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한국은 2009년 온실가스를 2020년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하기로 하고 2014년 ‘2020 로드맵’을 수립했다. 그러나 2009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감축목표 달성에 실패하였다.1) 이후 정부는 파리협정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목표를 설정했다. 파리협정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협약으로, 당사국들은 자발적 기여(NDCS)2)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5년마다 갱신하며, 점진적으로 강화된 목표를 제출하여야 한다.3) 위 목표는 2021년 문재인 정부가 설정한 것으로, 윤석열 정부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2021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679.6백만 톤으로, 전년 대비 오히려 3.5% 증가하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회복과 함께 배출량이 다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기후정책은 ‘매우 불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모든 국가가 한국과 같은 배출량을 유지할 경우 2030년 최소 3℃ 이상, 최대 4℃의 온도 상승 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4) 파리협정의 온도상승 제한 목표인 1.5℃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이다. 이러한 온실가스 감축은 에너지 전환정책, 특히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OECD 국가 중 한국은 전력 구성에서 가장 낮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기록하고 있다.5) 이처럼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거세지는 반면,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정책은 사실상 목표달성에 불충분한 상황이다. 최근 헌법재판소도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퍼센트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하도록 규정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여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현행 법령이 기후위기에 대한 보호조치로서 최소한의 성격도 갖추지 못하였다고 확인한 바 있다.6)
대상판결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문제삼은 우리나라 최초의 기후소송으로 볼 수 있는 사건으로, 지역 주민인 원고들은 석탄화력발전소의 발전사업자에 대한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승인처분을 다투었다. 사안은 상고 없이 2021. 7. 14. 대상판결로 확정되었는데, 제1심 법원과 대상판결의 제2심 법원은 발전소 건설이 온실가스 증가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전제하면서도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보아 판단에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고 있다. 만약 이 사건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되면 연간 1300만t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정부가 2022년부터 2년간 전력 부분에서 감축한 전체 감축량보다도 300만t 많다.7) 정부가 현재 설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석탄화력발전소를 추가적으로 건설하는 것은 2030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달성되지 않을 가능성을 높일 개연성이 상당한 것이다. 이에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향후 온실가스 배출에 미칠 파급효를 우려하여, 본 판결이 기각된 이후에도 많은 환경단체들이 삼척 석탄화력발전소 운용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 화력발전소는 2023년 10월 완공되어 가동을 예정하였으나 상업성, 환경상 영향 등의 이유로 2024년 4월로 연기되었다가,8) 2024년 5월 17일 가동을 진행하고 있다.9) 발전소는 연간 570t의 초미세먼지도 배출하는데, 삼척시청을 포함한 시내 중심부와 불과 5㎞ 떨어져 있어 인근 주민들의 환경상 이익이 침해될 개연성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대상판결에서 법원은 행정부의 정책적 판단을 존중하는 기존 판례의 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러한 법원의 소극적 태도는 사법부가 환경 문제, 특히 기후소송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논의의 시발점이 된다. 사법부가 환경 보호와 관련된 쟁점에서 더 적극적인 심사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는지, 아니면 기존의 소극적인 접근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법적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한편 환경영향평가는 환경오염이 예상되는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환경상 위해의 가능성을 평가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유일한 사전절차이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주민설명회의 미이행이 절차상 하자를 구성하는지를 소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환경영향평가절차의 중요성을 살펴보고, 관련 판례를 토대로 환경영향평가의 하자에 대한 사법심사 강도의 문제를 논한다. 즉 대상판결을 ① 행정부의 정책재량을 지나치게 존중하고 있다는 점, ② 절차상 하자를 보다 엄격하게 심사하지 않은 점의 두 가지 관점에서 비판하고자 한다.
Ⅱ. 대상판결의 개요
피고보조참가인인 A 주식회사10)(이하 ‘참가인’)의 전신인 B 주식회사는 2013. 6. 10. 피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여 발전사업을 하는 내용의 발전사업허가를 신청하였다. 피고는 2013. 7. 5. B 주식회사에게 구 전기사업법(2014. 5. 20. 법률 제1261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7조11)에 따라 발전사업허가(이하 ‘선행처분’)를 하였다. 이후 소외 회사 간 주식취득 및 상호변경 등의 과정을 거쳐 선행처분의 수허가자는 참가인이 되었다.
참가인은 선행처분에 의해 허가를 받은 발전사업자로서 전원개발사업(이하 ‘이 사건 사업’) 실시계획을 수립한 다음, 2015. 8. 17. 전원개발촉진법 제5조 제1항12)에 따라 실시계획의 승인을 신청하였다. 피고는 참가인의 실시계획 승인신청을 심사하기 위해 2018. 1. 8. 전원개발사업 추진위원회를 개최하였고, 위원회는 ① 정부 미세먼지 관리대책에 부합하는 대기질 관리, ② 지방자치단체, 지역주민, 환경단체 등과의 충분한 협의 시행, ③ 해역이용협의 과정에서 제시된 해안침식 저감대책을 철저히 이행하고 사후 모니터링을 통해 해안침식 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이행 등을 전제로 전원개발 실시계획을 승인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피고는 2018. 1. 18. 전원개발촉진법 제5조에 따라 참가인이 수립한 이 사건 사업 실시계획을 승인(이하 ‘이 사건 처분’)하면서 ‘이 사건 사업의 시행 시에는 전원개발사업 추진위원회의 심의 결과 및 관계 기관 제시 의견에 대한 조치계획을 철저히 이행하고 진행 상황에 대해 피고 및 관계 기관에 주기적으로 통보’하도록 하였다.
