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제의 제기
한국은 다문화사회로 전환되고 있으며,1)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주민들이 늘어남에 따라, 특정 집단을 겨냥한 혐오표현이 확산되고 있으며,2) 특히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그 파급력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 혐오표현은 단순한 증오 발산에 그치지 않고, 해당 집단에게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3) 공포감을 조성한다. 나아가 이는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도 메시지를 전달해 사회의 분열을 초래하여,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인종적, 민족적으로 동질성을 유지해왔으며, 외래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자국의 문화와 융합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러한 배경은 외모나 문화가 다른 이주민들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강화하여, 이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 표현이 만연한 상황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원활하게 통합되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률이나 차별금지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미흡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혐오표현에 대한 사법적 판단 기준도 불명확하여, 관련 사안에 대한 일관된 법적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법적 공백과 판단 기준의 부재는 혐오표현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방치하고 있어, 사회통합을 더욱 저해하고 있다. 따라서 혐오표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법적·사법적 대응이 시급히 요구된다.
이러한 점에서, 다문화사회로서 혐오표현 문제를 앞서 경험했고, 체계적인 입법적·사법적 대응을 통해 이를 해결해 온 캐나다의 사례는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다. 캐나다는 1960년대 이후 연방 및 주 차원에서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적 틀을 구축해 왔으며, 형법과 인권법을 통해 혐오표현을 효과적으로 다루어 왔다. 또한, 연방대법원 판례를 통해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법적 경계를 명확히 하면서, 혐오표현 사건에 대한 심사기준을 정립해왔다. 본 연구는 이러한 캐나다의 법적 제도와 판례를 분석함으로써,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적 대응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이주민 통합과 사회적 조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최근 캐나다에서 발의된 BILL C-63 법안4)5)은 온라인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한 시의적절한 대응책으로, 이는 증가하는 혐오 범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제적으로도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유럽연합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이를 법적으로 다루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국제적 동향에 맞춰 혐오표현 규제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고, 사법적 판단기준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Ⅱ. 캐나다 표현의 자유 보장과 제한가능성
1982년 캐나다 권리와 자유 헌장(The Canadian Charter of Rights and Freedoms)은 제2조(b)에서 사상, 신념, 견해,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기본적 자유로 보장하고 있다.6) 이 조항은 표현의 자유를 진리 탐구, 사회적·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의 참여, 그리고 개인의 자아실현을 촉진하는 중요한 원칙과 가치에 기초한 것으로 이해된다.7) 이러한 이유로 캐나다 연방대법원은 표현의 자유가 정치적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민주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해왔다.8)
표현의 자유는 단순한 개인의 권리를 넘어, 민주주의 발전에 필수적인 개방적 의사 교환과 진리 추구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아를 실현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고양할 기회를 얻는다.9) 따라서 표현의 자유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자유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사회적 가치로서도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캐나다 헌장에 따라 표현의 자유는 구두나 서면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표현을 보호한다. 보호되는 표현의 범위는 정치적 발언, 상업적 표현, 예술적 표현, 성적 표현 등으로 확대된다.
캐나다 연방대법원은 헌장 제2조(b)에서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해석하여, 표현 행위가 “의미를 전달하거나 전달하려고 시도하는 모든 활동 또는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한다고 했다. 또한, 표현의 내용이 불쾌하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도 헌장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점에서 “내용 중립성” 원칙을 적용해왔다.10) 즉, 캐나다 헌장 제2조(b)는 표현의 내용을 이유로 특정 표현을 보호 영역에서 배제하지 않는다. 이는 내용 중립성 원칙에 따라 혐오표현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표현이 보호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설령 표현의 내용이 불쾌하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더라도, 그 자체로는 헌법적 보호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민주사회에서 중요한 요소이고 개인의 인격실현의 기초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며 제한될 수 있다.11) 즉 캐나다 헌장 제2조(b)에서 보호되는 표현의 자유는 헌장 제1조에 따라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명백하게 정당화될 수 있는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 이러한 제한은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고, 사회의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 정당화될 수 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은 헌장 정신에 반하는 형태로, 다른 사람들의 권리나 자유로운 권리 행사를 방해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사회적 해악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고 소수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R. v. Keegstra 사건에서 캐나다 연방대법원은 혐오표현이 헌장 제2조(b)에서 보호될 수 있지만, 헌장 제1조에 따라 사회적 평등을 증진하고 소수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제한될 수 있음을 설명했다.
또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음란물 규제와 아동·청소년 보호12), 공정한 재판 보장13), 생명 보호14), 명예 및 사생활 보호15)와 같은 공익적 목적을 위해서도 정당화될 수 있다. 이러한 제한은 표현의 자유와 다른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조화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적인 권리이지만, 타인의 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제한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캐나다에서는 혐오표현과 관련된 표현의 자유와 소수자집단 보호 사이의 헌법적 균형을 둘러싼 논쟁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16) 1960년대에는 혐오선동과 인종차별주의의 확산이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특히 온타리오주와 퀘벡주에서는 반유대주의와 반흑인주의를 포함한 혐오선동이 급격히 확산되었다. 이와 더불어 미국에 기원을 둔 신나치주의(neo-Nazi)와 백인우월주의 운동이 캐나다에서도 활동하기 시작하였다.17)
이러한 상황에서 캐나다의 법학자이자 교육자인 맥스웰 코헨(Maxwell Cohen)이 주도한 ‘혐오선동에 관한 특별위원회(Special Committee on Hate Propaganda)’가 1965년에 출범하였다. 이 위원회는 미국에서의 백인 우월주의와 신나치주의 활동에 대한 대응으로 설립되었으며, 1970년 연방형법에 혐오선동을 금지하는 조항이 추가되도록 권고하였다. 이 위원회는 캐나다에서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자유가 허용될 수 없는 방식으로 남용될 때” 그 제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혐오선동과 인종주의 운동의 두 번째 물결이 일어났다. 이때 Edmund Burke Society, Nationalist Party of Canada, Western Guard Party와 같은 극우단체들이 활동을 이어갔고, 인종차별주의 극우단체인 KKK(Ku Klux Klan) 역시 온타리오 주와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서 다시 등장하였다. 이들은 반유대인주의와 반흑인주의뿐만 아니라 반가톨릭, 반프랑스인주의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혐오선동을 퍼뜨렸다. 이러한 선동은 인쇄물, 팜플렛뿐만 아니라 전화, 비디오, 인터넷을 통해서도 확산되었으며, 심지어 학문적 인증을 받으려는 시도로 학술 저널과 책의 형태로도 출판되었다.
