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자율주행이란 센서, 카메라, 레이더, LiDAR, GPS 및 차량 주변 환경을 실시간으로 해석하고 반응하는 인공지능의 정교한 알고리즘의 조합을 통해 사람의 개입 없이 차량이 운행될 수 있도록 하는 기술과 시스템을 말한다. 자율주행은 일반적으로 미국 자동차공학회(Society of Automated Engineers, SAE) 기준에 따라 단계별로 구분한다. 한국 정부는 2027년까지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고, 2035년에는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신차 보급률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모빌리티 혁신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으나, 자율주행 기술 격차로 인해 시범구역 내에서도 특정 노선으로만 운행이 가능한 시범사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자율주행 산업에서 후발주자였던 중국은 현재 자율주행 실현에 있어 가장 적극적인 국가로 평가된다. 자율주행기술 개발 초기에는 중국의 기술이 글로벌 수준과 상당한 격차를 보였으나,1)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과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그 격차를 빠르게 줄이고 있다. 예컨대, 2021년 중국의 바이두는 구글의 자회사인 웨이모(Waymo)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운전자 없는 로보택시 서비스를 개시하였고, 2024년 4월 베이징에서는 일반도로에서 무인 자율주행 버스의 시범 운행을 시작하였다. 2024년 5월 말 기준으로, 40개 이상의 도시에서 자율주행차의 도로주행 테스트와 시범 운행이 이루어졌고, 총 3만 2천 킬로미터 이상의 테스트 도로가 개방되었으며, 7,700장 이상의 테스트 및 시범 운행 번호판이 발급되었다.2) 한국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가 2024년 초 보고한 ‘2022년도 기술수준평가’에 따르면 자율주행으로 대표되는 첨단 모빌리티 기술에서 중국은 한국과 일본을 앞지른 상태이다.3)
중국이 자율주행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배경에는 자율주행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지원하고 있는 법정책이 크게 자리하고 있으므로 이하에서는 자율주행 관련 주요 법정책을 개관해 본다. 또한, 자율주행과 관련하여 개인정보 및 데이터 보호 문제 등 다양한 법적 논점이 있는 가운데, 중국 학계에서는 자율주행차 사고시 법적 책임의 귀속에 대한 논의가 가장 활발하다. 이는 자율주행 시대를 맞아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분야이므로 중국에서의 논의 현황을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중국의 법제와 법적 책임 귀속 논의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도출해 본다.
Ⅱ. 중국의 자율주행 관련 법과 정책
중국의 자율주행 관련 법정책을 개관하기에 앞서 자율주행 단계에 대한 기준을 살펴본다. 중국은 자율주행 단계에 대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 자동차 제조업계는 SAE 기준(SAE J3016)을 참고하고 있었다. SAE 기준은 인간 운전자가 운전의 모든 측면을 책임을 지는 레벨 0(無 자동화), 시스템이 조향 또는 가속·감속 중 하나를 지원할 수 있지만 동시에 둘 다 지원할 수는 없는 레벨 1(운전자 지원), 시스템이 조향과 가속·감속을 모두 제어할 수 있지만 인간 운전자가 계속해서 운전 환경을 모니터링해야 하는 레벨 2(부분 자동화), 시스템이 특정 조건에서 운전의 모든 측면을 처리할 수 있지만 시스템 요청 시 운전자가 이를 대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레벨 3(조건부 자동화), 특정 조건이나 환경에서 사람의 개입 없이 작동할 수 있지만, 이러한 영역 외부에서는 사람의 개입이 필요할 수 있는 레벨 4(고도 자동화), 사람의 개입 없이 모든 조건에서 차량 스스로 주행할 수 있는 레벨 5(완전 자동화)의 여섯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SAE 기준이 외국의 기술과 산업 관행을 기반으로 하여 중국의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판단하에 2021년 8월 「차량 운전 자동화 등급」4)을 발표하여 독자적인 국가표준을 마련하였다.5) 중국의 「차량 운전 자동화 등급」은 SAE 기준과 유사하게 운전 자동화를 레벨 0부터 레벨 5까지의 여섯 단계로 나누고 있다.6) SAE 기준이 레벨 0을 운전 자동화가 없는 수동 운전의 단계로 보는 것과 달리, 중국 기준은 레벨 0을 응급 보조(emergency assistance) 단계라고 하여 차선이탈 경고 시스템(LDW), 자동긴급제동장치(AEB) 등 안전 보조 장치 기능이 추가된 것을 의미한다.7) 또, SAE 기준의 레벨 0∼2는 사물·사건 감지 및 대응(Object and event detection and response, OEDR)을 운전자가 담당한다고 규정하지만, 중국은 운전자와 시스템이 OEDR를 담당한다고 규정한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를 제외하면 중국의 ‘차량 운전 자동화 등급’ 국가표준은 SAE J3016의 분류 체계와 대동소이하다. 중국의 국가표준에 따르면, 레벨 2까지는 운전 주체가 인간이며 시스템은 인간의 운전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긴급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거나 긴급 상황이 발생하려는 경우 일시적으로 운전에 개입하는 운전 보조 단계이고, 레벨 3부터를 시스템이 주도하는 자율주행으로 보고 있다. 후술하는 「선전 경제특구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 관리조례」8) 제3조는 “이 조례에서 말하는 ‘스마트 커넥티드 차량(Intelligent Connected Vehicle, ICV)9)’이란 자율주행시스템이 사람의 조작을 대체하여 도로에서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는 차량을 의미하며, 조건부 자율주행, 고도 자율주행, 완전 자율주행 세 가지 유형을 포함한다”고 규정하며, 2024년 6월 발표된 「베이징시 자율주행차 조례(의견수렴안)」10) 제2조 제2항 역시 “이 조례에서 말하는 ‘자율주행차’는 조건부 자율주행, 고도 자율주행, 완전 자율주행 기능을 가진 차량을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로교통 관련 법규들에서 자율주행시스템을 완전 자율주행시스템, 조건부 완전자율주행시스템, 부분 자율주행시스템으로 구분하고 있으며,11) 이들은 각각 SAE 기준의 레벨3, 4, 5에 해당한다.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자율주행자동차법’)에서는 자율주행시스템에 대해서는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자율주행자동차를 부분 자율주행자동차와 완전 자율주행자동차로 구분하고 있다. 부분 자율주행자동차는 제한된 조건에서 자율주행시스템으로 운행할 수 있으나 작동 한계 상황 등 필요한 경우 운전자의 개입을 요구하는 자율주행자동차를 말하며(제2조 제2항 제1호), SAE 기준의 레벨 3에 해당한다. 완전 자율주행자동차는 자율주행시스템만으로 운행할 수 있어 운전자가 없거나 사람의 개입이 필요 없는 자율주행자동차를 말하며(제2조 제2항 제2호), 적어도 SAE 기준 레벨 4 이상의 자율주행 단계에 해당한다고 해석된다.12)