피고와 참가인은 원고들의 원고적격이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원고들이 주장하는 환경상 이익이 그 처분의 근거 법규 또는 관련 법규에 의하여 개별적·직접적·구체적으로 보호되는 이익으로 볼 수 없으므로, 원고들에게는 이 사건 처분을 다툴 원고적격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원고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① 선행처분은 무효에 해당하거나 소급하여 취소되었으므로 후행처분인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② 이 사건 처분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되면 녹색성장법 및 시행령에서 설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음이 예상된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녹색성장법에 위배되어 위법하다.
③ 이 사건 처분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되면 다량의 미세먼지를 배출할 것이 예상된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2017. 9. 26. 발표한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에 반하는 것으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④ 이 사건 처분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사업지구 인근 H 해변의 연안침식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H 해변은 우리나라 해안 중 바다모래가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2015년 연안관리법에 근거하여 연안침식관리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연안관리법 제20조의5 제1항에 따라 연안침식관리구역에서는 건축물 및 그밖의 공작물의 신축, 증축과 같이 연안침식을 가속화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사건 발전소의 건설이 연안관리법 제20조의5 제3항에 규정된 예외에 해당하지도 않기 때문에 이 사건 처분은 연안관리법에 배치되어 위법하다.
⑤ 공유수면의 점용·사용허가와 관련하여 해양수산부장관은 해역이용협의를 하기 전에 D 시장에게 해양이용협의서의 검토를 의뢰하였고, 이에 D 시장은 동의의견을 밝혔기에 해양수산부장관이 피고와의 협의에 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D 시장의 동의의견은 지역주민과의 상의 없이 작성된 S 지역 T 이장의 동의서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D 시장의 동의의견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해양수산부장관과 피고 사이의 협의도 위법하다. 또한 참가인이 공유수면 점용·사용허가를 받기 위해 기존 공유수면 점용·사용 권리자가 U임을 전제로 U의 동의서를 제출하였으나 U는 기존 권리자가 아니었다. 따라서 공유수면 점용·사용허가는 위법하고, 그에 기초한 이 사건 처분 역시 위법하다.
⑥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에는 환경영향평가서가 첨부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 환경영향평가는 ㉮ 대상지역에 포함되는 O시에서 주민설명회가 개최되지 않아 O시 주민들에 대한 의견수렴절차가 진행되지 않았고, ㉯ 참가인은 환경부장관으로부터 대기질 및 위생·보건 분야와 해안침식 저감방안에 관한 보완요청을 받았음에도 제대로 된 보완을 거치지 않았고, ㉰ 지형·지질 분야에 대해서는 현지조사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거나 부실하게 시행된 현장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하여 해당 부분이 매우 부실하고 거짓된 내용으로 작성되었다. 따라서 이 사건 환경영향평가서는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둔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없을 수준의 부실함을 내재하고 있어 중대한 내용상 하자가 존재한다. 이는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않은 것과 동일하므로 환경영향평가없이 수립된 실시계획에 기초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피고의 주장에 대하여, 제1심 법원은 원고들의 원고적격을 인정하였다. 원고들은 이 사건 실시계획에 포함된 환경영향평가의 대상지역 내에 거주하는 자들로서, 이 사건 사업으로 인하여 환경상 침해를 받으리라고 예상되는 영향권 범위 내의 주민들에 해당하여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하여 직접적이고 중대한 환경피해를 입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한 환경상 이익은 주민 개개인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보호되는 직접적·구체적인 이익이며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에 해당한다. 따라서 제1심 법원은 환경영향평가구역 내에 거주하는 원고들의 원고적격을 인정하였다.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제1심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① 선행처분에 발전사업허가의 요건과 관련된 하자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고, 일부 하자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하자가 중대·명백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② 이 사건 처분에 따라 발전소가 건설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이 사건 처분일로부터 12년이 경과한 이후인 2030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발전소 건설로 인하여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 달성이 불가능하게 되었으므로 이 사건 처분이 녹색성장법에 위반된다는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없다.
③ 원고들은 위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의 법률적 근거에 대해 아무런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위 종합대책에 반하여 이 사건 처분이 위법하다는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없다.
④ 연안관리법 제20조의5 제3항은 “공익상 또는 군사상 불가피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등으로서 해양수산부장관 등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같은 조 제1항 및 제2항의 행위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해양수산부장관은 위 연안침식관리구역 중 완충관리구역에 대해서는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전원설비16)를 설치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위 행위제한 적용을 배제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고시한 바 있다. 따라서 위 연안침식관리구역에 이 사건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연안관리법상 행위제한의 적용이 배제되므로, 발전소 건설을 승인한 이 사건 처분은 연안관리법에 위배되지 않으므로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없다.
