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회계감사는 기업회계의 진실성을 검토하고 감사인의 의견을 표명함으로써 기업의 이해관계인을 보호하고 기업의 건전한 경영에 이바지하려는 것이다. 회계감사인의 책임은 본질적으로 수감회사의 제무제표 작성에 관여하는 이사·감사의 책임과 경합할 가능성이 높다. 수감회사의 이사·감사가 부실회계 등의 불법행위를 저지를 유인을 갖는 반면 회계감사인은 이를 저지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동불법행위에 대해 우리 민법은 피해자 보호를 목적으로 연대하여 책임을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영미법계 보통법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연대책임은 피해자보호에 장점이 있는 반면 공동불법행위자 상호간의 형평이 무시되는 결과를 낼 수도 있다. 공동불법행위에 대한 연대책임은 다수의 불법행위자의 행위유인이 서로 상충하는지 아닌지 여부를 묻지않고 피해자보호에만 주안점을 두고 그 책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회계감사인과 수감회사의 이사·감사의 연대책임의 경우가 그러한데, 양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극명하게 대립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물론 회계감사인이 고의로 부실회계감사를 한 경우라면 보통의 공동불법행위와 마찬가지겠지만, 과실로 인한 부실감사가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그 형평의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회계감사인의 책임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경주되어 왔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2017년 「주식회사 등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이하 외부감사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된 비례책임이 그 노력의 결과이다. 2004년 호주를 시작으로 2008년 유럽연합, 그리고 미국 일부주에서 입법 및 판결로 도입한 비례책임을 우리나라도 받아들인 것이다. 비례책임이란 결국 분할채무의 효과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연대책임과는 완전히 대립하는 개념이다. 비례책임을 공동불법행위에 대한 전면적 원칙으로 도입하는 경우 피해자 보호를 포기하게 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으므로 이의 절충이 필요하다. 특히 비례책임에 의하게 되면, 회계부정 등의 사유로 변제능력을 상실한 수감회사의 배상책임을 회계감사인의 책임과 분할함으로써, 피해자에 대한 완전한 보상이 불가능하게 될 여지가 높다. 따라서 분할책임은 엄격한 요건 하에 예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비례책임에 의해 파생될 수 있는 피해자보호의 약화 및 회계감사의 부실화에 대한 우려로 인해 영국은 다른 방식으로 연대책임을 제한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먼저 회계감사인의 주의의무의 범위를 좁게 해석하여 그 책임 자체를 제한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이 방식에 의하면 배상청구권자 자체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증권집단 소송 등에 의해 생기는 남소의 위험도 동시에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이에 더해 제3자에 대한 면책조항이나 위임계약 당사자 간의 책임제한합의의 유효성을 인정하여 계약법상 책임제약의 법리를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영국의 방식은 연대책임의 부정적 효과를 줄이기 위해 피해자의 범위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피해자 구제가 상대적으로 미비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특정한 피해자의 배상청구권마저 박탈할 수 있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 회계감사인에게 부과되는 연대책임의 엄격성을 완화하기 위해 여러 다양한 입법정책적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본고는 한국의 외부감사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이하 자본시장법) 및 민법의 법리를 살펴보고, 영국의 회사법 및 보통법상 법리를 비교하고자 한다.
Ⅱ. 한국의 회계감사인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한국의 경우, 회계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은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 민법 등에 의해 규율된다. 외부감사법과 자본시장법은 원칙적으로 연대책임을 인정하지만, 고의가 아닌 경우 회계감사인의 책임을 제한하기 위해 연대책임을 부정하고 비례책임을 인정한다. 다만 비례책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피해자가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경우에는 다시 연대책임이 부활한다. 또한 비례책임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자보호의 약화를 막기 위해, 비례책임이 적용되는 경우라도 일부 불법행위자가 배상능력이 없는 경우, 각자 책임비율의 50% 이내에서 손해액을 추가로 배상할 책임을 부담시킨다. 여기에 더해 피해자가 회계감사인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하는 경우, 회계감사인의 주의의무 위반을 입증할 필요가 없도록 입증책임 전환도 인정된다.
회계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은 ① 임무를 게을리하여 수감회사에 손해를 발생하게 하거나(외부감사법 제31조 제1항), 또는 ② 중요 사항을 기재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기재하여, 제3자가 이를 신뢰함으로써 그 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외부감사법 제31조 제2항) 등에 발생한다. 전자의 경우 회계감사인은 해당 회사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고, 후자의 경우는 제3자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지게된다.
연대책임은 공동불법행위자들이 각자의 책임을 연대하여 배상하도록 하는데, 불법행위자 각자가 손해액 전부를 배상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 중 1인이 배상하면 다른 불법행위자도 그 책임을 면하게 되는 책임이다.1) 연대책임은 연대채무자 일부가 책임재산이 없어 배상하지 못하더라도 자력이 있는 연대채무자에게 전부 배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
외부감사인의 연대책임은 감사반 공인회계사 간 연대책임(외부감사법 제31조 제3항) 그리고 외부감사인과 수감회사의 이사·감사와의 연대책임(외부감사법 제31조 제4항)으로 나뉜다.2) 감사반 내 공인회계사간의 연대책임은 법인격이 없는 조합형식의 조직인 감사반의 책임을 규율하기 위한 것으로써, 수감회사에 대한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에 대해서만 연대책임을 인정하기 위한 것이다.3) 따라서 이 경우의 연대책임은 수감회사의 이사·감사와의 연대책임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수감회사의 이사·감사와의 연대책임은 회계감사인이 회사 또는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을뿐만 아니라, 해당 회사의 이사·감사도 그 책임이 있는 경우, 그 회계감사인과 해당 회사의 이사·감사가 연대하여 배상할 책임을 부담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감회사의 이사·감사와 회계감사인이 해당 회사 또는 제3자에게 각자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경우 공동불법행위자로서 부진정연대책임을 지게된다. 회계부정이 발생한 경우 대부분 해당 회사의 책임재산으로는 배상책임을 담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4) 이러한 연대책임은 실질적으로 회계법인에게만 배상책임을 지우는 결과가 된다. 비례책임은 이러한 연대책임의 부작용을 해소하고자 공동불법행위자간의 분할책임을 물어 회계감사인을 보호하려는 특칙이다. 즉 수감회사의 이사·감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부실회계를 하였고, 회계감사인이 이를 과실로 적발하지 못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야기한 경우, 회계감사인에 대해 연대책임을 묻지않고 분할책임을 묻게 된다.
