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형법전에는 “폭행”과 “협박”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 단어들의 구체적 의미는 서로 일치하지 않고, 범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학설과 판례는 폭행은 4가지 유형, 협박은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각 범죄에서 의미하는 폭행이나 협박은 위 유형들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왔다.
강제추행죄의 경우에 종래 판례는 최협의의 폭행·협박이 있을 것을 요건으로 하여 왔다. 그러다가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대상판결’)로 이 입장이 변경되었다. 본 판결의 다수의견은 폭행·협박 선행형 강제추행 사안에서 폭행·협박은 각각 폭행죄와 협박죄에서의 그것과 동일하다고 판시하였다. 더 이상 항거불능성이라는 추가 요건은 필요치 않게 되었다.
다수의견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현재 재판실무가 이미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협박을 최협의의 폭행·협박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요컨대 현실과 판례법리의 불일치가 해소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수의견은 새로운 해석론을 통하여 성범죄에 경종을 울리고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하여는 종전 판례 법리를 지지하는 별개의견이 있고, 다수의견에 가담하면서도 이에 대해 비판적인 보충의견1과, 이러한 별개의견 및 보충의견1을 다시 비판하는 보충의견2, 보충의견3이 존재한다.
본 글에서는 우선 각 의견들의 주요한 내용을 분석하여 전체적인 대상판결의 모습을 파악하여 보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각 의견들이 가진 특수한 점과 더 논의가 필요한 점, 모순이 될 수 있는 점을 간략히 지적하고자 한다. 한편 본 판결은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 기준에 대한 논란을 정리하기는 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여러 가지 의문을 추가로 제기하고 있다. 대상판결 이후에 더 논의되어야 할 쟁점들을 제시하고 나름대로의 의견을 덧붙여 보기로 한다. 다만 이 추가적인 쟁점들에 대한 결론은 확정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앞으로 활발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잠정적인 것이라는 점을 밝혀 둔다. 이 논문은 대상판결의 분석을 토대로 하여, 여기서부터 파생되는 새 문제들에 대한 활발한 토의를 촉구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다.
Ⅱ. 사실관계와 원심판결
피고인은 4촌 친족인 피해자의 왼손을 잡아 “만져달라”고 말하며 피고인의 성기 쪽으로 끌어 당겼으나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자 “한 번만 안아줄 수 있으냐”고 말하여 피해자를 양팔로 끌어안은 다음 피해자를 침대에 쓰러뜨려 피해자 위에 올라타 반항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후 피고인은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고 말하며 오른손을 피해자의 상의 티셔츠 속으로 집어넣어 속옷을 걷어 올려 왼쪽 가슴을 약 30초간 만지고 피해자를 끌어안고 자세를 바꾸어 피해자가 피고인의 몸에 수차례 닿게 하였다. 이후 피해자가 방문을 나가려 하자 피고인은 피해자를 뒤따라가 약 1분 동안 끌어안아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였다.
원심은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해당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다.
피고인이 한 “만져달라”, “안아봐도 되냐”는 등의 말은 객관적으로 피해자에게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말이라고 보기 어렵다. 피고인이 위와 같은 말을 하면서 피해자를 침대에 눕히거나 양팔로 끌어안은 행위 등을 할 때 피해자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어서 피고인의 물리적인 힘의 행사 정도가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
원심은 피고인의 발언들이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협박에 해당하지 않고, 피고인이 피해자를 침대에 눕히거나 양팔로 끌어안은 행위를 할 때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았다고 하여 피고인의 물리력 행사가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가 아니라고 하였다.
대법원은 형법상의 폭행을 4가지 유형으로, 협박을 3가지 유형으로 각각 나누어 해석하고 있다. 폭행 4유형설은 폭행을 (가) 최광의의 폭행 (나) 광의의 폭행 (다) 협의의 폭행 (라) 최협의의 폭행으로 나누고 있다. (가)는 모든 불법적 유형력의 행사, (나)는 사람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 (다)는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를 의미한다. (라)는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가 상대방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는 경우이다.
(가)에서 (다)는 유형력의 ‘크기’ 보다는 ‘방향’이나 ‘형태’를 기준으로 구분된다. 반면 (다)와 (라)는 유형력의 정도(amount)가 다르다. 이에 의하면 (다), (라)의 구분은 (가), (나), (다)의 구분과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특히 최협의의 폭행의 존부를 판단하는 것은 다른 세 유형을 각각 구분하는 것보다 한층 어렵다.
협박 3유형설은 협박을 (가) 광의의 협박 (나) 협의의 협박 (다) 최협의의 협박으로 구분한다. 협박은 항상 ‘사람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 물건에 대한 협박은 인정되기 어렵고, 따라서 폭행과 달리 ‘최광의의 협박’과 같은 개념은 인정되기 어렵다. 한편 폭행의 네 가지 유형이 유형력의 크기와 방향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구분되었다면 협박은 해악의 정도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구분된다.
이처럼 형법상 폭행과 협박의 각 구분에 차이가 있지만, 최협의의 폭행·협박은 모두 상대방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리고 강제추행죄와 강간죄의 폭행·협박은 모두 최협의의 폭행·협박에 해당한다는 것이 대상판결 이전까지 대법원의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종래의 판례이론 하에서는 강제추행죄의 성부를 따지기 위해 피해자의 항거가 곤란한 상황인지 입증되어야 하였다.1)
원심의 입장은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에 있어서 종래의 판례 이론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즉,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에 해당하려면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하면서 그 판단 기준으로 ‘피해자가 저항’했는지를 살펴 보고 있음이 명시적으로 언급된다.2)
Ⅲ. 대상판결의 분석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 요구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명시적으로 변경한 것이다.