자율주행은 다양한 법률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민법, 형법 등 전통적인 법률은 자율주행차 사고 발생시 책임 귀속 등의 문제에서 관련이 있고, 중국의 ‘데이터 3법’14)은 자율주행차에 의해 수집된 개인정보 및 데이터의 수집, 보관, 처리, 역외 이전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렇게 자율주행과 관련된 법률은 다수 있지만, 자율주행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한 국가 차원의 입법은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21년 3월 24일 중국 공안부가 발표한 「도로교통안전법(개정안)」 제155조는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차량은 폐쇄된 도로와 장소에서 테스트를 통과하고 임시 운전 번호판을 취득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중국이 상위법률에서 자율주행에 관한 규정을 마련한 것은 이 개정안이 최초이나, 2021년 4월 개정된 「도로교통안전법」에서는 자율주행차와 관련된 조문은 반영되지 않았다. 2024년 8월 중국 공안부는 도로교통안전법의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자율주행차의 도로 진입, 사고 발생시 책임 등에 대한 세부 규정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도로교통안전법」 개정은 중국 국무원 2024년 입법계획과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입법계획에 포함되어 있으므로,15) 가까운 장래에 입법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가 차원의 법률이 부재한 상황에서 일부 도시는 지방성 법규를 마련해 시행 중이다. 2022년 6월 광동성의 선전시는 「선전 경제특구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 관리조례」를 제정하여 같은 해 8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최초의 자율주행차 관련 지방성 법규이다. 동 관리조례는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을 조건부 자율주행차, 고도 자율주행차, 완전 자율주행차 등 3단계로 구분하며,16) 모든 유형의 자율주행차는 다른 차량과 주변 보행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차량 외부에 자율주행차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하고, 선전시가 지정한 도로구역17)에서만 주행하도록 하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일으키는 사고에 대해서는 자율주행 단계별로 법적 책임을 달리 규정하고 있다. 운전석에 운전자가 탑승해야 하는 지능형 커넥티트 차량이 운행 중 사고를 냈을 때에는 운전자가 배상책임을 부담하고, 운전자가 없는 완전 자율주행차량이 운행 중 사고를 냈을 때에는 차량 소유자 또는 관리자가 배상책을 부담하며(제53조), 차량의 결함으로 인한 사고 피해는 제53조에 따라 운전자, 소유자 또는 관리자가 배상을 한 후 제조자나 판매자에게 구상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제54조). 그리고, 자율주행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반드시 중국 내 서버에 보관하도록 하고, 당국의 승인 없이 데이터를 국외로 전송하거나 이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47조). 선전시는 동 조례 시행 이후 2024년 5월까지 총 944km의 테스트 및 시범 도로를 개방했으며, 19개 기업의 349대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에 대해 총 1,037장의 도로 테스트 및 시범 응용 통지서를 발급하였다.18)
선전시의 뒤를 이어 2022년 11월 상하이시는 「상하이시 푸둥 신구 무인 자율주행 스마트 커넥티드 차량 혁신 응용 촉진 규정」19)을 발표하였고, 이후 쑤저우시, 항저우시, 장쑤성 등 여러 지역에서 자율주행 산업 촉진을 위한 지방 조례를 잇달아 발표하였다.
중국 정부는 자율주행 시장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보고 다양한 정책 지원을 통해 자율주행차의 기술개발 및 상용화를 적극 추진함으로써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고자 한다. 즉, 중국 정부의 자율주행차에 대한 정책 방향은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지원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하에서 중국의 자율주행 관련 주요 정책을 살펴본다.
자율주행 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육성은 2015년 5월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중국 제조 2025’20)에서 시작되었다. ‘중국 제조 2025’는 중국 제조업이 규모는 크지만 강하지 못하다는 인식 하에, 세계 최고 제조강국 실현을 위해 실행할 향후 30년 간의 3단계 혁신계획으로, 자율주행차 기술을 포함한 여러 첨단 기술 개발을 강조하면서 자율주행차에 대한 장기적 발전계획을 구상하였다.21)
2015년 7월 4일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인터넷+ 적극추진에 관한 지도의견’22)은 인터넷 플랫폼과 IT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산업의 융합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창출하려는 정책을 담고 있는데,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교통운수부는 이 지도의견의 후속 조치로 「‘인터넷+’ 편리한 교통 추진 및 지능형 교통 발전 촉진 실행방안」23)을 발표하였다. 동 실행방안에서는 교통과 인터넷의 통합을 보다 광범위하고 전면적으로 추진해 교통 정보화를 통한 중국 교통산업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4가지 실천전략24)을 제시하였다.
