주거인지 여부보다는 일상생활에서의 정온한 환경이 깨지는 것 자체를 헌법상 환경권의 보호영역에 대한 침범으로 인정하였다.
Moreno 판결과 선거운동소음 결정은 사인에 의한 소음발생 행위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방지하지 못한 책임이 개인의 공적 권리(협약상 권리 혹은 기본권을 말한다)의 침해로 귀결되는지를 판단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즉. 양자는 국가의 적극적인 행위로 인한 개인의 법익 침해 상황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국가-개인의 2원 구도), 개인의 적극적인 행위로 인한 다른 개인의 법익 침해 상황에서 국가가 이를 방지하지 못한 부작위 상황(개인-국가-개인의 3원 구도)를 전제로 한다.28) 이와 같이 이는 전형적인 의미의 국가에 의한 자유권 제한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Moreno 판결과 선거운동소음 결정은 권리 침해의 결론에 이르는 근거로 구체적인 소음의 정도에 대해 살펴보았다는 점, 이를 토대로 관련 법익들 사이의 형량을 통해 권리 침해의 결론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논증구조상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Moreno 판결과 선거운동소음 결정은 우선 제한되는 권리가 무엇인지에 관해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Moreno 판결은 주거의 자유를 제한되는 권리로 본 반면 선거운동소음 결정은 환경권을 제한되는 권리로 보았다. 또한 Moreno 판결과 선거운동소음 결정은 제3자에 의한 권리의 보호영역 침범을 방지할 국가의 의무 위반이 권리의 침해에 이르는지를 판단하는 심사기준과 국가에 의한 직접적인 권리 제한이 권리의 침해에 이르는지를 판단하는 심사기준의 성격을 어떻게 파악하는지에 있어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Moreno 판결은 양자 모두 공정한 균형(fair balance)를 핵심으로 하는 법익 형량이므로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유사하다고 본다. 그러나 선거운동소음 결정은 과소보호금지원칙과 과잉금지원칙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고, 이러한 입장은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에서 과잉금지원칙 적용을 주장한 1인 별개의견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Moreno 판결은 소음에 의해 침범되는 권리를 주거의 자유로 상정한다. 이와 같은 논리는 우리 헌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헌법은 제16조에서 주거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주거의 자유가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는 주거의 평온이므로29) 평온을 저해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주거의 자유의 보호영역을 침범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헌법 제35조 제1항에 규정된 환경권의 침범도 동시에 발생하고 양자는 기본권경합 관계에 놓인다. 환경권을 침범되는 권리로 파악하는 것과 주거의 자유를 침범되는 권리로 파악하는 것의 차이점은 주거(home)이외의 공간에서 소음으로 인한 불편을 겪을 경우에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는 협약상 주거권의 보호영역 침범이 인정되지는 않을 것이나, 헌법상 환경권 침범은 인정된다.30)
학설 중에는 위와 같은 논리 전개에 반대하면서 “소음이나 진동, 대기오염 등 외부로부터 주거에 대한 불리한 영향이 발생하는 경우는 주거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불가침권(건강권)이나 재산권보장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31)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에 의할 경우 건강 혹은 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수준의 소음에 의한 피해는 기본권으로 보장되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소음으로 인해 청력장애가 발생한다거나 유리창이 파괴될 정도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건강권, 재산권과 같은 기본권으로 보호가 되고 그에 이르지 않는 정도의 소음이 수 년간 계속되어 밤마다 잠을 자기가 힘든 상황에 처해도 불면증 등 의학적 진단을 받고 소음과 발병 사이에 규범적 의미에서의 인과관계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는 기본권으로 보호되지 않는 법익 침해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나아가 위 견해는 이러한 경우 환경권의 제한조차 인정하지 않는데32) 이는 환경권을 독자적인 기본권으로 규정하는 현행 헌법 제35조 제1항의 규범적 의미를 현저히 감소시키는 해석이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33)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소음이나 진동 혹은 일조 방해나 통풍 방해가34) 비록 직접적인 질병 발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자유로운 인격 발현이나 주거의 평온 등 기본권으로 보호되는 가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자명하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각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고, 특히 우리 사회에서 소음의 경우 층간소음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심한 경우 살인의 동기까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질병 유발이나 재산상 손실을 야기할 정도에 미치지 않는 정도의 소음이나 진동 등에 의한 피해를 굳이 기본권의 보장 범위에서 제외할 실익이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이러한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법익을 환경권이라는 명문의 헌법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의 보호 범위 밖으로 밀어내고 입법자가 재량에 따라 보호해도 되고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가치로 내버려 두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헌법적 합의라고 보기도 어렵다.35)
헌법재판소는 과소보호금지원칙을 “국가가 국민의 법익보호를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는가”(이하 ‘법리 A’라 한다)로 정식화하여 그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법리를 정립하였다.36)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가 이루어졌는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은 선거운동소음 결정 전에는 아래 인용 부분 중 밑줄 친 부분과 같았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대한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는지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심사할 때에는 국가가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였는가 하는 이른바 ‘과소보호 금지원칙’의 위반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국가가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전적으로 부적합하거나 매우 불충분한 것임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국가의 보호의무의 위반을 확인하여야 하는 것이다.