다수의견이 판례를 변경한 첫 번째 이유는 종전의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한 해석이 개인의 성적 자유 내지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였다는 반성에 있다. 기존의 판례 해석은 성적 자유나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를 중점적으로 다루기보다는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종래의 대법원은 “피고인이 바지를 벗어 자신의 성기를 피해자에게 보여준 것만으로는 그것이 비록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피고인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추행’을 하였다고 볼 수 없다.”3)4)라고 판시하였다.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도 피고인이 피해자의 반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없었다면 강제추행죄 성립을 부정한 것이다. 이는 구시대의 정조관념에 입각5)한 해석으로 현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또한, 이러한 입장은 피해자가 왜 가해자의 행위를 막지 않았는지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게 되고, 항거가능성의 기준은 판단자에 따라 자의적이라는 점에서도 피해자의 보호에 소홀하게 되는 측면이 있었다.6)
해석론상 좀 더 주목할 것은 다수의견이 판례변경으로 내세운 두 번째 근거이다. 다수의견은 종전 판례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을 형법전상 폭행죄 및 협박죄에서의 폭행 또는 협박과 다르게 해석하여 혼란을 초래하였음을 비판하고 있다. 형법에는 여러 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통설은 이러한 폭행 또는 협박을 각각 4유형과 3유형으로 나누어 해석하여 왔다. 이에 의할 때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최협의의 폭행 및 최협의의 폭행으로 해석되었다. 반면 폭행죄에서의 폭행과 협박죄에서의 협박은 모두 협의의 폭행 및 협의의 협박으로 보아 왔다. 협의의 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대한 일체의 유형력 행사, 협의의 협박은 사람에게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해악의 고지를 의미한다. 즉 협의의 폭행과 협박은 상대방의 반항 내지 항거불능 여부가 애초에 문제되지 않는다.
다수의견은 종전의 판례법리가 문언에 없는 ‘항거불능성’이라는 요건을 추가하여 강제추행죄를 부당히 축소해석했다고 전제하고 있다.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각각 ‘문언 그대로’ 폭행죄의 폭행과 협박죄의 협박으로 해석해야 하고 이것이 해석상 일관성을 갖는다는 것이 다수의견의 주장이다.
생각건대 다수의견의 첫 번째 논거가 다분히 가치지향 영역이라면 두 번째 논거는 문리 해석론의 영역에 있다고 하겠다. 첫 번째 논거는 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하고, 형법전 문언도 이 보호법익을 실질적으로 고려하면서 해석되어야 함을 판시하였다. 최근 들어 대법원은 ‘성인지 감수성’ 판결 등 성범죄의 성립범위를 넓히는 듯한7) 방향으로 법리해석을 전개해 왔으며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도 이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인 법조실무도 대체로 성범죄 성립범위를 넓히고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듯 하다. 이 점은 대상판결에도 언급되고 있다.
또한 근래의 재판 실무는 종래의 판례 법리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의 행위가 폭행죄에서 정한 폭행이나 협박죄에서 정한 협박의 정도에 이르렀다면 사실상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라고 해석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여 왔다.8) 예를 들어, 과거 대법원은 피고인이 노래방에서 술에 취해 있던 피해자의 허리와 등을 잡고 가슴을 만지려고 한 행위에 대해 피해자가 거부하자 그만두었다거나 구호요청이 가능했음에도 구호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등의 사정을 들어 강제추행으로 보기에 미흡하다고 판단한 바 있으나(대법원 2000. 10. 13. 선고 2000도3199 판결 참조), 이후 대법원은 혼인 외 성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여 추행한 경우에도 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고, 이와 달리 혼인 외 성관계의 폭로 외에는 별다른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는 등의 이유로 그와 같은 협박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정도라고 볼 수 있을지언정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본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위 대법원 2006도5979 판결 참조).
강제추행은 성범죄의 일종이므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요한 보호법익으로 한다. 그런데 항거불가능한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만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수 있다 보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이는 강제추행죄의 성립을 지나치게 어렵게 만들며, 실제로는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는데도 항거가 가능하였다는 이유로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를 늘리게 된다. 이는 실체적 정의에 반하고 국민의 변화한 성의식에도 맞지 않는다. 다수의견은 이 점을 핵심 근거로 하여 종전의 판례들을 변경하였고 이 견해는 타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다수의견이 제시한 두 번째 논거에는 약간 의문이 있다. 형법에는 하나의 단어가 여러 의미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업무방해죄에서의 업무와 업무상 과실치사죄에서의 업무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폭행과 협박은 각각 4개, 3개의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형법전에 동음다의어가 다수 등장한다고 하여 해석상 일관성이 없다거나 혼란이 야기된다는 비판이 제기된 적은 없었다. 각 구성요건마다 폭행이나 협박이 고유한 의미로 해석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것이고 이것이 체계적합성을 해하지도 않는다. 또한 만약 폭행 4유형·협박 3유형론이 해석상 지나치게 번잡스러워 하나의 의미로 일관되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협의의 폭행·협박, 즉 폭행죄의 폭행과 협박죄의 협박이어야만 할 논리적 필연성은 없다. 이 점은 다수의견이 지닌 약점이라 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다수의견은 변화된 사회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판례 법리를 변경한 것이고, 그러한 현실 인식에 무리는 없다고 보인다. 종전 판례 법리를 철저히 관철하면 수사와 재판에서 강제추행죄의 성부를 판단할 때 피해자의 항거불능성을 따져야 하는데, 이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인의 법감정으로 보더라도 폭행죄의 폭행이나 협박죄의 협박이 있다면 전체적인 강제성이 있는 것이므로 ‘강제’추행죄를 성립시킴에 지장이 없다. 다수의견의 결론에 찬성한다.9)
별개의견은 성폭력처벌법 위반 부분에 대한 원심의 무죄판결을 파기한다는 결론에서는 다수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결론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별개의견은 다수의견에 대하여 철저히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별개의견은 기존의 폭행 4유형/협박 3유형론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협박도 상대방(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다수의견과 같은 판례변경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입장이라 할 것이다.