2017년 7월 개최된 바이두 AI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바이두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의 베이징 제5순환도로 주행 모습을 영상채팅 방식으로 상영하였다. 자율주행 체험자로 나선 바이두의 창시자 리옌훙 회장이 운전석이 아닌 조종석에 앉아 있고 차량이 자율주행을 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킴과 동시에 교통법규 위반 문제가 제기되었다.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은 채 무허가로 시내를 주행한 것은 중국 「도로교통안전법」 위반이라는 것이다.25) 자율주행차에 적합한 법규가 없는 상황에서 도로에서의 자율주행 테스트를 위한 규범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 사건 발생 5개월 후인 2017년 12월 베이징시 교통위원회는 베이징시 공안교통국, 베이징시 경제정보위원회 및 기타 부서와 함께 ‘자율주행차 도로 테스트 가속화에 관한 베이징시 지도의견(시범시행)'과 ‘베이징시 자율주행차 도로 테스트 관리 시행세칙(시범시행)’을 발표하여26) 공공도로에서의 자율주행 테스트를 규범화하였다. 이에 따라 베이징시는 중국 최초로 공공도로에서 자율주행차 테스트가 가능한 도시가 되었으며, 상하이시도 2018년 3월 이와 유사한 규정을 발표하였다.27) 2018년 4월에는 중국 공업정보화부, 공안부, 교통운수부가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 도로 테스트 관리규범(시범시행)」28)을 공동 발표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도로주행 테스트 규범을 마련하였다.29)
2020년 2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등 11개의 부처는 「지능형 차량 혁신 발전전략」30)을 발표해 자율주행차 사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차량 자동화·통신망 기술 통합 등을 지원하였다. 2020년 10월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신에너지 차량 산업 발전계획(2021∼2035년)」31)에서는 2025년까지 제한구역에서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2035년까지 대규모 양산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2020년 12월 교통운수부는 「도로교통ᆞ·자율주행 기술 발전 및 응용 촉진에 관한 지도의견」32)을 발표해 일부 지역에서의 로보택시 시범 운행 및 상용화 서비스 추진에 나섰다. 이 지도의견은 2025년까지 자율주행에 대한 기초이론 연구를 바탕으로 도로 기반시설 지능화, 지능형 교통시스템 핵심기술 및 제품 연구개발과 테스트 검증의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자율주행 분야의 표준 제정, 국가급 자율주행 시험기지와 시범 실시사업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을 산업화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2023년 11월 중국 공업정보화부, 공안부, 주택·도시농촌건설부(住房和城乡建设部), 교통운수부는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의 진입 및 도로주행 시범사업에 관한 통지」33)를 발표하여, 승인을 받은 자율주행차의 지정 지역 내 도로주행을 허용하였다. 중국은 자율주행의 발전전략을 도로 테스트 및 시범 응용 단계, 시범 진입 및 도로주행 단계, 대규모 보급 단계의 세 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위의 통지를 통해 중국의 자율주행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범 진입 및 도로주행 단계에 진입하였음을 선언하였다.34)
2023년 12월 중국 교통운수부는 자율주행차를 사용하는 운송사업자(전기버스운송사업자, 택시운송사업자, 여객운송사업자, 화물운송사업자)에 적용되는 「자율주행차 운송 안전 서비스 지침(시범시행)」35)을 발표하였다. 이 지침의 주요 내용에는 ① 안전운행을 보장하기 위하여 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율주행차는 지정된 지역 내에서만 주행할 수 있고,36) ② 교통안전 평가를 통과해야 하며, ③ 운송 중에 최소한 한 명의 운전자 또는 안전요원이 탑승해야 하고,37) ④ 차체에 자율주행차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를 해야 한다.38)
2024년 3월 개최된 중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리창 총리는 ‘인공지능(AI)+’ 이니셔티브 추진 계획을 발표하였다.39) ‘AI+’는 2024년 10대 정부 과제의 첫 번째 항목으로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과 적극적인 데이터 개발, 개방, 유통으로 생산성의 질적 제고를 목표로 한 계획이다.40)
이에 발맞추어 베이징시는 2024년 7월 ‘AI+ 추진 행동계획’을 발표하여 로봇·교육·의료·문화·교통 등 다섯 가지 분야에서 AI를 응용한 시범 성공 사례를 만들고, 이를 다양한 업종으로 확산해 베이징시를 AI 도시로 육성하고자 한다. ‘AI+ 추진 행동계획’ 중 ‘AI+교통’은 도로·차량·유동인구·날씨 등 대형 데이터를 생성해 자율주행 훈련을 지원하고 도시 교통망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베이징 사회과학원의 왕펑(王鹏) 연구원은 현재 자율주행 기술은 테슬라가 선도하는 ‘단일 차량 지능(单车智能)’과 ‘차량-도로-클라우드의 통합(车路云一体化)’이라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고 하면서, 후자는 자율주행을 위한 중국식 솔루션으로 평가되며 향후 전세계적으로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 개발의 방향을 선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41)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 시스템(Vehicle-Road-Cloud Intergrated System, VRCIS)’이란 차세대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사람, 차량, 도로 및 클라우드의 물리적 공간과 정보 공간을 하나로 융합하여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운행을 실현하는 사이버-물리 시스템(Cyber-Physical System, CPS)을 말한다.42) ‘단일 차량 지능’은 차량을 더 지능적으로 만들기 위해 차량 자체를 연구하는데 반해,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은 차량 자체의 지능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첨단 통신 및 현장 감지 기술 등 도로 측 인프라와 클라우드 제어 플랫폼의 구축을 통해 전반적인 상황을 감지하고 의사결정 및 제어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글로벌 기술혁신 생태 플랫폼인 Plug and Play China(璞跃中国)의 연구 보고서에서는 ‘단일 차량 지능’과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의 차이는 기술과 비용이 차량 측과 도로 측에 어떻게 분배되는지에 있다고 보며, 수많은 차량에 고가의 센서 장비를 장착하는 것보다는 도로 측 인프라를 함께 이용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그리고 ‘단일 차량 지능’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이 경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지만,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을 통해 추월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43)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은 실시간 상호작용 및 협업적 의사결정을 통해 ‘단일 차량 지능’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포괄적이고 정확한 환경 인식이 가능하다. 우선, ‘단일 차량 지능’은 주로 감지 범위가 제한적이고 날씨나 빛과 같은 외부 요인의 영향을 쉽게 받는 카메라, LiDAR, 초음파 센서와 같은 차량에 탑재된 센서에 의존하는 반면,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은 차량에 탑재된 장비의 성능에 제한받지 않고, 도로 측 시설의 센서를 통합하여 더 넓은 지역을 커버하고 보다 안정적이고 정확한 환경 감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장애물에 가려지거나 악천후인 상황에서 ‘단일 차량 지능’은 감지 사각지대가 발생하거나 정확한 감지를 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나,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의 도로 측 센서는 차량 자체 센서에 비해 더 넓은 범위에서 신뢰할 수 있는 실시간 감지 정보를 제공하여 차량의 감지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은 차량 측과 도로 측의 정보가 클라우드에서 상호 연결되고 공유된다. 이렇게 공유된 교통 정보를 빅데이터 분석에 활용하여 차량의 주행 경로를 최적화하고 의사결정의 예측력과 정확성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이는 전체 교통시스템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전방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클라우드는 즉시 정보를 후방 차량에 전달하여 정체를 피할 수 있도록 경로를 조정할 수 있으며, 이러한 실시간 상호작용 기능은 차량의 반응 속도와 의사결정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킨다. 이 점에서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은 기술의 통합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기존 교통시스템을 혁신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기도 하다.44)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적용 범위의 확장으로 ‘차량-도로-클라우드의 통합’은 향후 전 세계 도시 교통에 더욱 효율적이고 안전하며 지능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기술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ull Self-Driving, FSD) 시스템이나 구글의 자회사인 웨이모의 무인 택시 등이 ‘단일 차량 지능’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중국의 전국 정치협상회의 경제위원회 부주임인 먀오웨이(苗圩)는 이들 기업이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을 활용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인프라 건설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45)
통신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우선, 5G와 같은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차량과 도로 시설 간의 데이터 전송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만들어 줌으로써 교통시스템의 반응 속도와 정확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다음으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분석하여 짧은 시간 내에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됨으로써 차량이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교통흐름을 최적화하여 전체적인 교통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의 진보는 교통시스템을 더 스마트하고 안전하게 만들어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을 촉진한다.