이로 인해 캐나다 사회에서는 혐오표현을 둘러싼 광범위한 논쟁이 지속되었다. 1982년 밴쿠버에서 열린 인종 관계와 법에 관한 심포지엄(Vancouver Symposium on Race Relations and the Law)을 시작으로, 1984년 「Equality Now!」 보고서, 캐나다 변호사협회 특별위원회 보고서, 1985년 Fraser 위원회 보고서, 1988년 법률개정위원회 보고서 등 여러 위원회의 보고서들이 연이어 제출되었으며, 이들 보고서들은 혐오 표현과 관련된 입법 개정을 제안하였다.18)19)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혐오표현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여러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다. 캐나다 연방대법원은 형법과 인권법과 관련된 사건에서 혐오표현 문제를 여러 차례 다루었으며, 이하에서는 이러한 법적 규정과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분석하고자 한다.
Ⅲ. 캐나다 혐오표현 규제의 현황 및 분석
캐나다 헌장 제15조는 인종, 출신 국적, 민족, 피부색, 종교 등을 차별금지사유로 명시하며,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다. 제27조는 다문화주의 증진을 선언함으로써,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집단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이 두 조항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을 제한하는 헌법적 근거를 제공한다.20) 따라서 이러한 헌법적 기반은 캐나다 사회에서 다양성을 보호하고 혐오와 차별로부터 소수자 집단을 보호하는 법적 틀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캐나다의 연방 형법(Criminal Code)과 인권법(Canadian Human Rights Act)은 이러한 차별금지사유에 따라 혐오 선동과 차별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연방 형법은 혐오 표현 발화자의 처벌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인권법은 혐오 표현의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제공하고 재발 방지 조치의 강구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법체계는 캐나다가 다문화사회로서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려는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함과 동시에, 사회 전체의 조화와 통합을 촉진하는 중요한 법적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관련 형법과 인권법 내용을 순차적으로 살펴본다.21)
캐나다 연방형법은 총 28부(part)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제8부 ‘개인과 명예에 대한 범죄’(Offences Against the Person and Reputation)에서는 ‘혐오선동’(Hate Propaganda)에 대한 규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규정들은 1970년 캐나다 혐오선동특별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형법에 도입된 것이다.
연방 형법 제318조 제1항22)에 따르면,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옹호하거나 조장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여기서 “제노사이드”는 식별 가능한 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파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① 그 구성원을 살해하거나, ② 집단의 생존 조건에 영향을 미치도록 계획하여 물리적 파괴를 가하는 행위를 의미한다(동법 제318조 제2항).23) 다른 사람이 제노사이드를 저지르도록 직접적으로 선동하려는 의도는 주관적 범죄요건(mens rea), 즉 범죄의 성립요건인 범죄의도를 충족시킨다.24)
“식별 가능한 집단”이란 “피부색, 인종, 종교, 출신 국가 또는 민족, 연령, 성별, 성적 지향, 성적 정체성 또는 표현, 정신적·육체적 장애”로 특정되는 집단을 말한다(동법 제318조 제4항).25) 이 조항에 따른 혐오선동으로 인한 기소는 법무부 장관의 동의가 필요하며(동법 제318조 제3항)26), 이는 기소권 남용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위축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27)
연방형법 제319조 제1항28)에 따르면, 공공장소(Public place)에서 소통적 표현(communicating statements)을 통해 식별할 수 있는 집단에 대한 혐오를 선동한 자는, 그 선동이 평화를 침해할 위험이 클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여기서 '공공장소'란, 대중이 권리로서 또는 명시적이나 암시적 초대에 의해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장소를 포함한다.29) 또한 '소통적 표현'에서 '소통'은 전화, 방송 또는 청각적이나 시각적 수단을 통한 모든 소통을 포함하며, '표현'은 전자적(electronically) 또는 전자기적(electromagnetically) 방식으로 이루어진 말, 글, 녹음뿐만 아니라 제스처, 신호 또는 그 외의 시각적 표현물도 포함된다(동법 제319조 제7항).
요컨대 이 조항이 규정하는 범죄는, 공공장소에서 발생한 표현이 치안 방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 국한되며, 이러한 표현이 공공질서에 즉각적인 위해(immediate threat)를 초래하는 경우에 해당된다.30) 이 점에서 후술할 고의적 혐오고취죄와는 구분된다.31)
연방형법은 제319조 제2항32)은 누구든지 사적인 대화를 제외한 소통적 표현을 통해 식별할 수 있는 집단에 대해 혐오를 고의로 고취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사적인 대화를 제외한 표현이라는 것, 그 표현에 있어서 의도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한편, ‘고취’란, 단순한 조장 이상으로,33)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부추기는 것을 말한다. 전술했던 혐오선동행위는 공공장소에서 전면적으로 금지되지만, 이와 달리 혐오고취행위는 공공장소라 하더라도 사적인 대화 속에서 행해진 경우에는 금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의적 혐오고취죄에 의하여 금지되는 범위는 공공장소의 혐오선동죄보다 좁다.34) 고의적 혐오고취죄는 - 제노사이드옹호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 법무부장관의 동의 없이 소추 절차를 개시할 수 없다.35)
한편, 고의적 혐오고취죄는 - 공공장소의 혐오선동죄와 달리 - 4가지 항변(special defences) 사유를 규정하여, 다음의 4가지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제319조 제3항). 즉 고의에 의한 혐오를 고취일지라도 피고인이 ① 해당 표현이 사실임을 증명한 경우, ② 그 표현이 신의에 따라(in good faith), 종교적 주제에 관한 의견이나 종교적 문헌에 대한 신앙에 기반한 의견을 주장으로써 표명하거나 증명하려고 시도한 경우, ③ 해당 표현이 공익적 주제와 관련되어 있고, 그것을 논의하는 것이 공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며, 그 표현을 사실이라고 믿는 데에 합리적 근거가 있는 경우, ④ 캐나다에서 식별할 수 있는 집단을 향한 혐오감정을 발생시키거나 발생시키는 경향이 있는 사안에 대해, 이를 제거할 목적으로, 신의에 따라 지적할 의도였던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전술했듯이 연방형법은 혐오표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주·연방의 인권법은 차별행위를 폭넓게 규제하며 피해자 구제에 중점을 둔다. 인권법은 식별 가능한 집단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광범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혐오표현과 차별적 표현을 규제할 수 있다. 인권법이 혐오표현 및 혐오선동에 대한 금지를 규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으나, 캐나다의 각 관할 지역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에 대응해왔다.36) 현재 캐나다의 모든 주는 차별 행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인권법을 통과시켰다. 캐나다 인권법(The Canadian Human Rights Act :CHRA)은 연방 차원의 인권법으로, 연방정부 및 공기업(Crown corporations), 연방규제기업에 적용된다.