이 사건에서 성폭력처벌법 위반(친족관계에의한강제추행) 부분에 관하여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여야 한다는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한다. 다만 폭행·협박 선행형의 강제추행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에 관하여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요구된다고 판시한 ‘종래의 판례 법리’는 여전히 타당하므로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다수의견과 같이 강제추행죄의 처벌범위를 확대하는 해석론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후 국회의 입법절차를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0)
별개의견의 입장은 강제추행죄의 구성요건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입법부가 할 일이라는 것이다. 별개의견은 단순히 사법이 법의 해석과 적용에서 보수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기보다는 판례를 변경하여야 할 필요성이 충분히 논증되지 않았다는 데 방점이 있다. 별개의견은 기본적으로 종전의 판례이론 및 학설을 존중하며, 이를 변경한다면 전체적인 법체계가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별개의견은 설득력 있는 몇 가지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강제추행에서의 ‘강제’의 사전적 의미는 “타인의 의사를 제압” 함을 의미하는 바, 이는 상대방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케 한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즉 강제추행이라는 죄명 자체에서 이 죄의 구성요건인 폭행·협박이 무엇인지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둘째, 우리 법은 폭행·협박에 의한 추행 이외에 위력에 의한 추행죄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위력과 폭행·협박이 구분될 수 있도록 해석하여야 함을 지적한다. 다수의견이 재정의한 폭행·협박의 개념은 “타인의 의사를 제압할 일체의 세력”인 “위력”과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아니한다. 다수의견의 해석에 의하면 단지 위력을 행사하는 것만으로도 강제추행죄가 성립될 수 있으므로 처벌범위가 부당히 넓어질 수 있다. 또한 대상판결의 해석은 위력에 의한 추행죄를 사실상 사문화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11)
셋째, 준강제추행죄와의 균형이다. 준강제추행죄는 상대방의 항거불능을 이용하여 추행하는 것이므로, 강제추행죄 역시 상대방을 항거불능케 하는 정도에 이르는 행위를 한 후 추행에 이르러야 성립한다고 해석해야 준강제추행죄와 동급의 범죄로 의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다수의견은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에 대한 종전 해석이 2차 피해를 야기하였다고 보았다. 별개의견은 이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또한, 성범죄에서의 2차 피해는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절차적 배려를 제공함으로써 방지하여야 하는 것이지 종전의 판례를 쉽게 변경함으로써 2차 피해를 막는다는 것은 목적과 수단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같은 취지에서 성범죄 피해자 보호도 책으로 해결할 일이지 판례를 변경하여 이룰 것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다수의견과 같이 피해자 보호를 위하여 판례변경을 하여야 할 필연적 근거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다섯째, 성범죄와 관련된 여러 특별법에서 강제추행에 대해 중한 법정형이 규정되어 있어, 다수의견과 같이 강제추행의 성립범위를 넓히는 해석을 한다면 특별법이 적용될 때 지나치게 과다한 처벌이 내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별개의견은 이와 같이 다수의견의 거의 모든 근거를 비판하면서, 판례의 변경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 사실상 별개의견보다는 반대의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단, 본 사안에 한정하여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케 할 정도로 폭행·협박을 행사하였다고 하여 종래의 판례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면서도 원심의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있다.
별개의견은 종전의 판례가 수십 년간 변경되지 않아 왔으며 이를 변경할 필요성이 확실치 않다는 점을 중요한 근거로 두고 있다. 그러나 사회의 성 인식이 수십 년간 급격히 변화하였음이 명백한데도 과거의 판례 법리를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별개의견은 강제추행의 성립범위가 넓어져 처벌의 과잉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으나 이미 재판 실무는 강제추행의 성부를 판단할 때 특별히 피해자의 항거불능성을 요하지 않는 쪽으로 굳어져 가는 상태이기 때문에 대상판결의 선고로 인하여 갑자기 강제추행죄의 처벌 범위가 극적으로 넓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으리라 보인다. 한편 성범죄를 강력히 처벌하는 입법과 성범죄에 대한 각종 보안처분이 마련되어 있어 성범죄자가 대단히 큰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입법자의 결단 내지는 양형론의 문제이므로 강제추행죄의 성립범위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별개의견의 우려에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아니하나 다수의견의 근거에 명확히 반박하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다수의견은 사회의 인식 변화에 따라 형법 규정 해석을 변경하였다는 점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단, 법실증주의적 사고하에서는 법의 외적 변화가 해석의 변경을 일으킬 수 없고 일으켜서는 안 된다. 다수의견은 목적론적 해석을 함으로써 법익 보호를 위해 처벌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보충의견1은 이러한 위험성을 경계한 듯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변경하는 데 찬성하면서도 ‘추행’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해석한다.
종래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의 ‘추행’이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이에 해당하는지는 피해자의 의사, 성별,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태양, 주위의 객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히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3도5856 판결 등 참조). 그런데 다수의견에 따라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엄격하게 제한한 종래의 해석론을 바꾸는 이상, 강제추행죄의 성립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하여 앞으로는 강제추행죄의 ‘추행’에 대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는 경우로 엄격히 해석할 필요가 있다.
기존 판례도 추행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행위의 상대방인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12) 보충의견1은 어떤 행위가 추행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일응의 기준으로는 ‘행위의 대상 부위가 어디인가’를 제시하고 있다.13)
보충의견1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엄격하게 제한한 종래의 해석론을 바꾸는 이상, 강제추행죄의 성립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위험성이 있다고 하며, “앞으로는” 강제추행죄의 ‘추행’에 대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는 경우로 엄격히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보충의견1은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을 넓게 해석하는 효과와 ‘추행’의 의미를 엄격 해석하는 효과가 서로 상쇄될 것이라 보는 것 같다. 또한 “앞으로는”이라는 단어를 부가한 것에서 볼 때, 법원이 지금까지는 강제추행죄에서 ‘추행’을 해석할 때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는 경우로 엄격해석을 해 오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보충의견1에서 의아한 부분은 이 의견이 기습추행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다. 대상판결은 기습추행이 발생한 사안이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충의견1은 종전에 많은 논란이 되었던 이른바 기습추행, 즉 폭행 자체가 추행이 되는 형태의 강제추행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강제추행죄는 법문언상 폭행·협박이 선행되어 추행을 하는 행위를 벌하도록 되어 있는데, 기습추행은 폭행이 곧 추행임에도 불구하고 강제추행죄로 의율되어 왔다. 또한 기습추행은 강제추행과 달리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본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강제추행을 이원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14) 이러한 기습추행의 법리에 대해서는 강제추행죄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보충의견1은 판례를 변경하여 강제추행죄에서 폭행·협박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는 동시에 추행의 의미를 엄격 해석한다면 기습추행도 강제추행죄에 포섭할 수 있으면서 강제추행의 포섭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는 부작용도 피할 수 있으리라 주장하고 있다.15)
보충의견1이 이러한 논의를 하고 있기는 하나, 기습추행의 문제는 사안에서 쟁점이 되지 않았던 바, 이에 대해 논증하려는 보충의견1에 대하여는 법원이 가정적 사안을 다루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아래의 보충의견2도 이를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보충의견2의 지적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한편 보충의견1은 기존의 성범죄 관련 특별법들에 규정된 강제추행죄의 성립범위가 넓어져 처벌의 과잉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고 한다.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는 사람의 불이익은 법률적·실질적으로 매우 크다. 일단 성범죄자로 낙인이 찍히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강제추행에서의 폭행·협박의 의미를 변경하는 한 기존의 법조항들의 법정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보충의견1은 여러 가지로 특이한 면모를 보인다. 기본적으로 다수의견은 강제추행죄의 성립범위를 넓히는 법리를 설시한다. 그런데 보충의견1은 다수의견에 가담하면서도 강제추행죄의 추행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하여 오히려 강제추행죄 성립을 좁히고 있다. 이런 방식의 설시가 ‘보충의견’이라는 이름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다. 그리고 보충의견1은 강제추행죄와 기습추행죄에서 폭행·협박의 해석기준을 동일하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대상판결의 논점과 큰 관련이 없다. 마지막으로 보충의견1이 주장하는 형벌의 과잉화 우려는 해석론보다는 입법론에 해당한다 할 것이고, 과다한 형벌권의 행사가 문제된 것이 아닌 본 대상판결에서 굳이 위와 같은 언급을 하는 것이 타당한지 다소 의문이라고 사료된다.