한편,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은 다음과 같은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첫째, 막대한 인프라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도로 양옆에 수많은 센서, 통신 장비 및 기타 첨단 하드웨어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러한 장비의 구매, 설치, 유지보수에는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다. 둘째, 기술 표준의 통일 문제가 있다.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은 차량 내 시스템, 도로 측 시스템, 클라우드 플랫폼 간의 원활한 협업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시스템 간의 상호 연결과 통신이 필수적이며, 기술 표준이 통일되지 않으면 시스템 간 호환성이 떨어져 전체적인 성능 발휘에 장애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의 실현을 위해서는 통일된 기술 표준의 수립과 각 영역 간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 이에 중국 정부는 「지능형 차량 기본지도 표준 체계 구축 지침(2023판)」46), 「국가 차량 네트워크 산업 표준 체계 구축 지침(스마트 커넥티드 차량)(2023판)」47) 등 일련의 문건을 발표하여 국가표준 체계의 구축 방향을 정립하고 있으며, 2026년까지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 표준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48)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은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의 기술과 산업 발전을 위한 일련의 정책을 시행해 왔다. 이들 정책 가운데 「신에너지 차량 산업발전 계획(2021-2035)」에서는 2025년까지 신차 판매에서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이 차지하는 비중을 30%까지 높이고 2030년에는 7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하였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24년 1월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공안부 등 5개 부처는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의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 응용 시범사업에 관한 통지」49)를 발표하였다.50) 이 통지에서는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 산업발전을 위해 스마트 도로 인프라51) 구축, 셀룰러 기반 차량·사물통신(C-V2X)52) 단말기 장착률 제고, 고정밀 지도의 안전한 적용 모색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4년 6월 30일에 발표된 「베이징시 자율주행차 조례(의견수렴안)」 제14조는 베이징시에서 신설, 개조, 확장하는 도로는 지능형 도로 측 인프라를 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명시하여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 발전전략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 아래 각 시범사업 도시는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예컨대, 베이징시는 2024년 5월 말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 신형 인프라 건설 사업 입찰 공고를 통해 시 전역에서 2,324㎢의 범위를 선정하여 6천 개 이상의 도로를 스마트 도로로 개조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약 99억 위안(약 1조 9천억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53) 중국자동차공학회 등 기관이 공동으로 발표한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 스마트 커넥티드 차량 산업 가치 증대 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추진에 힘입어 중국 내 관련 시장 산업의 규모는 2025년 7,295억 위안(약 139조 원)으로 예상되며, 2030년에는 2조 5,825억 위안(약 492조 원)으로 늘어나 연평균성장률이 28.8%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54)
이상에서 보듯이 중국은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을 자율주행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는 핵심적인 방향으로 설정하고 적극적인 추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이 ‘단일 차량 지능’과 상충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단일 차량 지능’과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은 독립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로서 전자가 발전해야 후자를 더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55) 예컨대, 중국 공정원 원사이자 칭화대학 교수인 리쥔(李骏)은 ‘단일 차량 지능’은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의 기초이며,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은 도로 측 데이터를 수집하여 차량의 데이터를 보완함으로써 자율주행차의 성능과 안전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하며, 리커창(李克强) 중국 공정원 원사 역시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은 기술과 산업발전의 추세에 부합하는 개념이며, 이 방식은 ‘단일 차량 지능’을 포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56)
Ⅲ. 자율주행차 사고의 법적 책임 귀속에 관한 논의
자율주행차와 관련하여 자율주행차가 수집한 개인정보와 데이터의 보호에 관한 문제 등 다양한 법적 쟁점이 제기되는 가운데, 자율주행차 사고시 법적 책임의 귀속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라 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가 교통사고를 발생시킨 상황에서 그 책임소재와 관련하여 기존의 법제도를 통해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법적 문제가 제기되는데, 이 문제에 대한 중국 학계의 논의를 검토한다.
자율주행차 사고시 책임 주체에 관해서는 중국 학계에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크게는 자율주행차를 책임주체로 인정하고 그 구체적인 책임을 추궁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견해와57) 자율주행에 적용된 인공지능은 자유의지가 결여되어 책임 능력이 없다는 견해58)로 나뉜다. 후자는 자율주행차가 의존하는 자율주행시스템은 인공지능 제품으로서 스스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책임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59) 즉, 자율주행차는 자신의 행동이 인간이나 어떠한 법익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련 법률 및 규정 위반에 대한 책임은 자율주행차의 제조자, 판매자 또는 운전자에게 있다고 한다.
