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최근 정치권과 경제계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이사의 충실 의무’에 관한 「상법」 개정 논의이다. 우리 상법 제382조의3이 이사의 충실의무 내용으로 ‘회사의 이익’만을 그 대상으로 정하고 있는 점에 관하여 이를 확장하여 ’주주의(비례적) 이익과 회사의 이익’으로 확대하려던 것이 제21대 국회에서 이용우 의원 대표발의안의 핵심적인 내용이었으며 ‘총주주의 이익’을 담으려던 것이 박주민 의원의 대표발의안이었으나 큰 논란이 되었다가 정부와 재계 등의 반발로 인해 결국 폐기되었다. 그런데 같은 내용으로 최근인 2024년 더불어민주당 정준호 의원이 제22대 국회가 개원하자 바로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였으며 이어서 박주민 의원도 같은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특히 그동안 이에 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윤석열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당해 상법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을 발표하면서 개정안 내용에 관한 찬반의 논의가 재점화된 양상을 띠고 있다.1) 이러한 논의의 배경이 된 우리 기업구조는 대규모 기업집단을 토대로 경영이 이루어진 특수성을 띠고 있으며 이러한 전제에서 촉발된 지배주주와 기업의 다른 이해관계자들 간의 이해 상충의 문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었던 것이며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기업집단의 현실과 법 규정 간의 불일치가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 관련 법제의 경우 소수의 대규모 결합 기업집단(흔히 재벌이라 칭함)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전제로 다양한 규제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나 최근 몇 년 동안 이러한 규제 원칙에 예외적인 상황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우선 친기업적 성향이 어느 때보다 강해졌으며 규제와 책임의 문제를 점점 더 경시하며 특정 사안에 관해서는 거대 기업집단을 마치 국가 경쟁력을 대표하는 공식 기관처럼 대우하기도 하는 등 현실과 법제의 괴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과 각종 규제를 통해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려는 반면에 최근에 심각한 국가 경쟁력 문제로 대두되는 금융, 배터리, 환경, 반도체, 인공지능 및 온라인 플랫폼 등의 산업에 관해서는 이와 관련된 대규모 기업집단에게 오히려 각종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을 펴고 있어 결과적으로 규제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방향성에 관해서도 일관성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GATT와 WTO로 대변되는 선진국의 국제 무역 자유화라는 대원칙들도 이미 자국 이익을 위한 보호무역 조치의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각종 첨단 산업과 이와 관련된 원자재 산업들에 종사하는 기업들을 대하는 태도 또한 국가 경쟁력 확보라는 이유로 상당히 유연한 방식으로 경제력 집중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 결과 종래 실제로 이러한 기업집단을 운영해 온 지배주주들의 책임의 문제 또한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적인 측면에서 공정거래법상의 규제들이 지금껏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하여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목적으로 실질적인 규제를 담당하는 역할을 해 온 반면에 기업지배구조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상법의 경우는 오히려 개별 기업만을 그 대상으로 다루면서 몇 개의 예외적인 조문을 통해 결합기업집단의 지배주주를 간접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어 결과적으로 대규모 결합기업들이 지금껏 행해 온 불법적인 경영 방식에 대한 규제와 그 책임의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현재 논란이 재점화된 ‘이사의 충실의무’에 대한 적용 확장을 위한 입법화 시도는 겉으로는 이사의 충실의무의 범위를 확대하여 소수 주주의 이익 또한 보호하려는 것이나 사실상 기업집단에서의 지배주주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어 현재 재계와 기업집단의 경영 방식을 옹호하는 자들의 반발이 큰 것으로 보인다. 공법적인 규제의 방식과 사법적인 해결 방식의 특성에 기인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고려할 때 회사법적 규율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크다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정책적 논의와 입법 노력이 시작된 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났으며 몇 번의 중요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는 현재의 모습은 이미 기존의 법률들을 통한 규제를 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못한 상황임을 방증하는 것이며 새로운 상황에 맞는 개별적 규제를 통해 전체적인 방향성을 찾아가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이러한 논지를 위해 구체적인 규율방식을 찾아가는 노력의 일환으로 먼저 현행법상의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와 책임의 문제를 검토하고 그중에서 최근에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의 재상정의 문제점을 통해서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지배구조와 책임의 문제에 관해 실질적인 해결 방향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이를 위해 특히 EU 법과의 조화를 통해 자국의 현실에 맞는 제도를 계속 구축해 가고 있는 독일의 예를 참조해 우리 법에의 채용 가능성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Ⅱ. 대규모 기업집단의 규제와 관련한 다양한 접근 방식
기업집단이란 우리 회사법상 각자 독립된 법인격을 보유한 기업들이 하나의 그룹의 형태로 조직화한 결합 기업을 의미한다. 자연적인 경제 발전에서의 기업집단이란 흔히 단일 법인의 형태로 경영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분사 및 신설을 통해 집단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규모 및 범위의 경제 효과, 거래 비용의 절감, 구조조정의 필요성, 브랜드 가치의 강화라는 경제적인 이유에서 집단화된 기업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가 접하고 있는 현재의 대규모 기업집단의 형태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경제적 여건에서 인위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면서 만들어진 비정상적인 경제적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영향력은 이미 전체 국민경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국내 모든 산업과 관련한 구체적인 수치상으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2) 이러한 대규모 기업집단의 존재는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중요한 이슈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발전 과정과 현재의 영향력은 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 방식이 사적자치에 맡겨져 있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도 공적 간섭의 필요성에 전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온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기업 활동의 결과 발생하는 불공정성 등을 이유로 대규모 기업집단을 적극적으로 규제하는 우리나라의 법률로서 공정거래법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정거래법의 규제 방식 즉 미리 대규모 기업집단을 지정한 뒤 이들에 대해서만 지배구조 및 경영 방식에 관해서 적극적인 규제를 적용하는 방식은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제도로서 전통적인 경쟁법적 규제의 범주에 들지 않는 기업 규제로서 많은 비판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이는 비록 공정거래법이 불공정한 기업 관행의 효과에 중점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기업의 지배구조와 책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회사법의 영역의 규율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규제하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며3) 또한 사적인 책임의 문제를 공적인 영역에서 규제하는 방식을 통해 정부의 통제권을 강화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별 기업을 전제로 모든 법적 체계를 마련하고 있는 우리 「상법」상 회사 편의 입법 방식이 오랜 세월 그 많은 비판과 입법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화되지 못한 현재 상황에서 국가 경제적 측면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이 야기하는 폐해를 효율적으로 규율 할 수 있는 법률적 장치가 공정거래법 등의 공법적 규제가 사실상 유일하다는 점이 여전히 현재의 공정거래법적 규제 체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공정거래법은 1986년 제1차 개정 이후로 국가 산업 정책의 변화에 따라 많은 개정이 이루어졌다. 주요 내용을 예로 들자면, 1986년 개정 시에 지주회사의 설립금지, 대규모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회사의 상호출자 금지와 출자총액의 제한 등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1992년 개정을 통해서 계열회사 채무보증을 제한 제도를 규정하였으며 1996년 개정에는 채무보증의 제한을 강화하는 동시에 계열회사 사이의 부당지원행위를 금지하였다. 특히 1997년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IMF의 요구에 따라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면서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계열회사들 사이에 신규 채무보증 금지 조치를 정하면서 기존의 채무보증을 해소토록 하였으며 1999년 2월에는 기업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지주회사의 설립을 허용하였으며 12월에는 다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도입하였으며 일정 규모 이상의 내부거래를 공시토록 법을 개정하였다. 그 이후 2002년에는 대규모기업집단의 일괄지정제도를 폐지를 2004년에는 대기업집단에 소속된 비상장·비등록 기업의 공시의무를 강화하면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개선함과 동시에 계열금융사의 의결권 행사한도를 축소하였다. 2009년 3월에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면서 기업집단에 대한 공시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하였으며 2013년 8월에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과 이를 위한 부당한 거래단계 이용 행위를 금지시키면서 다시 2014년 7월에 시행된 개정법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계열회사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시켰다. 2016년에는 지주회사 관련 공시강화를 2017년에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개정을 통해 신설하였다.