위 밑줄 친 부분과 같은 설시(이하 ‘법리 B’라 한다)는 “적절하고도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셋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즉, 위 법리는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에서 ① 국가가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②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전적으로 부적합한 경우, ③ 취한 조치가 매우 불충분한 것임이 명백한 경우에 적절하고도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 미이행에 해당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법리 설시는 선거운동소음 결정 전에 비교적 일관되게 설시되었다.37) 위와 같은 법리 설시에는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관련 법익들 사이의 비교형량이 필요한지 여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38)
그런데 선거운동소음 결정에서는 법리 B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법리 B 대신 아래 밑줄 친 부분과 같은 비교형량 법리가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 법리로 설시된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에 대한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는지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심사할 때에는 국가가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였는가 하는 이른바 ‘과소보호금지원칙’의 위반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헌재 2008. 7. 31. 2006헌마711). 그런데 어떠한 경우에 과소보호금지원칙에 미달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일반적・일률적으로 확정할 수 없다. 이는 개별 사례에 있어서 관련 법익의 종류 및 그 법익이 헌법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상, 그 법익에 대한 침해와 위험의 태양과 정도, 상충하는 법익의 의미 등을 비교 형량하여 구체적으로 확정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선거운동소음 결정은 선례에서 일관되게 설시한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 여부 판단 법리인 법리 B를 언급하지 않은 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였는지 여부는 ‘관련 법익들을 비교 형량하여 구체적으로 확정한다.’는 법리(이하 ‘법리 C’라 한다.)에 의해 위헌 여부에 관한 결론을 내린다. 법리 C가 법리 B를 변경한 것인지, 아니면 법리 B를 구체화한 것인지에 대해서 선거운동소음 결정은 침묵한다.39) 아래 2)에서 살펴보듯이 과소보호금지원칙도 결국 관련된 법익들 사이의 형량의 문제이므로 법리 C와 같은 설시는 그 내용에 있어서는 타당하나, 과거의 일관된 선례의 법리의 표현을 변경하면서 아무런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 것은 결정의 설득력이나 재판관의 자의 방지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Moreno 판결은 개인에 의한 주거의 자유 침해를 방지할 국가의 적극적 의무의 불이행이 협약상 주거의 자유 침해에 해당되는지를 판단하는 심사기준은 국가가 직접 주거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협약상 주거의 자유를 침해하는지를 판단하는 심사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broadly similar).”고 설시하면서 그 이유로 양자는 공정한 균형(fair balance)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든다.40) 유럽인권재판소의 공정한 균형 심사는 형량의 대상이 되는 관련 이익의 구체적 중요성을 측정하고 공권력 작용에 의해 증진되는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그로 인해 저해되는 이익을 수인할 수 있는지의 논증구조, 즉 측정과 비교형량의 2단계 논증구조로 수행된다.41) 유럽인권재판소는 공정한 균형심사를 협약상 권리의 제한의 정당화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도 적용하고, 협약상 권리의 보호 의무 위반의 정당화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도 적용한다.
유럽인권재판소의 과잉금지심사는 이른바 수평적 심사(horizontal review)에 해당하여42) 과잉금지심사의 각 하위 심사 단계 사이에 특정한 판단 순서를 정하지 않는 심사 방식이기 때문에 이를 우리 헌법재판소의 과잉금지심사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다만,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의 4단계 판단을 차례로 행하는 수직적 과잉금지심사의 성격을 지닌 우리 헌법재판소의 심사방법론의 관점에서도 4단계 판단의 핵심이 무엇인지의 논의에 비추어 유럽인권재판소의 위와 같은 태도에 접근할 여지가 생긴다. 특히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헌법재판소는 선거운동소음 결정에서 그 동안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 여부 판단 시에 일관되게 적용해온 법리 B를 설시하지 않고, 그 대신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 여부는 법익형량에 의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설시하였는데(법리 C), 법리 C는 유럽인권재판소가 협약상 권리를 보호하지 못한 회원국의 부작위가 협약상 권리 침해인지를 판단할 때 적용하는 법익 형량의 법리와 그 내용이 사실상 같다.
