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국제거래의 중요 논점중의 하나는 그 태생적 특징으로 인해 이행의 확보와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COVID-19의 급격한 확산으로 국제매매계약의 계약불이행 가능성이 발생하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었다. 또한 COVID-19로 인한 계약불이행의 사정이 불가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계약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 있는 등 다양한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COVID-19에 의한 계약불이행의 문제를 국가가 개입하여 해결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이전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즉 COVID-19와 불가항력 충족요건에 관한 분석을 기초로 하여, 당시 많은 국가들이 국가경제의 봉쇄(lockdown) 및 국제무역의 혼란으로 인해 발생 가능한 국제적 계약불이행에 따른 혼란을 선제적으로 방지하고자 하는 국내 입법 및 국가 차원의 선언을 하고 있다.3) 가령 당시 트럼프행정부와 COVID-19의 영향으로 국제사회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소위 ‘자국우선주의’가 극에 달하고 있으며, 이러한 것의 영향으로 사적인 국제거래에서까지 개별 국가의 조치(입법 및 공식적 선언)을 통해서 국가가 개입하는 경향이 발생하며, 이는 장기적으로 국제거래관계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어 적절한 대응이 요구된다.
특히, 중국과 인도는 우리와의 국제거래에 있어 중요 교역국이며, 거래 비중도 상당하다. 따라서 양국 거래 당사자와의 관계에서 거래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구체적으로 계약불이행에 대한 면책을 주장하는 근거가 중국정부의 불가항력 확인서4)(force majeure certificate) 또는 인도 재무부의 정부선언인 경우, 그리고 계약당사자가 분쟁해결을 위해 제3국의 준거법으로 합의한 경우 그 처리에서 있어 법적 논쟁 가능성이 충분하다. 따라서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5)가 발행한 불가항력확인서 및 인도 재무당국의 불가항력 선언을 법적으로 어떠한 평가를 내릴 것이며, 또한 그 효과에 대한 법적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COVID-19의 불가항력 판단에 관한 연구는 기초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국가차원의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 국제거래질서를 훼손하는 조치에 대한 법적 분석이 필요하며, 이는 COVID-19의 발생과 연결되어 더욱 노골적으로 자행되고 있어 이에 대한 현상 분석과 법적 조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Ⅱ. 국제거래에서의 정부개입 현상
CCPIT 불가항력확인서 및 인도 정부선언에 대한 법적 평가를 위해서 먼저 관련 근거 법률을 조사하며, 동시에 중국 및 인도 법원에서 내려진 관련 판결들을 분석하여 근거 법률의 성격을 파악한다. 또한 국제거래 상대방 국가에서 이루어진 법적 판단을 분석하여 외국 법원의 태도를 살펴본다.
COVID-19로 인한 국가경제의 봉쇄조치는 국제거래 당사자가 이행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되어, 소위 말하는 ‘불가항력’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 국제거래 사례에서 발견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개별 국가가 자국의 거래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개입하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특히 COVID-19의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개입의 방법은 국가의 입법 및 공식적인 선언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아래에서는 이러한 각 국가의 예를 살펴보면서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기로 한다.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에서는 COVID-19로 인한 계약불이행에 대하여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불가항력확인서를 발급하고 있으며, 2020년 4월까지 7004건을 발행했다.6) CCPIT의 불가항력확인서의 경우, 가령 중국법원에서 국제거래의 외국 당사자와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면 중국법원은 양 당사자가 합의한 준거법이 존재하더라도 중국법에 근거한 동 확인서를 적용하게 하고 있다. 이는 불가항력확인서 관련 규정을 ‘국제적 강행규정’(international mandatory rule 또는 overriding mandatory provisions)이라 주장을 할 것이다.7) 불가항력 관련 중국법원의 관행을 보면, COVID-19가 발생하기 전인 2016년 판결에서 당사자가 불가항력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CCPIT에 불가항력 증거를 제출하기로 한 후, 이러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 중국법원은 불가항력 주장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것은 중국법원이 CCPIT 확인서만으로 불가항력에 관한 판단을 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CCPIT에 의해 불가항력이 다루어지고 또한 중국법원에서 이를 근거로 판단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법에 의하면 CCPIT 확인서가 증거로서의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인도의 경우 2020년 2월 재무부 명의로 COVID-19로 인한 공급망 훼손을 불가항력이라 공식적으로 선언을 하였다.8) 이러한 정부선언을 통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COVID-19를 자연재해 상황으로 고려하여 불가항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 또한 정부당국의 법적 근거에 의한 선언으로서 효력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러시아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조치를 취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9) 사적인 국제거래에서 개별 국가의 조치(입법 및 공식적 선언)을 통해서 개입하는 경향이 발생하며, 이는 장기적으로 국제거래관계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어 적절한 대응이 요구되며, 개별 국가의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 국제거래질서를 훼손하는 조치에 대한 법적 분석 및 대응이 요구된다.