외부감사인의 비례책임은 외부감사법 제31조 제4항 단서가 규율한다. 연대책임으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자가 고의가 없는 경우에 그 자는 법원이 귀책사유에 의해 정하는 책임비율에 따라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외부감사법 제31조 제4항 단서). 다만 이러한 비례책임에 의한 분할채무도 일정한 제한이 있는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자의 소득인정액이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액 이하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감사인과 해당 회사의 이사 및 감사는 다시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게된다(외부감사법 제31조 제5항). 이에 더해 비례책임에 의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자 중 배상능력이 없는 자가 있어 손해액의 일부를 배상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같은 항 단서에 따라 정해진 각자 책임비율의 100분의 50 범위에서 손해액을 추가로 배상할 책임을 진다(외부감사법 제31조 제6항).
상법 제401조는 이사의 연대책임을 규정하고 있고, 동법 제415조가 이를 감사의 경우에 준용하고 있다. 이렇듯 상법규정은 이사 및 감사에 대해 연대책임만을 규정하고, 비례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에 외부감사법은 회계감사인과 수감회사의 이사·감사의 연대책임을 원칙으로 규정하면서, 예외적으로 손해배상책임자가 고의가 없는 경우 분할책임을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외부감사법 법문에 따르면, 연대책임의 원칙에 관해서는 회계감사인과 수감회사의 이사·감사 간의 공동불법행위를 상정하고 있으나, 비례책임의 예외에 관해서는 그 대상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따라서 외부감사법상 비례책임의 대상을 회계감사인과 이사·감사 사이로만 한정할 것인가, 아니면 이사·감사 간에도 분할책임이 인정될 것인가가 문제된다. 생각건대 외부감사법은 회계감사인에 대한 규정으로써 회계감사인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규정이므로 상법의 규정과 반대되는 해석은 근거없는 확대해석에 불과할 것이다.5) 또한 비례책임을 인정하는 법문의 구조가 회계감사인과 수범회사의 이사·감사 간의 연대책임을 규정한 후, 그 예외로써 비례책임을 같은 항 단서로 규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회계감사인이 관련되지 않은 이사·감사 만의 공동행위에 대해 연대책임의 예외를 확대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비례책임은 회계감사인과 수감회사의 이사·감사 사이에서만 인정되고, 수감회사의 이사 및 감사 간에는 인정될 수 없을 것이다.
피해자가 회계감사인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하는 경우, 외부감사인의 주의의무 위반을 입증할 필요가 없도록 입증책임이 전환된다. 비례책임이 피해자보호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라면, 입증책임의 전환은 피해자보호를 위한 특칙에 해당한다. 즉 회계감사인 또는 감사에 참여한 공인회계사가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그 임무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증명하여야 한다(외부감사법 제31조 제7항). 다만 입증책임의 전환이 인정되지 않는 예외도 있는데, 감사인을 선임한 회사, 은행, 보험회사, 종합금융회사, 상호저축은행 등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입증책임의 전환이 인정되지 않는다(외부감사법 제31조 제7항 단서). 이러한 자들은 감사보고서의 내용을 자체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자에 해당하므로 선의의 제3자로서 보호의 실익이 없어 입증책임 전환의 특칙에서 제외된다.
자본시장법상 회계감사인은 증권신고서, 투자설명서 등 발행공시 책임을 부담하는 자에 포함되며(자본시장법 제125조 제1항), 사업보고서, 반기보고서, 분기보고서, 주요사항보고서 등 정기공시시 책임을 부담하는 자에도 포함된다(자본시장법 제162조 제1항). 회계감사인의 공시책임은 공시서류의 중요사항에 관하여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가 있거나 중요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되지 않음으로써 증권의 취득자 (또는 정기공시의 경우 처분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발생한다.
다만 이러한 책임은 회계감사인이 상당한 주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수 없었음을 입증하거나 그 증권의 취득자 (또는 정기공시의 경우 처분자)가 취득의 청약을 할 때에 그 사실을 안 경우에는 배상책임이 면제된다. 이처럼 회계감사인이 공시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과실없음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외부감사법과 마찬가지로 입증책임이 전환된다(자본시장법 제125조 제1항 단서, 제162조 제1항 단서).
신탁회사 또는 집합투자회사의 회계감사인은 회계감사의 결과 회계감사보고서 중 중요사항에 관하여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가 있거나 중요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되지 않음으로써 이를 이용한 신탁회사의 수익자 (또는 집합투자의 경우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그 수익자에 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자본시장법 제115조, 제241조).
부실 또는 허위공시행위와 관련한 회계감사인의 책임은 스스로 과실 없음을 입증하거나, 상대방이 이를 알고 있었던 경우 면책되는 것처럼, 신탁회사나 집합투자회사의 회계감사보고서에 대한 회계감사인의 책임도 스스로 과실 없음을 입증하거나, 상대방이 이를 알고 있었던 경우 면책된다(자본시장법 제115조 제4항, 제241조 제4항).