우리 공정거래법은 특히 2020년 개정(2021년 12월부터 시행)을 통해서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여기에는 기존의 규제 방식에 대한 비판, 점점 발전되는 경제력 집중의 수단 그리고 규제의 합리화라는 배경을 전제로 한다.4) 그중에서 특히 기업집단 규율 법제를 중심으로 예를 들자면 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변경하였으며, 사익편취 규율 대상을 확대하였으며, 지주회사 자·손자회사 의무 지분율 요건을 강화하였으며, 공익법인 의결권과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였으며, 금융·보험사 의결권에 대한 기존의 제한을 강화시켰으며 그리고 기업형 벤처캐피탈과 벤처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 시킨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우리 「상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회사법의 목적은 회사의 운영을 법이념에 맞게 규율하려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분류하자면, 회사라는 기업형태를 특정하는 측면, 기업 설립과 의사결정 방식과 같은 운영을 뒷받침해 주는 측면, 회사 이익 분배와 투하 자본 회수의 방법을 제시하는 측면, 기업의 손실에 대한 책임 소재를 밝혀주는 측면 그리고 회사의 종결과 재편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는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상법」의 규율 태도가 원칙적으로 법인격을 가진 개별 기업을 중심으로 마련된 탓에 다양한 형태의 기업들 특히 결합 형태의 기업들에 대한 규율방식에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현실과의 정합성의 문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상황이다. 기업집단 특유의 회사법적 문제란 개별적으로 법인격을 보유한 각각의 회사 간의 이해 상충의 문제를 의미하며 그중에서도 주식 소유를 통해 모회사의 지위를 가지는 회사의 주주들이 합법적인 주주권의 행사를 통해서 자회사에 불리한 방향으로 지휘권을 행사하는 경우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회사법상의 대부분 논의가 법인격을 가진 개별 회사들의 독립성을 전제로 하여 회사법상 모회사(지배회사)와 자회사(피지배회사) 간의 지배력의 행사 방식에 관한 규율과 양자의 이해 상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에 집중하여 전개되어 왔으며5) 더 나아가 이러한 유형에서도 특히 지배회사 또는 전체 기업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자들 즉 지배주주와 그 관련자들에 관한 책임의 문제도 항상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Ⅲ. 기업집단에 대한 회사법적 규율
이미 전 세계의 많은 대규모 기업이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의 형태로 운영이 되고 있으며 그 의사결정 또한 집단의 이익을 고려한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실제 산업계의 상황에 관해서 우리 상사법의 분야에서도 당연히 오랜 기간의 논의와 입법 노력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개별 기업을 기준으로 모든 법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현행 회사법(「상법」의 회사 편)의 규율 태도는 현실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비록 기업집단의 지배주주에 관한 몇몇 조문을 신설하였음에도 사실상 이를 통한 규율의 실효성에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나라의 경우가 개별 기업을 중심으로 회사법이 규정된 프랑스의 체계와 유사한 관계로 프랑스 법원의 로젠브롬 판결(Rozenblum- Entscheidung)6)과 같은 해결방안 즉‘그룹 이익’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여 기업집단 수준의 경영을 인정하려는 방향으로 여러 판례7)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업집단 수준의 경영 방식을 법적으로 인정하려는 학계의 주장8)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이하에서는 우리 회사법상 여러 제도 중에서 실제로 기업집단의 지배주주 규율의 역할을 담당하는 내용을 살펴보고 그 문제점에 관하여 검토한다.
자기책임의 원리라는 법의 기본 원리가 기업집단의 경영 방식과 관련하여 왜곡되는 현상이 기업 관련 법제의 흠결을 통해 계속 지적되었으며 이는 다시 말해 전통적인 회사법의 기본 체제인 의사결정과 책임의 주체에 불일치가 생겨난 것을 의미한다. 즉, 회사의 의사결정 방식과 조직원리를 이용하는 지배주주들(흔히 재벌이라고 칭하기도 함)의 왜곡된 경영 방식에 대하여 1998년 상법 개정 전까지 계속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이러한 배경에서 개정된 상법은 제401조의2를 도입하여 회사 또는 제3자에 대하여 책임지는 합법적인 이사가 아닌 업무 집행관여자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규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첫째, 회사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이사에게 업무 집행을 지시한 자(제1호) 둘째, 이사의 이름으로 직접 업무를 집행한 자(제2호), 셋째, 이사가 아니면서 명예회장, 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 기타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하여 업무를 집행한 자(제3호)로 분류하여 여기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상법상 이사의 책임 규정(제399조와 제401조)과 대표소송 규정(제403조와 제406조의2)에 따른 이사로 간주하여 처리하도록 정하고 있다.