COVID-19와 국제거래 이행의 측면에서 불가항력에 대한 분석에서 더 나아가 현시점에서 국제사회의 개별 국가에서의 조치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중국의 불가항력확인서 또는 인도 재무부의 정부선언)에 대한 법적 분석을 하며, 동시에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는 국제적 강행규정을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실제로 이러한 사례가 우리 법원에서 다루어야 하는 경우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CCPIT의 불가항력확인서는 상업 인증 분야의 사실 증명 행위에 속하며, 즉, CCPIT는 신청자의 신청에 따라 불가항력과 관련된 사실을 증명해야 함을 의미하며, 법적 근거는 “중화 인민 공화국 대외무역법"과 국무원이 승인한 “중국 국제무역촉진협의회 조항”이며, CCPIT가 발행한 불가항력확인서는 전 세계 20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의 정부, 관세, 상공 회의소 및 기업에서 인정을 받았으며 지역 밖에서도 강력한 집행력을 가지고 있다.10)
한편, 인도의 경우 정부의 공식적인 선언을 통해서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COVID-19를 자연재해 상황(a case of natural calamity)으로 고려하여 불가항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 또한 정부당국의 법적 근거에 의한 선언으로서 효력이 있다. 중국과 인도는 특히 이러한 국가적 조치로 COVID-19에 의한 국가봉쇄조치 발생으로 계약상 의무불이행이 불가항력에 해당하여 당사자를 계약상 의무에서 제외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위 국내법 조항들이 제3국법이 준거법으로 지정된 국제계약과 관련하여 법적 구속력이 있는냐 하는 것이며, 다시 말해, 이러한 국내법 조항들이 국제적 강행규정으로 간주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로 논쟁의 여지가 있다.
전례 없는 세계적 전염병의 유행 및 국가 차원의 공익 보호의 상황에서 COVID-19 관련 불가항력의 판단기준을 분석한 기초 연구를 바탕으로 더 나아가 한 국가의 국내법으로 불가항력을 판단하여 그것이 국제계약에 개입하는 현상은 불가항력 자체 판단 문제뿐만 아니라 각 국가의 준거법과 재판관할권을 정하는 법의 요체인 국제사법의 논리적 체계에 중대한 과제라는 생각을 한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중국, 인도 및 러시아에서 행해지는 사적인 국제거래에 국가의 개입이라는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당사국들이 주장하는 법적 근거의 주가 되는 국제적 강행규정에 대한 논의를 이하에서 하기로 한다.11)
Ⅲ. 국제사법과 코로나19에 의한 불가항력
국제적 강행규정의 의미를 정리하고 그 적용 판례를 분석한다. 국제적 강행규정은 아직 정립이 완전히 이루어진 분야가 아니며, 다양한 학설과 판례가 존재한다. 따라서 기존의 판례를 통하여 국가의 관행을 분석하며 또한 각 국가의 관련 법률을 조사·분석하여 실무적 차원에서라도 그 의미를 정리하고자 한다.
국제적 강행규정의 다양한 분류 중에서 그 원천에 따라 준거법 소속국의 국제적 강행규정, 법정지의 국제적 강행규정, 그리고 제3국의 국제적 강행규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CCPIT 불가항력확인서 및 인도 정부선언의 관련법 규정들을 위의 분류방법에 따라 적용하여 관련 판결을 예측·분석하는 방법을 통하여 그 의미를 명확히 하며, 동시에 그 적용가능성에 대한 판단을 한다.