회계감사인이 작성한 감사보고서를 신뢰한 선의의 투자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은 외부감사법상 외부감사인에 대한 손해배상법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즉 자본시장법은 외부감사법 제31조를 준용함으로써, 선의의 투자자가 사업보고서 등에 첨부된 회계감사인의 감사보고서를 신뢰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 손해배상과 관련하여 연대책임, 비례책임, 입증책임전환 등을 적용한다(자본시장법 제170조). 자본시장법 제170조는 허위 또는 부실의 발행·유통공시행위뿐만 아니라 일반회계감사 등을 위해 작성한 감사보고서에 의해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는 경우, 회계감사인과 다른 책임있는 자들 간의 책임관계를 정해주는 규정이다. 이에 더해 자본시장법 제170조 제2항은 손해배상액의 추정까지 인정하는데, 불법행위책임임에도 불구하고 손해액을 추정함으로써 계약책임처럼 취급하고 있는 특별 법정책임규정이다.
공시행위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금융투자업의 양태에 따른 세부조항, 즉 신탁재산의 감사인(자본시장법 제115조), 집합투자 감사인(자본시장법 제241조) 등의 개별 규정에서도 외부감사법의 손해배상법리를 차용하고 있다. 즉 신탁재산 감사인에 관해 신탁회사의 이사 및 감사와 연대하여 수익자에 대해 책임을 부담하도록 규정하고(자본시장법 제115조), 집합투자와 관련하여, 감사인은 운용사의 이사 및 감사와 연대하여 투자자에 대해 책임을 부담하도록 한다(자본시장법 제241조). 다만 고의가 없는 경우 연대책임이 부정된다. 즉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자가 고의가 없는 경우에 그 자는 법원이 귀책사유에 따라 정하는 책임비율에 따라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자본시장법 제115조 제2항 단서, 제241조 제2항 단서). 다만 이러한 비례책임도 손해배상청구권자가 국민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경우 연대책임이 다시 부활하게 된다(자본시장법 제115조 제3항, 제241조 제3항). 이뿐만 아니라 비례책임을 지는 자 중 일부의 불이행시 비례책임을 가중하거나,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규정, 손해배상공동기금 또는 보험가입 등의 조치의무, 제척기간 등에 대하여 외부감사법 제31조를 준용한다(자본시장법 제115조 제4항, 제241조 제4항).
다수의 자가 채무를 지는 경우 그 채무의 이행방법에 관하여 분할채무와 불가분채무로 나눌 수 있다. 분할채무는 급부가 각 채무자에 의해 나누어질 수 있는 채무를 의미하는데, 민법은 채무자가 수인인 경우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으면 각 채무자는 균등한 비율로 권리가 있고 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하여 다수당사자의 채권관계에 관해 분할채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민법 제408조). 불가분채무는 급부가 나누어질 수 없는 채무를 의미하는데, 급부의 목적물이 성질상 불가분인 경우와 성질상 가분이지만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의해 불가분으로 되는 경우 두가지가 있다. 후자의 경우 본질적으로 연대채무와 차이가 없으나, 이행청구 등의 절대효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민법 제411조).
민법 제760조 제1항은 수인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하여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판례에 따르면,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여러 행위가 각각 독립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하여야 하고, 행위자간에 공동의 인식이 없더라도 각 행위들이 객관적으로 관련되고 공동하여 손해를 가한 경우여야 한다.6)
회계감사인의 부실감사행위와 수감회사의 이사·감사의 부실재무제표작성행위가 공동불법행위가 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수감회사의 이사·감사의 재무제표작성행위와 회계감사인의 감사행위는 일체의 행위가 될 수 없는 각자 독립된 행위일뿐만 아니라 두 행위주체간에는 상반된 이해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공동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7) 이 견해에 따르면, 외부감사법의 조문 때문에 연대책임을 인정하지만, 수감회사의 이사·감사의 행위가 분식회계를 목적으로 하는 반면에 회계감사인의 행위는 이를 탐지하고 저지하는 목적의 행위라는 점에서 두 행위주체는 서로 상반된 이해관계를 가지는 관계이므로 본질적으로 공동의 행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판례에 의하면, 공동의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공모나 공동의 인식조차 필요치 않고, 객관적으로 두 행위가 서로 관련되고, 공동되어 있으면 족하다.8) 즉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하기 위해 행위자 사이에 의사의 공통이나 행위공동의 인식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두 행위가 관련되고, 공동되어 있다는 의미는 객관적으로 보아 피해자에 대한 권리침해가 공동으로 행해지고, 그 행위가 손해발생에 대해 공통의 원인이 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의미한다.9) 즉 관련되고 공동된 행위란 침해의 결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일 뿐이지, 행위자들의 행위목적과는 무관한 요건이다. 아무리 두 행위자간에 목적이 다르더라도 결과적으로 두 행위에 의해 하나의 침해가 발생하였다면 공동불법행위가 된다. 따라서 정당성 여부를 떠나 판례에 따른다면, 회계감사인의 부실감사행위의 경우 감사자체의 부실로 인해 독립적으로 불법행위가 되지만, 수감회사 이사·감사의 부실재무제표작성행위와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손해를 유발하게 되므로 공동불법행위에 해당된다.