지배주주가 회사 내의 특정 조직(예를 들어, 비서실, 경영전략실 등)을 이용하여 계열회사 이사에게 업무 집행을 지시하는 자 혹은 회사를 의미하며 법문상 ‘영향력’과 ‘지시’라는 요건이 필요하다. 우선 영향력이란 주식 보유 혹은 그 밖의 수단을 이용하여 회사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실상의 힘을 의미하며 입법 배경을 고려한다면 지배주주와 같이 사실상 회사를 지배하는 자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자들의 ‘지시’라는 행위가 존재해야 하나 이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실제 형사사건에서 지배주주에게 엄격한 증명 없이도 책임을 인정했던 사례9)가 있었던 만큼 향후 민사 판결에서도 이러한 방식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지만10) 지배·종속 관계가 있으면 ‘지시’ 여부를 간주하는 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 초에 영국 FCA 상장 규정의 영향을 받아 이사의 충실 의무 중 하나로서 자기거래 금지 의무를 도입하였다가 2011년 상법 개정을 통해 그 내용을 대폭 수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1년 개정을 통해 우선 자기거래의 적용 대상이 확대되었으며 이사회의 사전 승인 명문화와 승인 요건 강화 및 거래의 내용과 절차의 공정화가 명문화 되었다.
자기거래 금지의무 규정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 충돌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배경으로는 재벌과 같은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배주주의 부당한 경영방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11) 그러나 이미 기업집단 지배주주의 자기거래 유형은 공정거래법상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상법상 규정은 사실상 그 이외의 경우에 한정되는 측면이 있다.
2011년 개정 「상법」에 의하면 자기거래의 범주에 이사뿐만 아니라 이사의 특수관계인과 기업과의 거래도 포함 시키고 있으며 주요주주 및 그 특수관계자와의 거래의 경우에도 지배주주의 자기거래를 규율하기 위해 따로 규정을 두어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주요주주란 의결권 있는 발행 주식 총수의 10% 이상을 소유하거나 회사의 경영에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를 의미한다(제542조의8 제2항 제6호).
이러한 거래를 통해 기업 내부의 부당한 부의 이전이 발생하는 현상을 터널링(tunneling)이라 하며 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규제 법제를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로 알려져 있다.12) 이러한 행위유형을 규율하는 방식으로 흔히 거래 정보를 공시토록 하는 방식, 회사 기관에 의한 승인 절차를 마련해 두는 방식 그리고 거래의 공정성이라는 부수 요건을 정해두는 방식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상법」은 이러한 관계자거래에 관해서 이사 또는 주요주주와 회사 사이의 거래를 통해 다른 주주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측면에 중점을 두어 이를 금지하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이사회의 승인을 통해서 허용되도록 하고 있으며 이 경우에도 그 거래의 내용과 절차는 공정해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398조). 이와 더불어 우리 「상법」은 상장회사의 경우는 주요주주 등의 자기거래에 대해서 더 엄격한 특례를 정하고 있다. 즉 우리 상법 제542조의9는 상장회사의 경우 주요주주와 이들이 30% 이상 소유하거나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수관계인들에 대한 회사의 신용 공여를 금지시키고 있으며 또한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의 경우 최대 주주와 그 특수관계인, 그 상장회사의 특수관계인은 일정한 대규모 거래에 있어서 이사회의 승인을 얻도록 정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는 기업집단의 불공정한 거래라는 측면에서 공정거래법상 규제로 처리하면서도 형법상의 배임으로도 처벌 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미 1950년대부터 시작된 EU 차원의 다양한 기업집단법 통일화 시도는 1984년 유럽 기업집단법 지침에 관한 초안을 통해서 통일적인 단일법 체계의 기업집단법을 유럽법의 모델로 삼으려던 시도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태도는 그 이후에도 유럽 콘체른법 포럼(Forums Europaeum Konzernrecht)이라는 이름으로 각 회원국의 국내법과 조화를 이룰 기업집단법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2016년의 ECLE(European Company Law Experts)의 유럽 콘체른법 제정을 위한 범유럽 전문가 회의 개최 등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단일화된 기업법제 통일화 제정의 노력은 EU 각 회원국의 상이한 경제적 상황과 기업법제 시스템을 이유로 결국 현실화되지 못하였으며 그런 이유로 각 회원국의 회사법제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실질적 의미의 기업집단법의 제정이라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진행된 유럽 주주권 지침의 개정 작업은 2017년 5월 17일 ‘주주권의 개정을 위한 유럽 지침(Richtlinie (EU) 2017/828)’을 공포함으로써 마무리 되었으며 구체적인 규정들은 2년 안에 각 회원국의 국내법으로 채용되도록 강제되어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 제9c조에서 관계자거래 금지(Verbot der Geschäfte von nahestehende Partei) 법리를 규정하여 기업집단내에서 발생하는 불공정한 거래 혹은 터널링의 유형을 규제하도록 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해 지침이 많은 예외 규정을 두어 EU 회원국들의 국내법과의 조화를 도모하고 있는 점 그리고 대형 상장 주식회사만을 대상으로 적용하고 있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는데 특히 그중에서도 기업집단의 실체 및 그룹 이익이라는 개념을 인정하는 법제와의 충돌이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13)
독일의 경우 당해 지침을 수용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를 통해 지침상 예외 규정들에 대한 해석을 이용하여 여전히 기업집단법제를 유지하면서 유럽 주주권 지침을 수용하고 있다. 그래서 계약상의 콘체른에는 적용하지 않으며 사실상의 콘체른 유형에 한정하여 관계자거래 법리를 이용하고 있으며 그 전제가 되는 것이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책임 체제를 마련해 두는 것이다.