불가항력에 대한 법적 분석은 국제사법에서는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교과서를 보면 불가항력은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는 분량으로 서술하고 있다.12) COVID-19 이전에도 국제사회는 이미 국제거래에 있어 다양한 종류의 불가항력적인 사건이 발생하였고 상호 영향을 받아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처럼 논의가 부족한 것은 다소 의외이다.13) 생각건대, 불가항력의 문제는 계약의 법률 규정으로 처리할 수 있는 또 다른 계약원칙에 불과하다는 생각들이 그 이유라 보여 진다. 하지만 COVID-19 이전에는 이러한 견해들이 옳았을지 모르지만 앞서 본 중국정부 및 인도정부의 COVID-19에서 불가항력을 처리하는 국가적 차원의 조치를 보면 이는 더 이상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COVID-19와 관련하여 불가항력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매우 높으며 이는 국가의 이익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불가항력의 이슈도 그렇지만 국제사법은 전통적으로 국가 간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적 당사자 간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COVID-19로 인한 불가항력 분쟁에 대한 국가적 이해관계는 특히 공서와 강행규정 등의 문제로 인식하게 되어 국제사법의 중요한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COVID-19로 인한 국제거래분쟁의 증가는 법원에 적용 경험이 없는 외국의 불가항력법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어떤 경우는 COVID-19에 특화된 새로운 외국 법률이 포함되어 있어 외국 불가항력법과 법정지간의 법적용에 있어 상당한 분쟁가능성을 야기하고 있다.14)
국제사법, 특히 준거법 선택의 원칙은 관련 실체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양당사자간의 준거법 선택의 문제 나아가 구체적으로 불가항력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는 관련 실체법의 비교 분석이 중요한 것이 그 이유이다. 하지만 양 당사자의 실체법이 본질적으로 동일하고 동일한 결과(즉, “허위 충돌”)를 초래하는 경우 이러한 법리 분석은 사실상 크게 실익이 없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양 당사자의 실체법적 불가항력 법리를 비교하는 것은 상호 법적용의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 양자의 차이점을 분석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분석은 앞서의 많은 연구들을 참조하면 될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불가항력 문제에 적용되는 양당사자 국가의 국제사법 규정을 비교하고 특히 앞서 언급한 중국의 불가항력확인서의 법적 평가를 국제사법의 제 규정을 가지고 판단하는데 중점을 둘 것이다.15)
중국은 사스라는 전염병과 국제적 요소가 포함된 불가항력 사례는 단 2건만 보고되었다. J.PI Travel U.S.A. v. Yangtze River Shipping Overseas Tourism Corporation16) 및 Huizhou Air China Auto. Trading v. Guangxi Airlines17) 두 사건 모두 중국 법원에서 중국법을 적용했다. 전자의 경우 중국법에 따른 준거법조항이 있었으며, 후자의 경우 중국법이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이라고 판단하여 중국법을 준거법으로 정하였다. 그러나 이 사례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불가항력에 관한 가장 관련성이 높은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표본 규모가 너무 작아 의미 있는 분석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 다른 전염병과 관련된 국제 사례로는 Chu Xiang v. Ni Keke Labor Contract Dispute18)이 있으나 계약의 이행 장소가 앙골라였기 때문에 계약이 외국 관련 계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법원은 준거법에 대한 논의 없이 중국법을 적용했다. 이는 중국 법원이 외국적 요소가 있더라도 항상 준거법 분석을 실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불가항력을 증명하기 위해 계약 당사자에게 ‘불가항력인증서(force majeure certificate)’를 대량으로 발급하고 있다. 러시아,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에서도 이러한 불가항력인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법률에 따라 CCPIT 인증서의 법적 지위는 불확실하다. 러시아나 이탈리아의 경우 상공회의소가 인증서를 발급하는 것과 달리 CCPIT는 공식적으로는 민간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정관은 국무원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정관에서도 CCPIT가 이러한 유효한 인증서를 발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2016년 Sichuan Borui Vision Outdoor Media Co., Ltd. v. Hangzhou Aoxiang Advertising Co., Ltd.19)에서 CCPIT에 증거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은 불가항력 항변이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이 판례는 불가항력 조항이 없는 CCPIT 인증서의 독립적인 지위에 대해 논의하지는 않지만,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CCPIT가 불가항력적인 문제를 처리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며, 중국 법원으로부터 불가항력 인증서가 일정한 존중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중국 법에 따라 CCPIT 인증서가 특정 증거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요약하자면, 중국의 불가항력 법은 특히 불가항력 조항에 대한 제한적인 해석과 중국 법원이 계약을 조정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이 특징이다. 가이드라인은 이러한 차이를 더욱 확대하며, 이러한 차이는 법원에서의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코로나19와 불가항력관련 섭외사건에서 국제사법에 의한 분석이 필요하다.