입증책임의 문제는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과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으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외부감사법 제31조 제7항, 자본시장법 제170조 제1항 등 특별히 입증책임전환을 허용하는 경우에만 인정할 수 있으므로 민법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에 대해서는 연대책임의 의미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 민법이 공동불법행위에 대해 연대책임을 적용하는 이유는 분할채무관계처럼 각자 책임분만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려는데 있으므로 공동불법행위자 각각의 행위 전부에 의해 손해가 발생했음을 추정하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도 같은 입장인데, 「여러 사람의 행위가 경합하여 손해가 발생한 사안이 민법 제760조 제1항의 협의의 공동불법행위로 보기에 부족하더라도, 연대책임은 입증책임을 덜어줌으로써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입법정책상 고려에 따라 각각의 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개별 행위자가 자기의 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함을 입증하면 면책되고, 손해의 일부가 자신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입증하면 배상책임이 그 범위로 감축된다」고 설시한다.10) 따라서 공동불법행위자가 민법 제760조의 연대책임을 면하려면 자기의 행위와 손해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함을 적극적으로 입증하여야 한다.
외부감사법과 자본시장법에 의할 때도 민법과 마찬가지로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이 전환된다고 해석되는데, 특히 학설은 미국의 시장사기이론(Fraud-on- the-market Theory)11)을 반영하여 사기적 정보를 전파한 공동불법행위는 그 행위와 손해 간에 인과관계가 추정되므로 입증책임의 전환이 된다고 본다.12)
민법에 따르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가 그 손해 또는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않거나,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경과한 때 시효로 소멸한다(민법 제766조 제1항, 제2항). 그러나 외부감사법은 회계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은 그 청구권자가 해당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 또는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날로부터 8년 이내에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하는 것으로 제척기간을 규정한다(외부감사법 제31조 제9항). 그리고 자본시장법은 외부감사법이 규정한 제척기간을 준용한다(자본시장법 제170조 제1항).
Ⅲ. 영국법상 회계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
영국의 경우 회계감사인의 책임은 크게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으로 나눌 수 있다. 회계감사인의 행위에 대한 형사책임은 회사법(Company Act 2006)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데, 고의 또는 중과실로(knowingly or recklessly) 특히 중한 사항에 대해 오해를 유발할 수 있거나, 허위 또는 기만적인 내용을 연례보고서에 포함할 경우 형사책임을 지게 된다(회사법 제495조 및 제507조). 회계감사인의 민사책임은 계약책임, 불법행위책임으로 나눌 수 있다. 회계감사인과 회사 간에는 계약에 따라 책임이 발생하므로 주주들은 수임계약서(Engagement letter)의 조건에 따라 계약불이행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크게 보면 회사법상 회계감사인의 책임도 계약책임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영국 회사법은 회계감사인의 책임이 과실, 계약불이행, 의무위반, 배임 등 일반적인 책임발생사유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면책금지의 원칙과 예외 그리고 책임제한합의 등 발생한 책임의 제한사유에 대해 규정할 뿐 책임을 발생시키는 행위의 유형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일반적으로 계약관계는 회계감사인과 의뢰회사 사이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제3자와의 법률관계를 계약책임으로 의율하기는 힘들다. 결국 계약상대방 외 제3자에 대한 관계는 불법행위책임에 의해 규율된다. 즉 회계감사인이 제3자에 대해 주의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손해를 끼친 경우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영국의 경우 한국과 달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과 같은 특별법은 존재하지 않고, 회사법이 회계감사인의 책임에 대해 규율하고 있다. 2006년 회사법(Companies Act 2006) 제6장이 회계감사인의 책임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회계감사인에 대한 면책조항의 무효, 책임제한의 합의 등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회사법 제534조 내지 제538A조). 동 조항들은 회계감사인의 책임이 계약관계에 기해 주로 발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계약에 의해 그 책임을 제한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하고, 주주 등의 승인이 있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책임을 제한할 수 있음을 규정하는 것이다. 물론 회사법이 불법행위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회계감사인의 책임발생 사유에도 과실을 적시하고 있기 때문에 계약책임 뿐만 아니라 불법행위책임도 예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영국 보통법상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책임은 완전한 경제적 손해(Pure Economic Damage)를 포섭할 수 없기 때문에,13) 회사법상 배상책임의 범위가 보통법상 배상책임의 범위보다 넓어질 가능성은 있다.
영국 회사법은 회계감사인이 회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경우 외에 회계감사를 신뢰한 제3자에 대해 직접 책임을 부담할 것인지에 관해 규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회사가 제3자에게 책임을 지는 경우, 해당 사안의 집행에 관해 회사에 의무를 부담하는 자는 회사 또는 다른 의무 있는자와 연대하여 책임을 부담한다는 규정이 있기는 하다(회사법 제1187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계감사보고서 자체의 내용을 신뢰한 제3자에게 회사가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경우는 고의에 의해 분식회계를 하고 이를 공시한 경우 정도에 국한할 것이므로 회사법상 회계감사인의 연대책임이 광범위하게 적용되기는 힘들다.14)
회계감사인의 책임은 과실(Negligence), 채무불이행(Default), 의무위반(Breach of Duty) 또는 감사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회사의 신뢰에 대한 배임(Breach of Trutst) 등에 의해 회사의 권리에 침해가 있는 경우 발생한다(회사법 제532조). 동조가 법문상 회사에 대한 권리침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회계감사인의 면책조항 금지라는 제하의 조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동조는 회사에 대한 책임을 전제로 한 규정이라고 이해하여야 한다. 또한 회사의 권리는 회계감사인에게 법률상 부여되는 각종 의무 및 감사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회사의 신뢰에 의해서도 확장될 수 있다고 해석된다. 과실과 의무위반을 동위의 개별 책임발생사유로 들고 있는 이유는 의무위반이 과실의 한 요소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양자를 구별하려는 의미이다. 즉 과실에 이르지 못하는 의무위반의 경우도 회계감사인의 책임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고, 그 대표적인 것이 회계감사인의 법정의무가 될 것이다.