대상판결은 보충의견1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보충의견2가 있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보충의견2는 아예 이 의견이 보충의견1을 반박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선 보충의견2는 이 사건의 쟁점이 강제추행죄에서 폭행·협박의 의미에 한정됨을 명시하는 것으로 비판을 시작한다. 보충의견1이 말하고 있는 ‘추행’의 의미는 이 사건 과정에서 쟁점으로 다루어진 바 없다. 그러므로 보충의견1은 사건의 쟁점과는 벗어난 부분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충의견2는 원치 않는 신체접촉이 발생한 이상 성적 자기결정권은 즉각 침해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또다시 본질적인 침해인지 비본질적인 침해인지 나누어야 할 근거는 찾아볼 수 없고 대법원의 종전 견해(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5도9436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반한다고 한다.
보충의견2는 추행부위 등을 고려하여 강제추행죄의 성립범위를 제한하여야 한다는 보충의견1의 의견에도 반대한다. 추행행위를 할 때 신체부위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종래 대법원 판례라는 것이다. 이는 보충의견1이 독일이나 미국 형법에서는 추행(성적 행위)의 대상인 신체 부위를 한정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보충의견2는 기습추행에 대한 보충의견1의 의견도 현재 사건에서는 논의의 필요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보충의견2가 보충의견1을 비판하는 핵심 이유는, 보충의견1이 분명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견의 취지를 몰각시킬 위험이 있는 논리를 펴고 있으며, 심지어 별개의견과 연결될 수 있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충의견2는 이 점을 “다수보충의견1은 입법적 해결을 주장하는 별개의견을 지지하고 있으며, 게다가 다수의견에 따라 종래의 판례 법리를 변경하면 과잉처벌로 인해 책임주의에 반할 수 있다고 비판함으로써 결론까지 별개의견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라고 명확하게 적시하고 있다. 나아가 “다수보충의견1에서 입법적인 해결을 강조하는 것은 다수의견이 판시한 범위를 벗어나 이와 사실상 배치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하여, 보충의견1이 다수의견과 과연 같은 입장에 있는지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다수보충의견1은 입법적 해결을 주장하는 별개의견을 지지하고 있으며, 게다가 다수의견에 따라 종래의 판례 법리를 변경하면 과잉처벌로 인해 책임주의에 반할 수 있다고 비판함으로써 결론까지 별개의견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헌법 제10조에 근거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이 사건 쟁점에 대해 법원에 맡겨진 법률해석의 영역임을 선언하는 의견으로서, 입법자의 입법형성권에 맡겨진 영역이라고 보는 별개의견과 근본적인 접근을 달리하고 있다. 그리고 다수의견은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의 의미를 명확하게 다시 정의함으로써 사실상 변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현재의 재판현실과 종래의 판례 법리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하려는 것이지 처벌범위를 부당하게 넓히려는 것도 아니다. 결국 다수보충의견1에서 입법적인 해결을 강조하는 것은 다수의견이 판시한 범위를 벗어나 이와 사실상 배치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총체적으로 하나의 다수의견을 이루는 다수의 보충의견들이 이처럼 완벽하게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은 전원합의체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다수의견’이 실제로는 서로 섞일 수 없는 두 의견 간의 대략적 타협으로 간주될 위험도 있다. 실질적으로 보충의견1이 주장하는 문제점들은 그 내용상으로만 본다면 경청할 가치가 없지 아니하다.16) 그러나 판결의 형식 측면에서 과연 ‘보충의견’으로 부를 수 있는지는 검토가 필요하다. 보충의견2가 보충의견1을 대상으로 하여 “다수보충의견1은 입법적 해결을 주장하는 별개의견을 지지하고 있으며, 게다가 다수의견에 따라 종래의 판례 법리를 변경하면 과잉처벌로 인해 책임주의에 반할 수 있다고 비판함으로써 결론까지 별개의견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중략) 결국 다수보충의견1에서 입법적인 해결을 강조하는 것은 다수의견이 판시한 범위를 벗어나 이와 사실상 배치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판시한 것은 이러한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부분은 보충의견2의 입장에 찬동한다.
다수의견에 대한 세 번째 보충의견은 다수의견에 대한 별개의견(사실상의 반대의견)을 비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선 보충의견3은 다수의견의 판례변경 취지는 강제추행죄의 해석기준을 명확히 하여 죄형법정주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함에 있다고 본다. 즉, 종전 재판 실무는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협박을 사실상 협의의 폭행·협박으로 해석해 오고 있는 바, 이와 괴리가 있는 판례 법리를 변경할 정당성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시대 상황의 변화에 발맞추어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 보충의견 3의 주장이다.