2021년 발표된 중국 「도로교통안전법(개정안)」 제155조 제2항에서는 자율주행 기능과 수동 운전모드를 갖춘 자동차의 경우 운전자와 자율주행시스템 개발 단체가 책임부담의 주체가 된다고 규정하였고, 앞서 본 바와 같이 「선전 경제특구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 관리조례」 제53조와 제54조는 손해배상 책임의 주체를 운전자, 차량 소유자 및 관리자, 제조자 또는 판매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2022년 2월 15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상하이시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 테스트 및 응용 관리 방법」60) 제43조는 자율주행 모드에서 자율주행차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의 테스트 및 응용 활동을 수행하는 단체가 법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을 우선 부담하고, 이후 관련 책임자에게 구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상하이시 푸둥 신구 무인 자율주행 스마트 커넥티드 차량 혁신 응용 촉진 규정」 제29조 역시 “무인 자율주행 스마트 커넥티드 차량이 교통사고를 일으켜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법에 따라 자율주행차 측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해당 무인 자율주행차가 속한 기업이 우선적으로 배상해야 하며, 이후 책임이 있는 자율주행시스템 개발자, 자동차 제조자, 설비 제공자 등에게 구상할 수 있다. 차량이 교통사고 책임 강제 보험이나 상업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경우, 관련 규정에 따라 처리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베이징시 자율주행차 조례(의견 수렴안)」에서도 이러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61) 이처럼 중국의 법규는 자율주행차를 독립적인 책임 주체로 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자율주행 교통사고는 전통적인 책임 추궁 경로로 돌아가 운전자나 제조자에 대한 사후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62)
자율주행차 자체의 책임주체성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자율주행차 사고로 인한 사후 책임의 부담주체가 자율주행차의 제조자와 운전자 중 누구인지를 두고 다시 견해가 갈린다.
자율주행차 운전자의 과실로 인한 민사책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 교통사고 불법행위 책임을 주장하는 견해는 운전자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불법행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이 견해는 자율주행차를 여전히 전통적인 기계, 즉 ‘물건’으로 보는 관점에서 운전자가 운전을 주도해야 한다고 보며, 자율주행 모드를 활성화한 사람이 이후의 모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63) 둘째, 사용자 책임을 참조하자는 견해가 있다. 자율주행차는 운전자가 고용한 운전자로 볼 수 있다고 하며, 차량이 운전자의 지시에 따라 주행할 때 만약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교통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운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일으킨 경우, 해당 차량을 “고용”(구매)한 운전자(소비자)는 자율주행차 혹은 자율주행시스템에 대해 연대 책임을 진다고 하며, 나아가 차량 보유자에게 엄격한 책임을 부담시키는 방안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한다.64) 셋째, 동물의 불법행위 책임을 참조하는 견해는 자율주행차는 개와 유사하며 이들은 인간의 통제와 개입 없이도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중국 「민법전」 제1245조와 1246조는 동물의 사육자나 관리자가 상응하는 불법행위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자율주행차의 소유자에게도 위험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65)
교통사고 불법행위 책임설에 대해서는 차량이 자율적으로 제어되는 단계에서는 인간이 운전할 필요가 없이 시스템이 스스로 주행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운전 작업을 수행하는데, 운전자가 자동차를 제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또한, 향후 완전자율주행이 가능해지면 노인, 미성년자, 시각 장애인 등이 자율주행차의 사용자가 될 것인데, 이들을 운전자로 간주하고 교통사고에 대한 불법행위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따른다. 사용자 책임을 참조하자는 견해의 핵심 틀은 운전자(고용주)와 자율주행차 간의 책임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며, 이는 자율주행차가 법적 인격을 갖추고 있을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자율주행차에 법적 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더 많은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동물의 불법행위 책임을 참조하자는 견해에 대해서는 자율주행차와 동물 간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동물의 불법행위와 교통사고 불법행위는 책임 원칙, 구성 요건, 책임 주체 등에 대해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따른다.
제조자의 과실 책임 판단에 대해서는 세 가지의 주요 견해가 있다. 첫째, 일반 과실 불법행위설은 완전 자율주행 단계의 자율주행차의 경우 사용자가 운전 중 전화나 문자 등을 보내는 행위에 대해 과실 책임을 지지 않고, 자동차 제조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66) 완전 자율주행 단계에서 소비자나 운전자는 자율주행시스템의 작동을 완전히 또는 기본적으로 신뢰하고 이러한 신뢰는 보호되어야 한다. 교통사고의 발생은 자율주행차가 홍보한 신뢰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제조자가 민사책임을 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둘째, 제품 책임설은 자율주행차 사고의 원인이 사용자 과실이 아니라 시스템의 오작동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자율주행차 사고는 대부분 인공지능 또는 알고리즘 기술의 불안정으로 인한 시스템 결함으로 발생하므로 운전자는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제조자가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조정할 때 주의의무를 다해야 하고, 제품의 설계 결함에 대해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67) 즉, 자율주행차의 하드웨어 설치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조정은 제조자가 자율주행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주의의무이고, 이 주의의무는 개별 운전자의 주의의무가 아니라 주로 제조자의 주의의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68) 셋째, 엘리베이터 불법행위 책임을 참조하자는 견해가 있다. 자율주행차의 작동이 엘리베이터의 운영과 매우 유사하다고 보고, 자율주행차 제조자에게 불법행위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는 운전자나 사용자가 차량의 제어를 상실한 상황을 전제로 엘리베이터 사고(자율주행차 사고)가 발생하면 엘리베이터 제조자(자율주행차 제조자)가 책임을 지고, 이후 사고 분석을 통해 2차적인 책임 분담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한다.