회계감사인은 회사의 회계기록 작성 및 제출 여부, 회계장부와 회계기록의 일치 여부, 비상장회사의 이사보수보고서와 회계기록의 일치 여부 등에 대해 조사하여 감사보고서에 의견을 개진해야 하고, 적절한 회계기록이 없거나 제출하지 않은 경우, 회계장부와 회계기록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 비상장회사의 이사보수보고서와 회계기록의 일치하지 않는 경우 그 사실을 보고서에 명시할 의무를 부담한다(회사법 제498조 제1,2항).
회계감사인은 자신의 전문지식과 양심에 의거하여 회계감사의 취지에 따른 정보와 해명을 얻지 못한 경우 그 사실을 감사보고서에 명시하여야 한다(회사법 제498조 제3항). 보수, 연금 또는 퇴직시 보상 등 이사의 혜택 공시의무(회사법 제412조에 따른 시행규칙)에 관한 요건이 준수되지 않거나, 상장회사 이사의 보수보고서(Director’s Remuneration Report)상 회계감사 대상 정보에 관한 요건(회사법 제421조에 따른 시행규칙)이 준수되지 않은 경우 회계감사인은 최대한 필요한 세부내용을 적시하여야 한다(회사법 제498조 제4항).
회사의 이사가 소규모회사에 대한 규제체계에 따라 회계장부를 작성하거나, 이사의 보고서 작성에 있어 소규모회사에 대한 면제규정에 따랐다고 하더라도, 회계감사인이 판단하기에 이사의 행위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이 사실을 회계감사보고서에 기재하여야 한다(회사법 제498조 제5항). 둘 이상의 자가 회계감사인으로 선임된 경우, 선임된 모든 회계감사인이 보고서상의 의견에 동의하는지를 적시하여야 하고, 동의하지 않는 자가 있는 경우, 그 자의 의견과 이유를 명시하여야 한다(회사법 제498조 제6항). 회계연도별로 기업지배구조규범(Corporate Governance Code) 준수에 관한 서류를 이사의 보고서에 포함할 의무를 지는 회사가 이를 마련하지 않는 경우, 회계감사인은 연례 회계감사보고서 작성시 기업지배구조규범 준수에 관한 서류가 마련되었는지 확인하여야 하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회계감사보고서상에 그 사실을 적시하여야 한다(회사법 제498A조).
회계감사 과정에서 발생한 과실, 계약불이행, 의무위반, 배임 등과 관련하여 당해 회사의 회계감사인에게 부과된 책임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하거나, 당해 회사 또는 관계회사(모자회사관계 또는 동일한 모회사를 공유하고 있는 자회사간의 관계)의 회계감사인에게 부과된 책임 전부 또는 일부를 보상하는 조항(회사 정관이나 개별 계약 조항을 의미)은 승소한 배상청구소송비용을 지급하는 경우 또는 책임제한의 합의가 없는 한 무효이다(회사법 제532조).
민형사소송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거나, 승소한 회계감사인에 대하여 보상하는 것은 면책조항무효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허용된다(회사법 제533조). 또한 회계감사인의 행위가 위법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제1157조에 따라 정직하고 합리적인 행위라는 이유로 법원이 구제한 경우도 이 예외에 포함된다.
2008년부터 회사법은 회계감사에 대한 소송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회사와 회계감사인 간의 책임제한합의(Liability Limitation Agreement: LLAs)를 허용하고 있다. 책임제한합의는 회계감사인으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는 금액의 상한을 위임계약에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책임제한의 합의란 회계감사 과정에서 발생한 회계감사인의 과실, 계약불이행, 의무위반, 배임 등으로 인해 발생한 회사에 대한 책임을 제한하는 합의를 의미한다. 면책조항의 무효원칙은 회사법 제535조(책임제한 합의의 조건) 및 그 시행규칙을 준수하고, 제536조에 의해 회사의 주주(The members of the company)가 승인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책임제한의 합의는 회사법 제537조(책임제한 합의의 효력)의 범위 내에서 유효하며, 불공정 계약조건법(Unfair Contract Terms Act 1977)의 적용을 받지않는다(회사법 제534조).15) 책임제한의 합의는 한 회계연도 내에서 회계감사 과정상 발생한 작위 또는 부작위에 대해서만 적용되므로 동 합의가 적용되는 회계연도를 명시하여야 한다(회사법 제535조 제1항).
관계부처의 장관(Secretary of State for Business and Trade)은 책임제한의 합의에 포함되거나 배제되어야 할 구체적인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회사법 제535조 제2항). 이러한 의무규정은 경쟁제한효과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정될 수 있다(회사법 제535조 제3항).
책임제한의 합의는 회사 주주의 승인이 필요한데, 합의체결 전에 승인이 불필요하다고 결의하거나, 합의체결 전에 주요 합의조항에 관하여 승인하거나, 합의체결 후 사후승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주주총회가 승인할 수 있다(회사법 제536조 제1,2,3항). 주요 합의조항이란 동 합의의 대상이 되는 작위 또는 부작위, 동 합의가 적용되는 회계연도, 회계감사인의 책임의 한계 등을 의미한다(회사법 제536조 제4항). 이러한 승인은 동 합의를 체결하기 전이나, 이미 합의를 체결한 경우에도 해당 회계연도 개시 전에 철회할 수 있다(회사법 제536조 제5항). 이러한 철회는 합의의 내용이 이를 금지하더라도 효력을 가진다.