기술한 바와 같이 당해 법리는 우리 「상법」에도 유사한 내용으로 도입되어 있으나 관련 사건들은 실무적으로는 형사법적으로 그리고 공정거래법을 통해서 해결해 오는 것이 통상적이었으며 여기에는 우리 상사법 법제를 통해 피해자가 법원에서 피해를 구제받기 어려운 측면14)이 존재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관계자 법리를 통한 해결 방안을 EU 회원국에 적용함에 있어서 요건 중 하나가 국내법상 보호기능이 충분치 않을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은 당해 법리가 실질적으로는 기업집단법으로서 소수 보호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상법」 개정이 시도되었으며 특히 제20대 국회와 제21대 국회에서 의원발의된 상법 개정안의 대부분이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자격 제한, 자사주에 대한 제한 등에 관한 것으로 이러한 제도들은 사실상 대기업집단 지배주주의 전횡으로부터 소수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15) 그중에서 제21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가 같은 내용으로 정준호 의원이 제22대 국회에서 대표 발의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16)은 「상법」 제382조의3의 법문 중 ‘회사를’을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이라는 표현으로 수정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에 박주민 의원이 제21대 국회에서 발의했던 내용으로 제22대 국회에서 대표 발의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17)의 경우에는 상법 제382조의3의 내용 중 ‘회사’를 ‘회사와 총주주’라는 표현으로 개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두 개정안의 취지는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사이의 이행 상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이사의 충실의무의 대상을 일반주주에게로 확대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은 총수 일가나 경영진이 주도하는 자본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반주주의 이익 침해를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총수의 아들이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환사채를 저평가된 가격에 발행하여 일반 주주들의 지분가치를 훼손하거나, 불리한 합병비율에도 불구하고 합병을 진행하여 일반 주주들이 손해를 보는 상황, 또는 불법행위에 연루된 대표이사를 재선임하기 위해 회사 자금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우호적 주주에게 매각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현행법에서 이사들이 주주에 대해 특별한 충실의무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처벌할 수 없었던 것이나 법이 개정되면 이사들은 이러한 거래에 반대해야 할 법적 의무가 생기고, 일반 주주들은 소송이나 고소를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회사 법제와 관련해서 이사의 책임에 관한 내용들의 중요성은 이들이 경영자들의 대리 비용을 통제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사후통제 수단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며 그 밖에도 형사법적 책임과 공정거래법이나 자본시장 관련 법제 등에 산재해 있는 이사의 여러 책임 문제의 기준이 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18) 이사의 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인 주의의무와 충실의무는 통상 혼용되어 사용되지만19) 이를 구분하여 설명하는 견해도 존재하며 최근 판례20)에서도 충실의무만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어떤 견해를 따르든 우리 상법은 이사의 의무 중 충실의무에 속하는 것으로 제397조 경업금지의무, 제397조의2의 회사기회의 유용금지, 제398조의 자기거래금지 규정을 두고 있으며 이를 모두 포괄하는 일반조항으로서의 제382조의3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 「상법」 제382조의3은 일반조항으로서 이사가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의무를 부담한다는 취지로 법문이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해석이 통설의 입장이며 우리 판례의 일관된 태도로 보인다. 이러한 법문의 내용과 관련하여 우선 「상법」 제399조 대표소송의 구조와의 정합성 문제와 회사의 경영의 효과가 결과적으로 주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근거로 하여 실질적으로는 주주전체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과 같은 것이므로 회사를 의무의 상대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견해21)도 존재하지만 최근 물적분할 등과 같은 자본거래 과정에서 이사의 행위가 회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면서도 단지 주주 사이에서 부의 이전의 결과만 가져오는 경우와 같이 기업 가치의 변화와 상관 없이 일반주주의 가치가 저하되는 경우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 상충 문제를 해소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제기22)되면서 회사의 이익과 주주 전체의 이익의 부정합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측면과 더불어 이론적으로도 회사와 주주의 법인격이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상법 제382조의3을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로만 해석하는 것이 현재까지 대법원 판례를 통해 공고화 된 논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현재 「상법」 일부개정안들이 목적하는 바는 통설과 판례의 근거가 된 법문의 내용을 입법을 통해 수정하여 이사의 충실의무의 대상을 주주 전체의 이익 혹은 주주의 비례적 이익으로 확장하려는 것이며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특별히 총수 일가나 경영자의 이익을 위한 자본거래로부터 일반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효과를 가져오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로서 지배주주의 친인척이 기업 전체의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낮은 전환가격에 전환사채를 발행해 일반주주의 지분가치를 희석한 경우, 계열사 간 합병 후 특정인의 지배권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불리한 합병비율임에도 이사들이 이에 찬성하여 결과적으로 일반주주가 주식을 저가에 교환되도록 한 경우 혹은 불법행위에 가담한 대표이사의 재선임을 위해 회사 자금으로 매입한 자사주를 전략적 제휴를 명분으로 우호 주주에게 매각하거나 우호 주주의 자사주와 맞교환해 일반주주의 이사 선임권을 침해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경우 현재의 우리 판례의 입장을 따르면 일반주주가 이러한 결정을 한 이사를 상대로 책임을 물을 수가 없어 현재의 상법 개정안을 통한 해결법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획재정부는 최근인 2024년 7월 3일 ‘역동경제 로드맵’에 담긴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을 통해서 그동안 긍정적으로 검토해 온 「상법」 제382조의3 개정 즉 이사의 충실의무 내용을 개정하는 방식을 제외했음을 밝혔으며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방안으로 이사의 사업기회유용 금지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전자 주주총회를 도입하고, 물적분할 시 반대주주 주식 매수 청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정부의 방향 선회의 배경에는 경제계의 반발 즉 기업의 중장기적 경영 의사 결정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점과 일반주주들에 의한 소송 및 배임죄를 이유로 한 고소의 남발이 우려된다는 인식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 이외에도 법무부와 기재부 및 금융위원회 등의 관계 부처 간 이견 조율에 큰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23)
우리 「상법」상 이사 충실의무의 한 유형으로 취급되는 회사기회유용의 법리는 미국 판례법상 발전되어 온 법리를 2011년 「상법」 개정을 통해서 제397조의2를 신설하면서 도입한 것으로 구체적으로, 이사가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 또는 회사가 수행하고 있거나 수행할 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업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거나 혹은 제3자에게 이용하도록 할 때 이사회에서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승인을 받도록 정하고 있으며 이는 특히 기업집단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한 일감 몰아주기를 염두에 두고 입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4) 그러나 미국의 판례법상 개별 사건을 통한 구체적 타당성을 현실적으로 모두 다 담을 수 없는 한계를 이유로 현재의 규정은 전반에 걸친 입법적 흠결이 지적되고 있으며 특히 원래 입법 목적이었던 기업의 지배주주와 측근들을 책임의 주체로 충분히 포섭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집중하여 비판을 받아왔다.25)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정부가 밝히고 있는 「상법」 개정안의 방향 즉 회사기회유용 금지의무의 강화를 통한 일반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은 그 적용 범위를 특정하겠다는 의미로 예측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정부가 예고한 물적분할 시 반대주주 주식 매수 청구권을 부여하는 방안 추진 계획 또한 물적분할의 경우에 지배주주의 이익과 일반주주 간의 이익 상충이 발생한 경우를 대비하여 일반주주에게 주식 매수 청구권을 부여하여 이들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Ⅴ. 기업집단법제의 변화와 보완