⑤ D 시장이 해양수산부장관의 검토의뢰에 의견을 밝히기 위하여 모든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소외 U의 동의는 이 사건 처분에 따라 의제되는 공유수면 점용·사용허가를 위법하게 하는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⑥ 참가인이 O시에서는 주민설명회를 개최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O시에서 환경영향평가서의 초안을 공람하였다는 점, D시 및 O시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견수렴절차를 진행하였다는 점, D시에서 개최되는 주민설명회에 O시 주민들도 상당수 참석하였다는 점, 이 사건 처분의 환경영향평가가 미치는 지역은 주로 D시이며 D시와 O시가 바로 인접하여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환경영향평가절차 중 오직 O시에서의 주민설명회를 개최하지 않은 하자는 환경영향평가제도를 둔 입법취지를 달성하기 어려울 정도의 하자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없다.
대상판결은 제1심 법원의 판단요지를 인용하되, 위 ⑥에서 원고들이 주장한 환경영향평가절차의 하자를 절차상 하자로도 볼 수 없으며 설령 절차상 하자로 보더라도 그러한 위반의 정도가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입법취지를 달성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추가하여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하였다.17)
Ⅲ. 기후소송에서 사법부의 역할과 심사범위
기후소송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거나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제기되는 소송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기후소송은 환경법적인 관점에서 기후 변화의 원인이나 영향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법적 소송,18) 인권적인 관점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생명권·건강권·주거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주장을 전개하는 소송,19) 경제적인 관점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손해를 보상받기 위해 제기되는 소송(기업의 배출행위가 경제적 손해를 초래하였다는 주장),20) 정책 변화를 촉구하거나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기되는 소송21) 등 관점과 목적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후소송에서 고려할 이해관계의 다양성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특히 공공인식을 제고하고 정책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기되는 기후소송을 ‘전략적 기후소송(strategic climate litigation)’이라 한다. 전략적 기후소송은 단순한 계쟁사건의 해결을 넘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책임촉구, 규제촉진, 대중의 인식 전환 등 광범위한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법적 선례를 만드는 데에 목표를 둔다. 전략적 기후소송은 그 자체로 환경운동의 일부로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나 이행방법 등을 규정하지 않은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헌법불합치 결정),22) 네덜란드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불충분하게 설정하여 국민의 생명권을 비롯한 기본권이 침해되었다고 판단한 Urgenda 사건,23) 미국 청소년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불충분한 정책을 다툰 Juliana 사건,24) 네덜란드 법원이 기업에 대한 기후변화 책임을 물어 2030년까지 전세계 배출량을 45% 줄일 것을 명한 Royal Dutch Shell 사건25)은 전략적 기후소송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상판결 역시 기후위기와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 석탄화력발전소의 위해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플랜1.5를 비롯한 환경단체와 관련 변호사들이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주도한 소송이다.
이러한 전략적 기후소송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연방기후보호법에 관한 독일의 Neubauer et al. v. Germany 사건26)에서 연방헌법재판소가 미래 세대의 기본권 침해 등을 확인하고 정부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기후 목표를 설정할 것을 명하자, 판결의 당사자인 독일 정부 뿐만 아니라 위 판결의 영향을 받은 유럽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판결의 취지에 맞추어 강화하고 구체화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나아가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명시하여 기후변화의 긴급성과 이에 대한 대응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독일 외의 다른 국가들 모두 기후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법적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27) 최근 탄소중립기본법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역시 기후위기가 위험상황임을 확인하고 이에 대응할 국가의 의무를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대중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반적인 소송과 다른 기후소송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피해가 미래세대를 포함한 전국민, 나아가 지구의 모든 생물체에 미치기 때문에 법원은 의사결정에 다양한 당사자의 의견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과학적 증거와 합리적인 예측이 특히 사법부의 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셋째, 기후소송은 소송당사자 및 참가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정책의 정당성을 논의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이 된다. 넷째, 기후소송은 복잡한 과학적, 기술적 증거 및 예측과 관련되어 있고, 통상 원고는 공익을 대변하는 지위에 서기 때문에 소송수행에 관련 전문가와 공익단체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에 의하여 보호되는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이 있는 경우에만 원고적격을 인정하는 현행 판례법리에 의할 때, 원고적격이 인정되는 개별 사인이 기후소송의 쟁점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논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기후변화는 특정 국가나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함께 대응하여야 할 사회문제로,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정책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통해 사회적 압력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큰 것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충분히 입법을 통해 표현되어 있다. 탄소중립기본법28)에서는 기후위기를 “기후변화가 극단적인 날씨뿐만 아니라 물 부족, 식량 부족, 해양산성화, 해수면 상승, 생태계 붕괴 등 인류 문명에 회복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하여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한” 상태로 정의하고(제2조 제2호), 이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심각한 위기 의식을 담고 있다. 탄소중립기본법은 “기후위기의 심각한 영향을 예방하기 위하여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위기 적응대책을 강화하고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환경적·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여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생태계와 기후체계를 보호하며 국제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기후위기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법자의 분명한 의사를 담아내고 있다(제1조).