책임제한의 합의는 법정 회계감사인의 책임, 회계감사계약상 본질적인 의무, 회계감사인에게 기대되는 전문적인 기준 등 공정하고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만 그 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회사법 제537조 제1항). 만약 이를 위반하여 합의를 하더라도 그 범위를 벗어나는 부분은 무효로 본다(회사법 제537조 제2항). 공정하고 합리적인 범위를 결정할 때에는 당해 손해가 발생한 이후의 문제나, 동일한 손해에 책임이 있는 다른 자의 배상가능성 등은 고려할 수 없다(회사법 제537조 제3항). 책임제한의 합의를 체결한 회사는 그 합의를 공시하여야 한다(회사법 제538조 제1항; 2008년 회계감사인의 보수와 책임제한 합의에 관한 회사법 규칙(Companies (Disclosure of Auditor Remuneration and Liability Limitation Agreement) Regulations 2008)).
제3자에 대한 책임제한의 합의가 효력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의 대립이 있을 수 있으나, Royal Bank of Scotland vs Bannerman Johnstone MacLay (2002) 판례가 제3자에 대한 면책조항이 없었다는 이유로 제3자에 대한 주의의무를 부담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을 감안할 때 이를 긍정할 수 있다.16)
회사채무 등 회사의 책임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부담하는 자는 회사 및 다른 책임 있는 자와 연대책임(Joint and Several Liability)을 부담한다(회사법 제1187조). 회사에 대해 주의의무를 부담하는 이사와 회계감사인은 회사에 대해 책임을 부담하는 자에 포함되므로 연대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그러나 동조의 연대책임은 회계감사인으로서 당연히 부담하는 책임이 아니라, 회사가 책임을 지는 경우에 한하여 회사의 업무에 관혀한 자로서의 책임 때문에 인정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회사의 책임과 무관한 회계감사인의 제3자에 대한 책임은 구별되어야 한다.
영미법상 과실책임을 추궁하기 위해서는 행위자에게 주의의무(Duty of care)를 귀속시킬 수 있어야 하고, 행위자가 그 주의의무를 위반함으로 인해 피해자에게 손해가 발생하여야 한다. 행위자에게 주의의무를 귀속시킬 수 있는지 여부는 행위자의 특정한 행위로 인해 당해 피해자에게 실제 발생한 피해와 동종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 합리적으로 예견되는지에 달려있다. 즉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당해 행위로 인해 피해자에게 동종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견을 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주의의무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예견가능한 손해 및 피해자(Foresight of plaintiff and damage)의 범위는 개별 법원의 판단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어 주의의무 발견에 통일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판례의 축적에 의해 대부분의 사안은 기존 판례의 적용 등으로 인해 주의의무의 유무 판단이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개별 사안이 기존 판례와 동일성 내지 유사성을 가지는지에 대한 판단이 어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의의무 존재 여부에 대한 판단이 없었던 전혀 새로운 사안이 등장할 경우 기존 판례의 가치는 사라지게 된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17) 이러한 이유로 인해 영국의 법원은 주의의무의 통일적인 귀속틀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그 결과 주의의무에 관한 일관된 기준(General Principle)을 정립한 두가지 원칙이 도출되었다. 먼저 1932년 이웃원칙(Neighbour test)이 확립되었으나, 1990년 카파로원칙(Caparo test)이 이를 파기하고 새로운 기준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웃원칙은 1932년 Donoghue 판례18)를 통해 확립되었고, Home Office v. Dorset Yacht Co. Ltd. 판례19) 및 Anns v. Merton LBC. 판례20) 등을 통해 계승되었다. 이웃원칙에 따르면, ①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이웃관계처럼 주의의무를 부여할 수 있을 정도의 근접한 관련성이 있다면(Relationship of Proximity or Neighborhood), 가해자의 부주의한 행위가 피해자의 손해로 귀결될 수 있음을 합리적으로 예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Reasonable Forsight of Victim and Harm). 이에 더해 Anns v. Merton LBC. 판례는 ② 주의의무를 부정하거나, 제한 또는 감경할 수 있는 사유가 있는지 추가로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21) 이웃원칙의 적용에 있어 유의할 점이 있는데, 두 요건의 적용에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근접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는 원칙적으로 주의의무가 있음을 전제한 후, 부정 또는 제한의 사유를 검토하게 된다.22) 이렇게 원칙적으로 주의의무를 전제하고 법적 합리화를 위해 제한사유를 검토하는 방식은 주의의무의 귀속을 무분별하게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Junior Books Ltd v. Veitchi Co. Ltd. 판례23)에서 이웃원칙을 적용하였는데, 온전히 독립적인 경제적 손해에 대해서는 계약에 의한 배상책임 외에 불법행위에 의한 배상책임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망각하고,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고 말았다.24) 동 판례 외에는 모든 판례가 독립적인 경제적 손해에 대해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 판례가 전통을 파기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이웃원칙은 1990년 Caparo 판례를 통해 파기되었고, 카파로원칙이 주의의무 귀속의 기준으로 확립되게 된다.25)
카파로원칙에 따르면, 주의의무를 귀속기키기 위해서는 ① 가해자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 합리적으로 예견가능하여야(foreseeable) 할뿐만 아니라, ② 당사자간에 충분한 근접성(proximity)이 있어야 하고, ③ 법원이 보기에 주의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 공평, 공정, 합리적(fair, just, and reasonable)이어야 한다.26)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책임에 대한 대표적인 영국 판례는 Caparo Industries Plc v Dickman (1990) 판례와 Royal Bank of Scotland vs Bannerman Johnstone MacLay (2002) 판례27)를 들 수 있다. 두 사안 모두 회계감사인의 과실에 대한 불법행위책임이 문제된 사안이나, 제3자에 대한 주의의무의 범위에 대한 판단이 다른 사안이다. 주의의무를 귀속시키기 위해서 카파로 테스트 상의 세요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데, 두 판례 모두 손해에 대한 예견가능성이나 근접성 요건은 충족되지만, 주의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 공평, 공정, 합리적인가에 대한 판단이 달랐다.28)