일반 과실 불법행위 책임설에 대해서는, 자율주행 기술은 고위험 신기술이기 때문에 일반 과실 불법행위 책임을 적용하는 것은 피해자 구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조자에게 자율주행 기술 개선을 효과적으로 유도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따른다. 엘리베이터 불법행위 책임설은 엘리베이터가 항상 폐쇄된 환경에서 운행된다는 객관적 조건에 기반한 것으로 단순한 운행 환경에서는 책임 판단이 일정할 수 있지만, 자율주행차의 복잡한 운행 환경에서는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제품 책임설의 문제점은 제조자가 과중한 책임을 질 수 있고 이로 인해 자율주행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품 책임설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안으로 이중 책임 보험 구조를 구축하자는 견해가 있다. 1단계 보험은 직접적인 책임 주체가 위험 분산을 위해 가입하며, 2단계 보험은 사회 구제 방식으로, 관련 주체의 일부 수익을 공동 배상 기금으로 전환하여 운영하자는 것이다.69) 이와 관련하여 「상하이시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 테스트 및 응용 관리 방법」 제40조는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의 도로 테스트, 시범 응용 및 시범 운영을 수행하는 자는 관련 규정에 따라 자동차 교통사고 책임 의무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일정 금액의 상업 보험에 가입하거나 해당 금액의 보증서를 제공해야 한다. 보험 회사가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의 특성에 맞는 보험 상품을 개발할 것을 권장한다.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과 관련된 사회단체와 기업이 공동으로 사회 위험 기금을 설립하여, 책임이 명확하지 않아 피해자들이 즉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경우 먼저 보상을 제공할 것을 권장한다”고 규정하고, 「상하이시 푸둥 신구 무인 자율주행 스마트 커넥티드 차량 혁신 응용 촉진 규정」 제30조는 “무인 자율주행 스마트 커넥티드 차량을 이용해 도로 화물 운송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은 운송인 책임 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여객 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차내 승객 책임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관련 산업 조직 및 기업들이 위험 기금을 공동으로 설립할 것을 권장한다. 보험사는 무인 자율주행 스마트 커넥티드 차량의 특성에 맞는 보험 상품을 개발할 것을 장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능형 로봇의 형사책임 귀속에 관해 중국 화동정법대학교의 류시엔취엔 교수는 “지능형 로봇이 설계된 프로그램 범위 밖에서 사회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생명형, 자유형, 재산형, 권리형으로 구성된 중국의 기존 형벌체계는 지능형 로봇을 포함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의 형벌체계를 재구성하여 데이터 삭제, 프로그래밍 수정, 영구 파기 등의 처벌 방식을 추가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70) 이에 대해 데이터 삭제, 프로그래밍 수정 및 영구 파기 방식이 특별 예방 및 일반 예방 형벌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위와 같은 관점은 인공지능 스스로가 식별 및 제어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해야 성립 가능한 가설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현재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하여 작동하는 자율주행차나 로봇은 여전히 인간의 통제 범위 내에 있으므로, 통제 불가능한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는 현 단계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이다.71) 다시 말해, 자율주행차는 자율 의지가 부족하고, 그의 사회적 의미가 있는 모든 행동은 인간의 지시와 행동의 연장선에 있으므로,72) 자율주행차는 교통사고의 범죄 주체가 될 수 없고, 데이터 삭제, 프로그램 수정, 영구 파기는 자율주행차에 대한 형벌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자율주행차 제조자는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자율주행시스템을 지속적으로 훈련하여 자율주행의 자가 학습, 반복, 업그레이드를 추진하므로,73) 형사책임이 문제될 수 있다.
자율주행차의 생산 단계에서 제조자가 안전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자율주행차를 생산 또는 판매하여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 형사책임을 지고, 응용 단계에서 제조자가 자율주행차의 안전 관리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에도 형사책임을 진다.
자율주행차의 자동화 등급과 사고 책임의 결과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자동화의 등급에 따라 운전자의 형사책임이 달라질 수 있다. 즉, 더 높은 자동화 등급에서는 운전자의 직접적인 개입이 적어지기 때문에, 해당 상황에서 운전자의 책임이 줄어들 수 있다. 참고로 「장쑤성 도로교통안전 조례」74)는 조건부 자율주행차, 고도 자율주행차, 완전 자율주행차를 구분하고, 조건부 자율주행차 또는 고도 자율주행차가 도로교통안전 위반행위를 한 경우 공안 교통 관리 부서는 법에 따라 차량 운전자를 처벌하며, 완전 자율주행차가 도로교통안전 위반행위를 한 경우 차량의 소유자 및 관리자를 법에 따라 처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85조).
Ⅳ. 비교법적 검토와 법적 인프라 구축 방향
중국의 현행 「도로교통안전법」 등 법률에는 ‘자율주행시스템’이나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정의 규정이 없다.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자율주행시스템이 인간을 대신하여 운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정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자율주행시스템에 의한 자율주행이 합법적인 지위를 갖는지에 대해 의문이 존재한다. 그리고 중국 「도로법(公路法)」 및 「도로교통안전법실시조례(道路交通安全法实施条例)」에 의하면, 도로는 자동차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장소라 할 수 없다. 비록 중국 중앙정부의 관련 부처와 일부 지방정부에서 자율주행차의 도로주행 테스트에 대한 규정을 마련하고 있기는 하지만, 상위법은 아직 기술의 발전에 상응하는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자율주행차 도로주행 테스트의 합법성이 문제될 수 있다.75) 이와 달리 한국은 「자율주행자동차법」과 「도로교통법」, 「자동차관리법」 등에서 자율주행시스템과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정의 규정을 마련하고 있으며,76) 「도로교통법」은 도로에서 자율주행시스템을 사용하는 것도 운전의 개념에 포함하고 있으므로(제2조 제26호), 자율주행자동차의 운행에 관한 법적 기반이 마련된 상태이다.