그러나 법원은 지금까지의 환경소송에서, 행정부의 정책재량을 폭넓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2016두55490 판결에서 대법원은 “환경의 훼손이나 오염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개발행위에 대한 행정청의 허가와 관련하여 재량권의 일탈·남용 여부를 심사할 때는 … ‘환경오염 발생 우려’와 같이 장래에 발생할 불확실한 상황과 파급효과에 대한 예측이 필요한 요건에 관한 행정청의 재량적 판단은 내용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여하였거나 상반되는 이익이나 가치를 대비해 볼 때 형평이나 비례의 원칙에 뚜렷하게 배치되는 등의 사정이 없는 한 폭넓게 존중될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행정청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29) 물론 법원은 위 판례에서 환경오염 발생 우려를 이유로 원고의 건축허가신청이 개발행위 허가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다고 보아 이를 반려한 피고의 처분에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없다고 보아 환경오염을 방지하고자 한 행정청의 판단을 존중하였다. 소극적 심사를 통해 행정부의 환경오염 방지라는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행정부의 정책적 기조에 따라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행정부의 환경보호적 정책이 정권교체 등의 이유로 폐기된다면, 법원은 환경위기를 가속화할 수도 있는 행정부의 판단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대상판결에서 행정부가 기후변화 및 환경오염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였음에도, 법원은 그러한 행정부의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국가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행정부 고유의 권한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후변화는 일반적인 환경오염문제와는 달리 특정 집단이나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국가 전체가 일관된 정책기조 하에서 장기간 노력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한 점에서, 행정부의 판단을 무조건적으로 존중하는 법원의 태도는 기후위기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행정부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기후문제에서 한발짝 물러나있는 법원의 태도가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타당한지에 대해 이하에서 대상판결에 대한 검토를 통해 살펴본다.
대상판결과 대상판결의 1심은 이 사건 처분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 달성을 저해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하면서도 “이 사건 처분에 따라 이 사건 발전소가 건설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이 사건 처분일로부터 약 12년이나 경과한 이후인 2030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그 당시 국가경제, 전력수급상황 등을 반영하여 수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경제 및 전력수급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계획이 수정될 수도 있을 것이나, 계획의 수정 필요성이 발생하였다는 사정으로 인하여 당초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소급하여 위법하다고 평가될 수는 없” 다고 소극적으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단에 전제된 법원의 논리와 태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지킬 것이고, 지키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는다.
둘째,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쓸 수 있는 수단은 다양하고 이러한 수단의 선택에는 재량이 있으므로 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즉 정부는 석탄발전소를 새로 짓더라도 재생에너지를 늘리거나 다른 방법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
셋째,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반할 가능성은 있지만) 국가경제 및 전력수급상황 등을 반영하여 수정될 필요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
법원은 행정부의 재량 및 처분시에 존재하지 않은 다양한 정책변경의 가능성을 들어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결정된 석탄화력발전 및 이 사건 처분이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저해한다는 인과관계를 부인한 것이다. 법원의 이러한 태도는 불확실한 미래의 정책에 과도한 신뢰를 부여하였다는 점, 재량권을 무비판적으로 존중하였다는 점, 온실가스 배출 증가 현황과 과학적 증거에 대한 구체적 평가가 부족하다는 점,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점에서 공정성과 정당성을 확보한 문제해결이라고 보기 어렵다.
관련하여 하버마스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의 참여와 합리적 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통합과 공정성을 위한 중요한 개념으로 ‘공론장’을 제시하였다.30) 공론장은 기후변화와 같은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하는 민주적 공간으로,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공적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에 하버마스가 제시한 공론장 이론을 살펴보고, 공론장으로서 법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대상판결이 공론장으로서의 법원의 역할에 충실하였는지를 검토해 본다.
하버마스의 공론장은 사적의견이 공적 의견으로 변환되는 공간으로, “일상적 의사소통의 실천 자체에 담겨 있는 이성의 잠재력을 발굴하기 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31) 이곳에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은 자유롭게 토론하고 합리적인 합의를 도출한다. 공론장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은 상호 이해와 합의를 목표로 하며,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공론장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개방성). 공론장은 물리적·사회적·경제적 장벽 없이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정보의 투명성과 접근성을 포함한다. 나아가 참여자들은 억압이나 검열 없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이는 법적·사회적·문화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32)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배경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포용적인 공간이다. 개방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로, 공론장에서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통합하여 더 나은 결정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근거에 기반해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합리성). 이는 논의가 감정이나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논의는 합리적 사고와 논리적 근거에 기반하여야 하고 과학적 증거와 사실에 근거한 주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통해 공론장은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해결적을 도출할 수 있다. 한편 참여자들은 비판적 사고를 통해 서로의 주장을 검토하고,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며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협력하게 된다. 이를 통해 공론장에서는 논의의 질을 높이고 결정의 정당성을 강화한다.33) 합리성은 공론장의 신뢰성을 유지하고,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에 근거한 민주적 결정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한다.
셋째, 공론장은 시민들이 공적 문제에 대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곳이다(참여적 민주주의). 시민들은 공론장에서 공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이는 단순히 의견을 제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포함한다.34) 이처럼 공론장은 시민들이 공적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해결잭을 모색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이는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나아가 참여자들은 협력과 공감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고,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합의를 도출한다.35) 이러한 참여적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36)
개방성, 합리성, 참여적 민주주의는 사적의견이 공적의견으로 변환되는 ‘공론장’의 필수적인 요소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공론장에서 사회적 불평등, 인권 침해, 환경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하게 된다. 이를 통해 공론장은 사회적 변화와 개혁을 촉진할 수 있고, 정부와 정치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여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다.