캐나다 연방 인권법 구 제13조37)는 2013년 폐지되기 전까지 통신 수단을 통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 메시지를 유포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구체적으로, 제13조는 전화, 컴퓨터 또는 인터넷이나 유사한 통신수단을 통해 특정 집단을 차별금지사유로 식별하고, 이들을 혐오나 경멸의 대상으로 만드는 행위를 차별로 규정하여 금지하였다.38) 이 조항은 1970년대 신나치주의(neo-Nazi) 동조자들이 전화 메시지를 통해 혐오를 퍼뜨리는 것에 대응하여 도입되었고, 1990년대부터는 웹사이트에 게시된 혐오 콘텐츠를 규제하는 데에도 적용되었다.39)
한편, 인권법 제13조는 연방형법의 혐오 규제와 여러 측면에서 구분된다. 첫째, 연방형법은 혐오 범죄를 저지른 자를 처벌하는 데 중점을 두는 반면, 인권법은 차별 행위를 방지하거나 시정하며, 차별로 인한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40) 둘째, 제13조는 특정 소통 방식을 제한적으로 규제하는 데 그치며, 구체적으로 명시된 경우에만 적용되었다.41) 즉 형법은 인터넷, 전화, 라디오 방송, 출판물 등 모든 형태의 의사소통 방식에서 혐오 표현이 발생할 경우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반면, 구 인권법 제13조는 주로 통신 수단(인터넷이나 전화)을 통해 발생하는 혐오 표현에 한정하여 적용되었다. 셋째, 연방형법은 항변 사유를 포함하여 예외적인 상황을 고려하지만, 제13조는 이러한 예외요건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넷째, 연방형법은 고의를 요건으로 하지만, 제13조는 행위자의 의도보다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규율하였다.42)
따라서, 이러한 차이는 연방형법과 인권법 제13조가 혐오표현 문제에서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하도록 했다. 연방형법은 혐오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형사적 처벌에 중점을 둔 반면, 인권법 제13조는 피해자 구제를 중심으로 한 민사적 성격을 가졌다. 특히 제13조는 혐오표현의 고의성 여부와 관계없이 피해자에게 미친 차별적 영향을 규제함으로써, 형사 처벌의 한계를 보완하였다.
이에, 인권위원회는 제13조에 근거하여 혐오표현 피해자의 청구를 인용하여 해당 혐오 표현의 중지와 2만 달러 이하의 배상금을 명령할 수 있었으며,43) 이는 피해자 보호와 혐오표현 억제에 실질적 기여를 하였다. 결과적으로 연방형법과 인권법 제13조는 각각 혐오 범죄의 처벌과 차별 방지라는 두 측면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인터넷상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인권법 제13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중으로부터 상당한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44) 특히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이 제13조의 폐지를 요구하며 적극적인 캠페인을 펼쳤고, 2001년 9·11 테러 이후에는 캐나다에서도 반이슬람 정서가 확산되면서 인권위원회에 반이슬람 혐오 메시지로 인한 피해 신고가 급증했다.45) 이로 인해 제13조에 근거한 처벌 조항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더욱 거세졌다.
2009년, 인권위원회는 인권법 제13조의 폐지를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으나, 형법적 성격의 처벌 규정을 제거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인권법의 일반적 제재에 형법상 통상 적용되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혐오 표현에 대한 가해자에게 입증책임이 전가되고 고의가 범죄의 성립요건으로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이 근대 형사법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46)
같은 해, 인권재판소는 제13조의 처벌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47) 이에 반해 캐나다 변호사협회는 제13조 삭제에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한 논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2011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보수당은 인권법 제13조를 폐지하는 법안을 제출하였다. 이 법안은 2012년 6월 연방하원을 통과한 후 상원을 거쳐, 2014년 6월에 인권법 제13조는 최종적으로 삭제되었다.48)49)
‘전화 또는 인터넷을 통한 혐오 메시지 유포’를 금지하는 연방 인권법 제13조는 폐지되었지만, 혐오 표현 및 차별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조항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권법 제12조는 차별 또는 차별할 의도를 표현하거나 암시하는 표시(notice), 신호(sign), 상징(symbol), 로고(emblem), 또는 기타 재현물(representation)을 출판 또는 전시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러한 행위를 하도록 조장하는 것을 차별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한다. 여기서 차별 행위란, 인권법 제5조 내지 11조, 14조에 규정된 인종, 출신 국가 또는 민족, 피부색, 종교, 성별, 성적 지향, 혼인 상태, 가족 관계, 장애 및 사면 혹은 말소를 허가받은 전과를 이유로 재화·서비스·시설·숙소의 이용, 고용 기회 및 업무 관계, 임금 등 영역에서 부당한 대우 및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인권법 제12조는 새로운 유형의 차별 행위를 규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인권법상 규정된 차별 행위를 통해 차별을 의도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차별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있는 표현을 '출판 또는 게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50)
한편, 이 조항이 '차별이나 차별 의도를 암시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규제한다는 점에서, 혐오 선동에 대한 형사 구성 요건과 비교할 때 더욱 넓은 범위의 혐오 표현을 규율한다고 할 수 있다.51)
연방인권법 제13조가 폐지된 이후에도, 여러 주와 준주, 예를 들어 앨버타주(Alberta)52), 브리티시 컬럼비아주(British Columbia)53), 사스캐처원주(Saskatchewan)54), 노스웨스트 준주(Northwest Territories)55)는 여전히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적 틀을 유지하고 있다.56) 심지어 유콘 준주(Yukon)를 제외한 모든 지방에서는 특정 금지된 사유에 근거하여 차별 의도를 알리거나 차별을 선동하는 메시지를 담은 공개적 전시, 방송, 출판을 금지하는 개별 법조항을 두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인터넷상 외국인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증가함에 따라, 인권법 제13조의 재입법 논의가 다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019년, 캐나다 하원의 상임위원회는 “온라인 혐오 종식을 위한 조치”라는 보고서를 통해 혐오표현 규제의 시급성을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혐오”(hate)와 “혐오감”(hatred)의 법적 정의를 새롭게 정립했으며, 이는 캐나다 연방대법원의 판례와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정의는 인종, 원주민, 민족, 언어,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종교집단뿐만 아니라, 심각한 혐오표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집단들을 포함한다는 점을 강조했다.57)
또한, 보고서는 캐나다 인권법에 따라 보호되는 인권이 침해된 사람들이 민사적 구제(civil remedy )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58) 이 구제 방안은 이전에 폐지된 인권법 제13조를 복원하거나 유사한 내용으로 재도입할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59) 이 보고서는 온라인 혐오표현이 종종 폭력 행위에 선행하며, 2009년 이후 캐나다 경찰이 매년 1,167건에서 2,073건의 혐오 범죄를 보고했다고 언급했다.60)61)
위 보고서의 발표 이후 온라인 혐오표현 규제와 관련된 법률안들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그 가운데 2021년 발의된 Bill C-36 법안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62)63) 이 법안은 혐오 선동과 혐오 범죄를 규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특히 캐나다 인권법에 제13조를 재도입하여 인터넷이나 다른 통신 수단을 통해 혐오표현을 전달하거나 전달하게 하는 행위를 차별 행위로 규정하였다.