중국의 경우 자율주행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거나 「도로교통안전법」과 같은 법률에서 자율주행 관련 내용을 반영한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별로 조례를 제정하여 자율주행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빠르게 발전하는 자율주행 기술에 대응해 선제적으로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방법이 아니라, 먼저 지방성 법규 제정을 통해 자율주행 상용화를 테스트하고 이렇게 쌓인 경험을 국가 차원의 법률 개정에 반영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남정법대학 과학기술법학연구원 부원장인 정즈펑(郑志峰) 교수는 “지방정부가 자율주행차의 시범 운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보험 가입, 교통법규 준수, 안전요원 배치 등과 같은 지방 규범을 제정하는데, 이는 매우 좋은 입법 시도”라고 평가하고, 향후 자율주행차 관련 법률을 제정할 때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자율주행차 제품의 승인 기준, 차량 관리 및 사용 규칙, 사고 책임부담 등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77) 자율주행에 관한 국가 차원의 법률이 제정되지 않았지만, 지방정부에서 관련 입법을 진행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중국의 중앙정부인 국무원과 중앙의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공산당의 영도에 따라 당의 방침을 집행할 뿐이며, 실질적으로는 공산당이 국가를 운영하는 ‘당-국가체제’인 것에 기인한다.78)
중국은 지방 조례 외에도 중앙정부 관련 부처의 정책성 문건을 통해 자율주행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모빌리티 혁신 로드맵’을 기반으로 자율주행 분야의 육성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입법적으로는 앞서 본 「자율주행자동차법」이나 「도로교통법」 등의 제·개정을 포함하여, 「모빌리티 혁신 및 활성화 지원에 관한 법률」, 「미래자동차 부품산업의 전환촉진 및 생태계 육성에 관한 특별법」 등 법률을 제정하여 자율주행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지원하고자 한다. 이 밖에 「자동차관리법」은 안전운행요건을 갖추어 자율주행자동차의 임시운행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고(제27조),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이하 ‘자동차규칙’)은 부분 자율주행시스템(레벨 3)에 관한 안전기준을 두어 자율주행자동차의 상용화에 대비하고 있다(제111조의3, 별표2).
하지만, 「자동차규칙」상 레벨 4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규정은 아직 없는 상태여서 국내 기업이 레벨 4 이상의 자율주행차를 시험하거나, 출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규제 리스크를 감당해야 했다.79) 정부는 이와 같은 기업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레벨 4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자동차 규제를 국제기준에 맞추어 완비한 뒤, 국내 기업과 협력하여 완전 자율주행자동차를 조기 상용하고자 하였으나, 국제기준 제정이 지연됨에 따라 이와 같은 조기 상용화 일정에 차질이 예상되었다.80) 이에 2024년 3월 「자율주행자동차법」을 개정하여 자동차안전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레벨 4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해 성능인증 제도와 적합성 승인 제도를 신설함으로써 기업이 레벨 4 이상의 자율주행자동차를 조기 상용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삼권이 분립된 우리나라에서 정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과 달리, 중국의 경우 ‘당-국가체제’를 기반으로 당의 방침에 따라 관련 행정부처가 내어놓는 정책성 문건은 법률 못지않은 힘을 가지며,81) 이에 입법적 뒷받침 없이도 국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중국은 베이징, 선전, 우한 등 여러 도시에서 자율주행차를 운행하며 1년 전인 2023년 9월에 7,000만㎞의 자율주행 데이터를 쌓아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이르렀다.82) 중국이 자율주행차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자율주행 기술의 개발과 관련 산업의 발전을 국가 차원의 목표로 삼아 일련의 지원정책을 시행하고, 지방 입법을 통해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차원의 입법을 하고자 하는 중국식 접근 방식을 권력분립과 법치주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전근대적 방식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자율주행의 기술적 경로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 현 단계에서는 유연하고 민첩한 규제 방법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물론, 중국과 정치·사회 체계를 달리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방식을 취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율주행과 같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의 안전과 위험에 대해 선제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혁신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음을 고려하면, 우선허용·사후규제 방식의 규제샌드박스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83) ‘자율주행차의 안전운행 요건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자율주행 실증사업을 수행할 수 없는 스타트업에게 기회를 부여한 모빌리티 규제샌드박스 실증 특례는 규제샌드박스 활용의 좋은 예이다.84) 최근에는 기업이 규제 특례를 신청하면 담당 부처가 이를 한시적으로 풀어주는 구조가 아닌 정부 부처가 선제적으로 규제개선 과제를 발굴하는 ‘톱다운(Top-Down)’ 방식의 ‘기획형 규제샌드박스’가 추진 중인데,85) 이러한 기획형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신기술 및 신산업에 필요한 규제를 체계적으로 정비함으로써 기업들이 보다 자유롭게 혁신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중국은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을 위한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고, 자율주행 전용차로, 무선통신망과 클라우드 도로교통 관제 시스템 등 인프라 건설이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차량-도로-클라우드 통합 시스템’은 한국 「자율주행자동차법」상의 ‘자율협력주행시스템’과 유사한 개념이다.86) 한국에서도 예전부터 자율주행차 전용 인프라 구축을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위한 해결책으로 제시해 왔지만,87) 진행은 매우 더딘 상황이다. 안전한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해서는 자율주행차에 탑재하는 센서 등 장비의 고도화와 함께 도로 인프라 등을 통한 자율협력주행 기술의 발전이 필요하다. 2021년 설립된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 사업단’은 2027년까지 인프라 융합(차랑-도로-클라우드) 기술을 통한 ‘융합형 레벨 4+ 자율주행차’의 상용화 기반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자율협력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가야 할 것이다.