기술한 바와 같이 이미 우리 현실에서는 대규모 그룹형 기업들의 존재와 영향력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지배구조를 다루는 우리 상사법 법제는 여전히 회사의 개별 법인격을 전제로 한 기업집단 법제를 고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회사기회의 유용금지(상법 제397조의2), 자기거래금지(상법 제398조) 그리고 상장회사의 자기거래금지(제542조의9 제3항과 제4항)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를 제외하고도 채권자 및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조항들로 상법상 업무집행지시자의 책임(상법 제401조의2), 이사의 충실의무(상법 제382조의3)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에 반해 공정거래법은 대규모 기업집단에 관해서 개별적인 사안들을 중심으로 전체 기업을 하나로 취급하는 형태로 규제하는 태도를 발전시켜 왔으며 실질적으로는 기업집단과 관련한 이해관계자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우리나라의 현행법과 판례는 비록 개별 기업들의 경영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전제로 하면서도 법적 평가와 관련해서 일정 부분 기업집단의 존재를 고려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26)
이에 관하여 공정거래법과 같은 공법적 규제와 다른 기업지배구조 확립을 통한 이해조종의 기능을 담당하는 독자적인 회사법적 규율의 필요성이 제기27)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수많은 논의와 입법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일반적인 기업집단법제를 구축하는 데 실패한 우리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굳이 기업집단법제를 단일법제의 형태로 일원화시킨 뒤 이를 근거로 규율하려는 태도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다양한 방향에서 기업집단을 하나의 단체와 마찬가지로 인식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으며 현재의 급속히 변하고 있는 세계 경제질서에서의 기업집단의 지위 또한 각국의 법제와 상관없이 통일체로서 취급되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라는 점에서 개별 사안에서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규율하는 내용을 취합하여 이를 실질적인 기업집단법제로 이해하고 규율의 방향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미 입법화되었거나 준비 중인 내용들을 제외하고도 현재 기업집단법제를 구성해 가고 있는 내용들로는 새로운 경제법적 규제를 비롯하여 판례를 통한 지배주주 책임 보완의 방식 그리고 최근에 큰 이슈가 되고 있는 ESG 규제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기업집단을 독특한 방식으로 규제해 온 우리나라의 법제가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었으나 최근의 급속한 글로벌 경제 체제로의 변화 속에서 현행 규제의 지속 가능성과 수범자의 수용성이라는 측면들을 더 이상 담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생기고 있다. 이는 기술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발전 속도에 더 이상 기존의 법제만으로는 대처하기 힘든 예상할 수 없는 국제 경제적 상황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비하기 위한 EU의 AI Act의 제정,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위한 EU의 여러 규제법의 마련, 가상자산과 관련한 EU의 MiCA 제정과 같은 상황은 우리 국내법 체계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에 상응할 만한 새로운 규제법의 신속한 마련이 요청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새로운 기술을 중심으로 한 경제 주체들이 대부분 글로벌 기업집단이며 우리나라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점은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 방식에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이 일반지주회사와 금융회사 간의 결합을 금지하기 위해서 금융업이나 보험업을 영위하는 회사를 자회사로 두지 못하는 것을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제18조 제2항 제5호). 그러나 이러한 원칙의 예외로 2021년 개정법은 지주회사의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른 벤처투자회사와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른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의 보유를 허용했다(제20조 제1항). 이러한 기업형 벤처캐피탈은 그 대주주가 회사법인으로 구성된 특이한 형태로서 그동안 지주회사 체재 밖에서 지배기업의 편법적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확장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의 용도로 사용되던 형태를 탈피하여 진정한 벤처 활성화를 위해 1999년 이래로 계속 유지됐던 금산분리 원칙(제18조 제2항 제5호)의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28)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시대상기업집단 및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지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비상장회사 등 중요사항 공시, 특수관계인의 공익법인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계열회사 등의 편입 및 제외,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금지 등의 의무를 부담하게 되며 후자의 경우에는 공시대상기업집단에 대한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제 전부와 상호출자 금지, 순환출자 금지, 채무보증 금지, 금융·보험회사 또는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 등의 의무를 부담한다. 2024년 5월 15일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하이브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신규로 진입하였으며 2023년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온라인 유통 플랫폼 기업인 (주)쿠팡의 자산 순위가 대폭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29) 2022년도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진입했다가 2023년에 매출 감소로 지정 취소된 (주)두나무의 경우는 이번에도 진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중 온라인 플랫폼 기업과 관련하여 이미 EU의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 대기업을 이른바 ‘문지기’(gatekeeper) 플랫폼이라고 칭하며 자사 우대를 사전적으로 금지하는 디지털 시장법(Digital Markets Act)을 제정하여 시행에 들어갔으며 우리의 경우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그동안 준비해 ‘온라인 플랫폼법(가칭)’의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으나 최근 중국 온라인 플랫폼의 저가 물량 공세에 대응책이 시급한 상황30)이다. 또한 국내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 중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들어가 있는 카카오와 네이버의 경우에는 인공지능과 관련한 규제 찬반론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하여 (주)두나무의 경우에는 2021년에 개정된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과 EU의 MiCA를 채용하여 마련된 법률안을 가지고 2023년 6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2024년 7월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규제법들은 모두 국외의 다양한 새로운 규제법들의 영향을 받아 제정되는 것으로 그 내용들에 이미 여러 국제적인 수준의 경제 규제들이 포함되어 있어 기존의 규제 내용들과의 정합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현행 회사법 체계와 상관 없이 현실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그룹형 기업들은 통일적인 경영 방향을 가지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마치 하나의 기업처럼 운영된다. 그 결과 특정 그룹에 실질적으로 소속된 기업 중 일부에서는 손실을 주면서 다른 기업들 특히 지배기업의 차원에서는 이익이 되는 경영 방식을 고수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현재 불이익을 당한 피지배 회사에도 향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 혹은 내부적으로 인센티브가 주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전체 그룹의 관점에서 이익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를 그룹 이익(Group Interest) 혹은 콘체른 이익의 인정(Anerkennung des Konzerninteresses 또는 des Gruppeninteresses) 이라고 표현하며 흔히 특정 자회사의 손실을 끼친 지배회사의 경영 방침에 대해 ‘전체 그룹을 위한 행위’라는 항변을 통해 지배기업의 이사 혹은 지배주주의 책임을 면책하는 근거로 이용된다.