공론장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오늘날 법원의 역할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즉 법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구현된 공론장의 중요한 요소이자 대표적인 모습이다. 특히 민주적 정당성이 3권분립의 다른 축인 행정부 및 입법부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법원에 있어, 공론장으로서의 성격은 법원이 입법부 및 행정부와 비슷한 위상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에 공론장 이론에 비추어 본 법원의 의무와 역할을 살펴본다.37)
첫째,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 법적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하고, 법적 논의는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여야 한다(개방성). 공개재판은 법원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공정한 재판 절차를 확보하는 데 기여하는 개방성의 대표적인 요소이다. 이러한 개방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로, 공론장에서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통합하여 더 나은 결정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한다. 관련하여 법원은 법적 담론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고려하여야 하는데, 특히 기후소송에서는 이러한 요소가 두드러지게 된다. 기후변화의 피해는 원고나 청구인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를 포함한38) 전 인류와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감수하게 되며, 기후소송은 경제적·인권적·사회적 등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배경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포용적인 공간이 될 때, 법원은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둘째, 법원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합리성). 법원은 원고와 피고, (헌법재판의 경우) 청구인과 이해관계인 등이 제기한 법적 논의에 대한 상호 비판적 검토를 통해 각 주장의 타당성을 평가하고,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합리성은 공론장으로서 법원의 신뢰성을 유지하고 타당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과학적 증거와 사실에 기초한 논의는 법원의 합리성에 기여하는데, 특히 기후소송에서는 특히 기후변화의 예측과 인과관계, 화석연료의 기여도 등 과학적 증거의 중요성이 여러 번 강조된 바 있다.39)
셋째, 사법절차를 통해 시민들은 논의를 공적이 공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고 행정의 위법을 통제하는 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참여적 민주주의, 비판적 기능). 이 과정에서 법원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며 인권침해, 환경문제 등 사회문제에 관한 문제제기 및 논의의 장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특히 법적 담론은 상호 이해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법원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사회적 규범을 명확히 하고 사회구성원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부담하여야 할 책임과 의무를 인식하고 준수하도록 하여 사회적 통합에도 기여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후소송은 시민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가장 공적인 공간에서 논의할 수 있는 수단이다. 시민들은 기후소송을 통해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고 사회적 해결책을 모색하며, 법원은 기후소송을 통해 정부와 기업이 기후변화에 대응할 것을 촉구하여 공적 문제 해결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처럼 법원이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때, 사법심사는 공정성과 정당성을 확보한 문제해결방안을 제시하여 사회통합에 기여하게 된다.
우선 법원은 미래의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지킬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하여 판단하였으나, 이는 객관적 근거가 전혀 없는 막연한 전망에 불과하다. 실제 정책의 실행 가능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현재 정책 기조와 실행능력을 고려할 때 이러한 가정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과거 및 현재의 자료에 비추어 이대로라면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2021년 한국의 온실가서 배출량은 679.6백만 톤으로, 전년 대비 오히려 3.5% 증가하였고,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기후정책은 ‘매우 불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40) 특히 OECD 국가 중 한국은 전력 구성에서 가장 낮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기록하고 있으며,41) 이 사건 처분은 국제사회의 요구에 정확히 역행하는 처분이다.
또한 법원은 행정재량을 무비판적으로 존중하여, 행정의 위법을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의견을 도외시하였다. 파리협정에 따라 탄소중립기본법에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규정하고 있고, 이러한 국제적 합의와 기후위기 대응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역시 입법을 통해 명확히 표현되어 있다. 더욱이 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이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명백하다. 법원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이나 증거 없이 정부가 다른 수단으로 배출을 줄일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이처럼 법원은 정부의 재량을 지나치게 존중한 나머지, 어떤 정책이 어떻게 시행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근거와 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재량으로 향후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할 수단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설정과 이행방식에 어느 정도의 행정재량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미래세대일수록 정치과정에 대한 참여가 자유롭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정책에는 장기적인 환경보호, 지속가능성, 미래세대의 권리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필요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후소송의 특징을 사법심사에 고려하지 않는다면, 미래세대의 권리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보장하는 법원의 공론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원고들이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이 사건 처분의 인과관계를 과학적 근거를 들어 논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 없이 원고들의 의견을 배제하였다. 이와 달리 미국 연방대법원은 Massachusetts v. EPA 사건에서 원고들의 과학적 증거에 기초한 주장을 검토 및 판단하여 온실가스 배출과 기후변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초래될 토지포락과 주의 경계선 변화 등 주정부(원고)의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바 있다.42) 이처럼 기후소송에서는 사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환경단체, 과학자 등 전문가집단의 의견과 과학적 증거를 판단에 고려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의 소극적 태도는 위와 같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과학적 증거에 기초한 심사방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관련하여 최근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입법은 미래의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하여 현재의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성격을 띠고, 미래세대일수록 민주적 정치과정에 대한 참여에 제약이 있으므로, 이러한 영역에서의 입법의무 이행에 대해서는 사법적 심사의 강도가 보다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의 변론에 출석한 청구인 한○○(12세)의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습니다.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이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유일한 행동이었습니다.’라는 진술은 이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보아 기후소송에서 사법심사의 강도를 높일 필요성을 설시하였다.43)
이처럼 대상판결은 사법심사의 범위를 소극적으로 설정하여, 행정재량을 무비판적으로 존중하고 과학적 증거에 기초한 합리적인 논의를 배제하였으며,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진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 및 환경보호의무를 도외시하였다. 정당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통합기능을 수행하는 진정한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한계를 드러낸 판결로 평가해 볼 수 있다.