국제적 강행규정은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적용을 배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불어 준거법이 외국법이더라도 그 적용이 배제되지 않는 강행규정을 의미한다.20)21) 국제적 강행규정의 개념은 각 국가의 입법에 의해 명시적 규정을 두고 있지만, 그 논리적 체계는 완전히 정립되어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22) 우리 국제사법 제20조에서도 이러한 국제적 강행규정을 규정하고 있지만 어떤 규정이 국제적 강행규정으로 해석되어야 하는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23) 더 나아가 유럽연합 로마 I 협약 제9조 제2항에서는 국제적 강행규정을 ‘절대적 강행규정’(overriding mandatory provisions)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관련하여 이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동 협약 제3.3조, 제3.4조, 제6.2조, 제8조 등에서는 ‘강행규정’(mandatory provisions)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때의 해석상 강행규정은 국내적 강행규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 협약 제9조 제2항에서의 ‘절대적 강행규정’은 국제적 강행규정을 의미하므로 양자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24)
위의 예에서, 가령 CCPIT의 불가항력확인서 발급을 내용으로 하는 중국의 입법이 국제적 강행규정으로 판단되어질 수 있느냐의 문제가 당장 제기될 수 있다.25) 이는 국제적 강행규정을 간섭규범적 측면에서 파악을 하여, 국제적 강행규정성을 결정하고자 한다.26) 대부분 국가에서 입법을 통해서 국제적 강행규정을 해결하고 있지만, 논리적 체계는 잘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 따라서 동 연구를 통해서 논리적 원칙을 세우는 계기로 활용하고자 한다. 또한 그 내용적 측면에서도 다양한 분류작업의 방법으로 체계화를 시도하여 실무에서 유용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27)
국제적 강행규정의 범위 및 그 적용의 문제로 앞서의 개념 정립, 개별 국가의 관행 그리고 각국 법원의 판결례28)를 살펴보고 일률적인 기준의 정립이 아니라 개별적 해석 및 적용이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COVID-19의 영향에 의해 제정된 한 국가의 국내법이 비록 국제적 강행규정의 요건을 갖추더라도 개인 간의 국제거래에서 합의한 또는 국제사법에 의해 정해진 준거법을 배척하고 이를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는 국가마다 다른 관행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일반적으로 국제적 강행규정은 계약의 약한 당사자를 보호하는 목적성을 가지므로 사적인 국제거래에서는 이를 긍정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법정지의 국제적 강행규정의 경우는 비록 준거법이 다르게 정해졌을 지라도 그 국제적 강행규정은 당해 사건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반면에 제3국의 강행규정을 적용해야 하는 경우29) 또는 국제중재의 경우30)에는 국제적 강행규정이 적용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제3국의 국제적 강행규정이 배척되거나 국제중재에서 국제적 강행규정이 배척된다면, 동 판결 및 중재판정이 국제적 강행규정의 소속국으로 승인 및 집행이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 그 소속국의 공서(public order)와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그러한 승인과 집행을 장담할 수 없다.