또한, 보충의견 3은 다수의견에 의하더라도 강제추행죄와 단순추행죄·위력에 의한 추행죄의 구별이 불분명해진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 이 부분은 보충의견3의 지적에 타당성이 있는데, 위력에 의한 추행죄는 보호범위를 확장하고 보호대상을 추가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일반 강제추행죄와 분명히 구별되기 때문이다.17)
설령 구체적 사안에서 위 각 범죄의 판별이 쉽지 않을 수는 있더라도 이는 사안별 해석의 문제이지 판례 법리의 변경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보충의견3의 논리이다. 그리고 준강제추행죄의 항거불능을 완화 해석하는 것이 판례의 경향인 점에 비추어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 개념을 변경하더라도 준강제추행죄와의 불균형 문제는 생기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폭행·협박 개념에 대한 해석 변경과 성범죄에 대해 중한 처벌을 하는 특별법의 제정은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고 본다.
이상과 같이 보충의견은 별개의견을 비판하면서 다수의견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으며, 그 논거들은 그대로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Ⅳ. 추후 제기되는 쟁점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상판결은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에 관하여 매우 많은 쟁점을 논하고 있다. 상당수의 쟁점은 다수의견에서 결론이 내려졌으나, 여전히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상판결은 추후 해명되어야 할 여러 문제를 새롭게 던지고 있기도 하다. 아래에서 이에 관하여 본다.
전원합의체 판결에는 대법관 전원이 관여하고, 따라서 대법관들의 의견이 항상 일치할 수는 없다. 전원합의체의 의견은 법정의견, 다수의견, 별개의견, 반대의견, 보충의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여러 의견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의견이 다수의견이라는 점은 별다른 의문이 없다. 모든 의견은 이유와 결론으로 구성되는데 다수의견과 결론이 다른 의견을 반대의견이라 부를 수 있다. 다수의견과 결론은 같지만 이유를 달리하는 것을 별개의견이라 한다. 별개의견과 법정의견은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그저 결론만 같은 뿐, 서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예가 많다. 보충의견은 위 다수, 반대, 별개의견에 대하여 결론과 이유를 같이하면서 논거를 보충하는 의견이라 할 수 있다.
본 판결은 전원합의체 판결로서도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의견이 개진되었다. 다수의견, 다수의견과 완전히 상반된 입장의 별개의견,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임에도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듯한 의견, 그러한 보충의견을 비판하는 또 다른 보충의견, 그리고 별개의견을 비판하는 보충의견 등이 하나의 판결문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의 전원합의체 판결은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특정 대법관의 의견이 보충의견인지, 반대의견인지, 혹은 별개의견인지 정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전원합의체 판결의 결론을 내릴 때 대법관의 과반수가 찬동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견이 실질적으로는 다수의견에 반대하지만 결론에 있어서만큼은 다수의견과 같다면 - 즉 별개의견이라면 - 대법원 판결의 주문은 다수의견대로 결정된다. 다만 그 별개의견의 논리는 법정의견으로 채택되지 못한다. 이와 달리 사안에 적용할 논리는 다수의견과 같으면서도 최종결론이 다른 의견은 반대의견이 되므로 결론으로서 채택되지 못하나, 논리구조는 법정의견으로 채택될 수 있다.
또한, 보충의견이 전체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명확히 정해진 것은 없다. 보충의견은 다수의견(법정의견)에 부가될 수도 있고 반대의견에 부가될 수도 있다. 보충의견의 핵심은 피보충의견이 다루지 않은 논점을 제기하며 해당 의견을 지지하는 것이다. 즉 보충의견은 중간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론에서는 피보충의견을 지지하여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보충의견은 이미 보충의견이 아니라 반대의견이 된다.
대상판결에는 법정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세 개나 있다. 이 자체도 흥미롭지만 세 개의 보충의견이 전혀 다른 주장을 피력한다는 점이 대단히 특이하다. 보충의견1은 본건 결론에서 다수의견을 지지하면서도 다수의견의 확대해석을 경계한다. 다수의견의 핵심은 강제추행죄의 성립범위를 넓히는 것인데 보충의견1은 오히려 강제추행의 성립범위를 - 규범적 도구를 사용하여 - 좁힐 여지가 있다. 보충의견1의 일부 구절들을 발췌하면 이 의견이 보충의견인지 반대의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러한 보충의견이 있다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들)이 제외된 ‘순수한’ 다수의견만이 대법원의 법정의견이라고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는 하급심 법원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에 혼란을 줄 위험이 있다. 보충의견2가 이러한 취지의 판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나라는 판례법 국가가 아니고 판례는 원칙적으로 법원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시내용 중 어느 범위까지가 법정의견인지 확정될 필요성이 적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법원 판례는 실질적으로 재판의 지침이 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며, 소송에 있어 각 당사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사용된다. 따라서 다수의견과 보충의견의 대립, 혹은 하나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끼리의 대립은 판례의 정합성을 저해할 수 있다.
별개의견에 대한 반대의견이 보충의견으로 포함된 것도 특기할 만 하다. 별개의견은 다수의견과 결론이 같은 의견이다. 따라서 다수의견에 찬동하는 보충의견이라면 별개의견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적어도 결론에 대한 반대를 표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실제로 보충의견3은 별개의견의 결론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판례변경에 반대한다는 의견에 대한 비판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들이 최고 수준의 법리를 개진하는 장이므로, 다양한 의견이 여러 형태로 개진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의견의 종류와 실제 내용 사이에 모순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전술하였듯 대상판결에서 보충의견1의 내용은 다수의견과 배치될 소지가 상당히 크다. 보충의견1을 다수의견으로 포섭할 수 있을지는 대단히 의문이다. 보충의견1은 오히려 별개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 훨씬 걸맞는다.