원고 Caparo는 회계법인 Touche Ross(후일 Deloitte & Touche로 합병함)가 작성한 Fidelity Plc.사에 대한 회계보고서를 신뢰하고 주식을 구입하였다. 원고는 Fidelity Plc.가 파산하자 회계법인 Touche Ross에 대해 제3투자자에 대한 주의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원고는 자신의 주식매수결정이 회계법인 Touch Ross가 작성한 부정확한 기업평가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회계법인은 잠재적 투자자에게도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주장하였다. 최종심인 상원법원(The house of Lords)에 따르면, 회계보고서는 기존 주주의 권리행사를 돕기 위한 것으로써, 회계감사인으로서는 동 보고서가 원고와 같은 불특정의 잠재적 투자자에 의해 활용될 것이라는 것을 알수없었다는 점을 들어 주의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공정하고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원고 RBS은행은 고객사 APC Ltd.의 회계상 중대한 사기적 오류를 찾아내지 못한 회계법인 Bannerman의 과실로 인해 당좌대월약정 부도에 대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1300만 파운드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한 사안이다. 원고가 승인한 APC사에 대한 당좌대월약정은 Bannerman의 회계감사를 받은 제무제표를 기초로 행해졌기 때문에 부실회계감사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본 사안은 Caparo 사안과 다른 점은, 회계법인 Bannerman사는, APC사의 은행대출약정서(Banking Facility Letter) 심사를 통해, 회계보고서가 RBS은행의 대출결정에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스코틀랜드 민사최고법원(Court of Session in Scotland)은 회계법인 Bannerman이 RBS은행에 대해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판결하였다. 추가적으로 Bannerman과 APC사 간의 계약에 제3자에 대한 면책조항이 없었다는 점이 주의의무를 부정할 수 없게 하는 중대한 요소라고 설시하였다.
둘 이상의 불법행위자가 독립적인 의무위반으로 피해자에게 별개의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각각의 불법행위자는 자신이 야기한 손해에 대해서만 책임지면 되는 분할책임을 지게된다. 그러나 둘 이상의 불법행위자가 독립적인 의무위반으로 인해 피해자에게 하나의 불가분적 손해를 입힌 경우라면 피해자는 불법행위자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자신의 손해 전부를 배상할 것을 청구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불법행위자들은 연대하여 책임(Joint and Several Liability)을 지게 된다.29) 연대책임을 유발하는 공동불법행위는 독립적으로 발생하더라도 불가분의 손해를 유발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동시에 발생할 필요는 없다. 연대책임은 특히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예를 들어 분할책임의 경우는 자력없는 일부 불법행위자들에게 배상받지 못할 위험이 있을뿐더러, 공동불법행위자 전원이 자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는 각각의 불법행위자의 인과관계의 입증해야 하는 등 번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대책임은 불법행위자 각자의 구상관계에 관한 추가적인 원칙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보통법원칙은 공동불법행위자 일인이 손해 전부를 배상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공동불법행위자에게 구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구상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너무 가혹하므로 가해행위 자체가 명백한 불법이 아니고 구상권을 주장하는 불법행위자가 자신의 행위를 합법적인 것이라고 확신한 경우, 또는 가해행위 자체가 명백히 불법이더라도 구상권을 주장하는 자가 타방에 대해 사용자책임을 지는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한다.30)
불법행위자 입장에서는 연대책임이 자신의 과실분보다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특히 회계감사법인 등 특정 전문기관들은 그 적용에 반대하는 주장을 지속해왔다. 개인의 상해 등 신체적 손해가 발생한 경우는 연대책임으로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할 필요가 있지만, 전문영역의 공동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연대책임이 정의에 부합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회계감사인의 책임이 문제되는 이유는 수감대상회사의 재정이 악화된 경우이므로 주로 피해자의 배상청구가 회계법인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회계비용이 증가하고, 의뢰인의 회계감사비용의 증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또한 책임재산의 담보능력때문에 회계부정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의뢰회사가 아니라 회계감사인이 그 책임의 전체를 부담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회계감사인의 연대책임을 완화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고, 그 결과 호주, 유럽연합, 그리고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회계감사인에 대해 비례책임을 도입하기도 했다. 영국의 경우 이 문제에 관해 1996년 무역과 산업부(Department of Trade and Industry)의 사법위원회가 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행 연대책임이 다양한 형태의 비례책임보다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현재까지도 영국에서는 회계감사인에 대해 비례책임을 인정할 것인가가 논란이 되고 있다.31)
비례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영국에서는 회계감사인의 연대책임으로 인해 가중되는 책임추궁의 부담을 완화하려는 또 다른 시도가 있다. 회사법상 인정되는 책임제한의 합의와 더불어 회계보고서에 제3자에 대한 책임 없음을 적시함으로서 책임이 확대되는 것을 예방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회계보고서상 제3자에 대한 면책조항은 Royal Bank of Scotland (RBS) vs Bannerman Johnstone MacLay (Bannerman) (2002) 판결의 영향이므로 영국에서 적용될 수 있는 고유한 면책사유에 불과할 수도 있다. 또한 Bannerman 조항이라고 일컬어지는 면책조항이 회계감사보고서의 가치를 절하한다는 비판도 있다. 즉 면책조항으로 인해 회계감사의 수준을 하락시킬 위험이 있을뿐만 아니라 제3자의 신뢰를 하락시키는 효과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Ⅳ. 결론