Ⅳ. 환경영향평가의 하자와 사법심사
환경영향평가는 환경보호의 핵심 도구로서, 대규모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이를 통해 환경보호를 도모하는 절차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환경영향평가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을 수립할 때에 환경보전계획과의 부합 여부 확인 및 대안의 설정·분석 등을 통하여 환경적 측면에서 해당 계획의 적정성 및 입지의 타당성 등을 검토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 환경보전이 필요한 지역이나 난개발이 우려되어 계획적 개발이 필요한 지역에서 개발사업을 시행할 때에 입지의 타당성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조사·예측·평가하여 환경보전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실시계획·시행계획 등의 허가·인가·승인·면허 또는 결정 등을 할 때에 해당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조사·예측·평가하여 해로운 환경영향을 피하거나 제거 또는 감소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일반적인 환경영향평가로 구별하여 정의할 수 있다(환경영향평가법 제2조).
1969년 미국의 국가환경정책법(NEPA)에서 최초로 환경영향평가제도가 도입되었고, 1977년 환경보전법을 제정을 통해 한국에도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시행되었다. 현재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 또는 사업을 수립·시행할 때에 해당 계획과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예측·평가하고 환경보전방안 등을 마련하도록 하여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건강하고 쾌적한 국민생활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환경영향평가법에서 관련 내용을 규율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기후소송을 포함한 환경소송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사업의 환경적 타당성을 검토하고, 위와 같은 객관적 결과가 법원이 사업 허가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환경영향평가는 지역주민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 등의 절차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는데(환경영향평가법 제13조), 이를 통해 사업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며, 주민들이 절차를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환경영향평가는 사업의 환경적 영향을 사전에 예측하고 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환경 보호의 실효성 또한 담보한다. 한편 환경영향평가의 적절성 여부는 사법부의 검토대상이 되는데, 법원은 환경영향평가가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었는지 등을 검토하여, 사업 허가의 법적 타당성을 판단한다. 결과적으로 환경영향평가는 환경 보호의 실질적인 도구로 기능하게 된다. 이처럼 환경영향평가는 기후소송과 환경소송에서 환경 보호를 위한 법적, 사회적, 행정적 도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사법부가 환경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법적 분쟁에서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기여한다.
다만 환경영향평가는 사업계획 수립시에 환경상 위해가 발생하기 이전에 환경보전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사전적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장래 해당 사업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예측 및 평가하고,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의 절차를 통해 사업의 계속을 결정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제도인 것이다. 따라서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실효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절차 그 자체를 거쳤다는 것’에만 의의를 둘 것이 아니라, 위 절차의 내용이 실제 사업계획에 반영되고 합리적인 대안 도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 및 운용하여야 할 필요성이 높다.
환경영향평가는 사업계획의 승인 전에 의견을 수렴하고 사업계획승인 등으로 인한 영향이 환경에 미칠 위해를 제거하거나 경감시키는 절차로, 사전적 절차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갖고 있다. 이러한 환경영향평가의 하자는 내용상 하자와 절차상 하자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용상 하자는 통상 환경영향평가 자체가 누락되어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않거나 조사가 불충분하거나 검토가 불충분하는 등44) 그 내용에 부실이 있었던 경우로 나타난다. 반면 환경영향평가의 내용이 아니라 개별 절차를 구성하는 의견수렴절차, 환경부장관과의 협의 등이 누락되었거나 부실한 경우는 절차상 하자로 분류된다. 환경영향평가는 그 자체가 사업계획승인에 앞선 절차로, 의견수렴과 환경부장관과의 협의 등이 모두 환경영향평가의 절차 자체를 구성하는 세부 절차에 해당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에 통상 본처분(사업계획승인처분)과 절차가 명확히 구별되어 본처분에 앞서 행정절차법상 사전통지, 의견청취 등의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경우 절차상 하자가 문제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45)
행정행위의 절차에 하자가 있는 경우, 행정행위가 위법하다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하여 오랜 기간 견해의 대립이 존재하였다. 소극설은 절차상 하자만으로는 처분을 취소할 수 없다는 견해로, 절차하자의 독자적 위법성을 부인한다.46) 실체적으로 적법할 경우 절차 하자를 이유로 처분을 취소하는 것은 다시 무용한 절차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여 행정의 비효율을 가져오고, 소송경제에도 반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절차가 다시 반복된다면 국민의 권리구제 측면에서도 절차 하자를 원인으로 하는 취소는 실익이 없다고 본다.