제13조 제1항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차별금지사유에 근거하여 경멸(detestation)이나 비방(vilification)을 조장할 수 있는 혐오표현을, 인터넷이나 기타 통신 수단을 통해 전달하거나 전달하도록 유발하는 것은 차별행위이다.64)
제13조 제2항 혐오표현을 전달하거나 전달하게 한 사람은 그 혐오표현이 공개된 상태로 남아있고 해당 표현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 한, 계속해서 혐오 표현을 전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제13조 제3항 혐오표현의 존재 또는 위치를 표시하거나, 혐오 발언 또는 그 위치에 대한 정보를 호스팅하거나 캐싱하는 것만으로는 혐오 발언을 전달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제13조 제5항 제13조는 사적 의사소통에는 적용되지 않는다.65)
(중략)
제13조 제9항(혐오 표현의 정의) 이 조항에서 혐오 표현이란 차별금지사유를 근거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경멸(detestation)이나 비방(vilification)을 표현하는 소통 내용을 의미한다.
제13조 제10항 명확히 하기 위해, 소통의 내용이 단순히 싫어함(dislike)이나 무시(disdain)를 표현하거나,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모욕하거나, 상처를 주거나, 불쾌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상기 제9항의 경멸 또는 비방을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66)
제13조 제5항 이 조항은 사적 소통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위 법안은 혐오표현의 정의를 명확히 하여 어떤 행위가 문제가 되는지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법 해석의 일관성을 높이고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대응을 명확히 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였다. 또한 제13조 제1항에서는 “인터넷이나 기타 통신 수단을 통해 전달하거나 전달하도록 유발하는 것”을 차별행위로 규정하여 인터넷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를 복원하였다. 한편,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을 함으로써, 사적 소통에서의 표현에 대한 법적 개입을 최소화하여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로운 사적 표현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캐나다 정부는 혐오표현을 규제를 위해 2024년 2월 B-63 법안을 발의했다.68) 이 법안은 온라인상의 혐오표현과 아동 성 착취물과 같은 유해한 콘텐츠에 대한 새로운 규제 체계를 마련하고(온라인 해악법, Online Harms Act), 연방 형법과 캐나다 인권법을 개정하여 혐오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우선, 이 법안은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해악을 방지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 운영자에게 콘텐츠 관리에 대한 책임을 부과한다.69)70) 이를 위해 디지털 안전위원회(Digital Safety Commission of Canada)를 설립하여 온라인 플랫폼이 법을 준수하는지 감독하고, 위반 시 벌금 부과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이와 관련하여, 온라인 플랫폼은 혐오표현을 감지하면 신속하게 삭제할 의무가 있으며, 이런 절차는 주로 사용자의 신고를 통해 시작된다. 사용자가 혐오 표현을 신고하면, 플랫폼은 해당 콘텐츠를 24시간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플랫폼은 혐오 표현이나 유해 콘텐츠를 쉽게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필수적으로 도입해야 된다.
또한 아동 성 착취물 및 비동의된 개인 콘텐츠에 대한 강력한 보호 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한편, 사적 소통에서 발생한 콘텐츠에 대해서는 규제를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
다음으로, 이 법안은 형법에 새로운 혐오 범죄 항목을 추가하고,71) “혐오(hatred)”의 법적 정의를 도입하였다. 또한, 혐오선전 범죄의 최대 형량을 높였다.
또한, 이 법안은 B-36 법안과 유사하게 캐나다 인권법을 개정하여, 제13조의 내용을 복원하였다. 즉 인터넷을 통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경멸 또는 비방을 유발하는 혐오표현을 차별 행위로 규정하였다.