이와 같이 선거운동소음 결정에서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 여부도 법익형량에 의해 판단한다는 취지의 법리 C가 새롭게 등장한 상황에 더하여, 과잉금지원칙 위반 여부 심사의 4단계 하위 판단 단계 중 핵심이 법익의 균형성 심사라는 입장을 취할 경우에는 우리 헌법재판소의 판례 법리상으로도 과잉금지원칙과 과소보호금지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양자 모두 관련된 법익의 형량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잉과 과소의 정확한 경계선이 어디인지, 그 경계를 넘어선 것인지의 판단은 개별 사건별로 관련된 구체적 사정들을 모두 종합하여 대립되는 이익들을 형량함으로써 비로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과잉금지원칙이든 과소보호금지원칙이든 논증의 핵심적인 구조는 대략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43) 반면, 4단계 판단 중 피해의 최소성이 핵심이라는 입장에 서면 위와 같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피해의 최소성 원칙의 내용 중에는 법익형량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를 내용으로 하는 과소보호금지원칙과 과잉금지원칙은 서로 너무나 다른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과잉금지원칙의 핵심은 그렇게나 많은 입법목적을 달성하면서까지 이렇게나 많이 기본권을 제한해도 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수자 보호의 의미이다. 입법목적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심판대상조항이 입법목적을 너무 많이 달성하는 수단이 아닌지라는 의문, 그 결과 심판대상조항에 의해 불필요한 기본권의 제한이 발생한 것 아닌지라는 문제 제기, 즉 입법목적의 달성 정도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과잉금지원칙의 소수자 보호 기능을 전면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법익형량이 이루어지는 법익의 균형성 단계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피해의 최소성 단계까지는 목적 달성 정도가 과도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고, 목적이 헌법상 허용되는지(목적의 정당성), 채택한 수단이 목적 달성에 기여하는지(수단의 적합성), 동등하게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입법대안이 있는지(피해의 최소성)까지만을 판단할 뿐이기 때문이다.44)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비록 우리 헌법재판소의 주류적인 논증 구조가 피해의 최소성에 집중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론적인 관점에서는 법익의 균형성이 과잉금지원칙의 핵심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정하기 어렵다.45) 따라서 적어도 이론적인 관점에서는 Moreno 판결의 태도, 즉 국가의 적극적 의무 불이행 심사와 국가의 소극적 의무 불이행 심사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타당하다.
위헌심사기준에 있어 심사강도(intensity of review)란 심사척도를 결정한 후 그 경계선에 있는 사안이 발생하였을 때 가급적 합헌으로 볼 것인지 위헌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이다. 예컨대 심사척도를 과잉금지원칙이나 과소보호금지원칙으로 결정한 후에 과잉금지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 혹은 과소보호금지원칙을 완화하여 적용하는 것이 심사강도의 결정에 해당된다. 이는 민사나 형사소송에서 입증책임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과 논리적인 단계가 유사하다. 형사소송의 예를 들면 사기죄와 특가법상 사기죄 중 어느 것을 적용할지라는 심사척도 선택의 문제를 해결한 후 유죄와 무죄의 경계선에 선 사안에 대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 심사강도에 해당된다. 이러한 심사강도의 문제는 사실 판단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국면에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규범 판단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국면에서도 필요하다. 법관의 사실 인식 능력과 규범 판단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법관은 심사강도를 정함으로써 사실적 불확실성과 규범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합헌/위헌 혹은 합법/위법의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적 불확실성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 헌법재판의 영역에서는 규범적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권력분립원칙 및 민주주의원리에서 요구되는 입법재량의 존중이라는 요소가 심사강도 결정에 있어 중요하게 작용한다.