그리고 앞서 본 바와 같이 다수의견을 보충하는 2개의 보충의견들은 서로 완전히 대립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서로 반대 입장에 있는 대법관들이 모여 하나의 다수의견을 도출한 결과가 된다. 이는 마치 다수의견을 어떻게든 도출시키기 위한 이합집산으로 보일 우려가 있다. 물론 서로 반대 입장에 있는 대법관들이라도 공통된 합의 분야에 대해서는 다수의견을 도출할 수도 있지만, 만일 그렇게 하였다면 의견이 합치되지 아니한 나머지 부분을 각자의 보충의견 형태로 현출하는 것은 신중하였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판례법 국가가 아니므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라도 당해사건 외의 하급심을 구속하지 않는다. 판례는 법원(法源)도 아니다. 그러나 실제 재판현장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지침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의미가 명료하지 않고, 법정의견인 다수의견의 의미조차 불분명하다면 사법절차에 큰 혼란이 올 수 있다. 만약 본건과 같이 강제추행죄의 의미가 쟁점이 된 사건이 계류되었을 때, 검사와 피고인이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보충의견(다수의견을 보충하는 두 개의 보충의견)을 인용한다면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하여야 할지 상당히 난감할 수밖에 없다. 전원합의체에서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판례를 보는 일반 국민들에게 규범의 혼란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상판결은 폭행 4유형론, 협박 3유형론 자체를 뿌리부터 뒤엎은 판시를 내놓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기존의 폭행 4유형론, 협박 3유형론을 재확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폭행 4유형론+협박 3유형론은 대상판결로 인하여 재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강제추행의 구성요건인 폭행, 협박이 협의의 의미로 해석됨으로써 최협의의 폭행, 협박을 요하는 범죄는 강간죄와 강도죄(그리고 각각 그 파생범죄들)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학설과 판례에 의하면 강간죄와 강도죄의 구성요건은 모두 최협의의 폭행, 협박을 전제하지만 정작 강간죄와 강도죄에서의 ‘최협의’의 의미가 동일하지도 않다. 강간죄에서의 폭행, 협박은 반항을 ‘현저히 곤란케 할 정도’면 성립하나 강도죄에서는 ‘반항을 억압할 정도’에 이르러야 하기 때문이다. 즉 최협의의 폭행, 협박은 실제로는 또다시 2개로 나뉘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굳이 ‘최협의의 폭행, 협박’ 개념을 도입할 필요성이 거의 없어지고 차라리 강간죄에서의 폭행, 협박과 강도죄에서의 폭행·협박 그 자체를 정의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편의상 전자를 ‘약한 최협의의 폭행·협박’, 후자를 ‘강한 최협의의 폭행·협박’으로 부르기로 해 보자. 대상판결 등장 전에는 약한 최협의의 폭행, 협박에 해당하는 범죄가 강간죄와 강제추행죄 두 종류였다. 그러므로 양자의 공통된 구성요건으로서 약한 최협의의 폭행, 협박 개념을 인정할 실익이 조금이나마 있었다. 그러나 약한 최협의의 폭행, 협박을 요하는 범죄에서 강제추행죄가 탈락한다면, 이 개념을 필요로 하는 범죄는 강간죄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강한 최협의의 폭행·협박은 애초에 강도죄 외에 문제되는 경우가 없었으므로, 대상판결대로라면 약한 최협의의 폭행·협박=강간죄의 폭행, 협박이며 강한 최협의의 폭행·협박=강도죄의 폭행·협박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래서는 약한 최협의의 폭행, 협박이든 강한 최협의의 폭행, 협박이든 그 개념들을 인정할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본 판결로 인하여 폭행 4유형론/협박 3유형론이 도전받을 수도 있다. 폭행은 최광의의 폭행, 광의의 폭행, 협의의 폭행으로 구분되고 협박은 광의의 협박, 협의의 협박으로 구분되어도 문제가 크지 않다. 강간죄와 강도죄는 서로 폭행·협박의 의미가 다르므로 애초부터 최협의의 폭행·협박으로 묶기 곤란하였던 바, 폭행·협박의 유형론에서 벗어나는 고유의 폭행·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대상판결은 강제추행죄의 폭행과 협박에 대해 판시하였을 뿐이고 강간죄의 폭행과 협박에 대해 직접 다루고 있지는 아니한다. 두 죄는 성범죄라는 측면에서는 유사하나 법정형이나 죄질이 상당히 다른 만큼 강제추행죄에 관한 판례변경이 추후 강간죄의 해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게 될 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18) 보충의견3은 대상판결이 강간죄에 대한 해석을 변경할 수도 있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별개의견에서 언급한 유엔 CEDAW 위원회는 1992년 일반 권고 제19호에 이어 2017년 일반 권고 제35호를 통해 일반입법조치로 “성범죄의 정의는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동의의 결여를 기초로 하고, 강요적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발표하였다. 특히 CEDAW 위원회는 2018. 3. 9. 우리나라 형법 제297조(강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데 대해 특별한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19) 이러한 권고가 직접적 구속력이 없음은 별개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지만, 위 권고의 취지와 앞서 본 세계 주요 국가의 입법례 등에 나타난 세계적 흐름에 비추어 보면, 입법적으로 비동의 성범죄를 도입할 것인지 여부와는 별개로, 현행 형법 및 형사특별법이 정한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법문언보다 협소하게 해석하여 피해자의 항거곤란성을 요구하는 종래의 판례 법리는 전체 법질서 내에서 더 이상 정당성과 합리성을 인정받기 어렵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대상판결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강간죄’에서의 ‘폭행·협박’의 의미가 변경될 것인가의 여부이다. 강간죄의 폭행, 협박은 강제추행죄의 그것과 같다.20)21) 따라서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철옹성같은 판례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극히 기술적 이유로 인해, 과거 강간죄에 대한 형사사법절차는 ‘반항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판단하는 과정으로 변질되어 운영된 측면이 있다.22) ‘반항하기 곤란했는가’와 ‘반항했는가’는 전혀 다른 의미인데도 실무상 편의로 인해 서로 같거나 적어도 유사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다. 이는 다수의 2차 피해자들을 낳았다는 윤리적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이론상 정밀성을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린 것이다.