기업집단의 독립된 법인격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법체계에서 논의 되는 그룹 이익 혹은 콘체른 이익을 법적 형식과 경제적 실질 사이의 긴장 관계로 이해31)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현실과 법적 체계의 부정합적 상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법인격 독립성의 원칙을 기본으로 운영 중인 프랑스 법제에서 기업집단 경영에 관한 현실과의 부정합성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로젠브룸 판결(Rozenblum-Entscheidung)32)이다. 구체적으로 기업집단의 행위가 전체 그룹을 위한 행위로서 반대급부를 전제로 다른 그룹 소속 기업 간의 균형을 고려하여야 하며 무엇보다도 손실을 입은 회사의 재정 능력 범위 내의 손실일 것을 요건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기업집단의 경영진들이 파산 상황에 처한 계열사를 지원한 행위와 관련하여 여러 사례가 존재하며 우선 적자를 기록하던 계열사들을 위해 다른 계열사의 유휴자금으로 새 회사를 만들어 부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지원했던 한화그룹의 경우 경영진의 배임죄가 인정되었으며33) 그리고 동아그룹이 대한통운으로 하여금 재무구조가 취약한 동아생명의 신주를 액면 가액으로 인수하도록 한 사안에서 동아그룹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에게 배임죄를 인정한 사례34)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우리 법원은 그룹 차원의 부실 계열사 지원과 관련한 사례에서 대체로 법인격 독립의 원칙에 근거하여 그룹 이익 혹은 콘체른 이익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35)
법적 근거가 없는 개념인 그룹 이익을 인정해 주려는 의도는 우선 지배회사의 경영방식에 대한 사실상의 정당성 부여 그리고 종속회사 경영진의 행위규범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전체 그룹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목적, 그룹 전체의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한 목적, 그룹 내 공통 관리 비용 부담을 위한 목적 등을 위한 특정 계열사의 손실 부담 결정을 그룹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표현으로 정당화시키려는 것이며 비교법적 근거로 흔히 프랑스의 로젠브룸 법리(Rozenblum-Formel)를 들 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로젠브룸 법리(Rozenblum-Formel)의 기본 전제라고 할 수 있는 그룹 이익(Group Interest) 혹은 콘체른 이익의 인정(Anerkennung des Konzerninteresses 또는 des Gruppeninteresses)은 그 내용의 추상성을 근거로 그리고 실제 거래계에서의 관행상 자회사들이 기업집단이라는 큰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특성을 보이는 점을 고려할 때 극단적인 상황 즉 특정 자회사를 완전히 도산에 빠트리려는 의도를 가진 경영 판단 행위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지배기업의 의사와 다름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성격을 가진 개념을 전제로 만들어진 로젠브룸 법리(Rozenblum-Formel)는 여기에 다시 엄격한 증명을 요하는 형사법적(배임죄) 요건으로 적용된다는 측면까지 더하여 결과적으로 기업집단 수준의 다양한 종류의 경영 행위 즉 특정 계열사의 손실을 강요하는 불법행위를 사실상 정당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36) 비교법적으로도 독일 기업집단법제에서도 계약 콘체른이 아닌 우리나라와 같이 주식의 매수 등을 통해 만들어진 사실상의 콘체른 형태의 기업집단의 경우는 콘체른 이익의 인정(Anerkennung des Konzerninteresses 또는 des Gruppeninteresses)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37)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 현실에 맞는 그룹 이익의 인정이 논의되고 있으나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경제력 집중 상황과 특수한 경제적 상황 그리고 손실 보전 규정의 흠결 등을 이유로 그룹 이익이라는 개념을 인정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쉽게 채용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인다.
이미 1960년대 이후부터 국내 문헌과 판례에서 극소수의 사례에 적용되어 알려진 법인격 부인의 법리는 기업의 법인격이 남용된 결과 독립된 실체를 인정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는 제3자와의 법률관계에 있어 회사의 법인격을 인정하지 않고 특정 행위자 개인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법인격부인(piercing the corporate veil) 이론 혹은 독일의 투시책임(Durchgriffshaftung) 이론을 채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0년대에 들어 우리 판례에서도 종종 언급되고 있다.
우리 민법상 신의성실의 원칙 또는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을 그 근거로 삼는 것이 다수설의 입장이며 우리 판례38)도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우리 판례에 따라 그 적용 요건을 구체화한다면 지배주주 또는 지배기업에 책임을 묻는 형태와 채무면탈을 위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경우에 당해 회사에 책임을 묻는 형태로 구분하여 검토해야 한다. 우선 전자의 경우는 주로 객관적 상황 즉 주주 통제의 완전성과 주주의 개인재산과 회사재산의 혼용을 주요 요건으로 하며 후자의 경우에는 채무면탈을 목적으로 한다는 주관적 요소와 기존의 회사와의 실질적 동일성이라는 객관적 요소를 요건으로 한다.
법인격 부인론은 법적 안정성의 측면에서 예외적인 경우에만 보충적으로 허용이 되며 적용 되는 경우에도 같은 이유에서 회사의 법인격이 전면적으로 부정되는 것이 아닌 문제가 된 사안에서만 예외적으로 주주의 책임이 인정되는 것이다.
회사존립파괴책임(Existenzvernichtchtender Eigriff)이란 흔히 회사 존재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침해 혹은 회사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침해 등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독일 유한회사법상 회사존립을 파괴하는 침해에 관해 유한회사의 사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는 Bremer Vulkan 판결39)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널리 이용되는 표현이다. 이러한 유형으로 흔히 알려진 것으로 회사의 적극재산 탈취행위, 청구권의 불행사 및 사업에 필요한 유동성을 감소시켜 재산을 감소시키는 행위, 사업기회 및 취득기회의 탈취 또는 이전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러한 종류의 행위가 도산유발로 인한 손해의 원인으로 작용하거나 이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을 경우를 의미한다.