반면 적극설은 절차 하자를 행정행위의 독자적인 위법사유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로, 실체적 하자가 존재하는지 또는 실체적 하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와 무관하게 절차 하자 그 자체적 독자적인 위법사유가 된다고 한다.47) 적극설은 절차 준수를 담보하기 위해서 절차 하자를 독자적인 취소사유로 볼 필요가 있다는 점, 기속행위라 하더라도 부관, 사실판단 등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다시 적법한 절차를 거쳐 처분을 하는 경우 행정청이 반드시 종전과 동일한 결정에 이르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 행정소송법 제30조 제3항은 절차위반이 취소사유가 된다는 점을 전제한 규정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한다.
한편 기속행위와 재량행위를 나누어 달리 논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48) 이 견해에 의하면 재량행위의 경우 행정청에 독자적인 판단권이 인정되고 사실관계를 달리 파악하게 되는 경우 기존과 다른 처분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절차하자의 독자적 위법성이 당연히 인정된다고 한다. 반면 기속행위의 경우 절차상 하자를 시정하여 다시 적법한 절차를 거쳐 처분을 한다면 결국 동일한 처분에 이를 것이므로 절차하자의 독자성 문제는 기속행위에 한하여 문제된다고 한다.
판례는 원칙적으로 절차 하자를 독자적인 위법사유로 인정한다(적극설). 대법원은 재량행위인 영업정지 등 처분에 관하여 행정청이 식품위생법상 청문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절차적 요건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 처분사유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영업정지 등 처분에 취소사유가 있다고 보았고,49) 기속행위인 과세처분에 관하여 세액산출 근거를 고지하지 않은 절차하자가 있었던 경우 과세처분은 위법하여 취소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하였다.50)
다만 최근 판례는 절차하자만을 원인으로 취소를 인정하기보다는 절차 위반으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절차적 상당성이 상실되었는지를 심리하여 절차하자의 위법성을 인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징계처분의 절차하자가 문제된 사안에서, 대법원은 “행정청이 처분절차에서 관계법령의 절차 규정을 위반하여 절차적 정당성이 상실된 경우에는 해당 처분은 위법하고 원칙적으로 취소하여야 한다. 다만 처분상대방이나 관계인의 의견진술권이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으로 지장이 초래되었다고 볼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절차 규정 위반으로 인하여 처분절차의 절차적 정당성이 상실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해당 처분을 취소할 것은 아니”라고 보아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초래되었는지를 기준으로 그 위법성을 판단하고 있다.51) 이는 절차 준수를 담보하면서도 무용한 절차의 반복을 피하여 소송경제와의 균형을 찾기 위한 것이다.
생각건대, 절차의 법적구속력을 강화하고 준수를 담보하기 위해 절차하자의 독자적 위법성을 인정할 필요성이 높다. 더욱이 법령의 절차를 위반한 행정행위는 원칙적으로 위법하다고 보는 것이 행정의 법률적합성 원칙에도 부합한다. 한편 일괄하여 모든 절차하자에 대한 위법성을 인정한다면 소송경제에 반하여 무용한 절차를 반복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최근 판례와 같이 취소사유의 판단을 소송경제의 관점에서 적절히 규제하여야 한다는 견해도 일응 수긍할만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는 ‘무용한 절차 반복’이 당연히 예상되는 상황에 국한되어야 하는 것으로, 행정의 법률적합성의 원칙 및 국민의 권리구제의 관점을 고려한다면 어디까지나 원칙에 대한 예외로 보아야 하고 이를 넓게 볼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절차하자로 인하여 절차를 규정한 입법취지에 반하거나 취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 경우, 관계인의 의견진술권이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으로 지장을 초래한 경우 등에는 입법자의 의사에 비추어 절차하자가 행정행위의 위법사유를 구성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다.
환경영향평가법상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규정되어있는 사업에 대하여 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승인처분이 내려진 경우, 그러한 승인처분은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명백한 하자에 해당하여 당연무효라고 보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태도이다.52) 문제가 되는 것은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게 이루어졌거나 사실과 다르게 이루어졌다는 등의 내용부실의 경우이다. 내용이 부실한 경우에 관하여, 판례는 일단 환경영향평가를 거쳤다면 그 부실의 정도가 환경영향평가제도를 둔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없을 정도인지를 기준으로 처분의 위법사유를 판단한다. 다만 실무상 입법 취지를 형해화할 정도의 위법이라고 평가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이 경부고속철도 서울차량기지 정비창 건설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하였는데 해당 환경영향평가서의 내용에 침수피해에 대한 대책부분이 누락되어 있는 등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사안에서, 대법원은 “비록 그 환경영향평가의 내용이 다소 부실하다 하더라도, 그 부실의 정도가 환경영향평가제도를 둔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없을 정도이어서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아니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정도의 것이 아닌 이상 그 부실은 당해 승인 등 처분에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하나의 요소로 됨에 그칠 뿐, 그 부실로 인하여 당연히 당해 승인 등 처분이 위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시하였다.53) 또한 부실의 정도가 위와 같은 정도에 이르지 않은 경우에는 부실로 인하여 당해 처분에 재량권의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는지 등을 심사하여 결과에 따라 당해 처분의 적법 여부를 판단한 바 있다.54)