형법상 강제추행죄와 강간죄는 행위태양이나 죄질이 다르고, 따라서 법정형도 크게 다르다.23) 강제추행죄는 벌금형의 선고도 가능한 반면 강간죄는 유기징역형만 선고할 수 있고 형의 하한선만 있다. 만약 강간죄의 폭행·협박도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처럼 폭행죄 및 협박죄의 그것과 동일하게 해석하도록 판례가 변경된다면 파급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추측하건대, 강간죄의 폭행·협박도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협박과 동일한 방향으로 판례 실무가 움직일 수는 있다. 양자는 모두 성적 자기결정권을 해하는 성범죄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성인지감수성 판결, 본 대상판결 등 가급적 성범죄 성립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전체적인 판례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다만, 강간죄는 범죄의 형태상 강제추행죄보다 높은 수준의 폭행이나 협박이 필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강간죄의 구성요건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성기를 삽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유형력 행사(또는 해악의 고지) 후에 성기를 삽입하기만 하였다면 모두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논리는 법감정에 너무 어긋나는 해석이고 가벌성을 지나치게 확장시키게 되므로 찬동하기 어렵다. 또한, 강간죄에서는 추행과 같은 ‘기습강간’등을 생각하기 어렵고 판례 실무가 강제추행처럼 폭행·협박을 폭행죄와 협박죄의 폭행·협박과 같은 의미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도 단언하기 힘들다.
강간죄로 유죄판결이 내려질 때 피고인이 받을 처벌과 불이익이 막대함을 고려한다면 너무 쉽게 강간죄를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모두 고려한다면 강제추행죄에 관한 본 대상판결은 강간죄에까지 확대 적용되지는 않으리라 여겨진다.
다수의견은 본 판결이 기습추행이 아닌 폭행·협박 선행형 강제추행에 관한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보충의견1에서는 기습추행에 관한 쟁점을 제기하면서 기습추행과 기습추행 아닌 강제추행의 구성요건인 폭행·협박의 정도가 다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서 보충의견1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폭행·협박의 성립범위가 완화되면 기습추행도 강제추행에 자연스레 포섭되리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보충의견2는 기습추행에서의 폭행·협박이 본 사안의 쟁점은 아니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보충의견2의 지적이 타당하다.
다만, 대상판결에서 기습추행 문제가 언급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기습추행과 일반 강제추행의 관계가 대법원에서 정면으로 다루어질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간략히 논의해 보기로 한다.
실제로 폭행·협박을 수단으로 하는(또는 폭행·협박이 선행되는) 강제추행 사례보다는 기습추행이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24) 이러한 사건에서 판례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대소강약을 불문”하고(협의의 폭행에 해당한다)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여 왔다. 즉 기습추행과 일반 강제추행에서 적용되는 폭행의 정도를 다르게 보았다는 것인데, 그 근거에 대해 명시하고 있지 않아 해석상 혼란이 있어 왔다.
기습추행의 문제는 강제추행죄 문언상 폭행·협박이 추행에 선행하도록 되어 있음에도25) 폭행과 추행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까지 동죄로 무리하게 포섭하는 부분에 있다. 폭행·협박의 성립범위를 완화한다고 하더라도 폭행·협박이 추행보다 선행하여야 한다는 문언을 넘어서는 해석을 할 수는 없다. 보충의견1이 제시하는 기습추행에 관한 주장은 찬성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상판결 이후에도 기습추행에 관한 해석론상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재론하건대, 애초에 대상판결이 기습추행의 해석론을 정면으로 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26)
다만 입법론상으로는 폭행·협박이 선행하지 않는 단순추행죄를 신설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27) 이 구성요건이 신설되면 기습추행은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이미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1조는 공중 밀집 장소에서의 (폭행·협박 없는) 추행을 처벌하고 있다. 공중 밀집 장소 이외에서의 추행도 별도로 입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단, 대부분의 추행은 그 자체로 폭력성을 수반하고 있을 것인 바,28) 단순추행죄의 입법 실익이 어느 정도일지는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성범죄에 대한 여러 강경책을 펴 오고 있다. 형벌의 강화 및 보안처분의 도입은 물론이고, 사법판단에 있어서도 피해자의 진술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이른바 성인지감수성 법리가 설시되었다.
성인지감수성은 법관의 사실인정에 관한 지침이고 대상판결은 법리의 변경이므로, 양자는 직접적 관련은 없을 수 있다. 다만, 양자 모두 피고인에게 좀 더 쉽게 유죄판결을 선고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그러므로 대상판결의 법리가 성인지감수성 이론과 결합되면 성범죄 피고인에 대한 유죄판결이 상당히 쉬워질 수 있고, 자칫 잘못하면 실무에서 성범죄에 대하여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흔들릴 수도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있다. 이에 대해 간략히 검토하여 보기로 한다.
보충의견1과 별개의견은 위와 같은 취지에서, 본 판결로 인하여 강제추행죄의 성립범위가 크게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는 듯 하다. 특히 보충의견1은 다수의견의 판례변경에 찬성하면서도 ‘추행’의 의미를 새롭게 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추행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본 사안에서 당초 판단대상이 아니었으며,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다수의견을 사실상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보충의견1을 제시한 대법관들이 강제추행죄의 추후 해석론에 대해 갖는 우려는 상당히 크다고 할 것이다. 이 우려는 별개의견에서도 공유되고 있음이 명백하다.
다수의견(보충의견1과 배치되는 범위에서)과 보충의견2, 보충의견3은 이와는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견해들은 오히려 종전의 판례 법리가 강제추행죄에서 피해자의 반항불가능성을 입증하려 시도하였고,29) 사건 시점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반항불가능성을 판단하면서 2차 피해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교묘한 범죄자를 단죄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고 본다. 이러한 관행은 점점 시정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추어 판례를 변경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에 합치한다고 한다. 별개의견 및 보충의견1과는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다르다고 할 것이다.
다수의견, 보충의견2, 보충의견3의 입장은 최근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성인지감수성 판결과도 일맥상통한다. 잘 알려져 있는 이 판결은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고 하고,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30)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이는 얼핏 보아서는 성범죄의 성립범위를 크게 확장하는 법리로 보인다. 그러나 좀 더 면밀히 검토하면 다른 방식의 해석도 가능하다. 개별적, 구체적 사건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은 곧 피해자의 입장을 다면적으로 살펴보아야 함을 설시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말을 반드시 신뢰하여야 한다는 의미로는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대법원 판례도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에는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여야 하므로, 개별적·구체적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지만 이는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하여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31)라고 선언한 바 있다.