심사강도의 문제는 유럽인권재판소에서는 평가재량(margin of appreciation, MoA)로 다루어진다.46) 이는 국제재판소라는 유럽인권재판소의 특성상 회원국의 1차적 판단 재량을 존중하여야 할 필요에서 비롯되는 독특한 법리이나, 사법기관의 다른 기관의 1차적 판단에 대한 존중 정도 결정이라는 구조 자체는 국내법원이 입법자의 1차적 판단재량이나 행정청의 1차적 판단재량을 존중하는 정도를 결정하는 것과 동일하다. Moreno 판결은 심사강도에 대해 특별한 설시를 하지 않았다. 이는 심사강도가 결론 도출에 본격적인 쟁점이 아니었다는 의미이고, Moreno 판결의 사안은 심사강도까지 논하지 않아도 결론에 쉽게 이를 수 있을 만한 사안이었음을 추측케 한다.47)
반면,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의 3인의 위헌의견과 선거운동소음 결정의 7인의 위헌의견은 똑같이 위헌의 결론에 이름에도 불구하고 심사강도에 관한 설시는 사뭇 다르다.48) 먼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의 3인의 위헌의견은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이라는 법익의 중대성과 헌법질서에서의 위상, 법익에 대한 위험의 직접성・심각성・불가역성 등”을 근거로 하여 “입법자의 보호의무 위반이 명백한지의 여부에 대한 판단에서 나아가, 입법내용에 대한 보다 엄격한 통제가 가해질 필요가 있다.”고 설시하여 심사강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 여부에 관하여 종래 반복하여 일관되게 설시된 심사강도인 과소보호금지원칙 완화적용설 즉, 보호의무 위반이 “명백하여야 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부인하고 과소보호금지원칙 엄격적용설에 따르겠다는 설시이다. 이와 같이 할 경우 위헌의 결론에 이르는 논증이 보다 매끄럽게 전개된다.
한편, 선거운동소음 결정의 7인의 위헌의견은 어떠한 심사강도를 채택했는지에 관해 상당한 의문을 남긴다. 우선 7인의 위헌의견은 그 의견 전체에서 심사강도를 강화한다거나 완화한다는 취지의 명시적인 설시를 한 번도 하지 않는다. 선거운동소음 결정 7인 위헌의견은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의 5인의 합헌의견의 설시 중 명백한 위반을 요구한다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앞 부분만을 인용하여 “국가가 국민의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를 입법자 또는 그로부터 위임받은 집행자가 어떻게 실현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원칙적으로 권력분립과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국민에 의하여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고 자신의 결정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지는 입법자의 책임범위에 속한다. 헌법재판소는 단지 제한적으로만 입법자 또는 그로부터 위임받은 집행자에 의한 보호의무의 이행을 심사할 수 있다.”고 설시할 뿐, 심사강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다(강조는 필자). 그런데 위 설시 중 밑줄 친 부분은 위반 여부 인정에 있어 명백성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의 다음과 같은 설시, 즉 “입법자가 소음에 대한 규율을 명확히 설정하지 않아 그로 인해 불편과 피해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기본권 보호의무 위반에 해당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침해로 인정되려면, 입법자가 국민의 기본권적 법익 보호를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는가를 살펴서 그 보호조치 위반이 명백하여야 할 것이다.”와 논리적으로 연결되므로, 선거운동소음 결정의 7인의 위헌의견도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의 5인의 합헌의견과 같이 심사강도를 완화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평가할 여지를 남긴다.49)
그러나 다른 한 편 선거운동소음 결정의 7인의 위헌 의견은 종래의 선례들 보다 심사강도를 강화하였다는 평가가 가능한 여지도 있다.50) 이는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종래의 선례에서 반복적으로 설시한 법리 B를 생략하고 위헌 의견 전체에서 ‘명백’이나 ‘전적으로’와 같이 심사강도의 완화를 나타내는 어휘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법리 B 중 아래 밑줄 친 부분은 심사강도의 완화에 해당하는 설시인데, 선거운동소음 결정의 7인의 위헌의견은 법리 B를 통째로 생략하고 그 대신 심사강도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법익형량 법리를51) 설시하기 때문에, 심사강도를 강화한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평가할 여지를 남긴다.
국가가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였는가 하는 이른바 ‘과소보호 금지원칙’의 위반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국가가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전적으로 부적합하거나 매우 불충분한 것임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국가의 보호의무의 위반을 확인하여야 하는 것이다.