절차상 하자와 관련하여, 환경영향평가 시행 시 필요한 절차인 의견수렴, 주민설명회 등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부실하게 이루어진 경우, 법령에 따라 일단 행정부장관과 협의를 거쳤지만 행정부장관의 의사에 반하는 처분을 한 경우 등이 문제된다. 판례는 법적 성격이나 개별 구체적 사안에 따라 달리 판단하는 것으로 보이나, 절차상 하자의 위법을 사업계획승인처분의 하자로 인정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대법원은 국립공원 관리청이 국립공원 집단시설지구개발사업의 시설물기본설계 변경승인처분과 관련하여 환경부장관의 환경영향평가 의견에 반하는 처분을 한 사안에서, “국립공원 관리청이 국립공원 집단시설지구개발사업과 관련하여 그 시설물기본설계 변경승인처분을 함에 있어서 환경부장관과의 협의를 거친 이상, 환경영향평가서의 내용이 환경영향평가제도를 둔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심히 부실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원관리청이 환경부장관의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의견에 반하는 처분을 하였다고 하여 그 처분이 위법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보아 협의를 거치기만 하였다면 절차 위법이 없다고 보았다.55) 대상판결에서도 O시에서 주민설명회를 개최하지 않은 절차 하자가 존재하였으나, 대상판결은 환경영향평가제도를 둔 입법취지를 달성하기 어려울 정도의 하자로 보기 어렵다고 보아 이를 위법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와 달리 대상지역 주민들 중 일부 주민들에 대한 의견수렴절차가 누락된 경우 이러한 하자가 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확인한 뒤 사정판결을 내린 하급심 판례도 존재한다. 군산화력발전소 부지에 건립하는 복합화력발전소 공사계획 인가처분에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에 포함되는 서천군 주민들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온배수의 영향에 관한 예측의 충실성이 떨어지는 등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게 이루어진 사안에서, 서울행정법원은 환경영형평가 대상지역 주민들 중에서 일부 주민들의 의견수렴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환경영향평가는 위법하며 이에 기한 행정처분은 당연무효사유에 해당하지는 않으나 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다만 처분을 취소하는 것이 공공복리에 반한다고 보아 사정판결을 하였다).56) 위 사건에서 서울행정법원은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에 포함되는 서천군 주민들의 의견수렴 절차가 누락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군산군 주민들에 대한 절차는 시행되었고 서천군이 환경영향평가구역 내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명백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법원은 의견수렴절차의 누락이 당연무효사유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취소사유에는 해당한다고 보았는데, 일부 주민에 대한 의견수렴절차가 누락되었음에도 취소사유조차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대상판결 법원의 태도와는 상반된다.
환경영향평가법상 환경영향평가제도는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청취하고, 사전에 환경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럼에도 법원은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발생한 하자를 심사함에 있어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법원은 환경영향평가가 실제로 시행되지 않거나 시행되지 않은 것과 동일하게 볼 만한 명백한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당연무효사유에 해당하여 처분이 무효에 해당함을 인정하지만, 환경영향평가제도를 거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정도의 부실에 해당하지 않거나 일부 주민에 대한 의견수렴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의 절차적 하자에 대해서는 대부분 처분의 위법사유로 보지 않고 있다(또는 사정판결을 내리는 등 처분의 취소를 통한 효력 부인에 소극적이다.
이러한 태도는 대상판결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상판결에서 법원은 환경영향평가구역 내 일부 주민들에 대한 주민설명회가 개최되지 않은 하자는 중대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나아가 그와 같은 절차위반의 정도가 환경영향평가제도를 둔 입법취지를 달성할 수 없을 정도의 하자로는 도저히 볼 수 없다고 판시하여, 주민에 대한 의견수렴절차가 진행되지 않은 사실만으로 처분이 위법하지는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였다.57) 이는 환경영향평가제도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태도로 타당하지 않다.58)
첫째, 입법자는 환경영향평가서의 부실작성에 대하여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므로(제76조 제3항 제3호), 위와 같은 입법자의 의도를 고려하면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에 기초한 승인 결정 등에는 처분의 위법사유를 이루는 하자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환경영향평가서의 오류나 의도적 부실작성이 형사벌 및 행정벌의 대상으로 입법자는 명백히 그 위법성을 인정하고 있는데, 그에 터잡아 이루어진 각종 승인처분이 위법하지 않다는 것은 모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59)
둘째, 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정도의 부실을 입증하는 것은 기후소송의 특성상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하여 불리한 위치에 놓인 원고에게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며, 설령 이를 입증하였다 하더라도 부실의 정도가 조금이라도 약한 경우에는 위법사유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 이는 ‘환경부장관이 검토하였다는 이유로 더 이상 사법심사가 필요없다는 사법부의 심사포기선언과 다름없다.’60) 환경영향평가에서 발생한 하자에 대한 법원의 적극적인 심사태도가 필요하다.
Ⅶ. 결론
최근 독일에서는 미래세대의 기본권이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해 인정되었고, 한국에서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한 헌법불합치가 선고되었다. 그러나 환경상 위해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과 법원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는 사회적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은 사법심사의 범위를 소극적으로 설정하여 행정재량을 무비판적으로 존중하고 과학적 증거에 기초한 합리적인 논의를 배제하였으며,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진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 및 환경보호의무를 도외시하였다. 정당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통합기능을 수행하는 진정한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한계를 드러낸 판결로 평가해 볼 수 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환경영향평가의 절차적 하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하자가 취소사유에 이르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는 환경영향평가제도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태도로 수긍하기 어렵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법원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