강제추행죄에서 폭행·협박의 판단에 “항거를 곤란케 할 정도”라는 요건이 빠진다면 피해자의 항거가능성이 법정에서 직접 쟁점이 되지는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강제추행죄의 유죄율이 극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수의견이 설시하듯이 이미 재판 실무는 강제추행죄에서 피해자의 항거가능성을 크게 따지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바,32) 법원이 개별 사건을 판단하는 기준이 실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으리라 예측되기 때문이다. 또한 보충의견1의 지적처럼 ‘추행’의 존재를 엄격히 심사한다면 강제추행죄에 대한 유죄판단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별개의견과 보충의견1은, 다수의견처럼 판례를 변경함으로 인해 강제추행죄의 가벌성이 확대될 수 있고, 현재의 성범죄 관련 법률들이 강제추행죄를 엄벌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처벌의 과잉 문제가 나타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나아가 보충의견1은 기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의 법정형을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보충의견3은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 개념과 성범죄 관련 특별법 사이에 직접적 연관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늦게 잡아도 2000년도 중반에 들어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이고, 이에 발맞추어 성범죄를 엄벌하는 입법도 늘어나고 있다. 성범죄 구성요건을 추가하고 형벌을 높이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재범 방지와 (잠재적)피해자 보호를 위한 보안처분도 계속 도입되고 있다. 신상정보 등록·공개·고지제도, 취업제한 제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제도, 화학적 거세제도 등이 이미 도입되었으며 비동의간음죄 신설이나 물리적 거세제도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은 국가적인 추세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성범죄 관련 특별법의 형량을 낮추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성범죄의 성립범위가 대단히 넓게 된다면, 상대적으로 많은 성범죄자가 양산될 것이고, 이들 사이에 경중을 두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성범죄자로 분류되는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엄벌하는 것은 정의에 합치되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충의견1은 이 부분을 지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성범죄의 형량을 낮추자는 주장은 성범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보충의견1의 이 부분에 관한 지적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33) 경청할만 하다. 헌법재판소의 개입을 제외하면 계속 강경하게 이어져 온 성범죄 대책을 한 번쯤은 재검토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각종 결합범의 법정형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과, 성범죄 이외 다른 범죄와의 균형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주지되어야 한다.34)
Ⅴ. 결어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을 확고히 선언하는 한편, 재판 실무와 판례 법리의 조화를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강제추행죄 해석을 변경하였다. 이는 성범죄의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한다는 최근 흐름에도 합치한다는 측면에서 타당한 변경이라고 할 것이다. 이와 다르게 별개의견과 보충의견1은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인해 자칫 억울한 피고인이 양산되거나 실체진실이 가려질 수 있고, 가벌성이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분명 경청할 만한 지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이 급격히 발전하여 왔다는 점과, 현실 재판에서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은 대체로 협의의 폭행·협박으로 해석·적용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수의견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보충의견1은 다수의견에 가담하면서도 다수의견이 설시한 범위를 넘어선 쟁점을 새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보충의견2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형식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고 내용적으로도 앞뒤가 다른 것처럼 해석되어 설득력이 약하다고 하겠다. 별개의견 또한 기존의 판례를 쉽게 바꾸지 않아야 한다는 신중론을 편 것은 원론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으나, 크게 변화한 사회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다소 의문이 있다 할 것이다.
성범죄에 대한 전국가적인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성범죄에 대한 강경대응이 주된 여론의 흐름이고, 사법과 입법도 큰 틀에서 이에 동조하고 있다. 본 판례도 이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사료된다. 다만 별개의견과 보충의견1이 이러한 분위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대립하는 여러 의견들이 공개된 법정과 판결문을 통해 논쟁한다는 점에서 대상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의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대상판결은 강제추행죄에 대해 이론과 실무의 괴리를 일정 부분 해소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강제추행죄 혹은 성범죄 해석론과 입법론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부분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대상판결로 인하여 새롭게 제기되는 의문들도 있다.
우선 전원합의체의 여러 의견들이 담아야 할 내용에 내재적 한계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 있다. 보충의견1과 같이 ‘보충의견’을 표명하면서 실제로는 별개의견이나 반대의견에 동조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메타(meta)판결적 의문에 해당한다.
판결 내적인 해명 과제로는 크게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① 종전의 폭행·협박 유형론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인지 ② 대상판결의 법리를 강제추행 외에 다른 성범죄(특히 강간죄)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③ 대상판결이 기습추행에 미치는 시사점은 무엇인지이다.
판결 외적인 해명 과제로는 ① 대상판결로 인하여 성범죄 판단 기준이 어느 정도 달라지게 될 것인지 ② 대상판결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성범죄의 법정형을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지 여부 등이 있다.
위에서 제기한 각각의 의문들은 간단히 답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주제마다 별도의 새로운 글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일단 논의를 시작해 보기 위하여, 대상판결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제기하고 간단한 근거만을 대며 필자의 입장을 밝혀 보기로 한다.
우선 대상판결로 인하여 기존의 폭행·협박 유형론에는 어느 정도의 변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있지만, 강간죄의 폭행·협박까지다 폭행죄와 협박죄에 있어서의 폭행·협박처럼 해석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된다. 한편 기습추행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기습추행과 강제추행은 폭행·협박의 선후관계가 달라서 완전히 동일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 판결은 강제추행죄의 성립범위를 종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넓힐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미 재판실무는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협박에 있어 항거불능성을 요하지 않아 왔기 때문에 예상하는 만큼 갑작스럽게 강제추행죄의 성립범위가 비약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으리라 예상된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법원의 태도를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입법론과 관련한 논의는 대상판결의 보충의견1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본 대상판결을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최근 성범죄에 대한 대책은 철저한 강경일변도로 이어져 왔다. 국민의 성범죄에 대한 법감정도 대단히 좋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범죄의 법정형을 낮추거나 성범죄에 대한 보안처분을 일부라도 폐지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이론적인 관점에서 성범죄에 대한 강경책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은 사실 잠정적인 것들이다. 본 대상판결은 결코 그 함의가 가볍지 않다. 대상판결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다수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논문에서는 그 예상되는 문제들 중 일부를 제시하면서 더 많은 논의를 촉구하고자 하였다. 이 의도가 달성되어 앞으로 보다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