심사강도를 강화하는 근거로는 기본권 제한 정도의 심각성, 기본권의 높은 사회적 관련성, 낮은 입법자의 예측판단 필요성, 사안에 관한 사법부의 높은 전문성을 들 수 있다.52) 선거운동으로 인한 소음공해는 그 소음의 정도와 반복성에 비추어 환경권 제한 정도가 가볍다고 보기 어려운 점53), 소음공해는 기본적으로 상린관계에서 문제되므로 사회적 관련성이 높은 점, 소음의 정도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객관적인 과학적 증거 수집이 비교적 용이하므로 입법자의 예측판단 필요성이 낮은 점, 환경권은 통상 소수자의 권리이고 이 사안 역시 그러하므로 소수자 보호를 본래적 사명으로 하는 사법부의 전문적 영역으로 볼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안의 경우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의 위헌의견과 같이 심사강도를 강화하는 것이 타당하고 이를 명시적으로 설시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54)
Moreno 판결과 선거운동소음 결정 모두 소음의 수준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권리 침해의 중요한 논거로 제시한다. 즉, Moreno 판결은 소음의 크기와 지속 기간을 중요한 판단 요소로 설시한다.55) 이러한 유럽인권재판소의 논증구조는 Moreno 판결의 법리를 그대로 원용하여 2010. 5. 20. 선고한 OLUIĆ v. CROATIA 판결56)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이 판결은 청구지의 주거지와 동일한 건물에 있는 술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관한 것인데, 유럽인권법원은 10개 단락에 걸쳐 청구인이 겪은 소음의 정도를 자세히 분석하고, 그것이 WHO나 다른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이 채택한 허용치를 초과한다는 점을 확인한 후, 청구인의 딸이 청력 장애를 겪은 점, 소음이 수년간 그리고 야간에 계속된 점을 근거로 하여 그러한 소음으로부터 청구인을 보호할 회원국의 의무가 인정된다는 결론에 이른다.57)
우리 헌법재판소의 선거운동소음 결정도 마찬가지로 확성장치 사용 개수 및 최고출력, 확성장치 사용 시간대, 확성장치 사용 장소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는데 이러한 분석이 결국 환경권 침해라는 결론에 이르는 주된 논거가 된다. 이러한 논증방법론, 다시 말해 구체적 형량은 선거운동소음 결정이 더 자세한 방법론을 취하였지만,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 역시 정신적, 육체적 법익 침해가 수인한도를 넘었는지를 살펴보는 방법론을 취하였다. 이러한 논증방법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비판론이 전개되고 있다. 우선 선거운동소음 변경 전 결정에 대해서는 “환경권의 독자적 기본권성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정신적・육체적 법익침해의 수인한도’ 혹은 ‘다른 개별적 권리 침해로 연결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 환경권의 법적 성격을 독자적인 주관적 권리로 상정하는 이상 -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다(이하 ‘비판론1’이라 한다).58) 반대로 선거운동소음 결정에 관하여 “소음피해 일반이 아니라, 선거소음으로 인해 어떤 기본권적 법익 침해의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는지 그 과학적 가능성이 어느 정도 제시될 필요가 있었다.”는 비판이 있다(이하 ‘비판론2’라 한다).59)
비판론1은 헌법재판소가 채택한 방법론에 의할 경우 환경권 보호에 소극적인 결론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제기되었다는 점에서60) 그 취지에는 공감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측면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논증구조의 측면에서 보자면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법익형량은 추상적인 형량이 아니라 구체적인 형량인데,61) 소음이 문제된 사건이라면 소음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체적으로, 즉 소음의 크기, 지속시간, 반복성, 소음 유발 수단 등에 관해 세밀하게 따져 봐야 환경권 제한 정도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고 그 구체적 형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비판론2가 타당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구체적인 소음측정결과를 상세히 분석하는 Moreno 판결 및 이를 인용한 OLUIĆ v. CROATIA 판결의 논증 방식은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V. 결론
협약상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강제 장치인 유럽인권협약 및 유럽인권재판소와 기본권을 실효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강제 장치인 대한민국헌법 및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그 각각의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 작동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체주의 국가의 혹독한 인권 말살의 경험 위에 세워진 이러한 강제장치의 작동이 여기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협약상 권리나 기본권은 국가가 아니라 동료 시민이나 사법인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있고, 국가는 그러한 침해를 방지할 적극적인 의무를 진다. 우리 헌법 제10조 후문에 규정된 국가의 기본권 보장 의무는 그 명시적인 표현이다. 국가의 기본권 보장 의무가 문제되는 위와 같은 사안에서는 통상 기본권 충돌의 문제가 발생한다. 유럽인권재판소가 협약 제8조 제1항의 적용 범위로 인정하고 있고, 우리 헌법 제35조 제1항 환경권 규정의 규율 영역인 환경오염 사안은 그 전형적인 예가 된다. 이러한 경우에도 국가가 직접 협약상 권리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법익 형량을 통해 국가의 행위가 협약 제8조 제1항에 위반되는지 혹은 헌법상 환경권을 침해하는지를 판단한다. 따라서 그 형량 방법론을 얼마나 정교하게 구성할 것인지와 특히 심사강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가 권리의 실효적 보장의 관건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Moreno 판결과 선거운동소음 결정 모두 소음의 수준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권리 침해의 중요한 논거로 제시하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심사강도의 조절에 관해서는 향후 양 재판소의 법리 발전의 추이를 기대하며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