법정지의 국제적 강행규정의 적용문제와 공서조항의 적용문제는 우리 국제사법 제20조에 의해 개별적으로 해석 및 판단을 할 수 있다. 다만 국제중재 및 제3국의 강행규정을 적용하는 문제는 앞서 보았듯이 그 승인 및 집행 과정에서 문제가 된다.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 소위 뉴욕협약 제5(2)(b)조에서 승인 및 집행국의 공서에 반하는 경우를 들고 있는데, 앞서 본 예처럼 제3국의 국제적 강행규정을 배척한 경우 집행 및 승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 차원에서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기로 한다.31)
앞서 보았듯이 유럽연합 로마 I 협약 제9조 제2항에서는 ‘절대적 강행규정’(overriding mandatory provisions)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관련하여 이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동 협약 제3.3조, 제3.4조, 제6.2조, 제8조 등에서는 ‘강행규정’(mandatory provisions)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때의 해석상 강행규정은 국내적 강행규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 협약 제9조 제2항에서의 ‘절대적 강행규정’은 국제적 강행규정을 의미하므로 양자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동 협약 제9조 제1항에서 ‘절대적 강행규정’의 정의를 하고 있어 국제적 강행규정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있다. 동 협약 제9조 제1항은 “본 협약에 따라 지정된 계약의 준거법에 관계없이 한 국가가 그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구조와 같이 공적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적용범위에 포함되는 사안에 대하여 적용하는 것이 중대하다고 여기는 규정이 절대적 강행규정이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어떠한 국내적 규정이 절대적 강행규정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공적이익’(public interests)을 보호하기 위한 법 규정이어야 한다.32) 따라서 적어도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법 규정은 순전히 사적이익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므로 국제적 강행규정으로 보기 힘들다.33)
하지만 앞서본 중국의 CCPIT 불가항력확인서 발급을 내용으로 하는 중국의 입법이 국제적 강행규정으로 판단되어질 수 있느냐의 문제는 단순히 로마 I 협약에서의 국제적 강행규정의 정의규정에서 밝혔듯 공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규정의 범주에 CCPIT의 불가항력확인서가 포함되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국제적 강행규정을 초개인적인 공적 이익에 봉사하는 간섭규범적 측면에서 파악을 하여, 국제적 강행규정성을 결정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는 타당하다. 하지만 공적 이익의 측면을 확장하여 파악한다면 중국정부가 COVID-19에서 국가적 이익을 보호하기위해 국가가 개입하여 불가항력확인서를 발급하는 행위는 충분히 공적 이익에 봉사하는 조치라 최소한 중국이 법정지인 경우에 이는 충분히 관철될 것이라 보여진다. 대부분 국가에서 입법을 통해서 국제적 강행규정을 해결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으며 현재 논리적 체계는 잘 정립되어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이는 법정지가 어디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재판정의 경우, 가령 외국의 중재지에서 배척된 자국의 국제적 강행규정이 강행규정의 소속국으로 승인 및 집행이 되는 경우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소속국의 국제적 강행규정을 배척하는 것이 그 소속국의 공서(public order)와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조사·분석하면 실무적으로 충분히 고려할 사안임이 명확할 것이다.
국제적 강행규정의 적용문제 있어 우리 법원에서도 준거법소속국 및 법정지의 강행규정을 적용하는데 있어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만 제3국의 국제적 강행규정 및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의 경우에 그 논리적 체계에 따른 적용여부에 있어 고려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정리를 제공할 수 있어 실무적 판단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계약당사자 입장에서 불가항력과 관련한 계약조항을 명시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최선이며, 아울러 국제계약에서 COVID-19의 불가항력 적용은 국가마다 법리와 판례에 따른 이동을 잘 파악하여 분쟁에 임해야 하는 결론도 가능하여 실제 계약 당사자들의 계약서 작성에 대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
국제적 강행규정에 대한 해석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많은 국가에서 국제사법을 통하여 국제적 강행규정에 대한 입법을 하고 있다. 우리 국제사법은 로마협약을 계수한 것으로 동 규정도 로마협약의 취지를 살려서 적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유럽사법재판소의 관련 판례를 분석·연구할 필요가 있다. 개별법 조항에 국제적 강행규정임을 명시적으로 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나 이는 명확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국제적 강행규정에 대한 입법론 및 적용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며 통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Ⅵ. 결론