회계감사인의 고유업무가 회계의 진실성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볼 때, 그 업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자기책임주의원칙상 당연한 이치이다. 수감회사의 부실기재를 밝혀내는 업무를 담당하는 자가 주의의무를 위반함으로써 그 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면 최소한 외부적인 관계에서는 손해액 전부를 배상할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회계감사를 신뢰한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합리적이다. 수감회사의 이사·감사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해 기업회계서류가 작성되었다면, 이 자들도 기업회계서류를 신뢰하여 손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그 손해액 전부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 이렇듯 두 행위로 인해 하나의 손해가 발생한 경우, 즉 공동불법행위의 경우, 우리법 뿐만 아니라 영미법계도 연대책임을 적용하여 피해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이러한 연대책임은 구상관계라는 내부정산의 문제를 남기는데, 배상한 공동불법행위자는 배상 없이 책임에서 벗어난 다른 불법행위자에 대해 각자의 과실비율만큼 그 책임을 자신에게 이행할 것을 추궁할 수 있다. 이렇게 구상관계에 의해 각자의 책임이 정산되는 경우 형평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분식회계 문제가 불어져 소송전으로 치닫는 경우라면, 배상책임을 이행할 수 있을 만큼의 자력을 유지하는 자는 회계감사를 시행한 회계법인뿐이고, 정작 수감회사는 부실회계로 인해 변제능력을 상실한 상황에 놓여 있을 확률이 높다. 결국 연대책임으로 인해 실제로 손해 전부를 배상하는 주체는 해당 회사가 아니라 회계법인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에서 형평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형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는데, 호주, 유럽연합, 미국의 일부주 그리고 우리나라가 도입한 비례책임이 대표적인 연대책임 완화정책이다. 비례책임이란 과실로 공동불법행위를 범한 자에 대해 연대책임이 아니라 분할책임을 물어 회계감사인을 보호하려는 원칙이다. 한국의 경우, 회계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은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 민법 등에 의해 규율된다. 외부감사법과 자본시장법은 원칙적으로 연대책임을 인정하지만, 고의가 아닌 경우 회계감사인의 책임을 제한하기 위해 연대책임을 부정하고 비례책임을 인정한다. 다만 비례책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피해자가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경우에는 다시 연대책임이 부활한다. 또한 비례책임이 야기할 수 있는 피해자보호의 약화라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비례책임이 적용되는 경우라도 일부 불법행위자가 배상능력이 없는 경우, 각자 책임비율의 50% 이내에서 손해액을 추가로 배상할 책임을 부담시킨다. 여기에 더해 피해자가 회계감사인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추궁하는 경우, 회계감사인이 스스로 주의의무 위반이 없었음을 입증하도록 하여 입증책임의 전환을 인정한다. 입증책임의 전환이 인과관계의 입증까지 확대 적용될 수 있는지에 관해, 우리 판례는 연대책임 자체가 가지는 입법상의 목적을 감안하면 공동불법행위자의 행위와 손해 간의 인과관계가 당연히 추정된다고 판단한다. 학설과 판례 또한 미국의 시장사기이론(Fraud-on- the-market Theory)에 따라 공동불법행위의 인과관계가 추정되고, 이에 관한 입증책임의 전환이 된다고 본다.
비례책임은 그 본질이 분할채무이므로 피해자 보호의 약화나 회계감사의 부실화 등의 부정적 효과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러한 우려를 이유로 영국은 비례책임을 도입하는 대신, 계약관계를 기초로 하는 회사법의 규정과 보통법상의 일반원칙을 통해 연대책임의 완화를 시도한다. 영국의 경우 회계감사인의 제3자에 대한 불법행위책임에 관한 논의는 회계감사인이 제3자에 대해 주의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부터 시작한다. Caparo 판례에 의하면, 제3자에 대해 주의의무를 부담하지만 그 범위에는 제한이 있다고 판단한다. 즉 자신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해 제3자가 손해를 입을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경우 주의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공평, 공정, 합리적이지만, 이를 인식할 수 없었다면 주의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 결과 Caparo 판례는 불특정의 잠재적 투자자가 감사보고서를 신뢰하여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에 대해 회계감사인으로서는 그 불특정의 자들을 미리 인식하고 감사보고서를 작성하였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자들에 대해 주의의무도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RBS 판례에 의하면, 의뢰회사가 대출심사를 받기 위해 은행에 제출할 용도로 감사보고서를 의뢰하였다는 사실을 회계감사인이 알 수 있었던 경우, 회계감사인으로서는 그 은행이 보호되어야 할 제3자임을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과실책임을 인정하였다. 영국의 경우 이렇듯 개별 사안에 따라 주의의무의 대상이 되는 제3자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연대책임의 엄격성의 부작용을 어느 정도 약화시킬 수 있게 된다. 이에 더해 영국은 계약법 기초의 회사법적 법리도 활용하고 있는데, 회계보고서 상 제3자에 대한 면책조항을 활용하여 책임을 제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계약당사자 간 책임제한 합의의 효력을 인정한다. 이러한 영국의 방식은 연대책임의 부정적 효과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피해자의 범위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피해자 구제가 상대적으로 미비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특정한 피해자의 배상청구권마저 박탈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개별사안에서 제3자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이 법원이기 때문에 자의적인 판단의 위험이 심각하게 높다고 볼 수는 없다.
비례책임을 도입하고 그 요건을 엄격하게 재단하는 방법이나, 계약법 및 불법행위법 등의 기본 법원칙을 개별 사안에 따라 적용하는 방법 모두 각기 장단점이 있으므로 양자간의 우열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단지 각국의 입법정책에 따라 결정될 문제이다. 다만 비례책임을 인정하는 우리의 경우 남소 등의 위험을 방지할 목적에서라도 보호대상이 되는 제3자의 범위를 제한하는 방법도 고려해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