초창기의 이론은 독일 연방대법원이 Autokran 판결40), Tiefbau 판결41) 그리고 TBB 판결42) 등을 통해 콘체른법상 인정되는 심화된 사실상의 콘체른(Der qualitiziert faktischer Konzern) 책임으로 이론 구성하여 독일 주식법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에서 콘체른 형태의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지배주주 등의 종속회사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대한 책임 추궁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그 뒤에는 채권자들이 유한회사의 존립을 파괴하는, 즉 자본금 유지 의무를 이행치 않은 유한책임 사원에 대해서 법인격 부인론(Durchgriffshaftung)을 채용하여 책임을 추궁하는 방식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 또한 법인격 부인론의 한 가지 유형으로 파악되었던 것이다.43) 그러나 2007년 Trihotel 판결44) 이후로는 이전의 외부책임으로서의 파악을 포기하고 독일 민법 제826조에 근거한 내부책임으로서의 현재의 회사존립파괴책임 이론으로 체계화하게 된다. 그 결과 2007년 이후로는 회사존립파괴책임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의 청구권자로는 채권자 개인이 아닌 피해를 본 회사로 변경되며 가해행위인 자본위협행위에 대한 회사의 동의 여부는 원칙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
즉 지배주주가 유한회사의 기본 재산을 위태롭게 한 경우에 있어 독일 회사법상 법인격 독립 원칙의 예외로서 초창기에는 콘체른법의 보호규정을 채용하는 방식을 그 뒤에는 독일 유한회사법상의 자본금 규정을 근거로 하여 채권자 보호의 흠결을 법인격 부인론을 이용하여 해결하는 방식을 사용하다가 현재에는 독일 민법 제826조에 따른 불법행위책임을 통해서 해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45)
독일에서 회사존립파괴책임(Existenzvernichtchtender Eigriff) 이론이 발전하기 시작한 배경은 현행법으로는 보호할 수 없는 채권자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고민이었으며 그 결과 판례를 통해서 법의 흠결을 보완하려는 과정에서 발전되었던 것이다. 특히 그 대상이 회사재산을 대상으로 하여 손실을 발생시켜 도산을 야기하거나 심화시키는 행위를 한 유한회사의 사원 또는 주주의 책임을 직접 추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 것이다.
우리 법제와 비교하자면, 회사존립파괴책임의 유형 중에서 채무 면탈 목적의 새로운 회사 설립의 유형과 재산혼용의 유형에서는 우리 판례에서도 그동안 인정해 온 법인격 부인의 법리와 유사하여 수용할 필요성이 높지 않으나 사업 기회 및 취득 기회의 탈취 또는 이전의 경우에는 이러한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독일식의 채권자 보호 방안이 고려될 필요성이 있다.
거의 모든 기업에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것이 우리나라 기업구조의 특성이라고 본다면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회사의 도산을 야기시킬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으며 여기에는 2009년 그리고 2011년 회사법 개정을 통해 최저자본금 제도가 없어졌으며 법정준비금 제도와 이익배당 제도가 완화된 우리 회사법의 약화한 채권자 보호기능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46) 이러한 제도 또한 이사나 지배주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지속 가능한 발전과 장기적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의 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내용 중에서 특히 비재무적 요소인 ESG가 투자 판단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영문 첫 글자를 조합한 단어로, 기업 경영에서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3가지 핵심 요소로 이해된다.47) 과거와 달리 현대 소비자들 특히 소비자의 반응을 통한 시장 상황을 중시하는 투자자들로선 평판과 같은 일종의 비정량적 표지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위시한 영향력 있는 주주들의 이러한 측면에서 관점이 기업의 생존과 직결될 수 있음을 인식한 이래로 현재는 탄소 중립 정책, 인종차별, 노사문제 등과 같은 요소를 적극적으로 공시하는 형태로 기업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48) 실제로 대규모 자금이 투자된 디즈니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인권 문제로 인하여 흥행에 참패하며 디즈니사는 ESG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선언하였으며 우리나라도 오랫동안 시장 점유율 1위였던 국내 식품업체가 갑질 등 사회 문제로 2위 업체와 시장 점유율이 역전된 사례가 있었으며49) 최근에는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Deloitte)가 2024년 1월에 북미, 유럽, 중동,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연간 수익이 5억 달러(약 6,950억원) 이상인 기업과 10억 달러(1조3900억원) 넘는 자산을 관리하는 사모펀드의 M&A 전문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72%의 M&A 전문가가 ESG 현안으로 인해 잠재적 인수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ESG의 영향력이 실제 기업 가치 평가에도 큰 의미를 더하고 있다.50)
유럽연합(EU) 또한 이러한 배경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일련의 법률과 규정을 제정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EU 기업들이 ESG(환경, 사회 및 거버넌스) 영향을 식별, 관리 및 공개하도록 하여 더 지속 가능한 경제로의 전환을 촉진하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22년 2월에 EU 집행위원회(EU Commission)는 500명 이상의 사원을 두고 150 Mio 이상의 매출을 내는 대형 기업집단에 대한 새로운 신의성실의무를 포함한 특별한 책임관계를 규율할 법률안(EU 공급망 실사를 통한 기업경영지속성 실사에 관한 지침(안)51))을 공표한 바 있다. 그후 당해 지침에 관해 EU 의회(EU Parliament)는 2022년 11월 EU 집행위원회(EU Commission)가 발표하였던 초안 내용을 일부 개정한 수정 초안을 제시하였으며 2022년 12월에 EU 이사회에서 다시 재수정을 거친 안이 일반 합의안으로 채택되었으며 2024년 4월 24일 EU 의회(EU Parliament)의 최종 승인을 얻은 상황에서 2027년부터 실제로 적용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정되어 승인된 당해 지침의 경우 2027년부터 특정 매출 기준을 충족하는 유럽연합(EU) 및 비유럽연합 기업 모두에게 광범위한 인권 및 환경 의무를 규정하며 이러한 의무는 기업 자체의 사업과 자회사의 사업뿐만 아니라 기업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수행하는 연결된 사업들에도 적용된다. 특히 당해 책임은 특정 자회사와 협력회사의 책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사업체의 대표자 혹은 지배회사에게 이에 대한 실사의 의무와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이는 당해 법안이 그 적용 대상으로 EU 역내 기업의 경우 3년(2027년까지) 5000명 이상의 사원을 두고 매년 1,500억 유로 이상의 매출을 내는 EU 기업과 EU에서 발생한 순매출액이 1,500억 유로 이상인 비(非) EU 기업에 대해 적용하는 것을 원칙53)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기본적으로 거대 기업집단을 상정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는 그동안 EU 회사법 통일화 과정에서 소외된 기업집단의 책임 문제를 다시 다루기 시작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당해 법안이 처음 공표된 이후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이 각 분야의 공급망 실사법을 제정하는 노력을 보였으며 스위스와 폴란드 등의 유럽 국가에서는 새로운 상황에 맞는 입법 즉 새로운 기업집단법제를 준비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는 당해 국가들에 소속된 기업집단의 영향에 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이러한 상황을 전제로 2022년 2월, 100개 이상의 기업, 비즈니스 협회 및 투자자들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책임 규정을 포함한 효과적인 유럽연합 기업 책임법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였으며 여기에는 EU의 여러 거대 기업들(IKEA, Ericsson, Danone)과 투자자집단(EFG, Aviva, PRI)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54)