국제사회는 COVID-19의 급격한 확산으로 국제계약의 계약불이행 가능성이 발생하였고, 더 나아가 이러한 사정의 계약불이행이 불가항력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계약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무엇보다도 COVID-19로 인한 불가항력의 논의는 지금까지의 불가항력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첫째 확실하게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주는 첫 번째 사건인 점, 둘째 강력한 공적 이익과 관련된 불가항력이라는 점, 셋째 이러한 공적 이익이 국가적 수준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COVID-19가 국제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COVID-19의 특징적 성격과 국제계약에서의 불가항력의 논의는 이런 상황에서 준거법과 국제재판관할을 정하는 각 국의 국제사법의 적용에 있어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공서와 국제적 강행규정에 대한 논의가 더욱 그러하다. 전통적으로 국제사법 이념은 사인간의 정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COVID-19로 인해 불가항력이 발생하게 되는 경우 국가적 수준에서 공익을 보호해야할 필요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국제사법의 적용에 다양한 이익 충돌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COVID-19와 불가항력 충족요건에 관한 분석을 기초로 하여, 많은 국가들이 국가경제의 봉쇄(lockdown) 및 국제무역의 혼란으로 인해 발생 가능한 국제적 계약불이행에 따른 혼란을 선제적으로 방지하고자 하는 국내 입법 및 국가 차원의 선언을 하고 있다. 특히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에서는 COVID-19로 인한 계약불이행에 대하여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불가항력확인서’를 발급하고 있으며, 2020년 4월까지 7004건을 발행했다. 또한 인도의 경우는 2020년 2월 재무부 명의로 COVID-19로 인한 공급망 훼손을 불가항력이라 공식적으로 선언을 하였다. 더 나아가 러시아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국가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특히, 중국, 인도 및 러시아는 우리와의 국제거래에 있어 중요 교역국이며, 거래 비중도 상당하다. 이러한 양국 거래 당사자와의 관계에서 국제거래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구체적으로 계약불이행에 대한 면책을 주장하는 근거가 중국 및 러시아의 ‘불가항력확인서’ 또는 인도 재무부의 불가항력 관련 정부선언인 경우, 그리고 계약당사자가 분쟁해결을 위해 제3국의 준거법으로 합의한 경우 그 처리에서 있어 법적 논쟁 가능성이 충분하다. 더 나아가 개별 국가가 자국의 거래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개입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 구체적으로 국가의 입법 및 공식적인 선언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국가적 조치의 법적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CCPIT의 불가항력확인서는 상업인증 분야의 사실 증명 행위에 속하며, 즉 CCPIT는 신청자의 신청에 따라 불가항력과 관련된 사실을 증명해야 함을 의미하며, 법적 근거는 ‘중화 인민 공화국 대외무역법’과 국무원이 승인한 ‘중국 국제무역촉진협의회 조항’이며, CCPIT가 발행한 불가항력확인서는 전 세계 20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의 정부, 관세, 상공 회의소 및 기업에서 인정을 받았으며 지역 밖에서도 강력한 집행력을 가지고 있다. 한편, 인도의 경우 정부의 공식적인 선언을 통해서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COVID-19를 자연재해 상황으로 고려하여 불가항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 또한 정부당국의 법적 근거에 의한 선언으로서 효력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중국과 인도는 특히 이러한 국가적 조치로 COVID-19에 의한 국가봉쇄조치 발생으로 계약상 의무불이행이 불가항력에 해당하여 당사자를 계약상 의무에서 제외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위 국내법 조항이 국제적 강행규정으로 간주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국제적 강행규정은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적용을 배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불어 준거법이 외국법이더라도 그 적용이 배제되지 않는 강행규정을 의미한다. 위의 예에서, 가령 CCPIT의 불가항력확인서 발급을 내용으로 하는 중국의 입법이 국제적 강행규정으로 판단되어질 수 있느냐의 문제가 당장 제기될 수 있다. 어떤 법규가 국제적 강행규정 또는 간섭규범인가의 여부는 법규의 성질 결정의 문제인데, 의문이 있는 경우는 국제적 강행규정이 아니라고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나, CCPIT의 불가항력확인서를 발급하는 행위는 행정법적인 절차 내에서 전속관할을 가지는 관청을 통하는 정규적인 집행을 행하는 것으로, 따라서 동 확인서의 근거 법률은 간섭규범이다. 이는 국제적 강행규정의 간섭규범적 측면에서 CCPIT의 확인서를 파악하여, 국제적 강행규정성을 결정하였다. 국제적 강행규정의 범위 및 그 적용의 문제로 앞서의 개념 정립, 개별 국가의 관행 그리고 각국 법원의 판결례를 살펴보고 일률적인 기준의 정립이 아니라 개별적 해석 및 적용이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COVID-19가 전 세계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질병으로 인식되는 등 경각심이 감소하고 추세적으로도 그렇다. 하지만 관련 논쟁 및 법적 판단은 앞으로 계속적으로 현출될 것이라 보고 이에 대한 분석 및 결론 도출에 반영되지 못하는 부분도 존재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팬데믹 상황은 COVID-19로 끝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제2, 제3의 COVID-19가 발생할 것이라 예측할 수 있어 관련 분야에 대한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