캐나다의 법적 체계는 혐오표현 규제를 통해 사회적 조화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평가해볼 수 있다. 연방 형법은 혐오선동과 같은 중대한 혐오 범죄에 대해 강력히 처벌하며, 인권법은 차별을 방지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규제는 캐나다 헌장 제15조와 제27조의 평등 및 다문화주의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통해 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캐나다 인권법 제13조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메시지의 확산을 금지하고, 이를 규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2013년 이 조항이 폐지된 것은 혐오표현 규제와 표현의 자유의 충돌을 반영한 결과였다. 형법의 혐오 범죄 규제가 인권법 제13조와 동일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된 것이다.72)
인권법 제13조가 폐지된 이후, 캐나다에서 혐오표현 규제의 중요한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이 바로 동법 제12조이다. 제12조는 비록 제13조만큼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규정은 아니지만,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적 표현을 금지함으로써,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13조가 폐지된 이후 캐나다 사회는 온라인 혐오표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다시 규제하기 위한 재입법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2019년 발표된 “온라인 혐오 종식을 위한 조치” 보고서는 제13조를 복원하거나 유사한 법적 규제를 도입할 필요성을 제기하였으며, 이는 캐나다가 혐오표현 문제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여전히 사회적 합의로 존재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캐나다의 경험은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은 현재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를 통해 혐오 표현 규제의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에 적용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즉 혐오 표현이 집단 전체를 대상으로 한 차별과 폭력의 도구로 작용할 때, 기존 법률로는 충분한 대응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도 다문화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개인에 대한 모욕을 넘어서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캐나다는 인권법 제13조 폐지 이후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공백과 혼란을 겪은 후, 온라인 혐오 표현을 포함한 문제를 더 기술적이고 세밀하게 규제하는 재입법 논의로 이어졌다. 이는 한국이 혐오 표현 규제를 마련할 때 법적 장치의 중요성과 민사적 구제 수단, 그리고 온라인 환경에 맞는 규제의 필요성을 사전에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혐오 표현과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법적 균형을 맞추면서 소수자 보호와 사회적 통합을 위한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법적 대응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Ⅳ. 캐나다 혐오표현 관련 주요 판결례
캐나다에서 혐오표현금지법에 대한 판례는 그 수가 많지 않으나, 헌장 제2조(b)에 대한 중요한 사법적 해석을 하고 있다.73) 캐나다 연방대법원은 형법과 구 인권법 제13조의 관련 조항들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들은 혐오표현금지법의 목적과 그 정당성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혐오표현의 규제 범위를 명확히 하는 데 기여했다. 즉 이 판결들은 혐오표현이 사회 내 취약집단과 캐나다 민주주의에 미치는 해악을 고려할 때, 이를 제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이러한 규제들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에서 청구인 키그스트라(James Keegstra)는 알버타의 고등학교 교사로서 수업 중 유대인에 대한 혐오발언을 하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유대인이 선천적으로 기만적·파괴적이고, 기독교의 붕괴를 계획하고 있으며, 불황과 전쟁을 일으키며, 홀로코스트는 동정심을 얻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는 등의 발언을 반복적으로 하였다. 청구인의 수업 내용이 알려지면서, 그는 연방형법 제319조 제2항75)에 따라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고의적으로 선동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에 청구인은 캐나다 권리와 자유 헌장의 제2조(b)에 따른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4:3 판결로 연방형법 제319조 제2항이 합헌이라고 판단했으며, 이로 인해 청구인의 유죄가 유지되었다. 다수의견은 해당조항이 청구인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였지만, 이는 헌장 제1조에 따른 자유에 대한 정당한 제한이라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혐오선동(hate propaganda)의 해악성을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째, 혐오선동의 표적이 된 집단구성원 개인의 존엄성, 자존감 훼손, 그리고 사회적 수용의 실패 등 ‘개인’에게 해악을 미친다.76) 둘째, 혐오선동은 초래되는 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차별과 폭력을 초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즉 연방대법원은 혐오선동이 표적이 된 개인의 존엄성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소수자 집단에 대한 조직적인 차별이나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며, 이는 캐나다 사회에 긴급하고 중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하였다.77)
또한 연방대법원은 해당 조항의 입법목적이 매우 중요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78) 첫째, 의회는 혐오 선동이 가져오는 심각한 해악성을 인정하고, 표적 집단이 겪는 고통을 방지하며 캐나다에서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긴장을 줄이기 위해 식별가능한 집단에 대한 고의적인 혐오선동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둘째, 이 입법 목적은 다수의 연구 결과와 혐오 선동의 잠재적인 재앙적 효과에 대한 축적된 역사적 지식에 의해 뒷받침된다. 셋째, 혐오선동 근절에 대한 국제적 헌신과 캐나다 헌장 제15조의 평등, 제27조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강조는 이러한 입법 목적의 중요성을 더욱 강화한다. 이어서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균형성을 중심으로 상세하게 살펴본다.
청구인들은 제319조 제2항이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으며, 명확성이 부족해 불필요한 자기검열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조항은 혐오 선동뿐만 아니라 기타 표현까지 포함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넓게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사건 다수의견을 작성한 딕슨(Dickson) 대법원장은, 형법 제319조 제2항의 핵심 쟁점이 낮은 가치의 표현 중에서 입법 목적에 따라 규제 가능한 표현과 형사적 대응이 불필요한 표현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에 있다고 설명했다.79) 그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최소침해성 원칙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해당 조항의 구체적 특성과 그 효과를 상세히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분석은 제319조 제3항에 열거된 범죄의 성립 요건과 항변 사유와 밀접하게 관련된다.80)
딕슨 대법원장은 이 조항이 광범위하고 모호하다는 주장에 대해 “사적인 대화”는 범죄로 간주되지 않으며, 오로지 공적으로 혐오를 고취할 의도가 있을 때만 규제가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이 법은 혐오를 고취할 의도로 사적으로 이루어진 표현은 금지하지 않으며, 이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사적인 대화가 우발적으로 공개되더라도, 이는 규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81)