독일의 경우 기업집단에 대하여 독일 주식법(Aktiengesetz)을 통하여 기업집단을 하나의 법적 주체로 인정하여 그 권한과 책임을 규율하며 그 과정에 발생하는 지배기업과 피지배기업간의 이해 상충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규율방식에 따라 논의되던 EU 차원의 기업집단법제 통일화 작업은 각 회원국들의 경제 현실을 이유로 사실상 기업집단의 법인격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하였으며 개정 유럽 주주권 지침을 통해서 관계자거래의 법리를 채택하였다. 그 결과 기존의 독일의 기업집단법제와의 정합성 여부가 크게 문제가 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 분야가 금융업이었다. EU 지침에 따라 마련된 개정된 금융감독업법이 허용하고 있는 사실상 콘체른의 형태를 띠고 있는 금융 기업집단 내에서 일어나는 상위기업의 하위기업에 대한 통제권 행사에 대해서 회사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기존의 독일의 기업집단법제와의 정합성 문제와 더불어 책임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게 된 것이다.55)
이러한 상황들은 현실과 법제와의 부정합성 그리고 법제 간의 부정합성이 높은 경제력 집중의 상황임에도 기업집단법제를 마련하지 못한 우리만의 특유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에 대한 독일의 방식은 우선 EU 법 입법과 계수의 과정에서 독일 국내법 즉 콘체른법과의 조화를 모색하며 둘째 유럽법을 계수한 새로운 입법 모델을 통해 독일 국내법 즉 기업집단법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은 유럽 주주권 지침을 계수하면서 입법 과정에서 기업집단법제의 틀을 계속 유지하면서 관계자거래 법리를 국내법으로 수용하였으며 지침의 다양한 예외 규정을 통해 기존의 기업집단법제의 부족한 부분을 개선 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또한 유럽 은행감독법의 내용을 계수하면서 은행 감독법의 특성상 기존의 독일의 기업집단법제와 다른 구조를 가지는 점에 관해서 이를 사실상 은행 콘체른을 규율하는 새로운 기업집단법제를 구축하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측면은 여전히 단일의 기업집단법제를 통해서 법인격을 부여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을 전제로 법제와 현실과의 정합성을 찾아가는 방식의 하나로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행 회사법이 개별 법인격을 전제로 회사 이해관계를 규율하는 태도를 고수하는 관계로 실제 현실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회사 관련 문제들이 대규모 기업집단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공정거래법이나 세법 그리고 금융지주회사법 등과 같은 규제법들은 오히려 기업집단을 하나의 동일체로 보아 규율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 기업집단법제에 대한 시각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상법이 기업집단을 현실에 맞게 규율하지 못하게 된 점은 단순히 법정책적 문제가 아닌 역사적 그리고 경제적 이유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점을 개선 시키려 노력해 왔으나 현재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에 논의 되고 있는 기업집단 지배구조에 대한 여러 가지 보완적 법제도의 입법화 노력은 비록 개별 법인격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그 실질은 기업집단을 통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공정한 관행들을 규율하고자 하는 것이며 이러한 본질은 공정거래법이나 금융지주회사법과 같은 여러 규제법들에 있어서도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업집단의 현실을 정면으로 인정한 단일한 기업집단법제의 존재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집단의 불법적인 경영 관행 전반에 대하여 견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성격의 모든 법률을 실질적인 기업집단법제로 파악하여 그 방향성을 고민하는 방식으로 논의 방향이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 또한 이러한 성격의 실질적인 기업집단법제에는 새로운 기술로 변화하는 국제적 수준의 규제의 방향성과 판례를 통한 적극적인 법 형성 기능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Ⅵ. 맺음말
다른 나라에 비해서 훨씬 더 경제력 집중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에도 여전히 일반적인 기업집단법제를 도입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도 개별 상황에 맞는 규율을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공정거래법 및 규제법을 이용한 특이한 방식의 기업집단 규제 방식을 운영하고 있으며 기업지배구조와 이해 상충을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회사법(상법)의 경우에는 오히려 개별 기업의 법인격을 전제로 한 법제를 운영하고 있어 현실과 제도 간의 부정합성 문제가 큰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기업집단과 관련한 세계 경제 상황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현실에서 다른 선진국에서 통용되는 환경이나 새로운 기술들과 관련한 여러 규칙과 법제의 영향력이 거세지고 있는 점 또한 기존 규제의 방식과의 부정합성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러한 측면은 독일에서 금융 분야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콘체른법의 새로운 해석의 시도가 일반적인 기업집단법제의 제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우리나라에 있어서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현재의 독일의 기업집단법제인 콘체른법의 형태로 발전된 방식을 살펴보자면 원래는 일반법적인 형태가 아닌 세법이나 자본시장법과 같은 특수한 분야에서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시작된 개별 조항의 형태가 점점 더 발전하여 현재의 형태가 된 것이다.56) 이러한 전제에서 우리의 경우에도 기업집단의 법인격을 전제로 한 단일법인 기업집단법제를 고집할 필요 없이 우리 현실에 맞는 실질적인 기업집단법제를 운영하고 그 전체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현실과의 부정합성을 해결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결합기업의 불합리한 경영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법률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도 새로운 개정안들이 속속 제안되고 있어 각 개별경제 분야의 특수 개별업법에서부터 필요에 따라 법제를 정비해 나가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방식에는 최근 급속히 변화하는 신기술 산업과 관련한 새로운 규제 방안 및 판례의 법 형성 기능까지 모두 고려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러한 실질적 기업집단법제 운영의 방향성 또한 현실과의 정합성을 반영하여 지배주주의 책임 강화를 통한 소수 보호의 고려라는 점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