자율주행차 사고시 법적 책임의 귀속에 대해 중국의 학계에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우선, 자율주행차를 독립적인 책임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자율주행시스템은 책임을 질 수 없으므로 여전히 인간, 즉 운전자나 제조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하나, 자율주행차에 적용된 인공지능은 자유의지가 결여되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유로 다수의 학자들은 자율주행차의 사고 책임을 운전자나 제조자 등에게 귀속시켜야 한다고 본다. 자율주행차 사고에 대한 민사책임에 대해서는 운전자의 과실 책임을 인정하자는 견해와 제조자의 과실 책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하며, 후자의 견해 가운데 제품 책임설이 다수설의 입장이다. 제품 책임설에 따르면 제조자가 과중한 책임을 질 수 있고 이로 인해 자율주행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으므로,88) 보험제도를 활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편, 「선전 경제특구 지능형 커넥티드 차량 관리조례」를 비롯한 상하이, 베이징 등의 지방 조례는 완전 자율주행차량 사고의 경우 우선 차량 소유자 또는 관리자가 배상책임을 부담하고 추후 책임이 있는 제조업체나 판매업체에 구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에 대해서는, 차량 소유자나 관리자가 먼저 보상을 한 후 사고의 원인이 운전자의 과실인지, 자동차 자체의 결함인지, 자율주행시스템의 오류인지, 해킹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보안상의 문제인지 등을 규명하여 제조업체 등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자율주행차 사고에 대한 형사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자율주행자동차 자체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기는 어려우나 제조자의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형사책임은 물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에서도 레벨 4이상 자율주행차의 운행 중 사고 발생에 따른 형사책임 귀속 주체에 대해 크게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견해89)와 자율주행시스템에 책임을 인정하는 견해90), 그리고 누구에게도 형사책임을 부담시키기 어렵다는 견해91) 등이 있다. 만약 자율주행시스템인 인공지능에게 형사책임을 묻는다면, 법인에게 법인격을 부여하여 양벌규정에 따라 처벌하는 것처럼 자율주행차 운행을 지배한 자를 자율주행시스템으로 보아, 인공지능에게 운행 중 사고의 책임을 지울 수 있을지가 문제 된다. 또한 자율주행시스템이 자신의 행위 의미를 이해하여 자신의 행위에 대한 법적 의미를 인식하고 불법을 결의한 자에 대한 비난으로서의 책임을 인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약 자율주행자동차의 주행 중 발생한 사고가 제조상의 결함으로 인한 것이었고, 그로 인해 사람의 생명·신체에 피해가 발생한 경우, 생명·신체라는 가장 중요한 법익보호의 측면에서 형사 제조물책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92) 형사 제조물책임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성립이 문제되는 것으로, 특히 주의의무위반과 발생한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와 그 발생한 결과를 운영자들에게 귀속시키는 법논리가 관건이다. 따라서 자율주행자동차의 설계·제조·판매자는 제조물의 설계·제조·판매 이후에도 제품의 위해성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그로 인한 법익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위험방지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담하며, 법익침해 결과의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고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제품 회수 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아 법익침해 결과를 발생케 한 경우, 부작위에 의한 상해 또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죄책을 질 수 있는지에 대한 정교한 법논리를 개발하여야 한다.
책임 귀속의 주체가 분명하게 밝혀져야 자율주행자동차 운행의 안전이 확보될 수 있으며, 법적 기준에 따른 안전관리를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어야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 귀속도 명확해질 수 있다. 위 두 법적 과제는 상호 보완관계에 있으며, 향후 자율주행자동차의 상용화에 대비하기 위한 선결과제이다.
현행 법체계에서는 운전자의 개입 없이 인공지능으로 운행하는 자율주행차의 경우, 운전자는 운행을 지배·통제한 자라고 볼 수 없고, 실질적으로 운행을 지배한 자율주행시스템은 형법상의 주체라고 보기 어렵다. 독일은 2021년 레벨 4차량의 도로주행을 대비하여 기술감독관제도를 도입하였고, 일본은 2022년 도로교통법을 개정하여 ‘특정 자동운행’의 개념을 통해 운전자를 전제로 한 기존 ‘운전’의 개념을 변경하였고 특정자동운행 실시자·주임자, 현장조치업무 실시자의 3단계 책임체계를 구축하였다.93) 이들 국가는 기술감독자나 특정자동운행 주임자 등의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여 교통안전과 관련한 새로운 책임을 부여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자율주행자동차 운행시의 교통안전을 확보하고94) 운전자를 자율주행시스템이용의 책임에서 면책시키려는 입법경향을 보인다. 각국이 레벨 4단계에 대한 입법작업에 나섰지만 자율주행시스템 개발자의 주의의무의 범위, 과실범에 있어 신뢰원칙과 예견가능성의 정도 문제, 긴급피난의 문제 등 세부적인 쟁점들에 대한 해결책은 여전히 논쟁 중이며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95)
가장 강력한 국가형벌권을 제재수단으로 하는 형사책임을 인정하는 요건과 전제조건들은 민사책임에 비해 훨씬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성급하게 형사법이 개입한다면 자칫 자율주행자동차 기술과 비즈니스를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인지 자율주행자동차 교통사고시 형사책임을 민사책임으로 전환하자는 견해가 있다.96) 이에 의하면 일종의 완화된 형태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면 형사책임 주체가 개발책임자인지, 제조사인지, 유통사인지 등 불명확한 상황을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 가장 현실적인 민사책임 해결방안은 자율주행자동차 보험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안전운행요건 및 시험운행 등에 관한 규정(국토교통부고시 제2023-610호)」 제4조는 “자율주행자동차를 시험·연구 목적으로 임시운행허가를 받으려는 자동차 소유자나 자동차를 사용할 권리가 있는 사람은 해당 자동차의 운행으로 발생된 교통사고 피해에 대하여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3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자율주행자동차 임시운행허가 신청인은 교통사고 피해에 대한 적절한 손해배상을 보장하기 위하여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5조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보험 등에 가입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97) 또한 금융위원회는 업무용 자율주행자동차 전용 특약 상품을 개발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98) 한국은 1981년부터 교통사고와 관련한 과실범의 형사책임을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근거하여 책임보험으로 해결함으로써 이미 상당 부분 민사사건화 해오고 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등 관련 법률에 자율주행자동차의 사고 특성을 반영하는 법개정이 이루어진다면 보험을 통한 해결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99)
민사책임 주체로서 전자인(e-person) 개념, 자율주행자동차 보험 설정, 제조물책임 등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민사법적 접근은 상대적으로 윤리적 색채가 강한 형법보다 우선시되고 있고 용이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율주행자동차 운영 관련자들이 부담하는 손해배상비용이 행정청이 부과하는 관리·감독비용보다 낮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운영 관련 회사들의 잘못된 결정을 막을 방법이 없다. 국가의 법익보호의무를 수호하고 안전한 자율주행자동차 운행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행정청이 부과하는 위험관리·감독 의무를 위반하였을 경우 높은 수준의 벌칙규정을 통해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사고발생 개연성이 높은 결함을 발견하거나 안전성이 위협받을 수 있는 경우 제조 중단, 리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의무화하고 의무 불이행 시 벌칙규정을 두어야 한다.100) 제조자가 이러한 사전위험 방지의무를 게을리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부작위에 대한 형사책임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