딕슨 대법관은 이 법 조항이 모든 공적인 혐오 발언을 규제하는 것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비판에 대해, 정부가 방지하고자 하는 혐오 발언의 해악은 특정 매체나 지역에 한정될 수 없으며,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규제를 특정 영역으로 제한하려는 시도는 법의 입법 목적에 맞지 않으며, 공적인 혐오 발언 전체를 규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딕슨 대법원장은 형법 제319조(2)의 위헌성을 판단할 때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로 혐오 고취가 ‘의도적으로’ 행해졌는지 여부라고 했다. 이는 범죄의 주관적 요건과 관련되며, 피고인이 혐오를 고취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졌거나 그 혐오고취의 결과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상한 경우에만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딕슨 대법원장은 “의도적으로”라는 해석이 표현의 자유 제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며, 단순히 과실이나 무모함이 아니라 더 엄격한 주관적 요건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요건은 법의 적용 범위를 좁혀 대상이 되는 표현의 범위를 축소하는 효과를 가지며, 결과적으로 제319조 제2항이 표현을 지나치게 규제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방어 장치가 된다고 하였다.82)
딕슨 대법원장은 이 조항이 의도적으로 적대적인 표현만을 규제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83) 즉, 제319조 제3항의 항변 사유는 의도적 혐오 고취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는 피고인이 방어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법이 지나치게 넓게 적용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항변 사유 덕분에 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수 의견은 형법 제319조 제2항이 캐나다의 평등과 다문화적 관용을 증진하려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형사적 제재가 필요한지 여부를 검토했다. 이 형법규정의 그러한 역할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 다양한 방법이 함께 사용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헌장 제1조는 항상 최소한의 침해만를 가하는 방법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며, 중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권리나 자유에 대한 다양한 제한이 허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이러한 제한이 헌장의 권리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다면, 더 제한적인 조치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혐오 선동으로 인한 심각한 해악을 방지하기 위해, 표현의 일부를 억제하고 금지하는 더 엄격한 대응이 필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84)
이 사건에서는 백인우월주의를 표방하는 Western Guard Party의 당 대표인 존 로스 테일러(John Ross Taylor)가 유대인과 유대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는 자동 전화 메시지를 전파한 것이 문제되었다. 혐오표현의 피해자들은 캐나다 인권위원회에 진정하였고, 인권위원회는 이를 인권재판소에 회부했다. 인권재판소는 테일러의 행위가 캐나다 인권법 제13조 제1항88)을 위반하였다고 판단하고 해당 행위에 대한 중지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테일러는 이를 따르지 않았고, 그 결과 법정모욕죄로 테일러는 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그 당은 5,000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테일러는 이 조항이 헌장 제2조(b)에 따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으나, 연방법원과 연방항소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었고, 이에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였다.89)
이 사건 다수의견을 집필한 딕슨 대법원장은 혐오메시지의 유포가 특정 집단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평등과 조화를 해치는 행위라고 하였다. 인권법의 목적은 구조적 차별을 해소하는 데 있으며, 제13조는 과도하게 광범위한 규제를 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조항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합리적 제한이며, 헌장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딕슨 대법원장은 혐오선동이 개인과 사회의 존엄성에 해를 끼치며, 평등한 다문화사회에서 필요한 관용과 개방적 태도를 약화시킨다고 강조했다.90) 그는 헌장 평등조항(제15조)과 다문화주의 조항(제27조)을 바탕으로, 개인의 존엄성과 평등이 존중받아야 하며, 문화적 소속감이 개인의 자기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91)
이하에서는 최소침해성 요건심사를 중심으로 판결내용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본다.
테일러는 제13조 제1항의 “혐오 또는 경멸”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모호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법원이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단순히 불쾌감을 주는 표현도 검열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인권법이 기본법(fundamental law)으로 이해되며, 혐오와 경멸의 범위는 모든 개인의 평등과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 목적과 일치한다고 보았다.
딕슨 대법원장은 혐오의 의미를 강렬한 감정으로 정의하며, 이는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혐오의 개념이 몹시 싫어함, 비방, 욕설과 같은 강한 적대감을 내포하는 표현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하며, 이 해석이 인권법의 입법목적과도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제13조는 근절해야 할 심각한 해악을 유발하는 표현에만 적용되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불필요한 제한을 피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92)
상고인은 연방 인권법에 면책조항이 포함되지 않아 과도하게 광범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딕슨 대법원장은 두 가지 이유로 이 주장을 반박했다. 첫째, 상고인이 주장하는 면책조항은 형법 등 다른 규정에 적용되며, 인권법 제13조(1)와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둘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혐오선동을 방지하는 중요한 목적이 있다면 정당화될 수 있으며, 모든 표현에 대해 면책을 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상고인은 제13조(1)에 의도요건이 없다는 점에서 이 조항이 과도하게 광범위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딕슨 대법원장은, 제13조 제1항은 의도가 아닌 혐오나 경멸의 결과에 중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차별 의도가 없어도 차별적 효과가 있으면 규제될 수 있으며, 이는 구조적 차별이 의도적 차별보다 더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고 했다. 따라서, 의도요건의 부재는 이 조항의 최소침해성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아니라고 하였다.
상고인은 차별 판결이 개인에게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테일러가 법정모욕죄로 1년의 실형을 받은 것이 그 예시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딕슨 대법원장은 테일러의 징역형이 차별 행위 자체 때문이 아니라, 법정모욕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인권재판소는 차별행위 중단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이를 위반하면 형사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 차별행위자는 이러한 명령을 통해 자신의 행위가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따라서 고의성이 없다는 주장은 반박될 수 없으며, 징역형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93)
이 사건 피진정인인 제시카 보몽트(Jessica Beaumont)는 인종, 민족, 종교,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인터넷에 게시하였다. 이에 리처드 워먼(Richard Warman)은 제시카 보몽트의 인터넷 게시물들이 라스타파리안, 유대인, 흑인, 성소수자, 중국인, 히스패닉, 원주민 등을 대상으로 한 혐오와 경멸을 유발할 것이며, 이는 캐나다 인권법 제13조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진정을 제기하였다.95)
인권재판소는 리차드 워먼의 진정을 인용했다. 이에 제시카 보몽트에게 차후 인터넷에 유사한 혐오 메시지를 유포하는 것에 대해 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제시카 보몽트가 리차드 워먼에게 차별적 발언을 한 것에 대해 3,000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인권재판소는 이 사건 피진정인이 인권법 제13조를 위반하였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판단하였다.
이 사건 피진정인은 본인이 “파괴자 제시”(Jessy Destruction)라는 필명을 사용하여 “Stormfront.org”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다수의 게시물을 올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게시물에는 특정 인종, 종교, 또는 사회적 집단에 대해 혐오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캐나다 인권법 제13조는 전파를 통해 혐오를 야기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조장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피진정인이 자신의 필명을 사용하여 문제된 메시지를 직접 게시한 행위는 혐오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최소한 그러한 메시지가 확산되도록 조장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피진정인의 게시물은 사적인 소통이 아닌 공적인 소통의 성격을 띠며, 반복적으로 전달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즉 피진정인이 혐오 메시지를 게시한 인터넷 사이트인 Stormfront.org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개 포럼이라는 점과 이로 인해 인터넷을 통해 반복적으로 전파된 점을 고려하여 판단했다.96)
피진정인의 메시지에는 인종, 종교, 출신 국가, 성적 지향에 근거한 혐오와 경멸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특히 인권재판소는, 백인이 아닌 자에 대한 강제추방이나 이들을 백인으로부터 분리하도록 강조하는 메시지들은, 인종적 순수성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폭력을 조장함으로써, 이러한 표적 대상의 구성원들에 대한 혐오나 경멸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97)
즉 특정 집단에 대해 매우 선동적이고 경멸적인 용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했으며, 이러한 메시지가 대상 집단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조장한다고 판단했다. 인권법 제13조에 따라, 이러한 메시지는 반복적으로 전달되었으며, 이는 규제 대상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98)
캐나다 연방대법원과 인권재판소는 혐오표현 규제와 관련된 여러 사건을 통해, 혐오표현이 개인의 존엄성과 사회적 조화에 미치는 해악성을 강조해왔다. 이들 판결에서는 혐오표현 규제의 목적을 중요하게 고려하였으며,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명확성 및 광범위성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특히, Keegstra 사건과 Taylor 사건에서는 혐오 선동의 해악성과 이를 규제하는 입법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도록 하는 심도 있는 검토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혐오표현이 공공 영역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의도적으로 혐오를 고취하려는 목적이 있었는지, 그리고 불필요한 표현 억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방어 장치를 고려하였다.
결론적으로, 캐나다 연방대법원과 인권재판소는 혐오표현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규제가 헌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명확하고 신중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이를 통해 캐나다는 평등과 다문화적 조화를 중시하는 사회적 가치를 보호하면서도,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조화롭게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Ⅴ. 혐오표현 판단기준
캐나다 연방대법원과 인권재판소는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를 심사하면서, 규제의 목적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명확성 및 광범위성 기준도 중점적으로 고려하였다. 따라서 혐오표현 규제의 목적이 어떻게 설정되는지, 그리고 그 규제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하다.
연방대법원은 혐오표현 규제의 목적이 두 가지 주요 해악을 방지하는 데 있다고 명시하였다. 첫째는 개인의 존엄성 침해를 막기 위한 것이며, 둘째는 사회 전반에 미치는 구조적 차별이나 폭력의 유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즉, 인종적·민족적·종교적 소수자를 혐오표현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고 사회적 화합을 증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캐나다 헌장의 평등조항과 다문화주의조항은 이러한 규제 목적을 강력히 뒷받침한다고 강조했다.
명확성 원칙은 법률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void) 무효가 되는 경우를 의미하고, 광범위성 원칙은 법률 규정이 명확하더라도 그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overbreadth) 무효가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99)100) 또한, 혐오표현 규제의 위헌성 심사에서 핵심 쟁점은 규제가 모호하거나 광범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지 여부이다. 법률이 광범위하여 입법목적과 관련 없는 표현까지 제한할 위험이 있는지, 그리고 용어가 모호하여 개인이 그 의미를 정확하게 분별하기 어려운지를 판단한다.101)102)
이러한 판단을 위해 연방대법원과 인권재판소는 혐오표현 규제와 관련된 다양한 요소를 검토한다. 이에 따라 혐오표현 규제에 있어서 주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1) 혐오표현의 개념적 구성요소, (2) 혐오선동의 ‘의도’ 및 그 효과에 대한 ‘인지’ 여부, (3) 항변 사유 및 면책 사유의 존부, (4) 반복성. 이들 요소는 각각 혐오표현의 정의와 적용 범위, 그리고 규제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법률은 사회적으로 제거해야 할 심각한 악(evil)을 유발하는 표현에만 적용된다. 이러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위축시키지 않도록 ‘충분히 명확한 행위 기준’을 제공해야 한다.103) 이러한 기준은 법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예측 가능하게 조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한다. 따라서 규제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혐오”와 관련된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법적 규제 대상인 “혐오”는 단순히 미움이나 불쾌감이 아니라, 훨씬 강렬하고 깊이 느껴지는 “몹시 싫어하는(detestation)” 수준의 부정적인 감정을 의미한다.104) 또한 혐오는 파괴를 전제로 하며,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는 무감각, 편견을 조장하고, 대상 집단과 우리 사회의 가치에 대한 파괴를 부추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혐오는 이성을 배반하는 가장 극단적인 감정이며, 특정 집단에게 행사될 경우, 그들이 경멸, 멸시, 그리고 집단 소속을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을 것임을 내포한다.105) 이러한 의미에서, 내심의 혐오 감정 자체가 규제 대상이 될 수는 없으며, 이러한 감정이 외부로 표출될 때 법적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혐오 개념을 바탕으로, “열렬하고 극단적(ardent)”이며 “지독한(egregious)” 성격의 표현만이 혐오표현으로 규제된다. 예를 들어, 사스캐처원주 인권법 제14조 제1항(b)에 규정된 “개인이나 집단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은 이러한 이유로 위헌으로 판단되었다.106) 이렇듯, 혐오라는 극단적 감정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단순히 불쾌하거나 공격적인 주관적 견해까지 규제 범위에 포함되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107)
다음으로, 혐오표현과 관련된 개념으로서 “혐오선동”은 부정적인 극단적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심어주는 행위를 의미한다.108) 즉, 혐오 표현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자신의 내심에 있는 혐오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는 것이고, 혐오선동은 나아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혐오 감정을 갖게 하고 비방, 욕설 등 차별적 행위를 조장하는 것이다. 혐오표현과 혐오선동은 구분이 쉽지 않지만,109) 후자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구분이 필요하다. 표현의 의도나 객관적 기준을 고려하면, 개념적으로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다.110)
연방대법원은 혐오 표현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주요 비판, 즉 어떤 것이 혐오 표현인지 주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비판에 대응하여 ‘합리적인 사람(reasonable person)’의 관점을 제시했다. 혐오표현 규제는 “관련 내용과 정황을 인지하고 있는 합리적인 사람의 관점”에서 해당 표현이 표적 집단 또는 그 구성원에 대해 혐오나 경멸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하여 “객관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111) 다시 말해, 표현을 한 자가 표적 집단을 혐오에 노출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합리적인 사람’의 관점에서 그러한 혐오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112) 이는 혐오표현을 판단하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작용한다.
혐오 표현에 대한 형사적 제재를 부과하는 경우, 발화자의 ‘의도’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Keegstra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형법 제319조(2)가 혐오를 고취하려는 고의성, 즉 혐오 고취의 의도를 주관적 요건으로 포함하고 있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했다. 이 정신적 요소는 피고인이 혐오를 고취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졌거나, 그 결과 발생 가능성이 확실하거나 거의 확실하다고 ‘인지’했을 때만 성립된다. 혐오를 선동하는 사람은 식별 가능한 집단에 대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혐오 반응을 매우 확실하게 의도하거나 예상해야 한다.113)
이처럼 혐오 표현 규제에서 의도가 중요한 이유는, 규제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혐오표현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경우, 반드시 그 의도를 고려하여 규제 대상이 되는 표현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114)
한편, 혐오표현에 대한 비형사적 제재에서는 의도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지 않는다. Taylor 사건에서 연방대법원 다수의견은, 연방 인권법 제13조(1)에서 표현의 ‘의도’ 요건 불비로 인해 규제가 광범위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반대 의견에 대해, 의도보다는 효과에 중점을 두고 규율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차별을 고려한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또한, 차별의도가 인권법상 차별 판단의 필수 요소가 아니라고 하면서, 인권법의 목적과 효과는 피해자에게 보상과 보호를 제공하는 데 있으므로, 형법과는 달리 인권법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보다 넓게 제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때 헌장 제1조에 따른 정당성 심사에서 인권법의 비형사적 특성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115)
법률로 혐오 표현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경우, 해당 조항의 문구는 명확해야 하며 광범위하지 않아야 한다. 연방대법원은 연방형법 제319조(2)의 항변 사유 규정을 통해 규제 대상이 되는 표현(고의적 고취)의 범위를 명확히 한정하고, 위법성이 조각되는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이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하거나 광범위할 위험성을 현저히 감소시킨다고 판시하였다. 즉, 항변 사유의 인정은 처벌에 신중하게 접근하도록 하여, 처벌 규정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
한편, 차별적 혐오 표현에 대한 인권법적 규제에서도 예외가 인정되는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연방대법원은 캐나다 인권법 제13조(1)에 형법의 항변 사유와 같은 면책 사유를 규정하지 않다고 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면책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광범위한 법률이라는 주장은, 인권법이 형사적 처벌을 부과하는 형법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고 하였다. 아울러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제한을 정당화할 중대한 목적이 존재한다면, 해당 조항이 규제 대상이 되는 모든 표현에 대해 면책을 허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하였다.
캐나다 인권법 제13조는 혐오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전달될 때만 위반으로 간주한다. 이는 녹음된 메시지가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로 반복적으로 유포되거나, 인터넷에 혐오 메시지가 담긴 글을 반복적으로 게시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표현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마치 실체가 있는 주장으로 사회에 인식될 위험이 있으며,116) 그 피해가 지속됨에 따라 피해자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 따라서 혐오 표현이 일회성이 아닌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여부는 혐오 표현 판단에서 중요한 요소로 고려된다.
캐나다는 형법과 인권법을 중심으로 혐오표현을 다각도로 규제하는 대표적인 국가이다. 형법은 혐오표현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심각한 해악을 방지하기 위해 형사적 제재를 부과하며, 주로 공공질서 유지와 사회적 안전을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둔다. 반면, 인권법은 혐오표현이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를 규제하고, 피해자에게 민사적 구제를 제공하며, 이러한 표현의 재발 방지에 주력한다. 이처럼 캐나다의 법적 체계는 혐오표현에 대해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통해 보다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규제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혐오표현의 상황별 성격과 그로 인한 위해 정도가 상이하기 때문에, 형사적 처벌과 민사적 구제를 모두 활용하는 다각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캐나다 연방대법원은 이러한 입법적 조치들을 뒷받침하며, 혐오표현에 관한 판단 기준을 마련하는 판례들을 축적해 왔다. 연방대법원은 특히 혐오표현 규제가 소수자 보호와 다문화적 공존을 촉진하는 정당한 조치임을 확인하면서, 이 규제를 사회적 평등과 조화를 이루는 수단으로 해석하였다. 이는 캐나다의 다문화사회에서 취약 계층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며, 헌법이 보장하는 모든 개인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중요한 원칙을 구현하는 것이다. 소수자 보호는 특정 집단에 대한 관용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누리도록 하는 헌법적 의무로서 강조된다.
이와 관련해, 혐오란 그 개념 자체가 정의하기 어렵고, 일반적인 반감과 구별될 필요가 있다. 혐오는 극단적 형태의 반감을 의미하며, 이 감정이 언제 법적 규제의 대상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법적 규제는 감정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 민족, 종교 등의 이유로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구체적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출판물이나 게시된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존재할 경우, 그 해악이 더욱 증대될 수 있음을 연방대법원은 명확히 하며, 혐오표현이 공공장소에서 지속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캐나다의 혐오표현 규제 및 그에 대한 사법적 대응은 소수자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사회적 통합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캐나다는 혐오표현 문제애 다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Ⅵ. 결론
본 연구는 다문화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 규제 간의 관계를 법적, 헌법적 관점에서 탐구하며, 특히 캐나다의 사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법적 기준과 판례를 분석하였다. 캐나다는 1960년대부터 연방과 주 차원에서 체계적인 혐오표현 규제에 관한 법체계를 구축해 왔으며, 이를 통해 소수자 보호와 사회적 통합을 증진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왔다. 캐나다의 혐오표현 규제는 형법과 인권법을 통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며, 혐오표현의 처벌과 차별적 표현의 방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오랫동안 축적된 판례들은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 규제 사이의 균형을 중시하면서, 혐오표현이 사회적 평등과 소수자 보호에 미치는 해악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에 관한 판단기준을 정립해 왔다. 이러한 사법적 대응은 캐나다 사회가 다문화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혐오표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 사회도 최근 이주민에 대한 혐오표현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이에 대한 법적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본 연구는 캐나다의 법적 경험과 판례 분석을 통해 한국에서 혐오 표현 규제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소수자 집단의 보호와 사회적 통합을 증진시킬 수 있는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에 캐나다의 사례를 참고하여, 포용적이고 조화로운 다문화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법적 시스템과 사법적 판단기준을 마련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